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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 깜짝 시구로 본 역대 대통령의 시구

    문재인 대통령 깜짝 시구로 본 역대 대통령의 시구

    대통령이 프로야구 경기에서 공을 던지는 이른바 시구는 언제부터 했을까?문재인 대통령이 25알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전에서 시구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시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정치 현안에다 외교문제로 늘 골머리를 싸매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행사가 시구다. 대통령 신분으로서 야구장에서 공을 던진 최초의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7년 4월 25일 제1회 대통령배 전국 고등학교 야구대회에서 시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파란 운동모자를 쓴 채 시구 전 상의를 벗어던진 후 공을 던졌다.프로야구 시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원조다.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시작된 1982년 3월 27일 MBC청룡과 삼성 라이온스간 개막전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은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터라 정치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스포츠와 스크린(영화), 섹스 등 이른바 ‘3S 정책’을 폈고, 그 연장선상에서 프로야구가 나왔다. 정권의 의도대로 당시 개막전은 2000원짜리 외야석 입장권이 6000원에 암거래될 정도 큰 인기를 끌었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3차례나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았다. 1994년,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 1995년 4월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LG의 시즌 개막전 시구를 위해서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LG와 태평양간의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에서는 관중의 뜨거운 환호 속에 공을 던졌다. 당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등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 드라이브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5년 10월 14일 OB와 롯데간 한국시리즈 개막전에서는 야구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아야했다. 대구지하철 폭발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인재사건이 터진 상태였기때문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야구장 주차장을 폐쇄한 것도 불만의 원인이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7월 17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했다. 멋진 투구 자세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공을 꽂아 국민들의 뜨거운 환호을 받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2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삼성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태극기를 새긴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졌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3년 서울시장 때 시구했으며 2008년 시즌 개막전에서는 대통령 일정이 노출되면서 시구행사가 무산됐다. 대신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9월 3일 LG와 SK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에서 김윤옥 여사와 함께 야구를 관람했다. 4회 ‘키스 타임’ 때 김 여사와 입맞춤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무부장관 시절 고교야구대회에서 시구한 바 있으나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한 적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구를 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진정 평화가 창성하는 곳이 되려면/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

    [In&Out] 진정 평화가 창성하는 곳이 되려면/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

    처음엔 돈이 된다고 했다.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제 효과를 무려 64조원으로 추정했다. 올림픽만 유치하면 국가 브랜드가 올라가고 지역민들의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고 꾀었다. 지금 경제올림픽이란 허상을 믿는 이는 없다. 이미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했고 올림픽이 끝나면 자자손손 빚을 갚아야 한다. 1998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일본 나가노현은 20년 가까이 빚더미에 깔려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올림픽을 끝낸 뒤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환경올림픽이란 말도 했다. 산을 깎고 고속철도를 뚫으며 웬 환경 타령인가 싶더니만 역시나 사흘의 활강경기를 위해 500년 가리왕산 숲을 갈아엎었다. 6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 내고 5억원을 들여 LED 40만개를 박은 조형물 ‘생명의 나무’를 세웠다. 분명히 죽은 나무인데 생명이란 이름을 갖다 붙이곤 죽은 환경을 살아 있다고 우긴다. 문화올림픽 얘기도 해야겠다. 문화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광화문광장에 인공 워터봅슬레이를 세운들 올림픽 문화가 피어날까. 이 행사를 언급하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촛불집회 때 나타났던 힘들이 올림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는데 관 주도로 진행되는 올림픽 붐업의 효과는 알다시피 매우 제한적이다. 낮은 호응을 아쉬워하기보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부터 들여다봐야 했다. 국정 농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던 스포츠 적폐를 직시하고 도려내야 한다.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홍보와 관심 부족 탓으로 돌리는 한 문화올림픽은 요원하다. 심지어 올림픽 기간 대규모 전시나 거창한 공연을 문화올림픽이라고 이해하는 문체부의 시각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던 전두환 정권의 ‘문화올림픽 계획’과 끔찍히 닮았다. 평창은 애당초 네 가지 가치를 향한 올림픽을 상상했다. 경제, 환경, 문화, 그리고 평화. 앞의 세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꿈꿀 수 있는 마지막, 그리고 유일한 가치는 평화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지금까지 올림픽을 준비했더라면 꿈도 꿀 수 없는 가치다. 다행히 새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을 방문해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정식으로 제출했다. 올림픽 기간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향유하는 올림픽 휴전은 고대 올림픽의 ‘에케케이리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통상 올림픽 휴전은 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패럴림픽이 끝나고 7일 후까지 이어진다. 내년 2월 2일부터 3월 25일까지 52일 동안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가져올 올림픽 휴전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유예돼 온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비로소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것이다. 평창은 이미 엎질러졌다. 다시 담을 수 없는 참사다. 이제 남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일한 가치는 그 엎질러진 물로 싹을 틔울 52일 동안의 온전한 한반도 평화뿐이다.
  • “軍 부정적 수기 재작성”… 국가기관이 ‘5·18 왜곡’ 주도했나

    “軍 부정적 수기 재작성”… 국가기관이 ‘5·18 왜곡’ 주도했나

    1985년 총리실·안기부 등 참여 3개의 실무팀·심의반으로 구성‘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23일 5·18 관련 자료의 왜곡·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기존의 조사위원회와는 다른 관점에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과 국방부는 1995년 합동수사에서 관계자 진술과 군 관련 자료를 근거로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결론을 한 차례 내린 바 있다. 이건리 특조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국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도, 지금도 군 관계자는 ‘이미 40년이 다 돼 가는 일을 끄집어내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 공연히 쓸데없는 일을 해 군의 명예를 떨어뜨리느냐’고 말하며 진상 규명에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면서 “자전적인 체험 수기도 천편일률적이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재되거나 군에 불리한 내용은 누군가에 의해 삭제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조위가 이날 공개한 ‘광주 사태 참가요원 체험담 수집 지침’에는 군에 부정적인 내용이면 회송·재작성하라는 지시가 명시돼 있다. 1988년 3월 체험 수기 수집은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과 주요 참모 현역 3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특조위는 1985년 6월 구성된 ‘80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5·18 관련 군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특조위는 전두환 정권하의 80위원회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판단했다. 80위원회는 국가안전기획부 2국장이 실무책임을 담당하고 수집정리팀, 분석작성팀, 지원팀 등 총 3개의 실무팀과 이들 실무 활동을 관리하는 심의반으로 구성됐다. 특조위는 이날 80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군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체험수기 일부를 공개했다. 1981년 6월 8일자 체험 수기에는 5·18 당시 계엄군이 ‘무릎쏴’ 자세로 집단사격을 했다는 군 간부 증언이 있다. 그렇지만 1988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체험 수기에는 다르게 명시돼 있다. 일부 체험 수기엔 계엄군의 ‘공중 사격’ 내용은 남아 있고 시민군을 사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면 사격’ 내용은 수정액으로 지워져 있다. 체험 수기의 3~4줄을 지우고 복사본을 첨부한 사례도 발견됐다. 특조위는 이날 특조위 출범 이유인 5·18 당시 헬기 사격과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에 대한 진전된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지난달 11일 출범한 특조위는 그동안 헬기 사격 의혹 관련 목격자 등 19명,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 관련 조종사와 무장사 등 29명을 조사하는 등 총 50명을 조사했다. 현재 국방부 장관 훈령에 의한 특조위 조사 활동 기간은 다음달 30일까지다. 그렇지만 특조위는 조사할 내용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80위원회가 작성한 5·18 관련 백서가 발견되면 ‘5·18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통과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전두환 80위원회, 5·18 왜곡”

    ‘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23일 전두환 정권 당시 정보기관 주도하의 위원회가 구성돼 5·18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왜곡·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건리 특조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두환 정부하에서의 1985년 6월 국무총리실과 안전기획부의 ‘80위원회’ 등 국가기관을 통해 5·18 관련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을 것으로 추정돼 진상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5·18 특조위는 한마디로 ‘가짜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며 “현재 보존돼 있는 군 자료 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기재돼 있지 않고 보존 연한의 경과 등으로 폐기됐으며 남아 있는 자료들 일부는 왜곡되고 변질돼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조위가 이날 공개한 1987년 6월 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에는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 문공부, 육군본부, 치안본부, 청와대, 민정당, 안기부가 참여하는 가칭 ‘광주 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운영하기로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위원장은 “진상규명위원회는 광주 사태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종합 검토해 광주 사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 실무위원회를 편성했다”며 “실무위원회의 위장 명칭을 80위원회로 명기한 것은 정부 차원의 기구 구성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했던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80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결과와 광주 사태 백서의 존재 유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당시 주관 기관이었던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에 광주 사태 백서의 보전 여부 확인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조위는 이날 80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군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참가 요원 체험수기 일부도 공개했다. 이 위원장은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체험 수기의 수정과 변화에 80위원회와 같은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5·18 특조위 “1985년 ‘80위원회’ 통해 사실왜곡된 듯”

    5·18 특조위 “1985년 ‘80위원회’ 통해 사실왜곡된 듯”

    이건리 위원장 “전두환정부, 80위원회 구성해 범정부 대응 마련”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23일 전두환 정권이 정보기관 주도 아래 위원회를 만들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는 이건리 특조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85년 구성된 ‘80위원회’ 등 국가계획안을 통해 5·18 관련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그 진상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 아래 1988년에 511위원회 또는 511 연구반과 분석반을, 그보다 3년 앞선 전두환 정부 아래 1985년 국무총리실과 국가안전기획부의 80위원회 등이 구성되는 등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전두환 정부는 1985년 6월 ‘80위원회’를 구성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조위가 발굴한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 문공부, 육군본부, 보안사, 치안본부, 청와대, 민정당, 안기부가 참여하는 가칭 ‘광주 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운영하기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 진상규명위원회는 광주사태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종합 검토해 광주사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서는 실무위원회를 편성했는데, 실무책임은 안기부 2국장이 담당하고 수집 정리팀, 분석작성팀, 지원팀 등 총 3개의 실무팀과 이들 실무활동을 관리하는 심의반으로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또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로는 조직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광주사태의 진상규명 실무위원회 위장 명칭을 80위원회로 명기하고 있다”면서 “이는 정부 차원의 기구 구성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했던 조치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80위원회’ 자료 발굴에 대한 의미와 관련, “1988년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실체가 알려진 511 분석반 이전에 이미 범정부 차원의 대응기구가 구성되고 운영됐다는 사실을 정부 문서를 통해서 확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또 “80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군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군 자료 일부를 확인했다”며 군인들의 증언이 담긴 5·18에 관한 ‘체험 수기’의 예를 들었다. 1981년 6월 8일자 체험 수기에는 5·18 당시 계엄군이 ‘무릎 쏴’ 자세로 집단사격을 했다는 군 간부 증언이 있지만, 1988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체험 수기 내용은 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고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체험 수기의 수정과 변화에 80위원회와 같은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80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결과와 광주사태 백서의 존재 유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당시 주관기관이었던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광주사태 백서의 보전 여부에 대한 확인을 오늘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 위원장은 “의혹을 받는 당시 및 현재 군 관계자들은 ‘이미 40년이나 다 돼가는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 ‘왜 공연히 쓸데없는 일을 해 군의 명예를 떨어뜨리느냐’고 하면서 진상규명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며 조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현재 보전돼 있는 군 자료 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기재돼 있지 않고 보전 연한의 경과 등으로 폐지됐으며 존안된 자료 일부는 왜곡 또는 변질돼 있다”며 “특조위는 한마디로 ‘가짜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과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의 광주 출격 대기 의혹의 진상규명을 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난달 11일 출범해 약 40일 동안 조사활동을 해왔다. 이번 기자회견은 조사활동의 경과 보고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기간 특조위는 헬기사격 의혹에 관해 목격자를 포함한 19명을 조사했고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에 관해서는 조종사와 무장사 등 29명을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전두환 정부 ‘80위원회’에 의해 왜곡·삭제된 5·18 관련 자료

    [포토] 전두환 정부 ‘80위원회’에 의해 왜곡·삭제된 5·18 관련 자료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5·18 특별조사위 중간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역사자료 광주사태 체험수기’ 및 전두환 정부 당시 80위원회 자료.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진압에 동원된 장병들의 체험수기 곳곳에 강제진압 등 군에 불리한 내용들이 수정 및 삭제돼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감방은 호텔이 아닙니다”

    “감방은 호텔이 아닙니다”

    “더럽고 차가운 감방 생활 불 켜져 있어 잠도 못 자” 박근혜측 인권침해 여론전구치소측 “6~7인용 고친 독방, 외부진료도 수차례 받아” 반박147일간 148차례 변호인 접견 “朴의 벼랑끝 전술 결국 자충수”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하며 스스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재판 보이콧에 이어 자신이 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국제 사회를 향해 여론전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18일 박 전 대통령의 국제법무팀으로 알려진 MH그룹은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서 지내고 있으며 계속 불이 켜져 있어 잠들 수 없다”며 서울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CNN 방송은 MH그룹의 문건을 받아 17일(현지시간) 이를 보도했다. 해외 언론을 통해 65세의 고령 여성이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며 감방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며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끌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교정본부는 즉각 반발했다.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바닥 난방시설, TV, 관물대, 수세식 화장실 등이 구비된 적정 면적의 수용거실에 수용되어 있으며 취침시간엔 수용실 내 전등 3개 중 2개를 소등해 조도를 낮추고 있다”고 밝혔다. ‘허리·무릎·어깨 관절염 등 만성질환과 영양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박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구치소 내부 의료진으로부터 필요 시 수시로 진료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 외부 전문의료 시설에서도 2회 진료를 받는 등 충분한 진료 기회를 보장하고 있으며 규칙적인 식사와 영양을 고려한 식단을 제공하고 충분한 실외운동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박 전 대통령은 불과 열흘 전에는 ‘황제 수용’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법무부 자료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구금 이후 지난 8월 24일부터 147일 동안 148차례 변호인을 접견했고 12차례 구치소장을 포함해 총 24회 교정 공무원을 면담하는 혜택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이 홀로 쓰는 독거실은 일반 수용자 기준면적보다 몇 배나 큰 10.08㎡(약 3.05평)이다. 구치소 측은 박 전 대통령이 비록 파면됐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상 여전히 경호와 경비 대상이라는 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수감 사례 등을 참고해 제공했다. 1995년 수감 생활을 한 노 전 대통령은 6.6평, 전 전 대통령은 6.47평 규모의 방과 접견실, 화장실 등으로 구성된 독방을 배정받았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MH그룹은 국내 로펌이나 박 전 대통령 변호인들도 정확한 실체를 모를 정도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체다. MH그룹 대표로 활동 중인 미샤나 호세이니운 박사는 영국에서 정치·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딴 여성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박 전 대통령 사건 담당자로 배정된 로드니 딕슨 변호사는 국제범죄와 범죄인 인도 등을 전문으로 하는 영국 변호사로, 왕실변호사(QC·Queen’s Counsel) 자격도 갖고 있다. MH그룹의 홈페이지는 폐쇄적이라 일부 자료 등만 볼 수 있다. MH그룹은 자신들이 2011년 리비아 민중봉기 때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리비아 정부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리비아 전 대통령의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를 변호하는 등 고위급 인사들의 국제법적 대응을 맡아 왔다고 소개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6개월 남짓 지난 뒤, 그것도 구속영장이 재발부된 직후 이 같은 ‘인권침해’ 주장을 내놓은 것은 재판부와 사법부를 향한 강한 불만과 불신을 표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CNN은 “한국의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전원이 사퇴하는 등 초강수를 둔 상황에서 MH그룹의 이번 대응은 동정 여론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또 “유엔 인권위는 한국에 처벌을 부과하고 박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현 상황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에게 SK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어 박 대통령 측 변호인 7명은 16일 모두 사임했고 박 전 대통령도 자신의 변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판부는 일단 19일까지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의 재고와 향후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등을 결정하기 위해 시간을 주기로 했지만, 국선 변호인 선임 절차 등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이러한 벼랑 끝 전술이 결국 피고인인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재판부도 “사건을 가장 잘 아는 변호인의 사임은 결국 피고인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도 모두 거부하거나 법정에도 불출석해 재판이 파행될 가능성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울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박근혜 독방 “호텔 스위트룸 수준…6~7인용 혼자 사용”

    박근혜 독방 “호텔 스위트룸 수준…6~7인용 혼자 사용”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7일(현지시간) 보도해 논란이 일고 있다.법무부와 서울구치소 등은 18일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일반 수용자 6∼7명이 함께 쓰는 방(거실)을 구치소 측이 개조해 만든 방을 혼자 사용하고 있으며 독방 면적은 12.01㎡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박근혜 독방’은 접이식 매트리스와 텔레비전, 세면대와 수세식 변기, 그리고 1인용 책상 겸 밥상이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닥 난방은 바닥에 깔린 전기 열선으로 한다. 구속 당시 서울구치소는 과거 전직 대통령의 수감 사례를 참고해 여러 수용자가 함께 쓰던 혼거실을 박 전 대통령 전용 독거실로 개조해 제공했다. 이와 관련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부 재소자는 신문지 두 장 반 크기인 0.3평 공간에서 자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호텔로 따지면 스위트룸에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치소 측은 박 전 대통령이 비록 파면됐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상 여전히 경호와 경비 대상이라는 점, 앞서 교정 시설에 수감됐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례 등을 두루 고려해 박 전 대통령이 쓸 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서 6.6평 규모의 방과 접견실, 화장실 등 3곳으로 구성된 독방을 배정받았다. 일반 수감자와 완전히 분리된 별채 형식이었다. 같은 해 1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안양교도소는 노 전 대통령과 똑같은 처우를 위해 시설을 일부 개조해 6.47평 크기의 독방, 접견실, 화장실을 마련했다. 구치소·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는 혼거실 사용이 일반적이나 다른 재소자와 함께 방을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수용자는 교정 당국의 재량으로 독방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예우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향자 “이명박·박근혜, 전두환과 일본처럼 적반하장”

    양향자 “이명박·박근혜, 전두환과 일본처럼 적반하장”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8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에 비유했다.양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 역시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고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이 역사적 사실이 주는 교훈은 죄에는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며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양 최고위원은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지도 않은 것은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만행”이라며 “전두환과 일본의 만행처럼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역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 보복이라는 적반하장 태도로 잘못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고, 광주도 위안부도 세월호도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들의 반민주적, 반인간적 태도를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 최고위원은 “적반하장이라는 망발이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하려면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정의가 승리하고 진실이 역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금주 “5·18 당시 군상부가 발포 지시…기무사 문건 확인”

    손금주 “5·18 당시 군상부가 발포 지시…기무사 문건 확인”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가 자위권 차원이 아닌 군 상부의 지시로 이뤄진 정황이 담긴 기무사 비공개 문건이 나왔다.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은 16일 국방부에서 기무사의 비공개 문건을 열람한 결과 당시 시민군을 향한 발포가 자위권 차원의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아닌 군 상부의 지시였고, 진압작전에 전군이 투입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손 의원이 확인한 문건 중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작성된 505보안부대 보고서에는 2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당일 오후 7시를 기해 호남고속도로 사남터널 부근 경계병들에게 ‘전남에서 오는 폭도’들에게 즉각 발포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른 문건에는 같은 시각 2군 사령부가 전남에서 오는 폭도에 대해 발포하도록 지시하고, 병력 100명을 추가 배치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또 다른 문건에는 1980년 5월 9일 국방부가 해병 1사단 2개 연대규모의 소요 진압 부대 투입을 승인했고, 실제로 같은 달 17일 밤 해병 2개 연대가 이동해 2군사령부로 배속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손 의원은 당시 공군 전투기에 대해 광주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진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5·18 진압에 전군이 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5월 22일 전군에 내린 자위권 발동 문서도 확인됐다. 자위권은 전날 낮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한 지 만 하루 뒤에서야 발동된 것으로, 사망자가 늘자 계엄군이 집단 발포 합리화를 위해 뒤늦게 형식적 문건을 만든 것으로 손 의원은 추측했다. 비공개 문건 중에서는 자위권 발동 이튿날인 5월 23일, 군 당국이 반항하는 시민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문건도 발견됐다. 손 의원은“‘5·18 당시 발포 명령은 없었으며, 군의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다”면서 “작전일지 등에 ‘시민군’을 ‘폭도’라고 표현하는 등 당시 국민에 대한 군의 왜곡된 인식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두환, 정신 상태 온전하지 않다”…또 제기된 치매설

    “전두환, 정신 상태 온전하지 않다”…또 제기된 치매설

    복수의 제5공화국 신군부 인사 증언을 통해 전두환씨의 정신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 전 대통령은 1931년 생으로 올해 86세다.일요신문이 지난 13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전두환씨를 가까이에서 보좌해 온 민정기 전 비서관은 최근 전씨의 정신건강 이상을 일부 인정했다. 전두환씨 자택을 방문한 제5공화국 신군부 인사 2명 역시 전씨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 중 한 인사는 “전 전 대통령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 건망증으로 넘길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전 전 대통령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이 대화 도중 ‘지금은 어디 살고 있냐’고 물어봤다.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4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단순한 기억력 문제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따금 뵈러 간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적은 처음”이라며 “이런 내용을 말하기가 껄끄럽긴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을 최근에 본 신군부 사람들끼리 대화에서 치매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전두환씨의 인지장애는 2013년 7월 이른바 ‘전두환법’인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을 근거로 검찰의 전씨 자택 압수수색이 있은 뒤 한 차례 제기된 적이 있다. 전씨의 한 측근은 당시 “모든 것을 잊고 싶은지 자신의 연희동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의 치매 증상 때문에 실제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달 28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전씨의 차남 재용씨(53)는 3일 전인 2013년 7월 25일 한 법조계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아버님은 지난번 압수수색 당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금방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정신의학과 의사는 “치매의 한 형태로 보인다. 치매는 초기를 넘어서면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른다. 20분 안에 같은 질문을 4회 한 정도라면 직접 보지 않아 임상 양상으로 자세히 알긴 어렵지만 중등도 치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일요신문을 통해 “연세도 있고 해서 가까운 기억이 안 되는 등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맞다. 추가적인 부분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두환 회고록’ 재출간…문제됐던 부분 삭제

    ‘전두환 회고록’ 재출간…문제됐던 부분 삭제

    법원으로부터 출판·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은 ‘전두환 회고록’(혼돈의 시대)이 문제됐던 부분을 삭제한 채로 재출간됐다.전두환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14일 연합뉴스를 통해 “총 3권 가운데 법원의 지적을 받은 1권만 해당 부분을 삭제해 다시 출간했다”고 말했다. 출판사 자작나무숲이 전날 새로 인쇄한 회고록 1권을 보면, 책 포장지에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 내용 수정본’임을 알리는 띠지가 둘러져 있다. 책 중간중간 삭제된 부분에도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의한 삭제’라는 설명이 일일이 붙어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그간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뒤 계속 출판할지, 아니면 손해배상 소송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출판을 미룰지 검토 중이었다. 민 비서관은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출판을 미루기보다는 법원 결정에 따라 일단 문제가 된 부분만 삭제해서라도 다시 내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소송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출간된 이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법원은 지난 8월 4일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내용을 담은 회고록 출판과 배포를 금지해달라는 5·18기념재단 등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회고록은 유통이 중단된 상태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남경찰청 “5·18 계엄군 발포 전 시민 무장 기록은 조작”

    전남경찰청 “5·18 계엄군 발포 전 시민 무장 기록은 조작”

    “평화롭던 광주, 계엄군 집단 발포”신군부 “자위권 차원” 주장 거짓 시민군 교도소 습격설도 왜곡전남도경 상황일지 조작 확인5·18 당시 시민들이 총기를 탈취해 자위권 차원에서 군 발포가 이뤄졌다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보고서가 정부기관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1일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을 설명하면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30분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시민들의 첫 무기 실탄 피탈이 발생하기 30분 전인 낮 12시 59분쯤 이미 전남도청 앞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군부 측이 “시민들이 남평지서를 습격, 총기 무장해 계엄군이 방어 차원에서 공격했다”는 주장을 공식 반박한 것이다. 그동안 군 당국은 보안사가 보존 중인 ‘전남도경 상황일지’를 근거로 21일 오전 8시 나주 반남지서, 오전 9시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군이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상황일지 기록은 국회 5공 청문회 등에도 그대로 인용돼 왔으나 전남경찰청은 이 일지가 조작된 것으로 판단했다. 전남경찰청은 과거 내부 문건 작성 시 ‘전남경찰국’이라고 표기해 왔으나 이 문건은 ‘전남도경’이라고 돼 있고, 한자 역시 ‘경’(警) 대신 ‘경’(敬)으로 잘못 쓰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 경찰이 보유하지도 않은 경찰 장갑차가 피탈됐다는 내용이 있고 문서 제목과 글꼴도 경찰이 사용하던 양식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여러 차례 습격했고 북한군 수백 명이 잠입, 시위를 주도하고 사라졌다는 설도 군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했다. 전남경찰청은 이날 지난 4월부터 5개월간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근무했던 경찰관 137명의 증언도 확보했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당시 경찰 치안일지에 따르면 당시 광주 치안은 안정적이었고 경찰 요청이 아닌 군 자체 판단에 따라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부터 계엄군의 광주 진압작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강 청장은 “5·18 성격과 역사적 의미에 대한 정치적, 법률적 판단과 평가는 어느 정도 정리됐으나 민주화 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매도한 주장이 계속돼 광주시민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경찰관들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이번 조사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정국이라 계엄군의 과오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시위대와 시민의 부정적인 면은 과장, 부각되거나 왜곡돼 기록돼 있다”며 “관련 자료와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 확보해 미흡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부마항쟁 38주년] “38년 전 전기고문·옥고 아직도 생생… 민중항쟁 진상 밝혀야”

    [부마항쟁 38주년] “38년 전 전기고문·옥고 아직도 생생… 민중항쟁 진상 밝혀야”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체제에 항거하는 학생시위가 발단이 돼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항쟁이다. 당시 부산 동아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이 시위를 주도하면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항쟁 직후 10·26 사태로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12·12 사태로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뒤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유 구청장은 체포돼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그로부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지만 유 구청장에게 그때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부마항쟁 38주년이 임박한 10일 이른 아침 유 구청장은 수서고속철도(SRT)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38년 전 독재 타도를 외치다가 구속·구타·고문을 당했던 항쟁의 흔적을 반추하기 위한 그의 ‘귀향길’을 동행 취재했다. 탑승 2시간여 만에 부산역에 내리니 당시 유 구청장과 함께 시위를 주도했던 부산대 출신 신재식·김종세씨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① 들불처럼 번진 민중궐기 부산대→동아대→남포동 부영극장 앞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만 해도 잡아가던 시절이었어요. 유신 독재 시기입니다.” 유 구청장은 부마항쟁이 발발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1979년 10월 4일 당시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 사건은 유신 체제에 대한 민중 분노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 구청장은 “김 총재가 YH여성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대해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명되자 저항 분위기가 커졌다”고 떠올렸다. 16일 부산대 학생을 중심으로 시내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부마항쟁이 본격화됐다고 했다. 유 구청장은 다음날인 17일 2학년 사회계열 학생 100여명이 모인 강의실 연단으로 올라가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외쳤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강의에 들어가려다 시위대와 마주쳐 합류하거나 수업 중에 들려오는 구호 소리에 썰물처럼 강의실을 빠져나온 학생 1000여명이 운동장을 메우고 ‘독재타도’를 외쳤다. 지금 부산국제영화제 홍보 플래카드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부산 부영극장 일대는 부마항쟁 당시 16~17일 이틀간 최대 5만명의 시민들이 차도를 메우며 독재 타도를 외쳤던 곳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위가 진압당하자 이곳 중심가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유 구청장은 “시위는 학생들이 선도했을지 몰라도 4·19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호응으로 민중항쟁 성격을 띠면서 도심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회고했다. 시위에는 노동자, 도시빈민 등이 대거 가세해 민중궐기로 발전했고 지역도 동구, 서구까지 확산했다.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전역에 계엄령이 발동됐지만 항쟁의 불길은 인근 마산·창원 일대로 옮겨붙어 20일까지 이어졌다.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부마항쟁으로 공식 체포된 사람은 1563명이다.② 각목·구둣발 매질… 쉼없이 당한 고문 부산지구 보안대(현 부산지방병무청)→부산 헌병대(현 송상현 장군 공원)→부산 학장교도소 “여기서 우리가 안 죽고 살아남았구나.” 부산지방병무청을 찾은 유 구청장 일행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지금은 입대를 앞둔 남성들이 찾는 곳이지만 과거에는 시위하던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하던 부산지구 보안대 자리였다고 한다. 부마항쟁 이후 10·26 사태로 독재 권력이 막을 내리는 듯했지만 12·12사태로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려졌고,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면서 곳곳에서 일어나던 시위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여파로 부마항쟁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유 구청장은 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 구금하는 예비검속에 걸려 같은 달 28일 피신해 있던 서울 아현동 친구 집에서 체포돼 부산지구 보안대로 압송됐다. 유 구청장은 당시 영장도 없이 구속돼 피비린내 나는 부산지구 보안대에서 36일간 두들겨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관들이 ‘너 임마 김대중한테 얼마 받고 데모했어?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 주지만 거짓말하면 광주에서처럼 전라도 새끼들은 씨를 말려야 돼’라고 협박했다”고 회고했다. 유 구청장은 전남 나주 출신이다. 전기고문은 기본이고 수갑을 찬 채로 각목과 구둣발 매질을 쉼 없이 당하며 김대중과의 연관성을 자백하라는 강요를 당했다. 유 구청장 일행은 지금은 송상현 장군 공원이 들어선 부산 제15헌병대로 이첩돼 한 달여간 삼청교육을 받았다. 이곳은 신재식·김종세씨 등을 포함해 총 8명의 부마항쟁 시위 주도 학생이 함께 수감됐던 곳이다. 헌병대에서는 사회정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과가 있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금한 뒤 삼청교육을 시켰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모래주머니를 차고 구보와 각개전투를 하고 전봇대만 한 기둥을 어깨에 메고 올렸다 내렸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봉체조를 주로 했다. 유 구청장은 “30~40명을 수용하는 헌병대 영창에 100명 넘게 가뒀으니 짐승 우리와 다름없는 지옥이었다”며 당시의 참상을 회고했다. 유 구청장은 다시 부산 사상구 학장교도소로 이감된 뒤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4개월 만에 석방됐다.③ 부산 시민의 민주희생정신을 기리다 부산민주공원 유 구청장은 이날 마지막 코스로 부산 중앙공원 안에 조성된 ‘부산민주공원’을 찾았다. 1999년 부마항쟁 20주년을 맞아 4·19 혁명, 부마항쟁,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부산 시민의 민주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주도로 건립된 곳이다. 당시 공원 건립을 위해 송기인 신부가 재야 대표로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간사 역할을 했다. 유 구청장은 “부마항쟁은 유신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이었지만 정작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항쟁이 난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시국에 대한 반감으로 참여한 자발적인 시위로 파악해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끈 결정적인 계기였지만 전두환 시대로 이어지면서 독재 체제의 종결을 가져오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부마항쟁 진상 규명도 과제로 남아 있다. 2010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 부마항쟁 기간 중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한 바 있지만 부마항쟁 전체의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어 2013년 5월 부마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법에 따라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가 뉴라이트 계열과 친박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객관적인 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에 몸을 실으면서 유 구청장은 힘주어 말했다. “부마항쟁은 유신 독재 체제를 붕괴시킨 민중항쟁입니다. 1960년 4·19 혁명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기를 되살려 1980년대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민주항쟁을 이끌어 낸 대중 궐기인 만큼 제대로 평가해 주면 좋겠습니다. 피해를 감수하고도 앞장선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것 아니겠습니까.” 글 사진 부산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16일 박근혜 구속 만기…10일 재판서 구속 연장·석방 판가름 전망

    16일 박근혜 구속 만기…10일 재판서 구속 연장·석방 판가름 전망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또는 석방 여부가 이르면 오는 10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9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10일 속행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구속 연장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측의 의견을 듣는다. 형사소송법상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 기간은 16일 24시까지다. 구속이 연장되지 않으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재판에서 법원에 구속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구속 당시 적용되지 않았지만 기소 단계에서 추가된 롯데와 SK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부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 70조는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타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구속할 수 있도록 한다.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는 범죄의 중대성,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도록 한다.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의 중대성과 재판의 신속한 심리를 위해 구속 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될 경우 건강 문제나 변론 준비 등을 이유로 재판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박 전 대통령은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지난 7월 3차례나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가 일주일 만에 법정에 출석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건강상 이유를 들면 강제로 출석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고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구속 연장이 이례적이기는 하나 중요 사건에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영장을 발부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비자금 및 12·12,5·18 사건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도 1심 도중 재판부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마친 전례가 있다. 전 전 대통령에게는 12·12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이후 기소 단계에서 추가된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으로 법원이 직권으로 구속을 연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돼 기소 단계에서 12·12과 5·18사건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 해당 혐의 구속영장이 다시 발부됐다. 현재 국정농단 사건에선 박 전 대통령과 공범으로 기소된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차은택 전 광고감독 등에게 모두 구속영장이 추가 발부돼 구속이 연장된 상태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경우 재판이 마무리 단계이지만 박 전 대통령 심리가 끝나야 이들의 선고도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구속 연장을 할 근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검찰이 추가 영장 발부를 요청한 롯데나 SK 뇌물 혐의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아 영장을 발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재판부에 롯데와 SK 뇌물 사건에 대한 280쪽 분량의 의견서도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의 공모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나 SK 뇌물 사건의 경우 중요 심리가 마무리돼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도망 염려도 없다는 게 변호인들 주장이다. 변호인 측은 건강 문제와 관련해선 박 전 대통령이 수감 중에 두 차례 받은 외부 진료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순실씨 측 변호인도 최근 재판부에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하고 최씨 재판을 분리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최씨 사건 심리는 마무리 단계인 만큼 최씨 구속 만기인 11월 19일 이전에 따로 선고해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듣고 이번 주 중 구속 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석방 여부와 함께 선고 시기에도 관심이 쏠린다. 오는 10월 27일은 지난해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지 1년째가 된다. 이날은 지난해 약 3만명이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집회를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구속 기간은 최장 6개월 더 연장된다. 다만 검찰은 가급적 11월 초·중순까지는 증인 신문을 끝내겠다는 입장이라 재판에 속도가 붙으면 박 전 대통령 사건 선고는 연내에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통금 단속 풍경/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통금 단속 풍경/손성진 논설주간

    통행금지는 남북 대치 시대의 산물이다. 1945년 미군정기에 하지 중장의 군정포고 1호가 통금이었다. 통금 시간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였다. 통금은 치안 유지에는 효과를 발휘했다. 어둠을 틈탄 ‘밤손님’들의 활동을 억제했다. 그러나 분명한 자유의 제한이었다. 특히 주당들이 문제였다. 술을 마시면서도 시계를 수시로 봐야 했고 통금이 가까워지면 술을 입으로 털어 넣다시피 하고는 허둥지둥 집으로 향했다. 통금 해제는 국민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날, 대통령의 생일, 제야의 밤 등 1년에 몇 번만 사람들은 심야의 자유를 즐길 수 있었다. ‘밤의 족쇄’는 1982년 1월 6일 0시를 기해 37년 만에야 풀렸다. 전두환 정권의 자유화 조치의 하나였다.통금에 얽힌 사연은 많다. 늘 과잉 단속이 문제가 됐다. 열차가 연착해서 통금에 걸린 경우만큼 억울한 일도 없었다. 서울역에 밤 11시 45분에 도착한 청소년들이 무더기로 통금으로 즉심에 넘겨졌다. 자정쯤 집에 침입해 현금을 훔쳐 달아나던 남성 2명이 심야에 도둑을 쫓다 도리어 통금에 걸려 경찰에 연행되고 도둑은 달아나는, 말도 안 되는 일도 있었다. 이때는 1·21 사태 직후여서 마구잡이로 연행한 것으로 보인다(1968년 3월 5일자 경향신문). 자정 직전에 풀려난 미결수들이 집으로 가다 통금에 걸려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 서대문에 있던 서울구치소 측은 검사의 석방지휘서가 늦게 도착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곤 했다. 통금 시간이 되면 택시도 과속하기 마련이다. 통금에 쫓긴 택시가 고가도로 위를 달리다 아래로 추락하는 일도 잦았다. 과속 택시가 인명 사고를 내고 도주하는 뺑소니 사건도 흔했다. 통금 위반자들은 경찰서 보호실에 수용됐는데 집중단속을 할 때면 보호실은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해 인권 문제가 불거졌다. 통금이 임박한 시간에 버스가 만원이 돼 무정차로 통과해 버리면 외곽으로 가야 하는 시민들은 발을 묶이게 마련이다. 여관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경찰에 항의해 한밤에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특히 눈이 많이 와 교통이 마비되는 겨울이면 귀가는 전쟁과도 같았다. 큰 눈이 내린 1970년 12월 1일 새벽에 도심에서 버스를 못 잡아 통금에 걸린 시민은 무려 1만명이었으나 경찰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배우 고 박노식씨는 4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통금에 걸렸는데 “내가 박노식이다”라며 도주하다 전복 사고를 내기도 했다. 바다를 통한 간첩 침투가 잦아지자 정부는 1969년 7월부터 해상통금도 실시했다. 통금 시간에 운행하는 선박은 무조건 격침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사진은 통금 해제 첫날 밤 풍경을 전한 1982년 1월 6일자 동아일보.
  • 너도나도 “가자 청와대로~!”… 청원게시판으로 본 대한민국

    너도나도 “가자 청와대로~!”… 청원게시판으로 본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노력을 하겠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정부 출범 100일 기념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당부하며 자신도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는 이 시기에 맞춰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도 개설했다. 국민들은 새 정부의 소통을 바라며 사회 주요 사안은 물론 때로는 시시콜콜한 일까지 청원 게시판에 올리며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펴봤다. ● 소년법 폐지와 부산 개성중 살인사건 재수사6일 현재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청원 운동은 ‘소년법 폐지’ 요구다. 청원인은 지난달 초 부산의 한 여중생이 또래 아이들로부터 잔혹하게 집단폭행 당한 사건이 알려지자 이를 계기로 “청소년이란 이유로 보호법을 악용하는 잔인무도한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드시 청소년 보호법은 폐지해야 합니다”라며 청원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청소년 보호법’ 폐지라고 썼지만, 이는 청소년의 범행은 성인보다 처벌 수위를 낮춘 ‘소년법’을 잘못 쓴 것으로 이후 수정된 청원이 다시 올라왔다. 이 청원 글은 앞서 인천에서 발생한 17세 소녀의 초등생 살인사건과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강릉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등과 맞물리면서 28만 1000명 이상 동참하고 있다.사건 발생 12년이나 지난 ‘부산 개성중학교 살인사건’도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2005년 10월 1일 부산 개성중학교 재학생 홍성인군은 교실에서 같은 반 동급생 최모군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최군은 소위 학교 ‘짱’으로 통했으며, 함께 딱밤 때리기 장난을 하던 중 성인이가 욕설을 했다는 게 폭행의 이유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군은 의자까지 이용해 성인이를 때렸고, 성인이는 폐의 3분의 2 정도가 파열되며 결국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최군은 개인 홈페이지 등에 “살인도 좋은 경험^^ 덕분에 인간은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어~ 어차피 난 법적으론 살인이 아니니~”라는 글을 올려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구는 지난달 13일 숨진 홍군의 아버지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사건 이후의 근황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홍씨는 아들 사망 충격으로 뇌경색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고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심한 우울증으로 혼자 외출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가해자 최군은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고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닌 뒤 명문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부산 개성중학교 살인사건 재조사를 촉구 드립니다’라는 글 외에도 해당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 자유한국당 해산 심판 청구에도 참여 줄이어9월 11일에는 ‘자유한국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요구합니다’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이 글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민의를 배반하며 적폐세력과 결탁하는 등 반민주적 행위로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며,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위헌정당’이라며 해산을 청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 결정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결정문도 언급했다.청구인은 이어 “우리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중 어느 하나라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다면 해산할 수 있다’라는 판례를 가지고 있다”라면서 “친일세력인 이승만의 자유당을 뿌리로 하는 자유한국당은 유신 독재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쳐 현재 뇌물혐의로 구속 수감된 박근혜로 이어지는 반민주주의 적폐 정당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청원 글은 2만명 이상 동참하며 청와대 청원게시판 전체 목록 가운데 5번째로 참여자가 많다. ● 여성의 국방의무 목소리부터 히딩크 선임 요구까지소년법 폐지 요구 다음으로 참여인원이 많은 청원 운동은 여성에게도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다. 지난 8월 30일 청원이 시작돼 지난달 14일까지 12만 3204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이 글을 통해 “남성만의 실질적 독박 국방의무 이행에서 벗어나 여성도 의무 이행에 동참하도록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해당 청원 글을 거론하며 “답변 기준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지난 8~9월 대한민국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생리대 파동’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랐다. 한 청원인은 생리대 파동을 언급하며 “생리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라며 “발암물질이 검출된 생리대들을 전량 회수하고 더 이상 여성들이 생리대를 사용하며 건강에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대한을 마련해 적극적인 후속 조치를 취해줄 것을 청원합니다”라고 썼다. 이 밖에 청원게시판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지하철 남성 전용칸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 “거스 히딩크 감독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 달라”는 요구 등 다양한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림사건 변호인 노무현과 문재인, 공안검사 고영주의 악연

    부림사건 변호인 노무현과 문재인, 공안검사 고영주의 악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림사건’ 변론 과정을 그린 영화 ‘변호인’이 추석특집영화로 방영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생애와 부림사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JTBC의 변호인 방영이 끝난 직후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상위권에는 노무현, 변호인, 부림사건 등이 올라와 이런 열기를 반영했다.화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1년 부산에서 발생한 부림사건 당시 억압받는 국민을 위해 헌신한 모습을 그렸다.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이 부산에서 꾸며낸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당시 공안당국은 부산 지역 양서협동조합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했다.당시 이 사건은 뒷날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 최병국 검사가 지휘했고, 현재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영주 검사가 수사 검사로 참여했다. 당시 부산에서 잘 나가던 노무현 변호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고, 수사 검사 고영주 이사장과는 아직도 악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이사장은 과거부터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지칭해왔고, 현재는 문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고 이사장은 지난 8월 법정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가 맞다”고 진술해 논란이 일었다. 고 이사장은 2014년 한 언론인터뷰에서는 이미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부림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의식화 교육이 명백하다”고 주장했고, 국정감사장 등에서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썰전’ 유시민 “10년 만에 대통령 선물 받아…김영란법 의식했나”

    ‘썰전’ 유시민 “10년 만에 대통령 선물 받아…김영란법 의식했나”

    참여정부 장관 출신인 유시민 작가가 10년 만에 대통령 선물을 받았다고 밝혔다.5일 방송되는 JTBC ‘썰전’에서는 청와대의 추석맞이 선물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될 예정이다. 진행자 김구라는 최근 녹화에서 “청와대가 추석 선물을 각계각층에 보냈다”고 소개하며 “7000여 분 정도가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는데 박근혜,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포함이 안 됐다”고 말했다. 이에 유시민 작가는 “나는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하며 “(선물은) 5대 권역으로 나눠서 농산물을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유시민 작가는 이어 “아마 김영란법을 의식해서인지 (농산물) 양이 적더라”고 덧붙였다. JTBC ‘썰전’은 오후 11시 20분 방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직 멸치’ 김영삼, ‘미운털’엔 안 보낸 박근혜...대통령의 추석 선물

    ‘오직 멸치’ 김영삼, ‘미운털’엔 안 보낸 박근혜...대통령의 추석 선물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기기 마련이다. 설령 의도한 바가 없는 언행이더라도 정치권은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 또한 마찬가지다. 역대 대통령들도 이를 의식한 듯 선물에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각계에 전해왔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대통령의 ‘선물 정치’를 되돌아봤다. ● ‘김영란법’ 농가 배려…전국 농산물세트 택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맞는 추석을 맞아 각 지역 특산물을 담은 농산물 선물 세트를 준비했다. 선물은 경기 이천 햅쌀·강원 평창 잣·경북 예천 참깨·충북 영동 피호두·전남 진도 흑미 등 다섯 종으로 구성됐다.이는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등 지역을 안배한 것으로, 청와대 관계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타격을 입은 농가를 생각해서 고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추석 선물은 전직 대통령과 5부 요인, 정계 원로와 차관급 이상 정부 고위공직자 등은 물론 미혼모 가정 등 사회 소외 계층에도 전달됐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포함됐다.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내란죄 등 확정 판결로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전두환·노태우씨에게는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 ‘미운털’ 의원엔 배달 취소…논란 부른 박근혜 전 대통령국정농단 사태로 구치소에서 추석을 맞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추석 선물 전달 과정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해마다 추석이면 지역별 농산물 선물세트를 국회의원들과 국가유공자, 사회 배려계층 등에 보냈다. 2013년 추석 때 육포·찹쌀·잣 세트를 선물했고, 2014년에는 육포·대추·잣 세트를 선물했다.박 전 대통령은 2015년과 2016년에도 우리 농산물 세트를 선물했는데, 2016년에는 ‘선물 해프닝’도 일었다. 당시 청와대가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추석 선물을 보낸 가운데,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선물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운털’에 보내는 견제 메시지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조 의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며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고, 민주당으로 입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 의원은 추석 선물 수취 여부에 대한 언론사의 문의에 아직 도착한 선물이 없어 “받은 게 없다”라고 답했고, 조 의원만 대통령 선물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청와대 측은 “일부 배달이 늦어진 것인데, 조 의원이 자신에게만 대통령 선물이 배달되지 않은 것처럼 공론화했다”며 아예 선물 배달을 취소했다. ● 전통주 배제…기독교인 색채 반영한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도 추석 선물로 가장 무난한 우리 농산물 세트를 선호했다. 다만 추석 선물에 지역별 전통주를 늘 포함했던 전임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선물에서 술은 제외하며 기독교인의 면모를 드러냈다.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추석에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 대추, 전북 부안 재래김, 경남 통영 멸치를 선물로 준비했는데 당시 황태가 러시아산이라는 지적도 일었다. 덕장은 강원도 인제였지만 원재료는 러시아산이었기 때문이다. 또 황태와 멸치가 담긴 선물세트를 불교계 인사들에게 보낼 계획이었지만 발송 직전 청와대 내부에서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황급히 차·다기 세트로 교체했다.  ● 지역 통합형 선물의 시초, 노무현 전 대통령 지금은 대통령의 명절 선물로 자리 잡은 ‘지역 통합형 선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 인생을 통틀어 기성 권위주의와 싸웠던 노 전 대통령은 원래 명절 선물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 보내기 역시 낡은 정치문화로 봤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문제로 당시 여당과도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 한발 물러서며 취임 후 첫 추석 선물로 지리산 복분자주와 경남 합천 한과를 준비했다. 당시 청와대 측은 “호남과 영남 특산품을 합친 국민통합형 선물”이라고 설명했다.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추석에는 한산 소곡주, 2005년 김포 문배주, 2007년 전주 이강주 등 전국 각지 민속주와 함께 지역 특산물을 선물했다. 이 밖에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두 명절 선물에 출신 지역을 반영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뿐만 아니라 정계 입문 이후부터 주변에 멸치만 선물해 해당 멸치에는 ‘YS멸치’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이 멸치는 김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이 고향 거제도에서 잡은 멸치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전남 신안군 하의도가 고향인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명절이면 신안산 김과 한과, 녹차 등을 선물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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