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적십자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몸매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기획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 SF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원터치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72
  • 상담·도움 필요한 여성 전화 한통으로 ‘고민 끝’

    상담이나 보호가 필요한 여성과 경찰,성폭력상담소 등 전문기관을 신속하게연결해주는 ‘부산시 여성 1366 원스톱망’이 24일부터 본격 운영된다. 부산시는 23일 현행 ‘여성 1366’ 전용전화의 운영방식을 개선해 단 한번의 전화로 민원인과 한국여성의 전화,성폭력상담소,부산의료원,적십자사,119구급대,부산지방경찰청 등 45개 기관을 곧바로 연결해준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이를 위해 ‘1366’을 운영하는 시 종합봉사센터과 45개 관련 기관을 연결하는 유선통신망을 구축했다. 한편 지난해 ‘1366’을 이용한 상담 건수는 모두 2만여건으로 이중 이혼상담이 전체의 14%인 2,785건으로 가장 많았다.다음은 가정폭력 2,007건(10.1%),취업 직업훈련 1,736건(8.7%),가출 429(2.2%),성폭력 상담 353건(1.8%) 등의 순이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남북정상회담 D-20/ 이산가족문제 커질듯

    다음달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을까. 전문가들은 정상회담 자체가 남북대화 사상 가장 획기적인 이벤트인 만큼,어느정도 진일보한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정부의 한 관계자는“지난 85년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85년 적십자회담을 통한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 행사는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였다.85년 5월 남북은 ‘이산가족 및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에 합의,9월에 각 151명의 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방문,가족들과 만났다. 그러나 대규모 상봉 행사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그후론 중국 교포 등 비공식 루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현재 우리정부의 추진방침은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물론,우편물 교환소와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설치 등 제도적 장치까지 추진하고 있다. 판문점에 면회소를 설치하는 방안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매우 획기적이다.그러나 그만큼 북한측이 부담을 느껴 난색을 표할우려가 크다.때문에 85년의 경우처럼 고향방문단을 구성,서울과 평양을 상호방문하는 이벤트성 사업을 우선 추진하는게 더 홀가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자체가 전격적으로 성사됐듯 이산가족 문제 역시 양 정상간 만남에서 예상외의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전문가들은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있어 이산가족 상봉을 최우선 과제로 중시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적지않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한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경협을 적극 거론하면,북측도 이산가족 문제에 성의를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6월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잘 풀리더라도 구체적인 방법과 일정은 후속 실무회담에서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이산가족 협상일지. ●71년8월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첫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72년8월 남북적십자 1차 본회담에서 주소 및 생사확인,방문,상봉,서신거래,재결합 등 5개항 논의. ●85년9월 이산가족 및 예술공연단 서울·평양방문 가족 상봉. ●91년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산가족 서신거래,왕래,상봉,방문,재결합 실현 명시. ●99년6∼7월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 개최,이산가족 문제 협의.서해교전 등으로 무산.
  • 만수대의사당, 주요정치행사 단골 개최

    오는 6월 남북한 정상이 만나 한반도 현안 전반을 논의하는 회담장으론 만수대의사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숙소는 외국 귀빈들을 맞는 영빈관격인 백화원초대소,주 연회장은 인민문화궁전이 유력시 되고 있다. □만수대의사당 평양시 중심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격인 최고인민회의의 건물.84년 10월 건립됐다.지하 1층,지상 4층의 석조건물로 주요 정치행사와 외국국빈의 영접 등에 쓰인다.지난 98년 9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추대도이곳에서 이뤄졌다. 연회장시설도 갖추고 있어 회담직후 이곳에서 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백화원초대소 평양시 외곽인 대성구역 임흥동의 대동강변에 위치해 있는국빈급 외국손님의 영빈관.김일성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의 경내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은 불가능하다.통로로 연결된 3개의 건물이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전면에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대리석 복도와 기둥이 웅장함과 호화스러움을 더한다.지난 98년 경협논의를 위해 이곳에 묵고 있던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전격 방문하기도 했다.90∼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남측 숙소로 이용된 일도 있다.83년에 건립. □인민문화궁전 74년에 완공된뒤 국제회의 및 정치집회장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지상 4층의 3개 건물에 3,000석규모의 대회의실과 700석규모의 연회장 등 500개의 다용도 방이 있다.85년 남북적십자회담과 90∼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회담장소로 쓰였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 집무실인 노동당 본청사 건물에서 인접한 평양시내 중심부인 천리마거리 부근에 위치해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통신은 어떻게

    남북정상회담 대표단이 오는 6월 북한방문 기간중에 서울과 연락을 취하는방법은 4가지 정도다.서울∼평양간의 직통 및 위성전화,인편을 이용한 행낭수송 등이다.판문점 적십자연락사무소 직통전화를 이용하는 방안도 있다. 특히 위성전화를 휴대,대통령은 북한의 어느 방문지에서라도 서울 등 외부와 ‘핫라인’을 통해 즉각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다.대통령 일행이 머물게 되는 숙소,회담장 등에는 유선을 이용한 서울과의 직통전화가 개설된다.‘핫라인’을 통해 청와대는 물론,대통령 방북기간 동안 국정을 대행할 총리를 비롯해 서울에 남아있는 국방·안보관련 관계자와도 언제든 통화할 수있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직통전화는 평양∼판문점∼서울을 잇는 라인.과거 설치됐던 서울∼평양간의직통전화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복원가능한 서울∼평양간의 전화회선은 적십자 중앙기관간의 직통전화 2회선을 비롯해 24회선.현재 판문점 남측과 북측엔 적십자연락사무소 직통전화 2회선,대구∼평양 관제소 2회선 등 모두 4회선이 연락수단으로 가동되고 있다. 남북한은 이를 위해 지난 18일 실무절차합의서에서 “남측이 서울∼평양간직통전화 회선과 예비통신으로 위성통신망을 이용한다”고 합의했다. 전화외에도 인편을 통한 행낭의 전달을 통해 구체적인 지시사항과 결재문서등을 보낼 수 있다. 대표단은 체류기간동안 하루에 2회가량 행낭을 인편으로판문점까지 가지고 와서 이를 서울로 전달하게 된다. 이석우기자
  • 남북정상회담 D-23/ 참고할 전례·자료없어 고민

    “의전(儀典)에는 나름대로 베테랑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번엔 정말 긴장됩니다.잠이 잘 안옵니다” 남북 정상회담 실무절차 합의서가 타결되고 회담 준비가 본격화하면서 일선에서 행사를 준비할 의전 담당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의전팀의 고민은 참고할 전례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북한과의 특수성을감안할 때 통상적인 정상회담의 예를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게다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외국 정상과 공개리에 회담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참고자료라곤 딱히 없는 실정. 외국의 경우 현지 공관과 주재원들이 행사의 대부분을 준비하고 선발대는가서 점검만 하면 되는데,이번엔 그야말로 ‘밥 지어 상차리고 설거지까지도맡아 하는’ 격이다.이처럼 열악한 상황인데도 선발대 30명은 불과 북한파견 12일 동안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 의전팀은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공항 도착과 김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만찬행사 등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장면에 신경을 쓰고 있다.한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감안하면 사소한 실수 하나가 정상의 권위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100%의 완벽을 추구한다는 각오”라고 강조했다. 공항 도착은 북한에서의 첫 행사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예포발사와 국가연주 등 의례적인 의전이 생략될 가능성이 높아 의전팀은 북한이 어떤 ‘대체 행사’를 내놓을지 예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행사 도중 실무진들의 손발이 안맞아 대통령이 머뭇거리기라도 하는 날엔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의 대면은 가장 부담스런 장면이다.두 사람이 악수하는 위치와 걸음걸이 숫자,카메라 각도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두 정상이 마주보고 앉을지,나란히 앞을 보고 앉을지도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 한 관계자는 “북측이 자리배치와 표지물을 당초의 약속과 다르게 할 경우에 대비해 최소 2명의 우리측 요원을 1시간전부터 행사장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찬 행사에선 복장과 메뉴는 물론,건배 제의와 연설 순서 등도 체크해야할 항목이다.선발대는 평양 체류중 가급적 김 대통령이 묵을 숙소에서 직접숙식을 하며 불편한 점을 샅샅이 사전 체크한다는 방침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대표단 누가 포함되나. 누가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에 들어가나. 실무절차 합의서 타결에 따라 정부는 선발대를 비롯한 수행원 인선에 착수했다.수행원 130명 가운데 경호요원 50명을 제외한 빈자리는 80명.각 부처장관과 재계,사회단체의 평양행 티켓 확보경쟁이 뜨겁다. ◆정부측 수행원 공식수행원은 10명선.청와대에서 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정부에선 박재규(朴在圭)통일·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 등은 확고부동한 0순위다.이들중 2∼3명은 정상회담 보좌요원으로 회담장에 들어간다.박 통일장관은 현장진행을 위한 실무 사령탑을 맡는다.박 문화장관은 ‘4·8 베이징(北京) 정상회담 합의서’ 타결 주역이란 점이 고려됐다.박준영(朴晙瑩) 청와대 공보수석,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도 ‘대통령 행사’에 빼놓을 수 없다. ◆민간 수행원 신청자가 너무 많아 선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정원식(鄭元植)대한적십자사 총재,실향민을 대표한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송병준(宋秉俊) 대표의장,장치혁(張致赫) 전경련 대북경협위원장,강원룡(姜元龍) 통일고문회의 의장은 최우선 순위로 꼽힌다.경제단체장 등 경제계인사들은 대략 10명선으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선발대 선발대 단장은 양영식(梁榮植) 통일부 차관이 유력하다.기획단장과준비접촉 수석대표를 맡은 경험을 살려 일관성있게 준비절차를 마무리할 수있기 때문이다.실무진으론 의전 협의에는 양봉렬(梁峰烈) 청와대 의전국장,백영선(白暎善) 외교통상부 의전심의관,경호협의에는 구영태(具永太) 청와대경호처장 등이 먼저 평양땅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통신 분야에는 청와대·한국통신 관계자들이 참가한다. ◈수행이 확실한 인사. ◆청와대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박준영 공보수석. ◆정부 박재규 통일부장관,박지원 문화부장관,손상하 외교통상부 의전장(특1급). ◆관련 단체 정원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강원룡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의장,송병준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대표의장. ◆재계 장치혁 전경련 대북경협위원회 위원장. 이석우기자 swlee@
  • 이희호여사, 中 적십자사 총재 접견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팽페이운(彭佩云) 중국 적십자사 총재 일행을 접견하고 적십자사의 구호 활동과 여성문제 등에 관해 환담했다. 중국 최대 여성조직 전국 부녀연합회 주석을 겸임하고 있는 팽 총재는 대한적십자사의 초청으로 한·중 적십자사간 협력합의서 채택을 위해 방한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개성서 남북공동 釋奠大祭

    공자를 모시는 문묘의 전통 유교 의례인 석전대제(釋奠大祭)가 북한 개성의성균관에서 오는 9월 초 남북한 공동 주관으로 치러진다. 최창규(崔昌圭) 성균관장은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장재언(長在彦) 북한적십자사 총재와 양측 종교인평화회의 회장 모임을 갖고 오랜 기간 우리 문화를 지배해온 유교생활 문화의 만남을 통해 남북한간 동질성 회복을 앞당기기위해 이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를 위해 성균관 유생과 전통아악 연주자,각 종교 지도자 등 100여명이 북한을 방문,추계 석전대제(9월6일)를 집전한다.북한측도 관람 수준을 넘어 공동 진행한다. 최관장은 남한에는 서울의 조선시대 성균관과 360개 향교가,북한에는 개성의 고려시대 성균관과 120여개 향교가 각각 잘 보존돼 있으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에서만 치러지는 석전대제와 같은 의례문화는 북한에서는 사라져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4)적십자회담

    84년 9월8일 아침.한달 전 서울·경기 일원의 대홍수로 엄청난 수재민이 발생,복구 작업에 정신이 없었을 때였다.북한 적십자회는 ‘방송 통지문’을통해 쌀 50만석 등 수해지원 의사를 통보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해 다각적 검토에 착수했다.당시 정용석(鄭鎔碩·8∼10차 본회담 대표·단국대 교수) 한적 청소년자문위원은 “일각에선 북한의 대대적 체제선전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반대도 심했었다”며“그러나 경제적 자신감을 토대로 남북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뤘다”고 회고했다. 72년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성사를 위해 25차례의 예비회담에관여했던 이병웅(李柄雄)적십자남북교류위원장은 “결렬 직전까지 가는 숨가쁜 고비를 인내와 끈기로써 버텼다”고 회고했다. 남북대화의 물꼬는 이처럼 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터졌다.60년대 내내 대남강경책을 구사한 북한과 ‘선(先)건설 후(後)통일’을 견지한 박정희 정권사이에서 남북대화가 설 자리가 없었다.첫 신호탄은 70년 8월15일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던 ‘평화통일 구상’이었다.결실은 1년 후 71년 8월20일 판문점에서 첫 예비접촉을 통해 역사적 남북대화가 시작됐다. ■70년대/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은 72년 8월30일 평양 대동강 회관에서열렸다.남북은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실현 ▲이산가족의 서신왕래 ▲이산가족 재결합 ▲기타 인도적 해결문제 등의 5개항의 의제를 재확인했다.서울 2차회담에 이어 흥분이 가라앉은평양 3차 본회담(73년10월24일)부터는 남북간 견해차가 드러났다.북측은 “남한의 모든 법률적·사회적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며 정치적 색깔을 노골화했다.이후 거의 한달 간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 본회담(73년 7월11일)까지 지속됐지만 ‘반공활동 금지’를 공동성명에 넣자는 북측 요구로결렬,12년간의 동면에 들어갔다. ■80년대/ 84년 9월 남한 대홍수에 따른 북측의 수해물자 인도 제의에 따라돌파구가 마련됐다.북적은 남한 수재민에게 쌀 5만석 등을 제의했고 이를 계기로 8차 본회담이 5월27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열렸다.85년 9월,40년만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실현되는 쾌거를 이룩했다.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이 성사됐다. ■90년대/ 89년말에서 90년중반까지 제2차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공연 문제로 8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가졌다.하지만 북측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공연을 고집,아무 성과없이 중단됐다.92년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문제도 협의했지만 8차례 실무접촉이 무위로 끝났다. ■평가/ 적십자 회담은 출발부터 인도적·정치적 색채가 동시에 섞여있는 이중성격을 갖고 있었다.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 시작됐지만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권 유지에 활용하겠다는 남북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계산도 숨어있었다.정용석 교수는 “인도주의 정신은 남북간 긴장속에서 어렵게 남북대화를 지탱했지만 결국 정치적 결정력에 의해 좌우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당시 주역들. 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대변했던 남북 적십자 회담은 남북모두숱한 ‘통일 일꾼’들을 배출했다. 남한 대표들의 경우 이후 통일부 장·차관과 외무부장관 등으로 정권을 지탱하는 주요 축으로 활약했고 북한 대표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71년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던 예비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는 이범석(李範錫)당시 한적부총재였다.그는 이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다 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순직하기도 했다. 역시 대표로 활약했던 서영훈(徐英勳) 당시 한적 청소년부장은 그후 흥사단단장과 KBS사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말부터 민주당 대표로 정치권에서 맹활약중이다. 홍일점 대표였던 정희경(鄭喜卿) 당시 한적 청소년지도위원도 15대 전국구국회의원을 지냈다.7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자문위원을 지낸 박준규(朴浚圭) 당시 서울대교수는 그후 정치인으로 변신,8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의장에까지 올랐다. 8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수석대표였던 이영덕(李榮德) 한적부총재는 통일부총리로서 대북 통일 정책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통일부총리 이후 총리직도수행했다. 당시 대표였던 송영대(宋榮大) 한적구호협의회 위원은 대북창구로서 눈부신활약을 하다가 통일부 차관을 역임했다. 자문위원이었던 한승주(韓昇洲) 고려대교수는 문민정부에서 외무부장관으로4강외교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이다. 북한의 경우 80년대 모습을 드러낸 박영수 대표는 대남 강경파를 대표했던인물이다.94년에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70년대 자문위원으로 뛰었던 윤기복 당시 노동당 대외연락위부위원장은 81년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재직 이후 대남 사업을 주관하는 막강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북측 수석대표 또는 대표들은 이후 큰 활동없이은퇴,통일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일만기자
  • “비료 20만t 받겠다”

    북한 적십자회는 우리 정부가 지난 9일 통보한 비료 20만t 지원 계획을 받아들인다고 11일 밝혔다. 북한적십자회는 ‘위임에 의해 북측의 입장을 알린다’는 통지문에서 “남측 입장을 동포애와 인도주의의 표시로 쌍방의 이해와 협력을 도모하는데 유익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북한적십자회는 비료를 남포,해주,원산,흥남,청진항 등 5개 항구로 전달해줄 것을 희망했으며 비료수송을 위한 우리측 인원과 선박에 대해 신변안전및 모든 편의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
  • 판문점 적십자 연락관사무소 정상회담 준비접촉 창구로

    판문점 적십자 연락관사무소가 남북 정상회담 준비업무의 창구가 됐다. 4차 준비접촉 이후 남북한 당국이 9일 절차준비와 관련한 쟁점사항을 판문점 통로를 통해 논의해 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5차 접촉에 앞서 양측은 문서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판문점의 연락관사무소는 남북간 유일한 ‘핫 라인’이다.설치장소는 판문점 남측지역의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내.수신 및 발신전용 전화두대를 잇는 두 회선의 통신라인이 남북간 의사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적십자 연락관사무소를 잇는 전용전화를 제외하곤 남북 당국을 연결해주던직통전화는 현재 모두 끊어진 상태다.군사분계선 주변에 매설돼 있는 28개의통신회선 가운데 2회선만 이어져 있고 나머지는 북측이 끊었다. 70년대 서울∼평양 남북 직통전화 20회선,92년 연락사무소 설치에 따른 직통전화 2회선은 96년 ‘잠수함 사건’으로 모두 폐쇄됐다. 때문에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문제 등도 적십자 연락관 전화라는 통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9일 결정으로 적십자연락관 전화는시간약속 뿐아니라 준비절차의 세부 내용을 담은 남북 양측의 문서까지 전달하게 됐다.필요하다면 남북의 연락관들이 직접 만나 문서를 전달할 수도있다.이 경우에도 사전 통지는 직통전화를 이용한다. 양측은 이 직통전화를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어놓고 있다.오전 9시가 되면 양측 연락관들은 간단한 인사말을 교환하고 통신회선의 상태를확인한다.오후 4시가 되면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덕담과 함께 다음날 아침까지 전화를 잠시 폐쇄한다.이 통로를 통해 대한적십자사의 대북 지원관련 통보 등 남북간 의사를 소통하고 있다. 연락관들은 교대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10여년씩 판문점에 근무하는 담당자들도 적지않아 서로 친숙한 사이다.전화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있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현재 판문점 연락관으로는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실무절차 판문점 통해 논의

    남북한은 9일 전화접촉을 갖고 정상회담 실무절차를 판문점을 통해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관세 통일부대변인은 “통신‘경호 등 부문별 실무자 접촉을 병행하는 문제도 협의중”이라고 밝혀 실무절차 합의서 타결 전에라도 부문별 실무자 접촉을 시작하자는 북측 주장을 받아들일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4차로 중단된 준비접촉은 판문점 적십자 연락사무소의 직통전화와 연락관 접촉 등을 통해 계속되게 됐다. 정부 당국자는 “접촉은 10일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판문점에서 적십자 연락관의 남북 직통전화나 대북 서한 등의 교환으로 실무절차 논의가 매듭되면 양측이 5차접촉을 판문점에서 속개해 합의서에 서명, 발표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 전화통지문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고, 남측은 오후 판문점을 통한 실무절차 문제 토의 방안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실무절차 합의서 체결이 늦어질 경우 북측 주장대로 '선 부문별 실무자 접촉, 후 합의서 체결'방식으로 준비접촉이 진행될 가능성도배제할 수 없게됐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이날 판문점 적십자 연락관 접촉을 갖고 한국정부의 비료 20만톤 지원계획을 통보하는 정원식 총재 명의의 대북통지문을 북한 적십자회 장재언 위원장 앞으로 전달했다. 정 총재는 통지문에서 “6월중 수송을 완료할 계획으로 필요한 준비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이석우 김상연기자 swlee@
  • 기부문화 살찌우는 美 백만장자들

    미국 사회를 건강하게 일구는 ‘진짜’부자들은 누구일까. 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근 길거리의 깡통을 주워 팔고 무료 급식소 밥을 타 먹는 ‘검약’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엄청난 부를 사회에 환원,삶의의미를 찾는 일단의 백만장자들을 소개했다. '부자들의 생활방식과 검약'이란 제목의 칼럼 기사가 소개한 대표적인 경우는 지난해 10월 사망한 오리건주 메드포드의 고든 엘우드.극빈자용 식량배급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돈 때문에 전화도 놓지 않았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깡통과 유리병을 주워 돈을 모은 전형적인 ‘자린고비’.우량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뒤 꾸준히 보유한 덕분에 부자가 된 그는 79세로 사망하면서 900만 달러를 자신에게 무료로 음식을 줬던 적십자사와 구세군등 몇몇 기관에기부했다.자식들에게 돌아간 건 100만 달러가 고작.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에머 하우는 1달러 이상 팁을 줘본 적이 없는구두쇠.그러나 86년 세상을 뜨면서 전재산의 3분의2인 3,100만달러를 빈자와장애인들을 위해 희사했다. 시카고의 전직 여비서로연봉이 1만5,000달러를 넘은 적이 없는 미혼의 글래디스 홈은 주식투자로 모은 1,800만달러 전액을 한 아동병원에 희사,이 병원사상 최고의 기부자가 됐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출신의 어윈 유런은 3억달러 이상을 갖고있으면서도 변변한 집도 없이 모텔에서 기거했다.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생활한그는 3년전 버지니아주의 리스버그 마을에 100만달러를 기부했고 최근에도불우청소년과 동물보호기관 등에 수십만달러를 보냈다. 신문은 100만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미 가정이 880만가구로 10년전에 비해 2배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대부분의 부자들은 여유로운 상류층 생활을즐기면서 재산을 사회에 나눠주는게 일반적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적십자 지킴이’ 30년 봉사활동 한길

    대한적십자사(총재 鄭元植)는 어버이날이자 제95회 적십자의 날인 8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제5회 적십자 대축제를 열어 팔순을 넘긴 ‘적십자 지킴이’ 송술호옹(宋述鎬·82·대전시 서구 둔산동)에게 봉사원 대장(大章)을 수여했다. 송옹은 일제시절인 37년 철도종사원 양성소를 나와 33년 동안 철도원으로일하다가 69년 적십자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대전 계룡공고에서 철도법 강의를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계룡공고에서 강의를 하면서 교내적십자청년회(RCY)를 만들 결심으로 71년에는 철도직을 그만뒀다. 송옹이 만든 계룡공고 RCY는 10년 동안 대전역 광장 청소를 하면서 지역 적십자 활동의 활력소가 됐다.빈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 소년원생들의 갱생을 지원하는 등 많은 청소년들을 어버이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86년 계룡공고에서 퇴직한 뒤에는 대전 중앙로 헌혈의 집 상근을 자청,5년동안 근무했다. 적십자사 대전·충남지사 대덕상록회 안종식(安鐘植·62·여) 부회장은 “공원청소나 환경운동도 좋지만 참된 봉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송선생님이 깨우쳤다”면서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대로대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어려운 모든 이들의 벗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오늘 南北회담 4차준비접촉 비료20만t 월말부터 北送

    남북 정상회담 4차 준비접촉이 8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판문각’에서 열린다.남북은 이번 접촉에서 정상회담 실무절차 합의서의 미합의 내용에 대한 조율을 벌일 예정이어서 최종 타결여부가 주목된다. 접촉에선 의제의 표현방법,경협 등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의 지속적인별도 협의 여부,생방송,합의서 타결에 앞선 경호·통신 등 세부실무 접촉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준비접촉을 마무리한 뒤 10일쯤부터 판문점에서 경호·의전·통신등 세부 실무문제의 협의를 위한 실무자 접촉을 시작할 계획이다.또 2차례가량의 판문점 별도 접촉을 가진 뒤 분야별로 20여명 가량의 실무자를 평양현지로 파견,구체적인 협의를 벌일 예정이다. 합의서는 회담 형식을 비롯,왕래절차,대표단 규모,신변안전보장 등 14∼16항으로 구성될 전망이다.양측은 정상회담은 단독회담형식으로 두차례 이상갖고 항공 및 육로를 모두 이용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북한에 20만t(640억원 어치)의 비료를 조건없이 지원하기로 했으며오는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수송할 계획이라고 통일부 이관세(李寬世)대변인이 6일 발표했다. 이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고려,인도적·동포애적 차원에서비료를 지원키로 했다”면서 “지원규모는 정부 재원과 북한의 부족량 등을고려해 20만t으로 하고,농작물 파종 시기 등을 감안,6월 말까지 수송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9일쯤 북측에 이같은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보낼 방침이다. 지원비용은 통일부가 관리하는 남북협력기금에서 전액 충당하며,차관급 심의기구인 남북협력교류협의회가 대한적십자사에 위탁,농협으로부터 비료를 구매하는 형식을 취한다.비료 전달은 지난해처럼 서해 남포항과 해주항,동해흥남항과 청진항 등을 통해 선박으로 전달된다. 이석우 김상연기자 swlee@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2)7·4 남북공동성명

    지난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남과 북 당국이 분단 이후 만들어낸 첫 공식 합의문서였다.공동성명을 통해 천명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3개항은 이후 전개된 남북 대화와 합의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시대적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동서진영의 냉전은 1970년대에접어들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해빙 분위기는 한반도에도 전해져남·북 당국은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당시 남한의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3선에 성공한 뒤였다.또북한의 김일성(金日成·당시 수상)주석은 김정일(金正日)로의 후계 구도를모색하고 있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남북은 다시 대화를 중단하고 대결의 상태로돌아갔으며, 남북 양측 지도자의 내부 독재가 공고화되었다.의도적이든 아니든,7·4남북공동성명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김일성의김정일 후계 구도 확립에 이용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진 과정/ 1971년 11월20일 판문점에서 대한적십자사와 북한적십자사의 실무대표가 11차례에 걸쳐 비밀접촉을 했다.그 결과 이후락(李厚洛)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간 회담이 합의됐다.이어 72년 5월2일부터 3박4일간 이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주석,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각각 두차례 회담했다. 김영주를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5월29일부터 서울을 방문,박정희 대통령과 한 차례,이후락 부장과 두차례의 회담을 가졌다.그 결과 7월4일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됐다. ◆내용/ 7·4남북공동성명은 모두 7개항으로 구성돼 있다.제1항에서는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원칙을,제2항에서는 긴장상태 완화와 신뢰 분위기 조성을,제3항에서는 제반교류 실시를 천명하고 있다.제4장에서는남북적십자회담 성사를 위한 협조,제5장에서는 상설직통전화 설치,제6장은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의 합의를 명시했고,제7장에서는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다짐했다. ◆이행/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의 분단사를 통일사로 바꾸는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됐으나,발표되는 순간부터 성명문안에 대한 해석상의 의견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양측은 통일 3원칙에 관한 해석상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11월30일 각 5인의 대표로 구성되는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이에 따라 세차례에 걸쳐 남북조절위 본회의가 개최됐으나 73년 8월28일 북한이 중단을 일방 선언함으로써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도운기자 dawn@.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당시 주역들 뭘하나.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당시 남북의 주역들은 저마다 굴곡많은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다. 공동성명의 막후 연출자였던 당시 남북의 정상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은 지난 79년 김재규 전중정부장의 총탄세례로 서거했다.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합의 당시는 수상)도 지난 94년 심장마비로 근 반세기에 걸친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남측 조절위원장으로 스포라이트를 받았던 이후락(李厚洛) 당시 중정부장은일체의 언론접촉도 피한 채 경기 광주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은둔생활중이다.73년 ‘DJ(현 김대중대통령) 도쿄 납치극’ 배후조종 혐의로 해임당한 뒤한때 재기하기도 했으나 80년 ‘서울의 봄’ 이후 다시 추락했다. 조절위 북측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영주(金英柱)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은 한때후계 반열에도 올랐으나, 끝내 친조카인 현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밀렸다.98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공식 1인자에 등극하면서 2선으로 후퇴했다.최고인민회의 10기 제1차회의에서 신설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라는명목상의 감투만 쓰고 있다.김영주를 대리해 서울에 왔던 박성철 제2부수상도 명예부위원장이다. 지지부진한 남북적십자회담의 와중에 북한 차석대표 김덕현의 소맷자락을끌어 “따로 조용히 얘기하자”며 당국간 비밀회담을 이끌어냈던 정홍진씨도일선에서 물러났다.현재 송원장학재단이사장으로 육영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다른 조절위 남측 대표의 일원이었던 강인덕(康仁德) 당시 중정9국장은현재 일본에 체류중이다.‘국민의 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안정화에 기여했으나,부인이 옷로비사건에 휘말리면서 물러나 일본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에서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공동성명 합의과정에 참여했던 북측의 대화 1세대들도 대부분 일선에서 퇴역한 상태다.이 중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류장식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조절위 북측대변인이었던 전금철(全今哲)만이 지난 98년 베이징 남북차관급 비료회담의북측 대표로 건재를 과시했었다. 구본영기자 kby7@. *재조명 받는 '통일 3대원칙'.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7·4공동성명에 발표된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등 남북통일 3대원칙이 재조명받고 있다. 베이징 비공개 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꼬리표를 달았기 때문이다.즉 남과 북이 ‘역사적인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재확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앞서 91년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도 3대 원칙이 언급됐다.그러나 남북이 항상 그 정신에 따라 관계개선에탄력을 붙여온 것은 아니다.3원칙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한적이 더 많았다. 이는 3원칙 자체가 대단히 포괄적 개념이라는 점에 기인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평화통일을 위한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체제경쟁의 대상이라는 남북관계의 이중성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3원칙 중 ‘자주’에 대해서는 북측은 외세배격 논리로 연결시켜왔다. 즉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말은 북측은 이미 자주를 이뤘으니,이제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시켜 왔다. 북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3대 원칙을 달리 해석,회담을 유리하게 이끄는 지렛대로 삼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그러나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그러한 의도조차 타고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영기자
  • 박재규 통일장관,前 남북회담 대표들 의견 청취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이 2일 저녁 서울 조선호텔에서 과거 남북회담대표를 지낸 전문가 10명을 초청,만찬을 함께 하며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의견을 들었다. 이날 만찬에는 지난 94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정상회담 예비접촉 대표였던 정종욱(鄭鍾旭)전 주중대사를 비롯,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차관(98년차관급회담 대표),장충식(張忠植)단국대 이사장(체육회담 대표) 등이 참석,남북회담에 대한 경험담을 비롯,정상회담에 대한 각계의 의견과 주문사항을전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모임은 각계 각층의 협력과 지지속에 정상회담을이끌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라며 “박장관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직접 수렴하는 자리를 계속 가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모임에는 또 이병웅(李炳雄)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위원장(적십자회담 대표),김태서(金泰瑞) 극동문제연구소장,홍승길(洪承吉) 관동대 북한학과 객원교수,구본태(具本泰)전 남북대화사무국장,송영대(宋榮大)전 통일원차관 등이참석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오늘 정상회담 준비접촉

    남북한은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의 준비를위한 두번째 준비접촉을 갖는다. 이날 접촉에서 북측은 지난 22일 첫 접촉에서 남측이 제시한 의제 및 절차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특히 이산가족문제,경협,당국간 대화상설화,평화공존방안 등 첫 접촉에서제시된 베를린선언의 4대과제를 의제로 채택하는 문제에 대한 의사를 밝힐것으로 보인다.경호·의전·통신분야와 경제협력 문제를 각각 별도 실무협의에서 의논하자는 제의에 대한 반응 여부도 주목된다. 이에 앞서 남북한은 26일 오전 판문점에서 적십자연락관 접촉을 갖고 2차준비접촉에 앞서 북측지역에 들어갈 기자단을 포함한 남측 대표단 규모와 회담 세부 절차를 협의했다고 통일부 이관세(李寬世)대변인이 밝혔다. 이석우기자 swlee@
  • 정상회담 공동성명 발표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는 공동성명으로 발표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지난 22일 판문점 준비접촉에서 이같은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24일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방문에이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의사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내용도 포함시킬 것을 실무접촉에서 북측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공동성명안에는 베를린선언의 4대 과제에 대한 남북의 합의내용도 포함시키자는 의사도 함께 전달됐다면서 이같은 내용은 사전에 양측이 합의해야한다고 이 당국자는 확인했다. 한편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의 신속한 진전을 위해 별도의 실무 접촉을 갖자고 북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측은 지난 22일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오는 27일 2차 접촉때 남측제안에 대한 북측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측은 이날 “실무접촉에서는 다루기 벅찬 문제들이 있다”면서 준비접촉이 실무차원의 만남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반응이 주목된다. 한편정부는 오는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리는 제2차 준비접촉을 위해 판문점 적십자연락관 접촉을 26일 갖는다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sw
  • 조소앙선생등 월·납북인사 6명 사망일자·묘소 첫 확인

    한국전쟁 중 월·납북된 임정요인 등 저명인사 중 그동안 생사가 알려지지않은 일부 인사들의 사망일자와 장소,최후의 모습 등이 새로 밝혀졌다.이같은 사실은 본지 신준영 기자가 이 달초 방북,조소앙 선생의 비서출신으로 조선생 등 남측인사들의 북행 당시 이들과 동행했던 김흥곤씨(76·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고문)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확인됐다.그동안 월·납북인사들의최후가 더러 알려지기는 했으나 북한현지에서 당시 관계자의 증언으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에 따르면,조소앙 선생은 58년 9월 10일 평양시내 남포병원에서 학질로타계했으며, 김규식 선생은 50년 12월 10일 만포 적십자병원에서,조완구 선생은 54년 10월 27일 평양시내 자택에서 타계한 것으로 각각 확인됐다.이밖에 독립운동가 출신의 유동열·김의한·송호성 등의 최후도 확인됐다.이외에도 현상윤 전고려대 총장,백관수 전동아일보 사장을 비롯,제헌의원 강욱중씨(경남 함안)의 사망경위·장소,묘소 등도 확인됐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운(41) 편사연구사는 “현상윤,백관수,송호성,김의한 등의 사망일자·경위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남북 대표단 면모

    *남측 대표단 면모. 정상회담 준비접촉 대표단은 남북 현안을 꿰뚫고 있는 ‘대화 전문가’들이다.단순 실무절차뿐 아니라 남북한 현안 전체를 논의·조정,두 정상이 협의해야 할 의제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측 대표는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을 비롯,손인교(孫仁敎)남북회담사무국장,서영교(徐永敎)통일부국장 등 3명으로 짜여졌다. 이들 대표 3명은 지난해 베이징(北京)차관급회담에서도 수석대표와 대표,비공개 접촉자로 함께 일해 팀플레이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양차관은 지난해 6월 베이징 차관급회담때도 수석대표를 맡은 북한통이다.85년 반둥회의,93년 미국버클리대 초청 ‘남북 통일토론회’때도 정부대표로나서 북측을 상대했다. 양차관은 정상회담 준비실무를 총괄하고 회담전략을 수립하는 준비기획단장도 겸하고 있다.72년 통일원에 들어온 뒤 28년 동안 통일부 대변인·정책실장·교육원장·민족통일연구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손인교 남북회담사무국장은 대화업무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회담전문가.92년 판문점에설치됐던 남북연락사무소 초대소장을 맡기도 했다.지난해 베이징 비공개 차관급회담에 참가,6·3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북측과의 회담에 직접 참여한 남북 회담통이다. 남북대화사무국 회담 운영부장·연락부장·기획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4년정상회담 준비때에는 회담협력관으로 실무업무를 맡은 경력이 있어 정상회담의 준비사항에도 정통하다. 서영교 통일부 국장은 98년 베이징에서 열린 차관급회담에 이어 이번에 다시 정부대표단에 뽑혔다.북한 사정에 밝아 역대 회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다. 두둑한 뱃심에 실무에 밝다. 이석우기자. *북측 대표단 면모. 북한측 대표단의 수석대표인 김령성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참사로 차관급.우리에게 낯설지만 90년대초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교류협력분과위에 참여,남북 경제협력에 식견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수석대표 발탁은 다소 의외지만 남북교류협력의 틀을 만드는 데 참여해 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교류협력의 틀을 구성하는데 북측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한다. 92년 고위급회담 실무접촉 때부터 남북접촉의 실무자로 전면에 나왔다.92년1월 남북 기본합의서 구성ㆍ운영 및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운영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에서 대표를 맡았다. 92년 5월 제7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간중 교류협력분과위원장 접촉때는 수행원으로 참석했다.92년 7∼9월 제6·7차 남북교류협력분위 위원,같은 해 9월제8차 고위급 회담기간중 교류협력분과 위원장간 접촉대표로 활동했다. 98년 3월에는 제5차 식량지원 협의를 위한 남북적십자 대표 베이징 접촉에대표로 참여,매끄럽게 일을 마무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9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소재)에서 열린 ‘코리아평화 통일심포지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사회정치학 연구실장 자격으로 참가한 바 있다. 김참사가 수석대표를 맡은 것은 베를린선언에 따른 남북 당국간 경제협력방안과 이를 위한 기본합의서 이행 문제가 의제로 대두될 것이라는 북측 내부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과 귄민 조선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참사는 대표적인 대남 일꾼.모두 지난해 베이징 차관급회담때 박영수 수석대표를 보좌해 대표로 참여했다.최부장은 85년 5월 북한의 예술단·고향방문단을 수행하고 서울을 방문한 바 있고 85년 12월 남북적십자 회담에 참여,서울을 방문했다.남북공동위 위원으로 역시 남북교류협력 분야의 전문가다. 권민 아태평화위 참사는 베이징에서 활동하며 한국기업인 등과도 폭넓은 교분을 갖고 있고 각종 남북회담에 참여한 회담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석우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