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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집 앨범낸 K2 김성면

    ‘슬프도록 아름다운’‘잃어버린 너’ 등 애절한 록발라드로 인기를 모은K2의 김성면이 3집 앨범을 냈다.2년만에 선보인 새앨범의 부제는 ‘보컬리스트’.록을 기반으로 하면서 발라드,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함으로써 진정한 ‘노래쟁이’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기위해 고심했습니다”앨범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매너리즘에 대한 경계.이를 위해 가급적 자작곡은 배제하고,노래에만 전념했다.그럼에도 ‘워낙 욕심이 많은 탓’에 앨범 컨셉을 정하고,그에 어울리는 작·편곡자를 선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김형석 조규만 심현보 오태호 등이 그에게 곡을 줬고,김세황 김영석 이수용 등 일류 연주자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혀를 내둘러요.너무 까다롭다구요.남들 녹음하는시간보다 3배 이상이 걸렸거든요”.1곡 녹음하는데 15시간은 기본.‘눈부신이별’은 무려 21시간을 쉬지 않고 불렀다. 타이틀곡인 ‘그녀의 연인에게’는 현악기 위주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고급스런 발라드로,사랑하는 여인의 남자에게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는가사가 멜로디와 잘 어울린다.‘눈부신 이별’은 피아노와 현악기로만 이루어진 절제된 편곡이 돋보이는 곡.‘유리의 성’은 김성면의 창법에 가장 어울리는 곡으로,세곡을 연달아 들으면 마치 한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91년 그룹 ‘피노키오’의 리드싱어로 활약하며 ‘사랑과 우정사이’를 히트시킨 그는 94년 2인 그룹 K2를 결성,이듬해 1집 ‘슬프도록 아름다운’을발표했다.97년 2집부터는 홀로 활동하고 있지만 K2란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K2는 산악인들이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이래요.저도 저만이 오를 수 있는음악적 색깔을 찾아 끝까지 지켜나갈 겁니다”이순녀기자 coral@
  • 특별기고-국정 국사교과서는 유신잔재

    197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면 박정희정권의 ‘유신’시대가 얼마나 암흑시대였는가 알고도 남을 것이다.오죽 했으면 독재권력의 핵심,중앙정보부장이 ‘유신’ 핵심부의 대통령과 그 경호실장을 살해했겠는가. 현대사회에서 정치의 영향력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잘 아는 일이지만 ‘유신’ 독재의 독소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유신’정권이 이른바 국적 있는 교육 운운하면서 그때까지 검인정이었던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국정으로 한 것도 그 하나였다. 제국주의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괴뢰 만주국 장교 출신 박정희정권이 이른바 친일 콤플렉스를 감추고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족주체성이니,국적 있는 교육이니,한국적 민주주의니 하면서 국사교육을 강화한답시고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하고 대학의 교양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했다.‘유신’정권의 이같은 횡포에 대해 학계의 극히 일부에서 반대가 있었으나 저지할 수 없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당시 문교부 편수관이 와서 국정화하는 국사교과서의한 부분을 집필하라기에내가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학자들도 모두 집필을 거부할 것이므로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집필자를 못 구해서도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그러나 얼마 후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져 나온 것을 보고 얼마나 세정에 어두운가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신’정권이 무너진 후 대학의 교양 국사과목은 필수과목에서 풀려갔지만,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김영삼 문민정부시대도 김대중 국민의 정부시대도 그대로 국정인 채로 있다. 일일이 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민주주의 국가라 자처하는 나라치고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그 예가 거의없지 않은가 싶다.이웃 일본의 경우 역사교과서의 검인정마저도 거부하면서 투쟁한 학자들이 있었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크게 진전시키겠다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유신’ 잔재 국정 국사교과서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유신’ 잔재를 구시대의 유물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고 있는 일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조선왕조와 같은 전제군주시대에는 국가기관으로 춘추관이 있어 왕조사로서 국사를 편찬했다.잘 알다시피 조선왕조실록이니 하는 것이 모두 그렇게 해서 편찬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시대에는 국가기관이 국사를 편찬해서는 안된다.역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또 쓰는 일은 어디까지나 민간 학자들의 소임이다. 국사를 국가기관에서 편찬하는 일 자체가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뚜렷한 증거가 되지 않을 수 없다.국가기관은 다만 역사자료를 충실히수집하고 간행해서 민간 학자들이 이용하게 해주면 된다.국립사료관이나 문서관이면 된다는 말이다. 군사독재시대에는 그랬다 해도 김영삼 문민정부와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와서도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가 국정인 채로 있고 그것을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말해 보면 무엇보다도 국사학계 그리고 집권층 및 교육 관료들의 의식 부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할 때 어느 역사학회도 반대성명 한 장 낸 일이없었다.그런 역사학회니까 ‘유신’정권이 무너진 지 20년이 넘도록 국사교과서가 국정인 채로 있을 수 있고,역사학계가 그러니까 집권층이나 교육 관료의 역사인식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 ‘벚꽃동산’ 연출 전훈…“관객들 많이 웃어 안도”

    ‘벚꽃동산’을 연출한 전훈(34)은 연극이 시작한 지 8일이 지난 16일이 되어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관객들이 보여준 감정의 폭이 예상보다 컸던 것이다.진지함과 웃음의 낙차가 크다는 것은 자신이 해석한 체호프의 희극성이 통했다는 증거라고 느꼈다.주목받는 30대 연출가의 한 사람이지만 대극장에서의 첫 연극공연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벚꽃동산’은 체호프가 ‘내가 쓴 것 중 최고로 웃기는 작품’이라고자평할 정도의 희극이었는데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초연때 비극으로 바꾼 뒤주로 진지하게 해석돼왔거든요.저도 원작을 읽으며 배꼽을 잡고 웃은 ‘소극(Farce)’이어서 웃음에 무게를 많이 두었는데 우리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거든요”. 그는 지난 해 ‘체호프 연극제’를 주관할 정도로 ‘체호프 광(狂)’이다. ‘연극계의 러시아 유학 1호’로서 쉬예프킨연극원에서 접한 체호프의 작품은 ‘리얼리즘의 보고(寶庫)’였다. “인간 심리나 인생의 의미를 잘 표출하는 탁월한 작가지요.한점의 과장도없이 있는 그대로 상황을 설정하여 살아 있는 인물을 묘사하는 실력에 매료되었죠”. 그렇다고 딱딱한 현실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96년 귀국하여 ‘월요 연극’등을 주도하다가 넌 버벌(Non Verbal,대사가 없는)작품인 ‘난타’를 연출할 만큼 파격성도 보여주었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충전을 위한 것이고 뿌리는 ‘리얼리즘’을 지향한다.그것도 우리 정서에 딱 들어맞는 ‘한국식 리얼리즘’이다.뜻맞는 동료들과 ‘극단 노리’를 만든 것도 연장선에 있다. 최형인 정동환 여무영 박봉서 등 대선배들이 많아 연출하는데 힘이 들지 않았냐고 묻자 “일반적으로 선배들과 작업하는게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오히려 네분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었다”면서 “외형적으로는 조연출이 없는데 알고보면 그 네분들이 막강한 조연출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고 밝혔다.이어 이번 무대의 경험이 오는 2004년 ‘벚꽃동산’공연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객석에 가면 늘 그를 만날 수 있다.29일까지.(02)399-1645이종수기자
  • [정직한 역사 되찾기](33)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조선내는 물론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 수립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나 일본 본토도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이들은 대개 군부나 행정기관 등 일제의 권력기관에서 일제통치의 수족으로 활동하였다.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나와 고급장교로 활동한 친일 군인들이 이에 속하며 또 일본이나 만주국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고급엘리트 관료로 활동한 자들을 들 수 있다.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는 밀정이나 행동대원 등 앞잡이로 활동한 자들을 거론할수 있겠다.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박춘금(朴春琴·1891∼1973)을 들수 있다.그는 조선인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두 번씩이나 대의사(代議士·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그의 친일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력 친일파 가운데 일제말기 일제가 임명한 귀족원 의원을 제외하면 일제통치 전 기간을 통해 일본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박춘금은 여러 형태의 친일파 가운데서상당히 드문 유형에 속한다.친일파 가운데는 지식을 팔아 일제에 아부한 집단이 있는가하면,경제적 기반을 일제통치에 제공한 대가로 기득권을 보전하고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부류도 있다.그러나 박춘금은 그도저도 없는 자였다.그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친일대열에서 성공한 자였다.그는 수하에 폭력조직을 거느린 소위 ‘정치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폭력집단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식민지시절에도 이같은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주먹으로 친일배의 정상에 오른 그의인생역정을 더듬어 보자.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도 밀양이다.부 박금득(朴今得)과 모 박차연(朴且連)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청년시절 그는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본말을 배운 것을 밑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일본으로건너간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가 않다.다만 그가 한 연설에서 토로한 말에 따르면,일본에 도착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원 49전뿐이었으며 당시 일본에는 관비유학생 50명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했다. 1920년경 그가 이기동(李起東) 등과 함께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아 ‘상구회(相救會)’라는 단체를 조직한 사실은 확인된다.이기동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재일 친일파다.상구회는 1921년말 ‘상애회(相愛會)’라는 사회사업단체로 개편되는데 23년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에 지부를 조직,조직을 확대하였다.그럴듯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이 ‘상애회’가 바로 박춘금 일당의 일본내 친일활동의 모태가 된다. 막노동판의 주먹패 박춘금이 일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지역을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었다.수 십만 명의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엄청났던 이 천재(天災)를 맞아 일제는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탄압할 목적으로 당국의 개입하에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거나 방화를 일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미즈노(水野鍊太郞) 당시 내무상의 조선인에 대한 개인감정이 개입됐다는 지적도 있다.미즈노는 1919년 9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따라 정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첫 발을 디뎠다가 강우규(姜宇奎)의사의폭탄세례를 받은 인물).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관헌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와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최소 6,000명이 이때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로 이때 박춘금은 상애회 회원 300여명을 동원,‘노동봉사대’를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시체처리와 복구작업을 자청하였다.이 무렵 박춘금 일당은이미 일제당국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상호 자연스레 교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박춘금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애회 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입지를 넓혀갔다.28년 박춘금은 상애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고는 이사장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의 마루야마(丸山鶴吉)를 영입했다.회장에는 이기동을 앉히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였다.이 무렵 상애회는 일본내 주요도시에 지방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원수도 2만명을 헤아렸다.이듬해 29년 상애회관을 지어 사무실도 독립하였고 마루야마 취임 1주년때는 사이토를 기념식 행사장에 초청하는 등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세력가로 부상한 그는 상애회 조직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을 추진하였다.32년 2월 실시된 제18회 총선때 그는 도쿄 5구(區)에 출마,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놀라운 것은 조선인 유권자가 1,236명뿐인 이곳에서 6,966표를 얻었다는 점이다.그의 열렬한 친일성이 일본인 유권자들을 설득시킨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정계 실력자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직후인 2월 23일자로 그가 사이토 전 조선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불초 이번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의 영관(榮冠)을 얻게 된 것은 모름지기 귀대(貴台,손위사람의 높임말)의 두터운 정과 성원을 입은 것이라 여기며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한데서 이같은 점을 엿볼 수 있다.이후 그는 한 차례 낙선했다가 40년 제20회 총선에서 재선하였으나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이후 그는 활동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친일대열의 선봉장을자처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친일활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학도병 징집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에 참석하여 “고이소(小磯)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절 군사령부를 방문,내선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도인에 대한 병역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밝히고는 “(학도병)4천이나 5천이 죽어 2천5백만 민중이 잘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고 외쳤다(매일신보 1943.11.19). 당시 일제가 학도병을 전선으로 내몬 것은 그 이면에는 조선의 미래의 지식분자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었다.그가 이같은 일제의 의도를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에게는 그런 혐의를 둘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8·15 해방을 불과 50일 앞둔 1945년 6월 25일.그는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친일파들을 동원,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하고 그 자신이 당수에 취임하였다.당시 전세는 이미 기울어 일본은 패퇴를거듭하였고 미군의 일본 본토공격이 임박한 시기였다.대의당은 바로 이 때‘최후결전’의 자세로 결성된 것이다. 대의당은 ‘강령’에서 “모든 비(非)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해서는 단연이를 분쇄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비결전적 사상’이란 ‘반전·반일’의 총칭이다.해방후 친일파들의 죄상을 조사,폭로한 ‘민족정기의 심판’에따르면 대의당은 항일·반전 조선민중 30만명을 학살하려 했던 ‘살인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당시 총독부 경무국이 세운 ‘요시찰인에 대한조치계획’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방후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수하를 시켜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돈봉투를보내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이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의 체포,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특위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를 송환하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두 3번 결혼했는데 첫째,둘째 부인은일본여자였고 66년 75세때 세번째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60세의 한국여자(82년 사망)였다.두번째 일본인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장남 박춘남(朴春男·89년 일본에서 사망)은일본 릿교(立敎)대학 3학년 재학중 자진하여 학도병에 출진했었다. 일제당시 일본에서 박춘금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한 일본군 장교출신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마약중독으로 거의 폐인이돼버렸다고 한다.73년 3월 31일 박춘금은 일본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사망,현지에 묻혔다.친일 반민족자 박춘금의 일생은 그제서야 막을 내렸다.죽어서도 그는 고국보다 일본을 택한 것인가,아니면 죽어서도 고국으로 올 수가 없었던 탓일까. 정운현기자 jwh59@
  • 타격 얼마나 입혔나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14일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주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유고 공습은 어디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얼마만큼의 피해를 냈을까. 연일 계속된 공습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당하는 유고마저도 민간인 피해가크게 났다는 불평이나 비난은 없을 정도로 나토군의 공습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공식·비공식으로 들려온 피해상황을 종합하면 나토는 밀로셰비치의 수족을 못쓰도록 만드는데 공격가이드 라인이 맞춰져 있다고 보여진다. 처음 북위 44도선 아래 코소보진영내에 방공망 시설부터 파괴하기 시작한나토군은 이후 44도선 이북으로 영역을 넓힌 다음 지금은 심장부인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깊숙히 공습을 가하고 있다. 공습 첫날 400회,둘째날 250회,세째날 249회 등 3일 동안 모두 1,000회에가까운 항공기 출격으로 모두 150여개에 달하는 방공레이더와 지대공 미사일,그리고 지휘본부로 이르는 통신보고라인들이 철저히 파괴됐다.공습확대와항공기 이동에 전초를 다진 것이다. 유고가 공습 항공기에대처할 기력이 사라진 4일째부터는 5일 동안 나토기들은 코소보진영을 활보하며 학살의 주범인 특수경찰과 야전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코소보내 경찰본부 건물을 파괴시키고 야전군 탱크들을 흩트려 놓았다. 그러나 44도선 이북까지 공격영역을 넓힌 2단계 공격은 17개 목표물을 파괴한 것을 제외하곤 날씨 때문에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유고군의 코소보주민에대한 만행이 극에 달했다. 난민이 이웃나라에 급속히 밀려들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지상군투입요구 목소리를 높여 놓았지만 아직껏 배제되고 있다. 밀로셰비치의 목을 조이기 시작한 공습은 8일째 되는 날부터 이뤄진 수도베오그라드내 공격. 유고내 방공망이 거의 괴멸됐음을 보여준 베오그라드 공습으로 나토는 우선 남쪽 통신통제 센터부터 폭파했다. 긴급통신망을 없앤 나토는 이어 다음날 시내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내무부건물 2곳에 불기둥을 일으켰다. 베오그라드 시내에서 치솟은 이 불기둥은 유고인들의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밀로셰비치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할수도있다는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다음날인 공습 11일째에는 강을 중심으로 내무부건물과 마주보는 정보본부는 물론 북쪽에 위치한 군작전지휘본부도 불길에 휩싸였고 이어 화력발전소를 파괴,가용전력을 크게 줄여놨다. 공습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 것은 지난 4일 수도에서 약80㎞ 떨어진 곳에위치한 정유소가 화염에 휩싸인 채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것과 세르비아 북부 다뉴브강 노비사드교등 다리 3량이 파괴된 것이었다. 다음날 열발전소와 공군본부,방공사령부가 파괴된 날 나토군은 유고군의 활동이 현저하게 둔화되고 혼란스러움을 감지했는데 이어 지휘계통의 혼선과명령전달체계에서 이상조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서울법대 출신 女장교후보 탄생

    “이제야 제 갈길을 찾은 것 같아 힘든 훈련생활마저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첫 서울대 법대출신 여군 사관 후보생인 金銀英씨(26).법조인의 길을 갈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대로 대학 재학중,그리고 96년 졸업한 후에도 ‘당연히’ 사법시험을 준비했었다. 金씨는 그러나 “왠지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어려서부터 꿈꿨던 푸른색 군복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특히 97년 육사에서 여성 입학을 허용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쉬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결국 언니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銀姬씨(29·서강대대학원)에게 여군에 지원할 뜻을 털어놓았고 “잘 해낼 것”이라는 격려에 용기를 냈다. 金씨는 “하려는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법조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힘든 길을 택했느냐”는 물음에 “군인의 길이 천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훈련 중 먹었던 건빵이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걸 보면 군인이 적성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지난달 4일 입대,한달간의훈련 생활을 경험한데 불과하지만 단정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면서 “책임과 명예를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장교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충성’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하는 ‘金 후보생’의 눈이 3개월후 어깨에달 다이아몬드 계급장(소위)처럼 빛났다.
  • 특별 인터뷰-대신그룹 梁在奉회장

    ‘한국 증권업계의 산 역사’‘금융업계의 전설적인 인물’-.대신그룹 梁在奉회장(74)에게는 항상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1944년 조선은행(현재한국은행)에 입행한 이래 55년동안 줄곧 금융외길을 걸어온 ‘골수’금융인이자 국내유일의 금융전문 그룹을 일군 자수성가형 창업오너이기 때문이다. 대신그룹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에 익숙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다.대신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대신증권,대신생명,대신경제연구소 등 9개의탄탄한 금융관련 회사다.梁회장은 ‘금융업계 순위와 매출액에 얽매이지 않는 정도(正道)경영’을 강조한다. “다시 태어나도 금융업에 종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금융산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다.최근에는 대졸 인턴사원 1,000명 채용계획을 발표,재계를 놀라게 했다.대한매일 鄭鍾錫 경제과학팀장이 1일 서울 여의도 대신그룹 사옥 3층 회장실에서 梁회장을 만났다. ●대규모 인턴사원 채용소식에 재계가 놀라고 있습니다.금융기관으로는 첫시도인 인턴채용 구상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실업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정부가 실업대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100만개 일자리 만들기운동’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시책입니다.그래서 우리도4월중으로 300명을 뽑은 뒤 단계적으로 모두 1,000여명을 채용해 각 계열사에 내려보낼 예정입니다.1년뒤 하자가 없으면 모두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예정입니다. ●대신그룹의 업종전문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의 모범 사례인 것 같습니다.경영철학을 소개해 주시죠-지난 55년동안 한우물만 팠습니다.다시 태어나도 금융인을 선택할 것입니다. 단 한번도 다른 업종진출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대신그룹의 상호인 ‘큰 대(大) 믿을 신(信)’에는 저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직원들에게 불특정 다수의 재산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은 고객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도록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600선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올해 시황을 어떻게 보십니까-좋은 닭이 양질의 달걀을 낳듯 기업과 기업을 둘러싼 기업환경과 산업구조가 좋아져야 주가의 질도 좋아집니다.일시적인 시황은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주가와 금리를 제대로 전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력사인 대신증권은 80년대 업계 1위를 달리다 요즘은 4위까지 밀려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보다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만-정치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마감돼야 합니다.대신그룹은 업계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정도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올해 1,544억원의 순익을 올린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우수한 인재와 업계최고의 전산시스템이 대신그룹의 미래를 보장합니다. 무엇보다 주력사인 대신증권은 주식약정 점유율에서는 4위이지만 선물옵션시장과 사이버거래 부문에서는 단연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특히 자산채무비율(주식평가손을 반영한 실질재산)이 국내증권사가운데 가장 높아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합니다. ●대신송촌문화재단을 세워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을실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출생지인 나주시 송촌리에서 송촌(松村)이라는 아호를 따 재단을 세웠습니다.90년 7월쯤 재단을 설립,지난 해까지 1,795명의 학생들에게 12억원을 장학금과 학술지원금으로 지원했습니다.가정이 어려워 수술을 받지 못한 언청이 환자 210명에게 5억원을 지원,수술을 받게한 것도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梁회장은 요즘도 매일 아침 7시전에 어김없이 출근,업무를 챙긴다.그는 50년이 지난 손때묻은 주판을 아직도 사용하는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 있다. 또 핸디 16의 골프광이면서 겨울철에는 주말마다 스키를 즐기는 노익장.지방 순시 때는 젊은 사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탈(脫)권위주의자’이다. 대담 鄭鍾錫 경제과학팀장정리 魯柱碩
  • [해외 저명인사가 본 ‘한국의 국난극복’] -후카가와 유키코

    金大中대통령의 새 정부하에서 한국은 경제외교에 성공하였으며 거시적인측면에서 안정을 되찾아 금융부문의 구조조정도 비교적 신속하게 추진될 수있었다. 세계화 시장에서 한 나라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극히 애매한 시장감각과 이것을 좌우하는 정보 발신력,그리고 교섭력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은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이끌어내고 신용등급을 회복한데다 실천력있는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미국 금융가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은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국제수지개선과 외환 및 물가의 안정실적에 기대를 걸고 있다.한국의 금융개혁 속도는 거의 진척이 없는 일본의 금융개편과 비교해 대조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이는 정권교체로 기득권의 저항에 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내정치의 이해조정,착실한 구조조정,그리고 실물부문의 회복이다.사회정책을 도외시한 IMF의 극약처방은 중남미나 러시아에서 사회적인 분열을 야기했으며 다원화·민주화 과정에 있는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경제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치권,관료,재벌,중소기업,언론기관,노조,시민단체 등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복잡한 갈등이 발생한다.경제면에서 긴장감이 풀리면서 지역감정마저 자극받게 된다면 국내정치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경기부양과 규모의 확대를 위해서 폭넓은 대화를 통한 합의의 형성을 강화해 나감과 동시에 합리성과 효율을 추구함으로써 경제문제가 정치화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개혁을 위해서 리더십이 중요하기는 하나 정부는 어디까지나 다원적 이해관계의 조정자이다.시장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정확한 정보로 무장한 파수꾼이기는 해도,플레이어는 아니다.외자유치에있어서 투기꾼이 원하는 것은 단기적인 기회창출이지만 기관투자가들이 바라는 것은 경제이론이 관철되는 안정적인 투자환경이다.정부는 양자를 구별해후자에 대응하는 것이 국내의 이해관계와 균형을 잡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거시적인 안정을 보다 결정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주요산업을 쥐고있는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을 간과할 수 없다.그러나 구조조정의 목적이 분명하지않다는 점이 우려된다.구조조정의 거시적인 목적은 과잉투자에 빠진 각 산업의 합리화이며,미시적인 목적은 5대 재벌의 재무개선과 금융기관의 채권구조 개선이다.빅딜은 될 수 있으면 양쪽 모두,적어도 어느 한쪽이라도 성과를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한국의 구조조정의 본질은 관치금융에서 탈피하고,기업이 자유롭게 시장에 뛰어들어 실패하면 책임을 지고 퇴출되어 경영자가 교체되는 그러한 시장원리의 확립이다.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인 자금투입도 포함해서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이 경제전반에 걸쳐 어떻게 기여하고,시장원칙을 확립해 나가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실물경제의 회복이 급선무다.실물부문의 수요창출이 없는 상황에서 외자가 계속 유입 된다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이 생기게 되고,그것은 남북관계의 긴장 등 어떤 계기가 있으면 거품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외자뿐만 아니라 한국 부유층의 자본마저도 유출될 경우 경기회복은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다.다행히 한국의 금융개혁은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아마도 한국은 금융개혁이 미봉책으로 끝나 경제재건에 실패함으로써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일본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금융규제 완화 후에는 건설투자 확대,중소기업의 수출이나 창업지원 등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한편,재벌 기업에 대해 연결재무제표의 공개나 공정거래법의 강화 등 경영투명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 지금 자치단체 영문홈페이지엔…

    오징어 다리는 10개지만,낙지 다리는 8개다.세발낙지도 마찬가지다.발이 3개가 아니라 가늘다는 의미다. 전남 신안군 홈페이지 영문판은 세발낙지를 특산물로 소개하면서 ‘small octopus with three arms’(팔이 3개 달린 작은 문어)라고 표현했다.옆에 있는 사진을 얼핏만 봐도 다리가 3개보다 많다.낙지요리를 즐기는 나라는 많지 않다.외국인들이 가뜩이나 생소한 상황에서 이 설명을 이해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경남 거제시에는 바다만 있을 뿐 강이 없다.거제시의 홈페이지는 관내에 가볼만한 관광지로 해금강(海金剛)을 소개하고 있다.바닷가에 위치한 절경이라는 뜻이다.그러나 영문판은 ‘Haegum River is an island 300m above sea-level’(해금江은 해발 300m에 위치한 섬)이라고 적고 있다.강이 섬이라는 문장 자체가 난해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 영문판에 잘못된 번역이 등장하는 사례는비단 이들 시·군에 그치지 않는다.외국인들에게 그 고장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으나 오히려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오·탈자도 적지 않다. 이같이 오역이 많은 이유는 지자체가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대도시 업체에 용역을 주고,실제로 번역하는 사람이 그 지역사정에 대한 기초지식이나 전문성 없이 번역하기 때문이다.번역 내용을 지자체가 충실하게검수할 여건도 못된다. 신안군은 광주에 있는 업체에 용역을 맡겨 지난해 11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그 업체는 영문판 번역 업무만을 떼내 역시 광주에 있는 다른 번역업체에 맡겼다.신안군 관계자는 “번역 공증 확인서를 받아 제대로 된줄만 알았다”면서 “번역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일마저도 자체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 용역을 줘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자치단체는 전국적으로 180여개에 이른다.행정자치부도 최근 20여개 지자체 홈페이지 내용을 표본조사한 결과 영문 번역 등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다음달초쯤 공문으로 보완을 요청할방침이다.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쟝-뽈 레오 佛대사

    쟝-뽈 레오 주한 프랑스 대사는 19일 대한매일과의 특별인터뷰에서 올 상반기에 있을 金大中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대해 많은 프랑스인들이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힌 뒤 한국정부의 현 대북정책 기조에 전적인 지지를 표했다.그러나 레오 대사는 양국간 주요 현안의 하나인 외규장각 고서 반환문제에 대해서는 곧 시작될 새 협상의 한국측 대표가 공식 지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노 코멘트’ 의사를 밝혔다. ▒올해 한국 김대중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조정중이다.프랑스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의 방문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프랑스인들이 ‘한국의 대표적 인물’로 꼽는 김대통령의 방문은 프랑스에서 큰 행사가 될 것이며 한·불 관계 뿐 아니라 한·유럽 관계에서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정부의 포용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반도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높이 평가한다.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가포용정책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프랑스는 한국전에 군대를 파견했 듯 오래전부터 한반도 안정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평화유지와 남북관계 개선을 축으로한 현 안보정책은 북한문제를 적절히 다루고 있다. ▒최근 주한 프랑스대사관 외교관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새로운 소식이라도있는가. 알다시피 북한은 워낙 접근이 제한된 통제사회라 세계 언론에 알려진 내용외에 특별히 덧붙힐 것은 없다.다만 북한 전문가들마저도 ‘놀랄 정도로’ 10년 전에 비해 상황이 나빠졌다.북한은 한때 경제,외교적으로 겁을 줬으나지금은 완전 고립되어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겁을주고 있다. ▒프랑스가 테제베를 공급하는 입장에서 한국 고속전철 사업에 대한 견해는. 고속 전철사업이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공사 지연 등 말이 많았으나 지난 1년 동안엔 좋은 이야기만 들었다.프랑스는 테제베만 공급할 뿐 토목공사엔전혀 관여하지 않는다.테제베는 1차분 인도 완료에 이어 시험구간 운행과 기술이전 등 일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6월프랑스 투자사절단이 한국을 다녀갔는데.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세계적인 시멘트회사인 라 파즈가 석고보드 생산에투자하기로 했고 화학회사 로디아가 뒤를 이었다.유통업체 까르푸도 좋은 예다.그러나 현재 4,500여명의 프랑스인을 고용중인 한국의 최대 대 프랑스 투자업체인 대우전자의 빅딜로 인한 고용 불안으로 프랑스 정부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의 통상관계는. 97년까진 프랑스는 한국에 무역흑자를 보았으나 한국의 수출이 급신장한 지난해 적자로 반전됐다.한국의 식품시장 등 많은 시장이 더한층 개방돼야 한다고 본다.프랑스도 유럽연합 단일시장으로 통합되기 전에 시장규제가 복잡하고 보호주의적 이었으나 지내놓고 보니 그것은 프랑스 자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또 한국의 지나친 국산품애용 시민운동도 좋지 않다고 본다. ▒이라크,이란,러시아문제 등 많은 국제사안에서 프랑스는 종종 미국의 입장을 트집잡는 인상을 주는데. 미국과 프랑스는 가장 오래된 우방국으로서 민주주의 등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가끔 다르긴 했지만 심각한 국제 상황에선 거의 항상 미국편이었다.냉전이후 유일한 하이퍼(슈퍼)파워인 미국과 관련,시락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어느 한나라의 독단 행동을 배제하는 등의 7원칙을 천명했다. ▒프랑스는 좌우파 동거정부로 유명하다.내각제 개헌,이원집정제 등이 거론되는 한국 정치상황과 관련해 이를 살펴본다면. 프랑스는 50년대말 5공화국 헌법제정을 통해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했으며 다행히 기대대로 정권안정 효과를 거두었다.대통령과 총리의 당파가 다르는 동거정부는 현재가 3번째로 대체로 성공적인 행정부 역할을 했다.민주정부는 강한 행정부가 필요하다.그래야 통치도 하고 개혁도 할 수 있다.민주주의는 다수파와 반대파 간의 변증법적 상호관계에서 발전하는 것이지 일률적통합을 지상목표로 하지 않는다.
  • [제2공화국과 張勉] (7) 尹潽善과의 갈등/金在淳 前국회의장

    1960년 8월29일 이른 아침 張勉총리를 비롯해 제2공화국 장관들이 서울역으로 모여들었다.이들은 ‘尹潽善대통령이 휴가 겸 민정시찰을 떠나니 모두 나와 전송하라’는 대통령 비서실의 전갈을 받고 나온 참이었다.이윽고 ‘관1호’차를 타고 尹대통령 부처가 등장했다.尹대통령은 張勉내각의 정중한 배웅을 받으며 오전 8시 특별열차 편으로 떠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수군거림이 일었다.“내각책임제인데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전송나오라고 ‘지시’하는 짓은 무엇이며,그렇다고이에 군말없이 따르는 張내각은 또 뭐냐”하는 말들이었다.한마디로 “尹潽善은 월권한 것이고 張勉은 제 밥그릇도 못챙긴다”는 평이었다. 張勉정부 출범 닷새 후에 일어난 이 간단한 삽화는 ‘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는다.민주당 신·구파의 대결이라는 큰 구도 말고도 ▒권위주의적인 尹潽善과 다툼을 싫어하는 張勉의대조적인 성격 ▒처음 도입한 내각책임제를 양쪽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듯한 미숙함들이 이 삽화에는 들어 있다. 제2공화국은 의회가 정치의 중심인 내각책임제였다.대통령은 의전적인 의미의 국가원수에 불과하며,총리야말로 행정권 담당자인 동시에 국정(國政)에관한 총괄적인 책임자였다.그러므로 尹潽善대통령은 국민과의 접촉을 자제하고,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리를 두는 게 도리였다. 그런데 尹대통령은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록한다’에 수록)에서 “틈틈이 민정시찰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밝혔듯이 자주 거리로 나섰다.도로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절이라서 그가 지방시찰에 나설 때면 으레 특별열차가 동원되곤 했다. 문제는 대통령과의 잦은 접촉이 국민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느냐에 있었다.정치학자들은 “국가통치의 중심이 총리인지,대통령인지 국민들이 혼동을 일으킨다”면서 “이같은 혼란은 정치안정에 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또 “尹대통령이 내각책임제에 상관없이 李承晩대통령이 누린 권위를 자신도 유지하고 싶어한 듯하다”는 풀이도 뒤따른다. 尹대통령은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을 청와대로 자주 불러들여 모임을 가졌으며 張勉내각의 정책과 배치되거나,그것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불쑥불쑥 내곤 했다. 60년 10월10일 許政과도정부때 임명된 시도지사를 張정부가 경질하자 尹대통령은 구파의 입장을 반영해 ‘유감’을 표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張내각에서 “왜 정치에 관여하는가”라고 항의하자 그는 “국가적인 큰 잘못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했다”고 대응했다.다음해 1월12일 尹대통령은민·참의원 합동회의 치사를 통해 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규정하고 “정쟁의 휴전을(당파간에) 협정하라”고 촉구했다.그는 “한 개인,한 당파가당면한 난국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당파이익을 위해 이를 부정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張勉내각을 겨냥해 거국내각을 구성하라는 촉구였다. 張내각과 민주당 신파는 당연히 발끈했다.새해 들어 사회가 안정돼 가고 따라서 경제건설에 주력하려는 마당에 ‘국가적 위기’‘난국’ 운운하며 찬물을 끼얹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분개했다.朱耀翰·金永善 등 張내각의 핵심 각료들은 尹대통령이 내각을 붕괴시키는 명분을 쌓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張勉과 尹潽善의 갈등은 3월23일 ‘청와대 요인회담’(일명 청와대 4자회담)에 이르러 극점에 다다른다.그 전날 밤 서울에서는 반공법·데모규제법 제정을 반대하는 횃불데모가 있었다.張勉정부 때의 마지막 대규모 시위로,밤에 횃불을 동원한 방식 때문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23일 오후 8시 청와대에는 張勉총리·尹潽善대통령·郭尙勳민의원의장·白樂濬참의원의장이 모였다.張내각의 국방장관인 玄錫虎와 이미 신민당으로 분당한 구파의 金度演 柳珍山 梁一東 趙漢栢 徐範錫도 자리를 같이했다.참석자들이 남긴 회고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이어서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그 윤곽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張총리는 ‘반공을 위한 국민운동 전개를 논의하자’는 연락을 받고청와대로 갔다.처음엔 그런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전개되더니 어느결에 ‘정권문제’로 화제가 바뀌었다.이윽고 尹대통령이 “혼란한 정국을 극복할자신이 있느냐”면서 은근히 총리 사임을 종용하더라고 회고했다. 반면 尹대통령은,참석자들이 張총리에게 “거국내각이라도 만들어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고 밝혔다.이에 張총리는 “내가 그만두면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더라는것.그러나 尹대통령은 모임이 서로를 이해하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고 술회했다. 한편 柳珍山은 “尹대통령이 ‘현상유지책만으로 안된다면(정국을 담당할인물을)한번 바꿔 봐야 할 게 아니오’라고 일격을 가하자 張총리가 얼굴이창백해져 변명을 했다”면서 張총리가 끝내 궁지를 면치 못했다고 기록했다. 참석자들은 밤 11시30분쯤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내린 것은없었다.다만 이 모임에서 나온 말들은 일절 발설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다음날 白樂濬이 회담 내용을 공표하는 바람에 각 신문은 ‘尹대통령이 張총리에게 정권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대서특필했다.張정부와 신파가 격노한 것은 당연했다.李錫基 민주당 원내총무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야당 대표들만 불러 놓고 張총리에게 정권을 내놓으라고 말한 사실은 언어도단이다.청와대는 음모를 꾸미는 곳이다.尹대통령이 앞으로도 그런 식의 정치간섭을 한다면 우리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張勉과 尹潽善 사이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지경이 됐다.내각책임제에서 반목하고 갈등하는 총리와 대통령의 관계는 ‘정치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5·16쿠데타가 발생한 뒤 힘을 합쳐 쿠데타를 진압해야 할 두 사람은 최소한의 연락마저도 유지하지 않는다.그만큼 불신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 張내각 외무부 정무차관 金在淳 前국회의장 金在淳전국회의장(76·월간 ‘샘터’ 발행인)은 張勉내각에서 외무부와 재무부의 정무차관을 지냈다.5·16쿠데타 후 ‘혁명검찰’에 의해 ‘반혁명죄’로 구속돼 복역하다 주체세력내 지인의 도움으로 열달 만에 풀려났다.이후 공화당에 참여했고 金泳三정부에서 국회의장직을 사퇴하며 정계를 떠났다. 그때 남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유행어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金전의장은 “張勉정부는 탄환 대신 투표용지로 세운 민주정부인데 지키지를 못해 아직도 국민 앞에 죄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민주당이 비록 신·구파로 나뉘어 있었지만 해공(申翼熙)·유석(趙炳玉)이 계실 때는 張勉박사와의 사이에 조금도 틈바구니가 없었다”고 강조했다.그 예로 19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정·부통령 후보를 뽑을 때도 張勉이 趙炳玉에게 3표차로 석패했지만 아무런 잡음이 없었음을 들었다. “민주당 신·구파가 대통령 후보,당 대표 자리를 놓고 표대결을 벌이지만결과에는 승복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밝힌 金전의장은 “국무총리 인준때해위(尹潽善)가 상산(金度演)을 먼저 지명한 것은 배신”이라고 단정했다. ‘7·29총선’후 대통령은 구파에서,총리는 신파에서 나눠 맡기로 했는데尹潽善을 대통령으로 먼저 뽑고 나니 구파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그는 “학생·시민이 피 흘린 대가로 정부가 들어섰는데 구파가 민의를 거슬러대통령·총리를 독점하려던 게 배신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尹대통령의 정치 간섭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張총리의리더십 부족이라는 평가에 대해 金전의장은 “그것이 張박사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해위의 월권을 막으려면 사사건건 따지고 싸워야 하는데 張박사는 누구하고 다투는 분이 아니어서”라는 설명이다.그는 “훗날 되돌아보니 張박사처럼 책임을 맡은 분이 겸양만을 내세우는 게 꼭 옳으냐는 생각도 들었다”고아쉬워했다. 金전의장은 “사실 해위는 張박사와 신파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몇가지 사례를 소개했다.가령 59년 전당대회때 尹潽善이 최고위원으로 뽑힌 것도 신파에서 “점잖은 분이니 밀어주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張박사는 나를 평소에 ‘재순군’이라고 부르며 무척 아껴주셨다”고 회고했다.金전의장은 “민주주의는 결국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높아져야이루어지는 것인데 당시는 張박사 같은 분을 제대로 이해하는 상황에 이르지못했다”면서 “정말 아까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용원
  • [오늘의 눈] 사고 再發 부른 용두사미 징계

    “건설교통부의 솜방망이 제재가 결국 화를 불렀다.” 15일 발생한 대한항공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악천후로 인한 어쩔 수 없는사고로 추정되지만 원인(遠因)은 감독기관인 건교부의 항공사고에 대한 제재 조치가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효과도 없고 형식적이었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건교부는 지난달 22일 많은 비난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잦은 항공사고 책임을 물어 대한항공에 내렸던 6개월간의 국내선 임시편 운항제한 조치를 2개월 앞당겨 해제했다. 이같은 결정은 행정당국의 제재는 결국 ‘엄포용’이라는 인식을 대한항공에 심어주었고,이날도 악천후 속에서 무리한 착륙 강행을 시도하게 한 것이었다. 만약 건교부가 대한항공에 내린 제재 조치를 철회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제2,제3의 제재 조치가 두려워 안전운항을 했을 것이고,이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건교부는 지난해 10월 사고가 잦은 대한항공에 대해 서울∼도쿄노선의 운항편수 감축과 함께 국내선 임시편 운항제한 조치를 내렸다가 항공법의 무리한 해석이었다는 말썽이 생기자 국내선 운항제한만 해오다 이마저도 지난달 해제했던 것이다. 건교부 당국자는 “제주지역을 오가는 교통인구의 92%가 항공편을 이용하고 있는 데다 대한항공의 제주노선 운항감축에 따른 제주 관광객 감소 및 지역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해제이유를 밝혔다. 그때 건교부 주변에서는 “건교부가 당초 계절적 요인 등을 감안하지 않은채 징계를 결정했을 리가 없다”면서 “황금 구간인 제주노선의 임시편 운항 허용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대한항공측 로비에 건교부가 사실상 굴복한 꼴”이라고 말했다. 또 “임시편 운항제한 조치를 2개월 앞당겨 슬그머니 풀어줌으로써 ‘특정사 봐주기’란 의혹을 떨칠 수 없게 됐다”며 “기준과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는 정부 조치는 결과적으로 항공사의 안전불감증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것”이라고 경고했었는데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다. 소신 없는 행정이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참사를 불러올 뻔했다는 사실에 건교부 항공정책 담당자들은 이제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해야 하지 않을까.박성태 경제과학팀차장
  • [굄돌]책읽는 사람이 이끄는 사회를 위하여

    요즘 읽을 만한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읽을 만한 책’이라면 사람마다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텐데 그것을 남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대개는 ‘잘 나가는 책’이 무엇이냐는 뜻이란다.이른바 베스트셀러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는 뜻인데,매주 신문마다 집계현황이 발표되니까그걸 참조하라고 하면 그것마저도 가지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할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어려서부터 올바른 독서교육이 이루어졌더라면 이런 우문우답(愚問愚答)은필요없을 것이다.서점에 가서 스스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포기한 채 시류를 좇아 따라 읽기에 바쁜 우리 실정이 결국엔 출판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촉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되기도 한다. 또한 베스트셀러는 곧 ‘좋은 책’이라는 등식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대중적 취향보다는 전문분야의 지식을 전수하고 집대성하기 위해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어렵사리 책을 펴내는 훌륭한 저자와 출판사들이 결국엔 실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하지만 어떤 책이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낫다.나쁜 책인가 아니면 좋은 책인가 판단하는 일은 독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며,법적 규제나전문가의 판단에 좌우될 문제는 아닐 듯 싶다.우리에겐 출판의 자유가 있듯이 읽는 자유 또한 주어져 있다.그러므로 어떤 책을 읽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왜 책을 읽지 않느냐 하는 문제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체계적인독서교육이 시급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과거엔 별로 문화적이지 않았던 게르만 민족이,사무라이가 지배했던 일본민족이 오늘날 경제부국이자 출판대국으로 우뚝 선 이면에는 정부 차원의 치밀한 독서교육과 이를 밑받침할 튼튼한 정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책 읽는 사람이 이끄는 사회’,이것이야말로 21세기에 걸맞는 우리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김기태 한국출판학회 사무국장
  • 현대家 영토분할 완전 정리

    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아들 鄭夢奎 부회장이 자동차를 완전 포기함에 따라 연매출 20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제조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는 鄭夢九회장 단일 경영체제로 출범하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12월3일 鄭夢九회장의 자동차회장 취임 발표 이후 석달가량지속돼 온 자동차 부문의 후계구도 진통이 끝났다.특히 그룹의 형제 및 2세분할구도가 속도를 붙이게 됐다. 鄭周永 명예회장으로서도 자동차에 정열을 바쳐온 동생(鄭世永 명예회장)이 결부돼 껄그러웠던 자동차마저도 교통정리를 끝냄으로써 현대그룹 분할의골격을 완성시켰다.창업 1세대간의 영역조정이 일단락된 셈이다. 鄭周永 명예회장의 2남으로 장자역할을 하고 있는 夢九회장도 한때 동생인夢憲회장에게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주위의 시각을 불식시키고 ‘적자’의위치를 더욱 굳혔다.장자를 중요시하는 현대 일가의 전통이 반영된 것이다. 鄭世永 명예회장으로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명실상부한 자신의 기업을 갖고 자율경영을 하게 됐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32년동안 경영권을 행사해왔고 현대건설에서 닦은 나름의노하우로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도 수완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알려진대로 고려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 등 일부 계열사도 함께 넘겨 받는다면 빠른시일내 새로운 현대 위성그룹으로서 확실한 자리 매김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형제와 2세,3세간에 사업권이 아직은 다양한 형태로 맞물려 있어 鄭周永 명예회장 이후 경영권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재계는 보고있다.
  • 울산 앞바다 개발 어떻게되나

    오는 5일 산유국의 꿈을 안고 석유시추선 두성호가 울산 앞바다로 떠난다. 울산 남동쪽 50㎞ 지점의 대륙붕 제6-1광구 고래V구조.이곳 바다밑 2,600여m 지점에 우리가 염원해 온 산유국의 꿈이 묻혀 있다.천연가스층이 100여m의두께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한국석유공사는 5일 두성호의 시추작업을 시작으로 고래V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유전개발 작업에 들어간다.지금까지 탐사작업을 벌인 결과 고래V구조에서 확인된 가스매장량은 340만∼400만t에 이른다.8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동안 한반도 바다 3면을 훑었지만 이만한 규모의 가스층을 발견하기는 처음이다.그동안 경제성에 가장 근접했던 고래I구조보다도 수십배나 조건이 좋다.여러번 실패해 대단히 조심스러워진 석유공사마저도 “기대해도 좋다”고 장담한다. 확인된 매장량 340만∼400만t은 하루에 600∼800t씩 15년 동안 생산할 수있는 양이다.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하루 소비량 3만t의 2∼2.7% 정도지만,광주(光州)시 전체가 15년동안 쓸 수 있는 규모다.예상되는 가스 판매수입도 8억달러 정도로 생산비 2억달러를 감안해도 경제성이 충분하다. 석유공사 측은 두성호를 통해 우선 3개의 평가정을 뚫는 평가시추작업에 들어가 6개월 정도 시추결과를 분석할 계획이다.오는 9월이면 산유국 여부가결정되는 것이다.예상대로 개발가치가 확인되면 곧바로 생산에 필요한 시설공사에 들어가 2000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스를 생산한다.고래V구조에서뿜어져 나오는 가스는 바다 밑 파이프를 통해 50㎞ 떨어진 울산의 육상 터미널로 옮겨지게 된다. 陳璟鎬
  •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새 단장

    청와대가 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년에 맞춰 25일 인터넷홈페이지를 재단장했다.가장 큰 특징은 국정현안에 대한 국민여론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긴급 여론조사(quick poll)’제도를 도입한 것이다.신뢰도 제고를 위해 주어진 질문에 ‘예’ ‘아니오’로 응답할 수 있는 사용자 모듈을 사용하고 중복응답을 방지하는 처리 절차도 마련했다. 또 ‘청와대 자료실’ 메뉴에 외교·통일·안보정책자료방과 언론회견방을추가해 우선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통일부의 올해 업무계획 등을 수록했고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계속 추가하기로 했다. 아울러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마당’이라는 별도 코너를 신설하고,청소년을 위한 ‘청와대 젊은 마당’이라는 이름의 인터넷잡지 웹진도 만들어 젊은이들의 참여를 확대했다.이들을 대상으로 ‘국민의 정부 4행시’ 공모,‘사이버 토론방’ 등의 이벤트를 갖기로 했다. 청와대는 어린이 코너를 이용,어린이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변형 브라우저도 도입하고 동화를 통한 청와대 안내프로그램도 꾸몄다.
  • 김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대화록 요지

    金大中대통령이 21일‘국민과의 대화’에서 밝힌 답변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성과는 어떠하며 부족한 면은 또한 어떠한지 평가해주십시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금모으기운동에 총력을 기울여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취임 당시 38억달러에 그쳤던 외환 보유고가 국민들의 적극적 협력의 결과 52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97년도에 87억달러이던 무역 적자를 지난해는 399억달러 흑자로 돌려 놓았습니다.외국인 투자 유치도 사상 초유로 많고,환율과 금리도 안정 추세에 접어들었습니다.1년만에 IMF에서 빌린 돈 중 28억달러를 갚았고 금년에도 80억달러 정도를 갚을 것입니다.4대 개혁을 철저히 해서 은행과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게됐고 정경유착,관치금융,부정부패를 없앴습니다. 외교성과도 커 세계적인 위상제고를 했고,모범적 민주국가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세계적 평가를 받았습니다.햇볕정책도 세계적 지지를 얻고 있으며사회안정으로 불법폭력시위가 근절되고 노사정이 협력을 잘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흡한 점은 실업대책,경기회복,정치개혁,노동시장안정 등입니다. ▒언제쯤이면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겠습니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그래서 4대 개혁을 올해도 국민과 함께 추진하면 금년에 2%,2000년에 5%대의 플러스 성장을 하고 경기도 그만큼 상승할 것입니다.우리나라에 대해 국제신용평가 기관에서 투자적격 판정을 내렸지만 아직도 우리 경제는 겨우 60점 수준입니다.80점 수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 물가를 어떻게 안정시킬 계획이십니까. 3% 안정 약속을 지키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그 약속은 공공요금 인상억제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연말에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이것은 IMF도 인정한 것입니다.생활물가 안정에 자신을 갖고 있습니다.다소의 불안요인이 있는 것은 농·축·수산물이지만 유통을 개선해 최대한 안정되도록노력할 것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중자금 원활화 방안에 대해 밝혀주십시오. 지난해 9월부터 자금사정이 상당히 완화된 것이 통계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대기업 대출이 작년 9월 이전에 1조7,000억원이었지만 11월에는 중소기업에 1조1,000억원이 나갔습니다.은행별 대출성적을 매일 당선자 때부터 지금까지 체크하고 꺾기도 단속중입니다.금리도 취임당시 30%이던 것이 6∼8%로인하됐고 중소기업 대출금리도 12∼13%로 되어 있는데 10%이내로 내리도록노력하겠습니다. ▒고용보장을 다 해주면 빅딜은 하나마나가 아닙니까.근로자들만 고통을 전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정리해고는 필요할 경우 할 수 있어야 기업이 튼튼해지고 100% 실업을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법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빅딜의 경우 인수기업이 종업원의 생존과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기업안정 범위내에서 최소화할 것입니다.빅딜은 전경련이 중심이 돼 했습니다.기업들이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매도,외자도입,빅딜 등의 조치를 해야지 더 이상 은행과 국민이 희생될 수 없습니다.근로자 고통은 이해하며 위로를 표시합니다.지난 1년간 무려 11개의 재벌이 해체됐고,5대 재벌도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수중입니다.정부도 21개서 17개부로 줄이고 공무원도 4만명 감축했습니다.공기업도 3만명이나 감축했습니다.일부 부실기업 주주의 주식이 휴지가 됐습니다.노동자를 위해 개선한 것도 많습니다.민노총을 합법화했고,교원노조를 허용했으며 노조의 정치활동을 보장했습니다. 의보통합을 실현했고,1기 노사정위에서 합의한 실업예산 5조원을 10조원으로 늘렸고 고용보험을 전면 실시했습니다.구속자 석방과 복권을 했고,실직자노조가입도 허용했습니다.노사정위는 노동자를 위해 필요하고 기업과 정부간 대화 통로입니다.노동운동 자율을 보장하지만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적극적인 외자도입을 놓고 국내기업이 외국자본에 팔려 경제식민지가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경제식민지가 아니라 경제선진국이 되는 거지요.GDP대비 외국인 투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국 24.7%.말레이시아 48.6%,영국 20.5%,싱가포르 72.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6%에 불과합니다.영국에서는 우리기업 준공식에 여왕이 나옵니다.지금도 세계 각국이 투자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고,외국서는우리나라에 투자를 요청하고 있습니다.외국인 투자는 외자 도입,기업 투명성 제고,선진기술 도입,수출시장 확대,일자리 창출의 여러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실업인구가 공식통계로 185만명을 넘어섰습니다.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상반기에는 계절적인 요인 등으로 인해 좀더 늘어나지만 하반기에는 줄어들 것입니다.구조조정으로 고용능력이 향상되고 중소기업 육성,3차산업 육성,기술교육 등으로 우수인력을 육성하면 고용이 확대됩니다.공공근로도 시행중이고 대학졸업생을 인턴으로 4만명 소화중입니다.우리 국민들도 3D업종이든뭐든지 해야 합니다.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구조조정을 해야 기업이 살아일자리가 나옵니다. ▒농어촌 부채 경감 등 지원대책에 대해 밝혀주십시오. 많은 농가가 부채로 허덕이고 있는데 국고와 농협에서 1조6,000억원을 부담해 농가부채 경감조치를 했습니다.99년 말까지 상환이 도래하는 정책성 자금을 2년간 연기했고,농수산 관련 중장기 자금 금리를 1∼2% 인하했습니다.농촌부채 증가는 근본적으로 농산물값을 제대로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농업예산 중 유통부문 예산이 98년 6%이었는데 올해는 15%로 늘리고 30%까지 늘려나가겠습니다.그래서 농축수산물들을 제값을 받도록 하면 생산증대가 자연스럽게 됩니다. ▒제2건국운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실패합니다.실패하는 데 왜 하겠습니까.제2건국은 새로운 천년을 향한 세계적 도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민관이 함께 하는 운동으로 새마을운동과 제2건국은 다릅니다.새마을은 길을 닦고 그랬는데 제2건국은 의식개혁,정신혁명 운동으로 부정부패이던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청산하고 지식혁명,정보화,세계화시대에 적응하고 성공하기 위해 의식개혁운동이 필요한 바 전국민이 신지식인이 되도록 운동을 펼치겠으며 ‘참바다운동’을 펼치겠습니다.‘참여하자’‘바르게 살자’‘다시 뛰자’를 슬로건으로뛰자는 것입니다.성공해야 동아시아 중심국가가 되고 세계 선진국이 될 수있습니다. ▒대북정책에서는 앞으로도 포용정책에 변함이 없으며 올해는 어떤 결실을예상하고 있습니까. 전쟁을 막기위해서는 철저한 안보의 뒷받침이 있는 포용정책이 최선입니다.대북정책은 건국 이후 최초로 우리가 주도해 세계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에 대해 강력한 압력이 되는 것으로 포용정책은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남북문제는 신중하고 착실하게 진행할 것입니다.미국 일본 중국러시아와 협의해 나갈 것입니다.따라서 금년은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역갈등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떤대책이 있는지요. 나는 최대의 희생자로서 지역갈등 해소는 국민적 과제입니다.분열주의자들은 선거 당시도,지금도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대다수 영남분들마저도 분개하고 개탄하고 있습니다.차별을 없애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고 인사의 공정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영호남이 아닌 전국적 화합을 위해노력하고 있습니다.예산도 전국 시도지사와 협의해서 결정하고 있습니다.지역갈등은 경제를 망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후세에 큰 죄를 남깁니다. ▒내각제 개헌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실 생각이십니까. 金鍾泌총리와 얘기해서 처리할 것입니다. ▒국민연금제도 확대실시를 놓고 반발이 적지 않은데요. 당정간에 협의된 내용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뭐라고 답변하기는 곤란합니다.
  • [전문경영인 시대] 포항제철 劉常夫회장

    세계적인 철강회사인 포항제철이 오는 3월 劉常夫회장 체제 1년을 맞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지난해 유례없는 감산조치를 취한 포철은 여러 악조건속에서도 1조원이 넘는 경영흑자를 달성하는 등 내실경영에 성공했다는 평가다.대한매일 鄭鍾錫 경제과학팀장이 21일 창사 이후 최대의 변신을 눈 앞에둔 劉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다음 달이면 회장 취임 1주년이 됩니다.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1년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한해였다고 생각합니다.변화된 경영여건에 맞게 회사 전 부문을 재점검,경영을 내실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철강 내수가 35%나 감소한 상황에서 지난 해 11조원이 넘는 매출과 1조원을 웃도는 당기 순이익을 남기는 양호한 경영성과를 거둔 것은 투자사업을 전면 재조정,고부가 가치 제품 중심의 고수익 구조로 적정이익을 확보한 때문입니다.서남아 중동 중남미 등에까지 수출선을 다변화한 것도 흑자경영의 요인입니다. ▒최근 전경련 부회장에 피선됐습니다.전경련에서의 역할은 어떤 것입니까. 전경련을 재벌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경제개혁에 앞장서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게 金宇中회장의 생각이고,이에저도 공감해 참여하게 됐습니다.철강업계를 대표해 참여한 만큼 업계의 애로와 건의사항이 최대한 경제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철강산업은 세계시장 위축과 통상마찰 심화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이를 어떻게 헤쳐갈 생각입니까. 우선 감산까지 감수하고서라도 안정된 이익을 내는 생산·판매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제품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과잉설비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신규 설비투자는 신중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구조조정에 있어서 감원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구조조정은 그 필요성이 있는 부문에 대해 시행하는 게 원칙입니다.재무구조가 나쁘면 이를 시정해야 하고,인력이 많다면 조정도 필요합니다.그러나인력부문의 구조조정은 최대한 해고회피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국가적인실업문제도 생각해야 하고요.지난해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포철은 철강업계에서 직원 1인당 생산성이 미국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감원은가장 나중에 손 댈 생각입니다. ▒최근 포철은 의욕적으로 PI(Process Innovation·업무혁신)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목적과 방향을 말씀해 주십시오. PI는 기업경영에 기여하지 못하는 조직이나 제도,업무관행 등의 불필요한요소를 과감히 없애거나 바꾸고 비정형의 업무방식을 정형화해 최적의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작업입니다.통합관리 정보시스템을 구축,의사결정과 집행,경영자본의 확보와 분배를 거울 보듯이 투명하게 해 회사와 주주,고객 모두가 최고의 부가가치를 얻는 경영을 이루는 게 목표입니다.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회사로 발전토록 올해부터 3년간 3단계에 걸쳐 적극 추진할계획입니다. ▒민영화를 앞두고 포철의 경영권이 관심사입니다.지금도 외국인 지분이 40%를 웃돌고 있습니다만 올해말 완전 민영화가 이뤄진 뒤에는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을까 우려됩니다.경영권 방어를 위한 구상은 무엇입니까. 포철의 외국인 주주 대부분은기관투자가들입니다.즉 경영권보다는 투자수익에 관심이 있는 주주들인 만큼 당장 회사의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그러나 특정기업이 포철의 경영권을 인수하게 되면 경제력 집중 심화 등 폐해가 우려되는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호 주주그룹 형성등 다각적인 경영권 방어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신일본제철과의 상호지분 보유도 안정주주로서 경영안정을 도모하고 철강경영의 노하우를 교환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입니다.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매각할 것이라는 얘기도있고,직접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제값만 받는다면 팔 수도 있겠죠.그러나 포철은 공익성을 바탕으로 한 경영으로 신세기통신의 경쟁력을 강화해 기존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통신산업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이동통신시장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효율성 향상을 바라는외국 합작파트너들의 입장 등을 고려할 때 경영권 단일화는 시급히 이뤄져야할것으로 판단됩니다. *劉常夫 체제 1년…‘살빼기’로 흑자경영 지난해 3월 劉常夫 회장체제를 출범시킨 포항제철은 ‘전문경영인 시대의개막’이라는 기대와 ‘TJ(자민련 朴泰俊 총재)사단의 재입성’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다.그러나 지난 1년 동안 포철의 궤적은 일각의 우려를 씻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켰다는 것이 대내외의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劉회장과 李龜澤 사장 등 이른바 ‘TJ라인’이 들어서자 정·재계일각에선 향후 포철의 정치색을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특히 야권은 22년에걸친 朴총재와 劉회장의 인간관계를 들며 劉회장 체제에 공세를 취했다. 金滿堤 전회장 인맥의 대대적인 물갈이설이 나돌았고,실제 두차례의 인사로 일부가 현실화되기도 했다.그러나 이는 정치보복의 성격보다는 경영구조 혁신 차원의 색채가 보다 강하다는 지적이다. 劉회장 취임 이후 포철은 상당 수준의 탈(脫)정치화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자민련 등 여권과 물밑 교감을 나누는 징후도 발견되지 않는다.이는 포철을 완전 민영화하기로 한 현 정부의 의지에더해 엔지니어 출신으로 전임회장들과 달리 철저히 정치와 일정거리를 두고 있는 劉회장의 색깔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포철 관계자는 “전임자들과 달리 언론을 타는 것 조차 꺼린다”고 劉회장의 비정치성을 강조했다.劉회장 본인도 21일 대한매일과의 특별 인터뷰에서포철을 공기업으로서 보다는 세계 일류 철강회사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포철의 정치적 이미지를 털어내고픈 의지가 담겨있다. 전문경영인을 강조하는 劉회장의 스타일에 힘입어 지난해 포철은 대대적인구조조정에 성공했다.자산 매각과 사업조정 등을 통해 11조원이 넘는 매출과 1조1,220억원이라는 국내 최대의 순익을 남겼다.자기자본비율은 47%로 올라갔고,부채비율은 114%로 떨어졌다. 연말 완전 민영화를 앞두고 劉회장은 지난해 말 경영위원회의 기능을 축소, 직할체제를 대폭 강화했다.경영권의 향배가 불확실한 상황을 맞아 강력한리더십만이 민영화 이후 포철의 표류를 막을 수 있다는 게 劉회장의 설명이다.국내 철강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포철이 2000년 이후 민영화시대에서 어떤 위상으로 자리매김을 할 지 주목된다./진경호
  • 대한광장-국회와 양비론

    오랫동안 여당 단독으로 열려서 경제청문회까지 마친 국회가 여야(與野)합의에 의하여 22일 임시국회부터는 정상적으로 문을 연다고 한다.정치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국민의 처지에서는 이렇게 파행(跛行)국회를 만들어온 당사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회 소집요구를 해놓고 오히려 출석을 거부하면서 소위 ‘장외집회’라는 것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치 대단한 정치행위를 하는 것처럼 비치게 한 것도 책임의 일단일 뿐 아니라, 검찰에서 체포동의안을 요구한 비리 국회의원에 대하여 시시때때로 적당한 타협안을 내놓고 정치적 흥정을 한것도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회를 바라보면서 책임의 경중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싸잡아 양쪽 모두 다 잘못되었다는 식의 양비론은 더욱 무책임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여야가 다 똑같고 이럴 바에야 국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핏대를 올리는 일은 결국 기분풀이는 될지 모르지만 문제의 핵심을 제기하지 못하고 문제의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이와같은 양비론에 너무나 익숙해왔다.그 양비론은 결국은 진실을 은폐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만들었다.따라서 양비론은 오히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판단기준마저도모호하게 만들어 왔다.사실 정치는 적절한 타협의 과정 또는 그 타협의 예술이라고 까지 말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나 비위를 덮어가면서 적당히 체면이나 지키자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국민의 뜻을 반영하면서 좋은 나라,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끊임없는 역사적 성찰과 새롭고 올바른 목표를 제시할 수있어야 한다.이런 뜻에서 국회는 ‘신성’해야 한다.개인의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국회를 모독하거나 당의 이익을 위하여 교묘하게 국회를 이용하려 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인 것이다.따라서 국민은 이것을 밝혀내야 할 책임이 있고 국회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지난 경제청문회가 환란(換亂) 위기와 함께 국가부도의 위기를 초래한 일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과정으로 이러한 불행이 일어났는가를 따지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그것은 어떤 한 개인을 탓하거나 책임을 묻기보다도 어떤 논리로 어떤 외환정책이 세워졌으며 또 그 정책을 실천하면서 어떤 과정에서,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청문회를 통하여 밝힌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이 일은 국회의 책임이었으며 동시에 국민의 권리였다.어떤 이유에서도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왜냐하면 그토록 고통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처지를 보면서 국회는 그 배경과 사유를 밝혀야하기 때문이었다.사업장이 무너지고,가정이 깨지고,자식들의 희망마저 사라져서 좌절해 있는 사람들에게 국회는 답변을 들려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양비론으로 덮어놓을 수도 없고 또 양보할 수도 없는 일이다.여야가 함께 임시국회를 열면 이 진실부터 밝히고 잘못을 저지른 국회의원들에게준엄한 결정을 내려 국회의 권위를 되살려야 한다.그래야 희망이 있다.
  • 21세기 영농정보 한눈에

    21세기 정보화 시대는 전통산업인 농업마저도 새로운 모습을 강요한다.유전자공학을 응용한 첨단영농 뿐아니라 기상정보나 농어촌 지형 등 농업기반에대한 폭넓고 신속한 정보가 요구된다.이와 관련,농어촌진흥공사는 대한매일후원으로 10일 오전 경기도 과천의 공사 교육원에서 ‘농업기반 정보기술설명회’를 갖고 21세기 선진농업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金成勳 농림부장관 등 정·관계 농업관계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농지정보시스템과 농어촌지형 정보시스템,수문기상 정보관리시스템,농어촌 경관변화 예측시스템 등 그동안 농진공이 개발한 30여종의 첨단 정보시스템이 선보인다. 컴퓨터로 전국 농어촌의 모든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농어촌지형 정보시스템은 컴퓨터에 전국 농어촌지형을 도면과 함께 수록,지형지목 면적 경사도 배수상태 등을 한눈에 제공한다.농지지번도 정보시스템은전국의 농지별로 지번 면적 소유자 지목 등을 수록해 놓았다.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설계자동화시스템이나 하천 유역의 폐수배출업소들을 관리·감독하는 등 수질보호를 위한 농업용수수질 정보종합관리시스템도 소개된다.陳璟鎬 kyo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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