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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가 50달러시대-긴급 현장점검] (상)中企 제조업체 르포

    [유가 50달러시대-긴급 현장점검] (상)中企 제조업체 르포

    지난 17일 오후 인천시 서구 P아스콘업체.공장 가동이 중단된 채 주변은 빈 대형 덤프트럭으로 넘쳐났다.아스콘(도로포장재) 특유의 기름 냄새가 없었다면 아스팔트 믹싱 플랜트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야적장에 아스콘 원료 중의 하나인 골재와 석분(돌가루)이 수북하게 쌓여 있을 뿐 인적이 뜸해 적막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하루 8시간 가동해 200t의 아스콘을 생산해야 하지만 유가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으로 하루 평균 3시간만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오늘은 날씨마저 궂어 아예 공장 가동을 중단했습니다.”(백승기 작업반장) 석유값이 ℓ당 1000원을 웃돌아 운송비가 장난이 아닙니다.연초보다 평균 10% 이상 늘었습니다.그렇다고 운송비를 안 올려주면 차주들이 자재와 아스콘을 날라주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죠.”(김기주 공장장) 이 회사의 올해 공장가동률은 지난해보다 44%가량 줄었다.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원료가 부담이 크게 가중된 탓이다.여기에 미수금마저 불어나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성진(53) 사장은 “유가·운송비 상승으로 생산원가가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었지만 아스콘 단가는 10년째 t당 3만 6000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면서 “팔면 팔수록 밑지는 장사이지만 자금 회전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출이 크게 줄어 지난해 40억원에서 올해는 30억원을 겨우 넘길 전망이다. 이 사장은 “인천지역 아스콘업계 관계자끼리 모이면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튀어나온다.”고 소개한 뒤 “특별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유가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국제 유가의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한국경제의 ‘허리’인 ‘굴뚝업종’이 흔들리고 있다.특히 고유가 민감업종인 아스콘업체와 자동차부품업체 등 중소업체들은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아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경기도 하남시 아스콘 생산업체인 공영사의 김종하(45) 사장은 “아스콘 생산 연료비가 추가로 들어가면서 채산성이 그만큼 악화됐다.”며 “연료가가 더 오르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에게는 요즘 공장가동 시간 단축에 따른 자금난도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지난해는 총 227일가량 공장을 돌렸지만 올해는 100일도 가동하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다.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고 했다.게다가 유가가 더 오를 경우 연말에는 자금 사정이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경기도 파주의 식품용기업체인 G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3800평 규모의 플라스틱공장은 하루 30t 규모의 식품 용기를 생산했지만 지난달 이후 유가 급등에 따른 원자재가 인상으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또 원자재 창고에는 보통 30일분의 폴리스틸렌을 비축해 오다 최근에는 1주일치로 대폭 줄였다.올해 매출액은 지난해 100억원의 60% 수준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덕순(48) 사장은 “t당 폴리스틸렌 가격은 지난해 말 110만원에서 이달에는 190만원대로 껑충 뛰었다.”면서 “자금 사정을 감안하다 보니 원자재 비축량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시트벨트와 계기판 보드를 생산하고 있는 경기 화성의 자동차부품업체 K사.기아차와 쌍용차 등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데 철강류와 플라스틱류,화학제품 등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구매담당자인 이철기(44) 부장은 “지난해 말보다 철강제품의 가격이 30% 올랐고,플라스틱 제품도 10% 정도 오르는 등 원자재가격 상승이 20∼30%에 이르지만 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업체에서는 5∼10%밖에 인상분을 반영해 주지 않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우리가 원자재 공급을 받는 곳이나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곳이나 그들의 가격 결정이 곧 ‘법’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우리가 제품을 납품하는 자동차업체도 내수 불황으로 자동차가격 인상이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결국 부품업체들이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의 또 다른 자동차 부품업체 S사도 같은 처지다.주차브레이크,브레이크 레버,기어변속레버를 GM대우 등에 납품하는 이 회사는 철강제품과 플라스틱 제품 등 원자재를 대부분 쓰고 있다. 서상렬(54) 공장장은 “원가 상승으로 인한 제품가격 압박요인이 커지고 있는데도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계속 거래처로부터 일감을 공급받고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가 상승분의 일정부분을 손해 봐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또 “원가상승도 문제이지만 내수 침체로 자동차 자체가 잘 안 팔리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면서 “앞으로 원자재가격 상승이 계속된다면 부품업체들은 적자 생산을 해야 하고,도산하는 곳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 하남 화성 김성곤 최광숙 김경두기자 sunggone@seoul.co.kr
  • 영화 ‘남극일기’ 촬영현장을 찾아

    영화 ‘남극일기’ 촬영현장을 찾아

    지난 9일 오전 영화 ‘남극일기’(제작 싸이더스,감독 임필성)의 원정촬영이 한창인 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의 스노 팜.세계적 휴양도시 퀸스타운에서도 꼬박 한 시간여 차로 달려야 닿는 해발 1700m 오지의 설원(雪園)이 주인공 송강호의 쩌렁쩌렁한 고함소리에 적막에서 깨어난다. “움직이지 마!” 송강호의 극중 역할은 5명의 대원을 이끈 남극 탐험대장 최도형.크레바스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 대원과 그를 둘러싼 나머지 대원들을 향해 동작정지를 명령하는 장면이다.거듭 NG가 나는데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다.감독과 호흡이 척척 맞는다.“감독님,이건 어때? ‘그만! 움직이지 마!’라고 하면 더 나을 것 같은데…”(송강호) “강호형,흥분된 호흡이 나와야 하는데,그런 느낌이 없어.자,다시 한번 갑시다! 레디,사운드,액션!”(감독) ‘남극일기’는 6명의 남극 탐험대원들이 원인모를 바이러스와 사투하는 줄거리의 미스터리 스릴러.송강호와 유지태의 앙상블 연기가 일찍이 큰 기대를 모아왔다.제작진이 스노 팜에 도착한 건 지난달 5일.한 달이 넘도록 설원에 ‘고립’된 채 촬영에 매달려온 셈이다.“어떤 날은 하루에 서너번씩 날씨가 변덕을 부려요.눈보라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화이트 아웃’에 묶여 몇시간씩 꼼짝 못하기도 하고요.” 송강호는 “남극탐험의 실제 경험이 있는 박영석 대장이 옆에서 일일이 현장지도해준 덕분에 적응이 빨랐다.”고 귀띔했다.그는 최근작 ‘효자동 이발사’가 개봉된 직후 곧바로 이 영화에 뛰어들었다.고생이 불보듯 뻔한,국내에서는 흥행성이 검증되지 않은 산악영화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K2’ ‘버티칼 리미트’류의 흔한 산악액션이었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남극이라는 극한 환경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된 데다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드라마가 마음을 끌었다.”고 설명했다. 끝없는 설산(雪山)으로만 채워지는 영화는 자칫 규모만 살아있는 단조로운 드라마에 그칠 위험성도 있어보인다.하지만 영화의 독특한 작품성을 믿고 있기는 유지태도 마찬가지다.탐험길에 처음 나선 막내 대원 민재 역의 그는 “‘올드보이’를 찍기 전부터 일찌감치 출연을 결정했다.”며 “단순한 배경 덕분에 오히려 더욱 밀도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두 톱스타의 각오는 시작부터 대단했다.둘 모두 등반 경험 한번 없었던 터라 산악인에 걸맞은 체력다지기는 기본.150㎏이 넘는 육중한 산악썰매에 사람을 태워 끌고다니는 맹연습을 거쳤다.“생각보다 운동신경이 느려 스노보드 한번 타본 적 없는데다 고글(안경)도 처음 써봤다.”며 웃는 유지태는 “극한상황에 고립돼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캐릭터를 위해 꾸준히 살을 빼야 하는 게 숙제”라고 했다.‘올드보이’를 찍을 무렵 102㎏까지 살을 찌웠던 그는 체중감량을 위해 요즘 술,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가족들과 이렇게 멀리,오랫동안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라는 송강호도 낯선 이국땅에서 외로운 다이어트 중이다.“남극정복의 목표를 향해 모든 걸 다 버리는,광기에 사로잡힌 탐험대장 캐릭터는 어쩌면 그 자체가 공포죠.자신의 목표를 위해 대원들을 일방적으로 내모는 도형의 캐릭터가 시간이 갈수록 흥미로워요.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광기에 떠는지 똑부러진 해답을 내놓은 시나리오였다면 재미없었을 겁니다.제 연기는 그 답을 찾아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인 거죠.” 매일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해가 넘어가는 오후 5시까지 촬영에 빠져있는 게 이들의 일과다.뉴질랜드 촬영분은 전체 영화의 약 55%.“현지 스태프들과 축구 한 게임을 했을 뿐 일요일마다 밀린 빨래를 하는 게 일”이라는 송강호와 그의 ‘남극 팀’은 오는 24일쯤 한국으로 돌아온다.내년 설 개봉 예정. 뉴질랜드 퀸스타운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어떤영화?-눈보라속 하루12시간 “액션” 임필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극일기’는 국내 처음 시도되는 산악 미스터리 스릴러.등반의 위기상황을 스펙터클 화면에 버무린 할리우드 산악액션들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변화와 미스터리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참신한 접근으로 눈길을 끈다. 세계 최초로 무보급 남극탐험에 나선 대원 6명의 목표는 남극의 ‘도달불능점’(남극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지점으로,1958년 소련탐험대가 유일하게 정복)을 밟는 것.행군 중인 대원들이 눈 속에서 80년 전 영국탐험대가 남긴 일기를 발견하고,그날 이후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사건들과 맞닥뜨린다. 크랭크인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로도 충무로에 소문이 짜하다.남극 다큐멘터리에서 우연히 영감을 얻은 임 감독이 영화를 기획한 것은 1999년.낯선 장르라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해 5년여를 기다렸던 셈이다.현지 제작발표회에서 감독은 “복합장르로 아주 독특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순수 제작비만 65억원(마케팅 포함 80억원).‘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로듀서,특수효과,미니어처 슈퍼바이저로 참여했던 뉴질랜드 스태프들이 대거 참여해 화제다.시나리오는 감독이 직접 썼다.임 감독은 ‘소년기’ ‘베이비’ 등의 단편으로 각종 세계영화제에서 주목받아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여긴 몰랐지? 조용하게 休~할만한 곳

    여긴 몰랐지? 조용하게 休~할만한 곳

    ‘어휴,올핸 얼마나 막힐까.어디 쾌적한 피서지 없나?’휴가를 떠나기 전 항상 겪게 되는 고민이다.피서가 절정인 요즘 바다를 찾아 남·동·서해안으로 떠나는 피서행렬을 보면 기부터 질리게 마련.이번엔 아예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보면 어떨까.동북쪽에 있는 강원도 철원,화천 지역으로 눈을 돌려봄직하다.피서철임에도 사람 구경하기 어려울 만큼 한적한 청정지대가 많다.그중 화천의 만산동계곡과 철원의 복주산 휴양림을 안내한다. 철원·화천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화천-만산동계곡 정말 차다.온세상이 찜통이지만 이곳은 사방에 냉풍기를 틀어놓은 듯,그야말로 별천지다.푹 파인 협곡 모양의 계곡은 양 옆으로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터널을 이룬다. “아빠,나하고 누가 물에 오래 있나 시합해.내가 오빠는 이겼어.”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지은이는 파랗게 변한 입술을 떨면서도 아빠에게 도전장을 내민다.물 밖에 가만히 있어도 서늘한 판에,얼음처럼 찬 물에 들어가야 하다니.귀여운 딸의 도전을 뿌리치지 못해 발을 담그는 아빠의 표정은 벌써 얼었다. 물놀이와 함께 만산동계곡에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산천어를 잡기에 여념이 없다.8월15일까지 열리는 ‘물의 나라 화천 쪽배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섭씨 15도 이하의 수온에서만 산다는 산천어가 계곡에 득실거린다.자생은 아니고,화천군측에서 이번 행사를 위해 풀어놓은 것들이다.족대를 들고 뛰어 들었다.아이 팔뚝만한 산천어가 눈앞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지만 좀처럼 걸려들지 않는다. “맨손으로 잡는 게 더 나아요.족대는 여러명이 포위하지 않으면 잡기 어려워요.” 축제 실무책임자인 화천군문화원 정종선 사무국장이 보다못해 끼어들어 맨손으로 잡는 요령을 일러준다.그의 말대로 큰 돌 아래 구석구석으로 손을 넣으니 무언가 미끌미끌한 것이 손끝에 감지된다.산천어다.물고기는 돌 안쪽으로만 자꾸 기어들어간다.몸통을 꽉 잡았다 싶었는데 이내 미끄러져나가기를 서너번.먼저 눈을 가린 뒤 몸통을 잡아야 한다고 정씨가 가르쳐준다.그대로 하자 마치 고삐 잡힌 소가 따라오듯 물고기가 딸려나온다. 계곡은 산천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너댓군데를 그물로 막아놓았다.그중 맨 위쪽에선 가짜 미끼를 사용하는 루어 낚시로 산천어를 낚을 수 있다. 자신이 잡은 산천어는 굽거나 회로 먹을 수 있다.물가 옆으로 화덕과 숯,석쇠가 준비되어 있다.소금을 뿌려 구워 먹어보니 쫄깃하면서 구수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물놀이하던 아이들도 한기가 느껴지면 화덕 주위에 쪼르르 몰려들어 산천어 파티에 동참한다.회도 원하는 만큼 떠준다.산천어는 마음껏 잡고,잡은 것은 모두 먹을 수 있지만 갖고 나갈 수는 없다. 입장료는 어른 1만 5000원,어린이 1만원.식사(산채비빔밥)도 포함된 가격이다.또 계곡 한편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계속 찌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갖다 먹을 수 있다. 축제가 열리는 계곡 인근 붕어섬에도 가보자.춘천댐 건설로 생긴 붕어 모양의 이 섬에선 무료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카누와 쪽배 타기.누구나 약간의 강습만 받으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배를 타고 나가 즐길 수 있다.아이들이나 연인들이 특히 좋아한다.황토염색과 봉숭아 물들이기도 인기 코스. 섬은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줘 돗자리를 펴고 쉬기에 안성맞춤이다.군데군데 가족들이 먹을거리를 꺼내놓고 쉬는 모습이 평화롭다.자전거도 준비되어 있어 언제든지 빌려 섬을 돌아볼 수 있다. 매력적인 것은 붕어섬내의 모든 체험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점.군 관계자는 “화천 관광을 활성화하고,화천 알리기 차원에서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며 “화천에선 언제든지 쾌적하고 저렴한 피서가 보장된다.”고 자랑했다. ■철원-복주산 휴양림 일단 복주산이란 낯선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그래,여행기자인 내게 낯설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모르지 않겠는가.’ 한적한 피서지를 찾기 위해 찾아간 복주산 휴양림은 과연 피서철이 절정에 달했음에도 입구에서부터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1998년 개장한 복주산 휴양림은 인근에 대형 관광지가 없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 휴가를 즐기기에 딱 좋다.휴양림 입구에서 정상(1157m)까지는 아직 완전하게 등산로가 조성돼 있지 않다.그래서 능선 중간쯤에서 용탕골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돌아내려와야 한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이 오장육부를 씻어주는듯 시원하다.탐스럽게 익어가는 산딸기,함초롬히 피어있는 야생화들은 오랜만에 찾아든 손님에게 말을 거는듯 고개를 까딱거린다.올 장마엔 비가 많이 와선지 참나무숲 아래는 버섯 천지다.낙옆을 헤치고 봉곳이 머리를 내민 모습이 마냥 정겹다.1시간30분 소요.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싶으면 휴양림에서 용탕골계곡을 따라 난 산책로가 좋다.휴양림 입구부터 천천히 계곡을 돌아내려오는데 30분 쯤 걸린다. 계곡 입구엔 물놀이장이 있다.야트막한 폭포 아래 소를 이룬 천연 풀장.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를 둔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다.마침 휴가를 온 가족인듯 아빠와 아들,딸 셋이서 물장난을 치고 있다.납작한 돌을 잡아 물수제비 뜨기 시합을 하는 아빠와 아이들.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계곡의 천연풀장은 이날 이들의 독차지였다. 계곡에선 취사 금지.하지만 숙박용 산림휴양관 앞마당에 화덕과 석쇠가 마련돼 있어,숯과 고기만 사가면 바비큐를 해먹을 수도 있다.입장료 2000원,주차료 3000원. 시간이 나면 휴양림에서 신철원 방면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순담계곡과 고석정,직탕폭포에도 들러보자.특히 고석정은 거대한 암벽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 절경의 결정판으로 꼽히는 곳이다.낚시와 보트도 즐길 수 있다. ●가는 길 만산동계곡 경춘국도인 46번 도로를 타고 가평을 거쳐 의암교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해 403번 도로를 탄다.의암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계속 직진하면 춘천댐이 나오고 5번도로와 만난다.직진해 말고개터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붕어섬이 나오고,계속 직진하면 만산동계곡과 이어진다.서울 동북지역에서 2시간30분 소요. 복주산휴양림 43번 국도를 타고 포천을 거쳐가야 한다.일동,이동을 지나 서면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해 56번 도로를 타면 잠곡리에 이르러 휴양림 진입로가 나온다. ●묵을곳 만산동계곡의 경우 인근 화천읍내 민박이나 여관에 묵는 게 편하다.여관은 강원장여관(033-442-7030),녹원파크(442-6161),덕성파크(442-2204)·민박은 김상조(442-2660)이순일(442-3995)황만근(441-0035)씨 등이 있다. 붕어섬내 야영도 고려해볼 만하다.축제 주최측에서 야영용 천막을 여러개 설치해 놓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복주산휴양림엔 숙박용 산림휴양관(10실)이 있으나,8월 중순까지는 예약이 이미 끝난 상태.따라서 휴양림 인근 잠곡리의 매일민박(033-458-4494),누에마을(458-1206) 등을 이용하면 된다. ●먹을거리 화천 만산동계곡에선 직접 잡은 산천어만 먹어도 배부르다.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며 출출해지면 물가로 나와 직접 숯불 화덕에 굽거나,주최측이 떠준 회를 먹을 수 있다.인근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산천어회의 경우 1㎏에 3만원 정도 한다. 붕어섬에선 화천읍내 식당 주방장들이 차린 먹을거리장터를 이용하면 된다.주요메뉴는 콩국수와 막국수,산천어회덮밥.이중 산천어회덮밥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화천의 별미다.육질이 상당히 부드럽다.씹히는 맛이 적다는 평도 듣지만 그래도 가장 잘 나가는 인기메뉴다. 철원에선 갈말읍(신철원)에서 숯불 화로구이 맛을 보자.문혜사거리 농협 맞은편의 ‘돈대감숯불화로구이’(033-452-9295)가 유명하다.쇠고기,돼지고기를 재료로 몇가지 메뉴가 있는네,그중 고추장 양념을 삽겹살에 발라 굽는 ‘고추장 삽겹살 화로구이’가 먹을 만하다. 여행 관련 문의 화천군청 문화관광과(033-440-2561),축제안내(441-7575).복주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458-9426),철원군청 관광경제과(450-5365).
  • 휴식도 재테크…섬으로 떠나요

    휴식도 재테크…섬으로 떠나요

    주5일제를 맞아 휴식도 하나의 재테크다.잘 쉬어 재충전하면 그만큼 일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섬테크를 끝내고 이번 주부터 여름휴가철을 맞아 인천연안의 피서지가 될 수 있는 섬을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주문도,아차도,볼음도는 강화군의 숨겨진 섬이다.강화도와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너머에 아기자기한 섬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유명한 관광지가 있느냐고 물으면 딱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갯마을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성수기에도 3만원이면 민박 가능 주문도 뒷장술해수욕장은 해변이 1.5㎞ 가량 곧게 뻗어 있어 해변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물이 빠지면 갯놀이장으로 변해 갯벌에 나가 게·가무락·바지락 등을 잡을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호미로 두세시간 조개를 캐면 찌게거리는 충분하다.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에는 2㎞가량 떨어진 무인도인 분점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이곳에는 인천 연안에서 보기 드문 어패류인 상합이 모습을 드러낸다.백사장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면 무인등대가 나타난다. 백사장 뒤편에는 굵은 소나무들이 1㎞ 가량 사열하듯 서있는데 텐트를 치기에 적합하다.이 해수욕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입장료가 없으며 민박은 성수기에도 3만원일 정도로 저렴하다. 인근에 있는 대빈창해수욕장은 모래와 함께 크고 작은 돌무리가 잔뜩 쌓여 있는 조약돌밭이다.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에 거칠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전해온다.이곳 역시 물이 빠지면 갯놀이하기에 좋으나 텐트 칠 곳이 마땅치 않다.대빈창은 조선시대에 외국사신을 영접했던 ‘대변청’이 있던 곳이다. 진말에 있는 사꾸지해변은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광대한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 데다 양식장 등이 있어 생태탐험장으로 적절하다.썰물 때는 갯벌이 최대 3㎞까지 드러난다.인근 마을에 있는 서도중앙교회는 1923년 건립된 유서 깊은 감리교회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해마다 여름성경학교를 펼쳐 많은 학생들이 찾는다.이곳은 구한 말 영국 성공회 신부들이 최초로 포교활동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자연산 농어·우럭 군침이 저절로 주문도에서 북서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아차도는 옛날에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승천하는 도중 임신한 여자를 보고 ‘아차’하는 순간 바다로 떨어져 섬이 됐다는 데서 유래됐다.24가구만이 거주하고 1시간이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섬은 그야말로 아무 생각없이 섬생활의 적막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민박도 간판을 내걸고 숙박료를 받는 곳은 없다.그저 빈방이 있으면 찾아온 사람에게 내주는 식이어서 본래 의미의 민박이라 할 수 있다. 숙박료는 알아서 주어야 하는데 겁낼 필요는 없다.2만원 정도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식당도 없는데 생선회를 먹고 싶으면 그날 낚시나 그물로 우럭·농어·놀래미 등을 잡은 주민을 수소문해 민원(?)을 넣어야 한다.주인이 직접 뜬 회는 거칠고 양념이라야 고추장과 상추·마늘이 고작이지만 자연산이어서 맛이 기막히다.혹시 양식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이곳에서는 오히려 양식 생선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회값 역시 알아서 줘야 하는데 1㎏ 기준으로 3만원을 주면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다. ●주민등록증 반드시 지참해야 볼음도는 ‘새들의 섬’답게 일년 내내 새를 볼 수 있다.논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두루미·저어새나 갯벌에서 철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안쪽으로 들어오면 섬이라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산으로 둘러싸이고 논도 많다.잠자리가 날아다니고 풀벌레가 우는 들녘을 거닐면 시골에 온 것 같은 푸근한 기분이 들지만 조금만 걸어나가면 바다다. 이곳에서는 경운기가 요긴한 교통수단인데 조개를 캐러 먼 갯벌로 나가는 주민의 경운기를 얻어 타고 적당한 곳에 내려 갯놀이를 하는 재미는 유별나다. 조갯골해수욕장의 모래는 스펀지를 깔아놓은 듯 폭신폭신해 강화 최고의 모래사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마을 위에는 10만평 규모의 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가물치,붕어,메기 등 토종 어종이 많이 서식해 한번 손맛을 본 낚시꾼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이들 섬은 모두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강화도 외포리서 1시간 남짓 일단 48번 국도를 통해 강화도 외포리까지 간 뒤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한다.배는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 2차례 출발하는데 볼음도(1시간 10분)-아차도(1시간 30분)-주문도(1시간 40분) 순으로 운항한다.주문도 출발은 오전 7시와 오후 2시다. 운임은 볼음도 5300원,아차도 6000원,주문도 6200원이다.차량은 3개 섬 동일하게 배기량 1500㏄까지는 2만 5000원,그 이상은 3만 5000원이며 운전자 요금은 별도로 받지 않는다. 강화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휴식도 재테크…섬으로 떠나요

    주5일제를 맞아 휴식도 하나의 재테크다.잘 쉬어 재충전하면 그만큼 일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섬테크를 끝내고 이번 주부터 여름휴가철을 맞아 인천연안의 피서지가 될 수 있는 섬을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주문도,아차도,볼음도는 강화군의 숨겨진 섬이다.강화도와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너머에 아기자기한 섬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유명한 관광지가 있느냐고 물으면 딱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갯마을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성수기에도 3만원이면 민박 가능 주문도 뒷장술해수욕장은 해변이 1.5㎞ 가량 곧게 뻗어 있어 해변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물이 빠지면 갯놀이장으로 변해 갯벌에 나가 게·가무락·바지락 등을 잡을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호미로 두세시간 조개를 캐면 찌게거리는 충분하다.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에는 2㎞가량 떨어진 무인도인 분점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이곳에는 인천 연안에서 보기 드문 어패류인 상합이 모습을 드러낸다.백사장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면 무인등대가 나타난다. 백사장 뒤편에는 굵은 소나무들이 1㎞ 가량 사열하듯 서있는데 텐트를 치기에 적합하다.이 해수욕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입장료가 없으며 민박은 성수기에도 3만원일 정도로 저렴하다. 인근에 있는 대빈창해수욕장은 모래와 함께 크고 작은 돌무리가 잔뜩 쌓여 있는 조약돌밭이다.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에 거칠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전해온다.이곳 역시 물이 빠지면 갯놀이하기에 좋으나 텐트 칠 곳이 마땅치 않다.대빈창은 조선시대에 외국사신을 영접했던 ‘대변청’이 있던 곳이다. 진말에 있는 사꾸지해변은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광대한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 데다 양식장 등이 있어 생태탐험장으로 적절하다.썰물 때는 갯벌이 최대 3㎞까지 드러난다.인근 마을에 있는 서도중앙교회는 1923년 건립된 유서 깊은 감리교회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해마다 여름성경학교를 펼쳐 많은 학생들이 찾는다.이곳은 구한 말 영국 성공회 신부들이 최초로 포교활동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자연산 농어·우럭 군침이 저절로 주문도에서 북서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아차도는 옛날에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승천하는 도중 임신한 여자를 보고 ‘아차’하는 순간 바다로 떨어져 섬이 됐다는 데서 유래됐다.24가구만이 거주하고 1시간이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섬은 그야말로 아무 생각없이 섬생활의 적막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민박도 간판을 내걸고 숙박료를 받는 곳은 없다.그저 빈방이 있으면 찾아온 사람에게 내주는 식이어서 본래 의미의 민박이라 할 수 있다. 숙박료는 알아서 주어야 하는데 겁낼 필요는 없다.2만원 정도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식당도 없는데 생선회를 먹고 싶으면 그날 낚시나 그물로 우럭·농어·놀래미 등을 잡은 주민을 수소문해 민원(?)을 넣어야 한다.주인이 직접 뜬 회는 거칠고 양념이라야 고추장과 상추·마늘이 고작이지만 자연산이어서 맛이 기막히다.혹시 양식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이곳에서는 오히려 양식 생선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회값 역시 알아서 줘야 하는데 1㎏ 기준으로 3만원을 주면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다. ●주민등록증 반드시 지참해야 볼음도는 ‘새들의 섬’답게 일년 내내 새를 볼 수 있다.논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두루미·저어새나 갯벌에서 철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안쪽으로 들어오면 섬이라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산으로 둘러싸이고 논도 많다.잠자리가 날아다니고 풀벌레가 우는 들녘을 거닐면 시골에 온 것 같은 푸근한 기분이 들지만 조금만 걸어나가면 바다다. 이곳에서는 경운기가 요긴한 교통수단인데 조개를 캐러 먼 갯벌로 나가는 주민의 경운기를 얻어 타고 적당한 곳에 내려 갯놀이를 하는 재미는 유별나다. 조갯골해수욕장의 모래는 스펀지를 깔아놓은 듯 폭신폭신해 강화 최고의 모래사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마을 위에는 10만평 규모의 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가물치,붕어,메기 등 토종 어종이 많이 서식해 한번 손맛을 본 낚시꾼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이들 섬은 모두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강화도 외포리서 1시간 남짓 일단 48번 국도를 통해 강화도 외포리까지 간 뒤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한다.배는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 2차례 출발하는데 볼음도(1시간 10분)-아차도(1시간 30분)-주문도(1시간 40분) 순으로 운항한다.주문도 출발은 오전 7시와 오후 2시다. 운임은 볼음도 5300원,아차도 6000원,주문도 6200원이다.차량은 3개 섬 동일하게 배기량 1500㏄까지는 2만 5000원,그 이상은 3만 5000원이며 운전자 요금은 별도로 받지 않는다. 강화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마산 오동동 아귀찜 골목

    경남 마산시 오동동 뒷골목은 ‘마산 아귀찜’의 고향이다.오동동 사거리에서 해안도로쪽으로 200m쯤 골목길에 접어들면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승용차 2대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가게 사이로 아귀찜 식당이 들어서 있다.‘원조’,‘진짜’,‘본점’ 등 저마다 최고라고 표시한 간판이 눈에 띈다. 낮에는 행인이 없어 적막하지만 해질녘이면 골목은 왁자지껄하면서 활기가 넘친다.직장 동료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둘러앉아 아귀찜을 안주로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는 모습이나 젊은 남녀가 마주 앉아 서로 매운 맛 때문에 흐른 땀을 닦아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말린 아귀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마산 아귀찜은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 아귀찜 식당이 없는 곳이 없지만 전통적인 마산식은 찾기 어렵다.마산식은 아귀를 한겨울 찬바람 속에서 20∼30일정도 말려서 사용한다.오동동 아귀찜 식당은 전통을 고집하면서 삐들하게 말린 아귀를 냉동창고에 보관,연중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마산 아귀찜은 말린 아귀를 콩나물·미더덕·찹쌀가루·고춧가루·파·마늘 등 양념과 함께 걸쭉하게 쪄내 속이 화끈할 정도로 매우면서 담백하다.양념맛이 밴 고기는 쫄깃하고 깊은 맛이 난다.여기에 각각의 조리비법이나 손맛이 가미돼 서로 다른 맛을 낸다.아귀찜은 매운 게 제맛이다.그래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는다.고춧가루에 버무려져 매울 수밖에 없지만 콩나물을 씹을때 나오는 액즙이 매운 맛을 덜어준다. ●아귀와 물텀벙 아귀목 아귀과인 아귀는 이름처럼 정말 못생겼다.모양새와 특징을 묘사해 ‘아귀’·‘아구’·‘물텀벙’등 여러가지 이름이 붙었다.조선시대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는 조사어(釣絲魚)라고 적혀 있다.‘굶주린 입을 가진 생선’이란 뜻의 ‘아구어(餓口魚)’는 어민들이 붙였다.입이 몸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못생긴데다 뱃속에서 갖가지 어패류가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어민들이 “오죽했으면 닥치는 대로 생선을 잡아 먹었겠느냐.”면서 붙였다고 전해진다. 서해안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물에 걸리면 그대로 던져 버렸는데 텀벙하고 빠진다고 해서 생겨났다. ●‘혹부리 할머니’가 아귀찜 개발 아귀는 이름이 붙여진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귀찜이 개발되기 전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모양이 험상궂고,살이라고는 꼬리부분에 두어 토막 붙어있을 정도다.그래서 아귀가 음식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마산 아귀찜의 원조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하지만 그 중에서 구전되고 있는 두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40여년전 오동동 초가집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선창에 버려진 아귀를 주워 쪄먹은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삐들하게 마른 아귀에 된장과 파·마늘 등 양념을 발라 북어찜처럼 만들었다.먹어보니 맛이 괜찮아 단골손님에게 술안주로 권하기 시작하면서 일반에 퍼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라도 할머니 이야기.60년대 중반쯤 요릿집이 즐비하던 오동동에서 아귀로 해장국을 끓여 팔던 할머니가 어느날 진해에서 온 손님으로부터 “찜을 만들어 파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술안주로 만들어 팔았다는 것.전라도 사투리로 ‘아구찜’이라는 이름도 지었다고 전해진다.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혹부리 할머니가 처음 아귀로 찜을 만들었고,전라도 할머니는 요즘처럼 미더덕과 콩나물·미나리 등 채소가 들어가는 조리법을 개발한 것으로 짐작된다.마산 오동동 아귀찜 골목에는 새로 개발된 아귀요리가 많다.낙지전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돌판 아귀찜과 아귀 불고기,아귀 해물무침 전골,갈비식 아귀 등.특히 돌판 아귀찜은 술안주로 고기와 야채를 건져먹은 뒤 갖가지 양념에 육수를 붓고,가락국수사리를 넣거나 밥을 비벼서 물김치와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거뜬하다. 글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마산 오동동 아귀찜 골목

    마산 오동동 아귀찜 골목

    경남 마산시 오동동 뒷골목은 ‘마산 아귀찜’의 고향이다.오동동 사거리에서 해안도로쪽으로 200m쯤 골목길에 접어들면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승용차 2대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가게 사이로 아귀찜 식당이 들어서 있다.‘원조’,‘진짜’,‘본점’ 등 저마다 최고라고 표시한 간판이 눈에 띈다. 낮에는 행인이 없어 적막하지만 해질녘이면 골목은 왁자지껄하면서 활기가 넘친다.직장 동료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둘러앉아 아귀찜을 안주로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는 모습이나 젊은 남녀가 마주 앉아 서로 매운 맛 때문에 흐른 땀을 닦아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말린 아귀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마산 아귀찜은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 아귀찜 식당이 없는 곳이 없지만 전통적인 마산식은 찾기 어렵다.마산식은 아귀를 한겨울 찬바람 속에서 20∼30일정도 말려서 사용한다.오동동 아귀찜 식당은 전통을 고집하면서 삐들하게 말린 아귀를 냉동창고에 보관,연중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마산 아귀찜은 말린 아귀를 콩나물·미더덕·찹쌀가루·고춧가루·파·마늘 등 양념과 함께 걸쭉하게 쪄내 속이 화끈할 정도로 매우면서 담백하다.양념맛이 밴 고기는 쫄깃하고 깊은 맛이 난다.여기에 각각의 조리비법이나 손맛이 가미돼 서로 다른 맛을 낸다.아귀찜은 매운 게 제맛이다.그래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는다.고춧가루에 버무려져 매울 수밖에 없지만 콩나물을 씹을때 나오는 액즙이 매운 맛을 덜어준다. ●아귀와 물텀벙 아귀목 아귀과인 아귀는 이름처럼 정말 못생겼다.모양새와 특징을 묘사해 ‘아귀’·‘아구’·‘물텀벙’등 여러가지 이름이 붙었다.조선시대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는 조사어(釣絲魚)라고 적혀 있다.‘굶주린 입을 가진 생선’이란 뜻의 ‘아구어(餓口魚)’는 어민들이 붙였다.입이 몸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못생긴데다 뱃속에서 갖가지 어패류가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어민들이 “오죽했으면 닥치는 대로 생선을 잡아 먹었겠느냐.”면서 붙였다고 전해진다. 서해안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물에 걸리면 그대로 던져 버렸는데 텀벙하고 빠진다고 해서 생겨났다. ●‘혹부리 할머니’가 아귀찜 개발 아귀는 이름이 붙여진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귀찜이 개발되기 전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모양이 험상궂고,살이라고는 꼬리부분에 두어 토막 붙어있을 정도다.그래서 아귀가 음식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마산 아귀찜의 원조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하지만 그 중에서 구전되고 있는 두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40여년전 오동동 초가집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선창에 버려진 아귀를 주워 쪄먹은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삐들하게 마른 아귀에 된장과 파·마늘 등 양념을 발라 북어찜처럼 만들었다.먹어보니 맛이 괜찮아 단골손님에게 술안주로 권하기 시작하면서 일반에 퍼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라도 할머니 이야기.60년대 중반쯤 요릿집이 즐비하던 오동동에서 아귀로 해장국을 끓여 팔던 할머니가 어느날 진해에서 온 손님으로부터 “찜을 만들어 파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술안주로 만들어 팔았다는 것.전라도 사투리로 ‘아구찜’이라는 이름도 지었다고 전해진다.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혹부리 할머니가 처음 아귀로 찜을 만들었고,전라도 할머니는 요즘처럼 미더덕과 콩나물·미나리 등 채소가 들어가는 조리법을 개발한 것으로 짐작된다.마산 오동동 아귀찜 골목에는 새로 개발된 아귀요리가 많다.낙지전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돌판 아귀찜과 아귀 불고기,아귀 해물무침 전골,갈비식 아귀 등.특히 돌판 아귀찜은 술안주로 고기와 야채를 건져먹은 뒤 갖가지 양념에 육수를 붓고,가락국수사리를 넣거나 밥을 비벼서 물김치와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거뜬하다. 글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올림픽 여자배구 ‘왕언니’ 김화복

    지난 16일 태릉선수촌의 한낮은 뜨거웠다.오후 훈련이 시작되는 3시 반.일찌감치도 찾아온 6월 무더위는 안그래도 실내 훈련으로 텅빈 오후의 선수촌 중앙 광장을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밀어 넣었다. 빨간 벽돌로 새옷을 입은 운영동 뒤편 배구장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웃음소리가 적막을 깬다.네트 너머로 보이는 12명의 한국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앉은 이의 모습이 낯설다.의아한 표정을 읽은 듯 말많은 김사니(도로공사)가 나선다.“모르세요? 이 언니 김화복 언니잖아요.” 달라진 얼굴만 빼면 왜 모를까.배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80년대 초반까지 여자 코트를 주름잡은 한국 최고의 공격수 김화복을….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흑백 화면으로만 남아 있는 그는 20년 세월을 훌쩍 넘겨 지금은 여유있는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태릉선수촌 생활지도위원으로 ‘제2인생’ 그의 직함은 태릉선수촌 생활지도위원.“여자 선수들의 숙소 생활을 책임지고 있으니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사감 선생’ 정도로 생각하면 쉬울 것”이라고 둘러친다.여자 선수 모두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맡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배구 선수들에게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더구나 이들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이탈리아 러시아 등 세계 최고의 팀들을 연파하며 3회 연속 올림픽 진출권을 따낸,자랑스럽고 부러운 후배들이기 때문이다. 김화복은 지난 69년 부산 남일초등학교 6년때 배구공을 잡은 이후 14년간 코트를 누볐고,남성여고 1년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올림픽 무대는 한번도 밟지 못했다.단 한 번 찾아온 기회(80모스크바)는 한국이 불참하는 바람에 날려 버렸다.올림픽 때만 되면 아쉬움과 설레임이 되살아나는 이유다.지난 4월 겨울리그가 끝난 뒤 국가대표를 고사한 노장 장소연 강혜미(이상 30·현대건설)를 전향(?)시킨 ‘특사’ 노릇을 한 것도 그래서다. 그의 배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은 하나 더 있다.그는 국제배구연맹(FIVB)의 통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184연승이라는 대기록의 주역.69년 국세청으로 출발해 대농-미도파로 이어진 소속 팀이 세운 기록이다.76년 입단해 기록 경신에 한몫을 한 그는 그러나 5년 뒤인 81년 5월 전남 광주에서 열린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진리에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선경과의 경기 직전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출전을 못한 것. ●장소연 등 국가대표 은퇴 번복시킨 특사 주포가 빠진 미도파는 결국 국가대표 센터 김애희와 레프트 진춘례가 버틴 선경에 져 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그는 “기록이 깨지는 순간 배구가 끝나는 줄 알았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는 배구만 빼면 모든 면에서 지각생.83년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27세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석사까지 마쳤고,35세에 노처녀에서 탈출했다.“되돌아 보니 모든 일에는 반드시 ‘때’가 운명처럼 다가오더라.”고 말한다.“선배 언니 소개로 지금의 아이 아빠를 만나고 보니 이전에 아는 스님이 예언해준 나이,모습 그대로더라구요.그래서 후다닥 해버렸지요.” 그는 첫 태극마크를 달고 찾은 지난 74년의 태릉선수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겨울이면 추워서 양말을 몇 켤레씩 껴신고 잠을 청하던 숙소며,여름이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미끄러지던 배구장 바닥.30년 세월따라 지금은 모두 변했지만 12명의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해주는 ‘배구 이야기’는 그 시절 선배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다.“배구요?날아다니는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지는 경기잖아요.우리 삶도 목표가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눈물 닦으며 퇴장하는 수밖에요.” 오는 8월 아테네까지 동행할 김화복은 분명히 이번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의 왕언니이자 13번째 선수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서울광장] 이젠 軍縮이다/오풍연 논설위원

    최근 들어 한반도 안보 환경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안보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이 가운데 남북 군사분야 회담이 가장 눈길을 모으고 있다.‘합의’ 단계에서 ‘실천’ 단계로 속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속도까지 내고 있어 기대감을 낳고 있다. 14일에는 남북 함정간 무선교신에 성공했다.서해에서의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지난달 26일 첫 남북 장성급 회담을 가진 지 20일 만이다.지난 3일 2차 장성급 회담,10일 실무대표접촉을 통해 합의점을 찾은 뒤 바로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지금까지 경협 등을 보더라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1999년 6월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서해교전 당시를 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들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남북정상회담 4돌을 맞는 15일부터는 군사분계선(MDL)상의 선전활동이 중단된다.아울러 상대방을 겨냥한 확성기·전광판 등 모든 선전물도 오는 8월15일까지 철거를 완료한다.앞으로 비무장지대는 자유롭게 왕래하는 그날까지 고요와 정적만 감도는 적막강산으로 변할 것 같다. 정세현 통일부장관도 얼마 전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큰 성과는 군사분야”라고 평가했다.실제로 장성급 회담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우선 남북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토대를 마련한 점을 꼽을 수 있다.군사회담의 ‘모멘텀’을 이어 갈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한 것이다.특히 북측의 유화적 태도가 관심을 끌었다.남북 교류협력 관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으려는 북한 군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번 군사회담의 합의 및 실천은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이젠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근본적이고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단계로 접근해 가야 한다.미국은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내년 말까지 주한미군 1만 2500명을 감축키로 했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 왔다.이같은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북측은 “북한 공격용”이라고 반발했다.미측이 훨씬 가공할 만한 화력으로 병력 감축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본 듯하다.내년 우리나라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12.9% 늘어난 19조 5157억원에 달한다.이는 용산기지 이전 및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정기국회에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117만명에 달하는 북한군은 69만명의 한국군과 3만 7000명의 주한미군으로 억제되고 있다.이른바 대북 억지력(抑止力)이다.그동안 북한의 위협적 장거리포 공격에 대해서는 미군 인공위성·정찰기 활동을 통해 95% 이상 방어능력을 보유해 왔다고 한다.미군이 철수할 경우 우리가 전력을 보강해야 할 처지다.막대한 예산이 소요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주한미군 감축 및 재조정 과정에서 남북간 군축이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유다. 군축 얘기는 나라밖에서도 들리고 있다.미국 민주당의 케리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미 양자회담 추진,한반도 군축·통일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유력 대선후보가 한반도의 군축 문제를 꺼낸 것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미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한반도 상황이 180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대답은 자명해진다.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를 위해 우리 스스로 군축(軍縮)에 나서는 것이다.남북간 군사 대화의 기조를 더욱 발전시켜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장성급 회담에서 장관급 회담,정상회담으로 격상시켜 나가면 군축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19~20일 ‘산사 영화제’ 여는 정념 스님

    “엄숙한 산사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지요.하지만 부처님이 행할 수 있는 8만 4000여 가지 방편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부처가 화들짝 놀랄 일이 하나 생겼다.영화 ‘달마야 서울가자’의 패거리들이 산사 습격(?) 사건을 벌이기 때문이다.장소는 강원도 오대산의 고찰 월정사(오는 19∼20일) 야외.구경꾼도 적지 않을 것 같다.3000명 정도는 될 것으로 추산된다.사건 제목은 ‘천년의 숲길을 찾아가는 오대산 산사영화제’이다. ‘산사 영화제’는 처음이다.불교계는 물론 일반인들조차 신선한 충격이라 할 만하다.상영영화는 ‘달마야 서울가자’와 ‘아홉살 인생’ 등.궁금증을 풀기 위해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스님은 영화제 배경에 대해 “요즘은 주5일 근무이니,웰빙이니 하는 쪽으로 시대가 흐르고 있다.”면서 “사찰은 곧 (문화적 향수를)원하는 대중들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고 또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산중은 적막하고 엄숙한 도량의 모습으로 느끼지만 고요함 속에 영화를 감상한다는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했다. 영화 감상에 앞서 1시간 동안 오대산 ‘천년의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내면을 관조하는 행선(行禪)의 시간도 마련했다.지역 주민들에게 문화활동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도 있단다.상영될 영화 2편 중 ‘달마야 서울가자’는 ‘달마야 놀자’의 후속편으로 7월 개봉 예정.수억원의 빚 때문에 위기에 처한 사찰을 구하기 위해 촌뜨기 스님들이 서울로 올라가 절터에 상가를 짓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조폭들과 티격태격하는 내용이다. 스님은 “영화 ‘달마∼’는 소재가 불교적이고 성스러운 달마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면서 “그러나 선(禪)불교란 엄숙한 것만도 아니고 중생을 위해서 파격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선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영화선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산중의 불교는 밖으로 자주 나와야 합니다.대중속에서 사회봉사와 자원봉사도 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비구현을 해야 합니다.” 그는 상원사에서 10여년 동안 주지로 있다가 지난 2월 월정사 주지로 부임했다.평소 대중속에서의 자비구현을 내세운다.부임할 때에도 뇌종 투병중인 어린이를 먼저 찾아갈 정도로 불우이웃돕기에도 앞장선다.주5일제 근무에 맞춰 ‘주말수련법회’‘불교대학’‘단기출가학교’‘선수련센터’ 등을 추진하고 있다. 법어를 청하자 “세상이 혼탁스러우니 일심이 청정해야 한다.”고 했다.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과욕을 버리고 자기 응시와 성찰,내면을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러브캠프’ 촬영현장엔?

    요즘 신세대 청춘남녀의 애정 코드는 어떤 색깔일까? 뭐든지 ‘쿨’한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는 식’의 ‘애정의 곁눈질’은 더이상 사랑의 금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6일 경기도 가평군 청평호 주변의 한 펜션.케이블 채널 코미디TV의 ‘리얼스캔들 러브캠프(매주 토·일 밤 12시)’촬영이 한창이다.개그맨 김한석의 진행으로 지난달 17일 첫 전파를 탄 ‘…러브캠프’는 한명의 ‘킹카’를 두고 다섯명의 미녀가 함께 생활을 하며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서바이벌 짝짓기 프로그램.국내 최초로 참가자 전원을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로 구성,100% 실제 상황을 연출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짜여진 각본이 없기에 촬영 현장에서 PD의 ‘NG!’소리도 전혀 들을 수 없다.여성들은 매주 남성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스킨십과 딥키스’(5월 1·2일 방영분)등 도발적인 유혹의 손길은 물론 욕설까지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그 불꽃튀는 사랑쟁탈전의 현장을 WE가 찾아갔다. #하나:새 스캔들 메이커 입소 오후 2시30분.새로운 여성 참가자 김선아(19·대학생)양이 캠프에 들어왔다.선아양은 우연히 TV를 보다가 ‘킹카’임재호(24·세미 프로골퍼)씨에게 한눈에 반해 출연 신청을 한 당돌한 10대.펜션안에 있던 박선애(23·모델)·김수진(23·재즈댄스 강사)·최가희(24·디자이너)·진수진(21·대학생)씨 등 네명의 여성들,순간 긴장한다. “그동안 재호씨와 선애씨가 커플이 된 뒤 공평하게 데이트 기회를 드렸었죠.이번에는 새로 온 선아양에게 그 기회를 드립니다.불만없죠?”(김한석)“예…”(여성들 걱정에 찬 눈초리)“재호씨와 새로운 커플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대시할 거예요.”(선아) 재호와 선아는 단 둘이 수상 스키를 타며 꿀맛같은 시간을 보낸다.둘은 처음 만났지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오래된 연인처럼 물 묻은 몸을 서로 닦아 주는 등 스킨십은 물론 거침 없는 대화를 나눈다.“저번 방송에서 선애씨랑 딥키스할 때 기분이 어땠어요?”(선아)“선아씨는 어느정도 스킨십까지 허락할 수 있죠?”(재호) #둘:사랑은 선택이다? 저녁 8시.다섯명의 여성이 손수 만든 가지각색의 커플티셔츠를 재호씨에게 내밀며 파트너로 뽑아달라고 구애의 손길을 뻗친다.여성들이 자신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있기 때문에 재호씨는 누가 만든 티셔츠인지 알고 있는 상태.네 벌의 티셔츠를 가지고 옆방으로 간 재호씨,한벌의 티셔츠를 갈아 입고 등장한다.예상 밖으로 새로 입소한 선아양의 것.선아양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진다.이전까지 ‘공식 커플’이었던 박선애씨를 비롯한 네명의 여성은 애써 표정관리를 한다.“이번엔 선아양쪽으로 마음이 쏠렸어요.하지만 아직 제 사랑이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좀 더 지켜봐야죠.”(재호) #셋:사랑은 뺏고 빼앗기는 것 새벽 2시.5명의 남녀가 앉아있는 펜션안에 적막감이 흐른다.‘2기 커플’결정의 시간.재호씨가 ‘1기 커플’선애씨의 왼손을 잡고 있다.약지에 낀 커플링을 빼면 다른 여성으로 파트너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그러지 않으면 커플 관계는 계속 유지되는 것.“하나,둘,셋!”MC의 구령과 함께 재호씨가 가차없이 커플링을 빼버린다.그러고는 옆에 앉은 김수진씨의 손에 그 커플링을 끼워준다.순간 옆방으로 들어가 엉엉 우는 선애씨.“한달반 동안이나 애정을 나눴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선애)“새로운 사랑의 감정에 좀더 충실해지고 싶었을 뿐이야.”(재호) 한편 커플 선정에 탈락한 나머지 여성들은 당돌한 말들을 늘어놓는다.“수진씨가 선택된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이전 파트너보다 나은 점이 없거든요.다음 촬영땐 제가 저 자리를 꿰찰 거예요.”(진수진) “솔직히 지금 두 커플은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봐요.다음번엔 더 적극적으로 구애해 꼭 재호씨를 차지할 거예요.”(선아) 글 청평 이영표기자 tomcat@˝
  • 별세 구상시인 詩세계·일생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시 ‘오늘’ 중) 11일 작고한 구상 시인의 삶은 ‘구도자적 자세’와 ‘영원한 현역 시인’으로 압축할 수 있다.산소호흡기를 쓰고 투병하던 지난해 격월간 문예지 ‘한국문인’ 10,11월호에 유언과 함께 남긴 위의 유언시는 이런 고인의 삶을 잘 보여준다. 구상 시인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마치 흐르는 물같은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한다.그렇듯 그의 삶은 문학과 신앙이라는 두 축으로 지탱되는 구도(求道)의 그것이었다. 노년 들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짤막한 턱수염,얼마간 창백해 보이는 길다란 얼굴에 그럴 듯하게 구레나룻까지 이루며 자란 이 수염은 항상 그의 무명 한복과 어울려 이 땅의 수많은 독자와 문인들에게 ‘따뜻하고 순결한 시인’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표상으로 각인돼 있다.문인이기 전에 그는 암울한 식민지의 신문기자였다. 스물 네살 나던 1943년에 함흥에 있는 ‘북선매일신문’ 기자로 세상과 맞닥뜨렸던 젊은 구상은 이후 두 차례의 필화사건과 6·25,감옥생활과 질병 등 온갖 신산을 겪으며 오로지 문학에의 열정과 종교(가톨릭·세례명 요한)적 신념으로 시대를 앞서 이끌었다. 그가 겪은 첫번째 필화사건은 1946년에 일어났다.원산문학가동맹의 주축멤버였던 그는 해방 1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발표한 ‘여명도’‘길’‘밤’등의 시가 퇴폐적이고 악마적이라며 반동으로 몰리자 이듬해 2월 서울로 월남해 이산의 삶을 시작했다.이때 남한에서는 남로당 기관지였던 ‘문학’이 이 시집을 대대적으로 소개했고,민족진영에서는 김동리씨 등이 나서 이에 반박하는 등 한차례 격랑이 일기도 했으며,이 와중에 그는 별도의 입상이나 추천 절차없이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본격적인 민권운동에 나선 그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전쟁 후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있던 그는 칼럼 ‘고현잡화(考現雜話)’와 시사평론집 ‘민주고발’ 등으로 사사건건 당시 자유당 정권과 부딪쳐 이적죄로 15년형을 선고받는 두번째 필화를 겪었다.그런가 하면 그는 평생 갖가지 병력(病歷)을 체험하며 형극의 길을 걸어온 시인이기도 했다.폐결핵으로 두번이나 수술을 했는가 하면 두번의 큰 교통사고와 당뇨병,만성 천식과 전립선 비대증,망막염과 백내장 등 수많은 병마와 싸워야 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고인의 지사적 풍모는 돋보였다.4·19 이전에 대표적 민권운동가였던 엄상섭,전진한씨 등과 함께 시국강연회를 갖는 등 치열하게 민권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고고함은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장군의 상임고문역 추대를 거절한 것이나,전두환 정권의 부당한 학·예술원법 개정에 맞서 홀로 입법기구 회원직을 사퇴한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권력에 초연함을 유지했던 고인의 인품은 현세의 이해관계에 초월해 예술세계를 지키며 외롭게 살다간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나 소장품을 내놓고 모금운동을 벌여 서울신문이 주관하는 ‘공초(空超) 오상순 문학상’의 토대를 세우기도 했다. 시인 구상은 그의 삶이 험난할수록 더욱 강고하게 종교에 집착하는 면도 보여 주었다.이런 영향으로 그의 시에는 대부분 동양적 관조와 기독교적 영원성이 깊게 배어 있다.연작시 ‘그리스도 폴의 강’은 이런 그의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한편 서울 강남 성모병원 빈소에는 김수환 추기경,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박삼중 스님,이한택 주교를 비롯해 문덕수,박연희,김남조,김광림,구중서,성찬경,김종길,김종해,신세훈,신달자,김이연,류자효씨 등 많은 종교인과 문인들이 찾았다.노무현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김 추기경은 “고인은 좁은 의미의 가톨릭이 아니라 종파를 넘어서 온세계를 아우르는 의미로서의 가톨릭 시인이었다.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었고,항상 마음을 비우는 진실의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구중서씨는 “고인은 전쟁 중에는 인민군의 묘지를 만들어 준 뒤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시를 썼고,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승승장구할 때는 ‘인류가 아직 깜깜하다.’며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묻는 시 ‘베트남 기행’을 썼다.”면서 “이데올로기나 정파,권력에 가담하지 않고 인간 본성과 양심을 쉬우면서도 뜻이 깊은 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초토(焦土)의 시(詩)’ 8 - 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 구상시인 연보 ▲1919년 서울 이화동 출생.본명 구상준(具常浚)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에서 시 ‘여명도’등으로 필화,월남 ▲1948∼1950 연합신문 근무 ▲1952∼1956 효성여대 교수 ▲1961∼1965 경향신문 논설위원겸 동경지국장 ▲1976∼1999 중앙대 대우교수 ▲주요 저서 시집 :‘구상(具常)’,‘초토(焦土)의 시’,‘까마귀’,‘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개똥밭’,‘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오늘속의 영원,영원속의 오늘’,‘인류의 맹점에서’,‘홀로와 더불어’ 등. 수상집 :‘침언부어(沈言浮語)’‘영원속의 오늘’‘실존적 확신을 위하여’‘시와 삶의 노트’ 사회평론집 :‘민주고발(民主告發)’,수필집 ‘우주인과 하모니카’ ‘현대 시창작입문’ 등. ˝
  • 새 시집 발간 준비중인 ‘홀로서기’의 서정윤 시인

    “요즘 학생들은 팬터지소설을 즐겨 읽는 것 같아요.아마 권선징악과 휴매니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저도 요새 들어 판타지 소설을 무척 좋아하게 됐습니다.” 사랑시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는 시집 ‘홀로서기’의 저자 서정윤(47) 시인.그는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과 함께 80년대 국민적 시인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시집으로는 유례없이 ‘홀로서기’가 2년 전에 300만부 넘게 팔렸다.이후 한동안 뜸하다.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현재 대구 영신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1학년 담임을 맡았지만 1∼3학년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올곧은 ‘스승’의 길을 걷고 있다.학생들이 ‘시 한수’를 부탁하면 “시는 사랑이고 그리움이다.”라며 그저 웃기만 한다.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사인 좀 받아오라고 하던데요.” 하며 떼를 쓴다. 서씨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무협지를 좋아했던 학생들이 요즘 들어 팬터지소설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말했다.복선을 깔고 있는 복잡한 철학적·문학적 소설보다는 단순한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란다.까닭에 그도 팬터지소설을 좋아하게 됐다.최근에 ‘바람의 마법사’‘이노센트’‘묵향’‘가제나이트’ 등을 읽었다.학생들과 좀더 가까워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TV프로그램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벌 뮤직(개울가에서 올챙이 한마리가…뒷다리가 쏙,앞다리가 쏙…)을 핸드폰 벨소리로 다운로드를 받은 이유도 그래서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한번 가르쳐주면 잘 따라준다.그런 과정이 너무 순수하고 착하다.”라고 말했다.그가 ‘팬터지’에 빠진 또 하나의 이유.문학적 채찍을 가하자는 차원이다.지난 2002년 11월 ‘홀로서기’ 300만부 돌파 기념으로 시선집을 낸 이후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작품요? 장르에 관계없이 쓰고 싶은 것을 쓸 따름입니다.시,수필,우화,소설 등 닥치는 대로이지요.또 새로운 의욕도 생겨나고요.” 그는 요즘 붕어낚시를 자주 간다고 했다.경산 인근의 저수지나 냇가를 찾아 낚싯대를 드리운다.한동안 적막하고 얄밉게끔 입질이 없으면 그는 절로 펜을 들어 메모를 한다. 이렇게 해서 쌓여진 작품 하나,우화집 ‘내가 만난 어린 왕자’가 최근 새로 완성됐다.작품 둘,일상적이고 생활주변의 단상들을 모은 수필집도 완성됐다.작품 셋,시 역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쓰는 날짜를 꼭 정한 것은 아니지만 3일에 1∼2편의 시를 쓴다.여전히 ‘사랑’과 ‘외로움’을 키워드로 그리움의 서정성을 된장 담그듯 질그릇에 담고 있다고 했다.올 가을 그 뚜껑을 기어코 열겠단다.수필과 우화집은 3년 만이고 시집은 4년 만에 출간하는 셈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시 묘미는 쉬운데 있다고 한다.그는 영남대 3학년 재학시절 ‘영남대 교지’에 ‘기다림은/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좋다…/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는 시를 발표했다. 이후 ‘홀로서기’라는 말이 편지나 일상에서 단골로 인용되는 문화코드가 됐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두 형사의 동상이몽 ‘마지막 늑대’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놀멘놀멘 살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양동근·황정민 주연의 ‘마지막 늑대’(제작 제네시스픽처스·새달 2일 개봉)는 우선 무위도식의 희망사항을 스크린에 새겼다는 점에서 입맛을 당기게 한다.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로 뛰던 최철권(양동근)이 인간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에 염증을 느껴 ‘개점휴업’을 선언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그렇게 해서 자원해간 곳이 강원도 두메산골의 손바닥만한 파출소(이름까지 ‘무위파출소’).평생 범죄자하고는 말 한마디도 못해봤을 것 같은 느려터진 파출소장(장항선)과 순박한 총각 순경 고정식(황정민)이 무료하게 그곳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복잡한 사건에 얽히지 않고 편안히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작정한 철권과,사건이 없는 시골생활을 견딜 수 없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정식.반대편 꼭지점에 선 듯 대조적인 두 캐릭터가 이야기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철권이 산그늘에 누워 시간을 죽이는 게 낙이라면,정식은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나무그루 수를 세다 나중엔 소 대신 밭갈이까지 할 정도.서로의 삶의 방식을 비웃는 둘의 시시콜콜한 신경전을 지켜보며 관객은 일정한 리듬의 코믹 시소타기를 하게 된다. 영화속에서 ‘근면성실’은 캐릭터들의 인격을 가늠하는 잣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적막한 강원도 산골에 지어진 세트장속 해프닝이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는 관객의 신경줄을 조이는 긴장요소란 눈을 씻고 봐도 없다.양동근 특유의 부스스한 외모와 어눌한 말투,강원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황정민의 대사연기에 멀찍이 눈귀만 열어두면 된다. 그러나 동상이몽의 두 형사가 엮는 해프닝만으로 밑그림을 완성하기엔 처음부터 역부족.서울진출을 노리는 정식을 주저앉히기 위해 사건을 만들기로 작정한 철권은 동네 사찰의 탱화를 미끼삼아 문화재 털이범들을 유인한다.한가하던 화면에 폭력이 끼어들고 범죄자와 형사가 벌이는 ‘원초적인 대립’으로 초점을 옮기며 영화는 후반부에 적잖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소박한 배경에 컴퓨터그래픽,특수효과 등의 기술적인 시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무공해 자연주의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하지만 장르를 잘라 말하기엔 태도가 어정쩡하다.코미디라고 쳐주기엔 웃음의 강도가 미약하고,등장인물들의 동선이 적어 형사액션물로도 걸맞지 않다.‘연기파’로 첫손에 꼽히는 두 배우가 연기를 하다만 것 같은 찜찜함을 남기는 건 왜일까.감독이 농반진반 ‘조울증 코미디’라고 이름붙였는데,영화의 종잡을 수 없는 색깔에 대한 완곡한 변명이었을까.구자홍 감독의 데뷔작. 황수정기자˝
  • [세상속으로] 추방 항의 외국인노동자 131일째 명동성당 농성

    정부의 불법체류자 강제추방에 항의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노숙농성이 23일로 131일째를 맞았다.이들은 직장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노동허가제 실시와 강제추방정책 철회 등을 요구하며 지난겨울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냈다.그러나 봄이 와도 정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법무부는 자진출국 최종시한이 끝난 이달 초부터 단속에 들어갔다.지난 9일에는 무려 191명을 검거하는 ‘실적’을 올렸다. ●겨우내 콘크리트바닥서 칼잠 23일 새벽 이들의 농성천막이 자리잡은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는 새벽미사를 나가는 신도들의 발길만 이어졌다.영상 5도.봄이라지만 새벽공기는 여전히 찼다.농성 초기에 잠깐 관심을 보인 언론이나 일부 단체 관련자들은 요즘 들어 거의 찾지 않아 이들이 느끼는 ‘한기’는 더하다. 천막 안 100W 백열전등 아래 외국인노동자 10여명이 칼잠을 자고 있었다.불침번을 서던 방글라데시인 주엘(37)이 들어왔다.고향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일하던 그는 돈을 벌어 고향에 가게를 차리겠다는 일념으로 6년 전 한국에 왔다.비슷한 영어실력의 유럽인처럼 학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미국인도,백인도 아닌 그에게 영어를 배우려는 한국인은 없었다.서울 근교의 식품회사를 다니며 잔업과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한국인 동료에게 속아 몇달치 월급을 몽땅 날린 적도 있었다.그는 “막상 한국에 오니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면서 “나 역시 월급으로 받는 70만원 가운데 65만원이 고스란히 생활비로 들어갔다.”고 말했다.그는 “한국 돈 5만원이 이곳에선 하찮지만 고향에선 큰돈”이라며 당분간 고향에 돌아갈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야근 밥먹듯 해도 70만원 벌이 오전 8시.천막을 나와 체조를 한 뒤 간단한 점호가 실시됐다.총원 47명.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보다 크게 줄어든 숫자다.지난해 11월만 해도 외국인노동자협의회·네팔공동체·민주노총 평등노조 소속 노동자 등 농성인원이 150명이 넘었다.하지만 많은 사람이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고 가족 생활비를 대려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며 단속 위험을 무릅쓰고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지난 97년 2월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온 네팔인 라무티(38)는 입국 당시 브로커에게 진 빚 650만원을 아직까지 갚지 못했다.그는 “중·고교에 다니던 두 남매가 지난달 학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뒀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한국에서 당한 일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일기를 쓴다는 그는 네팔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은 엘리트 청년이었다. 2시간 남짓 ‘교양’이 이어졌다.이날의 주제는 근로기준법.이들은 동일한 노동자임에도 피부색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을 수긍하지 못했다.방글라데시인 헤미니(30)는 “우리 일자리는 어차피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이라면서 “우리도 한국경제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만큼 한국인과 동등한 인간적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 기피 3D업종 우리몫” 정부의 외국인노동시장 정비정책에 따라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체류기간 4년 이상의 외국인노동자는 13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노동부 외국인력고용정책과 심수경(31) 사무관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국인들이 작업장을 마음대로 옮긴다면 결국 우리나라 노동자들과의 경쟁이 심해져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고용허가제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밤 10시가 되자 농성장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천막입구에서 불침번을 서던 네팔인 민수(28)의 꿈은 고향에 돌아가 슈퍼마켓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그는 “코리안드림의 종착역이 차가운 농성텐트일지는 꿈에도 몰랐다.”면서 “덧없이 흘러버린 내 20대는 어디 가서 보상받아야 하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이세영 박경호기자 sylee@˝
  • 김훈 세번째 장편 ‘현의 노래’

    장편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단편 ‘화장’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눈부신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 김훈(56)이 세번째 장편 ‘현의 노래’(생각의나무 펴냄)를 냈다. ‘칼’에서 ‘현’으로 나아간 작가가 섬세한 문학적 촉수를 뻗은 곳은 가야금의 예인 우륵.삼국사기와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사료를 훑은 작가는 한 역사적 인물에 특유의 상상력으로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소설은 ‘소리’를 이루려는 일념 하나로 가야에서 신라로 나라까지 바꾸는 우륵의 삶을 큰 얼개로 삼아,소리를 통해 득도(得道)에 이르는 과정을 부각시키며 풀어진다.물론 우륵의 제자이자 ‘소리 벗’인 니문,가야의 무기 제조장 야로,진흥황 가야왕의 시녀 아라 등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을 불러들여 이야기 그물을 촘촘히 엮는다.그 속에서 작가는 세상사의 모든 것이 담긴 ‘소리’(우륵,니문)라는 원초적 감각과,그것의 울림판인 ‘쇠’(야로 父子)의 비유를 통해 삶의 의미와 현실을 투영한다.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덧없음으로 늘 새롭다.”(285쪽).죽음을 앞에 둔 우륵의 말에 기대어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작가 특유의 문체는 ‘현의 노래’에서 빛을 발한다.골자만으로 이어지는 대사,빠른 사건 전개,묘사와 배치를 섞어 완급을 조절하는 수사로 읽는 이들을 강하게 빨아들인다.‘칼’에서 ‘현’으로 나아간 작가는 “악기가 통과해온 살육과 유혈의 시대를 생각하는 일은 참담했다.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악기가 아름답고 무기가 추악한 것은 아니다.무기가 강력하고 악기가 허약한 것도 아니며,그 반대도 아닐 것이다.이 작품은 그 악기들 내면의 맹렬한 적막에 대해 쓴 것”이라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 떠나볼까-횡성의 겨울

    강원도 횡성은 사계절중 겨울 나들이가 특히 잘 어울리는 곳.눈이 풍부하고,스키장,휴양림 등이 많아 한 겨울에도 나들이객들이 항상 붐빈다.험하디 험한 치악산 정상에 올라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의 가운데 선 듯한 희열을 느껴보자.청태산 자연휴양림을 찾아 스릴 넘치는 산악스키에 도전해도 좋다.뽀얗게 연기를 피우며 숯을 굽는 참숯가마들을 찾아가 건강에 그만이라는 숯가마찜과 참숯 삼결살 구이 맛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겨울의 한복판,강원도 횡성을 찾았다. ●첫번째 이야기…청태산 휴양림 “산악스키의 매력은 ‘자연의 맛’이죠.긴 시간의 줄서기,리프트,잘 다져진 슬로프 등으로 대변되는 인공 스키장에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이죠.” 강원도 횡성군 청태산 자연휴양림.서울서 산악스키를 타러 왔다는 김명주(31)씨의 산악스키 예찬은 끝이 없다.리프트가 아닌,두 다리의 힘으로 헉헉 숨소리를 내며 자연설 쌓인 임도를 오르는 김씨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야성이 엿보인다.청태산 자연휴양림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악스키학교가 상설 운영되는 곳.대한산악스키협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난달 15일부터 2월 말까지 운영중이다. 스키는 5㎞의 순환 임도(林道)에서 즐긴다.휴양림 주변으로 이어져 있는 임도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오르막 내리막이 적절히 반복돼 일반인들이 스키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올해는 적설량이 지난해보다 적지만 스키를 타기엔 별로 불편함이 없다.스키 경험자들은 처음엔 스키장의 다져진 눈에 익숙해 약간 어색하다.그러나 수북하게 쌓인 자연설을 헤쳐나가다 보면 이내 산악스키에 익숙해진다.눈보라를 일으키며 소나무숲 사이의 임도를 달려 내려오는 기분은 표현하기 어려을 만큼 상쾌하면서 짜릿하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법.스키를 신은 채 끌듯이 올라가기도 하고,V자 걸음을 걷기도 한다.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산악스키엔 일반 알파인 스키와 다른 전문 바인딩을 쓴다.발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져 쉽게 올라갈 수 있다.또 스키 바닥엔 인조가죽에 털을 붙인 ‘씰’을 부착한다.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스키학교에선 강태용(36) 학교장을을 비롯한 10여명의 강사들이 스키강습을 실시한다.강씨는 대학교 때까지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활약했다. “체력이 좋은 10대,20대가 많이 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30대에서 가장 많이 즐깁니다.여성도 꽤 많아요.” 스키학교엔 스키 숙련자 및 초보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숙련자는 업 다운 요령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들으면 별도의 강습 없이 곧바로 임도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초보자는 평지에서 걷기 및 산악에서 타기 등에 대해 2∼4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렌털료는 2만원.스키와 바인딩,부츠,폴,씰 등 장비 일체가 준비돼 있다.강습료는 단체일 경우 1인 3만원,가족 또는 개인별로 받으면 1인 8만원.문의 대한산악스키협회(02-573-9048). 대한산악연맹도 3박4일 일정의 산악스키캠프를 19∼22일,3월4∼7일 두차례 연다.참가비는 장비 일체와 숙박,식사,보험료,강습 등을 모두 포함해 34만원.장비 지참시 32만원.강습과 투어는 용평리조트 및 대관령,소황병산 일대에서 진행된다.문의 대한산악연맹(02-414-2750,016-9591-1531). ■산악 스노보드도 색다른 맛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갔다가 우연히 별난 젊은이를 보고 참 놀랐다.스노보드를 타고 좁은 등산로를 따라 유유히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북부지방산림관리청이 관할하는 청태산 휴양림 직원 최종수(28)씨.보드 마니아인 그는 틈만 나면 청태산에서 보드를 탄다고 했다. “올핸 눈이 적게 와 타는 맛이 작년보다 덜해요.좁은 등산로를 따라 쏜살같이 내려오다 보면 스릴감이 끝내줍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으냐,다져지지 않은 자연설에 보드가 빠지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 개인 생각일 수 있지만 사람에 부닥치기 일쑤인 스키장 슬로프보다 오히려 덜 위험하게 느껴져요.청태산 자체가 워낙 완만하기도 하고요.”라고 답한다. 보드는 원래 다져진 눈이 아닌 자연상태의 눈에서 즐기기 위해 개발됐다고 그는 설명했다.폭이 좁은 스키는 자연설에 빠지기 쉽지만,보드는 웬만해선 빠지는 경우가 없다고. 최씨를 옆에서 지켜본 휴양림 소장 남해인씨도 최근 보드를 탄다.등산로엔 아직 못 올라가지만 휴양림내 완만한 경사지에서 기술을 익히며 ‘등산’ 을 준비하고 있는 것.남씨는 “일단 슬로프가 아닌 곳에선 스키든,보드든 그 맛이 너무 색다르다.”며 어서 최씨처럼 보드를 메고 산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번째 이야기…치악산 구룡사 ‘계속 올라갈까,그냥 포기하고 돌아 내려갈까?’ 치악산에 처음 오르는 이들은 십중팔구 이같은 고민에 빠진다.눈이 쌓여 등산로가 미끄러운 요즘 같은 겨울엔 이같은 고민이 더욱 커지게 마련.치악산은 그만큼 험하다. 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치악의 산세는 반복되는 고민속에서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거친 여정 후의 상쾌함을 맛보고 싶다면 치악산이 제격이 아닐까. 험하지만 정상까지 가장 거리가 짧은 구룡사∼비로봉(1288m) 코스를 택했다.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구룡사 아래 주차장까지 걸린 시간은 차로 10분 정도.여기서 다시 10분 이상 걸어야 구룡사 원통문에 닿는다. 원통문 너머 사찰까지는 금강송 군락지.아득하게 높이 자란 수백년 수령의 금강송들이 절 입구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이곳 금강송은 조선시대 궁궐의 황장목으로 쓰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황장금표(강원도 지방기념물 제30호)가 표지로 남아 있다.하얀 눈옷까지 입고 늘어선 금강송들은 구룡사 겨울풍경의 백미다. 구룡사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신라 문무왕때 지금의 대웅전 터에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 용 9마리가 살았다.의상대사는 터가 좋은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용들이 먼저 솟구쳐오르자 뇌성벽력과 함께 산들이 모두 잠겼으나,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이어 의상이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용들은 뜨거워 날뛰며 달아났다. 사천왕문을 지나 돌층계를 오르니 보광루다.그런데 누각 아래를 지나 마당 너머 보여야 할 대웅전이 보이지 않는다.지난해 9월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다고 한다.빗살문과 정자(井字)문,그리고 내부의 겹층 닫집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구룡사 위로 이어진 구룡계곡과 큰골을 따라 세렴폭포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넒고 평탄하다.중간중간 구룡소,선녀탕,세렴폭포 등 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계곡은 꽁꽁 얼어붙었다.얼음속으로 이따금씩 희미하게 물소리가 새어나올 뿐,계곡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본격적인 산행은 세렴폭포를 지나서부터.사라리병창길을 지나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수백개의 계단과 바위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가끔씩 나무에 매어놓은 밧줄이나 잡목 뿌리를 잡고 산에 오르길 30여분.등줄기에 후줄근히 땀이 흐른다. 해발 800m 이상 올라가니 발목까지 올라오는 눈 때문에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발이 미끄러진다.아이젠을 착용했어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8부 능선에 이르면 비로소 처음으로 시원하게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천지봉과 태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왼쪽으론 투구봉,토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정면엔 사다리병창 아래로 구룡사가 손마닥만하게 자리잡고 있다.정상에 올라가기가 힘에 부친다면 여기까지만이라도 올라와야 치악의 산세를 반쯤은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30분 남짓 강행군한 끝에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칼바람이 부는 정상 위엔 돌탑 3개가 나란히 쌓여 있다.그 와중에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시는 이들이 눈에 띈다. 비로봉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치악산 산행의 압권.비로봉은 북쪽의 삼봉∼투구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남쪽의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북동쪽의 천지봉,태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즉 3개의 능선이 모이는 곳.사방을 둘러보아도 더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멀리 눈 덮인 산자락들이 새파란 하늘과 맞닿아 파노라마처럼 돌아간다. 주차장∼구룡사∼사다리병창∼비로봉 코스는 왕복 7시간 정도 필요하다.내려올 때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세렴폭포 부근 통제소에서 오후 1시 이후엔 입산을 통제한다. 글 치악산(원주) 임창용기자 sdragon@ ●세번째이야기…숯가마와 삼겹살 치악산 인근 횡성과 원주 일대엔 참숯을 구워내는 숯가마들이 많다.산행이나 스키를 즐긴 후 숯가마를 찾으면 참숯 굽기 구경은 물론 숯가마 찜질과 참숯 삼겹살 구이를 맛볼 수 있다. 구룡사 입구에서 나와 횡성군 우천면 방향으로 20여분쯤 가면 6번 도로 왼쪽으로 ‘강원둔내참숯마을’이 나온다.온통 눈으로 덮인 산자락 한 편에 자리잡은 숯가마 굴뚝에서 하얗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양이 참 아름답다. 숯을 굽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벽돌과 흙으로 만든 숯가마 안에 토막낸 참나무를 가득 채운 뒤 4∼5시간 불쏘시개로 불을 붙인다.이후 참나무는 4일 동안 스스로 탄다.5일째 되는 날 온통 새빨갛게 변한 불덩이들을 기다란 부삽으로 퍼내 흙구덩이에 파묻는다.이틀 정도 흙속에서 잠을 재운 뒤 꺼내면 가볍고 단단한 참숯이 나온다. 숯을 꺼낸 숯가마는 찜질방으로 최고 인기.가마속 온도가 70도 정도 되면 들어갈 수 있다.서울 고덕동에서 왔다는 50대 남성은 “숯가마 찜질이 주는 상쾌함은 도시의 첨단 찜질방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며 시간만 나면 숯가마를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따끈함이 느껴지면서도 전혀 끈적거림이 없는 게 일반 찜질방과 차이가 느껴진다. 숯가마 밖은 영하 10도 내외.숯가마 입구에 매단 거적을 밀치고 나오면 산골의 찬바람이 몰려들지만,한기보다는 시원함이 느껴진다.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숯가마를 서너번 들락거리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요금은 5000원.가운은 빌려준다.샤워실이 따로 없어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거나 바람에 말려야 한다. 이곳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참숯 삼겹살 구이.숯을 꺼낼 때 쓰는 부삽에 삼겹살을 깔고,시뻘건 숯이 가득 든 가마에 3초 동안 넣었다 뺀다.일명 ‘삼초구이’로 불리는 삼겹살 구이법.하지만 실제로는 서너번 넣었다 빼야 먹기 좋게 적당히 익는다. 고소한 삼겹살 맛도 맛이려니와 먹을 때 콧속에 스며드는 참숯향이 향기롭다.이같은 삼초구이는 손님이 적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고,보통은 참숯을 피운 화덕에 석쇠를 놓고 삼겹살을 구워먹는다.1근(500g)에 1만원.주인이 내주는 신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033)342-0949.다양한 용도의 참숯과 목초액도 구입할 수 있다.(033)342-0949. ‘강원참숯’도 숯가마찜질로 유명한 곳.강원둔내 참숯마을에서 6번 도로를 타고 횡성 방향으로 가다가 정금리에서 우회전해 13번 도로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나온다.(033)342-4508.이밖에 우천면 오원리의 ‘경원참숯’(033-342-0413),서원면 유현리의 ‘서원참숯’(033-344-5508)에서도 숯가마찜질을 할 수 있다. 글 횡성 임창용기자 sdragon@ ■구룡사 가는 길 ●교통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에서 빠져 우회전해 42번 국도(원주 방면)를 탄다.2㎞쯤 가면 학곡리 3거리가 나온다.여기서 개울을 따라 좌회전해 4.5㎞쯤 가면 구룡사 입구에 닿는다.원주역,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룡사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있다.동신운수(761-3135). ●숙박 치악산장(731-8539),옥스포드산장(731-5678),피닉스산장(343-1555),코레스코(343-8978) 등 치악산 주변으로 여관과 산장이 많다.비둘기민박(731-3934),구룡민박(732-5667) 등 구룡사 입구의 80여가구가 민박도 친다. ■ 청태산 가는 길 ●교통 영동고속도로 둔내IC에서 빠져 6번도로를 타고 둔내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시내 못 미쳐 오른쪽으로 청태산휴양림 가는 길(17번도로)이 나온다.휴양림까지 이정표가 잘 표기돼 있다.둔내IC에서 휴양림까지 20분 정도 소요. ●숙박 숙박은 휴양림내 ‘숲속의집’이 쾌적하고 편하다.숙박료는 평형에 따라 1만 5000원(4평형),4만 4000원(7평형),5만 5000원(9평형),7만원(17평형).겨울에도 1개월 전 인터넷(www.huyang.go.kr)을 통해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따라서 주말은 숙박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그러나 평일엔 빈 방이 있기 때문에 예약을 못 했더라도 숙박할 수 있다.휴양림 숙박이 여의치 않으면 성우리조트 인근의 여관이나 민박을 이용하면 된다.(033)343-9707. ■겨울산행 주의할 점 겨울산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기온이 매우 낮으므로 세심한 준비와 주의가 필요하다.아이젠,방한복과 방한모,방수 등산화 및 장갑은 기본.옷이 젖을 경우에 대비해 여벌의 옷도 하나쯤 챙기자.등산화 속으로 눈이 스며들지 않도록 행전(스패츠)도 필요하다.비상식량과 물도 준비하자. 눈이나 비 등 해당지역의 기상특보 여부도 확인하자.기상청 홈페이지(www.kma.go.kr)를 참조하면 된다. ■ 산악스키대회 열려요 오는 15일 청태산 자연휴양림내 순환 임도에서 ‘제3회 산림청장배 산악스키대회’가 열린다.출발점에서 30초 간격으로 개별 출발해,최단 시간에 거리별 코스를 완주해 도착한 시간기록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남·여별로 주니어부,청년부,장년부,단체부로 나뉘어 진행되며,부문별 시상도 한다.산악스키 장비는 렌털이 가능하다. 참가신청은 대한산악스키협회 홈페이지(www.mountski.org)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해 이메일(mounski@monutski.org),또는 팩스(02-573-9058)로 해야 한다. ˝
  • 티베트 16회 탐험… 야생화 500종 찾아내/팔순의 현역 산악인 박철암 씨

    ‘쇠바위(철암 鐵岩)’.히말라야에 첫 도전장을 냈던 대한민국 산악 역사의 산증인이자 팔순의 현역 탐험가에 딱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에서 풍기는 강한 이미지는 첫인상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그가 살아온 햇수를 나타내는 ‘80’이란 숫자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년의 기운이 흘렀다.투박하고 거무튀튀한 손은 티베트의 모래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10월 16번째 티베트 고원을 탐험하고 돌아온 박철암 옹은 만나자마자 대뜸 “산을 아느냐.”고 물었다.“잘 모른다.”고 하자 “그럼 인생은 아느냐.”고 물었다.역시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별로 없다.”며 먼저 자리를 뜨려는 깐깐한 할아버지를 간신히 붙잡았다.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한 탐험담과 인생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기에는 한참의 침묵이 필요했다. ●무인구(無人區)의 꽃을 찾아 박 옹이 처음 티베트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90년 6월20일.적막한 고원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 은은한 풀피리 소리가 들렸다.멀리서 양떼를 몰고 오는 목동들의 손에는저마다 잉카르빌리아라는 꽃을 이용해 만든 풀피리가 들려 있었다. 박 옹은 이때부터 잉카르빌리아와 목동,그리고 피리 소리에 이끌려 티베트 고원을 계속 찾았다. 16차례의 티베트 탐험은 전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하며 그가 걸은 길을 모두 합치면 9만 5000㎞나 된다.500여 종류의 야생화를 찾아내 ‘티베트의 꽃’이란 책으로 집대성했으며,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구를 탐험한 기록은 ‘지도의 공백지대를 가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특히 3년을 헤맨 끝에 92년 메코노프시스를 찾았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그대로다.히말라야와 티베트의 접경 지역인 좌촐라파스산 4900m 지점에서 발견한 메코노프시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꼽힌다. 그는 “손이 떨려 사진기 셔터를 누를 수조차 없었다.”면서 “꽃을 바라보며 ‘하느님’만 외쳤다.”고 말했다. 타클라마칸사막 밑으로 흐르는 물이 타림분지의 끝자락에 고여 이루어진 로프노르 호수는 며칠 사이에 형상이 변하는 신비한 자태로 박 옹을 매료시켰으며,실크로드 중간에 자리잡은 허탠 근처에서는 옥이지천에 널린 강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사막에서 천지를 집어 삼킬 듯한 돌개바람을 만났으며,야루창푸강을 건널 때는 급류에 휘말려 100여m를 떠내려 갔다. “말커차카 호수를 처음 발견하고 기뻐 날뛰다 길을 잃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지.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길을 떠나지만 막상 죽음이 엄습해오면 당황스럽더라고…”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 지난 62년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나선 박 옹은 한국 산악계의 거목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변변한 지도조차 없이 나선 첫 히말라야 등정은 다울라기리봉 7751m 지점에서 그쳤지만 그의 도전은 언제나 한국 등반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경희대 중문과 교수를 지낸 박 옹은 “당시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에 가겠다고 하자 문교부장관까지 나서서 말렸다.”면서 “누군가가 가야 할 히말라야라면 내가 첫 발을 내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65년 겨울에는 타이완 옥산을 등반했으며,67년에는 일본 북알프스 등반대장을 맡았다.71년에는 최초의 로체샬 원정에서 한국인 최초로 해발 8000m 선을 넘었다.84년에는 홀연히 히말라야 쿰부지역을 탐사하더니 90년부터 티베트의 대자연을 찾아 나섰다. 그는 타고난 탐험가다.평남 영원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2000m가 넘는 험준한 동백산과 낭림산을 동네 뒷산 오르듯 했다.고산지대에 지천으로 널린 마타리꽃은 소년의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박 옹은 “동백산과 낭림산 어느 골짜기에 난파한 배의 파편과 조개 화석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서 “죽기 전에 통일이 된다면 어렸을 때 올랐던 그 산들을 탐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은 인내’ 평생 고원과 산악을 탐험한 박 옹은 무엇을 얻었을까? “참는 것을 배웠지.인생은 인내야.” 박 옹은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 참지 못할 일이 없다.”면서 “한순간만 참으면 곧바로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이란 멀고 험한 탐험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 박 옹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할 말이 많다.불혹을 넘기면서부터 자신의 나이를 세보지 않았다는박옹은 “젊은이들의 이상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한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눈을 맞추고,사하라사막을 품을 만한 넉넉한 가슴을 가져야지.” 지난 97년 명예교수직마저 내놓은 박 옹은 1년에 3∼4개월은 티베트를 탐험하고,나머지는 대부분 설악산 용대리 농가에서 꽃을 가꾸며 지낸다.“티베트가 나를 부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찾아 가겠다.”고 말하는 박 옹의 눈은 어느새 티베트 고원을 향하고 있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1924년 평남 영원군 출생 ▲1949년 경희대 산악부 창립 ▲1961∼97년 경희대 중문과 교수 ▲1962년 국내 최초 히말라야 원정 ▲1963∼72년 대한산악연맹 이사 1965년 타이완 옥산 등반 ▲1967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 ▲1971년 로체샬 원정 ▲1990년 티베트 탐험 시작 ▲2003년 16번째 티베트 탐험
  • 우울하게 or 발랄하게 세상 바라보는 두 시선

    어느 모로 보나 대조적인 두권의 소설집이 나와 눈길을 끈다.양태석의 ‘다락방’(해토 펴냄)은 정통적 기법으로 곰삭인 맛이 우러나고 김도언의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펴냄)은 새로운 실험이 가득한 독특한 상상력이 빛난다.‘다락방’은 작가가 등단한 지 13년 만에 처음 낸 작품집.성장기 소년의 의식이 혼돈 속에서 익어가는 과정을 담은 표제작 등 9편은 탄탄한 기본기와 절제된 문체로 빚어온 녹록치 않은 솜씨를 보여준다.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비관적이고 회의적이다.그 모습은 비정상적인 광기로 가득한 세상(‘광인천하’),암울한 시대의 폭력에 휘둘린 가족의 비극(‘신데렐라 연구’) 등으로 나타난다. 평론가 정호웅 홍익대교수는 “인간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보여주는 세계”라며 “쓸쓸함과 적막함의 안쪽 너머 더 깊이 파고드는 문학을 기대한다.”고 평한다. 한편 ‘철제…’는 새로운 소설을 향한 의욕과 참신함이 넘친다.독특한 글쓰기를 향한 작가의 의욕은 등장인물을 다른 작품에서 끌어오는 방식에 있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기호태傳’,쇠라의 그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박태원의 ‘천변풍경’의 분위기는 표제작 등에서 불러낸다.작가는 이들을 발랄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으로 빚은 뒤 현대 사회의 불안한 표정과 목소리의 상징으로 묘사한다.이런 글쓰기에 대해 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접속의 상상력’이라고 이름붙인 뒤 “불안의 뿌리로 내려가고 더 내려가서,상상적으로나마 불안의 해탈에 이르러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을 당부한다. 이종수기자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1)무너지는 소도시 상권

    농촌 경제의 어금니였던 읍내 상권이 무너졌다.구매력의 원천인 농민들은 호주머니가 비었다.농협 빚이 자라나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자 비율이 회원농협별로 조합원의 8∼20%를 웃돈다. 대목 중의 대목인 설이 코앞에 닥쳤지만 읍내 거리는 썰렁하다.경기(景氣)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고 한다. ●물좋다는 다방·모텔 매물 홍수 이농에 따라 인구가 줄면서 관공서들도 하나 둘 떠났다.자석처럼 손님을 끌고 다니며 읍내 경제를 쥐락펴락 하던 공무원들도 철수하거나 구조조정으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또 읍내 우회도로나 국도 주변에 들어선 대형 할인마트들이 주차시설과 값싼 가격,편리함을 내세워 수백명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대신하고 있다.여기다 고속도로 등 도로 확장·포장과 개설로 접근성이 좋아지자 읍민들도 시 단위 시장을 찾아간다.경북에서는 2001년 이후 대구에서 왜관,김천∼구미,구룡포∼포항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군위·의성·청도·칠곡군 등 대구권역 군들은 개발 기대와는 달리 지역상권이 오히려 위축됐다.특히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인근 군 지역의 인구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으며,시가지 상가매출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군청과 가장 번잡하다는 중앙로·버스터미널·5일시장 주변 등 이른바 황금상권도 수천만원을 웃돌던 권리금이 없어졌다.상인들은 “경기침체라는 홍역에다 농촌붕괴로 상가마다 링거를 꽂고 연명하는 중환자 신세”라며 하소연이다.“하던 일인데다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내 집이어서 하루하루 장사한다.”며 더 묻지 말라고 손사래다.읍내마다 내려진 셔터나 출입문 위에 ‘휴·폐업.임대.건물 세놓음.몽땅세일’ 등 부도난 건물에나 붙어 있을 법한 종잇장이 나붙어 있다.2000년대 이후 ‘물좋다.’는 다방이나 모텔도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의성군 1년새 100여개 문닫아 가장 큰 문제는 농촌에 현재 소득원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불확실성에 있다.이 때문에 고향을 지키던 젊은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흘러들고 있다.날품을 팔고 노점상을 하더라도 도시가 낫다는 생각에서다.하루라도 빨리 고향을 뜨는 게 당대는 몰라도 자식을위해서라도 밑지지 않은 장사라고들 말한다. 특별취재팀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 대구 김상화기자 농도인 전남도는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다.전남도민(206만명)의 25.3%인 52만명이 농민이다.도내 22개 시·군 중 5개 시를 제외한 17개 군의 경우 전체 주민의 절반이 농민이다.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 군민의 20%를 넘는 곳도 있다.강진군의 경우 관내 130개 중소기업 가운데 최근 2년 새 11개가 휴업하고 5개가 폐업했다.읍내 상가번영회 김병완(60) 회장은 “군민 전체라야 5만명도 안되는데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읍내 600여개 상가 가운데 지난 2년 동안 100여개 업체가 휴·폐업했다.소규모의 구두가게·양복점·식당·옷가게 등이 손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마늘과 사과·고추 주산지로 돈이 돌았던 경북 의성군을 비롯해 군위와 예천,영양,청송군의 읍내도 폐업과 매물로 넘쳐난다.의성군의 경우 1800여개 업소 가운데 1년 새 100여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800여개가 가게를 내놨으나 거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가게당 1000만∼5000만원씩하던 권리금이 공중에 떴다.문을 연 가게들도 매출이 지난해의 50∼80%선으로 격감했다.수개월째 임대료를 못내는 경우도 적잖다.종업원 해고 등 자구책을 쓰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식이다.세입자들은 주인의 독촉에 사채와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버티고 있다.부도 위기설로 술렁거린다.옷가게를 하는 김모(43·여)씨는 “농촌경제 붕괴로 읍내 상가가 줄줄이 쓰러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고 있다.”며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이제 상권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충남에서 군세가 가장 작은 청양군 읍내는 휴·폐업중인 점포수가 전체 80∼90개 가운데 10여개를 넘었다.부동산업을 하는 이상선(58)씨는 “10년 전만 해도 5일장이 서면 버스 안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차 장날 분위기가 났는데 요즘은 서너명만 내리고 장날도 썰렁하기만 하다.”고 말했다.예전에 손수 가꾼 농산물을 바리바리 이고 와 팔던 농민들 대신 트럭에 물건을 가득 떼온 떠돌이 장사꾼들이 장터 곳곳을 메우고 있다. ■무너지는 소도시상권 르포 지난 9일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30분여만에 도착한 경북 의성군 의성읍내는 날씨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했다.사람들로 붐벼야 할 점심 시간인 데도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눈 앞에 보이는 몇몇 상가들은 문이 잠기거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7만 군민들의 중심 상권이라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가 임대·매각 딱지만 ‘더덕더덕' 필름을 사려고 들른 한 사진관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아 한기가 돌았다.한참만에 밖에서 들어선 주인에게 “장사하지 않고 어디 다녀 오세요.”라고 묻자 “손님도 없는 점포를 지키면 뭐 해요.인근 가게 주인들 대여섯이 모여 매일 고스톱이나 치고 놀죠.”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건너 편에서 부동산을 하는 이성민(60)씨는 “전체 점포 중 절반 정도가 휴업하거나 세로 내놓았지만 거래는 전혀 없다.”며 “그동안 점포세로 재미를 봤던 건물주들도 세입자들이 불황으로 세를 연체하자 건물 관리가 안돼 매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생활정보지도 태반은 건물 임대·매물란으로 채워져 있었다..군청앞에서 식당을 하는 김종우(59)씨는 “요즘 손님을 받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라면서 “식당한 지 1년이 지났으나 때려치워야 할 판”이라고 씁쓰레한 표정이었다.의성농협의 한 직원은 “예전 같으면 상가 주인들이 평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하루 매상을 들고 왔지만 요즘에는 그 분들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구 3만 8000여명으로 충남도에서 가장 적은 청양군 읍내는 산사(山寺)와도 같았다.9일 점심 때,외관상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섰으나 주인과 종업원인 듯한 여자 4명만이 식사중이었다.주인은 “장사,말도 말아라.하루종일 파리만 날린다.어디 밥먹고 살겠느냐.”고 푸념부터 늘어놓았다.문 닫은 상가와 ‘무조건 1만원’이란 딱지가 붙은 가게도 듬성듬성 보였다. ●군청직원 월급일부 상품권으로 곡창지대인 예산군 읍내는 초저녁인데도 서너집 걸러 한집씩 불이 켜지지 않았다.급기야 예산군은 지역상권 활성화를 내걸고 직원들의 월급 가운데 실·과장은 10만원,6급 이하는 5만원짜리 상품권으로 대체해 지역상품을 의무적으로 사도록 했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은 탐진댐 건설에 따라 읍내 식당(523개)과 유흥주점(36개) 등이 한동안 특수를 누렸으나 겨울해는 길지 않았다.식당을 하는 이동철(43)씨는 “주민들 보상이 마무리되면서 식당이고 술집이고 썰렁해 졌다.”고 말했다. 국도 2호선(부산∼목포)이 왕복 4차로로 뚫리면서 목포시와 20분거리로 좁혀진 강진읍은 상권 붕괴가 가속화했다.읍내에서 비교적 목이 좋은 매일시장이나 5일시장이 가장 먼저 손님을 빼앗겼다.5일 시장에서 20년 넘게 옷가게를 해온 구연호(65)씨는 “이러다간 굶어 죽겠다.하루 3만∼4만원어치 파는 게 고작”이라며 “하루 매상 30만원씩 올리던 80년대 시절이 그립다.”고 회고했다.이 시장 내 장옥(점포) 120개 가운데 20%는 비었다.윤천식(63) 시장상가번영회장은 “23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데 7∼8년 전부터 매상이 뚝 떨어져 부부 인건비나 건지는 셈 친다.”면서 “시장에 오는 사람 찾기가 힘든 판이니….”라면서 혀를 찼다.군에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억여원을 들여 장옥을 현대식 건물로 단장했고 주차장(70대)도 짓는다.입점 상인들도 친절과 청결 등 소비자 만족을 위한 자체 교육에 눈을 돌리고 있다.시장통에서 만난 주민들은 농협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할인마트가 그나마 있는 손님까지 몽땅 훑어갔다고 불평불만이다.시장안에서 40년도 넘게 콩나물과 두부·대파·시금치 등을 팔아온 할머니 세분은 “오늘은 아직 개시도 못했다.저쪽에 있는 마트에서 두부나 콩나물을 여기보다 100원씩 더 싸게 판다.”며 성질부터 냈다. 특별취재팀 ■러브호텔 불황 직격탄 농촌에서 불황을 비웃으며 현금을 거머쥐던 모텔(러브호텔)이나 다방도 2000년대 들어 맥을 못추고 있다.우후죽순 격으로 늘던 모텔도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또 웬만한 읍내마다 50여개를 웃돌던 다방도 여종업원들이 티켓비(일명 봉값·시간당 2만∼2만 5000원)를 못 채우는 불황에 휴업이 속출하고 있다.읍내 소재 다방마다 아가씨 4∼7명을 두고 장사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러브호텔로 통칭되던 여관이 충남 연기군 50개,금산군 55개에 이른다.그러나 농촌경제가 결딴나면서 회전율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기름값도 안 나오고 매매가마저 폭락해 이중고다.금산읍 H모텔 종업원은 “모텔 손님들이 1997년 외환위기 전의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연기군내 다방은 140개에서 112개로 줄었다.조치원읍내의 한 다방 여주인은 “아가씨 구하기도 어렵고 장사도 잘 안돼 일부 티켓다방 등은 노래방으로 업종전환을 하는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0여개의 러브호텔이 몰려 있는 팔공산 자락인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는 매물 10여개가 나왔다.20∼50여개의 객실을 갖춘 러브호텔 가운데 최근에 지은 10∼20%만 그런대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20억원을 호가하던 매매가는 13억원으로 내려갔다.임대기간이 끝난 D모텔 등도 올 들어 임대료를 30∼40%가량 낮췄다.군위군 동산리 10여개의 러브호텔 가운데 2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는 개점휴업 상태다.의성군에는 다방 161곳이 등록돼 있지만 영업중인 곳은 100여곳이다.군위군 61곳,영양군 43곳도 20%가량 휴업중이고 나머지도 도산위기다. 전남 보성군도 99년 하루에도 서너개씩문을 열던 다방이 한때 120여개였으나 지금은 87개다.이 가운데 정상영업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인근 장흥군도 다방 83개가 있으나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종업원 4명을 둔 P다방 업주 김모(39·여)씨는 “예전에 월 평균 1000만원까지 오르던 매출이 300만∼400만원도 간신히 건진다.”고 말했다.군청 위생계의 한 직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다방 아가씨들의 봉값(티켓비)을 둘러싼 실랑이나 신고가 잦았으나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점포 임대·매매 실종 “상가 점포 임대요.더는 말 마이소.불황에 누구 속 뒤집어 놀라캅니까.” 경북 의성군의 ‘명동 거리’로 불리는 의성읍 후죽리에 사는 임모(68)씨는 요즘 화병이 났다. 10여년전에 신축한 건물(4층) 점포 대부분(1∼3층,100여평)이 3년째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1층 20여평을 임대한 것이 고작이다.4층은 살림집이다.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가게 임대문제론 걱정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큰소리 떵떵 치면서 세를 놔 먹었다.‘노른자위’ 점포여서 사람들이 줄을 서세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가 경기가 주저앉기 시작한 2001년부터 점포세가 슬슬 빠지더니,다시 나가지 않고 있다.1년전부터 점포세를 예전의 절반 정도로 내렸지만,감감무소식이다, 임씨는 “점포세 놔 먹기가 이젠 끝장난 것 같다.”며 “‘애물단지’가 된 건물을 매각하려고 해도 그마저 어렵다.”고 한숨 지었다. 인근 건물에서 점포 20여평을 세 얻어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49·여)씨의 심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매출부진으로 7000만원을 투자한 점포를 십 수개월전부터 처분하려고 해도 임자가 나서질 않는다.그저 울며 겨자 먹기식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한달에 5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본전치기라도 되지만,300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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