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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엔 전도사 밤엔 성폭행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차례에 걸쳐 여성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S교회 전도사 문모(32)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문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신길동 연립주택에 들어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뒤 잠을 자던 40대 여성을 과도로 위협, 성폭행하는 등 최근까지 서울 영등포구와 마포구, 경기 파주시 등에서 모두 9차례에 걸쳐 12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S교회 신학원 1학년 재학 중인 문씨는 교육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15년 복역한 뒤 2005년 출소해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 [부고]

    ●이경희(포항공대 교수)상희(전 감사원 과장)목희(열린우리당 국회의원)중희(계명대 경영대학장)원희(이넷정보통신 대표)윤희(코오롱 차장)제희(제주대 교수)씨 부친상 채은식(삼양통상)정근영(다래통상 대표)씨 빙부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30●유영근(전 성문여고 교장)씨 별세 은애(미국 거주)운룡(전 LG 부장)진룡(전 문화관광부 차관)지애씨 부친상 김용민(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씨 빙부상 이현숙(새롬유치원장)현혜신(마취과 의사)씨 시부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2)2072-2016●김호영(창원대 교수)차동(과학기술부 국장)기동(기독교 전도사역 연구소장)씨 부친상 김영해(MK애드 대표)씨 빙부상 4일 부산 대동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30분 (051)550-9951●김세영(단국대 경상대 교수)우영(삼영개발 대표)덕영(보미종합건설 〃)씨 부친상 이세균(자영업)유해수(YJ모드 대표)씨 빙부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3410-6915●이기연(대한항공 부장)기승(건국대 교수)씨 부친상 김성인(태조엔지니어링 상무)씨 빙부상 5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2)2650-2752●이재덕(WKBL 심판연수담당)씨 부친상 4일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성당, 발인 6일 오전 8시 (02)2606-3019●류경우, 정석(인천대 석좌교수·전 해양수산부 차관)순석(회사원)기석(〃)길석(〃)씨 부친상 5일 전남 고흥종합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61)830-3442●김성욱(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 영업담당 상무)성삼(의왕시청 혁신분권팀장)씨 부친상 5일 안양 메트로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31)465-7777●이향걸(전 창원경륜공단 여자핸드볼팀 감독)씨 모친상 4일 부산영락공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51)790-5061●방인호(올림푸스한국 의료영업그룹장)씨 빙부상 5일 경주 동국대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4)776-9412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2)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교회 ‘봉화 척곡교회’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2)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교회 ‘봉화 척곡교회’

    이 땅의 초기 교회는 대부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공통점을 갖는다.10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초기 교회들이 몇몇 남아있지만 그나마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원 형태를 온전히 갖춘 것이 드물다.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청량산 자락의 산골마을 척곡리에 서있는 척곡교회(등록문화재 제257호)는 그래서 도드라진다. 선교사가 아닌 일반신도가 세운 뒤 100년의 풍상을 견뎌내며 옛 모습을 지켜온 흔치 않은 자생 신앙터. 초기 예배당이 대부분 기역(ㄱ)자나 일(一)자 형태로 지어졌던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정사각형을 띠고 있고, 예배당과 함께 세워진 교육시설인 서당(명동서숙)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교회다. 봉화군 법전면 내에서 좁은 산길을 타고 10여분쯤 차를 달리면 오른쪽 산 아래에 십자가를 인 허름한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함석 지붕 한쪽에 아담하게 올린 십자가와 예배당 앞쪽 허술한 철제 종탑에 매달린 종이 아니라면 교회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낯설다. 마을이래야 고작 5채 남짓한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고 휴대전화 통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산골. 좁은 산길에 노선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기대하기도 어려운 만큼 면내까지 가려면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 깊은 산마을에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집’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이 지었다면 대부분의 초기 교회들처럼 응당 인총 많은 요지나 높은 구릉의 터를 택했을 터. 그런데 하필 이 첩첩산중의 오지에 교회가 세워진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대한제국 탁지부(지금의 재경부) 관리(당시의 주사)를 지낸 김종숙(1956년 소천) 장로. 당시로선 일종의 외교관 양성소인 외국어학원 일본어 과정을 마치고 참의 승진이 예정되어 있던 김 장로는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설교에 감흥을 받아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고 한다. “일제의 사슬을 끊고 나라가 독립하기 위해선 야소교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터에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처가가 있던 봉화 유목동으로 낙향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전국 어디서건 기독교 총회는커녕 노회도 조직되기 전.30리 길을 걸어 문촌교회를 다니다가 몇몇 신도들과 기도실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하던 중 1907년 5월17일 마침내 척곡교회를 세웠다. 지금의 자리에 예배당이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09년 3월29일.9칸짜리 정방형 기와집 예배당과 6칸짜리 초가 명동서숙이었다. 예배당은 원래 맨 마루바닥에 기와 지붕이었지만 나중에 긴의자들을 놓았고 함석지붕으로 교체했다. 출입문은 지금은 남쪽으로 나있지만 처음엔 동서쪽에 각각 문을 따로 내 남녀의 출입을 구분했다. 남녀석 가운데엔 광목을 쳐서 목사들만 남녀 신자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북쪽 중심공간인 아치형 강단 장식과 강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방형의 공간이 퍽이나 이채롭다. 궁벽한 산골에서 신자들이 헌금을 내기 어려웠을 것은 뻔한 일. 신자들이 집에서 가져온 쌀을 십시일반으로 교회 살림에 보탰는데 지금도 예배당 양쪽 벽엔 성미(誠米·기도미) 자루가 걸렸던 못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예배당 앞의 명동서숙은 신자들을 교육하던 학교다. 성경과 국어, 산수, 한문을 가르쳤는데 당시 이 지역의 웬만한 주민들은 모두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1칸은 여학생 기숙사, 나머지 5칸은 교실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그 깊은 산골에서 기숙사까지 갖춘 것이 놀랍기만 하다. 명동서숙과 예배당 사이엔 자연석 돌담이 둘러쳐졌는데 지금도 낮은 담장 부분이 남아 옛 모습을 짐작케 한다. 헌신적으로 목회에 나섰던 김 장로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1918년 무렵엔 한꺼번에 120명이나 모여 예배를 보았으며 김 장로는 봉화지역 6개 교회의 시무를 맡을 정도로 척곡교회는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야소교 믿음의 뿌리가 나라 독립에 있었던 때문일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앞장섰던 김 장로가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면서 일경들의 탄압을 받았고 명동서숙이 폐교된 뒤 결국 신자들도 흩어지게 되었다. 해방후 몇몇 목회자의 인도로 부분적인 건물증축과 보수작업이 있었지만 워낙 산골인데다 신자들도 모두 도심으로 이전해 옛 신앙터의 명성은 되찾지 못했다. 척곡교회가 세워진 지 올해로 100년.70∼80대의 촌로 10여명만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스러진 교회가 되었지만 경북 지역에선 또렷하게 남아 있는 ‘믿음의 고향’이다. 김 장로의 장손인 김영성(82) 장로 부부가 교회를 버티고 있는 주인공이다. “척곡교회를 잊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후 지난 2004년 낙향해 여전도사 1명과 함께 교회를 지키고 있다. kimus@seoul.co.kr ■ ‘교장서 교회지킴이로’ 김영성 장로 할아버지 김종숙 장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집안의 모태신앙을 받은 김영성 장로는 신앙보다는 교육에 한평생을 바친 교육자다. 어릴 적 명동서숙에서 공부하면서 할아버지의 신앙과 독립운동을 지켜봤지만 목회보다는 교육을 택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인천 모 여고 교장을 끝으로 평생 몸담았던 교직을 정년퇴직한 뒤 부인 안난희(77)권사와 이곳에 내려왔다.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이민을 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자손들이 “함께 살자.”고 거듭 권유했지만 “척곡교회를 잊지 말라.”는 유언이 귀에 맴돌아 결국 교회 지킴이가 된 것이다. 17년 전부터 가끔씩 내려와 쓰러져가는 예배당이며 명동서숙을 보수하면서 교회 85주년 행사도 치르곤 했지만 지난 2004년 낙향한 뒤부터는 아예 예배당 옆 고택에 살면서 새벽예배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주일예배 찬송 때에는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고 예배가 끝난 뒤엔 인근 법전교회로 달려가 피아노 반주와 가스펠을 하며 신자들과 어울린다. 예배당에 남아 있던 초기의 당회록이며 교적부, 면려회록 같은 문서들을 정리하면서 척곡교회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한국 교회사엔 척곡교회 창립일이 1908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1907년 당시 척곡교회 교적부에 신도 두사람이 학습교인으로 기록된 점을 발견해 교단 총회에 알린 것이다. 그런 노력으로 척곡교회는 총회사적 교회와 영주노회 사적 제1호로 등록됐고 지난해엔 등록문화재 리스트에도 올랐다. “지금이라도 내가 떠나면 교회가 금세 허물어질 것 같아 떠나지 못한다.”는 김 장로. 그의 마지막 바람은 교회 개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와 신앙 선열들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다. 특히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봉화경찰서장 앞에서도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구속됐다가 해방 후에야 풀려났던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이 인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삼천만의 연인’이었던 ‘꾀꼬리가수’ 박재란씨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당시 옴니버스 음반들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데뷔 때부터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반 재킷을 장식했던 가수가 바로 박재란씨로 필자가 확인한 것만도 무려 100여종. 아울러 스크린에도 진출,1959년 박종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석우씨가 주제가를 맡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에서는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씨와 함께 특별 출연해 주제가와 함께 연기를 선보였고 이어 1961년, 영화 ‘천생연분(박성호 감독)’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1962년 발표된 히트곡 ‘님’은 가사 중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이듬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아울러 이 노래 ‘님’은 2001년, 작사가 차경철씨 출생지인 울산의 대운산 입구에 노래비까지 건립됐다. 방송과 영화, 취입과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절, 전국을 누비던 ‘박재란 쇼’는 언제나 몰려드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폐가 나빠져 약으로 버티면서도 하루에 무려 30곡이나 되는 노래 연습과 취입을 해야 했어요. 젊었을 때니까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들의 환호가 가장 큰 힘이었지요.” 무대에서 생긴 병은 다음 무대에서 치유되었을 정도로 그에게서 노래는 어려움을 이겨낸 치료제이자 면역력을 키워준 힘이었다.‘대중들 앞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게도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다.1959년, 영화주제가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연습하기 위해 작곡가 김광수씨 집에 갔다가 운명처럼 남편 박운양씨를 만난 것. 동갑내기이자 당시 성균관대생이었던 박운양씨는 작곡가 겸 연주인 김광수씨가 출연하는 ‘무학성 카바레’의 단골로 서로 의형제를 맺은 사이.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1989년 ‘한번만 더’로 사랑받았던 가수 박성신씨다. 아울러 남편이 영화제작에 손을 댔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함께 쇼 단체를 만들어 전국 공연에 나서기도 했지만 세상일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100평 남짓하던 서울 후암동 2층집에서 용산 단층집으로, 또 갈현동 전셋집으로 전락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이혼을 택한 뒤 1973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LA에 도착한 그는 나이트클럽 ‘타이거’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재기에 안간힘을 썼다. 동시에 한국을 오가며 음반을 발표하며 방송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무렵 미국 시민권을 가진 연예인들이 이따금씩 귀국해 활동하는 것에 대해 ‘국고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투서사건이 발생, 국내 활동이 일체 중단되자 그 역시도 점차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더구나 1979년, 아파트 화재로 모든 걸 잃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의 생활은 재기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그 집념이 병이 되어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악성 위궤양으로 발전,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유년시절 숱한 잔병치레를 통해 강한 면역력을 키운 동시에 어려웠던 시대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가수 박재란. 이제 그는 스스로 ‘긍정적으로 대할수록 긍정적으로 되는’,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섰던 그, 스스로의 ‘피그말리온 효과’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를 지탱해주는 에너지이다. 현재는 선교활동을 통해 ‘노래하는 전도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천사표’ 문근영 아름다운 기부

    국민 여동생 배우인 문근영(20)씨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종리 ‘땅끝 공부방’을 열고 있는 배요섭(51·땅끝 아름다운교회) 전도사는 “지난해 말 문씨와 문씨의 어머니 류선영(46)씨가 찾아왔다.”며 “신분을 밝히지 않고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류씨는 이후 공부방 인근 땅 500여평(시가 7500만원)을 사들여 배씨 부부에게 건넸다. 배씨는 “성함이라도 말씀해주셔야 기도할 수 있지 않으냐.”고 했으나 그는 말없이 떠났다고 한다. 결국 문씨와 닮았다는 주위의 말에 그의 어머니일 것으로 짐작만 했다. 그후 배씨는 토지 등기를 위해 등기부등본을 보고서야 아름다운 기부의 주인공이 문씨임을 알았다. 공부방에서는 결손가정 등 어린이 40여명이 먹고 자고 있다. 그러나 집주인이 건물 매각을 결정하면서 문을 닫을 위기였다. 2억원에 달하는 건축비 역시 문씨가 부담하기로 했다. 앞서 문씨는 광주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500만원을 지정 기탁, 아이들의 통학 차량을 바꿔주기도 했다. 배씨는 “꿈이냐 생시냐 할 정도로 벅찬 축복이었다.”며 “생각하지도 못한 큰 선물에 문씨와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黨개혁의 보루? 정치실험 패자?

    黨개혁의 보루? 정치실험 패자?

    ‘소수 개혁 모험주의자, 맹렬 기득권자, 정당개혁의 전도사’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 폐지와 기초당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당헌 개정의 효력을 정지시킨 장본인인 기간당원들에 대한 엇갈린 평가들이다. 현재 우리당의 기간당원은 6만여명.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아니면서 여당의 정계개편 구도를 일거에 무너뜨린 이들은 누구인가? 기간당원제 폐지와 기초당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당헌 개정이 확정된 뒤 서울 영등포당사 앞마당에서는 붉은 머리띠를 맨 기간당원들이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들은 각목과 몸싸움, 돈으로 대변되던 당원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현역 의원들에 당당히 맞서 ‘지지자’라는 흐름을 형성하며 소극적 동원 대상이 아닌 적극적 참여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 열린우리당은 기간당원제를 정치실험의 실패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급기야 기간당원 11명은 법정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갔다. 그 결과 탈당 사태의 진앙지라는 격앙된 평가가 뒤따랐다. 통합신당파와 당 사수파를 양극으로 가르는 분열세력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들이 ‘소수 개혁모험주의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맹렬 기득권자’라는 평가를 들으면서까지 기간당원제를 고수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 대부분은 생활인이었다. 한결같이 “가진 것이라고는 당적밖에 없는 우리가 무슨 기득권 세력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번 당헌개정효력무효 가처분 소송을 주도한 김석중(41)씨는 “기존 기간당원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우리당 내부 세력간의 싸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실패의 원인을 기간당원제로 떠넘기려는 시도로 보고 있었다. 김씨는 당 지도부의 기초당원제 변경이 “자신들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은 채 친노세력과 개혁당 출신들을 고사시키고 신당을 추진하려는 일치된 견해”라고 규정했다. 기간당원제에 대한 당 차원의 제대로 된 노력 없이 폐지 카드를 꺼내든 데에 대한 서운함도 배어 있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하진(40)씨는 “기간당원제 정착을 위한 당원 대상의 공청회나 교육기회조차 없었다. 기준도 없는 공로당원제를 도입해 영향력을 확장하고 싶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초당원제 변경 당시 당사에서 단식농성을 했던 전승규(49)씨는 “기간당원제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은 수직적인 정당문화에 익숙해 당원과의 수평적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번 법정 파문이 일부 강경 사수파의 ‘사주’ 때문이라는 소문에 이르자 이들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2004년 탄핵 전후 입당한 김세종(39)씨는 “누구누구 사주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존심 상한다.11명은 참정연과 국참, 노사모 등 다양한 의견그룹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정당개혁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상향식 공천과 당원 주권회복을 내걸고, 창당의 든든한 ‘보루’역할을 했다. 기존 정당을 ‘구태정당’으로 거세게 몰아붙이는 정당 개혁의 ‘전령사’들이었다. 이들이 엄청난 격변기 속에서 당내 작은 ‘블록’에 머물 것인지 당의 ‘기본골간’으로 거듭날 것인지, 열린우리당 새판짜기 과정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구혜영 나길회기자 koohy@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어머니 앞으론 저를 장군님이라 불러주세요.”천신만고의 경쟁 끝에 별을 단 아들이 감격에 겨워 어머니께 했다는 얘기라고 한다. 별을 다는 순간부터 신분은 장관급 장교가 된다. 별을 달기 전보다 대우가 몇십가지는 달라진다고도 한다. 김록권(53) 중장. 별이 세개인 의무사령관이다. 지난해 12월1일 의무병과에서는 최초로 3성 장군에 올라 관심을 끈 인물.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사건 등 줄이은 군의료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뒤라 3성장군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군의무 개선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그는 군 안팎에서 철저한 업무는 물론 독특한 개인적 소신과 실천으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육군 수도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령관은 소문대로 그가 왜 창군 이래 의무병과로는 첫 3성장군이 됐는가를 웅변했다. 그의 요즘을 요약한다면 두 가지 전도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군 의료에서 가장 취약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군의관 직의 매력을 전하는 ‘군의관 전도사’. 또하나는 사생활 측면에서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한 종교적 전도사다. 먼저 군의관 관련 질문부터 해보았다. -현재 군 의료인력은 임상경험이 거의 없는 단기 군의관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병사들이 거의 실습 수준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단기 군의관이라고 해도 의사 자격을 가지고, 소정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직업적으로 일하는 장기 군의관은 전체 군의관 중 3%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정원의 25%밖에 채우고 있질 못합니다. 국·공립 병원의 58% 수준에 머물고 있는 보수체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급인력을 군에 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군의무발전추진계획’에 따라 대우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올해 ‘군의관 임용 등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서 2008년까지는 국·공립병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를 높이겠습니다. 또 우수한 인력 선점을 위해 국방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미 각 의학대학원에 정원 외 40명을 더 뽑아 미래의 군의관으로 위탁교육한다는 데 합의가 돼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사로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할 뿐이지 일반사회에 못지 않은 지위와 명예, 보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군에서는 장군으로 승진할 수도 있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데서 느끼는 보람도 특별합니다.” 군의관이라고 누구나 다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현재도 정원의 75%가 부족한데 무슨 큰 걱정이냐.”며 내년부터는 의무병과의 장군 숫자가 현행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게 돼 문호는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 정색을 한다. 사실 김사령관은 앉은 자리에서 계급만 3성장군이 된 것이 아니다.‘군의무발전 추진계획’에 따라 앞으로 의무사령관의 역할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의무사령관은 16개 군병원을 관장하는 ‘의료원장’격에 불과했다. 반면 병사들의 의료 불만이 주로 발생하는 야전은 각 군에 속해 의무사령관의 소관 밖에 있었다. 이번 승급은 다원화된 의무지휘 체계를 단일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의무사령관이 국방부 의무본부장이 돼 육·해·공군 의무를 통합 관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무병과 장군 숫자도 6명 늘게 됐다. -전반적인 군 감축추세와 안맞는 것 아닙니까. 저항도 있을텐데요. “일단 군의무를 단일화하는 것은 미국만 예외지 세계적 추세입니다. 또한 의무 강화는 국민적 요구입니다. 국가가 무기 획득에만 치중하고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인 병사의 건강에는 소홀하다면 계산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병과가 커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 역풍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김 사령관은 이 대목에서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군의무발전계획’의 핵심은 병사의 의료접근권 보장인데 언론은 3성장군 배출이나, 국방의학대학원 신설 등 조직적 측면만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군 의무체계가 단일화되면 2500명의 군의관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1차의료를 자유롭게 받고, 후송체계를 통해 군병원에서 고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에 의료접근권 보장도 명기하도록 했다. 과도기 대책으로 민간서비스 연계, 군야간병원 운영 등도 시행에 들어갔다.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은 올해부터 7년간 총 1조 3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첫해 예산 1200억원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올해는 제도 개선과 장비 등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 병원의 기초진단 및 검사장비 보강, 중형 구급차 및 환자수송 전용버스 구매, 전역전 건강 검진물자확보, 전방사단 의무시설 환경개선 등이 우선 착수됩니다. 의무발전계획은 어떻게든 실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군병원에 대해 신임평가를 받겠습니다. 민간병원들처럼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 주관의 병원평가를 받는 겁니다. 내부에서는 반대가 많지만 잘 나오면 잘나오는 대로, 못나오면 못나오는 대로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이야기는 사적인 주제라 공개적으로 거론할 부분은 못된다. 그러나 김사령관의 경우 군 투신 자체가 선교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기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군생활 중 종교를 갖게 됐다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의대 졸업하고 결혼한 뒤 5년 동안 아내를 시집살이 시켰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면서 처음 살림을 나갔는데 그동안 고생을 보상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싶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된 겁니다.” 장기 군의관으로 눌러앉게 된 종교적 개인체험은 공개하기 뭣하지만, 종교적 신념은 그 후 군과 가정생활을 끌어가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 주민들과 옥수수를 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때나 승진에 누락돼 낙심했을 때, 이런 신념이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 강북에 살며 사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던 자녀들이 바르게 커준 것도 이런 실천적 삶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내는 지금껏 매달 월급날이면 아이들을 불러 아버지에게 한달 동안 수고하셨다며 절을 하도록 하고 자신도 함께 인사를 한다. 김 사령관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며 주말에도 골프모임보다는 가족을 선택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그렇게 자란 장남이 지금 신학대학 4학년생이다. 김 사령관은 주변을 밝게 하는 얼굴을 가졌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의 삶을 말한다고 한다. 그의 긍정적 힘이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의 걱정을 가시게 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yshin@seoul.co.kr ■ 김록권이 걸어온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6남매 중 다섯째로 대식구였지만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부친은 전당포를 자주 들락거릴 정도였다. 의대생일 때 형과 누나까지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었다. 부친이 학자금 대출을 위해 여기저기 보증인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 위탁 장학생’ 제도였다. 덕분에 본과 1학년 때부터 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입대해 7년을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의무 복무기간을 지난 후엔 전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 군의관의 길을 택했다. 이유는 군복무 중 갖게 된 신앙 때문이었다. 군 선교를 필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1990년 국군 현리병원 원장을 시작으로 창동, 부산, 서울지구, 대전 등 전국의 국군병원에서 근무했다. 가는 근무지마다 화장실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주말엔 무의촌 진료, 여름휴가 땐 해외봉사활동을 다녔다. 국군군의학교장, 육군본부 의무감을 거쳐 2005년 11월 의무사령부 사령관에 취임했다. 사령관 취임 다음해인 2006년 1월 소장으로 진급했고, 같은 해 12월1일 중장으로 진급을 거듭했다. 진급속도도 초고속이었지만, 의무병과 사상 최초의 3성 장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얼핏 순탄하게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 같지만 시련도 있었다. 이른바 잘나가는 보직을 벗어나 갑자기 외곽으로 돌려졌고, 동기생보다 진급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장성 진급이 2년이나 늦어 이젠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황까지 몰렸다. 갈등하기도 했지만 ‘소명의식’으로 버텼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군 최초로 ‘군의무비전 2015’를 입안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군의무비전 2020’을 세웠고,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 사건으로 온나라가 들끓을 때 의무사령관에 올라 ‘군의무발전 추진계획’을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 [부고]

    ●이준범(동아일보 꿈나무재단 이사)씨 별세 용승(공군 군의관)용진(약사)씨 부친상 김민형(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임상전임강사)씨 시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3410-6911●임태근(전 성북구의회 부의장)태열(경향신문 스포츠칸본부 행정지원팀장)씨 모친상 18일 서울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5시 (02)2072-2018●김진경(전 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씨 상배 태연(사업)소연(의사)씨 모친상 최대용(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선임운용역)염태형(새천년연세의원 원장)씨 빙모상 1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30분 (02)392-0299●함근배(전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씨 별세 철(사업)세용(자영업)한희(전북대 교수)인희(이화여대 〃)혜원(디자이너)씨 부친상 홍승기(사학자)이태훈(전도사)씨 빙부상 1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2일 오전 10시30분 (02)392-2099●이상만(GM대우자동차 이사)상용(아트젠커뮤니케이션 부회장)상곤(남곡상사 대표)상묵(아산기획 본부장)씨 모친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02)3410-6914●황하량(전 예천중 교장)씨 별세 상근(GS칼텍스 상무)성근(중앙일보 조인스랜드 부장)씨 부친상 19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860-3591●김재환(전 조흥은행 국제영업부장)씨 별세 최도영(LG애드 미디어본부장)백봉훈(국민은행 신용여신관리센터 과장)씨 빙부상 1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2)590-2352●최종상(우리은행 영등포지점장)종택(건축디자이너)씨 모친상 1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1일 오전 (02)392-3299●윤현종(제이에스알 마이크로코리아 과장)씨 부친상 임호익(ING생명 FC)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11시 (02)3410-6978●원유상(이진골재 대표)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0●임선희(수필가)씨 별세 구성회(인본K&I 전무)철회(고려학원 강사)씨 모친상 조병철(세계일보 논설위원)씨 빙모상 19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2650-2746●최종대(약국 운영)정애(캐나다 거주)신애(한국리서치센터 부사장)윤애 정아(미국 거주)씨 부친상 김정학(수원지법 부장판사)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410-6915
  • [스포츠 라운지] 김준성 연세대 취업정보실 부실장이 본 퍼거슨감독 용병술

    요즘 잘 나가는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한참 부진했던 지난해 4월, 알렉스 퍼거슨(65) 감독은 “그의 공간 창조 능력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언론에 대놓고 칭찬했다. 며칠 뒤 박지성은 아스널 전에서 골을 터뜨려 감독의 신뢰에 답했다. 브랜드 가치만 1조 3000억원, 한해 순익만 4000억원을 내는 거대기업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1위를 질주하는 데는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쟁쟁한 스타들의 결합 덕만은 아니다. 그물을 짜듯 선수들의 역량을 결합하는 퍼거슨이 있기에 가능했다. 퍼거슨의 독특한 전략을 벤치마킹하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인재 채용 원칙을 파악할 수 있다고 김준성(53) 연세대 취업정보실 부실장은 강조한다. 유럽축구 마니아인 김 부실장은 최근 ‘퍼거슨의 선수 선발 및 활용패턴 분석 보고서’를 냈다. 취업 관련 강연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다.‘퍼거슨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 ●흐름을 읽는 링커형 중용 퍼거슨이 다른 유명 감독들과 차별화되는 첫번째는 경기 흐름을 읽고 협응(協應)능력이 뛰어난 선수를 고른다는 점이다. 패스해달라고 압박을 가하는 선수보다 흐름에 민감한 링커형을 선호한다. 틈만 나면 그는 “축구는 11명이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우리 기업처럼 몇차례 인터뷰를 거쳐 채용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유망주들을 유심히 지켜보다 한 순간 낚싯대를 잡아채듯 선발한다. 맨유 유소년팀에서 데이비드 베컴을 발탁, 세계적인 스타로 키운 것도 바로 그였다. 김 부실장은 “우리 기업도 그물을 드리우고 기다리는 채용에서 낚시형 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퍼거슨은 한번 마음을 준 선수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시골에서 공을 차던 소년 호날두를 발견한 것도 그였고 루니에 부상을 입혀 지난해 독일월드컵에 조기 출전하지 못했을 때 팬들의 비난 속에서도 호날두를 감쌌다. 둘을 화해시켜 최고의 골게터 콤비로 만든 것은 물론이다. 퍼거슨 감독이 네덜란드 리그에서 뛰던 박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입단을 권유한 것은 그가 피부색이나 국경을 의식하지 않고 인재를 선발함을 보여준다. 챔피언스리그 AC밀란 전에서 골을 넣는 장면을 본 뒤 “어떻게 그렇게 빠른 슛을 날릴 수 있느냐.”고 물어 박지성의 결심을 이끌어냈다. ●모두에게 주전 의식 심어 맨유에선 모두가 주전이다. 퍼거슨의 로테이션 기용 원칙 덕이다. 주전이 못 뛰게 될 때야 후보가 나서는 다른 팀과 다르다. 퍼거슨 감독은 또 당장의 성적보다 선수의 축구인생을 더 중시한다. 루니가 다쳤을 때 월드컵 조기 합류에 반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상에서 돌아온 박지성에게 서서히 출장 시간을 늘려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부실장은 “이처럼 따듯하고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퍼거슨은 호날두가 이번 시즌 15골을 넣으면 100달러를 주기로 내기를 걸었다. 할아버지 답잖게 젊은 선수들과 호흡하는 것이다. 이는 신세대와 노장의 결합으로 전력을 극대화한다. 김 부실장은 유럽축구 중계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보고 해외 인터넷 축구사이트들을 탐독한다. 테니스를 30년간 즐긴 데다 최근에는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과격한 농구를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그는 “퍼거슨은 지금도 운동장에 가장 먼저 나와 공을 찬다. 누구보다 축구를 즐긴다. 그러니 선수들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퍼거슨 감독은 누구?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맡은 지 올해로 21년이 된다. 빠르고 거칠기로 소문난 영국 프로축구에서 이토록 오랜기간 팀을 맡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보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비롯, 총 8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등 맨유를 최고의 구단으로 만들었다.1998∼99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축구협회(FA)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도 일궈냈다.120여년 영국 축구 사상 전무후무한 일.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았다.2004년에는 통산 1000경기 출장이란 대기록을 작성했다. 현역 시절 공격수로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뛰기도 했던 그는 껌을 열심히 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씹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그가 그만큼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카메라 앞에선 화를 내지 않는 퍼거슨 감독은 선수 전체의 협력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을 때 라커룸에서 문짝을 걷어차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정 선수를 겨냥해 실수를 지적하는 일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선수 등용 8원칙 1. 흐름을 읽고 조직에 도움을 주는 ‘링커형’ 선수를 고른다. 2. 유망주를 수년간 ‘낚시’하듯 골라 키운다. 3. 한번 기용하면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4. 국경 없이 인재를 찾는다. 5. 로테이션 원칙은 철저히 지킨다. 6. 선수의 ‘직업능력 보존’을 우선한다. 7. 패기와 경험을 조화시킨다. 8. 선수의 탁월한 부분을 정확하게 얘기한다.
  • [15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YTN 오후 1시40분) 삼국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온 코리안페이퍼 ‘한지’. 오랜 전통 문화의 한 페이지로만 장식됐던 한지의 숨결이 살아난다. 과기원에서는 한지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한지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착수했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있는 우리의 종이 한지를 만나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 속을 달리는 별밤 특급열차. 매주 금·토요일 저녁 8시면 아름다운 음악과 향긋한 와인을 실은 야경열차가 서울역을 출발한다. 장흥, 의정부, 왕십리 등을 지나며 추억을 선사하는 별밤 특급열차. 별밤 특급열차를 타고 이 겨울, 무료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을 떠나본다.   ●사랑도 미움도(SBS 오전 8시30분) 인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고는 지금쯤 재혁의 회사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각, 재혁은 사장으로부터 채용 비리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보라는 말과 함께 혹시 그 여자직원과 사귀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지만, 자기는 공정하지 않게 채용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경선과 세영은 건우의 책상 위에 올려진 양평 땅 종합토지세 영수증을 발견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한다. 두 사람은 송씨가 계속 양평 땅을 얘기하는데도, 건우가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생각에 잠긴다. 서경은 건우를 찾아 소영이 양평 집을 알아냈다며 다급해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50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보호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여성 책임자 김홍남 관장. 반만년 역사의 문화재를 보유한 중앙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까지 한국의 대표적 문화인물, 김홍남 관장을 만나본다.   ●TV, 책을 말하다(KBS1 밤 12시40분)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라 인문학을 가르쳐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인문학 전도사, 얼 쇼리스다. 얼 쇼리스의 특별한 행보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의미하는 바가 더욱 크다. 작지만 소중한 실천, 인문학으로부터 쇼리스가 건져 올린 희망이 무엇인지 만나본다.
  • “잘못된 승강기 예절이 사고 불러요”

    “잘못된 승강기 예절이 사고 불러요”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른쪽은 서 있고 왼쪽은 다른 사람이 지나 갈 수 있도록 열어 놓는 것은 잘못된 예절입니다. 급해도 걷거나 뛰면 안돼요.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춰서면서 왼쪽 줄로 걸어가던 사람이 크게 다치는 걸 본적이 있죠.” 박영숙(50·여)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하 안실련) 산하 전국어머니안전지도자중앙회 회장은 8일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승강기 명예검사원’ 교육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안실련 전국어머니안전지도자중앙회 109명은 이날부터 1박 2일에 걸쳐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 주최,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첫번째 승강기 명예검사원 교육을 받는다. 이들이 이곳에서 받은 교육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 승강기의 작동원리와 안전수칙. 이곳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주변 어린이, 초등학생 및 학부모, 노인 등을 대상으로 생활안전 및 승강기 안전바로타기 교육을 펼치게 된다. 박씨를 비롯, 어머니회 회원들이 교육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자녀들의 생활안전에 대한 관심이다. 군인으로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는 박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90년도부터 등하교 길 교통안전 활동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안실련 창립멤버로 활동해왔다.”면서 “승강기 안전은 많은 이들이 알수록 좋은 일이어서 안전 전도사가 되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낯선 승강기 단면도와 작동원리를 이해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심히 받아 적던 그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많은데 무관심이 문제”라면서 “쉽고 편하게 교육을 받고 실천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며 소감을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사회플러스] 탈북 소녀 2명 라오스 대사관 진입

    10대 탈북소녀 2명이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에서 탈북자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는 김희태(37) 전도사는 21일 “지난 19일 오전 탈북동포 7명과 함께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갔으나 성인 5명은 대사관에 들어갈 수 없었고 2명의 소녀만이 대사관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산업현장의 ‘맥가이버’ 될래요”

    “산업현장의 ‘맥가이버’ 될래요”

    “하루 평균 7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15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천국제공항을 2개 지을 수 있는 돈이지요.” 성우 배한성(61)씨가 20일 노동부의 초대 ‘산업안전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배씨는 앞으로 산업안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TV, 라디오, 신문 등 각종 산재예방 캠페인과 홍보 등에 참여하게 된다. 또 노동부, 한국산업안전공단 등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자살이나 교통사고 등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높은 편이지만 산업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산업현장의 ‘맥가이버’‘가제트형사’(자신이 목소리 연기를 했던 주인공들)가 돼서 안전의 전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30분) 고도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 직업인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교육제도 확립은 필수다. 전문대학은 현재 입학정원 기준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5분의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한국전문대학협의회의 한숭동 회장과 함께 전문대학의 현황과 발전방향 등에 관해 알아본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5분)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서울 특히 강남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오르고, 강남으로의 인구 이동은 계속되고 있다. 좀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서 강남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진단하고, 사교육에 중독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알아본다.   ●코리아 코리아(EBS 오후 8시) 마술을 사랑하는 식구들 ‘마식 팀’. 축구를 사랑하는 사나이들인 동국대 대표몸짱 ‘토토 팀’. 비상을 꿈꾸는 20대 친구들 ‘백상 팀’. 외국인에게 나라사랑 한글사랑을 전하는 한글 전도사 ‘하람 팀’. 금강산 티켓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 그 행운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 지켜본다.   ●90일, 사랑할 시간(MBC 오후 9시55분) 지석과 미연이 탄 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하염없이 달린다. 지석은 미연의 손을 잡고 싶지만 그 손을 거둬 운전대를 꽉 잡는다. 불안한 태훈은 미연에게 전화를 걸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 다음날 아침, 지석은 한 알 남은 약을 먹으며 미연과 함께 있는 동안만은 쓰러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황진이(KBS2 오후 9시55분) 진이를 구하기 위해 관졸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돌린 김정한. 잡혀가던 김정한은 우남에게 거문고를 부탁한다. 거문고를 건네받은 진이는 김정한이 직접 새겨놓은 글씨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김정한의 추포 소식을 들은 중종은 친국을 하겠다며 국청을 명하고, 의금부에선 김정한의 주리를 튼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선물을 할 때 종류 선택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포장. 포장도 선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똑같은 선물이라도 포장에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선물을 하는 사람의 정성이 훨씬 더 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때와 장소, 연령에 알맞은 선물포장법을 알아보고 각 선물별 포장하는 방법을 배운다.
  • ‘사부일체’… 자살시도 제자 데려다 친딸처럼

    ‘사부일체’… 자살시도 제자 데려다 친딸처럼

    “은숙이를 만난 것도, 상을 타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인가 봐요.” 사정이 딱한 자신의 제자를 집에 데려와 자식처럼 훌륭히 키워낸 여선생님의 이야기가 세밑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제10회 교육현장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대구일중 박영숙(62) 교사는 이 한마디만 자꾸 되뇐다. 그는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용기를 나누려 했을 뿐 수상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교사가 전한 ‘작은 나눔, 큰 사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간다. 경북사대 부속중학교에 근무하던 그는 자기 반의 1번 이은숙 학생이 공납금을 내지 못한 채 오랫동안 결석을 해 제적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일단 자신의 봉급으로 위기는 모면해 놓고 은숙양의 집을 찾아 나섰다. 단칸 셋방에 새엄마 구박까지 시달리는 걸 보자 박 교사는 불쑥 “은숙이를 데려가야겠다.”는 말을 뱉고 말았다. 운전사였던 은숙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내고 직장을 잃은 상태여서 오히려 고마워했다. 하지만 박 교사는 남편에게 상의도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도 11세와 8세,6세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박 교사의 남편은 “게을러빠졌어. 자기 방 닦는데 한 손은 배를 움켜쥐고 하기 싫어 죽는 모습이라니….”라며 혀를 찼다. 은숙양이 이 집에 오기 전 자살하려고 하이타이(세제)를 물에 타 마셨던 게 탈이 난 것이었다. 남편은 그 후 은숙양을 친딸처럼 애틋하게 여겼다. 이웃들로부터 ‘딸을 데리고 들어왔다.’는 수군거림까지 받으면서…. 삼남매도 “언니에게만 죽 쑤어주고 옷을 사 준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그러나 사정을 말해주자 미안해 하며 은숙양을 따르기 시작했다. 은숙양은 박 교사 부부의 보살핌 속에 명문 제일여상으로 진학해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지금은 박 교사 둘째 아들이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체험담으로 불우한 청소년들을 교화하는 데 열심이다. 박 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변에 어려운 학생들을 많이 봐왔지만 은숙이는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권유로 수기를 쓰게 됐지만 혹여 은숙이의 자존심에 상처가 될까, 결혼하는 데 지장을 줄까 한동안 장롱 속에 넣어뒀었다.”고 말했다. 이어 “은숙이가 수기를 보고 울기에 ‘미안하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그랬더니 ‘아니에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하나님의 뜻이에요.’라고 동의를 해줘 응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사는 25년 전을 다시 떠올리며 “갑작스러운 가정방문이 오늘의 인연까지 이르렀다.”면서 “아주 체구가 작은 아이가 자기 몸보다 큰 쓰레기통을 들고 나오는 걸 보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번 교단체험 수기 공모전에는 모두 406편이 응모,36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돼 19일 교육인적자원연수원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수상작들은 작품집 ‘교실에서 발견한 보물섬’으로 발표된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난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소셜 디자이너”

    “난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소셜 디자이너”

    ‘시민운동의 대부’(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나눔과 공익의 전도사’(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3월27일 민간 싱크탱크를 자임하며 만든 ‘희망제작소’는 박 변호사가 시민과 맺은 세번째 사랑이다. 시민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와 열정을 발굴해 정책과 공공의 이익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벌인 일이다.‘정책’과 ‘비전’을 중시해온 평소 지론의 연장이다. 그는 한 사석에서 “진보진영은 콘텐츠의 위기를 맞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콘텐츠가 이미 다 수용돼 좋은 사회를 만들었는가. 언제까지 명분만 외치며 불우이웃돕기 차원의 캠페인만 벌일 것인가.”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애정을 가져온 진보진영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음을 역설한 말이다. 정치권도 다를 바 없다. 정책이 아닌 정쟁 중심의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정당도 정책보다는 감정 중심의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의 열린정책연구원과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등 정당 부설연구소에 1년에 수십억원이 지원되고 있지만 민생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어느 정도 쓰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쓴소리가 덧붙여졌다. ‘준비된 콘텐츠’를 강조하는 그에게 정치권은 고비마다 짝사랑을 던졌다.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앞다퉈 ‘박원순 대안론’을 흘리고 있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도 ‘경쟁력있는 참신한 외부선장’이라는 수식어를 보태고 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단호하다. 아예 ‘1시간 단위의 살인적인’ 일정표를 보여주며 “여기 정치권 관계자와 만나는 일정이 한 군데라도 있냐.”며 수첩을 꺼내 펼쳐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하는 일이 이미 정치 아니냐.”며 완곡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 절대 안한다.”(참여연대 물러날 당시)▶정치하겠다고 하면 말려달라(출입기자간담회)▶대선후보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해보겠다(신진보연대 인터뷰)등 출마입장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며 기대를 걸었던(?) 기자에게 예상 답변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런 일에 열중해왔는데 모든 걸 다 바쳐 해보려고 했던 일”이라면서 “내가 만약 정치할 생각 있었다면 희망제작소 차리고 일을 이렇게까지 벌여 놨겠냐.”고 거듭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고민은 같다. 조선시대에도 관리가 있으면 초야에 있으면서 상소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사람이 사는 데는 여러 길이 있게 마련인데 사회적 명성만 있으면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보수진영의 한 교수가 “최근 박 변호사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탈색’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권 진출의사가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정치라는 게 분명한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하는 건데 하려고 든다면 굳이 탈색해야 할 필요가 있나.”라고까지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만났던 희망제작소 관계자는 끊임없는 박원순 영입설에 대해 “박원순 후보론은 거론 자체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제성호 교수가 ‘박원순 후보론’을 거론한 뒤 본격화됐다는 것인데 “신종 운동권 세력들이 진보진영의 후보감이라고 생각해서 초장부터 흔들어놓기 위해 제기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치권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정책과 콘텐츠 부재가 그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대목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새출발 이전에 치열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뒤늦은 얘기지만 그는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옮기기 전의 일화를 들려줬다. 이회창 전 총재에게 “당사를 팔고 천막당사로 옮기더라도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더니 이 전 총재가 “팔려고 그래도 건물이 비싸서 살 사람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고생할 생각이 있었다면 전세를 놓더라도 나갈 수 있었다.”며 제대로 반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통합신당과 당 사수를 놓고 격론중인 여당도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자성하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그는 충고했다. 박 변호사와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책상 위에는 희망제작소가 진행중인 지역사회 공무원 교육을 위한 교재로 가득차 있었다. 정치 얘기할 때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보이던 그가 희망제작소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는 외국자료며 교재까지 찾아가며 너무나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하긴 그의 꿈은 ‘과로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국민 모두가 정책입안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모르겠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개혁을 만드는 길이라면 창의적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며 4번째,5번째 ‘세상과의’ 사랑을 놓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테러전쟁 명분으로 인권희생 안돼”

    “테러전쟁 명분으로 인권희생 안돼”

    오는 31일 10년 간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떠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사실상의 고별 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난 총장은 이날 미국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 있는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연설 장소로 선택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이 60년 전 트루먼의 국제사회 지도력과 모범을 회복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해 “멀리 내다보는 지도력”을 발휘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어떤 나라도 자국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 해선 안 된다. 트루먼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강대국의 책임은 지배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민주주의의 원칙, 인권존중 이념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난 총장은 “힘, 특히 군사력은 국제사회가 옳은 목적이라고 확신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우에만 사용돼야 한다.”면서 “미국이 자국의 이상과 목표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쳐졌을 때 해외의 미국 우방들은 곤경에 처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밝혔다. 다분히 이라크 전쟁을 겨냥한 말.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결과, 미국의 도덕적 위상이 손상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날 아난 총장은 부시 대통령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연설 장소인 트루먼 기념관의 주인공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유엔 창설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아난 총장은 이날 트루먼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반복적으로 역설했다. 의도적으로 부시 대통령과 비교하며 작정하고 쓴소리를 뱉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난 총장의 연설 내용과 관련, 미 정부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숀 맥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아난 총장은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엄밀히 말해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의 정책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 패권주의의 국제질서 속에서 나름의 역할로 갈등·분쟁의 현장을 찾아다닌 아난 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총장 재임 기간 배운 교훈 ‘5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집단책임과 지구적 유대, 법치, 상호책임, 다자주의 등 5가지 교훈은 “미래의 국제관계에 필요한 원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법치는 특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아프리카 빈국 가나 출신으로 미국·스위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아난 총장은 1962년 유엔사무국 직원으로 출발,‘세속의 교황’으로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임기 내내 이라크 전쟁과 수단 대량학살 사건 등 쉼없이 이어진 사건 속에서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20001년엔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 자신의 아들이 ‘이라크 오일·식량 프로그램’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고, 유엔사무국 직원들의 추문이 잇따라 터지면서 이미지가 퇴락했다.14일 반기문 제8대 유엔사무총장의 취임 연설과 함께 아난 총장은 실질적으로 퇴장하게 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농어촌청소년대상-공로상] 다양한 농촌사랑 홍보활동

    ●농업 박병석씨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해 농심(農心) 뿐만 아니라 농촌사랑을 제고시키고 있다.30평 상당의 농특산물 전시실과 50평 규모의 농경유물 전시관이 운영될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입했으며 KBS라디오 ‘강원패트롤’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성공사례집 ‘미래를 열어가는 선도 강원농업인’을 발간, 농업인에게 영농의욕과 자신감을 고취시켰다.‘인심 좋고 살맛나는 강원 농촌으로 오십시오’라는 인쇄물을 제작, 전국에 뿌리는 등 강원 농촌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6년간 한국문학 번역한 영국인 안선재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6년간 한국문학 번역한 영국인 안선재 교수

    “선생님, 된장찌개를 어떻게 영역해야 하나요?” “….” “그러면, 사랑채는요?” “….”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터. 영어에 어느정도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특유의 구수하고 감칠맛나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나 민족적 한(恨)과 정서를 그때그때 똑 떨어지는 말로 찾기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같은 ‘흥’과 ‘한’이 시나 소설, 우리 문학의 행간 깊숙이에 촘촘하게 엮어져 있어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될 무렵이면 영역 문제에 대해 새삼 거론되곤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한국을 가장 잘 알고, 또 한국 문학을 충분히 이해하는 외국인 교수면 어떨까. 물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출신은 당연지사여야 하겠지. 지난 주(11월27일~12월1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도서관에서는 흔치 않은 전시회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한국 문학을 16년째 번역해온 서강대 안선재(64·영국명 브라더 안토니) 영문과 교수가 그동안 한국문학을 영역한 책 26권을 모아 선보였던 것. 특히 이 전시는 내년 2월 안 교수의 정년퇴임을 앞둔 행사여서 김광규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축하와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특유의 능숙한 표현력으로 그가 영역한 책을 얼핏 보면 이렇다. 천상병의 ‘귀천’(Back to Heaven), 고은의 ‘화엄경’(Little Pilgrim), 김광규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Faint Shadows of Love), 김영무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고은의 ‘만인보’(Ten Thousand Lives), 서정주의 ‘밤이 깊으면’(The Early Lyrics)…. 올해에만 마종기의 ‘이슬의 눈’(Eyes of Dew), 고은의 ‘내일의 노래’(Songs for Tomorrow) 등 4권을 펴냈다. 안 교수는 1991년 대한민국 문학상 번역상을, 그리고 1995년에는 이문열의 ‘시인’(The Poet) 영역판으로 대산문학상 번역상을 각각 받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고은의 선시(禪詩) ‘뭐냐’를 영역한 ‘Beyond Self’를 읽은 미국 비트세대의 대표적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안 교수의 번역솜씨에 대해 “번역이 뛰어나다. 미국 시인들에 좋은 귀감이 된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쯤되면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많은 공헌을 한 셈이다. 그가 한국문학의 해외전도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11월28일 서강대 인문관 안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시간 동안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국적 냄새가 코끝에 물씬 풍겨온다. 가득한 책장 사이로 불교관련 그림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녹차 마시는 다기(茶器)들도 눈에 많이 띈다. 의아한 표정에 눈치를 챘는지 “1990년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나가 틈틈이 다기를 구입했고 1994년에는 녹차 만드는 사람들을 알게 돼 지리산을 가끔 찾기도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는 1980년에 한국에 처음 온 뒤 서강대에서 강의를 맡던 1994년 한국인으로 완전히 귀화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적인 것에 흠뻑 빠진 까닭이 아니겠느냐고 웃는다. 한국문학을 번역해오면서 느낀 소감을 물었다.“프랑스에 있을 때 시를 영역한 경험이 있다.”면서 “한국문학은 전통적 재미와 여유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와 비교할 때 문법과 스타일이 다르고 특히 한국적인 ‘맛’을 번역하기가 힘들다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안성댁’‘보릿고개’‘된장찌개’‘사랑채’ 등을 번역하려면 고민이 많이 된단다.‘된장찌개’와 ‘사랑채’를 어떻게 번역하느냐고 했더니 “된장찌개는 Bean Paste Soup, 사랑채는 Men’s Court정도면 되지 않겠느냐.”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일부 인터넷 상에는 사랑채를 ‘Love House’ 개념으로 잘못 번역된 곳도 있다.) 우리나라 번역문학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많이 번역해내는 것보다는 국제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헝가리나 불가리아 등 유럽쪽에서도 1년에 외국어로 번역되는 게 고작 10여권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2005년에만 영어로 30권이 출간됐다고 했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소 또한 다량의 번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스의 경우 작은 소설을 불과 2권정도 번역됐는데 그나마 팔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올해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고은씨에 대해서는 “다음 노벨상 수상자로 분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제한 뒤.“그의 시는 그냥 보여주기 위한 시가 아니라 압축된 인생이 꾹꾹 담겨 있으며 그동안 9개국어로 25권정도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의 작품 중 ‘만인보’는 정말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고은 시인과는 1991년 그의 시선집을 번역하면서 알게 됐다. 이어 한국문학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한다.“최근 세계문학의 흐름이 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문학은 세계의 흐름과 동떨져 있다.TV드라마같은 작품이 너무 많으며 한국문학은 이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라면서 세계 작가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요즘 전통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느날부터인가 된장보다는 스시(壽司)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옛날 왕궁음식 등을 프로모션하는 일이 여전히 부족하고,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와 집값 걱정 때문에 전통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의 전통음식은 정말이지 건강을 유지시켜줍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한국의 발효음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있지요. 다시 찾아야 합니다.” 안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자주 펼쳐 주위에서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옛날 고시나 한시는 물론 공자와 맹자 등도 자주 읽어 한자에도 어느정도 익숙하다.“한자를 모르면 한국 문학의 깊이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춘향가나 판소리는 중국과 다른 고귀함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재미없어 외면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1940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테제(Taize) 공동체 수사(修士)인 안 교수는 잉글랜드 지방 출신으로 필리핀 빈민촌에 머물던 중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26년 전 한국에 오게 됐고 1985년부터 서강대 영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영국에는 현재 사촌 등의 친척이 산다. 서울 화곡동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지내는 그는 홍어찜과 산채비빔밥을 좋아한다. 가끔 지리산으로 떠나 현지에서 나는 싱싱한 산나물을 먹고 물소리를 들으며 녹차를 마실 때가 더없는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당연히 독신이기에 눈치봐야 할 가족도 없다. 휴일 인사동에 나갈 때면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를 꼭 만나 정담을 나눈다. 목 여사의 수필집 ‘날개없는 새’(The Poet´s Wife)를 번역한 인연도 있다. 정년 퇴임 후의 계획을 묻자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의하고 책을 보고 번역을 하고, 차마시고….”라며 활짝 웃는다. km@seoul.co.kr
  • [커리어 우먼] 박남희 한국MS 상무

    [커리어 우먼] 박남희 한국MS 상무

    지난 5월 세계적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발표한 계획들 중 가장 관심을 끈 건 ‘한국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와 개발인력 지원에 3년간 3000만달러(282억원)를 투자하는 내용이다. 이 계획 입안자가 바로 한국MS의 박남희(45) 개발자 및 플랫폼 전도사업부 상무이다. 박 상무는 2004년부터 플랫폼 전도사업을 맡으면서 협력업체와 관련 학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만나 애로사항을 들었다. 이들은 한국MS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소프트웨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공계 기피현상 등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릴 엔지니어 분야에서도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MS에 기반한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쓰이도록 소프트웨어 업체와 개발자를 독려하는 업무를 맡은 그녀로서는 놓칠 수 없는 충고이자 기회였다. 본사와 1년 가까이 밀고당기는 협의 끝에 생태계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노력들이 더해져 지난달 한국MS의 첫번째 여자 상무로 승진했다. 막상 프로젝트는 시작했지만 본사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100% 확신하지는 못했다. 한국MS가 MS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고, 다른 해외 MS 현지법인들도 본사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확신이 들면 도전해보자.” 박 상무는 “성공할 확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머지는 그동안의 경험이 메워주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50%가 안 되는 확신만 들어도 일을 시작하지만 여자는 100% 가까운 확신이 있어야만 일을 시작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작은 도전이라도 자꾸 해 경험이 쌓여야만 나중에 큰 도전이 닥쳤을 때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일이 잘못돼 실패한다 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실패에서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녀는 한국휴렛패커드에 근무하던 1995년 삼성그룹의 사내정보망인 싱글(SINGLE)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박 상무는 “당시 20만명인 삼성그룹 전 직원이 출근 직후 메일 확인을 위해 싱글에 동시 접속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회고했다.3∼4달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국에 있는 엔지니어들과 통화하면서 문제들을 해결해냈다.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고, 이 시기를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엔지니어인 그녀는 한국MS로 옮기면서 마케팅 업무를 처음 접했다. 고객 하나하나에 맞춘 판매, 시장규모에 대한 예측 등 기술지식과는 다소 다른 지식들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전문기술 지식을 토대로 협력업체들을 하나씩 공부해가면서 난관을 넘었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2000년에는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디지털네트워크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벤처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1년만에 한국MS에 재입사했다.“떠날 당시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서를 만들어 놓고 가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일을 완성하기 위해 한달 이상 늦게 떠난 것이 좋은 점수를 받은 모양”이라고 추측한다. 박 상무는 “회사를 옮겨도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은 어디서든 다시 만날 사람들”이라면서 “떠나는 시기에도 다니던 회사에 최선을 다하라.”고 충고한다. ■ 박남희 상무는 ▲1985년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과학기술부 산하 시스템공학연구소 ▲1990년 아이오와 주립대 컴퓨터공학 석사, 한국휴렛패커드 입사 ▲1997년 한국MS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부 차장 ▲2000년 디지털네트워크그룹 마케팅 이사 ▲2001년 한국MS 부장 ▲2004년 한국MS 이사 ▲2006년 한국MS 상무 글 전경하 사진 도준석기자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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