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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하는 가을 관광주간 명소 6선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하는 가을 관광주간 명소 6선

     가을 관광주간이 25일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가을 시즌에 벌이는 가장 큰 이벤트다. 관광주간 실무기관인 관광공사는 관광주간 홈페이지(fall.visitkorea.or.kr)를 별도로 마련하고 ‘테마가 있는 관광공사 추천 여행코스 23선’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족, 연인, 친구 등과 함께 가면 좋을 여행코스 6선을 소개한다.  ●부부가 함께 떠나는 낭만여행  1. 바다와 호수 보며 느린 심호흡(충남 태안~예산, 2박3일)  <1일차 태안> 신진도, 영목항, 안면도자연휴양림, 꽃지해변  <2일차 태안~예산> 천리포수목원, 신두리 해안사구, 꾸지나무골 솔향기길  <3일차 예산> 예당호(느린꼬부랑길), 추사고택, 수덕사  태안에서 예산으로의 여행코스는 바다와 호수, 숲이 동행하는 여정이다. 첫째 날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을 따라 바지락, 소라, 우럭, 농어 등이 가득한 영목항에서 싱싱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고, 안면송 자생지인 안면도자연휴양림을 산책한다. 이어 서해안 최고의 일몰을 자랑하는 꽃지해변에서 해넘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둘째 날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천리포수목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두리 해안사구를 지나 솔향기길이 조성된 꾸지해변을 산책한다. 마지막 날은 예산의 예당호를 따라 이어진 시골길에서 추억을 만들고, 추사 김정희의 혼이 담긴 추사고택과 덕숭산 자락 천년 고찰인 수덕사에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2. 눈부신 가을, 책 한 권 들고 문학여행 떠나볼까(경북 군위~안동~영양~청송 3박4일)  <1일차 군위> 한밤마을, 인각사, 권정생 선생 생가  <2일차 안동> 안동군자마을, 도산서원, 이육사문학관  <3일차 영양> 주실마을, 감천마을, 두들마을  <4일차 청송> 객주문학관, 주왕산국립공원  경북의 군위, 안동, 영양, 청송에는 문학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많다. 3박4일의 여행코스는 돌담이 아름다운 군위의 한밤마을에서 시작해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와 ‘몽실언니’ 등 많은 작품을 남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생가를 둘러본다.  둘째 날에는 안동군자마을과 퇴계 이황의 학문과 행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도산서원 등에서 옛 향기를 느껴보고, 이어 육사문학관을 찾아 일제강점기의 민족시인인 이육사의 문학세계를 엿본다.  셋째 날에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향인 영양 주실마을을 찾아 그의 작품과 유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절필로 항거한 저항시인 오일도의 생가를 지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문열이 태어난 두들마을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껴본다. 마지막 날은 청송의 객주문학관과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주왕산국립공원을 둘러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체험여행  1. 특별한 테마가 가득한 이색 체험여행(충북 음성~괴산~충주 2박3일)  <1일차 음성~괴산> 음성 철박물관, 음성동요마을, 괴산 둔율올갱이마을  <2일차 괴산~충주> 산막이옛길, 괴산한지체험박물관, 충주 하늘재&미륵대원지, 수안보온천  <3일차 충주> 충주조정체험학교, 술박물관 리쿼리움,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충북 음성에서 괴산을 지나 충주로 이어지는 2박3일 코스는 철, 한지, 동요, 조정, 다슬기 등 다양한 이색 테마로 가득하다. 음성의 철박물관에서는 철을 친근하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음성동요마을은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놀이형 체험프로그램을 잘 꾸려놨다. 괴산 둔율올갱이마을에서의 다슬기 잡기 체험도 이색적이다.  둘째 날에는 산과 호수가 절경을 이루는 산막이 옛길을 걷는다. 괴산한지체험박물관에서 한지와 관련된 귀한 유물과 전통한지 뜨기 등의 다채로운 체험도 맛본다. 충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인 하늘재를 만나볼 수 있으며, ‘왕의 온천’ 이라고 불리는 수안보온천에서 여행의 피로도 풀 수 있다.  셋째 날은 충주조정체험학교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조정 체험 후에는 세계술문화박물관인 리쿼리움에서 세계 술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둘러본다. 이어 국내 유일의 고구려 석비인 고구려비가 위치한 충주고구려비전시관에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2. 맛 골목, 어촌, 동굴 등 종합선물세트(강원 강릉~삼척~태백 3박4일)  <1일차 강릉> 초당두부마을, 오죽헌, 안목해변 커피촌  <2일차 삼척> 삼척해양레일바이크, 장호어촌체험마을, 해신당  <3일차 삼척~태백> 새천년해안도로, 대금굴,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4일차 태백> 검룡소, 365세이프타운  강원 강릉에서 삼척을 거쳐 태백에 이르는 3박4일 코스는 초당두부마을에서 시작한다. 초당두부는 바닷물을 간수로 쓰는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며,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허균·허난설헌 생가터’ 에서는 ‘홍길동전’의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매년 가을 강릉커피축제가 열리는 안목해변 커피촌에서는 직접 내린 커피도 맛 볼 수 있다.  삼척에서는 해양레일바이크 체험과 장호어촌체험마을의 투명 카누 바다 래프팅으로 삼척의 절경을 감상한다.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내는 해신당의 독특한 풍경도 매력적이다. 셋째 날에는 삼척항이 보이는 새천년해안도로를 따라 경치를 구경하고, 모노레일을 따라 수억 년 전의 자연유산인 대금굴을 탐방하는 이색 체험을 해본다.  여행의 종착지인 태백에서는 태백의 생태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자녀들을 위한 안전체험 테마파크인 365세이프 타운은 자연재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안전교육도 실시한다.  ●친구와 함께 떠나는 가을추억여행  1. 20대의 감성을 채우는 서남 해안 온 더 로드(전남 여수~강진~해남~목포 3박4일)  <1일차 여수> 여수 엑스포해양공원, 해양레일바이크, 진남관, 수산물특화시장, 돌산공원(돌산대교 야경)  <2일차 여수~강진> 오동도, 다산초당, 백련사  <3일차 해남~목포> 땅끝전망대, 대흥사, 두륜산케이블카, 유달산 야경  <4일차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구 목포 일본영사관, 유달산조각공원  전라도에는 바다를 품은 해안도시 명소들이 많다. 여수에서 강진, 해남을 지나 목포에 이르는 3박4일 코스는 여수엑스포해양공원을 산책하고 해양레일바이크를 즐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풍당당한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의 객사를 지나 노래로 유명해진 여수 밤바다에서 돌산공원과 돌산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한다.  다음날에는 동백나무로 유명한 오동도에서 아주 특별한 바다를 경험하고,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에서는 정약용 선생이 머물렀던 다산초당과 백련사로 이어지는 옛길을 산책한다. 3일차에는 해남으로 이동해 한반도 육지 끝에 위치한 땅끝전망대를 오른다. 모노레일을 타면 전망대 입구까지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두륜산의 천년 고찰인 대흥사와 두륜산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두륜산의 전경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마지막 날에는 목포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유달산과 목포구시가지, 근대역사관을 둘러본다. 아름다운 목포의 야경은 별미다.  2. 전지현 루트에서 멜로 영화의 주인공처럼(부산, 경남 거제~통영 2박3일)  <1일차 부산> 영화의전당, 광안리해수욕장, 광안리 카페거리, 동백섬 등대전망대와 해운대해수욕장,달맞이길  <2일차 부산>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 남포동 영화광장, 자갈치시장, 송도해수욕장, 을숙도  <3일차 거제~통영> 바람의 언덕, 장사도해상공원  부산은 영화의 도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하는 10월에는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를 돌아보는 특별한 여행은 부산에서 시작해 거제를 지나 통영에 이르는 2박3일 코스다. 영화의 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행사가 펼쳐지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와 함께 아름다운 건축물이 볼거리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고운 백사장을 거닐 어 보고, 카페거리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도 즐겨본다. 동백섬 등대전망대에서 해운대해수욕장을 감상하고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달맞이길도 산책한다.  다음날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지인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를 둘러본다. 남포동 영화의 광장과 더불어 부산의 명물인 자갈치 시장에서 다양한 해산물도 만나 볼 수 있다. 영화 ‘깡철이’의 주요 촬영지인 송도해변과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인 을숙도 역시 부산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이다.  마지막 날은 거제의 2000년대 초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바람의 언덕에 오른다. 이어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인 통영 장사도해상공원의 동백숲에 들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경북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 지지부진

    경북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 지지부진

    이문열, 김주영 등 한국 문학사를 빛낸 작가를 다수 배출한 안동, 청송, 영양 등지에 흩어진 문학 관광 자원을 연계하는 경북도의 ‘한국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 구축 사업이 유명무실하다.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안동, 청송, 영양 등 북부 지역에 한국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들 지역에 구축된 문학 관광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융복합형 관광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목적이었다. 안동은 일제강점기 때 저항시인 이육사의 출생지로 생가와 묘소, 문학관이 있고 청송은 작가 김주영을 배출한 곳이다. 또 영양은 ‘시원’(詩苑)을 창간한 시인 오일도, 청록파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 등의 출생지다. 매년 5월과 7월이면 영양과 안동에서 ‘지훈문학제’와 ‘이육사 문학축전’이 열린다. 이문열의 고향 마을인 영양 두들마을은 작품 ‘선택’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금시조’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의 무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는 주요 사업으로 이육사문학관~영양 주실마을(조지훈)·감천마을(오일도)·두들마을(이문열)~청송 객주 테마파크(김주영) 구간에 문학관광 버스를 운행할 계획이었다. 이들 지역을 연계한 월별, 계절별 릴레이 문학 축제를 개최하고 도보 탐방로를 조성하는 한편 교육·체험 복합형의 대규모 근대문학 테마타운도 건립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들 작가와 관련된 근대문학 공원, 문인의 집 등도 짓기로 했다. 문예대학 운영과 학생 문예캠프 상설화 등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 이 일대를 근·현대 문학관광특구로 지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업 대부분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오는 25일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73억원을 들여 객주문학관을 준공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도가 당초 계획했던 경북 북부 지역 문학 관광벨트 조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 등이 겉돌고 있다. 시·군 관계자들은 “도의 문학 벨트 조성 사업이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면서 “도가 안동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한국 정신문화 중심 도시 육성’ 사업 등에 문학 벨트 조성 사업을 포함시켜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윤동주 육필 원고 등 유품 모교 품에

    윤동주 육필 원고 등 유품 모교 품에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의 육필 원고 등이 모교인 연세대 품에 안겼다. 연세대는 27일 서울 신촌캠퍼스 내 삼성학술정보관의 조용선 전시실에서 윤동주 특별전 개막식을 열고 기증받은 작품 등을 공개했다. 그의 대표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시 129편과 각종 유고, 유품이 선보였다. 1940~1950년대 처음 한국어로 발행된 윤동주 시집과 윤동주의 소장도서·졸업앨범도 전시됐다. 이 행사는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가 지난해 8월 보관 중이던 육필 원고 등을 연세대에 기증할 의사를 밝히면서 마련됐다. 연세대는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졸업하며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일제강점기 경찰 감시를 피해 선배인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의 고향집 마루 밑에 숨겨져 있다가 빛을 보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전했다. 특별전은 다음 달 20일까지 진행된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예술가 정치인/서동철 논설위원

    직장인들에게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직업’을 묻는 조사가 있었다. 1위가 예술가, 2위가 국회의원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같아서’라거나 ‘권위와 사회적 위치가 있어서’를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문인 출신 국회의원이라면 보통사람들이 선망하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진 셈이다. 그런데 문학적 역량과 정치적 역량이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엊그제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제로 한 공청회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최로 열렸다. 계기를 제공한 사람의 하나가 국회의원 도종환이다. 1986년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지난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에 입성한 데 이어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정치에 더욱 깊이 발을 담갔다. 그러자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논의가 시작됐고, 이날 ‘정치인의 작품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발표한 것에 한해 수록할 수 있다’고 잠정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 그대로 남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역시 단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교과서에 실린 소설가 이문열을 정치인으로 볼 것인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 그와 ‘객주’의 작가 김주영은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나란히 활동했다. 시인 안도현도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시인 출신 국회의원은 모윤숙, 김춘수, 양성우도 있다. 도 의원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꽃’과 같은 시도 교과서에서 빼야 하느냐”고 반발한 적이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바로 그 시다. 김 시인은 1981년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훗날 “고사했음에도 대학 교수로 잘 있던 나를 억지로 끌어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48년 유엔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던 모윤숙은 1971년 민주공화당 전국구로 배지를 달았다. 유신시절 ‘겨울공화국’의 저항시인 양성우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를 거치며 1988년 서울 양천구에서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소설가 출신 국회의원은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과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한길 의원의 ‘여자의 남자’는 300만부, 김홍신 전 의원의 ‘인간시장’은 560만부가 팔렸다. 대통령의 딸이 국회의원이자 재벌 총수와 정략 결혼하는 내용의 ‘여자의 남자’와 사창가를 무대로 무협지 같은 재미를 주는 ‘인간시장’은 모두 장편소설로 ‘교과서에 실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시인 고은(80)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예술과 문학론, 사랑과 술을 빼놓을 수 없다. 한 30대 문학평론가는 고은에 대해 “선생은 지리산 자락 깊은 곳에 핀 이름 모를 꽃의 존재에 대해서도 경남의 꽃, 대한민국의 꽃, 아시아의 꽃, 지구의 꽃, 태양계의 꽃, 우주계의 꽃으로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확장된 시각을 이미 1960~70년대부터 드러낸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시각인 것 같은데 당시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시에 대한 고은의 욕망은 이런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야 끝나는 시. 아니 모든 멸망 뒤에 다시 이어지는 시. 우주 허공계의 시. 나라는 존재 따위 다 사라져 버린 영구 부재의 시. 시. 시.시. 미치겠다.” (1974년 9월 24일 일기) 고은이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강화할 때 그의 문우이자 술친구인 민음사 박맹호 사장과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사장은 ‘문학을 지켜라. 정치의 자승자박은 안 된다’라며 찬성하지 않았지만, 고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문학을 끌어안았다. “시대에 지지 말자./ 시대를 팽개치지 말자./ 시대는 가고 문학은 남는다./ 문학은 그가 태어난 시대를 떠난다.”(1974년 12월 23일 일기)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인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 서재에서 고은은 “내 운명은 시다. 평론도 소설도 써봤지만, 시로서 내 삶을 완결해야 한다. 이제 막 새로운 시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시들이 들어오고 있다. 시인으로서 끝 무렵이 아니라 시작 무렵이다. 나에게는 종결이 없다”라고 말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1958년 등단한 고은은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년)을 시작으로 41살까지 6권의 책을 냈다. 그의 저작활동은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왕성해져, 1986년 1권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24년 동안 만인보 시집만 30권을 냈다. 외국에 고은이 ‘만인보’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만인보 외에 시집과 소설, 평론집, 산문집, 시선집, 여행서, 동화집, 동시집, 전기, 자서전, 편집한 책까지 합치면 150여권이 된다. 2013년 새해 벽두에는 1973~1976년까지 일기를 묶은 ‘바람의 사상’과 평론가 김형수와 대담한 ‘두 세기의 달빛’을 한길사에서 펴냈다. 대담집은 앞으로 7~8권 더 나올 예정이어서 고은이 낸 책은 조만간 160여권을 훌쩍 넘을 것이다. 시인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은은 “모국어로 시인이 되어야 할 운명인 사람인데, 소학교에 입학하니 조선어 사용이 금지됐다. 모국어를 상실함으로써 배움을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죄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밤이면 머슴 대길에게 비밀리에 한글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한글 덕에 해방되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월반했다. ‘국문을 아는 사람 손들어’라고 했을 때 고은이 유일했단다. 흔히 그의 프로필에 종교는 불교로 나와 있다. 20대에 10년을 승려로 살았으니, 으레 그리 짐작한다. 그러나 흰 종이에 육필로 시를 적어나가는 고은은 “나에겐 백지가 종교다. 다른 종교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 완벽한 백지가 있으니까, 다른 완벽함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삶은 힘들어지고, 문학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고은은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 속에 진짜 시적인 것이 있었다. 그 시대를 견뎌온 힘은 강력한 정서, 시적인 품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시가 더 풍부했다. 시단의 시적인 성취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사람들은 시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지금은 시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줄었는데, 오히려 시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 시인들이 시적인 품성이 갖춰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설적이다”고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오히려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조언했다. “자아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산 너머 이웃마을의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 자아의 골짜기에서만 머물지 말고 나와서, 세상을 돌아보고, 바라보고 해야 한다. 현대인의 특징은 시력이 약해져, 먼 곳을 보지 못한다. 인류가 짐승일 때는 멀리까지 바라봤다. 문명 속에서 익숙해진 시야라서, 아파트 단지의 건너편 창문을 바라본다. 시야가 연장되지 않고 누에고치처럼 내면에 둥지를 튼다. 그러면 어떤 때는 자신에 충실하지만, 자칫 자폐가 된다. 예술은 끊임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삐걱삐걱’ 소리가 들려야 하고, 뜨거운 숨결이 밖으로 나가고 밖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 안 그러면 사막이 돼 양쪽이 다 죽어버린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를 맡아 ‘참여파’는 물론이고 ‘순수파’까지 101명을 그러모아 ‘101 선언’을 추진한 저항시인다운 문학론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이었느냐? 1974년 12월 27일의 일기를 보자. “문학은 비겁한 것인가. 문학은 현실에 대해, 힘에 대해, 이렇게밖에 존속될 수 없는 것인가. (중략) 절대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우리는 팔 하나씩 잘라버려야 한다. 자유실천문협은 한국문협, 자유문협, 그리고 한국문인협회의 그것일 수 없기 때문에 현대 한국문학사를 새로 쓰는 문학의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도 경계할 것이다. 문학은 문학으로 끝난다.” 지금은 하회탈 같이 속탈한 웃음을 짓는 고은이지만 1951년 교사시절이나 승려로 지낸 시절의 사진은 자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여간 부담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고은은 “고비와 극한을 많이 경험해서 그렇다. 마음의 평화는 인생의 후반기, 지금부터 한 20여년 전에서야 얻었다”고 했다. “내 마그마는 마음의 지하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데, 지층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달래놓고 유보시키고 하는 것이다. 어느덧 내 무의식의 일상이 지하의 마그마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절하고 달래주고 있다. 나는 본능의 신성성을 인정한다. 본능은 천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아주 신성한 것이다. 그것을 내 규범에 의해 억압하면 내가 싫어한다. 그것이 나의 자연이다. 불이 나의 친구다. 그러니까 ‘얘가 덜 필요한가보다’ 하면 자기가 물러나주고, 필요한 듯싶으면 기꺼이 다가오고 그래준다.” 본능의 신성성을 높이 평가한 덕분인지 고은의 여성편력은 화려했었다는 것이 문단의 평가다. 그러나 그는 1974년 9월 5일에 만난, 당시 덕성여대 강의를 나가던 15세 연하의 이상화(66·중앙대 영문과 교수)를 만난 뒤로 사랑에 빠졌다. 이 즈음 고은은 “한 달도 안 됐는데 결혼을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결혼식은 만난 지 약 10년 만인 1983년에야 했다. 고은의 나이 50살 때다. ‘생활은 문학의 무덤’이라던 고은의 부인 사랑은 지극하다. 2008년 고은이 그림 전시를 한 뒤로는 생일이 되면 고은 부부는 그림을 그려 생일선물을 대신한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결혼 이후 성실한 가장으로 살았고, 특히 딸을 얻은 뒤로 우주를 얻은 듯 기뻐했다”고 회고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부인 이상화 교수는 고은의 통역을 자청해 왔다. 흔히 전문통역사들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고은의 발언을 풀어 설명한다면, 이 교수는 그러지 않는다. 이 교수는 “고은 시인은 발언 자체가 시다. 시를 산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고은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이다. 고은은 “사람들이 그렇게 술 마시며 언제 시를 쓰느냐고 묻지만, 나는 일을 다 털고 난 뒤에 술을 마신다. 일을 했으니 나를 방임하고,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황홀했던 주막을 사랑했다. 그렇다면 주량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주량은 내가 측정한 적이 없다. 가장 오래 마신 기록은 이틀을 잠 안자고 계속 마신 적이 있다. 서너 명이 마시다 다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둘이 대작했는데 내가 졌다. 고은을 이긴 사람이 누구냐고? 다들 죽었다”라며 쓸쓸한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고은에게 술은 대부분 “대취”와 “뻗었다” 사이에 있었다. 맑은 소주를 좋아했다. ‘대취’ 무렵의 그의 술친구를 직함을 생략하고 순서 없이 대충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박맹호, 박성룡, 김현, 이청준, 이어령, 남재희, 한승헌, 김병익, 황석영, 손소희, 이시영, 김승옥, 조해일, 백낙청, 김동리, 이문구, 서정주, 최순우, 조세형, 김현종, 최인호, 김기영, 신경림, 염무웅, 권영민, 민음사 여직원 3명 등등. ‘황홀한 주막’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 가락지와 열차집, 신촌 역전 술집, 낭만, 서린동 술집 등등으로 무교동과 청진동, 광화문 언저리다. 그가 기억하는 최고의 술자리는 1960년대 어느 날 새벽 1~2시에 혼자 마시던 술이다. 잠든 세상에서 비장한 비극성을 즐기며 “나는 세상을 숙직하는 자다. 세상을 지키는 취기다”라며 마셔댄 것이다. 연세도 있는데 술을 끊을 것인가? “술을 끊으면, 수사자에게 수염이 없는 것 같다, 원숭이에게 꼬리가 없는 것 같다, 조가비에게 진주가 없는 것 같다. 이별하지 말고 작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야지. 옛날 삼거리 주막집에서 나그네들이 만나서 술 마신 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헤어지듯이 그래야지. 술에게 가혹하게 굴면 안 된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잘해줬느냐. 술이 운다. ”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시인의 정치/임태순 논설위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국가’에서 시인은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학(시)이 사람의 이성을 북돋우지 않고 감정을 조장해 도덕적으로 유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문학은 사람의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오히려 문학을 옹호했다. 시를 포함한 문학, 음악 등 예술은 시대상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시나 소설이나 모두 현실의 부조리,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전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 에 ‘초상지풍(草尙之風) 초필언(草必偃) 수지풍중(誰之風中) 초부립(草立)’이란 구절이 나온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는 ‘강의’라는 책에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다시 풀이 일어선다는 것을”이라고 번역한 뒤 위정자들에게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일어서는 민초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일어서는 풀의 착상은 1960년대 저항시인 김수영의 시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풀’이란 시에서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고 해 암울함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민중을 노래했다. 일제시대 이육사나 이상화도 대표적인 참여시인이자 저항시인이다. 이육사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광야)을 갈망하며,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하며 나라 잃은 현실에 울분을 토로했다. 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도현의 행보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그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이타적 삶의 자세를 간결하게 표현한 시로 유명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시민캠프선거대책위원장인 그가 엊그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여성후보론에 대해 “공주가 여성을 대표하는 일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하다.” “남편 수발, 자식 수발하면서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면 모르겠지만…”이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지난 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힘겨루기를 할 때만 해도 안 후보는 소멸하는 태풍이라며 사뭇 시인다운 비유를 구사했지만 정치판에 휘말리면서 입이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행보가 거듭될수록 그의 시 또한 다시 보게 된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지만 시인은 민주화를 넘어 보수, 진보로 진화한 시대에 정치하기가 더욱 어렵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한국 1호 서양화가 춘곡 ‘이상화 초상’ 첫 공개

    한국 1호 서양화가 춘곡 ‘이상화 초상’ 첫 공개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春谷 高羲東·1886~1965)의 네 번째 유화 작품 ‘이상화 초상화’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22일 서울 원서동 16번지의 고희동 집을 국민에게 개방하는 행사 중 하나로 고 화백이 유화 물감으로 그린 시인 이상화(1901~1943)의 초상화를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이곳에 전시한다고 밝혔다. 고희동의 집은 사후 소유주가 바뀌면서 2003년에는 가옥이 멸실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보존됐고, 2004년에는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김홍남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상임이사는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전통을 살리는 길이라고 고 화백은 생각했다.”며 “이러한 뜻을 모아 1918년 이도영, 김돈희 등 동료 서화가와 서화협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고 화백이 시인 이상화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비슷한 의미라고 분석했다. “춘곡 선생과 이상화는 중앙고보의 미술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인연이 있다.”며 “그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일제시대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상화의 초상화를 그려 조국을 되찾기 위해 저항한 예술가를 지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림 뒷면에는 ‘1931 Ko Hei Tong, 우(友) Ree 증(贈)’이라고 기록돼 있다. 기금과 종로구는 ‘이상화 초상’을 비롯한 고 화백의 그림 4점 등 서화작품 18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춘곡과 친구들’을 24일부터 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 다문화 공감해야 갈등 치유”

    “한국 다문화 공감해야 갈등 치유”

    ‘미국의 TV는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을 팔았지… / 미국 사회는 싸구려 노동과 자기 증오를 팔았지 / 어린 중국 아이들에게 / 그리고 철로변 싸구려 아파트 가득한 게토 지역과 막다른 골목엔 개 사육장이….’(차이나타운3)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처음으로 문화적 정체성 회복을 호소한 시인 겸 화가인 페이 치앵(60)이 최근 한국을 방문, “다문화 사회를 맞은 한국이 ‘모두 같은 인간’이란 공감대를 강화하고 대화를 위해 더 노력해야 도래할 사회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권력·제도와 항상 싸워… 시집 6권 치앵은 최근 한국문학번역원이 개최한 ‘2012 서울작가축제’에 참가해 “급속한 발전을 이룬 한국의 모습에서 1970년대 미국의 고도성장을 떠올린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적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의 헌터칼리지(CUNY)에서 미술을 전공한 치앵은 197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 미술 부흥을 위한 ‘베이스먼트 워크’ 운동과 기부 단체인 ‘프로젝트 리치’를 활발하게 이끌어 왔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주한 초창기 ‘아메리칸 차이니즈’의 2세다. 아버지는 11세 때인 1925년 중국 광둥성에서 출항한 화물선에 몸을 싣고 뉴욕에 도착했다. 산시성 시안의 대지주 딸인 어머니는 1928년 뉴욕에 닿았다. 청운의 꿈을 품은 치앵 부모의 삶은 작은 세탁소에 딸린 음습한 방 한 칸으로 축약된다. 쉴 새 없이 일했지만 빚만 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마에 시달리던 치앵의 오빠는 자살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모은 치앵은 1970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베트남 반전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치앵의 삶은 미국계 동양인에 대한 주류 사회의 편견·차별에 저항하는 싸움으로 점철된다. ‘무기’는 촌철살인의 시였다. 1970년 첫 시를 발표했고, 9년 뒤 첫 시집을 내놨다. 지금까지 발간한 6권의 시집은 마약과 도박에 찌든 차이나타운 뒤켠의 암울한 자화상부터 동양의 정서와 가족애까지 소재가 다양하다. ‘절친’인 심보선(42) 시인은 “권력과 싸우고 제도와 싸우고, 그렇게 페이는 항상 싸웠다.”면서 “그가 단호하게 ‘하하’ 웃으면 마치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심씨는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를 방문한 치앵이 생면부지의 에이즈 환자를 도와 인도적 의료지원을 끌어낸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말기 암 환자로 수술 8번 받아 매년 뉴욕의 치앵 아파트에서 열리는 생일축하 파티에는 인종과 연령이 다른 100여명의 영화감독, 시인, 음악가, 에이즈 환자 등이 모여든다. 말기 유방암 환자로 무려 여덟 번의 수술을 받은 치앵을 위한 일종의 축하연이다. 심씨는 “그의 생일 초대장은 ‘나는 살아 있어. 염려하지 마’라는 인사말과 같다.”면서 “친구들은 생일파티 말미에 그가 좋아하는 비틀스 노래에 맞춰 ‘내년에 또 함께 놀아요. 페이’라고 외치곤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이상화·윤동주·호돌이 국가상징 교재 주인공으로

    이상화·윤동주·호돌이 국가상징 교재 주인공으로

    일제 강점기 때 저항시인 이상화와 윤동주, 88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국가상징 교재가 나왔다. ●대마왕으로부터 국가상징 수호하는 스토리 행정안전부는 16일 ‘대한민국 국가상징’ 교육교재를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어 전국 초교에 보급했다. 교재는 초등생들이 국가 상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식으로 제작됐다. 태극이(호돌이), 상화(이상화), 동주(윤동주)가 대마왕으로부터 국가상징들을 수호한다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교재는 국호·국기·애국가·무궁화·국새·나라문장 등 국가상징의 종류와 의미를 다루고 있다. 컴퍼스를 이용해 태극기를 쉽게 그리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김예음 대구 영신초교 5학년 학생이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 개막식에서 부른 애국가 동영상도 담고 있다. ●“태극기·애국가 깊은 의미 알게 돼” 이재현 정수초교 5학년 학생은 “태극기나 애국가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됐고, 국새나 나라문장의 상징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동영상 교재는 초교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조, 정규수업시간에 활용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 모두의 딸들을 위해/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우리 모두의 딸들을 위해/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이목구비와 사지오관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사나이가 벌어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골방에 갇혀 남의 절제만 받으리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집 부인 300여명이 뜻을 모아 만든 최초의 여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의 첫머리다. 남녀동권의 외침은 한 세기도 더 전에 터져 나왔다.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기뻐하듯/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인 인형으로/그들을 기쁘게 하는/위안물이 되도다/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의무같이/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나를 사람으로 만드는/사명의 길을 밟아서/사람이 되고저.”(나혜석, ‘인형의 家’, 1921) 일제 식민지시대 이 땅의 여성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일등 국민”인 남성들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종속적 존재인 비(非)국민이었다. 그때 신여성 나혜석은 현모양처의 족쇄를 풀고 당당히 남성과 동등한 사람임을 선언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에 나가 있습니다.”(경향신문 60년 4월 30일자) 1960년 4월 19일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단에 한 송이 꽃으로 졌다. “강산은 좋은데/이쁜 다리들은/털 난 딸라들이/다 자셔놔서 없다.”(신동엽, ‘발’1966)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반외세·민족자주를 꿈꾼 저항시인 신동엽은 “털 난 딸라”들에게 몸을 파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서 민족의 종속을 보았다. “역사의 그늘을 뜨개질하며” 희망의 “그날”이 오길 바란 시인도 한 시대의 지배적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족이란 거대 담론에 함몰된 시인의 눈에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로 비칠 뿐이었다. “제국주의 성기가/누이들의 속살 팍팍 헤집는 신음이/황홀한 창으로 나와 호수에 빠지는 불빛 보며/호변 가로등 밑을/다리 이쁜 여자와 서정시로 껌 씹으며 걸어가다/이 여자(장차 내 마누라가 될 여자)를/당당한 중진국 애국 지식인 양심으로서/외화수입을 위해 옷 벗겨 관광기생으로/나라에 바쳐볼까 하지만/글쎄/그럴 때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에서/지역 어느 대학 남자 총학생회장에게 보냈다던/썩은 고구마(어떤 놈은 고추 또는 쏘세지라고도 한다)와 면도칼(어떤 놈은 가위라고도 하고)을 생각하며/섬뜩섬뜩 가운데 다리를 움켜쥔다/누이들의 몸값으로/GNP 계산하는 나라에/세 개의 다리로 서 있는/불쌍한 나여/내 나라의 여자도 못 지키는.”(공광규, ‘대학일기4’, 1987) 반독재·반외세 투쟁의 구호가 거리에 울려 퍼지던 1980년대에도 여성들은 국가가 외화 수입을 위해 “제국주의 성기”들의 성 노리개로 팔 수 있는 종속물이었다. 자신의 위축된 남성성을 자조하며 시대의 아픔을 풍자한 시인도 여전히 마초의 시각을 버리지 못했다. 4·19혁명 때도, 신군부의 독재에 맞선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 때도 여성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최근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삼국(쌍화차 코코아·소울드레서·화장∼발)카페”와 “미권스(정봉주와 미래 권력들)”의 공방을 보노라면, 다원화된 풀뿌리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도 남녀동권·양성평등 사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여전히 소망하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은 ‘비키니’를 통한 시위형식이나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가슴사진 대박, 코피 조심’이라는 말에서 드러난 여성관의 한계라고 판단한다. ‘코피’ 발언은 그들이 남성 위주의 사회적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며, 여성을 성적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한낱 눈요깃거리로 삼고 남성의 정치적 활동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상 정도로 전락시킨 것이다.”(‘삼국카페 공동선언문’ 2012. 2.6) “우리의 딸들이 이런 일들을 또 겪게 할 수 없다.”는 작지만 큰 외침에 귀를 막기 어렵다.
  • 中 ‘저항시인’ 베이다오 20여년만에 고국 방문

    中 ‘저항시인’ 베이다오 20여년만에 고국 방문

    해외로 유랑하던 ‘저항시인’ 베이다오(北島·62)가 20여년 만에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홍콩 성도일보(星島日報)는 9일 중국 인민일보 인터넷 사이트인 인민망을 인용, 베이다오가 중국 칭하이(靑海)성 정부 주최로 8일 시닝(西寧)에서 개막한 ‘제3회 칭하이후(湖) 국제시가(詩歌)축제’에 초청을 받아 참석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개막 행사에는 중국과 외국의 유명 시인 200여명이 참가해 뜨거운 열기 속에 치러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의 이번 중국 방문은 톄닝(鐵凝) 중국작가협회 주석 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의 보증으로 성사됐다고 홍콩 빈과일보가 8일 밝혔다. 베이다오는 칭하이성으로 가기에 앞서 고향 베이징에 들러 798예술구에서 열린 시인 어우양장허(歐陽江河)의 서예전을 관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우양장허는 지난 6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베이다오가 서예전에 나타났다.”고 올렸다. 본명이 자오전카이(趙振開)인 베이다오는 베이징 출신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오랜 망명 생활로 ‘중국의 솔제니친’으로도 불린다. 1970년대 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78년 전문지 ‘진톈’(今天·오늘)을 창간한 뒤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는 저항시를 쓰면서 인권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중국에선 그가 ‘몽롱시(朦朧詩)파’ 시인으로 불리는데, ‘몽롱’은 중국 현대시에서 주관과 서정을 강조하고 모호한 시적인 분위기를 창조하는 것이다. 톈안먼 사태 당시 해외에 머물던 베이다오는 대학생 시위를 지지하는 선언에 서명했으며, 시위대는 ‘대답’(回答)이라는 그의 대표작을 톈안먼 광장에 내걸기도 했다. 그는 톈안먼 사태 이후 네덜란드·스웨덴 등 유럽 7개국을 떠돌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 정착, 미시간대와 뉴욕주립대 등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1년 부친상을 당해 베이징을 일시 방문하기도 했지만, 중국 공안의 엄중한 감시속에 상을 치른 뒤 곧바로 출국해야만 했다. 베이다오는 2007년부터 홍콩 중문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통곡은 시로 절망은 소설로 피어나다

    통곡은 시로 절망은 소설로 피어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고립 말살 정책은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지구상에서 끊이지 않는 전투와 학살, 폭력이 난무하는 곳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사실상 유일하다. 그러나 처참함과 절망, 야만의 살육 속에서도 문학은 피어난다. 자식을 잃고 아랫입술을 곱씹는 어미의 통곡은 시가 됐고, 스무살 피끓는 청년이 허리에 폭탄을 두르기까지 주거와 이동이 막히고, 취업을 하지 못하고, 친구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죽음을 당하는 등 이야기는 그대로 소설이 됐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는 2일 펴낸 계간 문예지 ‘아시아’ 여름호를 아예 팔레스타인 문학 특집호로 꾸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구호물품을 실은 선박에서 민간인을 살상한 직후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아시아’는 근대 아랍시의 창시자로 꼽히는 마흐무드 다르위시(1941~20 08)와 근대 아랍소설 창시자 갓산 카나파니(1936~1972),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비교문학 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등에 대한 평가와 이들이 팔레스타인 문학에 미친 영향, 팔레스타인 문단의 현주소 등을 다뤘다. 자신을 ‘저항시인이기 이전에 시인이다.’라고 천명했던 다르위시의 시 ‘여권’, 카나파니의 단편소설 ‘난민촌의 총’, 사이드의 문학평론 ‘문학과 문자주의’, 팔레스타인의 민담 ‘초록새’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했다.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문학·문화 등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예술가 등의 모임인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회원인 소설가 오수연이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젊은 작가들과 나눈 지상 대담은 팔레스타인 언어와 문학의 깊이, 작가들의 생생한 고민을 엿보게 해 흥미롭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겨울의 사랑/김성호 논설위원

    ‘한손에 칼, 한손에 쿠란’. 이슬람교의 호전성을 빗대 많은 이들이 입에 올리는 상징문구이다. ‘중세 십자군전쟁 중 만들어낸 매터도’란 보편주장에도 가시지 않는 전도(顚倒)의 말. “종교의 믿음이란 마음으로 시작되는데 칼을 들고 사람마음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최근 성공회대 강연회 연사로 나섰던 한 무슬림의 강변이 사람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었을까? 실상을 왜곡한 가치의 전도가 특정 대상을 겨눈 여론몰이로 향할 때 큰 재앙을 낳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스케이프 고트(scape goat)’. 고대 유대인들이 사람의 죄를 양에 뒤집어씌워 황야로 내쫓은 속죄양·희생양의 비극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 간토지역에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3만 7000여명이 실종된 1923년의 간토대지진. “재난을 틈타 방화와 테러·강도를 일삼는다.”는 흑색선전에 들뜬 광기의 일본인에게 6000명 이상의 무고한 조선인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15∼17세기 중세 유럽에서 극성을 부렸던 마녀사냥. 종교전쟁, 30년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상황과 기근, 페스트로 사람들이 죽어넘어가던 시절. 사회혼란과 불행의 원인으로 몰려 집단 떼죽음을 당한 비극의 마녀사냥도 그리스도교 지배사회속 종교·체제유지를 위한 집단 매터도로 평가된다. 이념·정치적 시인으로 인상지워진 ‘풀’의 시인 김수영의 미공개 시 ‘겨울의 사랑’이 발견됐다. ‘늬가 준 욧보의 꽃잎사귀 우에서 잠을 자고 늬가 준 손수건으로는 아침에 얼골을 씻고…이만하면 나는 너의 애정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6·25전쟁 중 거제도수용소에서 만난 한 간호사를 향한 연시.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데 있는데’(1960년 ‘김일성 만세’중)라고 썼던 김수영의 색다른 면모를 들추며 문단이 시끄럽다. ‘민족주의 저항시인’은 사랑시 한 편쯤 써서는 안 되는 것인가. 연시 한편이 발견됐다고 ‘민족주의 저항시인’의 인상과 가치가 바뀌는 것일까.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왜곡한 채 흔들어댔을까. 김수영의 저항 이미지도 ‘내편 네편’의 편향 탓은 아닐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문화마당] 솔제니친 문학의 유통기한/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문화마당] 솔제니친 문학의 유통기한/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얼마 전에 타계한 솔제니친의 이름 앞에는 늘 ‘반체제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30여 년 전 내가 솔제니친을 처음 접했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반체제’라는 단어였다.‘저항’이라든가 ‘반체제’ 같은 말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자 러시아 안팎에서 씌어진 수많은 추모 기사들 역시 그의 문학보다는 반체제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수용소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지식인이었고, 억압에 저항한 러시아의 양심이었으며, 조국에서 추방당한 자유의 투사였다. 그러나 이 업적은 그에게 훈장인 동시에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다. 그도 독자도 끝까지 ‘반체제’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비판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구소련의 억압적인 체제를 비판했고, 서구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비판했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비판했다. 일각에서 그를 한물간 ‘욕쟁이 할아버지’처럼 생각한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비판정신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에 미루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작가는 언제나 그냥 작가가 아니라 민족과 시대를 선도하는 지도자이자 교사이자 예언자였다. 고골은 중년에 도덕가로 거듭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아생전에 이미 예언자로 불렸으며 톨스토이 역시 위대한 교사로 추앙받았다. 러시아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시대를 풍미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상과 도덕은 언제나 예술의 일부였다. 그러나 19세기 대문호들이 오늘날까지 읽히고 기억되는 것은 그들의 도덕적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문학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고골의 설교는 놀림감이 되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국수주의적인 정치논평은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톨스토이의 교훈서 또한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은 지금도 읽힌다. 그러면 솔제니친은 어떤가. 그는 자기가 철학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며 다만 작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쩌다가 정치에 말려들긴 했지만 정치를 혐오한다는 말도 했다. 그렇다. 솔제니친은 작가였다. 그의 사상과 도덕은 그러므로 그의 문학과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예우다. 만년의 그는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러시아로 귀환한 후 그에게 맡겨진 TV 토크쇼가 너무나 지리멸렬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고 한다. 그가 KGB 출신의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한테서 국가 공로상을 받은 것은 변절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런 이야기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수용소의 참상을 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통해 담담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묘사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절제된 문체와 심리적 깊이 덕분에 소위 ‘수용소 문학’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수용소 군도’의 그 방대한 리얼리티에 담긴 진솔하고도 정확한 역사의 증언은 문학작품의 경계를 확장시켰다.‘제 1권’의 문학성과 휴머니즘 역시 감동적이다. 반면 그가 미국 버몬트의 시골에 칩거하며 쓴 여러 권짜리 ‘붉은 수레바퀴’는 너무 지루하고 산만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앞으로도 누가 그 작품을 읽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솔제니친 문학의 유통기한은 얼마일까. 그는 19세기 대문호들처럼 기억될 것인가. 기억된다면 그의 어떤 소설 때문일까. 판타지 소설과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그의 길고 긴 소설을 얼마나 읽을까. 수천 쪽의 행간에서 무슨 의미를 찾아낼까. 저자의 고뇌와 휴머니즘은 어떻게 해석될까.21세기의 눈으로 저항시인의 죽음을 바라보자니 착잡한 심정이 된다.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 복원된 시인 이상화 고택 공개

    복원된 시인 이상화 고택 공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대구 고택이 복원돼 12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7일 대구시에 따르면 이상화 시인이 말년에 머물렀던 옛집인 중구 계산2가 84 단층 목조건물 두 채(대지 205㎡, 건평 64.5㎡)에 대한 보수와 전시물 설치를 완료했다. 시는 12일 오후 6시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다. 현판 제막과 함께 사물놀이 공연, 시낭송, 특별공연도 갖는다. 이 건물은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매입, 지난 2005년 대구시에 기부채납한 것으로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등이 설치됐다. 시는 고택과 인접한 3·1운동길과 뽕나무골목, 진골목 등을 이 시인이 살았던 시대 배경에 맞춰 근대골목으로 다시 디자인해 도심 관광 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다. 1901년 대구에서 출생한 이상화 시인은 서울 중앙학교를 수료했고 대구에서 3·1운동 거사를 모의했다.1943년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이번에 복원된 대구 자택에서 숨졌다. 대구시 관계자는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이상화 선생의 우국정신과 문학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서해안서 해맞이 할까 한겨울 봄체험 해볼까

    서해안서 해맞이 할까 한겨울 봄체험 해볼까

    한국관광공사는 ‘08년 1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서쪽에서 해 뜨는 왜목마을(충남 당진)’‘한겨울에도 봄빛이 가득한 남도의 바닷가(전남 장흥)’‘따끈한 온천욕과 다양한 여행 테마 체험(경북 문경)’‘한방(韓方)으로 후끈후끈, 숯가마로 뜨끈뜨끈(경남 산청)’ 등 4곳을 선정했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 왜목마을 일출은 장엄하고 화려한 동해 일출에 비해 짙은 황톳빛으로 물들며 질박한 충청도의 서정을 보여 준다. 서해안임에도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땅 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 한 장소에서 해돋이는 물론 해넘이와 달넘이까지 볼 수 있다. 당진전력홍보관, 도비도 농어촌휴양단지, 저항시인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 동양최초 함상공원인 삽교호 함상공원 등 둘러볼 곳도 많다. 안성포구의 박속낙지탕, 성구미포구의 간재미 무침, 삽교호 일대의 조개구이는 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당진군청 관광개발사업소 041)350-4792.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는 서울을 기준으로 정남쪽에 위치한 정남진의 바닷가다. 이름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정남진 장흥은 한겨울에도 봄빛이 가득하다. 바닷가 들녘에는 보리싹과 쪽파가 겨우내 파릇하고, 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종려나무 가로수는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초겨울부터 춘삼월까지 장흥 땅 어딜 가도 붉은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정남진 장흥으로 떠나는 겨울여행은 때 이른 봄 여행이나 다름없다.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는 두 개의 온천이 있어 겨울여행을 따끈하게 한다. 칼슘, 중탄산천과 알칼리성 등 두 가지 수질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 현지 온천 관계자들은 일본 벳푸온천보다 수질이 낫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문경새재 트레킹과 철로자전거타기 등을 즐긴 다음 온천을 찾아도 좋겠다.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054)550-6395. 지리산 품에 안긴 경남 산청, 골 깊은 산비탈 바위틈에서 이슬 머금은 야생약초가 옹골차게 자란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약초재배지가 펼쳐지고 한방약초를 이용한 요리와 반찬들이 상에 오르는 걸 보면 산청이 약초의 고장임을 실감케 한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의성(醫聖) 허준과 그의 스승인 류의태의 자취가 곳곳에 전해 온다. 한의학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한의학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여기에 지리산 참숯굴에서 숯가마 찜질을 하고 나면 겨울 추위가 멀리 달아난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했던 목면시배유지와 성철 스님 생가, 돌담이 아름다운 남사 예담촌, 밤머리재 너머의 대원사와 내원사 또한 산청 여행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다. 산청군청 문화관광과 055)970-6421∼3.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Local] 충남 부여에 신동엽문학관

    ‘껍데기는 가라’의 민족시인 신동엽(1930∼69) 문학관이 내년 10월 고향인 충남 부여에 건립된다. 부여군은 26일 모두 18억원을 들여 부여읍 동남리 군청 옆 그의 생가 뒤에 100평 규모의 문학관을 세울 계획이다. 문학관에는 40평 규모의 전시실, 자료전시실(25평), 자료보관실 등 갖가지 자료와 유품이 전시된다. 전시실에는 시인의 유족으로부터 원고와 유품 5000∼6000점을 기증받아 전시할 계획이다. 군은 문학관이 완공되면 해마다 시낭송회, 문예창작 및 독서교실 등을 열고 신동엽문학제도 개최할 계획이다. 부여에는 신동엽 시인의 생가, 백마강변 선화공원에 서정시 ‘산에 언덕에’가 새겨진 시비가 있고, 능산리고분군 옆 부여읍 염창리에 묘가 있다. 신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 외에 장편 서사시 ‘금강’과 ‘4월은 갈아엎는 달’ 등 참여시를 지어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부여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문단의 어른으로서 뜻하지 않게 후배들의 반발에 밀려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오직 한길로 35년을 봉직하던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한다.’이런 상황이라면 시인이 아니라도 섭섭하거나 아쉽거나, 혹은 착잡해지거나 감회에 젖어 많은 말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정희성(62)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작가회의 명칭 변경이 무산된 데나, 평생을 지켜온 일터를 떠나게 된 데 대해서 시인은 의외로 평화롭고 담담했다. 맑은 얼굴에 자분자분한 말투. 서울 아현동,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과작(寡作) 시인답게 말수도 적었다. ▶정관 개정이 무산됐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무산이 아니라 찬반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걸려 결정을 못한 것이지요.24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명칭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겠습니다. ▶작년 1월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는 ‘민족문학’이란 용어를 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는데 그 사이 생각이 변한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분단 상황에 있기 때문에 민족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해 온 결과, 작년 10월 금강산에서 남북한과 해외문학인들을 포괄하는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됐습니다. 민족문학에 분명한 전기가 마련된 셈이지요. 그래서 민족문학은 이 틀에서 다루게 두고, 우리는 명실공히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단체인 만큼 포용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침 젊은 작가들도 그런 생각을 해왔던 모양입니다. ▶‘민족문학’이란 이름으로는 전체를 포용할 수 없을까요. -작가회의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해 온 이미지 때문에 국내에서는 ‘강성’‘좌파’로 몰리는 반면,‘세계작가와의 대화’ 등 국제교류를 할 때는 ‘내셔널’이란 명칭 때문에 극우 민족주의단체로 오해받아요. 또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민족문학’개념으론 포섭될 수 없는, 너무도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용해야 합니다. 총회 석상에서는 ‘문학은 포기해도 민족은 포기 못한다.’는 발언이 나왔지만, 문학이 민족문제만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문학을 버리고 어떻게 민족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민족문학론’을 주창했던 백낙청 상임고문이 명칭개정에 찬동하고 있는 이때, 일부 후세대 작가들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백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으로서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민주주의 쟁취와 민족통일을 양대과제로 내세운 한시적 개념이었다. 백 교수는 이제 진영개념으로서 민족문학론은 내실을 잃었다고 보고 새롭게 ‘한국문학론’을 제시한다. 민주화는 완수됐고,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으로 분단체제도 극복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진정한 국민문학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잠시 귀국했던 작가 황석영은 작가회의에 대해 “조직이든 집이든 사람이 만든 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친목회 정도의 기능만 남았다면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일갈하고,“분단체제는 남북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확장된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작가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절차상의 문제도 있었던 만큼 심도있는 논의와 우편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가겠다고 했다. ▶정든 교직을 떠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교직 35년, 문단 37년이니 두 경력이 비슷합니다. 그동안 제자 1만명, 시집 4권에 결혼하여 아이 둘을 길렀으니 행복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기에 용의주도하게 살았다고도 생각됩니다.70∼80년대 주목받던 저항시인으로 1979년 세계시인대회 시위,1980년 지식인선언 등에 참여하거나 잡혀갔는데도 자신은 훈방되거나 해직되지 않았다. 아마 대학교수가 아니라 고교교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자신이 쓴 시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고무돼 시위에 나서고, 한 여고교사는 시 ‘아버님 말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가 선동죄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괴로움이었다. 용의주도하게 살았다는 말은 이런 책임의식 때문인 듯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고교교사로 남겠다며 학위논문을 내지 않았다면서요. -대학교수가 희망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1972년 논문만을 남기고 상아탑에서 나왔을 때는 가파른 유신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적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달라졌고, 이런 관심에 대한 해답이 아닌 다른 논문은 쓰고 싶지 않아 포기한 거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문예창작과가 많이 생기면서 기회가 또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대학교수가 되면 시가 안 좋아지더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사장의 시에는 그 시대의 현실과 급소가 생생하게 표출됩니다. 그런데 요즘의 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무뎌지신 건가요,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요. -가파른 시대에는 쓰지 못했던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아졌습니다.2000년대 9·11테러 이후에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많이 담고 있지요. 무뎌진 점도 있겠지만 관심의 확장으로 봐 주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옛날 독재정치에 항거할 때처럼 주먹 쥐고 하는 얘기들은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또한 현실 문제는 그 시대의 가장 젊은 문인들에 의해 잘 포착될 것입니다. 퇴임식 때 다섯번째 시집을 내 동료교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결국 편수를 못메워 싱거운 기념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백령도를 다녀와 40행이나 되는 시 ‘몽유백령도’를 썼다. 짧아지던 시가 예전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가는 듯한 느낌이라 기쁘다.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데에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 이사장이 저항의 시를 썼던 것도, 이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것도, 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논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히 진행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희성 그는… 1945년 경남 창원 출생(만 62세). 공무원인 부친을 따라 충남, 대전, 이리, 여수를 다니며 살았다. 용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국문과를 나왔다.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탁목조’가 당선돼 등단했다.1972년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로 부임해 35년간 재직하고 그제 정년퇴임했다. 글을 쓸 생각이면서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고전문학을 공부해 전통의 바탕에서 창작을 하리라는 계획에서였다. 첫 시집 ‘답청’(1974)’은 그의 생각대로 ‘고전적인 전아함’을 갖춘 시들로 꾸몄다. 그러나 1972년 유신체제에 접어들고 친구들의 해직과 투옥을 접하면서 완전히 다른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나온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에는 칼칼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겼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로 시작되는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어두운 현실을 처절한 서정에 담아 형상화한 대표작이다.“증오에 대해서/나도 알 만큼은 안다/이곳에 살기 위해/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싸우다 죽은 내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란 시구처럼 ‘공격적이고 거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자신은 시대가 현실주의자를 만들었지 본질적으로는 천진한 낭만주의자라는 생각이다.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2001년)는 이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수상.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부터 반독재 문학단체에 몸담아 2006년 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yshin@seoul.co.kr
  • 새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13명 선정

    저항시인 윤동주, 독립운동단체 신간회 부회장을 지낸 권동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활동한 이위종 등 13명이 200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21일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내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발표했다. 내년이 신민회 창건과 국채보상운동, 헤이그특사 파견 100주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관련 인물들이 대거 뽑혔다.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임시정부 연통제 참사를 지낸 임치정,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김광제·서상돈 등이 대표적이다. 순국 100주년을 맞는 의병장 정환직·권득수, 탄생 150주년을 맞는 구춘선 북간도 대한국민회 회장, 좌·우합작 여성운동단체 근우회를 창립한 조신성 등도 함께 뽑혔다. 보훈처는 국민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이달의 독립운동가 카페(cafe.naver.com//bohunstar)를 개설,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월별 독립운동가 명단이다. 임치정(1월), 김광제·서상돈(2월), 권동진(3월), 손정도(임시정부 교통총장·4월), 조신성(5월), 이위종(6월), 구춘선(7월·대한독립군단 결성), 정환직(8월), 박시창(9월·한국광복군 상하이지대장), 권득수(10월), 주기철(11월·신사참배 거부 옥사), 윤동주(12월).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中 저항시인 베이다오

    中 저항시인 베이다오

    “톈안먼 사태 당시 내가 지은 시가 선전·선동의 도구로 인용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반체제 저항시로 ‘중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며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자주 이름을 올리는 베이다오(56).‘오늘’이라는 비공식 문학잡지를 발간, 중국 사회와 문화에 변화를 불어넣은 영웅에 앞서 인간적인 면모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숱한 중국 젊은이들을 1989년 6월4일 톈안먼 광장에 서게 했다. 그러나 정작 베이다오는 그곳에 없었다. 몇달 앞서 정치범 석방운동에 참여했다가 망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26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지은 시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음과 위험에 맞서게 됐다고 생각하니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시대를 살았고, 그 정신이 초기 작품에 많이 반영됐지만, 이제는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말을 애써 전했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깊이 건드릴 수 있는 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시를 쓰지 못했다.”는 베이다오는 “다음에 쓰는 시가 마음에 들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한 이후 15년 만의 서울 방문이다. 당시 비밀리에 고은 시인을 만났는데,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이 민주주의를 성취했고, 경제 번영을 이룩한 것을 보니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학교 2학년인 딸이 한국 대중음악을 알고 있을 정도로 ‘한류’ 열풍에도 익숙하다고 한다. 다만,“현재 급속도로 상업문화가 밀려드는 한국과 중국이 미국의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우려했다. 베이다오는 특히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반겨하면서도, 빈부 격차와 지역 격차가 심화되는 등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해서도 “일본 지식인들과 언론의 비판 목소리가 약해진 것이 안타깝다.”면서 “오에 겐자부로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일본은 떳떳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아시아에서도 유럽연합처럼 비슷한 연대가 이뤄져야 더욱 진보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일본이 자세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편 베이다오의 작품 세계를 담은 ‘한밤의 가수’가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최근 국내 출간, 소개됐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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