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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계 「제목소리」 낸다/중진 의원들의 최근 움직임

    ◎“「독주시비」 의식한 침묵 도움 안된다” 판단/대정부 질문서 “개혁 지속추진” 강조 태세 민자당내 민주계가 목소리를 다시 높이고 있다.그동안 「독주시비」를 의식해 하고 싶은 말을 되도록 억눌러온 것과는 자못 다르다.여권내에서는 금기사항으로 여겨온 차기대권 문제까지 입에 올린다. 민주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김윤환 대표위원 체제와 연관돼 묘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민정계의 김대표가 활발한 행보를 보일수록 민주계 인사들의 보폭은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 것도 사실이다.주요당직만 해도 민주계에서는 강삼재 사무총장이 유일하다.마치「민정계 바다」에 떠있는 「고도」와 같다. 이러한 배경속에 민주계 인사들의 제목소리 내기는 『민주계는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 같기도 하다.침체 분위기를 벗어나 문민정부 출범 초기 때의 위세를 되찾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여기에는 민주계 좌장격인 최형우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섰다.최의원은 얼마전 한 지방신문과의 회견에서 「차기문제」로도 해석될 수 있는「PK(부산·경남)정치지도자론」을 거론했다.김대통령 이후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부산·경남지역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문민정부의 정통성을 잇고 민주 역정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자격기준도 제시했다.최의원의 이같은 발언은 이한동 국회부의장의 「중부권 주자론」과 대비되기도 했다. 이어 민주계 실세 가운데 한사람인 김덕룡 의원이 지난 13일 정부와 민자당간에 불협화음을 노출했던 금융소득 종합과세 문제와 관련,당정을 모두 비판했다.정부측에는 당과 사전협의 없이 일방 결정한 것을,당측에 대해서는 「중산층 끌어안기」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또 서청원 의원은 이튿날인 지난 14일 지난해 2백억원을 들여 설립했던 여의도연구소의 「무용론」을 제기하며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계의원 상당수는 다음달 19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도 나선다.모두가 최근의 국정운영이 「개혁 실종」으로 비쳐지고 있는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개혁의 중단 없음을 강조할 예정이다.문민정부 출범 때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개혁의 전도사」역할을 맡았던 최의원은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다.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19일 귀국하는 그는 개혁에 대한 소신을 거침 없이 쏟아내겠다는 각오다.특히 개혁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방법상의 하자가 6·27 지방선거 패배를 가져왔다는 주장에 대해 인과관계 분석이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짚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황명수 의원은 다음날인 20일 통일·외교·안보분야에서,노승우 의원은 25일 사회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중단 없는 개혁을 촉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계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민주계 대반격」의 서곡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그러나 민주계 인사들은 여권 분열로 해석될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김덕룡 의원이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서려다 보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 한국에선…/TV프로 베끼기(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6)

    ◎퀴즈·쇼 등 제목·배경음악까지 모방/방송이 일본대중문화 전도사 구실 『꼭 이렇게 베껴야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제목까지 그대로 갖다 쓰고 있습니다』 서울 신촌의 3평 남짓한 사무실에 TV녹화테이프와 자료들을 쌓아놓고 친구 4명과 함께 아마추어 방송비평을 하는 오흥석(29)씨.우리 방송프로그램의 일본모방실태에 경악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히트쳤던 TV 만화영화 주제곡 「아아!여신이시여」같은 것이 우리나라 드라마나 쇼 배경음악으로 쓰입니다.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져요』 대학 일어일문학과에 다니는 김기정(21)씨는 일어공부를 위해 시청한 일본 만화영화의 배경음악이 국내방송에 그대로 사용되는 것을 발견하고 지난 4월부터 하이텔에 개설된 서울 YMCA TV옴부즈맨코너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신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송프로그램의 일본모방을 지적할때 마다 비애를 느낀다고 말한다. 광복 50주년을 맞지만 우리나라 방송의 일본프로그램 베끼기는 여전하다.시청자들의 높아진 TV수용자세와 국제화에 따라 넓어진 견문에 아랑곳 않는 방송제작자들의 「문화해적」태도는 「우리 방송이 과연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는가」「방송이 은연중에 일본의 대중문화를 우리 시청자들에게 전파하는 조력자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위성방송 수신이 여의치 않던 지난 70,80년대 방송가에는 「일본방송이 나오는 부산으로 베끼기 출장간다」는 말이 있었다.이 전설(?)이 사실로 입증된 것은 지난 93년 말.한국방송개발원이 「국내 방송의 외국프로그램 모방현황 분석」이라는 비공개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서다. 다큐멘터리,드라마,코미디,쇼,오락 등 전장르에 걸쳐 총체적 모방이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퀴즈 프로그램의 경우 정도가 심해 방송3사의 12개 퀴즈프로그램 가운데 8개가 일본의 특정프로를 복제 또는 모방했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전체 포맷에서부터 무대세트·진행자배치·제목,심지어 진행자의 제스처까지 「도용」했다는 것이다.지적된 프로그램은 KBS의 「열전 달리는 일요일」(일본 「풍운의 젠다성」모방)「금요일의 여인」(「화요일의 여자」〃),MBC의 「질투」(「도쿄러브스토리」〃)「도전추리특급」(「퀴즈 매지컬 두뇌파워」〃),SBS의 「알뜰살림장만퀴즈」(「백만엔 퀴즈헌터」〃)등이었다. 이 보고서 이후 일본 니혼TV에서는 「월드 그레이트 TV」란 프로를 통해 한국방송의 베끼기를 특집으로 다뤘고 KBS측에 「열전 달리는 일요일」모방중지를 요청하는 공식 항의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보고서가 작성된 1년반이 지난 지금에도 고질적인 일본베끼기가 여전하다는데 있다.오흥석씨는 일본의 인기쇼 「후타리노 빅쇼」가 「빅쇼」로,「투고 특보왕국」이 「특종웃음대결」로,「라이벌 일본사」가 「역사의 라이벌」로 둔갑해 우리 안방에 선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또 감정사와 골동품 소장자가 출연,감정가를 매기는 쇼 프로 「TV쇼 진품명품」은 TV도쿄의 「개운! 뭐든지 감정단」과 유사하고 「세계로 가는 퀴즈」는 니혼TV의 「아메리카 횡단퀴즈」를 모방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면 왜 일본 TV프로그램을 모방하는가.매번 이같은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방송국 제작자들은 『프로개편 2개월전에 기획안을 내라는 간부진의 무리한 요구속에 어쩔 수 없다.시간·제작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KBS의 음악프로를 담당하고 있는 김모PD는 『사실 할말이 없다.촉박한 시간과 아이디어부족이 일본의 무대장치 관련 책이나 이미 일본에서 시청률 등으로 검증이 난 프로그램을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서울 YMCA 시청자 시민운동본부의 백승희 간사는 『지난 석달동안 서울 YWCA 시청자 운동본부에 접수된 각종 의견 1백85건 가운데 일본프로그램 모방사례를 지적한 것이 13건(7%)에 이른다』면서 수용자들의 의식성장을 제작자들이 뒤따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발표이후 일본측의 저작권제소가 상당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일찍 수그러들더군요.자연스럽게 왜색문화에 젖어들게 하고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쉽게 하자는 저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93년 방송모방 보고서를 작성했던 한국방송개발원 프로그램연구실 전규찬 박사의 말이다. 광복50주년.우리 방송계는 이제 무분별한일본 방송베끼기를 청산,우리문화의 진정한 주권을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할때다.
  • 납북 안승운 목사는 누구인가/90년 10월부터 연변서 선교활동

    ◎쾌활한 성격… 평소 사회주의 부정 안승운(50)목사는 1945년 경북 안동군 와룡면 가동 566 번지 태생으로 장로교회의 장로 생활을 하다 지난 87년 2월 순복음 신학원을 졸업하고 순복음교회의 목사가 됐다. 안목사는 목사가 되기전 금은방과 봉제공장을 경영했으나 38세인 83년에 신학교에 들어가 87년 목사가 된뒤 인도와 필리핀등지에서 원주민선교를 해왔다. 그는 90년 10월 자진해서 중국 연변지역으로 들어가 조선족과 북한탈출 주민들에게 선교활동을 해왔으며 93년 6월 순복음교회의 정식 중국 선교사로 임명됐다. 안목사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 인민로 51564에서 혼자 생활해왔으며 가족들은 서울 구로구 시흥동 994의 6 전세집에 부인 이연순씨(45)와 큰딸 소연양 (21),작은딸 지연양(19),외아들 상엽군(16)이 함께 살고있다. 순복음교회 선교국 윤형모 선교부장은 『안목사는 성격이 쾌활하고 활동적인 성품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헌신적인 선교활동을 해왔다』며 『평소 통일이 되면 연변이 북한선교의 중심이 되어야한다며 사회주의체제를 부정하던선교사가 북한으로 망명을 했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않는다』고 말했다. 키 1백74㎝,몸무게 80㎏의 건강한 체격의 안목사는 평소에도 믿음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않는 성격이었다고 교인들은 설명했다. 중국의 만주 지역에는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목사 전도사 들이 약 4백여명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종교활동을 할 수 없어 수백개에 이르는 가정 교회에서 전도활동을 하고있다.
  • “좌익에 사회혼란 죄과 물어야 안정된다”/건국이념과 정통성

    ◎이철승 민자회공동대표 강연 우리사회의 보수우익단체 가운데 하나인 「자유민주민족회의」가 주최한 광복50주년기념 대강연회가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다음은 이 강연회에서 「자민회」의 공동대표인 이철승씨가 「건국이념과 정통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은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운동에서 그 뿌리를 두었다.그 정신은 반공반탁 투쟁과 대한민국 수립으로 이어졌고 스탈린의 꼭두각시인 김일성의 6·25 남침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으로 승화되었다. 그런데 이 땅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이 뿌리를 내리고 그 선대들의 거룩한 희생의 혜택으로 국민들이 풍요를 구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과거를 잊기 시작했다.김일성사관의 앞잡이들은 좌익수정주의사관의 전도사 부르스 커밍스와 같은 사이비 학자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내세워가며 우리의 현대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국내 공산당이 소련의 지령을 받아 저질렀던 제주도 반란·대구폭동·여수 순천 반란사건 등이 민중운동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6·25 남침을 북침이라고 호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국이념의 척추를 부러뜨릴지도 모르는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는 일차적 책임은 후대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한 정부와 기성세대들에게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또한 이와 같은 사태가 역대정권의 독재성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부정할수 없다.그 독재정권하에 반국가적 좌익을 포함한 모든 반정권 세력들이 규합했다.북의 대남 통일전선 전술과 수많은 간첩침투로 지하당인 노동당을 조직했고 과거 보도연맹등의 세력과 그 가족들을 결속시켜 우리 상·하층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다행히 그들 중의 몇몇은 외형으로는 제거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학계·방송·언론계·노동계·문화계에 모두 침투했다.역사교과서 개편준거안 사건은 막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카프」작가들의 망령이 되살아나 「태백산맥」「남부군」「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등과 같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문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족진영에서는 「태백산맥」을 1년전에 고발했다.그러나 검찰은 그 책이 수백만의 독자를 확보한 지가 이미 오래라는 이유로 그 해독성을 인정하면서도 손을 못대고 있다.최근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의 『6·25는 명분 없는 전쟁,그리고 월남파병은 용병이었다』라는 망언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즉각 북한 노동신문이 김 전장관을 두둔하는 대대적인 선전 공세를 편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우리는 심각히 분석해 보아야 한다. 최근 다행히 일부 유력일간지들이 소련의 6·25의 내막이란 비밀문서와 평양주재 초대 소련대사였던 스티코프의 비망록을 입수해서 그 내용을 폭로했다.스티코프는 19 46년9월 중순부터 대구폭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2차에 걸쳐 일화 총 5백만엔을 박헌영 등에게 지원했고 폭동이 끝난 후에도 소련화로 1백22만루블을 빨치산에게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현재까지 6·25남침이나 대구폭동이 민중의 자생적 항쟁이었다는 좌익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소련의 강요로백남운의 신민당,여운형의 건민당,박헌영의 공산당이 합쳐서 남로당을 만들어 남한의 폭력 적화를 총지휘 한 것도 드러났다.이제 부르스 커밍스 등의 수정사관을 신봉하던 국내 혁신진보의 탈을 쓴 정치인이나 학자및 좌익이론가들을 그들의 은신처로부터 끌어내어 주사파를 양산하고 학원과 노동계·문화 사회를 혼란케한 죄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우리 사회가 안정이 될수 있다. 지금 탈냉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남북관계는 더 험악한 냉전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김일성이 남긴 유언중에는 『광복 50주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서울에서 경축하자』는 장담을 하다 죽었다.북쪽은 지금 우리 학생및 노동운동권을 총동원하고 선동해서 그 유언을 실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금년에는 그와 같은 책동이 극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여기서 흥청망청하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남북이 함께 망하고 우리 한반도는 19세기말과 같이 또 다시 외세의 간섭을 받는 식민지적인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다.
  • 북경기상도(외언내언)

    북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즘의 정정변화는 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우선 가시적인 상황변화부터가 매우 심상치 않다.이른바 「북경방」의 실세라는 진희동시당서기가 숙청됐고 왕보삼 부시장이 자살했다.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이붕총리의 아들들이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등의 부인 탁임의 자살미수설도 나돌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변화는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후계자격인 강택민총서기겸 국가주석이 「포스트등시대」에 대비,겉으로 반부패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실제로는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인 듯하다. 특히 중국에선 예전부터 최고통치자의 죽음과 함께 격렬한 권력구도재편의 천하대란이 흔히 있었던 만큼 등의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강의 선수치기작전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히 강이 자신의 정치대부인 등까지 격하시키는 극한(?)의 방법으로 제1인자 굳히기의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인지.물론 과거 등이 모택동사후에 그를격하시킨 실례가 있기는 하다.그러나 등과 모사이의 갈등이 적잖았던데 비해 강은 등이 설계한 개방·개혁의 충실한 전도사이며 두사람의 이념적 동지의 틀은 깨지기 힘든 것으로 보는게 보다 옳은 시각일 것 같다. 때문에 비리척결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등측근수사에 나서긴 했지만 이는 개방·개혁및 공직자부패등에 대한 국민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미리 계획된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더욱이 강으로선 국민불만에 편승한 정적들의 공격이 등의 죽음을 맞아 격화될 가능성을 사전에 무력화할 필요가 당연히 있지 않았을까. 권부움직임의 보도관제가 철저한 중국이어서 추측은 더욱 난무한다.
  • 「LA총격」에 유탄희생자 는다/1주새 3명날벼락…3년간 4백명피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최근 1주일 사이에 3명이 총격사건의 유탄에 맞아 숨졌다.12세의 한 소녀는 버스정거장에 내리는 순간 불랑배들을 노린 총탄에 맞아 숨졌으며 28세의 한 전도사는 교회문 앞을 나서다가 인근에서 주택건축문제를 놓고 벌어진 총격에 말려들어 목숨을 잃었다.또 한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유탄에 맞아 희생됐다. 미국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갱간의 총격전에 의한 유탄에 맞아 숨지거나 달리는 차안에서 괜히 총을 쏴대는 「드라이브 바이 슈팅」에 의해 희생되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지난 89∼91년 3년간 1천4건의 갱관련 총격살인사건으로 4백25명이 유탄에 맞아 숨졌다.전국적으로는 총기관련 사고로 숨지는 사람이 연평균 3만7천명이 이르고 있고 이 가운데 10분의 1가량인 3천7백명이 유탄에 무고하게 희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독 유학생 간첩단사건/이상우씨 2년형 선고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광렬 부장판사)는 3일 독일유학중 북한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상우(42·전도사)피고인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죄를 적용,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 “나를 암살하려한 독유학생 한병훈씨/평양지령 받고 백두산서 훈련”

    ◎박홍 총장 법정증인/작년 9월 총장실 찾아와 고백/“성공하면 50만달러 주겠다” 북서 제의 서강대 박홍 총장은 22일 『북한이 나에 대해 암살을 기도했다는 발언은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것으로 명백한 사실』이라며 『부부간첩단 사건이 터진 지난해 9월 안기부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독일유학생 한병훈(32)씨가 장본인』이라고 밝혔다. 박총장은 이날 서울지법 형사 합의22부(재판장 이광렬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독일유학생 간첩 이상우(42·전도사)피고인에 대한 1심 제5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한씨가 안기부에 자수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서강대 총장실에서 한씨를 만나 「박 총장이 최근 주사파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입북,백두산과 평양의 수련관 등에서 AK소총과 권총 등으로 암살훈련을 받았다는 고백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박 총장은 이어 『한씨는 암살에 성공하면 미화 50만달러를 받기로 했다는 내용까지 고백했다』고 밝혔다. 박 총장은 또 『90년 7월 독일과 92년 4월 서강대 총장실 등지에서 모두 3차례 한씨를 만나 카톨릭식의 「고백성사」가 아닌 일반적인 고백형식으로 방북사실과 간첩활동 사실을 듣고 줄곧 자수를 권유해 왔다』며 『한씨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나를 포섭하려는 의도가 좌절된 뒤 다시 암살을 기도하려 했으나 결국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85년 독일 쾰른대학에서 유학생활중 부인 박소형(31)씨와 함께 독일거점 북한공작원 김용무(58)에게 포섭된 뒤 수차례 입북하는 등 부부간첩으로 활동을 해오다 지난해 9월 안기부에 자수,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 “「동네정치」 싸움판 막아 다행”/김덕룡 민자총장 인터뷰

    ◎「특위」큰 의미… “손해 안 봤다”/“선거연기 음모”“강경파” 등 소문 섭섭 민자당의 김덕룡 사무총장은 15일 『지난해 강연을 1백차례 넘게 했다』고 말했다.개혁을 설파하는 전도사로서다.강연의 으뜸 주제는 지방자치제와 교육이었다고 덧붙였다.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달 1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세미나에서 지방자치제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자 바로 다음날 똑같은 주장을 했다.그러나 「경실련」과 사전교감은 없었다고 했다.세미나 다음날 아침 승용차 안에서 TV뉴스를 보고 알았다는 것이다.그래서 잘됐다 싶어 이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14일 통합선거법 개정협상이 타결되기까지 「음모설」에 시달려 왔다.선거연기 의도가 있다느니,선거에서 질 게 뻔해 잔꾀를 부린다느니,「날치기처리」를 앞장서 주장한 강경파라느니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는 소문과는 달리 강경파가 아니라고 했다.협상에 임하면서도 『대화로 해결한다』와 『선거는 예정대로 치른다』는 두가지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야당 의원들과의 협상에서도 이같은 방침을 전했다고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이에 관한한 김영삼 대통령의 뜻도 분명했고 두번이나 이런 지침이 전달됐다고 소개했다.그런데도 야당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에 대해 실망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김 총장은 선거법 협상에 대해 『아무 것도 건진 게 없이 악수만 뒀다』는 당 안팎의 지적에 이의를 달았다.『협상이라는 것은 상대가 있게 마련인데 1백%의 목표달성을 해 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협상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음을 이렇게 설명했다.『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은 2백36명이고 기초의회 의원은 4천5백여명이다.민자당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모든 후보를 공천해야 했을 것이다.행정의 모세혈관인 읍·면·동이라도 정치싸움판으로 되는 것을 막았다.국민의 혈세도 줄였다.국회의장이 감금당하고 국회의원이 납치당하는 와중에서도 대화로 해결했다.국회특위도 구성,행정구역개편과 지방자치제도 개선방안도 논의하게 됐다.(협상과정을 통해)국민들이 지방자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도 됐다』 그는 협상과정에서 소수 강경파의 핵심으로 다수 온건론자들로부터 포위당한 형국으로 비쳐져 왔다.이에 관한한 그는 말을 아꼈다.그렇지만 『단합과 결속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협상과정에서의 당내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시인했다. 그는 협상결과를 놓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쉽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 교회서 안수치료 정신질환자/여전도사 2명 살해

    【김포=김병철 기자】 12일 하오 4시30분쯤 경기도 김포읍 사우리 사우연립주택 지하 영생교회(목사 이영만·47)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오던 박상우(24·무직·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 205)씨가 김송자(54·김포읍 사우연립A동 105호)·박정례씨(43·김포읍 사우리 풍무빌라 다동 301호)등 여전도사 2명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박씨는 이날 주일예배를 위해 목사 이씨가 묶여있던 손발을 풀어주자 교회안에 있던 과도로 바닥청소를 하던 김씨와 박씨 등 두전도사의 가슴과 배 등늘 마구 찔렀다.
  • 세계화시대 리더/이남영교수 숙명여대·비교정치학(신 지도자론:9)

    ◎지역 균열적 정치 지양해야 한다/미래통찰에 국가 경영능력은 필수/우리문화 가꿔 민족 자긍심 높여야 세계는 급속히 변화해 가고 있다.정치적으로 양극체제는 종말을 고하고 불안정한 다극체제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경제적으로는 WTO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국경없는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그리고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통신,교통부분은 세계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 구실을 가속화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을 직시하여 21세기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자는 것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세계화전략의 핵심이 된다. 세계화시대에 일류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부문에서의 자기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특히 정치부문에서의 자기혁신은 필연적이다.지금까지의 정치의 주제가 주어진 국제정치상황에서의 정권의 다툼에 있었다면,세계화시대의 정치의 주제는 우리나라의 생존이 된다.즉 여야를 초월해서 1차적인 정치의 목적은 살벌한 약육강식의 국제정치질서하에서 국가의 생존전략의 마련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의 주제가 달라진다면,정치를 담당하는 지도자들의 역할과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여기에서는 세계화시대를 주도해 나갈 정치지도자의 자질문제를 간략히 거론해 보기로 한다. ○사회통합의 능력 우리사회의 정치는 불행하게도 지역균열적인 속성을 오랜기간 경험해 왔다.따라서 국가적인 에너지를 집결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과감하게 지역균열적인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즉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적인 요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빨리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이러한 지도자들만이 결국 망국적인 지역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사회통합을 이끌어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경영능력 과거에는 통치력이 지도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였다.그러나 세계화시대에는 경영능력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제1의 덕목이 될 것이다.국민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아니라 다양한 내부적인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율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양질의 상품을 공급함으로써 생존하듯이 양질의 정책을 국민에게 공급함으로써 정치지도자는 살아남을 것이다.끊임없는 정책개발과 효율적인 정책의 추진 없이는 세계화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능력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그 변화의 방향을 잘 예측하여 대비하는 것이 세계화시대의 생존을 위해 긴요하다.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집결하여 미래에 대비한 투자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미래의 사회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도자들은 미래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을 구비해야 한다.정보사회를 미리 예견하고 준비한 미국과 일본이 세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은 우연이 결코 아니다.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가 일류국가가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이다. ○민족문화의 파수꾼 세계화의 와중에서 우리의 것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아니된다.세계화시대의 지도자는 우리의 것을 잘 가꾸고 세련화시켜 세계속에 전파시키는 전도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민족의 자존심,자긍심 없는 세계화는 공허한 것이다.만일 세계화과정을 통해 우리사회가 미국의 1개 주 정도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면 그러한 세계화는 결국 한국민족의 도태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 이슬람교 상륙 거점… 에이티갈시원 웅장(서역문화기행:8)

    ◎동서문물 교류 실크로드의 중심지/중국 서쪽끝 도시 카시갈/녹색돔의 전도사 호오쟈가족묘… 궁전 방불/중국최초의 석굴시원 삼선동도 시외곽에… 생불벽화 유명 호탄에서 중국 최서단 도시로서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카시갈까지 5백9㎞는 필자에게 신선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그밤이 팔월 한가위 어스름 저녁,고물딱지 장거리버스에 올랐다.승객은 온통 위구르족.꼬박 밤을 새우면서 열두시간을 달렸다.차창의 깨진 창틈으로 몰아치는 고춧바람에 기침이 나도록 맵디매운 담배연기,그리고 양고기 노릿내,그것들이 시간마다 코란의 독경소리와 범벅이 되어 눈과 귀를 찌르는데 창밖의 몽롱한 달빛에 스쳐가는 부연 모래빛,가도 가도 불빛 없는 바다에 뜬 느낌이었다. 카시갈은 옛날 소륵국의 도읍지.우전이나 마찬가지로 한나라 때는 36국의 하나요,당나라 때는 안서사진의 하나였다.「한서」,서역전의 기록대로라면 장안에서 9천3백50리(4천6백75㎞)지점,벌써 2천년전의 호구가 1천5백호에 인구 8천6백여명,거기다 시열,그러니까 오늘의 바자,곧 장을 말하는데 카스갈의 바자는 아직도 전중국을 대표하고 있다. 중국은 한나라 때부터 그들의 국토방위를 위한 최서단 요새로 생각했었다.후한 때의 명장 반초(33∼103)가 파미르고원을 넘어 쳐들어온 쿠샨왕조(대월씨국)를 대파하고 그의 부하인 감영을 무역의 사절로 로마에 파견한 것도 여기였었다.인도의 불교가 동점한 최초의 거점도 여기요,중동의 이슬람교가 상륙한 최초의 거점 또한 이곳이었다. ○로마로 넘어가는 관문 그도 그럴것이 카시갈은 알타이산맥으로부터 시작한 타림분지가 솟아오르면서 파미르고원으로 달려가는 바로 해발 1,294m의 낮은 고원지대라는 지리적 특색을 살린 곳이다.거기서 파미르고원을 넘으면 곧장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기스탄 등의 관문으로 통한다.그러니까 로마로 넘어가는 실크로드의 중국측 마지막 역참인 것이다. 중국에서 실크로드의 의의를 동서의 교통과 무역외로 서역의 침입을 막고 중원을 지키겠다는 국방에 두지만 그에 못지않은 의의는 예술에 있다.예술의 가시적인 성취는 무엇보다 석굴이다. 석굴은 사실상 「석굴사」 혹은 「석굴암자」의 약칭이다.그것은 벼랑이나 석굴속에 설시한 불교사원으로 초기불교가 「이진수행」을 제창함에 비추어 석굴은 적지였었다.석굴은 속세의 잡음이 들리지 않는데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이점 탓에 불교의 고사와 원리를 벽화로,석가를 비롯한 보살·미륵을 조각하기에 좋았었다. 기원 3세기전부터 인도에서 성행했던 석굴 개착은 그로부터 대략 5세기 뒤인 동한말,그러니까 기원 200년 전후해서 중국에 출현했으니 그 최초의 석굴이요,최서단의 석굴이 카시갈에 있다.바로 「삼선동」. 삼선동은 위구르말로 「투쿠자우지라」.그 이름 그대로라면 세사람의 신선이 사는 동굴이지만 실상은 세개의 석굴을 말했다.카시갈에서 북쪽으로 18㎞지점,차크마크(흡극마극)강을 따라 황막한 사막을 달리다 문득 그 강둑에 멈추었다.대절한 택시기사는 남쪽 벼랑을 가리킨다.파미르고원에서 흘러내리는 설수의 강인데 강폭은 1백50m를 넘을 만큼 넓었다.필자 혼자서 차크마크를 건너서 조금전 택시기사가 가리키는 곳까지 족히 20여분을 헐레벌떡 뛰었다. 삼선동은 하상으로부터 15m쯤 벼랑,그 12m쯤 높이에 1m 남짓의 간격으로 나란히 뚫린 세개의 석굴이어서 필자는 지붕위에 매단 비둘기집 상자를 보는 느낌이었다.중간석굴이 약간 컸지만 대체로 높이 2m 남짓에 너비 2m쯤.거기서 벼랑끝도 3m 남짓 보였다. 그속에 한말 불교미술이 아직도 남았다니 나그네의 속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옛날 인수봉 타던 가락으로 적갈색 그 벼랑을 올랐지만 겨우 4m 높이서 쩔쩔매고 말았다.그 나머지 수직의 암벽은 어쩔 수 없었다.미리 알았더라면 조립식 사다리를 준비하거나 아예 벼랑의 상단에서 자일을 묶고 낙하할 것을. ○전래 불교미술의 원형 자료에 따르면 석굴은 굴마다 전후 2실로 나뉘었다고.서굴과 중간굴은 텅텅 비어 있고 오직 동쪽 석굴만이 진귀한 미술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특히 70여개의 불상이 사방을 벽화로 메운데다 조정(물풀을 그린 천장)에는 연꽃이 그려졌다고.그중에도 미술사적·불교사적 초점의 벽화는 그 벽화중의 좌불한 컷으로 ,그 좌불은 방격무늬의 가사를 입고 거기에 녹색·남색·홍색 등 세가지 색깔이 어울린 채색의 구성이라고 했다.그것은 인도불교가 중국 전래당시 불교미술의 초기적인 원형을 보인 것이다.무엇보다 쿠츠의 키질천불동이나 돈황의 막고굴보다 연대가 앞선데다 간다라의 영향조차 보이지 않는 점에서 주의를 받아왔었다. 삼선동 그 석굴에 발을 디디지 못한 채 돌아서는 필자는 청나라 시인 철보(1752∼1825)가 카스갈의 지방관으로 귀양살이하던 1810년 무렵에 쓴 「유삼선동」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칠십이동천,무지용탁석. 내찬소륵서,착공의암벽. 응고적선인,도명둔공적. 산황운불서,석쇄사여격. 위제고백인,욕상심전탕. 선인불가견,선동차친력. 적환여적선,탑연경수적.」 (세상엔 72동천의 선계가 있다지만,중 하나 설 곳 없네. 카시갈 서쪽으로 숨어,석굴을 파고 암벽에 기댔네. 신선이 여기로 귀양와서,명예를 피한 채 적막세계로 숨은 거지. 산이 거칠어 구름조차 깃들지 못하고,돌이 부서져 모래는 여울처럼 흐르네. 백길되는 아스라한 사다리에,발을 딛자 후들거리는 마음. 신선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고,사람은 여기 삼선굴에 올랐네. 귀양살이 이 사람도 속세의 신선처럼,우두커니 다시 누굴 따를까?) 근 2백년이 지났건만 차크마크강은 예대로 황량했다.예전의 사다리마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매일 다섯차례씩 예불 카시갈에서 불교의 유적이 삼선동에 상징적으로 남았다면 이슬람교의 유적은 카시갈이 이슬람교의 중심지답게 웅장하고 찬란하다.우선 이슬람의 예배당으로 4백50여년의 역사에 1만7천㎡의 면적을 지닌 맘모스의 에이티갈(애제□이)사원이 있고,이슬람의 일개 무덤으로 아바호오쟈(아파곽가)같은 궁전식 능묘가 그것이다. 카시갈시의 해방북로에 있는 에이티갈사원은 중국 최대의 청진사다.아랍어와 이란어의 복합사인 「에이티갈」은 곧 예배당을 뜻하는데 1426년 당시 카시갈의 통치자였던 사크서즈 미잘의 후예가 세운 것이다. 그 사원은 넓은 땅에 돔과 첨탑을 배합한 예배당·독경당·문루·연못 등의 장엄한 외형이 나그네의 시선을 끌지만 사원의 광장으로부터 중정·본전까지 사원 전역에매일 새벽부터 드리는 다섯차례의 예배,더구나 매주 금요일 하오에 드리는 주말예배의 성황은 열렬하다.신도 모두가 깔개를 깔고 이맘(예배의 인도자)이 암송하는 코란에 따라 무겁게 화창하는 군중의 소리는 파도되어 출렁이고,다시 신도들이 대지에 이마를 조아리며 무엇인가 외치는 장면은 경련을 일으킬 정도였다. 카시갈시 동북쪽 5㎞지점의 하오한(호한)촌에 있는 호오쟈의 무덤은 우리의 상식과 너무 달랐다.작은 개울을 건너 낮은 언덕을 올라 고목 서너그루 아래로 말굽형의 아치를 들어서면 왼쪽으론 줄줄이 높은 기둥의 예배당이요,바른편에는 기다란 담안으로 마치 궁전을 방불케 초록빛 타일의 돔이 우뚝 솟아 있다. 궁궐의 문을 열 듯 대문을 열자 그 안에는 침침한 광선에 무거운 침묵이 덤벼오면서 울긋불긋 현란함을 느꼈다.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것들은 야외의 봉분이 아닌 옥내의 설단식 무덤이었는데 강렬한 채색의 주단이 그 관을 덮고 있는 모습은 마치 1인용 텐트를 치고 있는 야영장을 방불케 했다. 3백50여년전 이슬람교 전도사였던 호오쟈로부터 5대에 걸친 그의 가족 72명의 집단 묘지였다.그 안에는 청나라 건륭황제의 부름으로 궁궐에 갔다가 황제의 구애를 거절하고 자살하였다는 호오쟈의 딸 향비의 묘도 있다.비록 전설이지만.
  • 추진력 강한 「개혁논리의 전도사」/문민정부 최장수장관 오인환공보처

    ◎지역 민방선정 일관성­투명성 돋보여 문민정부들어 3번째,보각까지 더하면 5번째인 이번 개각에서 줄곧 한 자리를 지킨 사람은 오린환공보처장관 뿐이다.홍재형재정경제원장관도 계속 국무위원으로 남아있지만 출발은 재무부장관이었다. 오장관은 뒤늦게 상도동캠프에 합류한 인사들 가운데 가장 잘나가는 인물로 꼽힌다.김영삼대통령의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뜻이다.추진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리더십과 조직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이 때문에 오장관은 이번 개각에서 다른 부처로 옮기거나 유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공보처직원들도 오장관의 유임을 예상했었다면서 담담한 표정들이다. 공보처 직원들은 오장관을 「개혁논리의 전도사」라고 부른다.추진력도 추진력이지만 논리를 개발하고 전파하는 능력 또한 못지 않다는 것이다.고부안 공보처대변인은 『정치감각은 물론 뛰어난 순발력과 기획력으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등 국무위원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라고 오장관을 평한다.또언론인에서 행정가로의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지목하면서 『선이 굵은 보스 타입으로 아랫사람들로부터 평이 좋다』고 말한다. 오장관은 다른 국무위원들로부터도 소신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오장관 스스로도 이같은 평가에 이의가 없다.오장관은 며칠 전 사석에서 『소신을 그대로 표출하다 보니 처음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고 난 뒤 부터는 원래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한 수 접어주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보처 직원들은 맡은 일에 전력투구하면서도 자칫 소원해지기 쉬운 언론과의 협조에 무리가 없었던 점을 오장관의 유임 배경으로 꼽고 있다.이와 함께 CA­TV와 지역민영방송 업체 선정등 이권사업의 허가과정에서 보여준 일관성과 투명성을 장수비결로 분석한다. 오장관은 취임 뒤 문민정부의 언론정책을 수립하고 언론지원의 틀을 구축했다.광고전략을 도입한 종합기획홍보를 궤도에 올려 금융실명제 실시와 세계무역기구 가입,그리고 방사성핵폐기물처리장등과 같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홍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또 방송개혁을 추진해 KBS의 구조를 개편하고 TV수신료와 방송광고가격을 현실화했다.
  • 14대 총선후 95곳 조직책 물갈이/마무리단계 민자조직정비 안팎

    ◎내년 지자선거 결과토대 2차개편 계획/참신성·당선가능성 겸비인물 찾기 고심 민자당은 9일 7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을 임명함으로써 지난 92년 착수한 사무처 및 일선지구당 정비를 통한 당의 조직정비작업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이로써 14대 총선 뒤 위원장이 바뀐 지구당은 92년 28개,93년 35개,올해 32개등 모두 95개로 늘어났다.전체적으로 2백37개 지구당의 40% 이상이 물갈이된 것이며 부산 사하,경기 부천소사,경북 울진은 두번씩 조직책이 바뀌었다. 민자당은 마지막 남은 서울 중구,대구동을,대전중구등 3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을 이달안에 확정하는 것으로 일단 1차 조직정비를 매듭짓고 내년 지방자치제선거 결과를 토대로 차기총선에 대비한 2차개편을 단행할 계획이다. 올들어 세번째로 발표된 9일의 조직책 선정과정에서 민자당은 인물난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대상지역이 민자당의 취약지역인 서울과 호남이어서 당지도부가 영입하려한 참신성과 전문성 당선가능성을 겸비한 인사들이 대부분 고사,지난 2차 조직책발표 때 합격선에 가까이 갔던 인물 대부분이 그대로 조직책으로 굳어졌다는 것. 이번 인선에서는 무엇보다 득표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고 1,2차 인선 때와는 달리 당에서 7명 모두 단일후보로 청와대에 상신,수정 없이 낙점을 받은 것이 특징.당의 한 관계자는 『7곳 가운데 5곳에 출마나 지구당 관리 경험이 있는 정당관계자가 발탁된 것은 당선가능성을 우선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 서울 성동병은 지난번 2차발표 때 이미 김영춘 청와대비서관을 확정,이우재·정태윤씨와 함께 「깜짝카드」로 활용하려 했으나 지구당을 내놓은 박용만고문의 반발로 발표만 보류됐던 곳.30대 초반의 나이에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김씨의 영입에 대해 그동안 민주계 극우보수적 목소리를 대변해온 박고문이 강력반발,당지도부는 최근까지 설득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 성북을의 강성재 전위원장도 2차발표 때 낙점을 받았으나 3차발표의 모양새를 고려해 발표가 지연됐던 케이스.그는 두번 낙선했지만 법규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지구당을 내놓은데다 열성적인 지구당 관리로 당선가능성면에서 높게 평가받았다는 것. 양천을의 탁형춘 서울시의원은 지난번에 당지도부가 인접지역인 강서갑의 유광사 위원장이 같은 시의원 이어서 광역의원 2명을 한꺼번에 조직책으로 임명하는데 부담을 느낀데다 중량감이 좀 떨어진다고 판단,낙점을 망설였으나 민주계인사들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이번에 지역구를 획득.전북 고창출신으로 호남주민이 많은 지역사정도 감안됐다는게 인선에 참여한 한 관계자의 설명. 관악갑의 이상현 한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3,14대 총선 때 신민주공화당과 무소속후보로 출마,모두 집권당후보를 누르고 차점자가 된 높은 득표력이 결정적인 선정배경으로 작용.과거 김종필대표가 총애했던 인사라는 점에서 김대표의 보이지 않는 후원도 기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한편 호남 3개지역은 당의 원초적 한계 때문에 당선가능성을 떠나 호남지역의 전반적 득표력을 제고할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을 배치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광주 북을은 최근까지 한영·국효문씨등 여성발탁 얘기가 나돌았으나 사실 일찌감치 득표력도 있고지역의 신망도 높아 「호남여당의 대부」로 꼽히는 고귀남 전의원으로 굳어져있었다는 것. 전북 임실·순창은 처음 심국무 전의원과 이강년 전전북지사가 모두 이지역출신 이어서 교통정리를 걱정했으나 이전지사가 경력을 감안,전주덕진을 희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심씨는 지역내 인지도가,이씨는 직전 도지사로서의 명망이 높게 평가. ◎민자 최연소 조직책 발탁/성동병 김영춘위원장/“개혁 통해서만 과거·미래 포용 가능” 『젊은 나이에 지구당을 맡게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9일 민자당 서울 성동병 지구당위원장 직무대리에 임명된 김영춘(33)전청와대비서관은 가장 어린나이로 지구당 조직책이 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발탁배경을 『대통령을 가까이 모신 경험과 개혁의지를 일선 정치현장에 반영,개혁전도사가 되라는 명령이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고려대 학생회장이던 지난 84년 민정당사 점거농성사건 배후주동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던 그는 『나름대로의 시대배경과 나이가 작용하기는 했으나 학생운동당시 다소 이상주의적 시각에서 현실을 진단하고 행동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현실정치에 깊숙이 참여하면서 국정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했다』고 했다. 『국가는 밖에서 또는 야당에서 보는 것과 달리 무한책임 경영을 요구하는 유기체』라고 체험담을 털어놓고는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국민속에서 호흡하고 심판받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85년「2·12총선」뒤 출소,김영삼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상도동계에 막내로 입문한 그는 88년 고려대 영문과에 복학,정외과 석사과정을 밟은 기간 말고는 줄곧 정당생활에 몸담았다. 개혁정치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옛 것을 그대로 지키려는 수구나 그것을 모두 부정하려는 혁명보다 개혁은 훨씬 인기없고 힘든 현실정치의 과제』라면서 『그러나 21세기를 준비하는 한국은 개혁을 통해서만 과거와 미래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지구당을 맡게 된 것도 광범한 개혁지지세력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따른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민주계안의 우익보수론을 대표하는 박용만 전위원장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지난날의 노선이 무엇이든 민자당에 입당한 사람은 이미 개혁철학으로 무장한 사람』이라면서 『새로운 요소들을 수용,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함으로써 당이 개혁의 주체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에 근무하는 부인(32)과의 사이에 자녀는 아직 없다.
  • 전도사챔피언(외언내언)

    「별을 꿈꾸노라면/우리가 누구인가는 중요치 않은 것/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우리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네」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세계권투협회(WBA)와 국제권투연맹(IBF) 헤비급타이틀매치에서 조지 포먼은 아들뻘인 마이클 무어러(26)를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뒤 자신이 즐겨 부르던 흑인영가의 한 구절을 읊었다고 한다.그의 나이 45세10개월.내년 1월10일이면 46세가 된다. 이 노래의 가사가 말해주듯 이 늙은 복서는 불 같은 투지와 집념으로 그의 꿈을 실현시켰다.그리고 그는 1951년 39살에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저지 조 월콧의 헤비급 최고령 타이틀획득과 1903년 40살에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따낸 보브 피츠시몬스의 최고령 세계챔피언등극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철도노무자의 7남매중 다섯번째로 태어난 조지 포먼은 대부분의 흑인복서들이 그랬듯 불우한 환경과 인종차별로 인한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링에 뛰어올랐다.68년 멕시코올림픽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프로로 전향,73년1월22일 조 프레이저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으나 그 이듬해 10월30일 무하마드 알리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1년9개월의 단명챔피언이었다.그가 은퇴를 선언한 것은 77년.한때 마약과 폭력으로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조지 포먼은 링을 떠난 뒤 신앙생활에 몰두,전도사로 변신했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헌신해왔다. 87년3월 링을 떠난 지 10년만에 복귀를 선언한 것도 청소년전도회관을 건립하고 그들에게 신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가 링으로 다시 뛰어들면서 외친 소리도 「신의 뜻」이었다.WBA는 포먼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마이클 무어러와의 대전을 불허했으나 법정투쟁을 통해 이를 극복했고 다시 세계정상에 오른 것은 그의 신념대로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 알리,프레이저와 함께 70년대 프로복싱 세계헤비급을 석권하던 포먼.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만은 다시 정상에 우뚝 섰다.신의 뜻인가,인간의 위대한 승리인가.
  • 김신조씨 딸 시집 보낸다/맏딸 남희씨 신학대원생과 22일 결혼

    ◎68년 남파→체포→후회의 삶 그린 책도 내 68년 1월21일 무장공비로 남파돼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김신조씨(52·기독인 월남귀순용사선교회 이사장)가 오는 22일 맏딸 남희양(24)을 출가시킨다. 『아빠 공비가 뭐야.진짜 나쁜 사람이지』라며 그의 가슴을 에웠던 코흘리게 딸아이가 어느새 성장해 이제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31명의 남파간첩단의 일원으로 내려왔다가 혼자 살아나 피붙이 한 사람없는 남녘 땅에서 26년을 외롭게 살아온 그가 이제 비로소 당당한 일가를 이루게 셈. 『오는 22일 영등포구 신길동 성락교회에서 딸아이의 결혼식이 있습니다.사위로 맞을 신랑은 신학대학원생인 김근환(27)이라고 하는데 곧 목사가 될 청년입니다』 전향이후 간첩의 대명사로,반공강연의 1인자로 공식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극도의 가치혼란에 휩싸인채 『미치지 않기 위해』 술과 화투로 긴긴 방황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김씨지만 11일 딸아이의 혼사소식을 전하는 목소리엔 활기가 가득했다. 맏딸의 배필을 맞게된 그에게는 최근 또 하나의 기쁜일이 겹쳤다.지난 68년 당시 남으로 내려와 청와대기습까지의 과정과 전향이후 남한땅에서의 삶을 진솔하게 털어놓은 자전에세이집 「나의 슬픈역사를 말한다」(동아출판사간행)가 최근 출간된 것이다. 『반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사상의 선언도 아닌,한 인간으로서 가슴에 묻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책의 말미에 『너무 늦기전에 그리운 가족들끼리 만나 서로의 늙어진 얼굴들을 어루만져 보고싶다』는 인간적인 바람을 덧붙여 놓았다. 70년 가을 최정화씨(49)와 결혼해 지금은 딸 남희양과 외국에 유학중인 아들 성환군(21) 남매를 둔 그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전도사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 독 유학생 간첩 2명 구속/북공작원에 포섭돼 암약

    ◎자수한 30대부부는 불구속/접촉한 10여명 내사… 교수 4명은 귀가조치 국가안전기획부는 7일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고정간첩 김용무(57)에게 포섭돼 국내사정등을 북에 보고해온 안육정씨(30·여·충남대 대학원생)와 이상우씨(41·전도사)등 2명을 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및 간첩암약)혐의로 구속했다. 안기부는 그러나 독일 유학도중 현지 고정간첩 김에게 역시 포섭돼 4차례나 입북,간첩지령을 받고 활동해온 독일 유학생간첩 한병훈(31·독일 쾰른대 철학과 석사과정수료)·박소형(30·〃교육학과 〃)씨 부부는 최근 자수해온 점을 고려,불구속하기로 했다. 안씨는 독일 아헨음대에 유학도중 고정간첩 김에게 포섭돼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입북,주체사상등의 학습을 받고 학비명목으로 돈을 받아 귀국한뒤 충남대음대 대학원에 다니며 92년 대선동향과 운동권의 움직임을 파악해 북에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청학련사건으로 7년동안 복역한 이씨는 88년 5월 독일 쾰른대에서 유학하는 동안 김에게 포섭돼 월북,사상교육을 받은뒤 89년 5월 김으로부터 남한내에 비밀조직을 만들라는 지령을 받고 귀국한 이후 운동권의 동향을 파악해 김에게 보고해 왔다는 것이다. 한씨부부는 독일 쾰른대에 유학하던 87년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지도원으로 있던 김에게 포섭돼 88년 9월부터 93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북한에 들어가 정치사상교육·접선방법·사격훈련 등의 간첩교육을 받은뒤 노동당에 입당,공작금으로 미화 1만달러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있다. 한씨부부는 입북한뒤 평양 대동강변에 있는 초대소에서 생활하며 간첩교육을 받았으며 89년 6월 이 초대소에서 사회문화부 부부장 주재 아래 공작지도원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재독 간첩 김의 지령에 따라 독일유학생 10명및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등 알고 지내는 사람 11명 등의 신상명세서를 작성,북에 보고 했으며 이들을 포섭해 함께 입북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씨는 4번째 입북했다가 나온 뒤 92년부터 올 1월까지 경남 김해공항 공군 전술비행단방위병으로 입대,비행장 제원등 군사기밀을 모아 독일을 거친 국제전화를 통해 북한에 보고했다. 부인 박씨는 지난 3월 입국,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어린이 놀이방을 개설,정착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강서구 그리스도신학대학 부설 보육교사 교육원에서 수강해오며 국내인 4명과 접촉하며 이들을 입북시키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씨부부는 『박홍서강대총장이 지난 8월 여의도클럽 공개토론회에서 국내 주사파의 실체를 폭로했던 TV프로그램을 보고 양심의 가책과 국내 활동의 한계를 느껴 자수결심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는 김에게 포섭된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는 한씨부부의 진술에 따라 김과 접촉했던 10여명의 신원을 확보,내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안기부는 김과 친교를 맺었던 성균관대 사학과 정현백교수(42·여)와 숭실대 독문과 김홍진교수(56),이태훈씨(31·연대 85학번)등 4명도 6일 긴급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연행,조사했으나 이들이 모두 『김이 간첩인지 전혀 몰랐다』고 진술함에 따라일단 귀가시켰다고 말했다.
  • 삶의 가치 꽃피우기/송영(일요일 아침에)

    드디어 시원한 가을 소슬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견디기 힘들만큼 지독했던 지난 여름의 무더위를 생각하면 이 가을이 한층 소중하게 느껴진다.더위가 한창 극성을 떨던 여름에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땅이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으로 변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꼈었다.그러나 자연은 잠시의 시련만을 주었을뿐 고맙게도 다시 시원한 가을을 우리에게 돌려주었다.무더위를 겪었기에 도리어 우리는 자연앞에 고개 숙이고 자연이 주는 조그만 선물에도 고마워하는 미덕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연의 재해와는 전혀 다른,인간이 저지른 재난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두려움에 떨며 심한 좌절감에 허덕이고 있다.좀더 풍요한 사회,가난하지 않고 이웃나라로부터 모멸받지 않고 각자 민주시민으로 자유를 마음껏 숨쉬며 살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모두가 얼마나 피땀나는 노력을 해왔던가? 그런 노력들은 「사람이 살기에 보다 적합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 바쳐졌다.그런데 우리의 이 대명제를 근본부터 흔들어버린 엽기적 사건들이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지존파」나 「온」씨 사건을 보면 과거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과 전혀 다른 특징을 몇가지 보여주고 있다.이들은 뻔뻔하고 당당하며(?) 그나름으로 범행을 정당화하는 주장들을 펴고 있다.범행의 잔인성·맹목성·불특정성에서도 우리의 상식을 멀리 벗어나고 있다.범행이 노출되고 나면 아무리 흉악범행자라도 일단 한가닥 죄의식을 보이는 게 상례였다.그런데 이들은 그 점에서 파렴치한 면을 보일 뿐이다.이들의 치기스런 주장,잔인한 개인성향,비뚤어진 방향으로 비약한 소영웅주의는 어떤 말로도 변호될 수 없는 것이다.본질적으로 사람 사는 땅이 모두가 성인군자가 되기에 충분하고 적합할만큼 완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도리어 어두운 환경과 역경을 극복하고 밝고 아름다운 삶의 씨앗을 틔운 소년소녀들이 이땅에는 훨씬 많이 있다.그들의 잘못된 행태,사회와 이웃을 원망하는 파렴치한 주장을 반박하는 어느 산동네 주부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런 단죄만으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이들 범행이 보여주는 몇가지 새로운 행태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배양돼온 사회병리현상의 한 돌출을 보게되기 때문이다.우리 모두가 이 사건에서 유독 심한 허탈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탓일 것이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현상 중에 배금주의를 으뜸으로 꼽는 의견들이 많다.이것은 맞는 말이다.모든 가치는 돈으로 대변된다.우리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질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물질 이외에 삶에 필요한 여러가치와 덕목들을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결과적으로 우리는 2세들이나 후진에게 돈이나 물질만이 삶의 모든 가치를 충족시키고 대변한다고 가르친 셈이 되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도 재산이나 돈만으로 평가의 잣대를 삼는게 관습이 되어있다.「저 친구 어디에 빌딩 하나 갖고 있지.아마 수십억은 모았을 걸」. 이말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그친구가 생각하는 것,취미·신앙·사회활동 따위는 거두절미하고 소유재산만으로 친구가 설명되는 것이다.이런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6공때 「범죄와의 전쟁」을 정부가 선포한 일이 있었다.그때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지면에 나와서 보다 덜 배웠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우범가능 계층을 향해 설교 캠페인을 벌였다.그런뒤에 무슨일이 있었느냐 하면 바로 사회지도계층의 대형 독직사건과 부정축재 사건들이 잇달아 터졌다.이번에는 설교할 계층도 없게 된 셈이였다.이들 사건으로 이들이야말로 배금주의 사상을 이 사회에 퍼뜨린 전도사들이란 사실이 입증되었다. 불신풍조란 말은 이래서 발생된 것이다.참된 말,신뢰감을 주는 말이 실종되었고 참된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누구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않는 시대가 되었다.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말에 대한 신뢰감,삶의 다양한 가치들이 꽃피우는 사회,물론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가 다시 이점을 생각해볼 때이다.
  • 「김정일 새달중순 승계」 가장 유력/북한권력체제 언제 자리잡나

    ◎단군릉 공사·애도기간 끝난뒤 승계/일부선 “연내엔 힘들것” 관측하기로 김일성이 죽은지 80일이 지났는데도 김정일체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이 중재 의사를 밝힘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이 재추진될 계기가 마련되고 있으나 정작 북한의 1인자 자리는 여전히 공석인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사망후 이처럼 많은 시일이 지났는데도 김정일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취임 등 공식 1인자 자리에 등극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선 여전히 이런저런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이에 대해선 우리측 북한 관측통들은 물론 과거 북한의 혈맹이었던 러시아나 중국측에서도 「정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특사로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알렉산드르 파노프 외무차관은 22일 김정일체제 구축과 관련해 나름대로 중요한 관측을 내놓았다.그는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김일성의 후계문제는 해결됐으며 김정일이 오래전부터 당과 인민 및 군의 지도자로 인정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파노프 차관의 언급도 현재로선 검증하기 어려운 예단일 뿐이다.그는 김정일이 김일성에 대한 1백일간의 애도기간이 끝난 후인 10월16일이나 18일 당총서기와 국가주석에 선출될 것이라는 북한 외교가의 일반적인 관측을 그대로 전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의 1인자 승계가 10월 중순 이후 가시화될 것이라는 추측은 김일성의 시신처리가 그 때쯤이면 끝날 것이라는 첩보가 사실이라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이는 북한당국이 매장하든,영구보존하든 김일성 시신의 처리장소를 평양 근교의 이른바 단군릉으로 결정했다는 일부 관측과 궤를 같이 한다.물론 김정일이 지난 13일 단군릉 개건공사를 오는 개천절 전까지 완료하도록 지시했다는 북한 중앙통신 보도에 근거한 추론이다. 23일 북한 중앙방송은 평양시 강동군에 대규모로 조성중인 단군릉 개건공사가 완료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도함으로써 김정일의 10월 중순 등극설이 가장 개연성이 높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전망들은 현재로선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북한의 공식매체나 책임있는 실세 중누구도 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내부 동향에 밝은 다른 관측통들 중에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해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인사도 있다.지난 13일부터 17일간 평양을 방문했던 미컬럼비아대학의 스티브 린턴교수가 최근 『북한 김정일의 노동당 총비서와 국가주석의 공식 선출이 연말까지 늦어질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반주민이나 당간부 할것 없이 린턴교수가 만난 북한인사들은 승계 얘기만 나오면 『김일성에 대한 애도기간이 아직 불충분하다』 『국상중』이라는 등의 이유로 언급을 회피했다고 한다.바로 이같은 분위기로 미루어 보건대 가까운 시일내에 김의 공식 1인자 취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감을 받았다는 얘기다. 린턴교수는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다년간 생활한데다 세계적 부흥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목사를 수행,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이처럼 한국인의 정서에 정통한 인사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추론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는 이같은 속사정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왕조적 사회주의체제인 북한이 「보좌」를 이토록 장기간 비워둔다는 것은 심상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김이 권력을 1백% 장악하지 못하는 형태로 북한의 권력구조가 개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통일원 등 정부 일각에선 향후 북한체제가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귀결될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즉 김이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에 취임하더라도 건강이상이나 권력장악력의 부족으로 명목상의 구심점 역할에 그치는 대신 실제 중요 의사결정은 당정치국 원로들의 「집체적 협의」에 의해 이뤄질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 김자경 만세(외언내언)

    지난 5월 이화여대에서 열린 「이화 21세기 재도약선언 대축연」에서 사회자는 그를 「이팔청춘의 영원한 소녀」로 소개했다.이날 「자랑스러운 이화인」으로 소개된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받은 그는 올해 희수(77세)를 맞은 원로성악가 김자경씨. 빨간 구두와 무릎길이의 타이트 스커트 차림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팔청춘」은 너무한것 같아 「방년 28세」로 고쳤다』며 소녀처럼 수줍게 미소짓던 그가 희수기념 독창회를 9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갖는다.다른 사람이라면 놀라운 일이겠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난 75년부터 해마다 한국가곡 독창회를 가져와 올해로 18회째 한국가곡 독창회를 갖는 것이다. 『진짜 성악가라면 우리 노래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선친의 말씀을 뒤늦게나마 따르기 위해 91년엔 한양대 대학원 국악과에 입학했다.그동안 배운 민요들로 프로그램을 짠 졸업독창회도 올 겨울이나 내년 봄에 가질 계획. 『공부에는 나이가 없고 생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닦고 배우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그는 말한다.지난 62년 사별한 남편 심형구화백과의 결혼50주년 기념독창회도 91년 가진 바 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에서 독창회(50년)를 가진 이 「영원한 소녀」에겐 「오뚝이」라는 별명이 또 있다.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48년)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화려하게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그가 한국의 첫 민간오페라단인 김자경오페라단을 창단(68년)하고 지금까지 40여편의 작품을 공연하면서 얻은 인고의 훈장인 것이다. 오페라 제작을 지휘하는 한편 『오페라가 무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직접 표를 팔러 다니기도 한 그는 살아있는 한국의 오페라사이자 오페라의 전도사인 셈.이화여대 음대에 38년동안 재직한 그의 제자사랑은 유별난데 이번에도 함께 출연할 제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자랑을 잊지 않는다.영원한 소녀 김자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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