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적국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기혼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83
  • 남북대화기피 교역엔 적극적/작년 대남수출량 2억3천만불로 급신장

    ◎교역품목 2백개로 급증… 북,아연괴 등 주종/의류외 가전품도 위탁가공… 경제실리 챙겨/계약불이행 방지책­직교역대비 법규제정 절실 전쟁중에도 적국과 장사는 계속된다.남한과 북한 사이에도 대화가 단절된 채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교역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경제난으로 북한의 전체 대외교역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특히 북한의 대남반출은 90년과 북핵문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9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지난해엔 남한이 일본에 이어 2위의 수출대상국으로 부상했다.우리와의 당국간 대화는 계속 거부하면서도 자원수출,임가공을 통한 경제적 실리는 최대한 챙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북한과의 교역을 내국간 거래로 간주하고 있다.분단국이라는 특수한 사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북쪽으로 나가는 것을 반출,북쪽에서 들여오는 것을 반입이라 부르는데 북한쪽에서 보면 대남반출은 수출,대남반입은 수입에 해당된다. 지난 88년 대통령 7·7특별성명 발표이후 시작된 남북간 교역은 처음엔 1백% 간접교역형태로 이뤄지다가 89년에 위탁가공용 원자재의 대북반출이 시작되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남북간 교역량은 거래가 시작된 89년에는 1백3만달러에 불과했으나 그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91년엔 1억달러를 돌파했고 92년에 2억달러,그리고 지난해엔 3억달러를 넘어서는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이 기간중 북한의 대외수출은 갈수록 크게 줄었다. 89년에 20억달러를 넘어선 것이 91년엔 절반으로 감소했고 94년에는 10억달러도 채 안되는 8억4천만달러로 줄었다.아직 95년 추정자료는 나오지 않았으나 북한의 대내외여건으로 보아 더 감소했을 것으로 북한경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이 북한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90년에는 0.13%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29%수준으로 높아졌다.이는 다시말해 북한의 대남 무역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북한의 지난해 주요수출국을 보면 일본이 2억8천만달러로 가장 많고 남한이 2억3천8백만달러로 2위,중국이 6천만달러로 3위다.94년엔 중국이 2위였으나 지난해는 우리한테 밀렸다.그러나 북한과의 전체교역면에서는 중국이 4억9천만달러로 1위,일본이 4억8천만달러로 2위,남한이 3억1천만달러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과의 교역에서 주목되는 것은 직거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홍콩등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이 대부분이었으나 94년부터 직거래가 늘기 시작,지난해에는 9%수준으로 높아졌다. 이처럼 직교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북측으로부터 간접교역을 통해 한약재와 농산물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북한산이 아닌 다른 나라 것이 위장반입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또 현격한 격차를 보이던 반입·반출비율이 좁혀지고 있다는 점도 향후 교역증대와 관련,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가 북한에서 들여오는 것과 북한에 들여보내는 비율을 보면 94년엔 무려 8대 1이었으나 지난해에 3.2대 1로 좁혀졌다.북측이 의류위탁가공을 위해 원부자재만 주로 들여가다가 지난해부터 메타놀등 화확제품,강관등 철강금속류,세탁기 및 밀가루등을 많이 가져간 것이다.북한이 반입을 늘리고 있는 것은 이들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남한에서 들여가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교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교역품목수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94년 1백42개이던 것이 지난해엔 2백개로 40%나 증가했다.우리가 북한에서 들여오는 것은 금·아연괴등 광산물과 농산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엔 솔잎기름·소나무꽃가루·고구마전분·은행잎에끼스·농업용엔진·생수등이 반입됐다.반면 북한이 가져간 것은 밀가루·과자류·쇠가죽·용접봉·전구·중고지프·냉동기·콩기름·여자구두·화장품등이다.우리의 대북교역업체수도 지난해말 현재 2백8개로 94년의 1백60개사에 비해 30%나 늘었다. 북한과의 교역에서는 물자의 반출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지만 북한으로부터의 위탁가공품 반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위탁가공이란 우리나라 기업체가 북한에 원자재와 제조설비등을 제공하고 기술지도를 하여 북한 근로자가 우리측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북측은 이를 통해 상당액의 가공임을 받기 때문에 외화획득은 물론 소득 및 고용증대효과를 거둘 수 있고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등 1거4득의 혜택을 보게 된다.위탁가공교역이 북핵 및 우성호사건등 남북관계의 잦은 경색에도 불구하고 타격을 받지 않고 큰 증가세를 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92년 코오롱상사가 학생용 및 등산용 가방을 만들어 들여오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위탁가공은 초기엔 의류와 신발제조가 주종을 이루었다.이른바 노동집약적 업종으로 분류되는 제품들이다.그러나 지난해부터는 기존의 의류 및 신발 외에 액세서리부품·헬멧내피등으로 확대된 데 이어 컬러TV·스피커등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으로 다양화하고 있는 것이다.LG전자는 올해부터 평양인근 공장에서 컬러TV를 본격적으로 위탁조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위탁가공품은 품질면에서 국내제품보다는 다소 처지고 수송과정에서의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지만 북한의 값싼 노동력에 힘입어 상당한 가격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품목별로는 섬유·신발등은 값싼 노동력에 힘입어 중국·동남아 제품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 남북한 경제교류에서 아직까지 합작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지난 92년부터 추진된 대우와의 합작이 성사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대우는 남포공단에 5백12만달러를 투자,북한 근로자 1천3백명과 대우측 29명등을 고용해 셔츠·블라우스·재킷·가방등을 만들 계획이다. 앞으로 위탁가공을 포함한 북한과의 교역은 갈수록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이와 관련해 계약불이행등에 따른 위험부담방지대책,직교역에 대비한 법규 제정,결제방식등 여러가지 보완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또 북측이 남북대화를 계속 기피한 채 우리 기술자의 방북을 막는 것도 쌍방교역확대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그런 만큼 북측은 호혜원칙을 존중,당국간 대화를 재개하고 이중플레이를 지양하는등 정치뿐 아니라 교역면에서도 신뢰를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 외교전문가 자곱 헤일브런·마이클 린든 공동칼럼

    ◎보스니아서 「세번째 제국」 노리는 미국/카리브해 연안국 종속시켜 첫 제국… 두번째는 서유럽·아주지역서 패권/중동지역의 서부전선 간주… 영향력 강화 시도/중·일 등과 긴장 불원… 아시아선 점차 발빼기로 보스니아는 미국의 영향력이 날로 증대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서부전선」이기 때문에 미국은 보스니아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하고 동아시아와의 유대를 줄이는 방향으로 일본 및 한국과 유연성 있는 새안보조약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의 외교전문가인 자곱 헤일브런과 마이클 린든이 최근 뉴욕 타임스에 공동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세번째 미국 제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요약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보스니아에의 2만명 파병결정을 미국과 유럽간 동맹의 자연적 부산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보스니아를 나토의 동부전선으로 보는 대신에 발칸반도가 중동지역에 있어서 급진적으로 팽창하는 미국 영향권의 서부전선이라고 보아야 한다.2차세계대전까지 발칸반도는 유럽의 일부가 아니라 「근동」의 일부로 간주돼 왔음을상기해야 한다.미국이 보스니아 회교국 창설에 대해 유럽동맹국들보다 더 열성적이라는 사실은 미국이 페르시아만부터 발칸반도까지의 회교국가들로 구성된 비공식모임의 지도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고 있음을 보여준다.한때 오스만 터키에 의해 지배된 이 지역은 이제 「세번째 미 제국」의 심장부가 되고 있다는 여러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이래 미국은 3개의 제국(전통적 식민지뿐아니라 자발적 종속국가의 그룹을 말한다)을 가졌다.첫번째 미 제국은 미국이 쿠바,푸에르토리코,필리핀 그리고 카리브해 국가의 상당수를 삼켜버린 1898년 미­스페인전쟁으로 생겨나 2차세계대전 말까지 지속됐다.1945년부터 1989년까지의 두번째 제국은 서유럽과 아시아에 집중됐다. 냉전이후 미국은 다시 옛날 적국의 제국위에 종주권을 행사하고 있다.소련의 붕괴는 미국이 (나토를 통해)동유럽과 유고슬라비아에 군사적 헤게모니행사 지역을 확대하는 것을 촉진시켰다.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종말이 미국으로 하여금 중동지역에의 개입을 심화시키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이다.대이라크전이 미국을 페르시아만의 지배국으로 만들기 전까지도 미국은 중동지역에서의 군사적 공약을 계속 강화함으로써 세번째 제국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미국이 베트남을 포기한 직후 카터 대통령은 이스라엘­이집트의 평화를 장려하고 시나이사막에 미군을 주둔하게 한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주도했다.이란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후인 80년 1월에는 페르시아만 지배에 대한 어떤 외부의 기도도 미국의 중요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여긴다는 카터 독트린이 나왔다.이는 신속배치군으로 뒷받침됐다.카터 대통령이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신속배치군을 강화,미국의 대중동지역 공약을 유럽 및 동아시아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놓게 했다. 걸프전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주변국에 항구적 군사주둔을 확대시켜 호전적인 회교국들의 분노를 샀다.페르시아만에 미 제5함대를 설치하기도 했다.미국이 이지역을 점점더 중요시함은 이스라엘과의 친밀관계를 전례없이 높이는 데서도 감지된다.중동은 미국이 군사배치를 강화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지역이다.세번째 제국의 중동 핵심부가 견고해지는 동안 두번째 제국의 주 요소였던 유럽과 동아시아의 종속국들은 약화되고 있다.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약은 급격히 쇠퇴했다.클린턴 대통령은 독일에 중부 유럽을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로부터 보호하는 짐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나토국가의 주임무는 가까운 장래동안 발칸반도,지중해와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의 전쟁을 위한 무대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세번째 미 제국내에서 아시아의 위상은 어떤 것일까.마땅한 위치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중국과의 동맹은 단호히 배제될 수 있다.남지나해에서의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최근 반체제인사 위경생의 투옥에서처럼 북경정부는 워싱턴정부를 무시하거나 자극시키고 있다.중국을 압박하는 것 역시 현실적 대안이 못된다.중국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면 분명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그럴 경우 중국은 이란같은 반미정권들을 강력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따로 움직이게 하는 긴장관계는 오해나 선동의 결과가 아니라 곧바로 이해관계 충돌의 결과이다.비록 일본이 장사꾼적인 무역,투자정책을 수정할지라도 이나라의 독특하고도 성공적인 정경카르텔은 계속해 자신의 무역 상대국과 긴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미국 역시 영원히 일본의 파수꾼 역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중국과 일본과의 지역적 무기경쟁이 전개되더라도 미국은 외부 중재자라는 아쉬울 게 없는 입장에 있을 것이다.한반도 평화통일 뒤 미국과 한국과의 동맹관계는 계속될수 없다.왜냐하면 중국은 한반도 통일에 동의하는 대가로 통일한국의 중립성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유대를 줄이고 일본 및 한국과 유연성있는 새 안보조약 체결을 협의해야 할 때가 왔다.기존의 안보조약은 모든 지역이해가 동등하다는 허구에 기초한 것이다.아시아에서의 미군감축은 중동과 발칸반도에서의 새 공약을 떠받치는 필요자원이 될 것이다.이 새 공약은 최소한 한세대는 지속될 공약이다. 처음 두번의 미 제국들과는 달리 세번째 제국은 민주주의와 자결권을 확대시키는 도구로 정당화될 수 없다.미국의 지도자들은 쿠웨이트를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때처럼 말로는 항상 이같은 가치들을 들먹일 것이다.그러나 중동의 미국 종속국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거나 민주국가라해도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좀처럼 인정치 않는 국가들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아시아로부터 빠지고 중동으로 향하는 변화는 19세기의 역사학자 J R 시일리의 영국제국이 「정신없이」 창조된 것이라는 유명한 표현과 흡사했다.클린턴 대통령의 발칸반도에서의 도박은 미국은 더이상 「팩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밖에는 주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아시아로부터의 철수와 동시에 유럽­중동 영향권의 구축에 대한 도전은 미국이 1990년이후 모은 다양한 종속국들을 다룰 새로운 나토유형의 기구나 동맹관계 발전을 필요로 한다.궁극적 윤곽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세번째 제국은 적당한 힘으로 지원돼야만 한다.보스니아에서의 실패는 세번째 제국이 설립되기도 전에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 있다.
  • 일 새해 예산 75조1천억엔 확정

    ◎5년만에 최고 팽창… 적자 28% 국채 충당/과기진흥비 10.9%­방위비 2.5% 증액 일본 정부는 25일 국채 의존비율이 28%에 달하는 96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일반회계 예산규모는 75조1천49억엔(한화 5백63조2천8백억원 상당)으로 지난해 보다 5.8%나 늘어난 규모.지난 5년동안 가장 팽창률이 높다.반면 세입은 세수입이 51조3천4백50억엔 규모로 지난해 보다 2조엔이 줄었다.세외수입 2조5천5백94억엔등을 뺀 나머지 21조2백90억엔을 국채발행으로 메웠다.국채 가운데 건설국채를 제외한 순수 적자국채는 11조9천9백80억엔,즉 12조엔 규모이다.일본의 누적국채 규모는 2백41조엔으로 늘어나게 된다.일본 정부가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한 것은 7년여만이다.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세입이 줄어들고 있고 지금까지는 정부보유주식의 매각 등으로 버텼지만 더 이상 「숨겨진 적자」를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재정규모를 줄이기는 어려운 형편이다.경기대책을 위한 재정지출이 필요하고 각 부처는 밥그릇을 쉽게 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올해 한신대지진을 겪었고 옴진리교 사건등으로 치안수요가 늘어났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예산의 삭감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도 피할 수 없다.노령화로 복지분야 지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주택금융전문기관(주전)의 정리과정에서 농업관련 금융기관에 특혜를 준데 이어 또다시 우루과이 라운드대책등을 내세워 국제가격에 비해 월등히 높은 쌀값을 유지하도록 한 이번 예산에 대해서는 「절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이번 예산에서 눈에 띠는 대목은 두가지.어려운 가운데서도 일본 정부는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진흥비는 10.9%나 늘렸고 방위비도 2.5%로 일반세출 신장률을 5년만에 앞질렀다. 여하튼 96년도의 대규모 국채발행과 관련,파탄직전의 재정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앞으로 거품경제 같은 경기가 오기 어렵고 국철청산사업등 재정부담이 남아있다.
  • 유엔 「적국조항」 일본에만 적용 주장(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유엔의 「적국조항」삭제문제와 관련,일본이 과거죄행을 성실히 청산할 때까지 적국조항이 임시로 일본에만 적용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헌장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최근 유엔사무국에 제출한 성명에서 북한은 「적국조항」삭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과거를 비교적 성근하게 반성한 독일과 같은 나라들과 일본을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데는 반대한다』면서 그같이 주장했다고 평양방송이 20일 보도했다. 이 성명은 현단계에서 유엔 적국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일본의 죄를 벗겨주는 것으로서 『그것은 침략과 대죄를 미화분식하는 일본의 주장을 정당화해 주고 일본의 재침야망을 부추기는 것으로 될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작지 확충위해 간석지 개간 박차 【내외】 식량증산을 위한 경작지 확충의 일환으로 간석지 개간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은 최근 간석지건설총국 간부들을 현장에 파견,개간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를 통해 간석지건설총국 간부들에 대해 『내 조국을 부강하게하는데서 간석지 건설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토록 해야 한다』면서 산하 기업소로 직접 내려가 근로자들의 노력 배가에 주력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조선에 따르면 황해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에서는 총국 간부들의 지도아래 간석지 개간설비의 보수·정비를 비롯해 기계설비의 마련에 주력하고 있으며 평북도 선천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에서도 트랙터 해상굴착기 등 간척설비의 적기 생산·공급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전30권 「조선대백과사전」 편찬키로 【내외】 북한은 전30권으로 된 「조선대백과사전」을 편찬키로 하고 최근 제1권을 발행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은 북한의 첫 대백과사전인 「백과사전」(전30권)이 출판된지 20년만에 새로 편찬된 것으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동지의 혁명역사와 혁명업적들이 전면적으로 수록되어 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조선대백과사전」에는 또 북한의 정치 경제 과학 문화를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달성한 성과들이 종합되어 있으며 북한과 세계각국의 역사와 문화 자연 지리 풍속 전설 인물들과 최신 과학기술자료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고 중앙통신은 덧붙였다.
  • 유엔,적국조항 삭제/독·일 등 7개국 대상

    【유엔본부 UPI 연합】 유엔법률위원회는 일본과 독일 등을 「적국」으로 규정한 조항을 유엔헌장에서 삭제하는 절차에 들어가기로 29일 결정했다. 유엔헌장에는 일본과 독일을 포함해 제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루마니아,이탈리아,헝가리 및 불가리아 등 7개국이 적국으로 규정되어 있다. 적국 조항은 일본과 독일의 삭제 요구에도 불구,지난 50년간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일본이 내년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개편으로 상임이사국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적국 조항의 개정 필요성도 높아졌다. 유엔의 헌장 개정은 내년 봄쯤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나라 걱정(일언내언)

    한 밤중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높게 지은 수루에 홀로 앉아 지은 이순신장군의 옛시조는 누구에게나 장군의 절절한 우국의 참 마음을 가슴뭉클하게 느끼게끔 해준다.개성의 선죽교를 피로 물들게 한 정몽주의 단심가 『이몸이 죽고 죽어…』에서도 나라와 나랏님에 대한 충정을 잘 읽을 수 있다.서릿발 같은 대한남아의 기개를 온 세상에 알리고 이국땅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몸가짐과 말한마디는 적국인 일본사람들까지 크게 감동시켜 존경심이 우러나게 한,애국혼이 가득 담긴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때를 만난듯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의 「나라걱정」 말들은 고소를 금할 수 없게한다.특히 오랫동안 지도자계층의 지위를 누려왔던 정·재계인사들의 나라걱정은 유별난 데가 있다. 노전대통령이 구속직전에 『여론따라 수사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고 한데 대해 국민들은 『그러면 여론과 반대로 하면 나라가 행복해진다는 것인가』하고 자칫 혼돈속에 빠져들수도 있다.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를 김구 선생에비유,20억원받은 것이 마치 구국의 큰뜻에 따른 것으로 미화시킨 아전인수와 견강부회의 엉뚱한 나라걱정도 있었다. 재벌총수들은 툭하면 『나라경제가 위험하다』며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국민경제를 볼모로 은연중에 압력을 가해 사법처리등의 불똥이 튀어오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인지 저의가 불분명한 반응을 보여줬다. 이러한 지도자급인사들의 나라걱정 발언은 본말이 뒤집힌 것으로 받아들이는게 요즘 국민정서임은 부인하기 힘들다.『나라걱정하기 전에 자신부터 바로잡는 일을 걱정해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에게 엄청난 나라걱정의 과제를 안겨준 그들에게 과연 걱정의 자격이 있는가 반문한다.이제부터라도 부끄러움을 알아서 「나라걱정」을 남발하지 말 것이다.
  • 중국을 생각한다(박화진 칼럼)

    인구는 우리보다 30배나 많은 12억명에 영토는 96배나 되는 9백60㎦의 개발도상 사회주의 대국이다.동서의 자연적 시차는 5시간이나 국가적 통합상 같은 시간대를 쓰며 기후는 아한대에서 아열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에서 돼지를 가장 많이 기르는 나라로 유명하며 주산업은 아직도 농축산이지만 지하자원은 종류와 규모 공히 풍부하다.철광석 추정매장량 1천억t으로 세계3위에 석탄은 1조5천억t으로 2위이며 석유도 많아 매장량이 50억∼70억t 심지어는 3백억t이나 된다는 설도 있다.그리고 개방과 개혁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연 두자리수의 급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가주석겸 공산당총서기의 역사적인 방한이 13일 마침내 이루어지는 우리이웃 중국의 간략한 초상화다.그 중국은 또 조선족이라는 이름의 한인동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나라이기도 하다.흑룡강·요령·길림등 동북 3성에만 2백만이다.우리가 북간도로 알고있는 한만접경의 연변은 전체인구 2백만의 40%가 넘는 80만이 한인이며 한국말과 중국말그리고 한자와 한글이 공용어요 문자인 해외유일의 한인자치주다.한국돈이 중국화폐와 함께 사실상 그대로 통용되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면 중국의 수도 북경은 1시간50분 거리로 중국과의 수교전 가장 가까운 외국수도였던 2시간10분대의 일본 동경보다 20분이나 가깝다.북경외에 우리여객기의 직항로가 열려있는 상해·청도·청진·대련·심양등도 모두 1시간50분 안팎의 가까운 거리다.시간적으로 중국은 우리의 서울에서 대전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92년8월24일 수교후 한국인들의 중국 내왕은 문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수교해인 92년 8만8천명이던 것이 작년엔 30만명 그리고 금년엔 7월까지 25만5천명에 연말까진 60만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내년엔 1백만을 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교역규모도 수교 3년째인 금년들어 지난 9월말 현재 1백13억달러를 돌파,연말까진 1백60억달러를 기록함으로써 미·일 다음가는 우리의 3번째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한다.투자규모도 7월말 현재허가기준 24억9천만달러로 중국은 우리가 해외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있는 외국이기도 하다. 92년초 우리의 조기수교 요구에 대해 중국의 이붕총리는 「수도거성」이란 말로 답변을 대신했었다.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긴다는 뜻이다.인적 물적 교류를 계속해나가면 수교는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란 암시였다.그 수교는 암시대로 그해에 이루어졌고 그로인해 교류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으며 마침내 13일 서울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중국국가주석겸 공산당서기장의 방한도 결국은 그러한 교류의 폭발적 증대가 낳은 빛나는 성과요 결과라 할수 있다.교류의 확대에 따른 양국관계의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발전인 것이다.중국국가원수의 이번 방한은 앞으로의 양국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될것이 틀림없다.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발전과 성과를 가져오게 될지 궁금해진다. 동시에 강택민 중국국가원수의 방한은 또 우리에게 있어 중국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도 생각해 보게한다.21세기는 지리적국경이 무의미한 보더레스(Borderless)의 경향이 확산되는 시대가 될것이다.그리고 그때의 우리는 통일한국이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국경을 접한 중국은 지정·경학및 역사·문화·전통적으로 우리와 동일한 생활권이다.하기에 따라서는 중국은 우리의 북방진출 및 활동과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동시에 잉태한 광활한 무대요 바탕이 될수있는 나라요 대륙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 명성황후 1백주기… 재조명 활발

    ◎추모식·숭모제·뮤지컬·TV 다큐 등 기념행사 다양 오는 8일은 조선조 말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명성황후의 1백주기가 되는 날.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 넋을 기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리는 한편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돼 온 그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명성황후 현창회(회장 민영복)가 5일 추모식을 가진데 이어 한국여성예림회(회장 이온순)는 8일 비극의 현장 경복궁 녹원에서 숭모제를 열고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을 바탕으로 황후복을 입은 초상화 영정(그림 권오창)을 제작,발표한다.KBS­1TV는 7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이라는 특집방송을 하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11월 공연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의 기고문과 뮤지컬·특집방송의 내용을 소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일제에 맞서다 참변 당한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민비)시해 1백주기를 맞아 「국모로서의 민비」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한편이 선보인다.소설가 이문열씨의 첫 창작희곡「여우사냥」을 노래위주의 뮤지컬로 꾸민 「명성황후」(11월17∼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 「사람의 아들」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은 있지만 이씨가 본격적으로 쓴 창작희곡이 무대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씨는 4년전부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대표 윤호진)과 함께 올해로 1백주년이 되는 민비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왔다. 희곡「여우사냥」은 이씨가 지난 94년 문학전문지「세계의 문학」봄호에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 교수가 새롭게 각색했다.고종황제의 드센 아내,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 맞서는 며느리로서의 민비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하고 민비를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국모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작가 이씨는 작중인물인 다이장군의 입을 빌려 『온몸으로 껴안으려 한 조국으로부터/오히려 버림받고/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불꽃속에 사라져 간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명성황후를 칭송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교수(단국대 연극영화과)는 『이씨의 창작희곡에서 대사부분을 모두 없애고 이를 노래로 처리해 마치 한편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외국의 뮤지컬도 음악과 노래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리 뮤지컬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런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씨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영화 「전태일」을 촬영중인 젊은 연기자 홍경인,뮤지컬 전문배우 김민수,성악가 윤치호씨 등이 출연한다.평일 하오4시·7시30분,토·일 하오3시·6시 공연.3452­9055 ◎K­1TV 다큐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사건당시 현장도·증언 통해 진실 추적 1895년 10월 8일 새벽.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던 조선 왕조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다. 1백년을 맞는 이날을 기해 KBS­1TV「역사추리」팀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그날의 현장을 재연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한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편으로 방송시간은 7일 하오 8시.제작진은 일본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시해사건의 진실을 당시 영국 공사 실리어가 확보하고 있던 「사건현장도」「경복궁 습격도」,시해당시 「일본군위치도」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화면으로 생생히 되살린다.이를 통해 여전히 시해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한다는 의도다. 특히 제작팀은 이노우에와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등 당시 일본 천황의 직권을 대행하고 있던 수뇌들이 미우라를 조선에 부임시키고 이어 시해전후 활발한 접촉을 벌인 사실을 증언과 자료집을 통해 제시,일본정치권의 치밀하게 의도된 범행임을 제시한다. 또 당시 미국 다이 장군의 자문으로 활약한 러시아의 건축가 사비틴의 시해당일 상황 증언 테이프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장해랑 PD는 『사비틴 증언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그동안 일본역사관에 의한 왜곡된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사진들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관련,1895년 명성황후 시해전 일본신문에 게재된 삽화 몇점도 소개된다.일종의 「풍속화」로 고종과 함께 외국공사를 알현하는 명성황후를 여우의 얼굴을 한 꼭두각시로 폄하하거나 아예 기모노차림을 한 일본여자로 묘사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화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김자영 아나운서가 명성황후 연극현장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명성황후가 누워 있는 「홍릉」을 찾아 리포트한다. ◎명성황후 1백주기를 맞아/“드센 여자·족벌정치가” 일서 왜곡/한국침략에 방해… 장애물 없애려 살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 「중전이 밤중에 적도의 독검에 맞아 시해되었다.세상 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저상일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5년 10월8일 밤 경복궁 구중궁궐 안에서 국모가 일본군에 살해당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변란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1895년은 동학란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일어난 이듬해로서 지방에는 민란과 콜레라의 병란이 일어나고 중앙에는 일본군이 가득차 마침내 경복궁을 습격하는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변이 일어난지 1세기가 지난 오늘 살인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백일하에 들어났다.다름 아닌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 공사관의 주인공들이 범인이었다.일본 공사 미우라(삼포오루)란 자는 살인 전문가였고 하수인인 구마모토파 깡패는 일본 제일의 야쿠자였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처참하게 살해당한 민비(명성황후로 추존)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평가이다.오랫동안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과 싸워서 정권을 잡은 비정의 며느리요 민씨 일족을 권좌에 앉혀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하게 만든 족벌정치가로서 비난받아 왔다.심지어는 그녀를 청국말년의 여걸 서태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 뒤에는 일제 침략자와 이에 뇌동한 친일파들의 모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민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호칭부터 명성황후로 고치고 경복궁 안 침소 옥호루(현재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옆)자리에 조난비를 세워 그날의 참사를 잊지 않게 하고 일제 침략의 희생자로서의 민비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금년은 광복 50주년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른 누구보다 바로 잡아야 하게 되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일제가 왜 민비를 죽이려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동학란을 구실로 한국에 파견한 일제는 처음부터 한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즉 청일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각의에서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로 결의했다.그러나 전쟁에는 이겼으나 열강의 강한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비를 죽여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세력을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민비가 침략에 장애물이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당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결심했던 인물이고 일본에 대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그러나 1894년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한 민비는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일제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청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민비의 이러한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수구파라 하고 친일세력을 개화파 또는 독립당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흔히 구한말 국제정세를 요즘의 국제환경에다 비겨 4강+2약 운운하나 당시의 침략세력은 유일하게 일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친일 개화파는 누가 진정한 적국인가를 알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어 나라안의 정치싸움을 격화시켰고 외적에게 침략의 틈을 보이고 말았다. 민비가 참살당한 뒤 친일 개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단발령을 선포하게 되니 나라안은 뜨거운 솥끓듯 달아 올랐다.그러지 않아도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필요없는 개혁을 시도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이 나라의 망국이 시작되었다고 모두가 개탄하였다.그래서 전국의 선비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났으니 을미의병이었다.을미의병은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일 민비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나서 최근에 나온 「여우사냥」등 소설을 읽어보아야할 것이다.
  • 유엔 현장에서 적국 표현 삭제

    【유엔본부 교도 AFP 연합】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25일 유엔헌장의 소위 「적국조항」이 삭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갈리 사무총장은 유엔 본부에서 가진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일본 외상과의 회담에서 이같은 의지를 표시했다고 일본 관리들은 전했다.
  • 「신코콤」 체제 출범 합의/미 등 28국

    ◎리비아·북·시리아 무기수출 통제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을 비롯한 28개 선진국들은 북한 등 잠재적 적국들을 겨냥한 무기및 첨단무기기술 수출 통제를 위한 새로운 체제에 합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0일 보도했다. 미고위관리들은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이 새로운 무기통제 체제는 냉전시대의 무기통제체제인 코콤(대공산권무기통제위원회)의 후속 체제로 고안된 것이지만 과거와 달리 무기수출 결정을 개별 국가에 맡기는 등 통제가 더욱 완화됐다고 전했다. 이 관리들은 코콤이 바르샤바조약 동맹국들을 겨냥한 것인 반면 새 무기통제체제는 북한·이란·리비아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린 데이비스 미국무부차관은 미국이 테러지원국가로 공식지명한 수단·쿠바·시리아 등에 대한 무기수출을 「추정에 의해 거부」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들은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무기 구입권을 갖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새로운 체제는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8개 선진국 회의에서 합의됐다고 말하고 세계 7대 무기공급국가중 이번 회의에 초대되지 않은 중국을 제외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러시아·미국 등 6개국이 이 체제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 한국전쟁 전야(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1)

    ◎비전투요원 472명 남고 미군 전원철수/6월17일 내한 덜레스 국무 “38선 이상무” 우리 민족이 가장 불행하게 맞은 20세기가 꼭 절반이 저문 19 50년 1월12일 워싱턴으로부터 달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한국은 미태평양방위선밖에 있다는 애치슨의 발언이었다.그토록 머물러 주길 희망했던 미군마저 철수한 위기상황 속에 날아든 애치슨의 발언은 한국민들에게 불길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한국은 미 방위선 바깥” 한국에 남아있던 당시 미군의 병력은 4백72명에 지나지 않았다.전투병력이 아닌 미군사고문단(KMAG)자격의 비전투 요원들이었다.미군은 성급하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20일뒤인 19 48년 9월15일부터 한국을 빠져나갔다.미안전보장회의가 대통령 H S 트루먼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부터 미군들이 극비에 철수하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그리고 48년 12월말까지 완전 철수할 계획이었으나,중대한 모험이라는 여론에 따라 몇개월 연장되었다.미군은 결국 1949년 6월29일 군사고문단만을 남기고 철수를 끝냈던 것이다. 미국은처음부터 남한에 병력과 기지를 유지하는데 전략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이는 미 합동참모본부의 판단이었는데,극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 주둔 미군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것이었다.미국의 입장에서는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지상작전보다 쉽고 돈이 덜드는 미 공군의 활동에 더 기대를 걸었다.또 심각한 병력 부족현상을 겪고있던 미국은 남한에 유지하고 있는 병력 2개사단 약 4만5천명의 병력을 다른 지역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49년 3월2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는 그 전해에 만든 「한반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재검토하고 철군 건의안을 대통령 트루먼에게 제출했다.미군의 철수에 뒤따를지도 모를 공산주의 지배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한국정부를 실행 가능한 한도에서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였다.이는 한국에서 미국이 병력과 비용부담 의무를 줄일 수 있다는 국익과 맞물려 트루먼의 승인이 곧바로 떨어졌다. 어떻든 트루먼의 미 행정부는 철군 보상으로 한국에 미군 장비와 6개월분의 비축물자를 이양키로 했다.이와 더불어 미국 경제협조처(ECA)로 하여금 19 50년 회계연도에 1억9천2백만달러의 경제원조를 주는 방안이 고려되었다.그러나 중국 국민당 정부에 더 많은 원조를 주려는 하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결국 한국정부는 50년 2월15일 이전에 사용할 수 있는 6천만달러의 원조금을 겨우 받아냈다. 한국군의 군비는 실로 말이 아니었다.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미국인 친지 R T 올리버(당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한국 육군의 탄약 비축량은 5일분에 불과했다.북한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으면 5개월을 버틸 수 있다는 분량이라고 예측한 미국의 여론에 대해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불만을 품었다. 1949년 9월 한달 동안에 북한의 공격이 1천1백84회나 되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육지와 연결된 통로가 없는 옹진반도에서는 한국군이 매일 공격을 받은만큼 사실상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미군사고문단은 명목상 한국군을 위한 것일 뿐 실제 임무는 한국군을 통제하는 일이었다.항공기는 대공포화가 없는 지역에서 사용할 수있는 6대 이외는 허용하지 않았다.탱크나 장갑차 보유는 엄두도 못냈다.포병은 탱크를 격파하기에는 너무도 가벼운 바주카포와 화포에 국한시켰다. 그렇다고 영토보전을 위한 어떤 보장도,외부공격에 대한 지원약속도 없는 상태였다. ○탄약 비축량 5일분 불과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 1월 한국이 미태평양방위선 밖으로 밀렸다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발언이 전파를 탔던 것이다.정부수립 만 3년이 안되는 신생 대한민국으로서는 큰 놀라움이었다.한국은 참으로 고독했다.이승만 대통령이 19 49년부터 힘을 기울인 태평양 반공방위조약이 실현되었더라면 한국은 덜 외로웠을 것이다.자유중국·필리핀·인도·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이 참가하는 방향으로 구상한 이 조약은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도 매듭을 짓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 정권의 1950년은 의기양양했다.김일성은 1월1일 신년사에서 강력한 민주기지의 축성과 신속한 국토완정을 외쳤다.여기 나오는 국토완정은 얼핏 애매모호한 용어로 들리지만,실로 가공스러운 의미를 함축했다.국토의완전한 정리,다시 말하면 무력통일을 선언했던 것이다.그러면서 인민군대·경비대·보안대는 능숙한 전투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남한의 유격투쟁을 부추기는 내용의 발언을 덧붙인 김일성은 1949년에 이어 그해 3월에도 훈련된 빨치산 요원 1천50명을 남으로 보냈다. 김일성은 특히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발언에 고무되었다.북한은 한국과 대만을 미태평양방위선 밖에 둘 것이라는 애치슨의 내셔널 프레스클럽의 연설이 있기 그 이전에 이미 병력과 장비를 증강해놓은 상태였다.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만큼 전력을 증강한 것은 1949년 여름 이후였다.먼저 5만명에 이르는 중공군 출신 한인의용군을 중국으로부터 불러들였다.이로써 북한 정규군의 약 3분의 1이 실전경험을 갖추게 되었다.그리고 나서 1950년 봄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소련제 중화기와 T34형 탱크가 청진항으로 속속 입항했다. 미군의 철수와 소련에 의한 북한의 군사력 강화는 한반도에 대한 미·소의 정책차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는 북한군 능력의과소평가와 동아시아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의 활동반경은 한반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미국의 판단은 한국군 무장의 불필요성과 한국포기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었다.이 시기에 미국은 직전의 적국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일본의 제한적 재무장을 심도있게 들고나왔다.국제정치는 그토록 냉혹한 것이었다. ○“5년 이내에 전쟁 없다” 한국의 위치는 계속 흔들렸다.1950년 5월5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T 코널리는 미국의 전략에서 볼때 한국은 그다지 중요한 지역이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그의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지만,국내에서는 제2대국회를 뽑는 5·30선거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코널리 발언에 앞서 5월4일 미 대통령 트루먼은 전쟁이 일어날 위험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그러나 한국의 판단은 사뭇 달라 5월12일 신성모 국방장관이 북한군이 38선에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리고 6월이 다가왔다.그 6월의 첫날 트루먼은 또 『5년 이내에 전쟁이 없다』는 말로 5월4일의 발언을 더 구체적으로 확신했다.이어 6월17일에는 신임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 서울로 날아들었다.38선을 시찰한 덜레스는 국회연설에서 한국을 물심 양면으로 돕겠다는 말을 남기고 19일 서울을 떠났다. 세계전사를 통해 가장 지루하고 긴 대규모의 국지전으로 치러야 했던 며칠후의 한국전쟁을 예측하지 못한채 극동의 화약고를 멀리했던 것이다 ◎미 CIA 정보평가 보고서/미 “북한은 전면전 펼 능력 없다”/“중·소의 적극지원 전제돼야 가능/대남투쟁 선동·유격전에 그칠것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19 50년 북한이 전쟁 수행능력 어느 정도 지녔던 것으로 평가했다.그러나 전면 남침이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발굴한 미 CIA 정보평가보고서(NIE)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입증하는 문서는 CIA가 1950년 6월19일에 작성한 「NIE리포트­3」등으로 되어있다.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탱크와 야포 등의 장비를 갖추었기 때문에 제한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있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했다.그 능력이란 단시일 내에 서울을 손아귀에 넣은뒤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북한의 군사적 우위성에 근거하여 이같이 판단한 NIE문서는 소련과 중공이 적극 지원하면 한국에서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원조가 대폭 삭감되거나 낭비되지 않는다면 남한 전체의 공산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다만 이 문서의 한계성이 있다면 미구에 닥칠 전면전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그래서 북한정권이 남한을 겨냥한 목표를 단순한 선동선전및 침투·사보타지·파괴공작·유격투쟁 등으로 예견했다.또 북한은 전적으로 소련에 의지하여 정권을 지탱하고 있으나 정권을 위태롭게 할 내부의 위협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이밖에 1950년 북한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북조선노동당 문서도 NARA에서 입수했다.6·25가 일어난 19 50년 5∼6월까지의 사업계획을 명시한 이 문서는 군사적 측면을 가장 밀도있게 강조했다.10부만을 등사물로 간행,극비문서로 분류한 조선노동당 문건은 미군이 평양에서 가져온 노획문서.이 문서 역시 서울신문이 국내에 처음 공개한 것이다.
  • 과거 청산(21세기 한­일 새 지평:1)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 광복 50년은 한국과 일본간에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매듭짓고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것이다.과거청산,외교·안보,경제협력,문화교류등 주요 분야별로 두나라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연재로 들어본다. ◎“일은 수억 아시아인 고통 외면 말아야”/일의 과거사 인식 자세의 문제점/아직도 침략전쟁 책임 회피 급급/굴절된 역사 직시… 참된 자성 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85년5월 당시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게 된다.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나치즘과 제2차대전의 교훈을 상기시켰다.같은해 8월 일본의 당시 나카소네총리는 A급 전범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정국신사에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배를 감행하였다. ○독일과 인식 큰 차 일본 각료들의 참배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금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제2차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죽은 일본군의 넋을 추모하는 결의가 무성하였다.과연 오늘의 독일에서 현직 각료가 나치 수뇌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제2차대전의 추축국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이같은 차이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대한 책임추궁제도로는 인적책임에 대한 전범재판과 물적책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제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제의 과거사에 관하여는 인적 책임과 물적 책임 그 어느편도 철저히 규명되거나 추궁되지 못하였다.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 미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단죄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대공방벽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였다.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보다도 일본의 경제부흥과 재군비를 더욱 강조하였다.그 결과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전후의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였으며 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전후처리가 맡겨졌다. ○가해자 인식 부재 이러한과정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전후처리 태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부각되었다.첫째,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이다.수억의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하여 장기간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되었고,오히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이 강조되었다.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가해자 의식의 부재는 전쟁책임의식의 부재로 연결되었다.일본인 스스로가 피해자의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을 외면하였고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하였다.패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죄결의가 속빈 강정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상의무도 회피 셋째,전쟁책임의식의 부재는 자연히 대외적 배상의무 회피를 조장하였다.전후 일본이 구군인 등 자국민 피해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의 누적합계가 근 40조엔에 육박하고 현재도 연간 2조엔에 상당하는 지불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 25개국과 체결한 29개 전후처리조약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지불한 금액의 합계는 1조엔을 약간 넘을 뿐이다.제2차대전의 희생자란 그릇된 나치즘의 피해자라는 성격 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의 전쟁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수행에 앞장서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 각지의 법원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하여 필리핀인·중국인·네덜란드인·홍콩인 등 각국 외국인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무려 30건 가까이 진행중이다.대부분이 70을 넘은 고령의 피해당사자가 그들 살아 생전에 끝나기나 할지조차 전망이 불투명한 소송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심정을 일본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일 소송 잇따라 금년 5월 유럽에서는 제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파리에서는 독일군의 시가행진도 있었다.금년의 독일군이 50년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닌 유럽 번영의 동반자로서 행진하였다는 점이다.일본은 현재 자신을 구적국으로 규정하고 출범한 유엔체제 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남경 아니면 마닐라에서 일본자위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일본 자신이 될 것이다. ▲정인섭 방송통신대 교수(41세) ▲서울 법대졸 ▲법학박사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바로잡는 일부터”/과거청산과 한­일 미래를 위하여/위안부 보상문제 등 적극 나설때/「불전결의 불발」 같은 추태 없어야 지난 6월9일 채택된 전후50주년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국회(중의원)가 보인 추태는 「50년 결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나라에의 국제공약이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일 국민 기대 배신 그것은 또 전후50년 결의가 아시아 여러나라와 진실로 화해하고 미래지향의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란 많은 일본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신진당 부당수)는 『전후50년이라는 고비를 살리지 못하고 결의를 끝내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대단히 엄한 반발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 신진당은 「50년결의」 채택의 본회의를 보이콧했다.여당 3당으로부터도 다수의 결석자가 있어서 5백2명의 중의원중 채택에 참가한 것은 겨우 과반수인 2백52명으로 이례적인 사태였다.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등 역대 일본총리가 방한시 행한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발언을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역대 총리의 발언을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만들고 만 일본국회의 어처구니없는 전후결의의 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찬물 끼얹는 행위 그런 가운데 일본인을 구해 준 것은 『일본의 국회결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새로운 불신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도 『좋은 내용의 결의를 향하여 노력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그 사람들은 이 결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앞으로의 노력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한 김태지주일대사의 적절한 발언이었다.(아시히신문·통일일보 인터뷰)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의 유력지들은 나름대로 특별기사를 게재하였으나 국교30년의 양국의 현재위치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어가는 상호의존」,「아직 두꺼운 마음의 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닛케이신문 6월 20일자였다.앞서 언급한 추태의 극을 보인 일본국회의 전후결의가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더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소걸음과 같지만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선,종군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해결등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문부성이 6월28일 발표한 국민학교 6년생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일본어의 강제,창씨개명,토지의 몰수,손기정선수의 일장기 사건등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나 국민학생도 잘 알수 있도록 됐다. 90년 5월 방일한 노태우전대통령은 일본 국회연설과 일본 기자클럽 회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호소했다.일본 문부성이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향해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 국교·중학교의 수업중 꼭 다루도록 지도를 거듭 내린 것도 이 때부터였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 이래 3년 넘어 보상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사업을 추진하는 임의단체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설립돼 7월27일에는 전참의원의장 하라 분베에(원문병위)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한국 중국 필리핀등 1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 전 위안부에게 일시금을 보상함과 아울러 복지와 의료면의 지원사업에는 일본정부로서도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로 됐다. ○청산 움직임 일어 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사람의 왕래는 30년전의 1백20배.지난해는 2백69만명을 헤아렸다.필요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람의 왕래의 확대다. 미래지향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한일 쌍방이 필요로 하는 관계의 심화와 발전인 것이다.앞에서 말한 닛케이신문은 「깊어지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묶는 키워드를 「공통의 이익」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한일간 수평분업체제는 또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필요로 하는 관계 자체다.엔고현상으로 생산거점을 대폭 해외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98년 생산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의 닛산자동차의 전면적인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협력관계 불가피 관련부품 메이커 1백15개사의 부산유치와 함께 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기타큐슈를 한국 남부와 결부,국경을 넘는 경제권의 성립이 예상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이인삼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국민의 뿌리깊은 감정마찰과는 별도로 세계의 외교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사실로 돼 있다」라는 닛케이신문의 지적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앞서 짚어보는 것으로서 매우 시사적인 것이다. ▲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 교수 61세 ▲나고야대 졸
  • 중국/동남아의 반중정서 완화 부심/전기침 브루나이서 국가별 접촉

    ◎베트남의 아세안가입 계기 연합전선 구축우려/ARF서 남사군도 거론 등 군사·경제 대치 부담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과 아세안 및 대화상대국 사이의 회담참가를 위해 28일부터 브루나이에 머물고 있는 전기침외교부장은 동남아국가들과 국가별 접촉을 벌이며 중국의 입지 확보에 부심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은 동남아지역에서 일고 있는 「중국견제 정서」를 수그러뜨리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중국견제 정서가 혹시 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반중국적인 연합전선으로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이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는 것이 중국의 주요목표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분쟁요소가 있는 쟁점이 다자간 논의장소에 올려지는 것을 꺼리고 있다.전기침을 대동,브루나이에 온 외교부 심국방대변인은 동남아국가들이 스프라틀리군도(남사군도)문제를 들고 나오자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선 안될 것이며 관계없는 국가들의 개입·간섭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라며 문제의 확대 및 국제문제화를 경계했다. 전기침 외교부장도 남사군도에 대한 중국의 확실한 주권을 재확인하고 쌍무적인 해결과 공동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밝혔다.그는 30일 스플라틀리 군도문제를 둘러싸고 무력충돌 일보직전까지 갔던 필리핀외무장관과 만나 이 문제가 국제문제화 돼선 안되며 쌍무적으로 해결해야 됨을 강조했다. 또 중국은 무역확대,관세장벽 인하,투자기회 확대 제공 등을 당근으로 삼아 동남아국가들과의 막후접촉을 벌이고 있다.아세안국가들이 최근 전격적으로 베트남을 정식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것이나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이 베트남에 무관을 파견하기로 하는 등 군사적인 협조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중국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들 아세안국가들이 안보협력 뿐아니라 역내 관세율 인하 움직임 등 유럽경제공동체나 북미무역자유지대(NAFTA)와 같은 배타적 지역경제공동체로 발돋움하고 있는 등 경제적으로도 중국의 경쟁상대가 되고 있는 점에 중국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최대가상적국이던 베트남을 중국 견제를 위해 전격 회원국으로 가입시킨 것이 동남아국가들이고 보면 중국의 노력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회의적이다.동남아국가들은 중국해 지역에서의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볼키아 브루나이국왕의 경고에서 중국견제 심리의 확산을 읽을 수 있다.
  • 선진국은 「아시아」에 합당한 대우하라/윌리엄 클라크(지구촌 칼럼)

    ◎역동적 성장… 세계 경제력의 중심으로 부상 자유세계의 강대국이던 국가지도자들은 오늘의 세계정세가 과거의 유럽중심적 국제질서와는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중심적 사고와 1950년대식 사고에 젖어 오늘날 세계의 현실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개최된 세계 선진공업국가의 지도자모임인 G7 정상회의는 그같은 전도된 양상을 더욱 심화시켰다.일본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옛 백인의 친교모임으로 아직까지 새로운 국가의 가입도 또 더이상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 기존국가를 탈퇴시키는 것도 꺼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대만 같은 나라는 교역이나 산업사회의 중요도에 있어 캐나다나 이탈리아를 앞지르고 있다.또 인도·중국·브라질과 같이 세계최대의 경제규모를 이루고 있는 국가도 있다. 이 「옛지도자」들이 최근 멕시코에서 있은 것과 같은 또 다른 경제적 붕괴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회담 막바지에 그들은 대기성 펀드 마련을 위한 방안에 합의를 이뤘다.이같이 긴요한 합의에 도달하면서 그들은 많은 국가가 G7국가보다 나은 형편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은 펀드 마련을 위해 아시아의 보다 번영된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같은 양상은 수년동안 지속돼왔고 이제는 기존의 국제관계를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고 있다.워싱턴의 미국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같은 현상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새로운 정책이 채택돼 돈이 필요해지면 미국은 일본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방식을 수년간 취해왔다.이같은 현상이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확산돼왔다. 미국과 북한간의 핵협상은 가장 최근에 나타난 또 하나의 두드러진 예가 되고 있다.40억달러이상이 소요되는 협상을 하면서 미국은 전체의 0.5%도 되지 않는 2천만달러만 부담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이 이 대금의 상당부분을 감당하고 일본이 그 나머지를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언제 어떻게 분담액이 결정되느냐는 물음에 미국 관리들은 한국과 일본간의 완전한 합의에 의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불만을 크게 사고 있다.서울에서는 미국이 매번 한국을 참여시키지 않은 채 북한과만 대좌하고 있는 데 대한 정치적 분노가 폭발상태에 와 있다.서울의 이같은 정치적 기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부담액이 얼마냐가 아니고 단지 협상테이블에 한국의 자리를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을 위한 유럽국가의 부담액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워싱턴은 현재 이같은 움직임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해결책인가.그것은 오늘날 경제·금융·산업적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명확하게 평가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세계 은행보유금의 40%가 아시아에 있다.외환보유 또한 동일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심지어는 가장 최근 들어 경제개혁의 길로 접어든 인도까지도 외환보유가 1991년에 10억달러로부터 오늘날 2백억달러로 증가했다. 북아메리카·유럽·일본등이 2∼3%의 성장률로 정체돼 있을 때 아시아는 일괄적으로 7∼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심지어 출발이 가장 늦은 인도까지도 5%를 넘었다. 만일 오늘 어떤 경제지표가 발표된다면 미국·일본,그리고 기타 유럽연합 회원국은 동시에 경기후퇴로 나타나게 될는지도 모른다.이같은 현상이 사실이라면 아시아의 역동적인 경제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따라서 이제 선진국은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국가로부터 의견을 듣기 위해 그들을 테이블로 불러내야 할 때다. 하지만 G7,특히 미국이 과연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킬 것인가.불행히도 그들은 그같은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협력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는 시점이다.하지만 핵협상테이블에서 한국을 배제하는등의 현재와 같은 양상은 오히려 우호관계에 방해가 된다.이러한 현상은 양국간의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서울당국은 현재의 행태에 있어 매우 큰 인내를 보이며 미국의 입장에 조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노력을 해왔다.우리는 현재 평양측이 주요적국인 한국과 일본에 쌀제공을 요청할 정도로 북에서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면 워싱턴 당국에 의해 보다 포괄적인 대북한정책이 채택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 일 우익 「한·중 수탈사」 왜곡입증/일 귀족원 비밀회의록 공개의미

    ◎태평양전쟁에 조선인 징용 준비 확인/“공격대상 미·영” 논리 허구성 드러내 일본참의원의 전신인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추밀원) 비밀회의록이 5일 모두 공개됐다.비밀회의록은 24건으로 A4판 4백70쪽 분량.그 가운데 전후 미점령군 사령부가 가져간 「미국의 일본 공습 및 상륙에 관한 질의」는 공개대상이지만 자료는 입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따라 중의원이 갖고 있는 비밀회의록의 공개가 과제로 남게 됐다. 비밀회의록의 공개는 대부분 한국에서는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등에 의해 널리 확인돼 왔으나 일본에서는 극우주의자나 일부 보수정치인등에 의해 제멋대로 왜곡돼 왔던 과거의 침략수탈사가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41년 1월 회의록에는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키기 1년전 이미 영미와의 전쟁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으며 전쟁수행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할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이는 뒤에 징용으로 나타난다. 또 고노에 당시총리는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관련,「대동아 각 민족을 구미의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한다」면서 「(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고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즉 구미로부터 동남아시아를 분리시켜 자원을 강탈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정치권에서 부전결의등의 채택을 둘러싸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와 싸운 것이 아니고 영·미와 싸우다가 본의아니게 아시아인에게 폐를 끼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미가 일본의 생명선인 유류등의 금수조치를 실시해 전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일본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논리가 엉터리라는 점이다.고노에총리는 『영·미는 중일사변과 관련,9개국조약에 기초해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대륙침략정책을 포기하지않자 영·미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가솔린등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고 말해 모든 원인이 한반도와 만주에 이어 중국까지 마구잡이로 침략을 자행한 일본에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밖에 비밀회의록에는 1894년(한국의 동학농민전쟁에 일본이 개입,청일전쟁이 벌어진 해) 청일전쟁 임시군사비를 심의하는 귀족원 회의가 히로시마에 건설된 대본영의 가의사당으로 의원들이 집합해 열리는가 하면 심의도중 군사비에 관한 사항이라며 속기까지 정지돼 기록이 남겨지지 못하게 되는 등 군의 문민정치원리에 대한 훼손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45년 3월 도쿄대공습 직후 열린 비밀회의에서는 이미 공습사망자가 5만5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이와관련,한 전쟁작가는 당시 일본이 전쟁을 포기했다면 일본은 원자탄 투하도 피할 수 있었고 일본인 사망자 3백10만명 가운데 2백만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침략에 눈이 먼 지도자들이 일본국민과 아시아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회의록 내용을 살펴본 도쿄도립대 사사키 류지교수등은 「고노에내각은 절망을 선택했다」,「무책임한 체계의 공허함을 본다」면서 침략의 역사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일제 비밀회의록 요지 일본 참의원은 18 91년부터 19 45년까지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에서 행해진 비밀회의록을 5일 공개했다.다음은 비밀회의록 가운데 한반도 및 침략전쟁과 관련된 부분들의 주요내용. ▷태평양전쟁과 조선인 노동력 착취 계획◁ 1941년 1월 고노에 후미마로총리의 「국내외정세에 관한 보고」.…제국장래의 생명인 대동아 공영권건설 문제에 관해 독일·이탈리아 양국은 일본의 지도권을 인정한다고 함이 명료하다. 독·이와 더불어 나아가는 길 말고는 길이 없다.전쟁은 독일측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믿는다.영국과 미국은 중일사변에 대해 우리의 지금까지의 대륙정책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제국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는 장래의 발전이 되지 않는다.그 결과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장개석정권을 원조하고 있으며 가솔린등의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 (영·미와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면서)특히 노동력 보급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곤란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지금의 탄광종사자 30수만명에 더해 시급히 약 4만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다른 산업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쉽지 않다.국내 노동자 모집,조선 노동자 도입등에 관해 현재 응급 특별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아시아각지의 침략과 관련)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 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 ▷중일전쟁◁ 40년 2월 요나이 미쓰마사총리(해군장관출신) 상황보고.중경정권(장개석정권)이 항전을 계속하는 한 사변은 계속된다.(왕조명정권의 목적은)중경정권을 약화굴복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국제연맹탈퇴◁ 1933년 2월 사이토 마코토총리(조선총독역임)의 보고.(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립튼보고서를 국제연맹이 채택하면)동양평화의 확립에 대해 연맹과 소신을 달리하게 되므로 연맹과 협력할 여지가 없게 된다.…최후의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이 회의는 연맹이 보고서를 채택한 2월 24일보다 사흘 앞선 21일 열렸다).
  • 대만총통 방미 허용/중,미에 엄중 항의

    ◎전 외교부장,로이 미대사 불러/“취소안하면 관계악화” 성명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외교부는 23일 미국정부의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 허용 결정과 관련,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이를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전기침 부총리겸 외교부장은 이날 스태플론 로이 중국주재 미국대사를 소환,미국정부의 이같은 결정을 엄중 항의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일반적으로 현안문제가 발생하면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이 관련 대사를 소환,상대하는데 반해 전기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직접 당사국 대사를 소환해 항의의사를 전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앞서 중국 외교부는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정부의 이번 결정은 『중·미 사이의 3개 공동성명을 위반한 것으로 중국의 주권과 평화통일 사업에 손상을 가하고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의도』라고 신랄하게 반박했다. 중국정부는 이 성명을 통해 『즉시 이등휘의 방미허가 결정을 철회하고 두나라의 기본합의 원칙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또 『만약 미국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중·미관계에 엄중한 손상이 발생할 것이며 이에따라 발생하는 결과는 미국측이 져야 할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의 반발/대만 국제무대 복귀 견제… 즉각 대응 중국은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입국 허가는 두나라 관계를 악화시킬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전기침 외교부장은 23일 미국정부의 입국허가 결정직후 로이 주중 미국대사를 중남해로 소환,중국정부의 강력한 항의의사와 함께 결정철회를 요구했다.중국외교부도 이와별도로 장문의 항의성명을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했다.중국측은 이 성명에서 『이번 결정이 중·미사이의 기본합의를 깨뜨린 것이며 철회되지 않을 경우 두나라 관계에 중대한 손상이 미칠 것임』을 경고했다. 중국이 이등휘 총통의 개인자격 미국입국 허가에 대해 이같이 메가톤급 항의와 경고를 보내는 것은 이총통의 입국허가를 미국·대만의 관계정상화및 관계격상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기때문이다. 대만은 지난 몇년동안 유엔 재가입등 국제정치무대 복귀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총력전을 펼쳐왔다.특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의회내친대만계 인사등과 화교등을 이용,관계격상및 정상화시도에 전력을 다해왔다. 미국도 국제무대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중국에 대한 견제및 대만과의 경제무역관계심화등을 목적으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아래 점진적인 대만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해 왔다.이로인해 대만과 미국과의 창구격인 워싱턴주재 「북미사무협회」는 지난해 9월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사무처」로 슬그머니 격상됐다.이날 중국외교부의 성명에서도 「미국은 최근 대만과의 관계격상조치를 취해왔으며 드디어 공개적으로 이등휘의 방미를 허용했다」고 불쾌한 심정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정부의 결정은 형식적으론 「하나의 중국원칙」은 지켜나가지만 실질적으로는 「두개의 중국」정책을 추진하면서 대만의 국제무대복귀를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의 계산/대만카드 이용,중 길들이기 가능성 클린턴행정부가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앞으로의 미·중국 관계에 마찰계수가 높아질것으로 보인다.중국관계전문가들은 이총통의 다음달 코넬대 동문회 행사참석은 일시적·개인적 방문일 뿐 미국의 기존 중국정책에는 아무 변함이 없다는 국무부 발표에도 불구,중국은 이를 미국의 「태도변화」의 조짐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이번 비자발급은 79년 대만지도자들의 미국방문 금지조치 발표 후 16년만의 번복. 물론 이번 이 총통의 미국방문 허용이 민주당 행정부의 자발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의 점증되는 압력을 수용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미상원은 지난주 압도적 찬성으로 「비자발급」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것이 수용되지 않을 것에 대비,이총통에게 「국가수반으로서 공식예우를 갖추는」 미국방문 허용을 요구하는 법안을 마련해 계류시켜 놓고 있는 등 클린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이 형식적으로는 의회의 압력에 굴복한 것임에도 실질적으로는 현재의 순탄치 못한 미·중관계를 반영한 것이며 나아가 훗날 필요할지 모를 「대만카드」의 씨앗을 남겨두자는 미국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출범 이래 미·중 관계는 인권문제로 계속 마찰음을 내왔으며 지적재산권 보호 등 통상문제로도 자주 티격태격해왔다. 또 중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연장이 만장일치로 통과돼 핵개발 자제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핵실험을 결행했다. 중국을 미국의 「잠정적 적국」으로 보는 미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도 미·중 관계의 장래를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미 CIA/“환골탈태”구체화/도이치 신임국장 상원 청문회 증언

    ◎북한·이란·이라크 도발 강력대응 천명/인력교체·업무조정 등 6개 구상 마련/첨단 과학 수단 활용… 첩보획득에 전념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대 변혁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변혁은 인력의 대폭적인 물갈이에서부터 미정부내 각종 정보기관간의 관장업무 재조정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CIA 국장으로 지명받은 존 도이치 국방부 부장관은 26일 상원정보위의 첫 인준청문회에서 정보기관의 역할과 향후의 개혁 방향을 밝혔다.금명 인준표결에서 만장일치로 지지를 받을 것으로 전해진 도이치 신임국장 지명자의 개혁 구상은 6가지로 요약되고 있다. 첫째,CIA와 여타 정보기관들의 상층부를 새 새대가 맡도록 인력을 물갈이하겠다는 것이다.도이치 국장은 이날 증언을 통해 정보조직의 상층 관리자들을 신속하게 교체하고 정보기관간의 공조체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둘째는 CIA의 각 국별 관장업무를 재점검하여 활성화하고 셋째는 영상첩보의 수집·분석·배포업무를 통폐합하여 효율성과 경제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이는 국가안보국(NSA)을 설치,통신정보를 총괄하는 해온 전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는 현재 국방부와 위성국의 첩보활동을 별개로 관리하지 않고 국방장관의 조정 아래 활동을 통합하고 다섯째는 냉전이후 시대에 있어 국가별 지역별 정보의 우선 순위를 확립해 놓는다는 것이다.여섯째로 이중간첩 사건 이후 크게 떨어진 정보기관 요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도이치 국장은 냉전이후 시대라고 해서 정보수집의 중요성이 결코 줄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국가이익에 위협이 되고 있는 사안을 몇가지로 열거했다.우선 북한이나 이라크,이란 등 소위 「국제부랑국가」가 해당지역에서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크고 둘째는 대량 살상무기 확산이 계속되고 있어 이를 방지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세째는 국제테러,국제범죄,국제마약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CIA의 업무 재조정은 냉전종식 이후 CIA가 위상제고를 위해 테러,마약밀매,국제범죄 등에 대해서도 적극 개입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와 관련된 업무는 모두 연방수사국(FBI)이 관할하도록 하고 대신 CIA는 인간 및 최신 과학정보수단을 활용,다른 나라에 대한 첩보획득 활동에만 전념한다는 것이다. 도이치 국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불안정한 세계지역정세를 열거하며 『러시아의 대륙간 탄도탄은 더이상 미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수천기는 아직도 격납고에 놓여 있고 언제고 목표물을 재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국제상황은 어느날 갑자기 유동적일 수 있음을 강조했다.또 그는 러시아만 안심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잠재적인 대국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해 중국이 「미래의 적국」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 EU­캐나다 어로분쟁/「가자미 싸움」이 외교보복전 비화

    ◎“해적국에 본때… 어족 고갈 방관않겠다”/가/G7회담 보이콧·군함파견 등 맞대응/EU 캐나다가 스페인 트롤어선을 나포함으로써 야기된 어로분쟁은 캐나다와 EU간의 해묵은 어획량 싸움이 터져나온 것으로 풀이된다.이번 분쟁은 지난 9일 캐나다측이 자국의 뉴펀들랜드 연안 그랜드 뱅크에서 고갈어종으로 분류된 「가자미」를 남획한다며 스페인 트롤어선을 나포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분쟁을 꺼풀 들춰보면 서북대서양의 어장을 둘러싼 캐나다와 EU간의 첨예한 대립이 드러난다. EU는 서북대서양어로기구(NAFO)가 지난달 이 어장에서 어획할 수 있는 95년도분 가자미 쿼터 2만7천t중 EU에 배정된 쿼터의 상향조정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던 터였다. 캐나다가 외교단절이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물론 EU와 공식적 관계 단절등의 조치가 취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선 나포와 같은 극단적 조치를 취한데는 더이상 어족자원 고갈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문제가 된 뉴펀들랜드 근해는 그린란드 가자미 어획량의약 80%가 잡히는 어장이지만 가자미 어획량은 70년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의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캐나다는 EU어선이라면 절대 이 어장에서 가자미 잡이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왔다. 특히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가자미 등을 잡아올려 일본과 한국에 팔아치우는 유럽국가중 유일한 국가인데다 쿼터를 지키지 않기로 소문이 나있는 상태여서 본때를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스페인은 캐나다측의 어선 나포를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불법행위라며 어선 보호를 위해 군함을 파견하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EU측은 오는 6월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열릴 서방선진공업국(G7) 정상회담을 보이콧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지만 캐나다측이 의외로 완강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분쟁은 단순히 어종과 어획량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전세계 어획량 격감희 대처방안과도 관련돼 있다. 이는 또한 어획량격감으로 심각한 실업 위기에 빠진 캐나다나 스페인 어촌의 어민 생계와도 얽혀있어 일도 양단식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이번 나포에는 공해상 불법어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캐나다측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캐나다가 일방적으로 승리한다면 이는 곧 뉴질랜드, 아일랜드, 페루, 칠레 등 연안국들이 추진해온 공해상 어로규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원양어업국의 입지가 좁아지게 돼 스페인이든 EU든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 김정일 권력승계/“10월 10일 가장 유력”

    ◎김일성 1년상뒤 창당50돌에 「등극」전망/서울신문/통일안보연구소 분석 북한의 김정일은 오는 10월쯤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에 취임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북한 권력서열 2위였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사망은 김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가 26일 이상우 서강대사회과학대학장,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 등 각계의 북한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및 최근 북한 관련 정보를 분석한 결과 김정일은 자신의 효심을 과시하기 위해 김일성의 1년상(7월8일)을 치른뒤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마칠 것으로 전망됐다.그 시점으로는 당이 다스리는 사회주의국가의 특수성으로 보아 노동당 창당 50돌이 되는 10월10일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으며 그다음 8·15 해방기념일(광복절)과 1년상 직후인 7월중의 순으로 예측됐다.이번 설문조사에서 23명의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공식승계 예상시점에 대해김일성 사망 1주기 이후 「연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5명은 평양축전(4월28∼30일)전후인 4,5월중을 점쳤다.그러나 2명은 언제쯤 될 지 극히 불투명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 사망후 8개월째 막후통치를 해오고 있는 김이 하반기에나 취임할 것으로 보는 이유로 김일성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애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이같은 추모분위기를 권력기반 강화에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그가 효자처럼 행세하기 위해 1주기 이전까지는 전면에 나서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이들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후견인이었던 오진우의 사망과 관련,그의 죽음이 예견돼 있었고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김의 공식승계구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북관계전망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 사망이후 꽉 막혀버린 대화의 문이 쉽게 열릴 것 같지 않으며 이같은 경색국면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남북대화재개문제가 북·미 합의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자들이 체제유지를 위해 그동안 주적으로 삼아온 미국대신 한국을 적국으로 부각시켜 북한주민들에게 긴장감을 고취시키고 있는데다 대화재개가 북한주민 통제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