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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영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13도 의병 규합… 1907년 “서울진공” 시도/12월말 8천여명 연합부대 편성·지휘/양주서 집결… 동대문밖 30리까지 진격/무기·병력 열세로 일제에 패배… 한말 15년의병사 마감 『동포들이여,우리는 함께 뭉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우리는 일본제국의 잘못과 광란을 전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27세 여주서 거병 이인영선생은 1868년 9월23일 경기도 여주군 군북면 교곡동에서 부친 이현상씨와 모친 한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선생은 27세인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등 압제를 강화해나가자 보다못해 유린석등과 함께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여주에서 의병 5백여명을 규합,왜군과 싸웠다.1896년 여름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의병해산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할 수 없이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킨 뒤 고종을 폐위하는등 더욱 오만무례한 행동을 자행,나라의 형세는 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의병 2천여명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등이 선생을 통솔자로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나 부친의 병이 깊을 때여서 선뜻 허락을 하지 못했다.이은찬등은 나흘동안을 유숙하며 선생의 결단을 촉구하자 선생은 마침내 허락을 하기에 이른다.1907년 7월25일이었다.선생은 즉시 원주로 가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곧 국내외에 격문을 발송했다.일제는 인류의 적이므로 분쇄,조국의 독립을 찾자는 내용이었다.해외동포들에게도 격문을 보내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격문에 감동,의병으로 참가,그 수가 무려 1만여명에 달했다. 선생은 이때부터 1907년 11월까지 원주·철원등 강원 지역에서 38차례나 일군과 항전했다. ○일군 접전 38차례 선생은 시골에서 아무리 일군과 싸운다해도 서울을 일군이 장악하는 한 국권회복은 멀다고 판단,전국의 의병을 하나로 뭉쳐 서울로 진격시키는 전략을 굳혔다.산발적인 의병활동을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로 통합,일거에 일군을 패퇴시키려는방책이었다. 각 의병대장에게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라는 전갈이 전달된다.선생은 13도 창의대진소 원수부가 설치된 뒤 의병장들의 협의끝에 만장일치로 총대장으로 옹립됐다.선생도 이를 쾌히 승락하고 조직을 정비,관동군(강원도지역)6천여명과 진동군(경기·황해지역)2천여명을 축으로 연합대부대를 편성했다. 서울 진격일을 12월말로 정한 선생은 예하 각 의병대장들에게 경기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일대에 진주토록 했다. 선생은 각 의병진에서 결사대원 3백여명도 엄선했다. 선생은 공격개시에 앞서 심복부하인 김세영에게 격문원고를 작성,서울에 가 이를 인쇄토록 지시했다.인쇄된 격문은 김세영이 직접 서울주재 각국영사관에 전달하게 했다. 선생은 이 격문에서 을사조약의 폐지와 13도 창의대진소를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2천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한다.그러나 이때 이미 일군은 수천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사대원이 앞장서 싸웠음에도 연발총무기로 무장하고 정규군대 훈련을 받은 일군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선발대 의병은 항일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살총으로는 패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선발대는 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내에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망우리고개를 넘지 못한 의병대에 후퇴명령을 내리고 패전의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1907년 12월25일(양력 1908년 1월28일)이었다.선생은 허위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퇴한다.3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42세때 체포·순국 선생이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후임 의병총대장 허위는 소요산까지 퇴군하게 되었는데 일군이 산을 태워 공격하는 화공작전으로 나와 의병들은 1908년 5월14일 포천 영평에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의병 15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서울공략계획은 이로써 무산돼 버렸다. 선생은 이후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충북금계동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3년상이 끝나는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1909년 6월7일 금계동에서 9명의 일군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선생은 『당시 전황이 그러한데 어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조선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으며 금수는 신하가 될 수 없다.그러면 그것이 바로 불충인 것이다』고 답했다.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일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909년 9월20일 사형이 집행됐다.42세때였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실명제 단행 청와대­내각­정가 표정

    ◎아무도 예측못한 “목요일의 충격”/전격 발표에 국무위원들도 흥분/“획기적 개혁조치… ” 여야,한목소리/철저한 보안에 극소수만 사전 감지 모두 놀랐다. 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실시되리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또 전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가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정부에서도 극소수 관계 국무위원과 수석비서관만이 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가히 「목요일 저녁의 충격」이었다. 발표시간이 저녁7시 이후로 잡히고 철저한 보안유지가 이뤄진 것은 금융거래 혼란을 막기위해 은행문이 닫히는 시간이 고려된 탓이라는 설명이다. ○회의소집뒤 짐작 ○…12일 전격발표된 김영삼대통령의 금융실명제에 관한 긴급명령은 청와대 내에서도 박관용비서실장과 박재윤경제수석만이 발표전에 알았을 정도로 완벽한 보안을 과시. 국무위원들도 금융실명제 실시 발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이날 저녁 긴급 국무회의가 소집되고 나서야 어렴풋이 짐작.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5시30분쯤 최창윤총무처장관에게 국무회의 소집을 지시했으며 이때부터 청와대주변에서는 『뭔가 중대한 발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 대통령의 대외발표 창구인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이날 하오 5시쯤 대통령으로부터 인터폰을 통해 『별일 없느냐.오늘 7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소집한다』는 소식과 함께 실명제실시를 통보받았다는 후문. 이대변인은 이날 하오 6시쯤 청와대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20분쯤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고 통보했으나 막상 그시간에 내려와서는 7시에 국무회의가 있다고만 통보한뒤 아무런 언질없이 다시 퇴장. 이 바람에 일부에서는 이날 치러진 대구동을 및 춘천시의 보궐선거가 엄청나게 혼탁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던 점을 들어 노동일후보의 사퇴문제를 포함한 모종의 조치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그러나 이는 국무회의와는 관계가 없는 문제인데다 국무회의가 끝나는 저녁 7시30분에 이경식부총리와 홍재형재무부장관이 기자회견을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김대통령의 중대발표가 금융실명제 실시라는 사실을 감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9시 이부총리는 예정된 새해 예산보고를 위해 청와대로 들어왔다가 보고를 못하고 나갔는데 이때 김대통령이 『예산보고는 다음에 하고 금융실명제실시 발표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밤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한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의결한 이날 국무회의와 김대통령의 담화발표가 끝난뒤 청와대를 나서기 위해 춘추관앞에 모인 국무위원과 수석비서관들은 이때까지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듯 『정말 몰랐다』『놀랍다』는 말을 주고받기도. 긴급국무회의는 홍재무장관의 긴급명령발동제안 설명과 최총무처장관의 국회소집요구설명을 들은뒤 김대통령이 각 부처별 시행사항을 당부하고 20여분만에 종료.장관이 각각 해외특사및 지방출장중인 정무1장관실과 과기처는 차관이 대신 국무회의에 참석. 한편 이날 아침 일찍부터 증권시장과 일부 경제부처에서는 금융실명제 실시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으나 워낙 여러차례 나온 얘기인지라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후문. ○“경제정의 첫 걸음” ○…김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긴급국무회의를 주재한 직후인 하오7시37분부터 춘추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금융실명제실시를 위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하는 특별담화문을 발표. 전 국무위원과 수석비서관이 배석한 이날 발표에서 김대통령은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포한다』고 선언. 김대통령이 10여분간에 걸쳐 담화문을 거의 다 발표했을때 TV중계시스템에 이상이 있어 생중계가 안되고 있다는 이경재공보수석의 보고를 듣고 발표를 잠시 중단,중계준비가 된뒤 처음부터 다시 연설을 시작. 하오8시쯤 발표를 끝낸 김대통령은 배석한 국무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황인성총리,박관용비서실장과 함께 회견장에서 퇴장. 이어 최창윤총무처장관이 『새로운 법률은 일반적으로 관보나 신문에 공포해 국민에게 알리고 시행해야하나 이번 명령은 성격상 긴급함에 따라 명령 부칙 2조에 따라 방송을 통해 공포절차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최장관을 대신한 총무처의김종민의정국장이 명령과 시행령을 낭독. ○…총무처는 하오5시30분쯤 청와대로부터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하라는 지시를 받고 각 장관들에게 연락을 취하느라 부산. 그러나 최창윤총무처장관에 대해서는 이날 낮 청와대로부터 『자리를 지켜라』는 전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무언가 중대발표를 예감했었다는 후문. 총리실 관계자들도 국무회의소집통보만 있고 내용은 알려주지않자 삼삼오오 모여 「중대조치」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추측. 황인성국무총리는 이에 앞서 청와대측으로부터 실명제발표사실을 전달받았으리라는 관측. ○대책 논의에 분주 ○…민자당은 이날 특별담화가 발표된뒤 『김영삼대통령의 경제개혁에 대한 의지를 실천한 획기적인 조치』라며 환영을 표시. 오장섭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경제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임기내에 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한다』고 강조. 오부대변인은 이어 『정부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후속책 마련에 만전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 서상목제1정책조정실장은 『경제정의를 실현하는데 중요한 첫 발걸음』이라고 전제,『김대통령이 공약대로 경제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조건을 이행한 것』이라고 평가. 서실장은 이어 『그동안 금융실명제 실시를 둘러싸고 막연함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경제불안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일단계 조치가 이뤄지면서 그러한 불안한 불확실요인은 사라졌다』고 피력. ○…민자당은 이날 발표를 하루앞둔 지난 11일 저녁 청와대측으로부터 이같은 사실에 대해 미리 언질을 받고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는 후문. 김종호정책위의장은 11일 하오 6시쯤 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전해들었으며 발표 3시간전에도 홍재형재무부장관으로부터 최종사실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상목제1정책조정실장도 이날 하오4시쯤 홍장관으로부터 최종통보를 받고 김의장 집무실로 찾아가 당차원의 대책을 논의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민자당은 앞서 지난 11일 김의장주재로 서실장,노인환국회재무위원장,나오연당세제개혁위원장 등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는게 한 관계자의 설명. ○…민주당은 금융실명제 실시발표를 일단 환영하면서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책마련에 착수하는등 긴박한 분위기. 대구동을 보선지원을 위해 대구에 체류중이던 이기택대표는 이날 하오6시쯤 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으로부터 금융실명제 실시발표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고 급거 상경,김포공항에서 김덕규사무총장 박지원대변인 등과 당차원의 대책을 숙의. 민주당은 이날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13일 상오 긴급최고위원회의와 당정책위및 당소속 국회 재무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당의 공식입장을 정리,발표할 계획.
  • 도자기/전통재현보다 창조가중요/일 조선사기장 후예5명 광주요 방문

    ◎전통기법으로 빚은 청자보고 “시큰둥”/“과거흉내로 자연스런 색 나올수 있나”/“독특한 그릇은 남에게 배워 만들수 없다”교훈 남겨 일본 최고의 도예가라면 우리도 존경해야할까.모든 아름다움의 기준이 그렇듯 일본사람들에게는 대단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좋기는 커녕 거부반응이 느껴지는 물건도 있을수 있다.그럼에도 우리는 임진왜란때 끌려가 이제는 일본도공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조선사기장의 후예들에게는 거의 짝사랑에 가까운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왔다.그 이유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잃어버린 도자기 왕국의 전통을 되살려보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난 8일 경기도 이천의 광주요를 방문한 조선사기장의 후예 5명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우리에게 존경을 받아왔다.12대 다카토리 팔산(고취팔산)과 13대 이참평,12대 사카고라이자에몽(판고려좌가문),13대 나가사토다로에몽(중리태랑가문),11대 아가노사이스키(상야재조)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광주요를 방문한뒤 우리 도공들에게 남긴 교훈은 바로 『그 시대그 사회만의 독특한 그릇은 남에게 배워서는 만들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과 14대 심수관 등 6명은 「’93 대전 엑스포」문화행사의 하나인 「한국의 도자기 비교·귀향전」에 출품자로 지난7일 있은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조상의 나라에 왔다. 이들이 광주요측의 방문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선조들이 그릇을 굽던 방법 그대로를 고향 땅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향수어린 것이 아니었다.진짜 이유는 『아직도 과거 영화롭던 시대의 재현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도자기의 현실을 직접보고 광주요의 도공들에게 한수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다고 한 조선도공의 후예는 고백했다. 광주요의 도공들도 이들의 방문이 확정된뒤부터 이날까지 거의 매일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조선도자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세계적인 거장들로부터 무언가 확실한 것을 하나쯤은 건질수 있겠거니 하는 기대에서였다.이에따라 요즘은 생활도자기를 가스가마에서 구워내는 광주요이지만 전통기법으로 그릇을 빚은뒤 먼지쌓인 등요에 불을 지펴 이들의 방문에 맞추어 가마의 문을열 준비를 해놓았다. 손님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은 광주요 도공들의 표정은 긴장 그 자체였다.그러나 전시실을 거쳐 가마앞에서 이들이 구워낸 분청사기와 청자를 마주한 거장들의 표정에서는 「역시 별것 아니군」하는 「안도」가 스쳤다.그러나 광주요 도공들에게는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눈에 들지 않을수록 거장들은 할말이 많을 것이고 그만큼 배울것도 많은 법.도공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이들이 돌아가고 난뒤 광주요의 한 도공은 이들로부터 두가지를 인상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찻그릇(다완)을 살펴본 나가사토씨의 『찻그릇이 너무 얇다.차를 부으면 그릇이 금방 뜨거워져 어떻게 들고 마시겠느냐』는 것과 사가씨의 『청자의 색을 너무 인위적으로 만든다.고려시대 전성기 청자를 의식해 색을 내려고하면 자연스런 색이 나올수 있겠느냐』는 지적.찻그릇에 대한 지적은 바로 실생활과 유리된 우리 도자기 연구의 실상을,청자에 대한 지적은 새시대에 맞는 그릇의 창조보다는 과거에 대한 흉내에만 아직도 매달리고 있는 상황을 아프게 꼬집은 것이아니겠느냐는 것이다. 14대 심수관은 평소 『내가 한국 도자기에 대해 할수 있는 것은 호의적인 무관심 뿐이다』라고 말하곤 한다.이 시대에 맞는 한국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일본도공인 자신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 도시어린이 별자리 찾기/여름 밤하늘서 배우는 신비의 우주

    ◎초보자는 육안관측이 바람직/밤 9∼10시부터 2∼3시간 보는게 적당/견우·직녀·북두칠성등 맨눈관찰 가능 방학중에는 어린이들이 농촌이나 바닷가등 자연속에서 생활을 할 기회가 생긴다. 도심의 불빛과 대기오염으로 별 관측이 어려웠던 도시어린이들에게 별과 별자리를 공부하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이므로 별을 공부할수 있도록 지도해보자. 초보의 어린이들이 별을 관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안관측.사람의 시야는 약1백35도인데 비해 망원경은 5∼7도이다.따라서 육안관측으로 폭넓게 공부를 한 다음 세부 관측을 할때 쌍안경·망원경 등을 이용하는것이 바람직하다. 어린이회관 변상식교육부장은『관측할때 망원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처음에는 육안관측이 더욱 중요하다』며『망원경은 세부적이고 자세한 관측은 가능하나,전체적으로 관찰할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측은 어두컴컴한 시간이 지난 9∼10시쯤부터 2∼3시간동안 관찰하는 것이 적당하며,관측하기전 정확한 방위를 알아두면 관찰이 쉽다. 특히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금성·화성·목성·토성·달 등을 좀더 자세하게 관찰할수 있는것이 장점이다. 망원경을 이용,달과 별의 동시관측을 하기에 알맞은 시기는 상현달이 뜨는음력으로 매달6∼7일,별만 관측하려면 그믐,달은 초생달이 떠서 달분화구 관찰 등이 쉬운 3∼4일이 알맞다. 여름철 밤하늘에서 쉽게 관측할수 있는 별과 별자리는 ▲데네브의 백조자리 ▲견우성의 독수리자리 ▲직녀성의 거문고자리 ▲안타레스의 전갈자리 ▲궁수자리의 남두육성 ▲북극성이 중심인 북두칠성등. 먼저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북방향으로 관찰하면 백조의 꼬리라는 의미의 데네브가 빛나는 백조자리가 형성돼 있다.이어 동쪽에 해당하는 오른쪽으로 쳐다보면 견우성의 독수리자리가 나타나고,왼편의 서쪽을 보면 직녀성의 거문고자리가 관측된다. 이때 북쪽 백조자리를 중심으로 거문고자리,독수리자리를 직선으로 이으면 이등변삼각형을 이룬다. 남쪽을 향해 정면으로 시야를 10∼20도 위로 하면 S자형태 별자리가 나타난다.이 별자리가 화성적으로 불리는 안타레스별이 있는 전갈자리.동쪽인왼쪽으로 보면 궁수자리의 남두육성인 6개별이 반짝인다. 또 정북쪽으로 37.5도로 올려다보면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카세오페아자리가 눈에 들어온다.북두칠성은 봄과 여름철에,카세오페아자리는 가을과 겨울에 선명한 것이 특징. 이밖에 북쪽하늘에서 남쪽으로 눈을 따라가면 희뿌연 시냇물이 흘러가는 형태를 관측할수 있다.이것이 은하수다.이때 은하수를 망원경으로 보면 하나 하나의 별로 관찰할수 있다. 준비물은 손전등·별자리그림인 성도·쌍안경·망원경·관찰기록지·모기약등.특히 사진으로 찍으려면 삼각대가 갖춰진 기계식카메라에 50㎝의 릴리스(카메라보조셔터)등이 필요하다.
  • “북한난민”(외언내언)

    탈냉전과 평화공존이 오늘의 시대정신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하면 세계는 당연히 냉전때보다 평화로워야 한다.그렇지 못한것은 왠가.20일 미란민위원회가 발표한 93년도보고서는 지난해의 세계난민수가 1백만명이나 늘어 1천7백50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냉전때보다 평화롭지 못하다는 증명서다. 우리에게 낯익은 난민은 보트 피플이며 베트남적화라는 냉전갈등의 산물이었다.탈냉전으로 일부는 돌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유엔의 구호를 받거나 세계를 유랑하는 이들도 많다.우리가 이들은 물론 세계난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냉전과 탈냉전이 혼재하는 불안정국면의 한반도 역시 그러한 대규모 난민발생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난민발생가능성을 우리보다 더 두려워하는것은 지근의 일본이다.냉전시대도 그랬지만 그땐 한반도 적화로 한국난민이 밀려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그것이 탈냉전의 지금은 북한난민 쇄도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변질된 것이다.그리고 일본정부는 실제로 그 가능성에 대비하는 극비대책회의까지 하고있다는 보도 아닌가. 일본에선 북한핵문제 해결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게이오대학의 오코노기교수도 그런 시각의 한사람이다.북한의 NPT(핵확금조약)탈퇴는 일과성이 아니며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이 열려도 철회가 쉽지않을 것으로 보고있다.제재가 결의되면 유엔탈퇴가능성도 배제치 않고있다.김정일의 위신이 걸린 핵문제야말로 북한변화 내지는 붕괴의 화근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시각이다. 예부터 3국통일등 한반도의 격변땐 반도난민·유민이 일본으로 몰려가곤 한 예가 많다.고구려·백제붕괴 등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란법 있는가.일본은 북한난민유입 저지뿐 아니라 한국으로 쏟아질 난민구호도 도와야할 책임까지 걱정하고 있다.난민뿐 아니라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나 이변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응은 일본보다 우리가 더 급할지 모르겠다.
  • 공주 중호마을 반촌 탐방(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3)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기개가 첫 덕목” 3백년 이어온 선비정신/효종때 거유 이유태선생 후손 모여살아/“학문·덕 갖춘뒤도 때아니면 불출사” 일관/12대 종손 등 일제때도 한학공부… “학교교육보다 도리·예절이 중요” ○노인들은 상투 틀고 계룡산 산자락이 북으로 금강에 치달아 곰나루를 향해 넉넉하면서도 온화하게 팔을 벌린곳에 자리잡은 충남 공주시 상왕동 중호마을의 용문서원.등용의 옛마을로 계룡의 서기를 이어받은 우리의 선비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 당대의 거유로 명성을 높였던 초려 이유태(1607∼1684년)의 후손들이 오순도순 마을을 이룬지 3백년.반촌의 긍지를 이어온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20여가구가 모여 산다.공주시내가 지척이지만 아직도 노인들은 대부분 상투를 틀고 있으며 철저하게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선비의 기개를 가정교육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초려정신의 핵심은 선비로서 불출사의 기개를 강조하는데 있다.선비는 우선 학문과 덕식을 갖추고 그 다음일단 나가면 때를 좌지우지 할수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향에 돌아와 은거해야 한다는 정신이다.이를테면 진퇴를 분명히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몸소 실천,인효현소종 4대왕에 걸쳐 능참봉부터 사조참판·대사헌까지 모두 39가지의 벼슬이 주어졌지만 실제로 관직생활을 한것은 28세때 5개월과 30세때 6개월이 고작이었다. 그같이 짧은 관직생활에도 불구,그는 학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당시 정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경세가로서 당대 호서산림 오현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았다.그는 금산 노동 태생으로 18세에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장년이 된후에는 사계의 아들 집과 교류하며 그들 부자로부터 예학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치국경세에 있어서는 율곡이이를 숭상했다.그에 학문세계를 율사연원으로 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초려는 병자호란후에는 덕유산중에 은거,모든 벼슬을 사양하였다.그후 효종이 북벌의 큰뜻을 품고 산림학자들을 불러모으자 결연히 상경하였다.그러나 조정은 시배들의 반목과 질시속에 온갖 주의주장만분분할뿐이었고 또한 청나라 사신의 위세는 극에 달해 있었다.그같은 분위기에서 친청파의 척결을 알리는 그의 논소는 조정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마침내 그는 다시 낙향했다. ○대사헌벼슬 물리쳐 그후 효종이 말년에 다시 밀지로 초려를 부르니 그는 북벌을 위한 구체적 국정개혁안으로 2만여언의 장문상소인 「만언봉사를 거의 완성해 가고 있을 때였다.그러나 그해(1960년) 효종은 승하하고 뒤이어 즉위한 현종은 왕명으로 만언공사를 제출케 했다.그 내용은 위민정치를 근간으로한 군사및 내정개혁사상을 삼고있다.그후에도 현종은 초려의 경륜을 사기 위해 벼슬을 높여 불렀으며 숙종때는 대사헌에 제수됐지만 불출사의 뜻은 완강했다.『나의 뜻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벼슬길 보다는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의 공직관이었던 것이다. 초려의 강직한 정신은 오늘날 후손들에까지 그대로 전수돼왔다.노인들은 상투등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가운데 후손들에게는 현대식 학교교육도 애써 가르치고 있다.단지 일제때 일본식교육은시키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종손인 12대손 정우씨(52)와 그 또래의 집안 사람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그는 『우리 형제 다섯중 위로 셋은 학교를 가지 못했고 비슷한 나이의 사촌이나 육촌형제 가운데도 학교를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대신 그는 15세때 대학을 떼는등 한학을 공부했으며 초려의 책을 비롯,집에 보관중인 3천여권의 서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자식들에게는 초려가 남긴 유일한 친필족자글씨인 「징분항선 복례」(분한 생각을 경계하고,나쁜것은 고쳐 착하게 하고,예를 따라 좇으라)를 가훈으로 가르치며 학교공부를 시켰다.학교공부중에도 사서는 반드시 익히도록 했는데 이같은 집안 분위기에서 큰아들 상익씨(30)는 철학교수로,둘째아들 상욱씨(28)는 한문교사로 후학을 가르치는 교단에서게 됐다. 공주향교의 전교를 지낸 정우씨의 당숙 종언씨(70)도 이웃에 산다.그가 해석하는 오늘날 선비정신의 의미는 이러했다. 『선비가 박력이 약하고 경제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고하고 고집불통으로 비쳐지는 것은 잘못입니다.현대식 교육을 받기는 받되 인간의 도리를 먼저 알아야 하고 잘살아야 하되 나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그것은 이웃과 국가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행동철학을 먼저 배우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도 있습니다.부모나 국가지도자는 이신교자지종(몸으로 행해 가르치는 사람을 따른다)으로 자식과 백성을 가르쳐야 하고 숭조사상의 강조도 교육의 한 방편입니다.선비는 부자가 돼도 부자티를 안내고 빈궁해도 빈궁한 티를 안내야 하는 것이지요』 용문서원은 이같은 초려의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도장으로 오늘날 활용되고 있다.제사가 올려지는 사우인 명덕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돼있다.강당인 중화당(17평)과 재실인 존성재(〃)는 초려학연구를 위해 강의실과 침실로 제공된다.연구활동을 돕기위해 현대식 입식 부엌도 설치돼 있고 이동식 화장실,난방도 완비됐다. ○내사책 등 유품 전시 또 유물전시관인 징원당(16평)에는 초려의 저서와 함께 임금이 내린 내사책,이씨 가문의 재산분금록,9대손 성암철영의 항일옥중일기등과 초려의 상아호패와 제사날을 기록해 놓는 기일첩,과거문제 요약집인 강경첨통등 많은 유품들도 전시,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용문서원 건립및 유지 보수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이초로 기념사업회의 이종철회장(73·전공주교대회장)은 올해의 역점사업으로 장서각 건립을 꼽고 있다.현재 3천건에 달하는 책들이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기 때문에 이의 분류,정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이를 위한 1억원의 충남도예산중 4천만원의 삭감으로 나머지 재원마련이 가장 큰 현안이기도 하다.국역작업등 서둘러야할 과제는 많지만 현재 1백66명의 회원들이 연회비 5천원씩 내는것으로 충당하는 기념사업회의 예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회장은 『많은 학자들이 초려사상에 대해 자발적인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그러면서 『지난 연말 부산대에서 다섯명의 교수·학생들이 와서 나흘동안 목록작업을 하고 갔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도 기념사업회측은 연구를 위해 오는 학생들에게 시설을 무료료 사용케하고 있다.3년째 겨울이면4,5일씩 초려학 연구를 위해 이 서원을 찾고 있는 20여명의 한남대 대학원생들이 이달 중순 올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 중화당과 존성재는 벌써 깨끗이 치워 놓았다.형편이 넉넉하다면 그들이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식사까지 제공했으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장손 정우씨의 마음을 늘 안타깝게 하고 있다. ◎「만언대사」 상소한 당대경세가/후손들이 서원열어 초려정신 대이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조선시대 최대의 국란,병자호란을 만난 것이 1636년(인조14년) 초려 이유태가 29세 되던 해였다.임진왜적이 물러나 대위국교가 재개된지 겨우 30년,또 다시 북쪽의 외적이 몰려와서 나라 안이 쑥밭이 되고 국왕이 삼전도에 나아가 수모를 당하는 그런 역사를 만나게 되었다.국론은 크게 양분되고 당쟁의 고질병이 온 몸을 덮치는 그러한 시대이기도 하였다.치국경세가 그 어느때보다도 시급한 때에 초려는 평소 품었던 뜻을 만언소라는 글로서 국왕에게 구민·구국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이 상소문에서먼저 농촌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농촌을 떠난 농민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 황폐화된 토지를 일구게 하여야 오늘의 정치혼란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제의하고 고른 세제의 확립과 면세특권층의 일소를 역석하였다.또 농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향약을 실시하여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오가작통으로 범죄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육제도의 일대쇄신을 주장하여 양반의 자제들만 교육하는 제도를 고쳐서 모든 양인의 자제를 학문기관에 보내게 하여 그 능력에 따라 직업과 신분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획기적인 제언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고루한 지도층은 자신의 권익만을 생각하고 그의 개혁안을 묵살하였다.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탄핵하여 유배하고 말았다.이 유태는 그 뒤 스스로 초가집(초려)이라는 자신의 호와 같이 모든 관직(이조참판·요즘의 내무차관직)을 마다하고 향리에 웅거하여 나가지 않았다.그 유명한 초려의 불출사 선비정신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가 남긴 「초려집」 26권은 이유태의 선비정신을 담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오늘에 되살려야할 국민정신문화이다.다행히 최근 충남 공주 향리에 그 후손들이 용문서원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외래문화에 질식할 것도 같은 오늘의 세대에 이보다 더 참신한 청량제는 없다 할것이다.
  • 가르치는 보람/김학렬 김제 공덕국교 교사(교창)

    지난 4월 어느날이었다.하루 수업을 마친후 학습 부진아들을 따로 모아놓고 한창 학습지도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잠깐 교장실로 들러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교장실에 들렀더니 10여세됨직한 어린이가 부모인듯한 중년부부와 함께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고 잠시후 교장 선생님은 그 어린이를 밖으로 내보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금방 나간 어린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전남 곡성에서 남의 손에 자라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 이름조차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중년 부부는 그 어린이의 이모부부로 이제사 그 어린이를 입양해 학교교육을 받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나이 때문에 부득이 4학년에 편입했으나 금년 1학기동안만 내가 맡고 있는 3학년에서 기초교육을 시켜달라는 것이다. 나는 당장 말이 나오지 않았다.교장 선생님은 망설이는 나의 눈치를 알아 차려는지 『사실 기초교육이야 학급당 학생수가 적은 1,2학년이 낫겠지만 교장으로서 소신이 있어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날로부터 태어난지 1백일도 못돼 고아가 된 조미란(가명)이라는 어린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방과후면 기본 음절표와 1학년 읽기책을 가지고 우선 문자 해독에 힘썼다. 미란이는 한달쯤 지나자 받침없는 한글은 읽게 되었고 두달 후에는 두자리 수 덧셈과 뺄셈,구구법을 읽혔다. 그날도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교장실에 들러 달라는 전갈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서머 스쿨」을 열어 부진아를 위해 기초반,독서교실,체육교실,컴퓨터반,과학교실,영화교실등 8개 특수반을 운영하겠다며 나에게 「서머 스쿨」명예교장과 함께 기초반과 독서교실을 맡아 달라고 말했다. 유난히도 무덥게만 느껴지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쳐가던날 「서머 스쿨」은 장정의 막을 내렸다. 학업 부진아 18명 가운데 10명이 학습 부진아라는 오명의 탈을 벗고 당당하게 학급학생들과 공부를 같이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10명 가운데 미란이도 끼어 있었음은 물론이다.새학기가 시작되던 날 바로 미란이가 편입된 4학년2반 교실까지 미란이 손을 잡고 담임선생님께 안내하던 날 미란이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고 나도 끝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 사유화 길목의 독버섯(러시아에선 지금…:7)

    ◎부패 막연… “웃돈 없인 되는일 없다”/고위관사 돈 안주면 인터뷰 못해/“포포프시장 5대부호 됐다” 소문 평소 알고 지내는 러시아기자를 통해 얼마전 러시아의회의 한 고위인사에게 인터뷰를 신청한 적이 있다.며칠 뒤 그 기자에게서 전갈이 왔는데 『얼마를 준비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었다.인터뷰료를 내라는 말이었는데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 많고 공직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돈을 요구하는데 대한 거부감 때문에 결국 그 인터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회관리들이 자리와 연관해 돈을 받고 뇌물을 받는 게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러시아에서만 행해지는 일 또한 아닐 것이다.하지만 이 나라에서 지금 일어나는 부패·독직행위는 너무 광범위하고 뿌리가 깊어 자칫 개혁과정 전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년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신발·의류무역업을 하는 한국기업인 김모씨는 물건 구입에서부터 통관에 이르기까지 「웃돈」거래 없이는 한가지 일도 할 수 없는 곳이 러시아라고 말했다.금년초부터 기업·토지등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이곳 언론에서는 모스크바 시청이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특히 가브릴 포포프시장의 이름이 곳곳에서 거론되는데 최근에는 가가린광장 부근의 토지 60◎를 러시아­프랑스합작회사에 99년간 장기임대해주는 과정에서 포포프시장이 거액을 챙겼다는 보도가 있었다.포포프시장이 이렇게 챙긴 돈으로 러시아 5대부호에 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해 3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회사와 스포츠용품 합작회사를 차린 한국기업가 정모씨는 회사 설립과정에서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웃돈을 내 총1만달러 상당의 교제비가 지출됐다고 말했다.물론 그뿐아니라 시청관리들을 만날 때마다 양주등 선물을 들고 갔고 회사설립 허가가 난 뒤에는 인사조로 달러식당에서 성대한 회식까지 열어주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부패관리들의 주표적은 외국기업가들이 된다.하지만 러시아인들 사이에 저질러지는 부패 또한 이에 못지 않다.예를들어 모스크바에는 관공사·기업체 혹은 각 직종·직능별로 운영되는 영빈관이 있는데 최근 재정난 때문에 이들을 외국합작호텔로 개조해 손님을 받는 경우가 많다.이 경우 호텔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자기들 몫을 빼돌리는 것이다.과학아카데미 산하 한 연구기관의 영빈관을 합작호텔로 개조하는 일을 추진한 발렌틴 시만스키(가명)박사는 『연구소 간부들 지분으로 40%를 빼돌리고 외국파트너 지분 40%,나머지 20%를 연구소 몫으로 했다』고 말했다.물론 이때도 해당 관청 관리들에게 뇌물이 건네졌는데 일단 뇌물이 건네진 다음에는 연구소 내부에서 간부들이 호텔의 지분을 어떻게 조작하든 눈감아주더라는 것이었다. 각 분야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마피아조직도 사회불안의 주범중 하나이다.첸트럴 리녹(중앙시장)의 한 간부는 『중앙아시아에는 농산물이 남아도는데 모스크바에 채소가 이같이 귀한 것도 마피아 때문』이라고 말했다.중앙시장 마피아들이 철도·도로등 수송망을 장악한 마피아들과 짜고 지방농산물의 시내반입을 막으며 모스크바시내 채소·과일값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모스크바근교 콜호즈(집단농장)들은 지난해부터 새법에 따라 생산몫중 일정분을 자체판매할수 있게 됐다.하지만 모스크바로 오는 도로 곳곳이 이들 마피아에 의해 체크되기 때문에 샛길을 돌아서 시내로 들어와 물건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발각되면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누구의 입김인지 모르게 콜호즈책임자가 물러나기도 한다. 가족을 런던에 두고 혼자 이곳에 와 러시아인과 합작회사를 차린 한 영국기업가로부터 최근 이런 일화를 들었다. 합작 파트너인 러시아인으로부터 자기 부친이 유산으로 남긴 16세기 골동품 한점을 런던에 가져가서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거절하다가 할수없이 가지고 나갔는데 그 러시아 친구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반출이 금지된 그 골동품을 가지고 나가는데 공항직원이 공항검색대에서부터 기내탑승까지 특별안내를 해주어 놀랐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당국에서 이런 부패행위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신문지상에는 수시로 각종 부패방지 법안들이 1∼2페이지에 걸쳐 발표된다.지금까지 발표된 것만 해도 고위공직자 뇌물수수금지법을 비롯,사유화에 따른 부정방지법안등 다양하다.러시아 검찰청은 지난한해 뇌물수수·횡령혐의로 구속된 사람이 1천8백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이같은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믿고있다. 얼마전에는 공산당정권 말기 수개월동안 구소련공산당·정부지도자들이 8백만∼1천5백만달러 상당의 미화·귀금속·금등 국유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들을 아연케 하기도 했다.경제지인 주간 「코메르상트」지는 최근 1면 머릿기사로 지난 2월말 가이다르부총리가 한 서방합작기업에 90억∼1백70억에 달하는 루블을 달러로 바꿔주는 특혜를 주어 당시 달러화 폭락사태를 야기했다고 폭로했다.당시 1대1백50정도하던 달러의 대루블환율이 일시에 1대50까지 폭락하고 시중에 루블부족사태가 벌어지는등 소동이 난적이 있다. 많은 시민들은 이같은 사실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환율조작 혐의와 함께 가이다르 개인의 청렴문제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위로는 정부관리에서부터 밑으로는 우체국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웃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고 그대신 돈만 들어가면 안되는 일도 없는 사회,이것이 바로 본격적인 개혁 첫해 러시아 사회 「청렴도」의 현주소이다.
  • 민자/대통령후보 5월 전당대회서 선출/김 대표에 당무일임

    ◎노 대통령/오늘 세 최고위원과 당정쇄신 논의/“빠르면 오늘중 당잭개편”/손 정무수석 노태우대통령은 27일 『민자당의 차기대통령후보 선출을 겸하게 될 전당대회는 당헌에 따라 오는 5월에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14대 총선부진책임을 둘러싼 민자당의 계파간 갈등은 본격적인 대권 경쟁국면으로 치닫게 됐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으로부터 주례 당무보고를 받고 이같이 밝히고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경제회복과 남북관계개선등 주요국정현안 해결에 전념하겠다』면서 『이제부터 당무일체를 김대표가 확실하게 맡아줄 것』을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민자당의 당직개편과 관련,『김대표가 당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른 시간내에 건의하라』고 지시했다. 손주환정무수석은 민자당의 당직개편 건의시기에 대해 『금주내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빠르면 28일중 개편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하고 『오늘 회동에서 개각과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었지만 총선후 민의수렴과정에서 내각개편은 관행처럼 있었던 것』이라면 개각도 금명간 단행될 것임을 내비췄다. 노 대통령은 김대표로부터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의 사퇴의사표명을 전해듣고 『국민과 당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높이 평가하며 사의를 반려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총선결과를 놓고 최고위원등 당내에서 일부 논란이 있는데 대해 질책하고 『총선책임과 관련해 더 이상의 잡음은 용납지 않겠다』는 강한 뜻을 밝혔다고 손수석이 전했다. 노대통령은 또 14대국회 원구성과 관련,『새로운 정치상황에 대비하여 원만한 여야관계 정립과 정치현안해결에 나서는등 당이 정국을 주도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총선결과로 나타난 당에 대한 정책과 여망을 당운영에 충실히 반영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권당이 굳게 결속하여 중심을 잃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표는 이자리에서 『총선에서 단1석 부족으로 과반수의석에 미달하여 당과 총재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하늘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며 깊이 자성한다』는 뜻을 전했다. 손수석은 차기대통령후보선출방법에 대해 『자유경선이 될 것이며 당헌·당규에 따라 후보요건만 갖춰지면 누구라도 나설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수석은 이날 노대통령이 김대표에게 당무일체를 맡아달라고 한 것에 대해 언급,『당대표의 역할은 당무를 총괄하는 것』이라면서 『노대통령이 지난번 연두기자회견 당시 밝힌 기조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28일 낮 김대표,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과 오찬을 함께하며 당정쇄신 방안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종필위원 불참 시사 한편 민자당 김종필최고위원은 27일 하오 28일 상오로 예정된 3최고위원 간담회에 불참을 통보했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김영삼대표로부터 당사에서 간담회를 갖자는 전갈을 받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키로 한 이상 당무참여를 삼가하고자 한다』고 거부의사를 밝혔으며 청와대 오찬회동에도 불참할 것임을 시사했다.
  • “대야 협상 무리수 두지 않겠다”/민자 새 총무 이자헌의원

    ◎중지 모아 「대화와 타협의 정치」 실천/언론인 출신의 4선… 상황판단 예리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아 대단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앞으로 여러 의원들의 중지를 바탕으로 당을 더욱 결속시키는데 앞장 설 작정입니다』 민자당의 새 원내사령탑으로 임명된 이자헌 신임원내총무는 4일 당사에서 김영삼대표를 만난 뒤 곧바로 기자실에 들러 취임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4선의 정치인답게 『기자실에 올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라는 조크로 말문을 연 이신임총무는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을때 슬기와 지혜,그리고 용기가 솟아나는 법』이라고 「중론모으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인내와 끈기를 갖고 순리대로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힌 이총무는 쟁점법안과 추곡수매동의안의 처리를 염두에 둔듯 『절대로 무리수를 두지 않겠으며 이것이 나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역설했다. 당직개편 때마다 유력한 총무후보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려 「설총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갑작스럽게 맡게된 중책이므로 하루이틀 생각을 정리한 뒤 의원총회 인준과정등을 통해 총무로서의 구체적인 포부를 밝히겠다』는 조심스러운 면도 보였다. ­예산안처리 이후 쟁점법안의 처리가 중요 정치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당의 여러 의견을 들어가며 전반적인 대책을 정리할 생각이다. ­제주도개발특별법등 쟁점법안의 민자당 강행처리에 대한 신임총무로서의 견해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고 본다.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고충이 있지 않았겠나 생각한다.하지만 이런 모든 것도 소속 의원으로 느꼈던 것이고 정확한 내용은 보다 깊숙이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내년초 본격화될 차기 대권후보결정과 관련,당3역으로서 어떤 마음자세로 임할 것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3당통합이후 광역선거등 여러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당내에서 중지를 모으고 당총재와 3최고위원,당직자,소속당원들이 모두 굳게 뭉쳐 잘 헤쳐나왔다.앞으로도 그같은 방향으로 슬기를 모은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따라서(향후 정치일정문제도)무난히 넘어가리라 확신한다. ­이종찬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연구모임에는 계속 참여할 생각인지.일부에서는 이총무의 이번 발탁을 놓고 새정치연구모임을 와해시키려는 움직임의 일단이 표출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새정치연구모임에 계속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숙고해 보겠다.현재로서는 당직자로만 있을 것이냐,아니면 당직을 맡고도 계속 참여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김영삼대표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어 이번에 발탁됐다는 설이 있는데.소위 「신민주계」라는…. ▲(즉답을 회피하다)내 경우 신문지상에 후임총무로 발령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이번에도 지상보도로만 끝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총무로 발탁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정말 잘 모르겠다. ­신임총무임명 통보는 언제 받았나. ▲오늘 아침 친구들과 조찬모임을 가질때 김대표 집무실로 상오11시쯤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고 감을 잡았다. ◎신임 이 총무 프로필 이신임총무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후 기자생활을 시작,서울신문정치부장을 거쳐 36세때 편집국장에 올랐다.과묵하지만 예리한 상황판단력과 분석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고있다.언론사 퇴직후 제2무임소장관실 정책관리실장을 지낸뒤 10대 유정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11대부터 고향인 평택에서 지역구 3선을 기록,11·12대총선 때는 유치송 당시 민한당 총재를 누르고 연속 금메달을 따냈으며 체신부장관도 역임. 신정치그룹의 핵심멤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는 당 국책연구원장을 맡아왔다. 부인 신유자씨(49)와의 사이에 1남2녀.
  • 「화성살인」용의자 투신자살/경찰에 연행된 뒤 도주… 아파트 옥상서

    ◎환각제 상용 30대 전과4범 【화성=김동준 기자】 10번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사대상자로 경찰의 추적을 받아오던 장기영씨(32·화성군 동탄면 청계리 297의7)가 17일 하오 2시10분쯤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 55의4 희망아파트 라동 4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목격자 조명구씨(40·회사원)에 따르면 이날 비명소리와 함께 「퍽」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장씨가 신음중이어서 199에 신고,인근 기독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장씨는 16일 밤 진해거담제인 러미나 70알을 먹고 환각상태에 빠져 오산시 원동 역전갈비집 앞에 세워둔 차 밑에 누워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경찰에 신고해 오산파출소로 데려갔으나 17일 상오 6시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파출소 2층 계단을 통해 달아나 파출소에서 1.5㎞ 정도 떨어진 희망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한편 화성연쇄살인수사본부는 장씨가 절도 등 전과4범인 데다 10년 전부터 약물을 상습 복용해왔다는 주민제보에 따라 장씨의 소재를 파악하던 중 16일 밤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신문을 하려했으나 장씨가 횡설수설하여 깨어나기를 기다렸었다는 것이다.
  • 김윤환사무총장/민자 신임 당3역의 “제일성”

    ◎수서사건 자성… 「청정정치」 제도화 『국회의원 뇌물외유·수서택지 특별분양사건 등 정치권의 국민적 신뢰를 실추시킨 사건을 하루속히 효율적으로 마무리하고 정치신뢰가 회복된 정당을 만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단행된 19일의 민자당 당직개편에서 원내총무에서 사무총장으로 영전된 김윤환 신임 총장은 이날 취임소감을 이같이 밝히면서 집권여당의 새 모습을 찾기 위한 각오를 새롭게 했다. 김총장은 다소 멋적어 하면서도 싫지않은 표정이었고 평소 사무총장직을 원했던 그의 「야심」을 염두에 둔 『소원성취를 하셨습니다』라는 축하에 정색을 하며 『진짜 웃기는 소리』라고 되받은 뒤 여론을 탐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총장에 임명된 소감 및 각오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따가운때에 집권여당의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에 임명돼 어깨가 무겁다. 최근의 사건을 거울로 삼아 높은 수준의 청정정치를 제도화시키고 이를 구현시키는 데 당이 앞장서도록 하겠다. ­유임이 확실시되던 총무직을 고사했는데 오히려 총장직에 발탁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임명권자인 당 총재가 현시점에서 총장직을 맡으라는 말씀이 있어 따랐다. 앞으로 당내 계파간의 이견을 조율,단합된 모습을 보이는데 충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정사실은 언제 통보 받았는가. ▲오늘 아침11시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총장직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당총재의 말씀이 있었다는 전갈을 받고 총장인선에 포함돼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청정정치를 제도화할 구체적 복안은. ▲깨끗한 정치,돈 안드는 선거가 되도록 정치자금법·국회의원선거법·국회법을 개선하고 국회의원 윤리강령의 실천요강을 만들어 정착시켜 나가겠다. 김총장은 노태우 대통령과는 경북고 동기동창이라는 친분관계로 6공의 각종 현안에 실세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호 「허주」에서 보듯 만사에 무리하지 않는 순리형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으로 3당통합 이후 당내분이 격화되고 정국이 경색되면서 지난해 10월 원내사령탑에 복귀,집권당 원내총무를 두차례 역임한 행운아. △59세·경북 선산 △경북대 졸 △조선일보 주일·주미특파원,편집국장대리 △10·11·13대 의원 △문공차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실장 △민정당 원내총무 △정무1장관 △민자당 원내총무
  • 철군시한 마감… 긴장속 페만

    ◎“D데이 택일만 남았다”… 결전채비 부산/“자살비행대 편성… 사우디인 몰살”/후세인/최신정찰기 2대 급파,배후정탐/미공군/이란 “개전땐 국경봉쇄,중립고수”/“전쟁 불가피” 영의회도 「승인」 준비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하루 앞두고 페르시아만 일대에 전쟁분위기가 완연한 가운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파드 사우디국왕에게 보내는 공개 성명을 통해 페르시아만 전쟁에서 수십만명의 사우디인들이 몰살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14일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을 통해 보도된 이 공개서한에서 『누가 당신에게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갈 권한을 주었는가』고 전제하고 『당신은 그같은 전쟁에서 수십만명의 사우디 국민들이 죽게될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경고했다. 그는 사우디가 외국군대를 사우디 영토내에 불러들인 것은 「이라크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주장하면서 다국적군이 사우디에서 철수할 경우 이라크는 사우디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이를위해 「추가 보장」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게릴라전 준비 완료 ○…이라크 공군 지휘관인 무자헴 삽 하산 공군 중장은 14일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살 비행중대가 연합군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산 중장은 바그다드 라디오에서 방송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이같이 말하고 자살공격 비행대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부대가 이미 편성돼 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음을 시사했다. 하산 주장은 이 메시지에서 『나는 게릴라 부대가 훈련을 완료하고 지상·해상·공중의 목표물에 대한 공격발진 준비를 마쳤다는 기쁜 전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라크 국기에 『알라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말을 집어넣기로 했다고 관영 INA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같은 결정은 13일밤 후세인 대통령의 주재하에 열린 혁명평의회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서 후세인 대통령이 「하늘로부터」의 계시를 받고 내린 것이며 이라크 국기는 「지하드(성전)와 알라신의 유일성에 대한 상징」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도덕적·법적 요인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소수의 경고를 무시하고 영국의회는 14일 정부에 페만전쟁 수행권을 승인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유엔이 결의한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최종시한에 단지 수시간 앞선 15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최종논의를 할 예정이다. 지난 수개월동안 서방국가들과 아랍 지도자들간의 평화적 해결노력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보였던 메이저총리는 의회가 전쟁을 승인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핵사용엔 언급회피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은 14일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다국적군은 생화학전 공격에 대응하는 「막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핵무기가 사용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체니 국방장관은 이라크의 철군최후통첩 시한인 15일을 하루앞둔 이날밤 영국BBC TV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페르시아만 주둔 다국적 군은 모든 부대가 아직 다 배치되지 못했지만 개전채비를 갖추었다고 말했다. ○이라파트,응전 명령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PLO) 의장은 레바논에 있는 수천명의 PLO게릴라들에게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라크와 함께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대항해 싸울 것을 명령했다고 14일 팔레스타인 소식통들이 밝혔다. 한 팔레스타인 고위관리는 『우리는 아라파트 의장으로부터 전쟁발발에 대비해 이라크와 함께 싸울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팔레스타인 소식통들은 이들 게릴라들이 전쟁이 터지면 이라크로 갈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미 공군은 야전군 사령관에게 적진 깊숙이 군대와 탱크의 배치상황을 염탐할 수 있도록 하는 전례없는 능력을 부여해 주는 신형정찰기 시제품 2대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했다고 국방부 관리들이 14일 밝혔다. 이러한 시제품 항공기의 배치결정은 관련 정찰시스템이 그루먼 항공사에 의해 아직 개발중이라는 점에서 볼때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인트 스타스」라고 알려진 이 정찰시스템은 개조한 보잉707항공기를 이용,전선 뒷쪽 깊숙이배치된 적 지상군을 적발하고 식별하며 추적할 수있는 것으로 페르시아만 지역에 있는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에 종전엔 갖지 못한 정찰력을 안겨줄 수있는 성능을 지녔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국경선을 봉쇄하고 중립을 유지할 것이라고 15일 마흐모드 바지 이란 외무차관이 말했다. 바지차관은 서방외교관들과의 모임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란은 페르시아만에서의 어떠한 호전적인 행위로부터도 중립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발발시 그 어느 편도 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란은 그 어느나라에게도 자국영토가 군사기지로 제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규모 반미시위도 ○…유엔이 정한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하루 앞둔 15일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또 하나의 월남전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대규모 반미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날 이라크 전역에서는 수십만명이 관제 반미시위에 동원됐는데 시위대들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범죄자라고 조롱하는 내용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쿠웨이트는 우리 땅』 『침략자들에게 패배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쿠웨이트인 방패로 ○…전쟁이 임박해지면서 이라크는 다시 1만여명의 쿠웨이트인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하기 위해 이라크내 3개 지역에 억류하고 있다고 쿠웨이트의 한 관리가 주장. 이 관리는 쿠웨이트 침공 1주일뒤 쿠웨이트인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인질로 삼았다가 풀어줬던 이라크가 지난 12일부터 다시 3백여명 이상의 쿠웨이트 청년들을 체포해갔다고 주장했으나 이들이 수요돼 있는 지역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근혜씨 「육영재단」 이사장직 사임… 운영권 다툼

    ◎박근혜ㆍ근영씨 측근 반목 심화/근화봉사단,근영씨 이사장 취임 저지/숭모회,근혜씨 퇴진 요구 유인물 배포 고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육영재단 이사장인 박근혜씨(39)가 지난 3일 갑자기 사임한데 이어 6일 상오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박씨의 동생 근영씨(35)의 새 이사장 취임식이 반대파에 의해 저지당해 무산되는 등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자매간의 재산다툼」 「측근간의 자리싸움」 「외부세력 개입」설 등 갖가지 추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사장직을 사임한 근혜씨는 『재단운영권을 둘러싸고 자매간에 갈등이 생긴 것처럼 외부에 알려지면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된다』면서 이사회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6일 상오11시 어린이회관 문화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새 이사장 취임식장에는 근혜씨와 근영씨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근혜씨의 지지파인 육영수 기념사업회 소속 근화봉사단 전국지부 간부 및 단원 7백여명이 식장을 점거,「박이사장 퇴임 반대ㆍ신임 이사장 저지결의대회」를 열고 근영씨의 취임을 막았다. 단원들은 『지난 11년동안 육영재단의 주체인 어린이회관과 육여사 기념사업회를 이끌어온 박이사장(근혜)이 사퇴한 것은 외부 압력 때문이며 70만 단원들과 사전협의도 하지않고 근영씨가 새이사장에 취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박이사장이 사퇴할 경우 조직을 해체하겠다』고 항의했다. 이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박근영씨의 이사장 취임식을 열려던 민족중흥회(회장 전예용ㆍ82) 산하 숭모회 회원들이 어린이회관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취임식은 자동으로 무산됐다. 이에 앞서 숭모회 회원들은 지난달 28일 어린이회관 정문앞에서 박이사장과 최태민고문(69)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20여분만에 자진 해산했다. 당시 숭모회측은 유인물을 통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육영재단을 전횡하고 있는 최고문과 무능한 박이사장은 즉각 퇴진하고 근영씨를 새이사장에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날 시위장소에는 고 박대통령의 친척인 박기업씨(69ㆍ경북 선산군 선산읍 이문리 43)와 구미시 노인회 및 부녀회 회원 2백여명이 전세버스편으로 상경,합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기업씨는 『민족중흥동지회 소속 이모씨(40)로부터 근혜씨가 연금되었다는 전갈과 함께 1백여만원을 받고 상경했으나 막상 올라와보니 엉뚱하게도 박이사장 퇴진요구 집회여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기업씨는 서울에 올라온 뒤 근혜씨를 만났더니 『가족들이 끈질기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해 어쩔수 없이 동생 근영이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자신이 근혜씨에게 『지금까지 이만큼 이루어 놓은 사람이 누구인데 그러느냐』면서 극구 만류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때 근혜씨는 기업씨에게 『중재역할을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박이사장이 사표를 내자 재단이사 7명도 모두 사표를 냈으며 손미자 어린이회관장 등 간부 10여명도 사표를 제출,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주위에서는 지금까지의 양상으로 미루어 근혜씨와 근영씨를 둘러싼 측근들의 주도권쟁탈전에 자매가 휩쓸려 본의 아니게 반목을일으키게 돼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 “3김 동반퇴진”…JP의 승부수인가/잇단 김영삼 대표 비난의 저변

    ◎「들러리역」 탈피,YS 행동에 제동/“내각제 무산 따른 자구책” 추측도 분당까지 점쳐졌던 민자당의 내분사태가 6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회동을 계기로 수습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김종필 최고위원이 김 대표를 신랄하게 비난하며 노­YS(김 대표) 양측에 의한 「강화조약」 체결형태에 대해 노골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김 최고위원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4일 언론사 간부들과의 모임에서 YS를 겨냥,『일을 저질러 놓고 뭉개기만 하는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 유능한 후진들에게 나를 포함해서 모두 자리를 돌려줘야 한다』며 평민당 김대중 총재를 포함한 3김퇴진론을 제기한 데 이어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쪽에서 순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면대응,또는 역공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특히 노­YS 회동에 앞서 5일 저녁 노 대통령이 자신과 박태준 최고위원을 만나겠다는 전갈을 보냈는데도 ▲YS의대국민사과 ▲3최고위원 회동 이후 노­YS 회동의 전제조건이 실현돼야한다며 한때 청와대측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JP(김 최고위원) 특유의 「예절론」에 어긋나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 1월말 3당통합 이후 그동안 YS에 대한 불만을 가슴에만 간직해오며 「은인자중」해오던 JP가 이같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스타일을 바꾼 것은 우선 당내에서 3계파간의 동거관계가 계속되더라도 YS측과 더이상 제휴 또는 공생체제를 유지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한 것으로 JP측근들은 분석하고 있다. 합의각서에 「아무런 이의없이」 서명해놓고 하루아침에 이를 백지화시킨 뒤 합당의 3대 주주인 자신을 배제시키고 노­YS 담판을 통해 당권을 움켜쥐려고 나서는 YS의 행동을 더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라는 해석이다. 사실 JP가 그동안 최대한 목소리를 자제하며 행동반경을 스스로 좁혀온 것은 3당통합의 기본합의사항인 내각제로의 방향유도에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시간벌기작전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있다. 그러나 YS의 「태업」과 민주계의 집단반발로 사실상 내각제가 물건너간 상황에서 공화계의 독자적인 자구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JP와 주변인사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민자당 의석 2백18석 중 34석으로 제3의 지분을 가진 공화계로서 향후 당운영에 있어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키 위해서는 민주계와 함께 정립형태를 취해나가야 하지만 결코 어느 일방의 완승을 지켜보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JP가 노­YS간 회동으로 당내분 수습 전망이 확실해진 이후에도 3최고위원간의 회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하는 집요함을 보인 것도 공화계가 민정계의 「부속물」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민주계가 무시해도 좋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JP가 4일에 이어 5일 김 대표의 귀경일정에 맞춰 3김퇴진론과 세대교체론을 제기한 부분도 앞으로 당권 또는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새로운 당내질서 재편을 예고하는 대목이라는 게 당 내외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앞으로 대통령직선체제가 그대로 유지돼 JP 자신이 차기 대권주자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당내 세대교체론자들간의 경쟁관계 유도를 통해 자신의 입지와 영역을 확대해나가겠다는 복선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계로서는 현재의 권력구조가 계속될 경우 당내에 YS외에는 대권주자가 없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민정계 중진 또는 공화계의 차세대 인물들이 후보경선의 목소리를 높일 경우 YS 역시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경선과정에서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JP의 시각이다. 권력구조형태의 종착점을 내각제로 상정하고 있는 JP로서는 비록 13대 국회의원 임기내에는 개헌추진작업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당내 원로로서 조정자 역할를 충실히해낼 경우 14대에서 제2의 새로운 개헌추진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기포석을 구상중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김 최고위원의 향후 행동반경은 최고위원의 자리를 유지해나가면서 YS 견제세력으로 점차 목소리를 높여 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JP측근들은 최고위원직 사퇴 또는 백의종군 등 극단적인 행동선언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무리수를 둘 경우 YS의 밀어붙이기작전에 밀려 JP가 노리는 YS와의 동반퇴진 주장은 결국 실패로 끝날 위험부담도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좀더 시간을 기다리는 지구전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 교육과 사회불안의 함수관계/이종흥(아침세평)

    새해는 5공청산의 증언도 끝나고 해서 새로운 밝은 전망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새해초부터 어두운 소식을 연달아 접하고 보니 밝은 소망이 송두리째 지워진 느낌이다. 어두운 소식이란 평소에 잘 아는 교사 한분이 세모에 노상에서 10대들에게 각목과 칼로 폭행을 당해 입원치료중이라는 것이다. 중태이기는 하나 목숨만은 건졌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틀전에 파출부 아주머니가 퇴근길에 역시 10대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손에든 가방을 빼앗겨 몸져 누웠다는 전갈이다. ○악한이 날뛰는 세상 민생치안 부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보니 새삼 불안하고 격분하게 된다. 어쩌다가 사람 사는 세상이 이모양 이지경인가 싶어 울분과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악한의 10대들도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을 터인데 그 가정 그 부모들은 어떻게 했기에 거리의 악한으로 내던져 두고만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악한들이 마구 설쳐도 속수무책이 된 사회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참으로 암담하다. 정부는 10개 주요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민생치안이 첫째 순위에 들어 있지 않다. 경제도 중요하고 정치도 중요하지만 제일 다급한 것은 민생치안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존재 이유가 바로 민생치안 빼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어쩌다가 사회가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였는지 정치와 정부의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수 있도록 하겠다던 정부는 거짓말만 한것 아닌가. 참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5공시대의 삼청교육이 잘못됐다고는 하지만 또다시 이해할 것만 같다. 민주화는 악한들이 판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국민의 생명권 옹호가 우선되지 않는대서야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면 오늘의 교육은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교육하면 학교교육을 연상하겠지만 교육의 근본과 기초는 부모와 가정에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비행 청소년이 있다면 그만큼 잘못된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들이 배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문교정책 당국도 그 책임을 질 줄 알아야한다. 오늘의 민생불안 문제는 근원적으로 교육에 대한 부모 학교 사회 문교당국 전체가 책임의 소재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혁신운동을 전개하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특히 결혼윤리와 성윤리의 확립없이 부모의 책임은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국민정신의 혁신 없이는 치안경찰의 노력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교육열 1위라지만… 이 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1위라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교육적 결과는 어떠한가. 오늘 우리는 그 평가를 이미 하고 있는 바다. 교육의 병리현상을 진단하면서도 교육제도개혁 심의위원회가 내놓은 처방을 보면 교육의 병리치료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교조가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게 된 것도 오늘의 교육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교육의 본질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들이 알고 있는 교육은 개인의 영달과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인력양성으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안다. 인간의 인격적 완성이란 말뿐이지 교육 그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격의 완성이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것이다. 윤리적 가치판단과 행동적 결단에 책임이 수반되는 성숙한 인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책임질 줄을 알아야 재능의 개발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의 육성은 교육의 2차적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오늘의 교육은 본질적인 것은 무시하고 2차적인 유용성에 국한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윤리의 교육도 개인의 야심과 내면적 가치를 전제로 한 국민윤리가 아니고 사회적 유용성만을 고려한 사회윤리가 되고 있어 그 자체안에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유용성에만 치중한 교육은 결과적으로 오늘과 같은 교육풍토를 낳고 말았다. 지식 전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이비 스승이 허다하고,자신들이 상실한 교육의 권위를 교권옹호 투쟁방법으로 나오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반사적으로 스승의 권위에 스스로 머리 숙이는 제자는 이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뿐이랴. 스승을 불신하고 감금과 구타까지도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민주화의 교육은 이래도 된다는 것일까. 대담한 정신과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본다. 교육자부터 인격적으로 스승다워야 하겠다. 직업인이기 전에 교육자라야 하겠다. 교단을 직장으로만 생각한다면 교단을 떠나야 마땅하다. 노동법도 교사를 직장인으로만 보호할 것이 아니고 교사다울 때만 보호가치가 있도록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본질을 벗어나고 잘못된 인격의 소유자들이 역사속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저질렀고 그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최근에 일어난 국내외 사건에서 우리는 보아왔다. 인간이 양심과 윤리의 지배를 받지않을 때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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