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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法臺 앞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혐의 모두 부인”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23일 법대(法臺)에 섰다. 지난해 9월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592억원의 뇌물수수 등 18가지 혐의를 받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의 심판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들어섰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당한 지 75일, 4월 17일 구속 기소된 지 36일 만이다. 재판부는 신속한 진행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재판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최순실(61)씨 사건 재판을 병합하고,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과 그의 ‘40년 지기’ 최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62) 롯데 회장의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것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올림머리 형태를 유지한 채 통상의 피고인이 입는 수의 대신 남색 정장 차림으로 나왔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지난해 9월 최씨가 독일로 출국한 이후 8개월 만에 이날 같은 자리에 섰지만 서로의 처지를 감안한 듯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3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게 하는 한편 권력을 남용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을 배제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등은 사사로운 이익 취득을 위해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했고 재벌과 유착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제기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뇌물수수 혐의에는 동기가 없다”며 “최씨와의 공모 관계에 대한 설명도 없고 증거 관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 등에 대한 뇌물 요구나 블랙리스트 지시 등의 혐의도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재판부가 “피고인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느냐”고 묻자 “변호인 입장과 같다”고 답했다. 최씨도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검찰이 무리하게 엮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는 검찰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 등 8명이 출석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유영하·이상철·채명성 변호사 등 6명이 나왔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포토] 21년만에 또... 수갑 찬 전직 대통령

    [포토] 21년만에 또... 수갑 찬 전직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 최순실 씨가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첫 공판에 참석했다. 417호 법정은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2.12사태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됐을 때 나란히 섰던 곳이다. 사진 왼쪽은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기립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오른쪽은 23일 대법정으로 향하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보]“직업은?” “무직입니다”…53일만에 모습 드러낸 박 전 대통령

    [1보]“직업은?” “무직입니다”…53일만에 모습 드러낸 박 전 대통령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 “무직입니다.”23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 피고인석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 인정신문에서 짧게 대답했다. 주소에 대해서는 “강남구 삼성동?”, 생년월일이 ‘1952년 2월 2일’이 맞는지 묻자 “네”라고 읊조렸다. 재판 전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에 대답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첫 정식재판을 시작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 회장의 뇌물죄 관련 재판이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삼성·롯데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재판정 피고인석에 섰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에 이어 이 법정에 선 세번째 대통령이다. 417호 대법정은 150석 규모로 서울고법·지법에서 가장 크다. 12·12사태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전·노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렸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1·2심 재판을 받는 등 굵직한 재판이 이뤄진 곳이다.오전 9시 10분쯤 호송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남색 정장에 수용자번호(503번) 배지를 가슴에 달고 플라스틱 핀을 꽂아 올림머리를 한 모습이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에 따르면 도주 우려가 없는 피고인은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 다른 수감 피고인처럼 손목에 수갑을 찼지만 포승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전 10시쯤 박 전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어 그의 ‘40년 지기’이자 ’비선실세’였던 최씨가 피고인석으로 다가가 앉았다.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앉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눈인사도 나누지 않고 내내 정면만 응시했다. 피고인 석에는 유영하 변호사와 박 전 대통령, 이경재 변호사와 최씨, 신 회장과 변호인단이 나란히 앉았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피고인 박근혜 재판 앞둔 구치소 앞 지지자들 “석방하라”

    피고인 박근혜 재판 앞둔 구치소 앞 지지자들 “석방하라”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40년 지기’인 최순실씨와 나란히 법정에 선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는 것은 1996년 3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정식재판이 열리는 2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석방하라” 등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몰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경비가 강화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첫 정식재판을 연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서 호송차를 타고 법원에 도착한다. 통상 피고인들은 대형 호송 차량을 함께 타고 오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분리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수의 대신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설 것으로 보인다. 구치소 수용 상태라는 점에서 평소 ‘트레이드 마크’였던 올림머리는 하지 못할 전망이다. 대신 단정히 머리를 묶고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박홍기 수석논설위원

    21년 전이다. 1996년 2월 26일 오전 10시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 연두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들어섰다. 수인(囚人)번호 ‘3124’가 뚜렷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법정에 쏠렸다.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했다.인정신문에서 전씨는 본적과 주민등록번호를 또박또박 대답했다. “현재 주소가 어딥니까”라고 묻자 당황한 듯 “안양교도소”라고 답했다. 법정이 술렁이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95-4입니다”라고 곧바로 고쳤다. 전씨는 재벌들로부터 돈을 받은 경위에 대한 질문에 “관행에 따라 으레 그런 것인 줄 알고 받았다”, “재벌들의 우국충정을 받아들여 정치자금을 받았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4일 뒤인 3월 11일 같은 시간 같은 법정에서 12·12 및 5·18 사건의 첫 재판이 열렸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섰다. 노씨의 수인번호는 ‘1042’였다. 검찰은 당시 12·12 사건을 군사반란, 5·18 사건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단죄였다. 국민은 다시는 이런 날이 없기를 바라며 두 전직 대통령을 지켜봤다. 21년이 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법정에 선다. 법원은 피고인석에 선 박 전 대통령을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1년 전과 같은 법정, 같은 시간에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 수인번호 ‘503’을 단 ‘피고인 박근혜’를 볼 수밖에 없다. 뇌물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된 지 53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주장처럼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몰랐고 나는 한 푼도 사적으로 챙긴 게 없다”,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었다”라고 진술할 가능성이 크다.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고, 불리하다 싶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년 전으로 되돌아갈 듯하다. 국민의 눈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평행이론’ 같다. 40년 지기인 비선 실세 최씨와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다. 최씨 변호사의 말마따나 ‘살을 에는 고통’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지켜보는 국민은 착잡하다. 떳떳하게 당당하게 국민 앞에 설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을 또다시 볼 수 없어서다.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깨 버린 탓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박 전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헌재의 결정 때처럼 승복하지 않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국론 분열과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한 길이다. 남아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 법정 선 박 前대통령, 오늘 언론 공개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근혜(65)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23일 시작된다.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 기소)씨와 함께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모습이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23일 오전 10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첫 공판을 서울 서초구 종합법원청사 대법정에서 진행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말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53일 만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정식 재판에는 피고인이 의무적으로 출석해야 한다. ‘40년 지기’ 최씨도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난 뒤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과 법정에서 조우한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대해 언론의 사진 촬영을 허용했다. 다만 재판부는 수갑을 푼 모습을 공판이 시작하기 직전까지만 촬영을 할 수 있다고 제한했다. 1996년 12·12사태와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촬영을 허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수의가 아닌 사복차림으로 법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구치소 수용 상태라는 점에서 평소의 올림머리는 하지 못할 전망이다. 이날 재판은 박 전 대통령 신원 확인에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 진술과 변호인의 반론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은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그동안 최씨가 삼성에서 뒷돈을 받은 사실을 몰랐고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삼성으로부터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피고인석 앉은 박근혜 전 대통령, 23일 언론 통해 공개

    피고인석 앉은 박근혜 전 대통령, 23일 언론 통해 공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을 하루 앞둔 22일 법원이 이례적으로 첫 공판이 이뤄질 법정 내 피고인 석과 재판일부에 대한 언론에 공개를 허가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구속 된 이후 53일만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23일 오전 10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리는박 전 대통령의 첫 정식 재판에서 취재진의 사진과 영상촬영을 허가한다고 이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수갑을 해제한 모습으로 취재진에 공개될 것으로 보이며 재판부가 입장해 개정 선언을 하기 전까지 취재가 허용된다.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대법원 규칙상 법정 촬영은 재판장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사안의 중요성, 취재진의 요청 등을 두루 고려해 법정 촬영을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2·12사태와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돼 나란히 법정에 섰을 때도 언론을 통해 이 모습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당시 재판부도 사건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개정 직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1분 30초간 사진 기자들의 촬영을 허용했다.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첫 재판 준비 절차에 나온 모습도 언론에 공개됐다. 법원은 차은택씨와 장시호씨 재판도 각각 1차례씩 촬영을 허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전 대통령 내일 첫 재판…최순실과 법정에 나란히

    박근혜 전 대통령 내일 첫 재판…최순실과 법정에 나란히

    박근혜(65·구속 기소) 전 대통령이 23일 ‘40년 지기’ 최순실씨와 나란히 법정에 선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는 것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첫 정식재판을 23일 오전 10시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연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수의 대신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설 것으로 보인다. 구치소 수용 상태라는 점에서 평소 ‘트레이드 마크’였던 올림머리는 하지 못할 전망이다. 재판부는 먼저 박 전 대통령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진행한다. 기소된 사람과 법정에 출석한 사람이 같은 인물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장의 질문에 따라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본적, 거주지를 밝혀야 한다. 여기서 자신의 직업을 ‘전직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도, ‘무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후 검찰이 18개 혐의 요지를 설명하고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들의 입장을 확인하는 모두(冒頭) 절차가 진행된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준비절차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날도 같은 주장을 펼칠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사건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최씨의 뇌물 사건 병합 여부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석방하라”…재판 사흘 앞두고 지지자들 구치소 ‘결집’

    “박근혜 석방하라”…재판 사흘 앞두고 지지자들 구치소 ‘결집’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을 사흘 앞두고 그의 지지자들이 서울구치소 앞에 모여 박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했다. 친박 단체인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옛 탄기국)’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 400여명(경찰 추산)은 20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박 전 대통령은 무죄”, “그분은 잘못이 없다”, “당장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8개 중대 등 700여명을 배치해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국민저항본부 대변인 겸 새누리당 사무총장인 정광용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장도 집회에 참석해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정 회장은 공금횡령 의혹을 해명하라”면서 언성을 높여 해 참가자들 사이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지난 13일 ‘제7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에서도 지도부의 공금횡령 의혹으로 참가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집회가 조기 해산된 바 있다. 또 정 회장은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지난 3월 10일 태극기 집회 당시 집회 질서를 관리하지 않아 폭행 등을 유발하고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은 오는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인 417호에서 열린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서는 것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21년 만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재판 방청 추첨 500명 몰려…경쟁률 7.7대 1

    박근혜 재판 방청 추첨 500명 몰려…경쟁률 7.7대 1

    오는 23일 시작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식 재판을 앞두고 19일 서울중앙지법이 진행한 법정 방청권 추첨에 525명이 몰렸다. 일반인에게 배정된 좌석이 68석임을 감안하면 하면 7.7대1의 경쟁률이다.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서는 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21년 만이다. 이날 응모 절차는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었지만 시민들은 그보다 이른 오전 8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했다. 추첨장 입구부터 늘어선 대기 줄은 복도를 따라 건물을 돌아서까지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서는 역사적인 재판을 보기 위해 멀리 지방에서 발걸음한 시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한 30대 직장인은 “재판 방청을 위해 연차까지 낼 계획”이라며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아 사법부에서도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방청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추첨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유모(남·69)씨는 “공모니 뭐니 그런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뭘 하는지 잘 몰랐다고 하지 않느냐”라며 “판사들 얼굴, 표정이 어떤지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은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인 417호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文 대통령 ‘5·18 연설’, 국민통합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정부 기념 행사였던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어제 역대 최대 규모로 거행됐다. ‘5·18 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 등 정부 인사와 여야 정치권, 5·18 유공자·유족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무엇보다 뜻깊은 것은 9년 만에 논란의 핵심이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형식으로 부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일부 보수 진영의 반발로 합창 형식으로 바뀌었다가 이번에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제창 형식으로 복원된 것이다. 어제 기념식에서도 자유한국당 참석 인사들이 제창을 거부해 아직도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국회가 2013년 여야 합의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전례가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공식 기념곡 지정 문제를 매듭 지을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어제 기념사를 통해 밝힌 것처럼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의혹 등을 포함해 5·18 발포 책임자의 진상 규명도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 아직도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시민군이 먼저 발포했다’거나 ‘북한군 특수부대가 일으킨 폭동’이라는 허위 주장이 제기되는 등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 37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5·18 당시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폭도들이 일으킨 5·18 사태로 불렸다가 이미 김영삼 정부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고, 2011년엔 관련 기록물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신군부의 독재에 맞서 싸운 5·18민주화운동이 한국 민주주의를 선도했다는 점에서 수구세력들의 폄하 주장은 누가 봐도 시대착오적 사고임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가 민주주의 초석을 놓았던 5·18민주화운동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퇴진시킨 촛불 민심의 토대 위에 탄생한 정부라는 점을 이번 기념식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5·18 정신이 역사적으로 재평가될 수 있도록 그동안 은폐된 진상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은 현 정부의 당연한 역사적 책무인 것이다. 앞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국민 화합의 정신을 담는, 명실상부한 국가 행사로 승화시켜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광주 시민들에게 과거의 아픔을 딛고 국민 통합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찬반이 갈려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최고의 가치를 압축적으로 담아 내는 작업인 만큼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5·18 정신을 국가 재건의 정신적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섬세하고 정교하게 추진돼야 한다.
  • 새 정부, 별도 명칭 없이 ‘문재인 정부’로

    새 정부가 별도의 공식 명칭을 정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란 이름을 쓰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한다”며 ‘문재인 정부’란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 같은 명칭을 붙일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며 “자율적으로 실용적으로 ‘문재인 정부’나 ‘더불어민주당 정부’로 써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지상파 방송 3사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 당사에 들러 “다음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밝혔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괜히 이름을 정하려다 갑론을박할 수 있다”며 “지금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철학을 담은 공식 명칭은 김영삼 정부부터 사용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권을 끝냈다는 뜻에서 ‘문민정부’란 이름을 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정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란 의미를 담아 ‘국민의 정부’란 명칭을 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참여정부’란 이름을 붙였다. 정부의 명칭은 그 정부의 성격과 지향점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이름을 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실용’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10년간 공식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굳이 명칭을 따로 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특별법 등 후속조치 가시화… 발포명령자 등 진상규명 주목

    특별법 등 후속조치 가시화… 발포명령자 등 진상규명 주목

    국회 특별법안 발의된 상태… 민주·국민의당 입법화에 적극적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진상규명’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헬기사격, 발포명령자 등 관련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본격적으로 이뤄질지 주목된다.정부와 정치권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후속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민간인에 대한 헬기사격 의혹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돼 있다. 특히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이 입법화에 적극적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뒤 기자들과 만나 “특별법의 입법화 노력을 협치의 첫 번째 시험대 및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당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조기에 입법으로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진상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상균 대변인은 “국방부는 객관적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국회 입법을 통한 진상조사가 추진되면 필요한 조치를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기념식장뿐 아니라 5·18 단체 관계자들과 오찬을 하면서도 5·18 진상규명에 대해 언급했다”면서 “완전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절차와 관련해 “실무진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절차와 기구를 연구하고 논의하는 과정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동안 5·18 진상규명 활동은 ▲1989년 국회 청문회 ▲1995년 검찰 수사 ▲2007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 조사 등을 통해 진행됐지만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1989년 국회 청문회에서는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헬기사격을 가했고 사상자까지 발생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 세력은 “발포는 군의 자위권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문회에서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5·18 민주화운동 진상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5·18 당시 집단발포 명령자를 확정·처벌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옛 전남도청 인근 전일빌딩에서 헬기사격 흔적으로 보이는 총탄 자국이 발견된 데다 정권도 바뀌어 5·18 진상규명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文대통령 “5·18정신 헌법에 담겠다”

    文대통령 “5·18정신 헌법에 담겠다”

    “광주정신으로 정의로운 통합… 발포 진상·책임 반드시 밝힐 것”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현직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4년 만이다. 기념식에는 1997년 정부기념일 지정 이후 최대인 1만여명이 운집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에서 “오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며 현 정부가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5·18 관련 의혹의 진상 규명 의지를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상처받은 광주를 위무(慰撫)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면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한 진상 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켜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면서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2호 업무지시’를 통해 제창을 지시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5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라며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실제 문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날 행사에는 문 대통령과 정 의장,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을 포함한 정부 인사와 여야 지도부, 5·18 유공자·유족, 세월호 가족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강기정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눈물 흘린 이유는..”

    강기정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눈물 흘린 이유는..”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오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이름도 없이 민주주의를 지켰던 사람들을 이름을 불러줘서 왈칵 감정이 그랬다”고 밝혔다.강기정 전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곽수종의 뉴스 정면승부’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여러 사람 열사들, 과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중에 첫 번째로 이야기한 표정두 열사가 제 고등학교 친구다. 또 박관현 선배님도 저희가 민주주의, 민주화 길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광주 사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강 전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산 자여 따르라,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살아있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다짐이 되고 미안함도 되고 그러한 다짐과 미안함, 이러한 노래인데 이것을 9년 동안 못 부르게 하니 환장했다”면서 오늘의 연설과 노래를 통해 민주주의가 새로 회복될 계기가 시작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를 강 전 의원은 “후퇴된 민주주의에 대한 복원이 있었다”면서 “솔직히 10여 년 동안 5.18 기념식 참여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무너졌었다. 황교안 총리 작년 와서 기념식 대독하고 과거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말 치욕적이고 스스로 거기에 앉아있으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그러한 자괴감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떤 분은 정말 정부 행사가 기쁠 수 있다, 즐거울 수 있다,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을 했다”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딱 한 마디, 발포 명령과 그 과정에 대해 고백하고 정말 용서를 빌어야 한다.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정말 마지막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文 대통령 “헬기 발포 명령자 밝히겠다”로 주목받는 전두환 회고록

    文 대통령 “헬기 발포 명령자 밝히겠다”로 주목받는 전두환 회고록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기념사에서 “시민 향해 군이 헬기 사격한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밝혀내겠다”고 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지난달 전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는 총 3권으로 구성된 ‘전두환 회고록’을 출판했다. 회고록 1권 제4장 ‘5·18신화의 자리를 차지한 역사’에는 전 전 대통령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사태’라는 생각이 담겼다. 광주사태는 1980년도의 용어로 민주정부 이전에 부르던 명칭이다.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발포 명령자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무기를 탈취하고 군인들을 살해한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또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 온 모든 악담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광주사태로 인한 상처와 분노가 남아있는 한, 그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겠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사태’로 규정하고 본인을 ‘제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회고록 내용은 1982년 보안사령부에서 발간한 ‘제5공화국 전사(前史) 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료에는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회의는 전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군 주요 지휘부가 참석했으며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었던 전 전 대통령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5·18기념사업회 “전두환 반란수괴 및 내란목적살인죄 유죄 확정받아” 한편 5·18기념사업회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전두환 회고록 발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민주화운동 왜곡·비방을 방지하는 입법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반란수괴 및 내란목적살인죄로 대법원의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전두환이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명박근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이명박근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임을 위한 행진곡’이 9년 만에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 등 정부 주요 인사는 물론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1만여 명의 인파 모두 지난 9년 간 ‘제창’이 금지됐던 이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원래 이 노래는 1997년 김대중 정부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서 5·18 기념식 제창곡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악보 없이 불렀고, 2004년 기념식에서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태극기만 만지작거리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노 전 대통령과 대비되기도 했다. 이 노래의 시작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20일 광주 옛 망월동 5·18 묘역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죽고 없는 영혼 결혼식이 열렸다. 신부는 1978년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만들어 낮엔 노동자로, 밤엔 야학교사로 활동하다 같은 해 12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박기순(당시 23세)씨. 신랑은 박씨의 권유로 야학 교사로 참여했다가 1980년 5월 1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윤상원(당시 30세)씨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은 전두환 정권의 감시를 피해 자택에서 김종률, 전용호, 오정묵 등 광주지역 문화예술인 10여 명과 함께 박씨와 윤씨의 영혼을 기리고, 5월 항쟁을 추모하는 노래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후 황씨는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씨의 옥중 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씨가 작곡해 완성했다.광주에서 시작된 이 노래는 대학가는 물론 당시 신군부에 저항하던 세력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기념식 제창곡으로 격상됐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래 제창에도 제동이 걸렸다. 보수 진영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 북한 김일성 주석을 상징한다 등의 주장을 제기했고, 결국 국가보훈처는 2009년 이 노래를 기념식순에서 제외했다가 2011년 제창이 아닌 ‘합창 공연곡’ 수준으로 낮춰 지정했다. 참석자 다 같이 부르지는 않고, 합창단의 공연을 보면서 따라 부를 사람만 부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집권 첫해에만 기념식에 참석한 뒤 모두 불참했다.결국 이 노래는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라는 노랫말처럼 9년이 지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5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라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임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은 누구?...윤상원과 박기순

    임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은 누구?...윤상원과 박기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9년만에 제창된다. 9년만에 제창되는 이 노래와 노랫말에 얽힌 사연이 다사 주목받고 있다. 광주에 대한 무력 ‘침공’이 시작된 1980년 5월 27일 새벽 3시쯤. 31살의 청년 윤상원이 광주 전남도청에서 피맺힌 연설을 한다. 그는 시민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전남도청에서 사망했다고 ‘윤상원 평전’ 등이 전한다.이후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임’으로 돌아온다. 이 ‘임’ 에는 윤씨를 포함해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 1978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박기순씨도 있다. 박씨의 장례식에서 소설가 황석영씨가 조사를 읽고 가수 김민기가 “상록수를 부르면서 추모했다. 윤씨는 당시 박씨의 권유로 들불야학 교사로 참여했다가 광주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씨는 전두환 정권의 감시를 피해 자택에서 김종률, 전용호, 오정묵 등 광주지역 문화예술인 10여 명과 함께 윤씨와 박씨의 영혼을 기리고, 오월 항쟁을 추모하는 노래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후 황씨는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씨의 옥중 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씨가 작곡해 완성했다. 이듬해 2월 20일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윤씨와 박씨의 영혼결혼식이 열린다. 이들은 ‘넋풀이’ (노래굿)로 그동안 숨죽여 만들고 녹음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대학가를 통해 널리 퍼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마당] 오늘도 5월 18일입니다/김민정 시인

    [문화마당] 오늘도 5월 18일입니다/김민정 시인

    오늘은 5월 18일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1980년 봄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나 모를 수가 있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2년 대학가 풍물패에 끼어 장구를 배우다가 대학생 오빠가 보여 준 몇 장의 흑백사진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끼리인데 사람이 사람에게 맞는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우의 시체도 아닌데 사람이 시신으로 줄줄이 누워 있던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이오도 아닌데 군복 입은 사람들과 탱크에 탄 사람들이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이게 다 뭔가요. 그리고 이어지는 진실. 연이어 배우게 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작곡된 노래.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 가사의 원작자인 백기완은 1998년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소유권도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이 땅에서 새날을 기원하는 모든 민중의 소유가 됐기 때문이라며 저작권 불행사 입장을 밝힘.” 2017년 위키백과가 정의해 주는 이 노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3집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있던 이 노래를 고등학교 정문 맞은편 버스 정류장 뒤에 자리했던 레코드 가게에서 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 그때는 ‘임’이 아니라 ‘님’이었고, 들을수록 가락에 한이 서린 듯해 절로 외워지는 데다 비통을 호소하고 복수를 다짐하게 만드는 듯해 입시 지옥의 자율학습 시간 내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자주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손에 박자를 담아 단단한 망치질 같은 허공중의 호소로 그들이 선창할 때 나는 이상하게도 노래는 되는데 손이 따라지지 않아 어색한 상황을 몇 번이고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이 순간에 나는 왜 쭈뼛거리는가, 나는 왜 전두환의 턱주가리를 쳐올리는 심정으로 굳세게 주먹을 내지르라는 선배들의 말에 망설이는가, 나는 왜 볼이 빨개져서는 소심하게 오므려 쥔 손으로 시늉이나 하다 팔을 내려 버리는가. 그에 대한 해답을 근 20년 만에 얻게 된 것은 바로 이 한 권의 기록으로 말미암아서였습니다. 광주에서 에세이스트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문선희씨의 ‘묻고, 묻지 못하는 이야기’라는 책에서 그날의 총알 자국을 여전히 간직한 광주 곳곳의 벽 사진과 더불어 이런 증언을 여러 번 듣게 된 연유에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의 말, 짠다고 해도 짤 수가 없는 진실의 말. “날이 더운데 할머니가 어디선가 솜이불을 해 오셨어요. 총알이 솜이불을 못 뚫는다고요. 옛날 집들은 담이 낮아서 총알이 집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김이강, 1980년, 12세) 골목골목 총알이 스쳐 간 그날의 진실을 품고 있는 갈라진 벽. 그 총알을 피하기 위해 집집마다 다급하게 못으로 박아 걸었을 솜이불. 그러니까 내가 5월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겁니다. 내가 다 알지 못하니까 자신이 없으니까 움츠러들었던 겁니다. 깊이 알면 적극적이었을 몸이 얕게 안다 싶으니까 소극적으로 반응하고 말았던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물줄기로 흐르는 것이 역사입니다. 역사를 다룬 드라마의 리바이벌이 왜 계속되는가 하면 죽어도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방증이 아닐까요. 전두환 전 대통령님, 5월 18일인데 오늘밤 잠 좀 주무실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오늘밤 꿈자리가 편치는 마시라 주술을 건 주문이나 외워 볼 참입니다만.
  • 첫 발포 명령자·헬기소사·행불자, 아직도 ‘미궁’

    대법원 판결 등 공식 자료에 발포 명령자는 특정되지 않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7년이 흘렀으나 진상 규명은 현재진행형이다. 헬기 공중사격 등 일부는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최초 발포 명령자와 헬기 기총소사, 행방불명자 등 3대 핵심 의혹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광주시민, 새 정부 진상규명 의지에 희망 광주시민들은 새 정부의 진상 규명 의지에 기대를 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책임자 등을 명확히 가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관련법을 개정해 전두환 전 대통령 등 5·18 정신 훼손 세력을 엄단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이런 가운데 최초 발포 명령자가 특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2007년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는 ‘5월 21일자 진종채 2군사령관의 작전지침 문건’에서 ‘전 각하(전두환 지칭):초병에 대해 난동 시 군인 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는 수기 문서를 찾아내 공개했다. 1982년 보안사가 펴낸 ‘제5공화국 전사(前史)’에는 21일 당일 국방장관실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 지휘관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정당방위 자위권 행사’를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주요 지휘관 모임을 주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때 학살도, 발포 명령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1989년 국회 5·18청문회, 1995년 검찰조사, 1997년 대법원 판결 자료 등 공식 문서에도 발포 명령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7·11공수대대가 주둔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5월 21일 오후 1시를 전후해 발생한 집단 발포는 군 자위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헬기 공중 사격도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광주시는 최근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인근 전일빌딩에 대한 진압군의 헬기 공중 사격 사실을 확인했지만 기총소사인지, 탑승 군인의 소총 집단 사격인지는 가려내지 못했다. 또 5월 21일 오후 전남도청 상공에서 헬기 기총소사가 이뤄졌다는 다수의 목격자 증언은 있지만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행불자 타 지역에 암매장 가능성 열려 행방불명자와 이들의 암매장 여부도 오리무중이다. 광주시가 진행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현황에 따르면 사망자 155명, 상이후 사망자 111명, 행불자 76명 등이다. 행불자의 시체나 흔적 등은 지금껏 미궁에 빠졌다. 한때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 등 주민 제보지를 발굴했으나 행불자를 찾아내진 못했다. 나의갑 광주시 5·18진실규명 자문관은 “그동안 공개 안 된 군 기록이 많은 데다 진압군인 공수부대가 항쟁 기간에 헬기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횟수가 잦았던 만큼 희생자가 다른 지역에 암매장됐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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