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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羅도 있다

    ‘나무의 저주’를 용케 피한 케빈 나(29·이하 나상욱·타이틀리스트)가 2년 연속 코리안 챔피언을 겨냥하게 됐다. 나상욱은 13일 플로리다주 TPC소그래스 스타디움코스(파72·7215야드)에서 열린 미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로만 4타를 줄여 중간합계 12언더파 204타를 기록했다. 한때 단독 선두였던 매트 쿠처(34·미국)를 막판에 따돌린 나상욱은 디펜딩 챔피언 최경주(46·나이키골프)에 이어 2년 연속 한국선수 챔피언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우승하면 지난해 10월 팀버레이크대회 이후 7개월 만에 PGA 투어 통산 2승째를 거둔다. 그는 올해 13차례 출전,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4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나상욱은 쿠처에 15번홀까지 2타 차 2위로 처졌다. 그러나 ‘시그니처홀’(코스의 상징 홀)인 17번홀(파3·137야드)에서 뒤집었다. 쿠처는 호수로 둘러싸인 이 홀에서 첫 티샷을 물에 빠뜨려 1타를 잃었지만 이틀 연속 버디를 잡아낸 나상욱은 16번홀 버디에 이어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쿠처는 16번홀도 파에 그쳤던 터라 나상욱은 순식간에 2타를 따라붙어 공동 선두를 이뤘다. 그리고 마지막 18번홀(파4). 나상욱은 쉽지 않은 4.5m짜리 버디를 떨궈 단독선두로 뛰어올랐다. 1타 차 불안한 선두지만 변수는 또 있다. 지난주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리키 파울러(34·미국)가 약진한 것. 첫날 이븐파 공동 56위에 머물렀던 파울러는 2라운드에서 3타를 줄인 데 이어 이날 ‘데일리 베스트’인 6언더파를 쳐 중간합계 9언더파 207타, 단독 3위로 도약했다. 역전 우승에 성공하면 올 시즌 PGA 투어 첫 연승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데스크 시각] 檢, 제 몫을 해야 한다/박홍기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檢, 제 몫을 해야 한다/박홍기 사회부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009년 5월 위원장 시절 일본을 방문했을 때다. 방문 3~4일 전 방통위 산하 기관의 선발대가 도쿄에 도착하더니, 또 하루 이틀 전 방통위 직원들이 입국했다. 행사 진행을 챙기기 위해서다. 장관급 위원장이었지만 장관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귀국길 하네다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를 거칠 때 경고음이 울렸다. 최 위원장의 허리띠 버클이 문제가 됐다. 일본 공항 직원이 매뉴얼에 따라 허리띠를 풀 것을 요구하자 소리쳤다. “나, 위원장이야.” 최 전 위원장에게는 항상 대통령의 멘토 중 멘토, 실세 중 실세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영향력과 힘이 그만큼 막강했다. 그런 그가 4월 30일 한밤중 “뭔가 많이 잘못됐다.”는 묘한 메시지를 남기며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실세의 위세도, 40대 같은 정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느 피의자와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실세, ‘왕(王)차관’으로 불릴 만큼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결국 법망에 걸렸다. 박 전 차관은 MB(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정무국장으로 일하다 집권 이후 실세로 등장했다. 그동안 SLS그룹 이국철 회장의 술접대 로비 주장, 아프리카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과 관련된 CNK 주가 조작,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등 굵직굵직한 사건 때마다 끊임없이 이름이 거론됐다. 그러나 막상 검찰의 수사는 의혹 하나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검찰 안팎에서 “검찰의 무능이냐.”, “봐주기냐.”라는 비아냥 섞인 비난이 나왔던 이유다. 그러다 복합유통센터인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대가로 1억 7000만원 정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최 전 위원장의 구속 수감은 5월의 시작을 알렸다. 정권 말기의 이른바 권력형 비리 사건의 신호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빠짐 없이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에서 부정 비리가 터져 감방 신세를 져야 했다. 1997년 5월 17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2002년 5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 6월 21일 차남 홍업씨가 구속됐다. 2007년 5월은 넘어갔지만 2년 뒤인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위에 섰다. 5년마다 반복되는 정권교체의 불행한 고질병 같다. 5월의 저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이럴 줄 알았다.” 자조적이고 짜증 섞인 불평들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떠도는 소문 속에 “설마” 하며 심증만 갖다 실체를 드러내는 의혹에 황망해하는 분위기다. 심화되는 정치 불신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막스 베버가 ‘권력은 상대방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했지만,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권력은 분명 법을 얕보고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 법의 범주에 있지 않는 한 부정과 비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5년을 주기로 교도소의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실세들도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학습효과는 없다. 경각심조차 내팽개친 격이다. 착잡하다. #검찰을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실패한 정권은 투표로 단죄할 수 있다지만 비리 권력층의 죗값은 검찰의 칼로써 물을 수밖에 없는 까닭에서다. 해 넘어가는 권력만이 아닌, 살아 있는 권력에 ‘정의의 여신’ 디케의 칼을 휘두르며 검찰권을 발휘했으면 하는 게 더 큰 바람이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 등의 부패와 비리가 어제가 아닌 훨씬 이전, 정권 초기부터 움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뒷걸음치거나 미적거리지 말아야 한다. 냉정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찍이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 칼춤(劍舞)을 췄더라면 잔인한 현재의 5월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파·표적 수사라는 반발,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도 나름대로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성역 없이”, “나오는 대로” 한다는 수사 원칙을 상시 체제로 돌려 거악(巨惡)을 수시로 척결, 엄격·엄정한 사회적 기풍을 닦는 데 제대로 한몫을 해야 한다. 정말 5년 뒤 또다시 같은 일을 보고 싶지 않다. hkpark@seoul.co.kr
  • [저축은행 영업정지 파장] 영업정지 저축銀 어디로

    6일 영업정지된 솔로몬, 한국, 미래저축은행 등은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거나 이에 육박하는 대형 저축은행들이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2조원의 저주’, ‘대마불사가 아닌 대마필사(大馬必死)’란 말이 돌 정도로 대형 저축은행들이 1~3차 구조조정을 통해 영업정지됐다. 지난 2월 말 기준 솔로몬저축은행의 자산은 4조 9998억원, 한국저축은행 2조 300억원, 미래저축은행 1조 8643억원 등이다. 자산기준 업계 순위는 솔로몬이 1위, 한국이 5위, 미래가 7위다. 자산 2조원 이상인 저축은행은 세 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11개에서 3개로 줄었다. 업계 2~4위인 현대스위스, HK, 경기저축은행만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임에도 살아남았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은 정상화와 상장폐지까지 45일 정도의 기회가 남았지만, 전례에 비추어 제삼자 매각으로 주인이 바뀌거나 예금보험공사 소유의 가교저축은행으로 계약이전 절차를 밟게 된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인수합병(M&A)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산·부채 이전 방식으로 인수합병이 진행된다 해도 부채가 자산을 잠식한 상태여서 인수자 측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인수한 저축은행의 경영 정상화도 아직 매듭짓지 못한 상태다. KB금융지주는 제일저축은행(현 KB저축은행)을, 우리금융지주는 삼화저축은행(우리금융저축은행)을, 신한금융지주는 토마토저축은행(신한저축은행)을, 하나금융지주는 제일2·에이스저축은행(하나저축은행)을 각각 사들였다. 그럼에도 저축은행의 부실 덩어리가 큰 만큼 4대 금융지주가 아닌 마땅한 인수자도 없는 실정이다. 저축은행의 부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솔로몬저축은행이 종합편성채널인 MBN에 10억원, 미래저축은행은 채널A에 46억원, MBN에 15억원을 투자할 정도로 무리한 대출이 자산 건전성을 떨어뜨렸다. 참여연대는 7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은 금융정책의 실패에 있다.”며 “금융당국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고서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유엔기구 北핵실험 24시간 감시”

    북한의 3차 핵실험 임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엔 산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북한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감시 체계를 가동 중이라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일 전했다. 토머스 뮈젤부르크 CTBTO 부대변인은 “전 세계의 관측 시설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여부를 24시간 내내 감시하고 있다.”며 “(북한의 1차·2차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과 2009년에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핵실험을 즉시 감지할 수 있다.”고 RFA에 전했다. 뮈젤부르크 부대변인은 전 세계 321개 관측소와 16개 실험실에서 지진파나 수중음파, 초저주파, 핵물질 분석 등의 방법으로 핵실험과 관련한 북한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관측 시설에서 북한 핵실험 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182개 회원국에 자동으로 내용이 보고된다.”며 “2009년 북한 핵실험 때도 1시간 30분 만에 모든 회원국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CTBTO는 유엔이 1996년 핵실험을 막기 위해 만든 감시 기구로, 북한은 핵실험금지조약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UEFA 첌피언스리그] 호날두까지…11m의 저주

    라리가 42골,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10골을 포함해 올 시즌 63득점을 자랑하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그는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와의 리그 득점왕 경쟁에선 1골 앞서 있지만 UCL에선 메시보다 4골이나 적었다. 우위를 보이는 건 페널티킥뿐이었다. 메시는 프로 통산 8차례나 페널티킥을 실축해 성공률이 70%대에 불과하다. 반면 호날두는 레알 입단 이후 딱 한 번, 2009년 12월 5일 알메리아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놓쳤다. ‘PK의 명수’라던 그가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UCL 4강 2차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하면서 팀의 10번째 챔스리그 우승이 좌절됐다. 전반 6분 페널티킥 성공까지 25번 연속 성공했던 호날두는 라리가 우승컵을 사실상 굳힌 상황에서 3년 연속 메시에게 내준 발롱도르를 되찾기 위해 대회 우승이 절실했다. 하지만 승부차기 실축으로 날려버렸다. 호날두는 PK 선제골을 넣은 지 8분 뒤 전방이 무주공산인 상황에서 추가점을 올리며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아르연 로벤의 추격골로 2-1이 돼 1, 2차전 합계 3-3으로 승부는 원점이 됐다. 원정 다득점을 따져도 동률이어서 연장 30분을 거쳐 ‘11m 러시안 룰렛’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호날두의 실축에 이어 ‘하얀 펠레’ 카카마저 실축했다. 사비 알론소가 1골을 넣어 1-2가 됐지만 팀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레알의 세 번째 키커 토니 크로스와 네 번째 키커 필립 람의 슈팅을 연속으로 막아내 승부는 또다시 원점이 됐다. 하지만 네 번째 키커 세르히오 라모스의 슈팅이 골대 위로 날아간 데 이어 뮌헨의 마지막 키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침착하게 그물을 출렁여 레알의 승부차기 3-1 승리. 노이어는 18세이던 2004년 독일 서부 겔젠키르헨의 아레나 아우프샬케에서 열린 FC 포르투(포르투갈)와 AS 모나코(프랑스)의 UCL 결승에서 공을 줍던 볼보이 출신. 8년 뒤. 자신이 골키퍼 장갑을 끼고 팀의 결승 진출을 주운 것. 페트르 체흐(첼시)와 골키퍼 최고를 다투는 카시야스는 “승부차기는 복권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바르사에 이어 레알까지 탈락하면서 사상 첫 대회 결승에서의 ‘엘 클라시코’ 성사는 물건너 갔다. 2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 뮌헨은 다음달 20일 새벽 3시 45분 안방에서 우승컵 ‘빅이어’를 놓고 첼시와 격돌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연극 잔뼈 굵은 영화배우 첫 공연 앞에선 신인배우

    연극 잔뼈 굵은 영화배우 첫 공연 앞에선 신인배우

    5월에는 쟁쟁한 연극들이 줄지어 무대에 오른다. 거장 이윤택 연출이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에 대해 다룬 연극 ‘궁리’, 13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 이혜영의 ‘헤다가블러’ 등이다. 그중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사건을 무대로 옮겨 관심을 끄는 작품이 하나 있다. 24일부터 5월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M. Butterfly’(엠.버터플라이)가 바로 그것. ‘M. Butterfly’는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으로 1986년,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전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의 충격적 실화를 모티브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해 두 남자의 사랑을 그렸다. 1993년 제러미 아이언스, 존 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작품은 프랑스 영사 르네 갈리마르(이하 ‘르네’)와 경극 배우 송 릴링(이하 ‘송’) 사이의 20여년간의 기묘한 관계를 담으며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이 가진 편견을 비판한다. ‘M. Butterfly’를 연출한 김광보 감독은 작품의 대본을 읽는 내내 한 명의 배우가 떠올랐다고 했다. 바로 ‘르네’ 역을 맡은 배우 김영민(41)이 그 주인공. 45회 전 공연을 원 캐스트로 무대에 서게 된 김영민에 대해 김 감독은 ‘배우 김영민에 대한 믿음은 무한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에게 거는 기대감이 높다는 후문. 김영민 역시 작품에 대한 믿음, 감독에 대한 믿음, 함께하는 배우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내 심장을 쏴라’ 이후 2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 작품에서 ‘르네’라는 한 인간이 갖는 극한의 감정 변화를 선보이게 될 배우 김영민, 그를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24일 첫 공연을 앞두고 신인 배우처럼 가슴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연극만의 매력이랄까요. 관객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고 땀 흘리며 준비해 온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 드린다는 생각에 설레요. 한편으로는 나이와 연극 무대의 경험 등을 떠나서 첫 공연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요.” 지난 2년간 영화 ‘퍼펙트게임’,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미안해, 고마워’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와중에도 연극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한편에 늘 존재해 왔단다. 그가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M. Butterfly’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작품 자체가 아주 재미있어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예전에 이 작품의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연극은 너무 다르더라고요. 뒤로 갈수록 작품의 깊이가 느껴진달까. 매력이 있었어요.” 그가 맡은 ‘르네’라는 인물은 소심한 남성으로 남장여자 ‘송’을 만나면서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송에게 배신당하고서 스스로 송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르네는 극 안에서 30~60대의 다양한 연령대의 모습을 선보이며 소심함과 능청스러움, 광기 어린 모습 등 한 인간이 지닌 감정의 변화를 다양하게 선보인다. 김영민은 “극 안에서 한 인물이 갖는 극한의 감정 변화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르네의 매력”이라면서 “르네가 작품에서 해설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감정의 연결을 잘 이어가며 수위조절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집중력을 요하며 어렵다. 열심히 르네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 중”이라며 웃었다. 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변화를 선보이는 만큼 르네의 대사량은 어마어마하다고. “제 코가 석 자예요. 하하. 대사량도 엄청 많고 워낙 어려운 역할이거든요. 하지만 함께 무대에 서는 송 역할의 후배 (김)다현씨와 (정)동화씨가 워낙 잘해 주고 감초 역할을 하는 동료 배우들이 잘 받쳐 주고 있어서 그분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 중이죠.” 인터뷰 내내 그가 ‘천생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로서의 자긍심과 열정이 느껴졌고,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프로다웠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연기하는 배우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순재, 이호재, 박정자, 윤소정 선생님 등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분들은 작품에 대한 통찰력과 에너지가 좋으시거든요. 배역이 크고 작음을 떠나서 인생의 통찰력을 갖고, 여유를 갖고 연기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작품이 주어졌을 때 그 작품을 빛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서울광장] 진영논리 수명 다했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영논리 수명 다했다/김종면 논설위원

    진영논리라는 말이 요즘 부쩍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말이 좋아 논리지 속을 들여다보면 형편없는 반논리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다는 식이니 애당초 건강한 공론은 이뤄질 수 없다. 4·11 총선을 통해 우리는 그 허상을 똑똑히 봤다. 민주통합당은 총선 전까지만 해도 원내 과반의석, 아니 통합진보당과 함께 여소야대 국회까지 내다봤다. 그러나 민간인 불법사찰 등 호재에도 불구하고 참패했다.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면 민주당의 실패는 한마디로 어설픈 진영논리 때문이다. 야권연대라는 편가르기 득표수단에 매몰돼 별다른 정책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에 민주당은 진보진영 눈치만 살피며 허송세월했다. ‘나꼼수’ 멤버 김용민 막말사태도 얼버무리기식 사퇴 권고로 어물쩍 넘어가려다 성난 민심에 덜미를 잡혔다. 너른 중원에서 사슴을 쫓을 생각은 안 하고 제 울타리 안의 토끼나 잡으려 했으니 어떻게 천하의 표를 모을 수 있겠는가. 진영논리의 저주다. 진영논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독재 민주화운동 세력에게는 꽤 유용한 무기였다. 강철 같은 단일대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진영논리로 무장하는 게 필요했다. 피아를 엄격히 구분하는 일도양단의 흑백논리도 한수 접고 봐줬다.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모색하는 지금 그런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 진리의 빛깔은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이라는 역설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하지만 그 경계는 날로 희미해지고 있다. 복지포퓰리즘 전선에는 왼쪽도 오른쪽도 없다. 한국 사회에는 진보주의는 있는데 진보파는 없고 보수파는 많은데 보수주의자는 없다고들 한다. 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우리 주위에는 생각은 진보, 삶은 보수 혹은 그 반대인 이들이 적지 않다. 비난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념이 더 이상 소용이 닿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진영논리는 수명이 다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특정 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혀 국민 다수의 생각을 읽지 못한 것을 패인으로 꼽는다. 총선의 교훈을 바로 새기지 못하면 대선의 미래도 없다. 진영논리에 기대지 않겠다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선언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야 융합과 통섭의 시대정신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한편에는 여전히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를 갈라치고 분열의 프레임을 이어가려는 세력이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야권연대 총선 멘토단으로 나선 그는 김용민 막말파문 와중에 “관타나모 성폭행을 비판하며 한 말” 운운해 눈총을 받았다. 총선 후에는 “단박에 과잉 우편향 세력관계가 바뀌지 않는다.”며 진보진영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인보다 더 정치에 몰두한다는 소리를 듣는 그에게 파당성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적 엄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자라면 사물을 보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있어야 한다. 한 방향으로 멈춰선 정치 나침반에 따라 세상을 재단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젊은이들에게 특정 진영논리만 전파해 편협한 터널 비전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멘토의 역할이 아니다. 국민이 역(逆)계몽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미국 컨트리 가수 멀 해거드가 부른 ‘무스코기에서 온 오클라호마 촌놈’(Okie from Muskogee)이란 노래가 있다. 히피로 몸살을 앓던 40여년 전 미국에서 유행한 ‘애국계몽’ 가요다. 국내에는 ‘철날 때도 됐지’라는 번안곡으로 알려졌다.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죠/어릴 때는 벌써 지났다고/다운타운 정이 들었지만/ 때가 되면 멀리 떠납니다…” 조 교수도 이제 그 넓은 오지랖 좀 거두고 학문이든 정치든 한곳에 닻을 내렸으면 좋겠다. 그게 자신이 말하는 ‘후진 진보’의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 아닌가. jmkim@seoul.co.kr
  • 與홍보물 출연후보 전원 낙선… ‘살신성인’ CF?

    ‘조동원 CF의 저주’가 여당 주위를 맴돌고 있다. 새누리당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 주도하에 4·11 총선 홍보용 기획 CF에 출연했던 후보들이 전원 낙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제작한 인터넷 광고 동영상은 모두 7개다. 1탄은 홍준표 전 대표가 찍은 ‘홍그리버드’ 시리즈였다. 동대문을에 출마한 홍 전 대표는 눈썹을 시술한 후 한 게임회사의 캐릭터 ‘앵그리버드’를 닮았다는 별명이 붙자 ‘살신성인’의 심정으로 광고용 동영상을 찍었다. 하지만 “이 한 몸 바쳐 국민을 웃겨 보겠다.”는 결의와 달리 결과는 낙선이었다. 2탄은 권영세(영등포을) 사무총장의 ‘뻘쭘한 영세씨’로 서태지 CF를 패러디했다. 3탄은 손수조(부산 사상) 후보와 김무성 의원이 동반 출연한 ‘변화의 바람 불 때’로 프로야구 김성근 전 SK 감독의 CF를 패러디했다. 하지만 CF에 출연한 의원들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배지를 단 사람은 전무하다. 공천을 받지 못한 조윤선 대변인·김무성 의원·이준석 비대위원까지 합치면 CF에 출연한 9명 전원이 원외 신세로 전락했다. 조 본부장은 13일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앞서 CF에 출연한 인물들이 왜 전부 낙선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허허….”라며 대답을 주저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화제의 인물들] 홍준표 정계은퇴 선언

    [화제의 인물들] 홍준표 정계은퇴 선언

    새누리당 홍준표 전 대표가 11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서울 동대문을에서 5선에 도전했던 그는 이날 투표 종료 후 발표된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민주통합당 민병두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7시쯤 트위터에 글을 올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한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이제 자유인으로 비아냥받지 않고 공약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다.”면서 동대문 구민과 새누리당 당원들에게 “지난 11년간 홍준표에게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KBS 출구조사에서 홍 후보는 42.6%, 민 후보는 55.6%를 각각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표 완료 결과 민 후보가 52.9%를 얻어 당선됐다. 홍 전 대표는 동대문을에서만 4선을 한 여권의 거물 정치인이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와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를 거쳐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을 거쳤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전격 선출됐지만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디도스 사태 등 고비를 넘지 못하고 5개월여 만인 12월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사실상 한나라당의 승리”, “이대 계집애 싫어했다.” 등의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인 권영세 의원(영등포을) 역시 정치 신인에게 패배했다. 권 의원은 ‘박근혜 체제’에서 당 공천을 주도했지만, 개표 결과 민주통합당 신경민 후보에게 5.2% 포인트 차로 지고 말았다. 18대 총선 때 이방호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낙선한 데 이어 공천권을 쥐고 흔든 ‘사무총장의 저주’가 재현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3선의 전재희 의원 역시 자신의 지역구인 광명을에서 전략공천된 정치 신인인 이언주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예상과 달리 고배를 들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프로축구] 수원, 이번엔 ‘이운재 저주’ 깰까

    [프로축구] 수원, 이번엔 ‘이운재 저주’ 깰까

    지난 시즌 수원은 ‘이운재의 저주’에 혼쭐났다. 이운재가 골문을 지킨 전남에 2연패를 당했다. 미친 듯이 슈팅을 날렸지만 한 골씩밖에 얻지 못하고 되레 두 골과 세 골을 내줬다.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했을 때 그럴 리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적한 골키퍼 이운재의 저주 때문이 아니냐는 괴담이 나돌았다. 이운재는 1996년부터 15시즌 내내 수원의 골문을 지켰다. 그러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몸이 굳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수원은 계약 연장에 나서지 않을 생각을 굳혔다. 이운재는 현역 연장을 원했지만 수원은 그 대신 정성룡을 택했고, 결국 이운재는 자유계약(FA) 신분으로 수원을 떠나 전남의 품에 안겼다. 이후 친정팀과의 맞대결에서 몸을 던진 이운재는 미소를 지었고, 수원은 거푸 고개를 떨궜다. 수원은 현재 4승1패, 승점 12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라돈치치와 서정진, 에벨톤C, 조동건 등을 영입해 초강력 화력을 갖췄다. 16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무승부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게 잘나가고 있는데 또 이운재가 길을 막을 참이다. 7일 오후 5시 전남 광양구장에서 이제까지 걸어온 비단길이 한순간에 찢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운재의 허점을 발견한 눈치다. 강원과의 개막전을 무실점으로 막은 이운재는 이어진 네 경기에서 5실점하며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벌칙지역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다소 떨어진 순발력이 문제다. 이번 전남 원정은 11일 주중경기와 주말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의 첫 관문이다. 그러나 수원 윤성효 감독은 “지난해 2연패했다고 자신감까지 잃지는 않았다.”며 “누구를 주전으로 써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라돈치치와 하태균 등 최전방 공격수들의 컨디션이 모두 좋다. 이운재의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한 번 보겠다.”고 별렀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고전 발레의 정수를 뽐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고전 발레의 정수를 뽐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마리우스 페티파의 3대 발레 걸작 중 하나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4월 5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6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아름다운 플로레스탄 왕궁에서 탄생한 오로라 공주가 그녀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 카라보스의 저주로 100년간 잠들어 있다가 데지레 왕자의 달콤한 키스로 다시 깨어난다는 샤를 페로의 동화가 원작인 작품이다. 고전 발레의 교과서라고도 부를 만큼 형식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기초에 충실하면서도 고전무용다운 우아함과 높은 기교를 선보이는 주역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3막에 등장하는 페로의 또 다른 캐릭터(파랑새와 플로리나 공주, 장화신은 고양이와 앙증맞은 흰 고양이, 빨간 두건 소녀와 늑대)와 여섯 요정의 바리에이션으로 이뤄진 결혼 축하연 장면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얼마나 뛰어난 무용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는 10년의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황혜민-엄재용, 강예나-이현준 외에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김나은, 손유희-이동탁, 김채리-이승현 등이 환상의 호흡을 선보인다. 특히 올 3월 수석무용수 타이틀을 달고 첫 무대를 펼친 데지레 왕자 역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뛰어난 기량으로 무대를 압도, 오로라 공주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매 장면마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또 김채리-이승현은 간판급 주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탁월한 실력을 선보여 유니버설발레단의 세대교체에 밝은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동화 속 인물을 현실로 데려온 듯한 라일락 요정의 아름다운 몸짓과 주역무용수를 능가하는 뛰어난 기량 역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3막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앙증맞은 결혼 축하연 장면은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인형’의 멜로디가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는 식상하다고 느끼는 관객 또는 발레를 자주 접해보지 않은 관객 등에게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차이콥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선율은 익숙하지 않아 새롭고, 귀족적이며 화려한 유럽풍 무대와 무용수들의 우아한 몸짓은 발레를 전혀 모르는 관객 역시 동화 속 세상으로 이끈다. 문훈숙 단장과 오로라 공주 역을 맡은 강예나의 해설로 진행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해군기지 둘러싼 공동체 분열 어디까지 가려는가/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열린세상] 해군기지 둘러싼 공동체 분열 어디까지 가려는가/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해양주권 확보를 위한 해양기지를 두고 해군기지, 해적기지라는 타협할 수 없는 용어가 대결한다. 참여정부 시절 오프라인 신문과 인터넷 매체, 지방과 서울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했던 정치적 유산의 저주인가? 전통적인 전라도와 경상도, 강남과 강북, 재벌과 서민의 대립구조에 더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진 자와 못 가진자, 강자와 약자, 20~40대와 50대 이후의 연령층, 나꼼수 대 저격수, 해군장교 대 해군병사, 99% 대 1%, 급기야 해군 대 해적이 대립구조의 목록에 올랐다. 분열 메뉴의 다양성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대립각은 국책적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과 폐기,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대한 단식투쟁 항의와 무관심으로 나타났다. 마치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무한대립 경쟁이 한국사회에서 재현된 것처럼 철천지 원수나 적과의 동침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극한대치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해적(海賊)이라는 용어 하나만 보더라도 아직 배움이 한참 짧은 20대 정치지망생이 빈정대듯 사용할 수 있는 감상적인 용어가 아니다. 해적은 인류의 공적을 의미하는 법률용어이다. 인류는 세계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초래하고 인류 양심에 충격을 주는 범죄에 대해서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세계 관할 범죄로 규정했다. 집단살해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반인륜범죄가 이에 해당한다. 해적범죄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므로 해군을 해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안보의 상징을 인류 공적으로 낙인 찍는 언어해적이다. 그런데 극한대립의 이유나 동기를 보면 어떤 심오한 이론이나 철학적 소신 때문이 결코 아니다. 핵심은 반미주의와 반정부주의이다. 직설적으로는 반이명박 대통령 정서이다. 이유 없이 싫다는 것은 그러한 표현의 압권이다. 극도의 대립각도를 가져온 사람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몰이의 주역이 되는 현실이 대립을 더욱 부추긴다. 정치권은 또한 그들을 국회의원 후보자로 내세운다. 극한분열의 악순환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공동체 사회에서 대립각도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진정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빈부격차가 공동체 사회에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과 동일하다. 불평등의 심화가 공동체에 주는 진짜 위험은,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생활영역은 점점 격리되고 단절된다. 같은 사회의 시민이면서도 원수처럼 만나지 않고 서로 멀리하려 한다. 증오와 투쟁의식만 커져간다. 결국 공동체는 파멸의 길로 진행한다. 공동체 사회에서 다양성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대립을 이념적, 정치적 그리고 개인의 인기몰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전제인 연대감과 유대감이라는 공동체의 미덕을 본질적으로 갉아 먹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사회 지탱의 원동력인 정치는 어떤 경우에도 100%의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아무리 이득이 된다고 하여도 해적 같은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면서 1% 대 99%의 대립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동체 통합을 이루지 않겠다는 것이고, 나머지 1%를 공동체의 해적으로 공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류에게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이라는 천부인권의 축복을 선물한 존 로크는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회는 부자가 존경받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는 사회이다. 권력이 있건 없건, 잘살건 못살건, 많이 배웠건 그렇지 못하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소주라도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칭찬과 격려가 넘치는 사회이다. 해군과 해적의 대립이 없고 1%와 99%가 외면 없이 각자의 처지에 맞게 공동체 구성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가, 정치가 앞장서고 일반시민들이 호응하여 진정으로 이루어야 할 정의로운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군과 해적의 대립이 없고 1%와 99%가 외면 없이 각자의 처지에 맞게 공동체 구성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가, 정치가 앞장서고 일반시민들이 호응하여 진정으로 이루어야 할 정의로운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저주받은 작품·작가’ 재조명

    추리소설·SF소설·개화기의 신소설 등 문학사에서 배제되었던 ‘저주받은 걸작’을 재조명한다.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늦게 발표해서, 더러는 독자들의 편견과 무지 탓에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었던 잊힌 작가와 작품들을 젊은 국문학자들이 21세기에 불러내는 것이다. 26일 ‘김내성의 추리소설 명탐정 유불란 선생과 그의 똘똘이들’을 시작으로 ‘김동리의 밀다원’, ‘1960년대 남한 사회의 SF적 상상력’ ‘완전사회’, ‘신소설 목단화’, ‘소설가 송영과 우리들의 사랑’ 등 5개 강좌이다. 4월 23일까지 월요일마다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cafe.daum.net/purunacademy)에서 진행된다.
  • [씨줄날줄] 돈/주병철 논설위원

    마크 트웨인이 실업가 앤드루 카네기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다. “귀하께서는 매우 돈이 많을뿐더러 신앙이 두터우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찬송가 책 한 권을 갖고 싶은데 저에게는 분에 넘치는 1달러 50센트나 됩니다. 저에게 찬송가 책 한 권만 보내 주세요… 귀하를 존경하는 마크 트웨인. 추신:찬송가 한 권을 보내 주실 바에는 차라리 현금 1달러를 보내 주십시오.” 아인슈타인은 돈에 무관심했다고 한다.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 재단에서 1500달러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이것을 현금으로 바꾸지도 않고 책상 위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책을 보다 수표를 책갈피로 사용했다. 얼마 후 수표가 없어졌는데 책도 누가 집어가 버렸다. 아인슈타인은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책까지 돈을 보고 따라갔으니….”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돌고 돈다.’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돈은 정말 천(千)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벌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은 축복이자 행운으로 미화된다. 반대로 요물덩어리나 저주스러운 악마로 둔갑하기도 한다. 화폐경제 측면에서만 보면 돈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형성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뤄지고,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돈으로 바꾸어 운반할 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돈처럼 편리한 게 없다. 오스트리아 유대계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음의 파멸’에서 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돈, 그 망할 놈의 돈이 그들을 다 버려 놓은 거야. 어리석은 나는 그것을 모으느라고 고생을 한 끝에 나 스스로를 도난당하고 나 스스로를 빈곤하게 하고, 그들까지도 나쁘게 만들어 놓았어….” “요 닷돈을 누를 줄꼬? 요 마음/ 닷돈 가지고 갑사댕기 못 끊갔네/은가락지는 못 사겠네 아하!/마코를 열 개 사다가 불을 옇자 요 마음”(김소월의 돈타령) 통계청이 지난해 사회조사에서 15세 이상 인구 중 직업 선택의 이유를 물었더니 ‘수입’(돈)을 꼽은 비율이 38.3%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외환위기 때보다 2배나 높았다. 그만큼 팍팍해진 삶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직장인들에게 요한 웨슬러 신부의 ‘돈에 관한 세 가지 규칙’은 나름대로 참고가 될 만하다. 첫째, 벌 수 있는 대로 벌어라. 둘째,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아라. 셋째, 줄 수 있는 대로 주어라. “돈은 더럽게 벌어도 깨끗이 쓰라.”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 철학’은 비슷한 것 같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씨줄날줄] 10배 보복/주병철 논설위원

    보복(報復)이란 국제법상 상대국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자국(自國)이 동일 또는 유사한 부당행위를 하는 일을 말한다. 상대국의 행위가 국제위법 행위여야 할 필요는 없고 도덕적 또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부당한 행위이면 된다. 그래서 보복적 조치(Retaliation)라는 용어도 있다. 국제적인 보복 사건으로는 1885년 비스마르크가 러시아의 부당한 수입관세 정책에 맞서 자국의 국립은행에 러시아 국채를 담보로 하는 융자를 금지시킨 게 대표적이다. 미국통상법 301조에 대표되는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보복도 있다. 법외적인 차원에서 보복은 원한에 사무친 복수를 의미한다. 개인이나 혈연관계, 정당정치에서 곧잘 등장한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보복공천이란 말도, 여야 간의 정권교체를 통한 보복정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함무라비법전에는 ‘남의 눈을 하나 찌르면 자기 눈도 하나 찔린다.’고 했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타인을 손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는 그 복수를 겁낼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때려눕혀야 한다.’고 했다. 세인트헬레나의 유배지에서 거친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리며 땅을 친 나폴레옹의 복수의 외침은 저주 그 자체다. ‘어둡다. 요란하다-우렛소리/번갯불/바람은 천지를 쓸어 가려는 건가. 파도소리/수십 길 절벽을 뛰어넘어 이 집을 쓸어 가려는듯, 차라리 집까지 섬까지 삼켜 버려라.’ 춘추시대 춘추 오패 중 오왕(吳王)인 합려(闔閭)와 월왕(越王)인 구천(句踐)의 싸움도 복수의 섬뜩함을 말해주는 사례다. 합려가 월나라 침범에 실패하고 죽자 아들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밖에 장작을 쌓아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심을 키웠다. 그로부터 2년 뒤 월나라를 쳐부수었는데 구천은 살려주었다. 그러자 구천이 20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끝에 부차를 무찔러 그동안 당한 수모를 앙갚음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그제 서해 연평도 해병부대를 방문해 “적 도발 시 사격량의 10배까지도 대응사격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공개석상에서 ‘복수’ ‘굴복’ ‘10배 대응사격’ 등의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북한이 그동안 ‘불바다’ ‘천배 만배 보복’ 등의 표현을 쓴 데 대한 보복 성격도 있다. 같은 민족끼리 대화를 촉구하면서 보복을 다짐하고 있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하정우는 어떻게 충무로를 휘어잡았나

    하정우는 어떻게 충무로를 휘어잡았나

    “도대체 안 되는 게 뭐예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하정우(34)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정우는 지난해 9월 ‘의뢰인’을 시작으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러브픽션’까지 6개월 동안 세 작품 연속 흥행 홈런을 치고 있다. 스릴러, 누아르, 로맨틱 코미디 등 장르도 다양하다. 그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티켓파워’를 과시하며 충무로의 대표 배우가 된 비결은 뭘까. 그의 인생관, 연기관, 애정관 등 하정우의 모든 것을 파헤쳐 봤다. [인생관] 하정우가 배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다. 개봉 5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러브픽션’도 전계수 감독과의 5년 전 약속을 지킨 것이다. 대학(중앙대) 후배인 윤종빈 감독의 영화에는 빠짐없이 출연하는 의리파다. ‘용서받지 못한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등이 윤 감독과 함께한 작품이다. “물론 밑도 끝도 없는 작품에 의리 때문에 출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약속 과정을 지키기가 험난하더라도 한번 한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일단 한 배에 같이 탔으면 끝까지 같이 가야죠. 감독은 여러 작품을 놓고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하나만 믿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즘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지만 지켜야 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불어 사는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살면서 인간관계 빼면 남는 게 뭔가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하정우.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인 그의 성격은 배우의 삶을 사는 데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러브픽션’을 제작한 영화사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는 “하정우는 스타라기보다 배우다. 그는 연예인이라고 뒤로 숨지 않고 앞에 나서서 일을 주도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배우로서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림도 그리고 조깅도 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트레스를 풀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냥 실없는 이야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를 정해 생각을 나누기도 해요. 요즘엔 온통 스마트폰에 빠져 있느라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소통할 일이 많이 줄었죠. 특히 연예인들은 더욱 그런 기회가 없으니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가 걸리기 쉬운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저를 드러내 놓고 영화나 인생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을 통해 치유를 받고 위로를 받는 부분이 상당히 큰 것 같아요.” 그의 이런 인생관은 아버지인 연기자 김용건의 가르침이 컸다. 본명이 김성훈인 하정우는 “아버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 배려하고 잘 지내는 것을 늘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밑의 사람을 잘 챙기는 기본적인 것을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연기관] 하정우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추격자’ 시사회 바로 다음 날. 늦은 점심을 시켜 먹으면서 인터뷰에 응한 그가 눈을 치켜뜨며 질문에 답할 때마다 자꾸만 영화 속 살인마의 모습이 겹쳐져 섬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이제 시작인데요. 더 열심히 해야죠. 등산으로 치면 이제 등산로 초입에서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목표가 영화 100편에 출연하는 것이거든요. 축구 선수가 100경기를 뛰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 것처럼 배우도 100작품에 출연하면 나라에서 훈장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웃음)” 하정우는 스스로를 ‘영화 노동자’라고 부를 만큼 다작하는 배우다. 맡은 배역도 연쇄살인범, 엘리트 변호사, 소설가, 조폭 보스 등 다양하다. 배우의 입장이 아닌 관객의 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나리오를 고른다는 그가 매 작품마다 역할에 꼭 맞게 변신하는 비결은 호기심과 인물 탐구에 있다. ‘추격자’ 때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해 연구했던 그는 ‘의뢰인’ 때는 월급과 출신 지역 등 변호사들에 대한 정보를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을 총동원해 수집했다. 부산을 무대로 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때는 부산 음식과 억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오히려 맡은 역할의 폭이 크기 때문에 그 역할에서 빨리 빠져나와 다른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역할을 맡으면 그 인물을 만나고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즐거워요. 이번 ‘러브픽션’의 경우는 전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독님의 연애에 대한 생각과 시선, 가치관 등을 연구했죠.” 하지만 그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격자’, ‘국가대표’, ‘의뢰인’ 등 많은 출연작에서 흥행을 거뒀지만 ‘황해’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실패했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 평론가 정지욱씨는 “‘황해’에서 하정우는 ‘추격자’와 비슷한 캐릭터에서 오는 기시감으로 심도 있는 변화를 보여 주지 못해 성공 가도에서 잠시 주춤했다.”면서 “최근 한층 연기력에 융통성이 생기면서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더 큰 배우로 완성되려면 자신의 틀을 깨고 깊이감 있는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정우 역시 “누구나 연기를 잘 할 수는 있지만, 잘 소화하느냐가 문제”라면서 “소화에도 여러 단계와 깊이가 있다. 이제 더 깊이 있고 디테일을 살리면서 흥미로운 연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정관] 그의 애정관은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그가 영화 ‘러브픽션’에 출연한 것도 사랑을 꾸미거나 달콤하게 보이게 하는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연애에 대한 오해와 이해의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랑에 빠지면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치면서 무기력해지고, 주체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상대방을 만남과 동시에 사랑의 정점을 찍고 점차 식기 시작하죠. 그토록 원했던 사랑을 막상 손에 넣으면 식기 시작한다는 것은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자 저주 같아요. 그래서 사랑은 많이 한다고 늘 수도 없고, 누구나 그 감정 앞에서 미숙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이 마흔이 넘어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면 ‘뉴욕의 가을’처럼 중후한 멜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그는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해야 한다. 1970~80년대 문학 잡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 “지루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돌려서 말하지 않는 직설 화법의 소유자”라고 정의하는 하정우. 그에게 “만일 흥행이 잘 되지 않는 작품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제 겨우 서른넷인데,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배우로서 작품에 책임을 질 뿐이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침표를 찍지는 않잖아요.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고 느끼고 깨닫는 것처럼 연기도 똑같은 것 같아요. 전 아직도 연기에 목이 마르고,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할아버지가 돼서도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영화에 대해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불태우는 것처럼요.”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車, 욕망을 선물하다

    車, 욕망을 선물하다

    포디즘, 그러니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생산물을 올려놓고 시간단위로 제품을 찍어내는 거대 공장은 어떤 이미지인가. 영화팬이라면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올릴 수 있다.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반복노동을 해야 하는 포디즘의 비인간성을 풍자했다. 매카시즘 열풍 때 채플린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당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여기다 한가지 더 추가할 수 있다. 포디즘을 비판한 채플린도 빨갱이로 몰렸지만, 포디즘을 만든 자동차왕 헨리 포드도 빨갱이로 몰렸다는 점이다. 노동자 일당이 평균 2.34달러이던 시절, 무려 5달러나 줬기 때문이다. 여기다 1일 8시간 노동을 보장하고, 기숙사를 제공했다. ‘가장 늦게 채용되고 가장 빨리 해고되는’ 흑인, 장애인, 여성까지 채용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기꺼이 노동할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시장주의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하찮은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퍼주다보면 기업경쟁력이 떨어져 결국은 망하고야 말 것이라는 저주가 그때라고 왜 없었겠나. 여기엔 또 하나의 반전 포인트가 숨어 있다. 정작 포드 자신은 철저한 마초스타일의 우파였다는 사실이다. 생산해낸 차도 오직 기계적 단순함이라는 남성적 스타일만 강조했다. 이는 나중에 GM에 역전당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 고립주의, 반유대주의를 고집했고 노조를 혐오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격찬받은 미국인은 포드가 유일했고, 1938년 히틀러는 제3제국 최고의 훈장 독일독수리최고대십자장을 수여하기까지했다. 포드는? 감사히 받았다. 다음 해에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런 포드가 왜 노동자들을 후하게 대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규모를 키우고 싶어서였다. 일부 돈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차를 사야 시장이 커진다. 그럴려면 주머니에 돈도 좀 찔러주고, 과도한 노동으로 파김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여유가 있어야 주말 드라이브라도 나갈 것 아니겠나. 포드 차를 타고 말이다. 포디즘은 합리적 생산방식으로 주목받는데, 사실 더 주목 받아야 할 대목은 여기다. 대량생산 제품을 대량소비할 수 있도록 ‘대중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포드 스스로도 빨갱이라는 비판에 대해 한마디했다. “높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기 전에 낮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야 한다. 대중시장은 얻기 쉬운 열매라 볼 수 있다.” ‘자동차와 민주주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이런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힌다. 자동차를 다루되 무엇보다 ‘대중의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포디즘 이후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쭉 읊는데, 단순한 산업사라기보다 도시문화사나 미국문화사로 읽힌다. 건축, 도시, 지리학 등을 기초로 문명사를 다루는 루이스 멈포드, 데이비드 하비가 등장하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뉴욕의 불도저’ 로버트 모제스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자동차산업의 발달이란, 곧 도로의 개발과 그로 인한 도시생태계의 변화, 그 결과 나타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까지 포괄한다. 그 변화의 키워드는 외곽타운화, 고립, 단절, 보수화 같은 단어로 요약된다. 포디즘의 영향은 강력했다.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인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1923년 조립식 주택을 만든다. 집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린 것이다. 이는 교외의 대단위 주택 건설로 이어진다. 1947년 부동산업자 윌리엄 레빗이 조립식 주택으로 이뤄진 대단위 거주지 건설 아이디어를 냈고, 오늘말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외 풍경이 속속 생겨난다. 이들은 ‘레빗 타운’이라 불린다. 교외사는 사람들의 도심진입을 용이하게 해주기 위해 ‘거대 도시를 장식하는 리본’이라 불리는 복잡한 고가도로들도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와 도로가 팽창하면서 햄버거가게 맥도날드, 실용적 모텔 체인 홀리데이인, 그리고 대형 쇼핑몰, 스타벅스가 흥행에 성공한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자동차란 적혈구를 타고 도로라는 혈관을 따라 미국 전역에 흘러든 것이다. 욕망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급속한 교외화로 인해 백인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도심은 슬럼화된다. 슬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진행된 재개발은 기존 거주자들에게 혹독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재개발)은 도시 빈민들을 다시 외곽으로 밀어낸다. 어렵지 않게 뉴타운, 용산사태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정치적 보수화에도 기여한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오랜 시간 차를 몰고 통근해야 하는 백인들에게, 보수적 독설로 가득찬 라디오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극우독설가 러시 림보와 글렌 벡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그래서 처음에는 대중시장을 통한 민주주의 확장에 기여한 자동차가, 오늘날 민주주의에는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벼운 서술이어서 문화적 논쟁 못지 않게 자동차에 대한 소소한 지식도 재미있다. 가령 GM은 왜 창업자 이름을 본뜨지 않고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General Motors)라는 이름을 택했을까. 최초의 로드무비는? 고급승용차를 뜻하는 세단(Sedan)의 유래는? 히틀러의 아우토반 이전에 등장한 최초의 고속도로는? 1964년 영화 ‘제임스 본드 - 골든 핑거’에 등장해 최초의 간접광고(PPL)로 꼽히는 차는? 토요타가 내놓은 크라운, 코로나, 코롤라라는 자동차 이름의 공통점은? 책 속에 답이 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쓰레기로 우아하게 만들되 고상한 것을 끌어내리는…

    쓰레기로 우아하게 만들되 고상한 것을 끌어내리는…

    영화 ‘하녀’ 마지막에 전도연이 매달렸다가 떨어진, 바로 그 샹들리에라고 했다. 샹들리에? 그 화려하고 어여쁘고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그것?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깨진 소주병과 맥주병처럼 ‘천한’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제목도 술의 신 이름을 빌려 ‘불면증 - 디오니소스의 노래’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테마인 날카로운 욕망에 딱 어울린다. 배영환(43) 작가의 2008년 작이다. ●깨진 병조각을 샹들리에로 소재는 그렇다 치고 영화판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을까. “미술 작업은 수많은 얘기를 극도로 응축시킨 결과물을 내놓는 거잖아요. 그래서 미술만 하면 서사의 결핍을 느끼는 순간이 와요.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그래서 했었지요.” 단편 쓰다 감독과 인연이 닿아 장편도 하나 썼다. “그 왜,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하죠. 2000년에 개봉한 안성기·박신양 주연의 ‘킬리만자로’라고…. 실패라곤 생각 안 해요. 한 20만 정도 들었을려나. 제 전시 와 주신 분들에 비하자면 많은 거죠.” 농담처럼 툭툭 말을 던지다 쑥스러운 웃음을 흘리고 만다. 작가는 5월 20일까지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 ‘유행가 -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다. 그간 작업을 농축한 것이다. 작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앞서 말한, 깨진 소주병과 맥주병 같은 것을 응용한 것들이다. 그 조각들로 웅장하고 화려한 샹들리에도 만들고, 유행가 가사를 캔버스 위에 수놓기도 했다. 버려진 나무판자나 가구의 자개를 이리저리 조합해 기타를 만들기도 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이름을 쌓아 갔다. 전시 제목도 그렇게 나왔다. 쓰레기로 우아하게 만들되 우아한 것을 끌어내리는 것. 고상한 것을 끌어내리는 키치, 저급한 것을 끌어올리는 팝아트의 충돌이자 접점이다. 안소연 큐레이터는 이를 ‘버내큘러’(Vernacular·자생적)라는 키워드로 요약했다. 안 큐레이터는 “자생적이라 하면 동양적인 기법이나 소재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의 작품은 기법이나 소재를 의도적으로 따 왔다기보다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우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기사 수많은 사연과 눈물의 영원한 동반자는 자취방에서 소주 한 병 앞에 놓고 기타 뚱땅거리며 불러 댔던 유행가가 아니었던가. 이제 청춘의 시간은 지나갔고, 밤새 통음한 뒤 게워 낼 것은 다 게워 냈다. 이제 무엇으로 이 텅 비어 있는 쓰린 속을 달랠까. 상황은 대조적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실제 사각의 링을 4분의1로 축소한 ‘황금의 링 - 아름다운 지옥’은 소주병 움켜쥐고 울게 만드는 현대사회의 정글이 여전함을 드러낸다. 서울 시내 사찰 30곳의 종소리를 한데 합성해 둔 ‘걱정-서울 오후 5:30’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은은히 퍼져 나가고 있는 위로와 위안이 있음을 일깨워 준다. ●“추상동사 작품 더 이어가고 싶어” 작가는 ‘추상동사’ 작품을 더 이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추상명사는 있는데 추상동사는 왜 없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해서 살풀이춤 추는 장면과 장구 두드리는 장면을 찍어 놨는데 사람을 깨끗하게 지웠다. 말 그대로 추상동사다. 살풀이춤에는 ‘댄스 포 고스트 댄스’, 장구에다가는 ‘노크’라는 제목을 붙여 뒀다. 해장국으로 ‘저주받은 걸작’ 영화 대신 영상 작품을 택한 셈이다. 입장료 3000원. 1577-759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3선에 도전하는 푸틴… 키워드로 풀어본 그의 공약

    3선에 도전하는 푸틴… 키워드로 풀어본 그의 공약

    ‘포퓰리즘과 반미’. 대통령 3선에 도전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공약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반감을 품은 국민에게 정치 개혁을 약속해 숨통을 틔워주는 동시에 공무원 및 중산층의 임금을 인상하겠다고 공약하는 등 ‘경제적 당근’을 내놓았다. 반미 노선을 분명히 하고 국방력 증진을 예고해 냉전시대 미국과 맞섰던 ‘슈퍼파워’ 옛소련에 대한 향수도 자극한다. “유권자의 심리를 잘 읽은 공약”이라는 평가와 함께 “재정 여력은 감안하지 않고 장밋빛 약속만 남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푸틴은 대선 유세 기간 동안 7차례의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향후 국정 철학과 구체적 공약을 제시했다.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민생분야다. 의사와 교사·교수의 임금을 2018년까지 지역 평균임금의 200%로 올리겠다고 공약했고, 모스크바 지역 경찰의 봉급도 대폭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국민적 반감을 사는 올리가르히(신흥재벌)를 압박하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푸틴은 옛소련 붕괴 뒤 국유재산의 사유화 과정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긴 재벌을 향해 지난 9일 “(사유화 합법성 논란을 끝내기 위해) 일회성 기부금을 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고가 주택과 대형 자동차 등 사치재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자원 의존형 경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푸틴은 석유·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은 분명 ‘경제적 부흥을 도운 축복’이지만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가량이 석유·금속·목재 등 천연자원을 팔아 얻은 것”이라며, 자원 중독은 종종 저주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다각화를 통해 좀 더 안정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미 발언과 군사대국화 약속도 대선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푸틴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미국이 러시아 약화를 목표로 공작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국영TV들도 마이클 맥폴 신임 미국대사에 대해 “혁명을 조직하기 위해 러시아에 온 인물”로 묘사하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방 현대화 작업에 앞으로 10년간 23조 루블(약 89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국방력 증강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또, 야당 인사를 향후 푸틴 내각에 기용할 수 있다는 소문을 흘리며 정치 개혁 가능성도 열어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돈풀기 공약’이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의 국가부채비율은 2011년 현재 GDP의 8.7%로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푸틴이 내건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이 드는 선심성 공약은 결국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모스크바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경제 불평등의 저주 신자유주의 함정에 빠진 美

    경제 불평등의 저주 신자유주의 함정에 빠진 美

    “미국식 신자유주의 반대!” 이 구호, 참 식상하다. 이 구호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만큼 중요한 주제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겠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말을 들은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본산 미국 땅에서 그 때문에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면? 그리고 구체적으로 미국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열악해졌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오를 만한 책 2권이 나왔다. 인권문제에 밝은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에게 추천사를 받았다. “에밀 뒤르켐의 고전 ‘자살론’이 21세기 버전으로 환생했다고나 할까.”라고. 그 말대로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는 뒤르켐의 전통에 따라 놀라운 결과를 제시한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공식 자살률, 살인율 통계를 봤더니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늘어나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보수정치, 그리고 그 보수정치가 생산해 내는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그 경제적 불평등이 강요하는 수치심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정신병적·범죄적 성향 때문이 아니다. 저자는 자살과 살인을 ‘폭력치사’(Lethal Violence)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 나 자신이냐, 남이냐 하는 방향만 다를 뿐 극한적 파괴행위라는 점이 똑같아서다. 10만명당 폭력치사율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면 1900년 15.6명으로 시작해 1908년, 1911년이 되면 22.6명으로 늘어난다.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다. 민주당 출신 윌슨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 수치는 1920년 17.4명까지 떨어진다. 그 뒤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줄줄이 나오면서 1929년에는 22.3명으로 늘어난다. 1933년 민주당 출신 F 루스벨트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1941년에는 19명까지 줄어든다. 최근 자료도 매한가지다. 민주당 클린턴 정권은 21.7명이라는 수치를 물려받았으나 2000년에는 16명까지 떨어뜨렸다. 10만명당 기준이라 인구 3억명을 대입하면 통계수치상 1명은 곧 3000명이다. 순누적치를 봤더니 1900~2007년까지 공화당 정부 때가 민주당 정부 때보다 38.2명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지난 한세기 동안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라면 안 죽었을 수 있는 11만 4600명이 더 죽었다는 얘기다. 예외도 있다. 공화당 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민주당 출신 카터 대통령이다. 아이젠하워 때 폭력치사율은 늘지 않았고, 카터 때는 줄지 않았다. 상대당 집권기 사이에 끼어 있어서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웠던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이들의 소속 정당은 각각 공화당, 민주당이었지만 실제 정책 방향은 오히려 민주당, 공화당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몇가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문턱은 저자다. 광적인 민주당 지지자이냐는 점이다. 저자는 폭력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대에서 34년간 일했고 이후 뉴욕대로 자리를 옮긴 정신과 의사다. 스스로도 “난 의사지 정치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니다. 내 관심사와 분야는 삶과 죽음의 문제였지 불황과 선거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힌다. 1977~1992년까지 하버드대 법정신의학연구소장 자격으로 매사추세츠주 내 여러 교도소 수감자들의 폭력치사율을 떨어뜨리는 작업을 실제 진행한 경험도 있다. 이 경험은 책 서술 곳곳에 녹아 있다. 저자는 폭력행위의 원인을 찾다가 20세기 전반에 대한 통계자료 분석에 착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간단할 리 만무하다. 폭행치사 발생률이 단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정치적 꼬리표일 리는 없다.” 그래서 대공황, 2차대전처럼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통계수치를 이리저리 만져 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오직 공화당 정부 때만 올라가고, 오직 민주당 정부 때만 내려간다.” 두 번째 문턱은 정당과 폭력치사발생률 간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저자는 의학에서 쓰는 ‘복용량-반응 곡선’ 논리를 가져온다. 가령, 담배는 몸에 나쁘고 운동은 몸에 좋다. 꾸준한 운동은 보호요인, 꾸준한 흡연은 위험요인이다. 그러나 꾸준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는 사람은 있다. 꾸준한 흡연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다. 해서 담배와 건강, 정확히는 폐암과의 인과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다. 소비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폐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를 담배에다 붙이는 게 타협책이다. 다시 말해 의학적 용어를 쓴다면 “공화당 행정부는 폭력치사의 ‘위험요인’으로, 민주당 행정부는 ‘보호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를 통해 정책을 소비하는 유권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말이다. 사회과학적 용어를 쓰자면 “폭력치사율을 올리려면 공화당 대통령이, 내리려면 민주당 대통령이 ‘필요’하지만 공화당 대통령이나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논의에서 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내세워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범죄율을 낮췄다고 주장하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다. 저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줄리아니의 시장 재임기간은 1994~2001년이다. 클린턴 정부 시절 전반적으로 폭력치사율이 하향곡선을 그릴 때다. 미국 전체 평균이 그렇다는 말은, 그 부분집합인 뉴욕의 하락세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실제 뉴욕뿐 아니라 다른 곳의 범죄율도 이 시기 동안 급격히 떨어진다. 저자는 범죄를 척결했다는 줄리아니를 두고 “자기가 울면 아침이 온다고 믿는 닭”이라고 부른다. 세 번째 문턱도 있다. 공화당과 보수주의는 늘 법치주의를 내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살인과 자살을 치솟게 할까. 그리고 국민은 안전을 원한다면서 왜 정반대 결과를 낳는 곳에다 표를 줄까. 이 점은 4장 ‘수치심이 사람을 죽인다’와 6장 ‘보수정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를 참고할 법하다. ‘수치심의 윤리’와 ‘죄의식의 윤리’를 각각 정치적 보수, 정치적 진보 성향에 연결시킨다. 이는 이념, 인종 문제와 연결된다. “민주당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를 추구한다고 비난하고, 그것은 결국 소련식 공산주의와 빈곤, 전제 정치로 치닫는다고 주장해서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남부전략’(Burbon Strategy)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 문턱에 다다랐다. 미국 이외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을까. 멀리 갈 것 없다. 한국은 자살률이 OECD 1위인 국가다. 가령, 김대중-노무현정권과 이명박 정권하에서 폭력치사율을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남부전략을 동서전략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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