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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빚에 쫓겨 접습니다… 사장님 30만명 ‘눈물의 폐업’

    빚에 쫓겨 접습니다… 사장님 30만명 ‘눈물의 폐업’

    서울 시내에서 카레 전문점 6곳을 운영하던 이준모(44·가명)씨는 최근 2년 새 점포 3곳을 접었다. 2007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직영점 6곳에 직원 30여명을 둘 정도로 번창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학생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났다. 가게 1곳당 3000만원 안팎의 정부 대출 지원금이 나왔지만 임대료와 밀린 직원의 월급을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가게 절반을 정리하고도 이씨는 최근 저축은행을 찾아 집을 담보로 1억 5000만원 대출을 더 받았다. 그는 18일 “올봄 정도 되면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 좋아질 줄 알았는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부의 계획 없는 방역 대책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년이 지난 현재. 버티다 못한 자영업자가 결국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나마 이씨처럼 퇴로를 찾을 수 있었던 경우는 다행인 편. 대출 담보로 잡힌 가게를 폐업했을 때 돌아올 채무변제 압박이 무서워 폐업도 못 하는 사실상 ‘한계 자영업자’들의 호소가 늘고 있다. 퇴직금을 밑천 삼아 제2의 인생을 출발하려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뒤 이자 낼 돈도 벌지 못하는데도 별다른 대안이 없거나 대출 상환 부담 때문에 폐업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다. 4년간 운영하던 코인노래방을 지난해 접고 현재 식당만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주진영(45·가명)씨는 “집합금지 지침이 적용되면서 손님이 뚝 끊겼고 매출이 5분의1로 쪼그라들었다”며 “정부 지원금을 세 차례 받았지만 임대료 절반 수준도 안 돼 매달 임대료 지출 등 적자만 300만~400만원이 쌓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조지현 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대부분이 사업자 대출을 받아 가게를 차렸는데 장사가 안 돼 상환이 더욱 어려워지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을 하고 있다”면서 “정부방역 정책으로 입은 영업 손실에 대해 대출 지원이 아닌 온전한 보상책을 마련해 자영업자가 영업을 유지하면서 대출을 상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 폐업이 늘었지만 폐업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계 자영업자’의 숫자 역시 크게 증가했을 것이라는 게 자영업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폐업점포 재도전 장려금 지원 현황을 보면 간접적이나마 자영업자의 폐업 실상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실이 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30만 7771건의 폐업점포 재도전 장려금이 지원된 것으로 나와 있다. 최소 30만명의 자영업자가 폐업했다는 얘기다. 이 장려금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된 2020년 8월 16일 이후 폐업 신고한 소상공인에게 5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 경북도, 은퇴 과학자 타운 ‘골든사이언스파크‘ 조성

    경북도, 은퇴 과학자 타운 ‘골든사이언스파크‘ 조성

    경북도가 대전에 이어 은퇴 과학자 타운을 조성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도는 도청 신도시에 은퇴 과학자 타운인 ‘골든사이언스파크’ 조성을 추진한다고 12일 밝혔다. 은퇴를 앞둔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인들을 유치, 추가 연구와 사업화 기회를 제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또 은퇴 과학자를 위한 마을과 휴양단지, 은퇴과학자 유치지원센터 등 커뮤니티 구축을 검토한다. 도는 6200억원 규모의 이러한 기본 구상을 마련해 대통령 선거 지역 공약사업으로 제안했으며 올해 타당성 검토 및 종합계획 수립 연구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책기관 및 연구기관, 대학, 기업 전문가들과 추진 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다. 기본구상에서는 향후 5년간 대학 및 정부출연연구소에서 1만명 이상의 연구 인력이 퇴직할 것으로 추산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과학기술인들이 지역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해 지역산업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2019년 11월 대전 도심의 대덕연구단지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은퇴 과학자 실버타운인 ‘사이언스빌리지’가 수년째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때문이다. 국비 160억원을 들여 건립한 사이언스빌리지는 지하 2층, 지상 10층, 연면적 2만 7553㎡의 건물에 1인실 100세대, 2인실 140세대 등 총 240세대로 구성돼 있다. 연구실을 겸한 도서관과 세미나실, 건강관리센터, 영화나 바둑, 골프 게임 등이 가능한 문화·여가 및 운동시설, 정원, 산책로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간호사와 물리치료사가 상주하면서 건강을 케어하고, 영양사와 조리사가 맞춤식 식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말 기준 입주율이 30%에도 못미치는 등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입주 자격을 과학자의 부모와 장인, 장모로까지 확대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사업 본연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국회 과방위)실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이언스빌리지의 운영 적자가 지난해 3월 27억원에서 9월엔 37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부실 운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사이언스빌리지 운영을 맡고 있는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지난해 국회에서 “맡고 싶지 않은 사업을 정부 요청으로 떠안았다”며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경북의 한 과학자는 “경북도의 골든사이언스파크 조성 사업이 자칫 사이언스빌리지 판박이가 될 우려가 있다”면서 “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입지 여건 등 사업 전반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요청된다”고 했다.
  • 27년을 홍콩에서 ‘갇혀 지낸’ 42세 베트남인 “이젠 추방해달라”

    27년을 홍콩에서 ‘갇혀 지낸’ 42세 베트남인 “이젠 추방해달라”

    열두 살이던 1991년 보트를 타고 홍콩으로 건너온 베트남 난민 보 반 훙(42)은 3년 뒤 다른 난민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형 혜택을 받아 2016년 풀려났지만 불법 이민자란 이유로 지금껏 구금돼 있었다. 보는 이제 모든 희망과 기대를 접고 홍콩 정부가 자신을 추방해 비행기에 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미국 매체 넥스트 샤크가 6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홍콩 프리 프레스(HKFP)가 전한 보의 인생 역정은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 싶을 정도다. 그가를 홍콩에 데리고 온 것은 친척이라고 주장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성이었다. 그 남성은 얼마 뒤 그를 해안가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결국 보는 마 온 샨에 있는 화이트헤드 난민 구금센터로 보내졌다. 3년 뒤 사소한 시비 끝에 그는 다른 난민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그는 유죄를 인정했고 종신형이 선고됐다. 영어도 광둥어도 못하는 그에게 재판은 시종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몇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종신형을 살고 있음을 동료 수감자로부터 들어 알게 됐다. 보의 형기는 1998년 홍콩 형법에 미성년자에게 종신형이 선고돼선 안된다는 조항이 신설됨에 따라 29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리고 형기를 많이 앞당겨 22년 만에 교도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5년 동안 캐슬 피크 베이 이민센터(CIC)에 구금돼 있었다. 이민자 신분과 영주권을 얻기 위해 두 차례나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다. 30년 가까이 노심초사했지만 모두 헛수고가 됐다. HKFP에 따르면 보는 여러 이유로 홍콩 정착에 실패한 18명의 베트남 국적자 중 한 명이다. 처음에 그는 남베트남 병사였던 아버지의 전력 때문에, 또 조국을 불법으로 떠나왔기 때문에 귀국하면 박해를 받을까봐 송환 명령에 맞서 싸웠는데 이제는 다 접기로 했다. HKFP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1975년부터 1999년까지 도착한 베트남 난민 20만명 가운데 14만 3700명만 재정착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6만 7000명은 추방 조치했다. 보는 지난달 29일 추방에 동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편지를 통해 “이렇듯 철통같은 법의 장벽이 남긴 고통은 묘사하기 어렵다. 평생 잊히지 않을 어려움이다. 우리는 가진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이 정부는 돌덩이 같은 심장을 지녔다. 홍콩은 더 이상 베트남처럼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갈파했다. 그는 HKFP 인터뷰를 통해 감옥 동기가 집을 갖고 있는 북동부 하이퐁 시의 도 손 지구에서 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영어와 광둥어도 배워 외국기업의 통역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독학으로 익혀 영어를 아주 잘 할 수는 없지만 잘 읽을 수는 있다. 타이프도 칠 수 있다. 컴퓨터 사용하는 방법도 배웠다.” 홍콩이민국은 보 사례와 관련해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이순재의 리어왕’ 추가 앙코르 공연…다음달 5일까지 8회차 추가

    ‘이순재의 리어왕’ 추가 앙코르 공연…다음달 5일까지 8회차 추가

    데뷔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의 연기로 더욱 관심을 모은 연극 ‘이순재의 리어왕: KING LEAR’가 특별 앙코르 공연으로 회차를 더 늘렸다. 관악극회는 오는 21일 폐막 예정이었던 ‘리어왕’에 대한 많은 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3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8회차를 더 늘려 공연한다고 15일 알렸다. ‘리어왕’은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삶의 비극과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담아낸 걸작이다. 오만함과 분노에 눈이 가려져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 연로한 왕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갈등과 혼란을 다루며 권력 앞에 가린 진실의 가치를 조명하고 나아가 인간 본연의 냉혹함과 인생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단독 캐스트로 지난달 30일부터 리어왕을 연기해 온 이순재가 65년 연기인생을 무대에서 쏟아내듯 열의를 다하며 매 회차 매진이 될 만큼 관객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앙코르 회차에서도 이순재는 리어왕을 혼자 연기한다. 리어의 첫째딸인 고너릴 역에는 기존 지주연 배우에 더해 김선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다. 둘째딸 리건 역은 서송희 배우가 단독으로 출연하고 셋째딸인 코딜리아와 광대 역은 박보현 배우가 맡는다. 글로스터 백작 역은 배우 최종률, 그의 적자인 에드가 역은 배우 권해성, 박재민이 맡고 서자인 에드먼드 역은 배우 박영주가 연기한다. 리어의 충신인 켄트 백작 역은 계속 배우 박용수가, 고너릴의 집사인 오스왈드 역은 배우 김인수, 임대일이 연기한다. 또한 리어의 첫째 딸 고너릴 남편인 올바니 공작 역은 배우 최기창과 유태웅, 둘째 딸 리건의 남편인 콘월 공작 역은 배우 염인섭이 맡아 연기한다. 이 외 배우 이석우, 이현석, 김보람, 이솔우, 한상길, 백경준 배우에 추가로 길지혁, 태윤, 양동근, 고용석 등이 합류하게 된다.
  • 이영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시립병원 투자 강화해야”

    이영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시립병원 투자 강화해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위원장 이영실, 더불어민주당 중랑1) 지난 11일 서울의료원과 서울시 시립병원, 서울특별시 광역치매센터, 자살예방센터, 은혜로운집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다. 이 날 행정사무감사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은 시립병원의 장애인 고용 현황에 대해 집중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또한 시립병원의 이른바 ‘착한 적자’에 대해서도 다양한 질의와 정책제언이 실시됐다. 병원 차원에서도 매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대책방안이 아니라 구체적·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위원들은 지적했다. 그 밖에도 ▲장애인생산품 목표구매액 설정의 적정성 ▲서울의료원 서울시생활임금 미준수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시정 요구 ▲시립병원 의료장비 구입 과정 점검과 신속한 처리 요구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인력 부족에 대한 실태 점검과 해결방안에 대해서 심도있는 질의를 실시했다. 이 위원장은 “시립병원은 수입을 확대하기도 힘들고 일정 수준의 ‘착한 적자’를 피할 순 없지만 병원 차원의 구체적인 대책방안은 필요할 것이다” 고 강조했다.
  • 여의도 경험 없는 ‘변방의 장수’… 중원서 ‘억강부약’ 외치다

    여의도 경험 없는 ‘변방의 장수’… 중원서 ‘억강부약’ 외치다

    정치인 이재명(57)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변방의 장수’다.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거쳤지만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그는 여의도 정치에선 늘 비주류였다. 국회의원이 선수를 쌓은 뒤 광역단체장을 하는 경우는 많아도 기초·광역단체장을 거치며 지방행정 경력만 쌓은 정치인이 대선이라는 ‘중원 전쟁’의 대장군이 된 경우는 드물다. 이 후보는 5년 전 성남시장 시절 대선에 도전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발언을 정치인 중 처음으로 꺼내 ‘사이다´로 불렸다. 당내 대선 경선에서 친노(친노무현) 적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21.5%)에게 불과 0.3% 포인트 뒤진 21.2%를 얻어 차기 가능성을 증명했다. 2017년 첫 대선 도전 때 이 후보 곁에 섰던 국회의원은 정성호, 김영진, 제윤경, 김병욱, 유승희 의원 등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돼 유력 대선 후보로 체급을 올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이낙연 전 대표를 누르고 지지율 당내 1위를 기록해 왔다.이 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이다. 이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위기의 원인은 불공정과 양극화”라며 “공정성 확보가 희망과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정책이나 공약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좌파·우파 논란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이 후보는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민생과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즐긴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더라도 캠프의 각종 보고서를 직접 읽고 숙지한 뒤에 의견을 낸다. 새벽까지 SNS를 하고, 기자들의 ‘돌직구´ 질문도 피하지 않는다. 참모들이 말릴 지경이지만, 무엇이든 직접 나서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연인 이재명을 아는 측근들은 ‘의외로 소심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사이다’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고 한다.가난은 이 후보의 굴레이자 원동력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남시 빈민촌으로 이사한 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소년공이 됐다.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장애 판정을 받고 병역이 면제됐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덕에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연구회에 가입해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이 후보는 광주민주화운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생을 바꿔 놨다고 회고한다. 이 후보는 “광주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저 출세와 영달을 꿈꾸던 흙수저 청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 김혜경씨와 1991년 결혼해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얻었다. 1995년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당했고, 피신하던 중에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 후보는 “동료와 같이 밥을 먹다가 엉엉 울었다. 그때 직접 병원을 만들자고 결의했다”며 당시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했다. 이 후보는 가난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한다.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만들겠다는 게 이재명의 포부다.
  • [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 변방의 장수에서 중원 전쟁 대장군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 변방의 장수에서 중원 전쟁 대장군으로

     정치인 이재명(57)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변방의 장수’다.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거쳤지만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그는 여의도 정치에선 늘 비주류였다. 국회의원이 선수를 쌓은 뒤 광역단체장을 하는 경우는 많아도 기초·광역단체장을 거치며 지방행정 경력만 쌓은 정치인이 대선이라는 ‘중원 전쟁’의 대장군이 된 경우는 드물다.  이 후보는 5년 전 성남시장 시절 대선에 도전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발언을 정치인 중 처음으로 꺼내 ‘사이다‘로 불렸다. 당내 대선 경선에서 친노(친노무현) 적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21.5%)에게 불과 0.3% 포인트 뒤진 21.2%를 얻어 차기 가능성을 증명했다.  2017년 첫 대선 도전 때 이 후보 곁에 섰던 국회의원은 정성호, 김영진, 제윤경, 김병욱, 유승희 의원 등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돼 유력 대선 후보로 체급을 올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이낙연 전 대표를 누르고 지지율 당내 1위를 기록해 왔다.  이 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이다. 이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위기의 원인은 불공정과 양극화”라며 “공정성 확보가 희망과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정책이나 공약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좌파·우파 논란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이 후보는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민생과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즐긴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더라도 캠프의 각종 보고서를 직접 읽고 숙지한 뒤에 의견을 낸다. 새벽까지 SNS를 하고, 기자들의 ‘돌직구‘ 질문도 피하지 않는다. 참모들이 말릴 지경이지만, 무엇이든 직접 나서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연인 이재명을 아는 측근들은 ‘의외로 소심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사이다’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가난은 이 후보의 굴레이자 원동력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남시 빈민촌으로 이사한 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소년공이 됐다.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장애 판정을 받고 병역이 면제됐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덕에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연구회에 가입해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이 후보는 광주민주화운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생을 바꿔 놨다고 회고한다. 이 후보는 “광주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저 출세와 영달을 꿈꾸던 흙수저 청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 김혜경씨와 1991년 결혼해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얻었다. 1995년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당했고, 피신하던 중에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 후보는 “동료와 같이 밥을 먹다가 엉엉 울었다. 그때 직접 병원을 만들자고 결의했다”며 당시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했다. 이 후보는 가난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한다.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만들겠다는 게 이재명의 포부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윤희숙, ‘이재명 세계여행비’ 발언 왜곡…먹을 것 발견한 좀비 같아”

    “윤희숙, ‘이재명 세계여행비’ 발언 왜곡…먹을 것 발견한 좀비 같아”

    이규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대학 안 간 청년들에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 발언이 논란되는 것에 대해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님과 일부 보수언론이 왜곡된 내용을 퍼뜨리고 그에 기반해 장황한 비판을 내놓는 것이, 마치 먹을 것을 발견한 좀비 같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지사의 해당 발언에 대해 “대학생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대학을 갔다는 이유 만으로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다. 그럼 대학을 안 다니는 청년들에게도 같은 행정지원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야 고졸도 취업의 기회가 더 넓게 열리지 않겠는가. 이런 비교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4년 대학을 다닌 사람과 4년 세계여행을 한 사람 중 어느 쪽의 경험이 더 값진가”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 이야기와 고졸자 1000만원 줘서 해외여행 보내자는 얘기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윤희숙 의원님, 말의 무게를 생각해달라. 맹목적으로 상대를 흠집내기 위한 반복적인 공격은 결국 외면 받게 돼 있다”고 일침했다. 이 의원은 “그것이 설령 정책 제안이었다 하더라도 청년들을 경쟁사회로 떠밀기 전, 진심으로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사회가 보장해주는 것, 정말 좋지 않나. 포퓰리즘이라고 하시니 4대강 사업이 생각난다”며 “그 돈이면 고졸자 2000만원씩 주고도 까마득히 남았을 것이다. 참고로 영국과 유럽에서는 갭이어(Gap year) 제도라고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간 세계여행 또는 오지투어를 할 수 있다. 다음 진로를 선택하기 전 1년의 시간을 유예해주는 것으로, 진로탐색의 시간을 준다는 의미다. 아름다운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희숙 의원님, 노이즈마케팅으로 체급 올리시려는 듯한데, 그럴 시간에 머리 맞대고 청년을, 그 막막함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앞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학 안 가는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해주면 어떨까”라고 제안한 데 대해 “선정적 낚시”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학력으로 임금차별을 하지 말자’는 화두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4년간 일한 사람과 4년간 대학 다닌 사람 보상이 같아야’ 한다는 이 지사의 구호 비슷한 발언은 심각한 자기모순이거나 시대를 읽지 못하는 식견을 내비치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졸과 고졸 임금 차이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는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 국가전략의 핵심, 교육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며 “대졸자와 고졸자간의 보수 차이가 과하면 분배와 통합을 해치지만, 인적투자를 권장하고 열정을 품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서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지사의 말대로라면, 대학원 석사의 보수는 대졸자와 단 2년 경력만큼만, 박사는 5년경력 만큼만 차이나야 하나”라며 “그렇게 쉽게 얘기할 주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4일 경기도청에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헌수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과 가진 고졸 취업지원 업무협약 자리에서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워낙 큰 것이 대학 서열화 문제나 입시 문제 아니면 초·중·고의 왜곡된 교육 환경이 주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4년 동안 기술을 쌓고 노력한 결과가 4년 동안 대학 다닌 사람의 보상과 별반 다를 거 없거나 나을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우회로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협약을 통해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런 세상을 만들어봤으면 하고 경기도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4년 동안 대학을 다닌 것과 같은 기간에 세계일주를 다닌 것하고, 어떤 것이 더 인생과 역량계발에 도움이 되겠나. 각자 원하는 것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대신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현웅의 공정사회] 사랑하기 위해 사는 우리

    [문현웅의 공정사회] 사랑하기 위해 사는 우리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는 월말만 되면 마음이 매우 분주해집니다. 매달 말일이면 직원들 월급이며 사무실 운영 비용 그리고 저희 가족 한 달 생활비 등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매출이 오른 달이면 마음이 분주해도 넉넉하게 분주하지만 일 년 중 그런 달은 몇 달 되지 않고 대부분은 그야말로 빠듯한 수입에 한숨짓는 월말을 맞이합니다. 빠듯하기만 하면 좋은데 적자가 나거나, 받아야 할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마음이 분주한 것을 떠나 몹시 조급해지기까지 하지요. 오랜 시간 반복되는 이런 월말 풍경에 지겹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지만 직원들 월급 밀린 적 없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한 달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무료함, 그리고 월말의 무한 반복되는 분주함과 한숨이 저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감출 수 없는 노릇이지요. 적자가 난 것도 모자라 의뢰인이나 직원까지 속을 썩이는 달이면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먹고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정말로 참 어렵고 고단한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일상 속에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조금이라도 기쁘게 출근하려 발버둥치다 우연히 지인 모친의 장례 미사에 참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잠을 쉬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저의 임종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죽음에 임박해 내 인생의 가치 있는 시간은 언제였다고 회고하게 될까?’ 하는 질문에 이르니 뜻밖에도 주저 없이 바로 답이 나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죽음에 임박해 돈을 많이 번 것도, 명예를 드높인 것도, 권력을 누린 것도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시간이 내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회고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내 죽음에 슬퍼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돼 눈물이 납니다. 또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행복한 순간들도 떠올라 미소 짓게 되면서 욕망의 부질없음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울다 웃다 보니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자동으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답이 나옵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이 명예를 드높여 더 많이 우쭐대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임박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미안한 감정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릅니다. 후회해도 소용없게 된 관계까지 떠올라 그때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임종 모습을 상상해 보니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어쩌면 사랑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돈을 벌려고 땀을 흘린다면 사람 사는 풍경이 퍽 강퍅하게만 보이겠지만 사랑하기 위해 그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사람 사는 풍경이 퍽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사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맛난 음식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명품을 걸치고 살았는지 하는 것은 기억조차도 안 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만큼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사람은 우울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부여할수록 더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돈을 버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돈을 번다고 의미를 부여해 보니 먹고사는 것의 고단함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도 듭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인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수단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수단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인생을 통틀어 수단이 삶의 전부인 듯 사는 시간이 너무 많은 미련한 인간이지만 말입니다.
  • [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마치 어느 의열단원이 서울 한구석에 폭탄을 던진 듯한 설렘을 느끼게 했다.” 1926년 10월 1일 나운규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된 당시를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고 이경손은 이렇게 회고했다. 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미치광이가 된 주인공을 그린 아리랑은 마치 항일투쟁과 같은 영화였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영화인인 나운규는 3·1운동에 참여하고 만주에서 독립군 단체인 도판부에 가입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2년 동안 청진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나운규에게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2016년에는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나운규는 1923년 3월 출소해 함북 회령에서 머물다 배우가 되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듬해 1월 극단 예림회가 공연차 회령을 방문하자 예림회에 가입한 것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도중에 관객들은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이내 가슴에 수심도 많다”라는 아리랑 4절을 합창해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 아리랑을 개봉한 첫날 단성사에는 구름 같은 관객이 몰려들어 경찰 기마대까지 동원되는 등 일대가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합창하면 밖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조선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조희문, ‘나운규’, 한길사). 아리랑의 감독·각본은 김창선이라는 한국명을 갖고 있던 일본인 스모리 슈이치를 내세웠다. 광고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모리가 감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광고를 보면 원작 각색은 나운규의 호인 ‘춘사’(春史)라고 돼 있고 출연자에는 나운규의 이름이 나온다. 아리랑은 2년 넘게 상영됐고 15만명이 관람했다. 100만명 정도였던 당시 서울 인구를 감안하면 대단한 숫자다. 1927년에는 일본에서도 개봉됐다. 나운규는 큰돈을 벌었다. 이후 나운규는 여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조선 영화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고 나운규 프로덕션을 만들어 직접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그가 감독·각본·주연을 맡은 ‘벙어리 삼룡’(1929)이 대구 만경관에서 개봉했을 때에는 너무 많은 관객이 몰려 극장 2층이 붕괴될 정도로 나운규는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로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35년 무렵 나운규는 아리랑을 유성영화로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1937년 폐병으로 죽을 때까지 나운규는 영화 제작과 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은 아리랑이 상영됐던 단성사에서 치러졌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한국왕 케밥왕 사업왕

    한국왕 케밥왕 사업왕

    “23년을 터키에서 살고 한국에 온 지 올해로 25년째입니다. 한국에서 무역을 익히고, 터키 레스토랑 그룹을 경영하고, 이제 주한 외국인과 한국인 기업가가 함께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비즈니스 플랫폼 GBA를 통해 교류와 확장의 묘미를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 올 때 사업 경험은 아예 없었고, 인생 경험도 적었던 애송이였으니 한국에서 다 배우고 익힌 셈입니다. 프로덕트 바이 터키, 메이드 인 코리아…. 그게 저, 오시난입니다.” ‘Global Business Alliance’, 약칭 GBA는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온 기업가, 외교관, 스타트업이 한국인 기업가와 모여 국내외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플랫폼이다. ‘한국의 세계화, 세계의 한국화’를 외치며 2019년 11월에 창립했다. 창립 몇 달 만에 코로나19 상황이 됐다고 염려를 전하자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GBA 사무실에서 만난 오시난 회장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는 “외국인 사업가와 한국인들을 한마음으로 만들겠다는 GBA에 코로나19 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와중에도 GBA는 지난해 많은 성과를 냈다. 우선 세계가 주목한 ‘K방역’의 기초물품인 방호복과 진단 키트 수출을 중개했다. 한국산 방역물품은 루마니아, 이라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유라시아를 넘어 알제리, 나이지리아, 베냉 등 아프리카까지 향했다. GBA는 또 화장품, 의료기기, 식품 등 다양한 품목의 수출길을 모색하는 비즈니스 회의를 140여회 열었다. 온돌부터 안전까지 모두 갖춘 한국 아파트를 눈여겨보던 중앙아시아 기업인도, K뷰티에 반한 중동의 사업가도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외국인 사업가들이 모인 GBA의 문을 두드렸다. GBA 회원들은 한국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낯선 외국인의 모습이다. 오시난 회장은 “저처럼 귀화한 사람을 포함해 국내 외국인이 약 300만명이나 있지만 유학생, 사업가, 외교관들이 그중 약 10%에 달한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민자, 다문화 가정 등 사회면에 등장하는 ‘도울 대상’으로만 외국인 이미지가 그려졌다는 지적이다. 그에 비해 GBA 회원들은 신문의 경제면에 등장할 법한 외국인, 그러니까 한국에 세금을 내면서 한국 제품을 자국에 소개하거나 역으로 한국에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외국인들이다. GBA는 한국과 상대적으로 교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중앙아시아, 중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등지와의 교류에 주력한다. 오시난 회장은 “아랍 부자들이 한 달 동안 몸을 가꾸는 데 100여만원 정도를 들인다. 그런데 이들이 써 오던 유럽·미국 제품에 비해 한국 화장품의 품질과 디자인이 뒤지느냐”고 반문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한국이 교류할 세계의 지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것만이 GBA 회원이 될 충분조건은 아니다.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사랑에 진심인 편’인 이들이 GBA에 모인다. GBA가 외국인 회원들을 대상으로 전국 곳곳으로의 여행을 설계하는 이유다. 외국인 사업가들은 한국을 더 자세히 알아 갈 뿐 아니라 한국 알리기에 열심히 참여한다. 지난해 11월 경북문화관광공사 주최 팸투어의 일환으로 풍기 인삼박물관과 안동 도산서원을 방문했을 때에도 GBA 회원들이 한복을 입은 사진이 20개국의 SNS에 퍼졌다. 오시난 회장이 한국에 터전을 잡고, GBA를 설립한 계기 역시 ‘한국 사랑’에서 비롯됐다. 1997년 오시난 회장은 서울대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학업을 마치고 터키로 귀국할지 고민하던 2002년 그는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터키 대표팀의 연락관을 맡다가 한국에 반해 버렸다. 3·4위전에서 맞붙은 한국팀 공식 응원단 붉은악마가 경기가 시작될 때 대형 태극기와 함께 대형 터키 국기를 펼치고, 터키팀 승리에 아낌없이 축하하는 한국 관중의 정이 좋았다. 지금도 그의 사무실에는 관중의 ‘터키’ 연호 속에서 터키 대표팀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이후 오시난 회장은 결혼해서 부산 처가를 갖게 됐고, 3남매의 아버지가 됐다. 2008년 귀화한 그는 “터키는 나의 모국, 한국은 우리 가족의 조국”이라고 했다. 오시난 회장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월드컵 이후 한국 무역회사를 다니다 2004년 직접 무역회사를 경영한 그는 자동차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비데 등을 터키에 수출해 한국 제품을 알렸다. 역으로 한국에 터키를 소개할 방법을 찾던 그는 이태원에 ‘미스터 케밥’ 음식점을 열었다. 터키·지중해 음식점이 드물었던 당시 미스터 케밥이 내외국인 모두에게 호평받자 자신감을 얻었고, 2011년 케르반 레스토랑 운영을 시작했다. 케르반 레스토랑 그룹은 16개 직영점을 두고 1년에 100만명이 방문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직영점을 4~5곳 줄이고, 눈물을 삼키며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오시난 회장은 한국 외식업자로서의 서러움을 절감하기도 했다. 오시난 회장은 “이태원 전철 승객이 하루 9만여명에서 코로나19 이후 6만명, 이태원 나이트클럽 집단감염 사태 이후 1만명 이하로 줄었다”면서 “2009년 이태원에 식당을 연 뒤 주변 매장이 비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공실률이 55%에 달한다”며 주변 상인들을 걱정했다.이태원의 케르반 본점은 GBA 탄생의 산실이기도 하다. GBA 설립을 한창 준비하던 2019년 오시난 회장은 케르반에서 이색 모임을 꾸렸다. 다양한 국적이 섞인 외국인들의 모임, 한국인과 외국인 사업가들의 만남을 구성했다. 50개국의 전통요리 음식점을 접할 수 있고 다양한 외국인이 모이는 곳인 이태원에서도 터키인은 터키인끼리, 파키스탄인은 파키스탄인끼리만 모이는 게 아쉬워서 마련한 자리였다. 오시난 회장은 “한국에 온 외국인들끼리 국적을 불문하고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양한 국적으로 모임을 구성해 보니 실상은 달랐다”면서 “모임에서 나이지리아인들은 미국인을 처음 만났다고, 미국인은 이탈리아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재미있어 했다”고 전했다. 그런 모임에서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다. 더 확장해서 GBA를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지난해 여름엔 방역물품 수출 중개 때문에 새벽 2~3시 퇴근이 예사였을 정도로 오시난 회장은 GBA에 전력을 쏟고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사업 기회가 자주 열리기에 그가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오시난 회장은 “지난달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일을 열심히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게 즐겁다”며 최근 협의 중인 이라크 대기업과의 사업을 귀띔해 줬다. 이 기업은 각종 한국 제품과 더불어 한국의 기술을 수입하는 데에도 관심이 컸다. 예를 들어 이 기업은 폐자재가 발생하면 태워 버리는 이라크와 다르게 재활용 기술을 발휘해 폐자재를 업스케일링하는 한국 기업에 관심을 보이며, 폐자재를 재활용하면서 이라크의 공해 문제도 해결할 기술을 찾아 달라고 GBA에 문의했다. 과거 한국의 이병철, 정주영 회장이 그랬듯 GBA가 주목한 지역의 국가에서 ‘사업보국’이 활발하게 실행되고 있음을 GBA가 관여하는 사업을 보면 알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 처음 올 때 자신에겐 세 가지뿐이었다고 오시난 회장은 회상했다. 자신의 몸, 25㎏의 옷가방, 그리고 부친이 어렵게 모아 주셨을 200달러의 비상금. 아버지의 돈은 차마 쓸 수가 없어 반년 동안 김밥만 먹고, 방 두 칸에 주방 겸 거실 하나인 집에서 터키 유학생 5명이 식사 당번을 정해 부대끼는 과정을 거쳐 그는 한국에 정착했다. 이제 그의 옆엔 문득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가족과 사업을 함께 일구는 동료들이 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에너지를 확장시킬 플랫폼인 GBA를 키우고 있다. 오시난 회장은 “25년째 한국살이 중 처음 11년이 터키 국적자로 한국을 배워 가는 기간이었다면 2008년 귀화한 뒤 11년 동안은 한국인이 돼 터키를 알리는 시간이었다”면서 “GBA를 설립한 2년 전부터 한국의 세계화, 세계의 한국화를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다”며 웃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오시난 GBA 회장 프로필 -1973년생, 터키 이스탄불 출생 -서울대 산업공학과 97학번 -2002년 월드컵 터키대표팀 통역·연락관 -2004년 터키와의 무역업(IT 차량용품, 전자제품 등) -2008년 귀화, 한국 국적 취득 -2009년 ‘미스터 케밥’… 현재 ‘케르반 그룹’ 대표 -2019년 GBA(Global Business Alliance) 창립 -현 서울시관광협회 이사, 용산구 외국인 서포터스 단장
  • 28~58세 ‘흑자 인생’… 59세부터 다시 적자

    28~58세 ‘흑자 인생’… 59세부터 다시 적자

    우리 국민의 생애주기에서 노동소득이 소비를 넘어서는 ‘흑자 인생’ 나이대는 28~58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전후로는 모두 ‘적자 인생’으로, 특히 16세 때 3215만원이라는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45세 때 최대 흑자 1484만원을 올렸다. ●교육비 많은 16세 3215만원 최대 적자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국민이전계정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생애주기 적자 총량값은 118조 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 국민이전계정이란 연령별 노동소득, 소비, 연금 등 공적이전과 증여 같은 사적이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소비와 노동소득의 차이인 생애주기 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소비 증가폭이 노동소득 증가폭보다 더 커졌다는 의미다. 생애주기를 보면 우리 국민의 인생은 적자로 시작한다. 노동소득이 전혀 없지만 소비는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적자 규모는 점점 커지고, 16세 때 생애주기 최대인 3215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6세 때 노동소득은 0원이지만 공교육에 932만원, 보건의료에 38만원을 소비했다. 사교육과 민간의료 등 민간소비엔 1945만원의 소비가 발생했다. ●45세 1484만원 생애 중 최대 흑자 17세부터 노동소득이 생겨 적자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다 28세에 소득과 노동소득 규모가 역전해 흑자로 전환됐다. 45세에 이르러 흑자 규모는 1484만원으로 생애주기 중 가장 컸다. 이후 흑자 규모는 점차 쪼그라들다 은퇴 연령에 다다른 59세 때 다시 적자 인생으로 바뀌었다. 남은 여생의 적자 규모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커진다. 59세 땐 45만원 적자인 반면 65세 815만원, 75세 땐 1464만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1인당 공공소비는 6~17세에선 교육소비 영향으로, 노년층에선 보건소비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서 “반면 1인당 민간소비는 15~64세의 노동 연령층이 주된 소비 주체”라고 설명했다. 노동 연령층이 쌓아놓은 소득은 유년층과 노년층에 재분배된다. 세금과 연금 등 공공이전 흐름을 보면 노동 연령층이 받는 돈보다 내는 돈이 많은 순유출을 기록했고, 유년층과 노년층은 받는 돈이 더 많은 순유입을 기록했다. 2017년 노동 연령층이 낸 세금은 전년보다 11.1% 증가한 125조 2000억원이었다. 이는 유년층에 60조 7000억원, 노년층에 64조 5000억원이 재배분됐다. 상속·증여 등 민간이전도 공공이전과 같은 흐름을 보였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이낙연, 정치인생 건 ‘공천 승부수’… 침묵하는 이재명, 주목받는 김경수

    이낙연, 정치인생 건 ‘공천 승부수’… 침묵하는 이재명, 주목받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이 1일 전 당원 투표를 거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면서 2022년 대선 시계도 한층 빨라지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정당 개혁의 일환으로 정립했던 당헌을 고쳐 보선에 공천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 이낙연 대표의 결정이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민주당 출신 단체장의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서울·부산시장 자리에 후보를 내면 거센 비판이 따를 게 당연했지만, 이 대표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마땅한 후보가 없는 야권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충분히 해 볼 만하고 승리한다면 당내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쥘 수 있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다면 민주당은 물론 이 대표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로서는 40%를 웃돌던 대선 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 떨어진 이후 답답한 횡보가 계속되는 현재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보선 공천권을 확실하게 행사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무의미할 수 있다. 내년 3월 9일까지 대표직을 그만둬야 하는 이 대표는 빠르게 후보를 결정하고 전폭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는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는 보궐선거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지난 7월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며 공천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이 대표와 각을 세웠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작 공천이 결정되자 말을 아끼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달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내 생각은 일관된다”면서도 “당원으로서 투표에 참여하고,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놨다. 공천을 해야 한다는 기류가 대세인 만큼 정치적 실익이 없는 논쟁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한편, 박스권에 갇힌 이낙연·이재명 경쟁은 오는 6일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조작 의혹 관련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본인이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당내에선 친문(친문재인) 적자인 김 지사를 잠재적 주자로 보고 있다. 당내 주류 세력인 친문 지지층은 현재 이 대표를 적극 밀고 있지만, 김 지사가 항소심 무죄 판결을 받는다면 빠르게 김 지사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김 지사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 대표에 대한 지지가 강화되는 한편 이낙연과 이재명 중 본선 경쟁력이 누가 더 강한가를 놓고 당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거세게 일 수 있다. 여기에다 연말 개각으로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치권으로 돌아오면 좀 더 복잡한 대권 경쟁 구도가 펼쳐질 전망이다. 친문 측 관계자는 “이낙연·이재명·정세균·김경수 등이 모두 나왔는데도 정체기가 계속되면 후보 간 합종연횡과 새로운 후보 모색이 시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선입견 없애고 10년의 기다림…인생을 배우다

    선입견 없애고 10년의 기다림…인생을 배우다

    ‘한국 와인은 맛이 없다.’ 소믈리에가 아니더라도, 와인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에서 화이트 와인을 맛보고, 우리도 만들어 보자고 지시하면서 1977년 ‘마주앙’이 탄생했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 와인은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취급됐다. 한정된 수요로 외국에서 원액을 벌크로 수입해 물을 탄 소위 ‘짝퉁’ 제품만 양산하던 한국 와인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기면서 이제 와인 한 잔은 할 수 있는 경제력이 되자 국내 와인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수입한 와인이 대부분이었고 국내 생산 와인은 외면받았다. 하지만 최근 국내 와이너리들이 조금씩 자신들만의 독특한 와인을 만들면서 ‘한국 와인은 맛이 없다’는 말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10년 넘게 과수원과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한국스타일 와인’을 만들어 낸 최봉학(60) 고도리와인 대표로부터 24일 와인 만들기와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한국 와인은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그런가. “우리나라가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에 기후나 토양이 좋은 편은 아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도가 높은 포도가 필요하다. 발효 과정에서 당도가 알코올로 바뀌는데 당도가 낮으면 알코올 도수가 낮고 좋은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당도가 높은 포도는 일조량이 많고 비는 적게 와야 생산이 가능하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와인은 품질이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 레드 와인의 경우 아직 외국 와인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와인의 범위를 넓히면 꼭 맛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와이너리는 레드 와인 외에 디저트용 복숭아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데 품질이 우수하다. 지난해에는 세계 5대 국제와인품평회 중 하나인 독일의 ‘베를린와인트로피’의 하계 품평회에서 ‘청수’ 품종으로 만든 2017년산 화이트 와인이 은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서울에 있는 유명 호텔에서도 한국 와인을 많이 취급한다.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매칭하는 마케팅을 하는 곳도 있다.” -화이트 와인과 디저트 와인에 주력하게 된 이유는 뭔가. “레드 와인을 먼저 시작했는데 팔리지가 않았다. 햇볕을 잔뜩 받고 자란 신대륙이나 유럽 와인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자가 많이 나면서 이대로 와이너리를 접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독일 와인을 알게 됐다.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해 일조량도 비슷하다. 물론 독일도 레드 와인에서 크게 경쟁력은 없는데 ‘아이스바인’(얼어 있는 상태의 포도송이를 수확한 뒤 짜낸 당도 높은 포도즙으로 만든 와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저트 와인이 됐다. 독일이 세계적인 디저트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우리도 화이트 와인 계열 제품에 승부를 건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우리 고유의 식문화인 김치나 된장 등과 어울리는 와인을 고민하면서 나온 것들이 지금의 복숭아 와인과 청수 와인이다.”-판매는 어떤가. 많이 찾는지가 궁금하다. “음, 영업 비밀인데…. 지난해 기준으로 한 해 와인 매출이 2억원이 좀 넘는다. 그중에 레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1 정도로 6000만원 정도고 나머지 1억 4000만원이 디저트 와인에서 나온다. 특히 복숭아 와인은 맛이 달콤하고 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 국내 유명 호텔에서도 많이 팔린다. 특히 청수 와인은 백김치 등 전채요리와 잘 어울린다는 소믈리에의 평가를 받는다.” -원래 농사를 지었나.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오퍼상을 했다. 대만에서 가구를 수입해 파는 것이었는데 수입이 괜찮았다. 당시 아버지께서 경북 영천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셨는데 몸이 불편하셔서 서울과 고향집을 오가며 농사일을 도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귀농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1992년 우리나라와 대만의 국교가 단절돼 오퍼상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과수원을 넘기기도 그렇고 해서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 처음에는 진짜 힘들었다. 사과 과수원이 너무 많이 늘어나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복숭아 밭으로 바꿨는데, 나무가 자라는 동안 돈만 계속 들어가고 과일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만 나와 손해가 컸다. 복숭아 밭으로 바꾼 지 7~8년이 지난 2000년쯤부터 제대로 된 복숭아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한 해 소득이 1억원 정도가 되면서 동네에서 돈을 좀 많이 만지는 농사꾼이 됐다.”-와인을 만들게 된 이유는 뭔가. “복숭아 농사로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생기니까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도 하게 됐다. 과수농사라는 것이 단순히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농민들이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다. 아무리 농사가 잘됐어도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오히려 손해가 난다. 뭔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복숭아잼이나 포도잼 등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2008년에 영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와인 가공 기술을 알려준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 봤다. 가서 배워 보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정부에서 영천시 와인클러스터 사업 대상자를 뽑아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이너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2009년에 와이너리를 만들고 2010년에는 제조 면허증까지 받았다.” -와인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다 말렸다. 한국에서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안 말리는 것이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웃음). 당시 와이너리를 설립하는 데 지원금을 포함해 1억 2500만원이 들었다. 사람들이 돈만 날릴 것이라고 핀잔을 줬다. 또 이제까지 정부에서 하는 농촌사업이 성공한 것이 없었다.”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손해가 과수농사보다 더했다. 레드 와인을 주력으로 만들었는데 안 팔리는 것을 떠나 와인 1t을 식초로 만든 적도 있다. 와인을 처음에 너무 쉽게 본 것이다. 겨우 만들었지만 한국 와인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 그냥 나눠 줘도 안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마시고도 ‘호주산보다 못하네’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2010년부터 몇 년간 계속 적자가 나면서 ‘내가 와인을 왜 했지’ 하는 후회도 있었다. 그러다가 복숭아로 와인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복숭아가 저장을 오래하기 힘들어 시작한 것인데 이게 대박이 났다. 2013년부터 전국에 복숭아 와인이 알려졌고 2018년 광명동굴 와인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복숭아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그리고 인생도 많이 배운 것 같다. 와인의 재료인 포도는 어떤 토양과 기후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완전히 성격이 달라진다. 사람을 키우고 대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또 ‘절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없다’는 것도 배웠다. 사실 평범한 진리지만 깨닫기가 쉽지 않다. 와인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기다림이 있어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와인을 만들면서 기다림에 좀더 익숙해졌는데 이것이 사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최근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선배 귀농인으로서 조언을 하자면. “‘겸손’과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흔히 안 되면 ‘농사나 짓지 뭐’라고 하는데, 농사가 엄청 어렵다. 나도 처음에 내려와서 농사 기술을 배운다고 여러 선배 농부들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일을 배웠다. 대부분 서울에서 귀농하는 사람들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을 약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는 것이 달라서 그렇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는 것이 적은 것은 아니다.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농사라는 것이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자신이 뭘 했다고 자랑하는 자세보다 같이 웃고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고도리와인의 이름은 어디서 왔나. “많은 사람들이 화투를 생각하는데 아니다. 우리 와이너리와 과수원이 있는 곳이 경북 영천 고도리라서 지은 이름이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만석꾼 아들서 기초수급자 됐어도, 춤에 미~쳤어♬ 살맛나서 미~쳤어♬

    만석꾼 아들서 기초수급자 됐어도, 춤에 미~쳤어♬ 살맛나서 미~쳤어♬

    “동네 사람들이 나 지나가면 ‘미쳤어, 어디가?’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와, 할담비다!’ 소리도 질러요. 그럼 그 자리에서 바로 춤을 추죠. 그러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할아버지, 대박!’이래요. 이 나이에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고, 젊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으니, 얼마나 즐겁습니까.”● 유튜브 스타에 전국 행사까지… 자서전도 지난해 3월 24일 방영한 KBS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오른 어르신. 자신을 “종로구 멋쟁이”라고 소개하더니 가수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를 부르며 씰룩씰룩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밀당하듯 엇박으로 노래하면서 요염하고 간드러진 춤사위로 객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방송 후 그는 지병수라는 이름 대신 ‘할아버지 손담비’를 줄인 ‘할담비’라는 애칭을 얻었고,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됐다. 며칠간 포털사이트 실검 1위를 찍고, 당시 방송 클립은 KBS 유튜브 여러 채널에 올라가 50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그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한 각종 TV방송에 출연하고 지역 행사장을 정신없이 누볐다. 롯데홈쇼핑을 비롯해 광고도 여럿 찍었다. 심지어 유명 인사들만 나간다는 야구경기 시구에도 나섰다. 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요새는 좀 뜸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전국 행사장을 다닌다”면서 “아직도 날 찾는 곳이 있어 아주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최근엔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쓴 ‘할담비, 인생 정말 모르는 거야!´(애플북스)까지 냈다. ● 유도·무용전공 꿈 아버지 불호령에 좌절 지씨는 1943년 8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만석꾼이었고, 나는 11남매 가운데 막내였다”고 설명하더니 “이래 봬도 나 금수저야!”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막내만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에 당시 전주 지역 명문이었던 전주북중에 입학했다. 사흘 동안 동네에서 입학 축하 잔치도 이어졌다. 그러나 공부가 딱히 즐겁지 않았다. 대신 몸 쓰는 일이 좋았다. 집이 부유하고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학교를 자꾸 겉돌았다. ‘빤찌(펀치)파’라는 운동 서클에 들어갔다. 이어 진학한 신흥고에서 ‘중앙동파’에 들어가 주먹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중학 동창 중에는 경찰청장까지 지낸 친구도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신흥고 후배다. 공부를 잘했다면 그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았을까. 그는 “이 나이에 그런 생각 하면 뭐하겠느냐?”면서 “다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못하고 방황했던 게 아쉽다”고 회상했다. 유도를 좋아해서 아버지께 ‘유도로 대학 가겠다’ 했더니 “깡패 되려고 하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졌고, 어릴 적 창을 하고 춤을 추시는 어머니를 보고는 무용과에 가고 싶다 했더니 “집안 망신시킬 일 있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찍소리 못하고 한양대 무역학과에 입학했지요. 근데 도통 재미가 없더라고.”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채 20대를 방황하다 형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6년이나 다녔지만, 정을 붙이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옷장사 한 번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서울 명동에 양품점 ‘듀반’을 열었다. 친구가 외국의 명품 옷이며 액세서리며 향수를 싸게 사오면 이문을 붙여 팔았다. 눈썰미가 있어 손님이 제법 들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양품점을 찾아온 이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다. 그는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건물주의 횡포로 양품점을 접고 청담동에서 의상실을 열었지만 까다로운 손님들 탓에 역시 접었다. 옷을 좋아하는 그는 현재 서울 종로구 숭인동 반지하에서 월세를 내고 사는데, 방 3개 가운데 2개를 옷 방으로 쓴다. 양복이 30벌, 셔츠가 50벌, 구두가 100켤레에 이른다.●80㎏ 체구에도 범상찮은 춤사위 뽐내 서른일곱에 서울 신촌에서 술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승무 전수조교이자 살풀이 이수자인 임이조 선생을 만난다. 임 선생은 인간문화재 이매방의 적자로도 알려졌다. 임 선생은 그에게 “형님은 옷장사, 술장사 다 안 맞는다. 사주에 흥이 있으니 춤을 춰야 한다”고 했다. 동생뻘인 임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며 2년 동안 학원에서 숙식하며 전통무용을 배웠다. 하기 싫은 공부 대신 자발적으로 춤을 배우니 더없이 즐거웠다. 그러다 일본 나고야 업소들에 나갈 무용팀에 선발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당시 몸무게가 80㎏나 나가면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무용팀 오디션을 못 볼 뻔했는데, 사정사정했다. 돌아온 평가는 “뚱뚱한데도 춤사위가 남다르다”는, 다행스런 말이었다. “‘병신춤’의 대가인 한국무용가 공옥진 선생처럼 여러 가지 전통춤을 재밌게 넣었거든. 그래서 당당하게 뽑혔지요. 전국노래자랑에서 선보인 손담비의 ‘미쳤어’ 춤도 남들이 보면 막춤일 수 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라고.” 나고야에서 소문이 한 번 나자 일본 다른 업소가 줄줄이 찾아왔다. 한 달에 800달러를 받는 일반 단원과 달리 그는 1400달러를 받았다. 일본 도쿄, 오사카, 고베, 요코하마 등 8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갔다.●평생 독신, 두 양아들 손자 보는 재미 쏠쏠 “마흔 넘어 찾아온 인생의 기회가 찾아온 거예요. 그때 내 인생 전성기였다고나 할까요. 즐겁게 일하니 돈이 넝쿨째 들어왔습니다.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도 사고 그랬죠.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된다’고.” 잘나가던 때를 회상하던 그는 “내가 만석꾼 막내아들이고 사십대에 돈도 많이 벌었지만…”이라며 잠시 말을 흐렸다. 부모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고, 유산은 막내 아들 몫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양품점을 하며, 공연하며 번 돈은 3번의 사기와 잘못된 보증으로 거의 날렸다. “조카 보증 섰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계속 빚을 갚아야 했고,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습니다. 그나마 ‘할담비’ 이후 조금씩 돈을 벌어요. 사람들은 제가 떼돈 버는 줄 아는데, 그런 말 들으면 참 섭섭해. 지난해 4월에야 겨우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날 수 있었고, 지금은 병원비, 용돈 조금 빼고 남는 돈은 거의 기부하고 있어요.” 그는 여태 독신이다. 대신 양아들이 둘 있다. 30년 전 알게 된 김영씨와 20년 전 알게 된 홍민기씨다. 두 양아들의 손주들을 돌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생 살면서 서너 명의 여성과 인연이 있었지만, 결혼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그는 “누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어렵다. 인생이란 저마다 다른 것 아니냐”고 웃었다.지난해 ‘할담비’로 제2의 전성기를 보낸 그는 여전히 건강하게 지방 행사장을 누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알게 된 동대문구의 한 완구점 사장 송동호씨가 자청해서 매니저가 돼 줬고, 지난해 10월에는 송 매니저의 도움으로 ‘일어나세요’라는 신곡도 냈다. 전자음을 가미한 디스코 풍의 신나는 노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따뜻한 봄이 오면 그는 더 활발히 전국을 누빌 예정이다. 손담비의 ‘미쳤어’는 물론 카라의 ‘미스터’, 티아라의 ‘러비더비’, 박진영의 ‘허니’와 자신의 신곡을 신나게 부를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올해 일흔일곱, 그에게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 모르는 거야… 하고 싶은 일 해야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결혼도 못하고 사기당하고 보증 잘못 서서 아주 어렵게 살았어요. 그래도 지난해부터 할담비로 빵 터져서 재밌게 살잖아.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인생이란 정말 모르는 거라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잘 찾아 신나게 해보라고. 날 봐요. 이 나이에도 이렇게 재밌게 잘 살잖아. 하하하!”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41세 흑자 정점 찍고 59세부터 적자 인생

    41세 흑자 정점 찍고 59세부터 적자 인생

    16세 사교육 많아 적자 2867만원 최대27세 소비보다 소득 큰 흑자인생 진입환갑 前 적자 전환… 노년 감당 버거워정부 노령층 보건의료비 25조… 13%↑한국인은 27세에 노동소득이 소비보다 많아지는 ‘흑자 인생’에 진입해 41세에 정점을 찍고 환갑을 눈앞에 둔 59세에 다시 ‘적자’로 전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시기가 늦춰지면서 적자 전환 시기도 전년보다 1년 정도 늦춰졌지만 젊었을 때 번 노동소득만으로 노년을 감당하기는 부족하다. 정부가 노령층에 제공하는 보건의료 비용도 연간 13% 가까이 늘어 25조원을 돌파했다. 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국민이전계정’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0~26세는 소비가 노동소득보다 많아 적자가 발생한다. 쓰는 것보다 버는 게 더 많은 27~58세에는 흑자로, 다시 59세 이후 적자의 삶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생에서 32년 동안 흑자로 살고 나머지 기간에는 적자 인생을 산다는 뜻이다. 국민이전계정은 올해 1월 처음 발표한 국가 통계다. 소득과 소비는 어떤 연령에서 얼마나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재분배 지표로, 노동소득 외에 자본소득, 이전소득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통계청은 2016년 기준 통계를 늦게 공표한 이유에 대해 노동패널조사 결과가 늦게 나왔고 가계동향조사 방식의 변화가 생긴 탓이라고 밝혔다. 1인당 적자는 16세에서 2867만원으로 최대였다. 노동소득이 없는 반면 민간이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16세에서 1인당 758만원으로 최대인 탓이다. 생애주기상 노동소득은 41세 때 3209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흑자 폭(1435만원)도 41세에 가장 컸다. 59세에 노동소득은 1776만원으로 줄어드는 반면 소비는 1855만원으로 늘어 79만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주기에서 적자 전환 시기는 2015년 58세에서 2016년 59세로 늦춰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흑자 인생으로 진입한 연령은 2015년과 2016년이 27세로 같은데 은퇴 시기가 늦춰져 적자 전환 시기도 더불어 늦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65세에는 노동소득이 844만원으로 줄어드는 반면 소비는 1753만원에 달해 적자가 909만원으로 늘어났다. 70세에는 적자 규모가 1246만원, 75세에는 1481만원으로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년층은 기초연금이나 자식들의 부양 등을 통해 적자를 메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공공보건소비는 총 63조 8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5조 2940억원(39.6%)이 65세 이상 노년층 공공보건소비 총액으로 전년 대비 12.6% 늘었다. 65세의 경우 1인당 공공보건소비액은 245만 4000원이었고 85세 이상은 567만 1000원이었다. 고령화 현상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맞물리면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흑자 인생’은 41세에 정점…59세부터는 ‘적자 인생’

    ‘흑자 인생’은 41세에 정점…59세부터는 ‘적자 인생’

    우리나라 국민은 27세부터 노동소득이 소비보다 많아지는 흑자를 처음 경험하고 41세에 정점을 찍은 다음 59세에 ‘적자 인생’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국민이전계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생애주기를 보면 26세까지는 소비가 노동소득보다 많아 적자가 유지된다. 적자는 16세에서 2867만원으로 최대가 된다. 노동소득은 없지만 소비가 2867만원으로 최대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노동소득은 임금 근로자의 임금소득, 자영자와 무급 가족 종사자의 노동 가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소비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재화, 서비스 등 공공서비스와 민간서비스를 포함한다. 27세부터 58세까지는 노동소득이 소비보다 많아져 흑자 인생이 된다. 흑자 규모는 41세에 1435만원으로 최대치로 높아진다. 이 시기 1인당 노동소득이 3209만원으로 정점을 찍는 반면 소비는 1774만원에 그친다. 59세부터는 다시 적자로 돌아서 이후 계속 ‘적자 인생’이 이어진다. 59세에 노동소득은 1776만원으로 줄어들지만 소비는 1855만원으로 늘어나 적자는 79만원이다. 적자 전환 시기는 2015년 58세였지만 2016년부터는 59세로 늦춰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의 영향으로 노동 은퇴 시기가 늦춰지면서 적자 전환 시기도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65세는 노동소득이 844만원, 소비는 1735만원으로 적자가 891만원에 이른다. 첫 적자를 경험하는 59세와 비교하면 10배가 넘은 규모다. 70세에는 적자 규모가 1186만원, 75세는 1481만원, 85세 이상에서는 1742만원으로 늘어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출산율 0.98명… 일·가정부터 육아친화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출산율 0.98명… 일·가정부터 육아친화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0.98명.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가임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이하) 사회가 지속되더니 급기야 부부가 평생 아기를 한 명도 채 낳지 않는 사회가 됐다. 저출산 문제는 육아, 취업, 주거, 교육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쉽지 않다. 출산율 저하는 경제성장률·생산성 저하, 국가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영유아 보육·교육정책을 연구하는 육아정책연구소의 백선희 소장은 “기존 영유아 보육·교육정책으로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육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우리 사회의 각종 정책과 인프라를 아동·육아친화적 관점에서 수립하고, 모든 사회 주체가 힘을 모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일문일답.-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로 국가 활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94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아동수당 확대 등으로 12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출생아가 줄면 앞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젊은층의 노인 부양 부담이 늘어 국민연금 등 노후 안전망도 위협을 받게 된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낮은 출산율도 문제이지만 저출산화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더 큰 문제다.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 사회보장, 교육, 국방 등 사회 전 분야에서 대응·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저출산 수준과 속도를 국정 운영의 주요 지표로 관리해야 한다.” -기존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저출산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기존 출산 장려 위주 정책에서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여 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다. 정부가 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하지 않기로 한 것은 기존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저출산 원인이 다양하다. 육아의 어려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하지만 ‘2040’ 세대가 고용·주거 불안, 성평등 의식과 현실의 격차, 자아실현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합계출산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합계출산율은 ‘얼마나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초저출산 기준을 넘길 수 있도록 육아친화적 사회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출산과 육아가 더 편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 -왜 보육·육아정책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나.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의 출발점인 영유아에 대한 투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중 영유아기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유아기에 1달러를 투자하면 이후 7달러를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각한 인구 위기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인적자본, 특히 영유아기 아동에 대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빈곤가정 아동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기회의 사다리’를 가질 수 있도록 각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육아정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기존 성인 중심에서 가족을 고려한 아동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아이도 행복하고 육아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목표다. 육아의 주체를 부모뿐 아니라 가족, 정부, 공공·민간 조직과 시민으로 확대해야 한다. ” -새로운 육아정책의 핵심 과제는. “영유아 보육·교육정책에 많은 재정이 투입됐지만 육아는 여전히 힘들고 일·가정 양립은 잘 안 되며 기대하는 만큼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온 마을’은 ‘전체 사회’를 의미한다. 육아정책의 기획부터 평가까지 전 과정에서 아동 권리에 기반한 육아친화적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최근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대한 수요가 넘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보육·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하면서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실제 서비스 전달체계는 민간 부문에 의존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믿고 맡길 어린이집이 없다고 한탄하는 이유다. 국민에게 육아정책의 우선순위를 물어보면 예전에는 비용 지원을 요구했지만 요즘은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 2017년 말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의 7.8%, 이용 아동은 12.9%에 그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국공립 유치원 이용 비율이 적어도 40%가 되도록 국공립 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 -최근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돼 직장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육아와 출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육아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사회,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아이를 돌보는 사회다. 최근 주 52시간 도입으로 남성의 가사와 육아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주 52시간제는 양성평등적 육아문화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계층의 노동시간을 15% 줄이면 출산 확률이 1.3% 오르고 남성의 노동시간이 줄어들며 둘째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다.” -육아정책은 전 계층에 똑같이 시행되는 게 좋은가, 아니면 저소득층에 집중돼야 하나. “우리나라 보육정책은 초기에 저소득층 중심의 선별적 정책을 채택했지만 요즘은 모든 소득계층에 동일한 보육료를 지원하는 등 보편적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육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의 경우 저소득층 등 육아 취약 가구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소득층 아이와 다른 아이들 간 발달 및 환경상 격차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청소년기, 성인기에도 더 많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포용적 복지는 급여를 똑같이 주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적 지원으로 빈부 격차를 줄이고 향후 역량 개발 기회를 동등하게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연구소도 빈곤 가정, 장애아동 가정, 다양한 이주 배경 가정의 육아와 아동복지시설 내 육아 등의 연구를 통해 취약 가구를 위한 포용적 육아정책 수립에 노력하고 있다.” -임기 중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일은. “저출산 위기를 맞아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육아정책 개발에 힘을 기울이겠다. 찾아가는 육아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부모들의 목소리를 적극 정책에 반영할 것이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정책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또 4차 산업시대를 맞아 육아친화적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데도 정책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백선희 소장은 1968년 서울 출생으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신학대 교수 출신으로 2017년 말 제5대 육아정책연구소장으로 선임됐다. 사회복지정책, 특히 보육정책 및 저출산 전문가다. 보편적 보육정책의 기반을 만든 영유아보육법 개정(2004년), 정부 육아정책 계획의 기초가 된 ‘제1차 육아지원정책방안(2004)’ 계획 수립 등에 참여했다. 최근 육아정책 패러다임 전환, 육아친화적 사회환경 조성, 4차 산업혁명시대 육아정책 등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 윤석화 “가슴 아프지만 흔적만으로 충분…언젠가 또다른 ‘정미소’ 꿈꾼다”

    윤석화 “가슴 아프지만 흔적만으로 충분…언젠가 또다른 ‘정미소’ 꿈꾼다”

    “언젠가 시골의 진짜 정미소를 ‘정미소’로 만들어 연극을 올리는 꿈을 꿉니다.” 2002년 개관한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가 다음달 11~22일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공연을 마지막으로 폐관한다. 극장을 운영해 온 배우 윤석화(63)는 이날 정미소에서 가진 제작발표회에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제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 작품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미소는 윤석화와 건축가 장윤구가 목욕탕으로 쓰던 건물을 개·보수해 만든 190여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정미소에서 쌀을 찧어내듯 예술을 피워내겠다’는 의미로 극장 이름을 지어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려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폐관을 결정했다. 윤석화는 “이제 건물이 매각돼 다시 (작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어떻게 해도 손익분기점이 맞지 않았다. 제가 공연에 서며 관리는 할 수 있었지만, 늘 적자였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는 정미소의 마지막을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답변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던 윤석화는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젊은 후배를 후원해 주는 ‘정미소 프로젝트’가 있었다”면서 “관객은 많이 없었지만, 진정 연극정신이 살아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젊은 후배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 때 보람이 있었다”고 소회했다. 이어 “이쯤에서 저는 ‘페이드아웃’하는 게 가슴 아프지만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고 덧붙였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국의 극작가 고 아널드 웨스커의 원작으로, 1992년 연극계 대부 임영웅 연출로 소극장 산울림에서 세계 초연한 작품이다. 윤석화는 당시 초연 때 전석 기립박수를 받았던 경험을 연기 인생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을 정도로 애착이 있다. 딸이 어른이 되고 있음을 느끼는 40대 미혼모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초연 때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에는 ‘레드’, ‘빌리 엘리어트’ 등을 연출한 김태훈 연출과 과거 윤석화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음악감독 최재광이 함께한다. 김태훈 연출은 “40대의 한 어머니가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얽혔던 인생의 실타래가 풀리고, 스스로 치유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한편 윤석화는 이번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2020년 하반기쯤 영국에서 공연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조선족, 허드렛일 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우린 최첨단 광학렌즈 생산”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조선족, 허드렛일 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우린 최첨단 광학렌즈 생산”

    中동포 ‘롤모델’ 남기학 회장이 말하는 ‘조선족 경제’“우리 회사가 만든 초정밀 광학 렌즈는 삼성이나 LG, 소니, 화웨이 등에 들어갑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 렌즈에 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공급에 차질이라도 빚을라치면 이런 세계적 대기업들도 공장 가동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우리 광학 렌즈는 TV를 비롯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뿐만 아니라 중국은 물론이고 독일, 일본, 미국 자동차 제조회사에도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우리 기업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를 만나고부터 첨단 기술로 창업을 꿈꾸는 중국 동포 청년들의 ‘롤 모델’이 된다는 이유를 알 듯했다. 중국 첨단산업의 심장부인 광둥(廣東)성 선전시에서 예지아(燁嘉)기술그룹 이끄는 남기학(南基學·58) 회장. 창업 18년째인 그의 회사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눈인 광학 렌즈, 귀이자 입인 음향기기 및 스피커 부문을 선도하고 있다. 그가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개최한 제21차 세계대표자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빼곡한 일정 탓에 서울에서 만나기는 어려워 24일 행사장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조선족 사업가인 그를 인터뷰하면서부터 중국 동포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 것이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창업 18년에 9개 계열사…올매출 8천만 달러4차산업의 ‘눈’ 초정밀 광학렌즈…‘中톱5’ 들어삼성·화웨이 공급…美日·유럽車 제조사도 공급”- 한국말이 사투리도 거의 없이 유창하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헤이룽장(黑龍江)성 지시(鷄西)시 융핑(永平) 조선족 마을에선 한국말로 다 이야기합니다. 물론 학교에선 중국말을 하지만요.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분의 말은 쉽게 알아듣겠는데 옆집 다른 할머니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 할머니가 사투리를 심하게 써서 그랬던 겁니다. 8도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기에 제 말투에는 전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 있을 겁니다.” 그의 말투는 나긋했고, 조심스러웠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았다. 전직이 교수여서인지 말하는 스타일도 설명하듯 했다. 선비형 최고경영자(CEO)로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거리낌 없이 ‘조선족’이라고 칭했다. - 주력 사업은 무엇인가. “말씀드린 대로 최첨단 정밀 광학 렌즈를 생산하는 광학사업부가 가장 큽니다. 최근 5년간 3억 위안(516억원 상당)을 투입해 초정밀 광학 렌즈 가공기계와 전자설비 및 전자동 라인 시스템을 스위스, 독일, 일본에서 도입했습니다. 중국에서 ‘톱5’에 꼽히는 광학 렌즈공장일 겁니다. 음향기기 및 스피커 사업부, 실리콘사업부, 전자사업부, 자동차전자사업부, 헬스케어 사업부 및 플라스틱 공장도 있습니다. 계열 자회사가 9개로, 전체 종업원은 1500명 정도입니다. 공장은 선전, 동관, 절강에 있습니다. 차량에도 들어가는 광학 렌즈는 차량 조명이 LED와 레이저 램프로 바뀌면서 우리 제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지시대학 교수생활 10년…日기업 ‘러브콜’ 받아안정된 교수 그만두고 中남쪽 끝에 내려가 도전가방 하나 딸랑 들고 선전 도착…풍토병에 고생”- 언제, 어떻게 창업했나. “제가 일본 기업에 7년째 다니던 2001년 3월 창업했습니다. 당시 프린터기와 복사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해 전량 일본 회사에 납품했습니다. 초창기엔 일본 회사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저녁 9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휴일도 없이 일했습니다. 처음 7~8달간은 적자에 시달렸습니다만 그 고비를 넘기자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우리 4형제와 친척의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들여서 시작했습니다. 3년 뒤 일본 회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혁신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14년부터 광학 렌즈 사업에 주력했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감하고, 광학 렌즈에 집중투자한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았던 겁니다.” - 2년에 한 개꼴로 회사를 만들었다. 승승장구 비결은. “늘 위기감을 가지고 긴장하면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잘 될 때 다음 사업, 또 그다음을 준비하는 것이죠. 또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육성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재가 있으면 세계 어디든지 찾아가 모셔 옵니다. 현재 일본에서 스카우트한 직원이 회사에 많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조선족과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이 있고, 물론 중국인이 제일 많이 있습니다.” “日기업 다니던 2001년 창업…새벽 두세시까지 일해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혁신사업 절감…광학렌즈 투자” - 매출은 얼마나 되나. “아직은 적습니다. 작년에 6000만달러의 실적을 올렸고, 올해는 8000만달러(930억원 상당)는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봅니다. 내년에는 1억달러 달성과 함께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참, 한국에 공장은 없지만, 회사는 있습니다. 한국은 땅값이나 인건비 등에서 제조업 경쟁력에서 중국에 비교되지 않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거나 세계화에선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한국 브랜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전략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 상장하면 정부의 간섭이 많아지지 않나. “중국에선 기업 상장 자체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현재 중국에 4000만개가 넘는 회사가 있는데, 상장된 회사는 3800여개에 불과합니다. 상장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렵지만, 기술력과 성장잠재력 등을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어떤 면에선 국가가 기업가치를 인정했다는 것이고, 정부가 그만큼 보호도 해줍니다. 그래도 우리만의 기술을 위해 설비투자와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도 늘리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 너무 변해 원형 찾아보기 어려워조선족들, 항일운동 지원한 독립 투사들 후손들中정부, 항일투쟁 무시 못해…韓도 잊지 않았으면”- 거래 업체는 어떤 곳이 있나. “협력사는 일본의 캐논, 소니, 도요타, 파나소닉, 교세라, 닌텐도, 샤프 등 15개사입니다. 한국은 삼성, LG, MOLEX 등이 있고, 미국은 IBM, GM 등 5곳입니다. 중국 내에선 화웨이, 샤오미, 오포, 하이센스 등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현재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와 지역으로 한국, 일본, 대만, 미국, 유럽 순으로 최근에는 중국 내수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루는 제품은 정밀광학렌즈, 인공지능 가전제품,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VR/AR)제품, 프린터, 게임기, 건강관리제품, 생활용품, 음향기기, 자동차전자제품, 자동차부품, 핸드폰과 복사기 부품 등입니다.” - 창업 전에는 무엇을 했나. “1994년 광둥성 선전에 있는 일본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갔습니다. 일본 회사에 취직했을 때 임원들이 더럽고 힘든 일을 앞장서서 하고, 세밀히 체크하면서도 단합심과 러더십을 발휘하는 등의 경영관리를 많이 배웠습니다. 나중에 제가 경영할 때 이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일본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10년간 있었습니다. 그에 앞서 1984년 7월 하얼빈공업대학 동북중형기계학원(현재의 옌산대) 자동제어 학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유학하려고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어도 되고, 중국어도 되는 저를 일본 기업이 영입했던 겁니다. 당시 안정된 교수 직업을 버리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중국 대륙 최남단인 선전까지 내려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사실 고민스러웠습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 “내년 매출 1억달러 돌파…거래소 상장도 동시 추진인공지능 가전제품, AR/VR 제품, 음향기기도 생산” 남 회장은 중국에서 대학입시가 부활한 지 2년 만인 1980년, 지시 지역에서 손가락에 뽑힐 정도의 고득점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지시대학에 배치되면서 컴퓨터, 전력분야 지식도 더 쌓고 석사과정도 마치며 1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일본 기업에 들어가면서 유학의 꿈을 접었다고 했다. - 당시 중국에서 남방붐이 불지 않았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1번지인 선전경제특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외자 기업들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당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지 않고 선전을 비롯한 연해도시의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갔습니다. 이들이 성장해서 지금은 그 회사의 경영인이 되거나 독립해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가방 하나 딸랑 들고 내려갔습니다. 춥고 건조한 북동쪽 끝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무덥고 습한 남쪽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기후 차로 습진 등 피부병에 걸려 온몸에 물집이 생기고 가려워 긁으면 또 터지면서 상처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북방에서 온 사람 누구나 첫 한두 해에는 풍토병을 겪습니다.” 남 회장은 2009년 전 세계 76개국에 147개 지회 7000여명의 최고경영자(CEO) 회원을 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회장 하용화)에 가입해 중국심천지회 1, 2대 회장을 지냈다. 2014년부터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작년 10월에 수석 부회장이 됐다. 중국아시아경제발전협회 해외무역위원회 회장, 중한일기업연의회 부회장, 광둥성조선민족연합회 부회장 등 다양한 직무도 맡으며 민족 사회에 기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민족사회에 좀 더 많이 헌신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졌거나 너무 변해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연변에 가보면 우리 민족의 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조선족 동포 사회에 좀 더 헌신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韓서 조선족, 3D 일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식당서 허드렛일하는 아주머니가 조선족 전부 아냐한국 오면서 문화차이로 적응애로에 거칠어졌을 뿐조선족 경제력 급성장…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공동체”- 중국 동포들, 경제력 얼마나 되나. “동북 3성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혜택을 늦게 보지만 요즘 무섭도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들 역시 경제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조선족 기업들이 다수 있습니다. 2014년 한국의 유명 유아패션용품업체 아가방을 인수했던 신동일 랑시그룹 회장, 북한에 호텔 등을 다수 건축한 길림천우건설그룹의 전규상 회장, 건축·무역·부동산·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자회사를 많이 거느린 요녕신성그룹 표성룡 회장…. 이런 분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에겐 서울의 음식점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보고선 조선족들이 3D 일을 하는 ‘바닥 인생’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소양도 안 갖춰져 있고, 거칠게 사는 조선족도 일부있지만 그들이 우리 중국 동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오면 문화도 생활습성도 일하는 방식도 달라서 조선족들이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거칠어진 사람도 있겠지만 …. 조선족은 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커다란 경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국과 우리 조선족, 그리고 중국과도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 - 북한 진출 관심은. “북한에 생필품 공급이나 부동산과 광산 개발 등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2500만명이나 살고 있으니깐요. 우리에게 휴대폰 공장 제의가 왔습니다만 IT는 당장 유엔 감시 대상이어서 조심스럽습니다. 북한에 500만명이 휴대폰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엔 눈치를 보는 요즘 중국인들은 정말 많이 북한에 드나들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편이나 단둥에서 넘어가는 기차편은 항상 거의 매진이라 들었습니다. 북한과의 물밑 움직임이랄까 접촉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죠. 대북 제재 해제와 동시에 북한에 진출하면 늦다는 것을 우리 같은 사업가들은 직감적으로 압니다.” “北진출?…베이징~평양행 항공티켓 매진이라 들어물밑 접촉이 많다는 방증…재제 해제후 진출은 늦어우리에겐 휴대폰 공장 제의도…UN 제재 탓에 조심”- 어떻게 해서 중국에 살게 됐나.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11살 때인 1927년, 경기도 이천시 율면 월포리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만주로 건너왔습니다. 3대 독자였던 할아버지가 당시 일제로부터 엄청난 유뮤형의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왔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생계 때문에 항일운동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셨지만 독립지사들을 물심으로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 고향은 강원도 철원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촌장(지부 당대표)를 지내면서도 밤에는 이불 속에서 KBS 라디오를 몰래 듣곤 하셨습니다. 흘러간 옛노래라도 나오면 눈물을 훔치며 따라 부르거나 가사를 적어 외우시곤 하였습니다. 수교되기 이전의 일입니다만 아버지가 고향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천에 가봤지만, 할아버지가 3대 독자여서 친척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천에 가면 가슴이 뭉클한 묘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게 피붙이인가요.” “3대 독자 할아버지, 1927년 일제 압박 피해 만주行선친, 이불 속에서 KBS라디오 몰래 들으며 눈물 훔쳐이천 갔지만 친척 못찾아… 뭉클한 ‘피붙이’ 감정 느껴” 남 회장은 조선족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는 이유와 관련해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간 선조의 항일운동에서 찾고 있다. “중국의 항일운동에 우리 조선족 선조가 많이 참여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를 결코 무시하지 못하죠. 그래서 조선족 학교에 대해 중국 당국이 어려워도 지원을 끊지 않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올해가 항일운동 100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들도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사진 정선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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