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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귀국 맹점(사할린 한인 망향의 한 50년:2)

    ◎또다른 이산 부르는 「독신자 제한」/80%가 가족 버리고 신분속여 입국/사할린 처자 그리워 재출국 사례도 지난해 9월29일 사할린한인사회는 엄청난 감격에 휩싸였다.강제징용으로 끌려온 1세 한인 77명이 영주귀국이란 이름으로 고향땅으로 돌아간 것이다.한인단체들이 합동으로 환송회를 열었고 러시아주정부 지도자들까지도 떠나는 노인들을 축하하며 환송했다.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소위 무의탁 독신노인을 선발해 모 교회가 운영하는 강원도 춘성군 소재 양로원 「사랑의 집」에 거처가 마련된 것이다.금년 3월20일 역시 1세 독신노인 42명이 2차로 이 「사랑의 집」에 합류했다. 주노인회에 따르면 이밖에 지난 89년부터 국내에 있는 친척들이 직접 초청해 들어간 영주귀국자수도 1백여명에 이른다.그리고 경북 고령에 있는 모 양로원으로 영주귀국해 들어가기 위해 80명이 현재 수속중에 있다. 영주귀국자들은 한동안 사할린에 남은 1세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서윤준 이산가족회장의 말을 빌리면 『영주귀국 신청자들로 붐벼 사할린 이산가족회와 노인회 사무실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대한적십자사가 영주귀국 대상자를 선발하는 기준은 「65세 이상,무의탁 독신노인」이다.그런데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에 처자식이 엄연히 있는 노인들이 무의탁 독신자라고 서류를 꾸며 영주귀국자로 신청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십년을 함께 산 부인들과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고 나선 노인들이 속출하고 자식들이 엄연히 있는 노인들이 무의탁자라고 신청서를 냈다.특히 부인이 러시아여자거나 재혼한 사람,혼인신고 없이 동거하던 노인들은 하나같이 「독신」서류를 만들어 영주귀국 대열에 선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처자식들이 노인회·이산가족회 사무실에 몰려와 『제발 못가게 말려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례가 빈발했다.서회장은 『처자식들이 보내지 말라고 하도 애원을 해 몇사람을 대상에서 제외시켰더니 그 노인들이 사무실로 몰려와 「이놈아,네가 나한테 무슨 원수가 졌길래 내 고향길을 막느냐」며죽인다고 해 혼이 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서회장은 『지금까지 영주귀국한 1백19명중 실제 무의탁노인은 20%가 채 안된다』고 실토했다.이같은 사실은 주노인회 박해동회장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이산가족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사업으로 인해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주귀국자중에서 적응을 못해 다시 사할린으로 되돌아 오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지난 7월28일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사할린을 다시 찾은 영주귀국자 15명중 1명이 자살하고 나머지 4명은 지금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중의 1명인 한상국(81)옹은 『고향땅에 묻히겠다는 일념에 영주귀국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사할린에 두고온 가족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사할린에 42년을 함께 산 러시아부인과 자녀 4명이 있다.한옹은 또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집」에서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하고 새벽기도를 올리게 한다고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게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노인회 박회장은 영주귀국자들의 처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는 50년간 이역에서 고향을 그리며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그리고 70세 넘은 노인들을 새벽 3시 반에 깨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이곳의 많은 인사들은 『영주귀국을 결정하기 전에 대상자들에게 모국방문의 기회를 여러번 주는 것도 이런 부작용들을 막는 한가지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 두번 고향땅을 보고 오면 망향의 사무침도 분명 조금씩 풀어질 것이고 무리한 영주귀국도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다.지금 한적이 추진하는 모국방문은 1인1회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예산부족 때문인지,인식부족 탓인지 아직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사할린한인문제를 일선에서 다루는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의 T모 영사는 『영주귀국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 일도 바쁜데 그런 사소한 일에 일일이 신경쓸 수 없다』고 말했다.
  • 영주 귀국의 꿈(사할린 한인 망향의 한 50년:1)

    ◎“단하루 살다 죽어도 고국에서…”/“일제에 의한 강제 타국생활 청산” 갈망/1세대 등 1만3천명 고향이주 고대 사할린 땅에는 지금도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간뒤 50여년을 타의에 의해 타향살이를 해온 4만여명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다.망국의 한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만든 고통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이야기야말로 어쩌면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서글픈 역사의 한토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 89년이래 다행이 많은 사할린 한인들이 모국땅을 밟고 가족들과 꿈같은 재회의 기쁨을 누렸지만 이들의 가슴에 맺힌 한이 풀어지기엔 아직도 숱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이 사할린 동포들을 찾아 요즘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문제점들을 취재,4회에 걸쳐 보도한다. 『이기 사람 사는 기가.일찍 죽으마 억울한끼네 악으로 사는 기지.죽은 몸띵이라도 고향땅에 묻힐라꼬』 임판개(68세)옹의 이 절규의 밑바닥에 깔린 한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온 소위 사할린한인 1세노인들이 왜 그토록 기를 쓰고고향땅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할린한인들 사이엔 지금 너도나도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영주귀국의 「열병」이 돌고 있다.영주귀국을 신청한 노인들은 『왜놈들한테 강제로 끌려와 자나 깨나 고향하늘 쳐다보며 부모형제 만날 날만 기다리며 한평생을 보냈다.이제 돌아갈 길이 열렸는데 왜 안가.단 하루라도 고향땅에 가서 살다가 묻힐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지난 89년 9월 25일 역사적인 첫 모국방문이 이루어진 이래 많은 사할린 동포들이 그동안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들과 꿈같은 재회의 감격을 맛보았다.지금까지 대한적십자사가 주선한 전세기를 타고 모국을 찾은 사람은 4천6백명.사할린한인들을 돕고있는 일본변호사 다카키 겐이치씨의 도움으로 일본을 경유,모국을 찾은 사람이 1천2백명 그리고 개별친척 초청에 의한 5백여명 등 총 7천명에 가까운 사할린한인들이 고향산천을 다시 보는 꿈을 이루었다. 5백여명으로 집계된 70세이상 노인들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국을 한번씩은 다녀왔다.이에따라 모국방문과 영주귀국을 주선하는 사할린주 이산가족회와 노인회에서는 1세의 범위를 해방된 해인 45년 출생자까지로 확대,1세의 수는 총8천5백명으로 늘어났다.이 경우에도 1천여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국방문을 한번씩 한 셈이다. 현재 2세,3세까지를 모두 합친 사할린한인총수는 4만3천여명.이들에게 골고루 모국방문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아래 대한적십자사가 실시하는 공식 모국방문은 1인 1회로 국한돼 있다.그러나 단한번의 모국방문으로 타의에 의해 평생을 타국땅에서 보낸 1세노인들의 한이 풀어질 수는 없었다.그래서 생겨난 것이 영주귀국이다.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 18살때 잡혀온 임판개씨의 사연을 들으면 그가 왜 「막무가내로」 모국땅에 묻히고 싶어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그는 1943년 11월 어느날 아침밥상을 받아놓고 숟가락을 드는데 왜놈순사가 들이닥쳐 숟가락을 든채로 잡혀왔다.14살 위인 그의 형님앞으로 징용장이 나왔는데 형님은 형수와 아이들 둘이 있고 장자라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어 피신을 시켰다.『왜놈순사가 나를 보더니「네가 임영식이냐」고 하데요.「아닙니다.형님은 읍내 일보러 갔습니다」했더니 「물론 도망갔겠지」하면서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그럼 네가 대신 가자」해서 그길로 끌려왔다』는 것이다. 산청군에서 함께 끌려온 사람이 1백명이었다고 한다.그길로 징용복으로 갈아입고 「가라후토(사할린)보국대」란 완장을 차고는 부산,시모노세키,홋카이도,하쿠다테를 거쳐 사할린에 도착했다.그는 당시 한인들이 대거 투입된 유즈노사할린스크시 북서쪽 「한많은」브이코브탄광에 투입돼 해방될때까지 「죽을 고생」을 했다. 식사라고는 보리쌀이 보일락말락 섞인 콩밥 한공기씩.그걸 먹고 하루 11∼12시간의 중노동을 했다.『갱내에서 1시간 일하고 바지를 잡으면 땀이 물같이 주루룩 흘렀다』고 한다.같은 조원 5명중 1명이 일주일도 안돼 작업도중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허기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손이 느려지면 사정없이 왜놈들의 발길질이 날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고향에 돌아갈줄 알았던 그는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귀환의 꿈이 좌절된채 또다시 50여년을 이국땅에서 보냈다.그는 90년 2월에 적십자사의 전세기로 고향땅을 다시 밟았다.그러나 부모와 그의 형님 내외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그뒤에도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사할린에서의 생활은 하루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그는 지금 영주귀국 신청을 해놓고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주노인회가 집계한 바로는 이렇게 영주귀국을 희망한 사람의 수가 2,3세를 합쳐 모두 1만3천4백84명에 이른다.
  • 현역사병 1명 에이즈에 감염

    【춘천】 강원도내에서 최근 입대한 군인과 불법체류 태국인 등 2명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양성반응자로 밝혀져 후송되거나 강제 출국됐다. 15일 강원도 적십자혈액원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육군○○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훈련중인 엄모이병(26·1대 미대졸)이 강원도 적십자사와 국립보건원의 2차검사 등 신병검사에서 모두 양성반응자로 확인돼 이달 초순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
  • “질문 40분서 10분으로/분야도 세분화 바람직”

    ◎국회 「대정부질문」 개선 공청회 국회운영위(위원장 김영구)는 3일 국회에서 「대정부질문 개선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대정부질문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벌였다. 이날 공청회에서 우병규중앙선관위원,김영정적십자사부총재,김광웅서울대행정대학원장,황소웅한국일보논설위원,강경근경실련시민입법위원,김학수서강대교수,정성철정무1차관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현행 대정부질문제도는 권위주의시대의 산물이라고 지적하고 질문시간의 단축,질문의원수 확대,질문의제의 세분화,정부측 답변의 충실화 등을 개선방향으로 제시했다. 우병규위원과 김광웅원장은 『장황한 연설식 질문을 지양하고 30분인 질문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고 정치,통일·외교,경제,사회·문화등으로 돼있는 질문분야를 중요 이슈별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실명제 따른 국민불안 점차 해소(국무회의 26일)

    ◎9월은 불법무기 자진신고 달로 26일 열린 제41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안 9건,대통령령안 4건등 비교적 많은 심의 안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한뒤 최대 현안인 금융실명제 조기정착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됐다. ○…홍재형재무장관은 이날 실명제실시 현황을 보고하면서 『일반 시장상인과 영세업자들은 은행과 국세청간 온라인이 개설돼 금융거래를 하면 즉각 국세청으로 가는 것으로 오해,예금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다각도로 홍보하고 있다』고 설명. 홍장관은 이어 『아직 세금관계를 우려하는 일반이 많은 것이 문제』라면서 『그러나 과세자료가 명백히 노출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율을 내려야하므로 세금증가를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피력. 홍장관은 『특히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의 인하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곧 기획원등 관계부처및 당과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라면서 『그러나 세율인하는 세수와 함수관계가 있으므로 세수차질로 경제운용에 부작용이 없도록 최대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보고. ○…황인성국무총리는 홍장관의 보고가 끝난뒤 『지난 화요일 대구·경북지방에서 실명제 설명회를 가졌는데 현장에 가서 보니 중앙에서 생각치도 못했던 다양한 문제점과 애로사항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재무부등 관련부처는 이들 문제점들을 충분히 숙지,적극 해결해나가라』고 지시. 황총리는 『새정부는 실명제 성공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각 부처는 실명제 성공에 최선을 다하라』고 거듭 강조. 황총리는 이어 『실명제와 함께 냉해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벌써 4.4%에 달하고 있다』고 지적,『금년 억제목표 5%를 지키기 위해 각 부처가 좀더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당부. 홍재무장관은 『실명제와 관계없는 대다수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으나 총리께서 직접 지방을 순시하는등 정부의 적극 홍보로 상당히 해소되고 있다』고 말하고 『가명예금이 창구에서 불법전환·유출되는 것은 계속적으로 엄단하겠다』고 다짐. ○…실명제논의에 앞서 이해구내무장관은 『9월 한달동안을 「불법무기류 자진신고및 색출기간」으로 설정하고 예비비 2억원을 들여 언론에 그와 관련된 담화문을 발표하겠다』고 보고. 이내무장관은 『이번 불법무기신고기간 설정은 엑스포 안전관리와 함께 실명제실시 이후 가정이나 사업장에 현금이 많은 상황을 감안해 강력범죄를 미리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 이에 한승주외무장관은 『이전에도 그같은 기간을 여러번 두었는데 성과가 있었느냐』고 묻자 이내무장관은 『90년 1만9천여건,92년 2만2천여건의 실적이 있었다』고 답변. ○…회의 말미 권령해국방장관은 『최근 백령도를 방문해보니 의료분야,농사문제를 놓고 군·관·민이 보다 하나가 되는 것이 안보를 위해서도,또 행정및 군부대관리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고.황총리는 『관계부처간 협의를 통해 해결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 ▷의결안건◁ ◇법률안 ▲해외이주법(개) ▲외자도입법(개) ▲금융기관의 연체대출금에 관한 특별조치법(개) ▲한국형사정책연구원법(개) ▲군인공제회법(개) ▲국방대학원설치법(개) ▲수의사법(개)▲부동산중개업법(개) ▲대한적십자사조직법(개) ◇대통령령안 ▲형의 실효등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반도체 집적회로의 배치설계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외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개) ▲국외여비규정(개)
  • 「통일기원통장」 예금고 급증/조흥은 발매… 10일만에 1만명 가입

    ◎“이자 3% 기금적금” 실향민 발길 잦아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우리 모두의 정성이 담긴 저축으로 준비합시다」. 금융실명제 여파에도 불구하고 금세기내에 반드시 이루어야할 민족의 숙원인 통일에 대비,저축을 통해 통일기금을 마련하자는 새로운 예금상품이 등장,큰 인기를 끌고있다. 조흥은행이 개발한 「통일기원통장」. 지난 9일부터 발매하기 시작한 이 통장은 최근 「남북인간띠잇기대회」로 일고 있는 통일붐 조성에 힘입어 발매 10일만에 이미 1만여명의 고객이 가입했으며 계속 가입희망자들로부터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고객의 저축액에 배당되는 이자수익의 3%와 고객부담금액의 배인 6%를 은행측에서 부담,통일기원기금을 마련하게 된다. 조흥은행이 이 예금을 내놓것은 광복절인 지난 15일 열린 「남북 인간띠잇기대회」가 계기가 됐다. 이 대회에 협찬사로 참여하게 되면서 은행측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끝에 통일후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 해소와 북한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마련하고자 개발했다. 「통일기원통장」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커 발매 첫날인 9일 하루에만 5천여명이 가입했으며 저축액은 현재 2백20억원을 넘어섰다. 가입자 가운데는 한완상 부총리겸통일원장관과 강영훈대한적십자사 총재등 통일관련 정부·민간단체 인사들은 물론 박형규목사등 재야인사들도 참여,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은 각계각층에서 예외없이 줄을 잇고 있다.
  • 북송 이인모 병원서 퇴원/김정일에 충성다짐 편지

    【내외】 지난 3월 북송된 이인모는 최근 병원에서 퇴원,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북한방송들이 12일 보도했다. 이인모는 이 편지에서 자신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가 김정일의 깊은 배려때문이라고 감사를 표시하고 『이제 여생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바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북한방송들은 전했다. 이인모는 이어 『별로 한일도 없고 당원의 맹세를 지켰을 뿐인 평범한 저에게 관심을 돌려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면서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거듭 맹세했다. 한편 이인모는 북송이래 조선적십자병원 분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었는데 최근 건강을 회복,평양보통강기슭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으며 김정일이 피아노·녹음기 등을 하사했다고 북한방송들은 덧붙였다.
  • 원폭피해 실질보상 촉구/유가족 5백명/히로시마 투하 48돌 위령제

    한국원폭피해자협회(회장 이종만)회원과 피해자·유족등 5백여명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48주년인 6일 상오 서울 마장동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문화회관에서 「제26회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제」를 갖고 피폭 생존자에 대한 실질적인 생계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서 이회장은 개식사를 통해 『지난 91년 한·일 정부의 합의로 2백76억원의 원폭피해자 지원금이 전달됐지만 아직까지 충분한 생계대책이 보장되지 못한 상태』라며 당국의 성의있는 보상책을 요구했다. 한편 한국기독교여성연합회도 이날 하오2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 1백주년기념관에서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평화마당행사를 열고 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장 김분순할머니(67)에게 올해의 인물상을 수여했다.
  • 벨기에왕 조문사절/강영훈 전 총리 파견

    정부는 오는 7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고 보두앵벨기에국왕 장례식에 정부조문사절로 강영훈대한적십자사총재를 4일 파견했다. 우리나라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있는 벨기에의 새 국왕은 보두앵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9일 승계할 예정이다.
  • 「엑스포지원협」창립/회장에 강영훈씨/홍보 등 10개분과 설치

    【대전=특별취재반】 대전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범국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국 시도지원회의 모임인 「엑스포지원 중앙협의회」창립총회가 4일 상오11시 대전엑스포 국제회의장에서 열려 강영훈대한적십자사 총재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날 총회에는 강총재와 오명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이종완 범시민 대전엑스포추진협의회장등 전국 15개 시도협의회장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장으로 선출된 강총재는 『대전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민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면서 『조직위원회,정부관련기관등과 협조해 엑스포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중앙협의회는 홍보·문화·교통등 10개분과를 두고 대회전기간동안 각종 캠페인과 경제세미나,외국관람객편의지원 등 엑스포관람객유치홍보사업을 중심으로한 각종 민간지원활동을 벌인다.
  • 국회 공직자윤리위장 박승서씨 임명

    이만섭국회의장은 2일 국회의원 및 사무처 공직자들의 재산등록 업무등을 관장할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에 박승서전대한변협회장(67)을 임명하고 나머지 위원 8명에 대해서도 인선을 완료했다. 이날 확정된 위원장외의 나머지 위원은 김영정대한적십자사부총재,민병천동국대총장,장상재변호사,안재헌서울고법부장판사 등 외부인사 4명과 김영구민자당원내총무,김대식민주당원내총무,문창모의원,박헌기국회윤리위간사 등 내부인사 4명이다.
  • 벨기에 새 국왕 알베르2세(뉴스인물)

    ◎외교수완 뛰어난 해운전문가 휴가중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서거한 벨기에 보두앵(63)국왕의 뒤를 이어 6번째 국왕에 오르게 된 알베르 2세(59)는 보두앵 전국왕의 동생으로 대외경제문제와 외교업무에 밝은 인물이다. 현직 벨기에 대외무역협회 명예회장이기도 한 알베르2세는 운송업무,특히 해운의 전문가로 더 유명한데 그의 이같은 외교적 수완과 경륜 때문에 언어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네덜란드어계와 프랑스어계간의 분열을 막아주는 정신적 완충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네덜란드어의 방언을 쓰는 플라밍인(북부·게르만계)과 프랑스어 방언을 쓰는 왈롱인(남부·라틴계)간의 반목은 벨기에가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이래 계속돼오고 있는 최대의 골칫거리. 「슈퍼 대사」라는 별명이 따라 붙는 알베르2세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적십자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 공주출신의 파올라 루포 칼라브리아와 지난 59년 결혼,두명의 왕자와 한명의 공주를 두고 있다.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자주외교의 숨은 동반자들/김영정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일요일아침에)

    요즘 나는 한권의 책이 안겨주는 기쁨과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다.그것은 다름아닌 「외교등」이란 잡지인데 외무부 부인회가 해마다 한번 펴내는 간행물로서 이번에 그 5호가 마련된 것이다. 아마도 이 책자가 갖는 의미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자기자신의 이름 보다 외교관인 남편의 이름과 직위에 따라 일생을 살아야 하는 부인들이 자신의 숨겨진 재능과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격조 높은 「외교등」 더구나 매우 놀라운 것은 멀리 고국을 떠나 낯선 외지에서 겪는 생활체험과 공통관심사 등을 나누는 동인지 성격의 이 잡지가 해를 거듭할수록 전문지에 버금가는 알차고 격조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회원들 스스로가 원고를 모으고 편집에 임할 뿐아니라 책자의 장정과 광고의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작업을 빈틈없는 팀웍으로 해내고 있다.흥미와 흐뭇함에 이끌려 한편 한편의 글을 놓칠세라 모조리 읽으면서 이런 책이야 말로 읽은후 그대로 덮어 놓을수 없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우리 주변에 지금 범람하는 수많은 잡지류와 책자들은 읽을 거리가 아니라 오로지 상업주의 일변도의 현란한 광고물에 지나지 않는 경우와 큰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외교등」에 담긴 글들은 단순히 외교관 부인들의 생활수기라든가 여행기가 아니다.여러번 임지를 옮겨 다니면서 견디기 어려운 자연환경과 생소한 문화·풍습에 적응해 나간 것이 바로 그들이다.따라서 그들은 단순히 외교관의 내조자,혹은 남편을 통한 대리만족의 추구자,혹은 안일과 허영,특권의식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오히려 그들은 겸허하고 진지한 자세위에 예리한 지성과 깊은 통찰력,그리고 풍부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님으로써 능히 새로운 도전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전달자로서 외교의 동반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화 전달자 역할 여기에서 우리의 외교와 관련하여 연상되는 것은 구한말 열강의 개항 압력에 못이겨 어쩔수 없이 수교를 맺을 때의 정황이다.우리는 외국과의 협상 경험이나 준비가 전혀 없는 가운데 통역관은 중국인 마건충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그것 보다 더 딱했던 것은 외국사신과 협상하기 위해 나온 우리 조정의 대표가 긴 담뱃대를 문채 졸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수교 2년후인 1885년에는 러시아와 격돌을 예상한 영국이 그 함대를 거문도에 진주시켰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이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어 중국측의 통보에 의해 겨우 알게 되었다.설상가상으로 이때 우리 조정에서는 거문도의 위치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으니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오늘의 세계추세와 신한국의 외교기조가 공히 다변화·다원화,그리고 지역협력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옛날처럼 영토점령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이미 모든 나라들은 경제·통상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냉전종식후 국제관계의 초점이 경제실리 추구로 집약되고 있다.국력의 자리매김이 경제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세계의 외교무대에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익신장과 떼어 놓을수 없는 것이 국민간의 문화적 접근·친근감·상호이해 등이며 문화외교를 통한 상품의 홍보와 이미지제고는 바로 오늘의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제품을 해외에 진출시켜 외화획득에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1회성 이윤 추구보다는 장기적안목으로 그 지역에 관한 지식과 이해를 깊이 하면서 상대방과 더불어 살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필수적 요건이라 하겠다. ○지혜 공급원으로 오늘의 우리나라 외교의 기본방향과 새로운 접근방법에 도움을 주고 지혜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외교등」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물론 외교의 심오한 이론과 전문적 기술을 쌓아올리는 일이 도외시 되어서는 안되겠으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인간과 문화를 중시하는 내실있는 외교역량의 축적이라 하겠다.우리가 항상 되뇌이는 바와 같이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우리가 키우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인력) 뿐이다.따라서 정규 직업외교관은 물론 그 부인들과 가족,그리고 국민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총력전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이러한 견지에서 「외교등」을 환영하며 더욱 알찬 결실을 담아 온 누리를 비추어 주기를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 대북 대화 창구/남북회담 사무국/협상베테랑 등 1백63명 포진

    ◎71년 한적등 산하기구로 출범/매일 아침 9시 양측 시험통화 지난달 14일 하오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 자리잡은 남북연락사무소.남북간에 중단된 대화재개문제를 놓고 제의와 수정제의라는 핑퐁식 전화통지문 공방전이 한창 진행될 무렵이었다. 북측이 수정제의한 특사교환 논의를 위한 판문점접촉을 하루 앞둔 이날 나른한 초여름의 졸음과 씨름하며 직통전화를 지키던 연락관들에게 기다리던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우리측이 북측의 제안을 거의 수용했다는 점에서 이번만큼은 우리측 수정제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이어졌다.북측 연락관으로부터 『다른게 아니고 우리측에서 전화통지문을 「후에」 보낼 것이라는 것을 위에 알려주기 바란다』는 엉뚱한 통보가 왔기 때문이다.더욱이 「후에」라는 시점이 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럼 내일 접촉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인가』라는 반문에 『그건 잘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해오자 우리측 연락관들은 새삼스럽게 남북간에 가로놓인 「벽」을 느껴야 했다. 이처럼 남북연락사무소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최일선에서 체감하는 남북대화의 전진기지이다.연락사무소는 통일원내 남북회담사무국에 소속된 기관이다. 남북회담사무국은 남북적십자회담의 실무를 담당키 위해 지난 71년 대한적십자사 산하기구로 실치된 남북적십자회담사무국과,7·4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북조절회의가 진행됨에 따라 중앙정보부 소속기구로 출범한 남북조절위사무국이 그 모태이다.80년 10월20일 남북대화업무가 당시 중앙정보부로부터 통일원으로 이관됨에 따라 통일원「남북대화사무국」으로 출범한 뒤 92년 현재의 명칭인 남북회담사무국으로 개칭됐다. 총인원이 1백63명(93년7월현재)인 회담사무국은 남북연락사무소장이 부장을 겸직하고 있는 연락부와 회담대책수립을 전담하는 기획부,회담지원부서인 운영1·2부,회담 및 홍보협력관실,자문위원실등을 두고 있다. 『북한측이 회담도중 갑자기,이를테면 국가보안법 철폐등 선결조건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회담을 깰 의사가 있다고 봐야한다』 회담시 우리측 대화전략수립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 자문위원은 북한만이 갖고있는 독특한 협상전술의 실례를 이렇게 들었다. 이같은 북한의 협상전술을 감안,자문위원실과 연락부에는 남북대화에 관한한 베테랑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이들은 남북대화 20년사를 지켜본 산증인들로 북한당국 특유의 협상스타일에 관한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회담사무국은 삼청동 회담장과 판문점 가까이 경기도 파주군에 자리잡은 전방사무소,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의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등을 관리하고 있다.이 가운데 북측의 「통일각」에 대응하는 회담장으로 지난 89년 준공된 평화의 집은 평상시에는 남북연락사무소 남측사무소로 활용된다. 26회선의 남북직통전화중 가장 중요한 회선은 회담제의등 남북당국간 제반 연락업무를 수행하는 남북연락사무소간 회선이다.평일의 경우 상오 9시부터 하오 4시까지,토요일은 정오까지만 운용하며 일요일및 쌍방의 공휴일에는 휴무한다.매일 아침 9시 시험통화를 하며 홀수일에는 우리측이 먼저 호출하고,짝수일에는북측이 전화를 한다. 남북대화의 현장사령탑격인 남북회담사무국장에는 초대 이동복씨(80년11월∼82년2월)와 송한호씨(82년2월∼88년3월)를 거쳐 정시성씨가 88년 3월부터 현재까지 재직중이다.
  • 탑승자 기록 미비…희생자 집계 혼선/보잉737기 참사 뒷수습 현장

    ◎군경·공무원·주민 혼연일체… 온정 실감/사망확인에 “울음보”… 분향소 이외로 썰렁 명백한 인재였다.그러나 생존자를 구조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공무원,군인이 보여준 눈물겨운 노력은 인정을 실감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생존자와 사망자가 한데 있는 병원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내달려온 가족들의 통곡과 안도의 한숨이 엇갈렸다.그럼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이들을 도우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은 하루였다. ▷대책본부◁ ○…이균범전남도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사고수습대책본부는 27일 상오 2시30분쯤 임시대책위가 구성된 해남 화원동국민학교에서 사고수습대책을 발표,장례절차및 보상등에 관해서는 유족들과 충분히 협의해 추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고문의 안내를 위해 전남경찰청상황실(062)222­0812,해남군청상황실(0634)35­4106,해남경찰서상황실(0634)35­0112 등 3대의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추락현장 근처에 임시로 안치됐던 사체 49구 가운데 47구가 이날 12시30분부터 헬기에실려 목포 유달경기장으로 옮겨졌으며 이중 2구는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대책본부는 신원이 확인된 사체는 광주지역 병원으로 이송하고 미확인 사체는 목포지역 병원으로 옮길 계획이었으나 해남지역의 기상상태가 좋지않아 일단 목포 유달경기장으로 이송한뒤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인계키로 했다. ○…김포공항 국내선청사 2층에 마련된 사고대책본부측은 당초 알려진 탑승자수와는 달리 탑승신고가 되지 않은 어린이 4명이 더 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자 신원파악을 하느라 갈팡질팡. 본부측은 10여명의 직원이 사고현지 대책본부와 전화를 통해 상황을 보고 받으며 어린이의 신원파악을 위해 성인의 성을 비교,가족들을 찾기위해 비행기표에 적힌 전화번호를 사용하기도. 이에대해 항공관계자들은 비행기에 탈때 표를 사지 않는 어린이들이라도 출발직전 파악하는게 상례인데 이번의 경우를 보면 아시아나가 평소에 마치 여객기를 시내버스운영하듯이 해온게 아니냐며 일침. ○…황인성국무총리는 27일 추락사고 현장을 찾아 주민들과 군·경·공무원들을위로 격려한뒤 전남도에 설치된 「사고수습 대책본부」에 성금 5백만원을 기탁했다. 한편 강영기광주시장도 전남도 수습대책본부를 방문,사상자 위로금으로 1천만원을 전달했다.또 정시채의원등 민자당 소속8명의 의원들도 이날 사고 현장을 들러본후 성금 2천만원을 수습대책본부에 기탁했다. 한편 이날 이해구내무,이계익교통부장관등이 잇따라 화원동국교를 방문,사체운구 상황을 점검하고 유족들을 위로. ▷영안소◁ ○…사망자들의 임시분향소가 마련된 화원동국교에는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부,전남 여성단체연합회원등 각종 사회단체에서 구호의 손길을 펼치며 유족들을 위로. 이들은 신원확인을 하느라 26일밤부터 끼니를 거른 유족들에게 준비한 식사와 음료수등을 제공하며 울부짖는 유족의 두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슬픔을 나누기도. ○…영안소가 마련된 화원동국교에는 이날 사고소식을 듣고 서울등지에서 달려온 가족·친지들이 사망자를 확인한뒤 울음바다를 이루는등 아수라장. ○…아시아나항공은 27일 상오 서울 중구 회현동 본사에마련했던 사고대책본부를 폐쇄해 김포공항 사고대책본부로 일원화하고 강서구 마곡동 승무원 훈련원과 사고 현지인 해남동국교에 분향소를 각각 마련.그러나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해남현지로 내려가고 사전준비소홀로 유족들에게 알려지지않아 승무원훈련원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없고 아시아나항공 직원들만이 분향소를 지켜 더욱 썰렁한 분위기. 한편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그룹 전직원들은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시한다는 뜻에서 이날부터 「근조」라고 쓰인 검정 리본을 가슴에 달고 근무. ○…사고 항공기에 탑승했다 부상당한 여승무원 김정아씨(24·서울 강서구 방화2동)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여자승무원이 아시아나항공에 2명이나 더 있어 이들은 밤새 안부를 물어오는 전화 때문에 진땀. ○…사고기장 황인기씨(48)와 이종극씨(39)등 사체 3구가 이날 하오8시20분쯤 항공편으로 유가족과 함께 도착한 뒤 신촌 세브란스병원등 3곳에 안치됐다. 이에 앞서 김중한씨(30)등 사체 3구는 육상교통을 이용,서울로 옮겨졌다.기장 황씨의 사체를 세브란스병원에 안치한 유가족들은 『승객들에게 죄송하다』면서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 재산등록 대상 210개 기관 확정

    ◎국영업체 23곳­지방공사·공단 포함/산은 등 96개 기관장엔 공개 의무화/총무처 총무처는 30일 공직자윤리법및 시행령에 따라 기관장이나 임원이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2백10개의 공직유관단체를 선정,발표했다. 이들 공직유관단체는 ▲정부투자기관 23개 ▲지방공사및 지방공단 51개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출연·보조·위탁을 받는 기관 67개 ▲임원을 중앙행정기관장및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임하는 기관 69개 등이다. 이 가운데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기관은 모두 96개로 23개 정부투자기관과 한국은행,농·수·축협중앙회는 단체장및 상임감사등이,나머지 68개 기관은 기관장이 재산공개의무자가 된다. 재산공개기관 한국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국민은행·한국주택은행·한국조폐공사·한국담배인삼공사·국정교과서(주)·농수산물유통공사·농어촌진흥공사·한국종합화학공업(주)·대한무역진흥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전력공사·대한광업진흥공사·한국석유개발공사·대한주택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토지개발공사·근로복지공사·한국관광공사·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은행·은행감독원·농업협동조합중앙회·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한국여성개발원·한국소비자보호원·공무원연금관리공단·한국자원재생공사·환경관리공단·한국방송공사·한국보훈복지공단·보훈병원·한국국제협력단·한국수출입은행·국방과학연구소·서울대병원·국민체육진흥공단·중소기업진흥공단·국민연금관리공단·한국산업안전공단·한국수출보험공사·전쟁기념사업회·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한국방송광고공사·한국마사회·공무원및사립학교교원의보관리공단·사립학교교원연금관리공단·교통안전진흥공단·서울도시개발공사·서울농수사물도매시장관리공사·서울지하철공사·부산도시개발공사·강남병원·서울시설관리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한국국방연구원·한국장학회·사학진흥재단·한국문화예술진흥원·예술의전당·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한국공항공단·부산교통공단·한국과학기술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한국원자력연구소·한국표준과학연구원·한국기계연구원·한국화학연구소·한국과학재단·한국해양연구소·인천터미널·생산기술연구원·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독립기념관·영화진흥공사·에너지관리공단·한국가스안전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한국컨테이너부두공사·성업공사·대한체육회·한국전기연구소·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산림조합중앙회 ▷재산등록기관◁ 제주의료원·부산〃·대구〃·수원〃·의정부〃·이천〃·안성〃·금촌〃·포천〃·춘천〃·원주〃·강릉〃·속초〃·삼척〃·영월〃·청주〃·충주〃·천안〃·공주〃·홍성〃·서산〃·군산〃·포항〃·안동〃·진주〃·서귀포〃·남원〃·순천〃·강진〃·김천〃·마산〃·목포〃·인천병원·대구도시개발공사·부산주차관리공단·장흥표고버섯유통공사·울산주차관리공단·금강선박공사·인천주차관리공단·김제개발공사·광주교통관리공단·점촌도시개발공사·한밭개발공사·대구시설관리공단·한국교육개발원·한국개발연구원·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산업기술정보원·국토개발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한국자동차부품종합기술연구소·한국건설기술연구원·민족통일연구원·한국행정연구원·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자유총연맹·한국식품개발연구원·한국체육과학연구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지개량조합연합회·산업연구원·한국생산성본부·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섬유기술진흥원·한국신발연구소·한국노동교육원·한국전자통신연구소·한국어업기술훈련소·해운산업연구원·한국해기연수원·에너지경제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감정원·한국노동연구원·의료보험연합회·대한염업조합·중부공단관리공단·동남공단관리공단·서부공단관리공단·대한건설협회·대한산업보건협회·한국해운조합·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국민생활체육협의회·한국조세연구원·대한결핵협회·대한나관리협회·대한가족계획협회·대한적십자사·전남발전연구원·서울시정개발연구원·한국지방재정공제회·한국지방행정연구원·지방자치경영협회·대한지적공사·한국소방검정공사·갱생보호회·대한법률구조공단·한국청소년개발원·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한국보건사회연구원·교통개발연구원·한국어선협회·국립공원관리공단·신용관리기금·한국형사정책연구원·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도로교통안전협회·별정우체국연합회·홍익회·한국방송개발원·유네스코한국위원회·재향군인회(재산공개기관제외)
  • 한국도 유엔 여성지위위 위원국/“국제기구 진출 인력양성 시급”

    ◎기념 세미나서 한목소리 우리나라가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위원국으로 피선된 것을 기념하고 앞으로 이 위원회내에서의 역할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정무제2장관실 주최「유엔 여성활동 증진방안 세미나」가 15일 하오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렸다. 1946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전문기능위원회로 발족한 여성지위위원회는 유엔 여성사업의 핵심기구로서 현재 45개 위원국을 두고 세계 각국의 여성발전 사업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우리나라는 이 위원회 옵서버 국가로 머물러왔으나 지난해 남·북한 동시유엔가입에 힘입어 지난 4월말 열린 회의에서 94년 1월부터 임기 4년의 위원국으로 피선된것 이다. 이날 세미나에서「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진출과 여성발전전략」을 중심으로 기조강연을 한 김영정씨(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이제 우리가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의 정회원국으로 진출하게됨에따라 우리나라 여성의 국내외적 위상과 역할에 새로운 과제와 가능성을 열어주게 됐다며 국제기구에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있는 전문인력의 확보와 체계적인 양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국제화와 우리나라 여성단체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아세아연합신학대의 주준희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서구 여성단체들이 앞장서 이룩해낸 남녀평등 원칙등 여러가지 업적을 받기만 했으나 이젠 우리가 받았던 것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국제활동의 장을 열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주교수는 우리나라 여성단체가 선도적으로 국제기구를 결성,여성단체내에 국제활동 담당부서 설치와 정기적인 정보교환·여성지위 향상·권익보호와 관련된 다양한 국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국제기구에 자문기구로 등록,회의에 적극 참여하고 다양한 제의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자고 말했다. 유니세프 대외담당관 박동은씨는「우리나라 여성의 국제기구 진출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최근 유엔관련 국제기구의 여성인력을 현재 30%에서 35%까지 충원 시킨다는 계획이 있다고 밝히고 우리도 유엔분담금 부담에따라 13∼21명의 인원이 유엔사무국에 진출 할 수 있다고 설명,여성인재들이 유엔 사무국등 국제기구 직원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정부차원의 특수 연수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유엔,모가디슈공항 폐쇄/무장세력거점 공습 임박

    ◎쿠웨이트 미해병 소말리아출동 태세 【모가디슈 AFP 로이터 연합】 미군이 주도하는 소말리아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은 최근 소말리아의 유엔군공격에 대해 보복조치를 승인한 안보리 결정에 따라 소말리아 무장세력 거점에 대한 공습을 위해 모가디슈 공항을 11일 24시(한국시간 12일 새벽 6시)를 기해 폐쇄한다고 유엔 소식통들이 말했다. 소식통들은 소말리아내 평화유지군(UNOSOM II)과 국제 적십자위원회(ICRC)의 항공기 운행이 무기한 중단될 것이라고 밝히고 현재 케냐의 나이로비로부터 운항하는 유일한 민간항공인 아프리카항공도 이같은 조치를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또 쿠웨이트에서 훈련중이던 2천명의 미해병대 병력이 소말리아 파견에 대비,훈련을 중단했다고 미군 대변인이 이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미해병 제24 수색대 병력이 와스프 상륙대비 부대 함정에 승선했으며 이들은 아라비아만의 해상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이같은 결정은 모가디슈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내려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소식통들은 공습이 이루어진다면1천여명의 정예병력으로 구성된 미군 사령부 예하 신속대응군이 주도하는 작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들은 유엔군이 시가전의 위험을 겪지 않도록 아이디드의 무기창고를 공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북한­중국관계 정말 껄끄러운가/김정일 방중취소 등 불화설 저변

    ◎한­중 수교후 장관급 공식방문 “전무”/중,시장경제채택으로 이념상 “결별” 중국과 북한관계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가. 근래에 들어 이들 양국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내용의 보도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국경선에서의 총격전을 비롯,중국민항기의 평양운항중단,김정일의 방중취소,강택민주석의 김일성특사 접견거부,양국간 외교접촉 중단설 등이 보도되는 걸 보면 중국과 북한관계가 이제 막다른 골목길에 접어든듯한 느낌이다.이렇게 가다가는 단교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해 8월 한·중수교 이래 중국·북한관계가 다소간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문보도처럼 그렇게 위기상황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는 게 중국관리나 이곳 외교 소시통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들은 최근의 중국·북한관계 보도들이 이상하리만큼 날조·과장·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홍콩의 한 잡지는 강택민국가주석이 지난 5월중순 김일성특사의 접견을 거부했으며 대신 고위 관리들을 이 특사에게 보내 양국간 당·군대표단의상호 교환방문계획을 취소키로 결정했음을 통고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이는 북한의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해 조선민항을 타고 왔다가 다른 항공기로 갈아타는 동안 잠시 북경공항 일부가 폐쇄되고 중국 외교부의 부부장 한명이 마중나갔던 사실을 두고 계속 쏟아지고 있는 억측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잡지가 당·군대표단의 교환방문을 취소했다고 전한 것과는 달리 5월부터 적십자대표단·공안대표단·여맹대표단 등 오히려 전보다 활발한 교류가 일고 있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또 양국 국경선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몇차례 있었으나 이것 역시 『북한측 경비요원들이 밀수꾼들에게 총을 쏜 경우』로 해명되고 있다. 이밖에 김정일이 3월8일 중국방문계획을 중단하게 된것은 팀스피리트훈련을 둘러싼 「준전시상태 선포」(3월9일)와 핵확산금지조약탈퇴선언(3월12일)등 북한 내부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간 때문이지 서방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강택민국가주석과의 회담이 거부됐기 때문이 아니며 중국민항기의평양취항중단설도 승객이 없어 운항횟수를 종전의 주2회에서 주1회로 줄인데서 나온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해 한·중수교 이후 양국관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우선 지난 10개월 가까이 양측에서 장관급 이상 고위인사를 상대편 국가에 공식대표로 보낸 적이 없다.종전의 예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과거 평양공항에서 중국여권 소지자에게는 아무 검사도 없이 무사통과시켰으나 이제는 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크고 근본적인 변화는 이념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중국이 등소평의 이른바 「남순강화」 이후 2단계 개혁·개방 바람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남아공,한국 등과 수교하고 당대회에서 시장경제체제까지 공식 채택하게 되자 북한으로서는 『중국도 이제는 이념상 동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그래서 내부적으로 중국을 「사회주의변절자」로 취급하게 되고 김정일은 『몇몇 국가들이 사회주의 경제를 접수하지 않은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사회주의 국가들간에 이념적 변절이 생기면 화합은 커녕 원수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은 중·소분쟁을 비롯한 각종 역사적 사실들이 잘 입증해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과 북한 두 나라는 이미 마음속으로 등을 돌렸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다시말해 과거 혈맹이나 동맹관계를 따질 때 처럼 서로 마음속으로 의지하고 믿던 시대는 지나고 국가이익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일반적인 국가관계로 변질됐다는 얘기다. 이같이 서로 마음이 변한게 분명함에도 아직까지는 『양국간 우호친선관계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따라서 중국과 북한은 이념상으로는 남남이 됐지만 아직도 양측이 상대편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서로 조심하면서 적대관계로 발전하는 걸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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