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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대선 D-100] 케리北해법 盧정부와 ‘코드’ 맞아

    [美 대선 D-100] 케리北해법 盧정부와 ‘코드’ 맞아

    |보스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간의 피말리는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다.그렇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당선되는 것이 유리할까? ●북한에 유연한 케리 미 대선 이후의 한·미 관계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양국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또 다음달 부임하는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도 최근 한국의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선거결과에 따라 한·미 관계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미 관계가 껄끄러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문제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라면서 “케리가 당선되면 최소한 북한이 ‘악의 축’이라는 굴레는 벗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한·미,북·미간 협상의 여지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실제로 케리 의원은 22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악의 축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대통령으로선 잘못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관점에서는 케리가 유리? 대미 관계를 오래 다뤄온 외교관들은 한·미 정부의 성격이 비슷할 때 양국 관계가 좋았다고 분석했다.외교관들은 이승만 정부 이후 한·미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를 ▲전두환-레이건 ▲김대중-클린턴 재임기간으로 꼽았다.또 양국관계가 최악이었던 기간은 ▲박정희-카터 ▲김영삼-클린턴 ▲김대중-부시 시절이었다고 분석했다.말하자면 미국의 공화당 정권은 한국의 보수적인 정권과,미국의 민주당 정권은 한국의 진보적인 정권과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다.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권이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부시 정권보다는 케리 행정부가 더 잘 맞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특히 케리 의원은 한·미 관계의 가장 큰 현안인 북한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발언을 계속해 왔다.그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지난 5월28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통일을 포함한 남북한 문제를 폭넓게 논의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이밖에 케리 후보는 중국과의 관계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그가 당선될 경우 남북한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북한도 관영매체를 통해 부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여과없이 표출하면서 케리 후보의 당선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힘있는 부시가 차라리 유리하다” 그러나 경제적 통계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정치·사회 문제를 분석해온 마커스 놀란드 미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은 지난 4월7일 서울에서 열린 강연에서 “북한이 케리 후보의 당선을 기대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케리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미국의 상·하원은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다.”면서 “외교문제에 실권을 가진 의회는 케리 후보가 당선돼 북한과의 협상을 추구할 경우 공격의 재료로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오히려 부시가 재선되면 선거의 부담을 벗고 의회의 도움도 받아 북한과의 ‘진짜 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미국의 상·하원은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으며 11월2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하원 전체와 상원 일부 선거에서 이같은 구도가 바뀔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케리 의원이 미국내 일자리의 해외유출을 우려하면서 “‘슈퍼 301조’를 부활시켜 미국의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던 점을 들어 그가 당선되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아 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던 것도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 정부 시절이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일부의 우려도 있지만 양국 정부가 최근 몇 년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쌓아온 신뢰도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 이시윤 경희대 교수

    #1 3년 전 친일파 후손이 땅을 되찾겠다며 소송을 냈다.분개했지만 방법이 없었다.친일파 후손이라도 사유재산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1997년 대법원 판례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1심 재판부는 소를 각하했다.조국을 배반한 사람의 권리까지 보호해준다는 것은 신의성실에 어긋난다는 논리였다.일반 상식과 통한다는 점에서 속시원한 판결로 받아들여졌다.법률적 근거도 있었다.‘신의칙(信義則)’은 민사소송법의 일반 대원칙으로 명문화돼 있다. #2전두환 전 대통령.지난해 “내 전 재산은 29만원”이라며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해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 수사로 채권시장을 뒤지다 370억원대 비자금을 찾아내면서 웃음거리가 됐지만. 만약 전씨가 비자금 조성 및 관리에 개입한 사실이 ‘법률적’으로 확인된다면 민사집행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될 수도 있다.이 역시 민사소송법의 ‘재산명시제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의칙의 명문화,재산명시제도 도입 등을 주도한 민사소송법의 1인자 이시윤(李時潤·69) 경희대 교수를 만났다. ●일본도 ‘신의칙(信義則)’ 문구 그대로 사용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해야 한다는 신의칙이란 한마디로 소송의 윤리관입니다.” 이 교수는 90년 민사소송법 개정작업에 참가해 직접 이 문안을 작성했다.뿌듯한 점은 96년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던 일본이 이 문구를 그대로 번역해 넣었다는 사실.“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나간다는 일본도 이것만은 우리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의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판사로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지금이야 나아졌지만 그 시절만 해도 법을 안다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그때 이런 것은 막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무를 익히고 싶어 판사의 길을 택했지만 때때로 대학 강단에 섰다.7년 동안 법대 조교수로 일한 경험도 있다.‘관료법관’에 얽매이지 않아 친정인 법원에도 마음껏 쓴소리를 한다.어느 글에서 ‘판사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나그네’라고 꼬집기도 했다.또 초대 헌법재판관으로서 헌재와 대법원간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헌재의 기형적 출발은 대법원의 기관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한다.특히 법원의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낼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민주주의 최고기관인 국회를 통과한 법에 대해서도 위헌이라 말할 수 있는 곳이 헌재인데 판결은 왜 예외입니까.형사소송법에도 비상상고제가 있고 민사소송법에도 재심제가 있습니다.그것처럼 헌재의 결정은 4심이 아니라 비상심급입니다.”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그는 로스쿨이나 법조일원화 방안에도 적극 찬성이다.“우리는 죽어라 법전만 본 사람들을 뽑아다 1·2·3심 판사라는 승진 개념으로 묶어놨어요.이것을 없애야 합니다.다양한 전공자가 법전을 들춰봐야 하고 판사를 ‘case manager’로 인식해야 합니다.미국이나 독일에서는 외려 1심 판사를 더 선호해요.걸러지지 않은,새로운 사건을 다룰 수 있거든요.” 이 교수는 이북 출신이다.얼마 전 열차폭발 사고로 고통을 겪었던 평북 용천이 고향이다.말투에 언뜻 이북 사투리가 묻어난다.열네살 되던 해,할아버지가 지주라는 이유로 숙청을 피해 가족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는 고달팠다.그나마 아버지가 하급 공무원이 된 덕에 공부는 계속할 수 있었다.성장기의 기억 때문에 북한은 여전히 강한 불신의 대상이다. ●조순형 전 대표 친분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위 참가 언뜻 81년 이 교수가 광주고법 부장판사로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당시 법원은 정찰제 판결 때문에 ‘시국사범 공장’이라는 냉소를 받고 있었다.안기부 요원이 판사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었고,출세욕이나 조직논리에 휩싸인 공안검사가 판사실 앞에서 무언의 시위를 벌이던 시절이다.극단적 국가폭력이라는 상황에서 당시 느낌은 어땠을까.이 교수는 한토막 일화로 답을 대신했다.“집시법 위반사건이었는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면서 고문 때문에 살이 뭉개진 다리를 내보입디다.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다 울더군요.안되겠다 싶어 잠깐 휴정하고는 배석판사부터 혼냈습니다.그리고는 괜히 살인 혐의 피고인 불러내서 고함치고 호통치고 그랬죠.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기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盧 탄핵 결의문 엉성… 기각 예상했었다” 이 교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와 친분이 깊다.요즘 근황을 묻자 이 교수는 “참 훌륭한 사람들인데 아깝다.”고만 말했다.개인적 덕과 지도자로서의 덕은 다른 것 아니냐고 묻자 “우리 사회가 격변기라 그렇습니다.난세(亂世)가 아닌 치세(治世)에 태어났다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 다 후회없는 인생이라고 봐요.” 조 전 의원과의 친분 때문에 이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몫으로 배정된 소추위원 변호인단에 참가했다.별로 내키지 않아 법정변론에는 나가지 않았다.“탄핵 결의문을 보니 엉성하더군요.그 때 기각을 예상했습니다.김기춘 의원에게도 말해뒀습니다.이걸로는 어렵다,그렇지만 법치의식을 주입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최선은 다해보겠다고.” ●“민법개정작업 끝냈지만 성년후견제 도입 아쉬워” 이 교수는 최근 큰 일을 끝냈다.광범위한 체계에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함부로 손대기 어려웠던 민법 개정작업.김대중 정부 시절 시작한 작업을 5년여만에 끝냈다.성년 연령 19세 조정,담보제 개선 등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몇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노령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성년후견제’ 도입도 검토해야 하고,등기의 공신력을 높여 등기부만 보고 거래한 사람은 보호해주는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길어지는 인터뷰가 힘들었는지 연신 입술을 축인다.괴롭혀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기자양반 덕분에 내 인생을 한번 돌아봤어요.재미있네요.”라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10월10일 평북 용천 출생 ▲서울고-서울법대-독일 뉘른베르크 법대 ▲1958년 고등고시 10회 합격 ▲1960년 서울대 등 강의 ▲1974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75년 서울지법 부장판사 ▲1981년 광주고법 부장판사 ▲1988년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 ▲1993년 감사원장 ▲2000년 경희대 법대교수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릴리 前미대사 “KAL기 폭파는 북한 소행”

    한국 민주화의 격변기였던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 전 대사가 15일(현지시간) 회고록 ‘중국통-아시아에서 90년간의 모험 첩보 외교’ 를 발간,당시의 한·미관계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회고록에서 릴리 전 대사는 87년 6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만나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계엄령을 선포하지 말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릴리 전 대사의 인준청문회에는 현 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도 참석했다.케리 후보는 “한국에서 우선돼야 할 것이 민주주의냐 안보냐?”고 물었다.릴리 전 대사는 “우선 대북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야 하지만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전력하겠다.”고 답했다. 릴리 전 대사는 87년이 재직 중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4·13호헌조치 후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자 전 전 대통령은 군진압의지를 표면화했다.17일 밤 레이건 대통령이 보내는 친서가 도착,이를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으나 한국 정부는 시간약속을 해주지 않았다.당시 주한 미 대사관 정무참사관인 해리 던롭은 한국 정부 관계자와의 전화에서 “전 대통령이 그런(대사를 만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믿을 수 없으니 그 결정을 한 사람의 이름을 대라.”고 고함을 쳤다. 결국 19일 릴리 전 대사는 전 전 대통령을 90분간 만났다.대통령은 내내 굳은 얼굴로 앉아있었다.릴리 전 대사는 계엄 선포가 임박했음을 발표한다면 한·미동맹을 훼손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며 80년 광주의 재난적 사건의 재발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릴리 전 대사는 80년대 이후 한국인의 대미관은 광주체험에서 시작된다고 분석했다.당시 미국이 군진압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게 한국인들의 기본인식이라는 것이다.이에 대해 그는 “미국은 한국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직접 개입하거나 조종할 수 없고 다만 지원하고 자문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며 한국인들이 이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서는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음모”라고 평가했다. 릴리 전 대사는 서울이 88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뒤 북한은 올림픽 공동개최를 요구하며 한국과 협상에 돌입했으나 배후에서는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공격을 획책했다고 적었다.그는 KAL기 폭파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넣었으며 한국의 올림픽 안전조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1904 & 2004 한반도] 주변 4强 한반도정책-미국

    오늘의 한반도는 19세기말과 20세기 중반에 이어 우리의 삶을 좌우할 세 번째의 격변기에 놓여있다.격변은 대외관계로부터 주어지고 있다.개항이후 한국문제는 항상 국제문제였다.동아시아질서를 좌우해온 지역문제이자 세계문제로서의 한반도문제는 한번 지형이 결정되면 최소한 한 세대를 지속해왔다.우리에게 국제관계는 그토록 중요하다.현금의 격동의 중심에는 탈냉전의 뒤늦은 후폭풍인 한미관계 재조정과 북한문제가 놓여있다.그 요체는 우리의 세계 내 위상과 역할,관계의 문제로 귀착된다. 건국과 오늘의 시점을 비교할 때 교육,산업화,민주화,정보화에서 한국의 변화는 세계10위권의 중위국가로 도약한데서 볼 수 있듯 20세기 세계변혁의 상징이었다.그러나 국제관계,외교,안보,평화의 영역으로 오면 크게 다르다.우리는 오랫동안 중국,일본,미국(과 소련)에 대한 일변주의(一邊主義)관계가 초래한 속방,식민,분단의 역사를 갖고 있다.지난 100년의 한미관계는 한국문제의 국제적 변동에 맞춰,‘혜택’과 ‘희생’,‘이익’과 ‘비용’의 결합 속에 세 번의 변화를 겪어왔다.그 만남의 방식과 손익을 깨닫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최초 중화체제 시기에 미국은 태프트-카쓰라 조약,영일동맹으로 이어지는 ‘미영일 동맹체제’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역패권을 조장(助長),중국패권을 해체하고 미영일중러가 경쟁하는 동아시아 만국공법(萬國公法)체제,또는 동아시아 세력 균형체제를 탄생시켰다.중국견제와 일본부상이라는 미영의 구도 속에 한국은 중국속방으로부터 이탈,불안정한 독립국가[대한제국]를 거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탈(脫)속방화와 식민화,이는 한미조우가 낳은 혜택과 희생의 첫 역사적 결합이었다.일본이 지역패권을 넘어 세계패권을 향해 미영에 도전하여 세계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은 이를 패퇴시켰고 한국은 독립되었다.그러나 미국은 소련과의 합의하에 한국을 분단,독립과 분단이라는 혜택과 희생의 두 번째 결합을 낳았다. 한국전쟁은 한국의 세계 내 위상과 한미관계를 정초한 사건이었다.전후 등장한 한미‘동맹’은 남북‘적대’와 함께 한국전쟁으로 주형된 한반도문제의 역사적 쌍생아였다.안보와 경제는 동맹의 두 기축으로서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동안 세계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성공표본을 만들기 위해 미국은 확고한 안보공약과 막대한 경제원조를 지속하였다.한국민들은 이 때 위치와 구조를 활용하는 절정의 능력을 보여주었다.그러나 그 성공은 댓가없는 것은 아니었다.외교,안보문제에서의 주권,자율의 위축을 포함해 냉전 내내 위계적 한미관계를 감수해야했다.동시에 공산저지를 위해 제공되는 미국의 안보공약과 경제원조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에서 보듯 권위주의 체제유지의 토대역할을 수행하였다.즉 미국은 권위주의 체제의 보장자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반면 미국은 권위주의 시기동안 적나의 인권유린과 독재를 견제하는 민주화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다.요컨대 한국에서 미국은 권위주의의 보장자인 동시에,민주주의의 후원자라는 이중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이를 ‘미국의 범위’(American boundary)라고 부를 때 탈냉전과 함께 ‘미국의 범위’는 이제 재조정,재정의(再定意)의 상황에 돌입해있다.냉전시기 남북적대의 강화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결과했으나,탈냉전 이후 남북적대의 완화는 한미동맹의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동시에 냉전시대의 한미관계 양자동학은 이제 남북미관계라는 복합적인 3자동학(動學)으로 변전되었다.이제 한미관계는 둘 만의 배타적 양자관계가 아닌,3자관계는 물론 동아시아-미국 등 더 넓은 지평에서 보는,그리하여 국제문제인 우리문제의 한국화와 탈한국화의 접점을 찾아내어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통로가 되어야한다.그럴 때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반미와 친미의 대립은 본질적이지 않다.친미를 통한 탈미공존-유럽통합의 대구상을 꿈꿨던 유럽,탈독일화를 통한 독일화를 이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한 독일,그리고 반미적 친미,또는 친미적 반미라는,즉 우리문제를 위해 견인과 견제의 의미를 함께 갖는 이중견미(牽美)의 길을 찾은 초기 한국외교수장의 숨은 지혜들을 종합해 세계와 우리에 필요한 보편가치와 국익의 추구를 함께 꿈꾸어야할 시점이다. 탈냉전이후 남북대치의 지속으로 우리가 한미관계의 재형성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되었다.글로벌 제국과 글로벌 시민사회가 직접 대면하는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특정국가의 외교란 일차적으로 유일제국 미국과의 관계설정을 의미한다.오늘의 시점에도 친미와 반미는 물론,주한미군 재배치 및 축소라는 동일현상을 두고도 한쪽[진보]에서는 대북전쟁기도라고 비판하고,다른 한쪽[보수]에서는 남침위협증가라고 비판하는 갈라진 정체성과 의식구조를 보며 우리가 진정으로 대전환점에 놓여있음을 깨닫는다.앞선 두 전환기 때 갈라졌던 것처럼.앞선 두 번과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 갈라진 우리의 정신구조와 대안모색을 수렴하고 통합할 사려와 지혜는 이제 선택의 문제를 넘어선다.열정과 신념이 아니라 이익과 지혜가 국제관계와 외교의 본질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을수록 지난 100년의 경험과 오늘의 혼돈은 미래를 위한 값진 비용이 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성남시민모임 뒤엔 이재명변호사 있다

    성남시민모임 뒤엔 이재명변호사 있다

    성남시 행정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며 속시원한 시민운동을 이끌어온 성남시민모임.그 뒤에 이재명(41) 변호사가 있다. 지난 95년 3월 성남시민모임이 결정되면서 초창기 사무국 차장직을 맡았다.일하기에는 부담없는 직책이 낫다며 대표직을 마다해온 이 변호사는 자신의 신조를 지키며 시민운동의 맨 앞줄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저유소 안전시설 보강 이끌어 첫 작품은 지난 1997년 성남시 대장동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서울 남부 저유소 설치 저지운동.관할 행정기관인 성남시에 안전시설 보강을 요구하며 청사 내에서 시민모임 회원들과 항의시위를 벌이다가 끌려나와 정문 밖으로 내던져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끊임없이 찾아가 안전시설 보강을 요구하자 시도 두손을 들어버렸다.시는 안전도 재평가를 실시하게 했고,결국 보강공사에 착수했다. 한동안 중앙일간지 신문 1면을 장식했던 분당 파크뷰 주상복합아파트 특혜의혹도 파헤쳤다.99년부터 각종 증언과 녹취 테이프 등을 공개,사건의 중대성을 부각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이 때문에 자치단체장들의 표적이 됐다. ●요즘은 시립병원 설립운동 앞장 이 변호사는 녹취테이프 공개로 고발당해 2002년 5월 구속,10여일 만에 풀려나는 곤욕도 치렀다.제거대상으로 낙인찍힌 이 변호사와 그가 몸담고 있는 성남시민모임에 대한 음해시위도 잇따랐다. ‘부모를 버린 패륜아’,‘시민운동을 빙자한 정치꾼’,‘재판만 하면 지는 변호사’ 등의 문구가 인쇄된 전단지가 신문과 잡지에 끼워져 15만부 이상이 가정에 배달됐다.이에 발끈한 이 변호사는 이들을 찾아내 형사처벌을 받게 하기도 했다. 공갈 협박도 끊이지 않았다.파크뷰 특혜의혹으로 시끄러웠던 99년 당시 ‘조용히 있으면 20억원짜리 지역신문을 만들어주겠다.’,‘분당에서 아파트를 지으면 30배가 남는데 투자자로 끼워주겠다.’는 회유도 있었다.하지만 이씨에게 먹히지 않자 곧이어 ‘죽이겠다.’,‘애들 조심시켜라.’라는 협박성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총기소지 허가를 받아 가스총을 소지하기 시작했다.지난해 3월부터는 성남시민모임 기획이사직으로 직함을 변경하고,환경운동연합과 여성의전화 등 관내 30여개 사회단체로 결성된 성남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직을 겸하고 있다. 이후 이 변호사는 성남구 도심의 의료 공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시립병원 설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서민들을 위한 병원을 지어달라며 길거리 단식농성도 벌이고 있다.부정비리백서(98년),전두환노태우비자금추징촉구운동(99년)도 벌였다.부인 김혜경(38)씨와 동호(12),윤호(11) 두아들이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씨줄날줄] 거짓말/손성진 논설위원

    거짓말로 통용되는 비속어인 ‘구라’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유래됐다.모습을 감추다,속이다라는 뜻의 일본어 ‘구라마스(くらます)’가 어원이라고 한다.‘김구라’라는 예명의 개그맨이 TV에 출연하고 홈페이지도 만들어 사람들을 웃기고 있다.‘구라’는 말을 잘해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좋은 뜻이 더 많다.법조계에도 B변호사 등 ‘3대 구라’가 있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거짓말도 필요할 때가 있다.거짓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적절히 하면 각박한 세상에서 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부부나 청춘 남녀는 알면서도 속는 거짓말을 한다.어떤 것은 환심을 사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다.남자들이 자주 하는 거짓말은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난 네가 첫사랑이야.”등이라고 한다.반면 “어머 무서워∼ 너무 무서워∼”“오늘만 먹고 안 먹을 거야.” 등은 여자들이 잘 하는 거짓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의도적인 거짓말은 일단 위기를 모면하자는 생각에서 한다.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아내에게 둘러대는 말 같은 것이다.클린턴이 처음에 르윈스키와의 섹스 행각을 숨긴 건 힐러리를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새벽까지 술집을 전전한 남편이 “상가집에 갔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고전적인,애교성 거짓말에 속한다.두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고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던 영화 ‘거짓말’의 타이틀도 그런 연유에서 붙여졌다.서른 여덟살 난 조각가가 10대 소녀와 불장난을 한 증거가 아내에게 발각되자 거짓말을 한다. 흐루시초프는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거짓말에서 면책특권이나 있는 듯 행동하는 부류가 정치인들이다.올 총선에서 서울 중랑을에 출마한 후보는 노원구의 군사보호지역에 있는 육사를 옮겨 아파트를 짓겠다고 떠들었다.서울 동대문갑의 후보는 휴대전화료를 50%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비리에 연루된 어떤 정치인은 “내가 돈을 받았다면 소가 웃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가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 구속됐다.전두환 전 대통령은 “29만 1000원이 전 재산”이라고 아무도 안 믿을 말을 했다. 인사청탁과 관련해 거짓말을 한 서영석 서프라이즈 전 대표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부부 대화록까지 조작한 것은 너무 뻔뻔스러워 보인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KAL기 폭파 재조사/이기동 논설위원

    우리의 잠재의식 가장 깊은 곳에 악몽처럼 자리한 사건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바로 1987년 탑승객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가의 재조사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다.원혜영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이 사건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시키는 특별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의문사위 특별법은 조사대상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있다.원 의원 등은 조사대상을 ‘국가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인한 사망’으로까지 확대시켜 이 사건을 조사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한다.KAL기 사건이 북한 지도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우리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상정한 법개정인 셈이다. 이 사건은 1990년 3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고,김일성 부자의 지시로 공작원 김현희 일당이 88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하지만 사건 직후부터 악성 음모론이 뒤따랐다.전두환정권이 저지른 자작극이고,김현희도 남한 정보당국이 만든 가공인물이라는 것이다. 음모론의 최초 발신처는 북한 관영매체였지만,뒤이어 유가족들과 우리 사회 진보세력 사이에 무섭게 번져나갔다.실체 없는 음모론의 바닥에는 전두환정권이 능히 이런 자작극을 벌일 만큼 부도덕하다는 정치적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음모론 소설이 회자됐고 2002년 9월 제출된 전면재조사 국회청원에는 지금의 여당 소속 국회의원 다수가 서명했다.공중파 방송들은 앞다투어 음모론을 확대재생산했다.김현희의 변론을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는 최근 발간한 책에서 자기한테도 진실을 물어온 방송제작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한다. 안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을 믿게 만들 방도는 세상에 없다.하지만 그 사이 17년이 흐르고 정권이 4번 바뀌었다.이렇게 많은 사람을,이렇게 오래 속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김현희가 북한공작원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안동일 변호사는 김현희가 혹독한 훈련을 받고도 겉만 빨갛게 변한 ‘사과형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한다.재조사를 한다 해도 무슨 방법으로 그 방대한 재판기록,증인명단에서 음모론의 증거를 찾아낼지 모르겠다.모두가 좀더 냉정해질 수는 없을까.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케리 美대선후보 진영 박상아 기부금도 반환

    |워싱턴 연합|미국 민주당의 존 케리 대통령 후보 진영은 탤런트 박상아씨가 기부한 2000달러를 자금 출처의 불명확성 때문에 반환했다.한편 전재용씨와 박씨에게서 돈을 받은 민주당 모금 담당 관계자 릭 이씨는 사임했다. 케리 후보 진영은 2일 박씨가 합법적으로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영주권 자격을 갖고 있는지를 즉시 판정할 수 없어 박씨에게서 받은 2000달러 수표를 반환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03년 8월11일 이씨에게 2000달러의 기부금을 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로 최근 구속된 재용씨도 같은 날 같은 액수를 이씨를 통해 케리 후보 진영에 냈다.
  • 美공화 ‘전재용 기부금’ 케리 비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용씨로부터 선거자금을 기부받았다 되돌려 준 ‘해프닝’에 대해 공화당이 비난하고 나섰다.22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선운동본부의 스티브 슈미트 대변인은 세금 포탈 혐의에 연루된 인물의 돈을 받고 되돌려 준 사건이 “케리 진영의 자금모금 방식에 대해 심각하고도 걱정스러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케리 의원 진영은 전씨가 기부금을 낸 것은 지난해 8월로 그가 세금포탈 혐의로 체포된 지난 2월보다 한참 이전일 뿐더러 그가 체포된 사실을 알자마자 문제의 수표를 반환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황장석기자 suruno@seoul.co.kr
  • 전재용씨 2000弗 기부 케리 후보 “반환할 것”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40)씨가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선거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측에 지난해 2000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케리 진영은 이 돈을 돌려줄 방침이다.케리 진영은 AP통신이 이런 사실을 통지할 때까지 재용씨측이 2000달러를 기부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그같은 기부가 적절치 못하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돈을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미언 케리 선거운동본부 대변인은 “그 수표를 반환할 것”이라고 말했다.재용씨는 1997년 뇌물혐의로 기소된 아버지로부터 140만달러를 증여받고 이에 대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지난 2월 체포됐다. 재용씨는 케리 진영을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의 모금자로 활동하고 있는 릭 이씨와 지난해까지 동업자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OR 솔루션스’라는 회사에서 이씨가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전씨가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로 6개월 정도 함께 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전씨의 한국내 법적 문제를 알기 전인 지난해 여름 그에게 기부를 요청했다고 시인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11일 돈을 기부할 때 자신을 ‘OR 솔루션스’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로 소개했다. 연합˝
  • [씨줄날줄] 정치 경호실장/이목희 논설위원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유신정권 말기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씨가 집무실에 써놓았던 글귀다.차씨는 대통령의 신체안전뿐 아니라 정치생명까지 책임지는,이른바 ‘보위경호’의 개념을 도입했다. 차씨는 30경비단 연병장에서 국회·정치권의 주요 인사를 불러 ‘국기하기식’ 행사를 대대적으로 갖곤 했다.탱크,장갑차 등 엄청난 화력을 갖춘 경호부대의 위용을 보고 대통령에 반기를 들 생각조차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차씨의 전횡은 김재규씨의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을 불러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두환 정권 들어서는 장세동 전 경호실장이 ‘심기경호’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대통령의 마음이 편해야 국정이 잘 된다는 차원에서 심리상태까지 경호 범주에 넣은 것이다. 노태우 정권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이 골프를 치다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고 전했다.대통령이 친 공이 안 좋은 쪽으로 날아가면 미리 준비했던 다른 공을 적절한 곳에 슬쩍 떨어뜨려줬다는 얘기였다.김영삼 정권 말기에는 한보사태 등으로 대통령의 심기가 안 좋자 미모의 여경을 주변 경호에 배치하려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취소한 일이 있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는 경호실장이 사실상 2인자였던 때가 많았다.대통령 면담 일정을 경호실장이 좌지우지하니 힘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대통령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도 대단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엊그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을 향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면서 “차지철씨를 연상시킨다.”고 비난했다. 최근 일부 여당 인사들이 청와대 방침에 엇박자를 놓고 있다.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및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반면 유 의원은 노 대통령을 감싸면서 민노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다가 반격을 당했다. 시대가 바뀌긴 했지만,집권자에 대한 일방적 옹호는 보기에 안 좋다.그렇다고 과거 정권의 지탄받는 인사들과 비교해 비꼬는 일도 삼가는 게 바람직할 듯싶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권위 버리고 친구같은 의사 되어야” 이성낙 아주의대 석좌교수

    “권위적 의료행위는 이제 근절돼야 합니다.독일의 경우 병원 대합실에서 대기중인 환자를 부를 때 간호사가 절대 부르지 않습니다.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다가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물으며 진료실로 모셔가지요.” 이성낙(66·피부과) 아주대 석좌교수는 3명의 전직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을 만큼 국내 최고의 피부전문의로 꼽힌다.또 미국 피부과학회 국제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명성이 높은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을 했지만 교수 재직때보다 훨씬 더 바빠졌다고 말했다.우선 잡지사와 출판사 등에서 밀려오는 원고청탁이 많아지고 있다.국내외 학회 및 학술대회 참석,각종 단체 강연 등의 스케줄도 소화하기 빡빡하단다.그는 “교수를 그만 두면 쉬는가 했더니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특히 그는 지난 4월 ‘의료현장폭력 추방추진위원장’을 맡아 “폭력추방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의료현장에서 외치고 있다. 요즘에는 밤중에 ‘비밀모임(?)’에 불려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다.모임의 이름이 딱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애칭으로 ‘도깨비당’으로 불린다.마음이 통하는 유홍준 명지대 교수 등 학계와 예술계 인사 7명이 참석하는 자리다.그는 최근 한국의학교육학회가 수여하는 ‘제8회 인당의학교육대상’을 수상했다.바로 상 받은 ‘턱’을 내야 하기 때문이란다.인당의학교육대상은 한국의학교육학회가 의학교육발전에 공이 크거나 의학교육 학술업적이 뛰어난 의학교육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의 의학적 공로는 우선 지난 1983년 국내 처음으로 베체트병 특수클리닉을 개설했다.또 96년 세계 최초로 베체트병의 원인이 단순 포진 바이러스임을 확증시키기도 했다.아울러 여드름치료제를 최초로 개발한 실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통령 주치의가 된 경위를 물었다.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 이순자 여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면서 “당시 연세대 교수로 재임할 때 피부질환치료제를 개발한 약품이 있었는데 아마 그 약의 효험 때문에 연락이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그뒤 자연스럽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주치의가 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비공식 주치의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학연은 있으되 학풍이 없습니다.학연에 얽매이다 보면 학문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없지요.” 그는 1957년 보성고를 나와 62년 독일 Marburg대 의예과와 66년 독일 뮌헨대 의대를 졸업했다.연세대 의대 피부과 부교수·교수를 거친 뒤 90∼2003년 아주대 의대 피부과 교수로 재임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조정래의 세상보기] 민심이 응시하는 것

    공적자금 1조원 횡령! 밥굶는 아이들 30만명! 이것은 어느 삼류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바로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다.이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살맛 떨어지지 않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생활이 궁핍한 사람들일수록 또다시 이민을 떠나고 싶은 배신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공적자금’이란,6·25 이후의 최대 국난이라 일컬었던 IMF사태를 맞아 부실기업들과 부실금융기관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국가가 대준 돈이다.그러나,그건 국가의 돈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들에게 떠안긴 빚이었다.그러니까 집권자들이 정치를 잘못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난데없이 빚벼락을 맞은 것이 공적자금 투입이다.그 액수는 보통 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150조에 이르렀다. 1조란 얼마 만한 돈일까.계산 빠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1억이 만 개가 모아진 돈이란다.그리도 무지무지하고 끔찍스럽게 많은 돈을,그 돈을 효과적으로 잘 쓰도록 관리·감독해야 될 공무원들이 탕진하고,먹어치워버렸단다. 거듭 확인하건데,공무원이란 피땀어린 국민세금으로 월급받으며 오로지 국민을 위해 올바로 일해야 하는 존재다.그런데 자질 부족하고 양심 없는 일부 위인들이 끊임없이 세금도둑질을 해오면서 공무원 사회를 먹칠해왔다.그 검은 손이 결국 공적자금에까지 뻗친 것이다. 공무원들이 그 꼴을 하고 있으니 IMF상황이 건강하게 회복될 리 없고,그 여파로 밥굶는 아이들이 30만명으로 늘어난 것이다.IMF 전에는 배곯는 아이들이 8만명쯤이라고 했었다.세상에는 가지가지 슬픔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슬픔이 밥굶는 굶주림 아니던가.단 한 명의 배고픈 자가 있어도 그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했다.그런데,어른도 아니고 어린것들이 8만명이나 굶주림에 시달렸던 사회.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30만명으로 불어난 사회.썩고 썩은 공무원들이 공적자금을 횡령해 기름진 배를 두드린 것은 바로 30만 어린것들의 먹이를 탈취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 다같이 비겁한 침묵을 버리고 목소리를 합치자.그리고,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외쳐서 묻자.공적자금을 이번에 적발된 자들만 횡령한 것이냐고.우리는 절대로 믿을 수 없으니 공적자금 전체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그동안 국가 발전에 공헌한 점을 참작하여‥….” 우리 귀에 너무나 익은 판결문의 끝부분이다.비리공무원들을 재판할 때마다 판·검사들은 이 문구를 앞세워 국민들을 분하게 만들고,불신을 사왔다.공무원들이 과연 일반 국민들보다 더 국가 발전에 공헌한 것일까.종교와 함께 국가라는 것이 필요악이듯이 그들 또한 필요악이 아닐까. 야당에서는 공적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국정감사를 실시해야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그 일은 어쩌면 17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일지도 모른다.IMF국난은 무능한 김영삼 정권이 불러왔고,공적자금 투입은 전적으로 김대중 정권에서 이루어졌다.갓난애들에게도 350여만원씩의 빚더미를 선물한 그 돈잔치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 검증이나 결과보고 없이 김대중 정권이 끝났다.그리고 노무현 정권 2년째에 그 횡령사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국민 전체는 그 막대한 돈이 쓰인 전모를 투명하게 알고 싶어한다.그 검증과 조사는 노무현 정권이 수행해야 할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야당의 국정감사 요구에 발맞추어 여당도 국정감사를 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상생의 정치다. IMF상황에서 유행했던 풍문이 있다.이승만 대통령이 큰 가마솥을 만들었고,박정희 대통령이 거기에 밥을 하나 가득 지었고,전두환이 그 밥을 다 퍼먹었고,노태우가 누룽지까지 다 긁어먹었고,김영삼은 그 솥을 깨버렸고,김대중은 그 조각들마저 외국에 팔아먹으려고 한다.민심이 실린 그 풍문 속에서 ‘대통령’칭호를 받은 사람은 둘 뿐이었다.그 민심은 아직도 살아서 노무현 정권을 응시하고 있다.˝
  • [씨줄날줄] 투명성의 덫/우득정 논설위원

    6공화국 말 한 경제 관료의 진단이다.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서정쇄신’,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사정’이라는 칼날을 동원해 수시로 곪은 곳을 도려냈다.통치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윤활유가 흐르게 하되 지나치다고 판단되면 한바탕 칼춤판을 벌여 국민의 답답한 감정을 정화시켰다는 것이다.그래서 ‘시범 케이스’라는 말도 나왔다.하지만 6공 들어서는 최소한의 정화장치마저 작동을 멈추면서 부패라는 암세포가 나라 전체로 번져나갔다고 그는 탄식했다. 이 관료가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는 사이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한 정치인은 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오랑캐 50여개 나라를 복속시킨 반초(班超)의 고사를 들먹이곤 했다.반초는 후임 서역도호부 총독에게 오랑캐를 다스리는 요령으로 ‘水至淸卽無魚: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人至察卽無徒:사람이 너무 살피면 무리를 이루지 못한다.’라고 일러주었다.너무 엄격하게만 하지 말고 도량을 베풀 줄도 알라는 뜻이다.하지만 이 정치인은 적당히 흐려야(부패해야) 더불어 살 수 있다고 해석한 것 같다. 그후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숱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정경유착과 먹이사슬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은 이유는 밑바닥에 이러한 정서가 깔려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기업이라고 다를 바 없다.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대주주 차입금이라는 명목으로 계열사 돈을 끌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섰듯이 내 기업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그릇된 인식이 뿌리깊게 남아 있었다.기업의 돈을 쌈짓돈처럼 여긴 배경에는 분식 등 불투명한 회계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잣대가 바뀌기 시작했다.내 돈인줄 알았던 돈이 주주들의 돈이고 고객의 몫이란다.‘횡령’‘유용’으로 형사처벌하더니 회계장부도 국제 기준에 맞추라고 한다.과거처럼 돈 보따리 싸들고 하소연할 곳도 없다.기업인들은 갑자기 죽을 맛을 느끼게 됐다.돈이 생기는 대로 빚부터 갚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서기 위해 지분율도 높여야 한다.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지난 4일 기자브리핑에서 기업의 이러한 상황을 ‘투명성의 덫’에 걸렸다고 했다.하지만 어쩌랴.투명성은 시대의 요구인 것을. 우득정 논설위원˝
  • [조정래의 세상보기] 민심이 응시하는 것

    공적자금 1조원 횡령! 밥굶는 아이들 30만명! 이것은 어느 삼류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바로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다.이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살맛 떨어지지 않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생활이 궁핍한 사람들일수록 또다시 이민을 떠나고 싶은 배신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공적자금’이란,6·25 이후의 최대 국난이라 일컬었던 IMF사태를 맞아 부실기업들과 부실금융기관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국가가 대준 돈이다.그러나,그건 국가의 돈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들에게 떠안긴 빚이었다.그러니까 집권자들이 정치를 잘못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난데없이 빚벼락을 맞은 것이 공적자금 투입이다.그 액수는 보통 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150조에 이르렀다. 1조란 얼마 만한 돈일까.계산 빠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1억이 만 개가 모아진 돈이란다.그리도 무지무지하고 끔찍스럽게 많은 돈을,그 돈을 효과적으로 잘 쓰도록 관리·감독해야 될 공무원들이 탕진하고,먹어치워버렸단다. 거듭 확인하건데,공무원이란 피땀어린 국민세금으로 월급받으며 오로지 국민을 위해 올바로 일해야 하는 존재다.그런데 자질 부족하고 양심 없는 일부 위인들이 끊임없이 세금도둑질을 해오면서 공무원 사회를 먹칠해왔다.그 검은 손이 결국 공적자금에까지 뻗친 것이다. 공무원들이 그 꼴을 하고 있으니 IMF상황이 건강하게 회복될 리 없고,그 여파로 밥굶는 아이들이 30만명으로 늘어난 것이다.IMF 전에는 배곯는 아이들이 8만명쯤이라고 했었다.세상에는 가지가지 슬픔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슬픔이 밥굶는 굶주림 아니던가.단 한 명의 배고픈 자가 있어도 그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했다.그런데,어른도 아니고 어린것들이 8만명이나 굶주림에 시달렸던 사회.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30만명으로 불어난 사회.썩고 썩은 공무원들이 공적자금을 횡령해 기름진 배를 두드린 것은 바로 30만 어린것들의 먹이를 탈취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 다같이 비겁한 침묵을 버리고 목소리를 합치자.그리고,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외쳐서 묻자.공적자금을 이번에 적발된 자들만 횡령한 것이냐고.우리는 절대로 믿을 수 없으니 공적자금 전체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그동안 국가 발전에 공헌한 점을 참작하여‥….” 우리 귀에 너무나 익은 판결문의 끝부분이다.비리공무원들을 재판할 때마다 판·검사들은 이 문구를 앞세워 국민들을 분하게 만들고,불신을 사왔다.공무원들이 과연 일반 국민들보다 더 국가 발전에 공헌한 것일까.종교와 함께 국가라는 것이 필요악이듯이 그들 또한 필요악이 아닐까. 야당에서는 공적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국정감사를 실시해야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그 일은 어쩌면 17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일지도 모른다.IMF국난은 무능한 김영삼 정권이 불러왔고,공적자금 투입은 전적으로 김대중 정권에서 이루어졌다.갓난애들에게도 350여만원씩의 빚더미를 선물한 그 돈잔치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 검증이나 결과보고 없이 김대중 정권이 끝났다.그리고 노무현 정권 2년째에 그 횡령사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국민 전체는 그 막대한 돈이 쓰인 전모를 투명하게 알고 싶어한다.그 검증과 조사는 노무현 정권이 수행해야 할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야당의 국정감사 요구에 발맞추어 여당도 국정감사를 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상생의 정치다. IMF상황에서 유행했던 풍문이 있다.이승만 대통령이 큰 가마솥을 만들었고,박정희 대통령이 거기에 밥을 하나 가득 지었고,전두환이 그 밥을 다 퍼먹었고,노태우가 누룽지까지 다 긁어먹었고,김영삼은 그 솥을 깨버렸고,김대중은 그 조각들마저 외국에 팔아먹으려고 한다.민심이 실린 그 풍문 속에서 ‘대통령’칭호를 받은 사람은 둘 뿐이었다.그 민심은 아직도 살아서 노무현 정권을 응시하고 있다.
  • “김현희사건 재조사… 위령탑 깨라”

    KAL 858기 가족회와 진상규명시민대책위가 3일 사건의 전면 재조사와 수사기록 공개 등을 요구하며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공원에 설치된 ‘KAL858기 희생자 위령탑’의 비문을 파내려다 경찰이 이를 막자 몸싸움을 벌이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이들은 한 시간 남짓 차도를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했으며,이 과정에서 가족회 차옥정(68·여) 회장 등 3명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경찰은 “서울시로부터 시설물보호요청을 받아 형법상 공유물 훼손죄에 해당하는 위령탑 훼손을 막았다.”고 밝혔다. 1987년 11월29일 미얀마 인근 해역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기의 탑승자 가족 40여명은 이날 오전 위령탑 거부 선언식을 갖고,“위령탑은 사형선고를 받은 김현희를 특별사면시키기 위해 여론 호도의 방편으로 세운 것뿐”이라면서 “국정원은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고 검찰은 수사·재판 기록을 즉각 공개하라.”고 요구했다.당시 박명규 기장의 딸 은경(39)씨는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이 사건을 조작하고,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면서 “국가인권위와 의문사진상규명위도 진실 규명을 외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망치로 높이 5m,폭 7m 크기의 비문을 깨고 ‘진실을 말하라’고 적힌 천을 덮으려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이들은 또 전·노 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가로 2m,세로 1m 크기의 플래카드를 태우려 했으나,경찰이 “공원에서의 소각행위는 금지”라며 압수하자 바로 옆 차도로 옮겨 왕복 4차선 도로 중 2개 차로를 점거한 채 1시간 가까이 경찰과 대치했다.이 과정에서 경찰과 10분 남짓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DJ정부 ‘최고령’ - 박정희정부 ‘최연소’

    정부수립후 역대 정부의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의 평균 연령은 김대중 정부시절이 가장 높았고 박정희 정부시절이 가장 젊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1948∼2000년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은 총 1934명이며,대통령과 부통령,총리가 57명,장관이 776명,차관이 581명,청장과 처장이 351명으로 집계됐다.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의 평균 연령대를 정부별로 비교해보면 박정희 정부시절이 평균 최저 43.8세,최고 58세였으며,전체 평균은 49.23세로 가장 젊었다. 김대중 정부시절은 평균 최저 55세,최고 71세,전체 평균은 60.2세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높았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전체 평균 56.2세로 두번째로 높았으며,노태우 정부가 55.7세,전두환 정부가 53.1세,장면 정부가 52.2세,이승만 정부가 52세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역대 정부의 대통령·부통령·총리 평균 연령은 61.4세,장관은 53.6세,청·처장은 50.2세,차관은 49세로 장관은 차관에 비해 평균 4.6살이 많았고,청·처장은 차관에 비해 평균 1.2살이 많았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盧, 전직대통령 우회적 평가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연세대 리더십 특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우회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보니 다 죽다 살아난 사람이다.제 앞에 대통령이 되신 분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라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 그렇죠.박정희 전 대통령 결코 찬성할 수는 없지만 한강 건널 때 목숨 걸지 않았나.전두환,노태우… 어떻든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찬성할 수 없지만,공짜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이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다들 돌아가실 뻔했다.”고 덧붙였다.노 대통령은 “저는 다행히 목숨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첫 번째”라면서도 “그러나 밑천이 들린 것을 보면 제가 제일 화끈히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목숨걸지 않고 대통령된 첫 사례” 일부 전직 대통령은 ‘지도자의 자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거론됐다.노 대통령은 “말할 자격이 없는 지도자가 좋은 말을 자꾸 하면 좋은 말을 버린다.”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 민주주의를 말살시켜 놓고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고 후유증이 엄청났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정치를 비판했다.또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건 게 정의로운 사회다.”라고 꼬집었다.노 대통령은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을 겨냥,“절대 보통사람일 수 없는 분이 보통사람이라고…”라며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비방하는 결과가 됐네요.”라고 웃어 넘겼다.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高 전총리 애독서 ‘열국지’ 거론 노 대통령은 또 고건 전 총리가 애독한다는 ‘열국지(列國志)’를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군웅할거 시대에 난세의 리더십을 보여준 ‘열국지’에 대해 노 대통령은 “열국지 시대 리더 자질을 갖고 와서 ‘이거 하라는데’,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각료제청권 행사 문제를 놓고 ‘다르게 판단한’고 전 총리의 리더십을 비판한 게 아니냐는 측면에서 관심이 증폭됐다. 문소영기자˝
  • 盧, 전직대통령 우회적 평가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연세대 리더십 특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우회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보니 다 죽다 살아난 사람이다.제 앞에 대통령이 되신 분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라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 그렇죠.박정희 전 대통령 결코 찬성할 수는 없지만 한강 건널 때 목숨 걸지 않았나.전두환,노태우… 어떻든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찬성할 수 없지만,공짜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이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다들 돌아가실 뻔했다.”고 덧붙였다.노 대통령은 “저는 다행히 목숨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첫 번째”라면서도 “그러나 밑천이 들린 것을 보면 제가 제일 화끈히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목숨걸지 않고 대통령된 첫 사례” 일부 전직 대통령은 ‘지도자의 자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거론됐다.노 대통령은 “말할 자격이 없는 지도자가 좋은 말을 자꾸 하면 좋은 말을 버린다.”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 민주주의를 말살시켜 놓고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고 후유증이 엄청났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정치를 비판했다.또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건 게 정의로운 사회다.”라고 꼬집었다.노 대통령은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을 겨냥,“절대 보통사람일 수 없는 분이 보통사람이라고…”라며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비방하는 결과가 됐네요.”라고 웃어 넘겼다.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高 전총리 애독서 ‘열국지’ 거론 노 대통령은 또 고건 전 총리가 애독한다는 ‘열국지(列國志)’를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군웅할거 시대에 난세의 리더십을 보여준 ‘열국지’에 대해 노 대통령은 “열국지 시대 리더 자질을 갖고 와서 ‘이거 하라는데’,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각료제청권 행사 문제를 놓고 ‘다르게 판단한’고 전 총리의 리더십을 비판한 게 아니냐는 측면에서 관심이 증폭됐다. 문소영기자
  • 전두환씨 조기 소환?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안대희)는 24일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전씨의 처남 이창석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전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20억원이 유입된 경로 등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이씨는 이날 오전 10시쯤 출두,오후 5시30분쯤 귀가했다. 이씨는 검찰에서 “10억원은 98년 부친 이규동씨의 권유로 산 채권으로 부친이 관리했던 조카 재용씨의 돈과 섞여 있었으며,나머지 10억원은 2001년 7∼8월쯤 부친이 며느리인 처에게 ‘묻지마 채권’으로 증여한 것이라 신고하지 않았다.”며 비자금 관련성을 부인했다. 검찰은 또 이순자씨로부터 지난 17일 남편 전씨의 추징금 대납 형식으로 채권 102억원어치와 현금·수표 28억원 등 모두 130억원을 제출받은 데 이어 이번 주에 70억원을 추가 대납받기로 했다.이 돈이 모두 대납되면 전씨의 체납 추징금은 1672억원으로 줄어든다. 검찰은 증여세 포탈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재판에 계류중인 전씨의 차남 재용씨 사건에 대해 167억원 상당 채권의 증여자를 외조부 이규동씨에서 전씨로 바꾸도록 한 담당 재판부의 공소장 변경 요구를 수용키로 했다.이에 따라 검찰은 재용씨의 공소장 변경을 위해 전씨를 조기 소환조사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강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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