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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본회의 불참 국회파행

    국회가 여야의 무차별 폭로와 극한발언에 따른 대립으로이틀째 파행했다.19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은 유례없는집권여당의 불참 속에 ‘반쪽국회’로 진행되다 중단됐고,여야는 국회 윤리위 제소와 검찰 고발 등으로 맞서면서 정면충돌했다.특히 전날 민주당 송석찬(宋錫贊) 의원의 ‘악의 화신’ 발언에 이어 이날 한나라당 박승국(朴承國) 의원의 ‘홍위병 발언’이 터져나오면서 정국은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본회의] 여야는 오전 본회의를 늦춘 채 원내총무 접촉을갖고 전날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총무는 “송 의원이 사과하고,발언을 속기록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무는 “한나라당이 폭력행위를 사과하지 않는 한 대정부질문은 진행할 수 없다.”고 맞섰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자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은 대정부질문을 하루 연기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했으나 한나라당이 거부하자 오후 2시30분 민주당이 불참한 가운데 통일·외교·안보 분야대정부질문을 개의했다.민주당 의원들은전날 송 의원 발언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몸으로 저지한 데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전원 불참했다.국회 의사국은“여든 야든 대정부질문을 단독으로 한 전례가 없다.”고밝혔다. 그러나 이마저도 야당의원 4명만 질문하고는 정부답변없이 5시5분 산회됐다. 한나라당 의원마저 대부분 빠져나가 의사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한나라당측은이 의장에게 “20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을 예정대로 개의한다고 약속하면 오늘 ‘반쪽국회’를 중단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제의했다.이는 ‘김빠진’ 질문을 더이상 진행할 의미가 퇴색한 데다 경제분야 질문에 폭로공세를 집중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이 의장에게몰려가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해도 되느냐.”며 거세게항의하기도 했다.그러나 이 의장은 “국회는 여야가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고 일축하고 “여당도 정상적인 국회운영에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나라당] 대여공세의 초점을 송 의원의 ‘악의 화신’발언에 맞췄다.송 의원이 이회창(李會昌) 총재 아들의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다수 제기한 데 대해서는 별다른 반박없이 국회 윤리위에 제명을 요구하는 징계안을 내는 것으로가름했다.이 총재 주변문제가 쟁점화하는 것을 피하려는의도다.오전 3역회의에서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송의원 발언은 반미감정을 내세워 부시와 대북문제를 흥정하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또“이번 국회에서 권력형 비리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자 여당이 국회를 고의로 파행으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도 “송 의원 발언은 북한 대변인의 발언과 같다.”고 몰아붙였다. [민주당]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이 “김대중 정권은 김정일(金正日)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발언하자,의원총회·원내대책회의를 열고 박 의원의 사과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국가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없다.”며 “면책특권을 악용한 최악의 발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또 송 의원 발언을 몸으로 막으려 한 한나라당윤두환(尹斗煥)·이규택(李揆澤)·김무성(金武星) 의원을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국회 윤리위원회에 제명을 요청했다.이상수 총무는 “헌정사상 발언 당사자를 밀쳐내고 원고를 빼앗는 폭거는 없었다.”며 “한나라당의 사과없이는 본회의에 응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그러나 이낙연 대변인은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내일 본회의에 응할 가능성이 60대40”이라며 국회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진경호 홍원상기자 jade@
  • 국회의원 補選 단체장 출마 논란

    오는 8월8일로 예정된 보궐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입성하려는 일선 기초자치단체장들의 현직 사퇴가 잇따르는 가운데이들을 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풀뿌리 행정을 훼손하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인 만큼정치계의 인재풀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견해도 있다. 일부에서는 “자치행정을 경험한 인재들이 중앙 정치무대로 진출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중앙 정치권이 품성과능력,지역사정 등에 대한 객관적 검증없이 무조건 찍어놓고보자는 식으로 자치단체장들을 빼가는 것은 갓 뿌리를 내린우리의 지방자치를 황폐하게 할 수도 있다.”며 정치권의 행태를 나무라기도 했다. [출마 움직임] 공직 사퇴 시한을 선거 180일(6개월)전으로규정한 현행 선거법에 따라 지금까지 자치단체장이 직위를사퇴했거나 사퇴하기로 한 곳은 서울 종로구,부산 해운대구,경기 하남시 등이다. 종로구의 경우 정인봉 전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8월8일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됨에 따라 출마를 결심한 정흥진(鄭興鎭)구청장이 지난달 29일 구의회에 사임서를 제출한데 이어 9일 퇴임식을 갖는다. 부산 해운대구 서병수(徐秉洙)구청장도 같은 날 치러지는해운대·기장갑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7일 구청장직 사퇴서를 구의회에 제출했으며,경기도 하남시 손영채 시장도한나라당 유성근 의원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의원직을 잃을것이 거의 확실시됨에 따라 출마를 결심,금명간 시장직을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된 입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자치단체장들의 사퇴를 보는 주민들의 시각은 찬반이 뚜렷하다. 출마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미국 등 자치제의 역사가 깊은 나라에서는 지방자치를 경험한 인재들이 수시로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해 활력을 불어 넣고 있지 않느냐.”고반문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3동 이주영(48)씨는 “일부 지역에서는 공약 불이행 등 문제가 없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것마저도 지역 주민들이 심판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이들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역의 일꾼으로 뽑아준 만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6개월에 이르는 행정공백과이들의 사퇴로 후임자 선출을 둘러싸고 선거바람이 너무 일찍 불어닥치는 데다 선거를 치르면서 불거지는 갈등·반목등의 후유증도 주민들에게는 걱정거리다. 부산시 개금동 황정녀(36·여)씨는 “주민들의 생활자치를이끌어야 할 자치단체장직을 국회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쯤으로 여기는 풍토가 조성될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회 민연식(閔鍊植)부의장은 “단체장들의 선택을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으나 이런 결정이 주민들의 동의와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풍토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고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학 ‘자연계열 기피’ 실태·대책

    대학 신입생들의 자연계열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있다. 자연계열 기피현상은 이번 서울대의 정시모집 합격자 등록률에서 뚜렷이 드러났다.공대 81.7%,자연대 81.9%,약대63.6% 등 자연계열 등록률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자연계열의 상위권 학생들이 공대를 멀리 하고 일부 대학 의학계열에 몰림으로써 서울대 신입생들의 학력 수준도 예년보다 처진다. 고교생의 자연계 지원율도 98년 42%에서 올해 27%로 크게 떨어졌다.대입 수능시험 지원자 가운데 자연계 비율은 97년 42.4%,98년 39.9%,99년 34.6%,2000년 29.4%,지난해 26. 9% 등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자연계 기피현상이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대 자연계열의 단과대들은 곤혹스러워 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법을 찾고 있지만 부처간 이견 해소에 어려움을겪고 있다. 서울대 공대·농생대·약대·자연대 학장들은 해결 방안의 하나로 지난 6일 병역특례제도의 개선을교육부 등에건의했다.앞서 재정경제부도 올해 업무계획에서 자연계열학생들에게 병역특례 범위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무청은 “정부 부처들이 업무 수행에 애로를 느낄 때마다 병역문제를 ‘만병통치약’으로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교차지원제도의 부작용도 자연계열 등록률을 낮추는 한원인으로 꼽히고 있다.서울대 공대 이장무(李長茂) 학장은 “예·체능계와 자연계를 교차지원한뒤 예·체능계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지적했다.이 때문에 교육인적자원부는 8일 교차지원 허용을 최소화하는 등 뒤늦게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차지원 범위를 강제로 조정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 확대라는 시대추이와 어긋난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서울대 자연계열이 단과대 단위로 신입생을 뽑은뒤 2학년때 개개인의 전공을 선택토록 하는 방식이 자연계열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을 밟던중 병역특례혜택을 받기위해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성우(28)씨는 자연계열 학생의 현실에 대해 “한마디로 처량하다.”고 호소했다.93년 입학한 이씨는 “자연계열 학생들은 컴퓨터만 잘 다루면 취업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는데 벤처가무너지면서 이것마저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자연대 박성현(朴聖炫) 학장은 “젊은이들이 자연계열을 기피하는 현상을 없애려면 과학기술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학계 관련자들은 자연계열의 교육을 내실화하고 졸업생들의 취업기회를확대하기 위해 기업 인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
  • 물건에도 역사가 있다

    ▲물건의 세계사(지바현 역사교육자협 엮음). 역사란 것은 거창한 정치제도사나 사회경제사 속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사소한 물건들에도 나름대로 유서깊은 역사가 있으며 이 물건들이 세계사의 흐름에적지않은 역할을 한 경우도 많다. 예를들면 우리는 음식이 싱거울 때 별 생각없이 소금통을들어 소금을 치지만,이 소금이 고대에는 현대의 석유 못지않게 중요한 물건이었다. 소금을 얻기 위해 무수한 전쟁이일어났으며 그 한 고비마다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고대 로마병사들은 급여를 소금(salt)으로 받았는데 영어의샐러리(salary,급여)는 여기서 기원된 말이다. 이처럼 ‘물건의 세계사’(지바현 역사교육자협의회 세계사부 엮음,김은주 옮김,가람기획 펴냄)는 물건을 통해 인류 조상,특히 하층민중들의 생활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여러 국가들간의 상호연계를 파악해 보자는 미시사적접근법을 취한 역사책이다. 다만 한 가지 사물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기보다 다양한 대상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학술서 이전에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인문서적 쪽에 가깝다고 하겠다. 책은 크게 6부로 구성된다.쌀과 소금,통조림으로 대표되는‘먹을거리’, 담배나 위스키, 설탕 등의 ‘기호식품’,다이아몬드,신발 등의 ‘장식품’,그리고 돈과 안식일,종 등으로 살펴 보는 ‘문화교류와 종교’,레바논삼과 석탄,석육,금,은으로 알아보는 ‘자연과 산업’,마지막으로 철포,독가스,원자폭탄 등 무기의 발달사를 짚어보는 ‘전쟁과평화’ 등.그밖에 각 장마다 1개씩 실린 칼럼들은 지엽적사실들의 암기식 역사교육 문제점을 지적하며 과정 파악을 통한 입체적 역사 구성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또한 과학자마저도 역사나 정치와 동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었음을아인슈타인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역사를 아는 자만이진정한 전문가라고 강조한다.9000원. 신연숙기자yshin@
  • 무너지는 농어촌학교/ (상) 남은 학생 뒤숭숭 “공부 안돼요”

    농·어촌 학교 학생들이 도시로 떠나고 있다.사교육은 물론 공교육마저도 제대로 받기 어려워 새 교육환경을 찾아탈출하는 것이다.이제 농·어촌 학교는 또래 집단마저 형성하기 힘든 실정이다.농·어촌 학교의 실태 및 대책을 3차례에 걸쳐 다룬다. ■당진 미호중학교 르포. “우리만 손해보는 것 같아요.떠나는 친구들도 밉고….” 수진이(15)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개를 떨궜다.수진이는 요즘 풀이 죽어 있다.수진이가 다니는 중학교 입학생들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이대로 가다가는 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얘기를 들은 지도 오래다.읍에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제대로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수진이는 충남 당진군에 있는 미호중학교 2학년이다.당진읍에서 7㎞를 들어가 정미면 천의리 봉화산 자락에 자리잡은,학교 건물만 보면 제법 큰 학교다.지난 6일 오후 봄을재촉하는 포근한 햇살이 교정을 비추고 있었지만 텅 빈 운동장과 주인 잃은 빈 교실들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현재 전교생은 48명밖에 안된다.그나마 3학년이 졸업하고나면 신입생을 합쳐 38명으로 준다.이 학교는 90년에는학생수가 394명으로 중간 규모는 됐다.그러나 신입생이 해마다 감소하고 전학생이 늘면서 학생수는 감소를 거듭했다. 95년 145명,99년 78명으로 줄더니 2000년에는 59명까지떨어졌다. 미호중이 학생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는 도회지 학교에다니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탈출 바람 때문이다.젊은 주민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도시로 떠났다.남아있는 주민들조차교육 환경이 좋은 당진읍에 있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려애를 썼다.해마다 입학 예정자의 절반이 주소지를 읍으로옮겼다.부모들은 읍에 있는 중학교로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위장 전출을 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농촌인 이 지역의 교육 환경은 열악하다.학원이 없어 수업이 끝나고 더 공부하고 배울 만한 곳이 없다.학생수가점점 줄다 보니 경쟁 의식도 거의 없다.그래서 학생들이다시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2학년 나연이는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읍으로 나간 친구들은 밤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소외되는 것 같다.”면서 “남아있는 친구들도 몇명 안돼 경쟁심을 느끼지 못해 우물안 개구리가 돼가는심정”이라고 말했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교사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중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12과목.하지만 교장까지 합쳐도교사는 10명뿐이다.한 교사가 두세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음악과 미술은 인근 중학교 교사가 와서 가르치지만 특기적성 교육과 특별활동 등 지도할 과목을 따지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적은 학생수 때문에 학생들이 겪는 피해는 심각하다.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이 학교 출신인 공주사대부고 2학년 계형(17)이는 어려서부터 키워온 공학도의 꿈을 포기했다.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잘해 당진군에서 주최하는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쓸었지만 원하던 충남과학고에는 입학하지못했다.성적이 3학년 학생 중 3% 안에 들어야 하는 규정때문이었다.당시 미호중 3학년은 26명에 불과해 1등을 해도 ‘상위 4%’였다.아버지 이상건(李相健·51)씨는 “이럴 줄 알았다면 읍으로 중학교를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 ■농어촌 학교 실태. 농·어촌 지역 초·중·고교생들은 수업이 끝나더라도 학교에 머문다.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받거나 그냥 놀기위해서다.그들에게는 학교생활이 교육의 전부다.수업 종료와 함께 학원을 찾아 떠도는 도시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르다. ●농·어촌 학생 해마다 급감=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를 보면 92년을 기준으로 초등학생은 100만 9000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3만 9280명으로 무려 66.38%나 줄었다.중학생도92년에 비해 70.16%나 감소해 16만 1136명에 불과하다. ●교사 수도 줄었다= 92년 4만 1766명에 달했던 농·어촌의 초등학교 교사는 지난해 1만 9386명으로 53.58%나 감소했다.중학교 교사도 92년 2만 7072명에서 1만 2666명으로 53% 줄었다.인문계와 실업계 고교 역시 92년과 비교해 각각48.10%와 40.44%나 감소했다. ●떠나는 학생들은 막을 수 없다= 충북 진천군 S초등학교는 70년대만해도 전교생이 700∼800명이나 됐다.지금은 90명뿐이다.아직도 해마다 10명 정도 도회지로 전학을 간다.주변에는 학원이 없고 태권도·웅변·피아노 학원은 5㎞나떨어져 있어 다니기 어렵다. ●더 나은 교육여건을 찾아서= 충남 당진군 미호중 2학년학생의 학부모는 “도시로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느냐.”면서 “정부도 농촌 학생들에게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박홍기 김소연기자 hkpark@ ■이인학 미호중 교사의 바람. “도회지로 떠나는 친구들 때문에 풀이 죽은 아이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당진 미호중 이인학(李仁學·51) 교사는 해마다 입학철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신입생이 점점 줄기 때문이다.올해 신입생은 12명.거주지로 따지면 22명이 입학해야 하지만 10명은 당진 읍내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읍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읍으로 나가는 학부모들을 말릴수만은 없습니다.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학교 자체가 없어질지 모르지요.” 25년 동안 교단을 지켜온 그는 정부가 교육 문제만은 경제 논리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도시로 나갈 수 없는 아이들도 엄연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학급 수에 따라 교사를 배정하는 현 제도는문제가 많습니다.교사 수를 학급당 1.5명으로 정하다 보니정작 학생 수가 줄면 교사까지 덩달아 줄어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교육은 경제와 엄연히다르다는 것을 정부가 왜 모르는지 답답합니다.”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배어났다.“학생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만 하는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책상에만 앉아 정책을 만드는 동안 농촌에 남은 아이들의희망은 하나둘씩 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윗분들은 알고 있나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에듀토피아/ “”학생들은 인격체 아닌가요””

    요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우리 학교들중 많은 곳들이 여전히 획일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공부에도 열심이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합리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고쳐보려는 학생들을 만나 ‘이들이 느끼는 학교’를 알아본다. ■학생인권 위한 중고생 동아리. 지난달 29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2층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 중고등학생연합’동아리방.많은 학생들이 올해 사업 계획을 짜느라 바쁜 모습이었다.그곳에서 박성기(17·선린인터넷고 2년)군과 김다정(16·서울 D고1년)양을 만났다. “학생들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 받아서는 안됩니다.” 박군은 97년 ‘노동법 날치기’사건 때 가톨릭통신동호회를 통해 최연소로 시국미사에 참가하면서,김양은 중3 때 도덕 교사가 학생연합의 활동을 말해주는 것을 듣고 학생들이 흔히 받는 불합리한 처우문제에 눈을 떴다.“예전에는 학생이니까 당연히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죠.저도모르게 획일적인 교육에 젖어 있었던거지요.” 박군은 고1 때부터,이양은 중3 때부터 학생연합 활동을 시작했다.학생연합은 처음에는 인터넷사이트의 학생토론모임이었으나 점차 가입자들이 늘어나,2000년 3월 온오프라인의 모임으로 확대됐다.현재 전국에 회원이 1500여명에 이른다.박군은 “2000년 두발자유화 요구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학교 구성원들의 토론을 거쳐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지침을 받아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하지만 일선 학교에서 변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양은 “머리 길이,핀 색깔,신발 뒤축,가방 크기까지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여전히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 10분동안 학생 선도부가 들어와일일이 검사하는 것이 대다수 학교의 현실이다.박군은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참여해야 합리적인 교칙 개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학생연합은 이같은 ‘깨달음’의 결과로 지난해 학교운영위원회의 학생 참여를 주장하는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8월부터 10차례에 걸쳐 거리에서 캠페인을 펼치면서 전단지를돌리고 서명을 받았다.또 인권운동사랑방과 함께 교칙을 분석한 결과를 오는 9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참고자료로 제출할 예정이다. 체벌도 여전하다.박군은 “남자고등학교는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여전히 체벌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부모에게 사실을 말하면 벌점으로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하겠다는 선생님도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학교,교사들도 문제지만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는 학생들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박군은 학생회장 선거 당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한 대책이 뭐냐.”고물었다가 친구들의 조롱만 샀다.‘인권 찾아 뭐하냐.공부나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 박군은 “배워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하지도않는데 똑같은 것을 배우기를 강요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김양은 수업시간에 기본적인 예절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의 자세를 꼬집었다.“떠들고 자는 학생들이 많아요.잘 가르치느냐를 따져 수업을 골라 듣기도 하지요.” 그는 “학교에 과학실 하나 없고 암기 위주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데 학생이 수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학교와 친구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하다.이들은 “학교에서 활동 회원들에게그만두라고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회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생의 위치에서 공부는 물론 권리찾기도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컴퓨터 특기전형으로 고교에 입학했다는 박군의 꿈은 최고기술경영자(CIO)가 되는 것.열린 사고를 가진 경영자가 되고 싶다.성적이 중상위권인 김양은 언론이나 역사를 전공할 계획이다.이들은 학생의 권리와 의무,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배우고 실행하려는 ‘아름다운’ 고교생들이었다. 김소연기자 purple@ ■인권교육 어떻게…나만큼 남의 권리 소중함 깨닫게. 모든 학생들이 수학이나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하지만인권교육은 민주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인권교육의 목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귀중한 존재임을 알게하는 동시에,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데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주최로 열린 ‘교사를 위한 인권교육 워크샵’에 참여한 강원도 철원중 이상희 도덕 교사는 “요즘 학생들은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면서 “자신과 타인의 권리에대해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워크샵에서 소개된 몇 가지수업 방법을 알아본다. [표현의 자유] 학생들을 몇 개의 조로 나눠 1인 시위,집회등을 찍은 사진들을 나눠준다.‘무엇을 하고 있나’‘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왜 표현을 하려 들까’‘사람들은 표현을 할 권리가 있는가’‘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등을 토론하게 한다. 더 나아가 교실 안의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표현된 의견 중 정당한 것은 반영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학생과 교사가 합의한내용은 교실의 규칙으로 만들어 자발적으로 지키게 한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각 조에 상황카드를 나눠준다.상황카드에는 ‘한국에서 어린이들이사용하는 크레파스에는 살색으로 지정된 색이 있다.’‘우리 회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국내 노동자와 똑같은 건강보험혜택을 준다.’‘종수가 다니는 학교는 종수와 다른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다.종수는 정규수업 외에 학교가 지정한 예배에 참석하고 종교교육을 받아야 한다.’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학생들은 ‘공정’‘부당’‘불분명’으로 분류하고 왜 그렇게 판단을 했는지 토론한다.마지막으로 학생들 스스로 공정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으로 바꿔 작문을 한다. [장애인 이해하기] 둘씩 짝을 짓게 하고 짧은 문장을 준다. 언어장애인 역할을 하는 학생은 주어진 문장에서 ‘ㄱ’을‘ㅅ’으로,‘ㅇ’을 ‘ㄷ’으로 발음한다.또 모든 받침을생략해 읽는다.비장애인 역할을 하는 학생은 이 규칙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쓰기를 한다. 받아쓰기가 끝난 후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발표한다.또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편의를 봐주는 것이왜 특혜가 아닌 당연한 권리인지 토론해 본다. 김소연기자. ■인권침해 고발사례. 학교 현장에서 드러나는인권침해 사례는 예상보다 심각하다.전국중고등학생연합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올라있다. 자신을 ‘서랑’이라고 밝힌 한 학생의 글.“자율학습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을 반장이 목이 쉬어라 조용히 시키고 있었다.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학생들 허벅지를 때렸다.‘우리가떠들긴 떠들었으니까’하며 그 정도는 사랑의 매라고 애써이해했다.반장이 맞을 차례였는데 애들 조용히 못 시킨 ‘죄’로 10대나 때렸다.맞은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반장의 다리는 시퍼런 멍이 선명하다.” 경기도 A여중 1학년이라고 밝힌 다른 학생은 “설치된 난방 시설도 잘 활용하지 않으며 교실 안에서 목도리나 코트조차 못 입게 한다.”면서 “목도리나 코트를 입는다고 공부 안하고 안 입는다고 공부 잘하나.”라고 반문했다. 강릉에 사는 한 여고생은 교사의 언어 폭력 사례를 올렸다. 그는 담임이 평소 ‘주댕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니가 어디서 주댕이를 놀려.왜,주댕이라고 하니까 기분 나빠?그럼 입이야? 니껀 주댕이야.”라고 말했다는 사연을 전하면서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 “따스함의 전도사 되고 싶어요”

    “TV를 통해 따스함을 전하는 PD가 되고 싶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들이 옛 은사,첫사랑 등을 찾으며 성공하지 못한 보통의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넓히는 KBS1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이 프로를 맡고 있는 이승은(36)PD는 입사한 지 10년이 넘는 중고참 여성 PD로서 ‘여성 PD’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여성 PD가 드물던 시절부터 험한 세계를 헤쳐나가야 했기 때문에 걸걸하고 당찬 성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유치원 선생님처럼 나긋나긋하고다정한 모습이 그의 첫인상이다. “요즘에 입사하는 남녀PD의 비율이 반반이에요.여자의입사 성적도 좋구요.우리 때에 비하면 남녀차별 받는 것같지도 않았요.우리 때만 해도 힘들었죠.” 그가 입사할 무렵 여성PD로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오락·예능이나 드라마 쪽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교양국에서도 ‘환경스폐셜’이나 ‘역사스폐셜’ 등 다큐 프로그램에 진출하기는 어려웠고 고작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주부대상 프로그램이 전부였다.이승은PD역시 4년 넘게 어린이프로그램인 ‘혼자서도 잘해요’를 만들었다. “그 당시 두 아이가 그 또래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장큰 모니터요원이었어요.아이들이 이해하고 즐거워하면 저도 좋았고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다는 자부심이 생겼지요.” 그는 어린이전문 PD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그러나나이가 들기 전 좀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른 프로그램의 연출도 맡았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은 맡은 지 3개월정도 됐는데 아주 재미있어요.재현 프로그램이 나가면 아역탤런트 엄마들이 좋아해요.PD가 아줌마라서 편하다고요.” 여자라서 오해를 받은 적도 많았다.공공연히 자신의 앞에서 PD를 찾는 출연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여성PD로서 특별히 후배에게 해준 일은 없어서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집에서는 아이들에게도 항상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요.” 그는 요즘 털털하게 일하는 후배들을 보면 부러움과 미안함이 앞선다.결혼을 일찍 한 탓에 직장과 육아에 치이면서 힘겹게 전문직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욕심을 낸다면 음악전문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30∼40대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바람입니다.”이송하기자 songha@
  • 2002 우수기업 우수상품/ 참眞이슬露

    78년동안 한결같이 좋은 소주를 만들어온 진로의 야심작‘참眞이슬露’는 깨끗한 맛의 저도주(低度酒) 시장을 석권하면서 소주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있다. 소비자들이 술을 마실 때나 마신 다음 날에도 숙취가 적은 깨끗한 소주를 원한다는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98년 10월 탄생했다.다른 제품에 비해 브랜드 전환이 보수적인 소주시장에서 참이슬이 출시 1년만에 점유율 1위를 차지할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의 입맛을 적극적으로 만족시키려는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담없이 마시는 소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공락하기 위해 지난 1년여간 ‘주질(酒質) 테스트’는 물론,전국 소비자 선호조사를 통해 최고의 맛을 찾아냈다.지난해 2월에는 보다 깨끗하고 순수한 소주를 지향하기 위해 공정개선을 완료한 시점에 맞춰 ‘참이슬 리뉴얼’ 제품을 출시했다.기존 대나무숯에 두번 여과하던 공정과정을 세번으로 늘리는 등 깨끗한 맛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기울이고 있다.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결과 ‘출시 3년만에 28억병판매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웠다.국내 소주시장에서 가장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팔린 기록이다.지난해 말에는 30억병을 돌파,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참이슬의 경쟁력은 광고에서도 두드러진다.일관된 광고캠페인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확고하게 선점하고 있다.출시 초기에는 ‘대나무숯 두번 여과’라는 제품 컨셉을 중심으로 브랜드 차별성을 알렸고,99년부터는 이영애 등 여성인기탤런트를 모델로 기용,깨끗한 이미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소비자와의 친밀감을 형성했다.지난해 6월부터는 ‘소주가 제일이다’라는 캠페인을 전개,소비자들과 함께 소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참이슬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진로의 기술력과 신용에 대한 소비자의 믿음이 바탕이 되고 있다.꾸준한 제품 개선과 함께 소비자들이 영화·연극·공연 등을 접할 수 있는 ‘참이슬 문화행사’도 인터넷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특히 연말연시 각종 모임을 접수받아 신문에 광고를 내주는 ‘두꺼비 동창회,참이슬 송년회’ 행사를 4년째 진행하고있는데,매일 두팀을 선정해 회식비를지원하는 이벤트로 인기를 끌었다. 진로 관계자는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도록 제품의 질과 서비스를 높여 한국을 대표하는 1등 소주의 위상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자와의 대화] 김종엽 교수 “시대염증 떨쳐내고 새출발”

    “우리 나이로 올해 40세가 됩니다.시대에 대해 염증을 내기보다는 책임감 있는 학자로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해 통과의례와 같은 뜻으로 이 책들을 냈습니다.”1주일 새 문화평론서 ‘시대유감’(문학동네,9500원)과 학술연구서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새물결,1만5000원)를 잇따라 펴낸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그는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의 통일 관련 담화문의 반통일적 담론구조를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지성계에 등장한 이래 만화,영화,TV 등 대중매체를 분석하는 문화비평가로,프랑스 고전 사회학자 뒤르켐을 천착하는 사회학자로,그리고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무처장 직책의 시민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면모를 보여왔다. ‘시대유감’은 90년대 우리 사회 현안과 대중문화 현상들을 사회학적 시각으로 분석한 글들을 모은 책.‘에밀…’은 ‘연대와 열광’(창비)에 이어 두번째로 뒤르켐에 대한 이론작업을 수행한 책이다. “80년대가 ‘민주주의’의 상실을 고통스러워 한 ‘울증’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말’의 진정성을 상실한 ‘조증’의 시대였다고 봅니다.냉소,사소함,무정치성….저도 ‘시대유감’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이런 염증을 걷고 침착하게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 찾기에 주력하기로 결심한 터. 뒤르켐 연구도 이론작업을 접고 그의 발상법을 현실에 적용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뒤르켐은 프랑스 국민국가의 기초를 튼튼히 한 사람입니다.핵심은 ‘국민적 연대’의 창출이었죠.즉,민주주의가 살아있으려면 국민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서 많은 문제가 있어요.” 지역감정문제,의료보험파동,실업문제,학벌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들이 뒤르켐적 발상법으로 보면 평등을 저해하고 사회분열을 야기하는 국민통합의문제로 환원된다.그는 이런 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분석방법론으론 프로이트를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사회 대의에 어긋나는 병리적 행동을 끊임없이 계속하는가,그런 행동의 근저에 깔려있는 심리기제는 무엇인가,하는 것들을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 짚어볼 생각입니다.”요즘도 만화가게서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만화읽기에 열중하고 같은 영화비디오를 다섯번씩 되빌려 보는 이상한 버릇을가졌다.하지만 그의 ‘대중문화’사랑은 사회학자로서 대중의 성향,생생한 욕망의 주소를 읽어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그만큼 그의 모든 활동은 현실 개입에 맞닿아 있다고 할까. 다음 저술로는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에서 연유한 어린이 교육에 관한 책 및 영화비평 등을 준비하고 있다. 신연숙기자
  • 사그라지지 않는 파장/ 수세 몰린 신당說… 불씨는 여전

    민주당내 중도개혁포럼(회장 鄭均桓)이 내각제 공론화를제기한 뒤 연이어서 ‘내각제 신당론’‘신 3당 합당론’등의 정계개편론이 촉발되면서 여야에 민감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민주당내에서는 당 공식 기구가 아닌 중도개혁포럼이,그것도 정균환 회장 등 일부 특정인사가 극히 민감한 정계개편 논의를 비공식적으로 제기했다는 차원에서 중개포의위상과 역할에 대해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민주당에선 대선후 내각제 개헌 추진론이 나왔을 때만 해도 ‘당 외연 확대’라는 명분 때문에 수긍하는 분위기가강했다.그러나 28일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 신당론,그리고자민련과 민국당과의 신3당 합당론이 불거져 나오면서 쇄신파와 비주류가 거세게 반발하고 주류 일각에서도 문제제기시기와 방법 등의 미숙을 들어 비판론이 제기됐다.내부 분란이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급기야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임채정(林采正) 의원이 “김한길 전 문광부 장관이 대선예비주자 몇 사람을 방문해합당 운운했는데 정리돼야 한다.”면서 정식으로 문제를제기했다.이에 한광옥(韓光玉) 대표가 “개별적 차원에서 오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일도 없고,검토된 일도 없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 대표는 “공론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며 당차원의 논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특히 정균환 회장 주변에서 “민주,자민,민국당의 합당은 막바지 단계에 다다랐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 합당론,신당론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정동영(鄭東泳) 김중권(金重權) 김근태(金槿泰) 상임고문과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 등 대부분의 대선주자들과 쇄신파들은 합당 기류에 반발하며 일부는최악의 경우 ‘탈당 불사’까지도 경고,자칫 내분사태가 재연될 조짐도 있다. 그동안 ‘당 외연확장을 위해서라면’을 전제로 내각제 개헌 추진에까지는 우호적이었던 한화갑(韓和甲) 고문진영마저도 “정균환 회장이 특정 예비주자를 위해 자문 학자군의조언을 받아 합당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면서강력히 반발할 분위기다.한나라당도 “‘반 이회창(李會昌)연대’의 망동”이라고 맹렬히 규탄했다.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자민련과의 합당론자로 일련의 정계개편론과 연계설이 나돈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측은 “이 고문을 정계개편론과 연결하는 건 억측”이라면서 정계개편론을 “쇄신으로 얻은 점수를 까먹으려는 섣부른 행동”이라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합당론 파문은 여전히 불씨가 강해 보인다. 이춘규기자 taein@
  • [저자와의 대화] ‘나르시스의 꿈’ 저자 김상봉씨

    “서양 정신은 한번도 자기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는,자기도취에 머물러 있는 정신입니다.반면 우리는 늘 타자에게 매혹당하고 역사적 단절을 겪은 경험을 갖고 있지요.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번민하지만 저는 오히려 우리 정신의 타자성,비극성에서 미래의 희망을 봅니다.”최근 저서 ‘나르시스의 꿈-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한길사 펴냄,2만원)을 낸 철학자 김상봉(44·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씨.김씨는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칸트의‘최후유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서양철학자다. 그러나 “한국 철학이 늘 서양철학의 수용에만 급급하고서양철학에 대한 비판마저도 서양인들이 하는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보면서 주체성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면서 “이번 저서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우리 눈으로 서양철학을 비판해 보고 나아가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우리의 철학은 무엇인가를 탐구해 본 것”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에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정신을 훑어 간 그는 서양철학을 ‘나르시시즘’과 ‘자유’란 두 단어로 요약한다.단 한번도 타자에 의해 자기상실을 경험한 적이 없는 나르시스적 정신,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에 도취된 정신은 ‘자유’개념의 확립으로 이어진다.그러나 서양정신은자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타자를 도구화,노예화하거나자기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을 가르치는 불임(不妊)의 정신이다.9·11테러에 대한 보복전쟁은 극명한 사례라는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불교,일본,서양 등 타자에 의해 자기단절,혹은 자기상실을 겪었다.그러나 이는 나쁜 의미의완전한 상실이 아니라,타자앞에 자기를 유보하고 걸어나가 매혹될 수 있는 자질로서 타자를 통한 자기확장,진정한의미의 보편성의 모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볼 수도있다고 그는 주장한다.그는 또 비극성의 경험 또한 빛 가운데서는 볼 수 없는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타자성,비극성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산출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일시적인혼란을 ‘입덧’으로 비유하면서 우리의 상태를 ‘임신한정신’이라고 진단한다.김씨는 이러한 정신을 예견한 선각자들로 만해 한용운시인과 함석헌선생,철학자 박동환을 들고 이들의 철학도 함께 분석한다. 그리스도신학대 교수를 역임한 그는 현재 저술과 문예아카데미,시민단체‘학벌없는 사회’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자기의식과 존재사유’‘호모 에티쿠스’등 저서가 있으며 ‘그리스 비극’‘한용운 시와 데카르트 철학에 있어주체의 개념비교’‘칸트의 판단력비판(번역)’의 출간도준비중이다. 신연숙기자yshin@
  • [기고] ‘학력란 없애기’ 왜 필요한가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는 오랜만에 격론이 벌어졌다.교육부총리가 내놓은 ‘학벌문화타파대책’을 놓고서였다.우선 ‘학벌’이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그러나 공론화가 쉽지않았던 주제가 이제 국무회의에서 논란의 주제가 됐다는 것만도 큰 진전이라고 보고 싶다.그만큼 학벌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유감인 것은 다수의 국무위원들이 학벌문제의 제기를 일류니,경쟁력이니 하는 가치를 무시하는 평준화적인 접근으로 곡해하는 것이었다.오히려 학벌주의로 인해 대학간서열체계가 고착돼 대학간 실질적인 경쟁이 전무하고 오로지 소모적인 입시전쟁과 살인적인 사교육비의 부담이 우리의경쟁력을 갉아먹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논리를 외면한 것이었다. 특히 이슈가 된 것이 기업의 채용시 입사서류에 학력란을없애자는 제안이었다.이를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물론 기업의 인력충원은 기업이 알아서할 일이다.그런데 학력란을 없애자는 제안을 보면서 나는 오래 전에 거론돼 이미 정착된 ‘본적란 없애기’가 생각난다. 망국의 지역감정을 완화하자는 뜻에서 이력서에서 본적란을없애기로 했고 이것은 큰 거부감 없이 사회에 정착돼 가고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학력·학벌은 마치 ‘현대판 본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미 일반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학벌주의는 학벌을 떠나서 개인을 편견없이 볼 수 있는최소한의 지적·도덕적 능력마저도 앗아갔고 이제 개인은 고졸이니 대졸이니,명문대니 비명문대니 하는 간판을 훈장이나 주홍글씨로 달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준신분적 사회가 됐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입사서류에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하는학력란을 없앤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본다. 흔히 학력란을 없애면 무슨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뽑느냐고 반문한다.그러나 이미 앞서가는 기업들은 출신대학의 서열하나 가지고 뽑는 원시성을 오래 전에 탈피해 모범을 보이고 있다.그들은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기업의 사활에도관련되는 것을 잘 알고 상당한 인력과 자원을 투자해 합리적인 평가모델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며 노하우를 축적해 가고 있다. 비유를 들면 과거에 은행이 오로지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해 손쉽게 전당포 영업을 하자 대부분의 기업들은 대출을 잘 받기 위해 불필요한 비업무용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몰두했고 이것이 기업에도 부담이 되고 사회는 부동산 투기의 열풍에 휩싸이게 됐다.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은행은 신용대출을 늘려가면서 살아남기 위해 본래 업무인 개인이나 기업의 신용평가 능력 개발에 전력하기 시작했다.이제는 기업의 잠재적이고 미래적 가치를 평가하는 안목이 있는은행만이 일류은행으로 앞서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학력란 폐지 논의를 비롯한 학벌주의의 여러 문제점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문화와 의식에 관계된 면이 많다.그러한후진적인 문화를 의식적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몸부림이 기업과 사회와 대학과 학교현장에서 다같이 일어날 때 우리 사회는 능력사회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고,이 때에 국민 개개인의 잠재력에 불이 붙어 한 단계 질적인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법학
  • 용산일대 ‘투기조장’ 심각

    서울시는 18일 한남동·이태원동 등 용산구 일대에서 주택 재개발과 관련한 투기 조장 행위가 극심해 대책 마련에나섰다. 시는 현재 재개발과 관련해 투기가 조장되고 있는 지역은 ▲청파동 90▲이태원동 58▲동빙고동 38,서빙고동 52,주성동 49▲보광동 265▲한남동 557일대 등 모두 5곳이라고밝혔다. 이들 지역 가운데 이태원1동 63일대 1만 6000㎡와 한남1동 573일대 1만 9000㎡ 등 2곳만이 지난 98년 주택재개발기본계획에 반영됐다.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려면 최소한 서울시가 수립한 주택재개발기본계획에 재개발대상지역으로 지정돼야한다.재개발기본계획에 포함돼도 주택의 노후·불량 정도와 도시기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구청장이 구역지정을 입안하지만 이 마저도 시 도시계획위에서 부결되기 일쑤여서재개발 가능성을 확신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이들 지역에서는 마치 곧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될 것 처럼 소문이 떠돌고 주택 가격이 상승해주민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곧 공사에들어갈 것 처럼 주민들을 상대로 재개발 동의서를 받는 등주민들을 크게 현혹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청 공무원을 집중 투입,이들지역 부동산업소를 단속하고 반상회보등을 통해 재개발사업과 관련한 주민홍보를 적극 펼치기로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데스크칼럼] ‘개인 부패’와 ‘시스템 부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외쳐 왔다.그러나 부패의고리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고 있다.집권 초기 어느 누구보다 공직사회 개혁의 깃발을 높이 내걸었지만,말기에 연일 터지는 권력 핵심부의 부패의혹들은 이를 무색케 한다.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집권 시절의 공직 부패 사이클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왜 그럴까. 먼저 우리의 대응 방식을 보자.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대형 부패의혹 사건들이 터지면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 방침을 밝힌다.그러나 자의적인 봐주기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많아 여론의 반발에 부딪힌다.이때쯤 대통령이 나서 ‘부패와의 일전’을 선언하고,이어 ‘사정 칼날’을 앞세운 사정당국이 등장한다. 당국은 한동안 공직자들을 무섭게 다그친다.그러나 여론이잠잠해지면 슬그머니 칼을 내려놓는다.국민들도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YS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정부의 공직자부패의혹 사건 대응 수순이다. 우리 사회가 부패문제를 보는 시각은 어떤가.언론은 ‘○○○게이트’나 ‘○○○비리 의혹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한다.그러나 ‘일과성 사건’으로 생각할 뿐 사건을 낳게 된 이면의‘구조’나 ‘문화적 토양’의 문제로 접근하지는 않는다.언론의 속성상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정부마저도 이런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윤태식 게이트’나 ‘이용호 게이트’는 모두 악성 정치구조와 퇴폐적 기업문화(돈이 많이 드는 정치와특혜로 성장하는 기업)의 합작품이다.이런 토양이 어느 누구라도 어떤 자리에 앉게 되면 뇌물에 손을 내밀도록 유도해부패를 양산하고 있다.부패문제의 근원은 ‘시스템 부패’인데 정부의 시각은 ‘개인 부패’의 범주에 머물고 있다. 이제 부패문제에 대한 정부의 처방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부패의혹 사건이 터진다.해당자는 물론수사당국이나 임명권자는 처음에는 사실을 부인하고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그러다 언론에 새로운 혐의가 속속 보도되고 여론이 비등하면 떼밀려서 수사에 착수한다.결국 관련자의 사표를 받거나 기껏 해봐야 구속 시키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고 부패고리는 계속 남는다.정부의 처방은 결과적으로 그때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임시방편에 그치게 된다. 각종 비리의혹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말이 따라다닌다.불거진 사건의 이면에 부패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시스템(구조와 토양)이 숨어 있음을 지칭하는말이다.이것이 부패고리를 끊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감춰진부패고리를 찾아내 끊으려면 부패의 근원,즉 정치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토양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서는 ‘부패학’이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으며,정부와 민간부문의 지원 아래‘반부패 시스템’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몇 학자들이 중심이 돼 부패학회를발족했으나 사회의 지원과 관심 부족으로 심층적인 사례연구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오는 25일 부패방지위원회의 출범을 계기로 정부가 관련 학계·민간단체와 함께 국가적 반부패 시스템 구축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염주영 공공뉴스 에디터 yeomjs@
  • [기고] “파격적 변신만이 살길”

    대한매일의 민영화에 축하를 보낸다.한 사람의 독자로서 대한매일에 바라고 싶은 건 딱 두 가지다.하나는 지난 몇 년간 보여준 개혁지향성을 계속 지켜달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꼭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주문을 실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일 것이다.대한매일은 기존의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고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신문의 탄생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한국 신문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 것인가? 대한매일과는 무관하게 먼저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로 하자. 한국 신문의 왜곡된 배급 구조와 불공정한 배급 관행은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성공하는 걸 매우 어렵게 만든다.게다가독자들도 신문 선택에서 자신의 성향과 개성을 충족시키려하기보다는 가장 강하다고 생각되는 ‘주류'에 영합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한 것도 신문 시장의 변화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아무리 탁월한 지면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해도 그것이 독자들의 신문 선택에 큰 영향을미치기 어렵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따라서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소 ‘오버'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야말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가능성은 서울 지역신문으로의 차별화다.서울마저도 지역별로 나눠 또 한번의 차별화를 시도한다면 중규모 광고주를 유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전국지 기능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다른 신문들의 지방판이 부실한 걸 염두에두고 각 지역별로 지방신문을 하나씩 잡아 신문제작은 물론배급에 있어서까지 적극적인 제휴관계를 모색하게 되면 서울도 먹고 지방도 먹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미국의 ‘공공 저널리즘'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전문적인 ‘민원해결 신문'으로의 변신이다.이는 대한매일이 강조하는 ‘공공분야의 특화'와도 연결되는 것인데,‘민원해결 신문'은 낮은 곳에서 낮은 자세로 시민들이 일상적삶에서 가려워 할 곳을 골라서 긁어주는 기능에 주력하는 것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미국의 ‘유에스에이 투데이'나 한국의 스포츠신문들을 뺨칠 만큼 파격적인 편집으로 이미 신문을 떠났거나 떠나려 하는 독자들을 껴안는 것이다.물론 이러한 변신엔 이른바 ‘맥도널드화'라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나 신문기사 내용의 노선과 방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뒤처지는 진보'가 아니라 ‘앞서가는 진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네 번째 가능성은 신문지대 인상이 시급하다고 하는 상식을뒤엎고 오히려 지대를 낮춤으로써 기존의 ‘가격 카르텔' 체제를 깨면서 신문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미 생활정보지들에 빼앗긴 중소 광고주들을 다시 찾아오는 지면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명실상부한 ‘고급지'로 차별화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나 이는 바람직하기는 해도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나치게 왜곡된 시장 구조와 ‘힘의 논리'를 따라가는 독자들의 성향 때문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는 대한매일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그러나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 하는 건 외부자의 몫은 아닌 것 같다.내가 바라는 건 그 어떤 방식을 택하건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야 하리라는 점이다.물론 그만큼 위험부담은 크겠지만 신문 시장의 치열한 경쟁 구조하에서 안전제일주의 또는 무사안일주의의 위험부담도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강준만 전북대교수
  • [편집자문위원 칼럼] 선거 보도, 군소정당에도 관심을

    올 한 해 사람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릴 두 단어를꼽으라면 아무래도 ‘선거’와 ‘월드컵’이 될 것이다.특히 올해는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선거의해다.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루에몇 차례씩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야 할 듯하다. 흔히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하지만 따지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선거라는 대의제 정치는 고대 아테네처럼 모든 시민들이(물론 여성과 노예는 제외되긴 했지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해져 선택한 차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체육관에 모여 박수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보다야훨씬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지만,선거라는 제도가 가진 한계는 분명히 있다.그 중 대표적인 것이 유권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많은 정치인들이 대권의 꿈을 안고 출사표를 던지고 있지만,모두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심지어 정치 혐오를 초래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인물들이다. 게다가 자신이 적임자라고 자임하는 정치인들 중에서 다른이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된 정치 철학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직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그러다 보니 국민들은,큰 틀에서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은 후보들 중에서자신의 선택권을 행사하거나,지연,학연의 노예가 되거나,이도저도 아니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우리 사회에서는 기존 정치세력 이외에 국민들의 선택의 폭을 좀더 넓혀 줄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싹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민주노총,전국연합 등과 단일 진보정당을 건설해 양대 선거를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그리고 최근 민주노동당과의 통합논의를 진행 중인 사회당 등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녹색당의 깃발을 올리려는 환경운동가들,견제와비판을 넘어 새로운 인물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민사회단체들도 척박한 한국 정치판에 새 싹을 틔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기성 정치의 벽을 넘어서는데 있어 가장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바로 언론의 무관심이다.물론 어느교수의 지적대로 진보정당을 준비하는 이들도 좀더 보통사람들의 삶에 다가가고,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전략을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하지만 조직력이나 인력,자금력등 모든 면에서 거대정당들에 상대가 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언론마저도 철저히 외면하거나 소수의 목소리라고 해서마냥 경시한다면 스스로의 힘만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는 대한매일에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대한매일은 얼마전 ‘3당 대표에게 듣는다’라는 신년기획을 실었다.진보정당의 올 한 해포부와 전망을 다루는 기사도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언론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보다 힘있는 정치인에게 ‘세(勢)배’ 다니는데 더 열심인 구시대정치인들의 움직임을 알리는데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게 사실이다.노동자,서민을 위한 참신한 정책정당이 이 땅에 하나둘씩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눈을 돌리는 데 대한매일이 앞장 설 것을 당부한다.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 부친 향한 애절한 思父曲

    ■엄마품으로 돌아간 동심-샘터 펴냄. 한 평생 동심을 간직하며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 정채봉.해맑은 그를 세파에 찌든 사람들 모두가 좋아했다.하늘이질투한 것일까.어느 날 그는 몸에 침입한 ‘악성 반란군’(암)의 존재를 알게된다. 앞이 막막했다.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그는 가장 먼저 딸을 불러냈다. “우리 데이트하자”고.영문도 모르는 딸은 마냥 좋아했고‘오빠 사이’인 남자를 남자친구로 알고 ‘빼빼’라고 놀리는 아버지에게 눈을 흘기며 희희거렸다. 딸은 낌새가 이상했다.그날따라 유달리 아버지는 “리태야아빠하고 헤어져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다음 날 아버지 어깨 위로 몇 안 남은 가로수 낙엽 하나가떨어졌다.“나는 아니다”라며 끝까지 암과 싸우려던 아버지는 하늘로 올라가고 마지막까지 손을 놓치지 않으려던 딸은아버지를 마지못해 보냈다. 딸을 남기고 떠난 아비가 살아서 부르던 ‘노래’와 그를그리워하는 딸의 노래가 책으로 나왔다.‘엄마품으로 돌아간 동심’(샘터)은 지난해 1월9일 유명을 달리한 동화작가 정채봉과 그의 딸 리태양의 글 모음이다.책은 고인의 미발표유고작품과 대표작,딸이 보는 아버지의 모습과 자신이 쓴 작품,그리고 두 사람이 나눈 편지들을 담았다.무엇보다 심금을 울리는 내용은 살아 있을때 부녀가 나눈 도타운 정과,아버지가 떠난 뒤 빈 자리를 느껴가는 딸의 애절한 마음이다. 고인에게 딸은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행복한”,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다.딸의 아버지 사랑도 그에 못지 않다.처음엔 “아빠가 떠났나요?”라고 허공에 물어보았다.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날이 바뀌고 계절의 색이 달라질수록 조금씩,“아…아빠가 저만큼 가셨구나”라고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책 밖의 세상에서는 정 시인의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모임이 이어졌다.고인과 친했던 샘터사와 유족은 7일,제자들과 동료들은 9일 저녁 고인의 삶을 비추었다. 고인의 분신이자 동화작가인 딸 리태양의 사부곡(思父曲)은 구구절절이 애틋함을 싣고서 메마른 세태를 촉촉하게 적신다. “아버지가 단 하루만이라도 휴가를 나온다면,아버지가 할머니 치마폭에 안겨 슬픔을 털어 놓았듯이 저도 아버지 품에 안겨서 펑펑 울 것만 같습니다.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하고사랑하노라고 꼭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8,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기자커뮤니티 엿보기/ “부자되세요”

    “부자되세요”2002년 새해 인사로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더 인기있는 인사말입니다.광고에 민감한 현대인들이 한 신용카드사의 광고를 보고 떠올린 듯합니다. 저는 처음에 “부자되세요”라는 인사를 받고 당황했습니다.안빈락도(安貧樂道)를 가장하고 살았는데 아니 어찌 내 속을 알고….정곡을 찔린 느낌이었습니다.그러나 곧 기분이 좋아지더군요.부자되라니,얼마나 좋은 축원이냐 하면서요. 저도 그 뒤부터는 “부자되세요”라고 했더니 모두들 처음엔 계면쩍어하더군요.하지만 곧 이렇게 되묻습니다.“그러면 종목 좀 찍어 주세요.부자좀 되게.” 증시 담당 기자라는 걸 알고 하는 응수죠. 사실 요즘 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한 마디로 폭등입니다. 지난 4일엔 종합주가지수가 747까지 올라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날 종가 653.87보다 무려 14.7% 상승했습니다.거래일 기준으로 5일 만에 주가가 은행예금금리의 3배 가량 오른 셈입니다. 하지만 주가 폭등 장세 속에서 개인들이 과연 부자가 됐는가 꼼꼼히 되짚어 볼 문제입니다.증시 주변에서는 “외국인만먹었다”고 거의 단정합니다.개인이나 기관들은 “주가가 조금만 떨어지면 사지”하고 있다가 외국인이 계속‘땡기는’ 바람에 기회를 잃어 ‘빈손'이라는 겁니다. 제 주변에도 주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거의 최근에 주식을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2000년도에 종합주가지수가 900∼1000선을 오르내릴 때 사서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대책이 없는 거죠.지금 주식이 올랐다고 해도 당시의 매수가격보다 아직 낮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식 시장의 이같은 폭등에서 어떻게 상대적 박탈감을 누르면서 뇌동매매를 피할 수 있을까.또 ‘먹을’수 있을까.(중략)애널리스트들에게 들은 걸 나름대로 정리하면 통신서비스주(SK텔레콤,KTF,LG텔레콤)와 저가의 은행주(외환은행,부산은행,하나은행),업종 대표주(대한항공,국민카드)가 좋고,상반기엔 호텔,식음료 등의 내수주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건 절대 추천종목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충분히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어쨌든 올해를 결산할 때 독자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부자되세요!”(전문은 대한매일뉴스넷 www.kdaily.com 기자커뮤니티에 있습니다.)문소영 기자 symun@
  • 대한매일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할아버지의 오동나무-김은수

    할아버지의 슬레이트 집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있었다.금모래가 질펀한 강변을 따라 녹푸른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는 늘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헌 장판을 씌워 만든 평상에서 강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집 안팎으로 빼곡이 들어찬 어린 오동나무들을 손질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낙인 것만 같았다.뒷산 꼭대기엔 장송들이 우람하게 서 있고 주위는 온통 솔 향이 넘실대건만 할아버지는 오동나무를 심어 기르면서 집 둘레에 있던 소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셨다. “소낭구는 햇빛 욕심이 많아서 안돼.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린 묘목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어.”사실 오동나무가 우뚝 자라려면 창이가 할아버지의 큰아드님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 창이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렴풋하게 시간을 재고 있었다.하지만 할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오동나무를 돌보셨다.그런 까닭에 줄기마다 통통하니 물살이 오르고 오동잎은 사뭇 푸르렀다. 촉촉한 바람이 할아버지의 흰 머리칼을 헝클고 지나갔다. “할아부지,우리 공기놀이하자.”창이는 점을 치려고 두 손을 비틀어 모아 눈가에 갖다 대었다. “가새,바위,보재기.”할아버지가 나무 껍질 같은 손을 천천히 내민다. “히히...내가 먼저여.”할아버지는 히죽 히죽 웃으며 조약돌을 풀어 던졌다. 창이는 할아버지와 공기놀이를 할 때면 여간 신이 나질 않았다.할아버지가 너무 늙으셔서 오래 못하는 섭섭함이 따르긴하지만.그럴 때면 창이는 더 하자고 조르지도 않았다.할아버지는 한 번 뱉은 말은 두말이 필요 없는 고집쟁이니까. 할아버지에게 야속한 마음이 먹어질 땐 창이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고집쟁이 할아방구 같으니라구.”언제인가 뒤뜰 오동나무 응달엔 하얀 꽃이 피어났다.가냘픈줄기 마저 백짓장처럼 하얀 그 꽃은 언제나 고개를 땅으로숙이고 있었다.꽃잎에 이슬이라도 맺히면 창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낙엽들이 흩어져 쌓인 곳에,가을 날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낸 그 슬픔이 남모르게 하얀 수정초로 피어난 것만 같았다.오두마니 그 곳에 앉아 하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창이는 자꾸만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그래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한없이 강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늘 한결 같았다.샛바람이든 하늬바람이 불든 강물은 새처럼 활짝 펼쳐 올린 날개 선으로 상 하류를 엇갈려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유수 같거늘….윗물과 아랫물이 구분이 없으니…. 예전과 지금이 함께 있는 듯하구나.”할아버지가 혼자소리로 하던 어려운 말이 어슴푸레 강바람에 섞여 불어왔다. 할아버지는 아득한 시절을 꿈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을씨년스러이 굳게 닫힌 작은 방으로들어가셨다.창이는 감히 가까이도 못 가보고 방안에서 새나오는 가야금 소리를 훔쳐 들어야 했다.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는 늘 생가지 같은 다리를 길게 모은 두루미가 날개 짓도못해보곤 사라지듯 뚝 그쳤다.소리는 그렇게 끝났는데 할아버지는 방 안에서 감감 나오지를 않으셨다. ‘어두운 방안에서 할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계신 거지?’어느 날 창이는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살금살금 다가가 문 창호지에 귀를 대고 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방에서 잠이 드셨나?’창이는 검지에 침을 묻혀 창호지 위를 살살 문질렀다.콩알만하게 구멍이 뚫리자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거무룩한 방 안에서 할아버지는 가야금을 끌어안고 고개를숙이고 계셨다.어두움을 삼키는 듯 할아버지의 야윈 어깨는가늘게 떨었다.할아버지도 뒤뜰에 핀 하얀 꽃 같은 아픔을지니고 사시는 가 보았다. 창이는 서럽게 핀 수정초를 쳐다보다간 냉큼 회 벽을 보고돌아앉았다. 돌 틈에서 까만 돌을 주워 들고 창이는 회 벽에 아기 새를그렸다.언제인가 눈 먼 아기 새처럼 울고 있을 때 처음 보는 할아버지는 창이를 따듯한 품에 보듬어 주셨다.그렇게 안긴 인연으로 할아버지는 창이를 양자로 들이시고 큰아드님의집에서 나와,수십 년 전에 살던 시골에서 창이와 함께 지내는 터였다.창이는 아기 새 옆에 키 작은 오동나무를 그리고그 다음,가야금을 드리운 할아버지를 그렸다.얼핏 보면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얽혀 있는 낙서 같지만 창이는 제 마음을담뿍 담아냈다. 신작로까지 내려가는 샛길 귀퉁이는 창이네 마당과 이어져있었다.샛길 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오는길인지 중노인 한 분이 버들잎새를 입 끝에 물고 마당을 기웃거렸다. “계슈우?”중노인에게서 날아온 버들잎이 뱅그르르 돌다간 댓돌,할아버지 신발 위에 살포시 앉았다.할아버지는 방문을 활짝 열고내다보았다. “아이구 이 사람아...”중노인은 할아버지를 보더니 입 언저리에 곰살궂은 웃음을걸고 두 팔을 번쩍 치켜올렸다.그리곤 단풍잎같이 손바닥을펼치곤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사뿐사뿐 춤을 추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중노인의 춤 장단에 맞추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버선발로 걸어나오셨다. “기별도 없이 우짠 일이여어?”할아버지는 노랫가락을 붙여 물으셨다. “부평초 같은 이내몸 바람 따라 와았소.”“그려.그려.잘 왔네.”안부를 노래로 물으며 할아버지와 중노인은 얼싸 안고 춤사위를 벌렸다. 창이는 뒤뜰에서 쪼르르 달려 나와 희한한 광경에 입을 벌리고 웃었다. “창이야.어여 절 드려라.할아버지 친동생이나 진배없어.”창이는 중노인을 향해 땅바닥에 털썩 앉듯 서투르게 절을 했다. “네가 바로 갸 구나.”할아버지는 윗도리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창이에게 내미셨다. “얼른 아래께에 내려가서 소주 두어 병만 사오너라.”그러자 중노인이 배죽배죽 웃으며 안 저고리에서 술병을 꺼내 들고 찰랑찰랑 흔들어 보였다. “으이구….도깨비 같은 눔.”할아버지의 술판은 점점 여물어만 갔다.한바탕 술판이 무르익지니 강 저편에는 노을이 풀리고 있었다. “성님,가얏고를 다시 만들어보오.”할아버지는 맥없는 한숨을 뚝 떨구었다. “예끼….가당치도 않지.그게 언제 적 일인데….”“성님이 가얏고를 좀 잘 지었소? 형수님이 그렇게 가시지만 않았어도….”고개를 젓는 중노인의 이마엔 금방 움푹한 주름이 패였다. 할아버지는 엷은 노을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창이는 오동나무까지 휘휘 울리다 그쳤던 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를 떠올렸다. 그 옛날 할아버지는 이 곳 강가에서 가야금을 만들며 사셨다고 한다.할아버지의 소원은 영영 시들지 않는 소리 꽃을 피우는 가야금을 만드는 거였다.할머니 또한 가야금 타는 솜씨가 빼어나 두 분은 가난했지만참 행복하게 사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할머니가 세상을 뜨신 이래 할아버지는 두 아드님을 데리고 도시로 나가셨다고 했다.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이곳으로 돌아올 날만을 꿈꾸며 사셨다고 했다. “다시 가얏고를 지을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허나 이젠 늦었네.가슴은 그대로라고 친들 손이 너무 굳어먹어서…쯔쯔.”“그래도 그 솜씨가 어디 갔겠소? 다시 만들어 보오.나두 성님이 만든 가얏고 소리가 그리워서 그러오.”중노인은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가얏고 임자는 제가 다리를 놓아 드리지요.”할아버지는 눈을 감고“꿈이라도 꾸어봄세….”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여보게,실은 말일세.내가 그 분을 만난 적이 있다네.”“누구요?”할아버지는 중노인에 귓속말을 했다.그러자 중노인이 눈을크게 떴다. “우륵님을?”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에이….성님도….연세가 드니깐 별 농을 다 치네.허허허….”중노인은 할아버지를 힐끔 흘겨주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초겨울,찬바람이 문밖에서 잠을 깨우는 이슥한 새벽이었다. 창호지에 뿌리는 달빛처럼 아득하게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창이는 잠결에,씨익 미소짓다간 눈을 떴다.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두르고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게 보였다. 창이는 이상한 생각에 조용히 일어나 할아버지를 뒤따라 나갔다.여느 때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할아버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샛길로 성큼성큼 사라졌다.창이도 얼른 샛길 쪽으로 달려갔다.할아버지는 어느새 산비탈로 옷자락을 날리며 오르고 있었다.바람에 날아가 듯한 뒷모습이었다. “할아버지.할아버지.”아무리 불러도 할아버지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꼬부랑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찬바람이 낙엽을 휘날리고 발목은 가시가 할퀴는데 얼마나쫓아 왔을까? 창이는 언제인가 할아버지가 들려준 산도깨비가 떠올라 할아버지를 죽자고 따라 올라갔다.고개 하나를 넘자 장다리 장송들이 하늘을 우러르다 잠이 든 까뭇한 벼랑이 나왔다.거기를 벗어나니 강바람이 불어왔다. 쏴아…. 달빛은 밝기만 한데 할아버지는 큰 바위로 올라가 겨울,강바람을 온전히 맞고 서 계셨다.할아버지의 머리칼과 두루마기자락이 마구 휘날렸다.그 때,창이가 꿈결에서 들었던 가야금 소리가 은은히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바위에서 넙죽 절을 하였다.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바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가야금의 소리 꽃이 하늘로 강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동녘이 밝아왔다.창이는 할아버지가 되돌아간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해 걸었다.내내 얼떨떨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벌써 할아버지는 두루마기를 벗고 키 작은오동나무 숲을 돌아보고 계셨다.짚 옷이 입혀진 어린 나무줄기 마다 할아버지는 따듯하게 어루만졌다. “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는 겨?”할아버지는 천연덕스레 물으셨다.할아버지의 입김이 소로로오동나무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똥 누러.”차마 할아버지를 뒤쫓아 갔다오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창이를 꼭 끌어안으셨다. “내게 가장 큰 바람은 우리 창이가 우람한 오동나무처럼 잘 자라는 거여.”할아버지는 유유히 남한강을 바라보고 계셨다. 창이는 회 벽에 여우비가 내리면강 모래밭에 드리우곤 하던 무지개를 더 그려 넣었다.
  • 산업·농공단지 재난관리 ‘구멍’

    지방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각종 사고나 천재지변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산업자원부의 요청에 따라 도내 6개 지방산단과 35개 농공단지 등 41개 단지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98∼2001년 4년간 지방산단 2건,농공단지 12건 등 총 14건의 사고가 발생해 1명이부상하고 15억5,800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사고 원인은 ▲작업 부주의 4건 ▲전기누전과 기계과열각 2건 ▲폭발 1건 ▲원인불명 5건으로 조사됐다.현재 지방산단에서는 113개 업체 6,597명,농공단지에서는 692개업체 1만1,267명이 일하고 있다.그러나 이들 산단이나 농공단지가 소재한 관할 시·군은 안전관리 및 홍수나 화재등 재해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재(防災)계획에소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산단 6개 중 영암군에 있는 삼호산단(삼호중공업 자체 운영)을 제외한 삽진(목포),오천(여수),순천(순천),문평(나주),초남(광양)등 5개 산단의 경우 방재계획이 전혀없었다.도내 35개 농공단지도 곡성농공단지(금호타이어)를뺀 14개 단지는 방재계획만 형식적으로 수립됐을 뿐이고나머지 20개 단지는 이 마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산단이나 농공단지의 안전관리는 해당 시장·군수가‘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체 계획을 수립해 가스사고나 환경오염,풍·수해 예방 및 사후 대처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안전관리 업무가 시·군에서 조차 관리부서와 재난실무부서로 나눠져 있는 데다 개별법에 의한 중복 점검(가스·전기·소방)으로 행정력 낭비는 물론 효율적 안전점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또 잦은 점검에 따른 입주업체의불만도 적잖은 형편이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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