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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발 묶인 텔레마케터] 고객 DB 제한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사채까지 쓰며 극단적 생각도”

    [손발 묶인 텔레마케터] 고객 DB 제한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사채까지 쓰며 극단적 생각도”

    “사채까지 썼습니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입니다. 왜 아무 잘못도 없는 텔레마케팅(TM) 직원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 걸까요.” 보험사 TM 경력 10년차인 김미경(40·여·가명)씨는 벌써 한달 가까이 실직 아닌 실직 상태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사 TM 업무 금지 조치를 내린 지 18일 만에 보험사 TM 영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영업 수단인 고객 데이터 베이스(DB) 이용에 제한을 둬 손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사와 카드사의 TM 영업이 재개됐지만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는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의 후속 대책으로 금융위가 내놓은 TM 영업금지 조치가 4만 7000여명에 이르는 텔레마케터의 생계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온 뒤 보험사는 지난 14일부터, 카드사는 이 날부터 TM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정작 현장에 있는 텔레마케터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금융당국은 합법적으로 수집한 고객 정보인지 검증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최고경영자(CEO)의 확약서를 받은 보험사부터 영업을 재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말이 재개였을 뿐 고객 정보가 합법적으로 수집된 것인지 수백만건의 DB를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3일에 1건 계약 성사는 옛말 평소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김씨는 TM 영업 금지 사태가 일어나기 전 하루 평균 150개의 DB를 받았다. 영업 재개 이후 회사로부터 받는 DB는 15개로 줄었다. 10분의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김씨는 “예전에는 150개 DB를 받아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려 잘하면 하루에 1~2건, 못하면 3일에 1건 정도 계약을 성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받는 15개 DB는 합법적으로 수집한 정보임이 확인된 것들이다. 하지만 15개 DB를 바탕으로 전화를 걸어도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최근 금융당국의 정책을 듣고 이렇게 전화해도 되느냐고 따져묻는 고객들의 항의만 들을 뿐이다. 김씨는 “전화 한 통화에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15개 DB를 가지고 전화를 돌려봐도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시간이며 결국 6시간 넘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면서 점심값과 교통비만 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24일부터 영업을 재개한 카드사 텔레마케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KB국민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 등 3개 카드사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사에 대해 개인 정보 활용 동의 사실이 확인된 고객을 상대로만 전화영업을 한다는 CEO의 확약서를 내는 조건으로 TM 영업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각 카드사들은 만에 하나 고객 민원이 발생할 경우 CEO가 퇴진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낀 듯 합법적으로 수집한 고객 정보 DB를 구분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합법적인 정보만 갖고 TM 영업을 하겠다고 확약서를 내고 나서 나중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직접적인 타격이 있기 때문에 완벽히 점검이 끝난 뒤 확약서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이날 오후 한 TM 업체 사무실은 영업 재개 소식이 무색할 정도로 적막감이 흘렀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상품을 홍보하기에 바쁜 TM 직원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지만 사무실을 지키는 텔레마케터들도 많지 않았다. 해당 TM 업체 관계자는 “텔레마케팅에 대한 고객들의 거부감이 높아져서 콜(전화) 성공률이 대폭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 영업을 재개하기보다 앞으로의 영업 방식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을 먼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 8년차의 카드사 텔레마케터 연모(38·여)씨는 “과거 고객과 통화했던 녹음 내용을 들어보면서 모니터링하는 교육으로 하루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있다”면서 “언제부터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사 TM 활동에 대한 당국의 제재가 강화되자 이 기회에 업종을 바꾸는 텔레마케터들도 있다. 한 생명보험사와 제휴를 맺고 TM 업무를 하는 업체에서 3년간 일한 김현미(34·여)씨는 “정보 유출 사태 이후에 고객들의 민감도가 높아져서 보험이나 카드나 마찬가지로 전화 영업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면서 “동료들 가운데서는 보험사, 카드사 소속 마케터로 일하다가 홈쇼핑 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고객들의 해약이다. 기본급 없이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받는 텔레마케터들에게 고객의 계약 해지는 ‘급여 압류’를 뜻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기존 가입 고객들이 최근 금융당국의 TM 영업 금지 때문에 자신의 보험 가입이 잘못된 게 아니냐며 항의하고 해약하는데 그럴 때마다 기존 성과급을 회사 측에서 도로 가져간다”고 말했다. TM 직원들은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생계형 자영업자 신분이다. 보험사 텔레마케터 김모(40·여)씨는 “영업 금지 조치 이후부터 해약돼 회사가 도로 가져간 성과급만 62만원”이라면서 “신계약은 이뤄지지 않고 돈은 도로 가져가는데 자영업자 신분이다 보니 은행 대출도 어려워 생계 때문에 400만원 사채를 빌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 자녀의 어머니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김씨는 “한 달에 평균 150만원 벌까 말까였는데 그마저 수입도 없고 마이너스만 생기니 살기가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너무 힘들어” 이직하는 사람 늘어 TM 경력 11년차인 박선영(42·여·가명)씨는 이번 TM 영업 제한으로 아예 업계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만둔 상태다. 박씨가 그만두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회사의 태도 때문이다. 박씨는 “기존 보험이 해약되는 데 대한 손해는 TM 직원이 다 책임질뿐더러 최소한의 생계 보장에 필요한 기본급도 없이 알아서 남으려면 남고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라면서 “정당한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것에 너무 실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TM 영업에 문제가 있다는 고객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TM 영업이 재개됐더라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그때까지 자리만 지키다가는 생계가 어려울 것 같아 경력이 있음에도 그만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금융사 TM 영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악화된 것도 이들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 고객들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아 민원이나 질문을 듣는 ‘인바운드’ 텔레마케터들은 “마치 죄인처럼 빌어야 하거나 고객들에게 폭언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소연한다. TM 전문 용역업체 K사에서 영업팀장을 맡고 있는 최모(48·여)씨는 “직원들의 정신적 피로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K사는 카드사의 정보 유출 사태 직후 한 카드사 고객센터에 나가 카드 해지 및 재발급 등 전화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했다. 최씨는 “개인 정보가 유출된 고객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를 붙잡고 화를 퍼붓거나 재발급 등 후속 조치는 듣지도 않고 무작정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종종 있어 쩔쩔매다 울음을 터뜨린 직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TM 직원들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 등을 판매하는 ‘아웃바운드’ 업무 재개는 꿈도 못 꾸고 있다. 이 회사 직원 김모(36·여)씨는 “당장 일거리가 없는 것, 용역업체라 일거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억울하지만 그보다 고객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면서 “정작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영업 최일선에 있는 TM 직원들이 모두 덤터기를 쓴다. TM 조직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음산’ ‘신비’ 두얼굴…日도쿄 사진 화제

    ‘음산’ ‘신비’ 두얼굴…日도쿄 사진 화제

    유명 공포게임이자 영화로도 개봉해 인기를 끈 ‘사일런트 힐’ 속 도시처럼 음산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일본 도쿄 모습이 포착돼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을 찍은 이는 영국 윌트셔 주 맘스베리 출신 웨딩 촬영 전문 사진작가 케빈 뮬린스(40)다. 뮬린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첫 번째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828m)인 도쿄 스카이트리 타워(653m)에서 해당 풍경을 촬영했다. 당시 그는 웨딩 촬영 종료 후 남은 시간을 활용해 스카이트리 타워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해당 광경을 포착했다. 비가 내린 후 구름이 뒤덮인 도쿄 도심 한가운데 푸른 햇빛이 살며시 비치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하늘에서 누군가 인공조명을 비추는 것 같다”, “적막에 휩싸인 모습이 암울한 세기말 풍경을 연상시킨다”,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비인간적인 미래도시 같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뮬린스는 “비가 온 후 구름이 낀 도쿄 모습을 바라보다 좋은 장면이 연출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셔터를 눌렀고 이는 적중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 도쿄 풍경 사진은 영국 저명 사진작가 공동체인 ‘The Societies’ 주최 콘테스트에서 1위에 올랐으며 뮬린스는 부상으로 트로피와 상금 1000파운드(약 180만원)을 받았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왕이 나실 곳… 스키 대신 산을 타다

    왕이 나실 곳… 스키 대신 산을 타다

    겨울산행에서 스키장의 몫은 크다. 곤돌라 등 탈것을 이용해 정상까지 쉬 오를 수 있어서다. 정상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건 체력 안배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겨울산행이 에너지 소모가 특히 많다는 걸 생각하면 더없이 고마운 노릇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강원 평창의 발왕산(發王山·1458m)을 올랐다. 자전거 용어를 빌리자면 ‘다운 힐’ 등산쯤 될까. 한두 번의 오르막은 있지만 대개 내리막길이어서 등산 초보자나 체력이 약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겨울산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대관령 지역은 눈이 많다. 백두대간의 준령들을 타고 오르던 습윤한 공기가 힘에 부쳐 품고 있던 습기를 산 아래쪽에 내려놓는다. 이게 눈이 돼 날린다. 선자령, 능경봉 등 대관령 일대에 유난히 눈꽃 산행지가 많은 건 이 때문이다. 발왕산도 그중 하나다. 발왕산은 평창 진부면과 대관령면 경계에 솟아올랐다. 여덟 왕이 쓸 묏자리가 있다 하여 팔왕산으로 불리다 발왕산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왕이 날 자리가 있다고 해 발왕산이라고 불렸다는 전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임금 왕’(王) 자가 ‘성할 왕’(旺)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다가 최근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1953년 발왕산 북쪽 사면에 용평스키장이 들어서면서 명성이 한풀 꺾이긴 했으나, 남한에서 열 번째로 높은 명산이다. 곤돌라를 타면 10여분 만에 ‘드래곤 피크’에 닿는다. 용평 리조트 최상급자 코스다. 예서 발왕산 정상까지는 500m 정도 거리다. 그 사이에 주목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살아 1000년, 죽어서도 1000년을 간다는 나무다. 예서 맞는 풍경이 장하다. 사방이 막힘 없이 탁 트였다. 오대산과 황병산, 계방산, 가리왕산, 두타산 등 강원의 명산들이 사방팔방으로 거침없이 줄달음친다. 대개의 산행객들이 ‘드래곤 피크’ 주변에 머물다 내려가지만, 헬기장 부근까지는 다녀오는 게 좋겠다. 여기서 동북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제법 빼어나다. 발왕산 산행은 정상 부근 장구목에서 이른바 ‘심마니길’을 타고 용산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겨울엔 달라진다. 눈이 두껍게 쌓여 길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안은 골드 코스와 실버 코스 등 산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등산로를 따르는 것. 특히 4.8㎞의 골드 코스가 인기다. 거리도 적당하고 오가며 만나는 풍경도 빼어나다. 산행 방법은 두 가지다. 걸어서 ‘드래곤 피크’까지 오른 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거나, 역순으로 되짚어 내려간다. 전자는 3시간 안팎, 후자는 2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골드 코스는 스키 슬로프 바로 옆에서 시작된다. 숲에 들면 한순간 적막이 찾아든다. 곧추선 나무들과 그 위에 두껍게 쌓인 눈이 소음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스키어들이 사각대며 눈 지치는 소리가 낮게 귓전을 흐른다. 기분 좋은 소리다. 하산길 초입은 그야말로 눈 세상이다. 눈더미를 인 주목들과 참나무들이 그림 같은 눈터널을 이뤘다. 눈은 오래전 내렸지만 기온이 낮아 거의 녹지 않았다. 산자락의 경사는 급한 편이다. 걷는 건지 눈 위를 미끄러지는 건지 도무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등산로는 스키 슬로프와 세 번 마주친다. 슬로프 건너편으로 길이 이어진다. 따라서 슬로프를 횡단해야 하는데, 빠르게 활강하는 상급자 코스인 만큼 충돌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등산로 중간쯤에 이르면 길이 다소 완만해진다. 주변을 감싼 나무들도 소나무와 전나무 등으로 바뀐다. 숲엔 산새가 많다. 나무 위를 부지런히 오가며 먹이를 곤는 동고비가 예쁘고, 눈 목욕으로 몸과 깃털을 씻어내는 딱새며 흰 눈 속 붉디붉은 열매를 탐하는 어치 등도 반갑다. 철쭉오름쉼터에서 약수터 내려가는 길. 붉은 소나무와 은회색의 박달나무가 얼싸안고 솟구쳤다. 얼핏 다른 수종의 나무들이 몸을 섞은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뿌리만 한데 얽혔다. 연리목은 아니더라도 연인처럼 정다운 모습이다. 이후 길은 순해진다. 폭도 넓어 등산로보다 산책로라고 표현하는 게 적합할 정도다. 약수터 물은 달고 개운하다. 잠시 다리품하기 딱 좋다. 약수터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30분쯤 걸린다. 소나무와 주목들이 어우러져 제법 짙은 숲그늘을 이루고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타워콘도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20분마다 한 대씩 운행한다. 평창 북쪽의 휘닉스파크 리조트도 오를 만하다. 상고대 명소로 꼽히는 태기산의 동남쪽에 사면에 조성된 스키장이다. 역시 곤돌라를 타고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몽블랑 스키 하우스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물결치는 산자락을 굽어보는 맛이 각별하다. 발왕산 아래로는 송천이 흐른다. 대관령 고원지대에서 발원한 물길이다. 횡계 안쪽의 작은 마을을 휘감은 송천은 도암호로 흘러든다. 물길은 계속해서 정선 쪽으로 흐르다 오대천과 합쳐진 뒤 조양강~동강~남한강을 이룬다. 이 물길을 따라가는 여정도 권할 만하다. 발왕산 정상과 연결된 등산로가 없어 하산한 뒤 따로 돌아봐야 한다. 도암호는 평창과 강릉이 경계를 이루는 계곡에 조성된 인공호다. 옛 지역명을 따 수하호라 불리기도 한다. 호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거대한 얼음 광장이다. 안전만 확보된다면 미끄럼도 타고 썰매도 지치는 좋은 공간이 될 듯싶다. 수하호 상류는 수하계곡이다. 흰 눈 뒤집어쓴 계곡과 산자락이 어우러져 소담한 겨울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맘때 평창에는 먹거리와 놀거리가 풍성하다. 송어축제는 그중 앞줄에 선다. 평창은 196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송어를 양식한 곳이다. 평창군에서 해마다 송어축제를 여는 이유다. 축제 주무대는 진부면 오대천 일대다. 얼음에 구멍을 뚫어 송어를 낚는 얼음낚시, 맨손 송어 잡기, 텐트 낚시 등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잡은 송어는 축제장 내에서 굽거나 회를 떠서 먹을 수 있다. 눈썰매와 봅슬레이, 얼음 기차 등의 겨울 놀이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축제는 2월 2일까지 진행된다. 진부면축제위원회 홈페이지(www.festival700.or.kr) 참조.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를 탄다. 송어축제장으로 가려면 진부나들목으로, 발왕산에 오르려면 횡계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도암호는 횡계에서 용평리조트 쪽으로 가다 리조트 정문에서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곧장 가면 된다. 평창군 문화관광과(330-2399) 홈페이지(www.yes-pc.net) 참조. →잘 곳 송어축제 기간에는 평일에도 숙소 잡기가 만만치 않다. 출발에 앞서 숙소를 예약해 두는 게 좋다. 횡계리 쪽에선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리조트 등이 첫손 꼽힌다. 상고대 명소인 태기산을 오르려면 휘닉스파크나 한화리조트가 가깝다. 진부 나들목 바로 앞의 오투모텔(335-0098)도 깔끔하다. →맛집 납작식당(335-5477)은 오삼(오징어·삼겹살)불고기를 잘한다. 남경식당(335-5891)은 꿩만두와 메밀막국수로 소문난 집. 횡계리에 있다. 진부 쪽에선 명진왕갈비탕을 먹어볼 만하다. 갈빗대의 양이 ‘감동적’이다. 335-8988.
  • 수만개의 호수와 섬… ‘백야의 땅’ 핀란드를 가다

    수만개의 호수와 섬… ‘백야의 땅’ 핀란드를 가다

    북유럽의 고독한 늑대로 불리는 ‘핀란드’. 숲과 호수의 나라, 현대적 디자인의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는 국토의 3분의1이 북극권에 속하는 동토의 땅이다.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날이 이어지는 극야의 땅으로 돌변하고, 이곳의 하늘에선 오로라가 반짝인다. EBS ‘세계테마기행’은 30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매일 밤 8시 50분 ‘휘바! 핀란드’를 방영한다. 항해자들의 천국인 핀란드 최대 호수 ‘사이마 호’와 핀란드 최고의 절경이라 일컬어지는 호수의 다리 ‘에스커리지’를 찾아간다. 65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핀란드 최남단 올란드 제도에 닿아서는 고독한 자연의 이면에 담긴 순수의 세계를 발견한다. 올란드 제도는 발트 해의 숨은 보석으로 불린다. 1부 ‘북극으로 가는 문, 라플란드’에선 발트 해의 은빛 도시 헬싱키에서 북극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수천년 전부터 라플란드를 지켜온 북극의 원주민 사미족을 만나고, 눈보라가 치는 북극의 길을 걸어 도착한 유럽의 끝에서 북극해를 바라본다. 북극으로 가는 길은 오랜 시간 황무지로 여겨져 버려졌다. ‘설국열차’를 타고 북위 66도 33분 북극선을 넘어 눈의 여왕이 썰매를 타고 지나갈 것만 같은 신비의 땅, 라플란드를 만난다. 북극으로 가는 문으로 통하는 라플란드의 길은 전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가 온통 하얀 눈에 뒤덮여 만들어진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빽빽이 박힌 숲의 장관을 이룬다. 울창한 가문비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우르호케코넨 국립공원’은 빙하시대 이전 라플란드에 최초로 정착했던 민족인 사미족이 순록을 방목하고 사냥을 하던 땅이었다. 조상 대대로 이 땅을 지켜온 사미족은 여전히 재산 목록 1호인 순록 무리를 이끌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2부 ‘마법의 시간, 극야’에선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극야’를 모두 지닌 핀란드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살펴본다. 북반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핀란드 북부는 겨울이면 추위와 어둠의 적막이 지배하는 땅으로 돌변한다. 하지만 핀란드 북극권의 시작점이자 어른마저 설레게 하는 산타클로스가 있는 도시 로바니에미는 동심의 순수로 활기가 넘친다. 3부 ‘숲과 호수의 나라’와 4부 ‘섬들의 낙원, 올란드’에선 태고의 빙하가 남긴 수만 개의 호수와 섬으로 이뤄진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를 다룬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과거로의 시간여행…응답하라 ‘목포 1897’

    과거로의 시간여행…응답하라 ‘목포 1897’

    고백부터 하자. 전남 목포에서 일제강점기가 남긴 몇몇 흔적들만 보면 됐지 싶었다. 저 유명한 ‘목포 오거리’에서 시작해 근대의 낡은 풍경들을 보며 설렁설렁 걷다가 유달콩물, 혹은 팥죽이나 한 그릇 사 먹고 돌아올 요량이었다. 그러다 유달산 비탈에서 낡은 동네를 만났다. 다순구미와 보리마당이었다. 머릿속에서 뎅~ 종소리가 울렸다. 이렇게 기막히고 치열한 풍경을 보았나.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는 ‘응사’(응답하라 1994) 세대조차 상상 못할 옛 모습을 품고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조선내화 굴뚝 너머로 곧 스러질 집들이 시루떡처럼 쌓인 풍경 말이다. 멀리서 다순구미의 전체적인 모습부터 살피자. 그 뒤 마을에 드는 게 순리다. 들머리는 고하도(高下島)다. 목포 코앞의 섬이다. 지난해 6월 목포대교와 연결되면서 뭍이나 다름없게 됐다. 죽교동 쪽에서 목포대교에 오르면 5분 안쪽에 섬에 닿는다. 고하도는 허사도와 이웃했다. 워낙 작아 뒤돌아보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였고, 그 탓에 본 게 허사가 됐다 해서 허사도다. 지금은 목포 신항이 들어서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섬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허사가 된 셈이다. 고하도는 용을 닮았다. 활처럼 휘어 목포 앞바다를 감싸고 있다. 섬의 끝자락 ‘용오름’까지는 약 3㎞.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왕복 약 2시간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고하도에서 가장 높은 뫼막개(뫼봉)까지만 가도 된다. 고갯마루에 서면 목포의 아이콘 유달산(228m)이 손에 잡힐 듯하다. 목포 시가지와 삼학도 등도 죄다 눈에 담긴다. 고하도가 아니었다면 여태 볼 수 없었던, 매우 낯선 풍경이다. 고하도에서 보는 유달산의 자태가 당당하다. 남정네 ‘알통’을 닮은 암릉들이 여기저기 솟았다. 목포 사람들이 유달산을 목포의 아버지, 봉긋봉긋 솟은 삼학도를 어머니라 부르는 이유, 뫼막개에 서면 알게 된다. 유달산은 아래로 여러 마을들을 거느렸다. 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풍경을 선보이는 곳이 다순구미(온금동)와 보리마당(서산동)이다. 다순구미는 볕이 잘 드는 곳이란 뜻이다. ‘다순’은 ‘따숩다’란 사투리가 어원이다. ‘구미’는 바닷가 곶부리 뒤편의 후미진 곳을 일컫는다. 이걸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게 온금동이다. 마을은 옛 째보선창 뒤편의 유달산 자락에 매달려 있다. 마을에 들면 시간이 멈춰 선다. 외려 객의 시간이 과거로 끌어내려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골목은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고, 씨줄날줄로 얽힌 골목 마디마디엔 수많은 기억이 저당 잡혀 있는 듯하다. 산비탈을 따라 파랗고 노란 집들이 오종종하게 서 있다. 골목엔 무거운 적막이 머문다.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도 심드렁한 반응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과거를 목격한 객의 눈은 즐겁지만, 정작 주민의 삶은 낡은 만큼 팍팍한 게다. 다순구미 이야기를 듣자. 곽순임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1897년 10월 1일, 목포가 ‘개항’했다. 근대적 의미의 통상항이 됐다는 뜻이다. 이듬해부터는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달산 아래, 그러니까 현재 근대역사관(옛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등이 있는 평지 지역을 빠르게 장악했다. 1930년대 발간된 ‘목포부사’에 ‘유달산 자락 빼면 평평한 땅은 한 평도 없다’는 내용이 담긴 걸 보면, 사실상 목포의 핵심 지역이 죄다 일본인 손에 들어간 셈이다. 노른자위 땅을 잃은 목포 사람들은 인근 유달산 자락에 하나둘 정착하게 된다. 그곳이 다순구미다. 예전 다순구미엔 ‘조금새끼’들이 살았다. 조금 물때에 밴 자식이라는 뜻이다. 주민들이 질색하며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다.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들지 않는 때다. 물고기도 잘 잡히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아 연명해야 하는 주민들은 으레 물이 잘 나는 사리 때 출어해 조금 때 돌아오곤 했다. 여러 날 색에 주린 남정네들이 집에 와 할 일이란 불을 보듯 뻔한 것. 이 마을에 생일이 같은 ‘조금새끼’들이 여럿인 건 그런 이유다. 다순구미는 곧 사라진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가장 높은 곳. 햇살이 밝고 따스하다. 철거를 앞둔 마을의 처연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무말랭이 널린 바위에 앉아 앞바다를 보고 있자니 잠이 쏟아진다.왈왈 개 짖는 소리마저 자장가다. 보리마당 이야기도 짠하다. 보리마당은 현 서산동 가장 윗자락의 너른 공터를 이른다. 이름 그대로 보리를 털어 말리던 곳이다. 오래전 목포 인근의 섬 사람들은 보리나 벼 등을 수확한 뒤 목선에 바리바리 실어 목포까지 날라야 했다. 섬엔 변변한 도정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리는 정미소 가기 전, 그리고 도정을 마친 뒤 각각 볕에 말려야 한다. 보리마당은 바로 그 작업을 벌이던 공간이다. 섬 주민들이 정미소가 있던 도심 외곽에 며칠씩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을 상대로 국밥집과 여관, 시장 등도 생겨났다. 지금은 명맥만 남은 백반거리, 팥죽거리 등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조성됐던 셈이다. 흔히 다순구미와 보리마당이 같은 지역인 것처럼 표현되곤 하지만, 사실 별개의 마을이다. 아리랑고개(옛 말태기재)를 경계로 윗자락은 다순구미, 아래쪽은 보리마당이다. 시간이 된다면 두 마을을 엮어 돌아보는 게 좋겠다. 예까지 와서 목포의 상징 유달산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다소 된비알도 있지만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노적봉이 들머리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 노적(곡식 따위를 수북이 쌓은 것)처럼 보이게 해 왜구를 속였다는 바위다. 이난영 노래비와 오포대, 몇 개의 정자를 거푸 지나면 마당바위에 닿는다. 너른 바위에서 굽어보는 풍경이 ‘기가 맥히’다. 마당바위 바로 앞은 일등바위다. 유달산 최고봉이다. 그 아래로 이등바위와 삼등바위가 늘어서 있다. 일등바위 아래쪽 암벽엔 홍법대사(774~835)와 부동명왕상이 조각돼 있다. 홍법대사는 일본 진언종의 개창조사다. 홍법대사가 새겨진 곳엔 거의 예외 없이 부도명왕상도 함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공부를 마친 홍법대사가 일본으로 돌아오다 큰 풍랑을 만났을 때, 부동명왕이 항해 안전을 지켜줬다는 설화를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등바위에서 맞는 해넘이 모습이 장하다. 남들 내려오는 저물녘에 유달산에 오른 것도 이 모습을 보자는 뜻이었다. 사방이 툭 트였다. 그 너른 공간을 보석 같은 풍경들이 채운다. 삼학도가 아스라하고, 멀리 바다 위로 섬들이 둥실 떠 있다. 목포대교와 고하도가 화려한 경관 조명을 켜면, 가장 귀가한 산 아래 집들도 그제야 하나둘 불을 켠다. 평온한 풍경이다. 하산길은 좁고 급하다. 군데군데 세워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글 사진 목포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 고속도로 끝까지 간 뒤 초원호텔 앞 우회전(영산로), 목포 해양대학 방면으로 좌회전(유달로), 보리마당 방면으로 좌회전(보리마당로)해 아리랑고개를 넘으면 온금동이다. 유달동 주민센터 272-3665. KTX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목포역에서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유달산이 멀지 않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현 근대역사박물관) 건물과, 지점장 사택 등을 휘휘 돌아본 뒤 옛 일본영사관 옆길로 유달산에 오르면 된다. 지점장 사택은 요즘 찻집으로 쓰인다. →잘 곳:신시가지인 하당 쪽에 깔끔한 숙소들이 많다. 샹그리아 비치 관광호텔(285-0100)은 객실에서 맞는 바다 풍경이 빼어나다. 시설도 깨끗한 편.
  • [이슈&이슈] 194억 들여 국내 첫 마트형 시장 변신… 손님 없어 상인들 한숨만

    [이슈&이슈] 194억 들여 국내 첫 마트형 시장 변신… 손님 없어 상인들 한숨만

    “재래시장과 상인들을 살리기 위한 현대화 사업이 오히려 우리를 사지로 내몰고 있심더, 정부와 경산시에 조속한 회생 대책 마련을 호소함니더.” 지난 8일 오후 4시 경북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하양공설시장. B동 2층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구름다리를 건너자 A동 2층이 나왔다. 고객들로 한창 붐빌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무거운 적막감만 흘렀다. 일부 상인은 졸음에 겨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군데군데 빈 상가가 눈에 띄었다. 한 상가 앞으로 다가서자 주인이 “오늘 첫 손님 오셨네”라며 크게 반겼다. “상가가 왜 이렇게 한산하냐”고 묻자 “지금뿐만 아니라 종일 그렇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올 들어 국내 첫 마트형 시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하양공설시장이 새롭게 문을 연 이후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빈사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상인들은 생계 위협까지 받고 있다. 시는 2009년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4년여에 걸쳐 하양공설시장을 전국 최초의 마트형 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국비 75억원 등 총 194억원이 투입됐다. 연면적 9108㎡에 2층(A동)·3층(B동) 등 건물 2개를 지었다. 상가 109곳과 주차장, 무빙워크, 엘리베이터, 문화교실, 어린이놀이터 등을 갖췄다. 특히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고객들이 카트를 이용해 한 곳에서 쇼핑하고 차량에 실을 수 있도록 했다. A동 1층엔 공산품마트와 농수축산물·과일·채소·반찬 가게·푸드코트 등이, 2층엔 한복·의류·미장원·신발·화장품·열쇠 가게 등이 배치됐다. B동 1층엔 방앗간·건강원·종묘·새시·전통음식점 등의 점포가 입주했고, 2·3층과 옥상에는 107대 규모의 주차 공간이 마련됐다. 시장 주변에는 이벤트광장, 휴게광장, 자전거보관대 등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시장에는 지난 5월 개점 이후 6개월째 고객이 끓긴 채 상인들의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A동 2층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서석환(73)씨는 “시장을 새로 짓고는 하루 신발 2~3켤레 파는 게 전부다. 예전의 10분의1도 안 된다. 거짓말 같은 일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고개를 돌렸다. 한복점을 운영하는 상인회 이종활(54) 감사는 최근 5개월여간의 매상 장부를 펼쳐보이며 “이거 봐라, 이곳에 입주한 뒤 마수걸이를 못한 날이 수두룩하지 않나. 수입이 없는데도 매일 꼬박꼬박 관리비 등으로 1만 5000원을 지출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70여개 입점 상가 가운데 대여섯 상가 정도를 빼고는 파리만 날리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아래층에서 건어물을 파는 한동태(74)씨는 “손님이 와야 장사를 하지”라며 “건물을 새로 짓기 전인 4년 전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B동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1층에서 곰탕집을 하는 유귀자(60)씨는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고 푸념했다. 같은 층의 한 상인은 “잘되는 멀쩡한 시장을 철거하는 바람에 우리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면서 “이건 시의 잘못된 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발생한 재난 상황으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은 이런 극심한 불황이 시의 현대화 사업 실패와 원칙 없는 시책 때문으로 여긴다. 2년 만에 끝내기로 한 시장 현대화 사업을 4년 이상 질질 끄는 바람에 고객들이 인근 대구와 영천 등지로 모두 빠져나갔다는 것. 상인들은 “시가 조속한 시장 현대화를 바라는 상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민선 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으로 예산을 과다 투입하는 등 사업을 지나치게 확대했다. 그래서 2010년 말 완공 예정이던 공기가 2년 이상 지연됐다”면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 고객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또 시가 공설시장 현대화 사업과 함께 인근 조산천 제방 도로에 있는 200여 불법 노점을 완전히 철거하기로 약속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임대료 등을 내고 합법 영업하는 자신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푸념했다. 업종이 공설시장과 겹친다. 공설시장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마트 8곳도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게다가 상인들의 영세화로 인한 재투자 실종, 고객서비스 미흡, 악성 루머 등 각종 악재까지 겹쳐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가 최근 시장 입점 허가를 받고도 계속 미루는 상인 20여명의 허가를 취소하자 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시가 시장 현대화 사업의 실패 책임을 상인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 수용할 수 없다”면서 “시의 묵인 아래 이뤄졌던 상가당 500만~700만원씩의 거래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싸우겠다”고 경고했다. 이대희(51) 상인회장은 “상인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도 현대화 사업 이후 운영에는 ‘나 몰라라’는 식으로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경산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대한민국 파수꾼 마약탐지견 A to Z

    [주말 인사이드] 대한민국 파수꾼 마약탐지견 A to Z

    우리나라는 이른바 ‘마약 청정국’으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 신종 유사마약 밀반입량이 증가하면서 청정국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밀반입 수법도 점점 교묘해져 단속도 쉽지 않다. 공항·항만세관에 설치된 검사 장비만으로는 마약 포착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1990년부터 ‘마약 탐지견’이 등장했다. 코끝으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파수꾼인 마약 탐지견은 각 세관에서 탐지요원(핸들러)과 함께 돌아다니며 수하물을 점검한다. 냄새를 맡는 일이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마약 탐지 능력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남모를 고통이 배어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9시쯤 방문한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인천 중구 운북동 소재) 안은 고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멍멍 소리가 적막을 깼다. 나지막했던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외 철창 안에서 검은색 또는 옅은 황색을 띠는 래브라도레트리버(이하 레트리버) 여럿이 가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정종수 관세국경관리연수원 교관은 “레트리버는 잔병이 많다. 피부병을 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에 견사(犬舍)에서 나와 야외에서 일광욕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왜 외국산인 레트리버만 있을까.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복종심이 워낙 강해서 인사 발령에 따라 핸들러가 바뀌는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해요. 레트리버는 그런 게 덜하거든요. 그리고 진돗개보다 후각이 뛰어나죠.”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탐지견 훈련 장소로 이동했다. 주한미군 8명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날은 제4회 관세청장배 탐지견 경진대회 두 번째 날로, 주한미군과 관세청 소속 마약 탐지견이 서로 실력을 겨루는 날이었다. 경진대회는 센터에 마련된 수하물 창고 훈련장과 대인 탐지 훈련장에서 진행됐다. 대인 탐지 훈련장 안에는 여행객 옷차림을 하고 캐리어를 들고 있는 마네킹이 서 있었다. 탐지견들에게는 훈련장마다 25분 안에 마약을 정확하게 찾는 과제가 주어졌다. 만일 제한된 시간을 넘기거나 마약이 아닌 물건을 찾는 경우 등이 감점 처리 대상이었다. 1일 대회 결과를 확인한 결과 최우수상은 미8군 탐지견에게 돌아갔다. 센터 안에는 모견(母犬·암컷)과 ‘유견’으로도 불리는 자견(子犬), 훈련견 등 총 41마리의 레트리버가 살고 있다. 그러나 유견과 훈련견이 모두 마약 탐지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후 2년까지 진행되는 훈련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 먼저 생후 6개월 미만 시기에는 어미 품에서 일정 기간 자라도록 한 뒤에 사람과 친해지도록 유도한다. 생후 6~12개월에는 기초 체력 훈련과 집중력 훈련 등을 실시한다. 이 훈련을 통과한 개들에 한해 마약류 인지 훈련, 탐지 능력 개발 및 세관 현장 적응 훈련이 16주에 걸쳐 이뤄진다. 이 중 마약류 인지 훈련은 훈련견이 대마,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엑스터시(MDMA)를 비롯한 신종 유사마약 등 7종의 단속 대상 마약 냄새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이때 ‘더미’를 활용한다. 더미는 수건을 돌돌 말아 막대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마약 냄새가 난다. 처음에는 향이 강한 대마를 냄새 맡게 하고, 나중에는 냄새가 약한 필로폰을 접하게끔 한다. 사용한 더미를 빨래하는 세탁기도 7종이다. 서로 다른 마약 향이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친 후 최종 평가 시 항목별로 평균 60점 이상을 획득하면 비로소 마약 탐지견이 된다. 물론 실전에 투입되고 나서도 훈련은 계속된다. 감을 잃지 않도록, 마약에 익숙해지도록 최소 하루 1회 탐지 훈련을 시킨다. 사후 평가도 1년 단위로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레트리버가 모든 훈련을 놀이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일이다. 정 교관은 “어렸을 때부터 더미를 장난감으로 여기도록 교육시킨다. 교관과 함께 뛰어다니면서 교관이 던진 더미를 물어오고, 입에 문 더미를 교관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버틸 만큼 좋아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치면 나중에 현장에서 핸들러와 다닐 때 ‘주인과 놀기 위해서라도’ 마약을 찾는다”고 말했다. 마약 탐지견은 소리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센터 내에는 컨베이어벨트 훈련장도 조성돼 있다. 교관은 훈련견이 마약을 찾는 동안 컨베이어벨트를 일부러 발로 찬다. 이때 탐지견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면 주의를 준다. 훈련장 안에는 수하물을 보관하는 선반이 있는데, 이 선반 맨 위에 오디오가 놓여 있었다. 오디오에서 나오는 갑작스러운 소리에도 당황하지 않고 임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훈련견을 길들이기 위한 조치였다. 또 마약을 탐지할 때 코로만 숨을 쉬도록 가르친다. 오로지 후각에만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정 교관은 “현장에서 15~20분 간격(두 시간 휴식)으로 일하는 것이 보기에는 짧게 일하는 것 같지만 모든 감각을 후각에 집중하기 때문에 마약 탐지견의 체력은 금방 소모된다”고 전했다. 게다가 세관에 있는 마약 탐지견은 하루 한 끼 식사만 가능하다. 사료 400~500g을 섭취한다. 약 2000㎉에 해당하는 열량이다. 그런데 한 끼만으로 과연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정 교관은 “마약 탐지견이 포만감을 느끼게 되면 일을 잘 안 한다. 적당하게 먹일 수밖에 없다”면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마약 탐지견으로 선발되는 훈련견은 10마리 중 3마리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도태견’이 되고 만다. 또 탐지견의 경우 보통 아홉 살이 되면 신체 기능이 떨어져 현장에서 탐지 임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면 은퇴가 불가피하다. ‘은퇴견’ 판정을 받은 마약 탐지견은 공매되거나 군(軍) 또는 국립병원 수의대에 분양된다. 수의대에 가면 ‘공혈견’이 돼 부상을 당한 탐지견 등에게 혈액을 제공한다. 차가운 철창 속에서 피만 공급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또 우수한 적발 실적을 보인 탐지견에 한해서만 은퇴식이 진행된다. 그렇지 못한 마약 탐지견은 쓸쓸한 뒤안길을 걸을 뿐이다. 이기순 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장은 “마약 탐지견을 비롯한 특수목적견은 죽을 때까지 평생을 인간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다. 단순히 일꾼을 부린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시점이 된 특수목적견 모두에게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형식적인 은퇴식만으로는 곤란하다. 여생을 일반인 곁에서 반려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일이 불가능하진 않다. 이는 가장 최후의 수단이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몸집이 27~32㎏에 달하는 은퇴견을 반려견으로 데리고 있는 일은 쉽지 않다. 이 국장은 “일반 분양이 어려운 은퇴견만을 따로 모아 관리하는 보호소 마련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관세청에서 은퇴견 또는 도태견을 세관 직원에게 임의로 떠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직원이 일반인에게 임의로 재분양을 하고 이익을 챙기는 일이 있다. 이는 명백한 관리규정 위반”이라며 “은퇴견 등에 대한 관세청 차원의 철저한 사후 관리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칠공주 막내를 이웃 왕자와 바꾼다는데…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칠공주 막내를 이웃 왕자와 바꾼다는데…

    엄마가 일곱째를 낳았어요/김여운 지음/이수진 그림/샘터/116쪽/1만원 이번엔 아들일 거라 믿었다. 태몽도 용꿈이었고 왼쪽으로 기우는 엄마의 걸음걸이도 딱 그랬다. 아빠는 팔뚝만 한 가물치까지 사들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는 적막과 한숨만 감돈다. 쪽마루 밑의 바둑이마저 근심 가득한 얼굴이다. 그렇다. 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내리 딸만 여섯인 ‘딸부자 인쇄소집’에 또 딸이 태어난 것이다. 갓 태어난 아가도 눈치를 챈 듯 힘없이 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자는 그런 아기를 쓰다듬듯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누구라도 이 세상에 내려왔는데 모두들 껄끄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면 기운이 없어질 거예요.’ 어두운 집안 분위기에 잔뜩 주눅 들어 있던 자매들이 똘똘 뭉칠 ‘사건’이 터진다. 막내를 강 건넛마을 아들만 일곱인 집 막내와 바꾸자는 말이 어른들 사이에 오고간 것이다. 아기 잇몸에 밥풀 같은 하얀 이가 돋아나는 것도 볼 수 없다니. 언니들은 막내를 지키기 위한 묘안 짜내기에 골몰한다. 견고한 어른들의 세계에 정면으로 부딪치려는 언니들의 고군분투는 성공할 수 있을까. 딸 일곱에 아들 하나인 집에서 태어난 작가는 운율을 살린 고운 입말로 상냥하게 독자를 이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궁금증을 잃지 않게 한다. 대가족이 오글오글 모여드는 한옥의 뜨끈한 아랫목과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는 금은방집에 연속극을 보러 몰려가는 동네 사람들 등 소박하지만 정겨운 1970년대의 풍경과 정서가 아련하게 향수를 자극한다. 차분한 동양화의 필치는 연두빛 잎새처럼 여리고 천진한 아이들의 움직임과 사람 냄새 나는 살림살이를 소담스레 담아냈다. 초등 저학년 이상.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14년 만에 ‘법외 노조’된 전교조 향후 시나리오

    14년 만에 ‘법외 노조’된 전교조 향후 시나리오

    “찌익~, 찌익~” 2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무실에 적막을 깨는 팩시밀리 수신음이 울렸다.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 노조’가 됐음을 알리는 공문이었다. 1999년 정부와 노동계의 대타협으로 합법화됐던 전교조가 14년 만에 다시 법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강경 투쟁을 선언한 전교조와 교육부의 극한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향후 노동계와 정부 간에 첨예하게 맞설 주요 사안을 짚어봤다. 교육부는 전교조가 그동안 법상 누렸던 모든 혜택을 회수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가 당장 꺼낼 ‘압박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교조에 근무하는 전임 조합원 77명에게 ‘학교로 돌아가라’는 복귀 명령이다. 전교조는 지난 3월 1일 교육부로부터 전임자에 대한 휴직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교육부는 ‘법외 노조가 됐으니 휴직 사유가 사라져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 교육국장 회의를 25일 열어 논의한 뒤 전임자에게 학교 복귀를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교조는 법외 노조가 돼도 전임자 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노동부 조치에 대한 헌법소원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데, 전임자에게 복귀를 명령하는 것은 노동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복귀 지시에 따르지 않는 전임자를 징계하는 등 인사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김 위원장은 “해직도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교육부는 또 전교조에 지원했던 노조 사무실 임대료를 회수하는 등 재정적 압박도 가한다. 전교조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임차보증금은 본부와 16개 시도지부 사무실을 합쳐 52억원가량이다. 또 교육 관련 행사비 명목으로 한 해 지원을 받았던 5억원가량도 포기해야 한다. 전교조 측은 재정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조합원 등을 상대로 투쟁기금 100억원 모금 ▲교사·시민 후원 회원의 대대적 확대 ▲다음 달까지 자동이체(CMS) 조합비 징수 체계 완비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시도교육청에 전교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중지하라는 지침을 내릴 방침이다. 문제는 교육부의 단협 중지 요청을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따르지 않으면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 간 갈등도 재점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강원·광주·전북·전남도 교육청 등은 교육부와 각을 세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교육청들은 교육감의 권한으로 집행할 수 있는 교육활동 예산 등을 전교조에 계속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원교육청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지적을 정부가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전교조를 교원단체로 인정하고 계속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보수 성향인 문용린 교육감의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 문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법외 노조가 누릴 수 있는 권한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 차가 크다. 전교조는 “법외 노조도 노조인 만큼 헌법상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외 노조는 교원노조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사용자(교육당국)가 성실 교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부당 노동행위로 구제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교 현장에서 불거질 ‘학습권 침해’를 둘러싸고 ‘네 탓 책임’ 공방도 예상된다. 교육부는 전교조가 연가 투쟁(조합원들이 집단 연차 휴가를 쓰고 벌이는 상경 집회)을 벌일 가능성을 고려해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압박했다. 교육부는 지난 2일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를 열고 교원이 연가 투쟁 등에 참여하지 않도록 설득하라고 요청했다. 반면 전교조 측은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일방적 조치 탓에 학교 행정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5일 노조 전임자가 속한 학교에 이메일을 보내 “전교조가 법외 노조가 되면 휴직 교사가 복귀할 테니 기간제 교사에게 해고 예정 통지를 하라”고 안내했다. 서울의 각 학교가 교육청의 지시를 따르면 다음 달 내 10명의 기간제 교사가 해고될 가능성이 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담임을 맡은 기간제 교사가 많은데 학기 중 교체되면 학생들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과 손주/최광숙 논설위원

    역대 대통령들은 막중한 국정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족과의 만남에서 풀곤 했다. 특히 어린 손주들과 놀 땐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간 모양이다. 참여정부 시절 김우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낙’(樂)은 손녀와 노는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아들 건호씨의 딸과 지낼 때 매우 즐거워한다. 그 손녀가 재롱을 잘 떨어 대통령을 아주 즐겁게 한다. 그래서 비서들이 평일에도 퇴근 시간 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빨리 관저로 가서 손녀랑 노시라’고 등을 떠밀기도 한다.” 딸 부자 이명박 대통령도 외손녀들을 예뻐해 딸 셋이서 번갈아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해외 순방 시 딸 주연씨와 함께 외손녀를 동반했다가 야당의 정치 공세를 받기도 했다. 사실 청와대는 직원들이 퇴근하면 적막강산의 절간 같다고 한다. 그러니 대통령들이 구중궁궐의 외로움을 어린 손주들과 노는 일과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달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퇴임 후에도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기에 손주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소중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몇년 전 맏손주가 국위선양자 전형으로 모 대학에 입학하자 대학 입학식에 직접 참석했다. 그 대학 총장을 초청해 만찬도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주 사랑도 각별해 ‘마지막’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맏손자(김홍업 전 의원의 아들)를 향한 애틋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다음 대선 출마여부는 손주의 출생에 달려 있다는 외신 기사가 최근 보도됐다. 이 외신은 “만약 힐러리가 내년에 할머니가 된다면 아마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 같다”며 힐러리의 측근의 말을 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한 방송에 출연해 “아내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할머니가 되기를 더 바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클린턴 부부의 딸 첼시는 “엄마는 나와 남편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손주를 재촉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때 ‘권력의 화신’으로 불리며 대통령을 꿈꾸던 힐러리가 대통령보다 할머니가 되는 것에 목을 맨다는 사실이 다소 믿기지 않는다. 65세의 힐러리로서는 이제 국사(國事)를 돌보는 것보다 손주의 재롱을 보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식에겐 엄해도 손주에게는 마냥 자애로운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닌가. 그래도 굳이 뭐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나. 할머니도 되고, 대통령도 출마하면 되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홀로 걷다 보니, 태곳적 신비가…

    홀로 걷다 보니, 태곳적 신비가…

    ‘한국의 지붕’ 강원도 평창 인근엔 산이 많습니다. 산은 높고 골은 깊으니 당연히 빼어난 숲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숲 두 곳을 소개합니다. 한 곳은 낙엽송, 다른 한 곳은 잣나무가 우거진 숲입니다. 발단이야 전혀 달랐지만 두 숲 모두 사람이 조성했다는 점만은 같지요. 봉평읍 인근에 붓꽃섬이 있다. 예부터 붓꽃이 많이 자생했다는 섬이다. 한데 산골짜기 봉평에 웬 섬일까. 붓꽃섬 양옆으로는 무이천과 흥정천이 흐른다. ‘섬’은 두 개천을 경계로 뭍에서 ‘고립’돼 있다. 크기야 턱없이 작아도 하중도(河中島)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붓꽃섬 캠핑장이다. 붓꽃의 영어 이름을 따 아이리스 캠핑장 혹은 아트인 아이리스 아일랜드라고 불린다. 캠핑장 대표는 이학박사 박정희(53)씨다. 한데 이곳 주인장, 참 독특하다.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 ‘합리’와 ‘원칙’을 정확히 지키려 하는데 보편적인 잣대를 들이대니 다소 유별나 보이는 거다. 우선 여느 캠핑장보다 입장료가 비싸다. 계절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2인 기준으로 1박에 4만원쯤 된다. 게다가 1박 2일은 안 받는다. 최소 2박 이상이어야 한다. 납득이 잘 안 된다면 일반 회사의 ‘휴가 명령제’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허겁지겁 와서는 텐트 펴고 접다 시간 보내지 말고 푹 쉬다 가라는 뜻이다. 아울러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된다. 캠핑 사이트가 남더라도 당일 내주는 법은 없다. 캠퍼의 신분 확인은 필수고 예약료도 받지 않는다. 캠핑장에선 커플보다 가족이 우선시된다. 아이들이나 부모와 함께 오면 알게 모르게 혜택을 준다. 하다못해 유기농 호박 하나라도 선물로 챙겨 준다. 캠핑장 안엔 식당과 매점이 없다. 캠핑장에서 편의시설까지 독식하면 인근 주민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유아용만 있을 뿐 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캠핑장 청소 또한 인근 주민들에게 번갈아 맡긴다. 그래야 지역 공동체에 보탬이 된다. 까다롭긴 하지만 장점도 많다. 우선 캠핑 사이트가 넓다. 당연히 캠퍼들 간에 자리 두고 얼굴 붉힐 일 없다.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계절에 따라 고로쇠와 산나물, 표고버섯 등을 채취하거나 감자, 호박 따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전부 무농약으로 재배한 것들이다. 비료조차 치지 않는다. 요즘엔 잣 줍기 체험이 제격이다. 체험장은 캠핑장에서 2㎞쯤 떨어진 잣나무숲이다. 이동 수단은 사륜오토바이(ATV)다. 한데 주인장의 운전 테스트를 먼저 거쳐야 한다. 안전하게 산길 주행을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오케이 사인이 난다. ‘면허시험’에 떨어지면 ATV는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모든 체험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점이다. ATV 기름값만 캠퍼가 부담하면 된다. 여느 캠핑장에 견줘 입장료가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 잣나무숲은 넓다. 앞산 뒷산 ‘눈에 보이는’ 게 죄다 잣나무다. 숲은 1932년 박 대표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조성됐다. 아들이 태어나면 대량으로 기념식수를 했고 그 아들이 아들을 낳으면 또 잣나무를 심었다. 체험장으로 쓰이는 숲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잣나무 아래에선 표고버섯이 자란다. 가을철 수확기에 들면서 크기가 호떡만큼 커졌다. 잣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다. 편백나무에 이어 두 번째다. 청량한 피톤치드 맡으며 잣, 표고버섯 등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캠핑장 이용자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잣나무숲에서 흥정계곡을 끼고 돌면 곧 불발령길이다. 일부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알음알음으로 찾는 곳이다. 불발령(1052m)은 옛 진한(辰韓)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불발현 혹은 불바래기 등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종의 축약어인 셈인데 화공을 펴라는 뜻이었는지, 불을 밝혀 경계를 강화하라는 뜻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산 중턱 마을의 지명이 ‘화명동’(火明洞)인 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닌 듯하다. 이 일대엔 태기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평창과 횡성이 경계를 이루는 태기산은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 박혁거세에게 대항하던 곳이다. 태기산에서 발원한 갑천은 태기왕이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는 곳, 횡성 쪽 어답산은 ‘(태기)왕이 오른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발령길은 줄곧 흥정계곡을 따라간다. 길이는 약 16㎞. 계곡 초입에 들어선 펜션만 70개 정도다. 그만큼 놀기 좋고 볼 것 많다는 뜻이겠다. 마지막 펜션을 지나면 풍경은 확 바뀐다. 적막강산이다. 한 구비 돌고 나면 그간 사람의 발길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단박에 알 정도다. 과장 좀 보태 태곳적 풍경 속으로 드는 느낌마저 든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리저리 휘었다. 나라 안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길이다. 한데 풍경은 다소 이질적이다. 사방을 둘러친 낙엽송들이 미인의 다리처럼 늘씬하게 솟았다. 북미의 어느 숲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낙엽송들은 대개 수령이 비슷하다. 45년 전, 그러니까 이 일대에 화전민 소개령이 내려진 1968년 무렵 식재된 것들이다. 당시 불바래기에 살았던 이동옥(61)씨는 “낙엽송 군락이 곧 마을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정부에서 마을을 없앤 뒤 그 자리에 속성수인 낙엽송을 심었다는 것이다. 당시 흥정계곡엔 300여 가구가 여기저기 마을을 이뤄 살았다. 화전 등에서 나온 소출도 제법 많아 “흥정리 이장은 해도 봉평면장은 안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터졌고 주민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현재 모습으로 남게 됐다. 계곡은 하류에 견줘 수량만 다소 줄었을 뿐 넉넉한 자태 그대로다. 가마 타고 불발령 넘던 새색시가 빠져 죽었다는 각시소, 이름조차 없는 3단 폭포 등 간간이 볼거리도 뛰쳐나온다. 불발령 정상에 서면 홍천 너머의 크고 작은 산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물결치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박정렬씨의 모정을 기리는 추모비도 서 있다. 비문에 새겨진 사연이 애틋하다. 1978년 3월 12일, 박씨가 여섯 살짜리 딸과 함께 홍천군 내면의 친정으로 가기 위해 불발령을 넘을 때였다. 돌연 폭설이 쏟아졌다. 박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졌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어린 딸에게 입힌 뒤 숨을 거뒀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딸은 다행히 목숨을 건져 외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으로 나와 봉평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봉평읍내에서 무이예술관 방향으로 2.5㎞ 가면 붓꽃섬 캠핑장이다. 캠핑 사이트는 40면, 펜션은 11개 객실이다. 캠핑과 달리 펜션은 1박이 가능하다. www.irispension.co.kr, 336-1771. 불발령은 아이리스 캠핑장에서 이효석 문학의 숲 방면으로 가다 흥정계곡을 끼고 곧장 가면 된다. →맛집 : 봉평읍내 미가연은 메밀요리 전문점이다. 이대팔메밀국수, 메밀싹육회비빔국수 등 별미를 맛볼 수 있다. 335-8805~6. 토담숯불구이는 주인이 직접 기른 한우를 잡아 파는 곳이다. 아침에 맛보는 백반도 정갈하다. 336-2227. →잘 곳 : 흥정계곡 주변에 펜션들이 늘어서 있다. 이 가운데 허브솔 펜션은 복층식 구조의 목조 가옥으로 가족들이 묵어 가기에 맞춤하다. 334-4445. →주변 볼거리 : 6~22일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시차를 두고 메밀밭을 조성한 만큼 언제 가도 메밀꽃 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335-2323.
  • [지금 대전청사에선] 힘겨운 여름나기 풍경들

    [지금 대전청사에선] 힘겨운 여름나기 풍경들

    전력 대란에 공공기관의 냉방 공급이 중단되면서 정부대전청사 풍경이 달라졌다. 여성들의 민소매 패션이 급격히 늘었고 부채는 필수품이 됐다. 오전에는 공무원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 적막감까지 느껴지는 반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후에는 곳곳이 술렁인다. 폭염에 구내식당 이용자가 늘고, 의무실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냉방이 공급되는 청사 1층의 열린만남터가 최고의 피난처로 부상했다. 오후가 되면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기 힘든 상황이다. 컴퓨터는 ‘히터’로 돌변하고, 선풍기 바람은 뜨겁다. 사무실의 회의용 탁자 유리마저 달아올라 실내에 있는 것이 버겁다. 창문이 양쪽에 달린 건물 끝쪽 사무실은 사실상 사우나실이다. 불쾌지수까지 높다보니 직원 간 대화가 줄고, 가급적 상대방에 대해 언행을 조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어지는 폭염을 이겨내기 위한 개별 냉방 아이템이 부쩍 늘었다. 아이스넥쿨러(목에 두르는 수건)와 냉방조끼를 입거나 젤 아이스팩을 의자에 깔고 그 위에 옥돌 방석을 올려 몸을 시원하게 하는 노하우도 등장했다. 팥빙수와 아이스크림은 대박상품으로 등극했다. 냉방 공급이 중단된 12일 대전청사 지하 편의점은 퇴근시간 이전에 아이스크림이 동났다. 커피숍에도 시원한 과일 음료 등을 주문하는 발길이 끊이질 않는 등 힘겨운 여름나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 간부는 “절전이 범정부차원에서 진행되는 까닭에 부처별로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면서 “스스로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업무 효율성이 발휘될 수 있겠냐”면서 “말이 좋아 솔선수범이지 솔직히 어이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5·7·9급 3종 다봤다”… 더위가 독하나, 내가 독하나

    [주말 인사이드] “5·7·9급 3종 다봤다”… 더위가 독하나, 내가 독하나

    ‘공시족’(公試族·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외롭다.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 책상에 앉아 합격을 위해 담금질을 반복한다. 고시학원에서 여러 수험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경우에도 결국 자신과의 싸움과 마주해야 한다. 공시족은 날씨가 춥든 덥든 묵묵히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매일 10시간이 넘는 공부 시간을 감내하는 수험생도 많다. 가뜩이나 공부량도 많은데, 올해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가 공시족을 특히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참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오늘도 공시족은 펜을 놓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초구 양재고는 고요했다. 여느 토요일과 사뭇 다른, 적막 속에 묘한 긴장감이 교내에 감돌았다. 이 이른 시간에, 학교 후문 앞 벤치에서 책을 뚫어져라 보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였다. 휴게 공간을 지나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해 본인 자리에 앉아 책을 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은 시험 시행 후 역대 최다 인원인 20만 4698명이 원서를 접수해 화제가 됐던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이 열린 날이었다. 올해부터 고교 이수과목(사회, 수학, 과학)이 일반행정직을 포함한 일부 직렬 선택과목 목록에 추가됐다. 고졸 출신에게도 공무원 시험 응시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정부의 방침이다. 그렇다 보니 수험생 입장에서는 경쟁해야 하는 상대가 더욱 많아졌다. 교실 복도 계단에서 만난 대학생 이지숙(21·여·가명)씨는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에 쏠린 관심이 신경 쓰이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처음 보는 공무원 시험이라 긴장되는 마당에 지원자가 대폭 늘었으니 이씨는 고교 과목이 추가된 일이 “솔직히 반갑지는 않다”고 털어놓고는 시험장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입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부채질을 하면서 시험장에 들어서는 응시생 수가 많아졌다. 어느덧 시곗바늘은 오전 9시 50분을 가리켰다. 김일재 안전행정부 인력개발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시험 중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른 시험도 마찬가지겠지만 9급 공무원 공채시험을 보러 오는 학생들은 굉장히 민감해요. 예전에 한 여자 수험생이 하이힐을 신고 왔는데 시험일 다음 주 평일에 저희에게 항의 민원이 엄청 들어온 적이 있어요.” 굽에서 나는 또각또각 소리가 수험생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시험 감독관이 향수를 뿌렸거나 다소 짧은 길이의 치마를 입어 문제를 푸는 데 방해받았다고 하소연한 수험생도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예민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험을 진행하면서 항상 조심스럽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누군가에게는 결코 길지 않은 100분이 흘렀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서 응시생들이 학교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걸음을 재촉하는 수험생들,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수험생들을 멈춰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 인터뷰를 거절하던 최미선(28·여·가명)씨도 계속 물어보자 가던 길을 멈추고 간단히 이야기를 들려줬다. 올해 5급 공채시험부터 7급, 9급 시험까지 공시 3종 세트를 모두 봤다는 것, 시험을 치른 오늘만 잠시 휴식을 가질 참이라는 것 등. 다시 펜을 잡고 구슬땀을 흘릴 계획인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6일 오후 1시 최씨를 다시 만났다. 평범한 반소매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공시족’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복장이다. 최씨는 집 앞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지난달 9급 국가공무원 시험을 마치자마자 다음 달 7일에 있을 서울시 7급 공무원 시험을 대비하고 있다. “3년 전부터 대학을 다니면서 ‘행정고시’ 준비를 틈틈이 했어요. 지난해까지 5급 공채시험에 응시하다가 올해부터 7, 9급 공채시험을 모두 봤죠. 이유요? 당연히 공무원이 되고 싶으니까요.” 최씨는 “정말 간절히”라는 말을 덧붙였다. 최씨의 일일 공부 시간은 약 13시간. 하루 24시간의 절반 이상을 독서실에서 보낸다. 공무원 시험이 보통 1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 장기 레이스인 만큼 체력 관리는 필수라 오전 7~9시에는 운동을 한다. 이후부터는 국어, 영어, 행정학, 행정법, 헌법 등 수험서와 계속 씨름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서 독서실로 향해요. 집에 있으면 가족들 눈치를 보게 되거든요. 최대한 집에 늦게 들어가요. 공부하다가 피곤해서 낮잠을 잘 때도 있지만, 집보다는 독서실에서 자는 게 한결 마음이 편해요. 아마 다른 수험생들도 다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머릿속은 온통 공부 생각뿐이다.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다. “평소에 답답한 점이라면 마음 놓고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 좋아하는 탁구를 칠 시간이 없다는 것 정도. 영화, 연극도 당연히 끌리지만 갈 수 있는 상황이 돼도 선뜻 보러 갈 마음이 안 날 것 같아요. 가끔 친구들과 술을 먹고 싶어도 편한 마음은 아니겠죠.” 성준모(28·가명)씨 역시 최씨처럼 5급부터 9급 국가공무원 시험 준비에 땀을 쏟았다. 성씨는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시험 때문에 집에 더 이상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부 폭을 넓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씨는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오전 7시에 독서실에 도착한다. 점심, 저녁 식사 시간과 운동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에 투자한다. 수험 생활이 길어지면서 성씨는 자연스럽게 누가 유명 학원 강사인지, 어떤 교재가 좋은지, 어떤 독서실이 쾌적한지 등 쏠쏠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성씨는 “아, 나도 이제 공시생이 다 됐구나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성씨는 예년보다 정도가 심해진 무더위 때문에 적잖게 고생했다. 2~3년 전 버틸 만했던 더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나마 독서실에는 냉방 시설이 있으니 환경이 좋은 편인데, 성씨의 상황은 다르다. “올해는 특히나 공부할 때 진이 빠져서 혼났어요. 노량진 고시원에 살고 있는데, 독서실까지 가는 거리가 가까워 거리를 오가면서 큰 체력 소모는 없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제 독서실 자리가 에어컨 바람이 잘 안 오는 곳이라서 냉방 혜택을 못 받고 있어요. 정말 땀을 뻘뻘 흘리며 공부했습니다.” 학원에서 공시족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들 눈에도 찜통더위로 지친 수험생들이 염려스럽긴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한 학원의 박훈 강사는 “20대 초중반 나이의 수험생들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30대 수험생들은 더위로 고생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지치지 않으려고 홍삼을 달고 사는 수험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올해로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곽민정(25·여·가명)씨도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당장 오는 24일에 시·도 교육청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곽씨도 숨 막힐 듯한 더위로 고생 중이었다. “날씨가 더워 죽겠는데, 집에서 독서실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죠. 여름은 아무래도 이런 게 제일 힘든데, 이번 여름은 더하네요. 그나마 독서실에 가면 에어컨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동안 곽씨는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계속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동안 어깨는 축 처지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졌다. 트레이닝복을 닳도록 입는 처지가 됐다. 시험 준비 전에 들었던 ‘공시생’의 생활이 어느덧 자신의 일상이 됐다. “이제는 민낯으로 돌아다녀도 창피하지도 않은 경지에 이르렀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당당하게 이 생활을 얼른 탈출해야죠.” 비장미까지 보인 곽씨에게 시험이 끝나고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소박했다. 평상시 즐기지 못한 일들에 대한 소망이었다. “막상 합격하고 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싶고요, 가장 하고 싶은 건 여행이에요. 어디로든 그동안의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곳으로요. 합격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기대에 부푼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책에 파고들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경매·추첨에 사고팔기까지… 수강신청 전쟁

    경매·추첨에 사고팔기까지… 수강신청 전쟁

    지난 6일 오전 9시 59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문 근처의 한 PC방. 좌석 30여개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대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2학기 수강신청 홈페이지 창을 띄워 놓고 있었다. 적막감 속에 이따금 “아, 긴장돼”, “이번엔 성공해야 하는데”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전 10시 정각. 학생들이 일제히 마우스 버튼을 클릭했다. 접속에 바로 성공한 학생들은 외마디 환호성을, 그러지 못한 학생들은 탄식을 터뜨렸다. 접속에 실패한 학생들의 모니터에는 5분 후 접속이 가능하다는 뜻의 ‘대기시간 5분’이라는 문구가 떴다. 한 학생은 초시계까지 갖다 놓고 다음 접속 시기를 기다렸다. 2학기 개강을 3주 남짓 앞둔 대학가에 분초를 다투는 수강신청 사이버 전쟁이 치열하다. 취업난이 심해지고 학점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학점을 잘 주거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기 과목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과목당 수강인원이 한정돼 있어 원하는 과목을 들으려는 학생들의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수강 과목을 사고파는 일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과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이 필수 아이템이다. 대학들이 편법 수강신청을 막기 위해 매년 시스템을 개선하지만 역부족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수강신청 서버의 실제 개방 시간을 분·초 단위까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웹페이지와 앱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온라인 수강신청을 위해 대학 측이 운용하는 서버의 컴퓨터 시계와 학생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의 시계가 미세한 시차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진(21·여·한국외대 스페인어과)씨는 “서버가 열리는 시간에 정확히 접속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면서 “대학별로 학생들 사이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웹페이지가 돌아다녀 초 단위로 준비를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한 학생들 간의 수강과목 매매도 성행한다. 졸업을 위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 많은 성균관대는 새 학기 수강신청 때마다 특정 과목에 학생들이 몰린다. 때문에 일부 학생들은 자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과목당 1만~5만원씩에 거래를 하기도 한다. 지난 학기에 이를 경험한 09학번 권모(23)씨는 “취업에 도움이 되고 복수 전공생이 몰리는 경영학이나 경제학 과목들이 인기”라면서 “수강할 생각이 없는 일부 학생들이 해당 과목들을 선점했다가 돈을 받고 자리를 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씨에 따르면 거래에 합의한 학생들은 교내 PC실에서 만나 판매자가 수강을 철회하는 즉시 구매자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 한 번의 클릭으로 특정 명령을 반복 수행하도록 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생이 실행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가 수강신청이 될 때까지 신청 버튼을 무한정 클릭하는 식이다. 매크로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미세한 시차를 이용해 다른 학생이 막 선택하려던 수강 과목을 낚아채기도 한다. 학생들은 이를 ‘스냅’이라고 부른다. 대학들은 수강신청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대는 학생들이 매크로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하자 지난해 1학기부터 새로운 보안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자동 로그인을 차단하고 서버 과부하를 막기 위해 암호 2자를 입력해야만 로그인이 되도록 설정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이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신종 매크로가 등장했다. 서울대 수강신청이 시작된 지난 1일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매크로를 사용해 수강신청하는 학생들을 고발조치해 달라’는 글이 올랐다. 지난해 수강신청 때 서버가 폭주하는 대란을 겪은 고려대는 올해부터 서버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서버에 들어갈 수 있는 이용자 수를 제한하는 일종의 대기번호 제도를 도입했다. 서버에 이미 접속한 사람도 한 과목을 수강신청한 뒤 다른 과목의 수강신청을 위해서는 다시 대기열 맨 끝에서 기다리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구글의 웹 브라우저 크롬으로 접속해 ‘새 탭으로 열기’를 누르면 여러 개의 창에서 다중 접속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돌았고, 실제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구체적인 방법이 공개되기도 했다. 다중 접속이 되면 수강신청 시스템의 대기열 번호표를 여러 개 뽑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돼 학생회를 중심으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최근 서강대는 기존의 선착순 신청 방식을 성적순으로 바꾸기로 했다가 학생들의 반대로 철회했다. 오는 22일 수강신청을 시작하는 홍익대는 아예 10일부터 수강 과목에 대한 수요 조사를 실시해 강좌 수를 조정하기로 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사용하는 경매(비딩) 방식과 추첨제를 일반 학부에 도입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에게 가상의 포인트를 1000개씩 나눠 주고 원하는 과목에 원하는 만큼 포인트를 배분하게 한 다음, 과목별로 가장 많은 포인트를 건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다. 추첨은 원하는 과목에 누구든 지원하도록 한 다음 무작위로 수강생을 뽑는 방법이다. 학생들은 새 학기마다 반복되는 수강신청 전쟁의 원인이 학교의 서버 등 인프라 부족과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행정에 있다고 꼬집었다. 김재덕(24·서강대 사회과학대)씨는 “학교가 서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네놈이 십이령길 소금 상단이 내린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주색에 빠져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라는 것을 염탐하여 알아냈다. 네놈이 상단으로 복귀하려 든다면 필경 엄중한 견책을 당해 장문으로 다스리려 들 것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첩지조차 빼앗기고 훼가출송 당할 것은 빤하지 않은가. 네놈도 장차 당할 치욕이 훤히 바라보였기에 이때까지 상단을 따돌리고 색주가로 뛰어들어 몸을 숨긴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슬하에 딱 부러진 혈육도 없이 사고무친한 네놈이 마땅히 갈 곳도 없지 않은가. 지금처럼 비알진 산비탈에 발을 붙이고 살기는커녕 필경 유리걸식하며 비렁뱅이 노릇으로 연명하다가 역병에 걸려 길송장으로 숨을 거두겠지. 아니면 산 설고 물 선 먼 타관으로 흘러가 저자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연명하다가 그 논다니 계집이 나에게 팔아먹었던 것처럼 무고로 악명 뒤집어쓰고 쫓기는 신세 되기 십상이 아니겠나. 종국에 가서는 기찰하던 고을 군교들에게 걸려들어 결옥이 되어 짐승처럼 섬거적이나 뜯어먹고 살다가 목이 메어 뒈지고 말겠지. 고을의 군교들이 죄수가 죽으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둔한 네놈도 익숙하게 보아온 터로 모를 턱이 있겠나. 내 말에 그름이 있느냐?” 채근해서 들었으나 듣고 보니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불어갔다. 어렴풋이 가슴에 담아두긴 하였으나 이젠 말래 도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말이 위인의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호비칼로 폐부를 후벼내듯이 아렸다. 잠시였지만 십이령길을 함께하였던 상단의 동무들과 샛재 숫막의 구월이 얼굴이 뇌리에 스쳐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나를 끌고 시방 어디로 갈 것입니까. 그 말대로라면 나는 댁에게도 아무 쓸모없는 무지렁이가 아닙니까.” “이놈 봐라. 속내가 해망쩍은 놈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닐세. 내가 네놈을 그 논다니에게 적지 않은 용채를 건네고 넘겨받은 까닭을 적실하게 꿰고 있구만. 바로 그것이다. 네놈이 이제 소금 상단과 평생 등지고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방 대처에 내려앉아도 아무 쓸모없는 놈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네게는 오히려 크게 소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네놈을 거두어줄 사람은 이제 이승에서는 나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네놈이 엄장이 장대하여 힘에 겨운 부담롱을 지운다 하여도 오금을 쭉쭉 뻗으며 걸을 것이고, 가근방 지리에도 나처럼 익숙하여 영리한 나귀보다 말을 잘 듣지 않겠느냐. 이번 행보만 무사히 치르고 내 수하에서 고분고분하면 네놈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한몫을 톡톡히 안길 것이니 내 말을 명심하거라.” “그럼 어디로 갈 작정입니까.” “아직 신지까지 알려줄 만치 네놈과 친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알게 될 것이니, 입을 다물고 있거라.” 그때서야 위인의 정체가 산적의 두령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번쩍 뒤통수를 쳤다. 상단이 적소를 소탕하였으나, 간계에 속아 놓치고 말았다던 그 두령이었다. 그가 내성 저자에 매복하고 은신처를 찾아 헤맸던 바로 그놈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금방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등골에는 금세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그러나 호랑이 등에 업혀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 도모가 있더라고, 이럴수록 내색해선 안 된다고 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런데 그의 속내를 꿰뚫고 있기라도 하듯 위인이 한마디 툭 던졌다. “왜? 말미 봐서 줄행랑이라도 놓고 싶으냐?” “도망 가도 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물색 모르고 냅뜨지 마라, 내 눈앞에서 몇 발짝 못 가서 네놈의 잔등에 비수가 박힐 것이야. 도망도 못 가고 괜한 목숨만 공중 날리게 되겠지. 그러지 않고 내게 붙임성 있게 군다면, 네놈은 살길이 트일 것이야.” 위인이 괴나리봇짐을 풀었다. 그 속에서 꽁꽁 묶어 두었던 도포 두 벌이 나왔다. 변복을 하자는 것이었다. 오가는 길목에서 길세만의 면목을 알아보는 길손들이나 원상들과 마주칠 것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위인은 처음 계획했던 것을 단념한 눈치였다. 처음엔 낮에는 산속에 숨었다가 인적 없는 밤에만 걷기로 하였는데, 무슨 꿍심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처음 작정을 바꾸어 낮에도 걷기로 한 모양이었다. 다급하게 처분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위인은 그제야 길세만의 결박을 풀고, 도포까지 입혀주었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도포였기에 거북하기 짝이 없었으나, 안면이 발각되지 않으려면 변복이 대순가 싶었다. 정한조가 이끄는 상단에 끌려 다니며 놀림가마리가 되고 갖은 고초 겪어가며 빈대 벼룩에 물어뜯기며 보잘것없는 이문을 좇아 동분서주하기보다는 위인을 주인으로 모신다면 뼈가 부러지는 듯한 등짐을 지지 않고 편안하게 살길 도모가 생길지도 몰랐다. 위인이 봇짐 속에서 무거리 떡 한 주먹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리고 갈밭에서 나와 길바닥으로 내려섰다. 어엿한 행색의 두 도포짜리가 아침나절의 시원한 바람을 소매로 떨쳐가며 현동 저잣거리가 바로 코앞인 맷재를 넘어 곧은재로 들어섰다. 천만다행으로 그때까지 길손들이나 행상꾼들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테면 적막강산이었다. 그 적막강산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행과 더불어 곧은재를 넘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마다 길세만은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다. 독자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분천에 당도하였을 때는 해거름 녘이었으니, 두 사람의 행보는 축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빨랐다. 나루터가 빤히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한숨 돌리고 있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길세만은 초저녁에 옹골진 육공양으로 삭신을 노골노골하게 만들었던 갈보와 같이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그 계집은 온데간데없고, 난데없는 사내가 그의 뱃구레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힐끗 지게문을 바라보았다. 시각은 축시 초쯤으로 보였다. 창호에 아직 어둠이 짙게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집의 농간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궐자가 뱃구레 위에서 몸을 비틀어 빼더니 길세만의 팔을 뒤로 돌려 뒷결박을 지었다. 그사이에 궐자의 괴춤에 찔러둔 비수를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 순간 궐자에게 결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계집에게 당한 것이 너무나 분했다. 이자는 필경 무슨 담판을 짓자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무일푼이었기 때문에 이 무뢰배가 담판을 짓자고 대들어도 꺼내놓을 것은 목숨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을 계집이 이 불한당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것은 악귀나 저지를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은데, 아갈잡이에 뒷결박까지 한 궐자는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러니 온전한 눈만 부릅뜨고 궐자의 처분을 누운 채로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간이 흘러가면서 방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밤빛으로나마 궐자의 형용이 어른어른 집혀오기 시작했다. 패랭이는 쓰지 않았으나 상투가 어엿한 것을 보면 저잣거리에 횡행하는 소악패거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갈잡이하고 뒷결박을 짓는 솜씨가 날렵한 것으로 보아 산골의 얼치기 무지렁이는 아니었다. 소금 상단처럼 엄장이 들썩 크지 않았으나, 눈매가 날카로운 위인이라는 것은 알아챌 만하였다. 군소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주둥이가 헤픈 위인도 아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길세만을 밖으로 끌고 나갈 심산인데, 그 시각을 가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길세만을 잡도리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는 거조가 바로 적실한 시각을 재는 것이었다. 사경 축시가 되었다. 위인의 입에서 딱 한마디가 떨어졌다. “일어나 밖으로 나서. 허튼 생각 말고.” 목소리에 묵직하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러고는 군소리 한마디 없었다. 일어서는 길세만의 무릎에서 우두둑 하고 뼈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이 위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째서 자신을 엮을 생각을 한 것일까. 밖으로 나서면 도대체 어디로 갈 작정인가. 오만가지 상념들이 뇌리에 어지러웠으나, 지금은 아무 소용없었다.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한뎃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피가 마려웠다. 고개를 들고 위인을 쳐다보았다. 위인이 알아채고 뒷결박을 풀어주며 색주가 마당가에 있는 울바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울바자 틈 사이로 소피를 보는 동안 사위는 쥐죽은 듯 적막하고 먼 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다 말았다. 하늘에는 별빛만 총총할 뿐 달은 떠 있지 않았다. 괴춤을 추스르고 돌아서는데, 다시 뒷결박을 지우고 아갈잡이한 것은 풀어주었다. 숨 쉬고 고개 돌리기가 한결 손쉬워졌다. 위인이 저잣거리 반대쪽을 가리켰다. 임소가 있는 쪽이고, 더 나아가면 여울이 있고 여울을 건너면 으악새들이 길게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세만은 수백 번을 다녀 눈감고도 걸을 수 있는 그 길로 들어섰다. 개울을 건너고, 갈밭을 지나쳤다. 그제야 멀리 두고 온 저잣거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자지러졌다. 모래재를 지나면 몇 행보 지나지 않아 10리 상거에 있는 검은 돌 마을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곳에 이르면 위인이 어디를 겨냥하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술청거리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세 갈래 길이 있기 때문이었다. 등짐도 없는 단출한 몸이라 몇 행보하지 않아서 검은 돌 마을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위인은 조금도 주저하는 법이 없이 마을 뒤쪽 곧은재를 가리켰다. 그때까지도 한밤중이었다. 숫막 앞을 지나쳤으나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흡사 두 사람이 무사히 지나치라고 길을 내주는 것 같았다. 좀처럼 벗지 않는 방갓에 두툼한 괴나리봇짐을 진 채 등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는 이 위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관원이나 보부상도, 전대를 털려는 무뢰배도 아닌 것은 적실했다. 그런데 홀딱 벗겨보아야 먼지밖에 없는 자신을 인질 삼고 십이령길로 들어서는 이 위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게 궁금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렸다. 여명이 희뿜하게 밝아올 무렵이 된 것은 내성에서 산길 40리 상거에 있는 씨라리골에서였다. 씨라리골에도 딱 두 집의 숫막이 있었다. 한 집은 울진 갯마을에서 고기를 잡다가 여의치 않아 내외가 이곳에 들어와 숫막을 내었고, 한 집은 십이령을 넘나드는 원상이었는데, 겨울에 고개를 넘다가 실족하여 다리를 절게 된 이후부터 씨라리골에 정착하여 숫막을 낸 것이었다. 두 숫막 모두가 울진 소금 상단과는 정리가 돈독하여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처음부터 두 숫막 모두가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개울 옆에 자리 잡았고, 그 개울 옆 개활지를 따라 길길이 자라서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연둣빛 갈꽃이 피기 시작하여 개활지는 온통 은구슬을 뿌려놓은 듯 시선이 어지럽도록 빛나고 그 갈숲 사이 오솔길 속으로 보였다가 사라지는 등짐 장수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찬 서리가 내리는 초겨울로 접어들면 수만 갈래로 흩어진 갈꽃 송이들이 가파르기로 이름난 살피재 쪽으로 날아 멀리서 보면, 마치 부들솜들로 뭉쳐진 하얀 구름송이들이 새떼처럼 산등성이를 넘는 듯 보였다. 한겨울이 되어 북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꽃은 떠나가고 겨릅처럼 혼자 남은 갈대들이 서로 비벼대며 마치 배고픈 짐승처럼 밤새워 울어대어 숫막에서 등걸잠을 자며 객고를 겪는 길손들로 하여금 눈물을 짜내게 한다. 십이령 고개를 넘나드는 행상꾼들에게 회자하는 노래에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라는 후렴이 있는 것은 바로 씨라리골의 갈대들이 모질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안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되풀이하면서 슬피 우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 당신은 아직 거제를 모릅니다

    당신은 아직 거제를 모릅니다

    경남 거제는 나라 안에서 손꼽히는 여행지입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소를 여럿 품고 있습니다. 한데 우제봉(雨祭峯)이나 서이말 등대, 맹종죽테마파크 등도 들어 보셨는지요. 하나같이 거제의 명소 옆에 붙어 있으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웠거나 덜 알려진 탓에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 있던 곳들입니다. 요즘엔 달라졌습니다. 오가는 길이 정비돼 시간과 품을 많이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한번 다녀와 보시지요. 거제 여정이 한결 풍성해질 겁니다. 먼저 남부면 갈곶리의 우제봉 전망대다. 유람선 관광을 제외하면 거제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해금강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우제봉은 ‘자체 발광’의 경승지다. 여기에 주변의 명소들을 살피는 전망대 노릇까지 겸하고 있다. 우제봉 정상에 서면 대·소병대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명소들을 360도 돌아가며 죄다 눈에 담을 수 있다. 최근까지도 탐방객들은 뛰어난 해안 경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제봉의 험한 암벽 때문이다. 목재 데크는 바로 이 구간에 놓였다. 풍경으로 향한 길이 열린 셈이다. 우제봉엔 ‘서불과차’(徐市過此)의 전설이 담겼다. 서불과차는 ‘서불이 이곳을 지났다’는 뜻. 안내판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렇다. 기원전 210년께 중국 진시황의 방사였던 서복(徐福)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어린 남녀 3000여명과 함께 남해 연안을 항해하다 우제봉 일대에 머물게 됐다. 서복은 서불의 다른 이름이다. 서복의 선단은 이를 기념해 절벽에 ‘서불과차’란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런데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거센 파도가 들이닥쳐 하필 암벽에 새겨진 글씨만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들머리는 해금강마을 주차장이다. 해금강호텔 옆을 지나 우제봉까지 0.9㎞ 정도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돌아올 때는 우제봉 서쪽 기슭으로 내려온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거리는 짧지만 숲이 펼쳐 놓은 그늘은 제법 깊다. 이른 아침 혼자 걸을 때면 적막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우제봉 정상까지는 산길과 목재 데크가 번갈아 펼쳐진다. 특히 목재 데크 구간은 험한 암벽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서이말(鼠耳末) 등대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다. 와현모래해변 뒤쪽 산자락에 있다.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출입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등대가 선 암벽 지대 앞뒤로 군부대와 자원 비축 기지가 각각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서이말 등대 가는 소로엔 늘 경비원이 서 있다. 폭우가 내리는 등 사고 우려가 높은 날엔 방문객들에게 발걸음을 돌리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행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등대 이름이 독특하다. 한자를 풀어 쓰면 쥐의 귀 끝을 닮았다는 뜻이다. 이는 등대가 서 있는 해안 절벽의 지형이 쥐의 귀와 흡사해 붙은 이름이다. 현지인들은 곧잘 지리끝 등대라고 부른다. ‘지리’는 길의 사투리인 ‘질’이 변한 말이니, 결국 길의 끝에 선 등대란 뜻이다. 등대 자체야 그리 볼 게 없다. 하지만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만큼은 더없이 빼어나다. 특히 해돋이 장면이 인상적이다. 서이말 등대길 초입에서 등대까지는 3.8㎞쯤 된다. 걷기엔 다소 길어 대부분 차를 타고 오가는데, 오래된 소로가 만들어 낸 숲 그늘이 여간 웅숭깊지 않다. 연지봉과 와현봉수대는 물론 수선화와 동백이 어우러진 ‘비밀의 화원’ 공곶이마을 등을 다녀올 수도 있다. 등대가 있는 ‘길의 끝’은 딱 풍경 전망대다. 거제가 품고 있는 너른 남해의 풍경들을 굽어볼 수 있다. 명심할 것 하나. 등대길은 좁다.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기 어렵다. 그래서 길 양쪽에 교행 공간을 여러 개 조성해 뒀다. 이 길을 안전하고 빠르게 가는 유일한 방법은 ‘양보’다. 자신이 지나온 길 어디쯤에 교차 공간이 있는지 기억해 두고 주행해야 서로가 편하다. 하청면의 맹종죽테마파크도 가볼 만하다. 거제 본섬과 연륙교로 연결된 칠천도 가는 길에 있다. 국내 유일의 맹종죽 공원으로, 부지가 10만㎡(약 3만평)에 이른다. 맹종죽이 거제에 유입된 건 1920년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청면 출신의 신용우란 사람이 일본에서 세 그루를 가져와 심은 게 시초다. 지금은 하청면 일대 곳곳이 맹종죽 숲이다. 거제시에 따르면 우리나라 맹종죽의 80%가 거제에서 자란다고 한다. 대숲에 들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지름 20㎝, 높이 20m 이상 자란다는 맹종죽이 울울창창하다. 1.4㎞에 이르는 산책로를 따라 죽림욕을 즐기기 딱 좋다. 특히 맹종죽의 죽순은 식용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단맛도 강한 편이다. 거제까지는 통영~대전·중부 고속도로 통영 나들목을 나와 거제 방면 국도 14호선을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엔 거가대교를 이용해 부산과 거제를 묶어 여행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거가대교 통행료는 편도 1만원이다. 요즘 거제의 먹거리로는 멸치가 꼽힌다. 겨울철 대구 산지로 유명한 외포항 일대에 멸치요리집들이 몰려 있다. 양지바위횟집(이하 지역번호 055, 635-4327)이 그중 이름났다. 멸치찌개 1인 1만원, 멸치회무침 3만~4만원. 거제포로수용소 옆 백만석(638-3300)은 멍게비빔밥을 잘한다. 잘 곳으로는 지난 13일 문을 연 대명리조트 거제가 첫손에 꼽힌다. 지세포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이 회사의 12번째 사업장으로 지상 28층, 지하 4층에 516실 규모의 콘도미니엄 3개 동, 부속 건물 4개 동 등 총 7개 동으로 구성됐다. 중소형 워터파크(오션베이)와 노래방, 게임장, 연회장, 세미나실, 일반음식점 등을 고루 갖췄다. 대명리조트 거제의 개관으로 거제시의 숙소 부족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명리조트 거제는 오픈을 기념해 각종 프로모션과 할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워터파크 오션베이는 이달 말까지 ‘1+1’ 이벤트를 회원과 제휴카드 이용객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아울러 다음 달 18일까지 주중에 오션베이를 방문하면 50% 할인된 2만 5000원(어른)에 이용할 수 있다. 홈페이지(www.daemyungresort.com/go/) 참조. 1588-4888. 글 사진 거제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씨줄날줄] ‘립 덥’ 열풍/정기홍 논설위원

    6·29선언이 나온 1987년 이맘때의 일이다. 민주화 요구 시위가 한창일 무렵, 서울 남대문시장은 시위장소로 둘도 없는 요새와도 같은 곳으로 통했다. 경찰은 시장입구에서 구호를 외쳐대는 대학생 시위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시장 통로가 사방으로 뚫려 있는 구조여서 경찰은 도망 치는 시위대를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당시 게릴라성 시위가 거의 유일하게 통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전의 오프라인 집단행위의 한 행태다. 최근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와 장소라는 현실세계가 결합된 형태의 놀이문화가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끈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플래시 몹’(Flash mob)이 이 같은 유희문화의 시초로 꼽힌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순간 모여 나름의 ‘의미 있는’ 행동을 하다 목적을 달성하면 곧 사라지는 행위를 일컫는다. 3년 전 스위스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갑자기 길가에서 쓰러져 지나던 시민들을 놀라게 한 해프닝이 그 한 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목적 없이 즐긴다는 측면이 강하다. 우스꽝스럽고 황당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같은 사례로 ‘플레이 태그’(Play tag)란 것도 있다. 이는 어릴 적 골목길에서 놀던 술래잡기 놀이의 일종이다. 사전에 약속된 놀이를 일정 시간 함께 즐기는 행위로, 플래시 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요즘 이와 비슷한 ‘립 덥’(Lip dub)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립싱크(Lipsync)와 더빙(Dubbing)을 합친 말로, 여러 명이 특정 음악에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재미를 이끌어내고 단결력을 과시한다. 단체놀이이지만 참가자 개개인이 개성을 뽐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층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립 덥 공모전’을 열어 새삼 입소문을 타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중고생들을 상대로 한 입시설명회 등에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펀(Fun)이 가미된 놀이문화는 평소 조직력이 없다는 점이 이채롭다. SNS 등으로 무장한 도깨비 같은 군중이 느닷없이 나타나 집단 에너지를 표출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화에 대해 저항적인 메시지보다는 유희 그 자체에 주목한다.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특정한 사람들이 적막을 깨뜨리는 바이올린을 켠다면 따분한 현대인의 일상에 비타민 같은 활력을 불어넣는 일 아닌가.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손안의 인터넷을 내던지고 외곽을 기웃거리는 색다른 현실. 인간의 놀이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이튿날 네 사람의 척후들은 시간차를 두고 말래 도방을 떠났고, 신기료 장수로 변복한 길세만은 맨 나중에 내성 길에 올랐다. 괴나리봇짐 하나 메고 말래에서 샛재까지 걸으면 바릿재와 찬물내기를 지나 산길로 시오리 남짓했다. 양식 전대 하나만 뱃구레에 차고 아침선반에 발행하였으니, 딱 중화참에 맞추어 샛재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싸리나무 울타리 뒤로 몸을 숨기고 숫막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늙은 중노미는 보이지 않았고 주모 월천댁이 봉당에 혼자 앉아 결이 나간 동자박을 들고 바늘로 꿰매고 있었다. 정주간에는 찌그러진 널쪽문이 곧장 떨어질 듯 거북하게 걸려 있었고, 담벼락에는 망태와 광주리 몇 개가 걸려 있었다. 마당 귀퉁이에는 누렇게 삭아 가는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당나귀 서너 필을 매어 둘 만한 작둣간이 있었다. 그 작둣간 뒤로 썩 비켜선 으슥한 구석에 거적문을 단 뒷간이 바라보였다. 식주인을 정하고 유숙하는 길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길세만은 가만히 숫막으로 들어섰다. 패랭이 벗고 물미장 치우고 옹구바지 행색인 길세만을 월천댁은 금세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어디로 가는 뉘시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대꾸는 않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그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난 뒤에 누군지 알아차린 월천댁은 놀라고 기가 차서 그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야단을 떨었다. 미행 중이라는 것을 귓속말로 알려 주고 중화를 걸게 먹은 다음 햇살이 따가운 툇마루 귀퉁이에 걸쳐앉아 낮잠을 달게 자는 척 헛코를 골기도 하였다. 월천댁이 안심하고 이웃에 방아품을 팔러 간다며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길세만은 골방 문을 가만히 열고 구월이를 불렀다. 등을 바람벽에 붙이고 앉아 버선볼을 받던 구월이가 화들짝 놀라 외짝 바라지를 열었다. 난데없이 입귀가 돌아가도록 웃고 있는 길세만을 발견하고 수인사는커녕 삼이웃이 떠나가라 부아통을 터뜨리며 마실 간 어미를 불렀다. “어허 내가 환한 대낮에 무슨 해코지라도 할 줄 아는가. 구면인 사람 보고 왜 그렇게 악증인가. 우리가 한두 해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구월이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길세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암팡지게 쏘아붙였다. “여러 해 알고 지냈다 해서 처자가 혼자 있는 방 앞에 와서 사람을 놀라게 합니까.” “내가 구월이에게 찍자를 부리자고 불렀던가. 날 너무 홀대하지 말게.” “홀대고 뭐고 수작 마시고 잽싸게 봉노로 돌아가시지요. 삼이웃이 눈치채면 체면 깎이는 봉변당하십니다.” 톡톡히 무안을 당한 길세만의 얼굴이 원숭이 밑구멍처럼 벌게졌다. “이제 겨우 이팔 처자가 말대답 한 가지는 모질게 씹어 뱉는구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요.” “나도 아직 핫아비도 아닐뿐더러 끗발이 죽지도 않았네. 마음 한 가지만 다잡아 먹으면 처녀장가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일세.” 그 말을 구월이가 말씨 곱지 않게 되받아치며 돌쩌귀가 부서져라 문을 처닫으면서 고시랑거렸다. “난봉꾼 주제에 마음 다잡아 보았자 사흘이겠지요.” “어허, 봉패로세. 평소 숙객으로 지내는 사이라, 일차 상면해서 인사 수작이나 나누자 했는데, 빼죽거려서 무안만 당했네. 소행머리하구선.” “남녀가 유별한 것은 적막강산에 살고 있는 아녀자라 해서 다르지 않은데, 땅거미가 지려는 시각에 편발 처자가 거처하는 뒷방 문앞에 와서 상면은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립니까. 소금 짐 지고 다니는 행상이라 해서 범절조차 없을까요. 지분거리지 말고 썩 비키세요.” “어허, 촌닭이 관청 닭 눈 빼 먹는다더니.” “초상 술에 권주가라더니, 댁의 반죽도 남 못지않네요.” 숫막 뒷골방에 거처하면서도 봉노에서 주고받는 농지거리를 귀동냥한 탓이리란 생각은 들었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다소곳하기 그지없었던 처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성깔이 소태 같았다. 듣고 보니 말은 옳았으나 왠지 제 풀에 울화가 치밀었다. 당장 뛰어들어 귀쌈을 눈물이 쑥 나오게 때려 주고 싶기도 했으나, 방아품 팔러 갔던 월천댁이 돌아오면 소동이 커질 것 같아 시치미 떼고 냉큼 돌아서고 말았다. 길세만은 누가 듣고 있지도 않은데 혼자 중얼거렸다. “지미, 콧등이 그렇게 셀 줄은 미처 몰랐네. 운수 사나운 놈은 밀가루 장사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하면 비가 내린다더니 천상 내가 그 꼴이군.”
  • [유해화학물질 사고 ‘시한폭탄’] “8개월 지났어도 두통·호흡곤란… 20년 짓던 과일농사마저 포기”

    [유해화학물질 사고 ‘시한폭탄’] “8개월 지났어도 두통·호흡곤란… 20년 짓던 과일농사마저 포기”

    “불산의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2일 오후 3시 경북 구미국가산업4단지 내 화공업체 ㈜휴브글로벌 구미공장. 지난해 9월 독성물질인 불화수소산(불산) 누출 사고로 23명의 사상자와 554억원의 물적 피해를 낸 진원지다. 사고 발생 248일 만에 다시 찾은 현장은 여전히 당시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스테인리스로 된 공장 정문은 굳게 닫힌 채 적막감만 감돌았다. 누출 사고가 난 이동식 탱크는 자취를 감췄다. 사고로 조업을 멈췄던 인근 공장들은 정상을 되찾았고 말라 죽었던 조경수와 가로수는 다른 나무로 교체돼 푸름을 더해 갔다. 때마침 현장 점검을 나왔다는 구미시 김동진(50) 수계수질담당은 “회사 측이 최근 옥외 저장 탱크 7개에 남아 있던 에칭제 7t을 마지막으로 처리했다”면서 “회사는 조만간 시에 휴업신고를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장을 200여m 남짓 벗어나자 누출 사고 직격탄을 맞은 산동면 봉산리 마을이 나왔다. 당시 314가구 주민 532명이 살던 마을이 온통 쑥대밭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3개월간 인근 환경자원화시설에서 지옥 같은 피난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현재 마을 앞 들판은 겉으론 평온한 모습이었다. 간간이 주민들이 모내기 채비에 나서며 내는 경운기와 트랙터 소리만 적막을 깼다. 하지만 마을로 들어서자 사고의 상흔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들은 “여태껏 죽지 못해, 차마 떠나지 못해 할 수 없이 (이곳에) 살고 있다”면서 “목과 머리가 아프고 불면증, 스트레스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불산을 마셔 부인과 함께 입원 치료를 받았다는 심모(62)씨는 “갈수록 숨이 차고 호흡 곤란도 심해져 20여년간 짓던 비닐하우스 멜론 농사를 포기했다”면서 “구미 순천향대병원에서 치료를 계속 받지만 차도가 없어 차라리 죽고 싶다”며 울먹였다. 옆에 있던 부인 이모(56)씨는 “아직도 불산의 ‘ㅂ자’만 들어도 몸서리쳐진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게다가 ‘불산 오염 농산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터라 아픔은 두배다. 비닐하우스 4000㎡에서 멜론 농사를 짓는다는 임금숙(52)씨는 “예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30~40% 정도가 인터넷 주문이었는데 올해는 전무하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농협 및 서울 가락시장 공판장을 통해 출하하지만 5㎏들이 박스당 1만 2000원으로 인터넷 판매보다 6000~7000원 싸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불평했다. 한 주민은 “여러 해 토마토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구미시는 생색만 냈을 뿐 정작 도움은 주지 않았다”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구미시의 늑장 피해 보상 탓에 추가 피해를 입은 농가들도 있었다. 김점호(73)씨는 “시가 지난해 말 소 30마리를 살처분한 보상금을 지난 4월에서야 지급해 재입식 시기를 놓쳤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천종수(70)씨는 “불산에 포도 나무가 말라 죽어 3월에 과원을 갱신하려 했지만 보상이 늦어 포기했다”고 맞장구쳤다. 마을에는 토양 및 수질 추가 오염원도 상존해 있었다. 인근에 불산 피해목이 벌채된 채 비가림 시설도 없이 쌓여 있었다. 주민 박모(58·여)씨는 “구미시가 피해목을 2~3개월째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면서 “이미 수차례에 걸쳐 피해목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으나 ‘나 몰라라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내린 비로 피해목에서 나온 불소가 토양 등으로 흘러들었다”고 주장했다. 박명석(51·봉산리 이장) 구미 불산피해주민대책위원장은 “불산 사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대책위 해단조차 못 하고 있다”면서 “피해 보상이 90% 이뤄졌다지만 일부 주민의 반발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130여곳이나 되는 불산 취급 업체 때문에 언제 또 사고가 터질지 늘 불안에 떨지만 자치단체와 업체들의 재발 방지책은 미봉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글 사진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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