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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숙 여사 미공개 사진 공개…아기들 ‘놀이터’된 청와대

    김정숙 여사 미공개 사진 공개…아기들 ‘놀이터’된 청와대

    청와대는 2017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2017년에 활짝 열린 청와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공식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김정숙 여사와 청와대를 방문한 시민들의 미공개 사진 15장을 공개했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사진에는 청와대 앞길 개방행사와 청와대 본관 전경, ‘비혼모’ 초청행사, 청와대 관람객과의 만남, 국빈 환영행사, 임명장 수여식, 다문화 합창단 초청행사 장면 등이 담겼다. 청와대는 지난 9월 27일 김 여사가 비혼모자 생활시설인 애란원 식구들을 초청한 사진을 공개하고 “엄마들이 김정숙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기들은 하루 동안 놀이방이 된 본관 무궁화실에서 청와대 경호실 의무대장과 행정관들 품에 안겨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6월 26일 김 여사가 시민들과 함께 약 50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 앞길을 걷는 사진에 대해서는 “오후 8시 이후에는 차도, 사람도 다닐 수 없어 적막했던 청와대 앞길이 50년 만에 시민들에게 완전해 개방됐다. 차량을 통제하던 바리케이드를 내리고 검문도 하지 않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어 “개방된 청와대 앞길을 찾는 국민을 위해, 청와대 본관의 조명도 환하게 밝혀 청와대 앞길을 찾는 손님들을 맞이했다”며 “밤새 불을 밝혀도 전기료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라고 덧붙였다.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셀카’를 찍는 사진과 경내를 거닐던 김 여사가 시민들과 우연히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내외가 국빈 방한해 양국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는 사진에 대해서는 “귀여운 어린이들의 환호에 먼 길을 날아온 해외 정상들도 기뻐했고, 정상회담의 분위기 또한 한층 화기애애했다”고 설명했다. 공직 임명장 수여식 사진도 공개하면서 “전에는 임명받는 공직자 당사자만 참석하던 것을 가족이 함께 참석해 축하를 나누는 행사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동대문 다문화지원센터의 레인보우 합창단이 김 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 봉황기 앞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면서 “태극기와 봉황기 앞은 초청받은 해외정상만 설 수 있다는 의전 관행이 있었지만 새 정부는 국민을 해외정상 이상으로 모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우성 “지치지 말고 힘내세요!” KBS 파업 응원 영상메시지

    정우성 “지치지 말고 힘내세요!” KBS 파업 응원 영상메시지

    배우 정우성씨가 지난 20일 KBS 뉴스 인터뷰에 출연해 “KBS의 정상화를 바란다”는 소신 발언을 한 데 이어, 파업 중인 구성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21일로 파업 109일째를 맞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정씨가 보내온 2분 38초 길이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정씨는 영상을 통해 “어제 뉴스 출연을 위해 KBS 신관에 들어섰는데, 그 황량한 분위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 파업을 전해듣는 것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정말 다른 분위기였다”고 뉴스 출연 당시 소감을 전했다. 이어 정씨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참 많은 실수를 했다.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상처받고 외면당하고, 또 그 결과 시청자들이 KBS를 외면하고 이제는 무시하는 처지까지 다다른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정씨는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새노조에게 “돌아선 시청자들의 눈과 귀,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인내와 끈기를 갖고 이어간다면, 차디찬 겨울 공기를 뚫고 광화문을 넘어 전국에 있는 시청자와 국민들의 마음에 전달되어 그들의 눈과 귀가 여러분에게도 KBS에게도 돌아오리라 생각한다”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러분 지치지 마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길 바라는 시청자와 국민들이 여러분들 곁에서 응원할 것입니다. 힘내세요!” 정씨는 말했다. 정씨는 전날 KBS 1TV ‘4시 뉴스집중’에 출연해 방송 말미에 “근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 뭐가 있느냐”라고 묻는 앵커의 질문에 “KBS의 정상화요. 1등 국민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빨리 되찾길 바랍니다”고 답했다(관련기사 정우성, KBS 뉴스 인터뷰에서 “KBS 정상화 바란다”). 앞서 정씨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매 주말 열렸을 때도 그랬다. 정우성은 영화 ‘아수라’ 무대인사 중 “박성배(황정민), 앞으로 나와!”를 패러디해 “박근혜 나와!”라고 외쳤다(관련기사 “박근혜 나와!” 외쳤던 정우성, MB 흉내까지). 아래는 정씨가 보낸 응원 메시지의 전문.안녕하세요 새노조 조합원 여러분, 배우 정우성입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자격으로 KBS 뉴스에 출연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여러분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게 됐습니다. 어제 뉴스 출연을 위해 KBS 신관에 들어섰는데 그 황량한 분위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파업을 전해듣는 것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정말 다른 분위기였고요.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주인 잃은 책상들이 즐비했고 그 스산하고 적막한 분위기는 마치 KBS의 지난 수난의 역사, 고통을 차갑게 보여주는 듯했고 거칠게 울부짖는 소리처럼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참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상처받고 외면당하고 또 그 결과 시청자들이 KBS를 외면하고 이제는 무시하는 처지까지 다다른 것 같습니다. KBS 새노조 여러분께서 광화문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 이어말하기 하셨던 거 알고 있습니다. 돌아선 시청자들의 눈과 귀,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인내와 끈기를 갖고 이어간다면 차디찬 겨울 공기를 뚫고 광화문을 넘어 전국에 있는 시청자와 국민들의 마음에 전달되어 그들의 눈과 귀가 여러분에게도 KBS에게도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어제가 파업 108일째였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오늘이 파업 109일째 월급 없는 3개월 여러분 참 쉽지 않겠네요. 하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해서 힘과 의식을 모아 월급을 포기하고 함께 싸워 나가는 것은 정말 멋지고 응원받아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치지 마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길 바라는 시청자와 국민들이 여러분들 곁에서 응원할 것입니다. 힘내세요!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현장 행정] 구로, 中企 칭찬 7년 일자리까지 춤췄다

    [현장 행정] 구로, 中企 칭찬 7년 일자리까지 춤췄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우니까 구청에 바라는 점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지난 11일 서울 구로구청 르네상스홀. ‘2017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인증제 수여식 및 협약식’이 열린 이날 이성 구로구청장이 지역 내 우수기업 14곳의 대표들을 향해 예정에 없던 말을 건넸다. 몇 초간 대표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지만 이내 하나둘씩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꺼내 놨다. 박관병 이지렌탈 대표는 “의자, 천막 등 여러 장비를 렌털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구로구의 대표 주민 축제인 ‘점프 구로’를 할 때 지역 업체를 많이 이용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구청장은 “서울시에서 구로구가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가장 많이 빌려주고 있다. 이처럼 구청과 기업이 함께하면 경제 전반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로구가 일자리 창출에 적극 힘쓰고 있다. 이 구청장 취임 바로 다음해인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인증제’가 대표적인 일자리 창출 사업 중 하나다. 구에서 매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기업 10여개를 선정해 지속적인 성장 인센티브를 발굴·제공하고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적극 장려하자는 취지다. 구 관계자는 “이번 행사에 참석한 14곳은 지난 10~11월 두 달간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뽑혔다. 여러 조건을 갖춘 우수기업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년간 구에서 뽑힌 우수기업은 이번에 선정된 14곳을 포함해 총 81곳이다. 30~300인 미만 기업 기준으로 최근 2년간 고용증가율이 10% 이상을 기록해야 하고, 최소 5명(정규직) 이상 채용 실적이 있어야 우수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1년 이상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 우수기업에 대한 구의 인센티브는 다양하다. 고용 창출 우수기업 인증서 및 기업 현판을 제작해 수여하고, 중소기업육성기금 융자 지원 시 가점을 부여해 우선 선정한다. 또 중소기업제품 공공구매 시 우수기업 생산물품을 먼저 구입한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의 정학동 대표는 “지난 7년 동안 지역 기업들도 구청의 지원에 힘입어 많은 발전을 했다. 기업을 배려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대부분의 지자체는 일자리 사업이 중앙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취임한 이후 구청에 처음 일자리과를 만들었다.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 시절 했던 일들을 구정에 접목시킨 것”이라면서 “아직 지자체에 권한이 많은 건 아니지만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마지막 인사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마지막 인사

    글로벌 리더는 연어를 닮았다. 개천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란다. 민물과 짠물 어디서든지 살 수 있는 적응력을 가졌다. 그리고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준다. 바야흐로 회귀의 계절이다. 연어의 귀소 본능은 강렬하다 못해 치열하다. 회귀를 시작하면서 금식한다. 막히면 넘을 때까지 튀어 오른다. 포기란 없다. 입을 크게 벌린 곰들이 기다린다. 운좋게 살아 돌아온 연어들은 알을 낳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장렬한 희생이다. 연어의 희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독수리들은 죽은 연어를 움켜쥐고 숲속의 둥지로 날아간다. 먹다 버려진 연어의 시체는 썩어 훌륭한 거름이 된다. 북미 서부의 전나무 숲이 유달리 울창하고 장대한 이유는 연어 때문이다. 꿈들이 자라난다. 연어가 자연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다. 2011년의 어느 날 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붉은색 단복의 브라스밴드 단원들이 적막한 밤의 어둠 아래 모여든다. 대열을 맞춘다. 슬레이트 지붕 밑 희미한 불빛 속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밤은 작별 인사를 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48세에 암으로 갑작스레 타계한 이방인 스승. 자신들에게 와서 연어가 되어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눈물로. 그가 가르쳐준 음악으로. 지금은 별이 되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겠지. 밤하늘에 멜로디가 슬프게 퍼져 나간다. 노래도 부른다. 서툰 한국말 가사로. “사랑해 당신을…” 그들이 눈물로 그리워하는 사람 이태석 신부. 우리나라가 낳은 진정한 글로벌 리더다. 그를 통해 대한민국과 아프리카 대륙이 이어진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했던 곳. 가난한 사람들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땅. 내전으로 200만명이 죽고 나라는 둘로 쪼개진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의 삶도 지옥이다. 아이들은 오염된 물을 마신다. 몸도 마음도 쪼개지고 황폐하다. 절망밖에 없던 이곳에 한 이방인이 찾아와 의술을 베푼다. 정성으로 환자들을 보살핀다. 그를 찾아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에 먼 곳에서도 2, 3일을 걸어 환자들이 찾아온다. 병원을 세운다. 스스로 조감도를 그리고, 케냐에서 시멘트를 사오고, 벽돌은 직접 만들고, 강에서 모래를 퍼와 12개의 병실을 갖춘 병원을 완성한다. 병원이 안정되자 학교를 짓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성당보다 학교가 우선이다.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열기는 뜨겁다. 전기가 없는 칠흑 같은 밤에는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는다. 학생들을 데리고 35인조 브라스밴드도 만든다. 남수단 최초. 한국 지인의 도움으로 단복도 입힌다. 전쟁과 가난으로 황폐해진 아이들의 마음에 치유와 기쁨을. 총 대신 악기를. 한 사람의 헌신은 기적을 만든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이 살아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묻는다.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느냐’고. 그는 대답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슈바이처 박사. 1875년 독일에서 태어나 1965년 아프리카의 가봉 람바르네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20대에 이미 많은 것을 이룬다. 대학교수, 목사, 그리고 세계적인 파이프 오르가니스트. 하나만 있어도 부러워할 직업을 세개나 갖고 있지만 마음이 꽉 채워지지 않는다. 꿈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가르치고, 책 쓰고, 설교하고, 연주하고-모두 다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런데 그 도움들은 간접적이다.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 어느 날 우편물 들을 무심코 넘겨보다가 한 선교단체에서 ‘아프리카에 보낼 의사를 구한다’는 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이거다! 잊힌 땅 아프리카에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일. 새집을 지으려면 헌 집을 부숴야 한다. 서른 살에 의대생으로 입학한다.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아프리카로 건너간다. 종교인이 아닌 의사로서 사람들을 돕는다. 1952년에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그의 헌신적인 삶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꿈을 불어넣는다. 남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꿈은 꿈을 낳는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향기로워진다.
  • “과메기·대게철인데 파리만…이래가 우째 먹고 살겠는교”

    “과메기·대게철인데 파리만…이래가 우째 먹고 살겠는교”

    동빈내항 크루즈 관광객 급감 “여진 장기화 땐 횟집 초토화”“지진 이후로 시장에 손님이 없는데 무슨 재주로 장사를 합니꺼.” 20일 점심시간 경북 포항 죽도시장. 동해안 최대 재래시장으로 고객들로 북적대야 할 시간이지만 휑한 모습이었다. 시장통은 한산했고, 상인들은 멍한 표정이거나 잡담이나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건어물점을 하는 박모(62)씨는 “30년 장사에 이런 적은 없었다. 새벽 7시에 문 열어 지금까지 멸치 한 마리 못 팔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5일 지진 이후 엿새째 계속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지진으로 부서진 집을 나와 고통을 겪는 이재민들의 사정에 온 국민이 마음 아파하고 있는 가운데 포항지역 서민들은 생업에 타격을 입고 또 다른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죽도시장의 50여개 건어물상은 과메기철(11~1월)을 맞아 대목장을 차려 놓았으나 예년같이 흥정하는 소리로 떠들썩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기자가 30여분간 이 일대를 서성거렸는데도 손님은 줄잡아 10여명도 안 됐다. 상인들도 손님을 기다리다 아예 지쳐 움직이지 않으면서 적막하기까지 했다. 제철을 맞은 대게 역시 죽도시장 좌판 곳곳에 가득했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장 내 한 횟집 주인 구옥분(58)씨는 “아직 마수걸이도 못 했어요. 이래가 우째 먹고 살겠는교”라고 푸념했다. 이어 “지진이 난 날에는 겁이 나서 바로 문을 걸어 잠그고 쉬었다. 이후 문을 열고는 있지만 손님이 없다”고 했다. 이 횟집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 점심시간에는 30~40명 정도 받을 수 있는 식당이 꽉 찼을 정도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식당이 터져 나갈 듯했단다. 그러나 이후 손님이 뚝 끓겨 하루에 5~6명 정도가 전부다. 그는 “이런 장사로는 백날 해 봤자 적자다”고 걱정했다. 입술이 마른 모습의 옆 식당 주인은 “나는 점포세까지 내야 해 죽을 맛”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허창호(47) 죽도시장연합회장은 “지진으로 죽도시장 손님이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 줄었다. 외지 관광객들이 거의 없다. 특히 손님의 90% 이상이 외지인인 횟집들은 지진 여파가 장기화될 경우 초토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먹거리·볼거리를 즐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동빈내항 크루즈 역시 관광객이 급감했다. 이날 오전 탑승객은 20여명에 그쳤다. 지난 19일에는 휴일이었음에도 170명에 불과했다. 지진이 나가 전에는 주말에 1300명 정도가 크루즈를 탔다고 한다. 김무원 ㈜포항크루즈 상무는 “지진이 나고서는 전국에서 관광버스로 죽도시장과 크루즈를 투어하는 손님들이 싹 없어졌다”고 했다. 글 사진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평상심 찾자” “등급 올리자”…교실로 돌아온 고3들

    15일 경북 포항 지역의 강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가 발표된 뒤 첫 공식 등교일이었던 17일 고3 학생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에 대비했다. 학생들은 교사나 학부모가 걱정하는 것에 비해 심리적 충격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나며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오답·요점노트 암기 등 자율학습 17일 오전 10시 20분, 서울 용산고 3학년 11반 교실 안은 적막함이 가득했다. 두꺼운 검은 패딩 등을 걸쳐 입은 수험생들은 이날 오전 7시 50분쯤 정상 등교해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했다.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거나 오답·요점노트를 암기하고 태블릿PC로 한국사 동영상 강의를 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담임교사는 별말 없이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켜봤다.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수시 전형으로 대학 입학을 확정한 일부 학생들은 결석처리를 피하려 등교는 했지만 소설책 등을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주석표 용산고 교감은 “예정대로 16일 수능을 치렀더라면 답안을 맞춰 볼 시간”이라면서 “정상수업은 사실상 어려워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며 질문이 있으면 교사가 답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급작스러운 일정 변화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 만큼 남은 시간 동안 정리에 집중하는 편이 현명한 태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학교 3학년인 정모(18)군은 “모든 수험생이 7일 더 공부하면 1등급 커트라인이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더 집중하려 노력한다”면서 “친구들도 대부분 평소와 다름없이 모의고사 등을 풀며 감을 유지하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은 4교시까지 자율학습을 마치고 오후 1시쯤 하교했다. ●학교 측 교내자율학습실 오후 10시까지 개방 학교 측은 학생들이 수능 전까지 자습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교내 자율학습실을 오후 10시까지 개방하는 등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 또 오는 20일과 21일에는 예정에 없던 급식을 제공하기로 하고, 이런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전달했다. 일부 고3 수험생들은 원래 수능 예정일이었던 16일 직전 핵심 교재를 제외한 참고서를 버려 공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주 교감은 “학교가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돼 교실 안 교과서 등을 모두 치워야 하는 탓에 평소 교실에 뒀던 참고서를 버린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학교 인근 서점 “수능 연기로 문제집 불티” 용산고 인근 학습지 전문 서점인 ‘고래할인문고’ 직원 정태식씨는 “수능 연기를 발표한 15일 저녁 8시 20분 이후 2시간 동안 실전모의고사 문제집이 100권 넘게 팔렸다”면서 “평소 같으면 문제집을 모두 반품했을 시점인데 지금은 오히려 더 들여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점 입장에서야 책이 잘 팔리면 좋은데 학생들로서는 혼란스러운 것 같아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고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7일 더 공부하면 등급 오른다는 생각으로”교실로 돌아온 고3들

    “7일 더 공부하면 등급 오른다는 생각으로”교실로 돌아온 고3들

    15일 경북 포항 지역의 강진으로 대학 수학능력시험 연기가 발표된 뒤 첫 공식 등교일이었던 17일 고3 학생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대비했다. 학생들은 교사나 학부모가 걱정하는 것에 비해 심리적 충격으로부터 비교적 빨리 벗어나며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다.이날 오전 10시20분, 서울 용산고 3학년 11반 교실 안은 적막함이 가득했다. 두터운 검은 패딩 등을 걸쳐입은 수험생들은 이날 오전 7시 50분쯤 정상 등교해 교실에서 자율학습했다.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거나 오답·요점노트를 암기하고, 태블릿PC로 한국사 동영상 강의를 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담임교사는 별말 없이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켜봤다.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수시 전형으로 대학 입학을 확정한 일부 학생들은 결석처리를 피하려 등교는 했지만 소설책 등을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주석표 용산고 교감은 “예정대로 16일 수능을 치렀더라면 답안을 맞춰볼 시간”이라면서 “정상수업은 사실상 어려워 학생들이 자율학습하며 질문이 있으면 교사가 답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급작스러운 일정 변화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 만큼 남은 시간 동안 정리에 집중하는 편이 현명한 태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학교 3학년인 정모(18)군은 “모든 수험생이 7일 더 공부하면 1등급 커트라인이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더 집중하려 노력한다”면서 “친구들도 대부분 평소와 다름 없이 모의고사 등을 풀며 감을 유지하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은 4교시까지 자율 학습을 마치고 오후 1시쯤 하교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수능 전까지 자습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교내 자율학습실을 오후 10시까지 개방하는 등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 또 오는 20일과 21일에는 예정에 없던 급식을 제공하기로 하고, 이런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전달했다. 일부 고3 수험생들은 원래 수능 예정일이었던 16일 직전 핵심 교재를 제외한 참고서를 버려 공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주 교감은 “학교가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돼 교실 안 교과서 등을 모두 치워야 하는 탓에 평소 교실에 뒀던 참고서를 버린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용산고 인근 학습지 전문 서점인 ‘고래할인문고’ 직원 정태식씨는 “수능 연기 발표를 한 15일 저녁 8시 20분 이후 2시간동안 실전모의고사 문제집이 100권 넘게 팔렸다”면서 “평소 같으면 문제집을 모두 반품했을 시점인데 지금은 오히려 더 들여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점 입장에서야 책이 잘 팔리면 좋은데 학생들로서는 혼란스러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만은 않다”고 안쓰런 마음을 드러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퍼블릭 詩 IN] 얼음 다리

    [퍼블릭 詩 IN] 얼음 다리

    건너갈 것들이 다 건너갔다는 건가 건너올 것들이 이제는 없다는 건가 강물이 얼음 다리를 풀고 있다. 올겨울이 혹독했던 건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기 때문일 테지 미지의 대륙을 찾아가는 순록의 떼나 봄처럼 쓸쓸한 것들의 귀환이거나 아니면 신(神)들의 적막한 행군이 있었을지도 몰라 별도 없는 밤 그 발자국들이 새벽까지 건너는 소리를 잠결에라도 들은 사람은 더이상 외롭지 않아도 될 거야. 얼음 다리는 풀어지고 띠를 이룬 피라미들은 살이 통통하고 지붕이 날아간 집들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 강물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흘러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는 강둑을 걷자. 차재연 (방산초등학교 교사)20회 공무원문예대전 입선 수상작
  • 40년 화업의 ‘청년 작가’ 인간 소외·실존을 묻다

    40년 화업의 ‘청년 작가’ 인간 소외·실존을 묻다

     40여년 화업을 이어 온 중견 작가 오원배(64)의 관심은 늘 인간 소외와 실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고정돼 있지 않다. 대학 시절이던 1970년대에는 가면이나 탈을 쓴 인간의 이미지를 주로 작품에 담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엔 거친 표현으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귀국 후 모교(동국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이후엔 중성화된 생명체 시리즈로 인간의 소외를 대변했다. 1990년대에 그는 암울한 도심 풍경과 그 안에서 배회하는 유령 시리즈를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 거칢과 부드러움이 대비되는 ‘이중적 풍경’ 시리즈가 이어진다. 머리엔 흰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창작혼을 불태우고 변화를 거듭해 온 그를 사람들은 ‘청년작가’라고 부른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OCI미술관에서 2일부터 열리는 초대 개인전에 그가 펼칠 회화 세계는 그 수식어가 절대 과장이 아님을 보여 준다. 32m에 이르는 대작 회화를 비롯해 800호, 500호 등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들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단호한 진단을 내린다.  “현대 사회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학과 기술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 주긴 하지만 잉여노동력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인간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거리를 안겨 주지요.”  전시장 1층의 벽면을 감싼 32m 길이의 작품 ‘무제’에는 전체주의 병영이나 산업현장에 유폐된 듯한 군상들이 그려져 있다. 복제된 듯 비슷하게 생긴 인물들은 옷도 걸치지 않았다. 거대한 파이프와 가스통, 담벼락 아래에서 위축된 모습으로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몸짓을 하고 있다. 인간 개인에 집중했던 그의 시선은 집단으로 초점을 옮긴 듯하다. 오 작가는 “개인의 힘으로 기계와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대응하지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 결과 집단 속 개성은 사라지고, 기계화된 채 살아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루마리처럼 긴 작품을 한 데 대해 그는 “서사적인 내용이어서 화폭 하나에 담을 수 없었다”면서 “꼬박 6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공간을 분석하고 작업하면서 실제 벽에 설치된 소화전과 환기용 닥트, 비상등까지도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긴 그림의 맞은편에 걸린 작품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다. 검은 바탕에 브론즈 빛깔로 그려진 인조인간들, 혹은 로봇들이 오히려 환희에 찬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집단화된 인간의 통제된 신체를 인조인간의 자율성과 대비해 보면서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삭막하고 무덤덤한 풍경들만 보인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계단, 온기 하나 없는 공장의 철골 구조, 감시의 눈초리가 살벌하게 느껴지는 형무소 담벼락 등. 적막한 풍경들은 기계적 시스템과 인간의 도구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균질한 톤으로 꿰어진다.  3층에는 작가가 꾸준히 그려 온 드로잉 37점이 걸렸다. 엄청난 에너지를 풍기는 대작들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로잉을 통해 보여 준다. 그는 평상시 생활하는 곳곳에서 마주치는 주변 인물과 소소한 사건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해 드로잉 북에 옮긴다. 그는 “삶의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단상들을 일기를 적듯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지화한 것들”이라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화가에게는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12월 9일 오후 4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글·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혜주의 포크&라이프] 병원 밥은 왜 맛이 없을까

    [김혜주의 포크&라이프] 병원 밥은 왜 맛이 없을까

    쉽게 고쳐지지 않는 병 때문에 A는 명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또 입원을 했다. 서울 강남의 한 대학 병원에서 벌써 10년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A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입원한 지 3일째를 맞고 있던 A는 지난 저녁 식사부터 거의 남김없이 먹고 있다고 했다.남들은 병원 밥이 맛없다고 하는데 A는 대체로 병원 밥에 만족하는 편이란다. 먹고 나도 속이 편안하고 맛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다는 것. 다만 반찬 간이 세지 않으니 양이라도 좀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입원할 때마다 아예 밑반찬 몇 개를 가져간다고 했다. A와 달리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은 밥 먹는 게 고역인 것 같았다. 그만 먹겠다는 환자들을 어르고 달래는 보호자들의 애처로운 소리들만이 병실의 적막함을 깰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A와 운동 삼아 병동 복도를 왔다 갔다 걸으며 왜 병원 밥은 맛이 없을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또한 십여 년 전에 3개월에 가까운 병원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다. 다른 기억은 별로 없는데 허구한 날 유동식만 먹다가 일반식으로 바뀐 첫날 먹었던 그 밥상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밥을 뜨려고 숟가락을 밥에 넣을 때 손에 전해지던 느낌 하며, 입안을 채웠던 그 밥덩이가 윗니 아랫니 사이에서 뭉개지는 감각, 마침내 그것들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갈 때의 그 쾌감은 맛을 떠나 ‘정상적으로 먹는다’는 것이 주는 감사함의 발견이었다. 그러나 먹는다는 감각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됐을 때에야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병원 밥이 정말 맛이 없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몸이 아플 때는 그 어떤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줘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지 않은가. 입원 당시 옆 환자가 “병원 밥이 맛있게 느껴지는 걸 보니 곧 퇴원할 때가 된 것 같은데”라고 했는데 바로 그런 이치일 것이다. 희멀건 색의 플라스틱 식판 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밥과 반찬은 빨리 젓가락을 가져가 보고 싶은 푸짐함(시각)도 없고, 보글보글 끓는 소리(청각)도 없으며, 보온카트에 실려 환자의 병상까지 오면서 뜨거웠던 국은 열기를 잃으며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후각)도 가져가 버린다. 바삭해야 할 반찬은 눅눅할 때가 더 많다. 식감(촉각)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까. 입에 맞는 반찬이 있어도 더 달라고 해서 먹을 수 없는 것도 병원 밥이 가진 한계다. 만약 병원 밥 식단을 일반 가정의 식탁으로 가져와 보통의 집밥처럼, 식당의 한 끼 식사처럼 차려 낸다면 그때도 과연 맛에 대해 같은 평가가 내려질까. 영국의 어느 병원에서는 단지 생선 접시 색깔만 바꾼 것만으로 환자들의 생선 섭취량이 3분의1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같은 초콜릿이라도 높은 톤의 음악을 들려준 이들은 주로 단맛을 느꼈고, 낮은 톤의 음악을 들은 이들은 쓴맛을 느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맛이 그렇게 우리의 감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검증됐다. 그러고 보면 ‘밥 한 끼를 맛있게 잘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내 몸 상태가 좋아야 할 것이고, 알게 모르게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밥상 차림, 맛있게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은 밥상 주변의 긍정적인 모습 등이 모두 충족됐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 [그 책속 이미지] 극한의 땅 알래스카, 위대한 생명

    [그 책속 이미지] 극한의 땅 알래스카, 위대한 생명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호시노 미치오 지음·사진/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225쪽/2만 4000원꽁꽁 언 눈밭을 줄지어 걷는 카리부 떼의 발소리가 광대한 알래스카의 적막을 깬다. 연어를 덥석 집어 문 그리즐리의 입 밖으로 탱글한 연어알이 후드득 떨어진다. 방금 잡은 레인디어 한 마리를 온 가족이 나눠 먹는 모습은 한 세기 전의 풍경인 듯하다. 알래스카의 자연과 동물, 사람들의 모습을 시처럼 사진에 새겨 넣은 세계적인 야생사진가 호시노 미치노의 대표작과 에세이가 한데 묶였다.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본 알래스카 사진에 매료된 그는 아예 터전을 옮겨 마흔셋에 불곰의 습격을 받아 숨질 때까지 20년간 알래스카를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의 땅에서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터득한 생명의 순간순간이 경이롭다. ‘인간을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자기 존재를 위해 숨 쉬는 자연의 모습에 우리는 늘 가슴이 뛰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내 나이 구십에도 자꾸만 詩心이 일어나고 또 시구가 떠올라 시 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내 나이 구십에도 자꾸만 詩心이 일어나고 또 시구가 떠올라 시 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만년의 으스름 저문 날을 살면서도, 보고 느끼고 깨닫고 감동하는 바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삶의 본질, 그 의미심장함과 이에 응답하는 사람의 감개무량함, 살아가면서 더디게 성숙되어 가는 경건한 인생관, 이 모두 오묘한 축복이며 오늘 우리의 감사이자 염원입니다.”●‘심장이 아프다’ 이후 4년 만에 새 시집 구순에 이르러서도 시인은 매일 감각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10년 전부터는 시 쓰기를 중단하고 다른 이의 글이나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1953년 첫 시집 ‘목숨’ 이후 64년째 이어온 시업은 그에게 여전히 ‘충만한 사랑’이다. 시인은 그래서 고백한다.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속에서 시심(詩心)이 일어나고, 또 시구가 떠올라서 시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고. 최근 열여덟 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열화당)을 펴낸 김남조(90) 시인 얘기다. ‘심장이 아프다’ 이후 4년 만에 펴낸 새 시집에는 지난 4월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시계’ 등 신작 63편을 담았다. 노경에 이르러 시간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는 시인은 인간의 속됨을 반성하면서도 이상을 향해 분투하는 의지를 긍정한다. ‘그대의 나이 구십이라고/시계가 말한다/알고 있어, 내가 대답한다/시계가 나에게 묻는다/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내가 대답한다/내면에서 꽃피는 자아와/최선을 다하는 분발이라고/그러나 잠시 후/나의 대답을 수정한다/사랑과 재물과/오래 사는 일이라고//시계는 즐겁게 한판 웃었다/그럴 테지 그럴 테지/그대는 속물 중의 속물이니/그쯤이 정답일 테지…/시계는 쉬지 않고/저만치 가 있다’(시계)●가능하다면 또 한 권의 시집을 내고 싶으니 쓰다 버린 시구절들을 돌이키면서는 ‘관절이 삐걱거려 피와 살을 입혀 주지 못한’ 생애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나 역시도 누군가의 실패한 문장’일 수 있음을 토로한다. 하지만 소란, 어지러움, 적막이 혼재하는 삶마저도 긍정하는 시편에서는 그의 영원한 주제(사랑과 구원)가 찬미가처럼 울린다. ‘세상이 적막해진다/적막의 병정들이/구름처럼 몸 부풀리면서 온다/아니다/고요함은 탁월한 능력/사람은 소란으로 가득 차 있어/어지럽다/사람은 어지럽다 맞다/사람에겐 은총이 있다/못다 부른 긴 악보의 찬미가가 있다/조물주와 피조물주 사이/전류가 흐른다 맞다//사람에겐 주야로 고여 오는 눈물이 있다/사람은 측은한 존재이다/측은하다 맞다/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일/한 번쯤은 나쁘지 않다/맞다 맞다’(사람 이야기) 그에게 ‘심각한 시’는 고통이나 소통 불가의 언어가 아니다. ‘밤과 새벽 사이의/어둠이자 빛이다/처음 듣는 신선한 독백이며/문 앞에 와 있는/영혼의 첫 손님이다’(심각한 시) 그래서 시인은 소망한다. “가능하다면 이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내고 싶다”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칙칙했던 왕십리 모텔촌, 쉬엄쉬엄 걷고픈 여행자거리로

    칙칙했던 왕십리 모텔촌, 쉬엄쉬엄 걷고픈 여행자거리로

    지난 22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여행자거리’ 내 도선동상점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대 식당·호프집 150여곳은 20대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장년층들로 가득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관광차 온 외국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서울의 번화가 1번지로 꼽히는 강남, 홍대 일대를 연상케 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온 이민지(23·강남구 일원동)씨는 “강남에서도 가깝고, 쇼핑센터·식당 등 즐길 거리·먹거리도 다양해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하러 온 박수연(34·중랑구 면목동)씨는 “모텔이 밀집해 있어 이미지가 좀 음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밝고 깨끗해서 놀랐고, 사람들이 많아 또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여자 친구와 함께 한국을 찾은 일본인 와타나베 호시이(23)는 “한국의 골목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곳을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생기가 넘쳐서 좋다”고 했다. 와타나베는 일본 내 여행사 사이트를 통해 여행자거리 내 숙박촌을 알게 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성동구의 여행자거리 내 숙박촌은 다른 곳보다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해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다”며 “낮에는 경복궁, 남산 등지를 둘러보고 밤에는 여행자거리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말했다. 고사 직전의 왕십리 도선동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있다. 여행자거리 조성으로 국내외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지역 경제가 활력을 찾고 있다. 도선동 골목상권은 왕십리역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초역세권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많은 유동인구와 지역민들로 시끌벅적한 왕십리역 일대 다른 곳과 달리 적막했다. 모텔촌이라는 ‘오명’ 탓이다. 상가가 모텔들과 인접해 있어 모텔촌이 풍기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람들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곳 모텔촌은 1970년대 형성됐다. 다른 지역보다 교통이 편리한 데다 숙박료도 저렴해 동대문을 찾은 상인들이 대거 몰리면서다. 모텔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거리는 생기를 잃고 칙칙해졌고, 모텔을 이용하는 차량들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어려웠다. 보다 못한 상인들이 뭉쳤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다. 이들은 2015년 서울시 ‘골목형 육성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이기백 도선동상점가번영회장은 “시에서 5억여원을 지원받아 상권을 살리는 사업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전통시장은 상가가 한곳에 모여 있어 집약적으로 투자할 수 있지만 이곳은 식당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예산도 부족해 상권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성동구에 도움을 청했다. 구에서 ‘여행자거리’ 조성 안을 꺼내 들었다. 도선동 일대 모텔촌의 숙박료가 싸고 교통이 편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점을 감안,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처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카오산 로드는 방콕 방람푸 시장 인근에 1970년대 숙박촌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여행자거리다. 400m 정도의 2차선 도로에 수많은 게스트하우스, 인터넷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로 통한다. 지금은 외국인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숙박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도선동 숙박촌도 카오산 로드와 조건이 비슷하다. 일대에는 호텔 4곳, 모텔 18곳을 비롯해 커피숍·음식점 150여곳이 성업하고 있다. 지하철 2·5호선, 분당선, 경의·중앙선 등이 통과하는 교통 요지인 데다 숙박료도 저렴하다. 호텔 4곳의 일일 평균 숙박료는 주중 7만원, 주말 9만원이다. 상인과 구가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예산 3억원을 투입,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환경부터 개선했다. 모텔촌 일대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싹 걷어내고 밝고 깨끗한 거리를 조성했다. 밤에도 화사한 빛을 발하는 아트월도 설치했다. 아트월은 나무 조형물에 ‘세계는 한 권의 책이며 여행자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어 만들었다. 도로포장도 다시 하고, 보행자 중심의 걷기 편한 거리로 만들었다. 거주자 우선 주차선을 없애 모텔 앞 도로에 진을 쳤던 차들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다국어 관광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고,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21개 음식점에는 다국어 식당 메뉴판을 제작, 배포했다. 숙박시설엔 서울숲, 성수동 수제화거리 등 지역 내 명소 소개 책자를 비치했다. 여행자거리 출발점인 왕십리문화공원엔 고산자 김정호 동상을 세웠다. 구청 앞 도로 이름이 고산자로인 데 착안,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떠돈 김정호를 여행자거리 상징으로 정했다. 여행자거리는 왕십리문화공원에서 시작해 할리스커피숍~호텔컬리넌과 힐모텔~리전트모텔, 두 개 구간(360m)으로 이뤄져 있다. 여행자거리 조성 사업이 시작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부터 급증했다. 호텔컬리넌·비전호텔의 2015년 중국·일본·동남아 등 외국인 투숙객은 5만 8510명이다. 이 두 호텔과 2015년 10월 신설된 아모렉스호텔을 합하면 지난해에 14만 6739명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호텔포레스트와 모텔 투숙 해외 젊은 배낭족까지 합하면 지난 한 해만 2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이곳을 찾았다. 이마트 왕십리점은 제주를 제외하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이기백 회장은 “불과 3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일 매출이 1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아내와 둘이서 겨우 운영했다. 여행자거리 조성 후 일평균 매출이 200만원으로 올랐고, 직원 6명을 두고 장사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일대 식당, 호프집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고깃집을 하는 한 업주는 “여행자거리 조성으로 어둡고 낡은 모텔촌 이미지가 확 바뀌면서 죽었던 골목상권이 정말 기적같이 살아났다”며 “중장년층들만 드문드문 오가던 거리와 상가에 젊은 사람들까지 찾아들고 있다”고 밝혔다. 한 호텔 관계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줄었지만 개별 관광객들이 늘고, 일본이나 동남아 관광객들도 많다”며 “사드 여파로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이곳 호텔들의 객실 가동률은 9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호텔 관계자는 “국내 여행사와 연계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모객하고 있다”며 “아직 여행자거리 조성 사업 초기라 카오산 로드와 비교할 순 없지만 사업이 진전되면 카오산 로드를 능가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동구는 2단계 여행자거리 조성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모텔촌으로 낙후되고 기피되던 동네가 여행자거리 조성으로 활력을 찾았다”며 “앞으로 게스트하우스 유치, 통역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게 하고, 내국인도 일부러 찾아오고 싶은 거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어서와 한국은’ 독일 3인방, 삼계탕 보더니 하는 말이..

    ‘어서와 한국은’ 독일 3인방, 삼계탕 보더니 하는 말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다니엘이 독일 친구들과 함께 한국 전통 보양식 삼계탕에 도전했다.오는 21일 방송 될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다니엘과 독일 친구들은 등산 후 한국 전통 보양식 집을 방문했다. 이 날 다니엘은 폭염 속 등산에 지친 독일 친구들을 위해 보양식인 삼계탕을 준비했다. 다니엘은 “여름에 원기회복하기 딱 좋은 음식이야” 라고 말하며 삼계탕에 대한 자신감을 표했다. 또한, 독일 친구들 중 친구 다니엘은 서툰 젓가락질로 인해 삼계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주변 친구들의 웃음을 샀다. 이어 친구들은 식사 도중 책에서만 본 한국적 관습을 직접 경험 해보려 한국의 식사 예절에 도전했다. 마리오는 어색한 분위기에 음식을 흘리기도 했고, 친구 다니엘은 적막감에 멋쩍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실천한 마리오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라 말하며 진땀을 빼 다니엘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후문. 독일 3인방의 한국 전통 보양식 첫 경험 스토리는 9월 21일(목) 저녁 8시 30분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공개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고진하의 시골살이] 청풍명월과 노니는 법

    [고진하의 시골살이] 청풍명월과 노니는 법

    저물녘 꽃봉오리를 여는 신비로운 꽃.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꽃. 캄캄한 밤중에도 노란 등(燈)을 주위에 밝히는 꽃. 7080세대가 기억하는 가수 이용복이 통기타를 치며 애잔한 목소리로 불렀던 달맞이꽃.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찬 새벽 올 때까지 홀로 피어/쓸쓸히 쓸쓸히 시들어 가는/그 이름 달맞이꽃.” 달빛 흐르는 마을 농로를 홀로 걸으며 길가에 핀 달맞이꽃 동무 삼아 밤길을 걸으며 그 이름 달맞이꽃 불러 본다. 누가 들었으면 웬 청승이냐 했을까나. 그러나 두메의 산촌 길엔 고요와 적막만 가득할 뿐. 길가에서 화답하듯 귀뚜르르 귀뚜르르…. 우짖는 풀벌레들의 나직한 메아리만 있을 뿐.그렇게 밤의 정취를 일깨우는 달맞이꽃을 보고 걷자니 친구 시인 송재학의 아름다운 시구도 떠오른다. “내가 짐작하는 달은 지상에만 제 짝이 있다 달빛이 쌓아 올린 저녁 너머 달의 일부였던 꽃이 있고, 달을 따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았던 꽃은 삭망(朔望)을 되새김질하는데, 그게 슬프지만 않다.”(‘달맞이꽃’ 부분) 지상에만 제 짝이 있는 시인의 달, 그 달빛이 쌓아 올린 저녁 너머 달의 일부였던 꽃이지만, 달을 따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은 달맞이꽃, 시인은 그 꽃이 슬프지만 않다고 노래한다. 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서재에 들어와 앉으니 온종일 뒤숭숭하던 마음이 한결 고즈넉해진다. 북핵, 미사일, 대북 제재, 선제공격 따위의 사뭇 거칠고 위협적인 말들이 난무하던 하루. 하지만 서재 창엔 교교하게 어린 달의 눈빛이 오련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오가리 든 인생들이 서로 다투고 찍어 누르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의 삶을 거부하지만, 오련한 달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주는 공존공생의 사랑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웅변하는 듯싶다. 얼마 전 중국 소동파의 ‘적벽부’를 읽었다. 소동파가 누구던가. 북송 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위대한 시인이자 서예가이자 창조적인 화가가 아닌가. 하지만 그는 자기 인생의 황금기를 유배 생활로 보냈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낯선 오지에서 유폐된 생활을 했다. 오늘 우리가 살던 시대와 견주어도 그는 그렇게 여유와 한가로움을 노래할 만큼 쉽고 편안한 생을 살지 않았다. 늘 벼랑을 마주한 것과 같은 삶을 살았으면서도 소동파는 가파른 벼랑 위에 뜬 달을 노래했다. “저 강상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이여./귀로 듣느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갖고자 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할 날이 없으니./이것은 조물(造物)의 무진장이로다.” 그렇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돈을 들여 사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누가 가져도 금할 이 없다. 왜? 무진장(無盡藏)이니까. 그러나 세상에 무진장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기려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 은퇴하면 산촌으로 솔가해 한가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많지만, 그렇게 은퇴한 사람들도 은퇴하지 않은 듯 분주함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더라. 여전히 티격태격 남들과 경쟁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더라. 그처럼 경쟁하는 습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어찌 청풍명월을 즐길 수 있겠는가. 요샌 어디 가서 놀아도 돈을 요구하는 세상이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청풍명월은 돈 없이 즐길 수 있지 않는가. 이처럼 값없는 청풍명월과 노니는 법을 모르고 어찌 이 거칠고 사나운 천민자본의 세상을 건널 수 있겠는가. 옛사람은 말했다. 하늘은 한가로움을 아껴 아무에게나 한가로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렇다. 한가로움은 돈으로나 정보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떠 있는 두메에 들었다고 한가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가 한가로울 때 비로소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법. 이유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때 남에게도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법.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그렇듯 한가로움은 무진장이다. 그러나 진동한동 매사에 분주한 사람은 무진장인 한가로움도 누릴 수 없다. 나는 이제 더이상 생의 큰 바람이 없다. 식구들 끼니를 굶기지 않고, 내 골방을 덥힐 땔나무가 있고, 창가에 어린 달빛 조명 아래 읽고 싶은 책 몇 페이지를 흔감하는 것.
  • 방송 파행 속출… MBC 구내식당도 사상 첫 파업 동참

    방송 파행 속출… MBC 구내식당도 사상 첫 파업 동참

    노동청 주말까지 영장 집행 안해… KBS ‘드라마 어워즈’ 차질 가능성 MBC 노조의 총파업을 하루 앞둔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1층 로비에는 경비·청소 직원 몇 명만 출근해 근무할 뿐 직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MBC 노조 조합원들은 지난달 초부터 차례로 제작 거부에 들어가 지난주부터는 주말 근무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이날 사옥에는 노조 관계자 몇 명만 출근해 4일 예정된 총파업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허유신 노조 홍보국장은 “4일 오전 10시에 MBC 사옥에서 서울 MBC 조합원 출정식을 열고 오후 2시에는 지역 MBC 조합원들이 모두 모여 총파업을 결의할 것”이라고 밝혔다.지난 1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장겸 MBC 사장은 이틀째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김 사장의 아파트 앞에는 취재기자와 시위대가 몰려들어 어수선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40여명의 시위 참가자는 김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규탄하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검찰에 김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요청했던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은 이번 주말까지는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MBC 기자이자 조합원인 남모(35)씨는 “자유한국당과 보수 세력이 김 사장의 체포영장 발부를 주요 이슈로 만들면서 조합원으로서 부담스럽다”면서도 “하지만 파업을 성공적으로 빨리 끝내려면 MBC 사태가 주요 이슈가 돼 국민적 관심을 받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BC 총파업에는 구내식당 주방장, 영양사, 조리원 등 직원 12명도 동참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구내식당 운영도 중단된다. 허 국장은 “과거 파업 때는 식당 조합원은 필수 인력이라고 인정돼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고, 구내식당은 파업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엄중한 만큼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파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MBC는 이미 지난주부터 라디오 PD의 제작 거부로 FM4U의 정규 프로그램이 대부분 결방했으며, 표준FM 역시 음악만 송출하는 등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 ‘라디오 스타’ 등 간판 예능 프로그램들도 4일 이후 녹화분 상황에 따라 1주일 정도의 시차를 두고 결방될 가능성이 크다. 4일 오후 3시 여의도 KBS 사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하는 KBS도 파업 이후 방송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KBS1TV의 경우 오전 ‘5시 뉴스’, ‘930 뉴스’가 결방하고, 오후 ‘뉴스12’, ‘뉴스5’, ‘뉴스라인’과 간판 뉴스인 ‘뉴스9’은 방송 시간이 준다. 2TV는 ‘비바 K리그’(4일), ‘스포츠 하이라이트’(5일), ‘추적 60분’(6일), ‘세상의 모든 다큐’(10일) 등의 결방이 예고됐다. 8일 오후 방송 예정인 ‘제12회 서울 드라마 어워즈’ 중계 역시 엔지니어 직종의 파업으로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가격 떨어져도 거래 실종… “시세조차 알 수 없어요”

    가격 떨어져도 거래 실종… “시세조차 알 수 없어요”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두 번째 주말을 맞은 서울 등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주택시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거래는 뚝 끊겼고, 재건축·분양권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실수요자들은 불만 속에 눈치만 보고 있으며, 재건축 단지는 거래 중단과 추진 속도를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다.13일 서울 서초구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단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잠잠했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큰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드리워진 채 적막감만 흘렀다. 매수 문의가 사라지고 거래가 중단되면서 부동산 중개 업소는 개점 휴업이다. 중개업자들은 시장 움직임을 묻는 취재진에 신경질적이고, 사진 촬영은 물론 사무실 이름이 언론에 나가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렸다. 아예 문을 잠근 업소도 눈에 띄었다. 팔아 달라는 매물은 늘고 있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시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84㎡ 기준으로 호가가 5000만원 정도 빠졌다고 한 중개업자는 전했다. 인근 재건축 아파트단지 상황은 더 심했다. 재건축 대상인 반포주공 1단지 72㎡짜리 아파트 값은 17억원, 140㎡짜리는 35억~37억원을 부른다. 대책이 발표되기 이전보다 호가는 2억원 정도 빠졌지만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대책 발표 이전에 계약을 맺고 1차 중도금을 치르기 위해 다시 만난 거래 당사자와 마주한 중개업자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한 매수자는 “아파트 값은 곤두박질하고, 조합원 지위나 분양권 거래가 중단되면 어떻게 되느냐”며 중개업자만 바라봤다. 강남구 개포동 저층 주공 1단지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개업소에는 다가구주택자가 급히 내놓은 매물 몇 개가 쌓였지만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거래는 중단됐다. 중개업자는 “호가가 3000만~5000만원 정도 빠졌다고 하지만 정확한 시세는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북 지역에서는 중개업자는 물론 실수요자들마저 불만이 많았다. 마포구 성산동에서 만난 김수영씨는 “여기가 강남도 아닌데 투기지구로 묶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직장인들의 내집 마련 기회는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직장인 최인철씨도 “15년 동안 소형 아파트에 살다가 겨우 84㎡짜리 아파트로 옮겨 갈 계획이었는데 은행 담보대출이 축소돼 그대로 눌러 앉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들도 “강북 집값은 아직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가격 오름세는 확실히 멈췄다”며 “거래 중단으로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수요자들의 눈치 보기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과 함께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과천시, 세종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과천은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거래도 활발했던 곳이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 시장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주택시장이 푹 가라앉았다. 3단지 ‘래미안 슈르’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재건축 아파트 거래가 끊기면서 일반 아파트 거래도 멈췄다”며 “재건축 아파트 거래 중단으로 과천은 당분간 주택시장이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진 세종도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이곳은 생활권 단위로 입주하는 데 한 번 입주 물량이 7000~8000가구에 이르기 때문에 입주할 때마다 매매·전셋값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기존 아파트값이 약보합세로 돌아선 것은 분명하다. 다만 투자 성격이 짙고 거래가 많았던 분양권 시장은 푹 가라앉았다. 더러 급히 처분하려고 내놓은 분양권이 나오면서 내년 3월 입주 예정인 2-1생활권 84㎡ 아파트 분양권 웃돈은 2억원에서 절반 정도 떨어졌다. 김관호 공인중개사협회 세종지부장은 “거래는 끊겼지만 기존 아파트 급매물이 쌓이는 수준은 아니고, 거품이 많이 끼었던 분양권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나오면서 프리미엄이 떨어지고 있다”며 “전망이 좋은 곳의 아파트는 여전히 인기를 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재건축 사업이다. 집주인들이 어리둥절하는 것은 물론 조합과 건설업체들도 사업 추진 속도 조절에 나서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과천 주공5단지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조합 승인 신청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조합 설립 인가가 나면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과천 주공 4단지와 10단지, 재건축 정비계획 수립 단계인 8·9단지 등도 일단은 정부 정책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이처럼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재건축 단지는 사업 추진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양천구 목동 재건축 단지가 해당된다. 일단 조합원 거래가 끊기는 급한 불은 끄고 난 뒤 초과이익환수제 실시, 분양가 상한제 도입 등에 따른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 보자는 것이다. 반면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는 곳도 있다. 반포 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은 대책 발표 이후 기존 계획대로 서초구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되지만 초과이익환수를 피해 조합원 부담을 줄여 보자는 계산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박상원, 방송 중 갑자기 눈물을? “갱년기 같다”

    박상원, 방송 중 갑자기 눈물을? “갱년기 같다”

    [서울신문en] 박상원이 눈물을 흘렸다. 5일 방송된 tvN 예능 ‘둥지탈출’에서는 박상원이 아이들의 대견한 모습에 눈물을 훔쳤다. 앞서 이날 방송에서 아이들을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이제 뭘 해야 할지 대책 회의를 들어갔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충돌을 피하려고 설 눈치만 보고 있지 않았나 조심스러웠다”고 어렵게 입을 열면서 “일을 함께 상의하고 해결하는데 있어서 진짜 마음은 숨긴 채 다른 사람만 배려하다보니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진짜 배려하는 길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남들을 배려하는 것이다”며 한명씩 속마음을 꺼내보기 시작한 것. 이를 본 박상원은 아이들을 보며 대견해했고,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박미선은 “남성 갱년기다”며 놀리자, 박상원은 “인정한다. 갱년기 같다”면서 “의젓하게 풀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울컥했다”며 마음을 전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상선의 함께하는 세상] 다문화가정에서 찾아보는 한국의 미래

    [김상선의 함께하는 세상] 다문화가정에서 찾아보는 한국의 미래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반갑다. 충북 보은의 시골 마을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일이다. 이 마을에만 이십여 가정이 넘는 베트남 다문화가정 덕분이란다. 적막감이 넘치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달리 여기저기 들려오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그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이 보이는 것 같아서 더욱 반갑다. 1.17명.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이다.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을 제외하면 세계 꼴찌 수준이다. 2001년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미만) 국가가 된 이래 지난 16년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2100년에는 3000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는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지구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곧 미래’라는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교역국이 되고, 지난 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될 때만 해도 황무지 상태였던 우리 과학기술이 세계 선두권으로 도약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우수한 인적자원 덕분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적 자원의 뒷받침 없는 우리의 미래 모습은 암울할 뿐이다. 그동안 이룩한 성과는 물론 세계에서 7번째로 20-50(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 가입한 후에 목전으로 다가온 30-50클럽 가입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떤 문제보다도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06년부터 3차에 걸쳐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추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담을 덜어 주어야 할 것이다. 대전에 있는 모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응모한 여성 과학자의 지원 동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어린이집을 보고 응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부모에게 그만큼 아이 양육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출산장려금, 자녀 수당, 돌봄 인프라, 육아휴직 확대, 의료서비스 등은 물론 아이들 교육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구조도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과 함께 잠시 다문화가정으로 눈을 돌려 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까지 다문화가정의 수가 100만을 넘어설 것이란다. 특히 농어촌에는 네 가정당 한 가정이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우리의 저출산 문제를 생각하면 하늘이 주신 축복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많은 다문화가정 중에는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집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집도 있다.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하고, 아빠는 일을 나가고, 아이들이 우리말을 잘 못하게 되고, 제대로 된 예절교육을 받지 못하기도 하고, 학교에 가서 따돌림을 당하고, 그러다 보면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단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반듯하게 잘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베트남에서 톱가수로 활동 중인 하리원처럼 베트남어와 한국어에 능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엄마 나라 말을 배우다 보면 선생님인 엄마와의 관계가 저절로 좋아지고 친구들 앞에서 더 당당해질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장차 한?베트남 간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과우봉사단에서 지난해에 이어 이번 여름방학에도 보은 지역의 베트남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국립과천과학관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해외 원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돼 2019년 완공 예정인 V-KIST(한국·베트남 과학기술연구소)와 한국을 오가면서 한?베트남 양국 간 협력 연구의 주역이 됐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 본다. 과천과학관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미래 과학자의 꿈을 마음껏 꾸어 볼 베트남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외로운 농촌에서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외로운 농촌에서

    며칠 전 전북 무주군 부남면의 한 마을을 다녀왔다. 내가 가르치는 건축학과 학생 스물여섯 명이 ‘농촌집 고쳐 주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낮에는 삽질도 하고 미장일도 거들다가 저녁 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30여 호의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은 농번기임에도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곳곳에서 마당의 무성한 잡초가 빈집임을 알렸고 콘크리트블록 담장이 여기저기 무너져 있었다. 뜬금없이 마을 길에 깔려 있는 아스팔트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더했다.지역별 빈집에 대한 통계청의 최근 통계는 2010년 것인데, 읍·면 지역에서 1년 이상 비어 있는 집은 15만 4103호로, 해당 지역 일반 단독주택 수(192만 4270호)의 8%나 된다. 행정자치부의 1996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농촌주택 284만 6000채 가운데 2%인 6만 2000여채가 1년 이상 비어 있었다. 20여년 만에 빈집의 비율이 네 배가 된 것이다. 빈집과 직접 관련되는 것이 인구 구조인데 근래 읍·면 인구는 동 지역과 달리 매년 줄어 2015년에는 전국 인구의 18%였다. 읍·면 인구의 21%, 면 지역 인구의 28%가 만 65세 이상 노인이니 농촌은 이미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다. 면 지역에서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3분의1이고 그 절반가량이 노인 1인 가구다. 그러니 앞으로 농촌 마을에서 빈집이 더 늘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 마을에서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이가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이다. 축구공을 담벼락에 차면서 늘 혼자 놀던 그에게 난생처음 여러 명의 언니가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후가 되니 학생 둘이 택시에서 내린다. 마을의 유일한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읍내의 학교를 택시로 통학한다. 그 마을에 학생은 이 세 명이 전부다. 그들은 도시 학생들이 모를 한 가지 고민에 시달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가 없는 외로움 말이다. 마을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들은 어떨까. 여러 노인이 같이 살고 있으니 행복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노인 심리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노인의 고독은 노인들 속에서 해소하기 힘들다. 노인이 고독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나는 그날 마을 입구의 정자에 앉아 계신 남녀 노인을 관찰해 보았는데 서너 시간 동안 “할아버지, 여기 좀 쓸게 비켜 보슈”라는 딱 한 문장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에 젊은이가 몇 안 되니 노인들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리라. 사람이 줄고 빈집이 늘어 가는 농촌 마을은 사라지거나 적어도 크게 축소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농촌 해체의 추세를 받아들이고 농촌 마을을 하나씩 포기해 나가야 할까? 식량 안보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농촌이 우리 문화의 원류라는 사실이다. 오늘날과 달리 전근대기에 우리 문화의 산실은 읍치, 곧 도시가 아니라 농촌이었다. 전통 사회에서 문화는 도시와 거리를 두고 있는 향촌에서 문중을 중심으로 형성됐으며, 주로 관속(官屬)들이 거주했던 읍치는 문화를 생산하고 주도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읍치에서 떨어진 지역에 마을을 이루고 거주하던 양반층이 지식을 독점하고 이른바 고급문화를 주도했던 것이다. 이는 지배 엘리트 계층이 다른 계층들과 같이 도시 안에 거주함으로써 중세기에 이미 도시가 고급문화의 주 생산지가 됐던 유럽의 상황과 대조된다. 그러니 오래된 마을 한 곳을 없애는 것은 우리 문화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 한 가닥을 잘라 버리는 것과 같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농촌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농촌 마을을 문화적 장소로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국가는 문화적 장소의 격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펼쳐야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래로 주택이나 마을공간 등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던 정책과 사업에서 벗어나 역사적으로 형성된 집과 마을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을길을 넓히고 직선으로 만들고 아스팔트로 포장하는 것처럼 국가 예산을 들여 오히려 마을 환경을 훼손하고 마을 사람들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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