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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8인의 삶 ‘인간과 인간다움’을 고민하다

    작가 8인의 삶 ‘인간과 인간다움’을 고민하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천주희 외 7명 지음/낮은산/196쪽/1만 2000원인간보다는 이익이, 삶보다는 효율이,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시되는 사회다. 인간은 국가와 기업, 그리고 그에 복무하는 인간들이 형성하는 거대한 프로세스 안에 살면서, 외려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잃는 역설을 경험한다. 이 시스템에 동화되지 않는 이는 곧바로 제거당한다. 그러니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쳇바퀴 돌 듯 산다. 그러다 종종 순환 프로세스 중간에 멈춰 서서 돌아볼 때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니까. 이 물음, 그러니까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는 무엇일까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 새 책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다. 8명의 저자가 각자의 삶을 바탕으로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천주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를 통해 우리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 구조를 살핀다. “다수라는 집단의 편의”를 위해 소수와 약자를 분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지우는 우리 사회의 노동 ‘재난’을 열거하고 있다. 거의 전부가 갑과 을에서 비롯된 ‘인재’들이다. 그는 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사고하지 않은 결과 ‘인간의 자리’를 어떻게 상실했는지 짚고 있다. 김민섭은 자신의 아이 이름을 이웃이란 뜻의 한자 ‘린’이라 지은 이야기를 바탕 삼아 ‘사회적 인간’의 의미를 환기한다. 류은숙은 식당 ‘알바’로 일하는 동안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밥상을 세 번이나 차렸던 경험담을 토대로 ‘존재’가 아닌 ‘열심’만 섬기는 나라를 통박하고 있다. 전성원은 태초의 ‘인류’가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하승우는 “곁에 서는 것으로서의 정치”를, 강남순은 ‘탈영토적 고향’이란 개념을 통해 인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홍세화는 “회의하는 인간”을 주문하고 있다. 그에게 ‘회의하다’는 ‘생각하다’와 동의어다. 지배논리에 훈육되지 말고 끊임없이 회의하며 사는 길이 인간의 길이란 거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쉬 설득되지 않는 사회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선전과 선동은 쉽게 먹힌다. 이런 상황은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관계의 돈독함과 풍요로움을 향유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남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소유에 집착하면서 물신주의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 결론은 어디로 이어질까. 다시 처음으로 간다. 이익과 효율, 결과가 중시되는 사회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문제는 빈곤이 아니라 불평등이야

    문제는 빈곤이 아니라 불평등이야

    부러진 사다리/키스 페인 지음/이영아 옮김/와이즈베리/280쪽/1만 4800원영화 ‘설국열차’의 메이슨(틸다 스윈턴) 총리는 “누구도 신발을 머리 위로 쓰진 않는다. 신발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처음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앞칸, 당신들은 꼬리칸. 자기 주제를 알고 자기 자리나 지켜!”라며 불평등한 체제를 옹호한다. 극단적인 계급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노턴 교수와 캐나다 토론토대 캐서린 드셀스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을 봐도 현실이 설국열차의 확장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두 교수는 대형 항공사의 비행 기록 수백만건을 분석했다. 일등석부터 삼등석으로 좌석이 구분된 여객기는 1000회 비행당 기내 난동(욕설·폭행·기물 파손·승무원 지시불응)이 평균 1.58건인 반면 등급 구분 없이 삼등석(이코노미석)만 있는 경우 평균 0.14건에 그쳤다. 특히 기내 난동의 발생률은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앞서 탑승한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을 통과하는 구조에서 두 배 더 높았다. 일등석의 존재는 9.5시간 비행 지연과 같은 위험 효과로 여겨졌다. 비행기는 ‘지위 서열’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계급사회의 축소판이다. 항공사들은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인 불평등’을 마케팅으로 활용한다. 같은 연구에서 스스로를 우월하게 여기는 심리가 강한 일등석 승객의 경우 난동을 일으킬 확률도 수직 상승했다. 2009년 난동을 피워 기내에서 쫓겨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부인 이바나 트럼프부터 국내 땅콩회항 사건, 라면 상무, 중견기업 오너 2세 만취 난동 등이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신간 ‘부러진 사다리’는 토마 피케티 등 경제학자들이 주목해 온 경제적 불평등 현상에서 나아가 불평등이 개인의 삶과 생각,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각도로 조명한다. 저자 키스 페인은 켄터키주 빈민가 출신으로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교수가 된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다. 그는 성장기부터 자신이 경험한 불평등과 차별의 영향을 실험심리학을 통해 규명해 왔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진짜 문제는 빈곤이 아니며, 불평등이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 그건 저자가 천착해 온 ‘왜 가난하다는 느낌이 실제 가난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상대적 빈곤감만으로도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이다. 주머니 사정이 빡빡할수록 눈앞의 이익을 좇거나 무모한 결정을 하는 성향이 짙다는 건 상식적이다. 더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보다 가난하다’라는 주관적 느낌조차 무모한 위험을 감수하고 한 치 앞만 내다보는 행동 전략을 취하게 만든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다. 저자의 연구팀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부와 지위의 차별이 심한 주일수록 구글의 키워드 검색어로 ‘복권’, ‘섹스’, ‘마약’, ‘단기 소액대출’, ‘사후 피임약’, ‘성병 검사’ 등의 특정 검색 건수가 훨씬 많다는 걸 발견했다. 다양한 실증 연구와 통계지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살인, 폭력, 교육 저하, 유아 사망, 정신질환과 같은 사회문제들이 소득 자체보다는 소득 불평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불평등은 반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 비율을 높이며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인종적 편견을 강화해 사회적 갈등도 부추긴다는 증거도 제시한다. 저자는 “사회적 사다리의 꼭대기와 밑바닥이 서로 멀어질수록 더 분열된다. 이것이 바로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불평등 구조가 고착된 지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특권의식이 더 강했고, 같은 지역의 중산층조차 거리낌 없이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경향도 농후했다. 불평등은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가치관마저 바꾼다. “사람들은 불평등과 빈곤을 자주 혼동하고, 불평등 감소라는 목표를 경제 성장 목표와 혼동한다. 부자가 되고 나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불평등을 조장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부자들의 부유함이다. 우리 인간들이 불평등 속에서 번영하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개조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은 사다리의 몇 번째 층에 서 있는가?”(키스 페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랑하는 남친이 입던 셔츠 냄새, 스트레스 줄여 줘”(연구)

    “사랑하는 남친이 입던 셔츠 냄새, 스트레스 줄여 줘”(연구)

    여성에게 사랑하는 남성의 체취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연구진이 이성애자 연인 96쌍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국제 학술지 ‘성격과 사회심리학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참가 남성들에게 셔츠를 24시간 동안 입힌 뒤 제출하게 했다. 그리고 참가 여성들에게는 모의 취업 면접 등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나서 3분의 1에게는 남자 친구의 셔츠, 다른 3분의 1에게는 낯선 남성의 셔츠, 나머지 3분의 1에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셔츠를 무작위로 주고 냄새를 맡게 했다. 그 결과, 자신의 남자 친구가 입었던 셔츠의 냄새를 맡은 여성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낯선 남성이 입었던 셔츠의 냄새를 맡은 여성들은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했다. 그리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셔츠의 냄새를 맡은 여성들의 코르티솔 수치는 변화가 없었다. 이에 대해 연구 주저자인 말리스 호퍼 연구원은 “많은 여성이 남자 친구와 떨어져 있을 때 그의 셔츠를 입거나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 연구 결과는 남자 친구의 체취가 심지어 남아 있는 체취마저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이 여성들에게 남성들의 체취를 맡게 한 이유는 여성의 후각이 훨씬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체취가 더 강해 이런 연구 방식을 진행하게 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앞으로 연구진은 부모와 자식 등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체취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계획이다. 사진=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환공포증, 두려움 아니다. 혐오감일 뿐”(연구)

    “환공포증, 두려움 아니다. 혐오감일 뿐”(연구)

    일반적으로 ‘구멍에 대한 두려움’(fear of holes)으로 묘사되는 환공포증(Trypophobia)이 두려움이 아닌 혐오감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복되는 특정 문양에서 혐오감을 나타낸다는 이 증상은 전 세계 16%의 인구가 지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정신질환으로 진단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은 벌집이나 연꽃 씨방 등 반복된 무늬를 봤을 때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미국 에모리대학의 스텔라 로렌코 심리학과 부교수팀은 사람들이 환공포증을 느끼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로렌코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상을 보는 걸 너무 신경을 써 자기 주변에 있는 걸 견딜 수 없어 한다”면서 “진화적 근거가 있다고 알려진 이 현상은 더 흔히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환공포증과 같은 반응이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뱀이나 거미와 같이 생명에 위협이 되는 사물에 먼저 공포를 느끼고 피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 연구에 주저자로 참여한 블라디슬라브 아이젠버그 연구원은 “우리 인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시각적인 존재”이라면서 “우리는 풀밭에 있는 뱀의 일부나 전체를 보더라도 즉각적으로 추론해 잠재적인 위험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동물의 이미지를 보면 공감 신경계와 관련한 공포 반응이 유발된다고 알려졌다. 심장박동수와 호흡율이 빨라지고 동공이 확대되는 것이다. 잠재적인 위험에 관한 이런 과다 각성을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이라고도 말한다. 연구진은 이런 생리적 반응이 겉보기에 무해한 구멍을 볼 때와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려고 했다. 이들은 안구 추적 기술을 사용해 참가자들이 구멍이나 위협적인 동물, 그리고 중립적인 이미지를 봤을 때 동공 크기 변화를 측정해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구멍 이미지를 봤을 때는 뱀이나 거미와 같이 위협적인 동물의 이미지와 달리 동공 수축이 크게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교감 신경계와 관련한 반응이자 혐오감으로 두려움은 아니다. 아이젠버그 연구원은 “표면상으로 위협적인 동물과 구멍의 이미지 모두 혐오 반응을 일으킨다”면서도 “두려움에 따른 투쟁 혹은 도피 반응과 달리 부교감 반응은 심장박동 수와 호흡율을 느리게 하고 동공을 수축한다”고 말했다. 한편 환공포증은 둥근 형상을 뜻하는 환(環)과 공포증을 결합한 인터넷 조어다. 영문 이름인 트라이포포비아(Trypophobia)는 그리스어를 조합한 말이다. 구멍을 의미하는 트리파(τρύπα)와 공포란 뜻을 가진 포보스(φόβος)를 결합했다. 2005년 공포증 목록을 수집하는 인터넷 포럼 포비아리스트닷컴이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하면서 보편화됐다. 사진=ⓒ kasipat / Fotoli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배우 이종석이 오픈한 카페, 가로수길 ‘89맨션’ 사진 봤더니...

    배우 이종석이 오픈한 카페, 가로수길 ‘89맨션’ 사진 봤더니...

    배우 이종석이 오픈한 카페가 화제인 가운데, 그가 직접 공개한 카페 사진이 눈길을 끌고 있다.3일 배우 이종석(30)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오픈한 카페 ‘89 맨션(Cafe 89 Mansion)’을 언급,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종석은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2층 규모 카페 ‘89 맨션’을 오픈했다. ‘89 맨션’은 1층은 커피와 음료를 파는 카페로, 2층은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등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그는 앞서 자신의 SNS를 통해 카페 내부 사진이나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직접 내부 인테리어에 참여하거나, 커피를 만드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저도 그 카페에서 일해도 될까요?”, “보는 내가 다 뿌듯”, “저도 커피 마시러 갈래요!”, “가보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종석은 카페를 오픈해 바리스타로 변신하는가 하면, 지난해 나태주 시인과 함께 시집 ‘모두가 네 탓’의 저자로 나서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종석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오늘 ‘질문’ 하셨나요?…새해 작심삼일 피하는 법

    오늘 ‘질문’ 하셨나요?…새해 작심삼일 피하는 법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날 멋진 계획을 세운다. 안타깝게도 며칠 가지 못해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면 된다는 둥, 아직 ‘진짜 설날’이 아니라는 둥 별별 핑계를 대곤 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의지 박약. 이런 ‘의지 박약’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방법을 제시한 연구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 뉴욕주립대학 알바니 캠퍼스, 아이다호대학, 워싱턴 주립대학 공동 연구팀들은 이른바 ‘질문-행동 효과’(question-behaviour effect)로 알려진 심리 현상에 관련된 100여 개 기존 연구를 종합,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질문-행동 효과’란, 특정 주제에 대한 질문을 들을 경우 향후 이에 관련된 행동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심리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연구논문 공동저자 데이브 스프로트는 “미래에 특정한 행동을 실천할 것인지 여부를 질문할 경우, 질문을 들은 사람은 실제로 해당 행동을 실행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상대에게 ‘앞으로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 질문을 들은 사람은 재활용이 불러올 명백한 긍정적 결과(환경보전, 자원절약 등)를 머릿속에 떠올린 뒤 ‘그렇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렇게 한 번 스스로 약속을 내뱉었을 경우, 이를 어겼을 때 스스로 상당한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이 효과는 질문자의 물음이 사회규범에 관련된 것일수록 더 커진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논문의 또 다른 공동저자 에릭 R. 슈방겐베르크는 “개인, 혹은 대중에게 이미 널리 받아들여진 규범에 관한 질문일수록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여기에는 몸에 좋은 음식 먹기, 자원봉사하기 등의 주제가 포함된다”고 전했다. 또한 분석 결과 응답자의 이러한 행동변화는 질문을 들은 뒤 6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버릇들, 즉 수업 결석하기, 과음 습관 등을 고치는 데에는 이 방식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해당 현상을 소비자 구매행동 변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대면상담이나 광고메일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특정 사안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이에 대답한 소비자들이 자기 자신의 대답에 스스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 이 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예’ 혹은 ‘아니오’ 둘 중 하나로 답변해야 하는 질문 유형을 선택하는 것이 좋으며,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동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연구결과는 ‘소비자 심리학 저널’(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에 소개됐다. 사진=ⓒ포토리아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AI가 아냐, 거대 기업이 문제야

    AI가 아냐, 거대 기업이 문제야

    특이점의 신화/장가브리엘 가나시아 지음/이두영 옮김/글항아리/200쪽/1만 5000원 지난해 3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의 위력을 단단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알파고에 패한 이세돌이 “이세돌이 진 것이니 인류의 패배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를 인공지능의 출현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로봇이 스스로 학습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인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설정은 그동안 ‘터미네이터’, ‘A.I.’, ‘엑스 마키나’ 등 영화에서 많이 소비되던 주제다. 실제 과학계도 인공지능의 잠재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이 책의 서두에는 2014년 5월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낸 성명을 소개한다. 호킹 박사는 기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발전하고 제어 불능 수준까지 이르러 인류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전 세계 쟁쟁한 과학자들도 이에 동조해 서명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인공지능을 연구해 온 저자는 과학자들이 이처럼 예언자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특이점’이라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제목이 말해 주듯 현재 거론되고 있는 특이점에 대한 각종 기대와 우려는 과학적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이점 신화 뒤에는 거대한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정보기술(IT)의 개발을 주도하면서도 그 기술이 인류를 파멸로 내몰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교묘한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방화범인 동시에 소방관인 형국”이라고 꼬집는다. 대표적인 IT 기업인 구글은 기술이 인간사회의 규범과 선의 기준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제적인 윤리헌장을 제정하는 윤리위원회의 설립을 약속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의 삭제를 요구하는 개인의 요청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은 개인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된 국가를 대신해 정보보안이나 금융거래 서비스를 주도하며 개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걱정하거나 감시해야 할 대상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에 목적성과 규칙을 정하는 기업들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만화가, 독자 사로잡는 그들만의 비법

    만화가, 독자 사로잡는 그들만의 비법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위근우 인터뷰와 글/남해의봄날/220쪽/1만 5000원연말 스크린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뿐 아니라 과거 흥행작인 ‘내부자들’이나 명품 드라마 ‘미생’까지, 공통점은 모두 원작이 웹툰이라는 점이다. 동시대 가장 ‘핫’(hot)하고 ‘힙’(hip)한 직업이 웹툰 작가인 시대이기도 하다. KT경제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올해 7000억원을 돌파했고, 2020년 1조원 시장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신간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의 인터뷰어 위근우는 “게임의 룰이 달라졌다”는 말로 만화의 위상 변화를 증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매력적인 ‘만화의 시대’로 안내하는 동시대 만화가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난다(어쿠스틱 라이프), 이종범(닥터 프로스트), 한지원(생각보다 맑은), 김정연(혼자를 기르는 법), 이동건(유미의 세포들), 윤태호(미생) 등이 풀어 놓는 치열한 창작의 고민을 담고 있다. 독자를 사로잡는 만화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서사’, 각자의 개성 있는 세계관이 녹아 있는 독특한 이야기들 아닐까. 일상툰 작가인 난다는 서사를 사건의 힘에 의지하지만 반전은 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다. 소소한 일상 경험들을 캡처하듯 만화 속에 붙잡아 서사적으로 변용한다. 난다의 미덕은 균형 감각이다. 특별한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자기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안기는 이율배반적인 충족감이다. 대학에서 전공한 심리학을 만화 소재로 삼는 이종범 작가는 각 스토리를 구간별로 해체하는 편집증적인 방식의 이야기 설계를 선호한다. 그의 대표작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한 줄의 메모에서 출발했고 캐릭터와 서사는 주제 의식에 충실하게 부합했다.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해 이종범 작가는 ‘배가 산으로 가는 식’의 실패 확률은 낮은 작법이라고 자신한다. 출판 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전업한 김정연 작가는 서사적 명료성을 중시한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상황과 연출, 대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바대로 전달하는 것’, 이건 말로 표현하면 쉽지만 작법으로 실행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작품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작품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느껴지는 동시대 또래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명할 줄 아는 작가만의 섬세한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지난해 한국만화가협회로부터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한 이동건 작가는 문제의식과 작가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유미의 세포들’이 성장 서사의 구조를 갖는 건 작가 스스로 ‘요령’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관심사가 개입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만화가가 되는 방식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전통적인 입봉 경로인 공모전뿐 아니라 포털의 웹툰 2부리그(조석 작가)나 인터넷 커뮤니티(이말년 작가), 블로그(박수봉 작가)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연재로 ‘2017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한 수신지 작가 사례까지 다양한 경로를 참고하라고 말한다. 허영만 화실의 문하생으로 만화 인생을 시작해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윤태호 작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그는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고 강조한다. 윤 작가는 ‘핑퐁’의 마츠모토 타이요나 ‘아키라’의 오토모 카츠히로처럼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조형 작가보다는 노력을 통해 탄탄해지는 완성형 작가를 많이 키워낼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본다. 저자는 만화가에 대해 “새로운 플랫폼과 시장에서 자신들이 직접 룰을 만들고 또 그 룰을 폐기하거나 확장하는 능동적 이야기꾼”이라고 정의하며, “만화가가 큰 인기와 관심의 대상이 된 건, 그들이 동시대성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한 창작집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스타워즈 안에 온 세상 들어 있다

    스타워즈 안에 온 세상 들어 있다

    스타워즈로 본 세상/캐스 R 선스타인 지음/장호연 옮김/열린책들/320쪽/1만 5000원“포스가 함께하길.”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모든 편에 등장하는 대사다. 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인사처럼 이 말을 하고 다닌 덕분에 미국에서는 일상어처럼 쓰이는 말이다. 2015년 12월 19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역시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이 말을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이 영화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2016년 박스오피스 수입을 비롯해 서적, 장난감 등에서 벌어들인 총수입만 302억 달러(약 32조원)로 아이슬란드, 자메이카, 라오스 등의 국내총생산보다도 많을 정도이니 말 그대로 ‘포스’가 대단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이자 저명한 헌법학자인 캐스 R 선스타인 역시 올해로 탄생한 지 40년을 맞은 스타워즈를 인류 역사를 통틀어 유례없이 성공한 영화로 꼽는다. “스타워즈는 한 알의 모래다. 그 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스타워즈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과 다름없다. 저자는 신간 ‘스타워즈로 본 세상’에서 기독교, 페미니즘, 행동과학,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열쇠말을 통해 영화에 담긴 의미와 주제, 세계관을 들여다본다. 저자가 먼저 관심을 보인 부분은 제작사와 배급사, 배우와 감독까지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내다본 이 영화의 첫 에피소드 ‘새로운 희망’이 어떻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공민권 운동, 워터게이트, 소비에트 연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미국의 암울한 시대에 때마침 시대를 위로하는 현대적인 신화로서 스타워즈가 등장했다. 스타워즈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탓에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스타워즈 열풍에 편승하는 ‘네트워크 효과’도 한몫했다. 또 다른 문제는 ‘선택의 자유’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빛과 어둠이란 세계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렸듯이 ‘스스로 운명을 통제하라’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교훈이라는 것이다. 책은 그 외에도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 구원의 가능성, 왜 중앙 집중화된 권력은 몰락하는지, 헌법과 스타워즈가 어떤 면에서 닮았는지 등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서두에서 미리 단언했듯 스타워즈를 사랑하는 사람,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사람, 스타워즈를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세 부류 모두의 흥미를 아우를 수 있는 책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성리학으로 본 한국… 질서 지향의 나라

    성리학으로 본 한국… 질서 지향의 나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 기조 지음/조성환 옮김/모시는 사람들/272쪽/1만 5000원한국은 유교 국가다. 조선시대의 통치 이념이었던 성리학이 사회 전반에 두텁게 깔려 있다. 성리학은 이(理)와 기(氣)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이’는 도덕과 이념, ‘기’는 욕망과 현실을 뜻한다. 성리학만 놓고 보면 고리타분하고 별 재미도 없다. 한데 이를 현대 한국을 분석하는 잣대로 쓰면 매우 흥미진진해진다. 새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시도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사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종전의 방법들은 대개 서양의 철학이나 사회과학 이론들이었다. 반면 책은 유교를 방법론 삼았다. 다소 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생경하고 이질적인 한국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저자가 서울대에서 8년을 지낸 일본인이란 점도 관심을 끈다. 외국인이 정작 우리는 시도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해부하는 과정이 퍽 흥미롭다. 저자는 ‘이’와 ‘기’로 한국 사회 곳곳을 들여다본다. 정치판부터 여염의 밥상까지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자주 한국과 일본의 비교를 곁들인다. 비교 덕에 여태 몰랐던 유교 국가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흔히 ‘혼돈의 나라’로 여겨진다. 어지러운 시장, 난폭하게 질주하는 자동차 등에서 무질서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견해는 다르다. 한국은 강렬한 질서 지향의 나라다. 질서는 곧 ‘이’다. 한국에 혼돈적 요소가 강렬한 것은 한국인의 질서 지향성이 강렬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저자는 성리학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이’를 선호하게 만든 게 아니라 ‘이’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성향이 성리학에 열광하게 만든 것이라고 봤다. 조선시대에는 완전무결한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그러니까 ‘이’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쥐는 순간 권력과 부가 굴러 들어왔다. 반대의 경우는 물을 것도 없다. 한순간에 권력도 부도 잃었다. 심지어 목숨까지 내놔야 했다. 무력이 아닌 이론으로 투쟁한 것이다. 이런 습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늘 다른 이들에게 소리 높여 표현해야 하고, 자신의 ‘이’의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저자가 한국 사회를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라거나 “한국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이라고 표현한 건 이 때문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인간 DNA 98%는 ‘긁지 않은 복권’

    인간 DNA 98%는 ‘긁지 않은 복권’

    정크 DNA/네사 캐리 지음/이충호 옮김/해나무/440쪽/1만 8000원흔히 유전자(DNA)에는 세균이나 효모에서부터 코끼리, 고래까지 온갖 생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암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1년 2월 30억쌍의 염기로 이뤄진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됐을 때 암호화 정보를 가진 DNA는 전체의 2%인 2만여 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 98%는 이렇다 할 기능이 없는 정크(쓰레기)로 취급됐다. 하지만 연구가 거듭되며 유전자 발현 조절, DNA 손상 복구, 단백질 생산과 운반 등 정크 DNA가 굉장히 다양한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또 일부는 희귀질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규명돼 치료와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분자세포생물학자인 저자는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이 많은 정크 DNA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집, 삶을 담는 그릇… 그를 꼭 빼닮은 인생

    [그 책속 이미지] 집, 삶을 담는 그릇… 그를 꼭 빼닮은 인생

    집이 사람이다/한윤정 글/박기호 사진/인물과사상사/364쪽/1만 7000원자신만의 집을 짓기 위해 백지에 설계도를 그리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한윤정씨는 집을 사유해 온 철학자가 아닐까. 작가와 예술가들의 소우주 같은 집을 엿보며 탐구한 그는 마침내 집에 대해 통달한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강한 사람은 모든 곳이 집이라고 하고/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도 집이 아니라고 한다/집은 각자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집에서 길어올린 깊은 성찰을 풀어낸다. 집을 ‘삶을 담는 그릇’에 비유하는 저자가 꼽는 ‘좋은 집’들은 사진작가 박기호의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집을 꼭 빼닮은 인생 이야기도 덤으로 건넨다. 사진은 충남 논산시 대둔산 기슭의 폐가를 접착제 하나 쓰지 않고 2년 6개월간 물에 갠 흙과 지푸라기로 되살려 낸 환경운동가 차준엽의 토담집. 그는 지난 10월 대지의 자궁 같던 그 안식처에서 귀천(歸天)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지금의 사회·우리를 가장 잘 나타낸 말

    지금의 사회·우리를 가장 잘 나타낸 말

    유행어 사전/이재현 지음/글항아리/360쪽/1만 6000원슈퍼 전파자, 썸, 뇌섹남, 헬조선, 흙수저, 애데릴라, 힙하다, 한남, ㅇㅈ, 개돼지, 국뽕, 레임닭, 아재, 닥정너, 박ㄹ혜, 개쩐다, 법꾸라지, 프로불편러….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순식간에 소비되고 없어지는 것 같은 유행어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포착해 내는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이며 대중적인 도구다.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2015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시쳇말 아흔 개의 어원과 현상, 영향을 분석하며 오늘의 우리 사회와 우리를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말이지만, 곧 멀어질 말들을 곱씹어 음미하다 보면 우리 삶의 틈바구니에 숨어 있던 묘미가 배어 나온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구석기 라이프 스타일이 좋다고?

    구석기 라이프 스타일이 좋다고?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마를린 주크 지음/김홍표 옮김/위즈덤하우스/464쪽/1만 8000원이런 광경을 상상해 보자. 뉴욕 맨해튼의 좁은 아파트 발코니에 핏물 흥건한 돼지고기가 즐비하게 내걸려 있는 풍경. 멀쩡해 보이는 남자들이 큰 바위 들기, 큰 동물 도살하기 등 ‘수렵채집인처럼 운동하라’는 지침에 따라 덩치만 한 역기를 들고 진땀을 빼는 모습. 동굴에 살던 원시인들이 자주 피를 흘렸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작정하고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이들의 모습. 뜨악하게 들리겠지만 한때 지구 한편에서는 ‘종교’처럼 떠받들여진 ‘구석기 환상’들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구석기 다이어트로 몸매를 가다듬었다고 자랑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이전의 식습관대로 불을 가하지 않은 자연 음식, 고기를 먹고 유제품은 배제해야 한다는 ‘구석기 식단’이 암, 비만 등 ‘현대의 저주’로 불리는 질병에서 우리를 구할 것이라는 주장들이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람들은 왜 바삭한 음식을 좋아할까’란 물음에도 구석기 찬양론자들은 ‘과거 인간이 벌레를 우두둑 씹어먹었던 때의 기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괴이한 주장을 펼쳤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농경은 인류의 비극”이라고 총평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성적 불평등이 나타나고 질병이 만연했으며 전제 정치가 판을 치게 됐다’는 것이다. 식습관에서 점화된 구석기 생활 방식을 향한 찬양은 운동, 섹스, 가족 문화, 육아 등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며 퍼져 나갔다. 전체 진화의 시계뿐 아니라 인간 진화의 시계에서도 농경과 정착의 시기는 눈 깜빡할 정도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구석기 식단은 우리 유전자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 유일한 식단”이라는 주장은 질병의 공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매혹적으로 파고들었다.하지만 책은 인간의 유전자나 행동 방식이 특정한 시기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이 주장들이 착각이자 궤변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인류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이 잡듯이’ 꺼내놓으며 괴멸시킨다. 진화생물학자이자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생태학자인 저자는 방대한 연구 사례를 가져와 위트 있는 문장으로 명쾌하게 결론 내린다. ‘구석기 조상들의 생활 방식이 우리 본성에 어울린다는 전제는 일종의 집단 기억 상실증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현대인들을 구석기에 대한 환상에 젖어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아마 암, 결핵 등 죽음과 맞닿은 질병일 것이다. 2010년 이집트 학자 로살리 데이비드와 마이클 짐머만은 고대 미라와 고문서까지 살린 연구를 통해 “자연환경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대기오염부터 식단, 삶의 양식 전반에 걸쳐 암은 인간이 만든 질병이다”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정말 우리 조상들은 암에서 자유로웠을까. 1996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이집트의 고대 유골 샘플 905종에서 5개의 암, 유럽 유골 2547종에서 13개의 암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적은 수치로 보이지만 암이 뼈까지 흔적이 남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는 현대의 암 발병률과 맞먹는 것이라는 결론을 낸다. 결핵도 마찬가지다. 결핵은 고대 이집트 미라의 폐와 다른 기관에서도 발견된다.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도 결핵균으로 시름시름 앓았던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은 햄버거나 아스팔트 도로 등 현대적 이기가 등장하기 이전 사회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구석기에 대한 환상은 우리의 몸과 행동 방식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이 한때 있었다는 안도감(하지만 착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진화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임의로 설정한 일정한 시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거나 완벽한 건강을 유지했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대신 질병은, 생명이라는 것이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의 연속이고 끝이 행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역사를 통해 보면 삶에는 역겹고 잔인하며 짧은 단계가 언제든 있었다. 진화는 계속되지만 방향은 없다. 빛을 따라 미리 정해진 길을 걷지 않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혜주의 포크&라이프] 최고 대 최고

    [김혜주의 포크&라이프] 최고 대 최고

    음식 책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번역 출판용 작업 폴더에는 오직 음식 관련 전자 원고들만이 잔뜩 담겨 있었다. 판권 계약 때문이라도 서둘러야 했건만 작업 진도는 영 지지부진. 이유가 있었다. 있을 법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책은 외서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면 이참에 내가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더니 쉽게 잦아들지 않았던 것이다. 특정 먹거리마다 최고라는 타이틀을 두고 언급되는 경쟁 음식들이 있다. 그것들을 비교해 주는 내용을 책으로 엮으면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를테면 와인 쪽에서는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비교하고, 송로버섯이라면 이탈리아 알바산 흰 송로버섯과 프랑스 페리고르 지방의 검은 송로버섯을, 생햄의 일종인 이탈리아의 프로슈토와 스페인의 하몬은 염장 숙성한 돼지 뒷다리 항목에서 다루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힌트는 이십여 년 전의 경험담에서 얻었다. 여행 도중 보르도 시내의 어느 와인숍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당시 와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이 보르도와 부르고뉴라는 것뿐. 가게를 둘러보다 직원에게 부르고뉴 와인은 어디 있느냐 물으니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렇게 되묻는 것이 아닌가. “그곳에서도 와인을 만드나요?” 비슷한 상황이 이탈리아 프로슈토 제조 현장에서도 있었다. 현장 견학을 마치고 담당자에게 질문을 하려는데 담당자는 계속 안 들린다는 식의 제스처를 과장되게 취하며 말을 막았다. “프로슈토랑 하몬 중에서…” “으으응?” 프로슈토와 비교할 만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메시지를 그는 그렇게 전달한 것이다. 예기치 못한 일상의 변수가 발생하면서 결국 내가 저자로 나서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미련은 여전히 남아 다루고자 했던 그때의 먹거리들을 일상에서 접할 때면 ‘지금이라도?’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최근 다녀온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육중하게 매달려 있는 하몬들을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이 반, 싱숭생숭한 마음이 반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솔푸드인 하몬은 크게 백돼지로 만든 하몬 세라뇨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하몬 이베리코로 나뉘는데, 후자를 더 쳐준다. 다시 하몬 이베리코는 먹이와 사육 방식 등에 따라 세보(사료라는 뜻) 이베리코, 세보 데 캄보(방목이라는 뜻) 이베리코, 베요타(도토리라는 뜻) 이베리코, 베요타 100% 이베리코로 나뉜다. 검은 발이라는 의미의 파타 네그라는 이 중 최상위급인 베요타 100% 이베리코 돼지를 가리킨다. 흔히들 베요타 이베리코를 두고 태어나서부터 오직 도토리만 먹인 돼지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넓은 숲에 3개월 이상 돼지를 풀어놓는데 그러면 돼지는 그때부터 하루에 8㎏이 넘는 도토리를 먹으며 매일 1㎏씩 살을 찌운다. 바로 이 돼지의 뒷다리로 만든 생햄이 하몬 베요타 이베리코다. 앞다리로 만들면 팔레티야라는 명칭을 따로 쓴다. 하몬 이베리코 베요타, 팔레티야 이베리코 베요타를 만들고 남은 고기는 어떤 맛일까. 세계 최고의 생햄을 만드는 돼지의 생고기는 스페인 현지가 아니고서는 맛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베리코 베요타라 해도 반가운 일인데 베요타 100% 이베리코 고기가 국내에 들어왔단다. 냉동이긴 할 테지만 그게 대수인가. 그렇게 꼭 한 번 맛보고 싶었던 것을 내 나라, 내 집에서 맛볼 수 있다니 이번 주말 메뉴는 일말의 고민도 필요 없이 바로 이것이렷다!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굶주림 외면하는 자본의 사악함… ‘종자독립 ’이 인간과 자연 살린다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굶주림 외면하는 자본의 사악함… ‘종자독립 ’이 인간과 자연 살린다

    갖가지 이슈에 밀려 빈곤과 기아로 허덕이는 세계 곳곳의 뉴스를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예멘 등에서는 지금도 굶주림 끝에 죽어가는 어린 목숨들이 부지기수지만, 정치·경제적 쟁점만이 세계적 뉴스인양 보도된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의 고통은 외면하기 일쑤다. 지구촌 어디선가는 풍요에 겨워 버려지는 음식이 천지인데도, 반대편 어떤 곳은 더러운 웅덩이 물을 핥아 먹어야 할 정도다.‘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의 저자 반다나 시바는 이 비극적인 불균형이 “탐욕과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세계화된 산업형 농업” 즉 자본의 사악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도 출신 물리학자이자 환경사상가 반다나 시바는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델의 식량 생산이 지구 자연과 지구 자연 내 생태계들, 그리고 다양한 생물 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세계는 굶주림을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생태 친화적이고 인간 친화적 푸드 시스템”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도록 자본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전쟁 설계에 뿌리를 둔 기업들이 가진 힘, 군사주의적이고 기계론적이며 환원주의적이고 파편론적인 농업 패러다임, 탐욕에 기초한 부의 계산법 등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고 민주적인 푸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한사코 가로막는다. 살충제가 아니라 벌과 나비, 곤충 새가 농작물의 건강하고 또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온다. 살충제는 해충을 오히려 “양산”하지만 벌과 나비, 곤충 새들은 해충의 천적이자 “식물을 수정시키고, 그럼으로써 식물의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매개다. 벌과 나비가 사라진 세계,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침묵의 봄은 곧 인간 모두의 파멸을 의미한다.반다나 시바는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대규모 산업형 농업이 아닌 “소농, 농사짓는 가정, 그리고 텃밭의 일꾼들”이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희망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지금 “세계의 소농은 세계 자원의 30%만 사용하면서도 세계에 필요한 식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소농은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살아 있는 작은 경제들이 살아 있는 작은 민주주의들과 결합해 모두를 위한 평화와 조화와 풍요와 안녕을 만들어 낼 때”라는 반다나 시바의 말은 사실상, 모든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반다나 시바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아마도 6장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인 듯싶다. 그는 기업이 종자 독점을 통해 “다양성 대신 획일성을, 영양의 질 대신에 양을 우대”하면서 “우리 식단의 수준이 떨어졌고, 우리의 식량과 작물의 풍부한 생물 다양성 역시 추방되었다”고 일갈한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쌀은 이제 한두 종류에 불과하다. 어디 쌀뿐일까. 인간이 먹는 대개의 음식은 기업에 효율적인 종자 한두 가지에 국한된다. 반다나 시바는 “종자 독립”이 “오늘날 생태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절대 과제”라고 강조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먼저 생물 종이 소실되고, 그 소실은 “생물 다양성에 의존하는 음식과 문화의 영역을 포함해 농업 또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씨앗이 식탁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 인간을 살린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무관심하다. 소농, 종자 독립, 지역화 등의 숙제를 떠안은 것은 바로 우리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들을 향해 우리가 취할 태도는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때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 [그 책속 이미지] 명음반 ‘명 커버’ 뒷얘기 들춰보기

    [그 책속 이미지] 명음반 ‘명 커버’ 뒷얘기 들춰보기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오브리 파월 지음/김경진 번역/그책/324쪽/3만 8000원영국의 위대한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LP명반 ‘애니멀스’(Animals·1977)의 앨범 커버. 핑크 플로이드 팬이라면 굴뚝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 사이로 떠 있는 ‘나는 돼지’의 초현실적 이미지가 익숙할 게다. 당시 앨범을 디자인한 힙노시스는 실제 돼지를 하늘로 날리려고 시도했다가 돼지 이미지만 잘라 배경이 된 런던 배터시 화력발전소 이미지에 붙였다. 애플은 2021년 13조 3000억원을 투입해 이 화력발전소에 유럽 사옥을 짓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오브리 파월은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AC/DC, 제너시스 등 음악사에 남을 전설적인 앨범 표지 작업을 한 힙노시스의 수장이다. 책은 힙노시스가 1967~1984년 작업한 전설적인 밴드들의 음반 디자인 도판 373장과 그에 얽힌 뮤지션들의 뒷얘기를 담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파리 도심 속 묘지는 산책코스

    파리 도심 속 묘지는 산책코스

    적당한 거리의 죽음/기세호 지음/스리체어스/120쪽/1만 2000원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죽은 자를 대하는 방식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죽은 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묘지를 삶터의 근처에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화를 거치면서 묘지는 서울에서 멀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의 삶에서 멀어진 건 아니다. 저자는 도시인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유사 죽음’(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의 죽음)을 경험하지만 정작 실제로 마주한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묘지를 도시 밖으로 밀어낸 서울과 달리 프랑스 파리의 묘지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파리 시민들은 도심 한복판의 공동묘지를 즐겨 찾으며 이곳에서 데이트와 산책을 하고, 길을 멈춰 망자에게 애도를 표하기도 한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헬조선 탈피? 돈보다 삶을 앞세워라

    헬조선 탈피? 돈보다 삶을 앞세워라

    당신이 잔혹한 100명 마을에 산다면?/에가미 오사무 지음/서수지 옮김/사람과나무사이/256쪽/1만 5000원100명이 사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빚더미를 떠안고, 학비가 없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 운 좋게 교육을 받아도 취업난에 고통받고, 경쟁을 뚫고 취업해도 박봉에 시달리느라 결혼하지 못한다. 늙어서도 쉴 틈은 없다. 자신보다 더 늙은 부모를 부양해야 하니 말이다. 암울하지만, 이 잔혹한 마을이 우리의 현실이고 다가올 미래다. 당신이 이 마을 주민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 새 책 ‘당신이 잔혹한 100명 마을에 산다면?’은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잔혹한 100명 마을’이 된 중요한 요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돈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돈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산관리전문가를 자처하는 저자의 주장이 희한하다. “돈도 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 대공황 이후 마을 주민들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짊어졌다. 실업자도 넘쳐났다. 마을 인구 4300명 가운데 무려 500여명이 실업자였고 1000여명은 예비실업자였다. 돈이 돌지 않았고,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지속됐다. 마을 촌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한 달에 1%씩 가치가 줄어드는 돈을 발행한 것이다. 주민들은 앞다퉈 돈을 썼다. 즉시 쓰지 않으면 가치가 줄어드니 당연한 노릇이다. 너도나도 물건을 사들였고, 물건을 팔아 돈을 번 사람도 버는 족족 돈을 썼다. 마을의 경제활동은 몇 배로 활발해졌다. 돈을 빌려도 이자가 붙지 않았다. 가치가 줄어드는 돈인데 이자란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이자로 돈을 빌려 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마을은 산더미 같은 부채를 말끔히 청산했고 실업자도 사라졌다. 저자의 시선은 이 마을에 머물러 있다. 헬조선, 헬재팬의 잔혹한 현실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돈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에 대해 늘 단도직입적이다. 돈을 모으는 기발한 방법이나 요령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돈을 모으려는 목적에 대해 물으면 대개는 우물대기 일쑤다. 저자는 그래서는 돈을 모을 수 없고, 모으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재정 계획을 세우기 전에 인생 계획부터 세워라.”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먼저 생각해야 돈도 따르고 행복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자살, 짐작보다 더 복잡한 죽음

    자살, 짐작보다 더 복잡한 죽음

    자살의 사회학/마르치오 바르발리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604쪽/2만 9800원자살은 인류의 오래된 ‘죽음 방식’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의 자살을 기술하고 있고, 중국 춘추시대 기록에도 자살에 얽힌 일화들이 종종 나온다. 악명 높은 폭군 네로 황제 이후에도 고대 로마 제국 황제 가운데 상당수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그럼에도 라틴어에 ‘수이시디움’(suicidium·자살)이라는 단어가 나타난 건 후대 들어서였다. 유럽에서 자살을 지칭하는 낱말도 17세기 중반 처음 등장했다. 자살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을 여러 편 썼던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당시 자살이라는 명사가 없자 ‘자기 살육’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르치오 바르발리는 서양에서 자살을 대체한 표현은 오랫동안 ‘살인’이었을 정도로 자살은 심각한 범죄 행위로 간주됐다고 말한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자살의 사회학’(영문판 제목 ‘자살의 역사’)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1897) 이후 가장 주목받는 자살을 다룬 저작으로 꼽힌다. 바르발리는 이 책에서 여러 문화권에서 자살이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고, 고대 순교자부터 중동 자살 폭파범에 이르기까지 자살의 역사적 변화상을 고찰한다.특히 그는 뒤르켐의 이론은 20세기 이후의 자살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낡은 이론이라고 반기를 들었다. 기독교 문화가 지배했던 중세 유럽에서 자살은 육체와 영혼을 모두 죽이는 ‘이중 살인’으로 여겨졌으며 신성모독 못지않은 무거운 죄악이었다. 영국은 자살자의 재산을 몰수했고, 기독교식 매장도 금지시켰다. 유럽 곳곳에서 자살자의 시체를 거리에 끌고 다니거나 재판에 회부해 교수형에 처해 다시 죽였다. 자살자에 대한 응징은 유족들에게 멸시와 굴욕감을 안겼다.저자는 근대 유럽에서 자살이 크게 증가한 건 산업혁명 때문이 아니라 자유의 확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유럽의 자살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18세기 들어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자살을 본격적으로 다룬 문학 작품이 우후죽순 출현했고 종교적 억압이 옅어지면서 1793년 프랑스 파리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30명까지 치솟았다. 뒤르켐은 자살을 일으키는 주요 변수로 사회적 통합과 규제를 지목하며,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종속이 약화되면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바르발리는 사회 구조로부터 자살 원인을 찾는 뒤르켐의 원인론적 분류 방식을 탈피해 자살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20세기 이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빈번해진 정치적 저항을 목적으로 한 자살이나 종교적 신념의 자살테러 등 새로운 유형의 ‘이타적 자살’ 현상이 설명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통합과 규제라는 변수 대신 ‘누군가를 위한 자살’, ‘누군가에게 대항하기 위한 자살’로 새롭게 분류한다. 전자는 이기적·이타적 자살이고 후자에는 저자가 분류한 ‘공격적 자살’(보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정치·종교적 테러)이 속한다. 책은 죽은 남편을 따라 자살하는 인도 여성들의 ‘사티’ 의식과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중국 여성들의 ‘타타이’ 풍습 등 각 문화권에서의 자살 관습도 꼼꼼히 살핀다. 그에 따르면 동양에서는 ‘누가 이 지경으로 상황을 몰고 갔는가’에 중점을 둬 책임을 따지는 경향이 짙었다. 그래서 동양 문화권에는 복수하기 위해 자살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건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자살하는 유대인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표현한 “모든 수용자가 필사적으로 그리고 맹렬하게 혼자”였던 ‘고독한 지옥’에서 극히 자살이 드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요약한다. ‘수용자들은 죽는다는 것보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죽음의 과정’에 관심을 뒀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었고 그들은 죽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에게 죽음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는 다름아닌 삶이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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