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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3)

    ◎유연시절:1/이용목적 따라 이름 바꾸어 사용/호적에 오른 본명은 중학생때의 “성주”/일제시대엔 보신위해 “성주”로도 표기/최근 우상화목적,유명 ‘성주’로 선전 성균관대 이명영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김형직의 동생인 김형록의 아들 중에도 김영주가 있었다.그래서 필자의 추측이지만 김형직과 김형록 두 형제의 아들에 각각 영주가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두 가정중 어느 한 가정이 자식들의 이름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결국 김형직 쪽이 자기 아들을 성주·철주·영주로 고쳤다.실제로 북한에서는 지금 철주·영주라 하지 않고 철주·영주로 표기하고 있다. ○김형직쪽서 개명 따라서 호적상으로 보면 김일성은 김성주가 아니라 김성주일 것이다.중학시절의 그의 이름이 바로 김성주였다. 그러나 김성주는 자기 이름을 꼭 그렇게만 고집하지 않았던 증거도 몇가지 있다.1930년 3월에 그가 관계한 동성농민총동맹의 일본기록은 김성주가 되어있고 30년 9월 이후에 그가 활동한 회덕현 오가자에 있었던 최형우는 자기 저서에서그를 김성주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김일성은 자기 본 이름의 표기를 때와 장소에 따라 바꾸었다.과거의 독립운동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보신의 방법을 그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그가 중학시절에 사용하고 있었던 김성주를 버리고 유명인 김성주만 고집하는 것은 부자연하다.보통 같으면 그 반대가 정상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김성주만 선전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적어도 해방후라는 때와 북한이라는 장소에서는 호적명 보다 유명쪽이 보신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그는 김성주를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김성주를 사용하여 유리한 점이 과연 무엇인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년시절이란 부모의 행적에 따라 유아의 생활이 결정되는 자아 없는 시절이다.따라서 보통 같으면 자서전에서 유년시절 같은 것은 취급하지 않더라도 그 주인공에게는 별로 어떻다 할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경우에는 그저 이렇게 상식적으로 보고 그의 유년시절을 생략할 수가 없다.왜냐하면 북한에서는 태어나서 몇살 안되는 유아들을 탁아소에 집어넣고 그 유아들을 낳은 부모 대신에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면서 「김일성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주입식으로 가르치게 하기 때문이다. ○주입식교육 강요 필자는 1976년에 평양을 방문하여 그곳의 전시시설인 「9·15 주 탁아소」를 참관한 일이 있었다.나는 지금도 그 강당에서 3살난 어린 여자아이가 무대에 나오고 혀 짧은 말로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는 1912년 4월15일에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었습니다」라고 하면서 고사리 같은 양손을 들어 배경에 있는 「만경대 초가집」을 가리키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생아버지도 양아버지도 망각시키고 「김일성아버지」를 억지로 어린아이의 머리에 박아넣는 세뇌작업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아버지 뿐 아니라 어머니까지도 독점하여 양친을 의미하는 「어버이」를 써서 북한주민에게 「어버이 수령 김일성원수님」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시키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까지 빼앗아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을 자기에게로 돌리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실을 거꾸로 보면 김일성은 북한의 어린이를 세뇌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자기의 어린시절」을 교재삼아 가르쳐주어야 한다.어렸을때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이 자기를 어떻게 가르쳤으며 그 가르침을 어떻게 소화하였는가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년시절이란 자아 없는 시절이므로 그때 들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이 때문에 그는 그가 들었다는 기억도 없는 일들을 「들었다」고 하여 그 어린시절의 「사적」을 날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유년기사적 날조 물론 이러한 날조는 처음에는 김일성 자신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해방후 최초로 김일성의 유소년시절을 「만경대」란 단행본으로 발간한 사람은 작가 한설야였는데 그는 김일성과 그외 일가친척을 두루 찾아 가 김일성의 유소년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미화하였다. 이 책은 62년에 한설야가 숙청됨에 따라 김일성이 전부 불살라버렸다.「만경대」가분서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내용이 벌써 당시의 우상화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①평전 33면 ②평전 389면
  • 대학출판부/학술도서 출판기능 “미흡”

    ◎1906년 보성전문서 처음 설치… 총 2,662종 간행/대부분 교재·교양도서… 학술서는 401종 불과/규모 영세… “제작기간 길고 홍보 어렵다” 교수들도 기피 우리나라 대학출판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거듭나야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현재 국내 64개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대학출판부의 본래 임무는 전문학술도서의 출판.그러나 전문도서보다는 대학교재및 일반교양도서출판으로 명맥을 꾸려 나간다는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다. 우리나라대학출판부가 간행한 2천6백62종의 서적을 기능에 따른 유형별로분석해본 결과 교육지원기능의 대학교재가 1천2백92종으로 48.5%를 차지했고 그 다음이 일반교양도서로 6백3종(22.7%)에 이르고 있다.정작학술도서는 4백1종으로 겨우 15.1%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참고도서(10.5%),기타(3.2%)순이었다.대학출판은 1906년 보성전문이 보성관을 설치,전문교재를 출판한 것으로 시작됐다.그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외형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알맹이없는 발전이라는 비판이다. 도서출판기능가운데 대학출판부의 핵심기능과 설치이유는 「대학출판부가 아니면 출판할 수 없는 책」즉 「상업성은 없으나 가치가 있는」학술연구도서의 출판에 있다.학술서적이외의 도서는 상업출판사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자본주의속성상 상업성이 없는 책은 이들 상업출판사측이 출판을 기피하기 때문이다.대학출판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학출판부의 이같은 역기능은 ▲재원확보등 운영상의 어려움 ▲운영형태등 위상의 문제 ▲규모의 영세성 ▲출판원고선별및 판매상의 애로사항등에서 파생된 것으로 지적하고있다. 사단법인체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대출판부의 경우 학교측의 출판보조비는 연간3천만원으로 전체예산의 2%에 불과하다.나머지는 도서판매비,학술지와 방송통신대교재등 기타교재의 인쇄수주사업으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밖에 이화여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이 학교직영체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없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또 대학출판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교수및 학생들의「별로」라는 이미지도 문제점.교수들은 책제작기간이 길고 광고,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판매가 부진하다는 점등을 내세워 대학출판부에 좋은 원고를 주지 않거나 대학출판부에서 저서를 발간하는 것을 꺼려 하는 경향이 지적됐다.학생들도 대학출판부직영서점이용률이 일반서점보다 훨씬 떨어지고 있다. 이에따라 판매부진으로 인한 재고도서의 누증이 경영악화의 주요인으로 작용됐다. 이에대해 서울대출판부장 차패근교수(신문학과)는 『대학출판부는 이제 더이상 잘팔리지 않는 학술도서나 출판하는 곳이 아니라 잘팔리는 동시에 가치있는 책을 내는 곳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했다.이를위해서는 대학출판부협회를 주축으로 의견과 정보교환을 더욱 활성화할 것과 발행도서의 저작권및 공동전시·판매에 나서는등 협력체제의 강화와 공동대처방안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 땅을 죽이면 사람도 죽어(박갑천칼럼)

    「땅심」이라는 말은 낯이 설다.이때까지는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았을 정도로.그러다가 얼마전 한글학회가 새로 펴낸 「우리말 큰사전」에 실려 나온다.농업 관계의 글이나 저서에 「지력」(지력)이라고 쓰고 있는 말이 땅심.이 「지력」이라는 말은 「사기」(사기‥평준서)등에 나오는데 우리의 「농가월령가」(6월령)에도 그 말을 쓰고 있다.「늦은콩·팥·조·기장을 베기 전 대우들여/지력을 쉬지 않고 극진히 다스리소」하고. 하지만 실제로 땅에 묻혀 일하는 농민들은 「땅심」이라고 했다.그 땅심을 돋우기 위해 객토도 하고 거름(퇴비)도 냈던 것.글자뜻 그대로 「땅이 식물을 기르는 힘」이 땅심이다.이 때의 「심」은 「힘」.뚝심·허릿심·팔심·입심… 할 때의 그 「심」이다.「힘」이 표준말이고 「심」이 방언이지만 다른 말과 얼려서는 표준말로서 당당해진다. 오늘의 우리 농토는 이 땅심을 잃어가고 있다.해가 갈수록 더 잃어간다.힘을 잃으면 죽는 법.땅심 잃은 농토는 그래서 죽어간다.사람도 중독되어 쓰러지는 농약을 뿌려오기 그 얼마인가.화학비료하며 제초제 따위 또한 농토의 건강에는 해로운 것.그렇건만 농토 죽이는 화학물질 사용량은 해마다 독해지면서 증가한다.며칠전 농촌경제연구원이 마련한 세미나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었다.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흙을 광물이라고만 생각한다.과연 그럴까.학자들에 의하면 보통 흙의 경우 1g에 약2억마리,중성(중성)이면서 석회 함량이 많은 흙의 경우 10억도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바로 생물의 덩어리.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지 않은가.이 미생물들이 까닭없이 생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당연히 식물에도 영향을 미치는 존재.그런데 독한 화학물질들이 끊임없이 죽여온다.작물의 성장이나 성분에 혼선이 안생길 수 없다. 약에 의존하다 보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잃는 것은 식물의 경우도 사람의 경우와 다를 바 없는 것.오늘의 각종 농작물들은 병충해에 약해져 있다.당연히 약이 구제(구제)해 주리라는 타성에 젖어 자체 방어능력을 포기한 상태.땅심 잃은 땅에서 비료·농약·제초제 등의 과보호속에 자라고 퍼석한 열매만 맺으면 그만이다.그게 건강한 땅에서 비바람 견뎌내고 병충해와 싸워 이긴 끝의 열매와 같을 수 있겠는가. 가령 땅이 암에 걸려 죽어가는 중이라고 치자.그 땅은 암에 걸린 작물을 내놓는다.그것을 사람이 먹는다.그래서 땅을 죽이면 사람도 죽는다는 말이 나온다.땅뿐 아니다.물도 공기도 죽여가고 있는 우리들.옛날 묵자(묵자‥천지상편)가 경고했던 말은 이렇다.­『하늘이 바라는 바를 하지 않고 하늘이 바라지 않는 바를 하면 하늘도 또 사람의 바라는 바를 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바를 한다』
  • 대학교부설 사회과학연/국제학술교류 창구로 자리

    ◎경남대 극동문제연… 연대 동서문제연·인하대 국제관계연 등/대학교 자체재정 지원… 착실하게 성장/영문저널 발간·국내연구 해외소개 앞장 대학부설 사회과학연구소들이 연구업적을 축적하는 가운데 국제학술교류활동을 활발히 펼치는등 내실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는 자연과학연구소와는 달리 이들은 대학자체의 노력으로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됐다. 최근 설립 20주년을 맞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만우)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원장 정구현)을 비롯 한양대 중소연구소(소장 유세희),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소장 백광일)등은 영문저널발간,저서공동집필및 출판,국제학자들과의 교류등을 통해 외국이론의 국내소개및 국내학자 연구의 해외소개등에 큰 업적을 남겼다.현재 대학연구소 가운데 국제관계 영문저널을 내고 있는곳은 연세대와 경남대 인하대 세곳.봄·가을 두차례씩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을 엄선하여 발간,국내외에 유료로 배포하고 있는 이들 저널은 외국학자들이 한국학자들의 연구를 접할수 있는거의 유일한 통로로 간주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것은 19 73년에 창간된 연세대의 「The Journalof Eastand West Studies」(동서연구).그 다음에는 경남대의 「Asian Perspectives」(아시아의 조망)가 77년에 창간된데 이어 85년에 설립된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의 경우는 86년부터 「PacificFocus」(태평양의 초점)를 펴내고 있다. 또 외국출판사와의 공동출판은 경남대가 86년 최초로 미국의 웨스트뷰사와 공동으로 「북한의 대외정책」이라는 영문서적을 펴낸후 지금까지 모두 6권을 시리즈로 발행했다.또 인하대 역시 웨스트뷰사와 공동으로 88년 「제3세계 방위산업의 딜레마」라는 영문서적을 낸후 지금까지 3권을 펴냈다.연세대는 이와는 달리 동서연구시리즈라는 영문서적을 자체 출판,모두 22권을 간행했다.이들 영문서적의 경우 국제판매망을 이용,전세계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영문저널과 함께 우리 연구성과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몫을 하고 있다. 이들 연구소들의 해외학자들과의 학술교류도 단순한 학술세미나 차원을 넘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경남대의 경우 하기 해외학자초빙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을 연구하는 해외학자들의 기초자료수집및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연세대는 10여개국의 자매 연구소에 70여명의 연구원을 파견하고 10여명의 해외학자를 초빙하는 형식으로 교류하고 있다.또 인하대는 모스크바대학과 미국 메릴랜드대학등에 연구원들을 교류하면서 지난 여름에는 경인지역 기업인 50여명을 3주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 보내 국제관리자과정인 「인하­조지워싱턴 프로그램」에 참여케했다.이는 대학연구소가 학내 학문적 교류뿐아니라 사회교육 교류에까지 영역을 확대시키는 본보기가 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도 일반학자들에게 모든 자료및 시설을 공개,학술자료지원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특히 본교출신이 아니더라도 박사학위소지자나 과정중에 있는 학자들에게 연구실및 학술지 발표기회 제공등 실질적인 도움을 통한 학문의 저변확대에 노력해왔다. 이같은 대학연구소들의 다양한 학술교류및 전파 노력은 예산등의 이유로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는 많은 대학연구소들에교훈을 줄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외언내언

    미국의 저명한 사회비평가 반스 패거드의 저서에 「쓰레기를 만드는 자들」이라는 것이 있다.그는 1960년에 이책을 간행했는데 이때 이미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일회용시대라고 칭할 것이다」라고 썼다.이 무렵만해도 그의 견해는 얼마쯤 과장된 것으로 간주됐다.오늘에는 물론 달라졌다.◆이제는 우리도 1회용품 줄이기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재생품을 쓰자는 단계에 와 있고,또 왜 이렇게 해야하는가에도 대부분 이해는 하고 있다.그래서 재생품임을 표시하는 환경마크제와 자원재생공사를 만들었다.하지만 아직 그 실효를 얻고 있지는 않다.자원재생공사만 해도 그 사업은 극히 부진하다.이번 국감자료에 나타난 바를 보면 캔과 종이만의 폐기물회수목표만도 겨우 17%밖에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이유도 심각하다.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돼서일뿐 아니라 매입가가 낮아 종이를 수거한 사회단체마저 자원재생공사에 팔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환경마크제는 더 난처하다.종이와 플라스틱등 4종에만 겨우 환경마크를 부여하고 있는데,이마저도 재생품은 하급품이다라는 인식으로 팔리지를 않고 있다.그러니까 마크획득을 아예 기피하는 현상까지 빚고 있다.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17개제품만이 겨우 환경마크를 받아 갔다.◆그러나 환경처는 재생타이어·가정용고무장갑등 17종을 새로 환경마크품목으로 늘리기로 확정했다.당연히 확대해 가야할 일이지만 여전히 그 실효에 걱정이 앞선다.환경마크와 같은 환경상표제도에는 좀더 적극적인 공동작업들이 필요하다.미국이 시작한 「그린 크로스」표시는 미국의 4개 슈퍼체인이 협력을 하고 있다.이표시 부착상품을 집중적으로 팔아주는 것이다.◆독일의 「블루 엔젤」마크도 소비자 단체의 협조를 받는다.우리도 이런 저런 목소리만의 환경운동보다는 환경마크가 붙은 제품을 실제로 사주는 운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환경오염문제를 실제의 문제로 본다면 말이다.
  • 김우중회장 없는 대우 어디로/신당행 임박… 임직원 “뒤숭숭”

    ◎“중립내각서 외압은 없을 것”/운영위 가동… 그룹경영 전담/「공백」 너무 커 순항은 불투명/적자계열사 많아 부담… 부실화 불가피 김우중회장이 새한국당의 추대만 있으면 정치에 참여할 뜻을 굳혀 김회장이 떠난 대우그룹의 장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룹내에서는 이미 김회장의 대선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며 그룹관계자들은 김회장의 후계구도를 비롯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포스트김」 관심 김회장의 자녀들이 아직 어려 그룹의 후계구도는 올 1월 그룹 관리계획의 하나로 도입된 운영위원전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운영위원전담제가 김회장의 정치참여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나 김회장 1인체제로 유지돼온 그룹경영을 측근 전문경영인들이 나눠 자율경영토록 한 일종의 책임경영제여서 김회장이후의 그룹경영은 일단 운영위원제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를 토대로 「포스트 김」은 창업동지이면서 경기고 동기인 이우복 그룹부회장이 맡게 되고 사돈인 김준성(주)대우회장은 기존의 대외업무를 맡으며 그룹부회장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또 윤영석 (주)대우사장이 경공업부문을 맡고 중공업·조선·정밀부문은 이경훈 중공업사장이,자동차는 김태구 현 사장이,대우전자와 관련전자업체는 배순훈 사장이,힐튼호텔을 운영하는 동우개발과 경남기업등은 홍성부 동우개발사장이,대우증권과 투자자문·대우정보시스템은 이석희 대우증권회장이 각각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후계체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김우중없는 대우」의 장래가 더 우려되는 부분이다.22개 계열기업에 매출 16조원의 국내 4위재벌인 대우와 김회장을 떼어내 생각하기란 사실 어렵다. 창업이래 그룹의 큰일부터 잔일까지 도맡아 해오고 있으며 그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길만 있으면,그곳이 비록 적성국이라해도 쫓아가 사업을 따내는 타고난 「장사꾼」이다.실제로 김회장이 북방경협이다 남북교류다해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닌」 덕분에 지금까지 그룹이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터라 그가 그룹경영을 떠나 대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그룹으로선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의 중립내각구성과 공명선거의지로 그의 정치참여가 현대와 같이 세무조사등의 「탄압」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노골적인 견제가 없더라도 그가 그룹경영에서 손을 떼고 정치권에 들어섬으로써 맞게 될 공백은 그룹의 경영부실을 가속화시키리란 분석이다. 이는 김회장의 대선출마설이 알려진 지난 24일 대우그룹 주가가 폭락했고 그후에도 출마설이 나오면 주가가 내리고 불출마설이 강해지면 주가가 오르는데서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자동차·전자 등 대우의 주력기업들이 모두 고전하고 있어 김회장이 그룹경영에서 손을 뗀다면 버텨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대우조선만해도 조선경기의 활황으로 지난해 7백89억원,올해엔 1천5백억원의 당기순이익이 예상되나 누적적자가 워낙 많은데다 최근 조선경기가 조정국면에 들어서 언제 상황이 돌변할 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연말시한인 대우중공업과의 합병건도 대우가 안고있는 큰 숙제이다. ○주가 덩달아 출렁 또 김회장이 사장까지 갈면서 생산·판매를 독려해온 대우자동차는 지난해 1천4백67억원의 적자에 이어 올해에도 판매가 시원치 않아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며 GM과의 「합의이혼」문제도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이밖에 (주)대우와 오리온전기 대우정밀등 상당수의 계열사가 지난해 순이익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대우전자도 경쟁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 외언내언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의 대통령선거출마설 부인으로 대선정국은 다시 기존의 궤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국민들의 뇌리엔 아직도 많은 궁금증이 남아있다.그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에선 왜 재벌 총수들이 저마다 정치를 하려고 드느냐는 문제다.◆당대에 재벌로 도약한 경제 기적을 정치에도 실현시켜 보겠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변일지 모르나 사회의 시각은 좀 다른 것같다.돈에다 권력까지 쥐어보겠다는 권력탐욕의 발로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재벌로서 막대한 선거자금을 내게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자신이 직접 정치에 나서겠다는 현실적 계산을 했음직하다는 관측도 있다.김우중씨의 경우 현대그룹 총수 정주영씨와의 경쟁심리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재벌총수들의 정치지향에 대한 또다른 원인분석은 이들이 경제쪽에서 어떤 권태를 느낀 나머지 정신적 성취감의 돌파구를 다른 분야,즉 정치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재력을 쌓을만큼 쌓았으니 개인적으론 권태기에 접어들법도 하겠다.그러나 국가의 경제난국을 생각한다면 경제발전의 견인차인 이들의 외도는 「도피주의」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금년초 미국에서 텍사스 부호 로스 페로의 대통령선거출마문제로 찬반논쟁이 벌어졌을때 반대론자들이 제일 먼저내세웠던 논거는 이른바 페로신화의 훼손 우려였다.페로가 정치라는 이전투구에 뛰어들 경우 맨손으로 수십억달러의 부를 쌓은 그의 입지전과 월남전·이란 인질사태때 보여준 그의 애국심은 매스컴에 의해 발가벗겨지고 정적들에 의해 난자당해 신화를 아끼고 싶은 국민들을 슬프게 만들지 모른다는 것이었다.◆정치도 잘돼야 하지만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정주영신화,김우중신화,포철신화도 훼손없이 간직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내일을 위해 바람직하다.베스트셀러인 김회장의 저서 이름대로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지만 기업인은 기업인으로서의 본령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요청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전후시대 미소의 냉전은 지구적규모의 대결이었으나 소련이 패함으로써 끝이났다.이제 분쟁의 지역화시대가 되었다.앞으로 열강들은 경제적이익 우선 전략아래 지역적 강대국으로서 그 지역을 지배할 것이다.「강대국의 흥망」이란 저서로 잘 알려진 폴 케네디교수(미 예일대)의 분석이다.◆오늘날 동북아정세 또한 그러하다.중국과 러시아·일본등이 변함없이 지역적 강대국의 형성대오를 갖추고 있다.역시 미국의 조지 프리드먼 교수등은 공저 「제2차 태평양전쟁」에서 지정학적으로 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지역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특이성을 이렇게 분석한다.즉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위협을 느낄때 『아마도 한국은 일본에 지원을 구하게 될것』이라는 것이다.◆가령 주한미지상군이 철수하면 일본이 개입할 가능성 또는 남북한관계를 조작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만약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져 일본이 그 회복을 위해 경제적으로 개입하게 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는 분석도 곁들인다.한국은 일본에 자본재나 중간생산물의 공급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지금 그 일본이 동북아의 새 구도정착을 위해 대단히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일본 국왕 아키히도(명인)의 중국방문도 그 발빠른 행보의 일환이다.일본과 중국이 『일중간의 우호협력이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는 공동인식에 이른것은 두나라 국교가 수립된 72년.그 10년후인 83년 일본의 경제발전을 「학습」하러 방일했던 호요방 당총서기는 일본의 눈부신 부와 성장에 깜짝 놀랐다.그리고 10년후 이제는 일본의 국왕이 중국엘 「들어가는」것이다.◆일중관계를 아시아외교의 좌표축으로 삼는 일본은 명인의 방중을 통해 과거 침략사를 청산하려 할 것이다.물론 10년전 호요방이 놀란 「엔」화를 앞세우고서 말이다.노태우대통령이 곧 일본에 가고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방일을 취소하고 한국에 온다.동북아 지역에 무언가 새기류가 형성되는 듯한 오늘이다.
  • 결혼 등 관습 미시경제학적 규명/노벨경제학상 베커교수 업적

    ◎출산·교육 등 「최적행태이론」으로 설명/시카고학파… 「휴먼캐피털론」 발전시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개리 베커는 올해 62세로 미국 시카고대의 경제학과및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베커교수는 인간의 다양한 행태를 미시경제학적 분석방법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경제학과 사회학을 접목,경제학자들에게 새로운 문제에 대처토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즉 그는 지난 81년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자신의 저서 「가족논」에서 결혼이나 이혼,출산·자녀교육·사랑·질투등 종래의 학자들이 습관이나 비이성적인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생각,사회학이나 인류학적 차원에서 접근했던 인간의 행태를 경제학의 기본명제인 「최적행태이론」을 원용해 분석해낸 장본인이다. 베커교수는 1930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포츠빌시에서 태어났으며 명문 프린스턴대를 거쳐 시카고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또 하나의 업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차별화에 관한 신고전학파적인 분석을 통해 그보다 앞서 지난 7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슐츠의 「휴먼캐피털」(인적자본)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점을 들수있다. 예컨대 인도의 출산율이 왜 높은가에 대해 과거에는 그 나라의 풍습이나 가치관으로만 설명했으나 그가 새롭게 펼친 이론의 핵심은 한 나라의 출산등은 자녀의 교육비나 자녀를 양육함으로써 나중에 돌아올 반대급부와 같은 경제적 비용함수 차원에서 설명될수 있다는 것이다(장세진인하대교수). 한은의 금융경제연구소 이광주박사(경제학)는 『베커교수는 조디·루카스 교수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의 일원으로 순수경제이론들을 범죄·성차별·이익 집단간의 경쟁등 광범위한 사회현상에 응용해 광의의 정치경제학을 포괄적으로 다룬 학자』라고 소개했다. 주요 저서로는 「차별의 경제학」(시카고대·57년),「휴먼 캐피털」(콜럼비아대·64년),「경제이론」(71년),「인간행태의 경제학적 접근」(시카고대·76년),「가족논」(하버드대·81년)등이 있다. 시카고대는 지난해 로널드 코즈교수에 이어 2년연속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영예를 안았다.
  • 언론계 30년…명쾌한 논설로 필명/김동익정무1(신임장관등 프로필)

    30여년을 언론계만 지켜온 정통 언론인. 중앙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주필·대표이사등을 거치는 동안 기사에 대한 감각과 판단력이 빠르고 정확해 날카로운 분석기사·명쾌한 논설로 필명을 날렸다. 정계는 물론 관계·재계등 각계에 두루 지면이 넓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이같은 친화력에다 취미도 골프·바둑등 다양해 정무장관직 수행에 적임자라는 중평. 평소의 언론관과 취재경험을 담은 「정오의 기자」란 저서도 있다. 부인 이혜경여사(51)와의 사이에 2남1녀.
  • “백제사 바로 알자” 연구활동 활발

    ◎신형식교수,국내외 학자 저술 정리한 「백제사」 출간/공주·충남·원광대 등 대학부설연 발굴작업도 한몫 우리 고대사의 하나인 백제사를 바르게 인식하려는 역사연구가 최근 활기를 띄고 있다.백제는 강력한 전제왕권및 독자적인 통치구조 확립과 선진영농기술등 찬란한 문화를 일본에 전파시킨 선진 고대국가.삼국통일 후에도 통일신라로 그대로 이어져 한국고대사회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최근 간행된 신형식교수(이화여대)의 저서 「백제사」(이화여대출판부)에 체계적으로 정리됐다.신교수는 이 저서를 통해그동안의 국내학자들의 백제사 연구성과를 객관적으로 종합·분석,백제사의 내면적 성격과 문화적 특성을 규명했다.또 국내외에서 지난해까지 발표된 9백여편의 저서및 논문을 주제별로 나눈 문헌목록을 실어 명실공히 백제연구의 지침서 역할도 하고 있다. 신교수는 우리의 백제사 연구가 그동안 주로 고분·토기·성지등 고고·미술사분야에 치중해온 사실에 주목했다.그까닭은 백제사연구의 유일한 문헌이다시피한 삼국사기가 갖고 있는 기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이러한관점은 19 71년 무령왕릉의 발견이 전환점이 됐으며 이에 앞서 김원용박사의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고고학적 관점에서 규명한 선구적인 연구와 천관우박사의 백제초기복원이 새로운 연구의 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신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철저하게 우리문헌(삼국사기)과 중국문헌(주로 주서,당서)에 나타난 백제사회를 비교했다.따라서 그 차이점을 통해 백제사를구명하였으며 특히 북한에서의 백제사 서술을 비판,남북한 역사인식 차이의 비교도 시도했다.그는 기존의 백제사 시대구분을 비판,▲초기국가시대(온조왕­사반왕) ▲집권국가발전시대(고이왕­삼근왕) ▲전제왕권시대(동성왕­의자왕)의새로운 시대구분을 시도했다.또 웅진·사비시대의 전제왕권확립과정을 재조명,웅진시대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라 전제왕권의 전단계로 파악했다. 그는 특히 최근 백제사연구가 다양화하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은 관련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히고 그들개개인의 업적을 평가했다.백제초기사 해명에 큰 도움을 준고고학및 문헌과의 접목은 김정배 노중국 최몽용 이도학등의 연구에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 백제사 해석의 폭을 넓혀준 고분발굴및 연구자로는 안승주 강인구를 꼽았다.특히 백제사 이해에 새로운 계기를 이룩케한 특수사연구는 성주탁 도수희 장경호 김삼용 홍윤식등의 업적으로돌렸다.그리고 연구의 단계를 높여준 문헌연구는 이기동 노중국 양기석 이종욱 김주성등의 짜임새 있는 연구결과라는 점을 덧붙였다. 이와같이 백제사연구가 활기를 띠게 된데는 백제사관련학술단체의 업적도 컸다.백제문화연구소(공주대),백제연구소(충남대),마한·백제문화연구소(원광대)등 대학부설기관의 꾸준한 발굴·연구와 동아그룹이 설립한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재정지원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충남대 백제문제연구소는 최근 백제연구국제학술회의를 열어 백제사의 새로운 위상을 모색했다.「백제사의 비교연구」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일본 중국 대만의 학자들이 참석,▲백제와 고구려·신라의 비교연구 ▲백제와 일본의 비교연구 ▲백제와 중국의비교연구등 세가지 테마로 모두 12편의 논문이 발표됐다.이번 백제학술대회는 백제문화의 독자성과 당시 고구려 신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과의 국제관계규명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 외교공약비교(미 대선열전 현장:4)

    ◎대한정책 현재의 구도 유지될듯/주한미군 계속주둔 대체로 일치/클린턴/“농산물 등에 슈퍼301조 확대 적용”/페로/“아시아·유럽국서 방위비 더 받아 내야” 미국의 대외정책,특히 대한정책은 공화당의 부시대통령이 재선되면 말할것도 없고 민주당의 클린턴후보가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기본틀에 큰 변동이 없을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한미관계의 안보분야를 보면 클린턴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다짐하고있어 기본적으로 부시행정부와 정책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다만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고 해외주둔군을 더많이 감축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 주한미군의 감축규모가 확대되고 우리의 방위비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부시는 유럽의 24만5천병력을 15만까지 줄이려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7만∼9만으로 더 줄여야한다는 입장이다.부시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의혹이 해소되지 않고있는 점을 들어 주한미군의 2단계감축을 일단 유보시키고 있으나 클린턴은 핵확산금지의 지지등 일반론이외에 북한핵문제등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않고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부시행정부는 핵문제의 해결없이는 진전이 있을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정부가 들어서면 핵문제에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클린턴이 인권외교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대북인권개선압력은 현재보다 오히려 배가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무역통상면에서 부시는 비록 미곡물의 세계시장확보를 위해 보조금을 일부 지급하는 정책을 구사하긴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유무역주의정책을 고수하고있다.반면 클린턴은 슈퍼301조의 확대적용을 주장하고있어 한국에 대해 농축산물의 시장개방압력을 부시행정부때보다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의 대외통상정책은 대중국관계나 북미무역자유협정(NAFTA)에 대한 입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부시가 『중국의 인권증진을 위해 무역보복등 고립화정책을 쓰는 것은 오히려 역작용만 초래한다』는 입장인데 비해 클린턴은 『최혜국대우 및 미국시장접근을 인권개선 및 미사일등 무기확산자제와 연계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있다.클린턴은 또 부시가 성사시킨 NAFTA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미국내 고용감소,환경에 미칠 영향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있다. 당면 세계주요현안에 대한 부시와 클린턴의 입장은 크게 다를바 없다.예를 들어 구소련에 대한 지원,남부 이라크의 시아파 회교도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구역설정,현재 진행중인 중동평화회담,대만 및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전투기판매등에 대해 거의 같은 입장을 취하고있다. 한편 다시 선거전에 뛰어든 로스 페로후보의 대외정책은 아직 뚜렷한 것이 없는 실정이나 그의 저서 「뭉치면 이겨낸다」에 있는 국방편에는 『아시아나 유럽국가들에게 미국이 그들의 안보를 지키는 대가로 연간 1천억달러를 지불토록 요구해야하며 병력감축을 통한 방위비절감을 부시계획보다 4백억달러 더 절감해야한다』고 방위비의 대폭적인 삭감을 주장하고있다. 클린턴은 지난 1일 밀워키에서 있은 외교정책에 관한 연설을 통해 『미국의 어떠한 외교정책도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신념을 반영하지 않는다면성공이라고 할수없다』면서 부시대통령의 낡은 세력균형전략에 의존하는 대외정책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할 수없다고 비판,자신의 외교철학이 부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클린턴의 백악관입성전망이 점차 높아지고있는 가운데 결국 민주당정권이 들어서게되면 미국의 외교정책은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을 위한 인권외교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국내정책우선주의에 따라 다소 「신고립주의」의 색채를 띠게될 전망이다.
  • 김용태/운영(14대 국회상위장 프로필)

    ◎언론인 출신으로 판단력 발군 민정당 대변인과 민자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원내사령탑에 오른 4선의원. 직선적인 성격으로 이따끔 강성발언으로 신문가십에 오르내리기도 했으나 정치적 신의를 잘 지킨다는 평. 언론인 출신으로 LA특파원 시절 「코메리칸의 낮과 밤」이라는 저서로 필명을 날리기도 했다.정치적인 판단력이 좋아 김영삼총재의 신임도 두터운 편. ▲경북안동(56) ▲서울대법대 ▲민정당대변인 ▲국회예결위원장
  • 정시채/농림(14대 국회상위장 프로필)

    ◎행정경험 바탕 기획능력 탈월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무안군수,광주시장,전남부지사를 역임한 정통 내무관료 출신의 3선의원. 오랜 행정경험이 몸에 배어 업무 분석 및 기획능력이 탁월하며 치밀하다는 평.특히 수치에도 밝아 12대때에는 국회예결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바쁜 정치활동중에도 행정학박사학위를 따내고 저서도 낸 학구파. ▲전남 진도(56) ▲전남대 법대 ▲민정당수석부총무
  • 이달의 문화인물 이윤재선생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감옥서 순국/애국적인 삶과 한글연구업적 평가 「10월의 문화인물」로 한글학자 환산 이윤재선생(18 88 ∼ 19 43)이 선정됐다. 문화부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사한 선생의 애국적인 삶을 널리 알리고 선생의 연구업적을 재조명,우리말과 글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문화의 달이자 한국날이 들어있는 10월을 맞아 선생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뒤늦게 신학문에 눈을 뜬뒤 대구계성학교와 중국 북경대학에서 수학하고 마산 영변 정주 서울등의 여러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다.그러면서 나라잃은 민족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선생은 그뒤 조선사람에게 조선말사전이 한권도 없다는데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조선어학회에서 국어사전편찬을 위한 기반연구작업에 전념했다.이에따라 19 33년에는 「한글맞춤법통일안」,19 36년에는 「조선어표준말모음」을 각각 발표했다.또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의 편집책임을 맡기도 했다.19 31년부터 4년동안 전국 각지를 누비며 한글강습회를 열어 문맹퇴치와 새로운 지식보급에도 힘썼다. 선생은 19 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최현배 김윤경 등과 함께 일본경찰에 붙잡힌 뒤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 43년 12월8일 함흥감옥에서 순국했다. 선생은 「표준조선말사전」「문예독본」등 주요저서와 함께 「한글맞춤법통일안해설」등 많은 연구논문도 남겼다. 선생을 기리는 주요기념사업은 다음과 같다. ▲이윤재의 달 기념 민족어연구학술발표회=31일(문예진흥원강당) ▲사전편찬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30∼31일(국립극장소극장) ▲92한글 및 한국어정보처리 학술발표대회=9∼10일(한국통신연구센터) ▲추모강연회=11일(경남대) ▲특별강연회=27일 하오4시(한글회관)
  • 재일 조선대교수 20년… 김일성연구 1인자/집필자 허동찬씨는…

    ◎76년 평양방문때 학문적 절망… 조총련서 추방된뒤 본격 추적 「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를 집필하는 허동찬씨는 재일교포 학자이다. 허씨는 1932년 일본 오사카(대판)에서 태어났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듬해에 오카야마(강산)에 소개하여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였다. 8·15해방은 허씨와 허씨의 가정에 민족재생의 희망을 주었다.당시는 재일교포사회가 좌경화되어 있어서 허씨 가족도 자연 조련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경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허씨는 1955년부터 조총련의 맹원으로 있었으며 1962년 조총련계 조선대학교에 들어가 82년까지 20년간 교편을 잡았다. 조총련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72년까지 김병식사건이 있었다.의장 한덕수를 그의 종매부인 김병식이 쫓아내고 자신이 의장자리에 앉으려는 책동이었다. 허씨는 한덕수파도 김병식파도 아니었지만 이 비판사업에 동원되어 매일 같이 「비판과 자기비판」에 참가해야 했다.이 와중에서 그는 사람이 사람에게 딱지를 찍어 정치적 생명을 빼앗아 가는 광경을 보고 절망하여1971년에 4개월동안 교직을 내던진 일이 있었다. 1976년 가을 그는 조총련 조선대 문학부부부장의 자격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30돌 기념축하대표단의 일원으로 2개월반 북한을 순방하였다.11월에는 김일성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북한방문은 그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백문이불여일견이라 하지만 북한땅은 지상락원이 아니라 생지옥이었다.그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고민에 빠진 그는 1978년 강사로 강등되었다.결국 82년에 「주체사상을 신봉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즉흥시가 발각되어 조총련에서 추방된다. 이때부터 허씨는 북한 김일성을 필생의 연구분야로 선택하게 되었다.날조된 김일성 역사를 바로잡는데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고 오직 김일성연구에 전념한지 10여년에 이른다. 그 결과 「김일성평전」(85년)「김일성,하상과 실상」(87년)이라는 저서를 냈다. 미국과 일본의 기존자료외에 최근 개방화 물결을 타고 중국과 구 소련으로부터 많은 자료를 입수 할수 있어 「김일성 연구」를 보다 객관적으로,학문적으로접근할수 있게 됐다는 그의 말이다. 올해 4월부터는 사단법인 외교국방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이장림목사 누군가/신대 중퇴… 「종말론」 번역후 심취

    이목사는 경남 진주출신으로 6·25때 부모를 잃고 진주기독유아원에서 성장했으며 진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68년 서울G신학대 1년을 수료했다. 78년1월부터 88년4월까지 기독교출판사인 「생명의 말씀사」번역부장을 지낸 이목사는 87년5월 미국인 펄시 콜제씨(89)의 저서 「1백가지 천국의 비밀」을 번역출간한데 이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라는 책자를 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소개했다. 주로 가정예배를 통해 「휴거론」을 전도하던 이목사는 신도가 늘자 88년8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자택에 「다미선교회」를 설립했으며 지난해 3월 성산동소재 5층건물의 3∼5층 1백98평을 2억원에 전세내 본부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인 원폭희생자 인권수호 앞장/일 오카 마사하루목사(인터뷰)

    ◎“피해당사자·유족 반드시 보상받을것” 재일한국인 원폭희생자들의 인권수호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일본인 오카 마사하루목사(74·나가사키루터교회시무)는 23일 『한일협정으로 양국간 정부차원의 보상은 끝났을지 몰라도 민간차원의 보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당시 피해를 당한 당사자나 유가족이 일본정부 혹은 고용됐던 기업체를 상대로 보상신청을 하면 반드시 받아낼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퀘이커교도들의 모임인 FOR 초청으로 내한,강연을 위해 1주일 정도 머물 예정인 오카목사는 74년에는 나가사키의 노노구시항앞 미쓰비시사 폐광인 하지마탄광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사망자들의 유골과 명부를 발견,회사측 뿐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하기도 했다.또 「오무라수용소와 조선인 피폭자」「원폭과 조선인」1­5집등 수많은 저서를 통해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일제말기 해군교관으로 일하며 강제로 끌려와 희생된 수많은 한국인들을 눈으로 지켜보았다』는 그가 조선인 원폭피해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난후에도 그같은 한국인들에 대해 일본인들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인도적인 분노를 느껴서였다. 그는 실증적 자료만이 정부나 국민들의 관심을 끌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가사키현 일대를 샅샅이 뒤져 당시 거주 7만한국인들의 거주지별 지도를 완성했다.그러면서 폭심2㎞이내 거주 1만여명은 모두 사망으로 추정,일본정부에 대해 정확한 조사와 사죄및 보상을 끈질기게 주장했다.이같은 행동이 매스컴을 통해 자주 알려지자 대학교수등 지식인들이 적극 참여,65년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회」가 결성돼 지금까지 대표를 맡아오고 있다. 26세때 상처한후 1남1녀를 키우며 홀로 살아온 강직한 성격의 오카목사는 그동안 천황의 상징인 국화무늬가 새겨진 여권으로의 해외여행을 거부,이번 방한이 첫해외여행이기도 하다.
  • 사전선거운동 관련 국민당에 경고 서한/선관위

    중앙선관위는 23일 통일국민당이 최근 ▲정주영대표저서의 무료배포 ▲선심관광및 사은품제공 ▲일당제공등 대통령선거법 위반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며 정대표에 서한을 보내 이를 자제토록 촉구했다. 선관위는 이 서한에서 『최근 국민당의 각급당부가 선거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하고 『앞으로의 선거법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법에 정해진 대로 엄중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선관위는 이어 ▲일당을 주기로 하고 일반유권자들을 동원,입당원서를 받고 연수교육을 실시하는 행위 ▲정책모집광고를 낸뒤 응모자전원에게 소정의 사은품을 제공하는 행위등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촉구했다.
  • 해외무대 먼저서는 연극 많다/극단 무천,일서 창단공연

    ◎중앙무대·극단 미추도 일·러서 호평 외국에서 먼저 공연한뒤 같은 작품을 서울무대에 다시 올리는 극단들이 늘고있다.이는 국내공연을 관람한 외국 극단관계자가 극단이나 개인을 초청,해외공연이 이루어져왔던 그동안의 추세와 구별되는 것으로 우리나라 연극수준과 연극인들의 지위가 높아졌음을 반증하는 현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여름 극단 무천을 만들어 창단공연을 준비해온 연출가 김아라씨는 당초예정을 바꿔 일본에서 오는 10월 28일부터 11월 10일까지 정복근씨의 「숨은물」로 첫 공연을 갖는다.김씨의 이번 일본공연은 작년말 이미 일정이 확정된 것으로 같은 시기에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아시아 여성 연극인심포지엄」의 초청작품으로 선보인다. 김씨는 일본공연을 마친뒤 이를 다듬어 12월4일부터 두달동안 성좌소극장에서 국내 연극계에 「정식신고」를 하게된다. 마임이스트 심철종씨도 지난 3일부터 동경에서 열리고 있는 동경연극제 행사 가운데 하나인 국제전위연극제에 초청돼 다음달 9일부터 11일까지 일본공연을 갖는다.공연작품은 「엘리펀트맨」.심씨 역시 오는 12월 서울무대에 이 작품을 다시 올려 한국연극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한편 이에앞서 극단 중앙무대도 지난 7월23∼26일 제11회 동경 엘리스 페스티벌에 초청돼 서울이 아닌 일본에서 창단공연을 가졌었다. 이밖에도 현재 일본에 연수중인 연출가 이윤택씨는 지난 15일부터 동경에서 공연중인 기시다극단의 「세상이 좋다」(안전이생작)를 직접 연출하는등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극단 미추도 지난달 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태평양연극제에 참가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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