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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로교육자 윤태림씨

    교육자이며 철학자인 윤태림박사가 27일 상오5시30분쯤 서울 송파구 풍납동 현대중앙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윤박사는 지난 31년과 35년 각각 경성제대 심리학과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63년 문교부차관,65년 숙명여대 총장,74∼82년 경남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65년 서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저서로는 「심리학개론」 「의식구조상으로 본 한국인」 「한국인」 「한국인의 성격」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인식씨(56·의사) 등 2남1녀가 있다. 발인 3월1일 상오8시 중앙병원 영안실 장지 경기도 용인공원묘지 연락처 488­9299.
  • 소비자보호원장 박필수씨를 임명

    정부는 22일 제4대 한국소비자 보호원장에 박필수 전 상공장관을 임명,발령했다. 신임 박원장은 지난 59년 부흥 부주사로 관계에 들어가 경제기획원 외자총괄과장,상공부 상역차관보,전매청장을 거쳐 한국외국어대 총장,상공부장관을 역임한 바있다. 서울출신으로 부인 이정희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무역학」 「국제무역 환경론」 등이 있다.
  • 재판실무·행정에 모두 밝아/이 대전지법원장(얼굴)

    신설된 서부지원의 초대지원장을 맡았었다. 온화한 성품으로 늘 책과 가까이 하고 있으며 재판과 행정업무에 모두 밝다는 평. 고시 14회로 충북 중원 출신. 저서로 「주석 민법총칙」이 있다. 김숙진여사(56)와의 사이에 1남4녀. 취미는 독서.
  • “도쿄지사 바꿔치기” 자민 작전 파문/「중앙­지방 대결양상」 재현

    ◎공명·민사 지원 얻어 현역 방송인 연합공천/8순의 현 지사 반발,인기앞세워 4선 도전 도쿄(동경) 도지사 선거에 NHK방송의 뉴스 캐스터 출신인 현역 언론인의 출마가 결정돼 정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NHK특별주간인 이소무라 히사노리(기촌상덕·61)씨로 집권 자민당을 비롯,공명·민사당의 3당 연합추천을 받았다. 학습원대 정경학부를 나온 이소무라씨는 53년 NHK에 입사,인도차이나·중동·파리 특파원과 워싱턴지국장·외신부장을 거친 국제통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74년부터 「뉴스센터 9시」 프로의 초대 캐스터로 발탁돼 읽는 형식의 뉴스전달에서 탈피,기자 자신이 직접 전달하는 캐주얼 뉴스의 신경지를 개척했다. 77년부터는 캐스터를 그만두고 유럽총국장·보도국장을 역임했으며 88년 전무대우 특별주간으로 일해왔다. 걸프전 발발 이후에는 중동지역에 특파돼 뉴스를 전달하는 왕성한 기자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37년동안 NHK에서 근무하면서 이소무라씨는 TV대상·일본기자클럽상·본 우에다(상전) 국제기자상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국가공로장을 받기도 했다. 「조금 아니꼽습니다만」 「세느에서의 대화」등의 저서가 있으며 여성팬이 많다. 이소무라씨에 대한 도지사 출마요청은 사실상 스스키 슈ㄴ이치(영목준일) 현지사의 재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79년 역시 자·공·민 3당의 지지를 받아 도지사 선거에 당선한 스즈키지사는 올해 나이 80임에도 불구하고 오는 4월7일 실시되는 선거에 재출마,4선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을 비롯한 당수뇌부는 스즈키지사의 고령을 이유로 출마하지 않도록 종용했으나 듣지 않자 스즈키지사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고 지명도가 높은 이소무라씨를 옹립키로 결정한 것이다. 이소무라씨에 대한 출마요청은 민사당의 오우치 게이고(대내계오) 위원장에 의해 전달됐다. 오우치 위원장은 6일 하오5시부터 1시간 동안 시내 호텔에서 이소무라씨를 만나 출마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이소무라씨는 『꼭 한사람 의논해야 될 사람이 있다』며 즉답은 피했으나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요청을 수락했다. 이에 따라 오우치 위원장은 7일 상오 공명당의 이시다 코시로(석전행사랑) 위원장과,하오에는 자민당의 오자와 간사장과 각각 수뇌회담을 갖고 3당체제로 「이소무라 옹립」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소무라씨의 출마는 금명간 정식으로 확정된다. 문제는 이소무라씨와 스즈키 현 지사와의 대결상황이다. 이것은 지난번 일본 정계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의 「신화」를 깨뜨린 아마나시켄(산리이현) 지사선거의 재판이 될 염려도 없지 않다. 이소무라씨는 자민당 중앙의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며 스즈키 지사는 도의련의 지지를 받고 있어 영락없는 「중앙과 지방대결」의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보수분열 선거를 의미한다. 문제는 자민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사당의 도련도 자민당 도련과 마찬가지로 스즈키 지사를 지지,중앙과의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두 도련을 무시하고 있다는데 대한 반발이다. 따라서 도의회 의원들은 『이번 선거는 나가타조(수전정)와 유락조(유락정)의 대결』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나가타조는 국정을 수행하는 중앙기관이 밀집한 곳이며 유락조는 지금까지 도정을 수행해 온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동경) 도지사 선거에는 이밖에도 프로레슬러 출신인 스포츠평화당 소속 참의원 이노키 간지(저목관지·안토니오 이노키)의 원이 7일 출마를 표명했으며 사회당위원장은 「도이다카코(토정다하자) 옹립론」이 사회당·사민련 등에 의해 대두되고 있다.
  • 미 예일대 폴 케네디교수/월스트리트저널지 기고

    ◎“미는 자존심 회복 위한 전쟁 자제해야”/해외파병 잦으면 영·스페인 쇠퇴 답습/경제 융성·사회 안정만이 강국 유지책 「제국의 흥망」이란 저서로 관심을 모았던 미 예일대 교수 폴 케네디는 최근 미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국내경제의 회복등 시급한 국내의 필요를 무시한채 걸프전쟁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대해 경고하고 있다. 케네디교수의 기고문 「전쟁에 돌입한 쇠퇴하는 제국」의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미국은 20세기에만도 여러번의 전쟁의 치렀는데 그 전쟁들은 모두 공해상에서의 해상운송로 보호라든가 진수만 기습에 대한 대응,북한의 침공저지 등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지 잃어버렸던 미국의 자부심을 회복하려는게 전쟁의 이유가 됐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국제정치사 학자들에게 있어 그같은 이유는 매우 낯익은 것이고 전쟁발발의 이유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다. 예컨대 존 엘리어트의 전기소설 「올리바레스 대공」을 읽어본 사람은 필립4세 시대의 대재상 올리바레스가 1630년대와 1640년대에 있었던 스페인의 잦은 해외군사 개입에 대해 스페인의 명망을 지킨다는 구실로 정당화했던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스페인의 잦은 해외파병은 전쟁에서의 승리로 스페인이 쇠퇴하고 있다는 국내외의 비판을 침묵시킬 수 있다는 올리바레스의 신념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의 승리가 비판자들을 침묵시키고 스페인이 세계최강국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 외적인 측면에서 보면 잦은 전쟁을 통해 스페인의 산업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갔고 해외의존도는 커진데다 스페인의 대외부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따라서 전쟁을 계속할수록 스페인은 점점 파탄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전쟁을 계속하지 않는한 명망을 잃을 것이 분명했고 따라서 계속적인 전쟁수행을 위해 해외에서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부시가 이끄는 미국이 당시 필립4세의 스페인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속의 전쟁얘기를 꺼내는 것은 지나친 해외개입이 가져올 폐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함이다. 오랜 기간을 거쳐 세계최강국으로 남으려면 단순히 강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융성한 경제기반과 건전한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또 군사력은 결국 경제력과 사회안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군사력 자체보다는 경제력과 사회안정이 훨씬 더 중요한데 현재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군사적인 승리에만 집착,그것이 미국은 「쇠퇴하는 강국」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는데에 기뻐하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10년 또는 그 이후의 미래에 있다. 세계 곳곳에 미군이 개입하면서도 미국의 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생산성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며 교육수준도 떨어지고 사회구조는 계속 붕괴된다면 미국은 결국 새로운 불안정에 처할 것이다. 미국이 제국주의 스페인이나 영국의 전철을 밟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한편으로는 국내의 필요성을 무시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곳곳에 군기지를 유지하며 세계의 경찰역을 자처하는 등 과거 스페인과 영국이 했던악습을 되풀이하면서 미국은 과거의 영국이나 스페인과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다. 현재 미국이 가장 경계해야할 일은 전쟁을 통해 미국민들의 자부심을 되찾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이 진정 명망을 되찾으려면 교육수준의 제고라든가 하부구조의 개선과 같은 절실한 국내의 필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미국민이 회복하고자 하는 자신감이나 자부심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건전도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통해 얻어지는 것일 것이다.
  • 원로 불문학자 김붕구씨

    한국 불문학계의 원로인 김붕구씨(서울대 명예교수)가 1일 상오8시 서울 영등포시립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9세. 주요저서는 「작가와 사회」 「보들레르」 「불문학산고」를 남겼으며 유족으로는 미망인 윤정선여사(64)와 1남3녀가 있다. 발인은 3일 상오10시 장지는 미정. 연락처 영등포시립병원 영안실(634­9301).
  • 이정락 인천지법원장(신임 법원장급 16인의 얼굴)

    ◎「민법연습」 저자,성품 온화 소탈하며 온화한 성품을 지닌 서민풍 법관이다. 미국 버클리대에 장기연수를 다녀왔으며 남부지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민법연습」이 있으며 취미는 바둑·골프이고 서영자여사(51)와의 사이에 2남1녀.
  • 김성일 제주지법원장(신임 법원장급 16인의 얼굴)

    ◎「판결 간이화」 최초시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의 선비형 법관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준다. 판결 간이화를 최초로 시도하는 등 업무개선에도 관심이 많다. 북부지원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주석민법」 「민법연습」이 있다. 취미는 축구이고 남문자여사(50)와의 사이에 1녀.
  • 외언내언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후석 천관우씨가 영면했다. 오랜 투병생활 끝의 타계이지만 67세면 아직도 아까운 나이. 기개를 실은 해박한 명문과 거구의 호방한 웃음을 남기고 그는 갔다. ◆후배들에게 따스한 체온을 전달했다 선배. 그의 두주불사는 풍요로운 인간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후배에게만 다정한 것이아니라 선배에의 예우도 깍듯했던 인품. 그래서 선배의 사랑은 그의 탁마된 재지·통찰력과 명문·인간미로 하여 더욱 각별했다. 「주선」들이 모였던 초창기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실. 논설회의를 마친 주필(석천 오종식)은 나가다가 현관에서 논설위원실로 전화를 한다. 『후석,20분이면 쓰겠지. 쓰고 ××로와』. ××는 가난했던 50년대의 조촐한 술집이다. ◆악필의 달필로 휘갈겨 썼던 사설. 특히 1면에 쓰는 칼럼은 이미 작고한 홍승면의 유려한 필치와 함께 초기 한국일보의 성가를 높인다. 하지만 그는 한편 「겸연쩍은 역사학도」라는 겸손한 자평과는 다른 「사학계의 기린아」(고 홍이섭 교수의 말). 「일본서기」의 소위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깨뜨리고 고대국가 형성시기를 끌어 올리면서 마한의 위치를 수정하고 목지국의 정체를 밝힌다. 소홀히 되어온 가야에의 애정도 남달랐다. ◆『… 오늘이 위령제의 날. 오직 의를 위해,오직 이 겨레를 위해,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 그 젊은이들이 이제는 눈을 감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옳은 세상,옳은 것이 옳게 되는 세상,그것 뿐일 것이다. 오늘 모두 경건히 고개숙이는 날,우리 모든 백성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하여 잘못일까』. 4·19사자들의 위령제가 거행된 60년 4월24일자에 쓴 칼럼의 결구. 그는 반독재에 앞장선 자유인이었다. ◆지난해 「기자고」 등의 논문을 묶어낸 「길조선사 삼한사연구」가 그의 마지막 저서로 되어 있다. 「가야사」에의 아쉬움을 남긴채. 우리시대 화성의한사람이 간다. 먼저 간 아껴주던 선배 호형호제하던 지기들의 나라로서. 사람이면 누구나 가는 곳. 명복을 빈다.
  • 원로언론인 천관우씨 별세

    원로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천관우씨가 15일 하오3시30분쯤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충북 제천출신인 천씨는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51년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민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의 편집국장ㆍ논설위원ㆍ주필 등을 역임했으며 동아일보주필 재직중 69년 신동아 필화사건 등으로 물러났다가 81년 한국일보 상임고문으로 언론계에 복귀했었다. 국사편찬위원 및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천씨는 사학분야중 실학사에서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으며 저서로는 「한국의 재발견」 「한국상고사의 쟁점」 「근세조선사연구」 「고조선사」 「삼한사연구」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최정옥여사(64)와 출가한 1녀가 있다. 발인은 17일 상오10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가지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 연락처 병원 744­3899. 자택 355­8861
  • 초대 국립국어연구원장/안병희교수 임명

    정부는 11일 초대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에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안병희박사(57)를 임명,발령했다. 안씨는 국립국어연구원의 전신인 국어연구소의 제3대소장을 지냈으며 「중세국어구결의 연구」 「15세기 국어의 활용어간에 대한 형태론적 연구」 등 저서를 갖고 있다.
  • 나병 퇴치연구 김도일씨

    사단법인 대한나관리협회 연구원장 김도일박사가 8일 상오2시27분 서울 풍납동 중앙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김박사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군 군의관으로 6·25에 참전,공훈을 세웠으며 나병 퇴치 및 연구에 힘써 「한센씨병의 임상학 및 재활의학」 「나병 가이드」 등의 저서를 남겼다. 발인은 10일 상오8시,서울 중앙병원 영안실에서 있으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이선리 가족묘지. 484­8899.
  • 모스크바·겨울·노태우 대통령/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실용주의적이고 소련인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개인생활이나 정치면에서도 미국에는 이상주의자,도덕주의자가 훨씬 더 많고 소련에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실용주의자가 더 많다는게 소련 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소련정치도 겉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 이상에 따라 움직여 왔으며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국가주의의 이해와 여러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돼온 것이다. 도의적인 이상이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현상은 소련보다는 미국의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국민성도 그러하다. 소련 연구가들의 관찰이나 많은 여행기들을 살피면 소련 국민들,특히 러시아 국민들처럼 솔직하고 개방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있는 민족도 드물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서민의 생활과 대인관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은 대개 자연스런 감정으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스탈린시대의 거칠고 얽매인 통제사회를 거치면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거기에 물들지 않았고구김살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한 일본인 작가는 그 저서에서 러시아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러시아인은 밖에서 세사람만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합창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가 있는 곳까지 들린다. 정말 소비에트식의 밝고 낙천적인 풍경이다. 소비에트권력의 침울한 어둠과 민중의 밝고 낙천적인 감성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볼가의 단가」에서 느껴지는 애조띤 감성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그렇게 볼때 오늘날 저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공개)는 이 러시아적 소련 민족성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라는 한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그것이 시대적으로 표출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을 천명한 최대의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둥은 당연히 경제개혁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고르바초프의 모든 개혁정책은 결국은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60년대의 전반까지도 대부분의 소련국민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인류보편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고 있었다. 60년대 중반이후 일부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체제비판의 소리를 높인바 있었으나 극히 한정된 소수였다. 특히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개혁의 문제가 제기되어 60년대초에는 「이윤의 도입」을 둘러싼 경제논쟁도 빚어졌다. 65년에는 이른바 「코시긴 개혁」이 실시되는등 스탈린체제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각되고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6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의 신앙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70년대가 되자 소련체제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이제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졌다. 60년경 허풍쟁이 흐루시초프는 『70년에는 미국을 따라잡는다. 80년대에는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취하는 풍요한 공산주의 낙원이 도래한다』고 세계에 선언했다. 당강령에도 그렇게 기록하게 했다. 그런데 70년대가 되어도 소련에서는 고기나 소시지,기타 기본 필수품을 입수하기 위해 서민은 뛰어다니고 긴 줄을 서고 악전고투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경제상태가 나빠졌다. 지방에서는 육류가 몇년씩 상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사태로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큰 환멸을 느꼈다. 7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는 급속히 퇴색하고 풍화되어 버렸다. 당의 지도자가 아무리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설득해도 매일처럼 생필품을 사는 행렬꽁무니에 몇시간씩 서있어야 하는 서민들은 냉소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독주 보드카에 탐닉하며 울분을 풀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신할 가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소련을 우리는 어느만큼 아는가. 어느 사람의 표현대로 「무서운 속도」로 북방으로 달려간 우리에게 있어 소련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그들에게 느끼는 우려,당혹,두려움은 어디에 기인하는 가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상대를 너무 모른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구한말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직접 그들과 교류한 역사가 없고 특히 냉전체제하에서는 원천적으로 접촉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고르바초프 정권하에서는 최근 몇년동안 그들 자신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중이어서 마치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것 같은 어려움도 있다. 그들이 대국이라는 콤플렉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진짜 크렘린」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소 수교가 이뤄졌다. 거기에다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 전후 처음으로 아니 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국가원수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입성」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할 것이고 붉은 광장을 거닐 것이며 크렘레프스카야 제방도로를 달려 톨스토이가를 지나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붕괴된 대제국 오늘의 소련 대통령과 한 소간 정치·경제·문화협력을 논의하다가 때로는 과거를 바탕으로 역사도 얘기할 것이다. 바로 그 대목이 중요하다. 그럴적에 대통령은 반드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조용히 얘기해야 할 것이다. 즉 멀리는 노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의한 한반도흥정,구러시아제국과 구한말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이어볼셰비키혁명을 전후한 한반도의 소용돌이에도 언급될 것이고 그 완전한 식민지화도 회상돼야 할 것이다. 전후 해방·독립·분단에 언급한데 이어 드디어 6·25 동족전쟁에서의 소련의 책임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82년의 무자비한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은 또 어떻게 언급될 것인가. 나흘간의 짧은 일정속에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소 관계의 진정한 개선과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역사와 우호협력의 이름으로 반드시 여과돼야 한다. 그것이 한 소 관계의 진전과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입성을 지켜보는 국민의 눈초리인 것이다.
  • 한국전 재조명 놓고 미서 「작은 논쟁」(특파원 코너)

    ◎「기록영화」방영 이후 엇갈린 반향/“승자도 패자도 없다”… 평가도 결산도 애매/“미 참전 공산주의 팽창 막아” 긍정시각도 미국 역사에서 한국전은 2차대전과 월남전 사이에 눌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에 대한 평가나 결산도 애매하다. 한국전은 승리였나,패배였나. 공산주의에 영웅적으로 맞선 것인가,비극적인 교착상태인가. 미국은 자유의 기수였는가,아니면 냉전게임을 추구한 간섭자였는가. 말하자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구구하다.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한국전 평가를 둘러싸고 작은 논쟁이 일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주 공영방송인 PBS­TV를 통해 방영된 한국전 기록영화와 이 영화에 나온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 해석,그리고 워싱턴에 세워질 한국전 참전 기념비의 설계 변경 등에서 시작됐다. 하루 2시간씩 3일간 방영된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이라는 제목의 PBS 다큐멘터리와 커밍스 교수의 최근 저서는 해방 후 남한에 세워진 정부를 「민주주의의 등대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려고 미 점령군이 세운 반동적인 억압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전중 미군 포로에 대한 북한의 학대와 중국의 세뇌교육을 두고두고 비난했지만 이 영화를 시청한 미국인들은 아직도 생생한 월남전의 메아리 속에 한국과 미국의 퇴색한 이미지를 보았을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지 일요판은 보도했다. 영국의 런던 테임스 TV와 미 보스턴의 WGBH방송국이 공동 제작한 이 기록 영화는 북한에 2백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남긴 남한측의 양민학살과 미군의 융단 폭격 및 네이팜탄 사용을 사진과 증인 회견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와 커밍스의 새로운 한국전 해석은 「침략자는 분명히 북한이었다」는 미국인들의 오랜 인식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커밍스는 최근 펴낸 신저 「한국전쟁의 기원 제2부··격류의 굉음(The Roaring Of The Cataract),1947∼1950」에서 1950년 6월25일에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을 패주시키기 위한 싸움에 미국을 끌어들이려고 침략을 도발했던 것인지,아니면 아주 적은 가능성이지만 침략에 맞서 자신을 거의 방위하지 않았는지에 관한 의문은 그냥 남겨 놓고 있다. 미국서 저술상을 탄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제1부)」은 과거 한국에서 금서목록에 올라 있었으며 아직도 학생운동의 바이블로 남아 있다. 커밍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전은 미국의 세계 경찰역 및 대 아시아 군사개입의 시초로서 월남전 개입의 징후를 이때부터 벌써 드러낸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전을 승리와 패배중 어느쪽으로 분류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은 슬픈 수기로 끝났고 전쟁의 추억은 허공속을 떠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에 대한 커밍스의 이러한 비영웅적 해석은 일부 군인과 정치인,그리고 역사학자들을 격분시키고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이며 지난 73∼76년 사이에 주한미군 사령관을 역임한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한국전은 미국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것임에도 이 영화에선 그걸 알 수가 없다』고 지적하며 『내가 보기에 이건 용감하게싸운 미군의 공적을 훼손하는 반미물』이라고 비난했다. 퇴역장성인 그는 『한국에서 공산주의 저지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는 봉쇄정책의 개념을 처음부터 올바르게 전개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40년 후 전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멸망이 온 것』이라고 한국전을 평가했다. 그는 또 미국이 한국에 대해 방패를 제공함으로써 한국민들이 오늘의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이 기록영화의 제작에까지 비화됐다. 커밍스와 런던 테임스 TV의 대본 작가 존 헤리데이는 이 영화를 미 관중용으로 번안할 때 스틸웰 장군등 비판자들의 압력 때문에 일부 내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틸웰 장군은 자신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으며 영화는 여전히 편견을 담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전 연구가로서 커밍스 비판론자인 뉴멕시코 주립대학의 제임스 매트레이 교수는 『많은 신진 역사학자들이 한국전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수정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커밍스는 미국에 대해 너무 엄격한 반면 북한에 침략 무기를 제공해 준 소련에 대해선 너무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컨센서스는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후세에 어떻게 전할지에 관한 토론만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월남전 참전기념비는 오래전에 세워졌지만 한국전 참전기념비 건립계획은 아직도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당초 설계에 따르면 이 조형물의 중심은 성조기를 향해 행진하는 병사 38명의 입상이다. 병사들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한국전이 걸었던 길,즉 초기엔 패하고 나중엔 이기지만 결국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을 묘사하자는 것이 그 의도였다고 설계자의 한 사람인 존 루카스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 설계자들에게 2만달러의 상금을 주었던 건립추진위는 여러차례의 설계 변경 끝에 행진하는 병사들을 전투대형의 병사들로 개조했다. 건립위원회 위원장인 스틸웰 장군은 이 변경이 대부분 장식적이고 비정치적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설계자 루카스는 전투와 승리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 앨빈 토플러,「권력이전」서 새 세계질서 전망

    ◎「21세기의 국력」 컴퓨터ㆍ정보가 좌우한다/지식 습득 최대 자산… 교육의 중요성 부각/첨단과학 개발속도 뒤지면 약소국 전락/원자재ㆍ노동력 의존도 감소… 신소재 발명이 경제부국의 지름길 「미래의 충격」「제3의 물결」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최근 출간된 「권력이전:21세기에 있어서 지식과 부 그리고 폭력」이란 새 저서에서 앞으로의 세계는 지식으로부터 모든 힘이 창출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권력을 잡느냐 못잡느냐의 차이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에 관한 정보들을 어떻게 빨리 포착,이를 현실속의 정치ㆍ경제에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는 능력여부에 달렸다면서 그같은 능력은 결국 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지식의 축적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지식의 축적이야말로 앞으로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새 저서 「권력이전」의 내용을 소개한다. ○기술력이 부국 창출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국가와 공산주의국가로,또는(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남과 북으로 나뉘었던 국가간 구분 개념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부의 형성체계가 확산됨에 따라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 구분 개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빠른(FAST) 나라들과 느린(SLOW) 나라들이란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빠르다거나 느리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한 종류만의 속도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속도,이를 바탕으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정보들을 얼마나 빨리 수집할 수 있는가 하는 정보수집능력,그리고 수집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얼마나 빨리 상황 변화에 대처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의사결정의 속도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적인 속도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자료와 정보,지식이 얼마나 빨리 경제활동에 활용될 수 있느냐의 속도가 새로운 국가 구분개념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속도가 빠른 나라는 느린 나라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부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는 또 보다 많은 권력을 창출하게 된다. 여기서 현대사회에 적용되는 새로운 법칙이 등장한다. 빠른 나라들만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칙은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 ○경제활동에 접목해야 이같은 새 법칙이 등장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경제와 신기술개발의 신진대사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사건들은 저마다 크건 작건 각국의 정치ㆍ경제에 그나름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연구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새 지식들은 기존의 생산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인 새 기술들을 개발해내고 있다. 그리고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은 이같은 새 기술의 개발 또는 새 사건의 발생이 가져올 영향력을 즉각 경제활동에 반영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들이 다 그러한 첨단과학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첨단과학기술을 갖춘 나라들은 어느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또는 새 기술이 개발됐을 때부터) 그것이 실제로 경제활동에 반영될 때까지의 시간차이를 극소화 함으로써 보다 많은 부와 권력을 창출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그 시간의 차이가 길어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은 부와 권력 밖에는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지식 축적능력 긴요 이처럼 어느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실제로 경제활동에 활용될 때까지의 시간차이를 얼마만큼 극소화할 수 있는냐는 능력이 바로 앞으로 부유한 강대국과 가난한 약소국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이처럼 시간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이제까지 중요한 생산요소로 간주돼 왔던 원자재나 노동력 등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그리고 과학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개발도상국 또는 저개발국들은 이제까지 주로 이들 원자재나 노동력의 수출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않는한 부와 권력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과 신기술개발을 즉각적으로 정치ㆍ경제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앞으로의 경쟁에서 도태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저임 경쟁시대 끝나 그같은 조짐들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80년대를 통해 의류수요의 절반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내에의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1년에도 몇차례씩이나 바뀌는 빠른 유행의 변화를 외국수입의류로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수입할 경우 주문에서부터 상품을 인도받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데 그동안에 유행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이 수입품은 팔리지 않는 재고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유행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유행이 바뀔 때마다 즉각 새 제품을 선보이는 미국제품을 쓰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결국 유행이 지난 다음 제품을 인도받는 것은 아예 제품을 인도받지 않는 것만도 못한 것이다.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들이 앞으로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부의 형성체계가 새롭게 바뀌는 것과 함께 몇가지 상황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첬째는 2차대전 이후 계속되던 냉전시대의 종식이다. 냉전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아무 기술이나 자원이 없더라도 지정학적으로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나라들은 미소 두 초강대국중 어느 한 나라에 해외주둔기지 등을 제공함으로써 경제ㆍ군사적으로 원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끝남에 따라 이들이 제공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의 중요성도 떨어지게 됐다. 이는 곧 강대국들에 대한 약소국들의 협상자세가 약화됐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들이 앞으로 미소 두 초강대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게 틀림없다. 둘째는 세계적인 생산추세가 대량생산 위주에서 다양한 생산 위주로 바뀜으로 인해 자원의 중요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대량생산 시대에는 다량의 자원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적은 양이라도 여러 자원을 다양하게 보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됐다. 따라서 오늘날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앞으로는 별 가치가 없는 자원이 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지금은 중요하지 않은 자원이 앞으로는 중요한 자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과학지식의 눈부신 발전으로 대체자원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원자재에 대한 수입의존도도 점차 감소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원자재를 많이 보유한 나라가 아니라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가 권력을 잡게 될 것이다. 셋째로는 산업혁명 이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간주돼오던 값싼 노동력의 중요성이 감소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 등 이른바 아시아의 4마리 용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수출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한 수출전략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조류를 볼때 총생산비 중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 그 비율은 불과 10% 안팎이다. 따라서 인건비를 1% 줄인다고 해봐야 총생산비 절감 효과는 겨우 0.1% 밖에 되지 않는다. ○빠른 정보교환 중요 그러나 신기술을 도입한다거나 정보의 흐름을 보다 빠르게 개선한다거나 또는 재고를 감축시키고 조직을 효율화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비절감 효과는 인건비 절감에 비해 훨씬 크다. 따라서 중국이나 브라질 등에서 값싼 노동력을 쓰는 것보다는 인건비는 조금 비싸더라도 첨단장비가 갖춰진 미국이나 일본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경제적으로 활용할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21세기는 경제발전이나 국력이 원자재나 값싼 노동력에서 창출되는게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서 창출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저개발국이 계속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는다면 이들의 미래는 영원히 어두울 것이다. 여기서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새로운 혁신적인 교육을 실시,끊임없이 새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널리 유통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부외 조직들을 활성화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해 빠른 정보교환이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각 분야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보다 빨리 찾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컴퓨터망의 완벽한 보급이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과거 철도망이나 고속도로의 건설에 주력했던 것 대신 앞으로는 컴퓨터망의 구축 없이는 새시대의 경제활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고속성장을 이끈 사람들/전 경제각료 지금 어디서 무얼하나

    ◎재계서 굵직한 직책맡아 분주 유창순ㆍ남덕우ㆍ신병현/나웅배ㆍ최각규ㆍ김용환 국회진출,개발정책 입안 참여/신현확ㆍ김준성ㆍ황인성 경험살려 기업체 운영에 전념/상아탑서 연구ㆍ저술활동 몰두 조순ㆍ이규성ㆍ사공일/일부 인사는 소일거리 없어 집에서 쉬고 타계한 분도 많아 국제금융기구나 외국의 경제연구소들은 한국 경제가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던 동인의 하나로 경제관료집단을 반드시 꼽는다. 우수한 자질과 「하면 된다」는 자심감,정해진 목표를 추구하는 끈기 등이 한국경제의 오늘이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동구권 국가들이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지의 후발개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위관리들을 우리나라에 보내 강의와 현장견학을 통해 경제정책의 수립 및 추진과정을 배우고 있다. 이처럼 우리 경제를 개도국의 성공사례로 키워놓은 것이 이들의 공이라면 경제력 집중,공해,교통난,농촌대책 등 오늘날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은 이들이 책임져야 할 과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훗날 또 다시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더듬어 본다. ○금융계활동 두드러져 ○…현 24대 이승윤 부총리에게 바톤을 넘겨준 조순 전부총리는 퇴임직후 서울 양재동에 개인사무실을 얻어 자신의 아호를 따서 소천 서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로 경제관련 저술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경제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부총리로서 겪은 현실체험을 담은 「한국경제론」(영문판)이 곧 탈고될 예정이다. 저술활동 틈틈이 정운찬 서울대교수,이계식 전부총리자문관등 제자들과 등산을 즐긴다고. 22대 부총리를 지낸 나웅배씨는 지난해 서울영등포 을구 보선에서 당선,지역구 의원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열을 쏟고 있다. 3당통합 이후 민자당의 국책연구원장을 맡아 집권당의 장기정책 입안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5공화국의 마지막 부총리를 지낸 정인용씨(21대)는 퇴임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맡아 계속 필리핀에 머물고 있고 김만제(20대ㆍ고려경제연구소회장) 신병현(16대ㆍ19대ㆍ전국은행연합회 상임고문) 김준성(17대ㆍ대우그룹회장) 김원기씨(15대ㆍ쌍용그룹고문) 등은 업계와 금융계에서 활동중. 80년 이전에 부총리를 지낸 원로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이미 작고했으며 유창순(5대ㆍ전국경제인 연합회회장) 박충훈(9대ㆍ한국산업개발연구원회장) 남덕우(12대ㆍ무협회장) 신현확(13대ㆍ삼성물산회장) 이한빈씨(14대ㆍ국제민간경제협의회회장) 등은 재계의 굵직한 직책을 맡고 있다. 역대 부총리 가운데 남덕우 김원기 나웅배 김만제 정인용씨와 현 이부총리 등 6명이 재무부장관을 거친 케이스. 이중 나웅배씨는 상공부장관까지 3부장관을 지냈고,신병현씨는 상공부장관을 지내고 부총리를 두번 역임한 관운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산 사람들이다. ○교수부임 첫 케이스 ○…지난 3월 개각시 물러난 33대 재무장관 이국성씨는 미국 하버드대학 HIID(국제개발원)의 객원연구원으로 오는 12월초까지 3개월간 예정의 연구활동 중이다. 재임시부터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는 민간업계나 산하 단체장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그는 내년부터 충남 논산대학 교수로 부임,경제학을 강의하게 돼 있다. 도미에 앞선 지난 9월 충남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후배관료들은 강단에 서는 그의 변신이 퇴임 공직자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라 큰 기대와 함께 성원을 보내고 있다. 5공의 마지막 재무부장관을 맡았던 사공일씨도 미국 국제경제연구원(IIE)객원 연구원으로 2년째 연구 및 집필중이다. 오는 연말쯤 「세계 경제속의 한국」이란 제목의 영문판 서적을 펴낸 뒤 내년초 귀국할 예정. 지난 82년 7월부터 재직한 29대 강경식씨는 신한생명 고문으로,25대 김용환씨는 민자당 국회의원으로,22대 서봉균씨는 공인회계사 자격을 활용,산동회계법인 회장을 맡고 있다. 자유당시절의 마지막 장관이었던 송인상씨(9대)는 76세의 고령에도 사위 조석래씨가 회장으로 있는 효성그룹의 모기업 동양나이론 회장으로,올해 고희를 맞은 18대 이정환씨는 금호석유화학회장으로 기업 일선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14대 천병규씨는 한국일보사의 백상재단 이사장을,19대 홍승희씨는 외환은행장을 지낸 인연으로 환은 동우회장을 맡아 각각 소일하고 있다. ○…지난 85년 2월부터 농수산부장관으로 재직한 황인성씨는 신생 아시아나항공 회장으로 기존의 대한항공과 치열한 노선확보 경쟁에 앞장서면서 동분서주 하는 중. 황씨는 교통부장관을 역임한데다 과거 국무총리 비서실장ㆍ무임소장관 보좌관 등을 지내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모그룹인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의 선친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 회사로 가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3년 8월부터 2년4개월동안 장관을 지낸 정소영씨는 현재 생명보험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재무부의 차관ㆍ재정차관보 등을 거쳤으며 노태우 대통령과는 경북고 동기동창. 지난 77년 12월부터 만1년간 재임한 장덕진씨는 현재 대륙연구소 및 사회발전연구소 회장을 동시에 맡아 장관시절 못지않게 분주하다. 특히 북방관계를 연구하는 대륙연구소를 통해 민간차원의 중국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82년 5월부터 재임한 박종문씨는 현재 자택에서 우리농업의 역사와 진로에 관한 책을 쓰고 있고 윤근환 전장관은 큰아들이 경영하는 산업안전기구 수출입 업체인 원산산업의 일을 도우며 민자당 등에 농업관계 자문을 해주고 있다. 이밖에 현재 한전이사장으로 있는 김식 전장관은 국회 재진출을 겨냥,지역구인 전남 완도ㆍ강진의 표밭다지기에 바쁘고 조달청장ㆍ경남지사를 거친뒤 농림수산부장관을 한 김주호씨는 사료협회 이사장으로 있다. ○…건설ㆍ상공부장관을 거쳐 동자부를 창설,초대장관을 지낸 장예준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대사 등을 거쳐 현재는 삼신올스테이트보험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 5개월에 물러난 제2대 양윤세 장관은 럭키금성의 미주 담당사장을 거쳐 지금은 한라자원 상임고문으로 있다. 제2차 석유파동의 와중에서 취임한 다음날 기름을 구하기 위해 산유국으로 떠나는 등 5개월의 재임기간중 5차례나 산유국출장의 기록을 남겼다. 34세때 경제기획원 예산국장을 지낸 최동규장관은 지난 6월 소비자보호원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있는 상태. 최근 「동우회」 회원들과 어울리며 곧 집필할 저서의 자료를 정리중. 동자부 창설때부터 기획관리실장,자원정책실장,차관 등을 거쳐 장관직에 오른 이봉서씨는 역대 장관중 최고의 에너지통으로 꼽히는 인물. 미국 하와이대에서 국제경제에 대해 연구중. ○활발한 지역구 활동 ○…지난 3월 물러난 한승수 전상공부장관은 지역구(춘천)를 가진 현역의원답게 관계를 떠나서도 특유의 친화력과 유연성을 살려 정계활동이 활발하다. 민자당 우루과이라운드 대책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의원은 최근 한국국회대표단을 이끌고 미국과 브뤼셀 등을 방문,쌀ㆍ보리 등 주요농산물에 관한 비교역적 기능품목(NTC)지정 요구가 관철되도록 국회차원의 로비활동에 한창이다. 상공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직장관은 금진호 현 무협고문으로 경제계의 실세. 노태우 대통령의 동서이기도 한 금고문은 자신의 사설연구기관인 국제무역경영연구원장직을 겸임,경제정책과 제부처 인사에까지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철사장 출신인 안병화 전장관은 한전 사장으로 재직중이며 최각규 전장관은 지난 13대 총선때 강릉에서 공화당후보로 입후보,지역구의원에 당선된뒤 최근 민자당 당직개편에서 당 3역인 정책위의장에 임명됐다. 한편 서석준ㆍ김동휘 전장관은 지난 83년10월 미얀마에서 발생한 아웅산묘소 암살폭발사건때 나란히 순국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설계회사 차리기도 ○…전직 건설부장관 21명 가운데 태완선씨 등 6명은 타계했고 나머지 15명 가운데 최종완ㆍ박승씨 등은 기업체 사장 또는 회장ㆍ교수ㆍ변호사 등으로 활약하고 있고 고재일씨 등 6명은 집에서 쉬고 있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신동식씨(해태그룹고문),최종완씨(인터세크사장),김주남씨(건설진흥회장),이규효씨(변호사),최동섭씨(토지개발공사 이사장),박승씨(중앙대 교수)등. 과학기술처 장관도 역임한 최종완씨는 구조설계회사와 토건회사를 설립,운영하는 외에도 과기처산하의 안전공사 이사장,엔지니어 클럽회장직도 맡고 있다. 지난 87년 대통령선거유세 기간중의 발언이 문제가 돼 장관직을 그만뒀던 이규효씨는 동아합동법률사무소 소속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학자출신인 박승씨는 퇴임후 지난 77년에 저술한 경제발전론을 대폭 개작한 후 올해부터 중앙대에 복귀,경제발전론과 국제무역론을 강의하고 있다. 수해에 따른 문책으로 지난달 물러난 권영각씨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큰딸집을 잠시 다녀온후 쉬고 있다.
  • 「탈사회주의」이후의 변화/헝가리학자 바코스의 진단

    ◎“동구 시장경제 이제 걸음마… 서방도움 절실”/파,개혁후 수출 계속 늘고 경제도 회복세/서방,산업구조조정 차원서 경원 했으면/한국 자본과 헝가리 노동력 결합형태의 경협 추진해야 동구 대변혁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났다. 동유럽 공산정권들을 일거에 무너뜨린 이 변혁의 대물결은 전후 냉전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에 기초한 새세계질서의 태동을 알리고 있다. 본지는 동구변혁의 선두격인 헝가리의 저명한 경제학자 구보르 바코스박사와 특별 인터뷰를 통해 이 변혁의 현주소를 진단해 보았다. 바코스박사는 이 회견에서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골자로 한 동구 각국의 개혁프로그램에 대해 신중하지만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회복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조성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바코스박사는 이와 함께 서방측에 대해 동구경제의 구조개편을 돕는다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구보르 바코스 □1945년생 □부다페스트 경제대 졸업 □헝가리 과학아카데미 경제학박사 □현 헝가리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사회주의 경제체제」「코메콘의 대외무역 운용」「비교우위 경제론」 ­역사적인 동유럽의 대변혁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났다. 변혁의 정도와 속도를 두고 나라별로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지난 1년의 동구변혁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바코스=정치와 경제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 공산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공산정권을 전복하고 민주적인 새 지도부를 탄생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련이 이들에게 체제선택의 자유를 맡겼다는 점이다. 또한 소련은 헤게모니 추구를 포기하고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택함으로써 동구변혁의 유리한 외적분위기를 만들었다.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로의 급속한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10여년동안 동구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를 되살리기 위한 변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 등의 새 민간정부 대부분이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원칙을 결정했다. 그러나 전환의 구체적인 전략에서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제쯤이면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인가. ○국민들도 전폭 지지 ▲사실은 종합적인 개혁방안이 마련돼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소련도 샤탈린안을 토대로 한 급진적 시장화 방안을 우여곡절끝에 채택했다. 계획은 섰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도 얻고 있다. 시행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격 자유화를 이미 실시한 폴란드ㆍ헝가리의 경우 엄청난 인플레로 사회적 긴장이 드높다. 내 경우 금년도 봉급이 10% 인상됐다. 반면 헝가리의 금년 인플레율은 30% 이다. 실제생활은 더 못해진 것이다. 아직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은 편이다. 몇년 뒤에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을 땐 새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들어섰다지만 개혁정책이 실패하고 생활상태가 더 나아지지 않으면 사회적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그럴 경우 자칫 진행중인 민주화과정 전반이 위협받을가능성도 일각에선 지적되고 있다. 근거없는 우려일까. ▲정치적으로 과거의 압제정권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유일한 대안은 민주화ㆍ시장화를 더 확대추진하는 것이다. 초기의 부작용은 곧 극복될 것이다. 나름대로 보완장치들도 마련되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현재 실업수당이 통상임금의 70%까지 지급된다. 실직기간이 1년이 넘으면 재교육해 타직종으로 전환시켜준다. 이외에 최저생계보장책 등이 마련돼 있다. ­폴란드는 사정이 특히 더 어려운 것 아닌가. 바웬사가 차기 대통령직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치적 불안만 가중시킬 우려는 없는지. ▲소련ㆍ루마니아 시민들은 빵사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폴란드는 그렇지는 않다. 바웬사에 대한 인기는 아직 높다. 그 사람 때문에 정치적 불안이 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충격요법 도입 이래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 실업자와 인플레는 늘었지만 경제구조는 상당히 튼튼해졌다. 수출이 늘었고 서방투자가들의 관심도 늘었다. 무엇보다도 폴란드 화폐 즐로티의 암시장 환율이 공식환율과 같아졌다. 사실상 화폐의 태환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본 투자방식 시급 ­동구경제 재건을 위해선 서방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다. 서방의 원조는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는가. ▲서방의 도움은 단순한 원조차원이 아니라 경제 제도개혁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한 차관제공만 되풀이되면 소비를 조장하고 재정구조를 오히려 취약하게 만든다. 서방의 도움은 자본참여를 통한 산업근대화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 모두 외국자본투자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다. 외국 투자자에게 기업을 매각하고 1백% 지분차지도 보장해 준다. 이들 나라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서방판매조직을 이용해 제3국에 대한 수출까지 맡아주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면 수출도 늘지 않겠는가.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동구 지원 방안이다. ­대부분의 동구국들이 심각한 외채부담을 안고 있고 이것이 경제회복에 큰 장애가 된다는 지적이 있다. 서방 채권국들과 국제경제기구의 구체적인 구조방안이 있는가. ▲시장화 초기 몇년간만이라도 외채상환을 중지시켜 줘야 한다. 외채상환 일정을 재조정해 상한기일을 늦추어 주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만족스런 반응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동구경제가 이렇게 낙후된 것은 상당부분 실패로 끝난 공산체제의 탓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지역의 많은 나라들이 공산화 이전에도 지금의 서구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졌다. 이러한 과거사가 현재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지. ○EC와는 협력유지 ▲동구는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아시아세력의 교차점에 위치해 외세의 시달림을 많이 받았다. 헝가리는 1백50년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불가리아는 그보다 더 오랜 지배를 받았다. 1차대전뒤에는 독일ㆍ오스트리아,그리고 2차대전 다음에는 소련의 세력권에 편입됐다. 이러한 과거사가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미쳐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소련이 동구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력관계로 보고 있다. 앞으로 동구는 민주정부로 계속 존속 발전될 것이다. 거대 통일독일의 등장에 대한 우려는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전유럽안보체제가 구축되면 독일의 독주는 견제될 것으로 본다. ­전후질서의 재편으로 앞으로 세계질서는 미소 양극 체제에서 주요세력권을 축으로 하는 다극화 양상을 띨 것이란 분석이 많은데. ▲나는 세계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제안보체제시대로 갈 것이란 견해를 갖고 있다. 그 틀속에서 모든 나라는 각자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 간혹 필리핀의 게릴라 준동,라틴아메리카의 군사쿠데타,그리고 페르시아만 사태같은 돌발사태가 벌어지기야 하겠지만 모든 지구문제가 전세계 차원서 해결될 것이다. ­동구변혁을 처음부터 주도한 인물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었다. 물론 이 변혁의 전과정이 그의 통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노벨평화상이 그에게 수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와는 상반된 평가도 있는게 사실이다. 당신의 평가는 어떤가. ▲페레스트로이카로 시작된 소련 국내외의 정치ㆍ경제 개혁과정에서 고르바초프는 장기간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특히 그가 이 과정에서 보여준 탁월한 조화ㆍ화합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미국 대통령과 가진 수차례의 정상회담,콜 서독 총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러지도자들과 수시로 만남으로써 그는 자신의 노력이 진정한 것임을 설득시키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소련 국내에서 민족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앞으로도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은 동구변혁의 궤도를 지탱시키는 「안전장치」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C의 시장단일화가 목전에 와 있다. 세계 최대시장,교역주체가 될 거대 EC의 등장이 동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우리는 EC 단일시장이 장벽이 아니라 경협증진의 기회를 줄 것으로 희망한다. 헝가리ㆍ체코ㆍ폴란드는 EC에 이미 회원가입신청을 했다. 물론 가까운 시일에 정회원국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5년내에는 가입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5년은 동구 스스로도 시장화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코메콘 해체 불가피 ­EC와의 협조체제가 구축되면 현 코메콘은 어떻게 되는가. ▲코메콘은 소련경제를 중심축으로 한 방사선형태의 협조체이다. 따라서 소련경제가 흔들리면 협조망이 흔들리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소련의 에너지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 80년대말부터 코메콘은 와해징조를 보였다. 헝가리는 국내소비 원유의 95%를 소련서 공급받는다. 그런데 금년들어 벌써 몇차례나 1∼2주일씩 이 원유공급이 중단됐다. 코메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보다 유연한 형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해부터 소련ㆍ헝가리ㆍ체코ㆍ폴란드가 무역결제를 달러로 하기 시작했다. 벌써 유연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헝가리는 지난해 2월 동구국가중 최초로 한국과 국교를 맺었다. 두나라간 교류는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경협의 방향에 대한 의견도 말해달라. ▲삼성과 헝가리 오리온사가 합작으로 컬러TV 생산공장을 건설,현재 생산을 시작했고,한국산 전자오븐ㆍ토스터 등이 헝가리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교역규모도 급격히 늘었고 특히 문화교류는 아주활발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헝거리의 인적자원과 한국의 자본이 결합되는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우수한 고급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수주 전 20여개 국가기업을 공개매각키로 했다. 이런 곳에 한국자본이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합작투자촉진회 같은 것을 서울이나 부다페스트에 설치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의 은행이 헝가리에 진출,이러한 투자진출을 도와주기 바란다.
  • “소 경제개혁 수정 안하면 옐친등 사퇴할 것”/모스크바시장 경고

    【도쿄 UPI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몇개월내에 시장개혁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보리스 옐친등 국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정치가들은 줄지어 사퇴할 것이라고 가브리엘 포포프 모스크바시장이 29일 말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관련한 저서의 출판을 위해 일본을 방문중인 포포프시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현재의 경제개혁을 아무런 수정없이 강행할 경우에는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포프 시장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여곡절끝에 내놓은 경제개혁정책은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반대로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 노벨경제학상 수상 3교수의 업적

    ◎기업ㆍ가계 재테크 이론의 초석 마련/투자따른 위험ㆍ수익률 상관관계 분석 마코위츠/자본구조ㆍ자산가격 결정 모형 개발 샤프/기업의 재무관리ㆍ자산평가 이론 정립 밀러 올해 노벨경제학상에 선정된 3명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유명대학 강단에 서있는 재정 및 투자이론의 대가들이다. 69년부터 시작된 노벨경제학상에서 3명이나 공동으로 수상한 적은 없으며 모두 30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중 18명이 미국 경제학자들이 차지했다는 점은 오늘날 경제이론의 전개가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해리 마코위츠교수는 투자이론의 창시자. 지난 52년 투자에 따른 위험과 수익률과의 상관관계를 이론적으로분석해낸 경제학자로 「현대 투자이론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즉,투자위험이 높을수록 예상수익률도 커지며 투자위험이 낮을수록 기대수익률도 낮아진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전개했다. 오늘날 개인이나 기업의 재테크 이론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투자 등에는 위험이 따르며 그 위험이 큰만큼 수익률도 높아진다는 이론이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주식ㆍ부동산ㆍ예금 등 분산투자가 바람직하다는 이른바 재산 3분법의 이론적 근거도 제공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마코위츠는 그러나 투자에 따른 위험도를 계량화하지 못하고 샤프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윌리엄 샤프교수는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이론을 계승,발전시킨 투자이론의 대가. 마코위츠가 투자위험과 기대수익률과의 상관관계를 표준편차의 개념으로 설정한데 비해 샤프는 수학적 공식을 사용,위험계수인 배타계수를 개발해냈다. 투자자산의 위험계수를 산정해 냄으로써 자본ㆍ자산가격의 결정모형(CAPM)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랑크 모딜리아니와 공동 연구작업을 했던 머튼 밀러교수는 기업의 최적 자본구조에 대한 논문을 저술했다. 밀러는 지난 58년부터 77년까지 모딜리아니와 같이 연구를 계속했으며 그의 이론은 기업의 자본구조,배당정책과 시장가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85년 모딜리아니교수가 밀러와의 공저로 노벨경제학상을 탔을때 밀러교수가 누락됐던 것이 이번 수상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해리 마코위츠,머튼 밀러,윌리엄 샤프 등 3인의 미국 경제학자들은 투자와 자산관리의 기초가 되는 재무이론을 최초로 정립하고 계승ㆍ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사람들. 이들이 정립시킨 이론의 골자는 가계의 저축과 기업의 투자를 연결시켜주는 금융시장에서의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현대 시장경제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금융시장을 통해 개별기업의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과 위험이 동시에 평가되는데 투자자들은 이를 기초로 투자결정을 위한 제반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분야 이론의 개척자가 지난 50년대에 「자산선택이론」(또는 투자이론:불확실성하에서의 가계 및 기업의 금융자산의 배분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던 마코위츠 교수다. 그는 이 이론을 통해 기대수익과 위험의 정도가 각각 다른 여러가지 형태의 자산(주식ㆍ토지ㆍ예금 등) 가운데 어떻게 투자할때 위험도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를분석했다. 윌리엄 샤프 교수는 마코위츠의 「자산 선택이론」을 토대로 60년대에 자본자산가격모델(금융자산의 가격형성에 관한 이론)을 개발했다. 머튼 밀러교수는 기업의 재무관리와 자산평가에 관한 독보적인 이론을 정립시켰다. 그는 기업의 재무구조와 이익배당률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그 기업의 자산가치를 산출해내는데 기여했다. 국내 학자들은 이들 3명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공동결정된 것은 종전까지 거시경제에 치중해왔던 수상기준이 이제 미시재정이론쪽으로 전환된 것으로 평가했다. ◇머튼 밀러교수(67)=▲1923년 미국 보스턴 출생 ▲하버드대 석사(44년) ▲존스홉킨스대 박사(52년) ▲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주요저서=재무이론(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딜리아니와 공저),거시경제학이론(74년) ◇샤프교수(56)=1934년 케임브리지 출생 ▲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 교수 ▲주요저서=포트폴리오이론과 자본시장,투자론 ◇마코위츠교수(62)=1928년 시카고 출생 ▲현 뉴욕시립대 바로크칼리지 교수 ▲주요저서=투자선택이론(52년)
  • 몸에 밴 안일… 삐꺽거리는 「개혁」

    ◎송복교수 소ㆍ동구 학술 기행 특별기고/대부분 공장 주 40시간 가동에 불과/“힘든일 왜 하나”… 농부도 주말엔 휴무/뇌물 없인 일처리 안돼… 사회기강 급속 붕괴/지식인 푸대접 심해… 청소부 봉급이 신문사 사장보다 많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할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은 세계의 향방은 물론 아시아 한반도의 운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최근 2주간 소ㆍ동유럽을 방문,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온 본사 논평위원 송복교수(연세대ㆍ사회학)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 특별기고문이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다녀왔고 또 동구 여러 나라들을 보고 왔다. 이 다녀 오신 분들의 사회주의 사회의 실상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나 느낌도 거개가 일치해 있다. 평소 사회주의 사회나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태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건 그 사실에 대한 인식에는 대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상은 있는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다」라는 미국 초기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의 명구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것을 세상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처음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부정적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고 반대로 긍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나 동구사회에 관한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건,보기 싫은 것은 애시당초 보지 않았건 관계없이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것은 첫째로 소비재가 아주 귀하다는 것,그래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 둘째로 사회관계에 부드러운 기가 없고 윤기가 없고 활기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셋째로 사람들이 너무 느리다는 것,바쁜 것도 없고 안달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성취동기가 전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 넷째로 너무 관료주의화해 있다는 것,그 어느 사회보다 관료주의의 병리가 골수에까지 깊이 박혀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다섯째로 그러면서 너무 부패해 있다는 것,도덕적 기강이 관료사회에서나 일반 시민사회에서나 다같이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던져준다는 것,대개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흔히 말하는 「소비에트 엑스페리먼트」(Soviet Experiment)가 실패한 것이라는 결론을 어느 시각에 입각해 있는 사람들이든 다 같이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이후 70수년간 인류사회 최초로 소련이 시도한 공산주의사회의 실험은 그 실험 3세대가 지난 오늘날의 결과에서 보면 그것이 하나의 결과이든 조짐이든 어쨌든 실패했다는 결론을 다같이 도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살아 있는 공산주의 최고 이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어니스트 만델(Ernest Mandel)의 최근 저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넘어서(Beyond Perestroika)」에서도 꼭 같이 지적되고 있다. 누가 보든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도대체 그동안 뭘 「어떻게 했길래」 저러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맥도널드 빵을 사먹기 위해 1㎞ 이상의 줄을 서 있어야 하고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의 말보로담배가 자기네 돈(루블)값보다 오히려 더 귀하고 더 태환성이 높아 보이고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TV 프로가 텔레비전에 비치기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렇게 넋이 빠져 보고 있는냐는 것이다. 담배를 사기 위해서,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옷을 사기 위해서,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 긴 줄을 서 있어야 하고 누구나 비닐백을 한 둘씩 상시로 들고 다니면서 줄만 보이면 뭘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이 저렇게 무작정 긴 행렬에 끼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생활의 연속이 일과의 시작이며 끝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소련 전가정주부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줄서 있는 시간은 연 3백억 시간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대개의 가정주부들은 하루 2시간 이상을 꼬박 줄서는데 바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 3백억 시간의 생산손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계산하지도 않고 계산할 필요도없고 더구나 생산과 연관해서 계산하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이 나라의 생활습성처럼 보인다. 건물 도로 전철로 공원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을 때는 거창하고 웅장하기 더할 데 없이 지었을 것이다. 과연 큰 나라답게 웅대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모두 지어져 있다. 아마도 국가예산으로 국가가 관장해서 짓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기는 해도 위용이 없고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고풍스러움을 찾기가 어렵고 공사기간이 결코 짧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날림으로 보인다. ○관료주의 병리 극심 더구나 안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건물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1∼2㎞에 이르는 거대한 상가를 지어 놓고도 안은 텅텅 비어 있고 거기에 부서진 것 허물어진 것 망가진 것은 일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호텔시설도,그것도 외국손님들로차 있는 손꼽히는 호텔도 변기통이 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문이 부서져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국가는 예산이 없고 개인은 그것이 어디 내것이냐는생각에서 일 것이다. 참으로 「만인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인가. 이 사회는 마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증명하기 위해서 존속하는 사회로 느껴진다. 이 증명은 농촌에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호텔내에서의 식사나 호텔 밖에서의 식사나 이 광활한 농업지대에서 생산되는 채소라는 것을 식탁에서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캤더니 지금 소련 농장에서 채소의 60%가 출하되지 않고 밭에 심어진채 그대로 썩고 있다는 것이고,곡물은 10%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국가는 운송시설 냉동시설이 모두 부실해서 손 쓸 여력이 없고 농부는 그것이 「내 것도 네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따가운 햇살에 수고로움을 끼칠까 보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농부들처럼 기를 쓸 이유도 없고 안달할 필요도 없다. 고추값이 떨어진다고 고추를 자동차에 싣고 여의도 광장에서 농성하는 한국의 농사꾼은 이나라 농부들의 눈으로 보면 실성한 사람들이나 하나도 진배가 없다. 왜 그렇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무엇하려고 그렇게한푼의 값을 더 올려 받으려고 애를 쓰는냐이다. 더구나 토ㆍ일요일의 이나라 농부들은 밭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농촌마을을 돌아다녀도 토ㆍ일요일 이틀동안 들판에 나와 일하는 농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그림자조차 구경할 길이 없다. 이는 불가리아의 그 넓은 농업지대에서도,유고의 그 많은 농촌마을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때(시)라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없는 것인지 해당이 안되는 것인지 어쨌든 토ㆍ일요일은 어디든 일하지 않는다. 정말로 마르크스의 이상대로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갖는 것」인지,고전 경제학파들의 주장대로 「능력에 따라 일은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만 하는 것」인지,자본주의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풍습도를 볼셰비키혁명 70수년동안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고 또 오늘도 아니고 내일이다. 글라스노스트는 「개방」하자는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는 「개편」하자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서 개방하고 어떤 문제를 새로이 개편ㆍ개혁하자는 것인가. 지금까지 소련ㆍ동구에서 시도해 온 교환방식은 시장메커니즘으로,소유는 사소유로,관리는 기업경영체계로,생산은 소비재 위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서구사회를 준거로 해서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길고도 험난한,그러면서 성공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그 누가 이 사회를 얼핏 보든 선뜻 짐작할 수 있는 길이다. 첫째로 이 사회는 개방하면 더빨리 부패할 것이라는 것이다.지금도 도덕적 위기를 어디서든 맞고 있다. 개방하면 그 위기는 일로상승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안정은 도덕적 안정감에서 왔다. 그 누가 그 얼마나 부패해 있든 정보통제로 사람들은 부패의 종류를 잘 인식치 못했고 그 수준을 제대로 측량치 못했다. 그러나 개방은 남의 부패를 가장 먼저 인식시키고 그 수준을 실제보다 수배로 과장해서 측량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 개방과 동시에 정보흐름이 자유화되면서 예외없이 부패가 역상승으로 가속화했다. 이 부패의 속도도 문을 닿아놓은 기간과 정도에 비례했다. ○빵등 소비재난 최악 더구나 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쇄사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홍수져가면서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가장 타기되어야 할 결점들이다. 애들이 밖에서 다른 애들과 섞여 놀때 부모가 아무리 사회화시켜도 못된 것을 먼저 배워 온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카트를 쓰려해도 말보로 담배 한값을 먼저 내야 쓸 수 있고,호텔 청소부도 담배나 스타킹을 미리 테이블 위해 얹어 놓아야 청소를 제대로 해준다. 이것이 어디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랴. 저변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교육수준이 낮은데서 높은데를 가릴 것 없이,무슨 안개처럼 덮여 있는 듯하다. 어디를 가나 뇌물을 주어야 하고 어디로 가든 암달러상이 있다. 둘째로 노는데 모두 이력이 나 있다는 것이다. 공장은 1주 30시간에서 40시간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일거리가 많아도 40시간 이상 일하는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것도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토ㆍ일요일은 반드시 논다. 그리고 1일 6시간 일하든 8시간 일하든 5일 일하는 중에도 정작 일하는 시간은 2시간 뿐이고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잡담으로 채워진다고 한 관리자는 말한다. 이 관리자는 잡담도 노동의 하나라고 조크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 노동하는 주중에도 담배를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길가의 긴행렬에 가담해 줄 서 있다면 결근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긴 줄서는 것도 고된 노동임엔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사람의 경우 줄서는 것은 그 어떤 고된 노동보다 고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줄서기 위해서 결근하는 것도 합리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줄서기 위해선 결근해도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상상을 불허하는 극히 희귀한 노동현상이 이 나라의 노동관행이다.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사회」­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벌고,더 많은 업적을 내서 더 많은 냉산성을 올리자는 성취동기는 이 나라에선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소유에 대한 욕망도여느사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현재 사는 아파트를 싼 값으로 사서(2백50달러 미만) 개인소유화하라고 해도,그것을 왜 사냐고 반문한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죽을 때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고,더구나 국가에서 수리비까지 부담하는데 왜 그것을 사서 그 돈을 쓰고 그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에덴동산이 그런 것인지,어떻게 보면 낙원에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순진하고 그리고 착해 보인다. 저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보는 그 악마구리 같은 경쟁문화­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보아지는 경쟁문화가 심어지고,경쟁행위가 주도적 행위로 등장했을때 이 사회가 어떻게 요동칠 것인가. 미상불 대혼돈과 고통이 말할 수 없이 따르는 소용돌이가 전국 각지에서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셋째로 지식인의 푸대접이다. 교수나 의사 기자가 노동자보다 월급이 훨씬 적다. 보통 공부많이한 지식인은 한달 2백50루블이고 노동자는 3백50루블,당관료는 4백루블이 되어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신문사 사장이 5백레바를 받는데(8레바가 1달러),청소부가 7백레바를 받는다고 했다. ○암달러상 거리활개 불가리아 칼 마르크스 대학의 손체브(Rasdoslav Tsonchev)교수에게 그 차이의 합리성을 따졌더니 노동자가 주도세력이 돼 있는 나라의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산성은 아무리 올라도 3배가 오르기 어려운데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지식인의 경우 그 생산성은 열배 백배 심지어는 무한대로 확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어떻게 발전을 가속화하려 하는가.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리고는 손으로 마르크스 석상을 가리켰다. 칼 마르크스대학의 높이 세운 마프크스 석상의 큰 마르크스 이름에 학생들이 페인트로 곱표(×)를 크게 치고 무어라고 불가리아어로 갈긴 낙서를 보라는 신호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마르크스를 싫어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대학 교수들도 요사이 모스크바 대학생들도 한결같이 비판적이되어 간다고 조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ㆍ학생들의 부르짖음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얼마나 야기시키고 있는가. 루마니아에서의 광산노동자들의 데모학생 살해수가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인센티브는 좀체 유발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업화를 촉진해 갈 것인가. 소련에서의 개방화와 개혁화는 모스크바 까마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까마귀는 도시에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빵조각을 먹고 혹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쉽게 쉽게 살고 있다. 우리네 갈가마귀처럼 멀리 하늘을 높이 높이 비상하지도 않고 먹이를 찾아 끼옥끼옥 울며 아귀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색깔도 우리 까마귀와는 달리 목과 배ㆍ등 일부가 오히려 회색으로 보인다. 주둥이와 우는 소리는 까마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까마귀는 야성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고픈대로,부르면 부른대로 게으르게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본성을 되찾을 것인가. 정녕 되찾게 할 필요가 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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