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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공관장 10명 인사/중국대사 정종욱/러시아대사 이정빈

    ◎칠레대사 조명행/파나마대사 황원탁 정부는 20일 주 중국 대사에 정종욱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을,주 러시아대사에 이정빈전외교안보연구원장을 임명하는 등 공관장 10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주 칠레 대사에는 조명행외교안보연구원미주연구부장을,주 파나마 대사에는 황원탁전유엔사군사정전위수석대표를 임명했다. 정부는 또 뉴욕 총영사에는 박노수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을,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에 허이훈전외교안보연구원미주연구부장을,주 호놀룰루 총영사에 강신성주칠레대사를,주 상해 총영사에 경창헌전파라과이대사를,주 함부르크 총영사에 이상흔주뉴욕부총영사를,주 아가냐 총영사에 온중열전사우디공사를 각각 임명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외무부 국제경제국장에 주철기제1정책심의관을 임명했다. ◇조대사 ▲서울 55세 ▲연세대 정외과 ▲주 스페인 참사관 ▲정보분석관▲주 앵커리지 총영사 ▲주 나이지리아 대사 ◇황대사 ▲강원 평창 58세 ▲육사 ▲한미야전군사령부 작전참모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유엔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수석대표 ◇박총영사 ▲충북 청주 62세 ▲서울대 법학과 ▲상공부 해외시장과장 ▲통상1과장 ▲주 제네바 공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 ◇허총영사 ▲서울 59세 ▲서울대 법학과 ▲정보1과장 ▲영사교민국장 ▲주 모로코 대사 ◇강총영사 ▲전북 옥구 59세 ▲서울대 영문과 ▲경제협력1과장 ▲총무과장 ▲재외국민영사국장 ◇경총영사 ▲충북 단양 58세 ▲서울대 중문과 ▲정보1과장 ▲주 중국 공사 ▲주 파라과이 대사 ◇이총영사 ▲서울 55세 ▲외국어대 독어과 ▲특전담당관 ▲주 파키스탄 공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온총영사 ▲전북 김제 57세 ▲서울대 사회학과 ▲영사과장 ▲주 베네수엘라 참사관 ▲주 쿠웨이트 참사관 □얼굴 ◎정종욱주중대사/예일대서 중국 연구… 통일문제 일가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발탁된 학자 출신.미국 예일대에서 중국문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중국대사로 임명되는 배경이 됐다고.통일문제에도 일가견을 가져 학자 시절부터 통일원,외무부등의 자문역할을 했다.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대인 관계가 넓은 편.▲경남 거창 56세 ▲서울대 외교학과 ▲미 아메리칸대 조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이정빈주러대사/고시 출신… 외무부 36년 경력의 베테랑 지난 59년 고등고시를 통해 외무부에 들어온 36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70년대 후반 중동국장을 담당,우리나라의 중동진출 붐을 조성하는데 일조했으며 제1차관보였던 90년에는 미수교 상태였던 소련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는데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무던하고 부하의 의견을 존중하는 성격.▲전남 영광 59세 ▲서울대 행정학과 ▲국제연합과장 ▲중동국장 ▲주 스웨덴 대사 ▲제1차관보 ▲주 인도 대사
  • 보훈처/정부 4개 부처 올 업무계획 주요 내용

    ◎국외 안장 선열유해 5위 봉환/고엽제 후유증수당 월 40만원까지/카자흐공 홍범도장군 묘소 재정비 국가보훈처는 민족정기 선양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국가보상의 내실화와 노후복지 확충을 꾀하며 보훈단체의 역할제고와 참전군인의 명예선양에 중점을 두고 올해 보훈시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의 범정부적 추진=독립유공자 3백여명을 발굴,3·1절이나 광복절에 포상하고 중국 등 국외에 안장된 선열 유해 5위를 봉환한다.연 20만∼3백60만원이던 생존 애국지사 특별예우금을 60만∼6백만원으로 인상하고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이 영주귀국하면 가구당 3천만원의 정착금을 지원한다.1만달러를 지원,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홍범도장군 묘소를 확장한다.독립운동사의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 유공자 자녀와 역사·윤리교사 등 8백명을 상해 임시정부 청사,청산리전투지역,독립기념관 등에 보내 현장교육을 시킨다.4·19 혁명기념 도서관을 서울 종로구 평동에 지상 7층,지하 2층 규모로 지어 97년 11월 개관한다. ◇국가보상의 내실화와 노후복지 확충=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및 생활정도 등을 고려,11만5천4백명에게 7천5백81억원을 지급하고 97년까지 기본연금을 월 45만원 목표로 해마다 12%씩 인상한다.전국 보훈의료망 구축을 위해 3백병상의 대전보훈병원을 신축하고 서울병원에 종합재활센터를 건립한다.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장애정도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후유증수당을 월 20만∼40만원씩 지급한다.97년 이후 정부출연금으로 고엽제 후원재단을 설립한다.전국 10곳에 있는 상이군경 복지회관을 경기,전북에 추가로 짓고 오는 6월 수원 보훈복지타운에 고령자 보훈복지대상자 4백52가구가 입주할 수 있도록 한다.충주에 2백명이 이용할 수 있는 미망인 전용시설을 6월 개원하고 제주지역에 17만평 규모의 종합 휴양시설을 짓는다. ◇보훈단체의 역할제고 및 참전군인 명예선양=보훈단체 운영비를 지방비에서 연 3백만∼6백만원씩 정액보조하고 상이군경 복지회관 운영비도 1곳당 5천만원씩 지원한다.제대군인 5천18명의 자녀교육,주택 및 생업자금을 2백10억원 지원하고 참전군인의 명예선양과 복지증진을 위해 정부출연기금으로 1백억원을 조성한다.참전용사의 인적사항을 전산화하고 대통령명의의 참전용사 증서를 교부하고 사망했을 때는 영구용 태극기를 증정한다.97년 서울서 열리는 세계제대군인연맹 총회 개최 준비를 위해 민관합동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 5·17 계엄확대 경위 집중조사/5·18특수부

    ◎김충우·정도영·차규헌씨 재소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2일 5·18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김충우씨를 소환한 것을 비롯,보안사 보안처장 정도영씨,수도군단장 차규헌씨 등을 재소환,조사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80년 5·17 비상계엄확대조치가 신군부측에 의해 강행된 경위와 「예비검속」이란 명분 아래 정치인·재야인사 등을 강제연행하고 연금한 배경 등을 집중조사했다. 검찰은 또 보안처장 정씨를 상대로 광주 진압작전을 보안사가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통제했는지와 각급 보안부대장을 통해 전달한 시위·진압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등에 대해 신문했다. 특히 보안사가 주도한 언론통폐합과 언론인해직의 배경과 과정 등을 캐물었다. 검찰은 차씨를 상대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5·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결의된 경위 및 배경 등에 대해 조사했다.
  • 「K공작」 기획 집중추궁/「5·18」 특수부

    ◎허문도·유학성·주영복씨 등 소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0일 5·18 당시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이자 국보위 문공분과위원이었던 허문도씨와 박영수전통일주체국민회의 사무총장을 처음 소환한 것을 비롯,3군사령관 유학성씨,국방부장관 주영복 등을 재소환,조사했다. 검찰은 허씨를 상대로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서리를 겸직하게된 경위와 언론통폐합 및 신군부측 집권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알려진 「K­공작」을 기획·추진한 의도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또 유씨와 주씨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5·17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확대조치가 결의된 경위와 5·18 광주 현장 진압을 위해 계엄군이 출동한 과정 등과 관련해 미진한 부분을 캐물었다. 검찰은 12·12 및 5·18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련,「경복궁모임」 참석자,보안사팀,정승화전육참총장 연행팀,광주 진압군 주요지휘관 등 주요 사안별 관련자들을 분류,사법처리 범위와 수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계엄군 지휘체계 집중 추궁/「12·12­5·18」수사

    ◎이희성씨 등 4명 환문/전·노씨 「축재」발견돼 불기소 취소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5일 80년 당시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등 관련자 4명을 소환,광주 현장에 투입된 계엄군의 지휘체계와 병력 이동 등에 대해 조사했다. 이날 소환된 사람은 이씨를 비롯,당시 7공수 33대대장이었던 권승만준장,육군참모차장 황영시씨,육본 작전참모차장 이상훈씨 등이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5·17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키로 결의한 경위와 광주에 진압군으로 공수부대 등을 출동시킨 이유,광주에서의 계엄군 지휘계통 등을 집중 조사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11일 12·12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됐었다. 한편 검찰은 6일 신우식 당시 7공수여단장 등 관련자 4명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 박준병·허화평·정호용·허삼수·안무혁씨등/의원5명포함 39명 출금

    ◎「12·12」·「5·18」·전씨 비자금 관련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두 사건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지금까지 모두 39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린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출국금지자는 박준병·허화평·정호용·허삼수·안무혁씨 등 현역의원 5명을 비롯,12·12 때의 「경복궁모임」참석자,광주투입 부대 사단장 및 대대장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전씨 비자금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사공일 전청와대경제수석,이상연 전안기부장과 김종상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 등도 출국금지시켰다. 검찰은 또 조비오신부 등 3명을 참고인과 피고발인 자격으로 29일 중 소환,조사키로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남덕우 전국무총리와 안영화 전국보위 운영분과위원을 소환,5·18 당시의 상황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안종훈 전군수기지사령관을 이날 재소환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안을 반대한 경위에 대해 신문했다.
  • 신군부 내란혐의 입증에 초점/5·18사건 검찰수사 중간 점검

    ◎당시 군수뇌부 등 24명 소환조사/비상계엄 전국확대 경위 등 추궁 지난 19일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면서 5·18사건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일부터 25일까지 매일 2∼5명씩 이 사건 관련 피고소·고발인 및 참고인등 모두 24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 가운데 15명정도는 5·18사건 피고소·고발인 58명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또 이에 앞서 피고소·고발인 10여명은 12·12사건 조사 때 이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군사반란죄로 기소하면서 5·18수사를 새해 1월중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에 비추어보면 수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방향과 내용을 종합해보면 검찰의 5·18수사는 당초 밝힌대로 신군부세력의 내란혐의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검찰의 주요 소환조사자는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광주사태 진압 관련자라는 두 부류로 크게 나눠져있다. 검찰은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관련해서는 비상계엄확대를 처음 결의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시국현안등 정치성 사안을 논의했고 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등 국정에 직접 관여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검찰은 이 회의에 참석한 당시 유병현 합참의장,윤자중 공군참모총장,김종곤 해군참모총장등 군 수뇌부가 신군부측이 제안한 비상계엄확대에 동의한 경위를 집중조사했다. 또 이한빈 부총리등 당시의 내각 관계자들을 소환한 것은 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가 군의 결의뒤 반나절만에 국무회의에서 전격처리된 배경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군이 국정의 책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입증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신군부의 정권 장악의도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종환 전내무장관을 소환해 당시 치안유지상태가 군의 전격개입이 필요한 정도로 불안했는 지를 조사한 것과 초법적으로 국정을 사실상 장악했던 국보위 참가인사들을 대거 소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 비상계엄확대 결정이후 군의 국회의사당 봉쇄에 대해서도 폭넓은 조사가 진행됐다.신군부가 행정부 뿐 아니라 국가의 중추기구인 입법부에 대해서도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파악해 총체적인 내란음모를 규명키 위해서였다. 군의 광주 진압작전에 대한 조사는 광주현지 조사와 함께 이번주부터 본격 조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특히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유지하고 있었는 지와 발포 경위가 주요한 조사사항이다. 당시의 주요 지휘관들이었던 진종채 2군사령관,윤흥정 전남·북 계엄분소장,소준렬 전교사 사령관등은 이미 조사를 받았고 정호용 특전사령관등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내일 「5·18」 현장조사/검찰/이규호씨 등 4명 어제 소환

    ◎김정호씨 등 2명 오늘 환문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4일 5·18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규호 전문교·이광표 전문공부장관과 정웅 전31사단장,성환옥 전수경사 헌병단장 등 4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면 26일쯤 수사팀을 광주에 보내 금남로와 전남도청,양민이 학살된 주남마을 등에 대해 현장 조사를 하기로 했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날 이와 관련,『지난번 수사가 서울에서만 이루어져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한 판단에 어려움이 있는 등 수사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마지막 기회인 만큼 광주 현장의 곳곳을 직접 조사하고 피해자나 목격자들의 생생한 진술도 들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25일 김정호 전해병사령관과 김순현 전전교사전투발전부장 등 2명을 소환,당시 전군지휘관회의에 참석한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날 당시 문교부장관 이씨를 상대로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안이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경위와 회의 분위기,학원소요사태가 계엄확대 조치를 필요로 할 만큼 심각했는지 등에 대해 조사했다. 전 문공부장관 이씨에게는 언론 통폐합에 개입하게 된 경위와 통폐합 과정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정씨에게는 광주 계엄군의 진압 작전 상황,계엄군 지휘체계의 이원화 시비 등에 대해 추궁했으며,성씨에 대해서는 임시국무회의가 열리던 중앙청 주변에 수경사 33헌병대 병력을 배치하게 된 경위 및 당시 야당 정치인을 체포·연금하는데 헌병병력이 투입된 경위를 신문했다.
  • 「광주발포」·계엄확대 경위 조사/검찰 「5·18수사」

    ◎진종채 전2군사령관 등 5명 소환/미체류 박희도·장기오씨 그;국 종용/전씨 비자금 거액 분산 확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2일 진종채 전2군사령관,김종환 전내무장관,우병규 전국보위 법사위원,길기상 전국회사무처장 등 5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진씨로부터 80년 5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의한 배경과 광주 진압작전의 지휘계통 및 발포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김전내무장관에게서는 비상계엄확대 때의 경찰의 치안질서장악상태,우씨에게는 국보위활동상황과 내용,길씨에게는 계엄확대 때 군의 국회봉쇄상태에 대해 각각 진술을 받았다. 검찰은 현재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박희도 전1공수여단장과 장기오 전5공수여단장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 여권재발금금지조치를 외무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또 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당시 부총리이던 이한빈씨등 거물급 5명을 23일중으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전씨 비자금 수사와 관련,지난 93년실명제실시를 전후에 조성된 전씨 친인척및 측근의 수천억대 금융자산 및 부동산 자금출처에 대한 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씨가 실명제직전 친인척 및 측근 명의로 거액의 비자금을 분산시켰다는 단서를 확보하고 조만간 친인척 등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21일 경찰병원에 입원중인 전씨에게 현재까지 조사된 3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및 친인척 명의로 거액의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조성했는지를 추궁했으나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 “정총장 연행”전·노씨 회동서 결정/검찰 공소장에 나타난 새사실

    ◎장성 등 10여명 30경비단 제지없이 집결/신군부,뛰어난 통신·지휘설비 사전 장악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가 21일 12·12군사반란에 대해 새로이 밝힌 주요 내용은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정승화 총장의 강제연행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12·12 당일 상오 국군보안사령관실에서 『실탄과 총기를 준비하여 강제적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전씨의 진술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전씨가 정총장 연행,조사에 대한 대통령 재가를 얻기 위해 출발하기 전에 이미 『재가가 없더라도 하오 7시 연행작전을 개시하라』고 지시한 것도 밝혀내 군 지휘계통을 무시한 반란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 두번째로 검찰은 그동안 항간에서 떠돌던 반란모의의 시발점이 전·노 두 전직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사실을 확인했다. 12·12사건 5일전인 12월7일 노태우 9사단장이 전보안사령관의 초청으로 보안사를 방문했으며 이 자리에서 10·26사건수사 브리핑을 받은 뒤 12월12일 정총장을 연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결정 이후 정총장 연행 지지를 위한 하나회 회원들의 모임을 경복궁에서 갖기로 하고 노사단장은 황영시 1군단장에게,나머지는 전씨의 지시로 보안사 허화평 비서실장이 연락하는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번째로 드러난 흥미로운 사실은 신군부측이 지휘본부로 사용했던 경복궁내 30경비단이 당시 군내에서는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릴 정도로 방어와 통신시설이 뛰어난 곳이었다는 것이다. 30경비단은 본래 청와대 경호실 직할로 박정희 전대통령 집권후반기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유사시 전군에 대한 지휘가 가능토록 만든 곳으로,수도권 방위 최고책임자인 수도경비사령관도 경호실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30경비단에 신군부측 인사 10여명이 아무런 제지없이 1시간여만에 모인 것이 우연이 아닌,군사행동에 대비한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른 것이었음을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군내에서 통신 및 지휘시설이 가장 뛰어난 30경비단과 보안사 상황실을 사전에 장악했기에 거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전·노씨의 진술도 반란의 사전계획을 엿볼수 있는 새로운 대목이라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과 함께 검찰이 이번 공소장에서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반란의 배후로 명시한 것도 지난 번 수사와 다른 점이다. 지난 번 수사발표에서는 12·12사건의 동기를 「소장 군부세력의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라고 애매하게 표현했었으나 이번에는 「군인사에서 정규육사 출신이 중심이 된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위기의식에서」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사조직의 군 지휘계통 장악을 인정하고 나아가 조직적 내란행위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12·12직전 전씨가 일방적 차관회의 주재 등 월권행위로 정총장측과 잦은 갈등을 빚은 점과 함께 주목된다. 이밖에도 검찰은 10·26 직후 1차 수사를 맡았던 백동림 당시 보안사 수사국장으로부터 정총장이 무혐의였음을 확인한 것도 지난 번 수사때와 다른 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도 지난 번 조사 때처럼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재가시 강압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 전씨 오늘 「반란수괴죄」 기소/검찰

    ◎정호용씨 등 관련 20여명 금명 소환/공소시효 기점 「계엄 해제일」로 잡아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0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21일 군형법상 반란수괴죄 등으로 구속기소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구속기소된 노태우 전대통령도 군형법상 반란모의 및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추가기소키로 했다. 검찰은 특히 5·18특별법에 대해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위헌시비에 상관 없이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 기산점을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로 잡기로 내부적으로 결정,그로부터 15년이 되는 내년 1월23일까지 관련자들을 기소키로 했다. 검찰은 이같은 원칙에 따라 전전대통령에 대한 내란죄는 내년 1월 중순쯤,전씨의 비자금과 관련한 뇌물수수혐의는 오는 29일쯤 각각 추가기소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12·12 핵심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내년 1월 중순쯤,5·18사건 관련자들과 함께 일괄 처리할 예정이다. 검찰은 21일 전씨를 기소하면서별도의 수사결과는 발표하지 않고 공소장만 공개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5·18사건 당시 윤자중 전공군참모총장,김종곤 전해군참모총장,전주식 전33사단장,정영진 전20사단 61연대 1대대장 등 4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윤·김씨에게는 지난 80년 5·17 당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의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여한 경위와 이 회의의 주요 목적,회의 때의 강압적 분위기 여부,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역할 등에 대해 신문했다. 검찰은 33사단장을 지낸 전씨를 상대로 80년 5월20일 군병력을 동원,국회의사당을 봉쇄한 경위와 주요 임무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정씨에게는 광주사태 당시 발포경위와 지휘체계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정호용 신한국당의원 등 아직 소환되지 않은 관련자 20여명을 금명간 모두 소환키로 했다.
  • 안보의식 재무장 장병에 정신교육

    국방부는 18일 북한의 심상치 않은 최근 군사동향과 관련,장병의 안보의식재무장을 위해 모든 일과에 앞서 30분∼1시간씩 일일 정신교육을 실시하라고 전군에 시달했다.
  • 두만강 개발사업 협정조인 공식 보도(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14일 두만강지역개발사업(TRADP) 제6차 계획관리위원회(PMC)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지난 6일 3건의 협정서들이 조인됐다고 공식 보도했다.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북한을 비롯한 두만강지역개발계획 관련 위원회 대표단장들이 6일 유엔본부에서 ▲두만강지역개발사업 및 동북아개발을 위한 협의위원회 창설을 위한 협정문 ▲환경원칙에 관한 양해각서 ▲두만강개발조정위원회 창설에 관한협정문에 각각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TRADP 사무국 소재지 선정과 관련,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사실을 비롯,한국측 대표단의 참가 사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지난 2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두만강지역개발사업 제6차회의에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우를 단장으로 한 경제대표단을 파견한 바 있다. ◎러 파견 벌목공 자격요건 강화 【내외】 러시아 벌목장에 파견되는 노동자들의 「자격요건」이 크게 강화됐다.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볼목노동자 자격요건의 강화는 구소련 붕괴후 점증하고 있는탈출자의 방지를 위해 내려진 「김정일 지시」에 근거하고 있다. 김정일은 『소련이 망하고 한국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는 러시아는 이제 적대지역과 같다. 따라서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곳이다』고 하달했다. 이에따라 93년 벌목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업무가 행정위원회에서 「노동당」으로 이관됐으며 6단계의 신원보증을 받도록 하는 증 파견절차가 대폭 강화됐다. 6단계 신원보증이란 러시아에 벌목노동자로 나가기 위해서는 단위 초급당비서­세포비서­담당보위지도원­거주지 인민반장­기업소 담당안전원­거주지 담당 안전원의 확인 및 서명을 받도록 한 것이다. ◎김정일 군최고사령관 지위 확고 【내외】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추대 4주(12.24)를 앞두고 있는 북한은 14일 『군최고사령관으로서의 김정일의 지위는 확고하며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방송을 통해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취임은 『혁명위업 계승에서 가장 뜻깊은 역사적 사변』이라고 선전하고 『전당,전군,전민이 김정일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치고있다』고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북한군은 김정일만을 믿고 따르며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관철해 나가고 있다면서 김정일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영원불멸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방송은 지난 10월 당창건 50주년 기념 군열병식에서 북한군 원수 및 차수,장령들이 김정일을 옹위하여 도열한 것은 『김정일의 권위가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보여주는 화폭』이라고 선전했다. ◎시아누크 “남한과 외교관계 수립안해” 【내외】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은 최근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중앙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라오스를 방문중인 시아누크는 지난 9일 라오스주재 북한대사 김응조와 만난 자리에서 남북한관계에 대해 『공화국(북한)만을 인정하며 남조선과 그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입장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 입장을 영원히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북한군 이상동향」 우리측 대응은

    ◎한­미 방어력 증강… 북위협 만반대처/미­인도·태평양 항모전투단 한국행/한­전군훈련 강화… 신제공작전 수립 미국이 내년초 인도양과 태평양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1개 항공모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정례적인 순항훈련을 넘어서 최근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군사위협에 쐐기를 박으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미 군당국도 다량의 미그기와 전폭기·장사정포를 휴전선 근처에 계속 증강·배치시키고 있는 북한의 움직임을 심상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항모전투단은 1척의 항공모함과 구축함·잠수함·최신예 전투기 등을 갖춘 탁월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어 유사시 투입되는 미 본토병력과 함께 한반도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항모전투단은 정례적으로 인도양 등을 거쳐 우리의 동해에서 순항훈련을 하고 있으나 지난해 연말 북한 핵위기가 고조됐을 때 훈련시기를 조정,우리나라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내년초의 항모전투단 파견도 북한의 위협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군의 대비태세도 최근 부쩍 강화되고 있다. 이달초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동계작전태세 강화지시가 내려진데 이어 겨울철,특히 야간전투에 강한 북한군의 기습에 대비해 야간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군은 올들어 저고도 비행기인 AN­2기를 이용한 특수부대의 훈련을 크게 늘려 남한과 유사한 지형의 함경북도에서 공중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이들 특수부대는 유사시 후방이나 산악지역에 침투,공군기지등 주요시설 파괴 및 후방지역 혼란등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특히 총경비국의 인민경비대 10개 여단을 인민무력부 소속으로 전환시켜 정규군화 하는 점도 위협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우리 군당국을 긴장하게 하는 북한의 군사동향은 황해도 태탄 등 휴전선에서 불과 30∼40㎞ 떨어진 예비기지에 배치하는 미그기 등 공군기의 지속적인 증강이다.지난 10월말 85대에서 이달초 95대로,최근 다시 20대를 늘려 1백15대가 됐다.이들 비행기는 발진에서부터 수도권 진입까지 5∼6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유사시 임무가 8분거리에 있는 주력기 투입 때까지 아군의 전투기나 주요시설을 「가미가제」식으로 파괴하는 데 있어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공군은 이날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야간 저고도 항법장비인 「랜턴」을 장착한 우리 공군기와 함께 미군의 U­2기를 동원한 한·미 공중감시활동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유사시 다단계 공중전략인 「신방어 제공작전」의 수립이다. 이 작전은 1단계로 일본의 미 공군기지에서 미군의 최신예 F­15기 등을 긴급발진시켜 적의 방공망 등 사전에 계획된 목표물을 초토화시킨 뒤 2단계로 우리 공군기가 적기를 무력화하고,마지막 단계로 적 후방에 대한 공격을 하는 개념이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부대이동이나 철책제거 등 전쟁발발의 뚜렷한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북한이 「이판사판식」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한국과 미국의 군 수뇌부는 이같은 상황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한·미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검찰수사 「5·18」로 확대 안팎

    ◎「12·12 군사반란」 규명 마무리 정면/피의자 대부분 조사… 「상당한 진척」 관측/두 사건 연계… 핵심 주모자 구속 불가피 12·12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 느낌이다.검찰은 11일부터 5·18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소환했다.12·12사건의 수사를 5·18로 확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 3일 전두환씨를 구속하면서 지금까지 소환조사한 12·12사건 관련자는 전두환·노태우씨를 포함해 모두 37명이다. 이 가운데 20명은 12·12사건과 관련한 피고소·고발인이며 2명은 5·18사건의 피의자다.나머지 15명은 참고인이다. 12·12사건의 남은 조사 대상자인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은 12일 소환될 예정이다.당시 공수여단장으로 국외 체류중인 박희도·장기오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최세창씨의 출두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수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않을 전망이다. 또 아직 출두하지 않는 최규하 전대통령도 5·18사건과 병합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당분간 절충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12·12사건의 16년째이자 전씨의 첫번째 구속만기일인 12일까지 12·12사건 관련자를 대부분 소환·조사한 셈이다. 이러한 수사진척에 따라 검찰은 5·18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소환조사의 결과를 분류·분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피의자들을 어떻게 사법처리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다. 검찰의 당초 의지대로라면 피의자들은 대부분 반란죄 이외에도 내란죄의 적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12·12사건과 5·18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방향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사의 강도로 미루어볼 때 12·12사건의 핵심 주모자인 「경복궁 모임」 참가자와 「보안사팀」은 반란죄와 내란죄의 각 죄목을 적용받아 구속될 것이 불가피해보인다. 또 총장공관 점거,직속 상관 체포등을 주도한 피의자들도 구속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관련자 모두를 구속할 지 선별처리할 지 등의 사법처리 수위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않다.아직 5·18수사와 관련지어 최종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두 사건이 동일한 사안이라면 구속자수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이는 정치적 조율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논란이 없는 전씨에 대해서는 구속만기일인 22일쯤 반란·내란죄를 적용해 기소한다는 방침이다.노씨도 이때 같은 죄목으로 추가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씨 측근들이 법정에서 대결한다는 계획아래 검찰의 소환에 의외로 순순히 응하고 있어 22일쯤까지는 내란죄가 핵심사안인 5·18수사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대로라면 전씨를 기소할 때 핵심주모자들도 함께 구속기소될 가능성도 많다. ◎12·12 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 총장 연행계획 수립 주도­이학봉씨/「비상계엄 확대」 군회의 주재­정영복씨/총리공관 경호대 무장해제­정동호씨/5·18때 광주에 군출동 지시­이희성씨 12·12 및 5·18사건과 관련,11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 겸 합수부 수사1국장 등 6명은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거나 「거사」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5공 때 출세가도를 달렸던 인물들이다. 이씨는 12·12사건 당일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명령을 받아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과 함께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계획 수립을 주도,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1등 공신이다.그는 80년 5·17 당시에도 정치인·재야인사·학생 등 소요 배후조종 혐의자와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의 검거대상 선정 및 검거까지 담당,신군부세력의 「집권 시나리오」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5공 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안기부 2차장 등을 역임하고 13대 민정당 공천으로 당선됐으나 89년 5공청산 때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정동호 당시 청와대경호실장 직무대리는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집무실인 총리공관을 경비하던 육군 특별경호대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고 청와대경호실병력으로 대체,최대통령과 군수뇌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킴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그는 86년 육군 참모차장 때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으로 예편한 뒤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에 진출했으나 지난 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 부동산 투기혐의 등으로 민자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주영복 전국방장관은 12·12가 신군부측의 승리로 끝난 직후인 12월15일 공군참모총장에서 예편한 지 8개월만에 국방장관에 기용됐다.그는 5·17당시 소집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통과시킨 후 이의 재가를 최전대통령에게 건의했다.내무장관·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신군부측에 회유돼 12·12직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다.그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당시 병력출동 지시를 내렸다.교통부장관·주택공사이사장 등을 지냈다.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은 13일 새벽 신군부에 의해 군수뇌부들과 함께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곧바로 신군부측으로 전향했다.합참의장·국방장관·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윤호 당시 육군보병학교장은 12일 밤 신군부측의 연락을 받고 급거 상경,신군부 대변인자격으로 13일 상오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등 미국 관리들과 접촉하고 다음 날 전합수본부장과 글라이스틴대사와의 회동을 주선했다.그는 12·12 직후 1군단장을 거쳐 1군사령관·합참의장·석탄공사 이사장·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 최 전대통령 오늘 방문조사/「5·18」 본격 수사

    ◎「경복궁 모임」 장세동씨도 소환/주영복 전국방 등 3명 환문/계엄 전국확대 과정 등 추궁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1일 12·12사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5·18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직 국회에서 5·18 특별법이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기초 조사 차원에서 5·18사건 피고소·고발인 가운데 핵심 관련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이날 5·18 당시 주영복 국방부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피고소인 자격으로,김윤호 광주보병학교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각각 소환·조사했다. 수사본부는 주 전국방부장관과 이 전계엄사령관 등을 상대로 전군지휘관회의에서 5·17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의결한 과정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의 지휘계통 및 과잉진압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김 전보병학교장에게는 신군부측의 「시국수습방안」기획에 자문역할을 하게 된 배경 등을 신문했다. 수사본부는 또 12·12사건의 핵심 인물인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이학봉씨와 신군부측에 체포된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씨,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씨 등 3명도 불러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소환자중 주전장관과 이전사령관에 대해서는 철야조사했다. 수사본부는 이씨를 끝으로 이른바 「보안사 4인방」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이와 함께 이날 출석요구에 불응한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를 12일 중으로 실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본부는 또 당시 「경복궁 모임」에 참석한 수경사30경비단장 장세동씨를 12일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오는 13일로 만료되는 5·18헌법소원에 대한 취하 동의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또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1차 구속만기일이 12일로 끝남에 따라 구속기간연장신청을 법원에 냈다. 한편 12·12 당시 하소곤 육본작전참모부장의 보좌관이었던 김광해(예비역 중령)씨는 이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재가를 받을 때 전두환 전보안사령관이 최전대통령을 권총으로 위협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최모대위는 육사31기로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사무관 최병수씨지만 최씨는 현재 목격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원폭력」 신고에 앙심/중학생이 보복폭행

    서울 종로경찰서는 8일 학교주변에서 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아오다 경찰에 붙잡힌뒤 법원의 영장이 기각돼 풀려나자 경찰에 범행사실을 신고한 학생에게 보복폭행한 전모군(17·S중3년·전과4범·서울 용산구 원효로4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 보복범죄 등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전군은 불량폭력조직인 막상파의 행동책으로 지난달 4일 동료 10명과 함께 폭력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으나 법원에 의해 「사안이 경미하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돼 풀려났다. 전군은 막상파의 범행내용을 경찰에 신고한 학생에게 보복하기로 결심하고 지난달 15일 하오 9시20분쯤 서울 용산구 원효로4가 산호아파트입구로 문모군(17·H고2년)을 불러내 『왜 경찰에 불었냐』면서 주먹과 발로 온몸을 폭행하고 코뼈를 부러뜨리는 등 전치3주의 상처를 입히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전군 동계작전태세 돌입”/이 국방,주요지휘관회의서 각군에 시달

    ◎북 체제위기 봉착… 무력 도발 우려 국방부는 7일 이양호 장관 주재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이 상황을 오판해 무력도발을 감행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내년 4월말까지 동계작전태세를 갖춰 무모한 적의 도발에 단호히 대처해나가기로 했다. 국방부는 또 군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큰 변화와 개혁에 한치의 흔들림 없이 국토방위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시달했다. 이장관은 회의에서 『정치적으로 큰 변화와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군의 사기저하 등을 우려하는 국민이 많다』고 지적,『군의 지휘체제에는 아무 변화가 없으며 안정된 가운데 군 본연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데 힘쓸 것』을 강조했다. 그는 『소수의 군인이 저지른 잘못으로 군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등 매우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면서 『이러한 때일수록 장병 상하간에 신뢰를 쌓고,말단 소대에서 각군 본부에 이르기까지 시각을 일치시키는 데 노력해 군내 결속을 강화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힘을 써달라』고 각급 지휘관에게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동진 합참의장,윤용남 육군·안병태 해군·김홍래 공군참모총장과 각군 사령관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 “전씨 사법처리 속전속결” 신호/검찰 「오늘 출두요구」의 배경

    ◎“피의자” 규정… 조사뒤 즉각 구속 가능성/“관련자 재소환 조사 물꼬트기” 분석도 검찰이 12·12 및 5·18 전면재수사에 착수한지 이틀만인 1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2일 소환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속전속결식」수사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특히 내일 소환되는 전전대통령의 신분에 대해 「피의자」라고 규정,소환조사 즉시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 주목된다. 이종찬 수사본부장은 구속가능성도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그러나 『조사할 분량이 상당히 많다』고 부연설명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밤샘조사를 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왔을 때도 소환 첫날 구속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최소한 3차례 정도의 소환조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2번째 소환에서 노씨가 구속되자 놀라워 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검찰이 올해안으로 전씨를 어떤 방식으로든 조사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환통보를 한 이상 구속으로 향하는 「사법처리일정」이 더욱 단축될 가능성이 크다.다만 노씨의 예에 비춰 전씨도 최소한 2차례 이상의 소환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전씨에 대한 전격소환은 노씨를 구속수사한 경험이 검찰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거칠 것이 없다는 검찰의 수사의지도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씨가 검찰소환에 불응할 경우다.『불응하면 진행상황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 경우에 대비한 대책도 이미 충분히 세워 놓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강제구인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검찰은 지난 12·12사건 당시의 수사기록을 상당히 검토했으며 전씨의 진술이 고소·고발인 및 피해자들의 진술과 상치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같은 가능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검찰은 처음부터 전씨를 조사해야 모든 꼬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전씨 조사를 통해 32명의 12·12관련자의 재소환 조사 및 사법처리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전씨가 소환을 거부할 경우 관련자들을 우선 소환해 방증자료를 더 수집하는 방안도 있으나 현재의 검찰분위기와 검찰수뇌부의 이번 사건에 대한 의지에 비추어 채택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날 이본부장은 전·노 두전직대통령이외에 나머지 핵심관련자들의 사법처리를 가름하는 5·18 재수사착수여부와 관련,『수사기법상의 문제이며 다음에 말하겠다』고 답변을 피해 검찰이 「공소시효의 벽」에 부딪혀 고민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현행법상 사법처리는 12·12쿠데타가 완료된 79년 12월 13일이 공소시효의 기산점으로 적용되지만 대통령재임기간의 공소시효 중단으로 15년의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사람은 전·노 두전대통령 뿐이다.그러나 두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12·12사건 공범 32명의 공소시효는 이미 종료됐다는 내부결론이 검찰을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2·12­5·18 재수사 쟁점/정승화 육참총장 강제연행 규명­12·12/보안사 집권 시나리오 실체 추궁­5·18 검찰이 전두환 전대통령을 상대로 조사하게 될 12·12와 5·18사건을 쟁점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2·12◁ ◇우발적 또는 계획적인가 여부=경복궁 30경비단에 집결한 장성들은 지휘부를 형성해 집단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요구할 것을 결정했다.쿠데타를 반대할 우려가 있는 주요 지휘관들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그들의 병력 동원을 저지시켰다.12월13일 새벽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하기 전에 이미 이희성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육군 참모총장직을 제의하고 합동수사본부측 장성들을 군 요직에 중용하는 인사안을 제시한 것은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강제연행=전두환 전대통령측은 거사 당일 하오 7시10분쯤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등 보안사 수사관 7명과 수경사 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내정총장에게 동행을 요청,거부당하자 정총장을 M16소총으로 위협하며 강제 연행했다.군사법경찰관이 수사권을 발동할 때는 형사절차법상 필요한 절차를 밟는 것은 물론 군통수권과 정상적인 군 지휘계통을 문란시키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동시에 취해야 한다.따라서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의 사전 재가 또는 승인 없이 비상계엄하에서 사실상 최고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계엄사령관인 정총장을 강제 연행한 것은 직속 상관에 대한 하극상임은 물론 군 통수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 ▷5·18◁ ◇보안사 집권시나리오의 실체=80년 3월부터 세간에 나돌기 시작한 보안사의 집권 시나리오 실체여부는 신군부측의 집권의도와 내란혐의 규명을 위한 중요한 단서이나 신군부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80년 3월 전씨의 중정부장 겸직은 최규하 전대통령의 인사발령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국내외 정보와 중앙정보부의 예산을 장악,신군부의 영향력을 정계에까지 미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배제한 채 전씨가 직무상 관련이 없는 보안사 참모들에게 지시해 입안하게 한 다음,이를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군 지휘관들이 결의하는 형식으로 추진했다. ◇정치인 및 재야 인사들의 활동 금지조치=기성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체포·연행·구금한 조치는 향후 정국운용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사전에 제거,경쟁자없이 권좌에 오르게 된 기반이 됐다. ◇임시국회 무산=국회의 계엄해제 결의를 차단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의 기획 및 설치=대통령이나 국방장관,계엄사령관이 배제된 채 보안사 참모들이 기획해 전씨 주도로 설치됐다.전씨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에 취임,사실상 내각을 조정,통제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최 전대통령이 자의로 사퇴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최씨의 전술거부와 신군부측의 강압 부인 등으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계엄상황을 이용,정국을 주도하고자 한 신군부측이 학생·시민들의 계엄해제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호한 진압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판단,강경진압과 증원으로 사태를 수습함으로써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사전 계획된 증거는 없으나 상당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단행됐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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