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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일부 저항에 후퇴 안 돼” 의료개혁 강공

    尹 “일부 저항에 후퇴 안 돼” 의료개혁 강공

    “지금이 의료개혁 추진 골든타임”필수의료에는 ‘10조원+α’ 지원 의대정원 2000명 안팎 늘어날 듯 정부가 벼랑 끝에 선 필수의료를 살리고자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생이 장학금과 주거 지원을 받는 대신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한다. 또 의사 면허를 땄더라도 기본적인 임상 수련을 거쳐야 개원할 수 있는 ‘개원 면허제’ 도입도 추진한다. 의대 정원은 2025학년도부터 2000명 안팎 확대가 유력하며, 증원 폭은 설 연휴 전에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8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4대 정책 패키지’를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 의료개혁을 추진할 골든타임”이라며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이 일부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해 필수의료에 10조원 이상 투입하겠다”며 “의료 남용을 부추기고 시장을 교란하며 건보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제도를 확실하게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면서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의료사고 수사 경험을 소개하면서 의료인 ‘사법리스크’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의료사고 사건을 처리하려고 한 달 동안 다른 일을 못 하고 미제를 수백 건 남기면서 공부했다. 그만큼 어렵고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이라며 “준비도 없이 (검찰, 경찰에서) 의사들을 부르고 압박하면 다 병원을 떠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과 의료진 소송 사건을 언급하며 “많은 소아과 인력이 다른 분야로 넘어갔다”며 “고소·고발이 있다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됐던 의료진 7명은 2022년 12월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발표한 ‘4대 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는 “무너져 가는 의료 체계를 바로 세워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대책에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급속히 팽창한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해 블랙홀처럼 의사들을 빨아들이는 ‘피안성정’(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 개원가를 조이는 정책이 망라됐다.현실화하면 개원의들의 ‘밥그릇’을 위협할 만한 정책이 다수 포함돼 의대 증원과 맞물려 의사 단체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오는 4일에는 의료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건강보험 종합계획도 발표한다. 의료사고 공소 제기 제한 추진의료인 책임보험·공제 의무 가입환자단체 “구제 어려워져” 반발 필수의료 수가(의료행위의 대가)는 ‘난이도·위험성·시급성·숙련도·응급 조치나 수술을 위한 의료진 대기 시간’을 따져 지급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5대 기준’에 가까운 의료행위를 하는 필수의료 담당 의사에게 상응하는 보상과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발생 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에 대해 공소 제기를 제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도 추진한다. 필수 과목 의사들이 의료사고로 형사 처벌을 받지 않도록 특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모든 의사와 의료기관이 책임보험·공제에 의무 가입해 환자들에게 피해 보상을 하도록 하기로 했다. 다만 중과실 사망 의료사고도 포함할지, 미용·성형 의료사고에도 면죄부를 줄지는 추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환자단체연합회는 “피해자 구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특례법 철회를 촉구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장학금·수련비 등 풀 패키지 제공대학·지자체·의대생 3자 계약 방식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도입한다. 지역 병원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의대생에게 장학금과 수련 비용을 지원하고, 정착 비용과 안정적 일자리까지 ‘풀 패키지’로 제공한 뒤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게 하는 제도로, 의료법이 개정돼야 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발의안 지역의사제(의료법 개정안)는 10년간 ‘의무 복무’를 강제했지만, 정부안은 대학·지방자치단체·학생이 3자 계약을 맺어 근로 기간을 정하는 ‘자율 계약형’이다. 의무 복무 형태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위헌 논란을 고려해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 행위인 비급여 개혁에도 속도를 낸다. ‘피안성정’ 등의 비급여 매출이 폭증하면서 급여 격차에 상실감을 느낀 대학병원 의사들이 피부과 등으로 빠져나가는 엑소더스를 막기 위해서다. 비급여 진료 끼워팔기 금지급여·비급여 섞는 ‘혼합진료’ 중지건보·실손 이중 적용도 개선 추진 처음으로 ‘혼합진료’ 금지 카드도 꺼내 들었다. 혼합진료란 급여와 비급여 의료행위를 함께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비급여인 다초점렌즈를 끼워 팔거나, 비급여인 도수 치료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물리치료를 같이 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현재 백내장 수술의 100%가 이런 혼합진료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은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있으며, 독일은 비급여 진료가 필요한 경우 환자가 의사 증빙 서류를 첨부, 공공보험에 사전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 항목에 이중으로 실손보험을 적용하지 않도록 실손보험도 개선한다. 보험이 이중 적용되면 환자 본인부담 비율이 0%에 가깝게 떨어져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혼합진료 금지와 실손보험은 특위에서 논의할 방침인데, 현실화하면 안과와 정형외과의 비급여 매출이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비급여 위주로 운영되는 진료과에는 영향을 미치기 어려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체 방안으로 정부는 ‘미용의료 시술 자격 개선’을 제시했다. 박 차관은 “미국, 영국 등은 의사가 아닌 직종도 자격증을 취득하면 일부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도록 별도 자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를 참고해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사들 입장에선 밥그릇을 내주는 셈인데, 비급여 풍선의 바람을 빼 ‘피안성정’ 쏠림을 막아 보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개원 면허’ 단계적 도입수련 과정 거쳐야 개원 자격 취득의사 신체·정신 검증 체계도 구축 개원 면허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캐나다는 의대 졸업 후 2년 교육을 거쳐야 의사 면허를 딸 수 있으며, 영국은 의사 면허와 별도로 ‘진료 면허’를 취득해야 진료 현장에 뛰어들 수 있다. 정부는 허술한 의대 인턴 수련 과정을 내실화하고, 수련 과정을 거친 의사에게 개원할 수 있는 면허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5년 주기로 의사의 신체·정신 상태를 검증하는 체계도 구축한다. 의료계 반발… 한계 지적도“증원된 지역 의대가 지역 책임져야”의협 “소통 없이 일방적 발표 유감”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방향성은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정원 대폭 확대를 약속받은 지역 의대가 해당 지역 필수의료도 책임지게 하는 등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수도권으로 가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누가 계약을 맺고 지역에서 일하겠는가”라며 “기존 지역의사제보다 느슨한 ‘계약형 지역의사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혼합진료 금지, 개원면허 및 면허갱신제 등이 의료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발표됐다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적용 범위에 사망 사고와 피부·성형 의료 사고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 딸 2090회 성폭행한 계부…“친모는 괴로워하다 세상 떠나” 질책

    딸 2090회 성폭행한 계부…“친모는 괴로워하다 세상 떠나” 질책

    의붓딸을 미성년자일 때부터 13년간 성폭행 한 계부가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진아)는 성폭력처벌법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고모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25년을 명령했다. 고씨는 의붓딸이 만 12세이던 2008년부터 성인이 된 2020년까지 13년간 2090여회에 걸쳐 성폭행하고 상습적으로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 됐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 의붓딸을 강제 추행했고, 가족이 다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후에도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르면서 성 착취물을 제작하기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고씨가 미성년자인 피해자를 장기간에 걸쳐 심리적으로 지배해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든 뒤 성적으로 착취하는 소위 ‘그루밍’(길들이기) 수법을 썼다고 판단했다. 뒤늦게 계부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한 의붓딸이 뉴질랜드 경찰에 신고했으나 고씨는 한국으로 도주했다. 한국 경찰이 피해자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나섰고 지난해 10월 충남 천안에서 고씨를 붙잡아 이틀 뒤 구속했다. 고씨의 범행 사실을 알게 된 친모는 충격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재판부는 “최초 범행 당시 12세였던 피해자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 등을 겪으며 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며 “피해자를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정신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성행위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책했다. 이어 “범행이 수천회에 달하고 장소도 주거지부터 야외까지 다양하며 피해자가 성인이 돼 거부했음에도 범행을 계속하는 등 파렴치함과 대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피해자는 12년간 학대에 시달리며 죄책감을 느꼈고 현재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범행을 알게 된 피해자의 모친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피해자는 모친을 잃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며 “피고인이 뒤늦게 법정에서 범행을 인정했으나 상당 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돼 참회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 [르포] 29일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철거…사라지는 한일 우호의 상징

    [르포] 29일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철거…사라지는 한일 우호의 상징

    “이 추도비가 없어지면 우리 손자 세대들에게 앞으로 추도비를 보여주며 일제 시절 조선인들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을 시켰다는 것을 생생하게 설명하기 어렵게 되겠죠.” 28일 일본 도쿄 중심부에서 차로 약 3시간 걸려 도착한 군마현 현립 공원인 ‘군마의 숲’에 위치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서 만난 이시다 마사토(71)는 이같이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2004년 이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를 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이시다는 “이 추도비는 우익들이 원하는 대로 이제 곧 철거될 것”이라며 “한일 우호의 상징인 이 추도비를 지키는 문제에 대해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추도비는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군마현은 다음달 12일 오전 8시까지 이 공원을 폐쇄한다. 주말을 맞아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러 온 시민들이 많았지만 군마현은 공원 구석 한적한 곳에 놓인 높이 2m, 넓이 4m의 추도비 하나를 철거하기 위해 넓은 공원을 약 2주 동안 폐쇄할 정도로 강경하게 나서고 있다. 군마현은 철거 비용인 3000만엔(2억 7000만원)조차 추도비를 지켜온 시민단체에 청구하기로 했다. 이날 추도비를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100여명의 시민이 현장을 찾았다. 이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각각 적혀 있다.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심지어 이곳 군마현 출신인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이 담겨있는 추도비이지만 일본 보수층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지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시다는 “추도비가 철거되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이러한 역사를 계속해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비석 위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의 종이학과 꽃들이 놓여 있었고 시민들은 비석 주변을 쓸고 닦으며 정성스럽게 다뤘다. 시민들은 ‘침략=식민지화의 기억, 조선인 추도비를 철거하지 마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며 항의했다. 마쓰모토라는 이름의 50대 여성은 “엑스(트위터)를 통해 철거를 앞두고 모여달라고 했지만 이렇게 많은 시민이 와줄 줄은 몰랐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 우익세력과 시민들 간 충돌을 막기 위해 200여명의 일본 경찰이 1m 간격으로 추도비를 둘러쌌다. 한 우익세력은 “왜 우리를 막는 거냐. 이게 차별이 아니고 뭐냐”며 확성기로 소리를 지르면서 작은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일본에서 보수색이 강한 군마현에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는 추도비를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민간 단체가 1990년대 실시한 조사에서 군마현 내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6000명이 군수공장이나 광산에 동원돼 300~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 시민단체가 1998년 추도비 설치를 위한 시민운동에 나섰고 군마현과의 오랜 협의 끝에 겨우 추도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현 소유 땅에 세워진 것은 일본에서 처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추도비가 세워졌지만 일본 각지에 세워진 조선인 추도비와 마찬가지로 우익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시민단체는 2012년부터 이 추도비 앞에서 추모행사를 열었는데 일본 우익세력이 이를 문제 삼았다. 추모행사에서 참가자가 “강제연행의 사실을 호소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강제연행’을 언급한 게 부적절하다는 주장이었다. 군마현은 10년간 추도비 설치 조건으로 “정치적인 행사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익단체는 이를 근거 삼아 추도비 철거를 주장했다. 2014년 군마현 당국은 이를 받아들여 추도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고 시민단체는 그해 마에바시지법에 군마현을 제소했다. 이 문제는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까지 가면서 2022년 결국 지자체의 철거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일본 시민들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다. 진보 성향 정당인 사민당 측은 같은 날 야마모토 지사에게 철거 철회를 요청했다. 핫토리 료이치 간사장은 “부정적인 역사를 반성하고 한일 간 연계를 목표로 해야 한다”며 “한일 공동 선언을 발표한 군마현 출신인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이름도 더럽히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아티스트인 다키 아사코와 이이야마 유키는 추도비 철거 중지를 요청하는 4317여명의 서명을 담은 요청서를 군마현에 제출했다. 일본 시민들의 반대에도 군마현 당국은 29일부터 추도비 철거 작업을 강행하기로 했다.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정해진 규칙을 어긴 것이 원인”이라며 “철거와 역사 왜곡은 연결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자유·존엄 잃어가며 비판 정신마저 잊은 요즘… 당신, 괜찮아요?

    자유·존엄 잃어가며 비판 정신마저 잊은 요즘… 당신, 괜찮아요?

    신자유주의는노동자들 스스로를착취하게 만드는지배기술로 저항 무력화순위와 평점으로인간을 상업화하는‘산 죽음’의 좀비한국 사회 바로 지금이의식의 혁명이 필요한 때! 죽을 때까지 자신을 최적화하는 ‘성과 좀비’, 히스테리적으로 죽음을 거부하는 ‘보톡스 좀비’, 관심을 갈구하는 인간 ‘호모 살리엔스’(Homo saliens) 등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이름 붙인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군상이다. 그가 관찰한 사람의 변화는 디지털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왜 혁명이 더이상 조직되지 않는지’, ‘자본주의는 왜 맹렬하게 축적을 추구하는지’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이 책은 우리 삶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권력 기술을 환기하며 섬뜩한 경고를 내놓는다. 대표작 ‘피로사회’, ‘정보의 지배’, ‘투명사회’ 등을 통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해 온 그의 순도 높은 철학적 언어는 강렬하고 명료하다.독일에서 먼저 출간된 ‘자본주의와 죽음 충동’ 원제를 한국어판에서 도발적인 제목으로 바꾼 건 저자의 의지였다. 그의 비평 에세이 곳곳에 기술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적 인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뭇 선언문에 가까운 저자의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라는 논제는 10여년 전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3~2023)와 벌인 논쟁이 발단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선 ‘다중’(연결된 저항과 혁명군중)을 통한 전 지구적 저항을 열망하는 80대의 네그리를 향해 한병철은 공개적으로 순진하다고 공세를 폈다. 한병철은 과거 억압적인 산업사회의 체제 유지 권력과 다르게 신자유주의에서 권력은 “유혹적이며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하게 만드는 지배 기술”로 저항을 무력화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부리는 주인인 동시에 굴종하는 노예의 처지인 시스템에서 계급투쟁은 자신과의 내적 투쟁으로 변질됐고 “저항해야 할 적도 없다”고 반박한다. 책은 혁명의 종말 징후를 한국 사회에서 엿본다. 1997년 외환위기 후 급진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고착된 한국 사회에서 자본에 대한 저항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극도의 성과사회에 대한 순응주의가 삶을 지배한다. 그는 우울증과 소진(번아웃·Burnout)이 만연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라는 정신적 재앙을 겪고 있는 한국을 ‘피로사회’의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려 하는 대신 자기 탓을 하고, 순위와 평점으로 인간을 상업화하는 세상에서 ‘혁명’은 가당치도 않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한병철은 자본주의의 맹목적인 축적의 근원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고찰한다. 인간은 더 많은 자본을 가질수록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불멸의 환상을 갖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본을 축적한다. 책은 그런 생존 양식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설죽은 삶, 산 죽음’의 좀비 상태로 규정한다. ‘삶의 총체적 상업화’ 흐름은 무자비한 자기 착취를 가속화한다. 이 책에서 한병철이 그려 낸 초상대로라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합병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이 만든 ‘총체적 감시사회’,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이 모두 사라진 ‘투명사회’(또는 ‘같음의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저자가 지목하는 건 지금과 ‘다른 삶’이고, 역설적이지만 “지금이 저항을 조직할 때”이며 인간의 ‘의식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글과 말로 철학적 봉기를 꿈꾸는 당대의 철학자가 겨냥하는 건 신자유주의의 권력 기술이 아니다. ‘자유와 존엄’을 잃어 가는데도 어떤 저항감이나 비판 의식도 품지 못하는 무감각한 세태를 통렬하게 꼬집는다.
  • “죽이고 싶었다”…日전철서 20대 여성, 男 4명에 ‘묻지마 칼부림’

    “죽이고 싶었다”…日전철서 20대 여성, 男 4명에 ‘묻지마 칼부림’

    새해 들어 일본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도심 전철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까지 일어났다. 4일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쯤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야마노테선의 아키하바라역과 오카치마치역 사이 구간을 달리던 전철 안에서 20대 여성이 흉기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전철 내에 있었던 남성 4명이 다쳤다. 이 중 2명이 각각 가슴과 등을 찔리는 등 총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해당 여성을 살인미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찔렀다”며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과 피해자들은 사건 당일 처음 본 사이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 1개를 확보했으며, 여성의 가방에서는 흉기 1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당시 전철 안에 있던 30대 남성은 “다른 승객이 ‘위험해’라고 말하면서 달려왔다”며 “여성이 승객들에게 붙잡혀 저항하고 있었다. 발밑에는 칼이 떨어져 있었다”고 NHK에 전했다.
  • 광복회 “‘독도 논란’은 국방부 장관의 편향된 역사 인식 때문”

    광복회 “‘독도 논란’은 국방부 장관의 편향된 역사 인식 때문”

    광복회는 1일 국방부가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데 대해 “국방부 장관의 가장 큰 임무는 국토 수호인데 기본적인 자세조차 망각했다”며 비판했다. 광복회는 이날 언론에 보낸 새해 첫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며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며, 앞으로도 대일 자세는 한 치도 밀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광복회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겨냥해 “언론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자 정당한 것처럼 변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을 질책하자 그제야 서둘러 교재를 전량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며 “지금도 장관은 독도가 분쟁지역이라 믿는데 대통령의 질책으로 겉치레로 수정할 뿐이라고 우리는 인식한다”고 했다. 단체는 신 장관이 ‘편향된 대일관’을 가졌다며 이번 일이 예견된 참사였다고 주장했다. 광복회는 “홍범도 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전시실을 치우며 애국 저항정신을 외면해왔는데, 그런 장관이 어떻게 우리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광복회는 “국방부가 편찬한 ‘정신 나간’ 정신전력교재가 그동안 신원식 장관의 일탈적 언행과 역사의식, 대한민국과 군 정체성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의 반영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교재를 다시 만들기 전에 올바른 군의 정체성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광복회는 군이 “국군의 뿌리를 해방 후 일제 잔재들이 몰려들어 조직된 국방경비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광복회는 “국군의 정체성은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해산된 대한제국군 성원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일으킨 의병, 그분들이 만주로 이동하여 안중근 의사처럼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고 외치며 조직했던 독립군, 그 후 항일 투쟁 대열에서 임시정부 이름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한 광복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장관은 이번 일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친일 매국적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의를 국민에게 먼저 보여주고 장관직을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말 전군에 배포할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구를 기재했다가 논란이 일자 전량 회수키로 했다. 신 장관도 해당 논란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 [메멘토 모리] ‘사라피나’ 극본 쓴 음본게니 은게마 자동차 사고로…

    [메멘토 모리] ‘사라피나’ 극본 쓴 음본게니 은게마 자동차 사고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뮤지컬 ‘사라피나!’는 나중에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영화로 옮겨져 많은 이들이 감동을 얻은 작품이다. 이 뮤지컬의 극본을 쓴 음본게니 은게마가 자동차 사고로 68세 삶을 접자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영국 BBC가 28일(현지시간) 전했다. 고인은 전날 저녁 이스턴 케이프 지방의 루시키시키 마을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다 다른 차량과 정면 충돌해 사망했다. 이 나라에서는 이달만 벌써 700명 이상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열악한 도로 사정과 거친 운전습관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고인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차별에 신음하는 흑인들의 삶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들 덕이었다. 유족은 고인의 작품들이 소수 백인 통치 시대의 “저항 정신을 투영했다”고 돌아봤다. 사실 고인은 극본가일뿐만 아니라 작곡자, 무대 연출자이기도 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며 억압받는 남아공인들의 인류애를 존중하고 해방 투쟁의 서사를 맛깔나게 창조해냈다”고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1955년 세상에 태어난 고인은 기타 세션 연주자로 시작했지만 1970년대 연극 제작에 뛰어들어 1981년 연극 ‘Woza Albert!’(줄루어로 일어나 알버트!란 뜻)을 무대에 올렸는데 예수가 아파르트헤이트에 재림하는 일을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남아공 시위 현장에서도 그의 작품이 풍자극으로 공연됐고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무대에도 올려졌다. 뮤지컬 ‘Asinimali!’(줄루어로 우리는 돈 없어요!란 뜻)을 제작했는데 탁월한 제작 역량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들었다.그 뒤 1976년 소웨토 봉기를 배경으로 한 ‘사라피나!’(1987)로 남아공 젊은이들의 혁명 정서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전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제작된 것은 1992년이었다. 남아공 여배우 소피 은다바는 세대를 이어 고인은 기억될 것이라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당신의 창의적인 작업과 음악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안긴 것에 감사드린다”고 추모했다. 은게마는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뒤에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문제들을 무대에 올렸다. 이듬해 ‘사라피나 2’를 제작했는데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철저히 무시됐던 후천성 면역결핍증(HIV/Aids)의 위험성을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 뮤지컬 제작에 새 정부 보건부 기금 1400만 란드(약 9억 6400만원)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독립적인 회계 감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 과정에 제대로 통제받지 않은 지출이 있었으며 에이즈에 대한 메시지 일부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은게마는 2002년에도 자신의 노래 ‘AmaNdiya’(줄루어로 인디안이란 뜻)로 논란에 휩싸였다. 남아공의 인도인 커뮤니티가 얼마나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착취당하는지 그려낸 가사가 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방송 금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 누군가를 인종차별적인 가사로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하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은게마는 딱잘라 거절했고 금지 처분을 냉소에 부쳤다. 그는 BBC에 “아티스트가 뭐라고 썼건 어떤 기관도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된다”고 공박했다.
  • “향약과 향교의 정신과 가치, 현대적 주민자치로 계승해야”

    “향약과 향교의 정신과 가치, 현대적 주민자치로 계승해야”

    1023차 제84회 주민자치 연구 송년 세미나 성료 상부상조하던 마을공동체 전통인 향약과 마을 교육의 장이던 향교의 정신을 현대적 주민자치를 통해 되살리는 방안이 제84회 주민자치 연구 송년 세미나에서 마련됐다. 김홍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번 세미나에서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향약의 역사적 전개와 주민자치’라는 첫 번째 발제에서 특히 주민자치의 원형인 촌계에 대해 강조했다. 촌계, 생활공동체로서 주민자치 기능 수행 박 교수는 “촌계는 제사(축제)·생활·노동공동체 기능을 통해 기층민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독자성을 유지해 왔고 19세기 중후반에는 촌계에서의 두레 조직이 지배층 수탈에 저항한 농민항쟁의 일부세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며 “지배층의 이념 및 사상과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족의 동계에 흡수되는 등 외형적 형태는 변해왔지만 그 모습이 용해되거나 분해됨 없이 생활공동체로서의 자생적 필요를 바탕으로 오랜 전통을 유지하여 왔다”고 전했다. 또한, 이 같은 전통은 1895년 최초의 주민자치회법이라 할 수 있는 향회조규‧향약판무규정으로 집대성되는 듯했지만 제대로 시행되기 전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정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경하 교수는 항회조규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조선시대 향촌자치의 유제인 향회, 유향소, 향약의 전개를 통해 주민자치와 민권향상을 위한 끈질긴 노력과 희생으로 정립된 것을 반영해 제도화 된 것”이라며 “근대적 측면에서는 한계를 갖지만 일정 부분의 자치권 부여, 주민참여, 국왕의 법률적 승인 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냉정한 현실 맞은 향교와 서원, 새로운 혁신 필요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향교와 서원의 이해’라는 두 번째 발제에서 향교가 마주한 냉정한 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최 회장은 ▲고령화 문제 ▲젊은 인력 부족 ▲대도시 유림 활동 부족 ▲유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 부족 ▲유림의 자질 향상 문제 등을 난제로 꼽으며 “유교문화를 젊은 계층에게 계승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또 “최근 향교와 서원이 새로운 교육과 체험, 전통문화의 장으로 탄생하고 있다. 민족의 주체성은 향교와 서원의 활성화를 통해 달성된다”면서도 “그러나 고령화로 인해 발전이 느리고 현대문명에 둔감하다. 과거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이 될 것이다. 주민자치와 함께 하여 좋은 기능을 되살릴 수 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향약과 향교의 전통, 주민자치로 재해석할 수 있어”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장(중앙대 특임교수)은 ‘한국의 주민자치 전통 온고이지신 주민자치 제도화 모색’이라는 세 번째 발제를 통해 “조선 향약을 보면 양반에 의한 자치인 향규, 수령에 의한 자치인 수령향약 등은 모두 실패하고 주민의 자치인 촌계만이 성공했다. 현대적 의미로 볼 때 주민이 자치의 주제가 되어야 하고 자치회가 자치적, 민주적 절차로 운영돼야 주민자치가 성립됨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현대의 주민자치는 주민자치회를 주민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쓰고 있다, 이를 즐기는 정치인들, 주민자치를 채가려는 시민단체들, 외면하는 학자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회장은 또 “주민자치의 출발점은 읍면동·통리 민주화다. 이를 통해 탈행정화·탈정치화·탈단체화를 이뤄야 한다. 성공한다면 행정이나 정치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민자치가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약과 향교의 가치와 정신을 자치사업, 자치행사, 자치강좌를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입주민 환영회, 성년식, 마을인문학 강연 등의 콘텐츠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제13회 대한민국 지방시대 사회적 협력 대토론회’의 시발점 돼” 지정토론자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유교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실천과 생활화의 내실이 부족한 향교, 그리고 향약의 자립과 협동정신을 계승하지만 정체성 확보에 부심하는 새마을회가 주민자치의 정신적 공동체 가치를 재생산하는 협력이 필요하다”며 “각 조직의 한계를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인 연대를 바탕으로 향약(향교)-새마을회-주민자치회가 힘을 합쳐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재창조, 재부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재 성신여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시도 각 지역마다 향약을 문화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지난할 수 있다. 관건은 공동체의식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끈끈한 공동체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향약이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며 “하지만 현재는 개인주의, 1인 가족, 고령화, 다문화가족 등 제반 여건이 다양하다. 따라서 향약이라는 규약을 문화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화의 유형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유승상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향약과 향교의 현대적 개선방안을 AI와의 대화로 진행해 눈길을 모았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성균관유도회, 평생교육 관련 단체,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한국주민자치학회 등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 확산 및 실천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취지로 내년 1월 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예정된 ‘제13회 대한민국 지방시대 사회적 협력 대토론회’의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 [씨줄날줄] 교황과 동성애/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교황과 동성애/황수정 수석논설위원

    동성애자는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 같은 성을 지닌 사람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뜻한다. 동성애자들은 ‘행복한’이라는 뜻의 ‘게이’(gay)로 스스로를 부른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여성들끼리 사랑을 나눴다는 데서 유래한 단어가 ‘레즈비언’(lesbian)이다. 동성애에 관한 인류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19세기까지는 ‘동성애적 정체성’을 칭하는 용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는 ‘동성애적 행태’를 칭하는 용어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소크라테스가 소년애를 완벽한 사랑이라 찬양하는 구절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진정한 정신적 사랑은 남성끼리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집트에서는 동성 커플이 나란히 매장된 고대 무덤이 나왔다. 고대 인도에는 동성 커플을 위한 카마수트라(성행위 교과서)도 있었다. 일본 중세시대에도 무사, 귀족, 지식인 등 지배계급에서 미소년을 상대로 한 동성애가 유행했다는 문헌이 전한다. 작가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비운은 근대 문화사를 흔든 사건이다. 자녀 둘을 둔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2년간 옥살이로 파산하고서 생을 마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사제 축복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결혼식, 미사 등 교회 의식이 아닌 상황이라는 조건을 달았으나 종교계를 뒤흔드는 파격이다. 가톨릭교회는 지난 1300여년간 동성애를 ‘금지된 사랑’으로 철저히 배척했다. 공의회 역사에 동성애를 단죄한 살벌한 율법이 기록돼 있다. 1178년 공의회에서는 이단과 맞먹는 죄로 규정했다. 중세시대의 동성애자들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던 까닭이다. 동성애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한 이후 줄곧 뜨거운 감자였다. 진보 성향인 교황은 지난 10월에도 성전환자(트랜스젠더)가 세례를 받고 대부·대모가 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300년 만에 줄줄이 깨지는 가톨릭 금기에 교황청 내부에서도 저항이 크다고 한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둘러싼 희대의 논란도 먼 훗날에는 가톨릭의 작은 역사로만 기억될지 모른다.
  • “개처럼 끌려가 맞았어요” 팔레스타인 10명이 이스라엘군에 당한 일 증언

    “개처럼 끌려가 맞았어요” 팔레스타인 10명이 이스라엘군에 당한 일 증언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개처럼 끌려갔어요.” 이스라엘군에 닷새 붙들려 있다가 풀려났다는 14살 팔레스타인 소년 마무드 젠다는 콧등에 붉은 피멍이 든 채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젠다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스라엘군 병사에게 얼굴을 걷어차였다면서 “그는 내게 와서 ‘하마스냐’고 물었고, 난 하마스나 저항세력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난 학교를 오가는 아이일 뿐이다. 밥을 먹고 친구랑 놀고 집에 간다. 살면서 그밖의 일은 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동갑인 아흐마드 니메르 살만 아부 라스는 “이스라엘인이 무섭다. 난 그들이 내게 뭔가를 하길 원치 않는다”면서 구금 당시 있었던 일을 털어놓길 거부했다. 미국 CNN 방송은 젠다와 아부 라스처럼 가자시티 알자이툰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팔레스타인인 10명을 인터뷰한 결과 폭력과 학대, 모욕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의 손목은 구금기간 계속 차고 있던 수갑 때문에 붓고 찢어져 있었으며, 손등에는 빨간 마커로 번호가 적혀 있었다. 병원 대변인인 할릴 알다크란 박사는 “팔에는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었고, 전신에 폭행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병원에 도착할 당시 이들은 모두 육체적·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제다의 아버지 나데르는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과 군인의 고함, 불도저가 집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군인들이) 남녀를 분리한 뒤 바지를 벗고 셔츠를 올린 채 줄을 서도록 했다”고 연행될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 올해 16살인 무함마드 오데는 “(이스라엘군이)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머리에 발을 올린 채 ‘하마스냐’고 물으며 때려댔다. 추워서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입을 것이나 덮을 것을 요구해도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 구금기간 제대로 된 음식물과 식수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CNN에 말했다. 당뇨병을 앓는 40대 남성은 인슐린 투여가 중단되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다가 의식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군은 “수감자들은 국제법에 따른 대우를 받았다”면서 “모든 수감자를 존엄하게 대우하려 노력 중이며, 가이드라인이 준수되지 않은 모든 사건에 대해선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CNN은 전했다.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을 벌거벗겨진 채 연행한 데 대해서는 “(자폭용) 폭탄조끼나 기타 무기류를 숨기고 있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제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군이 그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면서 비인도적 대우를 했다고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오마르 샤키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장은 “민간인·전투원 여부와 상관없이 구금된 이들은 모멸적이고 굴욕감을 주는 대우나 개인적 존엄을 해치는 행동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면서 무력분쟁시 민간인의 구금이 국제법상 허용되긴 하지만 ‘보안상의 긴급한 이유로 반드시 필요할 때’로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 표준길이 1m 탄생 뒤에 프랑스혁명 있었다

    표준길이 1m 탄생 뒤에 프랑스혁명 있었다

    프랑스가 ‘가장 크고 변하지 않는 물체’를 기준 삼아 단위로 만든 미터법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측정 체계로 꼽힌다. 1m는 적도에서 북극까지 거리를 1000만분의1로 나눈 값이다. 각 변 길이 10분의1m인 정육면체 부피를 1ℓ 그리고 물 1ℓ의 질량을 1㎏으로 정했다. 당시 프랑스에 1000여개의 단위가 있고, 지방에 있는 여러 변종 측정까지 합치면 무려 2만 5000종의 단위가 난립했다고 하니 그 불편함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단위 통일은 프랑스혁명 당시 중요한 의제이기도 했다. 교역과 농업 생산을 촉진하려는 귀족 그리고 귀족의 속임수에 속지 않으려는 평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측정 방법과 단위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치열한 탐구,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 시대정신 변화 그리고 기존의 것을 지키려던 이들의 반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표준 길이 1m가 탄생한 배경에 프랑스혁명이 있었고, 토지를 측량하면서 그린 지도는 제국의 식민지 지배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 책은 역사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철학을 넘나들며 도량형의 변천을 살핀다. 뼈에 그은 금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면에 숨겨진 갈등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영국 정부가 1965년 미터법 사용을 위한 10년 계획을 발표하자 자경단인 ‘미터법 저항단’이 전통적 제국 도량형인 마일, 야드, 피트를 쓰자며 전국에서 3000개가 넘는 표지판을 뽑기도 했다. 18세기 미국 개척자들이 ‘야생의 땅’을 측량해 ‘관리할 수 있는 땅’으로 바꾸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지도를 그린 역사, 미터법이 전 세계를 정복하게 된 과정, 통계가 학문으로 자리잡는 과정 등을 살피는 일도 흥미롭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자기 자신을 자연스럽게 숫자로 표현하는 모습 등을 거론하며 현대사회에서 측정의 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커진 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 세상과의 불화를 꿈꾸는 당당한 詩 ‘부당당 부당시’

    세상과의 불화를 꿈꾸는 당당한 詩 ‘부당당 부당시’

    이질적 감각과 부정성의 경험에 대한 모험 서유 지음/시인의일요일/176쪽/1만 2000원서유 시인은 시인으로 등단하기 십여년 전에 이미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다. 소설의 입체적 시점이 가미된 그의 시세계는 다소 전투적이다. 이따금 독자를 곤혹스럽게까지 한다. 고양과 위로의 전통적 예술 개념에서 벗어나 대중적 취향과는 동떨어진 지점에 시가 위치한다. ‘부당당 부당시’라는 시집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 있듯이 시인은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물러나 반상업적이고 반자본주의적 형식을 통해 예술의 자율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보존하려 노력한다. 평균화된 취향에 극렬히 저항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낯설고 난해한 세계를 드러내고,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이 아니라 거북하고 불쾌한 모습을 통해 시인 고유의 인식을 보여준다. 서유의 시는 습관화되고 자동화된 감각에 덧씌워져 있는 관습의 꺼풀을 벗기고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예술이 지닌 의미와 내용의 도구화를 지양하고 사회적 소통마저 거부하려는 의지가 바로 서유의 ‘부당시’다. 암묵적 사회 지배 체계에 대한 저항과 순응 사이의 경계에서 서유 시의 주체들은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자본의 거대 담론이 본격화되면서 정신적 가뭄이 시작되었고, 가볍고 즉흥적인 포스트모던을 지향하는 이 시대에 시인은 ‘아침부터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당대성과 정치성이 좌편향적인 걸로 감추지 않는다. 세상의 부당당함을 알리기 위해 기꺼이, 기괴한 표정을 찾아 방구석을 기어다니는 짐승을 거부하지 않고 존재감이 희박한 주체들의 표상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적 세상이 폭력적으로 붙여 준 이름 ‘제니퍼’를 거부하자고 한다. 서유 시인은 2017년 ‘현대시학’ 시로 등단했으며, 200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했다. 시집 ‘부당당 부당시’가 첫 시집이다.
  • “아버지가 수치스럽다” 아들은 끝내 목숨 끊었다…“가슴 만져보자” 4명 살해 老어부[전국부 사건창고]

    “아버지가 수치스럽다” 아들은 끝내 목숨 끊었다…“가슴 만져보자” 4명 살해 老어부[전국부 사건창고]

    2008년 어느날 전남 보성군의 한 마을에 살인죄로 구속된 주민의 40대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외지에서 살던 큰아들이었다. 마을에 “부친의 범죄로 충격받고 괴로워하다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의 아버지는 ‘보성 어부 살인사건’의 오종근(범행 당시 69세)이다. 그 후 얼마 안가 오씨의 처도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곱창집 하는 딸네 집으로 갔다. 오씨의 2남 5녀 중 유일하게 보성에 살던 딸은 사건 직후 “아버지고 뭐고, 그런 짓을 한 사람과 난 상관이 없다. 이젠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큰아들도 사건 나고 바로 죽어버렸다”고 소리쳤다. 가족도 오씨를 버렸다. “부끄럽다” 괴로워하던 아들부친 범행 1년 후 극단적 선택 9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판결문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는 큰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1년 전쯤인 2007년 8~9월 전남 보성 득량만 해상에서 2차례에 걸쳐 20대 대학생 커플과 20대 여성 2명 등 모두 4명을 살해했다. 바다 구경을 온 이들을 배에 태워 성폭력을 저지르려다 물에 빠뜨려 죽인 것이다.성추행 목적 살인 한 달도 안돼 재범범행 후도 주꾸미 잡으며 일상 누려 오씨는 그해 8월 31일 오후 보성군 회천면 한 선착장에서 여행을 온 피해자 김모(당시 19세)군·추모(당시 19세)양을 자신의 1t짜리 주꾸미 배에 태우고 어장이 있는 득량만 바다로 나갔다. 교제 중인 두 대학생은 “배로 바다를 돌고, 내 어장도 구경시켜 주겠다”는 말에 의심 없이 탔다. 30분쯤 나가자 오씨는 추양에게 흑심을 품었다. 그는 배를 멈춘 뒤 뱃전에 나란히 앉아 있던 둘 뒤로 몰래 가 김군을 양손으로 붙잡고 물속으로 밀어버렸다. 김군이 허우적거리면서 배에 오르려고 하자 삿갓대(갈고리가 달린 2m짜리 막대기 어구)로 수없이 내리쳤다. 오씨의 공격은 머리와 다리 등을 가리지 않았고, 김군은 익사했다. 이어 그는 이 모습을 보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추양에게 다가가 “아가씨, 가슴 좀 만져보자”고 하면서 손을 뻗었다. 추양은 두 손으로 오씨의 손을 쳐내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는 결국 추양의 가슴과 다리를 움켜쥐고 바다에 밀어 빠뜨렸다. 이어 추양이 배에 다가오자 삿갓대로 계속 밀쳐내 숨지게 했다. 오씨는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같은해 9월 25일 오전 11시 30분쯤 인근 선착장에서 안모(당시 23세·간호사)씨와 조모(당시 24세·회사원)씨를 배에 태웠다. 인천과 시흥에 사는 두 여성은 추석을 맞아 여행을 왔다 “배로 바다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오씨의 말에 응했다. 노인이어서 경계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두 여성을 득량만 해상을 구경시킨 뒤 오후 들어서자 먼바다에서 배를 멈췄다. 이어 안씨에게 다가가 “아가씨, 가슴을 만져도 되나”라며 손으로 안씨의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안씨는 오씨의 손을 쳐내며 반발했다. 조씨도 합세해 오씨의 몸을 붙잡고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오씨는 안씨를 배 바닥과 선실 등에 부딪히게 한 뒤 바다로 밀어 빠뜨렸다. 이어 조씨 목을 조른 뒤 선실 등에 처박고 바다로 밀어 숨지게 했다. 안씨가 배에 오르려 하자 삿갓대를 휘둘러 막았다.“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문자)“어따…하냐” 범인 음성(119 전화)검거 후 “배 얻어 탄 걔들이 잘못” 첫번째 범행 이후에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오씨는 두번째 살인에서 정체가 드러났다. 안씨가 살해되기 직전인 오후 3시 36분쯤 육지에 있는 사람에게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요, 배 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안씨가 오씨 배를 타기 전에 30대 여성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줘 그녀의 남편 전화번호가 찍혀 있어 가능했다. 남편과 같이 있던 여성은 이상한 생각에 즉시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두 여성이 탄 배를 확인하고 선주인 오씨를 찾아갔다. “내 나이 칠십이다. 여자 두 명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태연히 말했다. 경찰은 그의 배 수색에 나서 1차 피해자인 여대생 추양의 신용카드, 볼펜, 머리끈 등을 찾아냈다. 추양의 시신은 살해된지 사흘 만에, 남자 친구 김군의 시신은 닷새 만에 각각 발견됐지만 단순 실족사나 동반자살로 종결 처리되고 있었다. 대학 1학년생인 젊은이 둘을 살해하고도 오씨는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버젓이 생업에 종사했다. 그는 자식들이 출가하거나 외지로 나간 뒤 아내와 함께 보성읍에서 살면서 버스를 타고 회천면으로 가 주꾸미잡이를 하면서 생계를 잇고 있었다. 경찰에 긴급 체포된 오씨는 “안씨가 오줌을 누려고 선미에서 선수 쪽으로 가다 실족해 바다에 빠졌고, 조씨가 이를 붙잡으려고 하다가 함께 물에 빠졌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1차 범행도 “파도가 높이 쳐 바다에 둘 다 빠졌는데 구하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추양의 디지털카메라가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오고, 119와 통화한 내용이 드러나자 범행을 자백했다. 추양이 119에 건 네 번째 통화에는 “어따…(전화)하냐”고 말하는 오씨의 음성이 섞여 있었다. 김군 시신은 양쪽 발목과 어깨·팔이 부러지거나 찢어지고, 조씨 시신에는 목졸림 흔적이 있었다. 오씨는 범행이 들통나자 “내 배를 탄, 공짜로 얻어타려 한 걔들이 잘못이다”고 황당한 변명을 늘어놨다. 그는 IQ(지능지수)가 73으로 측정됐으나 재판부는 “고령과 ‘무학’(초등 2년 중퇴) 탓으로 보인다”며 “지각과 기억력 등 정신에 특별한 장애가 없고, (키 165㎝의 왜소한 체격에 당시 한국식 나이로 70세 고령이지만) 오랜 세월 어부로 일해서 힘은 젊은이 못지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배는 파도와 사람의 움직임에 쉽게 흔들려 익숙하지 않으면 젊은이도 힘 쓰기 어렵기 때문에 오씨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공간이었다.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사형 선고받자 ‘위헌 심판’ 제청→‘합헌’ “아들이 왜요”…미집행 최고령 사형수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그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사형 선고’가 이어졌다. 1심이 끝나자 오씨 측은 사형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1996년 7대 2로 합헌 결정한 이후 두번째 사형제 합헌이었다.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은 오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광주고법은 2010년 3월 “두번째 범행은 추행 목적으로 피해자들을 더 외진 선착장으로 유도해 승선시킨 뒤 젊고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 유족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고도 오씨는 태연히 생업에 종사하고 허무맹랑한 변명을 늘어놓아 더 큰 고통을 안기고 있다”며 “오씨에게서 개전의 정이나 향후 건전하게 사회 복귀할 수 있는 교화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고 항소를 기각, 1심의 사형 선고를 유지했다. 대법원(주심 안대희 대법관)은 그해 6월 “사형 선고의 양형 기준이 아무리 엄격하다고 해도 사형제가 존치하는 한 오씨의 범행에 상응하는, 즉 영원히 사회와 격리하는 극형 선고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큰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큰아들이 왜요”라고 물었다는 오씨는 현재 미집행 사형수 59명 중 최고령(만 85세)으로 광주교도소에서 1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 ‘77학번’…‘서울의봄’ 벙커 지키다 숨진 정 병장, 명예졸업장 받을까

    ‘77학번’…‘서울의봄’ 벙커 지키다 숨진 정 병장, 명예졸업장 받을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다 숨진 조민범 병장의 실제 인물인 정선엽 병장이 명예졸업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대학교는 정 병장에게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 중이라고 6일 밝혔다. 영화에서 조민범 병장으로 나온 정 병장은 1956년생으로, 광주 조선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동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77년 조선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뒤 바로 입대했다. 국방부 헌병으로 복무하던 정 병장은 제대를 얼마 앞두지 않은 1979년 12월 13일 오전 1시 40분쯤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연결하는 지하 벙커에서 1공수여단 소속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정 병장은 국방부를 점령한 반란군이 자신의 소총을 빼앗으려 하자 공식 명령체계에 따르겠다고 맞서다가 현장에서 사살당했다. 조선대는 정 병장의 유족에게 연락을 취하는 한편, 단과대 교수회의 등을 거쳐 명예졸업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1월쯤 명예졸업장 수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순직자’로 분류됐던 정 병장은 지난해 전사로 인정됐다. 무장 반란에 저항하다가 사망한 정 병장의 전사를 군이 인정하며 43년 만에 명예 회복이 이뤄졌다. 한편 배우 정우성이 열연했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은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을 모티브로 했는데, 장 전 사령관 역시 조선대 출신이다. 1931년에 태어난 장 전 사령관은 대구 상고를 졸업하고 6·25가 발발하자 19세의 나이로 육군종합학교에 갑종 장교로 지원, 소위로 임관하면서 대학에 가지 못했다. 이후 1952년 광주에 군사교육총감부가 설치되고, 조선대가 위관·영관 장교 위탁 교육을 맡으면서 법학과 학위를 받게 됐다. 조선대 관계자는 “반란군을 막기 위해 스러져간 정선엽 병장의 참된 군인 정신을 기리고자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 ‘1000만원→100억원’ 24세 주식천재, 비결은?

    ‘1000만원→100억원’ 24세 주식천재, 비결은?

    1000만원을 투자해 100억원 수익을 거둔 24세 미국 청년이 화제다. 이 남성은 온라인에서 주식 투자법을 공부했다고 밝혔다. 미국 투자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9일(한국시간) 24세에 800만 달러(약 100억원)의 자산을 모은 잭 켈로그를 소개했다. 켈로그는 온라인 주식 트레이딩 수업으로 주식 트레이딩을 배운뒤 2021년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그의 종잣돈은 단돈 7500달러(약 1000만원)이었으나, 2년 동안 그는 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켈로그는 자신의 투자 원칙으로 ‘KISS’를 제시했다. 뜻은 ‘Keep It Simple and Stupid’(단순함과 우둔함을 유지하라)이다. 그는 “추세선, 저항선, 지지선, 거래량 등 기본적인 데이터만 두고 주식을 거래했다”며 “지표에 의존하지 않았다. 데이터에 의지하면 실제 거래되는 가격 추세를 놓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면 실제 가격보다 지표에 더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 실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락장에는 수익을 내기 위해 공매도 기법도 활용했다. 또 매수(롱), 매도(숏) 포지션도 유동적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켈로그는 투자자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모든 투자자가 같은 데이터를 받아 접근한다. 하지만 해당 데이터를 보고 무엇을 하느냐는 건 본인의 결정에 달렸다”고 말했다. 또 켈로그는 “투자금을 잃는 대부분의 트레이더는 정신력이 약하다는 것이다”며 “최고 전략, 지표를 가질 수는 있지만 이를 끝까지 고집할 수 있는 우둔함”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부분 투자자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광주시교육청 ‘2023 청소년독립페스티벌’ 개최

    광주시교육청 ‘2023 청소년독립페스티벌’ 개최

    광주시교육청이 최근 ‘2023 청소년독립페스티벌’을 개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며 5·18민주광장에서 진행됐다. ‘청소년독립페스티벌’은 광주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며, 청소년들의 자치와 자립, 역사의식, 민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광주 청소년의 사회참여 축제다. 지난 2011년 시작해 올해 13회를 맞았다. 이번 행사는 고려인마을 아리랑합창단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체험부스로 구성된 ‘이슈놀이터’ ▲실감 나게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알 수 있는 ‘테마전시’ ▲광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독페테리아’ ▲청소년들의 끼를 발산하는 ‘버스킹’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청소년 민주성회’ 등 청소년은 물론 광주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채워졌다. 시교육청은 이번 행사를 위해 지난 7월부터 청소년추진단을 구성해 청소년 주도로 축제를 기획, 준비, 운영했다고 전했다. 이날 고등의회 부스를 운영한 김성민 광주광역시고등학교학생의회 부의장은 “94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차별과 불의에 저항했던 학생 선배들의 정신을 앞으로도 이어 가겠다”며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의 주인공으로 다양한 학생참여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은 “전국 학생항일운동의 계기가 된 광주학생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해 청소년의 사회참여 활동에 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겠다”고 말했다.
  • ‘초등생 22명 상습 성폭행’ 교장 사형 집행, 죗값 목숨으로…중국의 단죄

    ‘초등생 22명 상습 성폭행’ 교장 사형 집행, 죗값 목숨으로…중국의 단죄

    중국 법원이 초등학생들을 상습 성폭행·추행한 농촌 학교 교장을 사형으로 단죄했다. 남방도시보 등 현지 매체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간쑤성 핑량시 중급인민법원은 지난 7일 최고인민법원의 승인을 받아 장모(44) 전 초등학교 교장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19년 6월까지 핑량시 난징현의 한 농촌 초등학교 교사 겸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 기숙사에서 초등학생 22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기소됐다. 그는 문제 풀이나 과제물 제출 등을 핑계로 학생들을 기숙사로 불러들이고, 체벌이나 정신적 협박 등을 통해 저항하지 못하게 한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판결에 불복, 항소했으나 간쑤성 고등인민법원이 기각해 사형이 확정됐다. 앞서 지난 5월 23일 후베이성 샤오간시 중급인민법원, 산둥성 웨이팡시 중급인민법원, 허난성 안양시 중급인민법원은 각각 미성년자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니모, 왕모, 쑨모 씨 3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은 지난 5월 발표한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 법률 적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하도록 했다. 중국은 “공민의 신변과 재산의 안전을 심각하게 침해한 일부 범죄자에게 사형 이외의 일반 형벌은 가하기 어렵다”며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에 처하는 범죄 조항도 가장 많은 국가다. 강력 범죄는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돼 있다. 중국의 한 표본조사에선 응답자의 88%가 사형 폐지를 반대했을 정도다. 실제로 중국은 매년 수천명의 사형을 집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이 ‘바딘광장’ (Ba Dinh Square)’을 가로 질러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호찌민의 묘소에요. 호찌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방부처리한 호찌민의 시신을 직접 보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어요. 호찌민의 시신은 매년 러시아로 보내서 점검한다고 해요.” 솔직히 그동안 호찌민(Ho Chi Minh, 1890~1969)’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에는 사회주의자인 호찌민의 이름을 들어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람보’, ‘머나먼 정글’과 같이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시각으로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베트콩(Viet Cong)의 정신적 지주였던 호찌민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촌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는 호찌민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유와, 베트남의 경제도시 사이공을 호찌민의 이름을 붙여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로 바꾼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호찌민이라는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 아저씨’의 등장 호찌민은 1890년 5월 19일 베트남의 작은 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이었다. 호찌민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한 174개의 수많은 가명 중의 하나였다.  한편, 베트남 사람들은 국부(國父)인 호찌민을 ‘박호(Bác-Hồ, 伯胡)’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호 할아버지’ 또는 ‘호 아저씨’라는 의미이다. 호찌민이 태어났을 때에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원래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영국이 양쯔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메콩강(Mekong River)과 홍강(红河, Red River)이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다른 열강들처럼 식민지 베트남을 세금과 노역으로 착취했다. 1907년 프랑스의 착취에 반발하는 농민들의 봉기가 절정에 이르던 당시 호찌민은 프랑스식 국립학교 학생이었다. 호찌민이 다니던 학교는 졸업만 하면 고위관리가 될 수 있는 곳이었지만, 호찌민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외국어에 능숙했던 호찌민은 자청해서 농민들의 주장을 번역해서 프랑스 당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면서 시위에 연루된 호찌민은 퇴학당했고 프랑스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호찌민은 프랑스 경찰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정착해 교사가 되었다. 그러던 1911년 10월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후 그는 남부 항구도시 사이공(現 호찌민시티)에 나타났다. 호찌민은 지금 이대로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의 나라들이 힘을 가진 이유를 직접 보기 위해 주방보조 선원이 되어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그렇게 호찌민의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호 아저씨의 성장 프랑스로 가는 배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며 프랑스에 도착한 호찌민은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는 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경험하면서 가난하고,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조국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호찌민은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원래 베트남은 중국 유교문화 영향을 받은 나라였다. 호찌민 역시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교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호찌민이 경험한 서구의 현실은 탐욕과 부의 착취로 보인 반면, 사회주의의 공동체 의식, 검소함, 평등 등의 가치는 유교문화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호찌민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것은 어떠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찌민의 사회주의는 일반적인 사회주의와는 결이 달랐다. 유교는 봉건시대 도덕, 종교는 아편으로 취급하던 사회주의 속에서도 호찌민은 공자,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했다. 또한 호찌민은 규율과 복종에 가치를 두는 사회주의 속에서도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의 네 가지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호찌민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사실상 베트남 민족주의자에 더 가까웠다.  호찌민은 1930년 '베트남 공산당'을 창설했고, 1941년에는 ‘베트민(Viet Minh, 越盟, 월맹)’을 결성해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에 맞서 싸웠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패망하자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4년 5월 6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하면서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은 열강들의 일방적안 결정으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나눠졌다. 이후 남베트남 정권의 폭정과 무장저항의 확산으로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호 아저씨의 유언 “내가 죽은 후 웅장한 장례식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신은 화장하고, 재를 셋으로 나누어 베트남의 북부, 중부, 남부에 뿌려 주길 바란다. 내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대신 넓고 튼튼하며 통풍이 잘 되는 집을 지어 방문객들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방문객들이 나를 추모하는 의미로 나루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룰 것이다.”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24번째 독립기념일 아침 호 아저씨는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79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검소하게 하고, 화장한 유해를 조국의 땅에 뿌려달라고 부탁한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방부 처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쿠바의 혁명가로 유명한 ‘체 게바라(1928~1967)’는 호찌민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호찌민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는 다양하다. 하직만 적어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 ‘호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다정하고 온화한 국부(國父)이자,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 강인한 지도자였다.
  • 신안 암태도 소작쟁의 승리 100주년 기념식 열려

    신안 암태도 소작쟁의 승리 100주년 기념식 열려

    전남 신안군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에서 소작쟁의 승리 100주년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신안군과 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는 2일 신안군 항일농민운동 독립유공자 후손과 암태도 소작쟁의 참여자 후손, 암태도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작쟁의 승리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암태도 소작쟁의 영령을 추모하는 헌화와 분향을 시작으로 약사보고와 헌정시 낭독 등이 진행됐다. 신안군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시대까지 350여 년 동안 이어진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과 일제강점기 전국적인 대규모 소작 항쟁의 도화선이 된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 등 농민운동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1923년 시작된 암태도 소작쟁의는 일제강점기 식민 수탈로 소작료가 4할에서 8할로 올라가자 암태도 소작인들은 소작인회를 조직하고 저항해 승리를 거둔 농민운동의 역사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암태면민을 비롯해 당시 노동단체와 언론단체 등 수많은 단체와 연대해 일제로부터 소작료 인하를 이끌어냈다. 1920년대 농민운동 중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농민운동이며, 이를 계기로 신안군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소작쟁의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기념사를 통해 “100년 전 이 땅에서 외친 섬사람들의 의기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대 식민 수탈에 맞서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됐다.”며 “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섬사람들의 항일농민운동 정신을 보존하고 계승해 갈 것이다.”고 말했다.
  • 맨발 걷기 예찬… 19세기 철학자는 이미 예견했었다

    맨발 걷기 예찬… 19세기 철학자는 이미 예견했었다

    최근 공원이나 등산길에서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맨발로 걸으면 면역력이 높아지고 혈액 순환이 좋아져 만성 염증 예방과 불면증 완화, 스트레스 저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도 맨발 걷기를 위한 공간 조성에 나서고 있다.그런데 19세기에 이미 맨발 걷기를 예찬한 사람이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가장 뛰어난 자연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로 인정받는 존 버로스는 ‘길가의 환희’라는 글에서 “맨발은 나의 표상이며 모든 걷는 자들을 대변하는 표상이다. … 밝은 기운들은 맨발로 걷는 자와 동행하며 이들을 돕는다”고 맨발 걷기의 장점을 강조했다. ‘걷기의 즐거움’(인플루엔셜)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등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세계적인 작가 34명이 걷기와 산책의 즐거움을 찬양한 글들을 골라 모았다.걷기는 지구에 인류가 나타난 이래 가장 원초적인 행동이자 운동이었다. 시대와 배경에 따라 걷기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공통된 것은 걷기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롭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인 문학가 레슬리 스티븐은 “진정으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 자체가 즐거워 걷는다”며 “다리의 근육 운동은 걷기가 자극하는 두뇌 운동이나 걸으면서 떠오르는 조용한 명상이나 상상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걷기는 평온하고 균형 잡힌 마음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있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은 온전한 나를 찾아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싶을 때는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걷기의 즐거움’이 작가들의 걷기 예찬을 엮었다면 ‘철학자의 걷기 수업’은 노자,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이 말하는 걷기에 관한 생각을 보여 준다. 한편 ‘걷는 존재’(위즈덤하우스)는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많지만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져 얼마 못 가 걷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쓰레기를 주우며 걷기, 바람 부는 날 걷기, 노래 부르며 걷기,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걷기 등 1년 52주 동안 매주 다른 방식의 걷기를 실천한다면 걷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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