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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짓밟은 전두환, ‘전두환’ 밟고 간 문재인 대통령

    광주 짓밟은 전두환, ‘전두환’ 밟고 간 문재인 대통령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계엄군의 시민 학살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 열풍이 정치권에까지 번진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광주 국립 민족민주열사묘역 방문 당시 사진도 재조명 되고 있다. 최근 대형 온라인커뮤니티와 페이스북 SNS 등에는 ‘전두환 짓밟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해당 게시물에 첨부된 사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서있는 모습이 담겨있다.해당 사진은 2016년 4월 8일 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광주 국립 민족민주열사묘역을 방문한 당시 찍힌 것으로 확인됐다. 민족민주열사묘역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이 처음 묻힌 곳으로, 1997년 국립묘지가 조성되면서 대부분 묘지가 이장됐다. 이후에는 민주화 운동 열사들이 주로 묻힌 곳이다. 그런데 이 묘역에는 광주 학살을 지시한 전두환씨 기념비의 일부도 있다. 이 기념비는 1982년 당시 대통령인 전씨가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는 1989년 군부 정권이 퇴장하자 이 기념비를 부숴 민주묘역 입구 땅바닥에 묻어 사람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기념비 안내문에는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적혀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찾기 위해 민주묘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바닥에 놓인 ‘전두환 비석’을 보고 묘역 안내인에게 “원래 깨져 있었던 건가요? 밟고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이 비석을 밟고 묘지로 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지난해 이 기념비를 밟고 지나갔다. 한편 대법원의 내란 및 반란죄 등 확정판결에도 ‘광주 학살’을 부정하고 있는 전씨와 전씨 측근들은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운운하고 있다.전씨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지난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이 나오는 내용은 완전히 날조된 사실”이라면서 “당시 계엄군들이 공격을 받고 몇 명이 희생되자 자위권 차원에서 사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택시운전사 관련해 악의적인 왜곡과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檢, 전두환 회고록 인세 추징한다

    檢, 전두환 회고록 인세 추징한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인세를 압류한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강지식)는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최근 출간한 회고록 발간에 따라 출판사로부터 받게 될 인세를 압류해 달라면서 10일 법원에 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을 접수했다고 11일 밝혔다.법원이 검찰 측 신청을 받아들이면 전 전 대통령이 받게 될 인세는 추징금으로 국고에 환수된다. 전 전 대통령은 1996년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으로 추징금 2205억원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환수한 추징금은 총 1151억 5000만원으로 전체 추징금 부과액의 절반 수준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검찰, 전두환 회고록 인세 압류 신청 “미납 추징금 환수”

    검찰, 전두환 회고록 인세 압류 신청 “미납 추징금 환수”

    검찰이 전두환씨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그의 회고록 인세의 압류를 신청했다.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강지식)는 10일 전씨가 회고록 발간에 따라 출판사로부터 받게 될 인세를 압류해달라면서 법원에 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을 접수했다. 법원이 검찰 측 신청을 받아들이면 전씨가 받게 될 인세는 추징금으로 국고에 환수된다. 전씨는 1996년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으로 추징금 2205억원을 부과받았지만, 현재까지 1151억 5000만원만 납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추징금 절반이 미납된 상태다. 전씨는 지난 4월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표현해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법원은 지난 4일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내용을 담은 회고록 출판과 배포를 금지해달라는 5·18기념재단 등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현재 회고록은 판매 및 유통이 중단된 상태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손석희 앵커가 본 ‘택시운전사’ 속 언론 그리고 ‘전두환’

    손석희 앵커가 본 ‘택시운전사’ 속 언론 그리고 ‘전두환’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는 영화 ‘택시운전사’와 그 시절의 언론, 그리고 전두환씨에 대한 손석희 앵커의 시선이 반영돼 눈길을 끌었다.손 앵커는 9일 브리핑을 통해 “늘 그렇듯 영화든 무엇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용감하게 맞섰던 사람과 피했던 사람, 참여자와 관찰자,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다시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화 속 언론의 모습은 곳곳에서 참담하다”며 “치열했던 광주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광주이외 지역의 평온함은 군부와 언론이 만들어낸 생경했던 풍경이었다. 이런 모순은 결국 광주에 있던 한 방송사가 불에 타는 것으로 정점을 이룬다”고 말했다. 손 앵커는 “만약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의 선택은 달랐을까. 우리는 그것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어두웠던 시절. 이 땅에서 빚어졌던 그 모든 비극의 시간. 그러나 당시를 겪어야 했던 그들도 또한 그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아 방송을 시작했던 저나 저의 동료들도 그 비극의 시간 속에 방송인으로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긴 세월을 돌아 지금은 모두가 부끄러움을 이야기 하는 시간. 그 모든 참극을 가져온 당시의 젊은 권력자에게서는 가해자의 변명이 쏟아져 나오고, 영화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까지 주장하지만 그와 그의 동료들 역시 그 비극의 시간을 붉게 물들였던 가해자로서의 존재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영화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로, 목격자들의 시선에서 5월 광주를 담담하게 그려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배우 송강호가 독일 기자와 함께 광주로 향하는 택시 기사 김만섭 역을, 토마스 크레취만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기자 피터 역을 맡았다. 영화는 실제 5월 광주의 진실을 최초로 전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전두환씨 측은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 왜곡 정도가 지나치다며 법적 대응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전두환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그 당시 벌어졌던 상황 자체는 두말할 것 없이 폭동이다”라고 주장했다. 전씨 또한 4월 3일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 자작나무숲에서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광주사태 당시 국군에 의한 학살이나 발포 명령은 없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최근 법원은 회고록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전씨측은 이의신청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전두환 측 “영화 ‘택시운전사’ 날조 지나치면 법적 대응 가능”

    전두환 측 “영화 ‘택시운전사’ 날조 지나치면 법적 대응 가능”

    전두환씨 측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표적·겨냥 사격한 부분은 완전히 날조됐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두환씨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미리 서둘러서 법적 대응 이런 얘기를 언급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이같은 입장을 말했다. 그는 “그런 (표적·겨냥 사격)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왜곡) 정도가 지나치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민 전 비서관은 통화에서 “5·18 당시 벌어졌던 그 상황과 사건 자체는 폭동인 것이 분명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격 규정을 하고 평가를 하겠지만 그에 앞서서 폭동인 것은 분명하지 않냐”며 “아무런 법적 정당성이 없는 시민이 무장하고 무기고를 습격하고 간첩들이 수용돼 있는 교도소를 습격하고 군수 공장을 습격했다. 장갑차나 사병들을 빼앗아서 그걸로 무기고 습격하고 한 것을 폭동 아니고 뭐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걸 무슨 3·1운동 같은 운동이라고 하겠나.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며 “두말할 것 없이 폭동이지만 5·18 단체나 그런 곳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본다. 민주화운동이라고 보지 않는 입장도 있다”고 강조했다. 민 전 비서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전두환씨 회고록에 대해 법원이 내린 판매·배포 금지 결정과 관련해 이번 주 안에 이의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전두환, 포악한 노년의 모습…회고록 출판·배포 금지는 당연”

    “전두환, 포악한 노년의 모습…회고록 출판·배포 금지는 당연”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법원의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결정에 대해 7일 “사필귀정, 당연한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두환은 자기 인생을 돌아봐야 할 때가 돼서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자서전을 통해 5·18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표현하고 5·18을 광주 사태로 적는 등 포악한 노년의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두환과 신군부의 흉악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미완성인 5·18의 명확한 진실을 규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제37주년 5·18 기념식에 참석해 5·18 정신의 헌법 계승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지난 100대 국정과제 발표를 통해 진상 규명을 위한 방안도 내놨다. 하루빨리 5월의 진실과 광주의 명예가 진정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5·18기념재단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사자 명예훼손 소송에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판단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낙연 총리 ‘택시운전사’ 관람 후 눈시울 붉어져 “울면서 봤다”

    이낙연 총리 ‘택시운전사’ 관람 후 눈시울 붉어져 “울면서 봤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6일 오후 서울 대학로CGV에서 페이스북 친구 20명과 함께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이 총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울면서 봤다”고 전했다. 이 총리는 4일 오전 페이스북에 “영화관람 번개 모임을 제안합니다.(중략) 댓글 주시는 20분을 모시겠습니다.끝나고 호프도 한 잔!”이라고 글을 올렸고, 해당 글에는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총리실은 댓글 순서를 기준으로 여성 비율과 연령대 등을 고려해서 참석자를 선정했다. 참석자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부터 20대 공무원 준비생, 30대 직장인, 60대 개인사업자까지 아울렀고, 거주지는 주로 서울·경기권이지만 대구에서 온 교사와 충남 천안에서 온 대학원생도 포함됐다. 이 총리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만나 일일이 악수하고, 단체사진을 찍은 뒤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택시운전사’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 총리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가 단지 옛날 옷을 입고 나타났을 뿐이라고 느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37년 전의 광주뿐만 아니라 2017년의 대한민국 자체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취재해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펜터와 서울에서 그를 태우고 광주까지 간 한국인 택시기사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배우 송강호씨가 택시기사 역을 맡았다. 이 총리는 영화관람 후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울면서 봤다.광주시민들이 왜 그렇게 목숨을 걸었는지 과거형으로 보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했다”며 “80년 5월 광주를 그린 여러 영화 중에서 가장 가슴을 친 영화”라고 극찬했다. 그는 택시운전사가 서울로 가다가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꼽으며 ‘굉장한 영화’,‘고마운 영화’라고 평가했다. 기자로 21년간 재직한 이 총리는 “80년 5월에 외교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광주항쟁을 보도하는 게 제 업무는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많은 부채감을 일깨워줬다”며 “기자로서,정치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왔던가, 통렬한 죄책감을 일깨워주는 영화였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영화관 인근 통닭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 장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주제로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총리는 재차 광주항쟁이 일어난 80년도를 회상하면서 “제 인생의 가장 고통스럽던 시절이었다. 대학생 때 끼니를 거르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던 그 시절보다 훨씬 괴로웠다”고 말했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 ‘전두환 흔적지우기 운동’을 하고 있다며 의견을 묻자 이 총리는 중국에 있는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박물관에는 치욕적인 삶이 모두 기록돼 있다고 소개하며 “(흔적지우기 운동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정부가 모두 지우는 게 옳을 것인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프미팅’이 이뤄진 통닭집에는 영화초청 이벤트 참석자 20명에 선정되지는 못했지만,이 총리와 만나고 싶다며 시각장애인 등이 찾아오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두환 측 “회고록 배포금지 법원 결정 불복…이의 신청할 것”

    전두환 측 “회고록 배포금지 법원 결정 불복…이의 신청할 것”

    전두환씨 측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한다는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회고록에 대한 법원의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불복한다”면서 “이의신청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내용을 변호인 측으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광주지방법원 민사21부는 지난 4일 5·18기념재단,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고 조비오 신부 유족이 전 전 대통령과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고, 전 전 대통령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헬기 사격이나 폭력진압이 없었다는 내용은 허위사실 혹은 의견표현”이라며 “역사를 왜곡하고 5월 단체와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민 전 비서관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는 점을 법원에 충분히 설명했고, 역사적 사실 왜곡이 없었다는 입장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직 대통령이 쓴 회고록에 출판금지 가처분을 하는 나라가 어딨나.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인권 수준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라고 반발했다. 책 내용을 수정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지적한 부분을 삭제하고 계속 출판할지, 본안(손해배상) 소송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출판을 미룰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전 전 대통령이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는 “5·18은 ‘폭동’ 외에 표현할 말이 없다”, “나는 광주 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 “5·18 학살도, 발포 명령도 없었다” 등의 표현이 등장해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두환 회고록 5·18 왜곡”… 출판·배포 금지 결정

    “전두환 회고록 5·18 왜곡”… 출판·배포 금지 결정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등 왜곡한 내용을 담은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라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광주지방법원 민사21부(부장 박길성)는 4일 5·18기념재단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하고 전 전 대통령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헬기 사격이나 폭력진압이 없었다는 내용은 허위 사실 혹은 의견 표현이다”며 “역사를 왜곡하고 5월 단체와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또 5·18 왜곡 내용 삭제 없이 회고록 출판·발행·인쇄·복제·판매·배포·광고를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가처분 신청인에게 1회당 500만원씩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5월 단체가 지적한 5·18 왜곡 내용은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에서 33곳에 걸쳐 있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 ‘계엄군은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까지 결코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등의 표현이 문제 됐다. 김양래 5·18재단 상임이사는 “법적,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진실까지 왜곡하는 행위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등으로 전두환을 다시 법정에 세워 5·18 진실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5월 단체가 이와 별개로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 손해배상(본안) 소송 재판은 광주에서 진행 중이다. 법원은 5월 단체가 지만원(75)씨를 상대로 제기한 ‘5·18 영상고발’ 화보 발행 및 배포금지 가처분도 함께 받아들였다. 지씨는 화보에서 5·18 당시 항쟁에 참여한 시민을 북한특수군으로 지목했다. 광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법원 “전두환 회고록, 왜곡 서술 미삭제시 출판·배포 금지”

    법원 “전두환 회고록, 왜곡 서술 미삭제시 출판·배포 금지”

    법원이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 서술한 대목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배포 불가 결정을 내렸다.광주지방법원 민사21부(부장 박길성)는 4일 5·18기념재단,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고 조비오 신부 유족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폭동·반란·북한군 개입 주장, 헬기사격 및 계엄군 발포 부정 등의 내용을 삭제하지 않고서는 회고록 출판·발행·인쇄·복제·판매·배포·광고를 금지했다. 또 이러한 결정을 어기면 위반행위를 할 때마다 가처분 신청인에게 500만원씩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5월 단체가 지적한 5·18 왜곡 내용은 회고록 1권에서 33곳에 걸쳐있다.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초과해 5·18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왜곡하고, 5·18 관련 집단이나 참가자들 전체를 비하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인용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 측이 관할 법원을 광주지법에서 서울 서부지법으로 옮겨 달라는 이송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광주는 5·18에 대한 지역 정서가 매우 강해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지역적 연고가 적은 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법원은 5월 단체가 보수논객 지만원(75)씨를 상대로 제기한 ‘5·18 영상고발’ 화보 발행 및 배포금지 가처분도 함께 받아들였다. 지씨는 화보에서 5·18 당시 항쟁에 참여한 시민을 북한특수군으로 지목했다. 5월 단체는 ‘전두환 회고록’ 손해배상(본안) 소송도 제기한 바 있다. 재판은 광주에서 진행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 뒷담화] 대통령도 휴가가 필요해

    [정치 뒷담화] 대통령도 휴가가 필요해

    해외 정상들 길게는 3주의 여유, 한국 대통령은 3~5일간 짧은 휴식적당한 휴식이 활력을 주고 다음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업무에 바쁜 대통령에게도 여름휴가는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은 휴가 때 휴식을 취하는 것 외에도 정국 구상에 몰입하고 휴가를 끝낸 뒤 주요 정책을 발표하는 일도 많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남대 휴가 후 금융실명제 등의 주요 정책을 실행해 ‘청남대 구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 대통령이 특정 지역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 홍보가 되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울산을 방문했다. 단순히 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휴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해외 경호 어려워… 저도·청남대·군부대시설 인기 역대 한국 대통령은 휴가에 인색한 편이다. 해외 정상은 길게는 3주간 휴식을 취하지만 한국 대통령들은 대개 7월 말에서 8월 초쯤 3일에서 5일 정도 휴가를 보낸다. 또 종종 다른 나라로 휴가를 떠나는 해외 정상도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경호가 어렵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도록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강원 고성군 화진포의 별장을 여름휴가 때 즐겨 찾았다. 화진포에는 북한 김일성 주석 별장, 이기붕 전 부통령의 별장도 있다. 1954년 지어진 화진포 별장은 1961년 철거됐다. 1999년 육군이 복원해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랑했던 또 다른 휴가지는 경남 거제의 ‘저도’(猪島)다. 저도는 누워 있는 돼지를 닮았다 해 ‘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1954년 이 전 대통령이 휴양지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저도 내 별장을 ‘바다의 청와대’란 의미로 ‘청해대’(靑海臺)로 공식 지정했다.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 섬 주변 해상 어로작업도 금지됐다. 저도의 행정구역은 거제시이지만 소유권은 국방부에 있다. 거제시 등은 그동안 저도의 관리권 이관을 요구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저도 반환을 약속한 만큼 조만간 저도가 민간인에게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충남 아산의 도고 온천도 즐겨 찾았다. 이 때문에 이곳에는 별장도 지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은 충북 청주의 ‘청남대’(靑南臺)를 즐겨 찾았다. 전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83년 만들어진 청남대는 ‘남쪽에 있는 청와대’란 의미로 대청호의 너른 풍경을 볼 수 있고 산책은 물론 축구,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를 즐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매년 이곳을 찾았다. 조깅이 취미였던 김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매일 2㎞가량 되는 조깅 코스를 달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중 3차례나 이곳을 찾아 산책을 즐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는 이 별장을 국민 여러분께 돌려 드립니다. 사사로운 노무현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라며 2003년 충북도에 소유권을 넘겼다. 현재 청남대는 대통령 테마파크로 이용되고 있다.경호가 쉽고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군부대시설은 대통령의 전통적인 휴가 장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3년 8월 대전 유성의 계룡스파텔에서 첫 휴가를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휴가 기간 대부분을 8·15 경축사 구상에 힘을 쏟았다. 경호실장과 두세 차례 골프를 즐기기도 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7월 경남 진해의 해군 휴양소에서 첫 휴가를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6년 6월 서울시장 퇴임 후 한나라당 경선, 대선을 거쳐 3년 만의 첫 휴가를 보내게 됐다. 그러나 ‘얼리 버드’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일중독으로 유명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휴가지에서도 하루 두 차례씩 당시 정정길 비서실장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관련 수석으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으며 현안을 직접 챙겼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7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보낸 추억의 장소인 저도를 첫 휴가지로 골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블라우스에 긴 치마를 입고 저도 해변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쓰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낸 곳은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이었다. ●정국구상 몰두… 바쁜 업무로 관저에서 머물기도 이처럼 역대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조용히 휴식을 취했지만 바쁜 업무로 휴가를 취소하고 나서 관저에 머무는 이른바 ‘방콕’으로 휴가를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8년 외환위기 사태를 수습하느라 여름휴가를 잡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 대부분의 휴가를 보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수습으로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5년에는 메르스 여파로 관저에서 휴식을 취했다. ●文대통령, 연차 사용 독려… 첫 여름휴가 초미 관심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연차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했던 터라 첫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주목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순방 기자단에게 “연가를 다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달 말에서 다음달 초까지 휴식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1년에 21일의 연가를 쓸 수 있고 지난 5월 22일 취임 후 처음으로 하루짜리 연가를 내고 경남 양산 사저에서 휴식을 취했다.●호화 골프 즐기는 美대통령, 입방아에 오르기도 한국 대통령이 휴가에 소극적이라면 해외 정상은 휴가 사용에 적극적이다. 2주 이상의 휴가는 기본이며 자국 내 호화 리조트에서 머물며 골프 등의 고급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체로 장기간 휴가를 즐긴다. 그러나 너무 휴가만 챙긴 탓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533일을 휴가로 썼다. 주로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한 달간 여름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5년 휴가를 지나치게 중요시한 나머지 휴가 기간 발생한 태풍 카트리나 피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역풍을 맞았다.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여름에는 매사추세츠주의 마서즈비니어드섬에서 휴가를 즐겼다. 겨울에는 하와이의 호화 별장에서 보름 이상을 휴가로 보내곤 했다. 특히 골프광으로 유명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골프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오바마 전 대통령 못지않은 골프광이다. 휴가 때마다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2014년 8월 휴가 중에 히로시마 산사태로 9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골프를 쳐 비판을 받았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골프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 골프장 19개를 운영하고 있고 틈만 나면 휴가를 가서 골프를 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는 겨울에,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은 여름에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자마자 골프장으로 주말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2월 취임한 뒤 본인 소유의 리조트와 골프장, 호텔에 간 날이 50여일이라고 보도했다. 이 중 골프장에만 간 날이 30여일로 알려져 비판받았다. ●유럽정상 해외로… 스위스서 스키 탄 메르켈 부상도 유럽의 정상은 해외를 즐겨 찾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알프스에서 주로 휴가를 보낸다. 2014년 1월에 스위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 넘어져 몇 주간 목발 신세를 졌다. 조기 총선 참패로 사퇴 압박을 받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 24일부터 3주 동안 이탈리아와 스위스 알프스에서 휴가를 즐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재임 마지막 해였던 지난해 스페인 플라야 블랑카를 찾아 휴가를 보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피서 풍경/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피서 풍경/손성진 논설주간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돈이 드는 피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서울에는 한강이 있어 1970년대 초까지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당시 한강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었다. 한강대교 위 중지도에서 서빙고동까지, 뚝섬·광나루 유원지에도 백사장이 있었다. 광진교에서 하류 쪽으로 강변에 뻗어 있던 광나루 백사장은 해변보다 더 넓었다. 지금의 동부이촌동은 백사장 자리를 메운 곳이다. 한여름이 되면 한강대교 옆 백사장에는 보통 10만명, 광나루에는 많으면 40만명이 넘는 물놀이 인파가 붐볐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골재 채취로 웅덩이가 수없이 생겨 익사 사고가 잇따랐다. 여름이면 하루에 10여명이 익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1차와 2차에 걸친 개발로 백사장은 점점 제 모습을 잃어 갔고 1980년 전두환 정부가 한강종합개발에 착수하면서 물놀이가 완전히 금지됐다. 한강종합개발은 1982년 9월 28일 착공돼 4년간의 공사 끝에 1986년 9월 10일 준공됐다. 아시안게임 개막 열흘 전이었다. 행주대교에서 암사동까지 36㎞의 한강 본류의 폭을 650m에서 900m로 넓히고 강바닥을 파 수심을 평균 2.5m로 골랐다. 강변에는 제방을 쌓고 고수부지를 만들어 시민공원을 조성했다.고속도로가 없을 때 서울에서 동해로 가기는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바다 피서지는 철도가 있는 서해안의 인천 송도나 대천·만리포 해수욕장이 인기였다. 여름이면 서울에서 부산과 대천 등으로 가는 피서 열차가 운행되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59년에 대천행 기차를 타고 서해안으로 피서여행을 떠난 서울시민이 2만 2000여명이었다. 장항선이 지나가는 대천은 1960년대에도 모터보트가 달리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최고의 해변이었다. 부산, 원산, 마산 등지에 해수욕장이 조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반이라고 한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개발되지 않았을 때지만 여름이면 수십만명이 모여들었다. 온천이 있어서 사철 가리지 않고 신혼여행지로도 애용되었다. 해운대 극동호텔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순시를 오면 묵던 곳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최고의 호텔이었지만 주변에 특급호텔들이 들어서면서 1989년 문을 닫았고 철거됐다. 우리나라 해수욕장에 비키니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무렵이다. 처음에는 사각팬티로 노출이 적었다. 1946년 7월 5일 프랑스의 미슐랭 베르나르디니라는 19세 모델이 비키니를 입고 대중 앞에 선 지 20년 만이었다. 비키니라는 이름은 그보다 4일 전인 1946년 7월 1일 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있었던 미국의 핵폭탄 실험만큼이나 충격이 커서 붙여진 것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사진은 1968년 6월 초여름 더위에 한강 광나루 백사장에 몰려든 피서 인파.
  • [유진모의 테마토크] ‘택시운전사’로 광주에 간 송강호

    [유진모의 테마토크] ‘택시운전사’로 광주에 간 송강호

    박근혜 정권 때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송강호는 다음달 2일 개봉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소재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쇼박스 배급)의 주인공 만섭 역을 맡았다. 독일 방송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가 보수의 눈으로 진보를 본 뒤 참이라 믿었던 거짓을 깨닫는 서울 개인택시 기사다. ‘변호인’에서 ‘젊은 노무현’ 송우석 변호사 역을 맡고, 세월호 참사 때 시국선언 연예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가 광주행을 선택한 이유는 정치적 색깔일까, 우연의 일치일까.그는 편향된 정치적 발언을 한 적도, 확고한 이념적 방향을 주창한 적도 없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고사했다가 결국 출연을 결심한 배경은 감독의 열정과 신뢰도, 그리고 시나리오에 있지만 어쩌면 만섭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에서 벌어 온 돈으로 개인택시를 구입해 11살 외동딸을 키우며 사는 만섭은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꼰대’다. 연일 시내 곳곳에서 대학생들 시위가 펼쳐지는 등 시국이 뒤숭숭해지면서 수입이 줄자 “비싼 돈 들여 기껏 대학에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이나 한다”며 혀를 끌끌 찬다. 학생들을 향해 “먼지가 펄펄 나는 사우디에 한 번 가봐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걸 알지”라고 핀잔을 던지던 그가 광주에서 벌어지는 군인들의 무자비한 시민 학살 현장을 목도하곤 그제야 이승만과 박정희를 잇는 전두환이 설계한 이념적 세뇌의 감옥을 박차고 뛰쳐나온다. 그건 고치를 뚫고 나오는 ‘절대적 자유에 의한 정립’.(셸링) 연기력은 절대평가는 가능하되 상대평가는 어렵다. 그럼에도 송강호는 연기력으로 선두에 놓이는 데 별 이견이 없는 몇 안 되는 남자 배우 중 한 명이다. 이번에도 그런 그의 마법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 정도로 눈부시다. 다시 한번 현대사의 아픔을 되새기게 만드는 재주. 과연 그는 ‘여우 같은 곰’일까, ‘곰 같은 여우’일까. 그가 시나리오를 보는 기준은 상업성보다 완성도, 예술성보다 철학, 재미보다는 소통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를 ‘자신을 고슴도치로 착각한 태생적 여우’라고 표현했다. 송강호는 그냥 고슴도치, 즉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배우다. 그가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흔쾌히 읽게 된 이유는 ‘영화는 영화다’ ‘고지전’,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의형제’ 등을 연출한 장 감독에 대한 믿음에 있다. 그러나 고사한 이유는 ‘변호인’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누가 봐도 노무현인 송우석을 ‘감히’ 잘 그려 낼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컸기 때문인 상황과 비슷한 데 있다. 시나리오를 받은 지지난해 말~지난해 초 그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다. ‘변호인’ 개봉 이후 눈에 띄게 작품 섭외가 준 데 대해 대충 눈치를 챘던 그이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의도를 띠거나 반발 심리에 출연을 결심한 것은 아니란 증거. 그가 ‘밀정’에 출연한 이유는 역사 의식보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인연을 맺은 김지운 감독에 대한 의리와 신뢰도가 더 컸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아예 시나리오조차 보지 않고 ‘오케이’했다. 그가 집중하는 한 가지는 바로 ‘감독’이다. 다만 추측은 가능하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예술적 파토스의 신념으로 저항하고, 사회적 에토스의 기준으로 웅변하며, 인본주의적 로고스로 훈계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 ‘존경의 선물’인가 ‘권력의 산물’인가...기념우표 논란 ‘팩트체크’

    ‘존경의 선물’인가 ‘권력의 산물’인가...기념우표 논란 ‘팩트체크’

    ‘정부에서 발행하는 우편요금 선납의 증표. 최근에는 취미나 기념으로 모으는 수집용으로서의 부가적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우표포털 서비스에 나오는 우표에 대한 소개다. 정보통신 발달로 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이 우표가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 발행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지난해 6월 발행이 결정됐으나 문재인 대통령 시대로 바뀐 지난 12일 발행이 취소됐다. 그러자 국민통합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행 취소 비판론과 독재자를 미화 찬양하는 행위야 말로 적폐청산에 맞지 않다는 옹호론이 엇갈리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는 지난해 4월 구미시가 우정사업본부의 ‘2017 기념우표 발행 공모 사업’에 신청해 그해 6월 선정됐다. 오는 9월 15일 발행 예정이었으나 거센 논란에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2일 우표 발행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 기념우표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국내외 기념우표를 둘러싼 궁금증을 짚어본다.●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가 가장 많았다?” 한국우표 포털서비스에 등록된 역대 대통령 기념우표를 살펴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가 46가지(외국 대표 방한 기념 포함)로 가장 많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가 23가지(육영수 여사 기념, 새마을운동 기념 포함)로 두 번째로 많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가 6가지(국토통일 기념 포함)로 뒤를 이었다. 다른 대통령의 경우 취임 기념우표가 각 1회 발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우표가 추가돼 모두 2회의 기념우표가 제작됐다. 가장 많은 우표를 발행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주로 해외 순방 우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도, 호주, 스리랑카, 뉴질랜드 방문’ 기념우표 4종을 순방에 앞서 발행했지만 그해 아웅산 테러사건이 일어나 순방이 취소되며 ‘기념할 것 없는’ 기념우표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군사정권으로서 부족한 정통성을 확보하기위해 우표발행을 많이 했다는 지적이 있다.●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에 정치인이 들어간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 발행된 100주년 기념우표 중에 정치인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됐더라면 최초로 대통령 탄생 100주년 우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역대 기념우표를 살펴보면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는 한 번도 없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우표는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과 이중섭 탄생 100주년, 슈바이처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가 있었다. 이 외 생일 관련 우표로는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 이승만 탄신 80주년, 이승만 탄신 81주년,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 괴테 탄생 250주년 등이 있다.● “외국에선 대통령이라고 100주년 기념우표 만들어주지 않는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케네디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으로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과는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 루즈벨트 전 대통령, 레이건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됐다. 2009년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의 기념사업을 승인했고 2년 뒤 레이건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나왔다. 영국에서도 1974년 전 총리인 윈스턴 처칠의 100주년 기념우표가 만들어졌다. 이땐 영국뿐 아니라 처칠을 존경하는 다른 국가들도 처질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중국에선 초대 총리인 저우언라이, 두 번째 국가주석인 류샤오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등이 발행됐다.● “중국에선 논란의 인물 마오쩌둥 탄생 100주년 우표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는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되자 13일 기자들에게 “중국에서는 모 주석 시기에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명이 희생당했다”며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모 주석 탄신 100주년에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박근령씨가 언급한 중국 모 주석은 ‘마오쩌둥’ 주석이다. 중국에서는 1993년 마오쩌둥의 100주년 탄생을 기념하는 우표가 나왔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정치가로 장제스와의 내전에 승리해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당시 각종 사상 탄압이 이뤄져 상반된 평이 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박근령씨의 말대로 마오쩌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둘 다 재임 기간의 공로와 과오가 뚜렷하나, 이를 받아들이는 국내 정서는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에 대한 국민정서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아 이미 길거리에서 모택동 티셔츠나 열쇠고리 등 기념 물품을 파는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화폐인 인민폐에도 마오쩌둥의 초상이 들어 있다. 한편 1993년 북한에서도 마오쩌둥의 100주년 탄생 기념우표를 발행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이 우표를 만들려고 법을 바꿨다?”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 발행을 위해 내부 규정을 바꿨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의혹의 대상이 된 규정 개정을 살펴보면 ‘특수우표’라는 용어를 ‘기념우표’로 바꾸고 우표발행 ‘신청제한기간’ 규정을 삭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용어를 제외한 ‘우표 발행대상 세부내역’은 변경된 바 없고, 우표발행 신청 접수는 관례적으로 신청기간이 지나도 반영했기 때문에 해당 조항이 사문화 됐다는 판단 하에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기존에 발행된 이중섭 탄생 100주년, 2016국제로터리 서울대회 등의 우표도 접수 기간이 지나서 신청됐지만 결국 발행됐다. 따라서 이번 규정 개정이 기념우표 발행과 관련한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현갑 기자 eagleduo@seoul.co.kr 이하영 수습기자 hiyoung@seoul.co.kr
  • ‘40억원 벌금미납 노역’ 전두환 처남, 세금소송 항소심도 패소

    ‘40억원 벌금미납 노역’ 전두환 처남, 세금소송 항소심도 패소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선고받은 벌금 40억원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전두환씨의 처남 이창석씨가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의 2심에서도 패소했다.서울고법 행정1부(부장 최상열)는 11일 이씨가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양도소득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전씨의 차남 재용씨와 함께 2006년 12월 경기 오산 양산동의 땅을 파는 과정에서 임목비(나뭇값)를 허위로 신고해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5년 이상 키운 나무를 팔 때 발생하는 산림소득은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데, 두 사람은 매매대금 445억원 중 120억원이 산림소득인 것처럼 속여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2015년 8월 재용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이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하고 두 사람에게 벌금을 40억원씩 부과했다. 국세청은 두 사람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4년 누락된 양도소득세와 가산세 총 41억 6000여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이씨는 양산동 땅에 임목을 조성한 지 5년이 지났다는 이유 등을 들어 토지 매매대금은 산림소득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부당한 과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매매가 이뤄질 당시 임목이 별도의 거래 대상이었다고 볼 수 없어 매매대금이 산림소득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세무서의 손을 들어줬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벌금을 내지 않아 노역장에 유치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재규 변론’ 안동일 변호사 “10·26 사건, 책으로 쓴 이유는..”

    ‘김재규 변론’ 안동일 변호사 “10·26 사건, 책으로 쓴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10·26 사건’의 장본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가 당시 170일 간의 재판과정을 기록한 책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을 냈다.‘10.26 사건’이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사건이다. 김재규는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사형 선고를 받고 나흘 뒤 사형이 집행됐다. 피고인 중 한 명인 박흥주는 군인 신분이어서 군법회의에 회부돼 김재규 등의 사형이 집행되기 두 달여 전에 이미 총살형으로 사형됐다. 수사, 기소, 심리, 사형 구형까지 걸린 시간은 단 54일. 이를 위해 거의 매일 공판이 열렸다. 일반 형사 사건의 경우 2주 또는 3주에 한 번씩 공판 기일을 정하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의 경우 신속히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신군부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안 변호사는 말하고 있다. ‘10.26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당시 판결이 옳았는지에 관한 논란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안 변호사는 사건 현장에 있던 이들의 법정진술과 공판조서, 수사기록, 언론보도와 함께 공판조서에서 삭제된 김재규의 주요 진술과 김재규가 1심부터 3심까지 안동일 변호사에게만 털어놓은 개인적인 고백을 실었다.안 변호사는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우리가 역사를 정확히 알려면 기록이 있어야 한다”며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학 시절 4·19 혁명에 참여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예전에 ‘새로운 4·19’라는 책을 냈다고 언급하면서 “그 새로워진 4·19가 촛불혁명으로 뭉쳤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그는 “박정희 18년, 전두환·노태우 14년으로 군사정권이 이 땅을 경작한 것이 햇수로 32년이다”라며 “이 ‘32년’으로 군사문화가 청산됐다고 보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회창 전 총리는 축사에서 “김재규 사건이 박정희 시대라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를 여는 역사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면서 “김재규 사건 판결에서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들이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강요로 대법관에서 물러난 사건을 보고 통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진용 갖춘 檢개혁 ‘삼두마차’… 새달 인적쇄신 예고

    진용 갖춘 檢개혁 ‘삼두마차’… 새달 인적쇄신 예고

    박상기(65)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문무일(56·사법연수원 18기)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지명되면서 문재인 정부 핵심 과제인 ‘검찰개혁’을 이끌 법무·검찰 사령탑도 진용을 갖추게 됐다. 문 후보자는 비(非)법조인 출신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 후보자 등과 호흡을 맞춰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전망된다.법무부 탈(脫)검찰화와 검찰 조직을 형사·공판부 중심으로 재편하는 문제부터 정체된 검사장과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인사를 통한 인적쇄신까지 문 후보자가 챙겨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서울 지역 한 부장검사는 “평소 꼼꼼한 형사 사건 처리, 수사 지휘를 지론으로 강조해 왔다”면서 “검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잘 제시할 총장 적임자”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문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임명동의안 제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이르면 7월 말쯤 임명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8월 초쯤 예상되는 후속 검사장 인사 폭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관례를 감안하면 문 후보자 동기나 선배 기수 검사장들은 퇴진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에 남아 있는 연수원 17~18기 검사장은 모두 6명이다. 여기에 현재 공석인 검사장 자리도 10개에 달한다. 법무부 국·실장·본부장 등 일부 검사장 보직이 축소되더라도 대대적인 인적 변화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현재 17~20기가 포진해 있는 고검장급 8자리에는 연수원 19~20기가 주축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지검장급은 현재 22기에서 23기 혹은 24기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문 후보자 하면 ‘지존파 사건’ 처리 일화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문 후보자가 3년차 검사이던 1994년 남원지청에 지리산 자락에서 발생한 실족사가 단순 사고사로 처리돼 송치됐다. 문 후보자는 ‘성남 거주자가 이런 산골까지 왜 왔을까’라는 기초적인 의문을 품어 경찰에 재수사를 지휘하면서 5명을 살해해 2명을 불태우는 등 잔악한 범죄를 일삼았던 ‘지존파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이 수사 경험은 현재도 사법연수원 교재에 실려 있을 정도로 ‘수사 정석’으로 통한다. 문 후보자의 치밀한 수사 스타일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삼남 지방을 전전하던 이름 없던 문 후보자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를 시작으로 특수통(通)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광주에서 태어난 문 후보자는 초·중·고교를 모두 광주에서 나온 광주 토박이이기도 하다. 1980년 5·18 광주항쟁과의 인연도 깊다. 그의 친구들이 시민군으로 가담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고, 손위 동서도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검찰 특별수사팀에 참여할 때 이런 일화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제주지검 부장검사이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팀에 파견됐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에는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 및 사문서 위조, ‘기획 입국설’ 의혹,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등을 이끌었다. 2015년 특별수사팀장으로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맡았다. 한 장의 메모만 남기고 공여자가 사망한 뇌물 사건을 지휘해 여권 실세였던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를 기소했다. 두 사건 모두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당시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꼼꼼한 스타일로 검사들과 소통을 잘했다”면서 “새벽 3~4시까지 수사가 이어지면 꼭 남아서 후배 검사들을 챙겼다”고 돌이켰다. 한편 문 후보자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1988년 ‘2차 사법파동’ 때 함께 반대성명을 주도했던 일을 회상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자 법조계가 반대한 일이다. 이 시장은 “두벌식 타자기로 성명서를 작성해 복사한 뒤 법원·검찰에 나가 있는 연수생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졌다. 185명의 반대성명서가 발표됐고, 대법원장 지명은 철회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대한민국 모든 검사의 지휘자가 될 형(문 후보자)이 여전히 초심을 간직한 채 용기와 결단으로 적폐청산과 공정국가 건설의 첫길을 제대로 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믿는다”고 썼다. ▲광주(56) ▲광주제일고 ▲고려대 법학과 ▲대전지검 논산지청장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수원지검 2차장검사 ▲인천지검 1차장검사 ▲부산지검 1차장검사 ▲광주고검 차장검사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서울서부지검장 ▲대전지검장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 ▲부산고검장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여성·특수·공안 4파전… 호남 출신 법무 - 총장 시대 열리나

    여성·특수·공안 4파전… 호남 출신 법무 - 총장 시대 열리나

    공백 길어 차관이 제청 가능성…호남 2명·비호남 2명 각축전 소병철 유일한 전직 검사 신분…오세인 재산 -3억 신고 ‘흙수저’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로 추천된 4명은 모두 검찰 안팎에서 신망이 높고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들이다. 처음으로 여성 후보가 추천됐고 영남 출신 인사가 배제됐다. 사법연수원 15기부터 19기까지 기수가 넓게 포진한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는 소병철(59·사법연수원 15기) 농협대 석좌교수, 문무일(56·18기) 부산고검장, 오세인(52·18기) 광주고검장, 조희진(55·여·19기) 의정부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로 이금로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에게 추천했다고 3일 밝혔다. 검찰총장 공백 상태가 길어지고 있어 장관 임명 전 차관이 제청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르면 4일 검찰총장이 전격 임명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유일한 여성 후보인 조 지검장이다. 2013년 처음 가동된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에서 여성 후보가 추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지검장은 여성 1호 부장검사, 차장검사, 지청장을 거치며 가는 곳마다 검찰 내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2015년 2월 제주지검장으로 임명되면서 검찰 창설 이래 첫 여성 지검장 기록도 세웠다. 조 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될 경우 ‘첫 여성 검찰총장’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기수가 가장 높은 소 교수는 2013년 12월 법무연수원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 내에서 신망이 높기로는 소 교수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면서 “임명될 경우 또 다른 의미의 기수 파괴”라고 말했다. 소 교수는 2013년 3월과 10월 두 차례 검찰총장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각각 채동욱·김진태 전 총장에게 밀려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유일한 전직 검사인 소 교수가 후보에 오른 것은 과거 ‘기획통’으로 불린 만큼 검찰 개혁을 완수할 역량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소 교수는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을 거쳤다. 문 고검장은 검찰 내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처리한 ‘특수통’으로 꼽힌다. 문 고검장은 2014년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에는 특별수사팀장으로 기용돼 당시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기소했다. 전주지검 남원지청 검사 시절인 1994년 문 고검장이 수사한 ‘지존파 사건’은 꼼꼼한 수사 기법으로 정평이 나 지금까지도 검찰 수사의 교본으로 불린다. 당시 문 고검장은 단순 추락사로 보였던 변사체에서 살해 흔적을 발견했고, 이를 시초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일당의 만행을 밝혀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호남 출신인 만큼 소 교수(전남 순천)나 문 고검장(광주)이 총장이 된다면 장관과 총장 자리를 모두 호남 인사가 꿰차게 된다. 강원 양양 출신인 오 고검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으로 꼽힌다. 오 고검장은 올해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법무·검찰 간부 가운데 유일하게 채무가 자산보다 많은 인사로 확인됐다. 오 고검장이 신고한 재산은 ?3억 231만원이다. 강원도 출신인 만큼 지역 안배 차원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검 공안부장을 지내 공안통으로 알려졌지만 2013년 첫 대검 반부패부장을 맡은 데 이어 2015년에는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된 서울남부지검 지검장으로 재임하면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이끌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 사돈기업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등 반부패 수사에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30년 지나도록 공포에 잠 못드는···엄마는 형제복지원 생존자입니다

    30년 지나도록 공포에 잠 못드는···엄마는 형제복지원 생존자입니다

    고등학생인 이모(16)양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 박순이(46)씨가 미웠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겪었던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알기 전까지는. 이양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어머니가 매일처럼 술을 마시는 모습이 이양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씨는 술을 마시면 항상 울었다. 딸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하지만 이양이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인 2014년 박씨는 ‘형제복지원’에서 겪었던 끔찍했던 일들을 딸에게 털어놨다. 이양은 어머니가 9살 때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가 7년 동안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시절의 일들을 듣게 됐다. 박씨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이 사건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정부는 시민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연행하고, 복지원은 시민들을 감금해 국가의 방조 아래 강제 노역뿐만 아니라 구타·학대·성폭력·암매장·살인 등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이 사건으로 최소 513명이 희생됐다. 1980년 삼청교육 과정에서 사망한 54명의 열 배에 가까운 숫자다(‘형제복지원 사건 개요’ 바로가기). 형제복지원이 어떤 곳이었고,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되면서 이양은 그제야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 그것은 트라우마였다. 피해 생존자들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공포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구타 후유증으로 중증 장애에 시달리거나 우울증,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벽을 보고 못 자요, 누가 잡아갈까봐… “엄마는 지금도 많이 힘들어하세요. 그 때 있었던 일로 악몽을 꾸시곤 합니다. 허공을 보면서 ‘살려달라’, ‘그러지 마세요’ 등의 말씀을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 안쓰럽고, 똑같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박씨는 지옥에서 벗어난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박씨는 어디를 가든 항상 뒤를 돌아보고 간판 등을 눈여겨 본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방에서 잠을 잘 못 자요. 밖에서 누가 지켜보는 것 같아요. 또 벽을 보고 잠을 못 자요. 누군가가 덮칠 것 같아서요.” 경남 문산읍에서 살았던 박씨는 9살 때인 1980년 부산에 있는 오빠 집에 가기 위해 부산진역에 갔다. 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가까이였다. “역에서 가만히 있으면 오빠가 데리러 올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있어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경찰관 한 명이 다가왔다.“파출소 아저씨가 말을 걸데요. 오빠 어디 사냐고 해서 부산에서 밧데리 가게 한다고 그랬더니 “오빠 오면 데려다줄 테니 같이 가자” 하더라고. 그래서 같이 갔죠. 파출소에서 순댓국인가 국밥을 먹고 잠시 잠들었는데 막 깨우는 거예요. 일어나보니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양쪽에 화장실 환풍기만 한 문만 쪼그맣게 있는 차가 파출소 앞에서 서 있는데 우리더러 다 타라고 하더라구. 그걸 타고 한 20~30분 갔나? 갑자기 쿵쿵 소리가 나면서 철문이 열리고 다 내리라데. 그러곤 한 줄로 세워가지고···.” 사과 없는 국가 이양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게 된 지 3년이 지났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는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가해자인 국가는 그동안 아무 사과도 없었다. 이양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도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데 직접 그런 일을 당하시고, 지금 이렇게 ‘특별법’을 하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라고 2일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진지 30년이 지나도록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역대 문민 정부 모두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그러자 국회가 나섰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안’(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끝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안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진상 규명 이후에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는 피해의 정도 등을 고려해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주거복지시설 등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75년 12월에 발령된 ‘내무부 훈령 제 410호’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당시 ‘부랑인’이라는 인위적인 개념을 만들어 ‘사회 정화’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단속하고 강제로 구금했다. 전두환 정부 때도 유지됐던 이 훈령은 6월 항쟁 직전인 1987년 5월 폐지됐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의미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주윤정 박사는 ‘부랑인’을 만들어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던 통치 방식이 “독재 체제의 핵심적인 국가 관리 방식으로 인식됐다”고 설명했다. 박정희·전두환 정부는 모두 군사 쿠데타 행위로 집권했다. 민주적 정당성을 완전히 결여한 통치 권력이 집권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동원한 방식은 ‘적’을 규정해 국민적 불안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부랑인’이라는 개념 역시 국가가 만들어낸 적이었다.국가가 위임하고 방조한 폭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이 문제를 ‘국가 폭력’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주 박사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가 국가 폭력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명목상의 폭력 주체가 국가가 아닌 ‘형제복지원’이라는 민간의 재단 법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인들 간의 관계로 규정되고, 국가로서는 방치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위임하고 방조한 폭력’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 박사는 “자의적인 사적 폭력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행사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주 박사와 함께 형제복지원 사건을 연구하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팀은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목들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부랑아’, ‘부랑인’ 단속이라는 명목 아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더구나 불충분한 법적 근거로) 단속하여 시설에 강제수용한 것 ▲시설 수용 업무(때로는 단속 업무까지도)를 사적인 권력에 무분별하게 위탁하여 국민의 생명과 권리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것 ▲사적 권력에 위탁한 시설 운영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감독의 의무조차 다 하지 않음으로써, 수용시설 내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실질적으로 묵인·방조한 것 ▲1987년 형제복지원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강제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을 어떠한 물질적·제도적 지원 없이 퇴소시킴으로써 이들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책임을 또 다시 방기한 것 ▲행정부, 사법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지금의 국가정보원) 등의 국가권력 집단이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사건의 수사 과정을 방해하고, 진상을 체계적으로 은폐한 것 위 사실들은 그동안 피해 생존자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으로 밝혀질 수 있었다. 한종선(41)씨가 2012년 5월~2013년 2월 국회 앞 1인 시위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상을 알리고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쓰면서 숨죽이고 살던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어렵게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노력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대책위는 그동안 정보공개청구와 현장 방문, 피해 생존자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토론회와 피해자 증언대회 등을 여러 차례 열어 이 사건이 ‘또다시’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망자가 더 있을 수 있고, 형제복지원이 사망자의 시신을 어떻게 인계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또 형제복지원이 1987년 6월 폐쇄된 이후 일부 원생들을 어느 시설로 보냈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앞서 언급한 의문들은 규명돼야 하는 과제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서울대 연구팀은 “내무부 훈령이 제정된 구체적인 배경, 이 훈령이 일선 경찰 조직까지 전달되어 실제 단속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는 현재로서는 없다”면서 “내무부(지금의 행정자치부)나 경찰 조직(경찰청)을 통해 단속 업무와 관련하여 위에서 하달된, 혹은 아래로부터 보고된 내용들을 보여주는 문서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피해 생존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대선 전인 지난 4월까지 서울 도심에서 23차례 열린 ‘촛불 집회’ 때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지난달 27일 총 8060장의 서명 운동 용지가 국회에 전달됐다. 이제는 국회가 답을 할 차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보통사람’ 손현주, 모스크바영화제 남우주연상 “韓배우 24년 만 쾌거”

    ‘보통사람’ 손현주, 모스크바영화제 남우주연상 “韓배우 24년 만 쾌거”

    배우 손현주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보통사람’이 29일(현지시간) 밤 개최된 제39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폐막식에서 주연배우 손현주의 남우주연상과 넷팩(NETPAC)상 수상까지 2관왕을 달성했다.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제작 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에서 1980년대 보통의 아버지로 변신,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던 배우 손현주의 열연이 국내를 넘어 세계를 사로잡은 것. 지난 6월 22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 제39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보통사람’은 손현주의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칸, 베를린, 베니스와 더불어 세계 4대 영화제로 손꼽히는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는 지난 1989년 배우 강수연이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1993년 배우 이덕화가 ‘살어리랏다’로 남우주연상을, 2003년 장준환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손현주의 수상 소식은 한국 배우로는 24년 만의 값진 성과다.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은 뛰어난 아시아 영화를 대상으로 심사하는 ‘넷팩(NETPAC)’상까지 수상, 작품성까지 입증해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 잇달아 초청된 것은 물론,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보통사람’이 남은 뉴욕 아시안 영화제, 후쿠오카 아시안 영화제에서도 수상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보통사람’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가 절정에 달한 1980년대 후반 상황을 배경으로 보통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가 정보기관(안기부)이 주목하는 연쇄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삶과 가족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손현주, 장혁, 김상호 등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과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과 울림을 선사하는 영화 ‘보통사람’은 IPTV 및 디지털 VOD 서비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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