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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엔 한국기록 도전”/장애인 투창선수 허희선 값진 ‘은’

    “꼭 한국기록을 세우겠습니다.” 한 손이 없는 장애인 육상선수 허희선(22·경성대)이 ‘희망’을 던졌다.허희선은 13일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84회 전국체전 남자창던지기 남자대학·일반부 결선에서 75.57m를 던져 국가대표 박재명(한체대·76.27m)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부산 대표로 나선 허희선은 예선 1차시기에 무려 75.18m를 던지며 예선 1위를 기록,8명이 겨루는 결선에 당당히 진출했다.기세가 오른 허희선은 결선인 4차 시기에 75.57m를 던지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듯했지만 박재명이 5차 시기에서 단숨에 76.27m를 던져 1인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그러나 고교 때부터 5년간 전국체전에 도전장을 냈던 허희선은 대회 출전 사상 최고의 성적인 은메달을 움켜쥐었다. 세살 때 불의의 사고로 오른 손목이 잘려나간 허희선은 중학교 때 중거리 육상선수로 인연을 맺었지만 체력이 달려 고등학교부터는 달리기 대신 창을들었다.마무리 동작이 뛰어난 허희선은 신체 장애에 따른 훈련 부족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부산 그랑프리국제대회에서 자신의최고기록(77.33m)을 세우며 당당히 국내 선수 가운데 2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아왔다. 허희선은 “내 꿈은 한국기록을 깨는 것이므로 이를 달성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할 것”이라면서 “경기장에서는 장애인이란 생각이 들지 않고 경기에 몰두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덧붙였다. 전주 김영중기자
  • 하프타임 / 역도 김태현, 전국체전 14연패

    김태현(36·광주시청)이 전국체전 역도 14연패를 달성했다.김태현은 12일 순창군민회관에서 열린 역도 무제한급 인상과 용상에서 192.5㎏과 235㎏을 들어올려 합계(427.5㎏)를 포함,3관왕에 올랐다.김태현은 이로써 대회 14연패이자 11번째 연속 3관왕으로 체전 사상 가장 많은 48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여자 허들 400m에서는 이윤경(울산시청)이 우승하고,남자 1500m에서는 김남진(전남)이 우승해 이번 대회 첫 부부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 ‘탁구여왕’ 양영자 일시귀국

    1980년대 현정화(33·마사회 코치)와 함께 한국 여자탁구를 이끌었던 ‘탁구 여왕’ 양영자(사진·39)씨가 몽골에서 일시 귀국했다.10일부터 전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6일 고향을 찾은 것.전북 익산 출신의 양씨는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인탁(45)씨와 함께 이번 체전 성화 점화자로 나선다.83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일궜던 양씨는 4년 뒤 뉴델리 세계선수권에서 현정화와 복식 금메달을 땄다.88서울올림픽에서도 현정화와 복식에서 사상 첫 탁구 금메달 신화를 창조했다.
  • 하프타임 / 전국체전 오늘부터 7일간 열전

    제84회 전국체육대회가 10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7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이번 체전은 ‘가슴을 열어 하나로,힘을 모아 세계로’라는 구호 아래 16개 시·도와 15개국 해외동포 등 모두 2만 2330명(임원 5112·선수 1만 7218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육상 축구 레슬링 등 38개 정식 종목과 2개 시범종목(소프트볼 트라이애슬론)등 모두 40개 종목에 걸린 842개 금메달을 놓고 겨루는 이번 대회에서는 대회 2연패를 노리는 경기도와 함께 서울 충남 등이 종합우승을 다툴 전망이다. 개최지 전북은 전종목에 1159명의 선수단을 출전시켜 지난 1993년 3위 이후 10년 만에 3위권내 입상을 시도한다
  • 쉬어가기˙˙˙

    대한체육회는 전국체육대회 사상 처음으로 상업광고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7일 발표.체육회는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전북 전주 등지에서 열리는 제84회 전국체육대회 축구경기장 입식 광고판과 각 종목 공식 인터뷰 배경막에 KT 광고를 넣는 대신 8000만원의 광고료를 받기로 했다고.체육회는 앞으로 각종 상업광고를 더 많이 유치해 전국체전의 수익성을 높여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전국체전 최종 성화주자 4人 전북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전주에서 열리는 제84회 전국체육대회 최종 성화주자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4명이 선정됐다. 5일 전북도 체육회에 따르면 성화봉송 최종 주자는 전북도 출신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인탁(왼쪽위부터 시계방향·45·레슬링·84년 LA),전병관(35·역도·92년 바르셀로나),양영자(39·탁구·88년 서울),정소영(36·배드민턴·92년 바르셀로나)씨 등이다. 또 대표 선서는 김동문(28·배드민턴),김용미(27·사이클) 선수가 하게 된다.성화 점화자는 개막 전날인 9일 발표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스포츠 라운지]U대회·세계선수권 제패 한국유도 떠오르는 샛별 이원희

    ·1981년 7월19일 서울출생 ·주특기-배대뒤치기,빗당겨치기 ·서울 홍릉초등학교 4년 때 입문 ·보성중·고,용인대,마사회(입단) ·1999년 고3 때 국가대표 선발, 대표선발전에서 김혁 52연승 저지, 전국체전 등 5개 전국대회 석권,코 리아오픈 2위(국제대회 데뷔전) ·2002년 파리오픈 2위,오스트리아 오픈 1위 ·2003년 헝가리오픈 1위,유니버시아드 1위,세계선수권 1위 ‘스타 기근’에 시달려 온 한국 유도계는 요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지난달 막을 내린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와 지난 15일 끝난 일본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를 거푸 석권한 용인대 4년생 이원희의 출현 때문이다.실력은 물론 곱상하게 생긴 얼굴에 성격도 쾌활해 안병근 등 전설적인 선배들은 “유도 중흥을 이끌 ‘제2의 전기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는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 일본 감독으로부터 “이노우에 고세이를 능가하는 보기 드문 선수”라는 칭찬을 들었다.이노우에는 이번 세계선수권 100㎏급에서 전경기를 한판승으로 장식해 최우수선수(MVP)와 ‘이폰상’을 거머쥔 일본의 유도 영웅.이노우에를 능가한다는 말이 지금은 공치사처럼 들릴지 모르나 발전 속도로 봐서는 조만간 적절한 평가가 될지도 모른다. ●동물적 감각 지닌 ‘한판승의 사나이’ 대표팀 막내인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한 달 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5게임 모두 경기시작 1분여 만에 신기에 가까운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우승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6게임 가운데 1게임을 빼고 모두 한판승을 거뒀다.특히 시범경기로 치러진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73㎏급에서 81㎏급으로 체급을 올려 출전해 러시아의 강호 살라무 메지도프를 한판으로 제압,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일반인들은 이제서야 그의 시원한 한판승에 주목하게 됐지만 유도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한판승의 사나이’로 정평이 났다.고교 3학년 때인 지난 1999년에는 5개의 전국대회를 모두 한판승으로 이끌었으며,지난해 오스트리아오픈과 올 초 헝가리오픈에서도 12게임을 모두 한판으로 메쳤다. 권성세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판승은 힘이 아닌 감각으로 이루어내는 것”이라면서 “원희는 언제라도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의 주무기는 배대뒤치기.달려드는 상대의 배에 발을 대고 뒤로 넘어지면서 넘기는 배대뒤치기는 유도에서 가장 화려한 기술이다.그러나 실패할 경우 누르기를 당하기 십상이어서 경기중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그는 “고교 3년 때는 1년 내내 배대뒤치기만 연습했다.”면서 “실전에 쓰지 못하는 기술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랜드 슬램은 기본, 모교 총장이 꿈 한국이 금메달 3개를 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한유도협회는 “이원희만큼은 믿는다.”고 말했다.내년 아테네올림픽 메달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가장 확실한 것은 이원희”라고 말한다. 유니버시아드 2관왕(개인·단체전)과 세계선수권을 정복한 대가로 그는 매월 60만원의 연금을 받게 됐다.지난 2월 입단한 마사회로부터 5000만원의 포상금과 유도협회의 격려금까지 받아 짭짤한 부수입도 올렸다. 그러나 그는 “아직 배울 게 너무 많다.”고 말한다.특히 최대 라이벌이자 중·고·대학교 3년 선배인 최용신(마사회)을 넘어야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가장 보편적인 체급인 73㎏급은 세계적으로 선수층이 가장 두껍다. 화려한 기술과 민첩성이 탁월한 그의 최대 강점은 유도를 즐길 줄 안다는 것.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유도장에 간 그는 첫날부터 밤 10시가 넘도록 체육관에 남아 낙법을 쳤다. 유도의 ‘그랜드슬램’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을 모두 정복하는 것이다.그는 이제 겨우 1개를 달성했다.그러나 그의 꿈은 그랜드슬램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랜드슬램은 물론 A급 국제오픈대회를 모조리 석권하고,유도의 산실인 용인대 총장이 되는 게 그의 꿈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 ■역대 유도스타 계보 유도가 ‘효자종목’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은 안병근과 하형주가 지난 1984년 LA올림픽에서 처음 금맥을 캐면서부터다. 특히 안병근은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85년 서울세계선수권대회와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잇따라 우승해 한국 최초로 유도 ‘그랜드슬래머’가 됐다.하형주는 올림픽과 서울아시안게임은 제패했지만 85년과 87년 세계선수권에서 은과 동에 그쳤다. 이들의 뒤를 이은 선수는 60㎏급의 최강자 김재엽.86아시안게임,87년 독일(당시 서독)세계선수권,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두번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김재엽의 뒤는 김병주가 이었다.89년 유고세계선수권과 90년 북경아시안게임을 제패했지만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3위에 그쳤다. 93년에는 ‘업어치기의 명수’ 전기영이 등장했다.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업어치기 특기를 앞세워 그해 캐나다세계선수권부터 95년 일본,97년 프랑스 등 세계선수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게다가 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까지 정복해 한국선수 가운데 가장 많이 세계를 제패했다. 여자유도에서는 내년 아테네올림픽 심판으로 발탁된 ‘미녀 포청천’ 김미정이 91년 스페인세계선수권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을 메쳐 그랜드슬램을 이루었다.
  • 하프타임 / K - 리그 장소·시간 일부변경

    프로축구 K-리그 일부 경기의 장소와 시간이 방송중계 및 전국체전 관계로 변경됐다.오는 24일 울산-성남전과 다음달 1일 전북-포항전이 방송중계를 위해 오후 7시 30분에서 7시로 앞당겨졌다.다음달 8일 오후 7시 30분으로 예정된 전북-광주전은 전국체전 개회식 관계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익산공설운동장으로 옮겨 오후 7시에 열린다.
  • [스포츠 라운지]돌아온 ‘주부 총잡이’ 부순희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 원조 ‘주부 총잡이’ 부순희(사진·36·우리은행)가 암을 딛고 다시 사선에 섰다.지난 2001년 말 위암 판정을 받은 그녀는 지난해 4월 위의 절반 이상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이 때문에 155㎝·43㎏의 가녀린 체격이 더욱 야위어 보이지만 특유의 투혼만은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과녁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 재기를 향한 의지가 이글거린다. ●근성으로 일군 여자 권총 1인자 그녀는 사격선수로서는 때늦은 지난 1983년 제주여상 1학년 때 처음 총을 잡았다.당시 국민은행 사격선수이던 언니 신희씨가 “차분하고 집중력이 좋아 사격선수로서 적당한 성격”이라며 권유했다. 86년 한일은행에 입단,첫해 태극마크를 달았다.총을 잡은지 3년 만에 타고난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그는 “언니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면서 “사격에 대한 노하우와 전술을 전수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장점은 작은 체격임에도 눈빛만으로 상대를 누를 정도로 근성이 강하다는 것.이를 바탕으로 그는 90년대 여자 권총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25m권총 국제대회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았다. 세계 최고수들이 참가하는 94년 세계선수권,99년 월드컵파이널 등을 석권했고,2001년 전국체전에서는 25m권총 비공인 세계신기록(결선합계 696.3점)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메달 후보에는 늘 그의 이름이 올랐지만 모두 발길을 돌렸다. ●아테네올림픽을 겨냥한 몸부림 암 수술로 총을 잠깐 놓은 사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 후배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전보다 갑절 이상 땀을 흘리고 있다.수술 전에는 하루 80분 정도의 훈련에 그쳤다.항상 정상에 있다 보니 자만심이 생겨 훈련량이 적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3시간 이상 훈련한다.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시로 태릉사격장 뒷산인 불암산에도 오른다.그는 “수술 받기 전에 이렇게 열심히 훈련했으면 올림픽 메달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선 메달을 반드시 따겠다.”고 다짐한다. 권오근 우리은행 코치는 “연습 때는 전성기 기량의 85% 정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빨리 1등을 해야겠다는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대회 성적은 아직 연습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좌절은 없다.’ 그녀의 집안은 끈질기게 암의 그늘에 시달렸다.친어머니 김숙자(72)씨는 8년 전 위암수술을 받았다.다행히 지금은 손자 동규(8)를 돌봐줄 정도로 회복됐다.외할머니는 위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 2000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시어머니가 폐암으로 그해 10월 돌아가셨고,두 달 뒤 국가대표였고 그녀의 정신적 지주이던 언니 신희(당시 39세)씨마저 폐암에 걸려 13개월 동안의 투병 끝에 두 아들을 남기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자신마저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며 남편 최재석(39)씨와 아들의 끝없는 격려가 없었다면 주저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그녀는 요즘 내년 4월 시작되는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겨냥해 쉴틈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글·사진 김영중기자 jeunesse@ ■병마와 싸워 이긴 스포츠 영웅들 병마를 이기고 정상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의 투혼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불굴의 스타’ 가운데 대표적인 선수가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33·미국).1997년 생존율 50% 이하의 고환암 진단을 받은 뒤 고환과 뇌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서도 지난 7월 프랑스일주 도로사이클 대회(투르 드 프랑스)를 5연패하는 신화를 일궈냈다.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100m를 세차례나 제패한 게일 디버스(37·미국)는 지난 89년 갑상선 종양의 일종인 ‘그레이브스 병’을 딛고 재기에 성공,92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100m 2연패를 이뤘다.디버스는 99년 세계선수권 여자 100m 허들에서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루드밀라 엥퀴스트(39·스웨덴)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엥퀴스트는 그해 암 판정을 받고 오른쪽 젖가슴을 잘라낸지 4개월여만에 출전했다.당시 디버스는 12초37로 우승했고,엥퀴스트는 12초47로 3위를 차지했다. 96애틀랜타올림픽 여자 200m와 400m를 석권한 프랑스의 마리 호세페레(35)도 올림픽 직후 ‘엡스타인 바 병’이라는 만성피로 증후군에 시달리며 선수생명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페레는 2000년 프랑스 니스 국제대회에서 400m 3위에 올라 재기에 성공했다.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은퇴했지만 올해 다시 트랙에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U대회 스타덤 / 男체조 간판스타 양태영

    사상 첫 단체전·개인종합 우승,사상 첫 2관왕.끊임없이 세계의 벽에 도전해온 양태영(23)이 마침내 그 벽을 넘었다. 지난 1990년 창천초등 4학년 때 체조를 시작한 그는 성산중·서울체고·한체대를 거치며 남자 체조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98년 KBS배 4관왕,전국체전 3관왕,99년 종별선수권 3관왕,2000년 종별선수권 2관왕,2001년 베이징유니버시아드 단체전·뜀틀 동메달,주니치컵국제대회 뜀틀 금메달,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지난 4월 종별선수권 개인종합 금메달 등 그의 전적은 화려하기만 하다. 그는 이처럼 국내에서는 간판스타로 통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좀처럼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최근 끝난 미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종합 예선을 3위로 통과해 세계챔피언의 꿈을 부풀렸지만 12위에 그쳤다. 하지만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그는 꿈을 이뤘다.단체전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데 이어 ‘체조의 꽃’이라는 개인종합 정상에 올라선 것.그는 “이 순간을 위해 연습한 것 같다.”며 기쁨을 터뜨렸다. 30일 종목별 결승 링 뜀틀 마루운동 평행봉 등 4개 전종목에 나서는 그는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며 당당한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대구 박준석기자
  • U대회 스타덤 /양궁 남자 개인전 방제환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움켜쥐어 단숨에 스타반열에 뛰어 오른 방제환(20)은 대기만성형의 궁사. 결승에서 만난 이창환 등 또래 스타급들이 고교 때부터 승승장구한 것과는 달리 그는 국내무대에서조차 제대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최영광 등 후배들이 국가대표로 뽑혀 세계대회를 석권하는 모습을 아쉬움과 부러움 속에 쳐다봐야만 했다. 인천 주안초등 4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고,선인고 시절까지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하지만 인천전문대 졸업반이던 지난해 전국체전 대학부 개인전에서 대회 2연패를 일궈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연습벌레’라는 별명답게 묵묵히 기량을 갈고 닦은 게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올해 인천 계양구청팀에 입단하면서 기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서거원 계양구청 감독은 “제환이는 긴장을 즐길 줄 아는 선수”라며 “활을 놓은 뒤 왼쪽 어깨가 조금 흐트러지는 등의 약점만 보완한다면 세계 최고수준인 한국 양궁을 짊어질 만한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홀어머니 이임순(55)씨와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밝고 성실한 태도를 잃지 않아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그의 아버지는 그가 고교 2년 때 지병으로 타계했다. “이제야 양궁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 같다.”는 그는 “이번 대회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이제부터라는 각오로 노력해 2004년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중국서 성공하면 어디서든 생존”LG전자 중국지주회사 노용악 부회장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노용악(盧庸岳·63) LG전자 중국지주회사 부회장은 사내에서 ‘전략가’로 통한다.베이징 왕징(望京)사무실에 들어서면 우선 한쪽 서재에 가득 꽂힌 서적들에 압도당한다. 중국 고대 역사책부터 최신 경영전략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LG 중국본부의 사령탑으로 다국적 기업들과의 치열한 ‘영토쟁탈(시장점유)전’에서 성공한 것도 폭넓은 독서가 뒷받침된 다양한 전략이 주효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1994년 4월,노 부회장이 LG지주회사 사장으로 중국에 첫발을 디딘 후 햇수로 10년째다.24일로 한·중 수교 11주년을 맞아 그는 한·중 경제협력의 한복판에서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치른 산증인이기도 하다.노 부회장은 최근 관영 신화통신사가 발행하는 ‘경제참고보’가 선정한 ‘비상인물(非常人物·대단한 사람)’로 뽑혔다. 국난으로 여기는 사스(SARS) 기간에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얻고 글로벌 기업 중 현지화에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올초 중국의 유력 경제지 중국전자보가 선정한 ‘2002년 중국가전 10대 인물’에 외국투자 기업인으로 유일하게 포함되기도 했다. ‘임전불패(臨戰不敗)’라는 확고한 경영철학을 가진 그는 중국에서도 ‘공경적이고 진취적인’ 경영전략으로 시장을 확장해 왔다.CNN방송이 지난 6월 방영한 ‘비즈 아시아’ 프로그램에서 노 부회장의 도전정신에 포커스를 맞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시장의 철칙”이라는 그는 “먼저 시작하기 위해선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웃는다. 1965년 LG전자 입사 이래 평생 영업과 판매 전선에서 단련된 야전사령관답게 중국 시장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을 지켜본 그로서 중국의 미래가 상당부분 예측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의 고향은 충북 보은이다.느릿한 말 속에는 가끔씩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어떻게 보면 겉으로 느긋하지만 ‘유대 상인도 울린다.’는 중국인 특유의 상술과 어울리는 측면도 보인다. 정·재계,문화계까지 마음이 통하는 펑유(朋友·친구)들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중국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기들보다 더 중국을 많이 알고 있어 ‘보스(博士)’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 생활 10년이 늘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중국의 복잡한 마케팅 구조 때문에 초기부터 애를 먹었다.“한푼 두푼 쥐어짜듯 원가 절감을 해놓으면 중국의 경쟁사들이 20∼30%씩 판매가를 내릴 때 엄청난 충격을 받곤 했다.”고 회상했다.“늘 다시 시작면서 중국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디를 가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단치 않은 중국 시장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2류 상품을 갖고 중국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충고한다.한국에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중국행을 꿈꾸고 있지만 “전국체전 메달권에서 탈락한 자가 올림픽에서 우승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며 매섭게 지적한다. 그는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인들에게 ▲서양 시각으로 중국을 이해하지 말 것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보지 말 것 ▲현재가 아닌,미래를 보고 결정할 것 ▲관시(關係)를 이해하고 활용할 것 등을 기본 철칙으로 권고한다.1남 2녀의 가장인 그는 인기 탤런트 노주현씨의 친형이다. oilman@
  • 대구 유니버시아드 / 성화 점화자 이진택

    개회식에서 성화를 점화한 이진택(사진·31)은 6차례나 한국기록을 갈아치우며 아시안게임을 2연패한 한국 육상 높이뛰기의 ‘지존’이다. 지난 3월 국가대표 코치직을 마다하고 고향 대구에서 신생학교 교사직을 선택할 만큼 대구 육상계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이번 대회 성화 점화자로 일찌감치 물망에 올랐다.지난 199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유니버시아드에서 2m32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도 낙점에 보탬이 됐다. 20세 때인 지난 92년 첫 한국기록을 작성한 뒤 기록제조기로 불리며 아시아권에서는 근접조차 힘들다는 세계 높이뛰기의 벽에 도전을 거듭했다.97년 2m34의 한국기록을 세운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지만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저조한 기록으로 초반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이후 왼쪽 어깨 부상으로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야 했다. 운동을 그만둘 뻔한 그는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한 뒤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경북대를졸업한 뒤 한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올해부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구파.앞으로도 전국체전에는 대구 대표로 출전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 [나의 건강보감] 전설의 농구스타 신동파

    그는 한국 농구의 역사를 썼다.신동파(59·한국농구협회 부회장).한국 농구의 ‘황금 슈터’로,또 지도자로 그가 우리 농구계에 뿌린 씨앗은 실하고 여물었다.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말하면서 전능한 ‘신동(神童)’의 이미지를 함께 떠올리는지도 모른다.확실히 그는 일세를 드리블한 풍운아였다. 지난 67년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그가 이끄는 휘문고 농구팀은 맞수 경복고와의 마지막 일전에 나섰다.경기장은 서울운동장 옥외 테니스코트.종료 5초전 스코어는 69:70으로 한점을 뒤져 있었으나 공격권이 경복고에 있어 승부는 사실상 결정된 상태였다.절체절명의 순간,경복의 공을 가로챈 휘문 선수는 약속처럼 그에게 패스했고 공은 종료를 알리는 딱총소리와 함께 그의 손을 떠났다.이른바 버저비터.이 슛 한방으로 휘문고는 전국체전 출전권을 땄으며 그는 열여덟의 나이에 국가대표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그러나 이것은 ‘신동파 농구’의 시작에 불과했다. ●어릴적 꿈 야구선수…지금도 야구중계 즐겨 그로부터 2년여 뒤.무대는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이었고 상대는 아시아를 주름잡던 필리핀.이 경기에서 그는 혼자 50점을 몰아넣으며 먹고 사는 일 팍팍했던 국민들의 가슴을 열광의 환호로 달궜다.최종 스코어는 95:86.그 덕분에 지금도 필리핀에만 가면 그는 ‘영웅’이고 ‘우상’이다. 이처럼 우리 농구의 역사를 일군 그였지만 사실 그의 꿈은 야구선수였다.지금도 농구보다 야구중계를 더 즐겨보는 야구광이다.어린 시절 서울 을지로4가 인근에서 생활했던 그는 청계천변 공터를 누비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으나 휘문중 야구감독의 퇴짜 때문에 차선책으로 농구선수가 된 사연을 갖고 있다.“그땐 키만 멀쑥한 약골이었어요.그래선지 감독이 절더러 공부나 하라더라고요.야구부 퇴짜지요.그땐 정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었어요.그 뒤론 등하굣길에 야구장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았지요.” 그로부터 두어달 후,그는 ‘단지 키가 좀 크다’는 이유만으로 농구감독의 눈에 띄어 농구인의 길로 들어섰다.“야구를 못하게 된 울분 때문에 미친듯 농구에 몰두했어요.농구는 안된다는 부모님 몰래였지요.그러다가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됐는데 그게 재밌어요.슛을 할 때 볼이 림의 그물을 스치는 소리가 너무나 짜릿하고 매력적인 거예요.나만 듣는 소리였는데,그 매력에 빠져 결국 농구에서 못벗어났지요.” 이것이 슈터 신동파의 전설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선수 시절 그는 볼이 림을 건드리지 않고 들어가는 이른바 ‘클린슛’으로 유명했다.중장거리 슈터의 클린슛 취향은,매사에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런 일화가 있다.선수시절 그는 각각 100개씩의 자유투와 점프슛을 연습삼아 시도한 적이 있었다.이중 자유투는 85번째,점프슛은 88번째에서 각각 한번씩의 실수를 했을 뿐이었다.주변에서는 ‘귀신’이라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욕심은 있었지만 다시 시도하지는 않았어요.지나친 욕심이 심정의 동요를 초래하고,동요가 몸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부모님이 물가 못가게 말려 수영 못배웠죠” 걸출한 스타로 평생을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살아온 그이지만 남모르는 비밀도있다.“사실은 아직 수영을 못해요.외아들 사고라도 날까봐 부모님께서 아예 물가엘 못가게 하셨거든요.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유명해지니까 못배우겠더라고요.키가 190㎝나 되는 내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 사람들이 뭐라겠어요? 결국 못배웠는데,지금도 물이 제일 무서워요.” 대신 그는 산을 좋아한다.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예 미니버스를 한대 장만해 정봉섭 중앙대 체육부장 등 등산멤버들과 짬만 나면 산을 오른다.이렇게 쌓은 등산 이력이 어언 15년.“산도 좋지만 새벽부터 멤버들과 함께 오가며 정을 나누는 재미,이거 말로 표현 못합니다.” ●1년전 골프 입문…“생각보다 재밌네요” 등산보다 더 오랜 그의 취미는 바둑.선수 시절부터 농구 말고 가장 즐긴 정신 청량제였다.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합숙훈련을 했던 태릉선수촌의 전신인 동숭동 선수촌 시절,여가문화라곤 없는 이곳에서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김영기(현 KBL총재)씨에게 9점을 깔고 둔 접바둑이 지금 아마4단 실력이다.그는 바둑이 농구나 인생과 닮았다고 했다.“남의 집 커보인다고무작정 들어가다 망하는 것도 그렇고,욕심만 내다가 실패하는 것도 그렇고….” 한때는 멀쩡한 산을 깎아 골프장 만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가 1년 전부터는 골프도 한다.선배에게 등떠밀려 골프채를 잡았고,박한 감독이 머리를 올려줬다.그 즈음 농구계에서는 “뭐,신동파가 골프를…”이라며 그의 전향(?)을 화제삼기도 했다.나이 예순 즈음의 일이니 늦바람이지만 “생각보다는 재밌다.”고 했다. 농구를 일컬어 “가장 큰 볼을 작은 구멍에 넣어야 하는,그래서 누구든 코트에 서면 스스로의 열정을 남김없이 태우고 마는 스피디하고,격렬하고,파워풀한 운동”이라는 그와의 담소는 유쾌했다.“선수로,지도자로 아쉬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이젠 지금 하는 신문 기고·방송 해설일 성실하게 하면서 아마추어농구의 기반을 다지고 싶습니다.저변없는 프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언탁기자 utl@ ■신동파씨가 말하는 농구건강론 “농구,힘든 경기예요.아마 달리면서 소변까지도 본다는 마라톤에 이어 전체 운동종목중 3위안에 들 정도로 힘든 경기가 아닐까요.” 사실,농구는 격렬한 운동이다.체중 75㎏의 선수를 기준으로 시간당 열량 소비량이 축구의 610.5㎉보다 많은 621㎉에 이른다. 경기중의 치열한 몸싸움은 물론 심판의 눈을 피해 가해지는 가격 등 반칙과 끊임없는 러닝,러닝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점프 등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숨돌릴 틈이 없다.그런 만큼 부상 위험도 크지만 신동파는 이를 ‘단점’이라기보다는 ‘감안해야 하는 점’이라고 싸안았다. 술이 화제에 오르자 그는 너털웃음부터 터뜨린다.“지금이야 프로시대라 분위기가 다르지만 우리 선수시절엔 종종 주량 대결도 벌이곤 했어요.축구대표팀과의 밤샘 맞대결에서 완승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당시 김호·김정남 등 동년배 축구 선수들로부터 ‘너흰 창자가 길어 술도 잘 먹는 모양’이라는 핀잔도 듣곤 했지만 다들 자기관리에 철저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선수시절의 72∼73㎏보다는 불었지만,여전히 호리호리한 85㎏의 체격에 가벼운 고혈압 증세 말고는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그에게 주량을 묻자 “반주삼아 소주 1병 정도 하고 2차로 양주 한 병에 맥주로 입가심 하는 수준”이라며 웃었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스피드와 지구력,민첩성이 요구되는 농구는 정신적 긴장 해소는 물론 내장기관의 기능 강화와 체력 향상,판단력을 길러주고 팀워크를 통한 사회성 함양에도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심재억기자
  • [스포츠 라운지]우슈 여자국가대표 윤선경

    ‘무림고수’를 꿈꾼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주먹,구름 위를 걷는 듯한 발놀림,허공으로 솟구치며 내는 파공음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진다.홍콩 무술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우슈의 장권 여자 국가대표인 윤선경(22·부산외국어대 4년)의 훈련 모습이다.도복을 벗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신세대 여대생이지만 그녀는 올해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우리나라 장권의 기대주다. ●육상에서 우슈로 ‘변신’ 윤선경은 청주 남성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육상 800m 선수였다.당시엔 홍콩 액션영화 열풍이 거셌다.또래들처럼 그녀도 그런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그것에 마음을 빼앗겼다.맨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강호를 평정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열광했다.각 파의 실력자들을 차례로 꺾고 무림의 고수로 우뚝 서는 꿈을 꿨을 정도였다. ‘사춘기 몸살’을 무술과 함께 앓은 그녀는 청주여상 1년 때인 지난 1997년 마침내 영화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우슈 도장의 문을 두드렸다.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달랐다.기본자세 하나 배우는데 한달씩이나 걸렸다.보법,발차기 등등. 환상은 하루아침에 깨졌고,재미가 하나도 없는 고행의 시간이 이어졌다.그나마 “남자보다 훨씬 낫다.”는 주위의 칭찬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물론 이 와중에서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근성과 타고난 운동신경은 빛을 발했고,덕분에 실력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 98년 회장배전국대회 학생부 2위를 차지했다.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공동 4위에 올랐다.정용만 국가대표팀 감독은 “남자 못지않은 시원한 동작과 도약이 일품”이라면서 “늦게 시작한 탓에 유연성이 떨어지는 게 흠”이라고 평가했다. ●설움 속에 싹 틔운 희망 다른 비인기종목의 선수처럼 그녀도 ‘마이너리티’의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태권도나 하지 웬 중국 무술이냐.”는 핀잔도 자주 듣는다.우슈가 홍콩 영화로 더 알려진 탓에 싸움을 잘하겠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하지만 그녀는 싸움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그런 상황이 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36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우슈가 아직올림픽 종목에 들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전국체전에서도 남자부 경기만 치러진다.오직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만이 실력을 뽐낼 무대다.우선순위에서 밀려 국가대표 선수라고 해도 태릉선수촌에 입촌을 하지 못한다.외부에 숙소를 정해놓고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한다.훈련만 태릉선수촌 시설을 이용한다. 이같은 역경은 오히려 그녀에게 오기를 불러일으켰다.반드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로 모든 설움을 떨쳐버리고 있다.더욱이 아직 여자 장권에서는 금메달이 없다.‘선배의 한을 내가 풀겠다.’는 목표 의식도 그녀에겐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어린 마음’에 우슈를 선택했지만 이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책임감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그녀에겐 오는 11월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실력을 뽐낼 첫 시험무대다.한여름의 열기는 오히려 그녀의 투지를 자극할 뿐이다.사춘기 소녀 때의 꿈을 현실로 일궈내기 위해 그녀는 야무진 기합과 함께 허공으로 몸을 날린다. 글 김영중기자 jeunesse@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우슈란? 우슈는 중국의 전통 무예로 쿵후의 공식 명칭.우리나라에선 십팔기로도 불렸다.장권,남권,태극권 등 권법과 도술,검술,창술,곤술 등의 병기술이 있다. 장권은 동작이 크고 화려한데다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 홍콩 무술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대표적인 배우가 리롄제.그는 1980년대 히트한 ‘황비홍 시리즈’와 올해 개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여 팬들을 열광시켰다. 태극권은 신축성 있고 부드러우며 완만한 동작이 특징.중국의 공원에서 이른 아침에 수련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건강증진을 위해 많이 배운다.남권은 중국 양쯔강 이남에서 성행하며 기합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이다.산수는 복싱 글러브와 보호대를 착용하고 11체급으로 나눠 자유대련을 펼친다.던지기와 꺾기도 허용된다.산수만이 태권도나 유도처럼 상대방과 맞붙어 승부를 겨루고,나머지 종목은 모두 표현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오는 11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약속대련이 추가됐다. 90베이징아시안게임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으며,아직 올림픽 종목에는 포함되지 못했다.선수들은 전통 중국의상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 [스포츠 라운지]세계양궁선수권 1·3위 윤미진 이현정

    1일 오후 태릉 선수촌 양궁장 사선에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두 선수가 나란히 활시위를 당겼다.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연신 과녁의 한복판에 꽂혔다.‘골드’ ‘골드’…. 하지만 2000시드니올림픽의 ‘신데렐라’ 윤미진이 먼저 빨간색 과녁을 맞히고 말았다.곧바로 이현정도 실수를 저질렀다.쌍안경으로 점수를 확인한 서오석 감독은 눈물이 쏙 빠질 정도의 불호령을 내렸다.둘은 다시 사대에 섰다. 스무살 동갑내기인 이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0년간 함께 활을 쏘는 단짝이자 라이벌이다.경희대 조은신 코치는 두 선수를 키우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코치로 따라다녔고,경희대가 두 선수를 위해 양궁부를 창단할 정도로 이들은 한국 여자양궁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날마다 겨루는 ‘10년 라이벌’ 두 선수는 지난달 20일 뉴욕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준결승에서 국제무대에서는 처음으로 맞붙었다.이현정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기 때문이다. 2엔드(3발이 1엔드)까지 이현정이 1점을 앞섰으나 3엔드에서윤미진이 1점차 역전에 성공했다.마지막 4엔드에선 이현정이 1점을 앞서 최종스코어는 107-107.운명의 장난처럼 두 선수는 슛오프를 해야 했다.윤미진은 과녁 한가운데를 명중시키는 ‘X-10’을 쐈다.부담을 가진 이현정은 9점.윤미진의 1점차 승리였다. 이현정은 “꼭 이기고 싶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윤미진은 “큰 대회에 처음 나선 현정이가 그토록 잘 할 줄은 몰랐다.”고 받았다. 2000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윤미진의 소원은 이현정과 함께 태릉선수촌 사대에 서는 것이었다.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대표팀 선발에서 번번이 탈락한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소원대로 이들은 이제 활시위처럼 팽팽한 라이벌이 돼 매일 경쟁하고 있다. 서 감독은 두 선수의 실력차는 백지 한 장도 안된다고 말한다.연습경기에서 꼴찌를 도맡아 하는 윤미진은 국제대회에만 나가면 펄펄 난다.이현정은 “준결승이 끝나고 미진이의 손을 만졌는데 땀 한방울 없었다.”면서 “물에 담근 것처럼 땀이 줄줄 흐르는 내 손을 보고서야‘과연 윤미진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윤미진은 “현정이가 국제 경험이 아직 적어서 그렇지 나보다 훨씬 잘 쏜다.”고 화답했다.이현정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전국체전에서 개인전 1위를 지켰고,올해 3월 종별선수권대회에서도 윤미진을 눌렀다. 단짝이지만 성격은 사뭇 다르다.윤미진은 말수가 적고,이현정은 쾌활하다.상대의 장점만 말하는 두 사람에게 단점을 물었다.윤미진은 “현정이는 독하지 못한 게 흠”이라고 했고,이현정은 “미진이는 너무 착한 게 문제”라며 웃었다. ●떠난 화살에 미련두지 않는다 서 감독은 둘의 가장 큰 장점으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미련없이 잊는 것을 꼽았다.떠나보낸 화살에 연연하는 것은 양궁선수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아쉬움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무턱대고 잊기만 잘 해서도 안된다.1발을 쏘는 데 주어진 40초 동안 바로 앞의 상황을 분석하고 자세를 새로 가다듬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며,시시각각 변하는 바람도 읽어내야 한다. 두 선수는 “세계선수권 제패의 영광은 한국으로 돌아오는비행기에서 모두 잊었다.”고 말했다.당장 오는 8일부터 그리스에서 열리는 프레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2일 출국한다.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21∼31일)도 코앞에 닥쳤고,내년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1년 내내 7차례나 되는 선발전을 치러야 한다.안주하는 순간 도태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한국양궁에서 단짝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 남을지 궁금해졌다. 이창구기자 window2@ ■한국 여자양궁 계보 올림픽 5연패,세계선수권 11연패,세계기록 13개 중 12개 보유…. 지난 1960년 국내 도입 이후 한국 여자양궁은 25년째 세계최강을 지키고 있다.첫 세계 제패는 지난 79년 ‘신궁’ 김진호가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한 것.. 김진호가 내리막 조짐을 보인 84년 LA올림픽에서 서향순(당시 광주여고 3년)은 처음으로 올림픽 금 과녁을 명중시켰다.88서울올림픽에서는 김수녕(당시 청주 중앙여고 3년)을 비롯해 왕희경 윤영숙 등이 개인전 1∼3위와 단체전을 삭쓸이해 독주체제를 갖췄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조윤정이 금,김수녕이 은메달을 땄고단체전 1위도 이어갔다.96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김경욱이 개인·단체전 2관왕을 차지했고,2000시드니올림픽 때는 윤미진 김남순 김수녕이 다시 한번 1∼3위를 석권했다. 지난달 뉴욕 세계선수권에서도 개인전 1∼3위와 단체전을 싹쓸이했고,윤미진은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사상 첫 2연패에 도전한다. 이창구기자
  • [사설]새만금 네탓 공방만 할건가

    법원의 새만금공사 일시중단 결정에 반발해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참여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전북지역의 자치단체나 시민단체들은 새만금사업이 중단되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유치 철회,전국체전 반납은 물론 정권퇴진 운동까지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사법부가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게 타당하냐는 논란까지 겹치면서 ‘새만금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무기력한 모습이어서 안타깝다.특히 “친환경적으로 공사를 계속하되 용도변경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정부측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어제도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은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친환경적’이란 무슨 말인지,누가 용도변경 방안을 검토해 언제까지 제시하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우리는 법원의 결정에 기존 공사가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뜻이 담겼다고 본다.정부는 “수질오염이 예상되며 애초의 사업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지적을 또 묵살해선 안 된다. 우리는 김 장관 사퇴를계기로 정부의 정책조율 기능 재검검을 당부한다.각 부처가 ‘나홀로 정책’을 고집하며,범정부 차원의 이견 조율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다.새만금 갈등은 사업 규모나 성격상 일방의 논리로만 풀 수 없는 사안이다.관련 부처간 충분한 의견조율과 양보,타협이 절실히 요구된다.농지 활용에 대해 재검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간척지를 모두 농지로 개발하겠다는 식의 막무가내식 주장은 곤란하다.민주당 주도의 새만금사업 특별위원회도 재검토돼야 한다고 본다.관련 부처는 물론 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신구상기획단을 만들어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바란다.
  • 화난 全北/군수“핵폐기장 유치 철회할수도” 도민서명·정권퇴진운동도 불사

    법원의 새만금사업 공사 중단 결정에 반발해 김종규 부안군수가 16일 원전수거물 처리시설 유치 철회 가능성을 밝히는 등 전북지역 민·관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김 군수는 16일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책사업이 흔들릴 경우 아무도 정부의 약속을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료된 것이 아닌 만큼 새만금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지 않으면 산업자원부에 낸 원전수거물 처리시설 유치신청을 철회할 것”이라고 말했다.김 군수의 이같은 발언은 지역정서에 맞춰 새만금 사업추진을 노린 엄포성 발언으로 해석된다.하지만 부안군이 원전폐기물처리 시설 유치신청을 철회하면 어렵게 성사된 국책사업이 바로 표류하게 된다. 전북지역발전추진 민간사회단체총연합회등 사회단체들도 이날 “새만금사업이 환경단체에 의해 발목이 잡혀 중단될 경우 부안에 유치키로 한 원전수거물관리시설의 유치와 오는 10월 개최될 전국체전 등 국책사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정부와 전북도에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 각료로서의자세를 망각하고 새만금 반대에 동참해 환경단체를 옹호한 한명숙 환경부장관과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허성관 해양수산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사업이 중단될 경우 이미 축조된 방조제의 조속 철거와 함께 국고에 손해를 입힌 환경단체에 손실보상도 요구키로 했다. 이들은 200만 도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권퇴진운동도 벌이겠다고 밝혔다. 전북도는 확실한 입장표명을 유보한 채 “농림부와 협의해 소송에서 승소토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만 밝혔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표류하는 태권도공원 / 예산확보·부지선정 41개월째 ‘헛발질’

    “알짜사업” 27개 시·군 과열유치전 걸림돌 지자체“정부 몸사려”…체육인“백지화 우려” 정부가 태권도를 국가전략 상품화하기 위해 추진해온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사업 기본구상 발표 후 3년여 동안 예산확보와 부지선정 문제 등 어느것 하나 해결된 게 없는 실정이다.그런가 하면 정부가 이 사업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 태권도공원을 자기네 지역으로 유치하려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사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둘러싼 자치단체들간의 과열 유치전과 정부의 사업추진 과정을 점검해 본다. 자치단체들의 태권도공원 유치전은 2000년 1월 문화관광부의 사업계획 발표와 함께 후보지 공모가 시작되면서부터 바로 불이 지펴졌다. 여기에는 경북 경주시를 비롯해 경기도 파주·하남·성남·남양주시와 인천 강화,충남 태안,충북 진천·보은,전남 여수,전북 무주 등 전국 27개 시군이 대거 유치의사를 밝히면서 불꽃튀는 각축전을 벌였다. ●각종 경로 통해 치열한로비전 자치단체들은 한결같이 사업 유치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갖은 지혜를 짜내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지역별 범시도민 결의대회를 갖는가 하면 태권도공원 유치 100만인 서명운동과 함께 국제 태권도대회 등을 앞다퉈 개최했다. 물론 지역출신 거물급 정·관계 인사들을 동원한 유치 로비도 밤낮없이 전개했다.심지어 일부 자체단체들은 관련 직원을 문화부에 상주시키는 등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의 정보전을 펼치는 등 촉각을 곤두세웠다.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세계 태권도공원 유치전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다시 불붙고 있어 과열양상이 재연될 조짐이다. 자치단체들이 이처럼 사업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부가 제시한 100만평의 부지를 무상 제공하면 얻게될 엄청난 직·간접적인 수입 때문이다.여기에다 사업비 2000억원도 전액 국비(80%)와 민간자본(20%)으로 충당이 가능해 재정적 부담이 없는 것도 구미를 당기게 하는 요소다.이에 따라 신라 천년고도로 태권도의 정신적 고향임을 내세운 경주시는 양북면 장항리 일대 부지 110만평을 제공하겠다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 남산을 비롯,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명실상부한 국제 관광도시임을 유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춘천·강릉·원주시가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춘천시는 동내면 사암리 시유지 120만평을 부지로 물색해 둔 상태다.유치전략으로는 태권도 대학 설립추진과 함께 국제인형극제 등과 연계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원주시와 강릉시도 신림면 송계리 송계유원지 인근 111만여평과 구정면 구정리 칠선산 청학사 주변 100만여평을 각각 후보지로 꼽는다.원주시는 중부내륙의 중심지로 강원 감영이 있던 곳임을 내세우고 있고,강릉시는 신라 화랑의 심신수련 순례지였다는 역사성을 들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파주시,인천에서는 강화군이 유치 대열에 가세했다.파주시는 지난해 2월 태권도 공원 부지로 물색중인 탄현면 법흥리 통일동산내 8만 5000평을 매입,태권도 박물관을 자체적으로 건립할 계획이다.태권도 공원 유치를 재천명하는 동시에 유리한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속셈이다. 강화군은 고천면 일대 부지 100만평 이상을 공원 부지로 확보하기로 했다.특히 강화가 전국체전 성화 채화지여서 태권도 정신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충북에서는 보은·진천군이 함께 유치에 나섰다가 진천군으로 단일화 했다.진천군은 김유신 장군 탄생지인 광혜원면 구암리 120만평을 후보지로 검토중이다.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꼽는다. 충남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출생지인 천안시가 독립기념관과 연계해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이밖에 유치경쟁에 뛰어든 다른 자치단체들도 각종 경로를 통해 치열한 물밑 로비를 전개하고 있다. ●최종사업안도 확정못해 문화부는 당초 계획대로 오는 2008년까지 전국 1곳에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마칠 계획이었으나 2000년말 국회에서 첫 제동이 걸렸다.국정감사에서 사업규모 등에 대한 재검토 권고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은 방만한 사업규모와 민자유치의 어려움 등이 주요 이유였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사업 재연구 용역을 통해 사업규모를 부지 70만평과 사업비 1700억원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했다.하지만 그동안 장관이 3명이나 바뀌도록 최종 사업안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자치단체들은 문화부 관리들의 몸사리기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후보지 선정에 따른 오해와 비난을 우려,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기획예산처가 부지 확보없이는 문화부에 관련 예산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사업추진을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이런 가운데 참여정부는 지난 25일 국민체육진흥 5개년 계획에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포함한다고 발표,앞으로 사업 추진과정이 주목되고 있다. 전국 정리 김상화기자 shkim@ ■문화부·유관단체 입장 지난 2000년 10월 당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이 세계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밝힌 뒤부터 주무 부서인 문화부는 물론 태권도 유관단체들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부는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올해부터 사업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으나 아직 사업추진 방향을 확정하지 못했다.신임 이창동 장관에게는 구체적인 보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화부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장관에게 대략적인 사항은 보고했지만 구체적인 추진계획은 보고하지 못했다.”면서 “30여개의 자치단체가 유치전을 펼치고 있지만 후보지 선정 기준 마련 등의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세계태권도연맹(WTF) 등 태권도 유관단체들은 “주무부서가 아무런 준비도 안됐는데 우리가 나설 수 없지 않으냐.”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와 태권도공원 부지에 대해 가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국기원은 “소문만 무성했을 뿐 당시에도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면서 “설령 가계약을 맺었다 하더라도 지사가 바뀌었는데 추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세계에 퍼진 태권도를 총괄하는 세계태권도연맹(총재 김운용)측은 “태권도공원은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사업으로 태권도인들의 숙원”이라면서 “정부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한다면 자료 제공 등모든 것에 대해 협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정부나 정치권보다 앞서 태권도 단체가 나설 수는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대한태권도협회 성재진 사무국장은 “태권도공원 건설 논의가 처음 나왔을 때는 정부와 의견 교환을 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논의도 없다.”면서 “공원건설은 환영하지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스포츠 라운지]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여고생 이·해·림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고생 이해림(17·개포고 2년)의 꿈은 ‘철녀’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국내 유일의 트라이애슬론 여자 국가대표선수다.아직 나이가 어려 공식적으로는 주니어대표란 딱지가 붙어 있지만 실력만큼은 국내 최고다.시니어엔 아직 여자 대표선수가 없다.지난 4월 대표선발전에 몇 명의 여자선수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이 정한 기준기록에 미치지 못해 탈락했다.때문에 여자 트라이애슬론의 선두주자로서 이해림의 존재가치는 높다. 학교에선 말수가 적고 얌전한 편이다.같은 반 친구들은 ‘철인’ 또는 ‘철녀’라고 부르지만 교복을 입은 그녀는 영락없는 ‘범생이(모범생)’ 타입의 보통 여고생이다.그러나 일단 훈련을 시작하면 180도 달라진다.이를 악물고 쓰러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트라이애슬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당시 집 근처에서 수영을 배우면서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나가게 됐다.수영은 자신 있었고 사이클과 달리기는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할 수 있다는생각에서 겁도 없이 도전했다.그러나 이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첫 출전한 경기에서 생각보다 좋은 기록이 나오자 금세 트라이애슬론에 빠져들었다.본격적으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그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현 국가대표 주니어감독 곽경훈씨의 눈에 띄어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곧바로 주니어대표에 발탁됐다. 그녀가 남자들도 하기 힘든,그것도 비인기종목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힘이 컸다.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는 운동을 통해 딸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견문을 넓히기를 바란다.요즘은 저녁훈련이 끝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회화 학원에 간다.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출전 등으로 외국 나들이가 잦은 만큼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정상을 위해 늘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이들 부녀의 공통점이다. 친구들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그녀의 대답은 한결같다.“재미있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는 즐거움은 대단하다.부모님도 훈련이 너무 힘들어 보여 그만두라는 말을 자주했지만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는다. 훈련은 일찍 시작된다.새벽 6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사이클과 달리기를 한다.온몸은 녹초가 되지만 샤워를 한 뒤 학교로 향한다.수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오후 4시부터 또다시 훈련이 시작된다.이제는 수영연습까지 한다.요즘에는 낮기온이 한여름과 다를 바 없지만 훈련을 멈추지는 않는다.경기가 한낮에 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전적응을 위해 더욱 열심이다.4시간의 훈련이 끝나면 파김치가 된다.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토요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일요일은 조금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사이클 훈련을 할 때가 많다.빡빡한 훈련 때문에 친구들과 수다 떨 시간이 없다.그녀의 가장 큰 불만이다.하지만 트라이애슬론을 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자신감이라는 큰 재산을 얻었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전체 상위 15% 안에 들 정도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한다.남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적은 탓에 수업시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선생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녀의 1차 목표는 올림픽 출전.우리나라는 아직 올림픽 출전권을 딸 정도의 수준도 안 된다.올림픽은 세계랭킹순으로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우리나라 선수는 세계랭킹에 올라 있지도 않을 정도다.모두 200위권 밖이다.나이가 아직 어린 그녀는 2008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물론 기회가 오면 내년 아테네올림픽 출전도 노려볼 참이다.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의 메달을 따내 진정한 ‘철녀’가 되는 게 그녀의 꿈이다. 글 박준석기자 pjs@ 사진 도준석기자 pado@ ■트라이애슬론이란 트라이애슬론(Triathlon)은 라틴어의 ‘Tri(3가지)’와 ‘Athlon(경기)’을 의미하는 단어의 합성어로 한 선수가 수영 사이클 달리기 등 세 가지 경기를 하는 것이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됐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급속히 확산돼 현재 130여개국 2000만명 이상의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수영과 사이클 및 달리기는 유산소 운동으로서 운동을 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를 우리 몸에서 만들 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줘야 하는 운동이다.이처럼 트라이애슬론은 3대 유산소성 운동을 한 사람이 연속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심폐기능과 지구력이 강해야만 완주할 수 있다. 거리에 따라 아이언맨코스(수영 3.9㎞,사이클 180.2㎞,마라톤풀코스 42.195㎞)와 올림픽코스(수영 1.5㎞,사이클 40㎞,달리기 10㎞)로 구분된다.주니어코스는 올림픽코스의 절반거리다.요즘은 올림픽코스를 보통 트라이애슬론이라고 부르고 아이언맨코스는 ‘철인 3종경기’라고 일컫는다. 국내 등록선수는 2000여명이며,40여개 동호회에서 3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2004년 전국체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일본은 등록선수 5만명과 동호인 50여만명을 거느리고 있으며,한 해 120여개의 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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