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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臺北시장·입법위원 선거/臺灣 집권 국민당 대승

    ◎경기침체·중 군사위협으로 유권자 안정 선택 【타이베이 AP AFP 연합】 타이완(臺灣)의 집권 국민당이 5일 실시된 수도 타이베이(臺北)시장 선거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승했다.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는 6일 개표가 완료된 타이베이시장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진당의 현 시장 천수이비안(陳水扁)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승리했다.타이베이시장은 총통에 이은 제2의 실력자로,마 당선자는 2000년 3월 실시되는 총통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국민당은 함께 실시된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민진당과 신당 등 야당들을 이겼다.이로써 득표율에 따라 할당되는 의석까지 포함해 225석 중 124석을 차지,안정된 과반의석을 확보했다.지금까지는 157석 중 80석에 불과해 아슬아슬하게 과반수를 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타이완의 경제침체로 유권자들이 안정쪽으로 돌아서 국민당이 승리했다고 분석했다.국립 타이완대 정치학과 리시군 교수는 “타이완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하려는 중국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유권자들이독립을 표방하는 민진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이 국민당을 지원했다는 분석이 있다.국민당이 중국 공산당의 오랜 앙숙이지만 잘 파악하고 있는 데다 통일을 지향하고 있어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중국이 지원했다는 주장이다. 침체 기미를 보이는 경제도 ‘원군’으로 작용했다.최근 수출감소,실업률 증가,성장률 둔화 등 경기후퇴 조짐들이 뚜렷하게 나타나 98년 경제성장률을 당초 5.5%에서 5.1%로 낮춰 잡은 와중에 정국불안이 이어지면 경기침체는 더욱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국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총통 후보로 부상한 마 당선자는 후난(湖南)성 태생의 외성인(대륙 출신)이어서 내성인(타이완 출신)들과 조화를 이룰지 의문인 데다 대권 후보에 마 당선자가 가세함으로써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후원하는 롄잔(連戰) 전 행정원장과의 일전도 불가피해 내홍(內訌)이 일어날 공산도 있다.
  • 새해 화폐통합(달려오는 ‘유럽합중국’:上)

    ◎유로화 탄생 ‘20세기 최대 경제사건’ 【브뤼셀·프랑크푸르트 김수정 특파원】 유럽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유럽통합’을 향한 장대한 행진을 해온 유럽연합(EU)은 바야흐로 세계중심에 다시 설 수 있는 디딤돌을 갖게 됐다.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됐던 ‘화폐통합’은 이제 4주 후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유럽단일통화 유로화의 출범은 ‘유럽 합중국’ 실현의 기폭제.유럽은 하나의 경제권을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사를 유럽으로 옮겨놓으려 하고 있다.유로화 탄생의 의미를 살펴보고 유럽 정치권과 사회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통합현장을 찾아 ‘노(老)대륙’에서 ‘신(新)대륙’으로 거듭나려는 유럽을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의미와 전망/달러 대항 제2의 기축통화 역할 ‘E­데이’가 다가온다. 유럽연합(EU)집행위 본부,유럽의회 등이 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고풍스런 분위기가 매력인 이 도시는 유럽단일통화인 유로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가득찬 느낌이다.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과 시가지 전체를 수놓은 파란색 유럽연합 엠블렘의 강렬한 대조,세계 각지에서 몰려 든 언론인,기업 참관단의 분주한 움직임은 대규모 축하 행사장을 방불케 한다.이미 브뤼셀 시내의 호텔과 레스토랑은 벨기에프랑화와 유로화로 가격을 표시하고 있다. 유로화의 탄생은 유럽통화동맹(EMU)에 가입한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핀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11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유로화 출범이 갖는 막대한 국제경제적 파급효과 때문이다.‘20세기 최대의 경제사건’으로 부르는 유로시대는 내년 1월1일,정확히 새해 연휴가 끝나는 1월4일 막을 올린다. 유로 단일통화권,‘유로존’ 출범은 세계 제1의 기축통화 달러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기축통화가 탄생함을 의미한다.11개 가입국가의 총 인구는 2억9,000만명으로 미국을 능가한다.국내총생산(GDP)합산액은 6조5,000억달러.미국의 8조1,000억달러보다 적지만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로 17%인 미국보다 높다.유로화로 전환될 전세계 자금 추정액은 7,000억달러선. 그러나 유로화의 성공에는 금융 외환부문의 경쟁력을 확보,유동성과 안전성을 구비해야 한다는 단서가 뒤따른다.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유로화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밝혔다.독일 도이치뱅크가 국제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가 오는 2003년에 제2의 기축통화 역할을 할 것으로 낙관했다. 독일 유럽통합연구센터(ZEI)의 버나드 하요박사는 그러나 유로가 달러를 능가하진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달러의 세계 지배 뒤에는 정치·안보논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가입 4개국 행보/영,가입여론 확산… 1년내 참여할듯 “조만간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할 겁니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나머지 유럽국가들이 모두 유로를 쓰는데 우리만 파운드를 고집해서 이득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거래선과 회의을 위해 독일 프랑크 푸르트를 방문했다는 영국의 중소 철강업체 알펙스사 중역 프라샨트 코퀘일씨는 영국이 1년안에는 유로존에 가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영국은 지난 5월 브뤼셀에서 열린 EU정상회담에서 덴마크 스웨덴과 함께 유로존 불참을 통보했다.그리스는 가입을 원했으나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근거한 예산 적자및 정부 부채 비율 등 자격요건 미달로 가입하지 못했다. 영국 등이 가입하지 않은 까닭은 상이한 경제여건을 갖춘 나라가 하나의 경제통화 정책을 실시할 경우 파탄으로 치달을게 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통화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도 강했다. 그러나 최근 영국의 분위기는 유로 가입쪽으로 기울었다.여론조사는 전국민의 3분의 2이상이 유로가입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기업들의 유로가입 의지는 더 확고하다.영국 주요 기업들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유로가입을 희망하는 전면광고를 내기도 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내년 1월 유로가입을 결정할 국민투표에 관한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로가입 희망은 자칫하다간 런던이 지난 수세기 동안 지켜온 유럽 금융중심지역할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내줄 수 있다는 경계심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일정과 화폐종류/3년간 가상 통용… 2002년 사용의무화 ●99년 1월1일 11개 가입국 외환시장에서 유로로 거래가 시작된다.그러나 향후 3년동안 유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화폐.‘사이버’ 유로로 부른다.신용결제 및 국가간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이용된다.2002년까지는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한 계도기간.모든 국채와 투자는 자국 통화와 함께 유로로 표기되며 유럽중앙은행 은 공채와 통화운용을 유로로 하게된다. ●1999년 후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이외 지역과 통화및 교환비율을 정한다.국가간 유로로 채권거래를 시작하는 것도 이때 부터다. ●2002년 1월 유로 지폐와 동전이 본격적으로 원래 통화와 교환돼 유통된다.7월까지 회원국들은 자국통화를 유로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지폐 7·동전 8가지 ▷유로화◁ 지폐는 5 10 20 50 100 200 500 유로까지 모두 7종.동전은 1,2,5,10,20,50센트와 1유로 2유로 등 8가지.지폐는 유로권 전체가 같은 디자인이다.동전의 경우 한 면은 각 국가별로 특징을 넣어 다른 모양으로 주조된다. EU집행위 통화정책실은 500억장의 지폐와 600억 개의동전이 발행될 것으로 추정했다. 1유로는 6.6프랑스 프랑, 14오스트리아 실링,2 독일 마르크, 1.1달러로 교환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역할/통화량·금리 등 주요 정책 결정 유로 출범 전날인 12월31일 하오 11시30분.세계의 이목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가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에 집중된다.바로 이 시간 빔 두이젠베르크 총재가 유로와 가입국가들의 통화,달러와의 교환비율,유로존의 금리를 확정 고시한다. 이처럼 ECB는 유로화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유럽통화동맹의 ‘두뇌’다.최고의결기구인 의사결정회의(Governing Council)는 집행위원회(Executive Board)임원 전원과 유로 가입국 중앙은행 총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집행위원회는 8년임기의 총재와 부총재,4명의 이사로 짜여져 전 유로지역의 통화정책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이 지역의 통화량 총계와 인플레 변화율을 근거로 금리등 주요 정책사항을 결정한다.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주도권을 잡기 위한 회원국들간 물밑작전도 치열하다.지난 5월 초대 총재 선거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독일의 실세 오스카 라퐁텐 재무장관이 차기 후보로 거명될 정도다. ◎어떤일 생길까/상품값 투명화/인수·합병 활발/돈세탁·위조 등 범죄기승 우려 포르투갈 시골의 마을.은행원을 가장한 한 남자가 할머니에게 말한다. “에스쿠도스(포르투갈 화폐)는 이제 쓸모가 없어요.유로로 바꿔야해요” 내년 1월 이후,3년간 유로가 가상화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사기범죄다. 유로시대의 시작은 유럽 사람들과 기업들에게 전혀 새로운 경제활동의 지평을 제시한다.나라마다 표시가 달랐던 상품의 가격이 유로로 통일됨으로써 가격은 투명해진다. 소비자들은 싸고 질좋은 상품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 것이다.국제거래에서 환차손도 사라진다. 그만큼 이 지역의 상품은 가격경쟁력을 얻게되고 달러에 집착하던 자본은 유로에 찾게된다.기업들은 더 쉽게 조달할 수 있으며 무한경쟁속에 기업간 살벌한 인수 합병이 시작된다. 여기서 살아남는 기업은 최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탄생할 것이다.프랑스의 유통업체 카르푸의 공격적 확장에 유럽의 소형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독일 지멘스 등 유럽의 대형 기업들이 수년전부터 유로화 대비태세를 끝낸 것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최근엔 유럽 자동판매기 협회와 신용카드업협회 등 전문·소형 업체들도 막바지 준비에 부산하다. 한편 돈세탁을 원하는 마약 등 범죄조직에게 유로권은 파라다이스와도 같다.위조지폐에 대한 우려도 높다.동일 화폐가 각 나라에서 제조되기 때문에 특별한 보안 장치가 요구된다. 유로지폐에 익숙치 않은 노인들의 경우 위조범들이 노리는 범죄대상이라고 언론들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 새 통합방송법에 거는 기대/柳一相 건국대 교수(대한광장)

    국민회의가 통합방송법의 국회상정을 보류하였다.이 결정은 방송법 논의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국민에게 정보문화복지의 혜택을 균등하게 보장할 수 있는 토론의 마당을 새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하다.야당시절에 국민회의는 정부·여당의 방송장악과 정치적 악용으로 지금까지 많은 손해를 봤기 때문에 피해의식이 깔린 통합방송법안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문화환경 고려를 돌이켜 보면 한국방송은 일제하 탄생초기부터 줄곧 정치적 지배집단의 선전도구로 봉사해왔고 사람들의 사회의식 발전을 잠재우는 프로그램들을 띄워 오락의 진정한 의미를 흐려놓았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방송법제들은 또 한국사회의 특수한 문화적 토양을 도외시하고 세계의 보편적인 과학기술 수준을 무시한 채 선진국 여러나라의 방송법제들을 짜깁기하여 정권의 이익과 그에 협조한 상업세력들을 위한 보상만을 염두에 둔 절충식 방송제도의 틀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제정되기 무섭게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기를 거듭했다. 이제 우리 방송은21세기 정보문화산업의 핵으로서 인쇄매체와 전자매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온라인(on­line) 저널리즘이 기성언론과 통합해가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필자가 미국 오리건에서 인터넷을 통해 시내전화요금만 내고도 한국의 신문은 물론,텔레비전까지 큰 불편없이 시청하고 있듯이 전자기술 발달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의 방송법제도 방송권력문제에 집착하거나 방송정보의 내용규제에 과녁을 맞추기보다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꿰뚫는 방송체제의 구조분석에 따라 ‘세계를 주목하면서 국내 각 지방들을 공평하게 연결하는’ 21세기형 방송제도의 골격을 마련해줘야 한다.새로 시작될 통합방송법 제정 논의에 부쳐야 할 이슈들을 열거해 본다. ○국리민복 증진에 기여토록 첫째,공중파방송의 디지털화에 따라 현재의 방송이 다른 매체와 충분한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둘째,케이블 TV와 위성방송은 방송내용 자체보다 정보통신의 하부기술구조(인프라)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통합방송법에서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언론매체간의 상호 겸영을 금지하는 집중배제원칙을 완화하고 이종(異種) 미디어의 방송시장 진입을 허용하면서도 언론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포함시켜야 한다. 넷째,종합방송중심의 사고를 전환하여 전문방송의 출현을 돕고 위성이나 케이블 방송사업자가 난청지역 해소를 위해 맡아야 할 공공적인 사명도 규정해야 한다. 다섯째,법기술적인 측면에서 헌법상의 기본권과 관련된 법제인 만큼 시행령에의 위임을 크게 줄이되 방송사업의 기능분화에 따른 방송체제의 구조조정문제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주어야 한다. 21세기까지는 시간이 매우 촉박하지만 국민의 정부는 속히 소집단적인 윤리감정에 집착하는 논변엔 개의하지 말고 변화하는 미디어환경 아래 보편적인 국리민복을 증진할 수 있는 제도틀을 조속히 만들 의무가 있다.89년 4월 구성된 방송제도연구위원회의 소수안은 90년대 방송을 위해서는 좋은 견해였으나 그간의 획기적인 기술발전으로 이제는 낡은 제안이라고 판단된다.새로운 세기를 맞을 선진적인 방송법제의 그림을 어서 빨리 보고 싶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공식 첫 출항 전날 이모저모

    ◎“월남 50년만에 북한땅 간다” 흥분/100발의 폭죽속 전야제 성황/갑작스런 한파에 포기자 생겨 금강산 관광선 첫 공식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관광객들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16일 저녁 외출과 휴식 등으로 시험운항의 피로를 씻은 뒤 17일 오전부터 배에서 먹고 쓸 음식 및 물품을 싣고 객실을 정리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梁在元 선장(40)은 “첫 출항을 위한 준비는 시험운항을 통해 이미 완벽하게 끝났다”면서 “고객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한 객실 서비스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관광객들은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린 뱃길을 통해 금강산에 가는 역사적 순간의 주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高在鳴씨(67·강원도 춘천시 근화동)는 “월남한 지 50년 만에 다시 북한땅을 밟는다는 생각을 하면 그동안 기다렸던 세월이 아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관광객 중에는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 때문에 막판에 금강산관광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고있다. 고향인 평북 선천에 부모와 아들을 남기고 온 金동선씨(76·경기도 평택시)는 “혹시 가족의 안부를 들을 수 있을까 금강산행을 손꼽아 기다려 왔지만 다리가 불편한 데다 날씨마저 추워 내년 봄에 가기로 했다”며 아쉬워했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延정숙씨(80·여)도 추운 날씨에 방한복을 입고 산을 오를 자신이 없어 다음으로 연기했다. ●금강산관광이 지역경제 회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동해시는 관광선 출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들뜬 분위기였다. 관광선 취항이 결정된 직후부터 금강산사업지원단을 구성,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동해시 洪璟杓 부시장(59)은 “동해시가 세계적 관광도시로 주목받게 됐다”면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출항 하루 전인 17일 동해항 여객터미널 옆에 대형 무대를 설치,전야제 행사를 가졌다. 전야제에는 가수 조용필 김건모 윤복희 태사자 NRG 현철 설운도,성악가 최현수 김원정,재즈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어린 나이에 흥부가를 완창(完唱)해국악계를 놀라게 했던 국악신동 유태평양군 등이 출연했다. 100발의 폭죽이 터져 분위기를 고조시킨 데 이어 금강호가 불을 밝히는 것으로 행사는 끝났다. ◎통화 어떤 경로/평양­인텔샛­도쿄 거쳐 서울로 “아범아,여기는 금강산이란다” 금강산 관광객은 18일부터 금강호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어렵게나마 국내 가족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북한측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선실 내에 국제전화용 전용회선 4개를 확보,공중전화를 설치한다.배에 인공위성을 통해 무선 통화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이 있지만 북한측의 불허로 무용지물 상태다. 통화는 일반 국제전화(082)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이뤄진다. 이미 가설된 평양과 금강산 온정리 사이의 전화케이블을 이용한다.평양에서는 위성 인텔샛을 통해 일본 동경으로 연결된다. 여기에다 현대 기술진은 북한측의 협조를 얻어 온정리에서 장전항까지 7㎞에 걸쳐 케이블을 연결했다.그러나 부두에 정박한 금강호에까지 케이블을 연결할 수 없는 실정.따라서 장전항 인근에 특별히 전파를 쏠 송신장치(SR장비)를 설치했다. 현대는 당초 6회선을 확보했으나 두 회선은 현대 공사진과 합영사의 전용회선이어서 금강호가 사용할 수 있는 회선은 4개에 그친다.금강호에는 이를 이용한 카드식 공중전화 4대가 설치된다. 목소리가 금강호에서 장전항∼온정리∼평양∼위성∼일본 동경을 거쳐 즉시 서울(또는 지방)로 생생히 전달된다. 보도진의 기사전송과 육성 생방송도 마찬가지다. 전화요금은 비싼 편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걸때는 1분 통화에 무려 3.79달러로 이를 환산하면 4,927원이나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걸때는 1분에 1,428원이 든다. ◎관광 성사까지/본지 첫 보도… 3차례 위기 끝에 결실 금강산 관광의 꽃을 피우기 위해 현대그룹 鄭夢憲 회장은 9개월간 산고의 아픔을 겪었는지 모른다.鄭周永 명예회장에게는 지난 89년 이후 9년여만에 성사시킨 필생의 사업이다. 금강산 관광은 대한매일이 지난 5월 중순 보도한 ‘올 가을 금강산 유람선 뜬다’는 제하의 상자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지난 89년 1월 鄭 명예회장이 처음 북한을 방문할 당시 움을 틔운 금강산관광은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경색으로 인해 잊혀져 왔다.그러던 참에 鄭회장이 올 2월14일 극비리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북한측 아태평화위 고위관계자를 만나고서부터 금강산관광의 줄기가 잡혔다.북한이 지난해 연말 은근히 현대측에 사업의 재개를 타진해 온 터였다.3월에는 북한과의 화물열차 공동생산이 이뤄졌고,4월에는 金潤圭 현대건설 부사장의 북한 방문이 이뤄졌다.마침내 鄭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이 6월16일 이뤄졌다.그것도 금세기 마지막 장관이 된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첫 시련이 찾아왔다.鄭 명예회장 귀환 하루 전날인 6월22일 동해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됐다.한달 가까이 현대와 북한의 고위급 접촉 루트가 끊기면서 간간이 베이징에서 실무접촉만이 이어졌다.현대 고위인사는 이 기간을 “아무 것도 못하고 허송세월한 셈”이라고 술회했다. 두번째 위기는 9월25일 첫 출항을 지키지 못한 데서 찾아왔다.요란하게내 걸었던 약속이 결국 ‘잠수정 정국’에 밀려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31일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이 터졌다.일부 정치권 등 보수층에서 “북한에 준 돈이 미사일되어 돌아온다”며 강력히 반발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鄭 명예회장과 鄭회장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보장각서 어떻게/신변안전 걱정 안해도 된다/북서 “보장” 담화 발표/세칙 재협상 장애 안돼 금강산유람선 첫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정부 당국은 적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금강산 관광선 1호인 ‘현대금강호’가 2박3일간의 금강산 관광 시험운항을 무사히 끝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그동안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현대­북한간 신변안전 보장 협의 결과가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북한 백학림 사회안전상의 ‘신변안전보장각서’ 만으로는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셈이다. 그러나 시험운항 ‘성공’ 이후 일단 유람선관광사업의 전도에 파란불이 켜진 것으로 보고 있다.북측 인사들의 ‘자세’에서 관광사업에 적극적인 의지가 읽혀졌다는 것이다.북한측 사업주체인 아태평화위측도 14일 “우리 관계기관들은 금강산을 참관하는 남조선 동포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다만 몇가지 작은 불씨는 남아 있다.북측이 제시한 금강산 관광세칙도 그하나다.현대와 북한은 지난주초부터 관광객에 대한 벌금부과,촬영금지 등 관광세칙에 관한 재협상을 해왔다. 그러나 재협상 결과가 결정적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통일부 黃河守 교류협력국장은 “첫 출항일까지 세칙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적용할 세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양측이 세칙에 합의할 때까지 관광객들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세칙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북측의 관광객 ‘선별’ 소지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그러나 정부측은 북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측의 지난 8월 ‘보장서’를 근거로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보장서는 “관광객의 직장·직위를 문제 삼아 관광과 관련,입·출북을 허용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동해시청 沈圭彦씨/“대민행정 지원 아끼지 않을 것”/터미널 도우미 배치/관광객 불편 최소화 “실향민과 남북관계는 물론 동해안지역 경제를 위해 금강산 관광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동해시청 금강산관광지원사업소 沈圭彦 소장(43)은 지난 16일 2박3일간의 금강산관광선 시험운항에서 돌아온 뒤 18일의 첫 출항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해시는 동해항이 금강산관광선 출항지로 선정된 지 4일만인 지난 8월1일 지원사업단을 구성했다.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대민·행정 지원 등을 총괄하기 위해서다. 동해시는 지금까지 건축허가에서부터 선상에서의 영업허가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허가신청을 낸 당일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정도였다. 沈소장이 시험운항에 참가한 것도 관광객의 불편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생각에서다.沈소장은 출국 절차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여행 터미널에 도우미 2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숙박시설도 대대적으로 정비키로 했다.배가 밤에 떠나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동해시에서 묵지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빡빡한 일정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노인들이 출항 하루 전에 동해시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직접 다녀와보니 출항 당일 동해에 도착해 교육을 받고 오랜 시간 배를 탄 뒤 다음날 새벽 산행을 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강호 등에서 선식(船食)으로 사용되는 동해안 해산물의 납품 과정도 살폈다.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지역 특산품 개발도 구상중이다.금강산관광객을 동해안 관광지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중이다. 沈소장은 “금강산 관광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관광객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라면서 “조금도 불편이 없는 여행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재벌과 예술품/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최근 ‘경제·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 재벌들이 예술품 수집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예술품은 상대 가문에 대한 우위를 과시하고 국민들에게 위세를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면서 ‘기업은 극단적인 재정상황에서도 예술품을 사들이고 전시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때가 때인 만큼 빈정거림이 섞인 것같아 개운치가 않다. 우리 화랑가에는 언제부턴가 재벌2세나 부인 또는 며느리들이 미술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직접 선대에서 미술품 수집수업을 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 등에 가서 본격적으로 미술경영 수업을 받고온 사람도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에서도 대기업들이 미술품 수집에 발벗고 나선지 오래다. 단지 기업의 미술품 수집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 문제다. 즉 ‘완상’에 목적을 둔다면 기업과 문화의 접목이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소유’에 목적을 둔다면 투자가치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갑부들도 돈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이 슈퍼파워의 시대를 열었다면 이 나라의 부자들은 기가­에고(giga­ego·超巨物)의 시대를 맞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은 세계적인 투기꾼 조지 소로스,컴퓨터의 빌 게이츠. CNN의 테드 터너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다. 이들이 ‘초거물’인 까닭은 그들은 돈을 벌어서 민주주의 전도사를 자처하거나 문명사가 등 인류평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선대의 취미를 물려받는 것은 좋지만 실제로 그 예술품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한번쯤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가문의 우위과시나 국민들에게 위세를 뽐내기 위한 것이라면 예술품 수집과는 맞지 않는 모순이다. 그들의 선대들은 조상들이 남기고 간 국보급 예술품들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지키는 수준에서 문화재를 수집했고 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남기고 있다. 미술품 수집은 돈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하나의 예술작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때만이 수집의 자격이 주어진다. 정신적으로단단하게 무장된 모습으로 비쳐져야 할 시기에 한가하게 예술품 수집 경쟁으로 치열하게 다투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수집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 친일의 군상/前 이화여대 총장 金活蘭(정직한 역사 되찾기)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 때 어찌 여성인들 잠잣코 구경만 할 수가 잇겟습니까.이 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벌서부터 되여 잇섯습니다.내지(일본)학도들과 함께 전문대학 법문계(문과) 반도(조선)학도들은 우렁찬 진군을 이르키어 특별지원병으로서 오는 1월20일에는 영예의 입영을 하게 되엿습니다.이번 반도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거러가야될 길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가지 리유 때문에 참렬을 못하는 것입니다.…아프로는 결전하의 국가목적에 쪼차 한사람이라도 더만히 우수한 지도원을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할 각오가 잇슬 뿐입니다.” 金活蘭(1899∼1970)이 1943년 12월25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기고한 ‘男子에게 지지안케­皇國女性으로서의 使命을 完遂’라는 제목의 기고문 중 한 대목이다. ◎이대 키운 공 크지만 ‘여성계 상징’으론 논란 여지/3·1운동 당시 한때 지하 독립운동 조직과 연계/1936년 이화학당 부교장 시절부터 변절 첫 걸음/동포청년 전쟁에 내몰고도 사과 한마디 없어/“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 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일제하 지식인이 신문에 쓴 친일성향의 글 한 두편을 통해 그의 삶 전체를 평가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거대한 감옥’또는 ‘노예선’으로 불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쓴 글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우선 생명에 위협이 있었느냐,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했느냐 하는 점 등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몇몇 의사·열사가 이에 속할 뿐이다.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거의 모든 친일 지식인들은 자신의 친일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친일 지식인들이 더 비난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때문이다. 일제시대 여성 지식인이었으며 최근 그의 이름을 딴 상(賞)제정 문제로논란이 되고 있는 김활란은 역사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답은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이유는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의 이름을 딴 상 제정은 지식인 사회에서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김활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가운데 하나는 ‘여성박사 제1호’다.그는 학사·석사·박사를 따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5년간 미국유학을 했다.귀국해서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절러(당시 이화여전 교장)의 뒤를 이어 1939년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했다.굳이 나눈다면 그는 친미(親美)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다.그런 그가 ‘대동아전쟁’이 터지자 친일,반미(反美)인사로 돌변하였다. ○전쟁 터지자 반미로 돌변 “저 흑노(黑奴)해방의 싸움을 성전(聖戰)이라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성전이라고 했다.…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도의를 무시한 물질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동아(東亞)의 천지로부터 미영(美英)을 격퇴하여 버리자”.김활란은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결성식(1941.12.27,부민관 대강당)에서 ‘여성의 무장’이란 주제로 미영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일제하 대부분의 친미·기독교계 인사들(白樂濬·申興雨 등)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다시 친미인사로 변신했다.그는 미군정 시절 초대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했고 이승만정권 하에서 한미(韓美)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3·1만세의거 당시 김활란은 이화학당 대학과를 마치고 모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그 무렵 지하독립운동 조직과 연결돼 활동하고 있었다.‘7인의 전도대(傳道隊)’를 만들어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한 전도활동 수준을 넘는,일종의 민족운동이었다.20년대 후반 좌우 민족진영의 통합으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뒤이어 27년 4월 여성계 민족단체로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었다.그는 근우회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이듬해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31년말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농촌교육 관련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귀국후 문맹퇴치·봉건잔재 타파 등을 내걸고농촌운동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미국유학을 한 인텔리 여성의 소박한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일제 침략전쟁 미화·선전 그의 친일행보는 36년 이화학당 부교장으로 있던 시절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해 말 총독부 사회교육과 주최 ‘가정의 개선과 부인교화운동의 촉진’을 위한 사회교화간담회에 참석하였다.37년 1월 그는 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선부인문제연구회’를 결성하였고 7월 들어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애국금채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이 단체는 한일병합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의 부인들이 주동이 돼 전쟁물자로 바칠 금비녀·가락지를 모으기 위해 결성한 친일 여성단체였다.이후 여러 친일단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방송선전협의회,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조선교화단체연합회,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등. 그의 활동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 활동이다.38년 6월 조선YWCA의 회장으로 있던 그는 “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자기(自期)하는 의미에서…”(매일신보,38년 6월9일)라며 일본YWCA에 가맹을 발표하였다.당시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학교가 폐교를 당하고 구속자·순교자가 잇따르던 때였다. 39년 4월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한 이후 그의 친일행각은 본격화되었다.물론 그 배경에는 학교를 지키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았다.그러나 김해 김씨인 그의 문중이 본관을 따라 ‘김해(金海)’로 창씨를 한 것과는 달리 그는 독자적으로 ‘천성활란(天城活蘭·아마기 가쓰란)’으로 창씨개명하였다.‘어차피 창씨를 해야한다면 정말 (일본식으로)창씨를 해서 자신의 독립된 일가를 세울 생각’이었다.(金貞玉의 저서 ‘이모님 金活蘭’중에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살아 ‘대동아전쟁’ 개전(41.12.8) 이후부터는 강연·방송은 물론 가두로 나서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미화,선전하였다.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머니나 딸·동생으로서’ 징병·징용·학병 등 인력동원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촉구했다. 43년8월1일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황국신민의 무쌍(無雙)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되었다.…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공하옵신 성지(聖旨)에 다시금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위하여 불덩이 같이 끓는 피와 몸을 통털어 바쳐 성은(聖恩)에 보답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뵈일 기회는 드디어 왔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 천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매일신보’1943년 8월7일)이라고 썼다. 그는 해방직전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자신을 문병차 찾아온 조카(金貞玉 전 이대교수)에게 “남의 소중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연설을 하고다닌 죄값”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김정옥의 앞의 책 중에서) 당시 여기자 崔銀喜는 그를 두고 ‘모질고 악착한 역경을 맛보지 않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산 행운아’라고 평했다.식민지 시대와 격동기를 산 지식인의 일생이 대체로 고뇌와 아픔으로 점철됐겠지만 그는 상류층의 한 층을 이루는 생애로 일관하였다. 그가 60년 가까이 이화인(梨花人)으로 살면서 일제하와 건국기에 학교를 지키고 가꾼 공로는 인정할만 하다.그러나 그를 여성교육계,나아가 한국여성계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는 그의 일생 가운데 ‘흠결’은 큰 편이다.이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그의 친일활동이 적극적이었다.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추진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보다는 그의 떳떳하지 못한 삶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김활란 연보 1899년 인천 출생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 1918년 이화여전 교수·부교장 1928년 ‘근우회’ 발기인으로 참여 1931년 미국 컴럼비아대 철학박사(‘여성박사 1호’) 1937년∼45년 애국금차회·임전대책협의회·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 1939년∼70년 이화여전 교장·이화여대 총장·이화학당 이사장 1948년∼65년 한국대표로 유엔총회 6회 참석 1950년 공보처장 1952년 ‘코리아타임스’ 사장 1954년∼61년 국제기독교선교위원회 부위 원장 195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195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1963년 대한민국장·막사이사이상·다락방상 수상 1965년 대한민국 순회대사 1970년 별세,망우리 금란동산에 묻힘.대한민국 1등수교훈 장추서 1996년 추모문집 발간,그의 친일 논쟁을 계기로 ‘인터넷 반민특위’이 등장 1998년 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계획 발표로 찬반논란
  • 영세상 울리는 ‘간판 정화’

    ◎‘무허가 양성화 작업’… 지난 7월부터 전국 일제 실시/신고때 비용 수십만원… 검사는 대충대충/“수십년간 사문화… 왜 어려울때 들추나” 반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얼마 전부터 시행 중인 ‘간판 정화 작업’에 대한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기존의 간판을 허가 받는 데만도 녹록치 않은 돈이 드는 데다 요건 미달로 새 간판을 달려면 수십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돌출간판에 대해 지난 5년 동안의 사용료를 한꺼번에 물려 비난을 받고 있다.돌출광고의 ㎡당 사용료는 1년에 8만8,000원이다. 상인들은 “사문화되다시피한 법을 하필 요즘 같은 불경기에 다시 들춰내 상인들에게 부담을 지우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부족한 세수를 영세상인들에게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행정자치부의 지시로 지난 7월부터 실시된 ‘간판 양성화 작업’은 기존의 무허가 간판을 신고만 하면 합법화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서울에서는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동안 15만건 가량이 새로 신고됐다.이 기간에 무허가를 신고하지 않으면 50만원 미만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부 구청은 접수기간을 연장,지금도 신고를 받고 있다. 당국은 신고를 받으면 안전도 검사를 거쳐 허가를 내준다.이때 상인들은 검사비 1만5,000원에 2만원∼십수만원의 인지대를 내야 한다. 간판이 규정에 맞지 않거나 위치가 잘못됐으면 정비를 하거나 고쳐 달아야 한다.낡은 것은 철거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새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업주 대부분은 소규모 잡화점이나 정육점·미장원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이기 때문에 반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이들은 “영업허가를 낼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적을 받거나 단속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왜 이제 와서 간판을 문제 삼느냐”고 비난한다.간판에 대한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2년 ‘옥외 광고물 등에 관한 관리법’이 생긴 뒤 91년 시행령을 제정할 때를 빼고는 실질적인 단속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허가를 내면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안전도 검사도 날림이기 일쑤여서 ‘부실’을 합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서울 강남의 한 당구장 주인은 “네온사인에 대한 안전검사를 신청했더니 가게로 오지도 않고 검사필증을 내주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행정학과 李殷國 교수는 “오랫동안 방치했던 행정법규를 몇달간의 일제 정비를 통해 재실시하겠다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면서 “충분한 검토를 거쳐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부작용과 문제점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친일의 군상:12(정직한 역사 되찾기)

    ◎배족행위에 면죄부 주는 각종 기념상의 실체/친일인사 기념상 난무… 뭘 기리자는 것인가/대상인물의 친일행각 도외시… 업적만 부각/일부 수상결정자 “친일파 기념상 못받는다” 거부/“공만 앞세워 기념상 제정하는건 역사의식의 결여” 비판 ‘단재상(丹齋賞)’이라는 상이 있다.단재 申采浩 선생의 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86년 제정된 상이다.지난 96년 이 상의 수상자 심사를 놓고 작은 사건(?)이 있었다.수상자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 두 명이 돌연 사퇴한 것이다.사퇴이유는 수상자로 내정된 廉武雄 교수(영남대·독문학)가 수상자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들은 廉교수가 그 해에 ‘팔봉(八峰)비평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문제삼았다.일제하의 경력으로 볼 때 단재 申采浩와 친일적인 팔봉 金基鎭은 서로 어우를 수 없는 인물인만큼 이들을 기념한 상을 한 사람이 동시에 수상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린 ‘심산상(沁山賞)’을 수상한 문학평론가 白樂晴(60·‘창작과 비평’ 편집인)씨는‘팔봉비평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보인다.‘팔봉비평문학상’이 왜 문제인가?요지는 간단하다.팔봉 김기진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최근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金活蘭씨의 이름을 딴 ‘우월(又月)김활란상(金活蘭賞)’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이화여대측은 金씨가 교육·여성계에 끼친 업적을 들어 상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국제적 규모의 상을 만들면서 왜 하필 대표적인 여류 친일인사의 이름을 붙이느냐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각종 상(賞) 가운데는 일제하 친일인사들의 업적을 기념한 상도 상당수 있다.이 상들은 대개 기념대상 인물들의 친일행각은 도외시한 채 그들이 해당 분야에서 남긴 업적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상당수는 당사자의 후배나 지인·유족들이 주축이 돼 기념사업회(혹은 기념재단)를 만들어 거기서 상을 주는 곳도 있고 더러는 제3의 기관·단체에서 상을 주기도 한다.주종을 이루는 분야는 문학 등 예술분야이나 학술·언론분야 등도 있다.구체적인 실태와 문제인물들의 친일행적을 알아보자. ○후배·지인·유족들이 주축 국내에서 시상되는 문학상은 그 종류가 무려 200개 가까이 된다.이 가운데서 친일인사(문인)의 이름으로 시상되는 상은 10여개 정도.이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은 1955년 사상계사(思想界社)에서 제정한 ‘동인(東仁)문학상’이다.이 상은 79년 이래 동서문화사에서 운영해 오다가 87년 이후부터는 조선일보사에서 시상해 오고 있다. 시(詩)분야에서는 공초 吳相淳을 기념한 ‘공초(空超)문학상’과 월탄 朴鍾和를 기념한 ‘월탄(月灘)문학상’이 있다.공초문학상은 91년 공초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具常)가 서울갤러리에서 기금마련 행사를 가진 후 그의 30주기인 93년부터 서울신문사와 공동으로 시상해 오고 있다.첫 수상자는 시인 李炯基씨. 월탄문학상은 월탄 朴鍾和가 66년 5·16민족상 부상으로 받은 상금 100만원을 기금으로 하여 시작됐다.이 상은 주로 시인을 대상으로 시상하지만 더러 소설가나 평론가에게 시상한 경우도 있다. 시조분야에도 상이 몇 있다.대표적으로는 ‘노산(鷺山)문학상’과 ‘육당(六堂)시조문학상’.육당시조문학상은 육당 崔南善이 ‘소년(少年)’지를 창간한 11월1일을 기해 창작·학술 2개 부문을 윤년제로 해마다 1명씩 시상하고 있다.노산문학상은 국학연구·시조 등 2개 부문을 시상해오고 있다. ○다수의 친일문장 남겨 평론부문에서는 ‘팔봉(八峰)비평문학상’과 ‘소천(宵泉)비평문학상’ 두 종류로 팔봉은 金基鎭,소천은 문학평론가 李軒求의 아호다.팔봉비평문학상은 90년 유족이 낸 기금으로 제정돼 매년 한국일보사에서 시상해 오고 있다.아동문학부문에서는 ‘李周洪 아동문학상’이 있다. 문학 전반에 걸쳐 시상하는 ‘조연현문학상’은 한국문인협회 회장과 ‘현대문학’ 주간을 지낸 조연현씨의 문학업적을 기리기 위해 82년 한국문인협회에서 제정,매년 시상해 오고 있다. 위에서 거명된 인사들의 친일전력을 간단히 살펴보면,김동인은 중일전쟁 기간중 ‘성전(聖戰)종군작가’로 황군(일본군)위문을 다녀왔고 일제말기에는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를 지냈다.오상순의 경우는 좀 색다르다.그는 문인이지만 친일문장을 남긴 것은 없다.그러나 일본의 동지사(同志社)대학 졸업후 일본조합(組合)기독교회의 전도사를 활동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이 단체는 3·1만세의거 당시 ‘배미(背迷)유세단’을 조직,조선전역을 다니며 만세를 부르지 못하도록 막고 다닌 반민족·침략교단(敎團)이었다. 박종화는 일제말기 학병권유 글과 시국담화를 발표한 적이 있고,이은상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신문 ‘만선일보(滿鮮日報)’에 근무한 사실이 있다.최남선은 만주 건국대 교수,중추원참의를 역임하였다. 문학평론가 이헌구는 친일잡지에 수 편의 친일문장을 썼고 김기진은 조선문인보국회 상무이사와 조선언론보국회 이사를 지내면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다수의 친일문장을 썼다.아동문학가 이주홍과 조연현은 친일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에 수 편의 친일문장을 남겼다. ○학술·예술관련 상도 많아 문제 작가들의 친일행위는 대부분 친일파연구가 고(故) 林鍾國씨가 66년에 출간한 ‘친일문학론’ 등에 소상히 나와 있다.이미 30년전에 이들의 친일행적은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나 관계자들은 이들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단지 문학적 업적만을 강조한 채 어떤 문학상은 이미 수 십년째 시상해 오고 있다. 친일인사 중에서 학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을 기념한 학술상도 몇 있다.‘용재(庸齋)상’‘두계(斗溪)학술상’‘하성(霞城)학술상’ 등이 그것이다. 용재상은 연세대 초대총장을 지낸 용재 白樂濬 박사의 탄생100주년을 기념하여 95년에 제정됐다.제1회 수상자로는 워싱턴 주립대에서 한국학연구소를 개설,운영해오고 있는 제임스 팰레이 교수가 선정됐다.이 상은 ‘용재석좌교수’도 동시에 선발하고 있다. 두계학술상은 사학자 두계 李丙燾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진단학회에서 80년에 제정한 상이며,하성학술상은 문교장관과 영남대 총장 등을 지낸 하성 李瑄根 박사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85년에 제정됐다. ○상 제정·동상건립 신중해야 백낙준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병도는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한 경력이있다.또 이선근은 30년대 후반 만주로 건너가 일제의 괴뢰정부 만주국 협화회의 간부를 지냈다. 이밖에 친일인사를 기념한 상으로는 작곡가 洪蘭坡를 기념한 ‘난파(蘭坡) 음악상’,‘동랑(東郞)연극상’ 등이 있다. ‘봉선화’의 작곡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홍난파는 ‘동우회(同友會)사건’에 연루돼 검거된 후 친일로 전향,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희망의 아침’ 등 다수의 친일가요를 작곡하였다. 우리 근대연극사에서 제일의 희곡작가로 불리는 유치진은 일진회(一進會)의 선봉장 李容九를 찬양한 ‘북진대(北進隊)’를 비롯해 다수의 친일희곡을 썼다.특히 그는 총독부가 주도하여 만든 현대극장의 대표로 있으면서 일제말기 각종 친일매체에 다수의 친일문장을 남겼다. 친일전력자들을 기념한 상과 관련,한 역사학자는 “역사적 공과(功過)가 교차되는 인물을 기념하는 상이나 동상건립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는 “자신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죄 한마디 없이 생을 마친 친일인사들에 대해 그들의 해방후 업적만을 강조해 기념하는 것은역사의식의 결여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 ‘통일의 가교 놓기’ 뜨거운 열정/21세기를 준비하는 청년들

    ◎남북통합정책 수립/통일언어 SW제작/정보 인프라 구축 등 물밑 움직임 활발 아마도 분단 이후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통일을 향한 몸짓이 하루도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통일과 통일이후를 준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거리위의 돌과 화염병,그리고 무모한 열정 대신, 드러나지는 않아도,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착실하게 통일을 준비해가는 젊은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과의 金明燮 교수(35).파리1대학에서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지역통합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전쟁당시의 통일행정’ ‘통일방안으로서의 고려문명권’등 대학원 때부터 남북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한 저작과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金교수는 강의중에 늘 ‘남과 북의 사람들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학생들에게 던진다.“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북한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이제 북한인은 촌스럽기 때문에 외면당하고 있다.마치 과거 일본인이 한국인을 바라보던 것처럼…”. 金교수는 “지나치게 서구 중심의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보면 안된다”고 경고한다.“우리의 중심을 세우면서 서구의 시각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통일부에서 남·북한,미국,중국간의 4자회담을 다루고 있는 金昌顯 사무관(35)은 “남북한이 통일문제를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차가운 머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통일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의 대학생이 정부에 들어와 남북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그는 판문점에서 북한측 인사와 만날 때마다 느끼는 현장감을 정책수행과정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金사무관은 “정부의 통일정책도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통일을 보는 국민의 눈이 장기적이고 냉철할수록 정부도 일관성과 추진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주간으로 발행되고 있는 통일정보신문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崔秀洛씨(31).건축공학도였던 그는 대기업에서 인테리어 관련 업무를 담당할 때만 하더라도 통일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인터넷 관련 업무로통일정보신문과 접촉을 시작한 뒤 아예 자리를 옮겼다.崔씨는 “인터넷을 통해 젊은층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소개했다.때로는 조총련측에서 통일정보신문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내용은 아직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는 예의 구태의연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접촉이 잦아지면서 의식도 변화하기를 기대한다.崔씨는 시간이 날때마다 인터넷에서 북한이 만든 사이트를 찾아헤매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이 없다.그는 “빨리 북한이 더 개방돼 인터넷을 통해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컴퓨터와 함께 자라난 우리 신세대들이 북한을 접할 수 있는 무대가 바로 인터넷”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언어학과 동문 10명이 만든 회사 ‘언어과학’.이들은 지난 97년부터 북한어의 형태와 어휘를 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우리 말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단어와 단어를 띄어쓰는데,북한말은 ‘그럴수밖에없다’고 붙여쓰기 때문에 컴퓨터가 해독하는데 장애가 생긴다. 대학원에서 형태통사론을 연구하면서 언어과학에 참여하고 있는 崔云鎬 연구원(28)은 “우리의 어문규정과 북한의 문화어 규정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통일후 뿐만 아니라 통일전에도 남북의 언어를 동시에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북한어 전자사전도 완간해 남과 북의 사람과 컴퓨터가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들의 희망이다.
  • 경락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서재광 대한한의원장(전문의 건강칼럼)

    콜롬비아의 저명한 의학자인 오비르네박사는 인체기능의 60%이상이 손상되지 않으면 각종 병리,화학적 검사를 통해서 병명이 확인되지 않고 인체기능의 70%이상이 손상되었을 때 비로소 병의 확진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모든 병은 에너지 체계의 난조에서 비롯되므로 이를 잘 나타내는 경락의 진단을 통해 질병의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락진단은 인체기능의 건강상태를 알게끔 해주고 각종 임상검사를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 질병의 상태를 쉽게 판단해 치료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앞으로 21세기는 질병을 진단 치료함에 있어서 생체에너지의 통로인 경락체계가 주된 연구대상으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지금도 기존 진단체계보다 우수하다는 점이 임상연구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경락이란 인체내부의 특정에너지를 밖으로 보내고 외부 에너지를 인체 내로 전달하는 길이다. 질병은 인체의 +전기와 -전기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되며 이 균형의 부조화는 생체에너지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유발된다. 한의학에서는 기혈의 운행통로인 경락으로 설명한다. 생체에너지는 경락을 통해 피부에 나타나며 안과 밖으로 서로 정보교환을 하고 있으므로 경락의 경혈점(침자리)의 전기적 측정방법으로 인체의 건강상태와 질병정도를 진단할 수 있다. 현대의학의 심전도 검사,뇌파검사,근전도검사 등의 측정은 체내의 생체에너지를 일반적으로 측정하는 장치인 반면 한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경락 진단기기는 체내 생체에너지를 종합해 전신활동,전신기혈및 자율신경계의 상태를 측정할수 있다. 따라서 한의학에서 경락은 새로운 진단분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02)499­0080
  • 金大中 대통령­鄭周永 명예회장 일행 대화록

    ◎金 대통령­“서해공단 조성땐 中企도 진출해야”.쌍방이익·관계개선 도움주는 좋은 일/鄭 회장 “金正日 위원장 남북경협 갈망 느낌”.금강산·샘물 등 4개 사업은 실천 가능 金大中 대통령은 2일 오전 청와대에서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행을 30여분 동안 면담하고 4박5일간의 방북결과를 보고받았다. 金대통령은 주로 듣는 편이었다. ▷유전개발◁ ▲金대통령=수고 많으셨습니다. ▲鄭명예회장=평양에서 기름이 나오는데 남한에 파이프를 연결해서 석유를 공급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金대통령=기름은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鄭명예회장은 귀가 어두워 鄭夢憲 현대그룹회장이 주로 답변했다). ▲鄭회장=가능성은 잘 모르지만 아태위원회측이 참여를 요구했고 金正日 국방위원장은 기름이 생산된다면 남측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鄭명예회장이 ‘남한에 가서 신문에 공개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金국방위원장이 좋다고 했습니다. ▲金대통령=미국 회사들이 탐사를 하고 있던가요. ▲李益治 현대증권사장=아태위원회 책임자들은 중국·발해만쪽에서 기름이 많이 나오는데 그 지층구조가 평양까지 연결돼 있어 상당량 매장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鄭회장=金국방위원장도 미국에서 탐사제의가 많다고 했고,사진을 보니까 기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합의사항◁ ▲金대통령=그것은 장차 얘기고 다녀온 얘기를 해보십시오. ▲鄭회장=金국방위원장은 주로 기름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석한 金容淳 아태위원장에게 ‘금강산 개발이 왜 늦어지느냐’고 물었고,金위원장이 ‘곧 실현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11월중에 실현됩니다’라고 했더니 金국방위원장이 ‘처음에는 금강산을 개발을 않고 자연 그대로 두려고 생각했지만 현대가 적극적으로 개발한다고 하니 꼭 적극적으로 개발해 달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金아태위원장과 鄭명예회장간의 합의는 금강산개발,승용차조립,체육관건립 관계였다고 보고하자 金국방위원장은 ‘그때 말하던 실내체육관인가’라면서 ‘남북 체육교류를 많이 해야겠다’고 金아태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다시 제가 ‘앞으로 많이 하겠다’고 답변했고,金국방위원장은 ‘金日成 주석 생존시 통천에 비행장을 건립해 일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을 세웠으나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금강산 개발에 대한 의지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경제특구건설◁ ▲金대통령=합의사항은 무엇입니까. ▲鄭회장=(금강산개발,체육관 공동관리,평양발전소,승용차조립,공단건설사업,광천수 샘물개발 등을 설명한 뒤)현대측으로서는 경제성이 없으면 좋은 관계로 진전되겠는가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습니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공단조성 제안으로 경제특구 개념으로 공단내 주택,편의시설을 꼭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진출기업의 애로사항은 북측이 매년 30%의 근로자들을 교체하는 것입니다. 金국방위원장에게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했더니 ‘아태위에서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金대통령=실천 가능한 것은. ▲鄭회장=(금강산개발,체육관건립,자동차용 라디오 조립,광천수 샘물개발을 적시하면서)건설분야에서 공동으로 제3국에 진출하자고 했지만 북한 근로자를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리비아나 중앙아시아에 현대가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金대통령=임금은 합의했나요. ▲鄭회장=합의는 없었지만 중국의 선전특구처럼 해달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KEDO 수준으로 월 100달러 정도입니다. ▲李사장=북한은 남한사람과의 접촉을 상당히 꺼려하는 것 같아서 중국 선전처럼 북한인도 비자를 받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북한에 전기가 굉장히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남한에서 전기공급이 가능한 지역에 약 2,000만평의 공단이 조성되면 신발만 하더라도 100억달러 수출을 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나옵니다. 임금이 100달러 미만이면 중국이 120달러여서 좋은 임금시장이고,우리나라에서 800개 이상의 국내기업이 북한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어 원부자재 공급에도 유리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金대통령=우리 중소기업 등도 진출했으면 합니다. ▲鄭회장=공단을 조성하면 현대도 유치하고 중소기업들도 진출할 수 있으니 좋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金대통령=경제교류 협력 열의는 어느 정도입니까. ▲鄭회장=공단 얘기를 했더니 金국방위원장은 ‘남포공단이 잘 안된다’고 했고,金아태위원장도 ‘잘 안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희가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했더니,金국방위원장은 남쪽과의 경협을 갈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금강산은 꼭 개발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金국방위원장은 다시 한번 책망하는 투로 금강산개발이 늦어졌다고 얘기하면서 비행장·온천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2년반 동안 가뭄이 들어 수력발전이 안되고 석탄도 못캐 화력발전도 안되고 있다’며 ‘북한에서는 수력발전소를 중수력발전소라고 부르는데 많이 건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金대통령=동의하던가요. ▲鄭회장=북한에서는 혼자 모든 것을 다 못하니 관계기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금강산 개발◁ ▲金대통령=금강산 개발은 현대가 독점하는 것입니까. ▲鄭회장=‘독점’이라는 문구는 들어있지 않지만 현대만 하기로 했습니다. 金국방위원장이 金아태위원장에게 ‘현대와 하기로 한 것을 여러사람과 나눠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金대통령=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鄭회장=계약서상 6년3개월로 돼 있으나 그외에 ‘장기간’이라는 표현도 있어 추후 협의해야 합니다. 북한이 주로 신경을 쓰는 것은 홍콩식 조차였습니다. 일정한 금액을 받고 땅을 파는 것 아니냐는 우려심이 있어 명확한 표현을 안하려고 했습니다. ▲李사장=개별사업들에 대해서는 30년이나 50년을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호텔을 지으면 장기간 보장할 생각이고,북한 장전항 부두설치도 7,000만달러가 소요되는데 50년간 사용권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金대통령=남북경협은 쌍방의 이익을 위해,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 의원 면책특권 악용땐 처벌/與圈

    ◎자체징계 강화·관련법 개정 적극 검토 여권은 1일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면책특권을 이용해 근거없는 폭로를 하고 있다고 보고 면책특권 악용 방지 대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여권은 이에따라 의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발언 등에 대해서는 국회 윤리위원회 차원의 자체 징계를 강화하는 한편 면책특권에 관한 외국의 사례를 수집해 관련법 개정 등 제도적 보완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민회의 고위 당직자는 “일부 의원들이 단순한 시중 루머를 근거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질의와 발언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의원들의 무책임한 원내발언은 물론 각종 선거에서 자행되고 있는 흑색선전도 정치불신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엄중히 처벌하도록 관계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직자는 “아직 사법처리 선례는 없으나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이라 할지라도 허위사실로 개인의 명예를 명백히 훼손시켰을 때는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게 지금도 헌법학계의 통설“이라고 밝혔다. 정치개혁 참여연대 등 일부시민단체들도 이날 “대의민주주의 활성화라는 면책특권 고유의 역할을 악용하는 의원들에 대해 16대 총선부터 합법적 낙선운동을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을 국회와 관계당국에 청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민주열사 열전:13/前경원대생 宋光永(정직한 역사 되찾기)

    ◎‘학원안정법 음모’ 온몸 항거 분신/학생운동 씨 말리려는 악법 제청 항의 선봉에/광주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 불꽃 확산 시도 “시상에 죽은 내 아들 광영이를 왜 이리도 무서워한당가.제 몸에 불을 지르고 뛰지도 못하는디.왜들 겹겹이 둘러싸고 문상도 못오게끄럼 막는당가.광영이 몸이사 이제 싸늘하게 식었지만 그 맴이사 어디 식겠어.어림 반푼 없는 소리제.이 에미 가슴 이리 불붙는디.그 맴이 어찌 식겠어…” 85년 10월 21일 서울기독병원 영안실.아들의 주검을 앞에 놓고 한 어머니는 이렇게 울부짖고 있었다.34일 전 학교에서 분신한 경원대 법대생 宋光永의 어머니 이오순 여사(당시 59세·94년 작고)였다.경찰은 한달 이상 1,000여명의 병력을 동원,병원을 두겹 세겹으로 에워싸고 출입자를 통제했다.그러나 그토록 삼엄한 경비와 장례 소동까지 불러온 송광영의 분신은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언론에 단 한줄도 보도안돼 그는 85년 9월 17일 오후 2시30분쯤 경원대 운동장에서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했다.그날은 학생총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로 연기된 상태였다.그러나 그는 시위를 주도하며 몸에 불을 붙였고,뛰어가며 외쳤다.“학원안정법 음모 철회하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나라” 인근 성남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서울기독병원으로 옮겨져 한달 이상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졌다. 그가 온몸이 불에 휩싸인 채 몇번씩 쓰러졌다 일어서며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의 희망이었다.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광주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의 불꽃을 확산시키려 했다.광주민중항쟁은 5공화국 내내 꺼지지 않는 민주화의 불씨로 남아 있었다.군사정권의 강요된 침묵을 깨고 80년 5월 30일 서강대생 김의기가 최초로 광주민주화항쟁의 실상을 폭로하기 위해 투신했다.그의 투쟁은 노동자 김종태의 이화여대 앞 분신과 또 다른 노동자 홍기일의 전남도청 앞 분신으로 이어졌다. 대학가에서도 5공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위가 점차 가열됐다.위협을 느낀 군사독재정권은 아예 학생운동의 씨를 말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바로 ‘학원안정법’ 제정 추진이다.골자는 학생의 좌경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위학생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일정 장소에 수용시켜 6개월 이내의 선도교육을 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독재정권은 비밀리에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통과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리 그 내용이 새어나와 한 일간지에 폭로되면서 반대여론이 들끓자 일단 유보됐다.그럼에도 정권은 당시 손제석 문교부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학원소요가 계속되면 학원안정법을 연내에 제정하겠다’며 관철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송광영은 어떻게 해서든지 학원안정법 음모를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분신의 가장 큰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그는 유서인 ‘양심 선언’에서 ‘결코 총칼이나 학원안정법 따위의 악법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는 70년대 노동운동의 싹을 틔웠던 전태일열사를 가장 존경했다.전태일에 대해 “소외된 민중의 대변인,억눌린 사회에서 참된 인간상을 제시해준 인물”이라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어려서부터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온 그는 소외된 삶들의 아픔을 나눌줄 알았고 그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다.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화시장 재봉보조원 생활,신문팔이,Y셔츠 장사,돗자리 장사 등 닥치는 대로 밑바닥 삶을 이어갔다.재봉보조원 시절엔 청계피복노조에 적극 참여했다.성격이 활달하고 발이 넓었던 그는 동료들을 취직시켜 주는 일로도 바빴다. 그는 81년 형들이 학교를 마치고 자리를 잡고 나서야 대학에 가기 위해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거기서도 동료학원생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학원을 10일씩이나 빠지면서 사고차를 찾아내 보상금을 타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초상까지 치르게 해줬다.또 학원에서 탄 장학금을 집에 오는 길에 구두닦이 소년에게 줘버린 자신을 호되게 야단치는 어머니에게 “그래도 우리는 집도 있는데”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 가장 존경 송광영은 84년 27살의 나이로 경원대 법학과에 입학한다.법학을 선택한 것은 고시에 합격해 어머니에게 효도하고,법관이 돼 사회의 부정부패와 모순을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시반에 들어가면 장학금을 탈 수 있는 것도 한 이유였다.그러나 그해 가을 어용교수 퇴진시위를 주도하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빠지게 된다.‘실존주의철학연구회’ ‘경제문제연구회’ 등의 학습모임을 만들어 이끌었다.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만둘 것을 설득하며 생활비를 끊어버리자 교내에서 구두를 닦으며 학교에 다녔다. 그는 학원악법이 통과되면 분신하겠다는 말을 했으나 후배들은 믿지 않았다.그러나 전세금을 빼 학교 등록을 못하던 친구를 등록시키고 분신 열흘 전에는 집에 들러 어머니에게 “호적을 정리하러 왔다”고 말하는 등 마지막 삶을 정리해 나갔다.누나 송영숙씨(49)는 “호적을 정리하려고 한 것은 그의 분신으로 형제들이 피해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회고한다. ‘…난자당하고 처절히 유린된 순백의 종이들이 책상 위에서 울고 있다/이렇게 또 하나의 밤이 사라져가는데/여자는 이제서야 피곤한 육신을 벗어제치고 있다/아! 그날 아침은 교회 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분신 얼마 전 써놓은 자작시 ‘에필로그 85’이다.송광영열사는 숨지는순간 그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민주의 종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연보 ▲1958:광주에서 출생 ▲74년:서울 경신중 졸업 ▲75∼76년:청계피복노조 활동 ▲82년: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84년:경원대 법학과 입학 ▲84년:실존주의철학연구회 만듦 ▲85년:경제문제연구회 만듦 ▲85년:9월17일 “학원안정법 음모 철회” 외치며 분신 ▲85년:10월21일 서울기독병원에서 운명 ◎학원안정법 파동/5共 ‘시위학생 선도교육’ 등 골자 立法 기도/야당·재야 “제도적 폭력” 강력 반발 저지시켜 광주항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점차 뜨거워지던 85년 여름,미국의 개입 의혹을 추궁하는 반미 시위가 거센 가운데 공안기관 주도로 중요한 음모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이른바 ‘학원안정법’ 제정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한 일간지가 공식 발표를 2주 앞두고 ‘학원안정법’ 음모를 폭로했다.시안 내용은 삼청교육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학원소요 등과 관련,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자들을 형사처벌 대신일정한 장소에 수용시켜 6개월 이내의 선도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골자였다.대상자 선정은 문교부에 준사법적 성격의 ‘학생선도교육위원회’를 설치해 하도록 했다. 교육을 거부하거나 교육장소를 무단 이탈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에게 극도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일부 좌경·용공학생들을 격리시켜 학원의 오염과 소요의 본거지화를 막고 선도교육을 통해 건전한 학교생활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하지만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학원에 대한 제도적 폭력이라고 즉각 반발했다.대다수 국민도 우려를 나타냈다.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여야 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자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미흡하다’며 법 제정을 일단 유보했다.그러나 당시 이원홍 문공부,손제석 문교부 장관은 소요가 계속될 경우 언제라도 법안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하지만 학원안정법은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다. ◎분신대책위 김해성씨/“당국 협박속 유가족 설득/분신의 의미 찾고자 최선” 송광영 열사의 가족과 몇몇 민주인사들은 그의 입원 치료와 장례문제로 적지않은 고통을 겪었다.그가 입원하자 문익환 목사를 위원장으로 한 ‘송광영 동지 분신구명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진상규명과 모금활동을 펴나갔다.치료기간중 상태가 좀 호전되기도 했지만 경찰의 철저한 통제속에 가족 이외에는 면회가 금지됐다. 대책위 집행위원장이던 김해성 성남주민교회 전도사(38·현재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집 소장)가 얼굴에 붕대를 감고 환자 시늉을 하며 겨우 2차례 송광영을 면회했다. “가족들을 설득해 당국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지 말고 분신의 진상과 의미를 찾자고 했지요.비슷한 상황을 겪은 다른 가족들과 달리 그의 가족들은 저희와 뜻과 행동을 같이했습니다” 김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송광영이 입원했던 서울기독병원은 79년 여공들이 독재정권과 독점자본에 저항했던 YH사건의 YH무역 건물이었다.송광영이 역사적 민주투쟁의 산실이었던 그곳에 다시 경찰을 불러모아 영혼을 태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송광영이 숨지자 대책위는 장례위원회로 바뀌어 사회장을 준비했다.그러나 경찰은 장례 전날 문목사 및 이해학 목사,김소장 등 대책위 관계자들을 모두 연행한 뒤 가족들에게 간결한 장례를 강요했다.또 일방적으로 시신을 강원도 춘성에 매장하려고 했다.그러나 누나 송영숙씨(49·대한생명 근무)가 스카프로 목을 매고 영구차 바퀴 앞에 눕는 등 가족들이 격렬히 저항했다.영구차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출발할 수 있었다.그는 횃불을 밝힌 가운데 금촌기독묘소에 안장됐다.
  • 중동협상 주역들 무사할까

    ◎아라파트­아랍권 매국노 지목 ‘암살리스트’에/무바라크­10여 차례의 암살기도 간신히 모면/네타냐후­이스라엘 정착촌서 ‘반역자’로 불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23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베냐민 네타야후와 야세르 아라파트 등 협상 주역들이 발 뻗고 자기에는 시기상조인것 같다. 과거 중동협상의 전기를 마련했던 주역들이 강경 과격단체들에게 피살되거나 위험에 처하면서 성과가 물거픔이 됐던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협상주역들에 대한 신변안전도 평화정착에 중요한 문제인 셈이다. 첫 희생자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79년 이스라엘 베긴 총리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시나이반도 반환 문제 등을 타결 지음으로써 중동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그러나 81년 카이로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이슬람 지하드’ 소속 장교들에게 암살당했다. 95년에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가 과격 우익단체에 의해 피살된다.93년과 94년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과 각각 평화협정을 체결,적대관계를 청산,아라파트와 노벨평화상을 함께 받았으나 기뿜도 잠시.이듬해 시리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었다. 아라파트도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을 체결한 이후 아랍권에서는 ‘매국노’로 지목돼 암살대상 리스트에 올라있으며 여러 차례 암살기도가 있었다.라빈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중동평화중재로 이집트를 외교 강국으로 부상시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국내 이슬람 근본주의자 단체들의 10여차례에 걸친 암살기도를 간신히 모면했다.이번 협상의 숨은 주역 후세인 요르단국왕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네타냐후도 벌써부터 이스라엘 정착촌에서는 ‘반역자’라는 말이 나돈다.호사가들은 ‘순교자’가 또 나올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 “세계화 무리한 추진이 換亂 불렀다”/丁世均 의원 정책자료집

    ◎제도적인 기반 조성 안된채 국제 자본 직접 영향에 노출/구조조정 등 처방전도 제시 2기 노사정위원회 간사로 활약중인 丁世均 의원(국민회의·재경위)이 22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과제’라는 정책자료집을 펴냈다.206쪽의 방대한 자료로서 ‘외환위기 원인과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 방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는 평이다. 丁의원은 무엇보다 ‘정부의 실패’를 외환위기의 주 원인으로 꼽았다.“제도적 기반조성이 안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세계화를 추진하다 국제자본의 직접적인 영향에 노출됐다”며 △구조조정의 실기 △구호뿐인 세계화 전략 등을 대표적 실패 사례로 지적했다. 그는 “투명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대외신인도 제고와 경제청사진을 제시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장원리와 고통분담원칙이 엄격히 적용돼야 할 것”이라며 ‘처방전’을 곁들였다. 丁의원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청산하지 못한 상황에서 책임경영 실종과 도덕적 해이가 총체적 난국을 불렀다”며 전임 金泳三정권의 개혁의지 부족을 질타했다. 금융구조조정를 위한 시급한 과제로는 △원칙과 투명성 확보 △부실금융·기업의 신속한 처리 △금융기관 대형화를 제시했다.특히 실업대책을 위해 △고용안정 인프라구축 △인기성·단발성 단기처방 지양 △지원대책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평가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 ‘공공 공사’/수주 출혈경쟁 시공 부실 우려

    ◎IMF후 민간건축경기 크게 위축/건설업체 공공부문에 사활 걸어/예정가의 60∼70%에 낙찰 속출 건설업계의 공공공사 수주전(受注戰)이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어 공공건설 사업의 부실화가 우려된다. 22일 건설교통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IMF사태 이후 민간 건축경기가 크게 위축되자 건설업체들이 민간 공사를 포기하다시피한 채 공공공사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수주 패턴이 기존의 민간공사 위주에서 공공부문쪽으로 급격히 바뀌면서 한정된 물량을 둘러싼 수주전도 이전투구(泥戰鬪狗) 양상으로 돌변,저가낙찰이 속출하고 있다. ◆공공공사에 운명건 건설업체=건축사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공사건수는 지난달 말 현재 2만6,26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7% 줄었다. 지난해 건설공사 시장규모는 79조7,416억원이던 것이 올해는 49조4,800억원으로 38%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업체들은 민간공사 물량이 대폭 축소됨에 따라 도로공사와 주택공사,토지공사,한국전력 등의 공공투자기관 발주공사 수주에 전사적인 노력을기울이고 있다. 일부 건설업체의 경우 민간 건축수주를 아예 포기한 채 최고경영진들까지 공공공사 수주에 발벗고 나서는 실정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한정된 공공공사 물량에 업체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수주양상이 기존의 연고권 위주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체제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부실화 우려되는 공공공사=현대건설 대우 삼성물산 LG건설 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공공공사 수주전에 눈독을 들이면서 낙찰률이 80%를 밑도는 저가수주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들어 중부내륙선 여주∼구미 3­2공구 공사가 70.9%에 시공업체가 판가름났으며 구미∼동대구 6공구 확장공사는 71.12%에 낙찰됐다. 인천국제공항 교통센터 기초골조 공사는 예정가의 70.68%,아산항 2단계 개발 외곽 축조공사는 70.29%에 사업자가 결정됐다.심지어 북수원 지역난방 열생산시설 건설공사 69.61%)와 전라선 동산∼송천간 노반개량 공사(68.07%)는 낙찰률이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들어 조달청이 예산절약을 내세워 공공공사의 예정가를평균 13% 남짓 낮게 책정하고 있는 것도 부실시공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켜주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성균관장 선거 3파전/최근덕 현관장·이완희 이사·최장규 전 의원

    ◎최 관장 재선에 자신감/이 이사 재단서 지원설/최 전 의원 ‘막판복병’ 최근덕 성균관장,이완희 재단이사,최창규 전 국회의원이 차기 성균관장 자리를 놓고 격돌하게 됐다. 지난 96년 6월이후 유교의 개혁문제를 놓고 종권 다툼을 벌여온 성균관과 재단법인 성균관은 최근 23일 서울 종로 명륜동 유림회관 강당에서 성균관의정,부관장 선거를 치르기로 합의,10일 성균관장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3명이 출마했다. 94년 성균관장에 취임한 최근덕 관장(62)은 96년 종헌을 개정,성균관장 재선에 성공했으나 재단측에서 “재단의 승인을 받지 않은 종헌은 무효”라고 주장,분규에 휘말려왔다. 정신문화원 교수와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및 유학대학원장 등을 지냈으며 국제유학연합회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재단측에서 미는 것으로 알려진 이완희 이사(71)는 검찰서기관과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을 거쳐 유도회총본부 사무총장과 성균관 가족법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최창규 전 의원(61)은 제11·12대 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청년유도회 회장 등을 지냈다.독립운동가 면암 최익현선생의 후손. 현재 순국선열유족회장과 국가상징자문위원. 유림 사이에서는 최관장이 무난히 재신임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이사의 도전도 만만치 않은 듯. 최 전의원은 성균관측과 재단측의 분규에 염증을 느낀 유림들 사이에 지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균관과 재단측은 서울고등법원 민사20부의 권고에 따라 그동안 자격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양측의 대의원을 모두 배제한 채 각각 95명씩의 대의원을 새로 추천하기로 했다. 성균관장 선거에는 190명의 대의원을 비롯해 전국 234개 향교의 전교와 시도 향교 재단이사장,재단법인 이사,성균관 및 재단 간부,성균관대 총장 및 이사장 등 모두 468명이 참여한다.
  • 어두운 시절 노동자의 등불로/40돌 맞은 영등포 산업선교위원회

    ◎초기 선교활동서 노동운동 탈바꿈/82년 원풍모방 사건으로 유명/30·31일 회관서 다양한 자축행사 ‘노동선교’의 깃발을 높이 들고 산업현장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해온 영등포산업선교위원회(위원장 인명진 목사)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도산(都産)’,또는 ‘산선(産宣)’이란 약칭으로 널리 알려진 영등포산업선교위원회는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교육과 선교에 힘써 오면서 어두웠던 시절 작은 등불이 되어왔다. 70∼80년대 노동운동가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배출됐으며 노동조합의 간부나 운동권 학생 중 이곳의 성문밖교회 집회에 한번쯤 참석해보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로 노동자나 재야세력 사이에서는 ‘성가’가,경찰 등 공안기관에는 ‘악명’이 높았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200여명의 회원에,12개의 노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땅에 산업선교위원회가 첫발을 내디딘 것은 공업화의 싹이 움트던 1950년대 후반. 57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전도부안에 ‘예장산업전도위원회’가 조직된 뒤 58년 4월19일 예장(통합) 경기노회가 주축이돼 영등포지구 산업전도회가 출범함으로써 본격적인 산업선교가 시작됐다. 처음 10년동안은 말 그대로 ‘전도’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종교의 장벽을 너머 비개신교인도 참여대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68년에는 이름을 ‘도시산업선교회’로 바꿨다. 그러나 10월 유신이후 정권의 탄압이 본격화됐고 80년대 들어서도 탄압의 고삐는 늦춰지지 않았다. 82년 콘트롤데이터와 원풍모방사건을 계기로 산업현장 일부에서는 “도산(都産)이 회사에 들어가면 도산(倒産)한다”는 악성 루머까 퍼뜨리기도 했다.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소그룹 형태의 비합법조직에서 대중적 활동으로 틀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들어 노동시장에 태풍이 불어닥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출범 40주년을 맞아 30,31일 서울 영등포 당산동 회관에서 기념잔치를 마련한다. 30일 오후 2시 산업선교 40주년 정책토론회에 이어 이튿날 오후 3시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출판기념회,기념예배,축하공연,영상자료감상회 등 행사를 펼친다. 정책토론회에서는 이갑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과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이 ‘민주노동조합과 산업선교의 역할’과 ‘한국 노사관계의 진단’을 주제로 각각 발표에 나선다.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는 산업선교에 대한 교단의 입장을 천명한 문건들과 신학자들의 주요논문,시기별 약사,인명진 이근복 진방주목사와 한명희(콘트롤데이터) 송효순(대일화학) 이옥순(원풍모방) 김미순씨(해태제과)등의 회고담 등을 담고 있다.
  • 안전검사 불합격판정 서울고속터미널 3층

    ◎폐쇄조치 무시 ‘꽃상가’로 둔갑/용도변경 수뢰 서울시 前 기획관 등 4명 구속 서울지검 특수3부(明東星 부장검사)는 19일 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과 대합실의 상가 용도변경 허가와 관련,뇌물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전 서울시 정책기획관 金光市씨(55·이사관)를 구속기소하고 서초구청 崔모과장 등 과장급 이하(5∼8급) 중하위직 공무원 5명을 징계토록 통보했다. 검찰은 또 金전기획관에게 뇌물을 건네고 용도변경 허가를 받은 뒤 임대과정에서 거액의 이익을 챙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주) 대표이사 李珉馥씨(62)와 전무 姜景植씨(57),터미널의류상가 운영회장 鄭東郁씨(49)를 특정경제 가중처벌법의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金전기획관은 서울 서초구 부구청장으로 있던 95년 10월 승차장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안전도 검사 판정에 따라 폐쇄됐던 고속버스터미널 3층 3,000여평을 꽃상가로 용도변경해 달라는 신청을 낸 李대표에게서 9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금강산 1일 관광 급피치/통일그룹,北과 40만원대 합의

    ◎과다경쟁 의식 경제성 강조/통일부 미승인 등 걸림돌 남아 현대그룹에 이어 통일그룹도 금강산관광사업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통일그룹 산하 금강산국제그룹은 13일 북한측과의 계약내용을 공개했다.‘현대측과 동시에’ 관광선을 첫 출항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사실도 그 하나다.朴普熙 회장은 이날 회견에서 관광객 1인당 100달러의 ‘입산세’를 북측에 지불키로 했다고 밝혔다. 통일그룹측은 북한과의 협의 절차는 완결됐다고 주장했다.특히 당일치기 금강산관광을 위해 필요한 4대의 쾌속선을 용선계약 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통일그룹의 금강산사업 전도에는 아직 상당한 걸림돌이 남아 있다. 지난 8월26일 통일부에 신청한 남북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는 금강산사업이 북한의 외화벌이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식의 일부 보수적 반대 여론과 무관치 않다.특히 현대와 통일측의 과당경쟁으로 비치면서 정부로서도 부담감이 없지 않다. 통일측도 이를 의식한 듯 현대측의 3박4일 유람선관광과의 차별성을 극구 강조했다.금강산 ‘1일 관광’의 6대 특징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예컨대 금강산 1일 관광은 곧 경제적이며 시간절약형이라는 것이다.전체요금이 40만원대의 당일치기 관광을 “IMF형 국민관광”이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경쟁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에 대한 ‘비교우위’공세의 성격도 강했다.때문에 통일그룹 쾌속선 출항의 전도에는 현대측의 금강산사업 진척속도와 여론 향배 등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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