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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학자연구로 본 남북단정수립 과정

    ◎“평양 45년말 실질적 공산정권 수립”/「5도인민위」 조직 등 남측보다 3년 더 빨라/“「서울단정」 출발로 분단고착 ” 주장 허구 입증 대한민국 정부는 민족과 국토가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난지 만 3년째 되는 날인 1948년 8월15일 출범했다.비록 해방된 민족의 염원인 「통일 조국」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대한민국의 수립은 민주사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자못 심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일각에는 「대한민국이 38선 이남에 세워진 단독정부」라는 이유로 그 의의를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남아 있는데다 급진세력은 『남한에서 단정이 출범함으로써 분단이 고착됐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의 출범에 떠넘기는 이같은 주장이 어느정도 타당성을 갖는지 학계의 연구성과를 통해 알아본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관한 역사적 평가를 위해서는 당시 남한지역을 통치하던 미 군정과 정치주도 세력이 통일정부를 이룩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단정을 강행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신용하·김학준·진덕규교수등 국내 학자와 미국의 스칼라피노(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이정식씨(펜실베이니아대 교수)등 국내외 학자 대부분이 한반도 남쪽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이 불가피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 학자의 입장은 ▲광복이후의 정국이 남쪽과 북쪽간에 크게 달랐고 ▲남쪽에서는 새로 탄생할 국가의 주도권을 놓고 좌·우의 정파가 극한대립하고 있었던 반면 ▲이북에서는 소련주둔군의 지원아래 공산세력이 「실질적인」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특히 북한지역에서의 공산통치는 현실적으로 통일정부 수립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남한지역은 미군이 군정을 실시하면서 나름대로의 일정표에 따라 민의를 수렴한 정치단체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실정이었다.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으로 남북을 통괄할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참가신청한 정당·단체가 4백25개에 이른 예에서 보듯 당시의 남한 정국은 지리멸렬한 상태였다.이에는 46년 9월의 「9월총파업」,10월의 「대구폭동」등 광복이후 잇따라 발생한 좌익의 준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반해 이북에서는 45년 8월16일 「함경남도 인민위원회」결성을 시작으로 연내에 황해도·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등 5개 도의 인민위원회 조직을 완료했다.또 46년 2월에는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는등 급속히 통치조직을 확립해 나갔다.이 과정에서 소련식 소비에트정권 수립에 반대하는 기독교·지주·지식계층등의 반대파를 일사불란하게 숙청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이란 저서로 유명한 미국학자 브루스 커밍스마저도 자신의 책에서 『북한에서는 45년 말에 이미 실질적인 정권이 들어섰다』고 인정하는 정도이다.그는 「단정 수립은 한반도 남부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학파의 대표격 학자이다. 따라서 당시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의 논의에 따른 통일정부 수립은 불가능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유엔에 넘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유엔총회는 「남북한 전지역에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구성」할 것을 결의했지만 당초 한반도문제의 유엔상정 자체를 거부했던 소련은 유엔감시단의 입북을 거절함으로써 결국 남한의 단독선거를 가져왔다. 대한민국은 48년 5월10일의 총선거,7월17일의 헌법 공포를 거쳐 8월15일 출범했다. 이에 북한은 기다렸다는듯 8월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치르고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성립시켰다. 이로써 45년 미·소 양군의 진주로 시작된 영토분단은 48년 체제분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 앞서 ▲47년 2월의 「조선인민군 창설」 ▲48년 4월의 「헌법 채택」등 발빠르게 정부수립을 위한 준비를 다져왔다.막상 정부수립 일자만 한달여 늦었을 뿐 단독정부를 준비하고 이룩한 과정은 남쪽보다 북쪽이 훨씬 빨랐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단정의 분단책임론」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대목이다.
  • 이미지산업과 사회의 질/이중한(시론)

    「펜트하우스」와 「임마누엘부인」이 외설시비에 걸려 있다.하지만 도덕기준에서만 외설을 거론해온 우리자신의 규칙에 의해 이 논의는 오히려 방향을 잃고 있다.그동안 외설규제는 제한된 특정부분 노출만을 들여다 봤다.그러니까 이번처럼 걸릴 장면들을 미리 자른뒤 나타나면 더 자를데가 없으므로 할말을 잃게 되는 것이다.이정도는 보아도 되지않는가라는 소리나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따져봐야 할것은 외설장면이 아니라 외설이미지다.오늘엔 외설이 누드를 팔고 있는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아직 우리에겐 이미지와도 싸워야한다는 생각이 없다.당연히 어법도 연습돼 있지 않다.오늘날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문화산업이라는 것은 사실상 그 대부분이 이미지산업이다.만화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어떤 문화산물이든 그 물체가 혼자서 산업화되고 있지를 않다.그 물체에 새로 얹어 사회화하는 이미지,이를 소재로 유행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보급의 구조가 곧 이 시대 문화산업 양상이다. 「플레이보이」만 해도 「펜트하우스」와 같은계열 잡지이다.그래서 「플레이보이」를 손에 쥐려 하지않는 사람은 많다.그런 사람도 때로 플레이보이넥타이는 매고 다닌다.왜 그런가.「플레이보이」는 그것이 비록 섹스를 파는 잡지라 하더라도 상류사회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카터나 키신저도 권두인터뷰에 나온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것이다.「펜트하우스」는 이것도 아니다.「펜트하우스」는 사진을 잘 찍는다.발행인이 카메라맨이다.성을 얼마나 사진기술적으로 잘 팔수 있게 만드느냐에는 일가견이 있다. 이 이미지는 물론 세계시장에 깔려 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펜트하우스」는 넥타이와 같은 생활소도구 캐릭터시장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것만으로도 「펜트하우스」는 굳이 보아야할 산물이 아니고 더욱 국내판까지 만들어 로열티까지 주어야할 품목은 아니다.때문에 이것은 외설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이 문화산업시대에서도 우리가 어떤사회를 만들어 갈것인가에 대한 「사회의 질」 선택의 문제이다. 문화의 산업화는 나날히 대기업화로 가고 있다.우리도 이 시장에 나서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배워야 할게 없지 않다.그러나 그 이전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세계차원 이미지를 우리도 수용하는것이 세계화가 아닐까 한다면 이것도 쑥같은 생각이다. 이 시장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자주 점검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실을 다룰수 있는 능력,자기들 자신의 사물들과 자신들의 역사를 창조할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할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이미지의 확대와 그것의 물량적 누적은 하나씩의 자신의 진실을 아끼며 사랑하는 능력을 파괴하고 좋든 궂든간에 공급되는 상품에만 매달려 살게하는 단순소비자로의 전락을 뜻하는 것이다. 지금은 TV시대도 아니다.정보고속도로의 시대이다.이미지 만들기와 팔기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초단위 속도로 진행된다.그래서 또다른 주장도 나와 있다.새로운 기술을 채택토록 하는 아무리 강한 압력이 산업체계에서 나온다 하더라도,뿐만아니라 국제경제구조에 깊히 편입돼 있다는 피할수 없는 입장이라 하더라도,어느 한 사회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할수 있고 또 저항해야 옳다는 것이다.그리고 사회마다 적응방식은 고정돼 있는것이 아니며 그 과정에 따라 사려깊게 선택될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찍이 1982년에 프랑스 문화상 자크 랑이 말했다.「경제와 문화는 같은류의 투쟁이다」경제에서 제한조건을 달고 관세에 등급을 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못팔게 하기의 온갖 아이디어를 만들어 오던일은 UR이후 한풀 꺾일수밖에 없게됐다.그렇다해서 문화는 이런일을 할 필요가 없는것이 아니다.자신이 선택하는 사회의 질을 기준으로 외설만이 아니라 모든 하잘데없는 이미지상품들을 당당히 거부할수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우리는 진실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수있다.별것아닌 것들까지를 위해 예술과 창작의 자유가 있는것도 아니고,사회의 질을 낮춤으로서 오는 여러 폐해에 예술과 문화의 책임이 제외되는것도 아니다.문화산업의 시대일수록 질의 선택에서는 더 엄격해져야 한다.
  • 김일성·주체사상을 하느님·성경에 비유/김청동의 충성맹세 편지 분석

    ◎“주체사상 전파에 육신이 가루되도록 투쟁”/“자식들에 일찍부터 주체사상 가르치겠다”/주사파 이념·조직 노동계 확산 입증 경찰에 의해 적발된 「김일성주의 청년동맹(김청동)」 조직원들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와 생일축하 편지는 일방적인 찬양과 우상화의 문구들로 가득차 있어 20대 전후의 단순한 사상적 호기심을 벗어나 섬뜩함과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심지어 한 노동자는 김정일을 하나님에,주체사상을 성경에 비유하는 등 김에 대한 감정이 신격화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데다 자식들에게도 늦기전에 주체사상을 가르치겠다고 「고백」하고 있어 「김청동」과 주사파의 조직과 이념이 이미 노동계에도 심각한 정도로 침투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6종류 20여건의 편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김일성부자에 대한 극존칭의 표현과 화려한 수식어는 조직원들이 북한의 선전선동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구국의 소리」방송을 여과없이 옮긴 것으로 이들이 올바른 가치판단과 비판력을 이미 상실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일부 수사관은 이들의 편지내용이 단순한 이념학습의 정도를 벗어나 심정적인 추앙과 신격화의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자발적인 방송 녹취의 수준을 넘어선 북한측과의 직접적인 연계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안된 모대학 청년지식인」이라고 소개한 한 발신자는 92년 1월 18일자의 서신에서 『4년전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노작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읽고 동지들과 무릎을 치며 우리의 유일한 향도이념을 찾았노라고 기뻐하며 감동하던 기억들이 새롭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이어 『제가 받아안기에 벅찰 정도로 소중한 생명을 주신 지도자의 원대한 구상이 온나라에 펼쳐질 때까지 보잘 것 없는 육신이 가루가 되어 허공을 떠돈다 하더라도 투쟁하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남쪽의 척박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노동자」라고 소개한 한 조직원은 같은해 1월 19일자의 생일축하 편지에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항상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으며 마치 기독교인이 성경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이 자기 가슴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듯이 저도 그렇습니다』고 고백해 김정일에 대한 감정이 신격화의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또 『주체사상을 대하면서 하나의 모래알 같던 저의 존재가 커다란 바위로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면서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가는 저는 주체사상을 가슴에 안고 삶을 개척해나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특히 그는 추신에서 『김정일 지도자동지의 위대한 업적과 사상을 제 자식들에게도 일찍부터 가르쳐서 저처럼 늦은 나이에 깨우치는 우매함을 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식인」이라고 밝힌 조직원은 『주체사상은 캄캄한 바다속의 등대였다』면서 『만약 주체사상을 접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실의와 좌절에 빠졌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조직원은 『늘 지면이나 TV를 통해서만 뵙다가 직접 편지를 쓰게돼 감격스럽고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면서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것처럼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향한 흠모와 존경심은 날로 날로 더해지기만 한다』고 극도의 애정어린 표현을 쓰고 있다. 그는 또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서 겨울날씨에 건강에 유의하라고 당부해 「연인사이」이상의 「애절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같은 편지들외에 경찰이 조직원들에게서 압수한 「한민전」중앙위원회 명의로 된 구호에는 「주체의 태양을 충성으로 받들어 가자」,「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시고 영명한 지도자 김정일비서께서 발전,풍부화하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은 현 시대의 유일한 지도사상이며 한국 변혁운동의 향도이념이다」고 적혀 있어 이들의 사상적 편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공단 물파동/경기·전북지역 가뭄 이중고

    ◎물차 한대에 7만∼9만원/일부 조업중단… 급속 확산 전남·경남지역에 이어 최근들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전북·경기지역에 공업용수가 부족해 업체들이 조업을 중단하거나 단축,생산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전북 정주공단에서 필요로 하는 공업용수는 하루 6천t이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29일 현재 2천t만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이에따라 (주)이원제지와 (주)중부펄프등 2개 업체는 이날부터 공장가동을 전면중단했다. 전북도는 다음달 10일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전주공단에서는 국내최대의 제지업체인 한솔제지등 3개 업체가,정주공단에서는 4개 업체가 조업중단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하루 4백t의 물을 사용하는 아주피혁은 13일부터 50t밖에 용수를 공급받지 못해 3백여t을 매일 사다쓰고 있으나 이마저도 부족해 생산량을 30∼50% 감축했다.반월중앙도금조합소속 8개 회사는 하루평균 7백t의 물이 필요하지만 공급되는 양은 3백t에 불과해 조업단축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조합 관계자는 『물사용량이 적은 새벽에 물을 받아놓았다가 8개 회원사가 나눠쓰고 있지만 여의치 못하다』면서 『급한대로 15∼18t짜리 물차 한대에 7만∼9만원을 주고 물을 사다쓰고 있어 회사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 우리모두 한해극복 동참하자(사설)

    사상 최악의 가뭄이다.연일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불볕더위로 전국의 산하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가뭄피해는 영·호남 들녘에 머물지 않고 점차 북쪽을 향해 면적을 확산시키고 있다.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하루에 타들어가는 논밭의 면적만 1만여 정보에 달하고 있다.이대로 가다가는 벼의 경우만 3백만섬의 감수가 예상된다.가축의 폐사도 속출하고 어패류도 떼죽음하고 있다. 댐의 수위는 하루가 다르게 저하되어 앞으로 계속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비교적 수량이 풍부하다는 한강수계의 발전소마저도 20일 이내에 가동을 중단해야할 형편이다.전국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도 43%에 불과하며 그중 24%인 4천2백80곳은 물이 고갈돼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다. 기상청의 예보는 소나기는 오겠지만 장마는 끝났다는 것이고 폭염은 당분간 계속되리라고 한다.전혀 달갑지 않은 태풍이라도 와 주었으면 하는 애타는 마음이지만 그마저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 기후위기요 비상사태라 할수 있다.이런 비상시에 우리가 해야하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인내와 지혜 그리고 협동정신의 발휘라고 생각한다.사실 자연재해라는 것은 인력으로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국민 모두가 지혜를 짜내고 힘을 합쳐 가뭄을 극복하고 위기를 이겨내지 않으면 안된다.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진두에 나선 정부는 이미 가뭄극복을 위한 총동원령을 내리고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3백억원의 긴급예산 지출을 결정했다.인력과 장비도 가뭄지역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가뭄이 극심한 지역마다 공무원과 군인들이 동원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정부는 이밖에도 절수·절전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식수난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 10% 절수운동」을 비롯 수영장과 대중목욕탕등의 휴업일수 확대등도 시행할 계획이다.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보자는 정신이다. 그러나 가뭄피해 등 한해의 극복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되는것은 아니다.온국민의 협력과 동참이 필수적이다.국민 하나하나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우선 가정에서부터 한방울의 물과 한등의 전력도 아껴쓰는 절약정신이 발휘되어야 한다. 가뭄피해 지역의 농민들을 돕는 일에도 모두 동참해야겠다.노력봉사도 좋고 국민성금을 내도 된다.무엇이든 한가지라도 도움이 될 일을생각하고 실천하자.절대로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마음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역사적 진실 외면할것인가(사설)

    정부가 공개한 6·25관련 구소련외교문서는 한국전쟁이 김일성에 의해 주도된 남침이었음을 분명하게 입증해주고 있다.이들 문서는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동의를 받아 전쟁발발 1년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왔음을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다.뿐만아니라 전쟁 한달전에 『6월까지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게 되었으며 7월에는 장마가 시작되고 북한의 전투준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6월10일쯤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소련에 통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실로 반세기만에 역사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귀중한 문서가 아닐 수 없다.물론 6·25전쟁은 그동안 발견된 문서와 당시의 정황만으로도 북한의 「계획된 남침」이었음이 확연히 입증되고 있는 터다.다만 북측은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엉뚱하게 6·25 북침설을 날조,주장해왔다.북의 이런 터무니없는 북침설에 대해 우리사회 일각에서도 동조하고 추종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그들은 일부 진보의 가면을 쓴 수정주의자들과 운동권및 좌경 재야단체들이었다. 이같은 논의에 대해 우리는 문서에 의한 입증이전에 가장 확실하고 명백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반세기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사회에는 6·25를 몸으로 체험한 세대들이 상당수 있다.그 체험세대들의 증언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그럼에도 북침설을 왜곡 신봉하는 일부세력들은 이것조차 외면해온 것이다. 전쟁발발당시의 정황만 살펴봐도 북침설의 하구는 금방 드러난다.북한의 주장대로 남한이 북침을 했다면 개전당일 장병을 휴가보내고 외출시킬 수 있으며 사흘만에 수도서울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황망하게 패퇴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6·25체험세대의 증언을 믿으려 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명백한 정황도 외면하는 일부 북침론신봉자들의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굳이 「아니다」라고 우기는 궤변과 무엇이 다른가.체험과 자연법칙보다 더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마저도 러시아 외교문서 같은 자료를 제시해야만 증명이 되는우리의 현실이 한심하고 비통스러울 뿐이다. 이번에 공개된 구소련의 외교문서는 김일성의 남침을 확고부동의 역사적 사실로 각인시켜주고 있다.북한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쟁의 책임을 통감하고 민족과 역사 앞에 솔직히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또한 6·25에 관련된 역사적 진실이 모두 밝혀진 지금 북침설의 추종자들은 어리석고 황당무계한 미망에서 깨어나기 바란다.더이상 이데올로기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수맥을 찾아라”…한밤까지 횃불작업(“불타는남녘”…가뭄극복의현장)

    ◎소방차 지원받아 20∼30리밖 강물 떠나르고/양수기 총동원 다단계 결수작전에 비지땀/마을에 상황실 설치… 극심한 논부터 물공급도 『타들어가는 대지를 살려내자』 전남과 경남을 중심으로한 남부지방에 사상 유례없는 혹심한 가뭄이 계속되면서 전국민이 「가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 한방울이 아쉬운 들녘에는 최첨단 장비와 소방차가 총동원돼 밤을 도와가며 물줄기를 찾는 작업에 온힘을 쏟고 있다.지금 전국 곳곳에서는 민·관·군이 하나가 된채 재난극복의 또다른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 전남도내에서 가장 극심한 가뭄피해를 겪고 있는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주민들은 18일 불볕더위속에서 뻘겋게 타들어가는 논에 물을 대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곳 54가구 2백30여명은 이미 한달 전부터 마을앞 강물이 말라버리며 전체 43.2㏊의 논이 거북등처럼 갈라지자 물대기 비상상태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한포기의 벼라도 살려보겠다는 심정으로 일주일전부터 포크레인 2대를 동원,13곳의 하천바닥을 파 천신만고 끝에 물줄기 하나를 찾았다.하지만 이지역 일대가 모두 암반층으로 돼있어 간신히 찾아낸 수맥에서 나오는 물이라야 5시간동안 모은뒤 20분정도 퍼올리면 그냥 바닥을 드러내 주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소방차 5대를 지원받아 10㎞쯤 떨어진 인근 복천리의 영산강 농수로에서 물을 떠나르고 있으나 이 또한 타들어가는 대지를 적셔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벼 한포기라도 살려야 5천평에 벼를 심었다는 이 마을 정병율씨(45)는 『68년 가뭄때도 벼수확이 60%정도 가능했으나 올해는 쌀한톨 건질수 없을 것 같다』며 『고추 참깨 콩등 밭작물은 모두 말라죽어 수확을 전혀 기대할 수없는 상태』라고 한숨지었다. 인근 은곡리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곳 주민들은 이웃한 영산강 농수로에 설치된 양수기 50여대를 이용,이달초부터 3㎞에 이르는 구간에 7단계양수작업을 밤낮으로 벌이고 있다.주민들은 마을에 가뭄대책상황실을 설치하고 가뭄이 극심한 논부터 물대기순서를 지정하는등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어 가뭄극복에나서고 있다. 주민 이광익씨(59)는 『하루 24시간 내내 양수작업을 해봤자 20㎝이상 깊이로 갈라진 논바닥에 물이 스며들어 하루도 못가지만 힘이 닿는데 까지 주민들과 힘을 합쳐 물대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군 북면◁ 경남지역에서 가뭄피해가 가장 극심한 창원군 북면·서포면일대에서는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물찾기작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를 찾지못해 농심을 태우고 있다. ○민·관·군 “한마음”으로 북면의 대산·성산·월배·감개마을등에서는 지역주민들을 제쳐두고 군장병,공무원등 2천여명이 나서 굴삭기등 중장비 20대를 동원,하천바닥과 소류지등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방울의 물까지 농경지로 끌어대 북면 하천리 하옥석씨(44)의 논 1천평을 비롯한 이 일대 51㏊의 논을 적셨다.그러나 이는 이 지역 전체 가뭄피해면적 2백94㏊의 17%에 불과했다. 물줄기를 찾는 피나는 노력에도 농작물이 타들어가 농민들을 애태우기는 인근 사천군 서포면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지역주민·민방위대·공무원등 1천5백여명이 중장비 30여대를 투입,사흘째 들샘과 소류지등 33곳을 굴착했으나 끝내 물줄기를 찾지 못해 농민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현장에서 3일째 꼬박을 밤을 새웠다는 서포면 이창기부면장(53)은 『사흘째 물을 찾고 있으나 실패했다』며 『현재로는 물이 나올 가망이 없는 것같다』고 아쉬워 했다. 이에따라 이날부터 서포면에서는 민방위대원 5천2백여명,공무원 4천8백여명,군인등 2만5천여명이 소방차 1백50대와 굴삭기 2백36대,불도저 3대,덤프트럭 34대,양수기 1만8천5백대등을 동원해 비교적 가까운 하천과 5백5군데의 들샘에서 급한대로 논·밭은 물을 길어다대느라 1천3백여㎞의 양수호스를 깔아놔 대형화재현장을 방불케 했다. ▷전북 순창군 쌍치면◁ 양신리 피치마을은 18일 새벽 첫닭조차 울지않은 시각인데도 마을주민 10여명이 착정기주위에 몰려 물길이 터져주기를 목타게 고대하고 있었다. 지난 5월 하순이후 쌍치리일대에는 비가 30㎜밖에 내리지 않아 20㏊의 논과 30㏊의 밭작물이 타들어가고 60여 주민의 생명수인 마을간이상수도마저도 물이 나오지 않기에 이르렀다. ○관정공사에 큰 기대 급기야 농어촌진흥공사의 관정개발팀이 마을에 들어와 암반관정공사를 시작했으나 물줄기는 아직도 터지지 않고 있다.팀장인 농어촌진흥공사 전북지사 지하수부의 박기연씨(39)는 『순조로운 공사진행으로 얼른 물길이 터져 마을주민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임금님도 어쩔 수 없다」는 가뭄을 어떻게든 이겨내겠다는 마을주민들의 의지도 만만치 않다. 착정기 옆에서 근심스런 표정으로 작업을 지켜보다 자리를 뜨는 이 마을 이장 양석두씨(53)는 『가뭄이 심하다고 하늘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내야지요』라며 하늘을 원망기보다는 이를 극복해야한다는 의지를 추스렸다. 이 마을주민들은 벌써 본격적으로 가뭄이 시작된 이달 초부터 산에서 내려오는 실날같은 물줄기를 끌어대기 위해 양수기를 가동시키느라 밤·낮이 없었다.그뿐만이 아니다.고추밭과 담배밭의 수분증발을 막기 위해 풀을 베어다 덮어주는등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살려내느라 폭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마을의 최고령자인 임명옥옹(88)은 『벼 한포기 고추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농부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하늘이 알아줄 것』이라고 농부특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경북 달성군 논공면◁ 물 한모금이라도 더 퍼올리기위한 현장은 처절한 싸움터를 연상케 했다. 3단 양수작업으로 낙동강물을 퍼 올려 타들어가는 논 30㏊에 물을 대고 있는 달성군 논공면 상동리. ○“가뭄은 꼭 이겨야” 마을과 3㎞ 떨어져 있는 낙동강변에는 30마력짜리 양수기 2대가 우선 물을 퍼 올린다.그러면 이물을 다시 산중턱에 설치한 양수장으로 또 퍼올리고 이를 다시 고갯마루의 양수장으로 끌어올려 마을앞 논에 물을 대고 있었다. 한방울의 물이라도 더 논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송수관을 점검하느라 닷새째 밤·낮을 횃불로 밝히고 있다는 이마을 이용철씨(56)는 『군청의 협조로 지난 14일부터 낙동강물을 끌어 올려 논에 물을 대고 있다』며 『하루 4㏊에 물을 대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번가뭄은 어느정도 이겨낼 수있을 것같다』고 애써 지친 표정을 감추고 있었다.
  • 운동권 내부서도 “조문반대”/대학 곳곳 비난 대자보 붙어

    ◎“분향소 설치는 조통위의 시대착오”/NL·PD 「애도」 싸고 사상논쟁 조짐 최근 대학운동권이 북한 김일성의 죽음을 놓고 내부갈등을 겪고 있다. 전남대 운동권이 김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일부 대학 주사파가 대자보·성명등을 낸데 대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다른 운동권 세력들도 김일성애도에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16일 상오 한양대 학생회관 앞에는 PD(민중민주)계열 학생들이 NL(민족해방)계열의 김일성애도를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여 운동권내부에서조차 김애도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 대자보는 『김일성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시하고 조문단파견을 주장하는 주사파의 입장에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북한에 권력승계와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불합리한 체제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또 지난 13일 고려대에는 김일성사망을 다행스런 일로 받아들이고 일부 운동권의 무분별한 애도를 비난하는 대자보가 나붙어 김에 대한 애도여부가운동권의 사상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사회주의자그룹(IS)명의로 된 이 대자보는 『진정한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은 김일성의 죽음을 사회주의의 커다란 걸림돌 하나가 제거된 것으로 알고 기뻐해야 한다』면서 『김일성이야말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자이며 독재자』라고 주장했다. 한양대생 전모군(21)은 『한총련이나 서총련 차원에서 공식적 추모행사를 갖지 않기로 했음에도 일부에서 쓸데없는 짓을 해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함께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이른바 「주사파」학생들마저도 노골적인 추모·애도 분위기에는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양상은 15일 전남대 분향소 설치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김의 사망과 관련한 운동권의 갈등양상을 잘 나타냈다. 경찰이 이날 새벽 금호 노조원들이 파업농성을 하고 있던 전남대에 들어가 분향소 설치를 확인하고 김의 영정과 향촉등을 수거,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자 주사파세력인 전남대 총학생회와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측은 즉각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이처럼 일부 주사파 학생들이 총체적인 뜻과는 상관없이 「김일성애도」가 마치 전체의 분위기인 것처럼 왜곡시키자 일반 학생들사이에 총학생회에 대한 불신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일 김일성사망소식이 전해진 뒤 일부 운동권학생들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으나 공식적인 추도행사를 갖지 않기로 하는등 비교적 자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12일 서강대·부산대등 몇몇 대학에서 김을 추도하고 생전의 업적을 찬양하는 대자보가 나붙고 14일에는 한총련이 평양에 조문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반 학생들은 심한 우려와 함께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대 최민우군(23·국제경제과4년)은 『김일성을 애도하고 북한을 방문하자는 발상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소속 학생들의 시대착오적 극소수 의견일 뿐』이라고 말했다.
  • “북주민밖의 참모습알면 유혈사태”/DPA,서방언론중 평양서 첫보도

    ◎수십년간 외부세계와 접할기회 철저 봉쇄/전문가들,「자리」 장기간 지켜낼까 회의적 북한주민들은 김일성 사망에도 불구,사회주의의 깃발을 계속 높이 쳐들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수십년간 가려져온 외부세계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면 북한내에는 유혈극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독일의 DPA통신이 13일 보도했다.다음은 DPA통신의 페터 레스만기자가 김일성주석 사망이후 서방언론으로는 처음으로 평양 현지발로 보도한 기사요지. 『전세계가 우리와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안다.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계속 사회주의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 것이다』 한 인민군소령은 이렇게 다짐했다. 지금 북한을 휘어감고 있는 것은 정치적 고립감과 마비감이다.북한은 과거 일제강점이나 한국전쟁,혹은 한반도 분단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역사적 사건의 희생양처럼 느끼는 듯한 분위기다.이같은 분위기는 사망한 김일성이 50년간의 독재중 주민들에게 「제국주의의 적」들에 대항토록 끊임없이 주입시키면서 서방과 단절시켜온 결과로 봐야할 것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저항이나 반대는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최소한 공개적으로는.수도인 평양은 회색빛 콘크리트로 이뤄진 삭막한 모습에다 수많은 기념물과 동상,텅빈 호텔로 이뤄진 도시다.주민들은 외부세계의 전모에 한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라디오와 신문들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이들은 언제나 공식적 정부정책에 부합되는 기사만 다룬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과 빈곤상에도 불구하고 식량공급만은 충분한듯 비쳐진다.평양의 한 외교관은 배고픔의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당 지도자 양성소인 평양국립경제연구소의 한인호 교수는 『우리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 있고 경제는 번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구권 붕괴이래 북한이 사실상 경제파탄과 정치적 고립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불문의 사실이다.북한이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38개국에 불과하다.그나마 어느때보다 서방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경제실정에도 불구하고 국교를 가진 나라중 서방국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한교수는 다른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것은 『당의 지침을 무시하고 돈에만 탐닉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은 이와 전적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며 정치적 이념도 아직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또한 북한이 중국의 경제 자유화노선을 도입할 가능성도 부인한다. 이제 북한의 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는 김정일이 경제를 되살리고 북한을 회생시키는 목표를 달성할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자신의 자리마저도 오래 지켜낼수 있을지조차 회의적이다. 한 전문가는 『주민들이 지난 수십년간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금지되어 왔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필연코 유혈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 월북무용가 「최승희 다큐물」 만든다

    ◎60분짜리 2부작… 연말에 완성/「다큐멘터리 서울」서 제작 한창 한국 근대무용을 대표하는 월북무용가 최승희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처음으로 만들어진다. 다큐멘터리 전문 독립 제작사인 「다큐멘터리 서울」(대표 정수웅)은 광복 50주년(95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긍심를 높여준 예술가 최승희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세기의 무희­최승희」를 지난 해 4월 기획,올 연말 완성을 목표로 제작중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최승희의 무용을 전수받은 딸 안성희의 공연모습,한국 무용의 기본이 되는 춤사위를 보존하기 위해 지난 62년 최승희가 만든 기록영화 「한국무용기본」등 진귀한 필름들이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승희(1911∼?)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현대무용의 시조로 일컬어 지고 있는 인물. 미국·유럽·남미 순회공연에서도 세계의 저명한 무용 평론가들로부터 이저도라 덩컨에 버금가는 무용가로 칭송을 받았다. 해방후 「친일파」 「사회주의자」로 몰려 남편 안막을 따라 46년 월북했다. 「세기의 무희」를 제작중인 정수웅감독은 『격동의 세월에도 굴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최승희는 세계적인 무용가였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오랫동안 금기시돼 왔다』면서 『이념의 벽이 무너진 지금 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60분짜리 2부작으로 제작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서울·도쿄·북경·상해·남경·뉴욕·부에노스아이레스·파리·헤이그 등 최승희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된 10여개 도시에서 촬영되며 젊은 무용가가 리포터 겸 재현자로 출연한다.
  • 조선왕조때도 없던 일이…/「울음바다 평양」을 보며/이문구

    북녘 김형에게 계속되는 불볕 더위에다 북한 주민들의 딱한 모습까지 겹친 요즈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하지만 저도 답답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붓을 들었으니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김일성의 사망이야 말로 그리 뜻밖의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닐 뿐 아니라 아쉽고 섭섭한 일도 아니었습니다.살만큼 살다가 갈 때가 되어서 간것 뿐이니까요.더욱이 향년 여든둘은 누가 뭐래도 호상이 아닐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물론 이쪽에서도 그의 죽음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요.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처럼 합의를 봤던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데에 대한 아쉬움,다시 말하면 「죽으려면 일찌감치 죽든지 아니면 좀더 있다가 정상회담이나 하고 죽든지」했어야 옳다는 평론적인 여운이 흐른 것 뿐이었고,지상의 약속보다 지하의 예약에 따라 영결종천 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의 한계 내지 일종의 자연현상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쪽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느닷없이 왠 기미년(1919년)고종황제의 인산장면이 다나오나 하고 착각을 했었습니다.흰저고리와 검정치마가 그렇고 남녀노소 없이 땅바닥에 부복하여 호천고지하는 호곡이 그러했습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소년소녀의 붉은 목도리와 그네들 앞에 버티고 선 것이 대한문이 아닌 높이 36m짜리 황금칠을 한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 동상이었기에 역사책에서 본 제국시대의 흑백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 수가 있었습니다.한결같이 체통도 없이 인사불성이 되어 가슴을 쥐어뜯거나 이마를 땅에 짓찧어가며 몸부림치고 울부짖는 꼴도 또한 황제의 인산에 없는 장면이었습니다.따라서 저 사람들도 과연 김씨 이씨 박씨 정씨 최씨 등 2백49성의 하나로 이쪽 사람들과 똑 같이 김치하고 밥먹는 한 동포란 말인가 하고 의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그들의 본적지가 모두 김일성과 같이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의 만경대라고 하더라도 그토록이나 낯선 몰골로 일사불란하게 발작하여 실성할 수가 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에 갇혀살면서 「당신이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주체성 없는」구호가 입에 발리도록 주체사상 교육으로 세뇌당한 49년 세월을 접어 생각하면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주체사상 교육의 본질이 저마다 타고난 주체성을 제거하고 객체성으로 대체해 우상에 대한 종속물로 처리함과 아울러 집단적인 성형수술을 겸행하여 얼굴없는 인간으로 개조함에 있었으니,오늘날의 집단적인 히스테리야말로 주체사상 교육의 성공적인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당신만 있으면 우리도 이긴다」고 받들어온 김정일의 재산상속을 기정사실화 하고 「슬픔을 힘으로 바꾸어 또다른 한 분의 탁월한 수령으로 오늘의 비통을 용기로 바꾸자」는 구호를 제창하게 된 것도 주체사상 교육을 가장한 「객체사상 교육」의 성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쪽도 갑자기 초상난 집에 상주가 어리석거나 줏대가 없으면 으레 집안싸움이 일어나기 십상입니다.하물며 그쪽에서 졸지에 신을 잃은 사람들의 허망과 허탈감인즉 오죽하겠습니까.쑤셔놓은 벌집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짐짓 꿀벌의사회를 생각해 봅니다.꿀법이 새 여왕벌의 등장과 함께 분봉할 때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외부의 자극을 받아 흥분하면 주인도 못 알아보고 덤비는 것이 꿀벌의 자기방어 본능입니다.그러나 일부러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 여왕벌을 비롯하여 수벌과 일벌도 조용히 제 일에 매달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구태여 고종황제 인산 때의 조문객이 만세운동으로 돌아섰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동해와 서해에 새로운 「보트 피플」의 출현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분봉이 안정되면 꿀을 물어나르듯이 그쪽 나름의 개방과 개혁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북녘동포들/김 대통령 어떻게 맞을까/궁금증 더해가는 연도주민 표정

    ◎과거의 열광·냉담 뒤끝 안좋아/“어떤 태도 취하게 할까” 손익계산 할듯/적당한 자율환영 가장 바람직 북한주민들은 분단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남한의 대통령을 어떤 자세로 맞을까. 열렬한 과잉제스처로 환영할 것인가,아니면 냉담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그도저도 아니라면 환영과 냉담이 혼재하는 연도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북한주민의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영접태도는 북한의 속내를 회담전에 미리 읽어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북한의 체제상 연도의 주민들이 어떤 형식으로 김대통령을 맞을 것인가는 북한당국의 결정사항일 수 밖에 없다.그렇다면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김대통령일행에게 보일 연도주민의 태도는 곧 북한당국의 김대통령에 대한 영접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청와대 당국자나 통일원측은 『그걸 무슨 재주로 점칠 수 있겠느냐』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그야말로 북한당국의 문제이고 협상의 대상으로도 삼을 수 없는,평양에 가서 알수 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이야기다. 지난날의 대북회담 경험에 비추어 평양주민들이지나치게 열광하거나 지나치게 냉담하면 그것은 모두 뒤끝이 그리좋지 않았다.조직적으로 군중을 동원해 열광적인 환영을 펼칠 때는 회담자체가 선전을 위한 것일 때가 많았다.반대로 필요이상의 냉담한 반응을 보일 때에도 남북한 대화자체가 중단되는 전조로 해석되곤 했다.그렇다면 적당한 환영,동원되지 않고 자율에 맡겨진 주민들의 환영이 우리처지에서 보면 가장 바람직한 징조인 셈이다. 북한당국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한해 그들의 대중매체를 통해 회담진척상황을 신속하게 보도하고 있다.또한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된 예비접촉 이후 대남비방방송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비방방송이 전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김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비난방송은 거의 없어졌다. 북한의 이같은 변화를 북한이 성의를 갖고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징후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테면 회담진행상황을 신속하게 북한주민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남한에 대한 논리를 전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지금껏 남한은 「타도의 대상」이자 「미제의 괴뢰정권」으로만 북한주민에게 교육돼왔다.이를 공존의 대상으로 새로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북한주민에게 회담소식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분석이다.이러한 분석이 맞는다면 북한당국은 북한주민에게 불필요하게 냉담한 반응이나,의도된 열광보다는 스스로 자유롭게 환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때에도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한가는 계산될 것이다.때문에 지난 90년의 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에 대한 연도반응 처럼 「무덤덤」을 유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지난 90년 강영훈 당시국무총리가 평양에 갔을때 평양시민들은 가끔 손을 흔드는 것 말고는 대부분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이때는 아예 연도에 나와있는 시민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직전에 열린 통일축구대회와 남북음악회에 참석한 우리측 인사들에게는 동원된 연도의 수많은 시민들이 열광적이고,조직적인 환영을 해 뚜렷이 대비가 됐었다.이번 김대통령의 평양방문은 선전매체에 충분히 공개됨으로써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올 것으로 여겨진다.이들이 단순한 구경꾼의 표정을 지을지,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이 허용될지 자못 궁금한 일이다.
  • 조직·집행력 취약… 「전국연대」 무산/전노대 파업선동 왜 실패했나

    ◎현총련 등 임의단체 구성… 결집력 약해/개별사업장의 쟁의 계획과도 안맞아/일부 노조선 교섭에 「파업동참」 명분 이용하기도 「전국노조대표자회의」의 연대파업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철도·지하철 파업으로 비롯된 이번 파업사태는 이제 마무리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철도·지하철 파업의 장기화여부를 가름할 최대 변수였던 「전노대」의 연대파업이 이처럼 예상보다 쉽게 무산된 것은 「현대그룹노조총연합」등 법적 근거가 없는 4개 임의단체가 모인 회의체라는 조직구성의 한계로 인해 전국적인 동시파업을 지도할만한 집행력이 없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전노대」가 개별사업장의 복잡한 임금·단체협상 일정과 쟁의계획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철도·지하철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방침을 철회시킬 목적으로 무리수를 던졌다는 시각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29일 현재 노동부가 「전노대」의 연대파업 지침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분류하는 사업장은 현대중공업·대동공업·한진중공업등 4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사업장마저도 노조가 「전노대」의 지침을 전적으로 수용했다기보다는 내부의 문제로 쟁의일정을 밟아가다 일정이 맞아 떨어져 연대의 양상을 띠었다는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특히 올해 노사분규의 핵심이 될 것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온 현대중공업도 외견상 「전노대」의 지침을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지난달 26일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그동안 쟁의의 수순을 밟아온 경우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6월말 부분파업및 한시적인 전면파업은 회사나 노조는 물론 노동부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것이다. 27일부터 부분파업을 벌여온 현대중공업 노조는 29일에 이어 30일 전면파업을 벌인뒤 파업강도를 점차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부의 분석으로는 현대중공업의 임금및 단체협상은 오히려 예년보다 원만히 진행되고 있으며 파업을 지속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며칠간의 파업은 연대파업동참을 명분으로 회사측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전략으로 볼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대파업불참을 선언,사실상 「전노대」의 연대파업을 무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대우조선노조의 경우 27일 회사측과의 협상에서 교섭최종안을 내놓은뒤 30일까지 회사측이 수용하지 않으면 부분파업등 쟁의강도를 높여나간다는 전략이다. 대우조선은 노조내부의 알력이 노사분규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으나 회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수 있다는 융통성을 갖고 있어 전면파업등의 극한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을듯 하다. 이처럼 올해 노사관계 안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양대노조의 움직임에 대해서 노동부는 비교적 낙관하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의 노사교섭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장기파업등으로 이어질 경우 현대중공업 노조를 「현총련」의 실질적 리더로 생각하고 있는 다른 현대계열사 노조의 연대파업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 인간과 배와 바다/김용한 해양유물전시관·학예연구실장(굄돌)

    몇주전 목포의 바닷가에 새로 지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이사를 했다.필자의 책상옆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어서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한눈에 가득차고,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다내음과 파도소리는 일찍 찾아온 더위를 잊게해 준다.대도시의 답답한 빌딩 숲에서 여름을 나야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행복한 근무공간임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연한 인연으로 나의 업이 되어버린 배,그 뱃소리를 간간이 들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의 3분의2는 바다로 되어있고 그 나머지 부분인 육지마저도 호수나 강들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이 수역은 그 경계가 불명확해서 우기에는 유역이나 수로가 현저히 확장되기도 하는데,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넓고 험악한 물과 싸우는 한편 이를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환경을 개발하고 개척해 왔다.바다와 강은 인간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장벽이기도 했지만 또한 훌륭한 교통로로서,훌륭한 양식의 채집장으로서 커다란 신의 선물로 간주돼왔다. 고고학적인 근거에 의하면 기원전4만년이전에 이미 인간이 동남아시아로부터 호주까지 건너간 사실이 확인되고 있으며 기원전 7천년께부터 지중해의 깊은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이뤄졌다는 증거도 나타난다.인류는 가축을 사육하고 농사를 짓고 그룻을 만들기 이전부터 배를 짓고 바다를 활용하는 지혜와 능력을 키워왔다.학자들에 의하면 배(선)라고 하는 수단은 인간 지각과 함께 발달해온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배의 역사는 인류의 자연극복과 개척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선박고고학이라는 새 분야가 자리잡아가고 있다.역사에 관심있는 우리 젊은 학도들중에 이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많아졌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 민주 불참속에 맥빠진 신문/상무대국조 스케치

    ◎군공사담당관 신문여부싸고 논란/“수주전제조건 청우에 유리” 추궁 11일 속개된 국회 법사위의 상무대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민주당 의원들이 끝내 불참한 가운데 절름발이식으로 진행됐다. 민자당은 이같은 파행국면에도 불구하고 조사시한인 오는 19일까지 단독으로라도 조사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민주당이 「보이콧」 방침을 철회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야당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조사에서 야당의원 모두가 중도포기했으니 조사의 의미도 자동상실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조사자체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날 국방부에서 진행된 증인신문은 시종 맥빠진 분위기로 일관한 끝에 1시간30분만에 종료. 증인으로 나온 육군 중앙경리단의 전계약처장 정석용대령과 국방부 시설국의 전설계심의담당관 임명용공군중령이 엄격히 보면 조사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이같은 분위기를 뒷받침.이들은 상무대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특혜시비등에 연루돼 구속돼 있는 상태.국정조사의 목적인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규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증인신문에 앞서 민자당 의원들끼리도 신문을 벌일 것인가를 놓고 논란. 현경대위원장등은 본회의의 위임을 받은 이상 조사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본회의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법사위가 일정을 변경하거나 연장할 수는 없다는 견해였다. 반면 강신옥의원등은 이날 증인 2명이 민주당에서 요구한 사람들이므로,민주당 의원들이 나오지 않았으니 신문할 의미가 없다고 주장.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선 끝에 결국 현위원장의 중재로 증인신문은 하기로 결론. ○…의원들은 정대령을 상대로 상무대 이전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청우종합건설측에 대한 특혜가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를 집중추궁. 이인제의원은 『청우측이 특허를 갖고 있던 라크공법을 공사수주의 전제조건으로 한 처사가 위법이 아니냐』고 따졌고 박헌기의원은 『7%지분 밖에 없는 청우측에 현대측과 40대 60으로 지분을 과다배분한 것은 상부의 입김때문이 아니냐』고 질문. 박희태의원은 『2천억여원에 이르는 큰 사업결정을 정대령혼자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정대령은 상부의 지시는 물론 위법,특혜사실마저도 철저히 부인. ○…의원들은 이어 임중령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던졌으나 역시 별무성과. 임중령은 상무사업과 관련해 청우측으로부터 1천만원짜리 약속어음을 받았다가 되돌려 주었기 때문에 정대령에 비해 연루정도가 약해 시원스런 대답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 정상천,정장현의원등은 라크공법 채택과 관련,『청와대측이나 국방부장관등 상부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는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적이 있느냐』고 질문. 이에 대해 임중령은 『장교의 명예를 걸고 지시를 받은 적도,지시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
  • 6월에 생각한다/신재인(서울광장)

    유월의 햇볕은 따갑고 조금 열기가 서려 있다.토요일 하오 3시면 주말의 여유가 시작되는 시각이다.골목안은 한적해지고 어린아이들만 모여 앉아서 좋아하는 놀이들을 한다.이러한 평화스러운 구도를 갑자기 택시 한 대가 침입함으로써 깨버린다.어린이들을 내몰기 위해 괜히 엔진을 큰 소리로 공회전을 시키기도 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서너살 되는 어린이들 앞에 다가가서 우렁찬 경적을 울려댄다.이에 놀란 어린사내 아이가 울음을 쏟는다.택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가면서 그 운전사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내뱉는다.「차가 오면 빨리 비켜야지 죽기전에…」 우는 사내아이는 그칠줄 모른다.그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어머니는 이미 골목어귀를 빠져나가고 있는 택시의 뒤꽁무니에 손을 흔들면서 소리를 친다. 『너는 딸린 애도 없냐!』 삶이 조금 윤택해지면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기고 남에게 체면도 세워보고 조금 도덕심이 발휘되면 나보다 남을 위하는 일,꼭 봉사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헌신적인 일도 해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우리가 항상 듣고 또 몸소 쓰기도 하는 선진국 사례­준법정신,깨끗한 사회,인간애,조국애 등등은 그들의 민족이나 사회문화가 우리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우리보다 잘살고 땅도 크고 해서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극심한 경쟁도 없고,그래서 질서도 잘 지키고 남도 좀더 생각해보고 하는 측면이 많은 것 같다.그들도 우리처럼 조금 못살고 좁은 땅에서 우글거리며 지낸다면 우리보다 더 무질서하고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그러나 이러한 비교를 우리 자신 내부의 과거와 현재에 비추어 본다면 다른 결론을 얻게 된다.과거 우리가 못살았던 시절 허리가 굽고 다리가 휘어져 가파른 보릿고개를 뛰어넘을 수가 없어 몇번이고 주저앉아 쉬어야 했던 그 시절에 우리 사회가 가졌던 도덕심,사회정의,인간성들이 지금 조금 더 잘살고 여유가 있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의 도덕심,사회정의,인간성들과 비교해 볼때 현재가 더 좋으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오히려 지금이 남과 벽을 쌓고 자기만 알고 자기이익이 언제나 우선이고 남보다 많이 벌어야 하고 남보다 더 풍족한 생활을 해야 하는 욕망때문에 세상이 더욱 각박해지고 사랑이 메말라버리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렇듯 현재의 우리 사회가 자기중심적 형태를 취하고 있음으로해서 사회생활에서의 모든 이해득실이 자기중심적 타산에 따라 가늠해진다.그래서 자기자신이 가장 중요하고­그래서 부모도 가끔 나의 적이 될 수 있다.­그다음 관용을 베풀자면 내 가족이 되고 그리고 큰 선심을 베풀면 이웃사랑까지 번질 수 있다.그리고 그보다 더 넓은 의미의 사회,즉 내가 속해 있는 집단,사회,국가에 대해서는 관심의 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저하된다.국가안보의식 이전에 내 삶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골목 저너머로 사라져간 택시기사도 어린이 헌장을 한번쯤 들어 그 내용을 알고 있고 어린이날이면 아마 사랑스러운 자기 아이들과 손을 잡고 서울대공원으로 나갈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택시기사가 욕을 하고 창문을 열고 침을 아무데나 뱉고 가는 것은 그렇게 만든 사회적인 정서,사회가 가늠하고 있는 가치기준의 잣대와도 관계가 있다.사회규범을 지키고 정직하고 순진하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우선 돈이 많고 센 주먹이 먼저고 불법적 이득이 우대를 받는 현재의 우리 사회규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이러한 정신적이고 사회규범에 대한 개혁은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도 강하게 추진된 적도 없고 지금은 얇은 꼬리만 드러내놓고 있다.그래서 국민의 안보의식을 키우고 길거리에 쓰레기 더미와 함께 실종되어가는 국민의 도덕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도 필요하고 건전한 사회운동도 필요하고 정치적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사회적 타락과 나태를 그때 그때 뼈아프게 지적해주고 야단을 치는 우리의 어른,우리의 원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회는 그러한 목소리를 낼수 있는 우리의 원로마저도 우리 스스로가 고려장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이것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 독일에선:1(녹색환경가꾸자:54)

    ◎국민5% 4백만명이 환경단체회원/“음식찌꺼기 환경오염” 가정교육 철저/“배기가스 줄이자” 정차땐 모두 시동 꺼/폐수·기름오염 우려 가정선 세차 안해 한국도 이제 자동차대국의 위치에 올라서고 있지만 독일은 오래전부터 유럽 제1의 자동차대국이었다.독일의 거리를 조금 다녀보면 누구나 한국의 자동차와 독일의 자동차간에 눈에 띄는 차이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한국거리에선 윤이 날 정도로 깨끗이 닦여진 차들이 많이 눈에 띄는 반면 독일에선 그런 차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오히려 운전자의 게으름(?)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 더러운 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독일사람들은 근면으로 소문나 있지만 차닦는데 있어서만은 예외인 것같다. ○더러운 차 미덕으로 그러나 이것을 갖고 독일인들을 게으르다고 하기는 어렵다.1년여정도 독일에 있는 동안 딱한번 집앞 거리에서 차를 닦은 적이 있었다.독일에 처음 도착해 아무 사정도 모를 때였다.물통에 물을 떠서 열심히 차를 닦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나와 시비를 건다.왜 주택가에서 차를 닦느냐는게 그녀의 의문이었다.차를 닦다보면 차바퀴에 묻은 기름 따위가 물에 씻겨져 땅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그녀는 오염처리시설이 돼있는 세차장에서만 차를 닦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곳에서 차를 닦는 것은 위법이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고 차지붕,몸체 등만 조금 닦다 그만두었다.그후로는 한번도 집앞에서 힘들여 차를 닦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독일사람들은 차닦는 것 자체가 주변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한다.운전하는데 아무 지장도 없는데 구태여 오염을 일으키면서까지 차를 닦을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게 독일인의 기본인식이다. 깨끗한 차를 타고 싶어 세차를 하려면 세차로 인해 생기는 오염을 처리할 비용은 당연히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그들은 믿는다.3∼4분 정도밖에 안걸리는 기계세차를 하는데 한번에 최소한 20마르크(약 1만원)는 주어야 한다.독일사람들이 차를 잘 안닦는 것은 어느정도는 세차비용 때문이라고도 할수 있다. ○“워밍업 불필요” 광고 그러나 그들은 오염방지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고 차를많이 닦지 않음으로써 오염방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사람들이 서울의 교통체증을 보면 두가지 면에서 크게놀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물론 상상을 뛰어넘는 체증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차가 움직일 기미가 전혀 없는데도 대부분이 시동을 켠 채로 기다리는 것일 것이다.그만큼 독일사람들은 차가 조금만 밀리면 시동을 끄는게 습관화돼 있다.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는 것은 운전자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자연보호의식 유별 독일운전면허 시험에도 오염방지를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을 묻는 문항들이 많이 들어 있다.한국에선 겨울철엔 어느정도의 워밍업을 해주는게 차의 안전운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독일자동차회사들은 자사제품을 선전하는 광고에서 워밍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독일에선 쓸데 없이 자동차 시동을 켜놓고 있는 것은 절대금지다.조금이라도 시동을 켜논채 서있을라치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주변에있던 누군가라도 시동을 끄라고 참견하고 나선다.배기가스 배출을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자동차와 관련된 이같은 두가지 예에서 보듯 독일사람들의 생활속에는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환경은 국가나 다른 누가 지켜주는게 아니라 바로 나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일상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은 환경보호와 자연보전에 일찍 눈을 떴다.그런 유럽에서도 환경보호에 대한 독일인들(특히 구서독인)의 인식은 유별나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독일에서 실시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환경문제는 언제나 매우 중요한 정치문제로 나타나고 있다.환경문제를 앞세우는 녹색당의 활동이 다른 나라보다 독일에서 유난히 활발한 것도 독일인들이 환경문제에 유난히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독일에는 각종 환경보호 관련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의 수가 4백만을 넘어서고 있다.전체국민의 5% 이상이 자발적으로 환경보호의 파수꾼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에도 주이슈 이같은 환경인식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독일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환경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자란다.음식을 먹다 남기면 그 음식찌거기가 버려졌을 때 그들의 삶에 어떤 불편을 가져오는가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야 한다.아이가 보는 앞에서 어른이 잘못을 스스로 고치는 것을 보여준다.잠깐의 불편을 참아내는 것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하는지 설명을 듣는다.가정뿐만 아니라 유치원,국민학교 등 학교교육에서도 환경교육은 독일아이들이 배우는 교육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환경문제에 큰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다.독일 청소년들의 모임에서도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 「민족적 갈등」은 판결도 왜곡(박강문 귀국리포트:1)

    ◎영법정,아일랜드군 테러사건에 「불공정」 줄이어 런던에서 가령 대영박물관 같은 데를 들어간다면 비행기 탈 때처럼이나 보안 검사가 엄하다.가방을 가졌으면 열어보여야 한다.아일랜드 공화군(IRA)등 북아일랜드 테러집단의 폭탄 공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 있음을 현지에 가면 실감할 수 있다.최근 존 메이저 총리가 아일랜드 공화군과 대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는 하지만 수백년 묵은 갈등과 증오가 쉽게 풀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집단적인 증오는 영국의 신뢰받는 사법제도마저도 때로 공정성을 팽개치게 만든다. 한국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영화가 상영중이다.이른바 길퍼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1974년 런던 남서부 길퍼드라는 곳의 한 식당에서 폭탄이 터져 5명이 죽고 50여명이 중화상을 입었다.여론에 쫓긴 경찰이 고문으로 범인들을 급조했고 이들 4명은 15년만인 89년에야 누명을 벗고 석방된다.이 영화는 사건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건을 소재로 하여 영화적 재구성을한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이민족에 대한 증오에 이르면 영국도 별수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국의 사법제도에 먹칠한 이 비슷한 사건은 여러 건이 더 있다. 아일랜드공화군에 연루된 혐의로 1974년 부당하게 형이 선고된 주디스 워드가 92년 5월 석방됨으로써 영국 사법제도는 또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체포 당시 묘령이던 이 여성은 18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잃어버리고 마흔살의 나이로 감옥문을 나섰다.그는 장거리버스에 폭발물을 장치하여 12명을 살해한 테러 행위와는 관련이 없었다.2억4천만원의 보상금이 잃어버린 긴 세월을 대치할 수 있을까. 주디스 워드는 길퍼드 사건과 마찬가지로 불충분한 증거를 기초로 진행된 허술하고도 편파적인 심리의 결과 감옥에 보내졌다.주디스 워드가 과거 정신불안정 때문에 테러행위 같은 심각한 범죄에 개입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들이 널려 있었는데도 채택되지 않았다. 아일랜드공화군 관련 테러 혐의로 기소된 남녀들에게 불공정하게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례는 1989년 10월 조사된 바로는 38건이나 되며 주디스 워드 사건은 그 18번째라고 한다. 왕립위원회가 사법 기능을 재검토하고 제언서를 냈으며 이런 맹목적인 처사가 다시 없도록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개선보다는 민족간의 갈등과 증오가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임은 국외자가 보아도 뻔한 일이다.
  • 이 날의 우울과 슬픔/스승의 날에 부쳐/한승원(일요일 아침에)

    한해 어느 하루씩을 받아서 한 차례 치르는 그 행사로서 어떤 노릇인가를 해치웠다고 생각하며 그 일을 깜박 잊어버리는 것은 매우 간편한 일일 터이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한 해에 한번씩만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주고 넘어감으로써 이때껏 잊고 있었던 꺼림칙한 죄책감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으려고 무슨 날 무슨 날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신록이 어우러졌다.등나무가 연분홍꽃을 달았고 장미덩굴들이 눈 시린 진홍의 꽃들을 피워냈다.아카시아 꽃떨기 속에서 꿀벌들이 잉잉거린다. 해마다 맞이하곤 하는 스승의 날은 나를 부끄럽고 우울하고 슬프게 한다. 『선생님,이번 일요일에 어디 가시지 않을 건가요? 제가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요』 이때껏 소원했던 어느 제자 한사람이 문득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전화를 걸어오면 나는 매우 난처해지곤 한다.내가 과연 그 제자한테 은사로 떠받들려도 될 만큼 그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었을까.그 전화는 또 나로 하여금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나는 내가 은사라고여기는 분들께 잘 하여 왔는가.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고3 졸업시험을 치르고나서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않고 고향마을로 가버렸던 것이다.당시 내 어린 마음은 대학진학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공서나 회사같은 데에 취직을 하지 않을 터이므로 고등학교 졸업장쯤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내 고3시절의 담임교사는 국어과 담당이었고 그분은 문예지도 교사였다.나는 그분 지도를 받으며 교지 창간 일을 하였다.설익은 나의 오만은 그 어느 누구의 지도를 받지 않고도 독학으로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 선생님께 여쭈어보지도 않고 졸업장을 포기해 버리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3년 뒤 내 생각은 바뀌었다.그동안 많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맛보았고 진학을 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걱정이 앞섰다.마지막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았는데 졸업이 되긴 되었을까.졸업 직전에 퇴학처분이 되거나 졸업 보류 결정이 내리지 않았을까.불안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졸업증명서를 떼기 위하여 모교 서무과로 찾아갔다.졸업증서를 떼어가려면 미납된 납부금을 내야 한다고 할 듯 싶어 그것의 몇배 되는 돈을 준비해갔다. 서무과 직원은 뜻밖에 내가 떼어먹은 등록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수수료만 몇푼 받고 졸업증서를 떼어주었다.고3때의 담임선생님이 고마워 환장할 것 같았지만 부끄러워 그 선생님 앞에 나서지를 못했다. 훗날 소설가 모자를 쓴 다음 광주에서 그 선생님을 뵈었다.나는 그제서야 부끄러워하면서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어떻게 해서 내가 졸업 보류나 퇴학을 당하지를 않았었느냐고 여쭈었다. 또 그로부터 십여년 뒤의 어느날 장흥에 갔을 때 나는 술이 엉망으로 취하여 그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한밤중이었다.그 선생님은 오래 전에 암선고를 받았고 투병중이었다.지금 그 선생님은 이승에 계시지 않는다.세상에는 이러한 제자도 있다. 또다른 두 분의 은사가 계시다.두 분이 다 투병중이다.한 분은 수원에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서울에 계신다.한분은 전화를 걸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만 다른 한분은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 자주 뵈러가지를 못한다.일이 바쁘다는 핑계다.한 해에 큰 명절때에 한두번씩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거나 병문안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삶의 고달픔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나이가 들어 정열이 식은 것인가.강파른 서울살이 속에서 가슴이 메마르고 영악해지고 공리적이고 사무적이 되었는가. 나는 어버이날에 늙으신 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사드리거나 선물을 마련해 드리지 않는다.스승의 날에 스승을 찾아가지 않는다.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은 그동안 불효하거나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에 대한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날이 아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내 벅찬 일에 핑계를 댄다.이 일을 마무리 짓고는 그 두 선생님을 찾아뵈어야겠다.지금 일의 결과들을 들고 찾아 뵈어야겠다.그것으로 이때껏 소원했던 죄를 빌어야겠다.너무 늦어서는 안된다.그분들이 어느날 문득 멀리 떠나가신 다음 혀를 깨물면서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먹는다.이 글을 읽으신 당신은 나같이 늘 핑계를 앞세우곤 하는 제자가 되지않기를 바란다.
  • 쿠오바디스?/김홍명 조선대정외과 교수(굄돌)

    「농안법」의 시행유보조치가 적법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농어민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 사이의 직거래를 촉진시켜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법의 취지는 환영할만 했다.그런데 이 법은 태어나면서 사장(사장)되는 상황에 놓였다. 「농안법」은 1년의 입법예고,1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6월1일부터 발효할 예정이었다.그 안에 들어있는 도매행위 금지규정에 항의하여 가락시장의 중매인이 경매에 불참하면서 유통구조가 마비되고 현지가격 폭락,도시물가폭등이 일어났다.조계종사태에 불덴 심정으로 해당장관이 이 법의 시행을 유보하고 법개정마저도 추진하겠다고 재빨리 손들고 말았다. 좋은 의도에서 나온 법이라도,특히 특정이해집단의 기득권을 위협할 때,착실한 준비 없이는 기대효과를 거둘 수 없다.이왕에 거래물량의 80%를 도매해왔던 중매인이 이법의 시행에 반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정부는 기득권의 삭감보다 먼저 기회의 확대,즉 서울등 대도시주변에 군단위별로 직판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설(예컨대 군마다 3천평의 공간,농수산물종류별로 구분되는 시설)을 확보하고,행정편의와 정보제공을 통해 농어민이 스스로 자생력과 신용을 조직해 내도록 했어야 했다. UR(우루과이 라운드)협상에 아무런 준비없이 나서서 농림수산부는 무조건 도장이나 찍는 「비장한 각오」를 연출해왔다. 정치적 곤경을 피하기 위해 행정명령으로 법자체를 유보한 이번 조치는 법치국가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작심삼일」보다도 법율에 복종할 것을 권고했다. 개혁이 흔들리고 있다.정부는 건전한 생식과 진정한 용기,그리고 신중함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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