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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성분’으로… 중소화장품 폭풍 성장

    ‘착한 성분’으로… 중소화장품 폭풍 성장

    소비자 ‘화학 성분’ 경각심 커져 올리브영 입점 저자극성 제품들 1분기 매출 전분기 대비 200%↑ ‘퓨어 클렌징 오일’은 품귀 현상 천연재료 함유 화장품도 큰 인기 유해 화학성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장품업계의 소비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광고나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운 히트상품 대신 생소한 신진 중소화장품업체의 상품이더라도 무해한 천연성분을 강조한 제품이 눈도장을 찍으면서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국내 헬스앤뷰티(H&B)스토어 업계 1위 올리브영은 올해 1분기(1~3월) 스킨케어 카테고리에서 성분을 강조한 저자극성 제품들의 매출이 전분기(지난해 4분기) 대비 평균 200% 신장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들 중 대부분이 입점 6개월 이내의 신진 업체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국내 천연 화장품 브랜드 ‘마녀공장’은 지난해 10월 입점한 지 약 6개월 만에 매출이 27배 가까이 상승했다. 특히 대표 상품인 ‘퓨어 클렌징 오일’은 일부 매장에서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씨엠에스랩에서 운영하는 메디컬 화장품 브랜드 ‘셀퓨전씨’의 자외선차단제 ‘레이저 썬스크린 100’ 역시 입점 6개월 만인 지난달 매출이 6배 이상 뛰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유해성분을 배제하는 등 친환경을 표방하는 화장품 스타트업 ‘이즈앤트리’도 같은 기간 매출이 13배 증가했다. 천연 재료를 그대로 함유한 원물화장품도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지리산 천연벌꿀을 39.7% 함유한 ‘아임 프롬 허니마스크’ 는 지난해 7월 입점한지 약 8개월 만인 지난달 매출이 20배 신장했다. 소비자들이 직접 화장품의 성분을 분석하는 정보 공유 채널도 인기다. 화장품 성분 분석 앱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는 현재까지 모바일 다운로드 건수만 600만건이 넘어섰다. 최근에는 스타트업 모바일 앱으로는 이례적으로 신세계, 현대, 롯데백화점 등 대형 유통채널과 잇따라 손잡고 화장품 판매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최근까지 화장품시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사용 후기를 보고 빠르게 유행이 퍼지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생소한 브랜드라도 성분을 직접 꼼꼼히 비교해 보고 구매하는 ‘체크슈머’가 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분위기를 등에 업고 무해한 성분을 강조한 신성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기혼자, ‘나혼자 산다’보다 심장마비 재발률 낮다”(연구)

    “기혼자, ‘나혼자 산다’보다 심장마비 재발률 낮다”(연구)

    ‘나 혼자 산다’를 꿈꾸더라도 심장 건강이 우려되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심장마비를 겪은 적이 있는 기혼자는 싱글이나 이혼(사별 포함)한 이보다 두 번째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겪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조엘 옴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40~78세 심장마비 생존자 약 2만9000명을 5년간 추적 조사했다. 심장마비를 겪은 급성 심부전 환자의 약 25%는 5년 안에 심장마비를 다시 겪거나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런 심장마비 재발 위험에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교육 기간이 12년(고등학교) 이상인 환자들은 교육 기간이 9년(중학교) 이하인 환자들보다 심장마비가 재발할 위험이 14%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차이는 작아서 큰 의미가 없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그렇지만 심장마비 재발 위험에는 ‘결혼’이 크게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혼이거나 이혼한 환자들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기혼 환자들보다 심장마비가 재발하거나 뇌졸중이 발생하고 또는 심장질환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18% 더 높은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연구에서 결혼이 치매와 고혈압, 고 콜레스테롤, 그리고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낮추는 요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결혼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지지라고도 불린다. 사회적 지지는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둘러싼 중요한 사람(가족 등)으로부터 얻어지는 여러 형태의 지원으로, 그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결혼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배우자 덕분에 자기 자신을 돌보고 건강을 유지하며 필요한 약을 먹을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이번 연구에 주저자로 참여한 조엘 옴 박사는 “이번 결과는 후속 치료가 한 가지 형태로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줘 중요하다. 요즘에는 모든 심장마비 환자를 똑같이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우리 연구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면서 “심장마비의 1차 예방과 마찬가지로 2차 발병 위험은 개인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또 “의사들은 이유에 상관없이 심장마비 생존자들의 재발 위험을 평가할 때 결혼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포함해야 한다”면서 “그 후 위험이 더 큰 사람들에게 더욱 강력하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유럽 예방 심장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Preventive Cardi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zagandesign / 123RF 스톡 콘텐츠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황인선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의 특별한 출판기념회 개최

    황인선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의 특별한 출판기념회 개최

    저자의 책 7권을 2시간 동안 독자들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4월 23일 상상유니브서울아틀리에에서 열리는 황인선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의 출판기념회는 ‘최초의 헌정강연회’라는 이색적인 컨셉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발간된 신작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는 차별화된 말과 글의 힘에 주목, ‘워딩파워(Wording Power)’와 ‘생각력’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마케팅 성공 사례와 더불어 인문 지식을 바탕으로 이론과 실전이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대화×글쓰기의 차별화된 비결이 수록되어 있다. ‘황인선을 읽자, 최초의 헌정강연회’ 는 신간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를 비롯하여 저자가 그동안 집필한 7권의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강연, 독자와의 대화, 사인회 등으로 구성하여 진행된다. 기념회에서 다룰 책들은 신간 외 6권의 책으로 ‘헤라마케팅’, ‘컬처파워’, ‘마케팅으로 경영하라’, ‘문화상상력으로 비상하라’, ‘틈’, ‘꿈꾸는 독종’이다. 그의 책에는 시대를 통찰하는 문화코드, 성공하는 경영의 비법을 다룬 마케팅코드, 인생을 혁신하는 미래코드가 담겨져 있다. 이번 강연회는 세가지 코드와 함께 25년간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통찰력을 읽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 황인선은 제일기획 AE, KT&G 마케팅 수석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내 최대 원정 이벤트였던 ‘서태지 상상체험단’을 기획했다. 또한 문화와 상상 커뮤니티인 ‘온라인 상상마당’과 ‘홍대 앞 상상마당’ 기획등 다양한 문화마케팅과 기업 커뮤니티 전략에서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문화브랜딩 회사 ‘브랜드웨이’ 대표, 서울시혁신파크 자문위원,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을 맡고 있다. 오는 23일 열리는 출판기념회는 아래 링크를 통해 사전 신청이 가능하며, 참석자 전원에게 신간 도서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를 제공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방탄소년단서 찾은 ‘데미안의 고민’

    방탄소년단서 찾은 ‘데미안의 고민’

    상업성 지적받던 아이돌 노래 철학·문학적 접근으로 재해석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소년 에밀 싱클레어가 막스 데미안을 만나면서 겪는 고뇌와 성숙 과정을 다룬다. 특히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건네준 쪽지의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절은 소설의 주제를 함축한다. 방탄소년단 노래 ‘피, 땀 눈물’ 가사에서 데미안의 소설처럼 성장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누구나 진짜 자신이 되려면 성장을 겪어야 하며, 그 성장의 시작은 혼돈이라는 점,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노래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대중의 호주머니 돈을 빼내고자 철저하게 기획된 아이돌. 이들의 음악과 이들에게 열광하는 10대와 20대 팬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기성세대는 해외를 들썩이게 하는 케이팝의 폭발적인 인기에 의아해하면서도, 이를 철저한 상업주의의 일환으로 치부한다. 아이돌 음악은 수준 낮고 천편일률적이라 단정 짓기도 한다. 신간 ‘아이돌을 인문하다’(사이드웨이)는 아이돌의 노래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살핀다. 저자는 방탄소년단과 워너원, 트와이스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문학’과 ‘철학’으로 풀었다. 방탄소년단 12곡, 트와이스 11곡, 워너원 10곡 등 33곡을 비롯해 백설희와 김연자, 산울림, 김현식, 이소라, 장필순, 이승환, 신해철 노래 13곡 등 모두 46곡의 가사를 해석했다. 이들의 노랫말에서 성장, 책임, 아름다움, 구원, 생명, 약속, 정체성, 자유, 연대, 용기, 자존감 등 키워드를 뽑아내 인문학적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워너원의 ‘나야 나’에서는 자기애를 꼽는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외치는 노랫말은 건강한 자기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저자는 이와 관련,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남들의 관심과 주목을 목말라하지만 짐짓 점잖은 척 숨기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 ‘나 그냥 네가 좋아 이유를 모르겠어’라는 가사가 담긴 트와이스의 ‘1 To 10’에 관해서는 ‘사랑이란 뜨거운 감정을 통해 노래하는 청춘의 송가’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이돌의 노래가 완벽하다거나, 음악적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월등히 뛰어나다고 무작정 주장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와 제인 오스틴, 도스토옙스키, 다자이 오사무, 지그문트 프로이트, 슬라보이 지제크, 프리드리히 니체, 대니얼 데닛 등을 인용해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상업적인 것=가볍고 의미 없는 것’이란 편견을 깨는 글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진짜 보수를 만나고 싶다/최여경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진짜 보수를 만나고 싶다/최여경 국제부 차장

    비 내린 지난 주말, 어김없이 서울 세종대로에 태극기가 나부꼈다. 그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과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세월호 참사 4주년에 앞서 추모식에 모인 이들에게 “빨갱이”, “노란 마귀”라는 등 폭언을 퍼부었다. 보통 이 시위를 ‘보수집회’라 부른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광화문광장 촛불집회가 무르익을 2016년 말. 그 반대편 덕수궁 대한문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촛불=진보’라는 등식의 대립항으로, 맞불집회로도 불렸던 그곳에서는 ‘계엄령 선포’, ‘군대 동원’ 등 반헌법적 발언이 튀어나왔다. 당시 과격한 언동을 스케치한 사진에 ‘극우·보수단체’라는 설명을 썼다가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극우’라는 단어를 빼라는 주문이었다. “폭력성 있고 배타주의적 발언을 하니 극우라고 할 만하지 않습니까” 했더니 그가 되물었다. “그럼 촛불집회는 극좌냐?” 대꾸할 필요를 못 느껴 대답하지 않았다. ‘보수’라는 설정부터 잘못 끼운 단추였기 때문이다. 최근 번역돼 나온 ‘보수의 정신’(지식노마드)에서 저자인 정치평론가 러셀 커크는 “보수주의는 인류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전통의 계승이자 ‘영원한 것들’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개인, 가족, 회사, 이웃, 정부 등이 조화하면서 사회를 보존해 가는 방식으로 정의했다. 초월적 질서와 법률·규범에 대한 믿음, 급격한 개혁보다 신중한 개혁,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과 인간 존재를 향한 애정, 이것들을 보수의 기본 개념으로 봤다. 이런 틀거리 안에 한국의 ‘보수’를 끼워 넣을 수 있나. ‘군부 쿠데타’를 거침없이 내뱉고, 이견을 보인 이들에게 ‘연탄가스’,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행태는 분명 보수의 자세가 아니다. 과격성을 동반했으니 ‘극우’의 범주일까.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극우가 전 세계 추세이긴 하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난민과 유럽연합 반대’를 외치며 최근 4선에 성공했다. 국경을 닫고, 난민을 “독극물”이라 칭해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큰 지지도 얻었다. 지난 4일 이탈리아 총선에서도 반난민 정서가 승패를 갈랐다. 사회·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 난민에 대한 반감은 ‘이탈리아 우선’을 앞세운 극우 세력의 자양분 노릇을 했다. 독일도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제3당으로 의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극우는 민족주의·인종주의가 작용한 것이니 이것도 맞지 않아 보인다. 미국 국기를 흔들고, 친일을 옹호하는 태도는 민족주의라 할 수 없다. 한국의 보수는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기는커녕 남북 관계에서 비롯된 좌파에 대응하기 위한 말이 된 지 오래다.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뻔뻔한 구호를 외친 한국식 보수의 결과는 지난 정권에서 봤다. 자신을 보수 쪽에 둔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흔히 보수가 더 잘한다는 경제성장, 안보조차 못 이뤘다”면서 ‘망해도 싸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현 정부를 공격하며 “우리도 그러다가 망했다”고도 했다. 반성을 하는 듯한데 달라진 건 없다. 전 국민이 아픔으로 느끼는 세월호 참사 4주년인 16일, 여전히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거나 현 정부를 ‘세월호 사건을 빌미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정부와 여당의 실정이나 흠집을 부풀려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식은 곤란하다. 과격한 언동에 기대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행태라면 자멸할 뿐이다. “세월호는 북한 소행” 같은 허무한 말 말고, 진짜 안보와 사회 안정을 우선으로 하는 보수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 해 봤다. cyk@seoul.co.kr
  • 누구나 아는 이름, 아무도 모르는 그의 젊은 날…‘청년 마르크스’ 예고편

    누구나 아는 이름, 아무도 모르는 그의 젊은 날…‘청년 마르크스’ 예고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를 마르크스’의 젊은 날을 담은 영화 ‘청년 마르크스’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청년 마르크스’는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기 전, 젊은 날 그의 사랑과 ‘프리드리히 엥겔스’와의 우정, 뜨거운 꿈과 이상을 그린 영화다. ‘자본론’의 저자이자 사상가로 딱딱하게만 느껴졌을 카를 마르크스의 젊은 날을 조명해, 그의 기존 이미지와는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는 영화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만남부터 이들이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당신은 우리 시대 최고의 유물론자예요”, “노동계에 대한 당신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라며 서로를 인정한 두 사람의 만남이 이후 변화를 궁금케 한다. 이렇게 “엥겔스 평생의 동반자이자 친구”가 된 카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가 인정한 유일한 친구”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저서를 집필하는 모습은 열악했던 당시 공장의 환경 속 노동자들의 모습과 병치되며 새로운 세상을 열망한 그들의 꿈을 주목케 한다. 또한 “가장 가난한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상류사회를 다 알다니…”라고 감탄하는 엥겔스에게 “솔직히 말해도 돼요? 한마디로… 어마어마해요”라고 답하는 마르크스의 모습은, 공장주의 아들이었던 엥겔스와 오만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신감 넘쳤던 마르크스의 캐릭터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 X 엥겔스, 둘의 만남이 세상을 바꾸다!”라는 카피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두 친구의 가슴 뜨거운 여정을 예고한다. 영화는 젊은 시절의 카를 마르크스를 다뤄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갈라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5월 개봉. 15세 관람가. 118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건축정책위 5기 위원장에 건축가 승효상씨

    건축정책위 5기 위원장에 건축가 승효상씨

    11개 부처 장관 등 30명 구성 국토교통부는 5기 국가건축정책위가 16일 정식으로 출범, 2020년 4월까지 2년간 활동한다고 15일 밝혔다. ‘건축기본법’에 따라 2008년 12월 출범한 국가건축정책위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서 국가 건축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관계 부처의 정책을 심의,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5기 위원장에는 ‘빈자의 미학’ 저자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지명됐다. 국토부는 “승 위원장은 서울건축학교와 젊은 건축가 모임 등을 공동으로 결성, 운영했고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역임하는 등 건축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고 설명했다. 승 위원장 외 18명의 민간위원들은 건축·도시·조경·문화 등의 분야에서 학식과 실무 경험이 풍부한 학계 및 업계 인사들이 위촉됐다. 대학교수가 10명이고 설계 및 디자인 관련 전문가가 9명이다. 국가건축정책위는 그동안 대통령 보고대회와 지자체 공무원 워크숍, 전국 순회 건축도시정책 포럼 등을 통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업계 등과 소통하면서 미래 건축 정책의 이정표를 제시해 왔다. 위원회는 민간 위원장을 포함해 19명의 민간위원과 기획재정부 등 11개 부처의 장관까지 총 30명으로 구성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건위는 앞으로 공공 건축물과 공간환경 등 우리나라 국토공간의 디자인 품격을 높이고 건축서비스 산업 활성화, 도시재생, 소규모 건축 품질 향상 등 건축 현안 해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할머니 100명 ‘헌팅’… 셰프가 찾은 ‘삶의 레시피’

    할머니 100명 ‘헌팅’… 셰프가 찾은 ‘삶의 레시피’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나카무라 유 지음/정영희 옮김/남해의봄날/240쪽/1만 6000원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펴는 일본의 젊은 셰프 나카무라 유는 ‘할머니 헌팅’의 전문가다. 3년간 15개국 90개 도시를 돌며 100여명의 할머니들의 부엌을 ‘습격’했다. 할머니들의 소박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레시피를 전수받기 위해.할머니의 부엌에서 저자는 오른쪽으로만 저어야 제맛을 내는 포르투갈의 호박잼, 대구로 시작해 대구로 끝나는 일본의 기슈사이 소반, 초록잎의 신선함이 흐뭇한 스리랑카의 초록색 죽 콜라켄다 등 소박한 음식의 비법을 배워나간다. 영혼까지 살찌우고 보듬는 이 음식들을 통해 할머니들이 전하는 것은 결국 ‘삶의 레시피’다. 생후 8개월 때 어머니를 잃고 밤낮없이 술을 푸는 아버지와 어부들 틈바구니에서 눈치로 세상살이를 배운 일본 노토지마의 쓰구코 할머니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에 힘겹게 다시 뿌리내린 데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려움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가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야. 그리 훌륭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생은 그런 것이지.” 할머니의 말에서 저자는 3년간의 ‘할머니 헌팅’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서 자신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를 깨닫는다. 그것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백’이었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이 있건, 즐긴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착실히 길을 찾아낸다. 그리고 끝끝내 살아간다.’ 이런 각오와 기백. 게다가 할머니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고, 그리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일도 있다’며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이왕이면 기백 가득한 인생을 살자’는 감정이 끌어 올랐다. 서른이 되고서야 비로소, 이제 조금은 진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아름다운 주름의 굴곡처럼 신산했던 시간을 통과해 온 할머니들은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응원하는 듯하다. “인생은 말이지,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돼 있어.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걸 해도 괜찮아.”(저자 할머니의 말)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굴하지 말고 달려라-초고속! 참근교대(도바시 아키히로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펴냄)일본 에도시대 막부들이 다이묘(지방영주)들을 통제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도록 강제한 일종의 인질제도를 일컫는 ‘참근교대’를 둘러싼 일화를 그린 소설. 참근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지방의 영주 마사아쓰에게 5일 만에 다시 참근하라는 막부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388쪽. 1만 4000원.나.36.이승엽(이승엽 지음, 김영사 펴냄)인생에 홈런 한 방이 필요한 이들에게 건네는 한국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이언킹’ 이승엽의 이야기.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숨은 노력과 고통, 이승엽을 만든 태도와 사람, 두려움과 고난을 이겨 온 시간을 담았다. 300쪽. 1만 5000원. 애주가의 대모험(제프 시올레티 지음, 정영은 옮김, 더숲 펴냄)술을 통해 세상을 탐험해 나가는 음주 모험가인 저자가 1년간의 음주 여행을 통해 세계사·문화사·지리학을 넘나들며 술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이 담긴 ‘음주 인문학’을 탄생시켰다. 496쪽. 1만 8000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지음, 창비 펴냄)소설가이자 동물단체 활동가인 저자가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을 추적하고 개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한국 개산업의 실태를 고발한 르포. 316쪽. 1만 5000원. 웰빙·웰다잉(박명윤 지음, 라이크출판사 펴냄)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최대 욕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2010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건강 칼럼을 게재해 온 저자가 100세 시대를 맞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되는 칼럼들을 담았다. 366쪽. 1만 8000원. 징검다리꽃(성민선 지음, SUN 펴냄)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지낸 저자가 정년퇴직 후 새롭게 배우는 자세로 수필을 쓰기 시작해 46편의 이야기가 담긴 첫 번째 수필집을 펴냈다. 256쪽. 1만 3000원.
  • 1년에 수천마리씩 꿀꺽~ 조선의 ‘소고기 사랑’

    1년에 수천마리씩 꿀꺽~ 조선의 ‘소고기 사랑’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264쪽/1만 5000원 새삼스럽게 보면 식탁 위의 모든 것이 신기하다. 도대체 누가 처음 작은 씨앗을 쪼개어 그 속에 먹을 만한 것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밥그릇에 담을 궁리를 했을까? 도대체 누가 처음 미끄덩거리고 이상해 보이는 괴물체를 맛있게 먹고 ‘굴’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도대체 누가 풀떼기를 짠물에 담가 숨을 죽이고 묵히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까? 도대체 누가 순하게 눈을 끔벅이는 이로운 동물인 소를 신성시하면서도 동시에 맛있게 먹어 치울 염을 냈을까?조선 시대, 소고기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소의 존재 자체가 그러했다. 백성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에서 소는 거의 절대적이다시피 했다. 저자는 말한다. “소는 농사의 성패를 가를 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소 한 마리가 가는 논과 밭을 사람이 대신하려면 적어도 여덟아홉명에서 십여명까지 달라붙어야 했다. 더구나 소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논밭을 갈 수 있지만 사람은 한나절 만에 탈이 나기 일쑤다.” 더군다나 질척한 논은 푸슬푸슬한 밭과 달리 소의 노동력이 꼭 필요했다. 조선 시대에 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조선 시대는 소를 탐식한 시대이기도 하다. 소고기는 특별한 음식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임금은 반드시 소고기를 먹었다. 임금이 되려 하거나 대리하는 자도 소고기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 당연히 나라의 허락 없이 소고기를 먹으려 드는 것은 왕위 찬탈을 도모하는 역적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한편, 소고기의 풍부한 영양은 나라의 인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일상적으로 소고기를 제공받았다. 서울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소를 잡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곳이 성균관이었다. 그렇다면 가난한 백성은 소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귀신에게 제사하고, 또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거나 먹기 위해 끊임없이 소를 잡는데 1년 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에 이르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이 말하듯 백성들도 명절마다 소를 잡아 ‘이밥에 괴기국’을 먹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 남아 있는 소고기의 흔적을 샅샅이 찾아 들려준다. 각종 행정기록을 참고하여 당시 소의 사육 환경과 소의 숫자를 헤아려 보는가 하면, 소고기를 보관하고 요리하는 법, 소고기를 약으로 쓰는 법, 염소와 돼지와 사슴고기와의 관계까지 가늠해 본다. 먹을 것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가 보인다. 흔연한 식탁이 예사롭지 않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 아버지를 찾아… 리비아의 비극과 마주하다

    아버지를 찾아… 리비아의 비극과 마주하다

    귀환/히샴 마타르 지음/김병순 옮김/돌베개/344쪽/1만 5000원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세상에 다시 호명해 내는 아들의 여정은 모천(母川)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귀환과 한가지다. 고통스럽고 고단할지라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존재의 근원을 찾는 건 본능이기 때문이다. 책은 리비아 출신의 소설가 히샴 마타르(49)가 쓴 소설 같은 ‘실화’다. 주인공은 저자와 목격자들의 회상 속에서는 분명 살아 있는 올해 79세가 된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 정권에서 외교관을 지낸 자발라 마타르는 독재에 반대하며 저항 세력을 규합하는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로 변모한다. 자발라는 1990년 3월 12일 카이로에서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체포된 후 리비아의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에 투옥됐다. 가족에게 세 통의 편지를 전한 그는 6년 뒤 아부살림에서 1270명의 정치범들이 학살당한 사건 이후 행방불명됐다. 작가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카다피가 제거된 후 33년 만에 고국에 귀환해 아버지의 흔적을 수소문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왜 자신과 가족의 삶을 희생하면서 저항의 길을 선택했는지 그 진실을 찾는다. 그 여정을 통해 작가는 참혹한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 리비아의 오래된 비극을 마주하며 사막에서 생존해 온 베두인족의 삶 자체가 저항과 투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작가의 가족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하메드 마타르가 이탈리아 식민통치에 항거했고, 아버지가 독재에 저항한 건 수많은 리비아인들의 선택이자 공동체의 비극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작가의 사촌 동생 하메드는 이 책이 집필되던 순간에도 시리아 반군에 지원해 참전 중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았을까. 사실 그조차 아버지가 죽었다고 믿고 있다. 리비아로 귀환한 이유가 사라진 아버지의 존재만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독재 정권의 붕괴 이후에도, 아랍에 봄이 왔다가 갔다고 떠들어 댈 때도, 그리고 극단적인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봉기해 시리아 학살이 자행되는 현재에도 곳곳에 혈흔이 배어 있는 리비아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아버지가 보내 온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온 ‘깊은 구덩이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울음소리’처럼. 저자는 독재 치하 리비아의 현실을 다룬 소설 ‘남자들의 나라에서’로 200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잔혹한 노예선…그건 지하감옥이었다

    잔혹한 노예선…그건 지하감옥이었다

    노예선/마커스 레디커 지음/박지순 옮김/갈무리/488쪽/2만 6000원‘줄지어 늘어선 고통은 예술품처럼 박제되어/습하고 더러운 연기를 들이쉬며 누워 있다/피의 이슬이 맺힌 딱딱한 바닥/관절이 쓸려 곧 고통이 찾아와도/괴로움에 눌려 억센 판자에 웅크리고 앉아/그저 나아간다- 그 안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참하구나!’ 1770년대 노예선 선원이었던 제임스 필드 스탠필드가 목격한 노예의 삶이다. 노예들은 간신히 몸만 돌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허용된 하갑판에서 열여섯 시간 이상을 보내야 했다. 숨 막힐 듯 다닥다닥 누워 있었던 그들은 관 속에 든 시체와 다름없었다. 손목과 발목, 목에 채워진 쇠사슬은 자유를 단단히 옭아맸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직 잔인한 폭력과 끊임없는 노동, 질병만이 반복되는 생활에 지친 탓에 그저 죽기만을 바라던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스탠필드가 노예선을 ‘떠다니는 지하 감옥’으로 부른 이유다.지금까지 알려진 노예 이야기는 신대륙에 끌려간 아프리카인들이 대농장에서 어떻게 학대를 당했는지, 농장 주인은 얼마나 잔인했는지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노동력의 지지대 역할을 했던 노예선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배에 올라탄 ‘인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는 항해일지와 생존자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 사이를 항해한 노예선에서 펼쳐진 격동의 삶을 재구성했다.15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1400만명이 노예가 됐는데, 서부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 사이 노예무역 항로인 ‘중간 항로’에서 500만명이 사망했다. 산 채로 아메리카 대륙에 ‘배송’된 ‘검은 상품’은 900만~1000만명이었다. 노예선에서 폭력은 예사였다. ‘나무로 된 세계’의 최고 권력자인 선장들은 끝에 매듭이 달려 아홉 가닥으로 갈라진 구교모 채찍을 수시로 휘둘렀다. 노예만큼 약자였던 선원들은 선장한테 당한 폭력의 화풀이를 노예들을 향해 잊지 않고 해댔다. 노예선 생활을 견디다 못한 어떤 노예들은 음식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차라리 곡기를 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탓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노예들의 건강관리에 민감했던 선장은 선원들을 시켜 막대기, 깔때기 등을 이용해 노예들의 목구멍에 강제로 음식을 쑤셔 넣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생을 위협하는 온갖 폭력 앞에서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온 노예들은 배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다. 서로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지만, 노래로 하나가 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회한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했다.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참혹한 삶을 견뎌 나간 것이다. 항해의 끝자락, 백인 주인에게 팔려나가는 고통보다 이들을 더욱 괴롭게 한 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관계의 상실이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끝내 노예들을 지탱한 건 ‘인간’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인종 차별, 해결 곤란한 빈곤, 깊은 구조적 불평등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모두 대서양 자본주의의 노예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적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자본주의 바다 위에서 여전히 항해 중인 ‘노예선’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기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서울포토]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대화하는 장하성 정책실장

    [서울포토]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대화하는 장하성 정책실장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다보스 포럼 창립자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장하성 정책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문 대통령,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환담

    [서울포토] 문 대통령,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환담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다보스 포럼 창립자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을 만나 환담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신간] 코드블루인데 아무도 달려오질 않는다

    [신간] 코드블루인데 아무도 달려오질 않는다

    의료전문기자가 국내 의료환경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 ‘코드블루인데 아무도 달려오질 않는다’(올댓닥터스)를 내놨다. 저자인 김상기 기자는 책을 통해 한국 의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들춰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가 편집국 부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보건의료 대안매체 ‘라포르시안’에 지난 7년간 게재한 160여편의 칼럼 중 57편의 글을 엄선해 엮었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제1장 ‘원칙도 근거도 없는 의료정책’에서는 한국의 보건의료제도와 건강보험제도에 내재한 본질적 문제를 다뤘다. 특히 보수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추진한 각종 의료영리화 정책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 의료시스템과 의료보장제도의 문제를 더 악화시켰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제2장 ‘혼란스러운 의료계’에서는 의료계가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에 대한 글을 중심으로 엮었다. 제3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은 각자도생의 정글 같은 의료환경 속에서 환자들이 겪고 있는 각다분한 의료경험의 문제를 다뤘다. 그리고 제4장 ‘의료와 사회’에서는 의료환경의 문제가 사람들의 일상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동네서점 문화공간으로

    동네서점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다. 대구시와 출판산업지원센터는 독서인구 저변을 확대하고 중소형 서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동네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을 한다고 10일 밝혔다. 중소형 서점 5곳을 선정해 문화활동 지원금 500만원과 시설 지원금(200만원 한도)을 준다. 참여 서점은 저자 초청 강연회, 그림책 전시회, 시 낭송회 등 프로그램으로 시민 문화공간 역할을 한다. 출판산업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오는 27일 오후 6시까지 우편으로 보내거나 센터를 방문해 내면 된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상하이보다 더 개방적으로…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 가능성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0일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개막연설을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오래도록 본 적이 없어 오랫동안 보고 싶다”(久久不見久久見 久久見想見)는 다정한 말로 시작했다. 40분간의 연설 동안 얼굴에 미소를 담은 시 주석은 개혁 개방 40주년의 성과를 과시하며 중국 시장의 개방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날 나온 개방 조치들에 대해 수입자동차 관세 인하만 빼면 그동안 발표된 것들의 ‘재탕’에 불과하고 구체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시 주석은 중국 시장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무역항구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19차 당대회 때 이미 발표된 정책이 지연된 상황이다. 상하이 자유무역지구보다 규제 완화 및 해외자본 유인정책에 대한 지방정부의 자율권 등이 진전된 자유무역항은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시 주석은 지난 40년간 중국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9.5%에 달했다며 앞으로 금융·자동차 시장 진입 조건 완화, 투자환경 개선, 지식재산권 보호, 적극적인 수입 확대를 통해 개방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무역전쟁 중인 미국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놓은 개혁 조치는 대부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마찰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받아들인 것이다. 시 주석은 시장 진입 확대를 약속하며 “서비스업, 특히 금융업의 은행·증권·보험 등 외자 투자 제한 조치 완화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외자 금융기구의 설립 제한도 완화하고 보험업의 개방 절차를 가속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세 인하와 자동차 공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지분 제한 완화는 미국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첫 수혜자가 될 공산이 크다. 테슬라는 상하이에 독자 공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불평등 관세를 지적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기도 했다. 또 미가입 상태인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에 서명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3조 위안(약 528조원)에 이르는 중국 조달물자 시장에 미국 기업의 진입을 제한할 수 있는 카드를 스스로 접은 것이다. 올 상반기에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외자 투자 네거티브 리스트에 대한 수정 작업도 마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식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해 올해 ‘국가스마트재산권국’을 신설해 법적 집행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미국과 유럽 등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첨단기술 제품의 진출을 막고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 “선진국들이 중국의 첨단기술 제품 수출 통제를 완화하기 바란다”며 저자세로 응수했다. 중·미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후퇴한 것이라는 시각을 의식한 듯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연설 직후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이 문을 열었기 때문에 미국이 이겼다고 보는 시각은 사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바라봐야만 했던 블랙리스트… 우리도 흔들렸다”

    “바라봐야만 했던 블랙리스트… 우리도 흔들렸다”

    “2017년 1월 13일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이 탄 ‘블랙리스트 버스’가 문화체육관광부 앞에 도착했어요. 그들이 진상 규명을 외치며 절규했을 때, 저는 그저 창가에 서서 그들을 쳐다봐야만 했어요. 당시의 그 참담함이란….”‘블랙리스트가 있었다’(위즈덤하우스)의 저자 정은영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실 행정관은 지난해 그날을 생각하며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잠시 눈물을 훔쳤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문체부 존재 자체를 격렬하게 흔드는 사건이었다. 1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 자신도 크게 흔들렸다”면서 “당시의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선고에서 24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좌파 성향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해 직권남용으로 박 전 대통령의 유죄를 인정했다. 정 행정관은 2015년부터 2017년 5월까지 문체부 국민소통실에서 여론과장으로 일했다. 책을 함께 쓴 김석현씨는 정 행정관의 남편으로, 문체부에서 일하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비서관을 지냈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던 두 저자는 책을 통해 내부자의 눈으로 당시 상황을 복기하는 한편 문화국가를 향한 대안도 제시한다. 책을 함께 쓰자고 제안한 이는 김씨였다. 그는 “문체부에서 일했던 나 자신에 관한 반성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정 행정관에게 같이 글을 쓰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몇 개의 사건들을 통해 블랙리스트 사건을 재구성했다. 예컨대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개구리’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정 행정관과 김씨가 몸담았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 시스템이 불능에 빠지는 현장을 생생히 다룬다. 2013년 9월 공연한 ‘개구리’는 그리스 희곡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화하고 박 전 대통령은 비하하면서 문제가 됐다. 박 연출가의 또 다른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체부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 사업에 응모해 그해 4월 최종 8개 작품에 선정됐지만, ‘개구리’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선정작이 결정됐음에도 그해 6월까지 결과 발표가 나지를 않았다. 한국문화예술위 직원들이 박 연출가를 찾아가 포기를 종용하고, 박 연출가가 이를 마지못해 수용했던 일이 뒤늦게 밝혀졌다. 책은 이 밖에 세월호 참사,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의 광주 비엔날레 전시 무산, 국정농단 국조특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2013년에서 2017년까지 문체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기록했다. 김씨는 블랙리스트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케인스의 팔 길이의 원칙’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나 행정 기관이 예술 창작과 관련해 예술가(또는 단체)를 지원할 때 ‘팔 길이만큼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원칙에 정 행정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지원은 하되 통제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예술가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관심과 인식의 수준도 더 높아져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들도 문제가 생기면 감지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인식이 높아졌으면 좋겠어요.”(김석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소환조사도 받았습니다. 책을 쓰면서 블랙리스트를 두고 발생했던 문제들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니 저도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체부가 이번 일을 잊지 않고 조직을 위해 고생한 직원들에 대해 그 어려움, 고단함, 아픔과 슬픔을 잊지 않는 ‘조직의 예의’도 지켜 주길 바랍니다.”(정은영)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북한의 역사학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아래 글을 보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역사학자들은 조선역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이 입증한 사실의 가장 중요한 것이란 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00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 ‘조선’만 ‘한국’으로 바꾸면 아직도 한국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다고 비판하기 위해 엊그제 쓴 글 같다. 그러나 이 글은 ‘임꺽정’(林巨正)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 1949년에 쓴 ‘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라는 글의 일부다. 윗글은 일제의 식민사학이 두 축으로 되어 있다고 분석한 글이다. 하나는 낙랑군이 서기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까지 500여 년간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이고, 다른 하나는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하는 ‘가야=임나설’이다.홍명희는 1948년 4월 백범 김구와 함께 ‘전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협상)’ 참석차 방북했다가 내려오지 않은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였다. 아들 홍기문도 훈민정음과 향가 및 이두(吏讀) 등에 정통한 국어학자였는데, 홍씨 부자는 국어뿐만 아니라 국사에도 해박했다. 정상적인 학자들이라면 국어와 국사는 떨어질 수 없다.●北은 ‘낙랑=평양설’ 1949년 이미 비판 홍기문이 1949년에 이미 ‘낙랑=평양설’을 비판한 것은 남한 학계에서 ‘낙랑=평양설’이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난 ‘정설’이라고 우기는 것과 잘 대비된다. 더구나 이때는 김일성 일가 중심의 주체사관이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역사학을 남북한 체제 경쟁의 주요한 요소로 설정한 데서 나온 글들이기 때문이다.1945년 10월 10~13일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이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김일성은 박헌영이 당수인 조선공산당에서 북한 지역을 떼어 독립하겠다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를 주장했다. 오기섭, 정달현 등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한 나라에는 하나의 공산당만 존재한다’는 코민테른(제3국제 공산당)의 ‘1국1당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대했지만 소련 군정이 지지하는 김일성의 주장이 관철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같은 해 10월 23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치되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을 먼저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남한까지 사회주의화하겠다는 이른바 ‘민주기지론’을 채택한 것은 ‘북조선분국’ 설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북한에 먼저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남한과 체제 경쟁에 나서 통일하겠다는 의미였다. 북한은 이때 역사학을 체제 경쟁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南선 식민사관을 정설 인정 비난 자초 1946년 7월 31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김일성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유수한 역사학자들을 초청했다. 박시형·김석형·전석담 같은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자들이 김일성의 초청에 응해 월북했다. 이외에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였던 역사학자 백남운도 1947년 5월 여운형 등과 근로인민당을 결성해 부위원장을 역임하다가 월북했다. 식민사관에 비판적인 남한의 역사학자 중에서는 국학대학 학장 정인보와 안재홍 등 소수만 남게 되었다. 그나마 이들도 6·25전쟁 때 모두 납북되고 말았다. 그 결과 남한에는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신석호 등만 남아서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이 북한의 학자들처럼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학에 의문을 품고 광복된 조국에 맞는 새로운 역사학 연구 기풍을 일으켰다면 지금 남한의 역사학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식민지 등으로 폄하하는 논리가 궁색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병도·신석호 등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작한 역사학을 하나뿐인 ‘정설’로 승격시키고 이를 비판하는 모든 학설을 이단으로 몰아 강단과 국사관련 국가기관에서 내쫓았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가 왜곡한 ‘낙랑군=평양설’이 이미 100년 전에 확립된 ‘정설’이라는 망발이 지금까지 횡행하면서 남한 사학계는 여전히 조선총독부를 추종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패수, 신채호 “요령성에” 이병도 “청천강” 북한은 1947년 2월 17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내에 ‘조선력사편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가장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사상에 의거해서 조선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옳게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라는 연속성은 역사학의 가장 기초이다. 그러나 남한은 이른바 전공이란 칸막이로 역사학과 다른 학문을 단절시키고, 역사학 내에서도 각각의 전공으로 서로 단절시켜서 ‘전공이 아니라서…’를 입에 달고 사는 분절적 역사학자들만 양산했다. 위원회의 위원장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던 이청원이 맡았다. 이청원은 최익한의 사위였는데, 최익한은 조선 말기 영남 유림의 거두이자 파리장서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곽종석의 제자이자 사회주의자였고 1938년부터 ‘동아일보’에 ‘여유당전서를 독(讀)함’을 연재했던 다산 정약용 전문가였다. 위원회는 1948년 10월 2일 관할 기관을 교육성으로 이관했는데, 위원장은 교육상(敎育相: 교육부 장관) 백남운이 겸임했다. 위원회에는 백남운·박시형·김석형·김광진 등의 역사학자와 도유호 같은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홍명희·한설야·리기영 등의 문학가들과 최창익 등의 정치가들도 참여했다.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위원회였다. 이 위원회의 기관지가 앞의 홍기문의 글을 실은 ‘력사제문제’(歷史諸問題)였다. ‘력사제문제’는 1948년부터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 만 2년이란 짧은 기간에 18집이나 간행되었다. 고대사에 관한 여러 논문이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정세호가 1950년 ‘력사제문제’ 16호에 실은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일고찰’이고, 또 하나가 17호에 실은 정현의 ‘한사군고’(漢四郡考)다. 정세호와 정현의 논리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지금의 북경 부근까지 이르렀다가 연(燕)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1000~2000리의 땅을 빼앗긴 이후 지금의 대릉하와 요하 사이까지 밀렸다고 보고 있다. 한사군도 당연히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요동 지역에 있었다고 보았다. 남한에서 고조선의 강역을 평안남도에 국한했던 것에 비교하면 큰 차이였다. 이런 역사인식은 다분히 단재 신채호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였던 패수(浿水)의 위치에 대해서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은 압록강(쓰다 소키치)·청천강(이병도)·대동강(이나바 이와기치) 등 한반도 내의 강으로 비정했지만 정세호와 정현은 지금의 요하(遼河) 부근으로 비정했다. 그것도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1000~2000여리의 땅을 빼앗겨 축소된 이후의 패수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신채호는 패수의 위치를 지금의 요령성 해성(海城)시로 비정했는데, 정현은 ‘한사군고’에서 “(신채호는) 패수를 지금 해성현에 있는 헌우락(軒芋樂)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탁월한 고찰 방법이다”고 높였다. ●신채호를 北 “탁월한 고찰” 南 “또라이” 패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남한에서는 지지난 정권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장으로 연간 300억원대의 예산을 주무르던 한 역사학자가 공개 학술대회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폄하했다. 신채호의 학설을 ‘참으로 탁월한 고찰’이라고 보는 북한학계와 ‘또라이, 정신병자’로 보는 남한학계 사이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 학계는 1960년대 초반까지 고조선의 중심지와 낙랑군의 위치를 고대 요동으로 보는 리지린 등의 문헌사학자들과 평양으로 보는 도유호 등의 고고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학설을 정리해 나갔다. 일체의 논쟁을 봉쇄하고 ‘낙랑군=평양설’이 ‘정설’이라는 따위의 비학문적 논리로 문제제기 자체를 막았던 남한 역사학의 행보와는 달랐다.(계속) 中 국공 내전 때 학자 쟁탈전…대만, 지식인들 학문 기반으로 대륙과 겨뤄 중국의 국공 내전 때 국민, 공산 양당은 문화재 쟁탈전만 전개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 쟁탈전도 전개했다. 1948년 12월 북경에서 이륙한 국민당 비행기에는 북경대 총장을 역임한 호적(胡適)과 청화대 역사학과 교수 진인각(陳寅恪) 등이 타고 있었다. 유수한 학자들을 대만으로 이송하는 ‘학자 이송’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남경에 기착하자 진인각은 대륙을 선택해 내렸고, 호적은 대만으로 갔다. 다수의 학자가 대륙을 선택했지만 북경대 총장대리를 역임했던 부사년(傅斯年)도 대만을 선택했다. 부사년, 호적 등은 국립 대만대와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등을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시켰다. 현 중화민국(대만)이 그 협소한 영토에도 대륙과 정신적으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원천이 대만을 선택한 지식인들이 만든 학문에 있었다.
  • 멸종 위기 바나나… 단일 품종이 부른 위험

    멸종 위기 바나나… 단일 품종이 부른 위험

    바나나 제국의 몰락/롭 던 지음/노승영 옮김/반니/400쪽/1만 8000원인류가 수확해 먹는 식물 가운데 현재 멸종이 가장 임박한 작물이 ‘바나나’다. 값싸고 영양과 맛도 좋아 대형마트에 가면 수북이 쌓여 있는 바나나가 멸종 위기종인 건 역설적이다. 자연 그대로 바나나를 놔뒀다면 이런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맛과 크기, 향 등 유전자가 동일한 단일 품종인 ‘캐번디시’뿐이다. 50년 전에 먹던 바나나 품종인 ‘그로미셸’과는 전혀 다른 종으로, 향과 당도가 훨씬 진해 현재 판매 중인 ‘바나나 우유’ 맛과 비슷했다. 캐번디시는 1960년대 치명적인 곰팡이균이 일으킨 파나마병이 그로미셸 종을 멸종시키면서 인위적으로 개발된 ‘클론 바나나’다. 곰팡이균에 강한 내성과 대량 재배가 되는 상품성으로 인해 지구에서 단 하나의 품종이 됐다. 바나나의 비극은 이 대목에서 연유한다. 파나마병을 일으킨 곰팡이균이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하면서 캐번디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품종이 개발되지 않는 한 바나나는 인류의 식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학계는 멸종 기한을 향후 15년으로 예측한다. 롭 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 교수가 쓴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 자연 질서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냉정하게 짚는다. 인류가 명명한 30만 종 이상의 현생 식물 중 실제 섭취하는 열량의 80%가 단 열두 종의 작물에서 나온다. 콩고 분지 사람들은 열량의 80%를 고구마 같은 덩이뿌리 작물인 ‘카사바’ 한 종에만 의지한다.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도 럼퍼감자라는 한 종에 의지하다 감자역병의 발병으로 생긴 비극이다. ‘인류 운명의 날 저장고’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스발바국제종자저장고 같은 종자은행도 이 같은 멸종 위기 생물들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다. 각 개인도 힘을 보탤 수 있다. 식량을 덜 낭비하고, 육류 섭취를 줄이며 획일화된 식단을 거부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분의 한 입은 야생의 자연을 위협하지만 그와 동시에 야생의 자연에 의존한다”는 문장으로 책을 끝맺는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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