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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없는 한밤에도 오염물질 제거한다

    햇빛 없는 한밤에도 오염물질 제거한다

    이산화티타늄을 광촉매로 만들면 친환경적으로 오염 물질을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폐수처리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광촉매는 말 그대로 햇빛을 받아야 반응한다. 이 때문에 햇빛이 있는 낮이나 맑은 날씨가 아니면 오염물 처리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국내 연구진이 빛 없이도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광촉매를 개발해 흐린 날이나 밤에도 오염물질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신소재공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연구팀은 이산화티타늄에 탄소나노소재를 첨가해 새로운 형태의 광촉매를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광촉매는 햇빛이 없는 상태에서도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살균 기능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 ‘ACS 촉매’ 5월 20일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이산화티타늄에 탄소나노소재 ‘풀러렌’을 이용해 복합 광촉매를 제작했다. 이번에 개발한 복합 촉매는 햇빛 없이도 활성화돼 수산화 라디컬을 만들어 낸다. 수산화 라디컬은 미세플라스틱이나 폐염료 같은 유기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살균 효과도 있어서 폐수처리나 공기정화에 활용된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복합 촉매로 빛이 없는 환경에서 유기 오염물질 분해 실험을 실시한 결과 70% 이상 분해 효과를 확인했다. 빛이 있을 때는 기존 광촉매 효과를 이용할 수 있으며 한 번 사용한 촉매를 다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1저자로 연구에 참여한 손소담 신소재공학과 박사는 “이번에 개발한 촉매물질은 화학 반응 후 유해 부산물을 만들지 않는다”며 “날씨에 상관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재사용까지 가능해 수처리, 살균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작전명 ‘공급대란 분유 구하기’… 美 군용기 떴다

    작전명 ‘공급대란 분유 구하기’… 美 군용기 떴다

    최악의 영유아용 분유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미국이 군용기를 동원해 독일에서 의료용 특수 분유를 공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공군의 장거리 수송기 C17 글로브매스터3가 3만 1800여㎏의 네슬레 분유를 싣고 22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의 인디애나폴리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날 공수한 제품은 우유 단백질에 과민증이 있는 아기에게 먹이는 의료용 저자극성 특수 분유로, 영유아 2만 7000명이 1주일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해당 분유가 미국 내 의료용 특수 분유 수요의 약 15%를 보충할 것으로 추산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분유 부족 사태로 ‘분유 공수 작전’을 진행 중이며, 이날 도착한 분유는 미국이 해외에서 공수한 첫 도착분이다. 백악관은 군용기 투입으로 분유를 해외에서 공수하는 기간을 통상 2주에서 사흘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날 독일에서 도착한 의료용 분유와 며칠 내로 배포할 예정인 미 유아식품 회사 거버의 분유 제품을 합하면 분량이 분유병(226g) 150만개에 이른다고 전했다. 분유 대란은 글로벌 공급망 혼란 등으로 분유 공급이 부족하던 차에 미 식품의약국(FDA)이 미 최대 분유 제조사인 애벗 래버러토리스의 분유를 먹은 뒤 영유아 2명이 사망한 사건을 조사한 결과 실제 애벗의 미시간 공장에서 박테리아가 발견됐다고 발표하며 시작됐다. 애벗은 지난 2월 공장을 닫았고, 3개월이 지난 최근 FDA와 생산 재개를 합의했으나 제품 생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첫째 주쯤에야 공장이 재가동돼 이르면 8월부터 제품이 생산될 것으로 전해졌다.
  • 아이에서 학생이 된 소년… 학교에 대한 심리 과정 묘사

    아이에서 학생이 된 소년… 학교에 대한 심리 과정 묘사

    나와 학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하타 고시로 그림, 권남희 옮김, 이야기공간 펴냄, 40쪽, 1만 4000원) 누구나 겪었을 법한 학교생활을 아이에서 학생이 된 소년이 ‘나’의 시점으로 전개해간다. 페이지마다 시 같은 문장과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그림이 어우러져 은은한 감동을 준다.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면 학교에 대한 미취학 아이의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출판사 관계자는 “옆에서 이 이야기를 읽어줬을 어른의 마음속에 학교에 대한 진한 향수가 찾아온다”며 “아이와 어른, 학교에 대해 크고 작은 사연을 가진 누구에게나 건네도 좋은 선물 같은 그림책”이라고 소개했다. 저자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일본 국민 대부분이 아는 시인이다. 1950년에 데뷔한 이후 8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는데, 10만 부 이상 판매된 시집이 여러 권 있을 정도로 일본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많은 음악인에 의해 노래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 차세대 에너지원 수소’ 대량 생산 촉매 개발

    차세대 에너지원 수소’ 대량 생산 촉매 개발

    영남대 화학공학부 연구팀이 수소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물의 전기분해를 통한 수소 생산에 사용되는 기존 귀금속 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 촉매를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니켈-셀레나이드(NiSe)로 이루어진 나노시트(Nanosheets) 기반에 코발트-철(CoFe)을 전기도금하여 이형접합 산화물(CoFe-LDH@NiSe) 촉매를 제조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제조된 촉매는 우수한 전기전도성으로 인해 전자이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수소발생 및 산소발생 반응에서 기존 귀금속 촉매보다 높은 활성을 보였고, 120시간 이상 연속된 수전해 실험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이 유지될 만큼 내구성이 우수했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영남대 화학공학부 셔린 마리아 니티아 요한(Shrine Maria Nithya. J) 연구교수와 김동준 박사(오하이오주립대학교 박사과정)가 공동 제1저자, 이유현(대학원 화학공학과 석사3기) 연구원이 공동저자, 화학공학부 김민규, 이기백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이기백 교수는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에 의해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우리 주위에 심각한 기후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청정에너지원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고 했다.
  • [이광식의 천문학+] ‘수수께끼’ 우주 팽창 속도…허블 망원경이 알아낸 방법

    [이광식의 천문학+] ‘수수께끼’ 우주 팽창 속도…허블 망원경이 알아낸 방법

    과학자들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난 수십 년간 수집한 데이터 덕에 우주 팽창에 대해 보다 정확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었다. 32년 된 허블 우주망원경의 데이터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인해 우주가 얼마나 빨리 팽창하고 있으며, 팽창이 얼마나 가속하고 있는지에 대한 오랜 탐구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천문학자들이 우주 팽창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숫자를 허블 상수라고 한다. 여기서 '허블'은 허블 망원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1929년 우주 팽창 지수를 처음 측정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을 뜻한다. 하지만 허블 상수는 우주의 다른 영역을 관찰하는 여러 천문대에서 내놓은 다른 값들을 고려한다면 허블 상숫값을 확실히 결정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연구는 허블의 최근 노력이 비록 다른 천문대와 여전히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현재 우주가 보이는 팽창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라는 확신을 나타내고 있다. 새로운 연구는 메가파섹당 약 73㎞의 팽창을 보여주는 허블 관측을 기반으로 한 이전의 팽창률 추정치를 확인한다. 메가파섹은 100만 파섹 또는 326만 광년에 해당하는 거리 측정값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이자 연구 주저자인 애덤 리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허블 표본 크기가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천문학자들이 불운한 추첨으로 인해 틀릴 확률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리스는 허블을 관리하는 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STScI)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에 소속돼 있다. 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허블과 다른 관측소에서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2011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리스는 이 최근의 허블 연구를 ‘대작’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제로 허블 망원경의 전체 역사, 즉 32년에 걸친 우주 연구를 바탕으로 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허블의 데이터는 슈즈(SH0ES·Supernova, H0, for the Equation of the State of Dark Energy)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관측된 팽창률을 정확히 기록했다. 이 데이터 세트는 이전 측정 샘플의 2배이며 1000개 이상의 허블 궤도도 포함한다고 NASA는 밝혔다. 새로운 측정은 또한 허블의 성능에 대한 기대치보다 8배 더 정확하다. 우주가 얼마나 빨리 팽창하는지 측정하려는 노력은 일반적으로 2개의 거리 표시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중 하나는 일정한 속도로 밝아지고 흐려지는 변광성인 세페이드 별이다. 1912년 청각 장애 천문학자 헨리에타 스완 리빗이 발견해 그 중요성을 밝혀낸 이후로 그 유용성이 알려졌다. 세페이드는 우리은하 내부와 근처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유용하다. 더 먼 거리의 측정에는 1a형 초신성을 이용한다. 이 초신성은 일정한 광도(고유 밝기)를 가지므로 망원경에서 보이는 겉보기 광도로 계산하면 해당 천체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새로운 연구에서 NASA는 “팀은 허블을 사용해 초신성 이정표 중 42개를 측정했다. 그것들은 연간 약 1개의 비율로 폭발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허블은 우주의 팽창을 측정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초신성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주의 팽창 속도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허블의 측정치는 메가파섹당 약 73㎞이지만, 심우주를 관찰해보면은 메가파섹당 약 67.5㎞로 느려진다. 심우주 관측은 우리 우주를 형성한 빅뱅의 ‘메아리’, 곧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관찰한 플랑크 탐사선의 측정에 주로 의존한다. NASA는 천문학자들이 왜 2가지 다른 값이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기본 물리학을 재고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 ​우주의 팽창률을 그 당시의 정확한 값이라고 보기보다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는 리스는 NASA 성명에서 “팽창 값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지만, 우주를 이해하는 데 그것을 사용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앞으로 20년 동안 더 많은 측정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NASA에 따르면 제임스웹은 세페이드와 1a형 초신성을 “허블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먼 거리, 더 선명한 해상도로 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허블 망원경이 관측한 우주 팽창 값을 더욱 정확히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를 기반으로 한 논문은 ‘천체물리학 저널’에 게재될 예정이다. 사전 인쇄 버전은 아카이브(arXiv.org)에서 사용할 수 있다.
  • 많이 일한다고 잘하나요?… ‘주4일제’ 위한 변론

    많이 일한다고 잘하나요?… ‘주4일제’ 위한 변론

    19세기 초 영국 노동자의 ‘정규’ 노동시간은 주 6일이었다.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의 자유’가 노동운동의 핵심 의제가 된 건 19세기 중반부터였다. 이후 이틀간의 주말과 주 40시간 노동은 국제 표준이 됐다. 1980년대 이후 정체됐던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다시 촉발됐고, 이제 주 4일 32시간 노동제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주4일 노동이 답이다’는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책이다. ‘주4일 노동’의 핵심 전제는 ‘임금 삭감 없이’다.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거나 몰아치기를 하는 등 노동의 형태를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주장도 담겼다. 물론 “주 40시간 노동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주일에 6일 일한다는 ‘996 루틴’을 옹호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표준 노동시간’이 있다고 믿는 이들로선 펄쩍 뛸 주장이다. 한데 2008년 미국 유타주의 대담한 실험, 네덜란드의 자발적 단축 등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는 매우 많다. 특히 생산성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그리스, 멕시코 등은 연간 노동시간은 많은데 생산성은 유럽 국가들보다 낮다. 유럽 국가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2018년 독일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1363시간으로 영국의 1538시간보다 훨씬 적었다(한국은 지난해 1908시간으로 수치가 집계된 38개국 가운데 4위다). 하지만 독일의 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영국보다 높았다. 독일 노동자들이 “우리가 목요일 점심때쯤 장비를 내려놔도 영국 노동자들이 금요일까지 일한 것만큼은 해 놨을 것”이라고 비꼬는 게 당연했다. 생산성뿐 아니라 그렇게 생긴 이득을 누가 어떻게 가져가느냐도 중요하다. 저자들은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만으로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여러 사회계약이 함께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 누군가의 아픔 치료하며… 심리학자도 성장합니다

    누군가의 아픔 치료하며… 심리학자도 성장합니다

    심리학자는 무수한 내담자를 만나면서 그들의 삶의 내면과 ‘마음의 방’을 들여다보는 특권을 가진 전문가다. 때로 개인의 삶은 한 시대, 한 사회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미국 출신 캐나다 작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25년간 심리치료를 하며 만난 수천명의 내담자 가운데 특별한 네 사람을 소개한다. 탁월한 음감 덕분에 성공했지만 애착 장애가 있는 음악가, 원주민 분리 정책으로 기숙학교에 강제 수용돼 자아정체성 박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트럭 기사, 9세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딸, 어머니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해 강박장애를 가진 앤티크 사업가 등이다. 이들은 길게는 4~5년의 상담 시간을 통해 오랫동안 내면에 묻어 버리고 외면한 고통의 실체와 마주한다. 바로 아동학대의 상흔이다. 이들은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모나 가족에게서 고통받은 경험을 가졌지만 심리치료의 과정 속에서 용감하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스스로 부여한 한계를 깨부수려고 노력한다. 이 험난한 여정에서 심리학자는 내담자들의 강박과 충동, 방어기제, 욕망, 공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분석하고 하나씩 들춰내며 그들이 심리치료를 통해 자유롭게 해방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평생 어떻게 한 인간의 삶과 인간관계, 감각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 낸다. 저자는 내담자를 ‘영웅’이라고 지칭하며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내담자들은 모두 사랑받는 느낌을 누리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면서 “용감하다는 것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을 대면하고 날마다 일어나 똑같은 시련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매번 더 나은 접근 방법과 질문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내담자에게 거부당하고 상담을 중지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심리학자 역시 누군가를 치유하며 자신도 치유받고, 내담자와 함께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 망각은 축복, 머리보다 몸… 당신이 알던 뇌를 뒤집다

    망각은 축복, 머리보다 몸… 당신이 알던 뇌를 뒤집다

    인간의 지적 능력과 신체 활동을 관장하는 중추 기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뇌’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뇌의 능력을 극대화해 더 많은 기억력을 갖게 되면 살아가는 데 더 편리하고, 우리의 나머지 몸은 지능을 담당하는 뇌를 감싸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와 눈길을 끈다. 정신의학자인 스콧 A 스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를 통해 뇌의 한계처럼 여겨진 ‘망각’이 오히려 인체에 이롭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섣불리 치매를 염려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현대인의 ‘기억 강박’이 불러온 환상통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기억을 잘하던 뇌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에 ‘망각하기 위한 도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고자 인간이 망각하는 능력을 잃었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 보여 준다. 우선 자폐증 환자들은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뛰어난 암기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세부 사항을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 탓에 고통을 겪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자폐증 환자들은 늘 기억 그대로의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따로 인식할 뿐 얼굴 전체를 통합해 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도 세부 사항을 잊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없어서 생긴다. 얼굴 전체를 인식하며 일반화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뇌에 저장되도록 하려면 망각이 필요하다. 끝없이 변하는 세상에서는 기억과 망각의 균형을 이룬 사람만이 적응해 나갈 수 있다. 졸업 앨범을 뒤적거리다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의 사진을 보더라도 불쾌한 감정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정상적 망각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공포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인간이 잠을 자는 이유도 잊기 위해서다. 미래의 기억을 받아들이도록 새로 단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 망각은 우리 머리를 비워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축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이 밖에 영국 비즈니스 인류학자 사이먼 로버츠는 ‘뇌가 아니라 몸이다’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은 뇌뿐 아니라 몸에서도 발현된다고 주장한다. 뇌를 신성시하고 지능의 핵심으로 여기는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경구에서 보듯 인류는 지식을 정신을 작용시킬 때 얻을 수 있다고 여겨 왔다. 즉 뇌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활동을 지식의 습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저자는 우리 몸도 타당하게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는다. 우리 몸이 체화하는 지식은 관찰, 연습, 즉흥성, 공감, 보유의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스콧 A 스몰 지음/하윤숙 옮김 북트리거/284쪽/1만 7500원특히 문화 안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완전하게 습득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고 편안하게 느끼며, 상황이 바뀔 때도 본능적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이 중추적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배우가 대사를 외울 때도 앉아서 암기하는 것보다 그 대사를 연기함으로써 더 쉽게 외울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이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로 도로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행자와 다른 차량 등이 뒤섞인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와 시선을 맞추고 신호를 보내는 등 즉흥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기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뇌가 아니라 몸이다 사이먼 로버츠 지음/조은경 옮김 소소의책/312쪽/1만 8000원결국 우리가 우리 몸에 보유한 지식은 우리의 감각 기억과도 연관돼 있으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려 할 때 몸과 뇌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책을 되짚어 보면 결국 우리가 타고난 기억과 망각, 몸으로 체화된 지식을 모두 신뢰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지름길임을 알게 된다.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도 많으니 인간으로서의 삶을 충분히 즐기면 되지 않을까.
  • [책꽂이]

    [책꽂이]

    지휘의 발견(존 마우체리 지음, 이석호 옮김, 에포크 펴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이끈 명망 높은 지휘자로서 50여년 경력을 진솔하게 되돌아보고 번스타인, 카라얀, 스토코프스키 등 선배 지휘자들의 발자취를 꼼꼼히 기록했다. 화려해 보이는 이미지는 극히 일부분일 뿐, 지휘자는 고독한 존재이자 모든 사람과 조율하는 리더라고 규정한다. 552쪽. 2만원.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스테판 에노·제니 미첼 지음, 임지연 옮김, 북스힐 펴냄) 식품과 역사 전문가의 시각으로 로마 시대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음식 문화의 역사를 풀어 나간다. 중세 흑사병을 예방하는 데 식초가 쓰인 이유와 브리 치즈는 어떻게 ‘치즈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는지 등을 나폴레옹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일화와 함께 소개한다. 464쪽. 1만 6000원.가난의 도시(최인기 지음, 나름북스 펴냄) 30여년간 빈민운동가로 활동한 저자가 생존을 위해 거리를 선택한 노점상들의 삶을 기록했다. 손수레와 포장마차를 이용해 거리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들은 ‘잡상인’이 아니며 1980년대부터 스스로 조직하고 단속에 맞서 저항하며 사회 변화에 동참해 왔다고 밝힌다. 330쪽. 1만 6000원.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멜라니 조이 지음, 강경이 옮김, 심심 펴냄) 사회 심리학자인 저자가 채식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대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안정감과 교감을 토대로 한 ‘회복탄력성’을 어떤 어려움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관계의 기초 체력이라고 강조한다. 388쪽. 2만 2000원.플라스틱 시대(이찬희 지음, 서울대 출판문화원 펴냄) 환경 부문 공직에 종사해 온 저자가 ‘신이 내려준 선물’로 불린 플라스틱의 모든 것과 이로 말미암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국내외 정책 대응 방안 등을 담았다. 플라스틱의 역사, 이용 실태, 재활용의 현황과 한계, 폐기물 저감 방안과 대체 소재의 개발까지 균형감 있게 서술해 주목받는다. 360쪽. 2만 9000원.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문화2(강상규·이경수·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지난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문화’의 후속작으로 한일 관계, 일본의 교육, 음식문화, 스포츠 등을 그렸다. 일본 문화 속 고양이, 고교 야구, 커피 문화 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과 닮았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일본과 만나게 된다. 592쪽. 1만 9500원.
  • “1만명에게 1만점의 반가사유상… 유물 보면 날 깨닫는 순간 오죠”

    “1만명에게 1만점의 반가사유상… 유물 보면 날 깨닫는 순간 오죠”

    “마음 상태에 따라 다가오는 유물이 달라지니까 유물 앞에 머무르며 멈추는 시간을 갖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순간도 올 겁니다.” 박물관은 대개 어렵고 따분한 곳으로 여겨진다. 학창 시절 원치 않게 학교에서 단체로 갔던 기억에 더해 유물들을 주로 머리 아픈 역사책에서나 접한 영향이 크다. 시간을 내서 굳이 유물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은 어쩐지 지루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박물관을 찾아 유물과 대화하듯 오래 머무는 이들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20년차 큐레이터 정명희(49·학예연구관)씨가 최근 낸 책 ‘멈춰서서 가만히’는 ‘유물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정씨는 유물과의 만남을 인간관계에 비유했다. 단편적인 정보로 알게 된 상대방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알아가는 상대방이 다르게 다가오듯 유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물은 물건을 쓴 사람이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 했던 흔적이에요. 남겨진 것이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 알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만나 보고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넓혀 가는 것이나 유물을 알아 가는 것이나 똑같아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나와 유물과 특별한 관계가 되는 거죠.” 책에는 반가사유상처럼 유명한 유물부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유물까지 39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 속에 관계를 맺은 유물이다 보니 ‘꼭 봐야 할 유물 목록’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다. 정씨는 “박물관 동료가 하나 정도는 겹칠 줄 알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유물은 없었다고 하더라”라며 웃은 뒤 “제가 만난 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유물과 친해질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수들의 이야기를 썼지만 정씨는 박물관 관람이 꼭 고수들의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유명 연예인이 다녀간 곳이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소장품 전시회처럼 박물관도 많은 이가 찾고 싶어 하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반가사유상이 있는 ‘사유의 방’은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이 찾으면서 전 세계 아미(BTS 팬클럽)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인증샷 문화로 인해 빠르게 사진만 찍고 떠날 수도 있다는 점이 많은 고민 끝에 전시 유물을 선정하는 큐레이터로서는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씨는 유물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봤다. “유명인들을 따라 하면서 그 사람이 왜 좋아했을까 생각해 보고 ‘이게 그거구나’ 하면서 유물을 알아차릴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1만명의 사람에게 1만 점의 반가사유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의미 있을 거라 믿고 박물관에서 좋은 경험을 쌓아 갔으면 합니다.”
  • ‘뮤비’와 詩로, 약자 끌어안기로… MZ세대 “5·18을 기억합니다”

    ‘뮤비’와 詩로, 약자 끌어안기로… MZ세대 “5·18을 기억합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후 처음 맞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에서 열린 가운데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지 않았던 10~30대, 일명 ‘비(非)경험 세대’도 각자의 방식으로 ‘오월정신’을 기렸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5학년생 16명은 지난 16일 민주화운동을 설명하는 ‘5월의 민들레’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5월을 맞아 민주화운동을 잘 모르는 어른이나 1·2학년 후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 영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담임 교사인 정혜원(27)씨는 “제자들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만들었다”며 “민주주의의 뜻부터 가르치기 위해 ‘교실의 주인은 누구일까’부터 시작해 학교로, 나라로 확장해 나갔다”고 말했다. 정씨는 “저 역시 비경험 세대로서 수업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이서영(30)씨는 조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진 기억을 자신만의 ‘시’로 재생산한다. 지난 6일부터 다른 작가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를 써 포스터로 출판하는 ‘5월을 기리는 글자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광주에서 조부모님의 이야기나 일기장을 통해 들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느낌을 제 나름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민주화운동이 실제로 일어났던 광장과 도청 앞을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면서 제 세대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기억해야겠다는 부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를 통해 광주 민주화운동 경험 세대와 비경험 세대 간의 연결을 표현했다. 이씨는 “기존에는 민주화운동을 말할 때 대의나 참혹함, 슬픔 등을 말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비경험세대로서는 좀더 특별하고 이질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씨 사망 당시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안충원(21)씨는 오월정신을 약자 보듬기라고 해석했다. 안씨는 “1980년 5월처럼 2022년에도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소수자가 많다”면서 사회 약자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노무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1인 시위 후 ‘근로정신대시민모임’ 등 광주 지역 시민단체와도 교류해 온 그는 “근로정신대 문제가 80~90년이 더 된 역사이지만 현 세대 사람들이 계승하려는 수많은 노력을 보면서 기억을 연대하는 이른바 ‘기억투쟁’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라고 강조한 ‘기억전쟁’ 저자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도 시민들의 기억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기억해 나가는 건 역사 차원을 넘어 억울하고 쓸쓸한 피해자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표출하며 응답하는 것”이라면서 “역사 해석 바로잡기나 법적 처벌보다 근본적인 바탕에서 사회적 기억을 도모하고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고통과 아픔에도 연대의 시선을 건네며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려는 의지와도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 역사는 흘러가지만 기억은 뻗어나간다···요즘 세대의 5·18민주화운동 기억법

    역사는 흘러가지만 기억은 뻗어나간다···요즘 세대의 5·18민주화운동 기억법

    5·18 광주 민주화운동 42주기민주화운동 겪지 않은 ‘비경험 세대’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연대해“기억은 산자와 죽은자의 대화”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후 처음 맞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에서 열린 가운데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지 않았던 10~30대, 일명 ‘비(非)경험 세대’도 각자의 방식으로 ‘오월정신’을 기렸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5학년생 16명은 지난 16일 민주화운동을 쉽게 설명하는 ‘5월의 민들레’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5월을 맞아 민주화운동을 잘 모르는 어른이나 1·2학년 후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 영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담임 교사인 정혜원(27)씨는 “제자들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만들었다”며 “민주주의의 뜻부터 가르치기 위해 ‘교실의 주인은 누구일까’부터 시작해 학교로, 나라로 확장해나갔다”고 말했다. 정씨는 “저 역시 비경험 세대로서 수업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이서영(30)씨는 조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진 기억을 자신만의 ‘시’로 재생산한다. 지난 6일부터 다른 작가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를 써 포스터로 출판하는 ‘5월을 기리는 글자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광주에서 조부모님의 이야기나 일기장을 통해 들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느낌을 제 나름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민주화운동이 실제로 일어났던 광장과 도청 앞을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면서 제 세대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기억해야겠다는 부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를 통해 광주 민주화운동 경험 세대와 비경험 세대 간의 연결을 표현했다. 이씨는 “기존에는 민주화운동을 말할 때 대의나 참혹함, 슬픔 등을 말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비경험세대로서는 좀더 특별하고 이질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지난해 전씨 사망 당시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안충원(21)씨는 오월정신을 약자 보듬기라고 해석했다. 안씨는 “1980년 5월처럼 2022년에도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소수자가 많다”면서 사회 약자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노무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1인 시위 후 ‘근로정신대시민모임’ 등 광주 지역 시민단체와도 교류해온 그는 “근로정신대 문제가 80~90년이 더 된 역사이지만 현 세대 사람들이 계승하려는 수많은 노력을 보면서 기억을 연대하는 이른바 ‘기억투쟁’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라고 강조한 ‘기억전쟁’ 저자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도 시민들의 기억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기억해나가는 건 역사 차원을 넘어 억울하고 쓸쓸한 피해자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표출하며 응답하는 것”이라면서 “역사 해석 바로잡기나 법적 처벌보다 근본적인 바탕에서 사회적 기억을 도모하고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고통과 아픔에도 연대의 시선을 건네며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려는 의지와도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친환경 의식도 자라고, 우리말 사랑도 자라길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친환경 의식도 자라고, 우리말 사랑도 자라길

    새말 모임에서는 회의마다 6~7개의 외국어 후보 중 두세 개를 골라 알기 쉽게 다듬는다. 아무래도 가장 널리 알려져 시급하게 바꾸어야 할 용어나 비교적 일반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만한 단어부터 우선 살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클린 뷰티’(clean beauty)는 이번 회의에서 이견 없이 제일 먼저 손을 볼 대상으로 꼽혔다. 언론에 최초 등장한 때가 2018년으로 그만큼 다른 후보 말보다 일찍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2022년 3월 25일 기준으로 구글 뉴스에서 무려 2만 2700개가 검색될 만큼 많이 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클린 뷰티’는 ‘유해 성분을 배제하고 환경 보호를 고려해 만드는 화장품’을 이르는 말이다. “자연 유래 유효 성분을 활용한 별도의 케이스가 필요 없는 고체 비누 형태의 샴푸로 환경까지 보호하는 클린 뷰티 제품”(디지틀조선일보 2022년 3월 16일), “지난해 화장품 시장에는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클린 뷰티 바람이 불었다. 팬데믹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폭증했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기감이 밀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컨슈머타임스 2022년 3월 21일) 등 언론 기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다. ‘클린’이라는 말은 ‘클린 뷰티’ 외에도 환경 오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유기농 작물로 만든 음식인 클린 푸드, 친환경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클린 라이프, 생활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수거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쓰레기를 내놓도록 만든 시설인 클린 하우스 등이 그 예다. 이렇게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라서인지 ‘클린 뷰티’를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도 수월했다. 새말모임 위원들의 의견은 금세 ‘친환경 화장품’으로 모였다. ‘뷰티’라는 단어는 ‘아름다움’, ‘미용’을 뜻하는 추상명사지만, ‘클린 뷰티’에서는 ‘화장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어서 이를 그대로 옮기기로 했다. 덧붙여 또 다른 다듬은 말 후보로 ‘녹색 화장품’, ‘청정 화장품’을 골랐다. 시민들의 의견은 어땠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클린 뷰티’라는 말이 이미 많이 쓰이고는 있었으나 국민 수용도 조사에서 응답자 71.2%가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새말모임 위원들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친환경 화장품’이 적합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89.8%). 사실 ‘클린 뷰티’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친환경’이라는 뜻을 품고 사용된 것은 아니다. 시작은 ‘내 몸에 해롭지 않은 성분으로 만든 저자극 화장품’으로 ‘환경’보다는 ‘내 몸’에 이롭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 말에 담은 의미가 확대되면서 내 몸에 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자연을 덜 파괴하는 제품을 일컫는 데까지 이른 셈이다. 지금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만든 화장품이나 과대 포장하지 않은 화장품, 내용물을 재충전할 수 있는 용기로 만든 화장품까지 모두 포괄해 ‘클린 뷰티’라 일컫고 있다. 이렇게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환경을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로 새롭게 생겨나는 개념이나 단어의 많은 수가 영어라는 사실이다. 소비에 신념과 가치를 더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 쓰레기 배출을 0에 가깝게 줄인다는 ‘제로 웨이스트’,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건 코스메틱’, 친환경적인 콩기름으로 만든 ‘소이 잉크’, 빈 병을 수거해 반납하면 혜택을 주는 ‘공병 프리퀀시’ 등등. 우리말로도 얼마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도 영어로 사용되고 있다. 바라건대 친환경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우리말 사랑도 함께 발맞춰 자라나기를.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이들이 우리말도 함께 아끼고 보듬어 ‘쓰레기 안 만들기’, ‘빈 병 모아 보내기’, ‘다시 쓰기’, ‘덜 버리기’와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써 주기를 소망해 본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 ‘왜 우리 아이만 유별난 걸까’… 육아·교육 전문가의 사춘기 아이 소통법

    ‘왜 우리 아이만 유별난 걸까’… 육아·교육 전문가의 사춘기 아이 소통법

    사춘기 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모로토미 요시히코 지음, 이정환 옮김, 나무생각 펴냄, 224쪽, 1만 4000원)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처방이 담겨 있다. 35년여 동안 육아·교육 전문 카운슬러로 활동하며 메이지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는 현장 경험과 상담 사례들을 토대로 부모, 아이 모두 상처 입지 않는 소통 방법의 핵심을 테마별로 정리했다. 책에는 사춘기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이후의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을 육성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사춘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육성되는 세 가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자기를 만드는 능력’, ‘좌절에서 다시 일어서는 능력’, ‘고민하는 능력’이다. 아이는 이 시기에 부모와는 다른, 자기 나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기도 하고, 상처 입고 패배하며 실패하고 그로부터 일어서는 법도 배운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생각하는 힘도 기른다. 아울러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에게 필요한 능력은 ‘지켜보는 능력’, ‘다가가는 능력’,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때로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보고, 위험에 처했을 때는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낙관적인 자세다. 아이의 실패나 좌절은 성장하는 기회이니 걱정하지 말고 응원과 격려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사춘기 아이의 심리 및 변화, 학교생활, 성교육, 진학과 직업 선택, 가족 간의 유대관계 등을 테마별로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기초적이면서 과장 없는 내용으로 풀어썼다. 저자는 “사춘기를 어떻게 지나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무수히 갈등하면서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이 되느냐, 아니면 상처 입은 어른아이에 머무느냐는 사춘기 자녀와 부모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열린세상] 자식을 키워 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자식을 키워 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우리 세대 아버지들은 대부분 ‘집안일’에 관심이 없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자식 교육은 어머니가 맡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으며, 그에 걸맞게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돌았다. 어머니가 치맛자락 휘날리며 자식 주변을 맴도는 동안 아버지는 사라졌다가 결과를 놓고 야단만 쳤다. 물론 아버지의 책망은 자식에게만 향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그 자식을 ‘잘못 키운’ 어머니에게로 향했으니 어머니의 ‘치맛바람’은 어머니 자신의 욕망과 남편 눈치보기가 더해진 결과였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 학교 선생 전부를 초대하거나 입시에 도움 준 선생에게 차를 한 대 뽑아 줬다는 얘기가 내가 들은 가장 큰 부모 찬스 같은 것이었지만, 그때도 권력 있는 자들은 ‘자식을 위해’ 별짓 다 했다. 과외가 금지됐을 때도 불법 같은 건 아랑곳없이 수백만 원대 과외를 시키거나 아예 입시제도 자체를 바꿨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 나고, 판사 집안에서 판사 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주로 부모들이 공부 못하는 자식을 앞에 놓고 변명처럼 하거나, 집안의 ‘가풍’이나 ‘부모가 훌륭해야 자식도 훌륭하게 된다’는 의미로 썼다. 하지만 그들이 의사, 판사, 교수 직업을 대물림할 수 있었던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1980년대에 대학교수의 자녀가 부모가 재직 중인 학교에 지원하면 가산점을 받았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훌륭한 유전자와 가풍 때문이라 믿었다.  훗날 모 기관 심사를 할 때, 응모한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에 기록된 엄청난 ‘스펙’을 보며 놀라고 감탄했다. 공부만 하기에도 벅찼을 텐데 그 많은 활동과 자격증을 어떻게 땄을까 궁금했지만 그게 거짓일 수도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조국 사태를 겪고 한동훈, 정호영, 김인철 등의 장관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고등학생 자녀의 각종 인턴 및 체험활동 증명서, 논문 공저자 등록, 표창장과 자격증 취득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뒤늦게 진상을 알게 됐으니, 나는 나이 들어서도 현실을 모르는 ‘무지’라는 죄를 저지른 셈이다. ‘어떤’ 부모는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권력과 돈이 많으면 그만큼 휘두르는 바람의 범위나 세기가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그놈의 ‘자식 사랑’에는 젠더적 구분이 없다는 것도.  내가 현실을 모른 데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몰라서 못한 게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 사람, 성공과 행복에 대한 기준을 달리 세운 사람들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변에 많이 있었다. 그러므로 자식을 키워 봐야 어른이 되고, 온전히 자기가 책임져야 할 생명을 거둘 때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는 말은, 부모가 되고 나서도 자식 사랑이라는 ‘확장된 자기애’를 넘어선 사람을 향해 타인이 할 수 있는 말일지언정, 부모 된 자가 자기 입으로 할 소리는 못 된다. 양육의 경험을 통해 인격적 성숙을 이루는 건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자식 사랑이나 모성애, 부성애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질리도록 보지 않았던가.  그나저나 잘난 부모는 교수 인맥 이용해서 자격 미달인 자녀에게 손쉽게 스펙을 만들어 주고, 아는 사람의 부탁이라고 논문에 이름을 올려 주는 교수가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걸 전수조사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닌가? 교수의 사회적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교수들이 나서서 전수조사하자고 나설 것 같은데 아직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못 할 짓이 없다’는 말은 사라져야 하고, 가짜 스펙 만들어 준 부모는 처벌받아야 하며, 고등학생 논문을 등재시킨 교수들은 전수조사할 일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 ‘주연 아닌 조연’… 亞人 대하는 서양의 이중성, 우리는

    ‘주연 아닌 조연’… 亞人 대하는 서양의 이중성, 우리는

    ‘모범 소수민족’ 덧씌워 순응하게美, 법·제도로 끊임없이 亞人 차별코로나는 亞 혐오 정당성 부여해“우리 사회도 피해자이자 가해자”지난 8일 지소연이 속한 첼시 위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위민을 4-2로 꺾고 2021~22 잉글랜드 위민스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국내 복귀를 선언한 지소연을 위해 첼시는 등번호 10번이 담긴 액자를 선물하는 등 아름다운 이별식을 치렀다. 구단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에 대한 예우였다. 순조로워 보였던 이날 행사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이 됐다. 중계를 맡은 스카이스포츠가 지소연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다른 사람이 나오게 화면을 돌려 버린 탓이다. 예전부터 축구를 잘하는 한국인, 나아가 아시아인에 대한 비슷한 상황을 지켜봤던 팬들은 우연한 일이 아님을 느끼고 분노했다. 이 장면은 ‘성공한 아시아인’에 대한 서양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 준다. 아시아인이 잘하면 사랑받지만 주연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현상은 축구를 넘어 서양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 이를 ‘모범 소수민족 신화’라고 설명한다.모범 소수민족은 아시아인에게 근면함, 인내심, 교육열, 준법정신 등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운 것으로, 1960년대부터 미국 사회에서 등장했다. 이전까지 아시아인을 불결하고 야만적인 집단으로 봤던 미국 백인들은 경제 호황과 냉전 체제를 통해 아시아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했다. 옛소련과 과학 분야에서 경쟁하던 미국으로서는 과학에 특히 우수한 재능을 보였던 아시아인이 미국에 필요하다고 여겼다.그런데 누군가에게 모범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때는 그것을 씌우는 사람에게 순응하고 그가 한 단계 아래 계층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축구를 잘하되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백인 선수들을 빛내 줬으면 하는 마음, 경제적으로 성공해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 주되 백인들을 넘지 않는 성공이었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이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는 흑인들이 정작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외치지 않는 배경에도 모범 소수민족 신화가 작동한다. 아시아인을 백인보다 못하고 흑인보다 나은 중간 계층으로 서열화한 탓에 아시아인과 흑인이 연대할 기회가 사라졌고, 흑인들은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권리를 아시아인들이 누린다고 생각했다.미국 백인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끊임없이 아시아인을 차별해 왔다. 때론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황당한 차별책이지만 진작부터 흑인에 대한 차별 문화를 가지고 있던 미국이기에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정당한 사회 규범으로 작동했다. 먹고살기 어려울수록 혐오는 강해졌다. 인권의 보편성이 확장된 시대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다른 인종을 혐오하는 지도자가 나온 것이 가능한 이유다. 특히 코로나19는 서양 사회의 아시아인 차별과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했다.코로나19와 아시아인 혐오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로 시작해 아시아인이 당한 차별을 살핀 저자는 마지막에 우리가 범하는 차별을 언급한다. 난민에 대한 혐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과 착취 등 서양 사회가 아시아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은 우리 사회의 아시아인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다문화 사회면서도 반다문화 정서가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저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뿌리 깊은 혐오의 고리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 ‘티셔츠를 입은 처칠’ 젤렌스키, 영웅일까

    ‘티셔츠를 입은 처칠’ 젤렌스키, 영웅일까

    1978년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공업도시 크리비리흐 유대인 가정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연방에 속한 국가였다. 러시아가 일상의 중심이었던 만큼 아이는 우크라이나말 못지않게 러시아말도 유창하게 할 줄 알아야 했다. 아이가 나고 자란 ‘크바르탈95’(크리비리흐 중심가 95구역이란 뜻)는 거칠었다. 미국의 갱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좋아했던 아이는 눈빛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거친 소년으로 자랐다. 그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다. 우크라이나 내 여느 유대인 가정과 마찬가지로 젤렌스키 집안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많은 가족을 잃었다. 대학 학장인 아버지, 엔지니어인 어머니를 둔 젤렌스키는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기회도 있었지만 그가 택한 것은 뜻밖에도 연극이었다. 동료들과 ‘크바르탈95’라는 공연 모임을 만든 그는 이 모임을 우크라이나 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엔터테인먼트 제작사로 키워 냈다. 새 책 ‘젤렌스키’는 ‘티셔츠를 입은 처칠’로 불리며 러시아와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젤렌스키의 평전이다. 수백만 달러의 예금과 호화 별장, 러시아에서의 성공적인 직업을 버리고 전선으로 달려간 그의 인생 이야기가 담겼다. 몇몇 냉정한 비평가들의 말처럼 그는 국민을 전쟁의 참상으로 내몬 무모한 초보 정치인일까, 군사 대국 러시아에 맞서 조국을 지키는 영웅일까. 저자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지 않은 탓에 책 내용이 다소 피상적이고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다. 그럼에도 ‘어릿광대’였던 젤렌스키가 ‘차르’ 푸틴과 맞붙는 과정 전체를 들여다보기에 모자람은 없는 듯하다.
  • 전범국에서 모범국으로… 獨의 반전 비결

    전범국에서 모범국으로… 獨의 반전 비결

    ‘독일’이라고 하면 중산층이 튼튼한 유럽연합(EU)의 중추적 경제 대국으로, 일본과 달리 과거사 사죄에 적극적인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극우 포퓰리즘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세계의 신뢰를 잃은 미국과 대조적으로 독일은 관용과 품위 있는 민주주의를 과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에서 70여년 만에 세계의 모범국으로 우뚝 선 독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영국의 방송인이자 평론가 존 캠프너가 다년간의 독일 생활을 바탕으로 쓴 ‘독일은 왜 잘하는가’는 현대 독일의 정체성을 만든 네 번의 결정적 시기를 중심으로 그 근원을 좇는다. 1949년 기본법 제정, 1968년 68혁명,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일, 2015년 난민 수용 결정이 그 결정적 시기다.저자는 독일이 잘하는 다섯 가지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 이민 수용, 환경에 대한 관심, 외교정책, 문화를 꼽는다. 저자는 우선 1968년 학생 운동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흐름이 거세게 일자 독일 사회 내부적으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의 기류가 거세졌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반성의 기류는 포용으로 이어져 현재 독일 인구의 4분의1이 동유럽과 이슬람권 등 다양한 이민자 배경을 갖게 됐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독일은 10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독일인은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의 각축장이 됐던 경험 때문에 핵전쟁과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감도 갖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다. 통일 독일이 유럽을 이끌 책임감 있는 국가임을 자각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EU의 통합과 협력을 확대하고 보호 무역에 대항하는 리더가 됐다. 특히 저자는 독일인들의 이 같은 성취 기저에 흐르는 ‘규칙에 대한 강박’에 주목한다. 한 번은 새벽 4시에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다 경찰에 딱지를 떼인 일이 있었다. 한적한 차로에 몇 시간은 차가 지나다닐 것 같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규칙은 규칙이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이는 독일이 2차 대전 패배 후 잿더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던 사정과도 관련 있다. 어제의 영광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만든 미국·영국 등과 달리 독일은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준거점이 거의 없었다. 대신 독일인들은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한 규칙 기반의 질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이는 위대한 헌법으로 평가받는 기본법과 법치주의로 나타났다. 성숙한 민주 국가는 경제도 뒷받침돼야 한다. 저자는 독일 경제의 원동력을 완전 고용을 추구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사회적 시장주의’에서 찾는다. 독일 기업은 근로자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공동 경영을 통해 임금 상승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낸다. 개인의 성공보다 공동체의 책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 덕에 독일인들은 과시적 소비를 좋아하지 않고 주식시장에 열광하지 않는다.결국 저자는 전후 독일의 성숙한 국민 의식이 나치 유산에 대한 공포와 수치, 힘들게 학습한 교훈에 기반을 뒀다고 분석한다. 영국이 내버린 국가의 역할에 대한 가치가 사라진 적이 없었고, ‘함께 뭉치는 사회’를 향한 공감대 덕분에 숱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이 책은 영미식 신자유주의에 지친 영국인의 맹목적 독일 찬가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취약점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동독 출신 인구가 전체의 17%임에도 정치·경제 등 주요 부문에서 동독 출신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등 사회 기반 시설이 노후화되고 혁신에 뒤처진다는 점도 과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독일의 미래를 낙관한다. 완벽을 추구하고 절차를 지키고, 공동체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첨예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책꽂이]

    [책꽂이]

    팬데믹 브레인(정수근 지음, 부키 펴냄) 팬데믹 3년차를 맞아 코로나19가 우리 뇌와 인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코로나로 인한 두통과 피로, 기억력 감퇴 등이 다른 뇌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코로나에 걸린 적 없어도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는 피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260쪽. 1만 6800원.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김응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사학자의 시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면에 도사린 폭력성을 고발한다. 공포정치로 50만명이 투옥되고 3만여명이 처형된 혁명의 비극적 종말 과정과 라파예트, 시에예스, 콩도르세 등 반혁명가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힌 혁명가들을 조명한다. 644쪽. 3만 5000원.우리 곁에 왔던 성자(최홍운 외 18인, 서교 펴냄) 고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현직 언론인과 사제, 수도자들이 그와의 추억을 담았다. 2009년 선종한 김 추기경이 생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공동선 추구를 위한 교회 역할을 강조한 사실과 어떻게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됐는지를 보여 준다. 232쪽. 1만 5500원.휴랭 머랭(최혜원 지음, 의미와재미 펴냄) 언어학자인 최혜원 이화여대 교수가 현대인이 사용하는 신조어와 언어유희, 외래어와 줄임말, 조음법칙 속에서 언어의 본질을 분석했다.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는 왜 영미권에서 ‘람동’으로 소개됐는지, ‘브렉퍼스트’는 왜 시커먼 ‘블랙퍼스트’가 됐는지 등을 재미있게 펼친다. 268쪽. 1만 7000원.여론 굳히기(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예진 옮김, 인간희극 펴냄) ‘홍보(PR)의 아버지’이자 ‘프로파간다’(1928)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1923년 저서가 99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여론을 중심으로 심리를 활용하는 법을 설명한 저자는 “본능과 보편적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기본”이라고 조언한다. 296쪽. 1만 2800원.왼손잡이 우주(최강신 지음, 동아시아 펴냄)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왼손과 오른손에 우주의 작동 원리가 있음을 고찰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 입자 ‘중성미자’가 오직 왼쪽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서 우주가 비대칭적이고 자연이 왼쪽과 오른쪽을 차별한다고 설명한다. 전기와 자기, 약한 상호작용, 끈 이론 등 현대 물리학을 쉽게 설명한다. 240쪽. 1만 6000원.
  • 지소연은 왜 화면에서 사라졌나… 아시아인 차별의 이중적 태도

    지소연은 왜 화면에서 사라졌나… 아시아인 차별의 이중적 태도

    지난 8일 지소연의 첼시 위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위민을 4-2로 꺾고 2021~22 잉글랜드 위민스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국내 복귀를 선언한 지소연을 위해 첼시는 등번호 10번이 담긴 액자를 선물하는 등 아름다운 이별식을 치렀다. 구단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에 대한 예우였다. 순조로워 보였던 이날 행사는 국내 팬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이 됐다. 중계를 맡은 스카이스포츠가 지소연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다른 사람이 나오게 화면을 돌려버린 탓이다. 예전부터 축구를 잘하는 한국인, 나아가 아시아인에 대한 비슷한 상황을 지켜봤던 팬들은 우연한 일이 아님을 느끼고 분노했다. 이 장면은 ‘성공한 아시아인’에 대한 서양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아시아인이 잘하면 사랑받지만, 주연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현상은 축구를 넘어 서양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 이를 ‘모범 소수민족 신화’라고 설명한다.모범 소수민족은 아시아인에게 근면함, 인내심, 교육열, 준법 정신 등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운 것으로 1960년대부터 미국 사회에서 등장했다. 이전까지 아시아인을 불결하고 야만적인 집단으로 봤던 미국 백인들은 경제 호황과 냉전 체제를 통해 아시아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했다. 옛 소련과 과학 분야에서 경쟁하던 미국으로서는 과학에 특히 우수한 재능을 보였던 아시아인이 미국에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모범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때는, 그것을 씌우는 사람에게 순응하고 한 단계 아래 계층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축구를 잘하되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백인 선수들을 빛내줬으면 하는 마음, 경제적으로 성공해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주되 백인들을 넘지 않는 성공이었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이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는 흑인들이 정작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외치지 않는 배경에도 모범 소수민족 신화가 작동한다. 아시아인을 백인보다 못하고 흑인보다 나은 중간 계층으로 서열화한 탓에 아시아인과 흑인이 연대할 기회가 사라졌고, 흑인들은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권리를 아시아인들이 누린다고 생각했다.미국 백인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끊임 없이 아시아인을 차별해왔다. 때론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황당한 차별책이만 진작부터 흑인에 대한 차별 문화를 가지고 있던 미국이기에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정당한 사회 규범으로 작동했다. 먹고 살기 어려울수록 혐오는 강해졌다. 인권의 보편성이 확장한 시대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다른 인종을 혐오하는 지도자가 나온 것이 가능한 이유다. 특히 코로나19는 서양 사회의 아시아인 차별과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코로나와 아시아인 혐오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로 시작해 아시아인이 당한 차별을 살핀 저자는 마지막에 우리가 범하는 차별을 언급한다. 난민에 대한 혐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과 착취 등 서양 사회가 아시아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은 우리 사회의 아시아인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다문화 사회이면서도 반다문화 정서가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저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뿌리 깊은 혐오의 고리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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