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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광남 문화재 전문위원/근무중 과로로 순직

    문화재전문위원인 최광남 목포 해양유물보존처리소장(43)이 근무도중 과로로 졸도,전남대 병원에서 입원가료중 13일 순직했다. 고 최소장은 지난 18년간 신안 해저인양목선복원 등 해양문화재보존처리연구에 심혈을 쏟아왔다. 장례식은 15일 상오9시 목포 해양유물보존처리소에서. (0631)72­7574
  • 광주보상법 시행령안

    ◇보상위원회 구성·운영 ▲중앙보상지원위원회=국무총리(위원장) 기획원·내무·법무·보사·노동·정무1장관,법제처장(이상 당연직) 총리가 위촉하는 민간인 7인(위촉직) ▲광주보상심의위원회=광주시장(위원장) 전남대총장,전남지사,시교육감,광주지검장,광주지방노동청장,심사분과위원장,등급판정분과위원장(이상 당연직) 총리가 위촉하는 민간인 7인(위촉직) ◇보상금등의 산정 기준 ▲월급여증명서 제출이 불가능한 자에게는 평균임금을 적용하며 평균임금은 건설노임단가통계,노동부간행 직종별 임금실태 조사보고서통계에 의함. ▲사망자 본인의 생활비를 부양가족의 수에 따라 공제율을 차등적용하되 공제율은 국가배상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공제율을 원용,부양가족이 없는 경우 40%,1인의 경우 35%,2인 30%,3인이상은 25%로 함. ▲취업가능기간,신체장해등급,노동력상실률은 국가배상법등 타법률의 규정과 균형을 유지,취업가능기간은 51∼60세는 1∼5년간 연장하는 국가배상법의 방식을 적용하고 신체장해등급은 광주시가 현재까지 판정기준으로적용해 온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준을 채택하며 노동력상실률은 국가배상법상의 기준을 원용토록 함. ▲향후 치료비는 지정병원등에서 발급하는 치료비 추정서에 의해 산정하되 발급기관의 범위는 국립종합병원등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지정하는 병원으로 하며 발급기피,추정불능시는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유사사례를 참작하여 결정함. ▲개호비는 국가유공자와 균형을 유지,월 19만2천원에 평균여명기간을 곱하여 산정함. ▲생활지원금의 지급기준은 보상지원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함. ◇보상절차 ▲지급신청은 법시행일로부터 30일 이내로 하며 동순위 재산상속인이 2명이상인 유족은 유족대표자를 선정해 신청하고 이민·입원 등으로 직접 신청·수령이 어려운 경우에는 관련기관장이 확인하는 수령위임장을 제출토록 함. ▲지급결정은 지급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함. ▲지급통지는 지급여부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신청인에게 송달 ▲재심의 신청은 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로 부터 30일 이내로 함 ▲동의및 지급청구는 광주시장에게 제출토록하되 시효기간은 보상결정서가 송달된 날로부터 1년 이내로 하며 지급시기는 지급청구를 받은 날로 부터 15일 이내로 함. ◇기타 지원금 ▲광주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한 사실이 원인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업무에 종사할 수 없었던 것으로 관련 공부에 의해 인정되는 자로서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정하는 생활수준에 미달한 자는 기타 지원금지원대상으로 하되 사망자·행불자·상이자로서 보상금 지급결정을 받은 자는 기타 지원금지급대상에서 제외함. ▲지급기준은 보상지원위원회에서 결정함 ◇지급신청에 관한 사항의 공고 ▲공고자는 광주시장으로 하며 관보및 2개이상의 일간지에 공고토록 하고 공고사항은 보상대상·신청인의 자격·접수기관·신청기간·구비서류 등으로 함. ◇위로금 미지급자에 대한 조치(부칙) ▲5·18당시 성금으로 위로금을 지급했을 때 미지급자에 대해서는 보상심의위원회가 당시 지급액을 추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둠.
  • 광주 미 문화원 난입기도/「남대협」소속 대학생 11명 연행

    【광주】 전남대학생대표자협의회(남대협)산하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원회」 결사대(대장 김현영ㆍ21ㆍ전남대 법학2년)학생 등 11명이 8일 낮12시쯤 시위를 하며 광주시 서구 양림동 광주미문화원으로 들어가려다 연행됐다. 결사대장 김군을 비롯,조선대 김명길군(20ㆍ정밀기계공학1년),목포대 박원이군(21ㆍ법학2) 등 학생 10명과 승주재야단체 회원 정성철씨(21ㆍ승주군 해룡면 남가리) 등 모두 11명으로 이날 미문화원장에게 항의서한을 직접 전달하려 했다. 이들은 미문화원 인근 호남신학대학 교정에 모여 있다 「광주의 적,통일차단 원흉 미문화원 즉각 철폐하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남대협 10만학도가 미국정부에 보내는 공개 항의서한」이라는 제목의 유인물 2백여장을 뿌리며 「통일논의 가로막는 미문화원 즉각 철폐」 등의 구호와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 줄잇는“망향”…새벽부터 붐벼/「방북」접수 첫날/성사기대감에 흥분도

    ◎“북한도 빨리 길터줬으면… ”/거의가 60∼70대 실향민/절차 묻는 전화도 빗발/신청자 70%가 “이산가족 상봉” 바라 정부의 「남북민족대교류」방침에 따라 북한방문증명서 발급신청서를 접수하기 시작한 4일 전국 2백67개 시ㆍ군ㆍ구청의 접수창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방북 기대에 부푼 신청자들이 몰려 줄을 이었다. 이날 하룻동안 서울에서 3천2백95명이 방북신청서를 낸것을 비롯,전국적으로 6천6백65명이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각 지방별로는 실향민이 많이 사는 경기가 1천1백37명으로 가장 많이 신청을 했고 인천 5백5명,부산 3백59명,강원 1백99명,충남 1백53명,대구 1백45명,전북 1백43명,경북 1백40명 등 이었으며 제주는 27명이 신청서를 냈다. 나이별로는 60세이상이 2천6백60명,50대가 1천6백53명 등 순으로 6ㆍ25이전 출생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방문목적별로는 이산가족 상봉이 3천9백77명,친지방문 6백60명으로 친지ㆍ가족을 만나려하는 신청자들이 70%가량 됐으며 관광은 1천2백63명이었다. 시ㆍ군ㆍ구청은 이날 상오 5∼6시부터 신청자들이 몰리자 업무시작시간을 앞당겨 강당과 회의실 등에서 접수를 받았으며 창구직원들은 점심마저 거른채 바쁜 일손을 놀렸다. 또 접수창구가 설치된 구청 등은 물론 동사무소 등에도 방북신청절차 등을 묻는 상담전화가 빗발쳐 다른 업무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신청자들은 접수를 마친 뒤에도 삼삼오오 여기저기 모여 두고온 고향에 대해 얘기꽃을 피웠으며 『이번에는 정말 가볼 수 있는 거냐』며 반신반의 하기도 했다. 신청자들은 고향방문을 희망하는 60,70대 실향민1세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신청서의 기재난에 고향방문이외에도 관광ㆍ선교ㆍ학술문화ㆍ사업목적이라고 적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날 영등포구청에서 신청서를 낸 송유진씨(48ㆍ사업ㆍ영등포구 여의도동 42)는 『지난53년 개성에서 헤어진 어머니(68)를 이번 기회에 꼭 만나뵙고 그동안의 불효를 사죄드려야겠다』면서 『이번 민족대교류가 꼭 실현돼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구청에 신청서를 접수한 김기락씨(77ㆍ상업ㆍ중구 신당5동 85)는 『죽기전에 고향인 함북 북청에 가 가족들을 만나보는게 소원』이라면서 『북한이 이번 방문을 받아주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성동구청에 신청서를 낸 김종호씨(44ㆍ주부ㆍ성동구 구의2동 39)는 『이번 기회에 평생소원이던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청에 신청서를 접수시킨 이종학씨(62ㆍ장안구 화서동 69)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으로 생각돼 새벽5시부터 나와 기다렸다』면서 방북이 실현되면 북한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날 부산진구청에 신청서를 맨처음 접수시킨 초읍국민학교교감 이송영씨(61)는 『6ㆍ25때 단신으로 함경북도 성진에서 월남한뒤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동서독도 통일한 마당에 북한도 민족화합차원에서 우리의 문호개방조치를 받아들여 방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전선과 인접해 실향민이 많은 강릉시청에 방북신청을 한 황규찬씨(66ㆍ강릉시 노암동 267)는 『함남 함주군에 두고온 부모를 만나기 위해 신청서를 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정말 방북이 이뤄질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글썽이었다. 광주시 서구청에 딸 현순양(20ㆍ전남대 2년)과 함께 신청서를 낸 김종오씨(47ㆍ서구 진월동 신흥타운 301동)는 『관광을 겸해 북한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접수시켰다』고 말하고 현순양은 『정부당국은 이번 방북을 꼭 실현시켜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꼭 풀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렙토스피라증 환자 장흥서 올해 첫 발생

    【광주】 광주ㆍ전남지역에서 올들어 처음으로 렙토스피라 증세의 환자가 발생했다. 육군 모부대소속 방위병 문희권일병(25ㆍ전남 장흥군 장평면 용강리)이 지난29일 하오5시쯤 렙토스피라 증세를 보여 인근 장흥병원에서 1차진료를 받은 뒤 곧 전남대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병원측은 『문씨의 상태로 보아 렙토스피라 증세로 보이나 정확한 병명은 객담검사를 거쳐야만 알수 있다』고 밝혔다. 렙토스피라는 들쥐배설물 등을 통해 피부로 감염되는 전염병으로 5∼6월부터 발생하기 시작,추수기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주로 농부들이 들일을 하는 과정에서 감염돼 왔다.
  • 「광주법」등 철폐 요구/전남대생 50명 단식

    전남대학교 학생 50여명은 18일 하오2시쯤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모여 지난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광주보상법 등을 전면 무효화시킬것과 민자당의 해체를 주장하며 5일 동안의 시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김봉호 경과(국회 새 부의장ㆍ상위장의 얼굴)

    ◎꾸준한 활동가… 당직 두루 거쳐 쉬지 않고 일을 꾸미는 활동형. 최근에는 당부동산투기 조사위원장으로 재벌기업 부동산 보유현황과 위장실태를 파악하는 등 의욕. 구공화당 출신이면서도 정책능력을 인정받아 평민당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책위의장ㆍ총재경제특보를 역임하면서 당의 정책정당화에 일조. ▲전남 해남ㆍ57세 ▲전남대 농대 졸 ▲IPU 한국대표 ▲남북국회회담대표
  • 가평 군청직원등 3명도 영장신청/은행간부 땅투기

    은행간부의 부동산투기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2부 차유경검사는 18일 서울 신탁은행 인사부 조사역 강용규씨(55ㆍ전남대문지점장)가 경기도 가평군 등 개발예정지의 땅을 사들여 미등기전매하는 수법으로 58억원의 전매차익을 챙긴데다 8천6백만원의 은행예탁금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내고 강씨를 국토이용관리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가평군청 공보계직원 조영택씨(47ㆍ기능직 10급)와 부동산중개업자 이희수씨(44),정연국씨(44) 등 3명을 부동산중개업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위현원씨(63)를 국토이용관리법 위반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구속된 강씨가 제주도와 경남 합천등지의 땅 13만여평을 사들인 사실도 밝혀내고 이 땅을 전매했는지와 매입자금의 출처를 캐는 한편 관련 공무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민미련 홍성담피고 원심대로 7년 선고

     서울고법형사3부(재판장 송재헌부장판사)는 1일 대형걸개그림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평양축전」등에 보냈던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공동의장 홍성담피고인(35)에게 국가보안법위반죄 등을 적용,원심대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홍피고인이 지난 88년11월 전남대에서 「남북한 미술의 발전비교」라는 주제로 강연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 광주 평온되찾아/시민들 거리청소… “원정학생”돌아가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을 맞아 사흘동안 갖가지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던 광주시내는 21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던 대학생과 재야단체회원등이 대부분 돌아간 가운데 어지러워진 도심곳곳에 시민들이 나와 청소작업을 하는등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 1천여명은 이날도 학교별로 집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광주 「2차 국민대회」무산/경찰,원천봉쇄

    ◎1만여명 밤늦도록 도심 산발시위/파출소 화염병 습격 공포 쏴 해산 【광주=임시취재반】 「국민연합」 「전노협」소속 근로자ㆍ대학생 등 1만여명은 20일 광주에서 열려던 「제2차 국민대회」와 「전국노동자대회」 등 각종 집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시내 곳곳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경찰과 학생ㆍ시민 등 1백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의 시위로 광주시민들은 최루가스 냄새로 큰 고통을 겪었으며 도심차량운행이 일부 중단되기도 했다. 「국민연합」과 「광주전남민주연합」은 이날 하오2시 전남도청앞 금남로 일대에서 「민자당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를 열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동구 계림동 로터리ㆍ서현교회앞ㆍ시외버스터미널 등 시내 곳곳에서 「민자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고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4시30분쯤에는 동구 대림동로터리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던 2천여명 가운데 대학생 등 50여명이 부근 광주 동부경찰서 대인파출소에 화염병 40여개를 던져 출입문 유리창 2장을 깨는 등 기습시위를 벌이다 파출소장 고만종경위 등 경찰관이 M16소총 50여발과 45구경권총 공포탄 21발을 쏘자 모두 달아났다. 또 「택시노련」 광주지부와 「5ㆍ18민주기사동지회」회원 택시운전기사 3백여명은 하오3시 무등경기장앞과 광주역광장에서 각각 개최하려던 「임투승리 및 5ㆍ18계승대회」를 경찰의 원천봉쇄로 갖지 못하자 택시 50대를 앞세우고 무등경기장 앞에서 금남로5가 입구까지 1㎞구간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차량경적시위를 벌였다. 한편 광주로 가는 열차에서 검문을 피해 뛰어내리다 숨진 신장호군(20ㆍ성남 대유공전 건축과2년)의 빈소가 마련된 전남대 부속병원 영안실과 정문앞에는 대학생 3백여명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며 농성을 벌였다.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은 이날 『신군의 장례식을 오는23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서 「전대협장」으로 치른뒤 유해를 망월동 5ㆍ18묘역에 안장하기로 유족측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신군사고와 관련,40여명을 이날 불러조사한 결과 『신군 등이 경찰의 검문을 받을 것을 우려,장성역에서 내리지 않고 열차를 타고 5백m쯤 더 가다 뛰어내렸으며 사고당시 열차안에는 검문경찰이 타고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 「전대협」목소리 극렬화예고/「4기 출범식」계기로 본 학생운동 전망

    ◎「반미통일ㆍ민자해체」를 핵심 과제로/학생들 관심끌려 「학원자주화」병행/일부대 탈퇴등 반대세력 늘어 분열조짐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19일 광주 전남대에서 전국 1백61개대학(전문대포함)의 2만여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제4기 출범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전대협은 이날 경찰이 「출범식」을 원천봉쇄하기위해 학교안으로 들어올 경우에 대비,비상식량과 화염병등 다량의 시위용품을 상경대 건물 옥상등 3개건물에 갖다놓고 장기적인 점거농성을 벌이고서라도 「전대협」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앞으로의 투쟁행태가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대협」은 이날 출범식을 통해 올해 투쟁방향으로 ▲민자당분쇄및 노태우정권 퇴진을 통한 민중생존권쟁취 ▲반미조국통일투쟁 ▲사대노예교육과 학원내 저질문화를 척결하기위한 학원자주화투쟁을 제시했다. 특히 「전대협」은 지난9일 창당된 민자당의 내분,전ㆍ월세값 폭등,재벌의 부동산투기방조,현대중공업과 KBS사태때의 공권력투입등으로 노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10%도 못받고 있다고 판단 민자당해체투쟁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전대협」의 송갑석의장(24)은 「제4기 출범식」을 갖기 직전 전남대 학생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민자당분쇄투쟁을 위해 평민당과 가칭 민주당과의 연대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평소 「제도권 야당」으로 매도했던 두 야당과도 손잡고 일하겠다는 「주도적」인 제의를 했다. 이에따라 「전대협」은 오는 27일 「국민연합」주최로 전국에서 열기로 한 「민자당해체와 노정권 퇴진 국민대회」를 통해 「5월투쟁력」을 총결산한뒤 6월2일 「국민연합」이 개최하는 「비상시국회의」(시국대토론회)를 거쳐 「6월 항쟁」 3주년인 6월10일에 대규모 시위를 벌여 민자당해체투쟁을 가속화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전대협」은 또 미국을 「광주학살의 주범이자 3당야합의 산파자」로 규정,22일을 「반미의 날」로 설정해 전국 각 대학별로 「반미투쟁 결의대회」와 미대사관에서의 항의투쟁,양담배와 농축산물수입반대운동 등으로 반미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심산이다. 88올림픽 공동개최투쟁을 벌였던 「전대협」은 지난해 평양축전 참가투쟁을 벌인데 이어 통일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산하에 「전면개방 자유왕래 실현및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위원장 권오중ㆍ23ㆍ연세대 총학생회장)를 구성,본격적인 통일운동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7월20∼27일 남북국토순례대행진 ▲광복절을 맞아 10만학생 방북교류추진 및 콘크리트장벽 참관투쟁 ▲10월 UN단독가입 저지투쟁 등으로 통일운동의 열기를 확산시키기로 했다. 「전대협」은 이밖에도 교육악법개폐및 사립학교 재단전입금확보등 학원자주화투쟁을 병행시켜 일반학생의 호응을 얻음으로써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노리겠다는 전략도 짜놓았다. 그러나 「전대협」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계속 확보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일부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전대협」을 탈퇴하는등 운동노선에 반발하는 새로운 학생세력들이 등장하고 있어 앞으로 학생운동의 양태가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공안당국이 송갑석의장등 핵심간부 17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선 상태여서 조기에 이들이 붙잡힐경우 지도부가 흐트러져 구심점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학생운동권의 소수파이면서 NL계열(민족해방파)과 함께 양대 세력인 PD(민중민주파)계열의 총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들이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전대협」측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전국학생투쟁체연합」(전학투련)주비위 발족식을 갖고 사실상의 활동에 들어감으로써 「전대협」노선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올해의 학생운동은 「민자당분쇄투쟁」과 「반미조국통일운동」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나 문제의 관건은 일반학생및 국민이 이를 어느정도 수긍하고 호응하느냐는 점에 달려있다.
  • 「광주검문」피하려 열차서 뛰어내려 대학생 3명중 1명 숨져

    ◎대학생 3백명 전남대병원서 농성 【광주=임시취재반】 「전대협」출범식에 참가하려던 대학생 3명이 검문을 피하기 위해 열차에서 뛰어내리다 중경상을 입어 전남대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 가운데 1명은 머리등을 크게 다쳐 숨졌다. 19일 낮12시45분쯤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장성역 구내에서 광주쪽으로 4백50여m쯤 떨어진 철로에서 서울발 순천행 제365 통일호(기관사 조왕운ㆍ42)를 타고 광주로 오던 임종훈군(20ㆍ경원대1년)과 신장호(20ㆍ대유전문대 건축과2년) 장민주군(19ㆍ경원대1년)이 달리던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이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을 목격한 장성역 선로원 정근모씨(52)로부터 구내전화로 연락을 받은 역무계장 이진희씨(50)는 역무원 3명을 사고지점으로 보내 추락한 3명을 장성군의료원으로 데리고 갔으며 의료원에서는 앰불런스로 광주기독병원으로 후송했다. 이곳에서 부상이 경미한 임군과 장군은 전남대로 갔고 신군은 상태가 위독,전남대 부속병원으로 다시 옮겨졌으나 하오7시20분쯤 숨졌다. 신군이 숨지자 대유공전학생 20여명과 조선대학생등 3백여명은 바로「규찰대」를 구성 전남대 부속병원정문과 응급실 주변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또 「광주ㆍ전남지역 민주연합」과 「5ㆍ18유족동지회」회원등 50여명은 이날 하오 전남대병원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 전대협출범식 광주서 강행/어제 전남대서/경찰과 대치속 1만여명참가

    ◎금남로 1차 국민대회는 무산 【광주=임시취재반】 전남대학생을 비롯,전국에서 모여든 「전대협」소속 대학생 1만5천여명은 19일 하오7시쯤부터 20일 상오2시쯤까지 광주 전남대에서 「제4기출범식」을 강행했다. 학생들은 이날 「출범식」이후 가두시위를 벌일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교내에서 밤을 새웠으며 경찰도 교내진입을 하지 않아 특별한 충돌이나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은 당초 이날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강제해산시킨다는 방침아래 4천5백명의 경찰을 교내에 투입하려했으나 한밤에 학생들이 강경하게 맞설경우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강제해산 계획을 철회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구속영장이 미리 나와 있는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ㆍ전남대총학생회장)이 나와 선언문을 통해 『「전대협」은 지난 87년 출범이후 백만학도의 정의와 애국적 신념을 담아왔던 단결과 투쟁의 심장부』라고 주장,『앞으로 민자당 분쇄및 노정권 퇴진투쟁과 반미통일운동,학원자주화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경찰의 검문검색을 피해 전남대에 집결한 전국 1백여개 대학생 8천여명은 강의실에서 밤을 지낸뒤 이날 상오9시부터 「남대협」소속 대학생 4천여명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교내 시위를 벌였다. 한편 「광주ㆍ전남민주연합」이 이날 하오2시 금남로일대에서 열기로 한 「5월항쟁계승과 민자당일당독재분쇄를 위한 1차국민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또 「마 창노련」소속 근로자등 1천여명도 이날 하오9시20분쯤부터 조선대 실내체육관에서 「전국노동자대회전야제」를 가졌다.
  • 차분한 광주… 빗속의 추모/어제 「5ㆍ18」10주

    ◎도청앞 5만인파 평화적집회/시민들,“질서”외치며 자진해산/일부대학생은 밤늦게까지 산발시위/상오 망월동엔 3만여명 몰려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인 18일 광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거행됐다. 이날 상오10시 망월동 5ㆍ18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시민과 전남대ㆍ조선대등 「남대협」소속 대학생들은 하오3시쯤부터 광주시내 카톨릭센터를 중심으로 금남로 2∼3가와 충장로ㆍ도청앞 광장주변에 모여들어 하오8시까지 3시간 넘게 「광주5월 민중항쟁 10주년 계승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가 시작된 하오5시부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파가 5만여명까지 몰렸다. 시민ㆍ재야단체회원과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해체민자당」「노태우퇴진」등의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의 노래를 부르며 50∼1백여명씩 짝지어 대회장소로 모였으며 대회주최측은 대형 마이크로 「질서」「앉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참가자들을 정리시켰다.이날 집회는 오종렬「민주연합공동의장」의 대회사,유가족대표의 인사말순으로 진행,하오8시쯤 별다른 충돌없이 무사히 끝났다. 오의장은 대회사에서 『광주는 10년전 외형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이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비폭력 평화집회임을 강조하면서 질서유지 담당요원 50명을 편성,자체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나 구호등을 외치지 않도록 통제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3만여명은 집회가 끝난 하오8시쯤부터 금남로에서 광주역ㆍ무등산장입구ㆍ공명터미널 등 세방향으로 나뉘어 북구 중흥동 민자당광주전남시ㆍ도지부 사무실 앞까지 3㎞구간을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10분만에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대림동 등 도심 곳곳에서 1백∼2백명씩 몰려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기념식은 17일 집회개최시간의 엄수와 연사들의 반체제적 발언금지등 7개항을 조건으로 경찰당국의 허가를 받아 열렸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에 시작된 망월동묘역 추모행사는 「추모제」「기념식」「씻김굿」등 3부로 나뉘어 빗속에서 4시간동안 진행됐다. 「5ㆍ18유족회」 전계량회장(54)은 추모사를 통해 『아직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애써거부하는 닫힌 가슴들을 열지 못했으며 참혹했던 학살의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애도했다. 또 「5ㆍ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노근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가슴 아프지만 이에 얽매이지 말고 광주항쟁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 실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추모제는 유가족들의 분향과 각 단체 대표들의 헌화순으로 경건하게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 행사는 내용이 다채롭고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어느 해보다 차분하고 질서있게 치러졌다. 경찰은 이날 5ㆍ18묘역 3㎞지점에서 2.5t이상 차량을,5백m 지점에서는 추모식 준비위원회 소속직원 10명이 행사준비차량 및 시내버스ㆍ일부 보도차량만을 통과시켜 예년과 같이 혼잡한 상황은 벌이지지 않았다. 또 추모제가 시작된 상오10시 광주시내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타종을 했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전남대ㆍ조선대 등 「남대협」소속 19개 대학생들은 이날 상오11시부터 각 대학별로 「5ㆍ18광주민중항쟁」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또 서울 등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 5천여명은 하오2시 광주대학에 모여 「5ㆍ18계승 및 광주 5적처단결의대회」를 갖고 망월동 묘역까지 16㎞를 도보행진으로 참배했다. ㅁ임시취재반 ▲사회부=오승호ㆍ성종수기자 ▲제2사회부=임정용기자 ▲사진부=유재림ㆍ김경빈기자
  • 대학생 1천명 격렬시위/어제 광주서/가두진출… 경찰과 투석전

    ▷시위◁ 전남대 학생 1천여명은 17일 하오1시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 도서관 앞뜰에서 「5월투쟁 계승을 위한 2만학도 전진대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가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1시간30분 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교문앞까지 밀고 들어오자 하오4시쯤 해산했다. 목포대ㆍ순천대 등도 이날 하오 각각 집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가 산발적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서구 송암동 광주대학 운동장에서는 교수ㆍ학생ㆍ시민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ㆍ18광주민중항쟁 기념탑」이 제막됐다. ▷광주시내◁ 전국에서 몰려든 대학생들과 재야단체회원들 및 전남대ㆍ조선대 등 현지대학생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시위와 집회 때문에 이미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광주 시민들은 대부분 『경건하고 평화적으로 보내야 할 「5ㆍ18 10주년」이 정치투쟁에 이용되어 광주가 난장판으로 변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전개될 각종 불법시위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망월동 5ㆍ18묘역에는 이날 비가 오는데도 아침일찍부터 추모인파 1만여명이 줄을 이었다.
  • 「광주상처」치유 「특별법」제정 서두를 때

    ◎10주맞아 보상등 치유책을 살펴보면…/국민화합차원서 당략떠나 적극 추진해야/1천2백57명에 최고 3천만원 우선 보상/관련자에 취업ㆍ학자금지급등 혜택…「국가발전 걸림돌」제거 총력 사망 1백95명,부상 1천4백59명,행불자 32명. 모두 1천6백86명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던 5ㆍ18광주비극이 일어난지도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었고 정치적ㆍ사회적으로 많은 교훈을 남겼던 그 「5ㆍ18」이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날의 비극과 아픔이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 있어 광주는 올해도 「5ㆍ18증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6공화국에 들어서 정부도 역사적으로 큰 교훈을 일깨워 준 5ㆍ18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그 성격을 재규정하고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지난 88년 4월1일 정부치유대책을 발표,관련 희생자에 대한 지원과 보상등 광주문제치유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관련 특별법안이 여야의 엇갈린 정치적 이해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등 광주문제 치유는 지금까지도 표류하고 있다.5ㆍ18 10주년을 맞아 지난 2년여동안 추진해온 정부의 치유대책과 그 해결전망,그리고 진정한 광주문제 치유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알아본다. ▷치유책 추진상황◁ ▲관련희생자파악=정부는 88년 4월 1일 광주문제치유대책 발표에 따라 그동안 정부에서 발표한 사상자외에 관련 희생자에 대한 추가신고를 5ㆍ18 8주년인 88년 5월18일부터 6월30일까지 44일간에 걸쳐 받았다. 당초 5ㆍ18관련 희생자는 민간인 1백63명,군경 27명,존속살인 3명등 1백93명이고 부상자는 9백47명으로 5공화국 때 확인 발표됐었다. 그러나 추가신고기간에 5ㆍ18관련 희생자로 7백4명이 신고해와 변호사ㆍ교수ㆍ의사및 관련유족과 부상자 대표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44차례에 걸친 심사를 실시,최종적으로 사망 2명,부상 5백12명,행불자 32명을 추가 확정함으로써 당시 80년 5ㆍ18로 인한 사망자는 1백95명으로 늘어났고,부상자는 1천4백59명으로 크게 불어났으며 행불자도 32명이 추가돼 5ㆍ18관련희생자수는 사실상 총 1천6백86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바로 이같은 사상자의 수가말하듯 한 지역에서 10일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총검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게 됐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지만 그동안 사망자가 2천여명이 넘을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정부의 과감한 관련희생자 추가신고로 말끔히 해소해 광주문제 치유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사실 5ㆍ18관련희생자들에 대한 추가신고를 거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문제가 현실문제로 대두돼 80년 광주의 비극은 역사적 교훈으로 내세우고 국민대화합의 차원에서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가 점차 익어갔다. 더구나 5ㆍ18 광주문제 치유를 위한 광주시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도 차차 허물어졌으며 관련희생자나 단체들도 정치적 문제를 제외한 제반문제에 대해서는 광주시장과 대화의 채널을 갖게 됐다. 실로 추가신고를 받아 놓고도 신고자에 대한 관련여부를 확인ㆍ검증하기 위한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심사위원을 맡는 것조차 기피할 정도였다. 그 문제도 몇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무사히 넘길수가 있었다. 추가신고 접수후 추후보상에 대비,관련부상자에 대한 상이정도 판정은 전남대와 조선대등 종합병원 전문의사들로 검진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8개 전문과목별로 과거의 진료기록과 후유증 정도,본인의 진술및 현재의 건강상태를 종합하여 개인별로 검진을 실시하여 그 검진기록을 토대로 종합병원 병원장급으로 구성된 판정위원회에서 산재보험법에 규정된 등급기준에 따라 판정을 실시,지금까지 모두 1천1백17명을 판정하기에 이르렀다. ▲생활안정자금 지급=88당시 정부치유대책을 추진하면서 광주시에서는 희생자들의 생계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입장에서는 처음으로 관련대상자 1천2백68명(연고자가 없는 2명은 미지급)에게 1인당 3백만원씩의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함으로써 5ㆍ18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사실 3백만원의 생활안정자금만 하더라도 당초 관련희생자 1백명을 한정하여 생계가 어려운 유족과 당사자들에게만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많은 관련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그당시까지 5ㆍ18관련희생자로 인정된자들에게 모두 지급키로 결정,88년7월27일부터 자금지급에 나섰다. 치유대책 초기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이 워낙 높아 당국과 관련희생자간에 대화자체가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아픔을 함께한다』는 광주시 당국의 진지한 대화노력이 주효했으며 정부치유의지를 확인시켜 상호협조적 자세로 전환하게 된 과정에서 비록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3백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이 큰 역할을 하게됐다. 이와 함께 시는 관련자들에게 의료보호ㆍ학자금지급혜택을 주고 중증부상자에게는 의료보호에서 제외되는 진통제등 특수약품을 지급했으며 관련자중 일부 희망자 1백37명을 중앙과 지방에 각각 취업시키는등 지방행정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과감히 시행,광주치유에 대한 정부의지를 가시화 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노태우대통령이 광주관련 특별법제정 전이라도 관련희생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지원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에 따라 중상이자와 사망자 유족에게 1인당 3천만원,일반상이자에게는 최하 5백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선보상을 실시,14일 현재까지총대상 1천3백2명중 96.5%에 해당하는 1천2백57명에게 이미 지급,광주문제 치유는 일부의 반대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떻든 깊은 단계에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법제정 추진=88년 11월 26일 노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치유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발표함에 따라 그동안 정부여당에서는 관련희생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안을 마련하여 지난 3월 임시국회에 제출했으나 현격한 여야의 시각차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채 다시 10주년을 맞고 있다. ▷해결전망과 관건◁ 광주문제가 조기에 종결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 속에서도 정부치유대책발표 2년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고 그 해결전망 또한 그리 밝지 못한 것은 법안에 대한 여야간 좁혀지지 않은 시각차다. 정부ㆍ여당에서는 국민화합차원에서 치유대책에 접근하고 있는 반면 야당이나 강경 재야단체에서는 정부의 잘못을 전제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여야가 법안의 성격에 대해서부터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관련희생자에 대한 보상수준과 기념사업의 범위에 대해서도 여야간에 논란이 있어 현실적으로 광주문제 치유에 어려움이 있다. 광주문제 치유의 정부측 창구역할을 맡고 있는 최인기 광주시장은 『10여년이나 지난 상태에서 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자료가 대부분 멸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동안 고통속에서 어렵게 생활해 오고 있는 관련희생자들의 욕구가 일시에 분출하여 이들을 설득하고 정부치유 의지를 신뢰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실토하고 『광주문제가 더이상 국가와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인 만큼 이의 조기해결과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광주관련 특별법이 조속히 입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시장은 『현재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의 성격과 보상수준,기념사업범위 등에 있어서도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하여 조속히 처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광주문제는 이러한 어려운 쟁점들에 대해 여야가 양보와 타협을 통해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느냐에 해결의 관건이 달려 있다』고 밝혔다. 「6ㆍ29 노태우선언」이후 그동안 경직된 정치ㆍ사회적 현실이 풀리고 제13대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거친 후 「민화위」에서 5ㆍ18의 상황과 진실이 차츰 수면에 부상됐을 때 광주문제는 치유를 향한 방향이 설정됐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16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와 광주문제 청문회에서 5ㆍ18의 모든 것이 낱낱이 증언됨으로써 5ㆍ18관련희생자들에 대한 치유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온 국민적 합의였음에도 광주문제는 그때 그때의 정치ㆍ사회적 이슈에 편승하여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아직도 그에 따른 관련특별법 제정마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바로 이같은 상황으로 인해 불만과 불신은 상승작용을 하게 마련이었고 광주는 해마다 5월만 되면 「5ㆍ18증후」로 몸살을 앓아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5ㆍ18도 반목과 갈등이 고조되는 속에서 화염병과 최루탄가스가 거리를 휩쓸고 있다.
  • 광주대학생 도심 산발시위/「5ㆍ18」앞두고

    ◎3천여명 경찰과 화염병공방/학생 10여명ㆍ전경 19명 부상 【광주=임정용ㆍ성종수기자】 5ㆍ18 10주기 이틀을 앞둔 16일부터 광주지역 대학생ㆍ재야인사들의 시위가 과격ㆍ폭력시위로 치닫고 있다. 전남대ㆍ조선대생등 남대협소속 대학생 3천여명은 이날 하오2시 조선대 민주로에 모여「5월투쟁선포식」을 갖고 강제해산에 나선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지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는등 폭력ㆍ과격시위를 벌인뒤 금남로와 중앙로ㆍ당주천변 등으로 2백∼3백여명씩 몰려나와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 학생들은 하오7시20분쯤 다시 광주시 동구 대인동 시외버스 공용정류장앞에 나와 시위를 벌이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서울시경 소속 서울7무9675호 2.5t 타이탄트럭을 길바닥에 전복시키기도 했다. 또 학생들은 이에앞서 하오3시쯤 경찰 10개중대 1천5백여명이 교내로 진입,강제해산에 나서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1시간30여분동안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도중 경찰에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조선대생 이선창군(20ㆍ치의예과2년)이 경찰이 쏜 SY­44를 입부위에 맞아 조선대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으며 윤영규군(20ㆍ기계공학1년)등 대학생 10여명이 최루탄 파편등으로 부상을 입었다. 한편 이날 시위진압에 나선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고영주상경이 시위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얻어맞아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등 전경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날 하오 시위현장에서 조선대생 김대영군(20ㆍ기계공학과2년)등 52명을 연행,조사하고 있다.
  • 전대협간부등 17명 사전영장/「5ㆍ9시위」주도 혐의

    ◎16개대 학생회장 포함/20일 광주서 대규모시위 계획/공공기관 방화 배후 철저 색출 검찰은 15일 「전대협」등 운동권 핵심세력들이 지난9일의 폭력 및 방화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주도한 것으로 밝혀내고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ㆍ전남대 총학생회장)등 17명의 구속영장을 미리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검찰은 이에 앞서 「서총련」 중앙정책위원 김혁군(21ㆍ한양대총학생회 기획부장)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달 26일부터 「전대협」의 공식의결집행기구인 「중앙상임위원회」 등을 열어 「5ㆍ9시위」에 대거 참가하기로 결정,1만5천∼2만여명을 서울시청앞 결의대회에 동원하기로 결정한 뒤 9일 대학별로 출정식 등을 갖고 서울시청 주변등 도심지로 진출하여 불법시위를 하도록 주도한 혐의를 받고있다. 이날 시위에는 전국 17개 도시에서 모두 5만여명이 참가,60여개 대학생들이 화염병 3만여개를 던지고 서울 미국문화원 등 공공기관 23곳에 불을 지르는 한편 시위진압 경찰관 2백50여명에게 중ㆍ경상을 입힌 것으로 집계됐다. 검찰은 송군등이 5ㆍ18 10주년을 전후로 각종 극렬시위를 벌일 것으로 예상해 예방적 차원에서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특히 19일에는 전국의 대학생 4만여명을 광주에 집결시켜 철야농성을 하고 20일 대규모 불법시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검찰은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앞으로 폭력시위가 근절될 때까지 공안수사역량을 모두 동원하여 주동자및 공공기관습격 관련자ㆍ폭력적 부화뇌동자와 배후조종세력들을 철저히 색출한 뒤 특별기동검거수사조를 편성하여 끝까지 추적ㆍ검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대협」간부는 ▲송갑석 ▲윤진호(24ㆍ서총련의장ㆍ고려대 총학생회장) ▲박성현(22ㆍ전대협부의장ㆍ부산대 총학생회장) ▲장병관(23ㆍ〃ㆍ경북대 〃) ▲이기헌(21ㆍ〃ㆍ경희대 수원캠퍼스 〃) ▲이진희(21ㆍ〃ㆍ인하대 〃) ▲윤태성(25ㆍ〃ㆍ창원대 〃) ▲김주옥(22ㆍ서울대 〃) ▲김용준(31ㆍ성균관대 〃) ▲김영진(22ㆍ중앙대 〃) ▲최정봉(21ㆍ서강대 〃) ▲김종우(21ㆍ전주대 〃) ▲박일진(21ㆍ조선대 민투위원장) ▲김균목(21ㆍ성균관수원캠퍼스 〃) ▲안정호(22ㆍ수원대 〃 )▲여종태(23ㆍ여수수산대 〃) ▲이용호(25ㆍ순천공전 〃)
  • 전대협간부 10여명/사전영장 청구키로/「5ㆍ9시위」관련

    「5ㆍ9가두시위」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시경은 14일 배후조종혐의로 구속된 김근태 전「전민련」 집행위원장(43)을 상대로 시위추진경위와 배후세력ㆍ주동자 및 「전대협」과의 연계과정 등을 집중조사했으나 김씨는 묵비권을 행사,신문에 일체 불응하고 있다. 경찰은 또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ㆍ전남대 총학생회장)등 「전대협」간부 30여명에 대한 방증자료를 관할경찰서별로 수집,이 가운데 집행위 간부 10여명에 대해서는 추가로 사전구속여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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