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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 건축·도시·사회 연관관계 다룬 ‘빨간 도시’ 펴낸 건축가 서현씨

    [저자와 차 한잔] 건축·도시·사회 연관관계 다룬 ‘빨간 도시’ 펴낸 건축가 서현씨

    “도시는 그 도시에 담겨 있는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를 잘 들여다보면 이 사회가 어떤지 알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를 거울처럼 볼 수 있는 거죠.”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을 묻다’ ‘배흘림 기둥의 고백’ 등의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인문학적 건축읽기의 묘미를 선사해 준 건축가 서현(51·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그가 이번에는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사회의 연관 관계를 다룬 책 ‘빨간 도시’(효형출판)를 내놓았다. 지난 15일 한양대 과학기술관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건축이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는지, 시대를 관통하는 건축과 사회의 모순이 과연 어떤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15년 동안 건축을 통해 본 세상에 대한 기록과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이다. 닭장을 닮은 아파트의 숲,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병영 같은 학교 건물, 민주주의의 가치를 모르고 지어진 권위적인 관공서 건물들, 우리가 아직은 씨족공동체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식장과 장례식장 건물 등. 왜 늘 저렇게밖에 못 짓는 건지 답답해하던 차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지적들을 읽으니 수긍이 가고 날카로운 비판에는 속이 다 후련하다. 특유의 경쾌하고 유려한 문체의 글은 읽는 재미까지 얹어준다. 왜 하필 ‘빨간 도시’라고 했을까? 빨강은 우리에게 비릿한 느낌을 주는 색 아니던가. “중의적인 표현이긴 한데 한국사회에서 빨강이 도시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색깔이라고 봤습니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빨강은 색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이제는 자신감의 상징이고, 심지어 보수정당의 상징색이 되었어요. 2002년 월드컵은 빨강에 면죄부를 준 사건이었지요.” 그는 우리의 도시를 한마디로 ‘정글’이라고 표현했다. “정글에는 룰이 없어요. 유일한 룰은 큰 힘을 가진 자가 더 많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죠. 우리의 도시가 그래요. 서울 강남에 가 보면 자동차가 최고의 대접을 받지요. 걸어다니는 사람은 무시되고, 특히 유모차나 휠체어를 끌고는 인도를 걸어갈 수 없어요. 사회가 제대로 되려면 조금 더 부족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데 한국의 도시에서는 부족한 사람들이 알아서 생존해야 해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가치는 바로 ‘공정함’입니다.” 그가 꼽은 최악의 현대 건물은 단연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민주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의사당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광장에는 현대판 품계석을 놓고, 뒷문을 ‘국민의 문’이라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전당이 아닌 권위의 전당이 된 거예요. 그걸 받아들이라고 건물 자체가 강요하고 있지요.” 건축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대가 이 땅에 남겨놓는 것이니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건축행위는 동시대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 시대에 던져 놓는 구조물로서 책임의식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건축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래도 우리 도시의 미래에 대해 그는 낙관론자이다. “지금의 도시는 좋은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 관광버스 타고 해외의 도시를 겉에서만 본 세대가 만들었어요. 배낭여행을 하면서 그 도시의 생태와 역사를 들여다본 세대, 즉 빨강을 축제의 색으로 당당하게 쓸 줄 아는 세대가 만들어 가는 도시는 지금보다 한결 나은 모습일 겁니다. 어느 정도 좌충우돌은 하겠지만.”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가는 길/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가는 길/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우리도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시달리며 이렇다 할 국정 성과를 내지 못했던 박 대통령이 모처럼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적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은 공기업 개혁 등 비정상의 정상화, 창조경제 실현, 내수활성화를 통해 국민소득 4만 달러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학자들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한국경제가 2007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경기침체 등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는 진단이다. 지난해는 약 2만 4000달러를 기록했다. 2만 달러에 고착돼 있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을 뒤엎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한국의 경제 체질’의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갈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한국경제의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성장 이론과 선진국 사례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등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들은 효율적인 정부와 공정한 제도, 구성원 간 유대감과 사회적 신뢰자산을 통해 부국이 됐다고 진단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노스는 공평한 법집행과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나라일수록 부패가 적고 서로 신뢰함으로써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여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국가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스웨덴에 살면서 스웨덴의 복지정책과 경제적 성장을 연구한 최연혁 교수는 최근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에서 스웨덴 사람들의 시민의식과 검소한 생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나누는 삶, 사회적 신뢰, 노사정 합의 정치 체제 등이 오늘날 모범적인 복지 선진국 스웨덴 모델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선진국의 사례와 비견하여 지금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우리는 지금 소모적인 반목과 분열에 휩싸여 있다. 정파와 이념이 사분오열하여 서로 대립과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놓고도 두둔 편과 반대 편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 진보적 신문과 소셜 미디어에서는 대통령의 발언들을 일단 선의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용의가 전혀 없이 대뜸 비판과 희화화에 나선다.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 방송사는 반대로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고 미화해서 보도한다.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못하고, 서로 분열된 이런 언론들을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검사들은 야당의 편을 들었다 하여 ‘보복 인사’를 당하고 검찰은 여론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파업을 벌인 코레일 노조 등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탈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조직 내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들은 양심적인 시민으로 대접받기보다는 배신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분열과 반목, 편파, 불공평을 일상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시민들은 그래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가려면 두 가지 행복, 즉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을 모두 달성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고속성장으로 다소 물질적 행복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중진국 함정’에 빠져 선진국으로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불행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와 나누지 못할 때 어떻게 창의적인 경제 행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시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순서가 바뀐 것 같다. 박 대통령부터 모든 국민을 포용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통 큰 행복 리더십을 실천했으면 한다.
  • [데스크 시각] ‘삽질’ 공복/송한수 사회2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삽질’ 공복/송한수 사회2부 부장급

    “처음 쓴 책인데~. 좀 도와주세요.” 2011년 요맘때다. 서울시 C팀장 얘기다. 그는 팔을 잡고 매달렸다. 피식 웃으며 말을 붙였다. ‘능청 떨기’가 특기인 C팀장이다. 저서 출간을 앞둔 터였다. 줄거리는 잡혔다며 웃었다. 제대로 된 언론 홍보와 맞닿은 소견을 모았단다. 언론인들에게 느낀 것을 담았다. 그래서 글을 다루는 기자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게재 순서, 방향, 내용을 놓고 의욕만큼 걱정도 더했다. 집필 동기에 대해선 이렇게 늘어놨다. “공무원들은 대개 잘하려고 나름대로 엄청 애씁니다. 그런데 신문·방송엔 거꾸로 나가기 일쑤잖아요.” 그러면서 “글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즉석에서 조언을 건넸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내용이 중요하죠. 그러나 책 제목을 잘 달아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집어들지 않겠어요.” 그는 또 웃으며 덧붙였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귀띔은 이랬다. “어떻게든 시장님을 엮어 봐요.” 그는 되물었다.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씀인지….” 공무원들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들어보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C팀장은 자연재해 때를 손꼽았다. “많은 이들이 현장에 나가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더불어 겨울철 폭설 때를 되돌아봤다. 제설작업에 거의 하루를 쓴다고 강조했다. 나 또한 금세 질문을 던졌다. “시장님도 길거리로 나가 눈을 치웁니까.” 그도 바로 응답했다. “당연하죠. 제일 애타는 입장이니, 어찌 보면.” 난 순간 C팀장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책 제목 나왔네. ‘삽질하는 시장’으로 합시다.” C팀장은 눈을 치켜뜨고 내 입만 쳐다봤다.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삽질’ 하면 흔히 나쁜 것을 떠올린다. 군부대 탓이다. 원래 복무에 맞는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매달리는 경우를 꼬집는 말이다. 땅을 파거나 흙을 옮기는 도구인 삽을 움직인다는 뜻과 한참 멀어졌다. 그러니 ‘삽질하는 시장’은 딱지를 맞기에 딱이다. 삽질 에피소드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이 있다. 올해도 눈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자연재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선거의 해를 맞이했다. 6·4 지방선거 말이다. 벌써 하마평이 무성하다. 중요성을 가늠하게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일은 곧 시민, 국민들 장래를 가름한다. 이유는 바로 이렇다. 비약일까. 단체장 역량의 총합이 국가 역량에 가깝다고 한다. 엉뚱한 일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 삽질을 하지 않는 사람을 골라야 하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을 빌린다. “25개 자치구 문제가 곧 서울시 문제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준비를 위해 공무원들이 언론에 궁금해하는 점을 알아봤다. 200명을 설문했다. 많은 이들이 ‘왜 신문·방송은 공무원에게 트집을 잘 잡는가’라고 물었다. “그만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주목을 받는다는 뜻”이라고 대답했다. 본래 얘기로 되돌아가자. 폭설 땐 맨 먼저 삽질에 옷소매를 걷어붙이는 단체장이어야 한다. 토목공사나 잔뜩 벌이는 ‘삽질’ 대신 사람이 중심인 요즘 더욱 그렇다. 서울 노원구 상계3, 4동 희망촌 주민 N(75)씨는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배기엔 하루에 몇 차례나 제설제를 뿌려야 하는데, 험한 곳을 찾아와 고생을 참는 공무원들에게 아주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스로 삽을 들고 나서는 단체장은 예뻐 보일 수밖에 없을 터. 국민, 시민들 앞에선 이따금 망가질 필요도 있다. onekor@seoul.co.kr
  • “힐러리 살생부 맨 위는 케리”

    “힐러리 살생부 맨 위는 케리”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측근들이 2008년 대선 경선 때 힐러리를 배신한 민주당 의원들의 ‘살생부’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살생부’의 맨 위쪽에 힐러리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이 된 존 케리(매사추세츠) 당시 상원의원이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이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조너선 앨런 기자와 더 힐의 에이미 판스 기자가 쓴 ‘HRC(힐러리 로뎀 클린턴): 국가 비밀과 힐러리의 재탄생’이라는 저서를 통해 공개됐다. 12일(현지시간) 두 매체는 책을 인용해 “빌과 힐러리 클린턴이 그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정치적 직위에 임명하거나 그들 자녀의 입학 지원을 할 때 추천서를 써줬음에도 불구하고 경선 당시 애매한 태도를 취하거나 오바마의 편에 선 배신자들의 명단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책에 따르면 경선 당시 힐러리의 최측근 참모들은 민주당의 각 의원들에게 1점부터 7점까지 점수를 매겼다. 힐러리를 헌신적으로 도운 인사들은 1점을, 힐러리의 덕을 입고도 배신한 이들은 7점을 받았다. 케리 국무장관은 ‘배신자 명단’의 맨 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더 힐은 보도했다. 책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4년 심장수술을 받고 회복 중임에도 대선에 출마한 케리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섰지만 이후 케리는 오바마를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케리와 함께 7점을 받은 인사들로는 2009년 사망한 에드워드 케네디(매사추세츠) 상원의원, 패트릭 레히(버몬트) 상원의원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힐러리를 보좌해온 한 인사는 배신자 명단 작성 여부에 대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며 의미를 깎아내렸다고 더 힐은 덧붙였다. ‘살생부’ 외에도 경선 패배 후 힐러리의 정치적 재기 과정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뒷얘기 등을 담은 이 책은 다음 달 11일 출간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금융위기와 규제강화 반복되는 역사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금융위기와 규제강화 반복되는 역사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그의 저서 ‘불황의 경제학’에서 1990년대 후반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현대의학에 의해 박멸된 줄 알았던 치명적인 병원균이 기존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형태로 재출현한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면서 금융 위기의 희생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약 10년 후, 전 세계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금융 위기를 경험했다. 그동안의 금융 위기를 거치며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보완됐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위기가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금융 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거시적으로는 주로 경기순환론이나 통화론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경기순환론적 접근은 금융 불안을 경기순환 과정의 일부로 파악한다. 즉 호황기에는 경제 주체들의 낙관적 기대로 금융 자산의 가격이 정상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는데,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거나 외부 충격으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 금융자산의 가격 폭락과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금융 불안이 초래된다. 경기순환적 금융위기는 주로 금융시스템이 빠르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1920년대 주식시장의 투기적 열풍에서 촉발된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 대표적인 예다. 밀튼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금융 부문이 침체될 때 통화 공급이 현저히 줄어 경기 침체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고 주장한다. 즉 통화론적 접근에 따르면 통화정책이 경제 및 금융시장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미미한 시장 불안이 통화신용정책 파급 경로를 통해 금융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급격한 통화정책의 긴축 선회 또는 일관성 없는 통화정책이 금융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금융 위기를 야기 또는 확산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하는 주장이 있다. 금융 부문에서 정보의 비대칭은 주로 도덕적 해이 및 역선택과 관계된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투자 방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돈을 빌려주는 사람보다 정보가 많다. 따라서 투자 방안에 내재된 리스크를 실제보다 낮다고 속여 돈을 빌리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 또한 금융시장의 이자율은 평균적인 리스크를 반영해 결정되므로 리스크가 낮은 좋은 투자 방안을 가진 사람들은 시장 이자율이 너무 높다고 판단해 대출 받기를 포기한다. 반면 리스크가 평균보다 높은 투자 방안을 가진 사람들만 대출을 받는 역선택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에 의해 실행된 대출은 경기가 나빠지면 부실화될 가능성이 커 금융 시스템 전반이 불안정하게 된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은 금융 불안을 증폭하고 금융 위기를 주변으로 급속히 확산시킨다. 이는 금융 불안이 발생하면 시장 참여자들이 정보 부족으로 건전성을 파악할 수 없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예금을 단기간에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금융 위기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정보 비대칭이 한 국가의 금융 불안을 역내 다른 국가로 전염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됐다. 각 국가는 이런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금융 위기의 재발을 막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장치가 최종 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의 설립과 예금보험제도의 도입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금융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19세기에 은행이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의 투자실패 소문은 예금자들의 자금인출 사태, 즉 ‘뱅크런’을 유발해 은행들의 파산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863년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은 상업은행에 위기가 발생하면 조세를 통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은행법을 실시해 뱅크런을 막고자했다. 하지만 국가은행법을 통한 금융시장의 안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상업은행의 안전성이 높아지자 국민들은 신탁은행도 비슷하게 안전한 것으로 오인했고 이들 신탁은행들은 상업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하면서 많은 예금을 유치하였다. 1907년 대형 신탁은행인 니커보커 신탁은행의 파산을 계기로 신탁은행의 취약성이 노출되면서 많은 신탁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금융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에 미국 정부는 1913년 최종 대부자 기능을 수행할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를 창설하고 모든 예금은행에 지급준비금 보유 의무를 부과했다. 하지만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은행의 지급 능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다시 연쇄적인 뱅크런이 발생하였고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을 통해 예금보험제도를 도입해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한층 높였다. 중앙은행 설립 및 예금보험제도 도입 등으로 각국은 금융 위기 발생위험을 낮출 수 있었지만 금융 위기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최근 주요20개국(G20)에 의해 금융 위기 발생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그림자금융은 금융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금융 위기 이전까지 그림자금융 관련 상품들은 시장에서 안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림자금융의 전문가인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토비어스 아드리안(Tobias Adrian)은 그림자금융이 중앙은행과 예금보험제도가 창설되기 전의 금융기관들과 유사한 리스크, 즉 중앙은행 유동성 지원과 예금보험 등과 같은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들 기관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통한 수익추구 행태는 금융부문 간 상호 연계성과 대출의 경기 순응성을 확대함으로써 글로벌 금융 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심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번 금융 위기는 기존의 금융규제 체계로는 더 이상 금융시스템 안정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의 총괄 책임이 G20 국가들이 주도된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맡겨진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기존에는 대부분 위기 당사국이나 선진국이 중심이 돼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이제는 국가 간 금융부문의 상호 연계성이 높아져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 없이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신흥시장국들의 역할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흥시장국이 다수 포함된 G20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금융 위기 직후에는 규제 강화 주장에 모두가 공감하였지만 최근 들어 금융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지나친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런 현상이 정반합의 변증법처럼 금융시스템 안정과 시장기능 복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황금률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또 다른 금융위기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전 금융 위기와 그 해결과정 등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지켜본다면 마냥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 논의가 훨씬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공동기획 서울신문·한국은행 내용 문의 lark3@seoul.co.kr [쏙쏙 경제용어] ■뱅크런(bank-run) 금융 위기 또는 해당 은행에 대한 불신으로 단기간에 많은 예금주들이 은행으로부터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먼저 인출하는 사람일수록 더 유리한 결과가 발생할 때 뱅크런이 강하게 나타난다.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펀드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면 펀드런(fund-run)이라고 한다. ■역선택(adverse selection) 거래자들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한 상황에서 정보가 보다 부족한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중고차 구매자가 결함이 있는 중고차를 모르고 사거나, 보험사가 자신의 질병 내역을 숨긴 가입자를 받아주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 효과) 자기 자본에 빌린 돈을 합해 투자할 때 수익률이나 손실률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이 발생하면 자기 자본만 투자했을 때보다 수익률이 높아지지만 손해를 입을 경우에는 자기 자본만 투자했을 때보다 손실률이 커진다.
  • [지금&여기]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이성원 사회부 기자

    [지금&여기]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이성원 사회부 기자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하버드대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J 굴드가 저서 ‘풀하우스’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굴드는 인간을 정점으로 생명체가 진화했다는 시각을 거부한다. 생명체 역사의 주인공에 인간 대신 박테리아를 선택했다. 박테리아는 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날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종들로 채워졌으며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꾸준히 지구에 존재할 거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는 인간으로 향하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인 셈이다. 물론 굴드의 관점이 옳은 것이냐 하는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굴드의 진화론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닫힌 세계보단 열린 세계가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말 이사회를 열고 총장 자격을 여성으로 제한한다는 규정을 없앴다. 금기를 깬 건 이화학당이 설립된 지 128년 만이다. 아울러 교수·동문 등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추천위원회 인원을 지난번 14대 총장 선출 당시 25인에서 35인으로 10명 늘렸다.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취지에서다. 이 가운데 교수대표위원이 14인에서 22인으로 대폭 확대됐고 직원과 동창대표도 각각 2인에서 3인으로 늘었다. 비정년트랙(비정규직) 교원 등도 투표권을 얻게 됐다. 분명한 것은 이대가 총장 선임에 있어 다양성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취재하다 만난 한 이대 학생은 이 대학의 폐쇄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총장 선임에 있어 교수나 동문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이사회만의 선택으로 총장이 결정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최종 후보 3인을 이사회 단독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굴드의 진화적 시각에 따르면 이화여대는 예전보다 조금은 진화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화여대가 갖는 상징성은 상당하다. 입시 점수가 여대 중 가장 높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남성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데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주역들을 배출한 ‘명문’이기 때문이다. 이사회 규정 개정을 계기로 이화여대의 다양성이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lsw1469@seoul.co.kr
  •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한방암치료 전문가 김성수박사 출연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한방암치료 전문가 김성수박사 출연

    한방암치료, 면역암치료라는 개념은 알고 있지만 실제 그 원리와 효과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전KBS 아침마당은 이 같은 암환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김성수 한의학 박사를 초빙하여 ‘내 몸을 다스리는 힘 면역’이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이번 강연은 한방암치료의 원리인 부정거사법에 대한 해설, 암에 대한 양방과 한방의 시각 차이 등 한의학이 바라보는 암, 기존 면역치료의 방법과 그 효과에 대한 실제 사례로 설명됐다. 강연을 진행한 김성수 박사는 현재 양한방협진을 통해 면역암치료를 시행하는 소람한방병원 대표원장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으며, 한방암치료 원리와 효과, 치료 사례를 담은 저서 ‘12주한방면역요법’, ‘위암, 먹어야 산다’ 를 집필한 바 있다. 김성수 박사의 이번 특강은 대전KBS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격동의 동북아-석학에게 길을 묻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격동의 동북아-석학에게 길을 묻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한 일본’을 표방한 아베 정권은 올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여 한국·중국과의 관계에 먹구름을 한층 드리우고 있다. 데라시마 지쓰로(67)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으로부터 2014년 ‘아베호’가 이끄는 일본의 운명과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데라시마 이사장은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 감각을 지닌 석학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한국·중국·미국이 모두 적어도 올봄까지는 참배가 없을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본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갖는 공통의 역사 인식이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란 것이다. 일본은 도쿄 재판을 받아들이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으며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한 “일본의 속내는 예전의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나는 평화를 사랑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언급했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 참석하기 위해 방일한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미국 고위 관리로는 처음으로 지도리카후치 전몰자 묘역에 참배한 것은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그런 감각이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마치 독일의 지도자가 히틀러 묘역을 참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A급 전범 중에 일본인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은 점점 불안해진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A급 전범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 아베 총리가 국가의 지도자로서 ‘존숭의 염’을 표한다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4만 9000명의 한국·타이완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숭의 뜻을 나타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인 참전자들은 유족 연금 등 일정한 배상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잊혀졌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올해 자신의 본색을 전면에 드러내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데, 아베 총리가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헌법 개정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나. -헌법을 절대로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도 자주 헌법을 수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전후 일본이 평화 국가로서 쌓아 온 헌법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 전후 민주주의의 시련을 겪고 있다. 전후 태생이 전체 인구의 80~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질문받고 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일본을 물려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헌법을 개정해 옛날의 일본으로 회귀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자는 생각은 분명히 좌절될 것이라고 본다. 전후 일본을 짊어지고 온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외부적으로도 중국이 대국화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은 ‘아시아 중시 외교’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동북아의 상황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올해 한·중·일과 미국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일본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연대한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위해 자국 청년의 피를 흘려 가며 중국과 전쟁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의 기대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중국의 입장도 배려하기 위해 영유권과 관련된 중국의 입장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온도차는 지난해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논란에서 훌륭하게 입증됐다. 미국이 유사시에 일본을 지켜 줄 것이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한국의 대통령 역시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 편에 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외교를 하고 있다고 보는데,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의존은 어느 나라에도 실수라는 것을 한국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최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도 저서를 통해 같은 내용을 얘기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미·중 신냉전시대’가 오기 때문에 미국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런데 미·중 대립의 시대가 온다는 인식은 매우 어설프다. 미·중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심화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돋보이게 하고, 미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냉전시대의 미·소 양강 구조나 미국의 1강 지배,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다극화 구조 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세계는 ‘무극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극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일은 상호 네트워크형 발전의 틀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의존’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은 일본의 소재나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여기까지 성장했다. 일본도 주변에 한국, 타이완 같은 산업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 타이완은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 안에 있다. 서로 적대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상호 협력해야 한다. ‘단계적인 접근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는데, 부정적인 얘기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가 나는 사안부터 힘을 합치는 식이다. 유럽에서 배울 점이 많다. 프랑스와 독일도 오랜 기간 동안의 증오로 절대 화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출발해 지금은 유럽연합(EU)으로 통합하지 않았나. →2014년 동북아의 키는 누가 쥐고 있나. -러시아다. 러시아가 태평양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중·일 삼각 구도에 러시아가 가세해 게임이 더 복잡해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약 380조원을 투입하는 극동 및 바이칼 지역 개발 프로그램을 승인했으며 극동 시베리아 송유관 개발방안 등을 통해 동북아 에너지 통합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현재 원유·LNG 전체의 10%를 넘어섰고, 2020년까지 2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세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한국 언론에는 처음 말하는 것이다.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와 6~7년 전에 만났을 때 그가 “북한 문제는 별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냉전 시대 북한은 뒤로는 중국과 소련을 두고 있었고, 김일성 주석의 사상에 공명하는 세계의 젊은이가 있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처럼 세계 젊은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정당성’을 부여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20년 동안 북한은 급속하게 정당성을 잃었다. 2014년 북한은 점점 정당성을 잃고 부유하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영향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군사 독재국가의 방향으로 향하는 지금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없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중국의 주변 국가가 되고 있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데라시마 지쓰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 중 한 명이다. 다마대학 학장,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 등을 겸임하고 있고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현안을 명쾌하게 풀어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47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 정치학과 학·석사를 수료하고 1970년대 엘리트들이 몰렸던 종합상사 미쓰이물산에 입사했다. 뉴욕 본점 정보담당 과장과 워싱턴 사무소장을 지내며 1990년대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1998년 ‘국가 논리와 기업 논리’라는 책을 펴내 주목받았다. 2009년부터 다마대학 학장, 2010년부터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화폭에 담는 ‘산꾼 화가’ 곽원주씨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화폭에 담는 ‘산꾼 화가’ 곽원주씨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즉, ‘미쳐야 미친다’라는 뜻이다. 남이 이루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그 일에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우봉 조희룡(1786~1856)은 한평생 매화에 미쳐 살았고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침실에 매화가 그려진 병풍을 세워놓고 매화로 만든 차를 마셨다고 한다. 또 매화 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서 매화 시를 썼을 만큼 광적으로 매화를 좋아했다. 그는 추사 김정희보다 세살 연하였으나 스승으로 깍듯이 예를 갖췄다. 우봉은 추사의 심복으로 지목돼 신안 임자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만구음관’(萬鷗吟館·갈매기 1만 마리 우는 집)이라는 편액을 내걸어 화아일체(畵我一體)의 경지까지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힘찬 용틀임과 곳곳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매화가 조화를 이루는 용매도(龍梅圖)라는 그림도 이곳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곽원주(64) 화백은 ‘산꾼 화가’로 통한다. 그저 단순한 산꾼 화가가 아니다. 평생 산에 미쳤고 그림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 국내 섬산을 두루 거쳤고 백두대간, 낙동정맥 등 국내 산 1000여곳을 올랐다. 이어 중국과 일본의 명산 100여곳까지 올랐다. 그 다음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다녀왔으며, 지금은 그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의 힘찬 모습을 열심히 화폭에 담고 있다. 올해 9월이면 전시를 할 예정이며 동양화가로는 최초의 일이다. 그가 이렇게 산과 그림에 미친 계기는 섬산을 다닐 때 임자도에서 만난 우봉의 ‘불광불급’ 정신에서 비롯됐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화실에서 곽 화백을 만났다. 붓을 들고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멈추고 “일출을 보기 위해 동대산(오대산 국립공원 내)을 다녀왔다.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며 자리에 앉는다. 먼저 왜 히말라야인지 물었다. “삶이 무료하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 대부분 여행을 떠나지요. 정보가 부족한 오지로 떠나는 여행은 처음 접하는 신비감 때문에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혼자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면 한없는 환희와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림 하나를 보여주면서 다시 설명을 한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거쳐 딩보체에서 바라본 마차푸르레입니다. 물고기 꼬리를 닮았지요. 이곳은 신의 영역입니다. 일본 등산객 5명이 주민들 허락 없이 이곳에 갔다가 조난당했습니다. 신성스러운 곳인데 인간이 함부로 발을 디뎌 그랬다고 하더군요.” 히말라야 그림은 바로 그 신들의 파노라마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했다.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 없는 히말라야를 우리 인간 세상에 내려놓는 일이라고 했다. 네팔 쪽에 있는 히말라야 7좌 14폭의 병풍그림을 이미 마무리했고 현재는 파키스탄 쪽에 있는 히말라야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히말라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 2개 낱말이 결합된 복합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왜 히말라야인지 다시 물었더니 “불광불급이다. 그 신들과의 만남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곽 화백은 201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낭가파르바트, K2, 브로드피크 등 히말라야 14좌의 베이스캠프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했다. 해발 3700m에서 6000m에 이르는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정상의 아름다운 광경들을 화폭에 담았던 것.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에베레스트, 로체 등의 절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고 있다. 처음에는 히말라야가 동양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 흠뻑 매료됐다. 눈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야생화, 짙은 녹음과 가을, 설경 등 한 시야에 4계절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동양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말해 ‘히말라야 산수화’인 셈이다. 신들이 잠든 모습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표현되는 관념성을 접목시켰다. 중국의 산수화는 먹의 농담(濃淡)으로 산의 형상을 표현하고, 일본의 경우 채색 산수화, 그리고 우리나라 산수화는 실경에 주자학적 관념성을 반영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산꾼으로서 히말라야를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동양화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지요. 산이 각지고 음영이 심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붓을 저절로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곽 화백의 화풍은 전통 산수화에서 현대적 실경 산수화로 바뀌었다. 히말라야의 바람, 느낌, 풍경, 그리고 오묘한 신들의 메시지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를 혼자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등정 원정대와 같이 가는 경우도 있다. 히말라야 10좌를 등정한 한국도로공사 소속 김미곤씨와 동행할 때가 많다. “네팔의 히말라야가 지리산에 비유해 여성적이라면 파키스탄 발토르 빙하에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군은 한겨울 설악산을 빼닮아 강한 남성적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히말라야를 걷다 보면 제가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들이 저를 오르게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에는 히말라야에 대해 두려움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한국의 지리산, 설악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해발 4000~5000m의 트레킹 코스는 한국의 여러 둘레길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힘든 경우는 없었을까. “히말라야를 가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고지대를 걸을 수 있는 체력,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30일 정도 걸리는 시간이 허락돼야 합니다. 그것만 해결된다면 한국의 산을 오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마 다른 화가들도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 하겠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주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가 스케치하던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탈레반의 습격을 받아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고 강력한 거머리를 보고 섬뜩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열악하게 살아가지만 행복하고 만족하는 현지인들의 표정이었다. 그가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5월 ‘한·중·일 3국 명산전’, 그러니까 우리나라 백두대간, 낙동정맥, 중국과 일본 명산 50곳을 화폭에 담아 전시할 때였다. 우연히 전시장을 들른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에게서 ‘히말라야를 가봤느냐. 히말라야를 그릴 생각이 없느냐’는 적극적인 권유를 받고 시작됐다. 그가 산꾼이 된 것은 1969년 제주 여행을 갔다가 한라산을 오르면서였다. 산 중턱에 있는 나무 숲과 백록담을 보고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전부터 그림을 틈틈이 취미로 그렸으나 한라산을 보고 난 뒤 산 그림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어 비금도, 거문도, 욕지도, 임자도 등 남도 섬산을 찾아 화폭에 담았다. 임자도에서의 기억을 잠시 더듬는다. “임자도(荏子島)는 한자 뜻에서 보듯 들깨섬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우봉 조희룡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있습니다. 한양에서 불원천리 임자도까지 온 우봉은 바닷가 밝은 달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그림에 미친 불광불급을 떠올려 봤지요.” 이런 마음으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등 국내 산들을 스케치북을 들고 섭렵했다. 이렇게 그의 산꾼 인생은 섬산에서 시작돼 국내를 거쳐 중국과 일본, 그리고 히말라야로 이어진다. 중국의 경우 무이산, 안탕산, 장가계, 숭산, 화산, 태산 등 우리가 흔히 들었던 명산을 다니면서 화폭에 담았다. 그는 전남 고흥 출생이다. 어릴 때부터 스케치북을 들고 등산하는 것을 좋아했다. 임진왜란 당시 성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대학 다닐 때에는 낙수회라는 문학동호회를 결성해 시화전 등을 주관했다. 또 산과 그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이 가운데 김찬삼의 여행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떠난 것이 산과의 인연이 됐다. 군복무를 마치고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산악회를 조직해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전업작가가 된 것은 40세 때였다. 그는 지금도 주말이면 ‘산예모’(산과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 멤버들과 가벼운 산행을 하면서 산과 예술에 대해 공감을 나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을까. “오는 9월 히말라야 전시가 끝나면 킬리만자로로 갈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말의 해를 맞아 말처럼 달리면서 멋진 고봉들을 화폭에 담아볼 생각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곽원주 화백은 전남 고흥 출신이다. 순천대학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중국 시안(西安) 섬서미술관 초대작가이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한민국 신미술대전, 동아 국제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백두대간을 화폭에 담아’가 있다. ‘3국 명산전’ 등 개인전 20회, 한·중문화교류 3인전 등 국내외 단체전 150여회를 가졌다. KBS1 TV ‘학자의 고향’에 그림 연재를 했다. 현재 국민예술협회이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현대한국화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자존심 지키는 멋진 어른이 되길” 성북구청장, 자선다이어리 참가

    “자존심 지키는 멋진 어른이 되길” 성북구청장, 자선다이어리 참가

    시설 퇴소 청소년을 돕는 사회 명사 다이어리 전시회에 서울시 기초지방자치단체장 25명 가운데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유일하게 참여해 눈길을 끈다. 7~26일 서울도서관 생각마루에서 ‘열여덟 어른의 자립정착 꿈’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열리는 ‘100인의 다이어리전’이다. 지난해 12월 교보문고 전시회가 자리를 옮겨 2차 전시회를 갖는 것. 아름다운재단 등이 부모가 없거나, 집안의 경제적 사정 등으로 보육원이나 공동생활 가정 등에서 보호받다가 18세가 돼 시설을 떠나게 된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마련했다. 시설 퇴소 청소년들은 자립 정착금으로 300만원을 지원받지만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단은 유명 캘리그래퍼 강병인씨가 재능기부로 ‘꿈 활짝 피어나다’라는 글씨를 새긴 다이어리를 제작, 일반에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시설 퇴소 청소년 자립을 돕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또 소설가 조정래, 만화가 윤태호, 뮤지션 장기하 등 사회 각계각층 명사 100명의 친필 사인과 꿈에 대한 메시지를 새긴 다이어리를 1권씩 특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이 다이어리는 추첨을 통해 캠페인 참가자에게 기념품으로 제공된다. 김 구청장의 경우 공적 영역에서 진정성을 갖고 연대와 호혜의 가치를 펼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재단이 적극 섭외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저서 ‘동네 안에 국가 있다’도 함께 전시된다. 김 구청장은 피천득 시인의 ‘인연’을 인용하며 “자존심을 지킬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길 응원한다”고 적었다. 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박원순 서울시장도 전시회에 참여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인간은 평생 변한다” 그 통찰은 유효한가

    “인간은 평생 변한다” 그 통찰은 유효한가

    유년기와 사회/에릭 H 에릭슨 지음/송제훈 옮김/연암서가/528쪽/2만 5000원 발달심리학이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무렵부터다. 과거 인간 수명이 50세 정도였을 때에는 인간이 태어나서 스무 살 무렵까지의 심리발달 과정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동심리학이라는 명칭이면 충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발전과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자들의 관심은 유아에서 노년에 이르는 일생을 단계별로 나눠 그 특징을 밝히는 것으로 확장됐고 발달심리학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그 흐름을 주도한 이론가가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이다. 그가 1950년에 발표해 발달심리학의 고전이 된 책 ‘유년기와 사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돼 나왔다. 첫 저서이자 출세작으로 1963년과 1985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으며 이번에 나온 책은 1985년판을 토대로 삼았다. 에릭슨은 190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았고, 어머니는 덴마크계 유대인이었다. 전공인 미술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39년 미국 국적을 얻었고 아동정신 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1949년 UC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매카시즘 광풍이 대학에까지 몰아치면서 충성 맹세를 요구하자 1년 만에 교수직을 내던지고 학자의 양심을 택했다. 이 책은 그로부터 몇 달 뒤 나왔다. 개인의 심리학적 진화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성격발달이 성인기 초기에 종결되는 것으로 가정한 프로이트와 달리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사회학적 발달 과정이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난다고 봤으며 인간 자아의 형성을 문화·사회와 관련지어 설명했다. 에릭슨은 이 책에서 임상적 정신분석과 문화인류학적 접근방식을 새롭게 결합해 주목을 끌었다. 반세기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가 임상을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의 사례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인디언 부족에 대한 현장연구, 히틀러와 고리키를 통해 독일 국민과 러시아 민중의 정체성을 반추한 내용은 여전히 흥미롭고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책에서 유명한 인간발달의 여덟 단계를 소개했다. 구강감각기(0~1세), 근육항문기(1~3세), 보행이동-남근기(3~6세), 잠재기(6~12세), 청소년기(12~20대 중반), 성인기 초기(20대 후반~30대 중반), 장년기(30대 중반~60대 중반), 노년기(60대 후반~)가 그것이다. 인간은 발달 단계별로 기본적 신뢰 대 기본적 불신,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성 대 열등감, 정체성 대 역할 혼란, 친밀 대 고립, 생산력 대 침체, 자아완성 대 절망이라는 심리적 위기에 당면하며 이를 잘 넘겨야 자아가 조화롭고 건전하게 발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년기로부터 비롯된 좌절이 이후의 삶과 그가 속한 사회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주목했던 에릭슨은 “유년기의 갈등은 문화적 관습과 지배계층의 견고한 지지가 유지될 때 창조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제3의 길’ 석학 인터뷰(상)] “사회통합·다양성은 배치되는 개념 아닌 민주주의 양대 토대”

    [‘제3의 길’ 석학 인터뷰(상)] “사회통합·다양성은 배치되는 개념 아닌 민주주의 양대 토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정치철학이나 정치사상은 낡은 학문으로 굳어졌다. 사회주의 체제가 힘을 잃은 상황에서 획기적인 새 이론도 등장하지 않자 정치학은 과거의 사례를 연구하거나 현실을 해석하는 데 집중하는 학문으로 폄하됐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는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안에 맞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혐오성 짙은 행위로 여기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회체제나 세계를 보는 시각에 근본적으로 메스를 대려고 하는 도전적인 학자도 드물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81)와 미국의 마이클 하트(53) 듀크대 교수는 이 같은 정치철학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2000년 펴낸 ‘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속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제국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할 세력으로 ‘다중’(多衆·Multitude·지배계급을 제외한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들이 책에서 주장한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세계적인 반발의 징조’는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제국’은 전 세계 30개국에 출판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두 사람은 ‘다중’, ‘공통체’로 이어지는 이른바 ‘제국 3부작’을 잇따라 펴내며 자신들의 사상을 펼쳐 나갔다. 한국사회에서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네그리는 ‘지성인들의 지성’으로, 하트 교수는 ‘지성계의 샛별’로 추어 올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였다. 당시 나이와 성별을 특정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대해 학자들은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새롭게 주창한 계층인 ‘다중’과의 유사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중’은 프랑스 파리 지하철 시위, 월가 점령 시위 등 과거와 다른 형태의 시위를 주도하는 주체로 평가받았고, 일부 학자들은 최근 한국 대학가를 강타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역시 ‘다중’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분위기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말 하트 교수와 수차례에 걸친 이메일·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세계 정세에 대한 평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하트 교수의 생각을 들어봤다. 하트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 통합’과 ‘다양성’에 대해 “두 가지는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둘 모두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하트 교수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저서 ‘제국 3부작’은 명확한 인과관계를 제시하기보다는 가설에 가깝다. 하지만 진보 지식인 계층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럴듯한 얘기를 담아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남의 생각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소통이 어렵다. 우리가 하는 얘기들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유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한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나 대중의 움직임에 대해 마땅히 해석할 방법을 찾지 못해 왔다. 제국 3부작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철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슬라보이 지제크가 철학자로서는 비정상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역시, 그가 대중적인 얘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제국’이 출판된 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10년간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는 얼마나 예측에 가깝게 진행됐는가. -‘제국’의 시작은 일방적인 방식으로 국제적 사안을 지시할 수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국민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미국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의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10년간 미국이 여전히 강력하지만, 국제적 헤게모니는 끊임없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실패가 명확한 증거다. →여전히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미국은 국제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전통적인 동맹과는 다른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네그리와 나는 ‘제국’에서 세계화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권력 네트워크’가 새롭게 형성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미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과 같은 초국가적 기관, 국가 또는 대륙 간 자유무역협정, 주요 기업 및 기타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보는 시각이다. ‘국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또는 ‘국가는 계속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안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지나치게 크고 거대한 담론이다. 그렇다면 세계를 어떻게 봐야 한다는 것인가. -개별적이기보다는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특히 정치는 일방적이지 않다. 국가들, 그중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지배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이 관계가 변해갈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지배 형태를 알아내는 것뿐 아니라 이런 지배에 공격을 가하고 도전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적 수단을 창안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동권은 약해진 반면 복지는 전 세계에 걸쳐 축소되는 추세다. 성장을 위해 자국 사회를 재구성한 독일 같은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둠에 따라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과 상당수 경제학자 등은 우리에게 두 가지 경제적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민영화와 탈규제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 또는 공공재산을 국가가 통제하는 케인스·사회주의 논리를 택하라고 한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국가통제라는 약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 정책이 유발한 문제가 민영화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둘 다 죽은 생각이라고 본다. 어느 쪽도 스스로 제시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둘의 목표는 모두 ‘경제 발전’, ‘적절한 수준의 고용’, ‘경제적 복지와 자유’인데 둘 다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미 죽은 두 생각이 세계에서 온갖 종류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며 계속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좀비 같은 생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네그리와 나는 이 같은 죽은 생각은 완전히 묻어버리고, 경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아직은 뚜렷한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목소리와 ‘사회적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가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적 통합은 통합을 ‘동질화’로 볼 때만 다양성에 모순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하거나 살아가고,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동질화이지 통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사람들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일해질 필요나 똑같이 행동할 필요가 없다. 물론 동일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이 같은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 협력해서 다양성을 보완해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토대다. →‘다중’은 기존의 잣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집단행동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월가 시위나 촛불 시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에 ‘다중’의 힘은 역부족이 아닌가. -사회의 변화는 한번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차원으로 보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재스민 혁명이나 월가 시위는 형태나 참여자들은 다르지만 기존에 구축해 놓은 사회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면 다르지 않다. 성공한 혁명이나 시위라고 해도 그게 끝은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체제는 또다시 도전을 받는다. 과거에 비해 독자성을 가진 개인들이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도 한데 모여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이미 ‘다중’이다. →네그리와는 이탈리아와 미국이라는 상이한 환경, 30년에 이르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함께 생각하고 글을 써 왔다. 2010년 네그리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나와 하트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하나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난 네그리의 영향을 받아 이 세계에 들어왔고, 그를 존경한다. 차이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 같은 차이는 우리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20년 이상 계속 생각을 지속적으로 나눴고, 언제나 책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의 우정이 근본이고, 책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자르브리켄(독일)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마이클 하트 교수는 정치철학자, 문학이론가. 1960년 출생.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안토니오 네그리의 책을 읽고 정치철학으로 방향을 바꿔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듀크대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질 들뢰즈,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2000년 네그리와 함께 ‘제국’을 출판하면서 세계 지성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디오니소스의 노동’, ‘제국의 새로운 옷’, ‘다중’, ‘공통체’ 등을 네그리와 함께 썼다. 미네소타출판사의 ‘경계 너머의 이론들’의 책임편집자다. ‘제국 3부작’의 마지막이자 종합편인 ‘공통체’는 새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 어지럽던 세상에 단단해진 사상들 현대에도 빛나네

    어지럽던 세상에 단단해진 사상들 현대에도 빛나네

    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채한수 지음/김영사/644쪽/1만 8000원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을 흔히 쓴다. 워낙 귀에 익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말처럼 생각되지만, 연원을 따지자면 기원전 3세기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쭙잖은 궤변에 능한 조나라 공손룡이 위대한 사상가인 장자의 지혜와 겨루려 들자, 위나라 공자(公子) 모(牟)가 그를 장강을 건너려는 놀래기에 비유하며 질타한 데서 비롯된 얘기다. 무려 2000여년 전에 실제 오갔던 대화가 지금도 여전히 회자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터에서 오십 보 도망간 병사가 백 보 도망간 병사를 비웃는다는 맹자의 ‘오십보백보’, 인재 발굴의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한비자의 ‘화씨의 벽’, 얄팍한 눈속임을 경계하라는 장자의 ‘조삼모사’ 등도 비슷한 경우다. ‘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는 이처럼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제자백가들의 사상과 철학을 되짚어본 책이다. 맹자의 묵직한 시대의식과 장자의 무위자연의 삶, 묵자의 인간에 대한 탐구, 통치술·제왕학으로 표출된 한비자의 무서운 지성, 열자의 순수한 인생관 등 제자백가의 저서 가운데 특히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고전 10권의 사상과 철학을 다양한 일화와 함께 녹여냈다.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난세였다. 전쟁과 내란, 그리고 굶주림이 ‘무한반복’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 새로운 사상이 끊임없이 잉태됐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난세 속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성찰했고 그 덕에 보기 드문 사상의 전성기를 이뤘다. 춘추전국시대 550년 동안 동양사상의 근간이 완성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들은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치열한 지식싸움 속에서 모든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했다. 저자가 주목한 건 바로 이 대목이다. 30여년 동안 고등학교 교단에 섰던 저자는 세파에 휘둘리는 제자들을 보며 인생의 해답이 담겨 있는 건 결국 고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그 해답에 다가서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제목처럼 ‘천천히 걸어야’한다. 그래야 제 허물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격동의 동북아 석학에게 길을 묻다] 량윈샹 中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격동의 동북아 석학에게 길을 묻다] 량윈샹 中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중국은 무력보다 외교적 협상이나 법률로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중국이 분쟁을 협상이나 법에 따라 처리한다면 전 세계가 중국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량윈샹(梁雲祥)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 긴장 국면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동북아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일 간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공해·공역 상에서의 국지적인 충돌은 몰라도 전면전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3국은 목전에 있는 공동이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방중 가능성과 관련, “지금 중국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나준다면 그의 행보를 지지하는 꼴이 된다”면서 “다만 중국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에 비밀 방중은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등 동북아의 불안한 정국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중국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도 일본과 영토 갈등을 겪고 있는 댜오위다오를 겨냥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중·일 갈등을 심화시켰고 동북아 긴장도 한 단계 높여 놓았다. →중·일 간 일련의 분쟁으로 중국이 얻은 득과 실은 무엇인가. -방공식별구역 선포의 경우 미·일이 주도하던 공역에 공동 관할권을 갖게 됐다. 과거에는 미국·일본이 단독 통제한 것이라면, 지금은 중국도 공동 관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반면 ‘중국 위협론’이 강화돼 중국도 잃은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중국 위협론’을 어떤 식으로 해소하고 있나. -중국이 지난해 10월 말 ‘주변외교공작좌담회’를 개최했다. 신중국 성립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집단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과 중국 주재 각국 공관장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중국 굴기’는 다른 나라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과 이로 인해 주변국들이 중국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미국과는 대항하지 않는 신대국관계를 구축하고, 주변국들에는 경제적 이익을 줌으로써 그들의 우려를 줄이고 나아가 공동이익을 창출해 주변국가들과 ‘운명 공동체’가 되려고 한다. 다만 일본에는 유독 더 강경하게 대항할 것이다. →미·중 관계는 동북아는 물론 아·태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인데. -중국이 강해질수록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다만 현재 중·미 사이에는 대항뿐만 아니라 협력의 측면이 크다. 중국은 아직 미국을 이길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도전하지는 못한 채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일본에는 강하게 도전할 수 있다. →미·중 간 충돌 가능성은. -중·미 사이에 갈등은 있지만 아직 통제 가능한 수준이다. 중국은 종합적인 국력 면에서 앞으로 적어도 20년간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고, 그 후에도 완전히 미국을 추월하기 힘들다. 중국 스스로도 이 점을 잘 안다. →한·중·일 관계를 정의한다면. -역사 문제에서는 중국과 한국이 한편에 서서 일본에 맞서고 있고, 안보 문제에서는 한·일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토 문제에서는 3자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처지이다. →동북아 갈등의 해결 방안은. -위기 조절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방공식별구역 논란, 신사 참배 등으로 조성된 동북아 위기가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공동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 공동 이익이 커지면 역사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특히 중국은 대국으로서 국제적인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지역 안정에 대한 책임도 가져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한·일은 궁극적으로는 유럽처럼 다면적인 협력체로 발전해야 한다. 서로 묶일수록 갈등이 약해진다. 중·한·일은 역사 문제만 나오면 모든 대화를 중단한다. 유럽 국가와 비교할 때 경제는 발전했지만 정치적인 지혜는 떨어진다. →‘중국의 굴기’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나. -중국이 성장의 결실을 내부 문제 해결이 아닌 외부 역량 강화에 주로 사용한다면 국제적 ‘트러블’만 가져온다. 주변국들이 위협을 느껴 미국에 의지해 중국을 공격하기 때문에 중국은 강대국이 되기도 전에 견제만 당하다 제압될 것이다. 발전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댜오위다오에 대한 권리 주장이 정당하다면 국제재판소에 가져가 심판받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실제로 재판이 이뤄지면 역사적 근거를 강조하는 중국은 30~40%,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일본은 50~60%의 권리를 얻을 것이다. →평화로운 발전이란. -중국은 무력보다 외교적 협상이나 법률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민 교육도 수반되어야 한다. 예컨대 댜오위다오는 역사적으로 중국 땅이지만 일본이 빼앗아 오랜 세월 점령해 실질적으로 통제했다. 점령 행위는 부도덕하지만 국제법은 도덕성보다 실질 통제권을 따지므로 그쪽에도 일부 권리가 있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고, 협상과 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중국의 ‘평화발전’은 어떤 개념인가.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보는 평화발전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중국은 자신의 권리를 확대하면서 평화롭게 발전하겠다는 의미인 반면 미국과 주변국들은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가져오려 하고,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는 등 현상 변경을 시도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중국은 발전할수록 주변과 마찰이 커지고 아무도 중국이 평화롭게 발전하려 한다고 믿지 않는다. 중국은 무력이 아닌 외교적인 협상이나 법률에 기반해 권리를 확대해야 하며, 다른 나라들도 중국이 커진 만큼의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 →6자회담 재개 가능성과 중국의 대북 전략은.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우선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 혹은 약속이 없어 미국이 응하지 않을 것이다. 또 장성택 처형 이후 북의 불가측성이 확대되면서 대화가 더 어렵게 됐다. 중국은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을 가면서 정권을 유지하기 바라지만 북한을 좌우할 능력은 없다. 이런 점이 중국의 딜레마이다. 미국 편에 서서 북을 고립·붕괴시키기도 싫고, 북한과 한편에 서자니 국제적으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국은 중립적으로 움직이면서 한반도 평화·안보 수호 등 원칙적인 말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이는 중국 외교의 승리이며, 북핵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외교 능력의 탁월함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은. -중국은 장성택 처형 사건에 대해 불만이 많다. 지금 중국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나준다면 장성택 처형 등 그의 돌출적인 행보를 지지하는 격이 된다. 다만 비밀 방중은 가능할 수도 있다. 중국도 김정은을 다루기 위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 한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는데. -한국의 미·중 외교 성패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 달려 있다. 중·미 관계가 좋을 때는 한국의 균형 외교가 가능하지만 둘 사이가 틀어지면 불가능하다. 한국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결국 미국 편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동맹국을 놓고 균형 외교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차라리 융통성 있는 외교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량윈샹 교수는 베이징대 석·박사 출신으로 국제적인 협력과 상생을 주장하는 온건파로 유명하다. 중국의 외교는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시대를 거쳐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화평 굴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력보다는 외교적 협상과 국제법에 따른 심판 등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얻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지속적인 굴기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후 일본 정치와 외교, 동북아 문제 등이 주요 연구 분야다. ‘일본 100년 외교론’, ‘냉전시대 이후 일본 외교정책 결정 체제의 변화와 특징’, ‘냉전 후 아시아 일원으로서 일본의 외교 전략’ 등의 저서를 냈다.
  • [2014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당선 소감-고광식

    [2014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당선 소감-고광식

    코나투스를 갖고 유쾌하고 즐겁게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그 루카치 저는 루카치가 말한 고대인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별이 진 자리에 시를 올려놓고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시는 창공에서 빛나지 않았고 저는 길을 읽을 수 있는 지도가 없어 걸음을 멈췄습니다. 끊임없이 시를 만들어 창공으로 올렸으나, 그것은 잠시 빛을 발하다가 스스로 꺼져갔습니다. 그러나 시는 앞으로도 계속 물자체로 제 안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황량한 바닥, 그곳에서 평론이 창공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저서 ‘통섭’에서 “일급의 비평은 다루고 있는 작품만큼이나 영감에 따라 창조된 독특한 개성의 소산일 수 있다”고 적시하여 저를 평론의 길로 유혹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을 별빛으로 환히 밝혀 주신 두 분 심사위원, 이광호 선생님과 권성우 선생님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이 만드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언제나 저를 항상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이승하 선생님과 평론의 길에 데칼코마니적 아름다운 무늬를 남겼던 전영태 선생님, 박철화 선생님, 그리고 중앙대 교수님들, 아이온의 세계에서 문학을 메타인지하는 동학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눈물겨운 유전자로 결속된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초시간적으로 지켜봐 준 아내와 저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늦게 얻은 두 딸 한결이와 은솔이에게 늘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이제 저는 시와 소설을 질료로 창조된 평론을 창공에 걸 것입니다. 자기 보존의 욕구인 코나투스(conatus)를 갖고 유쾌하고 즐겁게. ▲1957년 충남 예산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0년 민족과문학 시 부문 신인상 ▲1991년 청구문화제 시 부문 대상
  • [격동의 동북아 석학에게 길을 묻다] 조지프 나이 美 하버드대 석좌교수

    [격동의 동북아 석학에게 길을 묻다] 조지프 나이 美 하버드대 석좌교수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일방 선포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장성택 처형,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와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숨가쁘게 이어지면서 세밑 동북아시아는 격랑에 휩싸인 형국이었다. 2014년에도 중국의 패권주의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충돌하고, 여기에 일본의 우경화와 북한의 도발 우려가 어지럽게 얽히면서 동북아 정세는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석학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새해 동북아 정세를 심층 진단·전망해 본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더라도 안보적 측면에서는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이익일 것이다.” 조지프 나이(76)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중 사이에서 위치 설정에 고민하는 한국을 향해 이렇게 충고했다. 그는 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중국의 힘이 커지고 있지만 미국을 추월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면서 미·중 간 ‘신(新)냉전’이 도래할 것이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동조하는 등 북한 정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또 북한에 대한 압박을 꺼리는 중국의 대북 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국력신장에 따른 패권주의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충돌하면서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중이 신냉전에 진입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두 나라는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해 나갈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소련과 다르고, 지금의 미·중 관계는 과거 미·소 관계보다 훨씬 더 복잡다양하게 얽혀 있다. →장래에 중국이 경제적·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하나. -앞지르지 못할 것이다. 국민총생산(GNP) 면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수도 있지만 국가의 수준을 가장 정확히 나타내는 척도인 1인당 GNP 면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군사력 면에서도 향후 수십년 안에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전통적 동맹인 미국과 국력이 급신장하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두 나라와 모두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 다만 중국과는 경제적 기회를 위해 좋은 관계를 갖더라도 안보에 관한 한 동맹인 미국과 관계를 갖는 게 더 이익일 것이다. →지난 10월 중국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파문이 일었는데, 중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중국의 의도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일본을 압박하고 해당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관련국들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CADIZ를 발표한 것이다. →중국의 일방적 CADIZ 선포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보나. -중국이 CADIZ로 선포한 해당 상공은 여러 나라에 의해 공유되는 곳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은 타당했다. 또 미군의 B52 전략 폭격기가 중국에 통보하지 않고 즉각 해당 지역을 비행한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아베 신조 정권 들어 일본 정부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추구에 대한 한국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는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민족주의 분출에 대응한 미·일 동맹 협력의 측면에서 필요하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미국의 승인 아래 행사된다면 한국은 우려를 덜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한국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우경화로 치닫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양국 간 관계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나. -적어도 김정은 정권 아래서는 핵을 포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본다. 더욱이 그동안 6자회담 당사국이 합의했던 북핵 포기 방안은 제대로 된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행동 없이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이 적절하다고 보나. -그렇다고 본다. →최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는데 이번 사건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까.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장성택에 대한 사형이 김정은의 권력 장악을 강화해 줄 것이라는 분석과 궁극적으로 김정은의 권력을 감소시켜 개혁을 촉발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리는 만큼 섣부른 추측을 삼가고 싶다. →만약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미·중은 협력할까, 충돌할까. -이 문제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따라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관련국이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 →남북 통일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곧 통일이 되길 희망한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아래서는 힘들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전 통보 없이 핵실험을 일삼는 등 말을 듣지 않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넌덜머리가 났고, 이에 따라 중국의 대북 정책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실제 지난해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유엔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대북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하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맞서는데. -중국은 늘 대북 정책에서 두 가지 목표를 견지해 왔다. 첫째는 한반도 비핵화이고 둘째는 갑작스런 북한 정권의 붕괴에 따른 북·중 국경의 혼란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두 번째 목표가 첫 번째 목표를 압도해 왔다. 나의 저서 ‘권력의 미래’(The Future of Power)에서 나는 이런 중국의 딜레마가 북한에 미약한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썼다. 즉 북한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중국이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물론 최근 북한이 지역 충돌, 즉 핵실험, 미사일 발사, 대남 도발 등에 중국이 개입하도록 위협하는 리스크를 불사하면서 중국 지도부는 넌덜머리를 냈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6월 캘리포니아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중국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나는 중국이 북한에 가하는 압력에 여전히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의 비정상적인 이중적 시스템, 즉 일당독재의 정치 시스템과 자본주의적 경제 시스템의 양립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나. -나는 중국의 시스템이 붕괴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국민들의 정치참여 확대 욕구가 커질 텐데 이런 기류에 중국 지도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다. 연간 1인당 GNP가 1만 달러에 가까워지고 중산층이 커짐에 따라 정치 참여 욕구는 더 커지고 전체주의적 통치는 더욱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단적인 예가 한국이다. 한국은 이와 관련해 위대한 성공 스토리를 갖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 번영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발전, 즉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타이완도 비슷하다. 한국이나 타이완보다 훨씬 덩치가 큰 중국에 어떤 정치적 변화가 도래할지 정확히 예측하긴 힘들다. 다만 나는 중국 지도부가 더 많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조지프 나이는 누구 미국 뉴저지주 출신으로 명문 프린스턴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과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이론가로, 정통 보수주의 학자인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와 대비되기도 한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지낸 조지프 나이는 요즘 많이 통용되는 ‘소프트 파워 국가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경제력 등 하드 파워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강제력보다는 매력과 자발적 동의에 의해 얻어지는 국력을 말한다. 조지프 나이는 2011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꼽히기도 했다.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외교 정책을 이해하는 모든 길은 조지프 나이로 통한다”고 평했다.
  • [이영탁 미래와 세상] 착한 기업의 진화

    [이영탁 미래와 세상] 착한 기업의 진화

    일찍이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을 포함하여 현존하는 모든 동물은 강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환경변화에 잘 적응해 온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월을 달리하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기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Good to Great’ (착한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짐 콜린스 저)에서 보듯이 위대한 기업이 돼야 지속가능 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좋은 기업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동안 상황이 바뀌어 지속가능 기업이 되자면 위대한 기업을 넘어 착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기업도 여건변화에 따라 살아남자면 계속 진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역할이 커지고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CSR에 대해 통일된 것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4가지 책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이윤극대화, 고용창출과 같은 경제적 책임이다. 둘째는 투명회계, 성실 세금납부와 같은 법적 책임이다. 셋째는 친환경, 제품안전, 성차별 금지와 같은 윤리적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자선적 책임이다. 과거의 기업경영은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윤리적 책임은 물론이고 자선적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가 없다. 이처럼 CSR이 진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착한 기업 활동도 새로운 내용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전에는 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접 기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방식의 기부문화가 선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미리내 가게’가 있다. 여기서는 손님이 자기가 먹은 것 이상으로 미리 낸 금액을 입구에 게시하는데 뒷사람은 돈을 내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어려운 사람을 배려한 따뜻한 기부이다. ‘탐스 슈즈’는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살 때마다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에게 한 켤레를 기부(one for one)하는 식이다. 두 가지 다 누구든지 간편하게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부문화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도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최근에 와서는 사회적 불평등 내지 경제민주화의 책임을 상당 부분 기업의 책임으로 돌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기업으로서는 착한 기업 스트레스가 있다. ‘무엇을 할까’에서부터 ‘더 이상 어떻게 하란 말이냐’까지 기업의 갖가지 고민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업의 속내에 진정성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을 담아서 지속적으로 하라는 식이다. 한마디로 ‘착해 보이려 하지 말고 착해져라’고 한다. 기업이 진정으로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 혼자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소비자도 함께 착해져야 한다. 이제 품질과 가격만 우수하고 착하지 않은 기업은 소비자가 외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도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고 착한 기업이 되는 노력을 겉치레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보다 나은 더 좋은 세상은 이처럼 소비자가 착해짐으로써 가능해진다. 미국의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 사이먼 메인워링은 그의 저서 ‘WE FIRST’에서 ‘나 먼저’(me first)가 아닌 ‘우리 먼저’(we first)를 강조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의 건설은 기업이 이익을 낸 후에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이익창출 수단의 일부로 기업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소비자로서 단순한 소비가 아닌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하였다. 착한 소비자가 되는 것은 물론 착한 기업을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보는 것처럼 이래저래 우리가 할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 자식 무한 신뢰… 큰 잘못 스스로 깨닫게

    자식 무한 신뢰… 큰 잘못 스스로 깨닫게

    유대인의 형제 교육법/에제키엘 이매뉴얼 지음/김정희 옮김/와이즈베리/460쪽/1만 6800원 아인슈타인부터 저커버그까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각 분야의 세계적인 인재들 중에는 유대인이 유독 많다. 유대인의 문화와 전통, 특히 교육법에 높은 관심을 보여온 이유다.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한 명도 아니고 삼형제 모두를 각 분야 최고의 지위에 올라서게 한 집안이라면 그 교육법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백악관이 주목하는 엘리트 삼형제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부총장이며 생명윤리학과 종양학계를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석학 에제키엘 이매뉴얼, 오바마 행정부의 첫 비서실장에 유대인 출신 첫 시카고 시장인 람 이매뉴얼, 할리우드 대형에이전트 아리 이매뉴얼이다. 장남인 에제키엘은 저서 ‘유대인의 형제교육법’에서 삼형제가 성공하게 된 평범한 유대인 부모의 특별한 가정교육법을 풀어놓는다. 아버지 베냐민은 주머니에 단돈 25달러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온 소아과 의사였다. 하루 열네 시간씩 힘들게 일하면서도 집에서는 아이들과 뒹굴며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어린 시절 모험담을 들려주며 “의무와 모험이 손짓하면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체스를 두면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가르쳤다. 삶은 경쟁이며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항상 강조했다. 부모는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자존감을 키워주었다. 대화를 할 때는 어른을 대할 때와 똑같이 관심을 보이고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혼내거나 벌주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며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도록 했다. 이들 형제가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꿈꾸기 시작한 것은 13세에 치르는 성인식 바르미츠바 이후부터다. 자유와 책임감, 도덕성,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는 태도, 강한 믿음과 격려를 통해 가정을 자녀 중심으로 돌아가게 한 부모들은 삼형제의 가장 큰 조력자였던 셈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아베 총리, 노벨평화상 받으십시오/김민희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 총리, 노벨평화상 받으십시오/김민희 도쿄 특파원

    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2000년에는 한국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10년은 중국 작가 류샤오보가 받았으니 굳이 동북아에서 순서를 따지자면 일본이 받을 차례가 되기도 했다. 핵 보유와 반입, 제조를 금한다는 ‘비핵 3원칙’으로 1974년 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이후에 일본은 노벨평화상과 인연이 없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베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이웃으로서 기꺼이 박수를 쳐 줄 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벨상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평화상을 받으려면 군축이나 평화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 나는 아베 총리가 동북아의 평화 증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참배가 주변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뻔히 알면서 “한국·중국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기만적인 말을 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일본은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는 것은 좋지만,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 앞이 아니라 침략전쟁의 피해자 앞에서 하는 것이 맞다. 형식상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애매한 수사를 앞세워 군사력을 키우는 포석으로 삼는 것도 노벨평화상감은 아니다. 얼마 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해 온 한 원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한·일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일본은 나라의 덩치에 비해 너무 그릇이 작고, 한국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한 가지 사실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한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아는 그분의 통찰에 퍽 공감했는데,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에 더욱 곱씹어보게 된다. 아베 총리가 미국을 비롯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취임 1주년이라는 상징적인 날을 골라 참배를 강행한 이유는 본인의 신념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제는 ‘패전국’이 아닌 ‘보통 국가’로 세계 속에 서야 한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생각이다. 주변국의 눈치를 보느라 1차 집권(2006~2007년) 당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의 극치”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강대국으로서 일본의 위상을 전 세계에 인정받고 싶은데, 주변국이 70여년 전의 일을 갖고 발목을 잡는 것이 마뜩잖다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지위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바람대로 전 세계 다른 나라들에도 인정받는 ‘강한 일본’이 되려면 자국에 대한 성찰과 책임감이 필수적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놓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존숭의 뜻을 표했다”거나, 위안부 문제에서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등 과거의 일본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주변국들에 존경을 얻을 수 없다. 지금의 참배를 통해 아베 총리는 일본 내 보수층 결집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평화헌법 9조 변경 등 자신의 노림수를 실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그리는 ‘아름다운 나라’(그의 2006년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는 절대로 될 수 없을 것이다. haru@seoul.co.kr
  • 가짜 샤넬백 사러 암시장 잠입한 여기자 눈길

    가짜 샤넬백 사러 암시장 잠입한 여기자 눈길

    미국의 한 여기자가 직접 가짜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암시장에 잠입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미국 ABC 뉴스가 23일(현지시간) 공개한 취재 영상으로, 이 기자는 진품과 거의 같은 짝퉁 명품백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암시장에 잠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의 이름은 비아나 골로드리가(35). 미 백악관의 예산국장이었던 피터 오재그(45)의 아내로도 알려진 이 기자는 동료와 함께 뉴욕 카날거리에 있는 시장에서 ‘슈퍼페이크’로 불리는 가짜 명품 가방 구매에 나섰다. 거리에 진열된 상품 대부분은 지극히 평범한 짝퉁이었다. 손님으로 위장한 이 여기자는 몇가지 상품을 거절한 뒤 검은색 샤넬 2.55백이라는 특정 상품을 요청했다. 그러자 익명의 노점상은 이들을 가게 뒤편으로 데려갔는데, 특정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가게 뒤편이나 벽 뒤에 숨겨진 ‘슈퍼페이크’를 보여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상인은 600달러(약 63만원)를 요구했지만, 골로드리가 기자는 430달러(약 45만원)까지 가격을 낮추려고 흥정했다. 정품 샤넬 클래식의 가격은 약 5000달러(약 527만원). 길거리 짝퉁 가방은 30~40달러(약 3만~4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전해졌다. 앞서 영상에는 한 전문가가 이른바 ‘슈퍼페이크’로 불리는 짝퉁을 정품 가방과 함께 골로드리가 기자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골로드리가 기자는 정품을 맞추지 못했다. 이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여기서 ‘슈퍼페이크’는 본질적으로 가짜를 진품으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품을 가리킨다고 ‘바겐세일의 열기’(원제 Bargain Fever)의 작가 마크 엘우드는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진품과 거의 같은 짝퉁 가방들이 연말 시장에 넘쳐나고 있으며, 이런 상품은 단순히 저작권 침해보다 더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잔 스카피디 포드햄대학 교수는 “확실히, 조직화한 범죄와 관련되거나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이 되는 증거가 있다”면서 “그와 같은 행위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뉴스위크의 패션 담당 기자였던 저널리스트 데이나 토머스는 저서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원제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er)에서 “한 수사관은 내게 ‘2년 전쯤 타이에 있는 한 공장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모조 가죽 핸드백을 조립하는 모습을 봤었다’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그 아이들은 공장 주인들이 밖에 나가 놀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러뜨려 걷지 못하게 만든 상태였다”고 전했다. 사진=ABC 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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