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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총리대좌에 “진일보”/「9월4일 회담」 확정 안팎

    ◎대표단 왕래ㆍ통신문제 일단 타결/체류일정 절충 남아 무산 배제못해/소 외상 새달 방북… 회담성사 변수로 남북한 쌍방은 23일 판문점에서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고 북측 대표단의 서울 왕래방법과 통신문제에 합의함으로써 민족대교류와 범민족대회 무산이후 회담 개최여부를 놓고 국내외의 관심을 집중시켜 왔던 남북 고위급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보다 확실해졌다. 이에따라 오는 9월4일 연형묵정무원 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북한측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분단 4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총리가 공식대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적십자회담등 각종 남북대화의 창구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남북간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해소와 다각적인 교류ㆍ협력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최여부를 놓고 더욱 관심이 고조돼 왔던 게 사실이다. 남북 쌍방은 이날 책임연락관 접촉에서 북측 대표단의 항공기 이용및 전화회선 증설문제등을 협의할 예정이었으나 승용차를 이용한 육로로 남북 왕래를 하고 전화회선은 증설치 않기로 합의했다. 전화회선은 남북 적십자회담때 이미 가설돼 있던 23회선을 사용하기로 했다. 북한측은 지난 7월6일 실무접촉에서 항공기 이용 의사를 밝혀온 이후 지난 7월 26일 제8차 예비회담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이날 갑자기 육로이용 의사를 밝혀 한때 고위급회담 연기나 무산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우를 자아내기도 했다. 남북대화 사무국은 이날 접촉이 개최된지 50분만인 하오 3시50분쯤 종료됐으나 1시간20여분 동안 발표를 위한 대책회의를 소집,접촉과정이 순조롭지 못했음을 시사했으며 어떻게든 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대화사무국의 한 당국자는 북한측의 이같은 태도 변화에 대해 『항공기 이용에 따른 북측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북측이 모종의 양해를 구해왔음을 암시했다. 북한측이 그동안 항공기 이용을 주장해온 이유는 평양­개성간의 도로공사를 진행중이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북한측 내부의 또다른 사정으로 육로이용을 주장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측은 지난 7월26일제8차 예비회담이후 고위급회담과 관련해 일련의 심상찮은 조짐을 보여왔던 터라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여부를 놓고 일말의 우려감을 자아내게 했다. 백남준 북측 예비회담 단장은 지난 7월26일 합의문에 서명한후 『범민족대회 무산여부가 고위급회담에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해 범민족대회가 무산될 경우 회담자체를 무산시킬 수도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북한측은 이어 지난 10일 유엔 안보리에 보낸 서한을 통해 『한미 양국이 군사력을 증강해 대화의 한 당사국에 군사도발을 계속하는 것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손상시키는 행위로밖에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같은 군사력증강과 군사행동은 고위급회담에 심각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북한측이 범민족대회 무산과 한 미 군사력협조관계를 명분으로 고위급회담을 무산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정부의 당국자와 남북 관계전문가 사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측이 지난 22일 전통문을 보내와 항공ㆍ통신관계 실무자들을 빼고 책임연란관만 23일 민나자고 제의하자 우리측에서는 북측이 회담을 무산 또는 연기시키려는 신호가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점차 확대돼 왔다. 그러나 통일원의 최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일말의 우려감도 없지 않으나 북측이 남북대화의 압력을 가해오는 소련측에 대화의 성실성을 보여주면서 한소수교의 시기를 늦추어 달라거나 수교의 격을 대표부 정도로 낮추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라도 고위급회담에는 응해올 것』이라며 남북 고위급회담 성사에 자신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북한은 경제원조를 쥐고 있는 소련의 대화압력과 서명까지 마친 합의문을 번복해 회담을 무산시킬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측이 개방과 교류를 아무리 꺼린다 해도 회담무산이 몰고올 손실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날 연락관 접촉에서 우리측은 신변안전보장각서 전달과 북한측 대표단의 서울 체류일정을 협의하기 위한 2차 실무접촉을 오는 28일 갖자고 요구한 반면 북측은 각서전달 마감시한인 회담 5일전인 오는 30일 갖자고 주장한 점은 아직도회담의 연기가능성을 남겨놓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고위급회담 개최여부가 가져올 득실을 치밀히 저울질하고 있어 이날 접촉에서 완전한 합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한의 유엔 단일의석 공동가입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서로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할 경우 우리측은 오는 9월18일부터 열리는 유엔정기총회에서 우리만의 단독가입을 추진할 것으로 북측은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북측은 우리의 단독가입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단독가입이 불가능한 시점까지 회담을 연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향후 남북대화는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이 방북이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 숭의여고 이우균교사 「30년교단」서 순직

    ◎끝내 못다부른 노해병의 망향가/부인ㆍ아들 북에두고 단신월남… 독신고수/“반드시 고향에… ” 대교류무산으로 좌절 정년을 1년 남기고 2학기 개교 첫날인 지난21일 30년동안 지켜온 교단에서 갑자기 쓰러져 끝내 운명한 서울 숭의여고 이우균교사(64ㆍ국어담당)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중구 저동 백병원 영안실에는 그를 아끼는 동료교사와 제자들의 흐느낌소리로 가득했다. 하늘도 그의 순직을 애통해 하는듯 영안실 밖은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되돌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부인과 아들을 만나 남은 여생을 즐겁게 살고 싶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평소 이교사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진장철교사(57ㆍ서울혜화여고ㆍ영어담당)는 기어이 목을 놓아 통곡을 하고 말았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옛 제자 김연선씨(36ㆍ의사)도 『지난70년 중3때 담임선생님이셨는데 마치 학처럼 살다 가신 분』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교사는 지난 1927년 만주 훈춘에서 태어나 50년7월 김일성치하의 청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1ㆍ4후퇴때 단신 월남했다. 공산독재하에서 잠시 피신했다 되돌아가면 밝은 세상이 되리라 믿고 부인과 아들을 남겨둔채 떠나온 것이 지금까지 한순간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산의 아픔이 될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교사는 월남이후 지금까지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신앙처럼 믿으며 혈육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재혼도 하지 않은채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알며 외롭게 살아왔다. 특히 적십자회담이 별 성과없이 끝난 이후 최근 노태우대통령의 7ㆍ20선언으로 이번에는 정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민족대교류도 북한측의 생트집으로 끝나자 이산의 고통은 더욱 찢어질듯 아팠다. 천부적인 낙천가요,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이교사는 개학을 앞둔 지난주만 동료교사 몇사람과 만난 술자리에서 『8ㆍ15민족대교류도 무산되고 말았으나 다음달 북경에서 있을 아시안게임때 중국으로 가 만주의 훈춘에 꼭 들러 나를 기다리고 있을 부인과 아들을 만나겠다고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때를 기다리더라』는 것이다. 그런뒤 개학을 맞은 지난21일 낮12시50분쯤 중학교 1학년3반 교실에서 3교시 시험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교단위에 앉아 학생들이 내미는 답안지를 정리하던 이교사는 「억」하는 외마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지병인 고혈압으로 갑자기 정신을 잃고 교단밑 시멘트바닥에 쓰러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켜 가까운 백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단신 월남한 직후인 지난52년 1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여러 전투에서의 맹활약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용감한 해병용사이기도 하다. 전역후 홍익대 문학부 국문학과를 나와 60년 4월부터 지금까지 숭의여고에서 외길 교직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에서 살며 지난 30년동안 부어온 연금 2억여원을 포함,4억여원을 유산으로 남겨놓고 있으나 연고자가 없고 유언도 없어 국고에 귀속될 처지에 놓인 외로운 한평생이었다. 학교측에서는 온 몸으로 제자들을 사랑하며 평생 사도의 길을 성실히 걸어온 이교사를 위해 23일을 추모의 날로 정해 수업을 하지않고 학교장으로 성대히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 여대생 변사관련/대학생 3명 영장

    【광주】 광주 서부경찰서는 20일 하문호(20ㆍ송원전문대 토목과1),조모(19ㆍ재수생ㆍ전남 화순군 화순읍),박모군(19ㆍ재수생ㆍ화순군 도암면) 등 3명에 대해 강간치사ㆍ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달아난 공범 김모(19ㆍ재수생ㆍ화순군 도곡면),조모(19ㆍ무직ㆍ화순군 남면),신모군(19ㆍ무직ㆍ고흥군 금산면)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하군 등은 지난13일 하오11시30분쯤 광주시 서구 광주동 송원전문대 5층 적십자서클룸에서 피서계획을 짜고 있던 김향숙양(19ㆍ식품영양학과) 등 5명의 학생을 각목 등으로 구타하고 김양을 끌고나와 폭행,김양이 이를 비관해 5층 아래로 뛰어내려 숨지게한 혐의를 받고있다.
  • 2차대전이래 최대 병ㆍ화력 페만대치/첫총성속 충돌로 치닫는 중동

    ◎이라크 부총리,페만사태 이후 첫 방소/미,최신예 스텔스기 22대 사우디로 추가 발진/“탈출러시”… 봉쇄 아카바항엔 난민 20만 ○…해안봉쇄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 있는 요르단의 아카바항은 이라크를 탈출,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 난민으로 붐비고 있다고 항만관리들이 20일 말했다. 지난 수일간 이라크를 빠져나온 20만명의 이집트인과 8백명의 수단인들을 비롯,많은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아카바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편 요르단정부는 중동위기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자 전력과 휘발유를 비롯,에너지 소비를 절약해줄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 ○전투기 1천대 집결 ○…서방과 아랍 국가들은 페르시아만 주변에 30만명 이상의 병력과 2차대전 이래 최고의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래 이라크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 양편에는 노후한 투폴레프 폭격기에서부터 레이다 추적을 피하는 최신 스텔스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1천2백대의 전투기가 집결해 있다. 약 6만명의 병사가 이 지역으로 향하고 있으며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이 숫자는 즉각 두배로 늘어날 것이다. 5척의 항공모함을 비롯한 최소한 1백20척의 군함이 아라비아해에 집결해 있으며 더 많은 군함들이 이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약 17만명의 병사를 배치해 놓고 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점령한 이란 영토로부터 지난 17일 병력철수가 시작됨에 따라 육군 30개 사단의 약 30만명의 병력을 새로 동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페르시아만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는 이라크는 5백여대의 전투기와 5천5백대의 탱크,5척의 프리깃함을 포함한 50척의 군함,1백만명의 병력을 자랑하고 있다. ○“격추하면 즉각 대응” ○…이라크 관리들은 20일 유럽인들에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아 「3차세계대전」을 피할수 있게 해달하고 호소하고 그러나 미국조종사들이 이라크에서 격추당하면 즉각 「잡아먹히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프랑스 제1TV(TF1)의 앵커맨 파트리크 푸와브르 다르보는 바그다드로부터의 보고를통해 이라크공보부 관리들이 미국에 대해 그같은 「엄청난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 군사요원도 탈출 ○…사막에서의 긴 여행으로 피로에 지친 수천명의 아랍인들과 소련 군사전문가들을 포함한 동유럽인들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19일째인 20일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벗어나 요르단으로 들어왔다. 목격자들은 이집트인ㆍ요르단인ㆍ레바논인ㆍ태국인ㆍ팔레스타인인ㆍ브라질인,그리고 대만인들이 이날 타는듯한 뜨거운 날씨속에 루웨이셰드 국경 검문소를 통과했다고 전했는데 이들중에는 1백22명의 소련 군사전문가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에 남아있던 약 9천명의 서방인들을 쿠웨이트의 몇몇 호텔들로 집결시키라고 명령한 반면,동유럽인ㆍ호주인ㆍ스웨덴인ㆍ핀란드인 등 일부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호의적 제스처」의 일환으로 출국을 허용하고 있다. ○…사둔 하마디 이라크 부총리가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하마디 부총리의 방문임무에관해 상세한 보도를 하지 않았으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관련된 방문임이 분명하다. 이라크의 고위관리가 소련을 방문한 것은 페르시아만사태 발발 이후 처음이다. 수년간 이라크에 무기를 공급해온 소련은 이라크의 침공을 비난하면서도 페르시아만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그다드와 접촉을 벌여왔다. ○ 국적,고위사절 파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20일 이라크 정부에 의해 인질로 사로잡혀 있는 외국인들의 운명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이 기구의 한 고위간부를 이라크에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ICRC의 중동지역 담당국장인 안젤로 그나딘저씨는 기자회견을 갖고 그가 이라크의 타레크 아지즈 외무장관에게 보내는 코르넬리오 소마르루가 ICRC 위원장의 서한을 갖고 이날 하오 바그다드로 출발한다고 밝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가 중동에 파견된 미군을 공격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두번째의 스텔스 전투기 편대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했다. 레이다망을 피해 적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가 전략목표를 폭격할 수 있는 스텔스기는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침공하기로 결정할 경우 바그다드를 공격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22대의 스텔스 F117A 전투기는 미국 서부 라스베이가스 서북방 2백25㎞ 지점인 네바다의 토노파 시험비행장으로부터 동부 버지니아의 랭리 공군기지로 향했으며 여기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출동하게 되는데 사우디아라비아내의 그들의 행선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화학공장등에 배치 ○…이라크는 억류중인 미국인들을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인간방패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미국인들을 화학공장을 비롯한 전국의 전략지점에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미국의 CBS방송이 19일 보도했다. CBS방송은 수미상의 미국인들이 최소한 4개 시설에 분산 배치됐다고 보도하고 이들이 배치된 곳은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의 황산공장인 알 카임과 바그다드 남부의 화학약품 및 대포생산시설인 알 이스칸다리야,그리고 바그다드 북부의 화학공장 바이지 등이라고 덧붙였다. ○“정선거부”처리 주목 ○…이라크 유조선 2척이 19일 미함정의 경고사격을 무시하고페르시아만을 통해 계속 남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 출입 선박 차단계획이 최초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페만지구를 방문중인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은 이날 미함정들이 그들이 지난 18일 경고사격을 가했던 이라크 유조선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말했으나 이라크 선박들이 계속 정선을 거부할 경우 그들을 격침시킬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수단,이라크에 파병 ○…수단 지도자들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수개 군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키로 결정했다고 알 와프드지가 18일 보도했다. ○“이라크에 우유를” ○…요르단의 자선단체들은 18일 유엔의 무역 금수조치로 인해 기아선상에 놓여 있는 이라크 유아들을 위해 우유와 식료품을 기부해 달라고 호소. 산하 2백여개의 단체들로 구성된 요르단 자선단체 총연맹은 이날 각 신문 1면에 실린 광고를 통해 『요르단의 어린이들은 전세계 친구들과 아랍과 국제기관 및 세계지도자들에게 이라크어린이들이 처한 죽음의 위협을 중단시키자는 우리의 호소를 받아들여 주기를 요청한다』고 발표. ○유엔대표 이라크에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은 19일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출국이 금지된 외국인들의 석방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명의 유엔 사무차장이 20일밤 이라크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칠레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중동위이기는 계속 긴장되고 있으며 폭발할 정도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요르단은 샌드위치” ○…한 중동문제 전문가는 『이번 페만위기가 전면적인 충돌로 발전할 경우 요르단은 최전방 전투지역이 될 것』이라며 『요르단은 이라크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
  • 「남산골」등 재현,문화ㆍ휴식공간으로/「남산가꾸기」 어떻게 추진하나

    ◎경관 가린 아파트ㆍ대형건물 철거/민속촌 수목원 등 확충,학습장화/일제땐 왜인촌 들어서… 60년대 개발여파 크게 훼손 서울시가 17일 발표한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은 훼손된 남산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며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총면적 89만6천평에 이르는 남산은 수도 중심부에 자리잡은 대형자연공원으로 60년대이후 개발바람을 타고 각종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훼손돼 중병을 앓아왔다. 특히 정보기관ㆍ군시설 등이 들어서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웠으며 접근이 용이한 동서쪽이 사실상 차단돼 전체공원면적의 절반가량이 진입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에따라 시의 이번 계획은 늦은감이 있지만 시민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의 이번 계획은 지난 6월 노태우대통령의 남산 복원계획 수립검토지시와 용산 미8군 시설이전계획 등 여건성숙에 따라 윤곽을 드러낸 것으로 오는 94년 서울 정도 6백년 기념사업과 연계,추진된다. 시는 이같은 계획에 따라 세부추진방안을 마련,남산을 명실상부한 시민휴식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잠식경위◁ 서울의 상징인 남산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때 북쪽 기슭인 회현ㆍ필동 일대와 서쪽 기슭은 후암동 일대에 외인촌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뒤 해방과 6ㆍ25동란으로 인한 혼란기를 거치면서 월남민들의 판잣집이 산허리까지 들어서 크게 훼손됐으나 실질적으로 경관이 훼손된 것은 60,70년대 10여차례이상 갖가지 명분으로 건물들이 들어선 때문이다. 지난 57년 9월 용산구 이태원동 산 1의 7 일대 3만3천㎡가 외국인 주택단지조성 명목으로 공원지구에서 풀린 것을 비롯,62년 7월 타워호텔 및 자유센터 건립을 위해 장충동 산 5의 19 일대 12만2천㎡,63년 6월엔 월남피난민 주택지불하로 12만1천㎡,65년 8월엔 동국대 건립부지 2만7천㎡가 공원지역에서 각각 해제됐다. 또 67년 5월과 8월엔 군장교 주택건립및 불량주택 재개발을 위해 이태원동 258의 48 일대 5만7천㎡와 신당동 432 일대 11만㎡가 풀렸으며 69년 1월과 5월 한남동 726의 180 일대 3만8천5백㎡와 이태원동 산 1의 7 일대 4만7천㎡가 이화여대병원부지와 외인아파트 건립부지로 각각 떨어져 나갔다. 특히 70년대 들어선 재벌들이 호텔건립에 나서면서 대규모로 남산이 잠식됐다. 71년 3월엔 한남동 747의 8 일대 7만4천㎡에 하이아트호텔이,75년 5월엔 장충동 201 일대 12만㎡가 신라호텔로 둔갑되기도 했다. ▷추진방향및 사업내용◁ 시는 「남산위에 저소나무」로 상징되는 원래모습으로 남산을 복원해 자연환경을 회복하고 시민들이 걸어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잠식시설을 이전시키고 주변경관관리를 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계획의 핵심적 사항은 이곳에 있던 국가안전기획부를 비롯,군부대 미군통신대의 이전과 외국인아파트ㆍ남산 맨션아파트ㆍ외국인 임대주택의 철거등 공원구역내 부적격 시설물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수방사가 올해 이전되며,주공외인아파트 2동,남산맨션 1동,주공외국인 임대주택 43동,개인주택 13동을 92년까지 철거한다. 93년엔 안기부 이전을 추진하고 미군통신대와 외국공관 9동은 미8군 이전과 연계,96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외국인아파트및 맨션아파트는 지난 72년에 지어져 92년이면 20년째가 돼 철거가 가능해진다. 남산 맨션아파트는 당초 외자를 도입,관광호텔을 지으려다 외국기관 주택문제해결을 위해 불법용도 변경된 대표적인 불법건물로 남산경관을 가로막고 있다. 태국ㆍ콜롬비아ㆍ페루ㆍ멕시코대사관 등과 콜롬비아 등 5개국 관저도 외무부와 합의,이전이 완료되면 공원 남쪽인 이 지역은 생태교육장ㆍ수목원ㆍ체육시설로 활용된다. 올해말 이전하는 수방사 자리에는 인근에 있는 「한국의 집」과 연계,옛 양반촌인 민속마을 「남산골」을 재현시켜 민속촌으로 꾸밀 예정이다. 시는 또 오는 93년이전 목표인 안기부는 기존 건물을 도서관ㆍ시사자료관ㆍ전시관으로 쓰고 공터는 조경시설을 하는 한편 남산 1호터널 북쪽끝 차폐시설을 철거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현재 남대문쪽 뿐인 진입로에서 후암동ㆍ한남동ㆍ장충동ㆍ필동 방면의 5개 도로축을 개설,시민들이 걸어서 쉽게 공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보행안내표지판도 설치할 계획이다. 후암동축은 1백6만평에 이를 용산공원과 연계시킬 계획이다. ▷문제점◁ 안기부를 비롯,이를 이전대상 시설물이 모두 옮겨가더라도 남산주변은 순환도로를 경계로 외곽에 하이아트ㆍ신라ㆍ힐튼ㆍ타워호텔 등 고층건물과 남산등 대한적십자사 건물들이 경관을 가로막아 전망좋은 도심공원으로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또 힐튼호텔 양쪽 토지개발공사의 도심재개발지역에 서울시가 이번 조치와는 달리 지난 5월과 7월 18층및 20층 빌딩이 건축허가를 내준 상태에 있다. 특히 이번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확고한 뒷받침이 전제돼야 하며 순환도로위에 위치한 일부 학교의 이전추진과 남산케이블카의 철거도 검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 “이젠 「폐쇄의 빗장」을 푸시오”/강용준

    ◎「상투적 조건」 들어 북녘 망향대열 막아서야 됩니까/김일성주석에 띄우는 어느 작가의 편지(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김일성주석. 이제부터 필자는 비록 제한된 지면인 대로 평소 필자가 『이놈만은…』하고 벼르며 생각해오던 한두가지 고언을 기탄없이 적어볼까 합니다. 피차 멀쩡한 처지에 입에 발린 인사치레 따위는 생략하겠습니다. 지난 71년 8월쯤의 일입니다. 서울의 최두선 한적총재는 1천만 이산가족 찾기운동에 관한 메시지를 귀측을 향해 띄우게 되고 귀측 역시 이산가족 찾기운동은 물론 가족의 자유왕래며 친척·친구 등의 서신교환사업도 아울러 이참에 같이 추가하되 10월중의 제네바가 아니라 당장 내달 9월중 판문점에서 만나자,이렇게 대단히 시원시원하게,순발력있게 대응해나왔습니다. 그 결과 그해 9월20일 제1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고 솔직이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면서도 온 국민들 또한 무언가 이참에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사업 하나가 성사되기는 될 모양이다 싶어 사태의 결과를 긴장감속에서 주시했습니다. 그러나 다 아시다시피 회담은 채 두달이 못가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락정보부장이며 박성철제2부수상등에 의한 평양과 서울의 교차밀행,7·4 공동성명의 그 신선한 충격,다시 뒤이어 발족한 조절위원회의 기능이 귀측의 표현법을 따라 회담의 성사를 「담보」하는 듯한 기미를 한때 보인 적이 없지도 않습니다만 역시 그뿐,귀하의 실제이기도 한 김영주조직지도부장의 이른바 「8·28 성명」이 이쪽의 공동위원장이기도 한 이후락부장을 「민족의 영웅」으로부터 「민족의 반역자」로 일거에 격하,매도해버림으로써 사실상 모든 사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리고 맙니다. 아닙니다. 반도간첩사건,휴전선 내에서의 총격사건,또한 저 끔찍한 도끼만행사건 등 보다 더 도발화·야만화·잔인화된 상황속에서 온 국민은 다시한번 시니시즘과 민족패배주의만을 체험해야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이지만 이에대한 모든 책임은 귀하와 귀하의 충실한 전사들에게로 귀속이 됩니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자인들이 오순도순 조용히모여앉아 1천만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해나가면 그만인 것을,자문위원도 설치 운영하자,남북의 각 정당사회단체들도 초청하여 동석시키자,어쩌고하여 판을 깬 것이 바로 귀측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 대목이 앞에서 필자가 「이놈만은…」하고 벼르어오던 고언들 중의 하나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귀하는 귀하가 통치하는 북쪽의 정치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독재하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귀하가 더 잘알고 있는 바 입니다. 역시 피차 다 알고 있는 얘깁니다만 73년 9월의 평양회담에서 한적측 대표단은 『마침 추석도 임박했고 하여 추석성묘단의 상호방문을 토의 의제로 제기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귀측은 성묘단의 상호방문이 실현되기 위하여는 먼저 남한의 법률적 사회적 장애부터 제거되어야 한다는 응수해왔습니다. 이 경우 법률적 사회적 장애란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을 가리킵니다.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서만주지방의 속담에「삶은 쇠대가리가 다 웃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겨묻은 개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의 속담보다 좀 더 직설적이고 진하게 감정이 개입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또한 바로 이놈이 필자로서 꼬 해두려고 별러온 다른 하나에 해당이 됩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앰네스티 보고서속에는 희한하게도 10만명이상의 정치범들이 적법한 재판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북한의 여러 형무소며 이른바 온성·회령 등 지역의 수용소군도에 수감되어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필자 역시 읽어본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솔직이 어느 편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요컨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봉건왕조 세습적이며 오직 한가지 구호만이 판을 치는 사회,이른바 사회안전법 같은 것은 오히려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법 그 자체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1인독재체제 전체주의 사회에서 정치범 사상범이 겨우 10만명정도에 머물 턱이 없는 일입니다. 이 경우 필자는 확신감을 가지고단언할 수 있습니다. 48년도라고 기억됩니다만 19세안팎의 마을 청소년 셋이 뚜렷한 죄목이며 증거도 없이 야밤에 군내무서로 연행되어가 잔인한 고문의 과정을 거쳐서 7년 내지 8년형의 징역을 언도받고 저 유명한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는데 그 광경을 필자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바가 있습니다. 서울의 무슨 청년단체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것이 마을의 세포원에 의해 밀고된 죄목의 내용이었습니다만,물론 웃기는 얘기지요. 왜냐하면 무슨 연락을 하고 자시고 할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처음부터도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남한의 법률적·사회적 장애부터가 제거되어야 한다고요? 그래야지 성묘단이 오갈 수 있게 된다고요? 참으로 삶은 쇠대가리가 다 웃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바로 달포쯤 전,이른바 그 국회회담의 연기통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한번 더 묻거니와 그 쪽에 진정한 의미의 국회며 국회의원이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에 의하여 지명된 단일후보를 흑백함 투표양식에 의해,그나마도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하면서 투표용지를 집어넣는 투표행위,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민주선거일 수가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여 뽑힌 자가 진정한 의미의 국회의원일 수 있을 턱이 없는 일입니다. 김일성주석. 이제 1백년쯤 전에나 통용되었음 직한 낡은 수법은 거두세요. 며칠전 귀하의 충실한 전사 한 분은 『이쪽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합디다만,오오!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하기야 원초적으로 무슨 문제같은 것이 성립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어느 면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솔직이 너무 촌스럽게,파렴치하게 들립니다. 현하 세계의 대세가 어떤 식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쯤은 귀하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귀하가 해야 할 일도 극히 자명하다고 여기는 바입니다. 개중에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 더러 끼어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이라크 한인보호/국적총재에 요청/김 한적총재

    대한적십자사 김상협총재는 11일 상오 제네바에 있는 적십자국제위원회(ICRC) 코르넬리오 솜마루가총재에게 전문을 보내 페르시아만 주변의 긴박한 사태속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있는 한국인 근로자 1천3백여명의 보호조치를 요청했다.
  • 통일의 길에 좌절은 없다/방북희망 신청행렬을 보고/박순녀 소설가

    벌써 수십년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크리스머스밤에 서독 국민들이 촛불을 켜들고 통일을 기원하는 사진이 우리 신문에 실린 일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사진을 보면서 눈알이 아팠다. 가슴은 찡하게 울리고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동독국민도 그 사진을 보았다면 서독국민과 한가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지랄하네」하고 서독국민을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독일이 이제 합쳤다. 우리가 통일 운운했다가는 감옥에나 가기 십상인 그때에 독일에서는 통일을 위해서 촛불을 켜들고 기원하는 그런 광경이 벌어졌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우리네도 7ㆍ4남북공동성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남북의 대표들이 통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갔다. 통일 통일,통일의 염원을 가슴앓이 같이 속에 품고 살아오던 우리가 제일 환희했던 것이 그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첫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우리 대표들이 북으로 가는 그 길을 쓸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통일을 돕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7ㆍ4공동성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그 단순하고 순수했던 많은 사람들이 심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아니,그것은 배신감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가슴 부풀게 했다가 단 한마디,없던 일로 할 수 있는가. 통일의 길은 다시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대표가 북으로 가는 길을 쓰는 그 조그만 정성을 바치는 기회도 잃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속에서도 가장 고약한 민주주의를 하는 곳이 남한이고 사회주의 속에서도 가장 몹쓸 사회주의를 하는 곳이 북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시인되어 왔다. 그 책임을 우리는 위정자에게 돌리고 싶어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을 가능케하는 우리들,국민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위정자와 싸웠다. 국민에게는 힘이 있었다. 세상은 바뀌어지고 이제 북방외교니 북방정책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됐다. 판문점에서는 무슨무슨 회담이 잦아지고 우리는 통일,통일까지는 못가더라도 남북교류에 대해서 다시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게 다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만 하는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제법 무엇이 될 듯 싶게 몇번이나 서로 만나고 몇번이나 서로 양보했다고 하고,어느 쪽이 더 하고 덜 하고,그런 보도가 되풀이 되다가는 아무 것도 성사된 것은 없이 끝장이 났다. 무슨 정치회담,무슨 적십자회담,무슨 체육회담,서로 따지고 트집을 잡다가는 등을 돌리고 서로 헤어졌다. 서로 뭔가를 할 의향은 있는 것인가. 지금은 우리 정부가 북을 다녀오고 싶어하는 사람을 무제한 보낸다고 희망자를 접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선착순으로 보내는 줄 알고 접수처에 첫 새벽에 나왔다고도 한다. 저것이 가능할까. 남한사람들이 물밀듯이 북으로 가보고 싶다는데 북에서 어서 오라며 문을 열어줄까. 어렵지,하다가 나는 다시 머리를 흔든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한번씩 다녀간 일이 있다. 그때는 2차 3차… 계속 서로 다녀갈 것 같았는데 한번만 서로 다녀가고 그만이 됐다. 그러나 세상만사 무엇이 어떻게 되어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요는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는 것은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도 우리가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국민에게 신의있게 행하라는 부탁이다. 언젠가 이남에 심한 수해가 있었을 때 북에서 쌀과 천을 배에 실어서 우리에게 보내왔다. 그때 그 쌀과 천이 어떻게 분배됐는지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 쌀을 조금 분배 받았다는데 그 소리를 듣고 그 쌀을 한줌 얻어다가 제사를 지냈다는 실향민의 얘기를 나는 들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 쌀을 종로나 시청앞에 갖다 놓고 한알씩 이라도 갖고 싶은 사람은 갖게할 수 없었을까. 쉬쉬,간단간단하게 뚝딱 처리해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게 마련인데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산다면 그 물은 어디로 흐르게 되어 있는가. 또 그들의 주석ㆍ지도자 숭배는 세계가 다 아는 일인데,그래서 일본에 온 북의 어느 학자가 자기의 학설도 김일성주석의 주체사상 운운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이 다 이해해 줬다는데 우리도 이젠 그들을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어느 기업이 북에 몇가지 물건을 무상으로보낼 때 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북에서는 그것을 도로 실어 보냈다. 우리가 진정 통일에의 길을 다질 마음이 있다면 이런 일에 신경을 써야 하리라. 솔직히 말해서 북에 가보겠다고 지금 신청서를 접수시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다시 좌절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좌절의 역사가 우리 세월속에 묻혀가야만 그 어느날 통일의 관문이 열리는게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과 슬픔… 을 딛고 통일은 온다고 믿어보자. 그래야만 단순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오늘에 보답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1928년 함남 함흥태생 ■서울대 사대졸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케이스워커」당선 데뷔 「사상계 」지에 「외인촌입구」로 신인상 수상 「어떤 파리」「칠법전서」등 작품다수.
  • 남북 인적·물적교류의 기틀 마련/남북교류법 시행령 어떤 내용담겼나

    ◎기존 지침보다 완화,관계증진 기대/북한체류 최장 3년간 가능/물품반입·반출 통일원 승인 얻어야 남북간 편지왕래가 이루어질 경우 국내우편과 똑같이 1백원어치의 우표만 붙이면 된다. 정부와 민자당은 1일 상오 민자당사에서 당정회의를 갖고 6장 53개조로 된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을 논의,정부안대로 이를 확정했다. 정부는 이 시행령 초안을 2일 정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7일 관보에 게재,공포할 예정이다. 시행령은 모법인 남북 교류협력법과 함께 남북간 인적·물적교류와 협력사업을 활성화시키고 추진해나가는 기준이 된다. 나아가 이들 시행령의 절차들은 완전통일에 앞서 올 수 있는 부분적 통일단계까지를 염두에 둔 남북간 교류지침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모든 국민이 편리하게 북한과 인적·물적교류를 하도록 기존의 남북 교류협력 지침내용을 대폭 완화시킨 것이 이번 시행령의 특징』이라며 『통행·통상·통신 등 모든 면에서 남북 관계증진에 일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행령에따르면 우리 국민이 제3국에서 북한주민을 만나려면 20일 전에 접촉신청서·신원진술서 등을 제출,통일원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주민의 참가가 예상되는 국제행사에서 접촉할 경우 외국에서 8촌이상의 친인척을 만나는 경우 외국여행에서 우발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경우 등 정부의 사전승인이 어렵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접촉후 7일 이내에 통일원장관이나 재외공관장에게 신고하면 사전승인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도록 했다(제19조 4항). 우리 국민이 북한 방문신청서와 신원진술서등 서류를 구비,방북신청을 하면 정부는 빠른 시일안에 방북허용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1백명이상의 단체가 방북신청할 경우에는 남북 교류협력추진협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그 이외에는 통일원장관이 전결처리토록 해 방북허가 기간을 가능한 단축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남북 쌍방 당국이 합의하거나 쌍방 당국의 위임을 받은 자등의 방문자에 대해서는 방문증명서 발급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도록 규정(제20조),적십자사 소속원등의 인도적 차원의 방북을 쉽게하도록 했다. 설날·추석 등 민족명절에 60세이상의 이산가족등에 대해서는 신원조회 절차를 생략하도록 했으며 방문증은 주민등록증 소지자에 한해 발급하도록 했다. 방문증은 최고 1년6개월간 유효하며 방문목적등을 정부가 감안,1차에 한해 이미 허가한 방문기간만큼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해 한번 방문증을 발급받으면 최대한 3년동안 북한체류가 가능해졌다. 남북간 출입장소는 판문점,국제공항,통일원장관이 지정하는 항구 등이며 남북쌍방이 공동으로 출입안내소를 설치해 북한주민이 내려올 경우 방문증 확인과 휴대품검사·검역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남북물품의 반입반출을 하려면 통일원장관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며 이때 장관은 거래형태·대금결제방법 등을 미리 정할 수 있다. 북한에서 반입되는 물품과 용역은 내국간 이동으로 보고 부가가치세법의 적용을 받게되며 교류협력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은 세제감면의 혜택을 받게된다. 남북교역의 대금결제는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등 외국환관리법에 규정된 기관이 맡게 된다. 또 우편및 통신요금은국내의 우편요금의 적용을 받고 전기통신역무의 전기요금도 국내 전기요금과 같다. 남북 협력사업을 하려면 통일원장관이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장관은 관계부처 장관과 협의해 이를 승인하게 된다. 이 경우 남북 교류협력에 기여할 수 있거나 협력사업의 내용이 실천 가능하다고 판단되어야 하며 남북간 분쟁의 소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등에 대해 사업승인을 받을 수 있다.〈박정현기자〉 ○남북 교류협력법 시행령 골자 ◇남북왕래및 방문=▲남북왕래의 출입장소는 판문점,국제공항,기타 통일원장관이 지정하는 곳으로 한다 ▲북한방문이나 북한주민 초청을 신청할 경우 통일원장관은 남북 교류협력추진협의회의 심의를 거쳐 그 결과를 통보한다 ▲남한주민은 북한주민을 대리해 방문증명서를 신청할 수 있다 ▲방문증의 유효기간은 1년6개월로 하되 한차례에 걸쳐 이를 연장할 수 있다 ▲남북당국간의 합의나 당국의 위임을 받은 자 간의 합의등에 따른 방문자는 방문증명서 없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는등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북한측 인사 접촉=▲접촉희망자는 20일 전에 접촉신청서,신원진술서 등을 제출해 통일원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 ▲단 북한주민의 참가가 예상되는 국제행사에서 접촉하는 경우 외국에서 8촌이상 친척을 만나는 경우,외국여행에서 우발적으로 접촉하는 경우,교역을 위해 긴급 접촉하는 경우,사전승인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전승인이 없더라도 접촉후 7일이내 통일원장관이나 재외공관장에게 신고하면 승인을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 ◇협력사업=▲남북 협력사업의 승인을 얻고자 하는 자는 통일원장관이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며 통일원장관은 관계장관과 협의,승인한다 ▲협력사업을 얻을 수 있는 자는 남북 교류협력에 기여할 수 있는 자,기타 통일원장관이 적절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인정하는 자로 협력사업의 내용이 실천 가능하고 협력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남북간의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없으며 협력사업과 능력과 협력사업의 내용및 규모가 부합되어야 한다 ▲통일원장관은 사기 허위 및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승인을 얻은 경우나 앞서 기준조항에 미달한 자,법 17조1항 규정에 따른 변경승인을 얻지 않고 승인을 받은 목적외 사업을 하는 경우,3년간 계속해 협력사업실적이 없는 자의 경우는 관계장관과 협의해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협력사업기본법 17조1항의 규정에 의거,승인을 얻고자 할 때는 사업계획서·협력사업 왕래자에 대한 소개서,협력사업 대상자에 대한 협의서,북한당국의 확인서및 기타 장관이 협력사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물품의 반입반출=▲물품의 반입반출 희망자는 통일원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장관은 거래형태·대금결제 방법 등을 미리 정할 수 있다 ▲북한으로부터 반입되는 물품과 용역은 내국간 물품이동으로 규정,부가가치세법을 적용한다 ▲남북간 물자교류를 신속히 하기 위해 통일원 상공 재무장관으로 협의기구를 구성한다 ▲교류협력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은 세제감면의 혜택을 준다 ▲남북교역의 대금결제기관은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등 외국환관리법에 규정된 기관이 맡는다. ◇기타=남북간에 제공될 수 있는 우편통신물의 종류는 통상우편물 소포우편물 유선전기통신 등으로 한다 ▲우편및 통신요금은 국내의 우편요금등에 준한다.
  • 방북 체류 최장 3년으로/남북교류법 시행령 초안

    ◎제3국 접촉 20일전 신청서 내야 정부는 30일 북한방문증을 받은 사람이 최대한 3년동안 북한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등 53개 조항으로 된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 초안을 최종 마무리했다. 정부는 이같은 시행령 초안을 31일 관계기관 차관회의와 8월1일 당정협의를 거쳐 2일 정례국무회의 의결을 마친 뒤 다음주 초쯤 공포할 계획이다. 시행령 초안은 정부가 북한방문 신청자의 체류일정을 기초로 방문 목적을 감안,최대 1년6개월까지 체류를 허용하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1회에 한해 이미 허가한 기간만큼 체류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초안은 통신회합(북한과의 전화통화 또는 제3국에서의 접촉)의 경우 20일전까지 신청서를 제출토록 하고 방문의 경우 신청서 제출기간 없이 신청후 빠른 시일안에 정부가 허가토록 했으며 남북 쌍방 당국간 합의하거나 적십자사와 같은 쌍방 당국이 인정하는 기관의 관계자등은 방문증명서 없이 방북할 수 있도록 했다. 초안은 설날·추석 등 민족명절에는 남북 인적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60세이상의 노인에게 신원조회등을 생략하기로 했으나 회합·통신 등의 경우에는 통일원장관의 북한주민 접촉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다. 남북간 출입장소로는 판문점·공항·항구 및 통일원장관이 지정하는 장소로 정했으며 공무원이 출입장소에서 신원및 방문증 확인,휴대품 검사,검역 등을 실시키로 했다.
  • 북의 「범민족대표」 민간아닌 “당국자”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손종철 대외경제위 간부/김동국 사로청 핵심요원/조상호 인민회의 대의원/강지영 「평축」등 국제행사 앞장서온 정치학생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에 참석하려던 북한측 대표 5명은 모두 민간대표가 아니라 당국자인 것으로 27일 밝혀졌다. 통일원이 이날 북측 대표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 결과 북측 대표들은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거나 당 간부들이며 대남 사업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핵심요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 대표단장인 전금철은 72년 제3차 남북 접십자회담 대변인을 맡은 이래 대남 통일전선을 관장하고 있는 조국평화통일위 부위원장으로 있다. 손종철 역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84년부터 추진되어온 남북 경제회담의 북측 대표이며 정무원 소속 대외경제위원회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손은 또 정무원 산하 무역경제연구소 부소장,김일성고급당학교 부교수로 지난 5월 미군유해 송환시 북측 대표로 활약했다. 김동국은 85년이래 제8차ㆍ제10차 적십자회담 수행원 역할을 했으며 사로청의 핵심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사로청은 만14∼30세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당의 전투적 하위조직이다. 학생대표인 강지영은 사로청의 하부조직인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으로 88년 남북 학생회담 추진시 북측 대표로 참가한 바 있고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남북 학생회담에도 대표로 선발되는등 각종 정치행사에 학생대표로 참여해온 김책공대 기계제작학부 4학년생이다. 조상호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순수민간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북측 대표들은 한사람도 순수 민간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남 사업분야에 다년간 일해온 핵심요원들 일색』이라고 지적하고 『북측이 이같이 당국자들로 구성된 대표를 보내겠다는 것은 범민족대회를 정치적인 선전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 휴전 37돌ㆍ범민족대회 계기로 본 어제ㆍ오늘

    ◎“냉전ㆍ대화의 장”… 두얼굴의 판문점/화해ㆍ도발ㆍ긴장 엇갈린 「국권의 사각지대」/북측,남북교류 구실로 정치선전장화 기도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7년,그동안 판문점은 동서이념 대결과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뉴스의 초점이 돼왔으며 최근에는 활발해진 남북대화와 함께 개방여부를 놓고 또 한차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상오 10시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육군대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발효와 함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휴전회담 회담장을 중심으로 직경 8백m의 원을 그려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삼은 것이 오늘의 판문점이다. 세계 각국의 언론에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기묘한 장소」라고 불리운 판문점은 북위 37도57분20초,동경 1백26도40분40초,한국도 북한도 아닌 국권의 진공지대이다. 휴전이후 37년동안 4백50여차례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렸으나 합의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논쟁과 설전만 계속해왔다. 북한의 선전과 도발,생떼,어거지가 본회담의 주류를이루던 판문점은 때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팽팽한 긴장의 현장이었으나 7천만 민족의 통일의 염원이 결려있는 곳이며 남과 북의 유일한 대화통로여서 늘 뉴스의 초점이 되어 왔다. 당초 휴전회담은 1951년 7월10일 공산군의 통제지역인 개성에서 시작됐다. 공산측의 제의에 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한 유엔군측은 휴게소건물이나 회의장건물이 모두 공산측의 장악아래있어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았다. 1951년 10월25일 유엔군측은 당시 남북군사분계선상에 있던 판문점을 새로운 회담장소로 제의,공산측의 합의를 받아 옮겼다. 초가집과 판잣집 4채 밖에 없던 주막거리 판문점은 일약 유엔군과 공산군의 고위장성을 실어나르는 헬리콥터와 내외신 보도진들이 몰려드는 뉴스의 현장이 되었다. 대형 천막 4개를 급히 세우고 이속에서 회담은 계속 됐다. 2년여동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에는 천막대신 목조건물이 세워졌고 53년 7월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됐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유엔군측의 자유의 집ㆍ평화의 집ㆍ일직 장교실ㆍ초소ㆍ막사 등이 들어서고 공산측에도 판문각ㆍ통일각ㆍ경비본부초소ㆍ막사 등과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실 등 1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남북의 회담장은 군대 막사형인 단층의 목조건물로 20여평밖에 되지 않는다. 회담장 한 가운데 녹색 커버를 씌운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테이블위로 국토를 양분하는 비극의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앞에 놓고 유엔군과 공산군의 장군급대표 5명이 『안녕하십니까』나 『또 만납시다』라는 인사말도 없이 37년간 수사학적인 말의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단뒤로는 비서장을 비롯한 보좌관과 한국어ㆍ영어ㆍ중국어 통역 등 20여명씩의 수행원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군사정전위가 열릴때마다 유엔군대표들은 서울을 출발,헬리콥터나 차량편으로 임진강의 자유의 다리를 건너 회담장으로 가고 공산측은 하루전에 평양을 출발,개성에서 1박을 한뒤 4천m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대신 북쪽에 새로 놓은 다리를 지나 판문점에 도착한다. 유엔군측의 자유의집은 65년 9월30일 준공됐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공산측도 2층 건물인 판문각을 준공했다. 80년 6월20일에는 자유의 집옆에 연건평 1백40평의 남북총리회담장 건물이 준공됐고 89년 12월20일에는 남북회담장소로 사용할 3층의 백색건물 「평화의 집」을 준공했다. 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과 72년 7월의 7.4공동성명으로 판문점에서 남북조절위원회가 열리면서 판문점은 휴전이후 두절된 남북대화의 통로가 활짝 열리는듯 했었다. 그러나 73년 8월28일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대화중단 선언으로 판문점은 또다시 냉전과 설전의 싸늘한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남북회담이 중단된지 3년뒤인 76년 8월18일 북한의 경비병 30여명이 도끼와 몽둥이 등으로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 판문점은 숨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도끼만행사건이전에도 59년 1월27일 소련 프라우다지 평양특파원 이동준씨 귀순,67년 3월22일 이수근위장탈출,75년 6월30일 미군장교 구타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80년대에 들어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판문점은 남북회담장소로 변해 84년 11월15일 남북경제회담과 85년 7월23일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체육회담 등이 계속해 열렸다. 85년 9월20일에는 남북고향방문단 2백여명이 이곳에서 출입사열을 거쳐 교환방문했으며 84년 수재때에는 북한이 제공한 수재구호물자 쌀 7천1백96t,의약품 7백59상자가 이곳을 통해 전달되기도 했다. 휴전뒤 37년동안 1백55마일의 군사분계선중 유일하게 총칼대신 탁자가 놓여진 이곳에서는 상스러운 욕설에서부터 고도의 이념논쟁에 이르기까지 수억만 단어가 3개국 언어로 구사되면서 때로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는 장소로,때로는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 「범민족대회」 오늘 예비회담

    ◎북대표 5명 판문점 거쳐 서울에/참가대상·의제 이틀간 논의/정부서 신변보장·편의 제공/전민련/자유총련등 58단체 행사 참여 30일 재론 「범민족대회」 제2차 남북 예비회담이 북한측 대표단 5명이 참석한 가운데 26일 하오 3시 서울 도봉구 수유리 크리스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1박2일 예정으로 열린다. 북측 준비위원회의 전금철부위원장(조평통부위원장·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 북측 단장) 등 대표단과 회담을 취재할 북측기자 10명등 북측 일행 15명은 이날 상오 9시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올 예정이며 이들은 회담기간동안 크리스천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머문다. 북한대표가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85년 적십자 고향방문단이후 5년만의 일이다. 비공개로 열리는 이번 예비회담에는 북측에서 전부위원장과 손종철·조상호·김동국·강지영(대학생) 등 5명,한국측 전민련인사로 박순경(목원대교수) 신창균(전민련공동대표) 이해학(〃 조통위위원장) 김희선(서울민협의장) 조성우(평화연구소장) 권오중(연대 총학생회장) 등 6명,해외동포 대표로 은호기(미주공동대표) 이종현(유럽 연락위원) 김정부(일본지역 추진위원) 등이 참석해 오는 8월15일 판문점에서 개최될 예정인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의 참가대상·행사내용·의제와 8월13일부터 17일까지 전 범민족대회기간의 관련행사문제등을 협의하게 된다. 이번 2차 회담에서는 북한측이 우리측 대회참가대상을 전민련등 재야단체로 국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데 비해 남측대표인 전민련은 각계각층이 참여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에 동의하고 있어 대회개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결과는 27일 하오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발표될 예정이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제3차 예비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북한대표단 일행은 회담이 끝나는 대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강영훈국무총리는 25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측 연형묵총리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26일 서울을 방문할 북측 대표단에게 모든 편의와 신변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히고 북한대표단이 우리측 지역으로 넘어오는 데 따른 실무적인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이날 상오 7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연락관 2명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관련기사2·3면〉 이보다 앞서 윤기복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장은 이날 상오 우리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북측 대표단 5명과 기자단 10명등 15명을 26일 상오 9시 판문점을 통해 보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을 통과할 때 신변안전보장 각서의 효력을 갖는 남한 방문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로 했으며 북한대표단의 영접을 위해 강희남(전민련고문)·김희선·이해학씨 등 전민련 관계자 3명이 26일 상오 9시 판문점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다.
  • 서울행 북측대표 5명의 면모

    ◎전금철은 대남협상 18년 경력/언론계 출신 포함,대학생 1명도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범민족대회 준비를 위한 제2차 예비회담에 북한측대표 5명중 단장격인 전금철은 70년대이후 대남대화때마다 등장해온 인물이다. 이번 대회 북측준비위 부위원장이기도 한 전은 72년 11월 3차 남북적십자회담때 북측 대변인으로 얼굴을 나타낸 이후 73년 남북조절위 제2·3차 회의에 간사와 대변인으로 참가했다. 그는 82년 3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이어 84년 10월 남북경제회담 대표,85년 7월에는 남북 국회회담준비접촉 대표단장,88년 8월에는 남북 국회연석회의 준비접촉대표단장 등을 맡아오면서 남북관계의 실무를 전담해 왔다. 전은 북이 내세우고 있는 남북 접촉인사가운데 허담(조평통부위원장) 윤기복(최고인민회의외교위원장·조평통위원장)에 이은 제3인자이지만 「당국」 「국회」 「민간」 등 남북대화의 성격에 관계없이 대남대화에 종사해왔다는 점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전은 24년 함북에서 태어나 만주 용정의 대성중학을졸업한 후 광산노동자로 일하다 47년 김일성대학에 입학,철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6·25당시 사단정치부선동원(중위)으로 근무하다 휴전후 노동당에 입당,조직지도부·문화부장을 거쳐 78년 당중앙위 대남비서 참사가 되었으며 81년 6월이후 현재까지 노동당 외곽단체인 조평통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은 김일성시대의 사람이면서도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상한 70년대초부터 김정일쪽 사람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김일성부자와 똑같은 혁명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보수파 테크너크랫」으로 볼 수 있다고 북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의 성격은 과묵한 편이며 술·담배를 멀리하는 한편 탁구를 즐겨하고 가족은 부인과 2남1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김동국(조평통준비위원)은 50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57년 10월 사로청기관지인 「로동청년」의 편집국장을 맡은 것을 비롯,65년 1월 책임주필을 거쳐 7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금성청년출판사사장겸 책임주필의 직책을담당하면서 북한언론출판계의 실력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특히 71년 11월 사로청대표단장으로 탄자니아 독립기념식에 참석한 것을 비롯,시리아·일본·중국·소련·루마니아·그리스·키프로스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져 외국어도 능통하고 사교술에도 뛰어난 것으로 짐작된다. 이밖에 대표단의 일원인 손종철(준비위원) 조상호(〃) 강지영(〃·대학생) 등 3명은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어서 서울에서의 2차 예비회담때 이들의 역할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들중 대학생이라고 북한측이 밝힌 강지영은 북한대학생들의 대표로 북한측 준비위원으로 선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북한측 대표로 서울에 와서 전금철등 다른 대표단들과 일시분란하게 행동할 것인지 나름대로 북한대학생을 대표해 남한대학생과의 교류등 독자적인 제의를 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민족대교류가 튼 첫 「민간 접촉」 범민족대회

    ◎서울 예비회담의 의의와 우리측 대응/남북입장 달라 의제선정등 난제로/북,각계참가 반대로 「범위」 논란 일듯 「8·15판문점 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2차회담이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민족구성원들의 참여를 권유한 정부측 제의를 전민련이 받아들임으로써 26일 서울에서 열리게 됐다. 북한측은 서울 예비회담 참가와 관련,25일 강영훈국무총리 앞으로 서신을 보내 실무대표단의 신변안전보장및 편의제공을 요청했다. 북측은 또 전민련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도 전금철 조평통부위원장등 대표단 5명과 취재기자단 10명을 서울에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정부측도 서울예비회담을 행정적으로 적극 지원한다는 원칙아래 25일 상 하오에 걸쳐 전민련 명의의 북한대표단 초청장 발송과 함께 내무부장관 명의로 된 신변안전보장 각서및 모든 편의제공 의사를 즉각 전달했다. 결국 서울예비회담은 이같은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북한 당국의 지원하에 열리는 만큼 남북 관계사에 있어 그 의미는 크다. 특히 이번 서울예비회담은 재야단체인 전민련이 초청하고 북한의 조평통이 방문한다는 점에서 분단이래 최초의 「민간급」 접촉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북한대표단의 서울방문은 85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0차 남북 적십자본회담이후 5년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6월12일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세부지침이 발효된 이후 처음 있는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나아가 노태우대통령의 7·20민족대교류선언 특별발표이래 남북간 처음 갖는 인적 교류라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격규정에 대한 남북 쌍방간의 다른 해석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주목되고 있다. 서울예비회담은 지난 23일 통일원·법무·국방 등 3부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참가를 위해 북한대표들과 해외동포들이 우리측 지역방문을 신청할 경우 이를 허용할 것』이라는 전향적인 정부입장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이번 서울예비회담에서는 범민족대회 개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최종 결정한다. 즉,이번에 논의되는 사항은 범민족대회의 의제및 규모,그리고 참가대상과 일정 등이라고 전민련은 밝히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절충을 벌여야 할 난제로는 의제문제와 참가대상문제를 들 수 있다. 범민족대회에 임하는 남북 쌍방간의 상이한 입장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측은 범민족대회를 「7·203노대통령 특별선언」의 취지에 입각,민족대교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에따라 범민족대회는 문맥그대로 범민족적인 차원에서 추진돼야 하며 당연히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인사들이 널리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게 우리측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이럴때만 범민족대회가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트고 남북 관계개선과 통일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측은 범민족대회 성격을 정치선전적인 차원에서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이 올해 시정연설에서 밝힌 조국통일 5개방침의 하나인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근간으로 범민족대회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의 전민련·전대협 등 재야단체와 친북한 해외동포들만이이 대회에 참여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판문점에서 광복절을 기해 한바탕 정치적인 쇼를 계획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자신들과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거나 유사한 단체및 인사들이 참여할 때만 자신들의 의도대로 범민족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북측은 우리 정부가 여러차례 밝힌 각계각층의 참가희망을 「남조선당국의 방해책동」으로 몰아붙이며 못마땅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형국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 전민련의 태도다. 전민련은 어떻게 하든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겠다는 생각에서 각계각층의 폭넓은 인사들의 참여를 바라는 정부측 제안을 받아들이고 정부측과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각계각층의 참여조건으로 전민련이 제시한 민족대단결 원칙에 대한 해석을 놓고 우리측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반면 북측은 계급성에 입각,적대와 동지개념으로 이를 구분하고 있다. 또한 재야단체는 체제보다는 민족을 앞세우는 상황이다. 통일원측은 이와관련,범민족대회 참가를 신청한 1천만 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등 58개 단체의 대표들도 예비회담부터 참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서울회담에서는 특정단체나 인사들만 참가할 것이냐,아니면 각계각층이 모두 참여할 것이냐를 놓고 상당한 격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회담이 성공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참가대상확대문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의제문제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의 대내외선전을 노리는 북측과 이를 반대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전민련측간에 쉽게 합의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측은 『남북상호간 비방하거나 자극하지 말고 상호신뢰와 이해를 증진』한다는 차원에서 범민족대회가 치러져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부입장이 어떻게 반영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겠다. 통일원의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너무 정치적인 사안을 의제로 한다면 대회자체가 관계개선이 아닌 상호비방과 중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분명히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참가대상확대문제등에 대한 묵시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담장 분위기에 따라 전민련 태도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염려하고 있다. 결국 이번 예비회담은 전민련이 정부측 의사를 어떠한 형태로 수용할 것인지와 이같은 전민련 입장을 북측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의 2개의 중요한 단계를 거쳐야할 것으로 관측된다. 통일원의 다른 당국자는 『이제는 전민련과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예비회담의 성공과 이에따른 범민족대회 개최의 열쇠는 이미 정부손을 떠났음을 의미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한종태기자〉 □범민족대회 추진일지 ▲88년 8월28일=민통련 민청련 등 21개 재야운동단체 서울올림픽기간중 남북한및 해외동포들이 참가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및 범민족대회」 개최를 제의. ▲〃 12월9일=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결성. ▲89년 1월29일=전민련 범민족대회개최 예비실무회담(3월1일 판문점)을 북측에 제의. ▲〃 2월15일=북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대표단 구성. ▲〃 3월1일=전민련대표 10명 판문점으로 가다 당국의 제지로 해산. ▲90년 3월3일=전민련 8·15범민족대회 개최 결의. ▲〃 6월2∼3일=해외추진본부와 북한측대표 서베를린에서 실무회담 개최. ▲〃 7월20일=노태우대통령 민족대교류 제의. ▲〃 7월23일=정부,범민족대회참가 허용,전민련 1차 추진위원회 개최. ▲〃 7월24일=정부·전민련,각계 대표참가에 의견일치. ▲〃 7월25일=민족통일협의회등 58개 단체 범민족대회 참가 결의. 북한,대표 5명 26일 판문점 통과 정부에 통보.
  • 전금철등 포함

    【내외】 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장 윤기복은 24일 전민련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오는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범민족대회 준비를 위한 제2차 예비접촉에 5명의 북한측 대표단들을 파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중앙및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남북한간의 서한전달은 적십자 관계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로 되어왔는데 북한은 이날 하오 3시 북측 준비위원 2명을 판문점에 파견,전민련에서 직접 받아갈 것을 고집하다 『날짜가 촉박하다』는 것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편지내용을 방송으로 공개했다. 한편 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회는 이날 5명의 대표로 전금철(북측준비위 부위원장·「조통」부위원장)을 비롯해 손종철(준비위원),조상호(준비위원),김동국(준비위원),강지영(준비위원·대학생) 등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 윤보선 전 대통령 영결식 엄수/아산 선영에 안장

    고 윤보선전대통령의 영결식이 23일 상오9시30분 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안동교회에서 가족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미망인 공덕귀여사(80)와 큰아들 상구씨(43) 등 유족 60여명과 박준규국회의장,이일규대법원장,이승윤부총리,최규하전대통령,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종필민자당최고위원 등 각계인사 6백여명이 참석했다. 유경재목사는 집례로 거행된 영결식은 김관석목사의 설교와 고인의 약력보고,이부총리ㆍ김상협대한적십자사총재의 조사,고인의 육성을 담은 녹음테이프 청취의 순으로 1시간30분동안 열렸다.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을 마친 뒤 안국동로터리∼시청앞∼삼각지∼반포대교를 거쳐 선영인 충남 아산군 음봉면 동천리에 도착,이날 하오2시쯤 안장됐다. 전국 관공서와 공공단체는 이날 상오7시부터 하오6시까지 조기를 게양해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이날 장례식은 당초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맞춰 국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 「7ㆍ20 남북자유왕래 선언」의 뜻(긴급대담)

    ◎“이념보다 민족 우선”… 가장 현실적 통일 접근/중국­대만간의 「협약없는 교류」 배울만/4강엔 「한반도 데탕트」 지원 유도 계기/북측 강온싸움 가속화 예상…보안법 철폐등 내세워 시간벌기 펼칠지도 「민족대교류」를 제의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우리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민족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획기적인 선언으로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분단극복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흐름과 북한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온 최평길교수(연세대)와 도흥렬교수(충북대)의 대담을 통해 이번 특별발표의 의의와 배경 그리고 이 발표 앞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장단기적인 영향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최평길교수 연세대 ▲도흥렬교수 충북대 사회=이동화 편집부국장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일차적으로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앞으로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서 남북분단의 벽을 허물수도 있으며 남북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노대통령의 특별발표의 전반적인 의미와 그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최평길교수=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분단이후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사회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모든 제의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원한다면 모든 왕래와 교류를 허용하겠다는 이번 제의는 분단이후 민족사에 일대 획을 긋는 쾌거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볼때 「당연한」조치라고 봅니다. 다만 70년대에 7ㆍ4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면 오늘의 이같은 제의는 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나왔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특별발표는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실질적인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 진일보한 조치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미ㆍ일ㆍ중ㆍ소 등 주변 4대강국에 대해 남북한의 실질적인 통일을 위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경제교류부터 시작 이번 제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우리측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하느냐와 북한이 과연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도흥렬교수=특별발표의 의미나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선 우리 정부가 우리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표명했으며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교류의 실체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김일성의 올 신년사에 대응,북한이 제의하고 있는 통일정책을 전향적이고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언으로 볼 수 있으며 세번째는 독일통일에 크게 고무받아 우리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언은 한ㆍ소 정상회담의 성사에 이은 양국간의 관계진전,7ㆍ7선언이후 계속된 우리측의 각종 대북제의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혁명적인 거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번 제의가 갖는 의미를 여러 면에서 지적하셨는데 이 제의를 앞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내 북측지역의 개방선언,8ㆍ15범민족대회,남북고위급회담 등과 관련해 이번 제의가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말씀해 주십시요. ▲최=북한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추진하는 방향으로 보조를 같이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가령 북한은 소련으로부터는 정치ㆍ경제적인 개방압력을,중국으로부터는 단계적인 경제적 개혁이나 대외경제적 개방을 종용받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입니다. 동구식의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할 경우 북한체제의 근저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내부에서는 개방과 개혁을 추구하는 경제ㆍ행정관료 중심의 진보파와 혁명1세대라는 수구파 사이에 정책적 갈등이 노출되고 있고 이에 따라 대내적 정책방향은 물론 대남정책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침이 정립돼 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따라서 북한은 고위급회담등 정치선언적 의미가 큰 남북회담에는 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대화는 기피하면서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 한국정부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당분간 견지하리라고 봅니다. 또한 남북고위급회담도 범민족대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거부하든지 아니면 7ㆍ4공동성명당시 서명자인 김영주대신 박성철이 나왔듯이 연형묵총리를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총리등 실세가 아닌 제3자를 내세울 가능성도 높습니다. ▲도=북한이 보일 반응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우리의 이번 제의를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소련학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를 넘지 않으며 더 놀라운 일은 공장ㆍ기업소의 가동률이 40∼50%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후 85년 남북고향방문단이 다시 남과 북을 오가는데는 13년이 걸렸습니다. 즉 남북간의 비교열세를 확인했던북한이 평양시가지를 대대적으로 정비,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계획적이고 치밀한 판단이 서야만 북한사회를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권력층이 그들의 체제열세를 대내외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자유왕래를 허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북한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식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단계에 있고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에도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과연 우리의 의도대로 따라오겠느냐는 것은 역시 의문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직접적인 거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철폐라든가 임수경ㆍ문익환목사의 석방,미군철수 등 여러가지 전제조건의 해결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응방식을 찾기까지 시간벌기작전을 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제의가 남북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이나 파급효과 등은 어떻습니까. ▲최=직접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통일정책을 미ㆍ일ㆍ중ㆍ소 4대강국은 물론 세계에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북한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의 권력 핵심부에 큰 영향을 미쳐 개혁성향을 가진 계층과 세습체제를 고수하려는 수구계층과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북한의 권력핵심부를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달렸는데 이번 제의는 개혁파의 세력부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의 연령(78)등을 고려,오는 92년이나 가까운 시일내에 정권교체의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번 제의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정=그렇습니다. 북한에서의 이념투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선동적 통일전선차원의 각종 제안을 내놓았으나 이번에 우리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앞으로는 섣부른 선동이나 선전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ㆍ소서도 교류지원 ­민족교류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민족교류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또한 동서독과 중국ㆍ대만등 외국의 경우와 비교,어떻게 민족교류를 전개해야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북한의 수용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주변 4대강국의 지지여부도 중요합니다. 남북한을 포함한 6자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동서독과 비슷한 경제교류입니다. 경제교류는 중국과 소련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사회주의경제의 최대 약점인 생산관리기법이나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군비축소와 관련된 실질적인 결실이 있어야 하며 북한도 이를 진심으로 원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측은 선 군비축소통제,후 신뢰구축을 주장하는 북한의 제의를 전향적으로 수용,이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남북관계에서 우리는 대화와 접촉ㆍ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북한은 선 군비축소주장을 펴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전제조건이 없어야 하며 이점에서 대만의 방식을 참고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만의 행정원은 지난 87년 10월 대만인들이 대륙의 가족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만인들은 가족방문을 시작했고 이어 관광ㆍ비즈니스방문 등으로 대륙방문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과 대만간에는 거창한 공식적 협약도 없이 왕래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동질성과 전통성을 회복,신뢰구축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대만식의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도 제한된 기간이지만 조건없는 왕래를 허용함으로써 오해와 불신을 조금씩 씻어내야할 것입니다. ▲최=독일은 동서독분단이후 즉시 매년 4백∼5백여명씩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를 방문할 수 있었고 점차 그 수를 늘려나갔습니다. 우리는 6ㆍ25전쟁으로 이것마저 없었는데 이번 제의를 계기로 이제부터라도 제한된 수,제한된 기간이나마 서로 오가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0년대는 조총련을 통해,80년대는 재미교포를 통해 경제적인 도움을 추구했는데 90년대에는 북한출신 한국기업인들을 불러들여 부분적인 경제적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또 순수한 관광객유치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북한을 개방한다고 과시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가 통일을 이루기위해 앞으로 취해야할 조치들을 말씀해 주십시요. ▲도=대만의 예처럼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며 관계법에 따른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조속히 구성,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선언앞서 제도 마련” 또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정책추진의 완급을 조정해야하며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반응도 생각해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인 조치는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분배구조를 개혁,7.7%에 이르는 3백30만명의 절대빈곤계층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최=첫째 정치적 선언에 앞서 법적 제도적 조치를 먼저 취해야합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서둘러야 하고 냉전시대의 법규ㆍ정책을 과감히 정비해야 합니다. 둘째 통일과 민족교류의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정부는 내부결속을 위해 야당 및 재야 등 각계각층과 충분한 협의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 마취주사 맞은 국교생 이틀만에 숨져/가족 “병원 잘못”농성

    19일 상오4시쯤 서울 종로구 평동 164 서울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서 2일전 이웃 서울정형외과에서 마취를 받은 뒤 혼수상태에 빠져 이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조두삼군(11ㆍS국교 4년)이 숨졌다. 조군의 어머니 전금순씨(35ㆍ마포구 망원동 244)에 따르면 조군은 지난14일 상오10시쯤 집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넘어져 팔을 다쳐 지난17일 상오9시20분쯤 마포구 합정동 385 서울정형외과(원장 이영우ㆍ48)에 입원,마취주사를 맞고 수술을 받았으나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군은 병원측의 응급조치에도 깨어나지 않자 이날 하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숨졌다. 조군의 가족20여명은 20일 하오2시쯤 서울정형회과에 몰려가 『병원에서 마취약을 잘못 사용,어린이가 죽었다』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판문점 통과 어떻게 하나

    ◎유엔사에 통고… 본인 여부 확인/85년 고향방문땐 양측서 사열 남북한 동포들이 판문점을 통해 자유로운 통행을 하기 위해서는 휴전협정상 협정당사자인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조선인민군·중국의용군)대표자의 판문점통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판문점 개방을 선언했기 때문에 별도의 합의는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휴전협정이후 판문점에 대한 경비와 운영은 유엔군이 맡고 있기 때문에 내외국인의 판문점 통과와 출입은 우리정부가 유엔군사령부에 사전통보해야 한다. 유엔군은 공산침략으로부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통보를 한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는 판문점에서 공산군측의 일직장교와 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의 비서장회의등을 통해 공산측과 접촉하며 이곳의 안전과 경비에 대한 업무를 협의한다. 1976년 8월18일 북한의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반경 4백m 총면적 15만평의 판문점 경내는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피아 각 35명의 장병(장교 5명 사병 30명)들이 10여개의 초소에 나뉘어서 공동근무를 했었다. 그러나 도끼만행사건으로 남북의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며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자 공동경비구역을 남북으로 나누어 양측 장병들이 서로 섞이지 않게 분할경비하기로 합의했다. 본회의장 건물 중간에 너비 50m,높이 5m의 콘크리트선을 만들어 공동경비구역안에 「국경아닌 국경」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판문점이 개방된다고 해도 남·북한의 모든 민간인이 이곳을 통과해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85년 9월21일 남북 고향방문단의 경우 우리측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임시로 사열실을 설치,간단한 통과사열을 했었다. 북한측의 손성필위원장을 비롯하여 기자단·수행인원·예술단·고향방문단의 순서로 시작된 사열에서 북한측 방문단은 양측 적십자사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진·이름·출생지·부모이름·헤어질 당시 주소와 직장·직위·상봉대상자료가 첨부된 서류 등을 확인한 뒤 평화의 집에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와 우리측 안내를 받았다. 한국측고향방문단원들도 북측으로부터 이와 똑같은 사열을 받고 북한측 건물인 판문각을 통해 북측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구체적인 방북신청및 통과절차등이 마련되겠지만 남·북한이 모두 판문점 개방을 선언한 지금 앞으로는 왕래절차가 양측의 승인을 받고 통과증만 가지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이전보다는 훨씬 간단해질 전망이다.〈김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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