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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도인 채원화(이세기의 인물탐구:150)

    ◎예절과 정성을 달이는 ‘다도연출가’/중·고등학교땐 법관 지망생으로/대학서 ‘공의 철학’인연 불교 입문/42세 연상 효당 스님을 스승·부군으로/결혼후 특봉과정서 ‘다선삼매’ 터득/‘반야로’ 개원하며 전통다도계승자로 ‘반야로’란 ‘지혜’의 ‘반야’와 ‘이슬’의 ‘로’와 함께 차한모금이 한방울의 지혜란 뜻이리라. 한방울 한방울 마시는동안 지혜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초입에 위치한 반야로차도문화원에 들어서면 ‘다도무문’의 서필아래서 승복차림의 원화가 단정하게 정좌하여 차를 거른다. 채정복은 속명이고 주변에서는 그를 ‘원화보살’로 칭한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노동의 ‘칠완다가’에 비친것처럼 원화의 차도는 ‘근육의 뼈가 맑아지고 선령에 통하는 경지’로서 학업을 무르익게 수행한 사람만의 유창한 언변에는 감성과 지성이 넘쳐난다. 그의 인생의 길은 타고 태어난 운명이라기보다 스스로 파란만장을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에게 지기싫어하는 정의감과 옳은것을 위해끝까지 투쟁하려는 앙분과 시시한 것을 외면하는 호불호가 선명하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중고교시절에는 진주시내가 자랑하는 모범생이었고 장래 서울대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이 된다는 대망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진주사범출신인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죄와 벌’이며 ‘전쟁과 평화’ 등 문학서적을 탐독하는 동안 ‘사람은 왜 사는가’‘이세상은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도 결국 죽게된다’는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고교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주변의 친구들이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나만이 홀로 소도시에 쳐진다는 자책감으로인해 염세주의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다. 공부하기가 싫어져서 1년동안 휴학하다가 뒤늦게 연세대 사학과에 진학, 우연히 ‘공’의 철학과 마주친것이 불교에 입문하게된 동기다. 졸업논문 제목은 ‘원효성사의 사회사상사적 소고찰’로 이에대한 자료수집차 처음에는 송광사에 드나들었고 원효불단을 선포한 효당 최범술스님의 명성을 듣고 경남 사천에 있는다솔사로 찾아갔다. 스승과의 첫대면은 ‘거대한 산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으며 박학다식에서 우러나온 고명의 인품에서 그는 ‘그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느꼈다’고 했다. 효당은 ‘원효성사 교학의 복원’에 앞장선 청정한 종교인에다 ‘한국의 차생활사’ ‘한국의 다도’ 등 차전문 저서를 펴낸바 있다. 스승을 만난것은 69년이었고 다음해 대학졸업과 함께 다솔사로 거처를 옮겨 스승과의 평생의 연을 맺게 되었다. 효당과의 사이에 자녀는 남매. ○승복차림 ‘원화보살’로 그는 하맣터면 판사가 될뻔도 했고 대학에 와서는 한태동 교수의 권유로 일본에 유학후 모교의 교수가 될뻔도 했다. 그러나 효당과의 숙세의 인연이 있어 42세 연상의 효당을 스승겸 부군으로 극진히 시봉하는 과정에서 차달이는 법과 철병속의 솔바람소리를 들을수 있게 되었다. 북송 휘종의 ‘대관다론’에서 보듯 ‘차는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고 맑고 아늑한 기운을 준다’는 다선삼매의 터득이었다. ○송광사서 효당과 대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으며젊음의 열기와 객기를 바로 잡아준다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한몫을 하게된다”고 다시한번 권유한 것이 77년에 창설한 ‘한국차도회’다. 다동호인은 다회를 통해 다화를 나누면서 다도의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모임을 이끌어 갔다. 쓰고(고) 떫고(삽) 시고(산) 짜고(염) 단(감) 모든 맛을 지닌 차는 ‘인간성의 평등과 인간생활에서의 중정의 대도를 실천하는 것’이며 ‘광대무변한 대자대비로서 만인간이 향유해야할 무사심의 대화’일 것이다. 산사에서의 만 9년간은 세속을 벗어난 선경의 세월이었으나 효당이 지병으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말할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다솔사를 떠나 거처를 서울로 옮길수 밖에 없었다. 종교적으로 격렬한 분쟁에 휘말린 복잡한 사건때문이지만 “이는 책한권으로도 쉽게 밝힐수 없는 만단의 사연이 깃들어있다”고만 전한다. 서울에 온지 1년만에 효당은 76세를 일기로 79년에 입적,‘원화보살’의 나이 아직 30대 중반에 미치지 못했으나 ‘하늘같고 태산같은’ 효당이 남겨준 차도회를 잇기로 하고 홀연히 차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83년 ‘반야로 모임’ 결성 그는 해마다 4월과 5월사이 지리산으로 달려가 차밭에서 새순을 채취하여 직접 제차에 들어간다. 이른 새벽 이슬을 먹음었을때의 생잎을 가마솥에 찌고 꺼내어 비비다가 다시 구수하게 덖는 부초차에서 섭씨 100도의 끓는 물에다 차잎을 데쳐가며 물기를 빼고 덖고 띄우고 증하는 정제증차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까다로운 전과정을 그는 손수작업으로 이끌어나간다. 색과 향이 뛰어난 이 명차는 효당본가에서만 전승되는 바로 ‘반야로’이다. 결곡하고 야무진 그는 효당의 제자요 부인이라는 자리에서 한치의 누가 되는 일은 한사코 마다하지 않는 단호함을 지닌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드나들던 차인들의 권유로 83년,‘반야로 차도모임’을 결성하고 문화원을 정식개원하여 현재는 해마다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도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일상속에 있으며’‘차는 오며가며 마시는것’이란 효당의 뜻을 받들면서 ‘이무소득의 경지, 즉 무슨 댓가나 찬양을 바라서가 아니라 사람노릇을 하지않고는 배길수 없는 세계’를 굳건히 이어갈 뿐이다. □연보 ▲1946년 경남 진주 출생 ▲1966년 진주여고 졸업 ▲1969년 연세대 사학과 3년재학시 경남사천군 곤명면 원효불교 다솔사입산,효당 최범술문하 입문 ▲1970년 연대졸업 ▲1970∼77년 다솔사체재 ▲1977년 한국차도회 발족(회장 효당 최범술스님),재무이사 ▲1979년 효당입적후 서울체재 ▲1983년 반야로 차도문화원개원(서울종로구 가회동 1­90),원장취임,반야로차도강좌 ▲1992년 연세대 대학원 졸업,논문 ‘초의 선사의 다선수항논’ ▲1993년 반야로차도문화원 안양지부개원 ▲1994년 ‘반야로’차명,특허청에 출원공고 결정 ▲1994년 반야로차도문화원 대구 경북지부 개원,‘전통차도 계승자’로 한양정도 6백년 기념사업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1995년 백두산에서 반야로 차제,사적지답사 및 효당부도참배,반야로차도문화원 제1회 수료식
  • 김치의 지적재산권론/임영숙 논설위원(서울논단)

    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 일전의 일본팀을 응원하기 위해 내한했던 ‘울트라 닛폰’ 회원들이 김치 싹쓸이 쇼핑을 했다는 소식은 복잡한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우리 김치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광이 흐뭇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세계 김치시장에서 한국의 김치를 위협하는 일본의 ‘기무치’가 그 흐뭇함에 그늘을 드리운다.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린 지난 1일 잠실의 한 호텔 면세점 토산품 코너에서는 포장김치가 재고까지 동나 버렸고 이들이 한국에 머무른 3일동안 투숙한 호텔의 본점과 잠실점의 면세점 매출액은 하루 평균 20∼30%(13만달러) 정도 늘어났다 한다.매출액이 늘어난 곳은 물론 김치등을 파는 토산품 코너였다는 것이다. 마침 기상청은 올해 김장 담그기 좋은 시기를 각 지역별로 예보하고 있다.그러나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우리 가정에서 김장을 포기하게 될지 모르겠다.농협을 비롯한 포장김치 업체들은 지난해보다 올해 매출액을 50∼100% 늘려 잡고 김장김치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그만큼 집에서 김치를 담그기보다 상품으로 만들어진 김치를사먹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핵가족화,맞벌이 부부의 증가,청소년 입맛의 서구화,아파트등 주거공간의 변화로 김치보관이 어려워진 점등 때문에 우리 가정에서의 김치 담그기는 이처럼 퇴조하고 있는 추세다.반면 한국 김치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광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울트라 닛폰’ 회원들의 김치 싹쓸이 쇼핑과 일본인들의 한국관광에서 필수코스로 등장한 김치강습은 그 열광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심지어는 김치관광을 왔다가 한국에 몇개월동안 머무르며 본격적으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가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러다간 도자기처럼 김치도 일본에 빼앗길 가능성이 없지 않다.16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조선도자기를 갖는 것이 명예와 부의 상징이 됐다.당시 일본 상류사회의 조선 도자기에 대한 열망은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그래서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으로도 불린다.실제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수많은 조선 도공을 일본으로 납치해갔다. 그 결과 일본의 도자기 산업은 나중 조선을앞지른다.17세기 후반에는 서구와의 무역을 거부한 중국을 대신해서 세계적 도자기 수출국이 된다.이후 100년간 일본 도자기는 유럽을 석권하게 되고 독일의 장인이 일본에 가서 기술을 익힐 정도에 이른다.이 독일 장인은 나중 마이센으로 돌아가 오늘날 독일이 자랑하는 마이센 도자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고 윤용이 교수(원광대)는 그의 저서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에서 밝히고 있다. 도자기와 김치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한국의 1년간 김치소비량 1백50만t중 상품김치는 그 15%인 23만t 정도에 불과하다..또 일본의 1년간 김치 생산량 7만5천t은 한국에 비교할 정도가 되지도 못한다.한동안 일본에 뒤진것으로 알려졌던 김치 포장 방법등도 이제는 많이 개선됐다고 포장김치 업체측은 주장한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고장마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김치의 맛과 특색이 사라진다면 우리 김치는 일본의 ‘기무치’에 얼마든지 추월당할 수 있다. 김치의 상품화와 수출이 더욱 촉진돼야 하겠지만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의 손 끝에서우러나오는 김치의 깊은 맛 또한 가보처럼 전승돼야 하지 않을까.일본인들이 김치를 찾는 것은 획일화된 ‘기무치’와는 다른 깊은 맛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우리는 상품화된 김치에서는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한다.입맛의 차이다. 그 입맛이 바로 우리의 재산이다.김치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가장 자신있게 내놓을수 있는 지적재산이고 그 재산은 고유의 비법을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샤토(성)마다 다른 맛을 지닌 포도주를 내놓는 프랑스처럼 우리 김치도 각양각색의 맛을 계속 살려가야 한다.그런 점에서 가정의 김장 담그기는 계속돼야 할 것이다.
  • 이탈리아 민족부흥운동사/루이지 살바토렐리 지음(화제의 책)

    ◎이탈리아 통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 ‘사상과 행동의 합일’이라는 마치니적 체취를 물씬 풍기는 이탈리아 역사가 살바토렐리의 대표적 저서.이탈리아 관변 역사가들의 역사해석에 맞서 이탈리아의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운동,곧 민족부흥운동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다.그동안 리소르지멘토 과정에 대한 해석은 사보이아가가 이탈리아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했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그러나 살바토렐리는 사보이아가에 의한 이탈리아 통일은 단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계기로만 작용했을뿐 본질적으로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을 계승한 이탈리아 사상가들에 그 핵심적인 맥이 닿아 있다고 본다.밑으로부터의 민주혁명을 이룩하려 했던 마치니와 위로부터의 입헌군주제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 카부르의 관계와 관련,그는 기존의 획일적인 변증법 논리를 타파한다.경험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살바토렐리의 견해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으며,현실적으로 승리한 쪽은 카부르였고 패배한 쪽은 마치니였다. 살바토렐리의 논쟁적인 성향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나폴레옹 3세에 대한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보편적인 혁명이념을 수출해 유럽 각국에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으며,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봉건제 폐지와 교회재산 몰수 등 이탈리아가 근대국가로 가는데 필요한 기초를 닦아 주었다는 논리에 반기를 든다.이것은 물론 무솔리니가 나폴레옹을 우상화한데 따른 반작용의 소산으로도 볼 수 있다.한편 폭군이나 변절자 정도로만 인식되어온 나폴레옹 3세에 대해서는 그를 단순히 우익 보수주의자로만 간주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여 눈길을 끈다.곽차섭 옮김,한길사 1만원.
  • 마지막 제국/폴 마리 드라고르스 저(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몰락’ 위협받는 팍스 아메리카나/개입 명분 ‘민주주의 확립’ 각국 이해는 커녕 반발만/안으론 ‘인종­빈부­지역 갈등’ 로마제국 말기와 비슷 미국은 영원할 것인가.미국은 옛 소련 붕괴 이후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입지를 굳혔다.당분간은 미국에 필적할 만한 초강대국은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폴 마리 드라 고르스는 20세기말에 세계의 주도권을 쥔 미국의 영화가 21세기에도 이어질 것인지에 강력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책 제목에서 보다시피 미국을 ‘마지막 제국’이라고 표현했다.‘마지막’이라는 표현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부제도 ‘21세기는 미국의 것인가?’라고 붙였다.결론도 ‘아니다’이다. 그러면 저자가 주장하는 이에 대한 설명은 납득할 만한가.저자는 ‘정글의 국가’ ‘혁명을 위한 미사’ 등 현대정치 및 현대국가론과 관련 10여권의 저서를 낸 프랑스가 자랑하는 저널리스트이다.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 책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인용,자신의 주장을 펴나간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 대응하는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핵전쟁 등으로 인한 공멸 등의 일반적 논리에 대한 부정으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욱 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저자는 우선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는 미국이라는 전제 아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그는 현재의 미국을 이렇게 설명한다. “공산주의체제가 사라지면서 세계는 보다 단순화하고 있다.그리고 자본주의는 더욱 팽창·발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국가는 자신들의 경제적 모델과 정치적 모델을 의도하고자 하는 대로 어떤 장애도 받지 않고 세계를 상대로 잘 나타내고 또한 잘 발전시키고 있다.바로 오늘날의 미국이다”. 그리고 “걸프전 이후 그들은 거대하고도 영향력있는 모든 방법들을 펼칠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나,그들이 원하는 어떤 곳이면 어디에서나,그들이 원하는 어떤 시기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전지전능한 국가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책서두에서 현대는 이미 핵전쟁은 물론이고 대규모 재래식전쟁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게릴라나 테러리즘도 일부 국지적인 상황에서도 잘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흔히 이야기하는 ‘전쟁으로 인한 세계의 종말을 통한 마지막 제국’에 대해서는 가능성조차 주지 않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 힘의 균형을 잡아주던 옛 소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들,이른바 장래의 강대국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관적이다.다른 사람들처럼 저자도 유럽에 가장 큰 가능성을 두고 있다.그러나 ‘유럽도 미국을 위협하는 상대가 될 수 없다’로 귀결된다.그 전제조건이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유럽통합이 우선 이뤄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러나 그의 유럽통합은 기존의 개념과 다르다.통일의 개념에 가깝다.유럽의 각국이 미국의 연방주같은 형태로 묶인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그러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이같은 형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 미국 라이벌의후보로 자주 등장하는 중국,일본,인도 등에 대해서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무한한 잠재력으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국도 발전 속도가 너무 느리고 강대국의 두가지 조건중의 하나인 경제력에 있어 미국에 버금가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큰 장애물로 보고있다.극단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경제력은 미국을 결코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제국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바로 그 제국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그는 미국을 현대판 로마로 보고있다.지금이 로마제국의 몰락을 갖고온 새로운 중세시대의 시작이라는데서 마지막 제국의 단초를 찾고 있다.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보면 로마제국은 서구의 운명을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후계자들에 의해 동서로 나눠지고 그들 스스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고 이는 유럽을 끊임없이 나누는 중세유럽을 잉태했다.이는 기독교문화가 로마시대 공통의 질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단지 공통의 기준으로만 존재한 사실이 중세를 앞당기게 된 이유라고 지적한다.기독교문화는 제국이 의도한 세계의 평화를 유지시키지는 못했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세계상황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미국이 공통의 질서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 우선 같다고 설명한다.실제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무대에서 모든 형태의 분쟁에 간여하고 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범세계적인 간여는 공통적인 질서유지라는 명목아래 방법에 있어 역시 난폭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측면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각국의 행복,부,개혁 등에 대한 욕구 등이 미국의 민주주의 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으며 이는 각 나라들과 그 나라들에 속한 사회에서 서로를 분리시키는 역할을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특히 미국 내에서 비롯되는 인종갈등,빈부갈등,지역갈등 등도 공통의 질서인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그들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만약 그렇다면 로마제국 말기와 비슷한 양상이 된다. 모든 제국은 멸망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 저자의 이같은 주장이 빈약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기독교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의 통시대적 대비를 통한 초강대국인 미국의 장래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이 이책의 성가를 더욱 높히고 있다. 원제는 Le dernier empire,243쪽,프랑스 그라세출판사,118프랑.
  • 무용가 김말애(이세기의 인물탐구:149)

    ◎혼 깃든 춤사위… 한국춤의 선도자/“한국춤은 얼굴과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 수려한 용모·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을 개척하는 타고난 춤꾼이다” 무용가 김말애가 사진집 ‘춤’을 출간했을때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말애는 끝없이 춤추는 이 시대 서정시인”이라고 했다.흑백사진속에서 그는 마치 수평선을 넘나드는 한마리 새가 되어 ‘살을 푸는 떨림과 한을 푸는 흐름’으로 장면장면마다 선명한 춤선을 그려내고 있다.지난 여름 LA예총 초청으로 ‘회귀선’공연을 가졌을때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운씨가 ‘아득한 꿈길 돌아오는 배’란 즉흥시를 지어 능란한 춤꾼인 김말애에게 헌사했다.‘아득히 끝도없이/꿈이 철철 넘치게/출렁이는 배 하나/지구가 돌아가는 선을 가르고/지금은 어디쯤 어느 물길에/덩실덩실 춤을 굴리나…’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망망대해에 뜬 한척의 배를 인생행로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은 출발도 끝도 없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김말애의 무일물사상을 실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끝없이 춤추는 서정시인”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흔치않은 대형무용가’다.한국춤은 얼굴이 작고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잘생긴 얼굴과 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에서의 ‘정중수로’와 ‘동중백학’을 성취해 보인다.그중에서도 한국춤의 정신을 되살린 창작무 ‘춤을 위하여’는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추게 하며 어떻게 추어야 하는가’를 빠르게 돌아가는 리듬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강철같은 강인함을 엇섞어 내딛는 보폭마다 절륜의 백태를 연출해낸다.또 누구보다 전통춤을 잘 가꾸고 보존시키는 무용가이기도 하다.음악이 춤을 능가하거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음악을 몰고가는 쪽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다른 무용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대성과 참신도를 간직하면서 ‘역동성의 균형’을 포착하는 안무실력이 특징이다. 그는 “춤추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머니 장종숙여사로 인해 춤추게 되었고 그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딸의 후견인이자 열렬한 열성팬이다.여섯살되던 해 삼척읍에 있던 심덕진무용연구소에 데려갔고 “너는 반드시 훌륭한 무용가가 돼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아동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삼척의 택시들을 총동원하여 딸을 태우고 시내퍼레이드를 벌인 일도 있다.이로 인해 “딸을 광대로 만들거냐”고 춤을 반대하던 부친 김태규씨(수산업·89년 타계)마저 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되던 해 서울로 전학,당대 최고의 무용가이던 조택원·김문숙씨 댁에 머물수 있게 도와주었다.그러다가 김백봉의 ‘부채춤’에 반해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무용연구소에 찾아갔으나 스승은 “아무도 너를 추천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남의 제자를 훔쳐온 줄로 알겠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후에 김문숙씨와 ‘춤’지의 조동화씨가 적극 권하여 상명여중 시절에 김백봉 문하에 정식 입문했다. ‘어찌나 춤을 잘추던지’ 무용계의 거봉 조택원씨는 66년,일본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에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제하로 ‘너는 최승희를 능가하는 무용가가 되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백봉 스승은 공연때마다 그를 언제나 센터에 세워주었고 고교 2학년되던 해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무용콩쿠르’에서 특상하여 장학생 특전을 받았으나 ‘김백봉’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이 몸담고 있던 경희대에 진학했다. ○6살때부터 무용 배워 그는 우리 무용사의 신화적인 존재들인 최승희와 조용자,그리고 김백봉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아마도 외모 이전에 예술에 대한 치열성과 자신감때문일 것이다.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타악기·구음 등의 생음악으로 춤의 활력을 작동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지난 20년동안 대학교수로서 예술현장을 지키는 춤작가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기를 서슴지않는 춤꾼으로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으나 오로지 무대에서만 ‘끼’를 펼칠 뿐이며 ‘예술가는 무대에서 빛나야 한다’는 고집을 굳건히 지킨다.그러나 ‘예술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도정에 늘 함정이 도사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나에게는 스승만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나의 제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래서 제자들이 설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에 없이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을 트는가 하면 춤공연을 펼칠수 있도록 춤·타래무용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수많은 춤중에서도 김백봉스승에게 전수한 ‘부채춤’을 빼놓을수 없다.전립의 패영을 늘어뜨린 장삼차림에다 두 부채를 편채 열정적으로 춤추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기상을 보이면서 지음실력으로 인위(인위)와 자연의 극치를 조화시킨다’는 평을 듣는다.지난 8월 LA 윌셔 이벨극장에서 그가 재구성한 일련의 전통춤공연을 펼쳤을때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그의 춤스타일과 그가 구사하는 무용언어가 전혀 새로운 영역의 한국무용이라는 점에서 이런 류의 우리무용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고전제하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부채춤이나 장고춤이 행사나 형식무용이 아닌,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예술로 재인식됐다”고 극찬했다.가족은 사업을 하는 김효영씨와 남매. ○여중때 김박봉 문하생 입문 그는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흥과 청으로 마치 무당처럼 춤추고 억제할 수 없는 벅찬 감동때문에 춤을 추는 동안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남보기에 행복하고 순탄한 역정을 지나친 것 같지만 모든 고통스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예술적 파란과 시행착오를 이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평론가 김태원이 “극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휘몰아갈수 있는 특이한 스타적 재능을 가진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춤을 추는 춤의 완결앞에서 어느때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의지를 지금 만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시기다. □연보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1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1972년 김말애 작품발표회 ▲1973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1976∼현재 경희대 교수 ▲1983년 김말애 창작무용발표회 ▲1985년부터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1986년 뮤지컬 ‘양반전’ 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개막식 ‘차일춤’ 안무,주불대사관 초청 서울올림픽 유럽 홍보공연 ▲1988년 창작무용 ‘애장터’ 안무 ▲1989년 일본 오사카예술대 교환교수,우시마도국제예술제 공연 ▲1990년 춤·타래창단공연 ▲1995년 한국무용제전 참가 ▲1996년 김백봉춤 보존회 열린무대 ▲1997년 ‘아,김백봉무용’ 공연출연,LA한국예총 초청 미주 공연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85년)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안무상·음악상(92년) ▷저서◁ ‘춤’(94년)‘한·중·일 궁중무용의 변천사’(96년)외 논문집 ▷현재◁ 대한무용학회 이사·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
  • 테마관광 개발 지자체 재정확충/진보형 관악구청장(공직자의 소리)

    존 네이스비트는 그의 저서‘글로벌 패러독스’에서 “21세기의 각광받는 산업은 관광산업이다”고 말했다.즉 관광이 경제발전에 새로운 원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관광산업은 세계 최대산업이라 불릴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선진각국은 관광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그동안 정부와 각종 단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외국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보다 우리국민이 외국관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은 우리도 이제 관광산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역내 자원 특성별로 개발 ‘보는 관광’은 이미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지역특성상 개발잠재력이 풍부하다고 보여지는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관악구는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해 21세기 주요 전략사업으로 관광산업을 선정,관내 전지역에 산재해 있는 관광자원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해 특성별로 개발하고 있다.전국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울창한 숲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관악산과 인근에 서울대가 있다는 장점,강감찬장군의 업적이 빛나는 낙성대를 연결한 관광상품개발에 나선 것이다. 관악산에 전통한옥관문과 현대식 휴게소를 건립해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음식 등을 소개하고 아름다운 호수공원 등을 조성해 관광자원화하자는 것이다. 서울대와 낙성대를 잇는 관광코스 개발에도 주력해 낙성대에 세계적인 규모의 강감찬장군 기마동상으로 완공하였고,낙성대입구 관문건립,고려혼례 예식장 재현과 인근에 건립될 구민체육센터,과학전시관등과 연계해 시범적으로 문화의 거리를 조성중이다. ○주민 ‘삶의 질’ 향상에 긴요 이같은 관악구의 노력은 재미와 휴식,행락의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관광테마 창출을 통해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확충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기기위해서는 관광산업의 전략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고 당연하다.
  • DJP단일화 사실상 합의/DJ 후보­JP 총리

    ◎99년까지 내각제 개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대통령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이번 대선에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후보가 되면 자민련이 두당 공동정권의 초대 국무총리를 맡는다는 내용의 권력분점을 골자로 한 단일화 실무협상을 사실상 매듭지은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자민련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25일 실무접촉에서 대부분의 의견접근을 봤지만 내각제 약속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 등 몇가지 미진한 부분이 있어 곧 실무접촉을 갖고 최종 합의문을 작성,교환할 예정”이라며 합의문 초안에 대부분 의견접근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최종 결론은 두 총재간 회동을 통해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고 말해 최종 합의는 오는 3일 김영삼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청와대회동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두 당은 또 독일식 순수내각제 개헌안을 발의해 오는 99년말까지 개헌작업을 마치고,이번에 대통령후보를 양보하는 측이 내각제 개헌후 초대 대통령과 수상의 선택권을 갖는다는데 합의한 것으로알려졌다. 김종필 총재는 이와 관련,이날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고 박정희 대통령 18주기 추도식에서 김대중총재가 박전대통령 저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사실을 상기시킨뒤 “내가 어떤 길을 가든지 직간접으로 나를 성원해달라”면서 “여러분들과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과를 보면 내뜻을 알게 될 것”이라며 내각제 성사를 위한 대선후보 양보 의사를 내비쳤다.
  • “이 총재­YS 틈새 공략” 평가/국민회의 청와대회동 득실 계산

    ◎“PK지역 반DJ정서 완화될 것” 기대/공정선거 신뢰속 대안모색 움직임 경계 국민회의는 24일 청와대회담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연말 대선과 관련, “김영삼 대통령의 ‘완전중립’입장을 확인했다”(유재건 총재비서실장,배기선 대선기획단팀장)는 점에서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자평이었다.김대중 총재 대세론 확산의 계기를 맞았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그 ‘중립확인’의 근거를 김총재의 탐색용 질문에 대한 김대통령의 답변에서 찾고 있다.“(새로운 정국 개편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반드시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거나 돼선 안된다는 생각이 없다”는등 두가지 답변이 그것이다. 나아가 이회창 총재와 김대통령 사이에 깊게 패인 틈을 파고든 것도 부산·경남지역의 반DJ정서를 누그러뜨리는데 일조를 할 것으로 본다. 이날 회담에 맞춰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저서 ‘나의 사랑 나의 조국’과 함께 친필서신을 영부인인 손명순 여사에게 보낸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렇다고 국민회의측이 현재의 유리한대선판도의 변화,이를테면 반DJP연대 가능성에 대해 안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특히 김대통령이 이총재의 대안을 찾으려는 ‘무언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회의측은 김대통령의 공정한 대선관리자역에 대한 신뢰를 전파하고 있다.차제에 이를 기정사실화겠다는 태세다. 김대통령이 ‘무작위의 정치’를 통해 반DJP연대 움직임을 간접 지원할 여지마저 줄이겠다는 셈법이다.
  • 후보들 ‘박정희 출판회’ 몰려

    ◎TK정서 잡기… DJT 한자리 모여 관심 고 박정희 대통령의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의 재출판 기념회가 23일 서울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노철용) 주최로 열렸다.이날 행사엔 최근 거세고 불고있는 ‘박정희 신드롬’을 의식한듯 신한국당 이회창·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 총재,이인제 전 경기지사 등 여야의 대선후보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DJT(DJ+JP+TJ) 연합전선 구축 움직임과 관련,세 주역인 국민회의·자민련 양 김총재와 박태준 의원이 한 자리에 모여 관심을 끌었다.이들은 시종 밝은 얼굴로 상대방 축사시 박수를 아끼지 않는 등 ‘연대감’을 과시했다.그러나 신한국당 이총재는 방명록 서명후 약 8분정도 머물다 떠났고 이전지사도 식순 도중 빠져나가 대조를 보였다.민주당 조순 총재는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했다. 먼저 축사에 나선 JP는 “박대통령께서는 5·16과 3선개헌,유신헌법 등 3번의 혁명을 하시며 오직 조국을 위해 충성과 정성을 바치신분”이라고 추모한 뒤 “나도 박대통령을 따르며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려고 한다”며 은근히 계승자임을 과시했다. 이어 연단에 선 DJ는 박대통령과의 악연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경제건설의 공로와 인간적인 매력을 앞세워 TK 표심에 다가섰다. 이날 행사엔 박대통령의 외아들인 지만씨 등 친인척과 자민련 박준규 김용환 박철언 이정무 국민회의 유재건 김민석 김옥두 의원과 신현확 남덕우 전 총리 및 대구·경북출신 인사들 다수가 참석,성황을 이뤘다.
  • ‘다음’은 이렇게 된다/사카이야 다이치저(미래를 보는 세계의눈)

    ◎일의 미래 사회변화 섬세히 조망/“‘시험의 틀’ 깰 새인재 못키우면 밝은 내일 없다” 주장 일본에서는 행정에서 시작해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6대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개혁 없이는 세계의 흐름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지적은 ‘엄살’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자주 들을수 있다. 출판계에도 개혁을 주제로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웬만한 정치·경제·사회 평론가라면 ‘개혁’을 입에 담지 않는 이가 없는 듯하다. 개혁론의 홍수 속에서도 사카이야 다이치는 돋보이는 존재다.그는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통산성에서 오랜 관료 생활을 보냈으며 78년 퇴임한 뒤에는 경제·사회 분야의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그는 ‘단괴의 세대’,‘지가혁명’ 등 수많은 저서에서 뛰어난 분석력과 미래 예측력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그의 소론 가운데는 주장 당시에는 비현실적이라거나 웃어 넘겨지기도 했으나 5년 10년이 지난뒤 그의 말대로 되거나 하지 않을수 없었던 일들이 많다.이것이 그의 통찰력을높이 평가받게 하고 있다.개혁론이 널리 거론되기 전부터 집요하고 일관되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그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저서가 ‘다음은 이렇게 된다’이다. ○세계가 총자본주의화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다음(미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그리하여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다섯가지의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세계가 총자본주의화하고 있다는 것이다.20세기의 주요한 현상이었던 사회주의는 사라졌다.모든 것은 상품화되고 공급자의 자유로운 경쟁과 소비자의 엄격한 선택에 의해 철저한 효율화와 끝이 없는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아마도 우리나라에도 상당부분 해당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관료는 엘리트 의식에 젖어 국민을 우민시하고 있으며 기업 경영자는 물론 의사도 교사도 농민도 경쟁을 두려워 하고 있다.관료의 규제가 사라지면 엄청난 경쟁에 노출될까 걱정한다. 둘째로는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소자화’현상.이 현상은 단지 사회복지 부담 증가를 넘어 산업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세째로는 보더리스(Borderless)화.국가간에 벽이 거의 없어진다.사람의 왕래가 자유화되고 벽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양식과 사고가 자리잡는다.이 현상을 두려워 해 억제하면 지진국이 되고 만다. 다섯째로는 소프트화이다.단지 정보 통신화를 넘어 소프트 자체가 주요한 상품이 되는 시대다. 사카이야는 일본이 ‘다음’을 맞이하기 위해 버려야할 것도 지적한다. 첫째는 일하는 방법 수준이 아니라 일하는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개혁을 추진할 때면 흔히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관료와 이익 향수자들의 반대가 거세면 착수하기 쉬운 ‘현실적’ 방안들이 모색된다.개혁은 결국 개선이나 개정에 머문다.일하는 방법만을 손대는 정도로는 입구는 활짝 열려 있지만 출구가 없게 된다. 둘째로는 효율,안전,평등을 가장 중요시하는 전후 일본인의 가치관이 자유와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발상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세째로는 ‘원 세트(One Set)’주의를 버려야 한다.일본은 쇄국주의하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자체조달하려는 풍토(원 세트주의)가 조성됐다.전후에도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산업기술,에너지 조달,식량도 모두 다 자체 보유하려 하거나 국내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을 취했다.그러나 이는 외국에 대한 불신감의 표출로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가져 왔다.심지어 원 세트주의는 올림픽 전종목에 선수를 출전시키려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장성이 금융위기 불러 그는 특히 현재의 관료체제가 혁파돼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한다. 시험을 잘 치르면 우수한 인재로 평가되고,그러한 인재들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그 조직이나 기업은 인재가 많다고 평가된다.예를 들면 ‘대장성은 인재가 많다’고 말한다.하지만 사카이야는 시험을 잘 치르는 인재들이 많이 들어간 대장성이 금융위기를 심화시켰고 인재들이 몰려 들었던 석탄산업,영화산업이 변신을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사양화됐다고 지적한다.시험에 뛰어나지만 주어진 틀을 뛰어넘는 창조에는 서투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또 관료들의 국민 권리 침해 행위를 금지하는 공정행정법을 제정할것을 제안하면서 이를 어겼을 경우 ‘5년동안 중앙관청으로부터 5㎞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엄격한 제재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카이야는 대신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일본은 성장시대에 ‘능력은 없지만 의욕은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해 온 경향이 있지만 저성장시대에는 이러한 타입은 위험하다고 말한다.사물을 객관적으로,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재들이 ‘다음’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는 한국에 대입해봐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일본에서는 개혁이 신중하고 완만하지만 에스컬레이션돼 가는 반면,한국은 천둥 벼락이 내려치듯 추진되다가 요즘은 해야 되는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불투명해져 버렸다.눈을 세계로 돌리면 사카이야가 말하듯 혁명에 가까운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수 있는데도……. 고단샤(강담사)간,1천6백엔.
  • 경제위기 돌파구 저축(눈높이 경제교실)

    ◎올 저축률 30%선… 2년연속 하락 예상 올해 저축률이 지난해에 이어 떨어질 것 같다.2년 연속 하락이다. 그 수준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30%를 약간 웃도는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저축률은 95년 36.2%에서 지난해 34.6%로 떨어졌다. 저축률과 투자율은 93년 균형상태(각 35.2%) 이후 94년에는 0.8%포인트,95년 1.2%포인트,96년 4.0%포인트 등으로 투자율 우위의 격차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저축률이 투자율에 못미치면 국내업체들의 자금조달난은 더 심화된다. 다른 경제지표와 달리 저축률은 월별 또는 분기별 집계를 내지않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올 연간 저축률을 추정하기는 힘들다.그러나 지난 해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징후는 몇가지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인한 재벌기업의 연쇄부도 여파 등으로 소득 증가율이 지난 해보다는 둔화될 것 같다”며 “그런 데다 지금까지 추세로 보면 올 연간 소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해 저축률이 하락할 것임을 시사했다.재정경제원 관계자도 “경기불황으로 전반적인 과소비 풍조는 진정되는 모습이나 연말에 가봐야 고급 사치품의 수입추세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소비가 둔화됐다고 단정짓기 이르다”며 “올 저축률이 지난 해보다 떨어질 것은 분명해 보이며 30%선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외적 요인으로 보아도 저축률은 선진국으로 진입할수록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경제성장률의 둔화와 고령화에 따른 부양가족 증가,사회보장제도 확충,소비자금융의 활성화 등이 저축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94년의 경우 일본은 31.3%의 저축률을 기록했지만 미국은 15.8%,캐나다 16.7%,영국 13.6%,프랑스 19.2%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저축률 하락추세에 맞춰 업계의 무분별한 투자행태도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오승호 기자〉 □의미·결정요소 요즘 우리 경제는 위기라고 표현될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경상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연초 이래 대기업 부도가 계속 발생하여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국가신인도 자체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상황마저 불투명해 과연 우리 경제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경제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찾을수 있을지 안팎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정기간 소득중 쓰지않고 남은 부분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수 있겠지만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우수한 인적자원과 높은 저축률이다.사실 우리나라의 총저축률(=총저축÷국민총가처분소득)은 경기변동에 큰 관계없이 30%를 웃돌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과연 저축이란 어떠한 역할을 하길래 우리 경제를 밝게 보는 근거가 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저축이란 일정기간동안 벌어들인 소득중에서 소비되지 않고 남은 부분을 의미한다.우리가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소비를 통해 보다 많은 만족을 얻고자 함인데 왜 사람들은 저축을하려는 것일까.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축을 하는 동기는 자녀교육비 마련,재난 대비,주택 마련,노후생활 안정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이처럼 동기는 다양하지만 저축은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대신 이것을 미래의 소비에 충당함으로써 전생애에 걸쳐 만족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된다.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소득 모두를 소비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득 가운데 얼마를 저축하는 지는 사람마다,또 국가마다 다르다.소득 가운데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인 저축률은 어떠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노·소년층 비율 높을수록 저축률 하락 저축률은 국민성,사회분위기 등 심리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중국 화교가 상권을 쥐고 있는 일부 동남아 국가나 2차대전 후 일본과 독일의 예에서 보듯 근검절약하는 국민성을 가진 국가의 저축률은 높다.인구구조도 저축률에 영향을 미친다.주로 소비만 하는 노년층과 소년층의 비율이 높을수록 저축률은 하락하고 청장년층의 비율이 높을수록 저축률은 상승한다.또 의료보험,연금제도 등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으면 개개인은 노후생활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 등에 개별적으로 대비해야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저축률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역할 ○자본축적과 생산능력 높이는 견인차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인 저축은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볼때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저축의 국민경제적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먼저,저축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견해로 ‘저축은 미덕’이라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사고를 대변하는 것이다.이는 경제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전개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국부란 그 나라가 얼마만큼 생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생산능력은 생산에 필요한 요소,즉 노동과 자본의 축적 정도와 그 이용가능성에 좌우된다고 했다.이들 생산요소 가운데 자본의 축적은 투자에 의해 달성되며 그 투자에 필요한 자금은 저축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저축은 자본축적과 생산능력 확충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다시 말해 저축이 늘어나면 투자가 확대되어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이는 다시 저축의 증가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된다.아담 스미스는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낭비하는 자는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공공의 적이라고 하였다. 반면 과도한 저축은 경기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이는 1930년대에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의 처방전을 제시했던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Keynes)에 의해 주장된 것이다.그는 저축의 역할을 투자의 재원이라는 측면보다는 소비를 감소시키는 측면에서 생각했다.다시 말해 저축이 증가하면 자연히 소비가 감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생산활동을 위축시켜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만일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기 위해 외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게 되고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직장을 잃게 된다.이제 실업자가 된 식당 종업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누군가는 다시 직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케인즈는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착실히 저축하는 사람보다 국가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하는 셈이라고 주장하였다.이러한 견해는 바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논리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소비 감소시켜 경기침체 불러올수도 이처럼 저축의 역할에 대한 견해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견인차를 소비로 보느냐 아니면 투자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케인즈는 소비 역할을 강조하였고 아담 스미스는 투자의 역할에 더 큰 점수를 주었다.그렇다고 케인즈가 투자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다.단지 투자는 정부가 공공사업 등을 통하여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민간은 소비를 늘려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면 된다고 보았다.그러나 과거와 달리 전체 경제활동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민간부문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투자활동도 정부보다는 기업이 주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현황 우리나라는 지난 30여년간 연평균 8%가 넘는 고도성장을 지속해 온 결과 가난한 농업국에서 작년 말에는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이러한 고도성장의 배경에는 높은 저축률에 의해 뒷받침된 왕성한 투자활동이 자리잡고 있다. ○80년대말 40%선서 작년 34%로 하락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저축증대운동이 구시대의 낡은 유물쯤으로 격하되고 과소비 풍조가 확산되면서 저축률이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40% 가까이 이르렀던 총저축률이 작년에는 34%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이처럼 저축률이 하락함에 따라 투자재원을 국내에서 전부 조달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큰폭의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졌다.이렇게 볼때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상당부분은 투자재원으로서의 저축의 중요성을 간과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저축은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가를 안정시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아무리 금리가 높더라도 물가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적인 이자수입이 줄게 되므로 저축이 늘어나기 어렵다. ○국민들 절제된 소비습관 길러 나가야 이와 함께 부동산투기 억제시책을 통해 불로소득의 기회를 차단하는 한편 금융규제를 꾸준히 완화 또는 철폐하여 금융기관이 새롭고 다양한 저축수단을 개발·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이와 함게 국민들 모두 아직은 허리띠를 풀 때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고 절제된 소비습관을 길러 나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하겠다.
  • 초비만 초중고생(외언내언)

    신문이나 잡지 TV는 하루도 빠질 날없이 ‘살빼기’와 관련된 다양한 광고를 내보낸다.효소요법에서 포도요법, 약물 크림요법에다 초음파분해술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요법이 다 등장한다. 살을 빼려고 굶다가 거식증에 걸리거나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수도 있다. 스크린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대까지만 해도 50㎏을 유지하면서 화사한 자태를 마음껏 뽐냈다.그러나 리처드 버튼과의 결혼 이혼 재결합 등의 얽히고 설킨 과정에서 나이 50이 되자 80㎏이 넘는 뚱보로 변했다. 비만의 원인은 폭음과 약물중독으로 인한 섬망증(delirium )이었고 수년간의 악전고투끝에 55세가 넘어서야 55㎏의 체중을 되찾았다.금세기 최고의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도 못생긴 용모를 스스로 자책하여 비만이 되었고 오페라공연을 앞두고 30㎏의 체중을 줄여 화제가 되곤했다.미국의 거부 메네기니를 만나 남편이 정성껏 돌봐준 덕분에 한동안 ‘요염한 미모’를 유지했지만 그후 오나시스와의 비련으로 비만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외롭게 죽어갔다. 교육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해초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한 질병검사결과 검사학생 7백80여만명중 6만6천900명이 ‘고도비만(초비만)’이라는 것이다.비만은 신장별 표준체중에서 20∼30%가 넘으면 ‘경도비만’,30∼50%가 무거우면 ‘중도비만’,50%이상이면 ‘고도비만’이다.비만의 원인은 가정과 학교에서의 갈등이나 소외감이며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폭식습관이 생기는 모양이다.미국에서는 단지 살빼기를 위해 한해 3백30억달러(약25조원)를 쓴다니 비만의 심각성은 국제적으로 위험수위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의 저서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산업사회이후 인류가 배고픔에대한 문제로부터 해방되자 생물학적 유산에 의해 비만이란 새로운 문제가 야기됐다’고 지적한다.음식을 먹을 때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포만’을 자제하고 걱정근심을 잊기위해 먹는 방법은 ‘비만’을 만들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모든 것을 다가져도 건강이 없다면 무의미하며 건강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경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 “도덕기준 없는 현대는 재난시대”/매킨타이어 교수의‘덕의 상실’

    ◎기술만능 논법에 인간미 사라져/서양의 근대사 개인주의로 재구성 덕이 실종된 기술만능시대,우리는 어떻게 잃어버린 덕을 되찾을수 있을까.인간의 모든 행위가 비도덕적인 관점에서 파악되고 정당화하는 기술시대의 논법을 따른다면,이런 질문은 절망적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역사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삶으로부터 유리된 기술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유령’에 불과하다.때문에 우리의 정체성 찾기는 그만큼 모호해질수 밖에 없다.도덕적 다원주의 시대 공동선의 문제를 탐구한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교수(68·미국 듀크대)의 대표적 저서 ‘덕의 상실’(원제 After Virtue,이진우 옮김)이 문예출판사에서 나왔다. 매킨타이어는 하버마스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도덕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설명되는 서양 고유 전통으로서의 덕을 강조하는 그는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이 빛을 잃어가는 현대사회를 ‘도덕적 재난의 시기’로 규정한다.이러한 위기는 자기 자신과 타인,삶과 사회를 도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어휘들이 아무런 공분모도 갖고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매킨타이어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나에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심미적 주관주의로,사회의 차원에서는 ‘성공적인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관료제적 합리주의로 양극화한 현대 서양사회는 일종의 ‘유령적 자아’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유령적 자아는 자신이 처해있는 구체적 시간과 장소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가질수 있다고 믿는다.역사적 맥락을 부정하는 그러한 자아는 결국 유령적일 수 밖에 없다는게 매킨타이어의 지적이다. 이 책은 제9장 ‘니체인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인가’를 축으로 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전반부에서는 덕에 관한 체계가 상실된 이후의 상황을 역사학·사회학 등을 포함하는 학제간 연구형태로 분석한다.후반부에서는 현대의 개인주의를 근대 계몽주의시대의 서양역사의 한 부분으로 재구성,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덕윤리를 모색한다.
  • 서예가 이미경(이세기의 인물탐구:146)

    ◎글씨마다 유·절·곡… 궁체의 대가/획과 여백이 미 조화 붓끝에 예술혼 담아/작품 미·캐나다박물관 소장 ‘국제 서도인’ ‘멀고 먼 서법의 길/가도가도 끝없어라/지름길 따로 없어/한 골로만 모는 채찍/외로운 발자국마다/내모습이 찍힌다’ 한글서예중에서 궁체의 우뚝하고 독보적인 존재인 꽃뜰(하정 이미경)의 시조 ‘서법의 길’ 전문이다.그는 틈틈이 남모르게 써온 시조들을 모아 지난 여름 ‘붓끝에 가락 실어’란 제목으로 시조집을 엮어냈다.서여기인이라면 시·서·화에 능한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서예가의 타이틀로 시조집을 펴낸 것은 아마도 꽃뜰이 처음일 것이다.그의 글씨만큼이나 시조 또한 구절구절 영롱하고 근엄하여 마지막 이조여인의 기개인 ‘양반은 외부의 자극에 함부로 동하지 않는다’는 ‘강류석부전’을 굳건히 지킨다. ○‘붓끝에 가라길어’ 시조지보 꽃뜰은 바로 한글서예에서 갈물체를 이룩한 이철경(전 금란여고 교장)의 친제이다.언니인 갈물과 비슷한 시기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으면서도 결혼생활로 한동안 서단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그의 성격이 남앞에 나서기를 꺼려하여 지금까지 신문이나 잡지에 개인적 풍모가 소개된 적도 드물다.그러나 서예계 원로들이 한글서예를 말할때 ‘꽃뜰’을 으뜸으로 점치면서 일중 김충현은 그가 발간하는 ‘서법예술’에다 ‘꽃뜰의 궁체’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명한 바 있다.‘고통을 인내할줄 아는 한국여성 특유의 자세로 고전을 발굴하여 계승시킨 여사의 궁체는 아담하며 청초하면서도 그 운필은 찬연하고 풍격은 고고하다’고 했다.우선 그의 글씨에서는 ‘향기’가 우러난다.그의 아호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뜨락이기 때문인지 그가 펼치는 글씨는 한다발의 백매나 홍매,어느때는 모란향같은 기품이 은은히 풍겨나온다. 글씨를 쓰는데 있어 한자는 획수가 많은 편이어서 공간처리가 용이하지만 한글은 획수가 적어 여백처리가 난해한 편이다.이른바 그림에 비유한다면 한글서예는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에 비유되고 한자는 화면을 꽉채우는 서양화에 가깝다.그래서 획과 여백의 비중을 똑같이 배분해야만 치졸이 배제된다.여백처리에서 만약 실오라기만한 틈새를 보여도 궁체가 지니는 특징은 삽시에 소멸된다.백낙청이 ‘비파행’에서 비파소리를 ‘은쟁반에 떨어지는 옥구슬’이라고 했듯이 ‘그의 글씨야말로 옥구슬 금구슬을 꿰어낸듯 오색광채를 발한다.글씨가 구슬인 것은 꽃뜰의 글씨를 보면 실감된다’는 평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특히 이은상의 ‘만폭동팔담가’며 2천여자가 넘는 ‘관동별곡’,동해에서 해뜨는 광경을 보고 쓴 ‘동명일기’ 등은 10곡병풍을 펼치는 순간 문자그대로 ‘보석이 쏟아지는 현란한 현기증’이 느껴진다.글씨마다 흐르고(유) 맺히고(절) 감돌고(곡) 굽이치면서 정자에서 흘림,진흘림과 반흘림이 초성에서 종성까지 반듯하게 대맥을 이어나간다.그리고 어느 글씨를 쓰든 글씨의 결론은 그것이 예술답게 아름답다는 정답을 얻어내고야 만다.시조시인 정완영은 꽃뜰의 서체에 대해 ‘이분은 청산 한나절 넉넉하게 기대앉은 초가삼간처럼 한유해 보이면서도 자강불식의 심락을 누리는 그림같은 분’이라고 했다. ○이화여전땐 피아노 전공 본래 그의집안은 강원도 원주이지만 한성의학교(서울대 의대전신)를 나온 부친 이만규씨가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4녀2남중 위로 세 언니와 오빠는 개성출신이고 부친이 다시 서울 배화학교 부교장에 부임하여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서예를 하게 된 것은 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편지쓰실때 글줄이 자를 대고 줄친 것처럼 고르게 뻗은 봉서의 흘림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다.성격이 강명한데다 필재가 뛰어난 것을 보고 부친이 붓을 잡고 천자문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14살 되던해 ‘애련설’을 써서 교내습자대회에서 입선하자 더욱이나 글씨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배화학교 졸업후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그의 음악공부가 글씨쓰는 일에 특별한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이른바 문자예술에서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덧칠하지 않는 일회성,생체리듬과 음악의 리듬같은 율동성으로 작품을 이루는 순간의 서법등이 음악을 이루는 과정과 같은 맥락을 지녔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학졸업후 서울공대 출신인 남상인씨(전 서울공대 교수)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의 홍제동한옥에 정착하면서 시할머니(57년 91세로 작고) 시어머니(93년 97세작고)를 모시고 사는 엄격한 시집살이를 감당해왔다.그의 고옥은 초가을인데도 녹음이 창연하고 청결한 한복차림으로 그는 마루에 나앉아 아침나절이나 마음이 움직일때 붓을 잡는다.요즘은 주로 자작시조를 서두로 잡고 있다. 언니인 갈물이 갈물회를 발족한 것은 58년이고 그는 50대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서예활동을 시작하여 갈물회 정회원이 된것은 72년이 처음이다.그때 글씨를 회원전에 내놓았고 ‘유독 그 영롱한 필체가 돋보여 뭇시선을 끌었다’고 생전의 갈물이 자랑한 바 있다. ○‘궁체서예의 제일봉’으로 아직도 꼿꼿하고 청청한 그는 ‘한글서예의 우뚝한 존재’임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글에 대한 예술성은 10년정도의 서력으로는 인지하기 힘든 경지이며 보통 30년정도의 서력을 길러야만 서예와 서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고 ‘서예의 대가가 시조의 신인’이 되어 ‘서중유시’를 이뤄낸 것이다.한연대가 흘러가면 한사람의명인에 의해 그 시대의 정서가 아로 새겨지듯이 일중은 번뇌를 해탈하는 ‘오도일이관지’에서 따온 ‘일이당‘을 꽃뜰의 당호로 내려주면서 ‘궁체서예 제일봉의 외로움’을 격려해 마지않았다. 무현고금이라고 했던가.‘줄이 없어도 울리는 거문고’처럼 그의 시서 쌍전은 혼탁한 진토속에서도 백옥같은 빛을 발하며 먼 훗날에도 그의 붓끝은 심혼의 절조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연보 ▲1918년 서울 출생 ▲1936년 배화여고 졸업 ▲1940년 이화여전 기악과 졸업,미세스 골먼에게 피아노 사사 ▲1958년 갈물서회 발족 ▲1954∼63년 이화여중 서예강사 ▲1970∼74년 서울YWCA 서예반 강사 ▲1972년부터 갈물서회 회원전출품 ▲1974년부터 갈물회 대표 ▲1977년 미국 워싱턴 시카고 LA 샌프란시스코 ‘한글서예’전시 ▲1982년부터 신사임당상 수상,한국미술협회 회원 ▲1983년 ‘갈물 이철경­꽃뜰 이미경’자매전(캐나다 토론토,미국LA) ▲1986년부터 국제서도회 이사 ▲1987년 꽃뜰 이미경 서예전(백악미술관) ▷작품소장◁ ‘동유기(동유기)’(예술의 전당)‘만폭동 팔담가(만폭통 팔담가)’(세종대왕 기념관) ‘한국 여성서체’(미국 시애틀박물관)‘오우가’(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속미인곡’(캐나다 로열박물관)외 ▷저서◁ 갈물 꽃뜰 공저 한글’(81년) 꽃뜰 이미경 쓴 ‘한글서예’(82년) 이미경 시조집 ‘붓끝에 가락 실어’출간(97년 토방출판사)
  • 표심끌기 이벤트… 10월이 뜨겁다/대선후보들의 승기잡기 전략

    ◎이회창­권역별 전진대회… 대쪽이미지 복원/김대중­영입인사 입당식… 대세론 확산 주력/김종필­대규모 기획단 출범… 상품성 높이기/조순­대학로 사인회·직능단체 순회강연/이인제­영남지역 돌며 신당바람 일으키기 여야 각 후보는 10월 한달을 대선정국의 결정적인 분수령으로 판단,각종 이벤트를 마련하거나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에 주력하는 등 표심잡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한국당은 10월 한달에 사활을 걸고 있다.조속한 시일안에 반전의 기회를 잡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의 2강 구도로 몰고 가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최근들어 7.21전당대회후 2개월 동안의 난맥상과는 다른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우선 이회창총재는 6일 총재비서실장과 특보단 인선을 마무리하고 집권당후보로서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정책 차별화에 주력할 생각이다.기조는 ‘대쪽’이미지 복원에 맞춰놓고 있다.물론 주제어는 이총재가 총재취임사에서 언급한 ‘국가대혁신’과 ‘국민대통합’이다.그러나 국면을 일거에 반전시키기 위한 ‘깜짝쇼’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김영삼대통령과의 ‘건설적 차별화’를 통해 집권 청사진을 밝힌다는 게 요체다.지역균형개발 전략,노사관계 대혁신 프로그램,21세기형 환경과 복지정책 등이 정책이벤트의 큰 줄기들이다. 이와 함께 대구 전당대회의 열기를 전국에 확산시키기 위해 오는 15일 경기도를 시작으로 이달말까지 권역별 필승전진대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야권은 처한 입지에 따라 10월 정국에서 각기 다른 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여론조사상 선두를 지키고 있는 국민회의는 대세론 확산 차원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우선 10월 중순께 물밑 영입교섭을 펴온 인사들에 대한 성대한 입당식을 치른다. 대어급은 없으나 전직 장성과 관료 등 20∼30명선이 거명되고 있다.전 안기부 기조실장 엄삼탁씨,3공시절 중앙정보부 수사국장을 지낸 이용택 전 의원과 경찰청장 출신 L모씨 등이 포함돼 있다. 국민회의측은 10월정국에서 이들 공안·정보통을 우군으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에게 보수층 직능조직 공략과 있을지도 모를 색깔공세에 대비하는 공수양용의 ‘비밀병기’역을 맡긴다는 얘기다. 또 오는 7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와 인터뷰를 갖는 등 주요외신들과의 잇단 회견을 가진다.대세론 확산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자민련은 DJP 후보단일화 협상채널은 유지하면서 김종필 총재의 독자후보로서의 상품성을 높이는데 주력할 방침이다.20일께 대규모 대선기획단을 띄우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후보단일화 협상 자체가 DJ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JP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제 후보와의 지지층이 겹치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보는 민주당도 분위기 몇가지 반전용 카드를 마련중이다.이를테면 이달 하순께 조순 총재가 대학로 등에서 저서인 ‘한국경제개조론’ 사인회를 갖는다.직능단체별 강연도 게획하고 있다.젊은층을 파고들면서 ‘경제대통령’이미지를 전파하기 위한 수순임은 물론이다. 이인제 후보는 이달말 신당 창당을 앞두고 부산,대구지역을 돌며 창당발기대회,창당결성대회 등을 통해 ‘신당바람’을 일으켜 지지율 회복을 노린다는복안이다.
  • 일제잔재/유만근 성균관대 교수(굄돌)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기간은 불과 35년 미만이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남긴 흔적은 여기저기서 좀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그중 언어에 관련된 것만 보아도 한두가지가 아니다.일본이 학교교육을 통해 독일을 예찬하고 프랑스를 악평하는 편협성을 보인 바람에,우리나라 노인들은 아직도 그 두나라에 대해,어려서 배운대로,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그리고 외국어로서 불어보다 독어를 더 많이 배우는 나라를 이 세상에서 한국 말고 다시 찾기 어려운 것도 다 일본시대 유산과 광복후 우리의 무심 탓이다.지금은 일본조차 독어보다 불어를 더 배운다. ‘인왕산’이 일정시대에 ‘인왕산’으로 둔갑했다가 최근에 ‘인왕산’으로 회복되었는데,‘중량교’는 아직도 ‘중랑교’로 둔갑한 채 쓰이고 있다.서울 ‘다릿골’(교곡)은 한자로 획수가 많다고 획수 적은 ‘월곡’으로 바꾸고,“‘다릿골’이나 ‘달골’이나 그게 그것 아니냐”고 모욕적으로 나왔다 한다.1939년에는 조선총독부가 당시 경성방송국에 날벼락 명령을 내려,‘동경,이등박문…’을 전에 없이 일본한자음으로 읽으라 했다.그때 제2 방송과장 심우섭은 이것이 당치않고 불편하다고 거세게 항의하다가 여의치 않자,집에 와 사표를 써서 우송하고 방송국에 출근하지 않았다.그 해 9월10일에 결국 사표가 수리되었다.그때부터 방송에서 생긴 일본음 혼용관행이 ‘중낭교’처럼 내내 뻗쳐오는 중에,지난 9월 18일에는 KBS보도국이 ‘북경,강택민…’대신 중국한자음을 채택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는데,참으로 어이없는 잘못이다. 이웃나라 간에 현지원음 사용은 식민지가 아닌 한,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이다.현지원음주의라는 역사상 일찍이 문화교류가 없던 지구 반대편 나라끼리,편리한 딴 어형을 도저히 달리 찾을수 없을때,할 수 없이 채택하는 가장 불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이렇게 보이게,안 보이게 우리를 휩싸고 있는 일본 식민지 잔재를 우리는 언제나 다 벗을꼬?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10∼11월에는 곽배희·김종환·유만근·임정규씨가 맡습니다. ▲곽배희(51)=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이화여대 법학과,동 대학원 사회학과 졸.기독교방송 PD 역임.저서 ‘남편은 적인가 동지인가’. ▲김종환(40)=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서울대 전자공학과,동 대학원 박사.로보틱스 전공. ▲유만근(58)=성균관대 영문과 교수.국제음성학회(IPA)평생회원.서울대 영문과,동 대학원 석사.저서 ‘한글·로마자 대조표기 서울말 발음독본’ 등 다수. ▲임정규(55)=한국수자원공사 사장.중앙대 행정학과 졸,미국 뉴욕대 국제정치학 수료.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특별보좌역.동부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역임. 지난 8∼9월 수고하신 박경미·이승복·조남진·한만진씨께 감사드립니다.
  • 찰스 패너티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미 대중문화 유행과 쇠퇴 생생히 그려/‘놀줄 아는 사람들’이 ‘베이비 붐’을 낳기까지/생활유형·행동규범의 변천 10년단위 정리 현대적이고 독자적인 미국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베이비 붐 시대로 불리는 1950년대까지 미국 대중문화의 변천사를 한 눈에 살필수 있는 인문교양서가 나왔다.미국 작가 찰스 패너티가 지은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1·2권,이용웅 옮김).이 책 역시 ‘배꼽티를 입은 문화’‘뜻밖의 이야기’ 등 패너티의 저서들을 독점 출판해온 자작나무에서 펴냈다. 돌이켜 보건대 인류는 그동안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처음에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더니(호모 하빌리스),여러 도구를 능숙하게 만들게 되고(호모 파베르),척추를 꼿꼿이 세워 뛰어 다니다가(호모 에렉투스),온갖 지혜를 쥐어짜는 단계를 넘어서서(호모 사피엔스),이제 와서야 ‘놀 줄 아는 사람’ 즉 호모 루덴스로 진화한 것이다.이 책은 바로 이 ‘놀 줄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189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890년대는 미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은둔적이고 순박한 빅토리아식 생활유형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미국식 행동규범과 미국문화가 움트기 시작한 과도기였다.그런 만큼 보통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열렬한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폴 라파르그가 주창한 ‘게으를수 있는 권리’라는 명제에 공감하기 시작했으며 ‘여가’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이러한 변화는 갖가지 오락과 유행 등 대중문화가 펼쳐질 무대를 제공했다.삽화가 찰스 다나 깁슨이 미국을 대표할 만한 여인상으로 소개한 ‘해방처녀’ 깁슨 걸(Gibson girl)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이마 위로 높게 빗어 올린 팜파도어식 머리 스타일과 꽉 죈 허리선이 도드라진 깁슨 걸을 모방하기 의해 미국 여성들은 무던히도 애썼다.전국적인 자전거 열풍 또한 빼놓을수 없는 현상이었다.해리 대크리의 ‘데이지 벨’을 비롯,‘더 사이클 맨’‘블루머 행진곡’등 자전거 예찬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한편 1895년에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소설이 등장했다.조지 뒤 모리에의 로맨스 소설 ‘트릴비’가 그것이다.이 책은 ‘빌트리’‘드릴비’등 트릴비의 이름을 흉내낸 유사소설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전 미국을 석권했다. 1900년대 미국의 이미지는 ‘빨리 빨리’라는 말로 압축 표현된다.‘시간관리’ 세미나까지 성행했다.그 무렵 미국이 움직이는 속도는 음악용어에 빗댄다면 ‘알레그로 콘 브리오’,곧 생기 넘치고 빠른 템포였다고 할 수 있다.이 시기에는 시어즈,로벅,몽고메리 워드 등 대형 통신판매회사들의 우편주문 시스템이 가동돼 소비사회의 특징인 쇼핑문화가 싹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5센트 영화관인 니클로디언(nickelodeon)이 번창했고 데이지 공기총 등 어린이 장남감이 폭발적인 수요를 누렸다.1990년대 말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칠면조 트로트·회색곰 춤 등 애니멀 댄스가 유행했다.이밖에 여성이 소설의 주요 독자로 등장하면서 여성작가가 여성독자를 상대로 여성의 이야기를 쓴 이른바 ‘해피니스 소설(happiness novel)’이 선풍을 일으켰다. 1910년대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미국의 대중문화를 유럽대륙에 전파시키는 계기를 마련,대중문화도 수지맞는 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테다 바라라는 요부스타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으며 ‘리바이어던’‘타이태닉’‘퀸 메리’ 등 호화유람선이 등장했고 헨리 포드에 의해 자동차가 대중화됐다. 1920년대 미국에는 급진적인 자기표현과 냉소주의가 팽배했다.특히 머리를 짧게 깎고 가슴을 동여매 남자처럼 하고 돌아다니던 ‘자유처녀’ 플래퍼(flapper)족의 등장은 파격적이었다.마라톤 춤시합,갱들의 전쟁,금주법에 따른 주류 밀매업 등이 시대를 장식했으며,흑인들이 작곡·제작·연기를 맡은 뮤지컬 ‘셔플 얼롱’이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히트하는 등 재즈가 전국을 휩쓸었다. ‘흔들리는’ 1930년대는 라디오와 영화의 황금시대였다.대공황으로 생긴 3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들이 라디오와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다.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매주 평균 8천500만명이 영화를 보기 위해 25센트의 요금을 선뜻 내놓았다.인생의 달콤한 신비를 찬미하는 지네트 맥도널드의 영화나 ‘피버 맥기와 몰리’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화제였다.또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출간 6개월만에 100만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한편 1940년대와 1950년대는 각각 나일론과 컬러 텔레비전이 첫 선을 보인 시대로 특기할 만하다.
  • 백제관음(외언내언)

    ‘머리에는 반원형의 꽃무늬 보관을 쓰고 가슴에는 크고 둥근 꽃판을 단 목걸이 장식.왼손은 목이 긴 정병을 쥐었으며 오른손은 그대로 내려서 천의를 잡고 있다.‘수직성과 숭고성의 미감’으로 고졸청아한 기품을 완성한 것이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프랑스정부가 제정한 ‘일본의 해’를 맞아 지난 10일부터 파리 루브르박물관 드농관 특별전시실에서 선보인 ‘구다라간논(백제관음)’의 모습이다.프랑스언론들은 일본미술의 정수를 알기위해 ‘절대 놓쳐선 안될 전시회’라고 선전하는 모양이다.‘구다라(백제)’란 이름 자체가 반증하듯이 ‘백제관음’은 6,7세기경 백제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옮겨졌다는 것과 아스카(비조)시대 일본에 온 백제인이 만들었다는 설등이 있다.일본 상지대 무토 마코도(무등성) 교수는 백제의 성명왕이 불상과 건축가를 보내와 그때 불상을 처음 본 일본인들은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미술을 더 사랑하던 일본의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는 1922년 그의 저서에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보중의 국보들은 대부분 한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들은 일본의 국보라기보다 조선의 국보로 불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쓰고있다. 우리의 고미술에 대해 끈질기게 연구해온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존 카터 코벨 박사도 84년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이라는 책에서 “일본 법륭사 금당의 ‘백제관음’이 백제의 공예품임을 말해주는 불변의 단서는 머리에 장식된 ‘보관’이 백제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연화당초 문양과 똑같다는 점”을 예로 들고 있다.1천300여년간 ‘백제관음’이란 명칭이 고수됐다면 그처럼 이 불상과 백제간의 특수관계를 말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 사회생태론의 철학/머레이 북친 지음(화제의 책)

    ◎미 환경운동가 북친의 환경철학 소개 ‘탈빈곤의 무정부주의’‘생태사회를 향하여’‘자유의 생태학’‘도시없는 도시화’‘재주술화된 인간’등의 저서를 낸 미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 머레이 북친(76)의 환경철학을 소개.북친의 사회생태론은 지난 64년 처음으로 선보인 이래 다양한 이론적 논쟁과 세계관의 대결을 치러내야 했다.이 책은 그 가운데서 주로 북친 자신이 스스로 생물중심주의,반인본주의,기계론적인 자연과학으로 전락한 영성적 기계론 등으로 부르고 있는 이론들과 베이트슨,카프라,프리고진,포맨 등 여러 학자들과의 논쟁을 다룬다. 북친은 현재의 환경문제는 자연과 사회를 별개의 범주로 보는 기존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이런 전제에서 그는 생태문제의 틀과 사회구조,그리고 사회이론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사유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이 과정에서 그가 도출해낸 결론은 변증법적 자연주의 또는 생태적 변증법이다.북친은 사회생태론의 철학적 기초인 변증법적 자연주의를 통해 녹색의 사유체계와 생태담론이 점차 구체화되고 분화되는 과정을 살핀다.북친은 저술가로서의 삶과 현장운동가로서의 삶을 공유한다.그의 현장체험은 1930년대 주물공장 노동자로서,또한 노동운동가로서 시작됐다.이러한 체험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초 유럽의 노동운동과 1930년대 스페인 시민전쟁을 통해 태동되고 번성한 무정부주의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때문에 데이비드 페퍼나 로빈 에커슬리같은 학자는 북친의 생태론을 ‘에코아나키즘(ecoanarchism)’,곧 무정부주의적 생태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문순홍 옮김,솔 8천원.
  • 정휴 스님 ‘천수천안’칼럼 발간

    구미 금오산 해운사주지를 맡고 있는 정휴 스님(불교신문 사장)이 불교칼럼 ‘천수천안’을 도서출판 출판시대에서 출간했다. 지난 94년부터 불교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인기칼럼 ‘천수천안’ 88편을 단행본으로 묶은 이 책은 세간과 출세간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각편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짧은 글속에는 사람들을 미혹케하는 온갖 유혹과 흰소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구원의 언어로 가득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형형색색이다.가진 것은 없으나 맑은 정신과 깨달음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삶의 평가가 과장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 등 여러 유형을 담았다. 때문에 이 책속에서 정휴스님의 어조는 매섭기도 하고 때로는 은근하며 서정적이기도 하다.정휴스님은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고난속에서도 수행의 본분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정휴 스님은 “부처님은 사람들이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나와 남을 해친다”고 가르쳤다며 “말에 애정과 자비가 담겨있지 않으면 악담이 되고 기어가 되고 만다”며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4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정휴 스님은 60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부산 범어사·김천 직지사·경주 불국사·보은 법주사 등의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내고 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저서로는 소설 ‘열반제’ ‘슬플 때마다 우리곁에 오는 초인’ ‘걸레 중광평전’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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