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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개헌론 신중하고 사심없이

    개헌문제가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차기를노리는 여야 중진들이 연설회나 대학강연을 통해 제기하기때문에 아직 정당의 공식 움직임과는 무관한 듯하지만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면면의 비중을 볼 때 쉽게 사그라들것 같지는 않다. 2002년을 겨냥하는 대권 예비주자들과 당내 야심가들이‘관심끌기’ 차원에서 개헌론을 제기하는 것인지 아니면정치적 소신인지도 아직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여야 중진의원들의 개헌론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계의 빅이슈가 되고태풍이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심각한 상태이다.IMF위기 극복과 남북대화 정국 그리고 실업문제 등 새로운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태도는 국민을 실망시키고도 남는다. 따라서 어떤 형태이든 정치권의 개혁 나아가서 권력구조의 개편을 바라는 국민은 예상보다 훨씬 많다.서투른 무당이 장구 탓만 한다고 지금 정치권의 문제를 모두 권력구조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크게 달라진 국내외 환경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국가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개헌문제를 성역으로 덮어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에 견디지 못하고 ‘6·29항복선언’을 하면서국민의 합의를 거쳐 만들어졌다.군정세력과 민주세력간에일종의 타협의 산물이다. 유신이래 계속되어온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로잡고단임제를 채택함으로써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에게정권교체의 청량감을 주도록 하였다. 5년 단임제는 당시강력한 대권후보들에게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여 쉽게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7년 10월27일 국민투표에서 찬성률 93.1%로 확정되어공포된 제9차 개헌이 현행헌법이다.평균 4.3년의 개헌사에서 볼 때 14년을 유지하여 ‘장수’한 셈이다. 그러나 국가기본법인 헌법의 개정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과거 불행했던 정치사에서 개헌의 대부분이 집권자의 권력연장을 위해 강행되었다.지금은 그와는 달리 여야 중진의원들이 앞서고 있는 것이 달라진 모습이다.따라서 개헌론이 권력연장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아니라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라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행헌법 구조에서 정치는 항상 불안정성을 보여왔다.특히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만성적인 정치불안으로 국가의 에너지결집과 국민통합에 어려움이 따랐다. 대통령 중심제는 행정부와 국회가 모두 국민으로부터 통치를 위임받는 ‘2중 정통성(dual legitimacy)’의 구조때문에 끊임없는 정치싸움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지적된다.미국과 같이 200년이 넘는 전통과 철저한 권력분립 그리고 성숙한 의회가 제도화되지못한 나라에서는 극심한 정치대립으로 국정의 혼란을불러왔다. 개헌문제는 대선 예비주자들의 집권욕이나 ‘짝짓기’ 등정략으로 제기되어서는 안된다. 21세기형 효율적인 국가경영체제를 모델로 충분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국경선이 사라져가는 국제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남북화해협력과 궁극적으로 통일에 대비하는 원대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개혁과 지역화합도 중요한 목표치가 될 것이다.지역주의에 텃밭을 둔 국회와 정당구조를 혁파하는체제가 요구된다.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서는 영토조항 등현실적인 필요성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실업자가 100만이 넘고 건강보험재정파탄,현대건설과 현대전자의 유동성 위기를 비롯해 국가경제가 다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민생문제와 개혁입법은 제쳐둔 채개헌문제나 거론한다면 국민의 호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권은 우선 정치인들 스스로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있도록 정파를 초월하여 민생문제해결에 협력하고 개혁입법을 통해 정치개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하라는 말이다. 그런 연후에 또는 동시에 중장기적인 국가발전과 민족통일,지역화합과 국제경쟁력 강화 등 모든 가능성과 예측성을 바탕으로 개헌문제를 신중하고 사심없이 논의해도 늦지않을 것이다. 김삼웅 주필 kimsu@
  • 정주영회장 유산, 건설에 증여

    21일 타계한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이 갖고 있던 현대건설 지분 15.77%(739억원 상당)가 현대건설에 무상증여됐다.정 전 회장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거행하기로잠정 결정됐다. 현대는 22일 “정 전 회장의 보유주식과 자택 등 1,000억원 가량의 재산 가운데 현대건설 지분 15.77%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계열인 현대건설에 무상증여됐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는 이날 “정 전 회장이 82년부터 84년까지 대한체육회장을 지내고,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체육계 전반에 크게 공헌했다”며 장례식을 국민장으로 치러줄것을 행정자치부에 건의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국민장이나 사회장으로 해달라고 건의했다.그러나 행자부 관계자는 “유족들과 국민장 거행 여부를 논의했으나 유족들이‘고인의 검소한 생활신조를 존중해 가족장으로 치르겠다’고 밝혀 일단 국민장으로 치르지는 않기로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현대는 조문을 위해 서울 청운동 자택을 비롯, 국내외 사업장 등에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북한에도 정 전 회장의 별세를 알리는 부고장을 보냈다.금강산관광사업과 평양체육관 건립을 위해 파견돼 있는 현대 직원 등을 위해 금강산온 정각(휴게소)과 평양체육관에도 분향소를 설치했다.이날 청운동 자택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대신해 한광옥(韓光玉) 대통령 비서실장이 조문했으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 김영삼(金泳三)·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신국환(辛國煥)산자부장관,구본무(具本茂) LG 회장 등 정계·관계·재계 인사들의 추도행렬이 잇따랐다. 주병철 안미현기자 bcjoo@
  • 정 명예회장 타계…정치권 반응

    정치권은 22일 고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한국경제와 남북관계 발전에 남긴 족적을 기리며 애도를 표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을 보내조의를 표한 것을 비롯,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여야 지도부,전·현직 국회의원 등이 빈소가 차려진 서울 청운동 자택을 찾아 명복을 빌었다. 김 대통령은 전날 밤 부음을 접하고 “정 전 회장은 한국의 산업화시대에 기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인들은 그의 공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김기수(金基洙) 전 수행실장,김광석(金光石) 전 경호실장등과 빈소를 찾아 정몽구(鄭夢九) 회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정치권에서는 YS가 정 전 회장의 빈소를 직접 찾음에따라 지난 92년 대선 뒤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두 사람의관계가 정 전 회장 사후에 비로소 해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후 당직자들과빈소를 찾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최병렬(崔秉烈)부총재,정창화(鄭昌和)총무와 함께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떠나기 직전 도착해 이 총재와 조우했다.이 총재는 JP일행과 아무 말 없이 악수한 뒤 곧 자리를 떴다.두 사람의표정에는 얼마 전 한나라당 당보인 ‘민주저널’이 JP의정계 은퇴를 요구한 데 따른 서먹함이 역력했다.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는 오후 청와대 주례보고를 마친 뒤 주요 당직자들과 함께 빈소를 방문했으며,여야는 성명 또는 논평을 내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지운기자 jj@
  • 타계한 경제거목 王회장 정주영씨/ 청운동 빈소 표정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는 22일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쯤까지 각계각층의 조문객 3,500여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21일 밤 서울중앙병원에서 숨을 거둔 고인의 시신은 사망 9시간여만인 22일 오전 7시15분쯤 청운동 자택으로 옮겨졌다.운구가 도착하자 박세용 인천제철 회장이 2층 베란다에서 “정주영 명예회장님 복”이라고 세번 외치는 초혼의식을 거행했다. 12평 남짓한 빈소에는 고인의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가로 50㎝,세로 1m 크기의 영정이 순백의 국화꽃 수백 송이사이에 놓여 있었다.시신은 분향대 뒤편 사방이 투명하게제작된 유리관에 안치됐다.몽구,몽근,몽헌,몽준,몽윤,몽일씨 등 6형제는 빈소 옆에 나란히 서서 조문객을 맞았다. ■정 전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22일 형의 별세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급거 귀국해 오후 7시30분쯤 빈소에 도착,영정을 마주하자 참았던 슬픔을이기지 못한 채 울먹였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말 폐암에서 완치됐다는 진단을 받고 요양을 위해 미국에 머물다이달 초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했었다. ■정 전 명예회장의 입관식은 이날 오후 10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됐다.유족들은 입관식을 마친 뒤 조문객을 받지 않고 23일 오전 8시부터 조문객을 들이기로 공식 발표했다. ■청운동 자택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등 각계 인사들이보낸 조화로 가득 메워졌다. 이명박(李明博) 전 의원은 “너무 큰 분인데 경제가 어려울 때 돌아가셔서 아쉽다”면서 눈물을 훔쳤다.조중훈(趙重勳) 한진그룹 명예회장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조문한 뒤 “평생을 밀짚모자 쓰고 다니시며 애국한 일밖에 없으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제12대 대통령전두환’을 한자로 쓴 뒤 그 밑에 ‘명복을 빕니다’라고한글로 적었다.김종필(金鍾泌)자민련 명예총재는 ‘한국경제발전에 신화를 남겨놓으시고 급기야 가셨군요’라고적었다.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간단히 썼다.전 전 대통령은 상주인 몽구씨에게 “일하시는 데 욕심이 많았던 분인데,대통령에 출마만 안하셨으면…”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머물던 자택 2층 10여평 남짓한 남향 방은 바닥이 온통 흰 광목으로 깔려 있었다.방안에는 마사지를 받던간이 침대와 15년된 낡은 TV,책장,가습기 2대, 온풍기 2대가 있었다.책상 위에는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찍은 연설비디오 등이 진열돼 놓여 있었다.유족들은 육개장에 김치,멸치,돼지고기 등 여느 상갓집과 같은 수준으로 조문객들을 대접,검소한 집안 풍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뽀빠이 이상룡씨,히딩크 축구 국가대표 감독,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이상주 정신문화연구원장,이인호 전 러시아대사,탤런트 최불암씨,연극인 윤석화씨,도올 김용옥교수등도 빈소를 찾았다. ■현대측은 한때 정 전 명예회장의 장례비용을 28억8,300만원으로 책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7억∼8억원으로 수정,공식 발표했다.현대측은 이날 “28억여원은 지나치게부풀려진 것”이라면서 “장례식을 검소하게 치르기를 원하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많아야 7억∼8억원 정도”라고밝혔다.■조문객들은 정 전 명예회장의 장례예우를 놓고 설왕설래했다.장례는 일단 가족장으로 결정됐지만 고인이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기때문이다.맏상주인 몽구 총괄회장은 빈소를 찾은 이 한나라당 총재 등과 대화를 나누면서 “국민장을 치르게 된다면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박록삼 안동환기자 youngtan@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체육계 남긴 발자취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서울올림픽 유치에 핵심적인 역할을했으며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하는 등 체육계에서도 커다란족적을 남겼다. 서울올림픽 유치는 정회장의 추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지난 81년 1월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독일을 방문,일본 나고야 유치단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당시는 전두환정권 초기로 정국이 불안한데다 나고야 유치단의활동이 워낙 활발해 국민들은 유치에 회의적이었다.그러나정회장은 현대그룹 독일지사 직원들을 총동원,다양한 유치전을 펼쳤고 올림픽 위원들의 숙소에 한국인의 올림픽 유치염원을 담은 생화를 줄기차게 배달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 이 때문에 일본을 지지한 위원들이 한국쪽으로 하나 둘씩돌아섰고 결국 9월30일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제24회 올림픽 서울 개최”를 선언했다.정 회장특유의 ‘밀어붙이기’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감격을 안겨준순간이었다. 올림픽 유치의 공로를 인정받아 82년 7월 대한체육회장에피선된 정 회장은 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을 면밀히살폈다.또 저명인사를 초청하고 현대 해외지사를 통해 대대적으로 올림픽을 홍보하는 한편 84년에는 북한에 단일팀 협의를 제안하는 등 앞선 자세로 올림픽 성공을 일궈냈다.정회장은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기업의 경영 기법을 체육계에 도입하기도 했다.현대 관계자들은 이후 축구 농구 양궁 씨름 등 많은 종목의 회장직을맡으며 스포츠 육성에 앞장 섰다. 특히 어린시절 강원도 통천에서 씨름을 즐겨한 정회장의씨름 사랑은 유별났다.현대그룹 사원연수와 체육대회에서는직접 샅바를 잡고 겨루기도 했다.또 여자농구에도 애정이커최근까지만 해도 직접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정회장의 체육에 대한 관심은 아들 정몽준씨에게도 이어져몽준씨는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유치의 일등공신이 됐다. 한편 김운용 회장 등 대한체육회 및 대한올림픽위원회 회장단은 22일 청운동 빈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프로야구 현대는 이날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시범경기에서 고인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현대선수단 전원은 왼쪽 어깨에검은 리본을 단 채 경기에 나섰고 경기시작 전 LG선수단과 함께 짧은 묵념을 했다. 김민수기자 kimms@
  • ‘상공의 날’ 174명에 훈·포장

    제28회 ‘상공의 날’ 행사가 21일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하고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등 각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에서 박영주(朴英珠) 이건산업 회장과 신중규(申仲奎) 피스코리아 대표가 각각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호연(金昊淵) 빙그레 회장 등 9명이 산업훈장을,이규홍(李揆洪) 풍산 부사장 등 5명이 산업포장을,정연철(鄭然徹) 풍국기업 대표 등 9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모두 174명의 상공인이 훈·포장을 받았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宰國·시공사 대표)씨도 산업자원부장관 표창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박용성(朴容晟) 상의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미국,일본 등 선진국 경기침체로 세계경제에 동시불황의 그림자가드리워져 있는 만큼 기업들이 핵심역량 강화와 기술개발을 통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행사에는 신국환(辛國煥) 산자부 장관,김각중(金珏中) 전경련 회장,김재철(金在哲) 무역협회 회장,김영수(金榮洙)기협중앙회 회장 등 경제 4단체장과모범상공인,재외동포상공인 등 1,100여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포상자 명단. ◆산업훈장(9명) ▲금탑 朴英珠(이건산업 회장) 申仲奎(피스코리아 대표이사) ▲은탑 金昊淵(빙그레 회장) 方丁基(LG화학 부사장) ▲동탑 姜貞求(에프와이디 대표이사) 韓炯錫(마니커 대표이사) ▲철탑 徐相圭(영기합섬 대표이사)朴冠會(대선제분 대표이사) ▲석탑 崔伯奎(조흥전기산업대표이사) ◆산업포장(5명) 李揆洪(풍산 부사장) 朴龍海(동양산업 대표이사) 曺永模(롯데상사 상무이사) 李勉官(Qing Yin 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플로리안슈프너(한독상공회의소 대표) ◆대통령표창(9명) 鄭然徹(풍국기업 회장) 申達錫(동명통산 대표이사) 權晳珍(영진프라스틱공업 대표)梁正武(랭스필드 대표이사) 成映穆(삼성물산 상무이사) 尹學柱(한국야쿠르트 공장장) 白道哲(한국단자공업 상무이사) 安萬吾(PT.Bumi TekindoDam Par jaya 대표이사) 태미 오버비(주한미국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 ◆국무총리표창(13명) 柳麟奎(정화흥산 대표이사) 鄭津澤(한국몰렉스 대표이사) 洪性潤(고려자연식품 대표이사) 金正虎(한독정밀공업대표이사) 全鍾仁(우수기계공업 대표이사) 金相準(한화 이사) 金永植(영창산업 이사) 羅采萬(대우전자 과장) 河善植(성우실업유한공사 대표이사) 辛台永(Al-Mutawa SamYong대표이사) 히라타 요시오(한국도카이카본 부사장) 타카하시 사카에(한국에바라정밀기계 공장장) 피터 리차드슨(한국스카파테이프 대표이사) ◆산업자원부 장관표창(101명)金承泰 세계산업 대표 외 100명
  • 전재국씨 ‘상공의날’ 장관표창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宰國)씨가 제28회‘상공의 날’ 행사에서 산업자원부장관 표창을 받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일 “시공사 대표인 재국씨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추천으로 장관표창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상공의 날 행사는 21일 열리며 모범 상공인을포상하는 상공업계 최대 행사이다.장관 표창은 재국씨를 포함,모두 101명이 받는다.시공사는 디스커버리총서로 유명한출판사이다.
  • [공직인맥 열전](37)법무부·검찰②

    5월말이면 박순용(朴舜用·사시 8회) 검찰총장의 2년 임기가 끝난다.차기 검찰총장은 사시 9∼12회가 포진한 고검장급에서 나올 전망이다. 검찰 인맥의 정점에 있는 고검장급은 모두 8명.대검차장과법무연수원장, 법무부차관,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고검장이다.출신지별로는 경북 3명,호남 2명,경남 2명,서울 1명으로 골고루 안배돼 있다.고려대 출신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고검의 역할이 강화되긴 했으나 직접 수사를 하는 일이 없어 고검장은 ‘촌수만 높은’ 한가한 직책으로 꼽힌다.검찰총장으로 발탁되거나 대법관,헌법재판관 등으로 영전되기도하고 동기나 후배가 총장이 되면 옷을 벗는 마지막 보직이되기도 한다. 신승남(愼承男·사시 9회) 대검차장은 현재 가장 유력한차기 검찰총수 후보.목포 출신으로 목포고를 졸업했다.검사장급 중 김학재(金學在) 법무부 검찰국장,김규섭(金圭燮)대전지검장,정충수(鄭忠秀) 수원지검장 등 3명이 목포고 동문이다. 신차장은 서울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사시에 수석 합격,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특채돼 공직자 사정업무를 맡았던 특이한 경력이 있다.다소 차가운 느낌을 주는 외강내유형.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는 평을 듣는다.공안·특수수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도 거쳤다.조상호 전체육부장관의 사위. 주선회(周善會·사시 10회) 법무연수원장은 오는 22일 퇴임하는 이영모(李永模)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헌재에는 사시 동기생인 송인준(宋寅準)재판관이 있다. 이명재(李明載·사시 11회) 서울고검장과 김경한(金慶漢·사시 11회) 법무부차관은 사시 동기이면서 경북고와 서울법대 선후배 사이.박순용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찰내TK라인을 잇고 있다. 이 고검장은 특수수사 분야에서,김차관은 법무부 검찰국과공안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선의의 경쟁을 해왔다.이 고검장의 형은 이경재 기업은행장,동생은 이정재 재정경제부차관.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영동개발사건 등 경제사건 수사에 족적을 남겼다.부드럽고 겸손한 성품.김차관은검찰1과장을3년간 역임,검찰행정과 인사에 밝고 공안수사와 교정행정 분야 등 다방면에서 경력을 쌓았다.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원만한 대인관계가 큰 장점. 김영철(金永喆·사시 11회) 대구고검장은 ‘TK’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법대를 나왔다.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에 정이 많은 외유내강형.서울지검 특수2부장과 강력부장을 역임한 특수·강력수사통.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할 때 인권법과 재외동포법 입안에 큰 역할을 했다. 호남인맥의 실세인 임휘윤(任彙潤·사시 12회) 부산고검장은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다.92년에는 호남 출신으로는 두번째로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역임했고, 69년 고 김용제(金龍濟) 서울지검장 이후 호남 출신으로 30년 만에 서울지검장에 올랐다.공안·특수수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호방한 성격에 보스 기질이 있다. 이종찬(李鍾燦·사시 12회) 광주고검장은 검찰내 손꼽히는특수수사통.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려대를 나왔다.체구는 작지만 추진력이 강하다. ‘율곡비리’ 사건,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12·12 및5·18사건 재수사 등 굵직한 사건을 지휘했다. 한부환(韓富煥·사시 12회) 대전고검장은 서울 출신으로경기고 인맥의 정점에 있다.자상하면서 유머가 뛰어나 검찰내 재사(才士)로 알려져 있다.서울고검 차장 시절 ‘수사지휘론’을 썼다.대검 중수부 과장 때 ‘수서사건’ 수사를맡는 등 특수수사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손성진기자 sonsj@
  • 청와대 홈페이지 ‘역대 대통령’ 등장

    청와대 홈페이지(www.cwd.go.kr)의 ‘역대 대통령’ 코너가 새롭게 단장돼 18일 선을 보였다.‘역대 대통령’ 코너는 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국빈선물 전시관,기념우표 전시관 등 모두 9개의 주메뉴로 구성돼 있다. 이 코너에는 역대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약력,연표,사진자료,육성녹음,동영상자료 등 다양한 자료가 수록돼 있다.아울러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신년사,6·25 전쟁중 부산으로옮겨간 국회 사진,박정희 전대통령의 빈소사진 등 희귀한자료들과 함께 정부조직법 공포 문서,베트남 파병결정 문서등 연대별 주요 관련 자료들도 실려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역대정부별 정무직 출신지

    정부 수립때부터 지난해 12월31일까지 모두 1,934명이 대통령,총리,장·차관,처·청장 등 정무직 공무원으로 역임했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출신지 비율은 이승만 정권의 편중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노태우 정부,최규하·전두환 정부,김영삼 정부도 일부 지역에 치우진 인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윤보선·장면 정부,박정희 정부 1기(61∼72년),2기(72∼79년) 순이었다. 현 정권의 경우 비교적 출신지별로 골고루 분포돼 있는것으로 분석됐다. 또 재임기간이 길었던 박정희 정권때에도 정무직 공무원의 지역 안배가 꽤 잘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황해도 평산 출신인 점과 이정부때 오히려 경인지역 출신이 많이 등용된 점을 감안하면 연고지 중심의 편중 인사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현 정부의 경우는 아직 임기가 2년 정도 남아 있기 때문에 ‘가장 낮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사시점을 기준으로지역 편중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임용률은 전국을 경인(서울 포함)·영남·호남·충청·강원 등 5개 지역으로 나눠 볼 때 경인지역 출신이 가장 높고 이어 영남,충청,강원,호남 순이었다. 호남 출신의 경우 역대 모든 정부에서 다른 지역 출신에비해 임용률이 크게 떨어졌으나 현 정부에서는 평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영남 출신은 최규하·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김영삼 정부 당시 임용률이 급상승했고,현 정권 들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
  • 故박충훈씨…60년대 공업화·수출 기반 닦아

    16일 타계한 박충훈(朴忠勳) 전 대통령권한대행은 박정희(朴正熙)정권에서 공업화와 수출입국을 주도한 인물이라는평가를 받고 있다.그러나 지난 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뒷받침한 전력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한다. 그는 지난 19년 제주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나온 뒤 48년부터 상공부 무역국장으로 근무하다 군에 들어갔다.국방부 경리국장 등 경리책임자로 복무하던 중 63년 박정희(朴正熙)정권에 의해 상공부 차관으로 발탁되면서 3공화국 경제전문가로 활동했다. 그 뒤 상공부장관(64년 5월∼67년 10월)을 거쳐 67년부터69년 6월까지 경제부총리를 지내면서 1·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부총리를 끝으로 공직에서 일단 물러난 그는 73년부터 79년까지 무역협회장을 지내면서 한·미경제협의회 한국측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직후인 5월21일 국무총리서리에 임명됐다. 8월16일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이 하야하고 전두환(全斗煥)씨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8월27일까지 16일 동안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경숙(鄭敬淑·77)씨와 2남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발인 19일 오전 8시.(02)3410-6909. 이종락기자 jrlee@
  • JP 일문일답“대선때 될사람 성의껏 돕겠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16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DJP 회동’을 가진 뒤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다음은 일문일답. ◆오늘 회동에서 개각을 상의했나 개각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조금 더 기다려 봐라.무슨 소식이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합당하나 그런 것 없다.어디까지 양당의 공조를 할 뿐이다.각자 자기 자세를 유지하면서 밀접하고 강력하게 협력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필승의 선거 공조를 한다’는 대변인의 발표가 있었는데 유종지미의 공조라는 뜻이다.모든 것을 포함해서 밀접하게 공조한다고 이해하면 된다.지난 청와대 만찬에서 상생공득(相生共得)하자고 한 말을 기억하라. ◆내년 대선에 직접 출마한다는얘기가 있는데 나는 40년동안 정계에 몸을 담아 왔는데 내가 그런 것을 하려 했으면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나름대로 나라가 잘 되도록 묵묵히 노력해 왔다.87년 전두환(全斗煥)씨에게 내몰린 뒤 정계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대선에 출마하고 총선에입후보해야 했다.나보고 만년 2인자라서 골프도 세컨드샷을 잘 친다고 하는데 사실 세컨드 샷을 잘 친다. ◆‘킹 메이커’ 역할을 하나 내가 정계에 있는 한 무관할 수 없다.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이 사람 안된다 싶으면 반대하고,이 사람이다 싶으면성의껏 돕겠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과는 언제 만나나 만날이유가 있으면 만난다.그러나 아직은 만나서 할 얘기가 없다.논산시장 후보 공천은 당에서 책임자가 처리할 것이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언제 만나나 금명간은 만나지 않는다. ◆김 명예총재를 비난한 한나라 당보를 봤는지 내용을 보지 못했다.보나 안보나 욕을 잔뜩 썼겠지.이회창(李會昌)총재는 국가를 경영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에게 그러면 못쓴다.서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종락기자 jrlee@
  • 고위공무원 출신지 영남 32%·호남 23%

    2000년 1월 현재 1∼5급 직업 공무원 1만5,000여명의 출신지별 현황은 영남이 4,858명(32.3%)으로 가장 많고,호남은 4,123명(27.5%)으로 나타났다.이어 충청 2,621명(17.5%),서울을 포함한 경인 2,586명(17.2%),강원 638명(4.2%),기타 193명(1.3%) 순이었다. 이중 1∼3급 고위 공무원 1,840명의 출신지 현황은 영남606명(32.9%),호남 439명(23.9%),경인 382명(20.8%),충청304명(16.5%),강원 67명(3.6%) 등이었다. 중앙인사위원회가 16일 발표한 역대 정권 공직 인사 분석결과에 따르면 이승만(李承晩)정권때부터 김영삼(金泳三)정권까지는 지역별 인구 대비 장·차관급 정무직 및 3급이상 고위직,그리고 5급 이상 직업 공무원 비율에 있어 영남 출신의 편중 인사와 호남 출신의 소외가 두드러졌으나국민의 정부 들어 호남 출신이 상당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정부는 인구 비례 등을 감안할 때 이제야 편중 인사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각 부처별 요직(공무원 선호직)의 지역별 점유율은 호남의 경우 전두환(全斗煥)정부 13.9%,노태우(盧泰愚)정부 10.0%,김영삼 정부 11.0% 등으로 인구수(1949년 당시 호남출신 인구비율 25.2%)에 비해 크게 낮았으나 현정부 들어27.3%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무직공무원 누적 재임기간 비율의 경우 영남은 17∼47%에 이르렀으나 호남은 4∼15%에 불과했다.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호남이 25%로 상승한 반면 영남은 24%로 역대 정권에비해 크게 줄었다. 1∼3급 공무원의 출신 고교는 경기고 7.3%,경북고 4.6%,광주일고 3.9%,서울고 3.5%,전주고 3.1% 등의 순이었으며출신 대학별로는 서울대 31%,고려대 7.9%,육군사관학교 7%,연세대 6.4%였다. 한편 정부는 차관 인사때 장관과는 다른 지역 출신을 임명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한편 주요 정책결정 직계라인에같은 지역·같은 학교 출신이 편중되지 않도록 운영할 방침이다.또 각 부처별로 선호 직위를 자체 선정,특정 지역출신의 선호 직위 점유비율이 모집단 비율을 현저히 초과하는 경우 기관장이 자율적으로 해소토록 촉구하고,부당한 인사 청탁을 하는 공무원에 대해선 명단을공개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인사 쇄신책을 시행할 방침이다. 홍성추기자 sch8@
  • [대한광장] 사학과 교육 자율성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가 유령처럼 정치권을 맴돈다.군사독재인 전두환정권 아래서도 사립학교법은 전향적으로 개정된바 있다.그러나 노태우정권 당시 개악된 사립학교법은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김대중정부 아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다.마땅히 개정해야 할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지 못하니 유령이 될 수밖에 없다. 덕성여대 사태와 상문고 사태는 사립학교법의 악법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사례다.사립학교법이 악법으로 평가받는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첫째,학교의 교육권보다는 사학재단의 경영권을 옹호한다.특히 교수 임용과 승진,재임용등 모든 인사권을 재단이 장악하고 있다.둘째,사학의 자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사학을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의 붕괴를 방치했다.과거 부분적으로 교육부가 담당한 사학재단에 대한통제기능이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셋째,사립학교법은인사비리나 회계부정 등 반교육적·반사회적 죄목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사학재단의 복귀를 대책없이 허용한다.한마디로사립학교법은 교육적이지 않거니와 전혀 도덕적이지도않다. 사립학교법 개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점은 사학의 자율성에 대한 해석 방법에 있다.사학의 자율성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학의 개념을,좁은 의미에서의 사학재단 개념이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사학교육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이해해야 한다. 사학의 본질은 경영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사학의 핵심은 교육이며 재단은 이에 부수될뿐이다.이렇게 되면 사학의 자율성은 사학재단의 자율성이아니라 사학교육의 자율성이어야 한다.즉 자율성이 사학재단에 대한 통제 완화가 아니라 대학의 자치,교수의 교육과 연구 그리고 학생의 수업 등 전반에 대한 통제의 완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사학은 정부-재단-학교의 관계로 형성된다.지금까지 이 관계는 정부가 재단을 통제하고 재단이 학교를 통제하는 관계로 나타났다.정부는 학교에 대한 재단의 권한을 보장해주고 부정부패를 눈감아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재단의 지나친 통제나 부정부패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억제하는 역할도 담당했다.그러나 기업의 민간주도성이라는 구호와 동일한 철학적 뿌리를 가진 사학의 자율성이라는 구호는 정부와 재단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재단에대한 정부 통제를 축소하는 것이다.그 결과 사학은 오직 학교에 대한 재단의 통제 관계로만 형성되었다.사학재단의 부패와 전횡을 통제할 수 있는 내부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외부적 방어막이 제거된 셈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자율성 논의를,정부에 의한 외부적 통제로부터 학교현장을 중심으로 한 내부적 통제로의 역사적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말하자면 사학의자율성을,통제의 무조건적인 소멸이 아니라 외부적 통제의소멸 및 외부적 통제를 대신하는 내부적 통제의 강화라는 두차원의 균형잡힌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개인에게서 자율성이 책임감 강화를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할 것이다. 이것은 사학의 자율성이 재단에 대한 외부 통제의 약화와내부 통제의 강화 두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며,이미 정부에의한 외부 통제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학교 구성원에 의한자체 통제의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지난 몇년간 논란을 빚어온 사립학교법 개정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대학에서 교수회를 공식기구로 인정하고 초·중등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하여 이를 의결기구화 하자는 요구나 80년대와 마찬가지로 교원의 인사권을 학교로 환원하여야 한다는 요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학교를 설립하는 의미는 숭고한 것이며,특히나 공익을 위해사적 재산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매우아름다운 행동이다.그런 만큼 학교를 설립하는 순간 설립의숭고한 의미가 발생하는 대신 개인의 소유권은 완전하게 소멸되는 것이다.이것은 자본주의 정신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이며 미래의 자본주의를 위한 투자다.앞으로 개정될 사립학교법에는 이러한 정신이 명료하게 반영되어야 하며,사학재단들 역시 이 점을 분명하게이해해야 한다. ■정 대 화 상지대교수·정치학
  • 前대통령등과 회동 안팎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미국 방문 성과를 알리며,북한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성사시키기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14일 저녁 청와대에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만찬을 함께 했다.이어 15일 3부 요인 등 초청 오찬,17일 민주당 최고위원들과의 오찬을 겸한 회의를 주재하고 각계의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다. 먼저 김 대통령은 미국 방문 기간 중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회,한반도 전문가,경제인 등을 만나 나눈 얘기를 상세히 설명했다.“미국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길 기대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또 “미국이 지금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클린턴 전 정부가 이룬 것을 이어갈지,수정할지 검토하고 있는것 같다”고 전하고 “앞으로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히 유지하고 한·미·일 공조 속에 대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아울러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미국 경제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으며,우리 경제에 대해서도 평가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두 전직 대통령은 “남북 관계가 잘 돼야 한다”면서“모처럼의 남북 화해·협력 관계가 한·미의 동맹과 공조속에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2차 남북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이뤄져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고 평가했다.김영삼(金泳三)·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도 초청을 받았으나 개인 일정 및 건강문제를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김 대통령은 지금까지 네 차례 전직 대통령들과 만찬을 함께 했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이날 만찬까지한 번도 빠지지 않았으나,김영삼 전 대통령은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번번이 불참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전·노 전대통령 초청 만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4일 저녁 청와대에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만찬을 갖고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설명한 뒤 남북관계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김삼웅 칼럼] 진짜 언론인 함석헌 100주년

    오늘(13일)은 함석헌선생 탄생 100주년이다. 함석헌은 역사연구가·사상가·민권운동가·잡지발행인 등 여러가지로 분류되지만 ‘진짜 언론인’도 한 범주라 하겠다. 언론인이면 언론인이지 진짜는 뭐고 가짜는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상품에 진짜와 가짜가 있고 진실한 사람과 위선자가있듯이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랜 독재와 냉전시대에사이비언론(인)이 득세하고 판칠 때 함석헌이야말로 진짜 언론인의 역할을 했다. 제도언론에 지면이 허용될 때는 할 말을 하고,지면이 봉쇄당할 때는 ‘언론게릴라전’을 펴면서 독재와 냉전세력과 싸웠다. 최근 어떤 신문이 ‘할 말은 하는 신문’을 구호로 내걸었지만,그런 신문이 독재에 침묵하거나 곡필을 서슴지 않을 때함석헌은 진짜 할 말을 했다. 억압시대에는 비굴하고 민주시대에는 방종하는 사이비 비판이 아니라 남들이 입을 다물때,천지가 암흑에 덮일 때 그는 할 말을 했다. 친일언론이 식민지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갈 때 함석헌은동지들과 ‘성서조선’을 만들며 어둠에 묻힌 조선역사를 쓰다가 투옥되고,자유당 천하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어용족 또는 만송족(晩松族)일 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논설을 썼다가 감옥엘 갔다. 5·16쿠데타로 온세상이 공포에싸일 때는 ‘5·16을 어떻게 볼까’란 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정치군인들에게 할 말을다한 것이다. 당시 족벌언론이 쓴 쿠데타 지지 사설과 기사,논평은 한국언론사의 치부를 드러낸다. 독재권력이 강화되면서 지식인은 두 갈래 부류로 나타났다. 저항과 타협의 길이었다. 저항자는 설 땅을 잃고 타협자는풍요가 따랐다. 고려무인정권 때도 그랬고 일제식민시대도그랬다. 그리고 비굴하게 타협하면서 무인정권과 식민통치를찬양한 세력이 시대의 주류가 되었다. 군사독재 시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함석헌 등 진짜 비판자는 도태되고 사이비들이 득세하여 사세를 키우고 영향력을증대시켰다. 전두환정권에서 이런 현상은 절정을 이루었다. 언론통제가 심해지자 함석헌은 제도언론인들에게 언론게릴라전을 제창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언론활동이 불가능한상황이기에 게릴라전술로 언론투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게릴라전은 정규군이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특수임무가 요구될때 전개된다. 신문사주와 간부들이 군사독재와 유착된 상태에서 언론의 정상적 기능(정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게릴라전을 제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목마른 외침은 빈 산의 메아리에 그쳤다. 독재의 짓누름도 심했지만 그들이 던져준 이권과 고깃덩이도만만찮았다. 또 긴 세월 길들여진 보신주의 언론인들이 게릴라로 활동하기에는 너무 배부르고 비대해졌다. 특히 양심적 기자들이 자유언론의 횃불을 들었다가 쫓겨나면서부터 진짜 저항언론의 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직접 게릴라전에 나섰다. 함석헌은 사이비들처럼 사주의 지침이나 시세에 따라 아무권력이나 무조건 지지 또는 반대하는 따위의 언론인과는 격이 달랐다. 군사독재를 준엄하게 비판하다가도 통일문제는지극히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갈라진 이대로는 살 수 없고 산다고 해도 사람이 아닙니다. 남은 북을 믿고 북은 남을 믿고 일어섭시다.”(북한동포에게 보내는 편지) 30여년 전에 쓴 글이 지금 읽어도 감동을 준다. 참글은 이렇게 이념과 시공을 뛰어넘는다. 그 자신 진짜 언론인인 송건호씨는 함석헌을 타고난 언론인으로 평가한다. 신문기자나 논설위원의 경력은 없지만 타고난 언론인이란 두가지 논거를 들었다. 첫째,문장이 보통 언론인 이상으로 유려하고 평이하다. 언론인과 비언론인의 구분은 문장이 쉬운가 난삽한가라면 함선생의 문장은 간결하고 쉽다. 둘째,시대를 보는 눈이 예리하다. 나날의 시사문제에 날카롭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 이면에 흐르는 사조를 꿰뚫는 눈이날카롭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 함석헌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아는 용기있는 언론인이었고 용기의 원천은 역사의식이었다. 역사의식이 없는용기는 풍차에 칼질하는 만용이거나 멧돼지의 저돌성이다.타락한 언론의 저돌성이 ‘비판’의 이름으로 설치는 시대에함석헌의 참언론정신이 그립다. △김삼웅 주필 kimsu@
  • 국책사업 긴급 점검/ 존폐기로 국책사업

    대형 국책사업은 이미 실패했거나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들 사업의 추진 경위 등을 알아본다. ◆시화호=1984년 ‘건설경기 부양’ 차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당시 한동안 지속됐던 중동 건설경기가 하락하면서 국내로 유입된 유휴 인력과 장비를 활용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환경영향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3,300만평에이르는 시화호와 주변 간석지를 조성하는 사업은 무모한 것이었다.안산 등 수도권 공업도시를 끼고 흐르는 반월천,동화천,안산천 등 7개 소하천에서 시화호로 유입되는 유량은 연간 3억7,000만t에 불과하다.그런데도 저수용량이 1억8,000만t이나 되는 방조제를 쌓게 되자 호숫물의 체류일수가 180일에 달했다.특히 수자원공사는 방류수를 먼 바다로 빼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1994년 1월 둑을 막아버렸다.결국 수질 악화가 시작돼 97년 3월에는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이 최고 26ppm까지 높아져 오염이 회생불능 상태가 돼버렸다. ◆청주공항=군사적,정치적 논리에 따라 위치가 결정됐다.1983년 김포국제공항이 머지않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고,이를 근거로 수도권 신공항 건설이 추진됐다. 그러던 중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손수익(孫守益)교통장관을 불러 “청주가 어떠냐”고 말했고,그대로 결정됐다.전 대통령이 이천과 평택 등 유력 후보지보다 청주를 선호한 것은 북한의 장거리포 사거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또 그 지역출신 정치인의 건의도 있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수도권에서 140km나 떨어져 수요가 없는 지역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무리였다.97년 4월28일 개항,4개의 국제선과 2개의 국내선으로 운항이 시작됐지만 승객은 거의 없었다.첫 1개월의 성적표는 국제선 평균 탑승률 7%,하루이용객 25명이란 ‘처참한’ 결과였다.국제선은 곧 폐쇄됐고 국내선은 제주만 남았다. ◆경부고속철도=건설방침이 확정된 뒤 10년이 넘도록 이런저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당초 계획은 98년말에 완공하는 것이었지만 해마다 계획이 바뀌었고 현재는 2004년 광명∼대구 우선개통,2010년 서울∼부산 완전개통을목표로 진행중이다. 사업비는 90년 6월 기본노선 확정 당시 5조8,000억원에서현재는 완전개통 기준으로 3배가 넘는 무려 18조4,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부실공사 논란도 끊이지 않아 감사원 감사에 자주 적발됐으며,최근에도 떨림 현상 등 시험운행 과정에서의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또 TGV 선정을 둘러싼 로비의혹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또 대전역과 대구역을 지하로 할 지,지상으로할 지와 경주 통과여부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서울에서 고속철도의 출발점을 어디로 할 것인지도 확정되지않은 상태다. ◆동강댐=정부는 97년 용수 부족 및 홍수 조절을 위해 강원영월·평창군 일대 3곳 688만평을 동강댐 건설후보지로 지정·고시했다.환경단체들은 건설후보지의 대부분이 석회암층이어서 지반 침하를 막기 어렵고 동강 일대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들이 대거 멸종하는 등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강력 반발했다.이로 인해 동강댐 건설은 4년여에 거친갑론을박 끝에 지난해 6월 물관리조정위원회를 열어 댐건설계획을 백지화했다.부족한용수는 한강 수계의 5개 발전용댐을 다목적 댐으로 전환,보충하기로 했다.굳이 동강댐을 건설하지 않더라도 용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다만 홍수 조절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경인운하=예산 부족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지연돼왔다.건설교통부는 빠르면 오는 3월 착공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부등 관계부처 협의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경인운하사업은 당초 굴포천 종합치수계획을 확대,인천 동·서구 및 경기 부천지역의 상습침수를 해소하기 위해 계획됐다.환경단체들은 5급수인 굴포천이 인천 앞바다로 흘러들 경우 갯벌 파괴와 해양 오염이 불가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건교부는 임시방수로만이라도 3월 중 착공해야 올 장마철 홍수 피해를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반면 환경단체들은 이 계획은 생태계 파괴를 고려하지 않은 주먹구구식 행정의 전형이라고주장한다. 이도운 전광삼기자 dawn@
  • YS “금융위기 누구도 얘기안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두번째 회고록이 출간을 하루 앞두고 14일 주요 내용이 공개됐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감사원장에 발탁한 데 이어총리와 당대표는 물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재까지시켜서 대선후보가 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대선후보가된 뒤에 나도 무척 기뻐했다.이총재도 처음에는 감읍했다.그런데 명예총재로 물러나 있던 내게 탈당을 요구했다.총리때내 권위에 도전해 파면했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 지난 대선 당시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5년간 잘 관리하면 다음에 될 것이므로 탈당하지 말라고 했다.그도 처음에는 좋다고 하더니 태도를 바꿨다.나를 완전히 배신한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김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패한 뒤런던으로 떠나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당선을 축하한다.나는 정치를 떠난다.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성공한 대통령이되기 바란다’고 내게 말하더라.그러더니 돌아와서 정치를재개하고 내 임기 내내 나를 욕하고 발목을 잡았다. ■DJ 비자금 실명전환하지 않은 뭉칫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나왔다. 비자금이 폭로됐을 때 김대통령은 겁을 먹었다.법대로 했으면 잡아넣을 수도 있었다. ■현철씨 구속 현철이를 구속하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이 죄가 안된다고 했지만 별 방법을 다 찾아서라도 잡아넣으라고 했다.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구속 학생들이연희동을 습격해 대치가 계속된다는 보고를 받았다.그냥 놔두면 두 사람이 결국 죽게 될 것 같아서 검찰에 ‘철저히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구속하라’고 했다. ■경제위기 나는 경제를 매우 걱정했는데 관료·학자·재벌·언론 누구도 금융위기를 얘기하지 않았다. ■클린턴 미 대통령 94년 당시 ‘북한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며 클린턴 전대통령이 전쟁을 하겠다고 해서 30분을 전화로 싸웠다.나는 ‘우리 군인은 단 한명도 동원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盧씨 비자금 248억 추가환수

    서울지검 총무부(부장 金允聖)는 1일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나라종금에 차명으로 예탁했던 248억5,000여만원을 예금보험공사로부터받아내 국고에 환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나라종금이 파산했기 때문에 파산 금융기관의 예금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예탁금지급을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노전대통령에 대한 전체 추징금 2,628억9,600만원중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던 1,329억과 현금 414억,신명수(申明秀)신동방회장의동산 가집행을 통해 받은 1,760만원 등 모두 1,992억8,151만여원을추징,75.8%의 추징률을 기록했다. 한편 노전대통령에 대한 추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데 반해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비자금 2,205억원에 대한 추징은 별다른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전전대통령의 승용차와 콘도회원권을 강제 경매하는등 지금까지 모두 314억9,715만원을 추징,14.3%의 추징률을 기록하고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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