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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 오픈 첫날부터 주말까지 1만2천여명 몰려 문전성시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 오픈 첫날부터 주말까지 1만2천여명 몰려 문전성시

    대한토지신탁(주)가 영주시 가흥동에 공급하는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의 견본주택이 지난 18일 오픈했다. 오랜만의 분양에 관심이 쏠려 연일 이어진 한파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부터 많은 영주시민이 견본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장 전부터 대기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이어졌으며 오픈 3일 약1만2천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방문객들의 대부분은 견본주택에 마련된 유니트를 둘러본 후, 상담석에서 분양가를 비롯해 분양조건에 대해 자세한 상담까지 받았다.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 관계자는 “영주에서 6년 만에 선보이는 새 아파트인데다 교통, 교육, 생활, 비전 등 완벽한 인프라를 갖춘 영주 주거 1순위 가흥동 입지에 합리적인 분양가, 중도금 무이자, 발코니확장 무상 등의 혜택, 영주에서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공간설계로 영주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전했다. 영주가흥동 일대는 6년 동안 신규공급이 없어 새 아파트에 대한 갈증이 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가흥동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2013년 이후 현재까지 신규 입주 물량이 없어 신규 공급 희소가치가 높으며 이에 따라 신규 아파트의 매매가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본 아파트가 오픈했다는 소식으로 실수요자들의 많은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영주의 핵심 인프라가 집중된 가흥동이라는 입지적 장점이 실수요자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있다”며 “가흥택지지구 내 인프라가 형성되면서 기존 아파트가 분양가 대비 약 1억원의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있어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들도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전용 84㎡ 기준 약 2억7천3백만원 분양가로 선보인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은 현재 가흥동 일대 전용 84㎡ 평균 매매가인 2억 8천만원과 비교해 매우 합리적으로 선보여 그 이상의 프리미엄도 기대해볼만하다”고 전했다.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은 완벽한 인프라가 집중된 가흥동 중심에 영주종합터미널, 영주적십자병원 등이 바로 인접해 있으며 서부초, 영주여중, 영주제일고, 선비도서관, 시립도서관 등 탁월한 교육환경을 자랑한다. 서천과 서천생활체육공원이 도보권 내에 있어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홈플러스 롯데시네마, 영주시청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가까이서 누린다. SK머티리얼즈, 영주가흥일반산업단지가 인접해 있어 출퇴근 역시 편리하다. 영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평면, 커뮤니티, 앞선 시스템 등도 적용했다. 고품격 주상복합 아파트로 주거와 상업, 커뮤니티 시설을 원스톱으로 누릴 수 있으며 단지 출입구 및 지하주차장에 200만 화소 CCTV를 설치해 단지 내 보안과 방범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또한 지상에 차를 없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원아파트로 설계했다. 통풍과 채광이 우수한 전세대 남향위주 배치와 4Bay 평면(일부 적용), 팬트리, 드레스룸 등 실용적인 혁신설계, 기계환기/보안시스템, 무인택배시스템 등 앞선 생활을 위한 스마트 시스템도 누릴 수 있다. 편리한 주차를 위한 광폭 주차라인(일부), 타 아파트 대비 넉넉한 주차공간도 자랑거리다. 단지 내 피트니스클럽, 골프클럽, 작은도서관, 어린이집, 경로당 등 활기찬 생활과 따뜻한 소통이 함께하는 원스톱 커뮤니티 시설도 누릴 수 있다.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 아파트 공급일정은 1월 23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1순위 24일, 2순위 25일 청약접수를 진행한다. 당첨자는 1월 31일 발표하며 정당계약은 2월 11일~13일이다. 계약금 10%, 발코니 확장 무상, 중도금 전액 무이자 등 다양한 분양혜택은 물론 분양권 전매 또한 무제한이다. 지하 3층~ 지상 22층 총 8개동 아파트 831세대, 오피스텔 116실 총 947세대 규모(전용 71㎡ 주거용 오피스텔/전용 84㎡·97㎡ 아파트)로 지어지며 견본주택 위치는 영주시 가흥동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포구보건소 견학한 美 간호대학원생들, “어메이징!”

    마포구보건소 견학한 美 간호대학원생들, “어메이징!”

    서울 마포구는 미국 샌디에이고 간호대학원과 샌프란시스코 간호대학원의 학생 및 관계자들이 구의 건강증진사업 및 보건의료시스템을 견학하기 위해 지난 14일 마포구보건소를 방문했다고 18일 밝혔다.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관계자들과 함께 마포를 찾은 방문단은 구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 의료시스템에 관한 소개를 받고 관련 시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구는 만성질환 예방 관리 등 서울시와 자치구간 공동협력사업 추진 우수구로 인정받으며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문단으로 참여한 한 외국인 교수는 “마포건강관리센터와 모자보건센터의 원스톱 프로세스를 통해 한국 일차보건의료기관의 위상을 볼 수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대구보건대총장, 한적 중앙위원에 선임

    대구보건대총장, 한적 중앙위원에 선임

    남성희(64) 대구보건대 총장이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으로 선임됐다고 16일 대구보건대가 밝혔다. 남 총장은 2004년 대구적십자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으로 본격 적십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자문위원 임기 만료 직후인 2010년 6월부터 6년간 대구적십자 회장을 두 번 역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인도주의 사업을 펼치기 위해 안정적 재원을 확보함으로써 대구적십자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문장길 서울시의원, 사할린 영구귀국동포들과 간담회 개최

    서울시에 거주하는 영구귀국동포들은 모두 50명이며 모두 강서구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노령이어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여 국가지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할린에 거주하는 자손을 만나려 해도 항공교통비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방문에 애로점이 있었다. 2000년경 대한적십자사의 사할린동포 영구귀국사업을 추진할 당시 2년에 한번 고향방문 여비를 지원하도록 계획되었으나 이후 영구귀국자가 급증하면서 현재는 4~5년에 한번 고향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장길 의원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사할린영구귀국동포 지원에 관한 조례는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가 사할린 방문 시 교통비 80만원 지급과 사후 장제비 2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문 의원은 나라가 곤궁할 당시, 국가존재의 기본 임무인 동포들에 대한 보호와 귀국을 지원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대단히 잘못된 행위라 언급하며 이제라도 어르신들이 편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포들은 대한민국에서 편하게 살 수 있게 배려해 준 점에 대하여 감사하다고 발언하고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이 모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에 대하여서도 고민해달라고 하였다. 또한 사할린에 있는 자제들이 부모가 계시는 한국을 방문할 시 방문기간을 일주일 주는데 시간이 짧다며 방문시간의 연장도 부탁하였다. 4단지 귀국동포 대표는 영구 귀국 후 18년 동안 시의원등 고위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방문하여 간담회를 가져본 기억이 없다며 문장길 시의원의 이번 간담회와 조례 성안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등촌9종합사회복지관 김기철 관장과 김지식 복지사는 사할린영구귀국동포 지원조례를 성안하여 고향방문기회를 확대시켜준 문장길 시의원의 노력에 감사하며 귀국동포들이 편안하게 고국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하고 문장길 시의원에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곤궁하고 궁핍한, 소외되고 하소연 할 데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보살피는 의정활동을 해주십사 당부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971년 8월 그날 생존권 외친 죄…반백년을 폭도로 낙인찍혔다

    1971년 8월 그날 생존권 외친 죄…반백년을 폭도로 낙인찍혔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가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하며 ‘데모꾼’으로 몰렸습니다. 성남시에서 관심을 갖고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971년 8월 10일 경기 광주대단지(현재 성남시 중원·수정구) 주민 5만여명이 정부의 불도저식 도시정책에 반발해 생존권을 걸고 일으킨 최초의 도시 빈민투쟁으로 불리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광주대단지 사건은 전매 입주자들의 재산권 투쟁이기도 했다. ‘관선’ 서울시는 ‘선 입주 후 개발’ 정책으로 도시 기반시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광주대단지에 서울 도심의 철거민들을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덩달아 이주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와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서울시가 토지 분양대금 확보를 위한 분양지 전매 금지조치를 내리는 한편 경기도가 과도한 취득세를 부과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시위는 6시간이나 이어졌다. 마침내 서울시가 주민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광주대단지 주민 전체가 난동과 폭동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사회적 차별이 심했고, 18~20세 꽃다운 청소년들의 아픔은 4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이 고향인 송상복(66)씨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마장동 뚝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새벽에 일어난 화재로 무허가 주택 200여채가 잿더미로 바뀌었다. 끝내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한 채 그날 대한통운 화물차 1대에 3~4가구씩 타고 맨몸으로 대한적십자사에서 주는 생활용품만 가지고 광주대단지로 이사를 떠났다. 당시 열여덟 소년이었던 송씨는 “사건 당일 집회 장소에 모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나갔다. 친구들하고 놀다가 시위대가 서울로 가자고 시영버스를 타고 내려오기에 같이 합류해 현재 수정구 관할인 수진리 고개까지 올라가 전투경찰들과 마주쳐 돌팔매질 몇 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낮에 집앞에서 친구들이랑 만화책을 보다가 형사 두 명한테 체포돼 신흥동 성남파출소로 가서 엄청 얻어맞고 온갖 고문을 다 당했다”고 회고했다. 다음날 광주경찰서로 옮겨 가서도 고문을 많이 당하고 10여일 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송치됐다. 그 당시 고문으로 걸음을 제대로 못 걸었다. 10여차례 국선변호인의 도움으로 재판을 받고 다음해 1월 말쯤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송씨는 또 “전과자 낙인이 찍혀 취직도 못하게 돼 막노동으로 연명하면서 어렵게 살았다”고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금세 눈물도 내비쳤다. 송씨는 “지금 5명의 동지하고만 연락이 된다. 죽은 사람도 서너 명 있다. 지난해 11월 은수미 성남시장과 면담도 했다. 앞으로 명예회복을 위해 신경을 써 주신다니 고맙다. 48년이나 지났고 잊혀졌지만, 이제라도 하루빨리 명예회복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2세 청년이었던 박기연(70)씨는 부모님이 서울시에서 일자리를 주고 20평 주택 분양권을 준다고 하기에 억지로 이주를 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땐 허허벌판이었다. 덜렁 언덕배기만 보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24인용 군용 텐트를 반으로 잘라서 잠자리를 깔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씨는 “사건 당일 아무것도 모른 채 집회 장소에 모이라고 해서 동료들과 갔다 왔다. 아침에 잠을 자고 있는데 광주경찰서 형사들이 들이닥쳐 다짜고짜 끌고가 고문을 해댔다. 우리가 하지도 않았는데 증인이 있다면서 죄를 덮어씌웠다. 영문도 모르고 두들겨 맞고 데모 주동자로 변질됐다”면서 “구속 6개월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직장을 잡으려 해도 데모꾼 낙인 탓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시에서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 준다니 매우 감사하다”며 살짝 웃었다. 인천에 살다가 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광주대단지로 둥지를 옮긴 김기철(68)씨는 당시 20세였다. 사건 당일 친구들과 시위에 참가했다가 다음날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김씨는 “집행유예로 6개월 만에 풀려난 후에도 정보과 형사들에게 쫓겨다니며 감시를 받아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직장 문턱도 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고생한 것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성남시의 관심과 명예회복 노력에 감사하다. 먹고살 수 있도록 일이나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20세였던 이세묵(68)씨는 충남 공주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형들과 광주 송평동 판잣집으로 옮겨 왔다. 그는 “현재 중원구에 속한 모란동에서 형이 다과점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집회를 한다고 해서 수진리 고개로 올라가 보니 전경과 시위대가 새카맣게 모여 대치를 하고 있었다. 시위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경찰들이 몰려들어 모란파출소로 붙잡혀 갔다”며 “누군가 시위대에 끼어들어 빨간 인주를 몸에 묻혔는데 옷에 인주가 묻은 사람들을 무조건 체포했다”고 증언했다. 광주경찰서로 2~3명이 함께 끌려가 엄청 얻어맞고 실토하라고 고문을 당했다. 그는 또 “뒤늦게라도 진상이 밝혀지고 억울한 한이 풀렸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성남문화원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인 윤종준 박사는 “반세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2년 뒤면 50주년이다. 사건 당사자들이 70대 노인이 됐다. 일부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생존해 있을 때 진상규명과 권리회복, 명예회복이란 숙원을 이뤄 사건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있었다. 성남문화원에서도 2003년 학술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도시 등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힘들었다. 윤 소장은 “사건을 촉발한 원인을 규명하는 게 사건의 성격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단초일 것이다. 국가의 주먹구구식 ‘선 입주 후 개발’ 신도시정책 탓에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활동 공간조차 전무했다. 집도 없는 곳에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극한 상황을 만들었다”면서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는 보고서나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진상규명·명예회복위원회를 꾸리고, 사건 현장에 기념비라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개들도 헌혈이 필요해요!”…공혈견 도울 수 있는 헌혈견

    “개들도 헌혈이 필요해요!”…공혈견 도울 수 있는 헌혈견

    “공혈견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헌혈견뿐입니다” 다치거나 병든 개들에게 혈액을 공급하는 공혈견 이야기는 이제 많이 알려졌다. 공혈견이 피를 주지 않으면 많은 개들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2015년 열악한 환경에서 피가 뽑히는 공혈견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학대 논란이 불거졌고, 평생 피만 뽑히는 공혈견의 삶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피만 뽑히다 죽어가는 불쌍한 공혈견이 있다’는 정도에서 관심이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공혈견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적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한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한 곳이 있다. 아픈 개에게 건강한 혈액을 기부함으로써 공혈견을 줄여나가고 장기적으로는 공혈견을 없애자는 자발적인 헌혈견 모임 ‘한국헌혈견협회’다. 9일 경기 포천시의 한 애견 펜션에서 만난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와 헌혈견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봤다.-헌혈견 캠페인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대형견이 헌혈을 해주는 것이 공혈견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서 헌혈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그쪽에 연락을 하고 한 마리 한 마리 헌혈을 하러 가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현재 헌혈견이 몇 마리인가요?헌혈을 할 때마다 1호, 2호, 3호 이런 식으로 정해주는데, 작년까지 38호가 나온 상태다. 그중에서 헌혈을 2번씩 한 아이들은 4마리다. -헌혈견 조건은?병원에서 말하는 헌혈견의 조건은 25kg 이상이지만, 협회에서는 안전하게 30kg 이상이라고 말씀을 드린다. 실제로는 26~27kg 반려견들도 헌혈을 많이 했다. 또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받고 심장사상충이나 내·외부 구충을 잘한 강아지들이면 헌혈을 다 할 수 있다. -헌혈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해달라헌혈은 크게 정기헌혈이 있고 긴급헌혈이 있다. 정기헌혈로 정해진 강아지들 같은 경우에 5~6시간 금식을 한 후 헌혈을 한다. 헌혈 전 전체적인 건강검진을 한 후 소량의 채혈로 혈액형과 질병 여부를 간단하게 체크한다. 검사를 통과한 강아지는 바로 헌혈을 시작하는데 몸무게의 1% 정도의 피를 뽑는다. 보통 300cc 전후로 피를 뽑는데 소형견 3~4마리를 살릴 수 있는 양이다. 헌혈을 마치면 약간의 안정을 취한 후 귀가한다.-헌혈 주기는 어떻게 되나요?처음 헌혈견 캠페인에 들어오시는 분들께는 1년에 한 번씩만 헌혈을 하자고 말씀을 드린다. 이후 보호자들이 6개월에 한 번씩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시면 1년에 2번까지 권장한다. -헌혈견이 되면 어떤 혜택이 있을까요?대형견의 건강검진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혜택이다. 협회에서 연계병원을 만들면서 헌혈견의 건강검진을 협약조건으로 냈다. 대형견의 경우 건강검진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편인데, 전체적인 혈액검사, 심장사상충검사, 문진 등을 일 년에 1~2번 주기적으로 받으면서 큰 질병을 막을 수가 있다. 이외에도 헌혈견 캠페인을 후원해주는 곳에서 각종 선물을 받아갈 수 있다. 단 모든 혜택은 헌혈견에게 돌아가며, 자발적인 헌혈견 모임이기 때문에 보호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개 스스로 선택한 헌혈이 아니기 때문에 학대라는 시선도 있는데헌혈견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실제로 보호자들 중에서도 반려견에게 바늘을 꽂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공혈견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헌혈밖에는 없다. 아파서 쓰러져가는 반려견을 누가 도울 것인지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헌혈을 하지 않는다면 공혈견이 이 짐을 지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너무 이기적인 발상이다. 1년에 딱 한번 헌혈을 하기 위해서 1시간 남짓한 시간을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는 것은 절대 동물학대가 아니다. 그 정도의 작은 희생도 없다면 공혈견은 결국 남의 나라 얘기가 되는 것이다. -헌혈견이 많아지기 위해서 제도적·법적으로 뒷받침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전국적으로 헌혈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가 않다. 협회랑 연계한 병원은 2곳으로 모두 수도권에 몰려있다. 많은 병원을 바라는 게 아니라 각 권역별로 하나씩만 헌혈이 가능한 병원이 생기길 바란다. 헌혈을 하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오기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거점 병원이 하나씩만 지정된다면 대형견 보호자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종 목표는?강아지들의 적십자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은 병원을 하나 짓는 것이 목표다. 대형견 보호자들은 헌혈을 하고, 헌혈견은 건강적인 혜택을 지원받을 수 있는 병원. 지금은 헌혈 가능한 병원을 찾고 협회와 연계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자발적인 헌혈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병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헌혈이 가능한 대형견 보호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우리 반려견들도 언젠간 나이가 들고 아프게 된다. 아팠을 때 헌혈을 받아야 하는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그때는 다른 강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미리 보험을 든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다. 반려견들 건강하고 힘 좋을 때 헌혈 좀 해주시고, 나중에 반려견이 아프거나 약해졌을 때 헌혈을 받는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글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gophk@seoul.co.kr
  • 이노비즈협회 사랑의 빵나눔 행사

    이노비즈협회 사랑의 빵나눔 행사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는 9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와 ‘2019 이노비즈 희망나눔 프로젝트’ 활동으로 저소득 취약계층에 사랑의 빵나눔 행사를 했다. 이날 행사는 이노비즈협회가 운영중인 이노비즈 CSR지원센터의 ‘이노비즈 희망나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노비즈협회 성명기 회장와 장현봉 기업나눔위원장, 이천석 충북지회장, 협회 임직원, 봉사자 등 20여명이 함께했다. 이날 만들어진 빵 300여개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직지드림플러스에 전달했다. 성명기 회장은 “우리 주변에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시되는 요즘, 지역사회와 함께 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장현봉 기업나눔위원장은 “이노비즈협회의 꾸준한 나눔활동은 타단체의 모범이 되고 있다”며 “1만 8000여개 이노비즈기업과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소통으로 소외된 이웃을 위한 지속적인 기업나눔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고 임세원 교수 발인…마지막 길 가족·동료 눈물

    고 임세원 교수 발인…마지막 길 가족·동료 눈물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참변을 당한 서울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의 발인이 4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가족들은 이날 오전 7시 빈소를 정리하고 발인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강북삼성병원 신관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유족은 임 교수가 평생 환자를 돌봐온 진료실과 연구에 몰두했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영정사진을 들고 병원을 한 바퀴 돌았다.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을 비롯해 병원 동료 4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장례절차를 마친 임 교수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영구차는 유족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식장을 떠났다. 임 교수의 관이 검은 영구차에 실리자 임 교수의 아내는 관을 붙잡고 오열했고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장례식장 직원의 몸에 지탱해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부고]

    ●이종원(서울신문 사진부 선임기자) 장모상 3일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010-2321-6135 ●김환종(전 우영산업 회장)씨 별세 강성자씨 남편상 김유니스(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학균(재미 의사)·희균(재미 의사)씨 부친상 이광주(전 한국은행)씨 장인상 김미설(재미 변호사)·서윤자(재미 치과의사)씨 시부상 3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8시 (02)3010-2291 ●원창묵(원주시장)씨 부친상 3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8시 010-2101-1175 ●강원호(전 한국유기농협회장)씨 별세, 석준·선희·석창(JIBS 사업국장)씨 부친상 2일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충혼묘지 010-3418-7664 ●박영호(현대모비스 수석)·박영민(삼성자산운용 법인마케팅본부장)·박인순·박미숙씨 모친상 3일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 발인 5일 (02)2002-8439 ●김양하(전 매일경제TV 국장·뮤직카토 퍼미퍼미 지사장)·철하(전 Genworth코리아 상무)·은경씨 모친상 좌용호(한양대학교 교수)씨 장모상 김정임씨 시모상 2일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5시 (02)2290-9452 ●한기범(인천 삼산경찰서 수사과장)씨 장인상 2일 인천시 계양구 세종병원 장례식장, 발인 4일 오전 7시 (032)240-8444
  •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슬픔 속 발인, ‘임세원 법’ 어떤 내용 담길까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슬픔 속 발인, ‘임세원 법’ 어떤 내용 담길까

    지난달 31일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날 적십자 병원에서 발인식이 열렸습니다. 국회에는 이런 일을 예방하고자 발의된 법안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임세원법’이 어떠한 방향으로 제정 또는 개정될지 살펴보겠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7개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요. ‘반의사불벌죄’ 삭제, 가해자의 처벌 강화, 안전 강화입니다. 하나씩 짚어보면 먼저 반의사불벌죄인데요. 현재 의료법을 보면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 그 외에 의료행위를 하는 분들(치과기공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을 폭행 협박한 경우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됩니다. 뭔 얘기냐. 반의사불벌죄, 피해자의 뜻을 거슬러서 벌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피해자가 처벌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공소, 그러니까 법원에 재판해달라고 요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를 악용한 가해자들이 피해자는 합의할 마음도 없는데, 무조건 합의를 요구하는 거죠. 지방 중소병원은 병원에 대한 평판이 아무래도 중요하니까 경미한 경우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를 처벌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기가 힘든 거죠. ‘내가 참고 끝내자’ 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겁니다. 처벌강화는 ‘징역형’으로만 벌하는 게 요지입니다. 지금은 의료인을 폭행, 협박한 경우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거든요. 최대로 벌할 수 있는 게 이 수준인 거고 현실에서는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보니 가해자들이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에서는 무조건 징역형을 내리게 하고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사망하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음주 상태에서 폭행을 해도 형을 낮추지 못하도록 했고요. 마지막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병원들은 안전 관리하는 사람들을 배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 법안들은 관련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반의사 불벌죄에 대해서 보건복지부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만 있으면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행 유지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안전인력 배치도 “먼저 응급의료기관 부터 진행하고 의료기관 전체로 적용할지 시행하면서 보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의 국회 논의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지금 유족들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권준수 서울대 교수와 통화를 해보니 현재 입장은 이렇습니다. “지금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들은 하루 빨리 통과가 돼야 하고 그것과 별개로 정신과는 특히 위기상황에서 바로 대피할 수 있는 안전문을 만들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지금 긴밀히 이야기 중이다. 이와 함께 정신과 진료를 받는 환자들에 대한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앞으로 국회, 의료계, 정부 등이 제대로 논의를 진행해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의료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팟티 접속하기
  • 훈훈한 시작 ‘떡국 나눔’ 시무식

    훈훈한 시작 ‘떡국 나눔’ 시무식

    대한적십자사 임직원들이 2일 기해년 시무식을 대신해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과 인근 독거노인을 위해 새해 떡국 나눔 행사를 열고 떡국을 제공하고 있다. 이날 적십자사 임직원과 봉사원 등 70여명은 급식차를 이용해 500여명에게 떡국과 방한 귀마개를 전달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유족 “임교수, 한때 우울증… 정신질환자 낙인 없는 치료 원할 것”

    유족 “임교수, 한때 우울증… 정신질환자 낙인 없는 치료 원할 것”

    범인, 미리 흉기 준비… ‘계획범죄’ 무게 법원 “구속 필요성 인정” 영장 발부 “아들 살린 은인에게 날벼락” 조문 행렬 정부·의료계 ‘임세원법’ 제정 추진 나서지난달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교수가 가해자를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간호사들을 먼저 피신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임 교수를 향한 애도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2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박모(30)씨는 사건 당일 오후 5시 44분 신경정신과 상담실에서 임 교수와 진료 상담을 하던 도중 임 교수를 흉기로 찔렀다. 임 교수는 중상을 입은 채 도망치며 간호사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이어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한 뒤 박씨가 쫓아오자 다시 달아났다. 하지만 임 교수는 3층 진료 접수실 근처 복도에서 박씨에게 붙잡혀 다시 흉기에 찔렸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끝내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임 교수가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담겼다”면서 “자신이 흉기에 찔렸는데도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가는 길에 모습을 드러낸 박씨는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박씨는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장애를 앓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박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을 토대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임 교수의 여동생 세희씨는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가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책으로 낸 사실을 거론하며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라면서 “오빠가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받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임 교수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와 가족들은 이날 빈소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0년간 아들의 우울증 치료를 임 교수에게 맡긴 정모(55)씨는 “임 교수는 우울증약을 끊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보였던 아들에게 새 삶을 선물한 은인인데, 이런 날벼락이 어딨느냐”라며 울먹였다. 조문을 마친 동료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너무 갑작스러워 경황이 없다”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임세원법’ 제정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학회 관계자는 “위급상황 시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대피할 수 있는 뒷문을 만드는 등의 안전장치를 두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진료실 내 대피통로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 인력 유지 등 진료 현장의 안전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유족 “임세원 교수도 한때 우울증…고통받는 이들 낙인 없는 치료 원해”

    유족 “임세원 교수도 한때 우울증…고통받는 이들 낙인 없는 치료 원해”

    중상 입고 간호사 대피 노력 CCTV 찍혀 범인, 미리 흉기 준비… ‘계획범죄’ 무게 범행동기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아 정부, 진료환경 안전 개선안 마련키로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법안도 협의지난달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교수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간호사들을 먼저 피신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임 교수를 향한 애도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2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박모(30)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4분 신경정신과 상담실에서 임 교수와 진료 상담을 하던 도중 임 교수를 흉기로 찔렀다. 임 교수는 중상을 입은 채 도망치며 간호사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이어 간호사가 피했는지 확인한 뒤 박씨가 쫓아오자 다시 달아났다. 하지만 임 교수는 3층 진료 접수실 근처 복도에서 박씨에게 붙잡혀 다시 흉기에 찔렸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끝내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임 교수가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담겼다”면서 “자신이 흉기에 찔렸는데도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박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았다. 박씨는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장애를 앓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박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을 토대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임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는 이날 임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가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책으로 낸 사실을 거론하며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오빠가 얼마나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받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빠는 효자였다. 굉장히 바쁜 사람인데도 2주에 한 번씩은 멀리서 부모님과 식사했고,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인은 생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걱정하고 치유 과정을 함께 하면서 평소 환자를 위해 성실히 진료에 임했다”면서 “지난 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회의를 갖고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진료실 내 대피통로(후문) 마련과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인력 유지 등 진료현장 안전실태 조사를 추진한다. 또 비자의 입원 환자에 대해 퇴원 조건으로 1년간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법안도 국회와 적극 협의하기로 했다. 퇴원 정신질환자 정보 연계 관련 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복지부는 다만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고 임세원 교수 유족 “고인도 한때 우울증 환자였다”

    고 임세원 교수 유족 “고인도 한때 우울증 환자였다”

    조울증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서울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유족이 의료진 안전을 보장하고, 정신질환자가 편히 치료받을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 교수 여동생 임세희 씨는 2일 임 교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임씨는 “오빠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분은 진료권 보장을 많이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기를 동시에 원한다”며 “그분들이 현명한 해법을 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임 교수가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책으로 낸 사실을 거론하며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낙인이 없는 의사조차 고통받을 수 있음을 알리면서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빠가 얼마나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받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유족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위협했을 때 오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으면 좋았을 텐데, (오빠는) 두 번이나 멈칫하면서 뒤를 돌아보며 도망쳐 112에 신고했다”며 “영상을 평생 기억할 것 같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앞서 지난해 12월31일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자신에게 진료 상담을 받던 박 모(30)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박씨는 조울증을 앓는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투병중이던 러시아 태권도 대부, 끝내 하늘로

    투병중이던 러시아 태권도 대부, 끝내 하늘로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말기암 진단을 받고 국내에서 투병하다 출국했던 최명철(멘체르 초이·고려인 2세) 러시아태권도협회 고문이 30일 오전 6시 별세했다. 68세.경기도태권도협회 임영선 부회장은 “최 고문이 현지 병원에서 화학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운명했다며 가족이 소식을 알려 왔다”고 밝혔다. 최씨와 함께 러시아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해 온 임 부회장은 “최 고문이 지난주 우리 가족 모두를 러시아로 초청했다가 건강 악화로 취소했는데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눈물을 쏟았다. 가라데 러시아 국가대표 코치 등을 지낸 최 고문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TV 중계를 통해 태권도를 보고 자신의 뿌리인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89년 제자들을 이끌고 방한해 국기원에서 태권도를 배운 후 30년간 태권도 불모지였던 러시아 80여개 주 가운데 절반에 태권도를 보급하며 ‘러시아 태권도계 대부’라는 명성을 얻었다. 특히 세계적인 대회로 자리한 강원 춘천코리아오픈대회엔 2000년 처음부터 해마다 선수 200~300명을 이끌고 단장 자격으로 참가해 왔다. 러시아어로 된 태권도 규칙을 책으로 처음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하순 방한했다가 이상 증세를 느껴 임 부회장 도움으로 경기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정밀조사를 받은 끝에 직장암 말기 확진을 받았다. 이런 사실이 서울신문에 보도된 후 경기도태권도협회 등 각계의 도움으로 응급시술을 받아 위기를 넘겼으나 5000만원이나 되는 수술비를 대지 못해 지난 10일 러시아로 되돌아 갔다. 30년간 양국 사이에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했지만 외국인의 경우 3개월 이상 장기체류를 해야 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발인은 내년 1월 3일이다.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러시아 태권도계 대부’ 최명철씨 결국 하늘로

    ‘러시아 태권도계 대부’ 최명철씨 결국 하늘로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국내에서 투병해오다 지난 10일 출국한 최명철(멘체르 쪼이·68·고려인 2세) 러시아태권도협회 고문이 30일 오전 6시쯤(한국시각) 운명했다. 경기도태권도협회 임영선 부회장은 “최 고문이 러시아 현지 병원에서 화학치료를 받아오던 중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운명했다고 가족이 소식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최씨와 함께 러시아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해온 임 부회장은 “최 고문이 지난 주에 우리 가족 모두를 러시아로 초청했다가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취소했다”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눈물을 쏟았다. 가라데 러시아 국가대표 코치 등을 지낸 최 고문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TV중계를 통해 태권도를 본 뒤, 자신의 뿌리인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89년 제자들을 이끌고 방한 해 국기원에서 태권도를 배운 후 지난 30년 간 태권도 불모지였던 러시아 80여개 주 가운데 절반의 지역에 태권도를 보급하며 ‘러시아 태권도계의 대부’가 됐다. 특히 세계적인 대회로 자리잡은 춘천코리아오픈국제태권도대회에 2000년 제1회 대회 때 부터 매년 200~300명의 선수를 이끌고 러시아 선수단 단장 자격으로 참가해 왔다. 그는 지난 달 하순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이상 증세를 느껴 임 부회장 도움으로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정밀조사를 받은 끝에 직장암 말기 확진을 받았다. 경기도태권도협회 등 각계의 도움으로 응급시술을 받아 급한 위기는 넘겼으나, 5000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지난 10일 러시아로 되돌아 갔다. 그는 고려인 2세이자, 30년 가까이 한국과 러시아간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해왔으나 국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외국인의 경우 3개월 이상 장기체류 해야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의 투병 사실이 서울신문에 보도(3일자 12면) 된 후 각계에서 성금이 답지했으나 수술비에 턱없이 부족했다. 발인은 내년 1월 3일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美, 26일 철도 착공식·유해발굴사업 지지… 남북교류협력 탄력

    美, 26일 철도 착공식·유해발굴사업 지지… 남북교류협력 탄력

    이번 주 개성서 남북 100명씩 참석 착공식 北에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도 지원 800만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논의 계속 비건 “北과 신뢰 쌓을 여러 방안 검토”지난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남북 유해발굴사업, 타미플루 대북 제공 등에 대해 미국이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정부가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달 1차 워킹그룹 회의도 양측은 3개월간 교착 상태였던 남북 철도 공동조사의 제재 면제를 도출해 남북 교류의 출구를 마련했었다. 워킹그룹 회의가 남북 교류를 통해 북·미 비핵화 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통일부 관계자는 23일 “통일부와 국토교통부 소속 공무원 등 선발대 14명이 북한을 다녀왔다”고 밝혔다. 선발대는 이날 북측 관계자와 착공식 참석자 및 세부일정에 대해 실무 협의를 했다. 이들은 착공식이 열리는 오는 26일 전에 재차 방북해 후속 협의를 할 예정이다. 착공식은 양측에서 각각 약 100명이 참석한 채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다. 방북은 2차 워킹그룹에서 한·미가 착공식에 대한 제재 면제에 합의하면서 이뤄졌다. 외교부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 제재 면제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착공식에서 굴착기 등 중장비는 사용하지 않지만 대북 물자 중에 유엔 제재 품목을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외교부는 착공식까지 면제 결정이 이뤄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부도 지난 12일 남북 보건의료 실무회의에서 신종플루의 협력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을 토대로 북한에 치료제인 타미플루와 신속진단키트를 지원할 방침이다. 국제적십자사(IFRC)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올해 초 A형 신종플루(H1N1형)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17만 8000여명이 독감 증세를 보였다. 이외에 미국은 워킹그룹 회의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내년 4월부터 6개월간 진행될 남북 공동 유해발굴사업에 지지를 보냈다. 또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800만 달러(약 90억원)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려는 계획에 대해서도 인도적 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측면을 감안해 계속 논의키로 했다. 워킹그룹의 미국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21일 “한·미 협력뿐 아니라 북한과의 진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양자 및 독자 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북한과 앞서 했던 약속의 맥락에서 우리는 양국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3회 서대문(안산 아랫동네)편이 지난 15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영천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대문역 8번 출구에 집결한 참석자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통술집~석교교회~영천시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어 서대문역사공원에서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해설을 통해 엄혹했던 경성교도소(서대문형무소) 시절 행해졌던 옥살이와 옥바라지의 고통을 되새겼다. 자락길을 따라 봉수대에 올라 안산 아랫동네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을 내려다봤다.서대문(돈의문)은 행정적으로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하는 성 밖 십리지역이다. 그러나 서대문은 행정지리학적으로 사대문 안 새문안과 진배없는 특수지역이기도 했다. 서울~개성~평양~의주를 오가는 조선 제1대로인 의주대로와 영은문·모화관 그리고 경기감영의 존재가 조선 수도 한성부 서대문 도시 공간의 핵심 코드이다. 서대문은 1915년 서대문~청량리 간 전차궤도 부설로 말미암아 강제 철거될 때까지 종각~남대문 간 남북대로와 함께 동대문~서대문 간 동서대로의 종착점이었다. 의주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조선 초(1393년)부터 수원으로 옮겨간 1896년까지 경기감영이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1번 국도는 중국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연행로(燕行路) 혹은 사행로(使行路)라는 별칭이 따랐다. 조선 제일의 무역로이기도 했다.영천시장 앞 석교교회 앞은 말 그대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 6개의 다리 중 북쪽에서 첫 번째 다리가 석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1967년 복개 이전까지 서대문~홍제동~고양~파주~장단~개성~의주를 잇는 의주로를 끼고 무악천이 철철 흘렀다. 다리의 남쪽은 교남동, 북쪽은 교북동이었다. 무악천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욱천(旭川)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붙으면서 본명을 잃었고 지금은 만초천이라고 불린다. 기봉·기산·봉우재·봉화뚝·모악산·무악재 같은 다채로운 이름을 가졌던 무악산 또한 길마재의 한자표기인 안산(鞍山)으로 개명됐다. 무악은 동봉과 서봉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봉우리 사이가 움푹하므로 길마(소에 짐을 실을 때 그 등에 얹는 기구)와 같다 해 길마재라고 불렸다. 안산이란 말의 안장같이 생긴 산이란 뜻이다. 무악(毋岳)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는 풍수지리상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어서 이를 달래려고 ‘어미의 산’이란 뜻에서 모악(母岳)이라고 칭했던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무악이라는 신령스런 지명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고 나라를 잃은 탓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어쨌거나 안산에 오르려면 지하철 무악재역에서 내려야 하는 게 우리의 지명현실이다.무악과 인왕산은 북방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唐)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라면서 외침 때마다 지키지도 못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는 왕조를 비판했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은 오늘의 인천처럼 서울을 드나드는 제일 관문이었다. 반송방은 고려 남경 때부터 소반처럼 생긴 반송(盤松)이 많아서 붙은 지명이다. 서지(西池)라는 학교운동장만 한 큰 연못이 지금의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이를 반송지, 반송정, 천연정이라고도 지칭했다. 정조는 국도팔영(國都八詠), 서거정은 한성십경(漢城十景)에 속하는 명소로 꼽았다. 도성대지도, 경조오부도 등 옛 지도에 나타나는 서대문 밖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1407년 태종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려고 세운 모화관과 영은문이다. 연못 자리에는 개화기 일본 공사관(청수관)과 죽첨공립소학교(동명여중)가 들어섰다. 하필이면 경기감영을 한성부 관할 지역인 반송방에 뒀을까. 경기감영의 설치 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경기도를 다스리는 경기관찰사는 반송방에 본영, 영평(포천)에 신영을 두고 왕래하면서 업무를 봤다. 지금도 수원에 경기도청, 의정부에 경기 제2청(경기북부청)을 따로 두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는 수도방위의 중책을 맡고 있으므로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때문이다. 김종서 장군의 집이 서대문 밖 지금의 농업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행이 일흔 살 노장군의 집에서 철퇴를 휘둘러 즉사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죽지 않았다. 왕에게 반역을 고하려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기감영과 사대문을 장악한 한명회의 수하들이 서대문과 남대문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수양은 다음날 새벽 자객을 보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방원에 의해 척살당한 정도전의 수송동 집이 마구간으로 변한 것처럼 김종서의 서대문 집은 여행객에게 말을 대여해 주는 고마청으로 둔갑했다. 역사의 가설은 성립하지 않지만 김종서의 집이 사대문 안에 있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노릇이다.경기감영 터는 1896년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부대로 사용되다가 1903년 한성부 청사, 죽첨공립소학교 사택, 고양군청을 거쳐 경성적십자병원(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서는 독특한 장소 변화를 겪었다. 또 서부 경찰분서, 경성감옥 분감, 경성측후소(서울기상청) 등도 들어서 이후 변화상을 예감케 한다. 사대주의의 상징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어내는 대신 독립관과 독립문이 세워졌다. 일본의 자본과 부추김에 의해 세워진 독립문과 독립관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현저동이란 말 그대로 고개(峴) 아래(底) 동네를 말한다. 인왕산과 무악산이 이어지는 무악재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1975년 대통령령에 따라 현저동 절반이 종로구로 편입돼 의주로 동쪽 인왕산 자락은 무악동으로 바뀌었다. 의주로를 중심으로 안산 쪽은 서대문구, 인왕산 쪽은 종로구로 각각 나뉜 것이다. 서대문 밖은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공간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다. 점유주체가 바뀌면서 공간의 이력도 덩달아 달라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적산가옥이 많았던 인왕산 아래 대로변 평동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빈민층이 스며들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전차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가지고 수첩을 꺼내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이십여 년을 자랐건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 보았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박경리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영천시장엔 한 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아무리 공화국의 하늘 아래라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먹어야 사는 것 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고파는 일…”이라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열린 영천시장을 그렸다. 현저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현저동 달동네의 각박한 삶이 절절히 펼쳐진다. “여기가 서울이야?” 나의 한 섞인 물음에 엄마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서울의 문밖이란다. 느이 오래비가 이담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우리도 그때 가선 버젓이 문안에 살아 보자꾸나.”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삼청동(삼청공원의 겨울)●일시: 12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집결장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포로의 눈에 비친 전쟁… 평화의 이유 곱씹게 합니다”

    “포로의 눈에 비친 전쟁… 평화의 이유 곱씹게 합니다”

    美·英 등 세계 곳곳서 기록물 발굴 내년 1월 17일까지 100여점 전시 거제시,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전쟁포로 기록을 들여다보면 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해야 하는지 곱씹게 되지요.”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 ‘정전’ 상태가 65년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북한 비핵화 협상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전쟁 상태를 끝내자는 ‘종전’ 선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6·25전쟁 포로 아카이브 자료 공개 전시회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내년 1월 17일까지다.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가 있었던 수용소 유적이 남아 있는 경남 거제시의 의뢰를 받아 최근 3년가량 자료를 발굴해 온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ISPDR) 팀의 공동연구원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12일 “이번 전시회가 마지막 냉전의 땅인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은 1년여 만에 전선이 고착화됐지만 빨리 종결되지 못하고 2년 가까이 더 이어졌습니다. 전쟁포로를 둘러싼 여러 쟁점 때문입니다. 전쟁 후반은 사실상 포로들을 놓고 벌인 전쟁에 다름 아니었죠.”수용소 등에 대한 사진과 영상, 문서 자료 100여점을 전시회 현장과 도록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대부분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이다. 국내 육군기록정보관리단, 국토지리원을 비롯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영국 왕실 전쟁박물관, 네덜란드 국립기록관(NAN),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에서 수집한 6만여쪽에서 추렸다. 정규군 외에 비정규군인 빨치산, 심지어 일부 피난민까지 포로가 됐던 사연, 수용소에서의 삶, 어느 곳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정하기 위한 ‘자발적이지만 강요된’ 포로들의 선택, 최종 선택지에서 발생한 차별 및 억압까지 조망할 수 있다. 포로수용소를 짓기 위해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살던 곳에서 쫓겨나 또 다른 수용소에서 살아야 했던 지역민들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미국은 체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에 인도주의를 내세워 포로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하자는 자원 송환 원칙을 세웠지만 포로 모두에게 폭력적인 결과를 낳았죠. 북한군 포로가 반공포로로 남쪽에 남아도 의심의 눈초리는 지워지지 않았고 북으로 돌아갔어도 경계 대상이 됐습니다. 그것은 남으로 돌아온 국군포로와 미국, 영국, 중국, 대만 등으로 돌아간 그 나라 포로들도 마찬가지였죠. 포로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은 전쟁이 계속된 셈이죠.” 거제시는 이번 자료 발굴을 바탕으로 아카이브 센터를 구축하는 등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또 6·25전쟁 포로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1949년 체결된 전쟁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처음 적용된 게 6·25전쟁이고, 당시 포로수용소는 다국적 공간이었죠. 국내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국제적인 보편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보태며 힘을 모으면 등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깡통 의족’ 시리아 소녀, 걸어서 가족 품으로

    ‘깡통 의족’ 시리아 소녀, 걸어서 가족 품으로

    의족 대신 버려진 깡통을 다리 부위에 끼운 채 힘들게 생활해 온 시리아 난민 소녀가 다섯 달 만에 스스로 걸어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시리아 소녀 마야 메르히(8)가 터키에서 제작한 의족을 착용하고 지난 8일(현지시간)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주 난민 캠프로 돌아갔다고 CNN튀르크 등 터키 언론이 9일 전했다. 하체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 마야는 추가로 다리 절단 수술까지 받아 스스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 소녀다. 성장에 맞춰 제작한 의족이 필요했지만 내전으로 피란민이 된 마야 가족은 의족을 맞출 형편이 되지 않았다. 수술 후 텐트에만 머무르는 딸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피브이시(PVC) 파이프에 빈 참치캔을 이어붙여 의족을 만들어 줬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의족이 아니기에 절단 부위뿐만 아니라 팔과 손 같은 다른 신체에 무리가 가고 통증이 생겼다. 언론을 통해 마야의 모습과 사연이 알려진 뒤 터키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와 이스탄불에 있는 한 의수지(義手肢) 클리닉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6월 말 아버지와 함께 터키로 온 마야는 몸에 맞는 의족을 맞추고 최근까지 적응 치료도 받았다. 터키 적신월사는 새 의족에 분홍색 운동화를 신고 걸어서 시리아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마야 모습을 공개했다. 마야의 아버지 알리 메르히는 의족을 얻은 마야의 기쁨을 전하면서 “우리 가족의 삶이 나아지게 도와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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