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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대리운전자 6만명

    1조 2000억원 규모의 대리운전시장을 잡기 위해 1만여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그러나 정작 이용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유흥가 주변에 걸린 현수막,차창에 꽂힌 전단지 등이 고작이다 보니 업체 선택이 ‘도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이용자들이 주로 업체별 가격 비교에 주력하는 사이 자칫 안전 문제에는 소홀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1조 2000억원의 시장을 잡아라 한국대리운전협회(회장 김승범)에 따르면 전국의 대리운전업체는 지난해 2월 기준 7181곳이다.김 회장은 “신고제인 대리운전업은 시장 진입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신규 업체가 꾸준히 늘어 지금은 1만여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대리운전기사는 12만∼15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중 수도권 일대에는 대리운전업체 1200여곳과 룸살롱 등에서 운영하는 소규모영세업체 3000∼4000곳 등 전체 업체의 절반 정도가 몰려 있다.기사 수는 5만∼6만명. 김 회장은 또 “90년대 후반부터 팽창하기 시작한 대리운전 시장규모는 현재 1조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덧붙였다.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생수시장이 25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5배에 가깝다.또 CD·테이프 등의 음반시장(1833억원)과 컬러링(휴대폰 연결음) 등 디지털 음악시장(1850억원),무단으로 복제한 MP3 등 불법 음악시장(5000억원) 등 전체 음악·음반시장보다도 크다. ●대리운전 업체선택=도박? 이같은 ‘공룡 시장’을 잡기 위해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지만,정작 이용자들은 정보 부족에 시달린다.이용자들은 업체별 가격뿐만 아니라 ▲보유 기사 수 ▲보험가입 현황 ▲부가서비스 등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이용가격은 대부분의 업체가 대동소이하다.다만 신규업체가 이용가격을 낮추는 홍보전략을 쓰고,기존 업체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가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이 때문에 이용가격이 2∼3년 전보다도 낮아진 것. 또 보유 기사 수가 많을수록 대리운전을 요청한 시점부터 기사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김 회장은 “기사는 대형업체가 300∼400명 정도이며,대부분의 업체는 100명 이하”라면서 “한 업체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최근에는 업체끼리 ‘TRS시스템’(주파수 공유통신)을 활용,이용객의 불편을 덜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 차량 소유주는 대리운전자에게 운전을 맡겼더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1차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대리운전자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하는 ‘대인사고’가 났을 경우 차량 소유주의 책임보험을 통해 보상이나 사고처리가 이뤄지며,대리운전자는 보험 한도액을 넘는 부분을 책임진다.대리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업체가 영세하다면 차량 소유주는 금전적 보상은 물론. 민·형사상의 책임도 져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또 업체가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안심은 금물.다른 차량을 손상시키는 ‘대물사고’와 운전 차량을 파손시키는 ‘자차손해’에 대한 보상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김 회장은 “대리운전 사고 가운데 주·정차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70%”라면서 “상품에 따라 보상 한도액과 보장 범위 등에서 차이가 큰 만큼 보험사 등에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기사의 친절교육 여부 ▲카드·월말 결제 ▲마일리지서비스 ▲모닝콜 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장세훈 고금석기자 shjang@seoul.co.kr ■기사의 하루 “택시기사처럼 대리운전기사도 하나의 직업으로 떳떳하게 내세울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에게,생활주변 곳곳에서 마주치는 서류작성 과정에서 직업을 대리운전기사라고 밝히기를 주저한다는 심대철(42·가명)씨의 말이다.대리운전기사로서의 고단함은 견딜만 하다는 심씨의 이같은 소망은 비단 개인의 바람만은 아닌 듯하다. ●50만개의 현수막,밤하늘을 수놓다 오후 6시.대리운전 요청이 들어오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5∼15명 단위로 팀을 이룬 기사들은 광화문·강남·여의도 등 대리운전 수요가 많은 지역에 현수막을 설치하고,전단지를 돌리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1인당 할당량은 현수막 2∼3개,전단지 300∼500장.팀장들은 이보다 3∼4배 많은 양을 소화해야 한다. 전국의 대리운전기사 수(15만명)를 감안하면 하룻밤 사이 밤하늘에 걸리는 현수막은 50만여개,뿌려지는 전단지는 8000만여장에 달하는 셈이다. C업체 광화문팀장인 강국원(46)씨는 “하루 벌이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홍보작업도 업체별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업무량이 많은 팀장에게는 ‘콜’(대리운전 요청)에 대한 우선권이 주어지지만,첫번째 콜은 순서대로 배분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은 절대 금물 첫번째 콜을 소화한 뒤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배회하던 기사들에게 콜 요청이 쇄도하는 오후 10시,이들은 고기떼를 만난 어부가 된다. 이때부터 업체간 경쟁이 아닌,동료끼리의 경쟁이 본격화된다.무전으로 접수되는 콜 요청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무전기의 키를 잡는 손동작이 동료보다 빨라야 한다.H업체 연규화(52)씨는 “새벽 1시까지가 ‘피크 타임’이다.”면서 “하지만 손동작이 느려 콜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이동경비를 줄여야 한다.까닭에 기사들은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뛰고,먼 거리는 버스를 탄다. 불가피한 경우 택시를 이용하지만,교통수단 가운데 ‘금기’도 있다.손용무(31)씨는 “무전이 끊겨 콜을 받을 수 없는 지하철을 타는 대리운전기사는 한 명도 없다.”고 단언했다. ●셔틀버스가 ‘생명줄’ 콜 요청이 뜸해지고,버스 등 교통수단마저 자취를 감춘 새벽 1시.기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다. 이들이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수단을 찾기는 만만치 않다.간혹 택시기사와의 ‘담판’을 통해 기름값 정도로 타협을 시도해보지만,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까닭에 한국대리운전협회가 자정이 지난 뒤 서울과 인천,경기 등의 주요지점을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이재섭(43)씨는 “셔틀버스마저 놓치면 아예 밤을 샌 뒤 돌아온다.”고 말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사들이 하루 일과를 접는 시간은 새벽 4시.하룻밤 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계산하며,현수막 철거로 마무리한다. ●신용불량자가 60∼70% 기사들이 이처럼 10시간 남짓 일하면서 받는 콜 수는 많아야 5∼6건,평균 3∼4건이다.업체에 수수료를 떼주고,보험료와 이동경비 등을 제하고 나면 한달 수입은 평균 150만원 안팎. 주연성(38)씨는 “업체간 출혈 경쟁이 벌어지면서 수입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기사들 대부분은 한푼이 아쉬운 사람들이라 묵묵히 일할 뿐”이라고 푸념했다. C업체 사장은 “기사 가운데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이 가장 많고,이들 중 60∼70%는 사업 등에 실패한 신용불량자다.”면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이들이 바로 대리운전기사다.”고 말했다. 장세훈 고금석기자 shjang@seoul.co.kr ■이용자 ‘080-XXXX’ 가 유리 대리운전업체의 전화번호는 ‘080-XXX-XXXX’,‘1588-XXXX’ 등 두 종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럼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080’은 수신자(대리운전업체)가 요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발신자(대리운전 이용자)가 통화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반면 전화번호 하나만으로 전국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1588’은 수신자뿐만 아니라,발신자도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이같은 사실만 놓고 보면 ‘080’은 이용자가,‘1588’은 업체가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하지만 상황은 다르다. 실제 ‘080’을 사용하는 A업체의 경우 월 평균 3만통의 전화를 받아 300여만원의 통화료를 내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B업체는 ‘1588’을 사용,통화료 부담은 줄어들지만 외우기 쉬운 이른바 ‘로얄 번호’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매월 1000만원의 번호 임대료를 통신회사에 내고 있다. 즉 이용자와 업체 모두가 ‘1588’보다 ‘080’을 이용할 경우 비용부담이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업체들이 ‘1588’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10자리’보다 ‘8자리’가 외우기 쉽다는 것. B업체 관계자는 “전화번호에서 이점을 갖고 있는 회사가 이용자들로부터 더 많은 전화를 받는다.”면서 “까닭에 ‘1588’이 ‘080’에 비해 비용 부담이 크지만,이용자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대리운전 이용 5계명 ●싼 게 비지떡이다 대리운전업체는 인건비와 전화요금,보험료 등 고정비 부담이 큰 만큼 가격을 한없이 낮추기 어렵다.경쟁업체에 비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면 한번쯤 의심해 볼 대목이다.이럴 경우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서비스의 질적 측면은 무시해 ‘짐짝’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가라 대부분의 업체가 보험에 가입했다고 내세우지만 보험에 들지 않고 가입했다고 둘러댈 수 있고,가입했더라도 기사 중 일부만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특정 업체를 단골로 정할 때 보험 가입 여부를 보험사에 직접 확인해야 한다.대리운전보험 운용 보험사는 삼성화재와 동부화재,쌍용화재 등 3곳이다. ●단골을 만들어라 술에 취해 자신의 현 위치와 집 주소 등을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또 대리운전기사가 지리 정보를 꿰뚫고 있을 거라는 믿음도 허망한 것이다.까닭에 만취한 상태에서 ‘신참’ 기사를 만나면 낭패를 볼 수 있다.그러나 단골 업체는 고객의 주요 ‘콜’ 장소와 집 주소 등의 정보를 확보,걱정거리를 덜 수 있다. ●대리기사는 취객에게 먼저 접근하지 않는다 ‘나홀로’ 또는 ‘꽃뱀’ 대리운전족(族) 등은 경계대상 1호.이들은 자가용 옆이나 안에서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는 취객에게 먼저 접근,기사를 가장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이용자가 뒤집어 쓴다.기사가 오면 업체 이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특정 업체가 수도권 전지역의 취객을 실어나를 수는 없다.따라서 업체 규모가 크다면 그만큼 기사를 기다리는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든다.업체끼리 이용객을 공유하는 ‘합종연횡’도 이같은 ‘몸집 불리기’의 일환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전세자금 모기지론 ‘뜬구름’?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을 응용한 전세자금 대출확대를 언급해 중산·서민층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현행법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14일 재경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지난 10일 “임대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릴 방침이며,이를 위해 주택금융공사를 통한 전세자금 공급확대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전세자금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은 ▲현행 내집마련용 모기지론을 ‘전세권 담보부 대출채권 유동화 상품’으로 변형 출시하거나 ▲단순하게 전세자금 정부보증을 늘리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2년짜리 전세권을 장기유동화?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전자(前者)다.그도 그럴 것이 ‘전세’라는 개념이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이다 보니 금융기법이 발달한 선진국에도 전례가 없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부총리는 “전세권도 담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전세권이 담보가치를 가지려면 등기설정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집주인이 전세권 설정을 잘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설사 전세권을 담보로 확보하더라도 전세기간이 통상 2년에 불과해 이를 10∼20년짜리 장기 유동화 상품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현행 주택금융공사법은 주택소유권에 대한 대출채권 유동화만 허용하고 있어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관계자는 “전세권을 담보로 한 유사 모기지론을 출시하려면 법을 고치든지 (업무범위에 대한)확대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재원바닥나 단순보증 확대도 곤란 손쉽게 전세자금에 대한 공사보증을 확대하는 방안도 가능하지만 재원이 바닥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올 들어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한 전세자금 보증규모는 5900억원(3만 4700명).1인당 평균 1500만원씩 보증서준 셈이다.공사 관계자는 “현재 보증재원이 거의 바닥나 전세자금 보증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재경부는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 관련 재원을 책정해 전세자금 보증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Doctor & Disease] 경희대의대 김영설 박사

    신경계의 오작동이나 고장이 초래하는 질병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은 말로 형언하기가 쉽지 않다.종류가 많고,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까닭이다.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서구형 대체의학 ‘뉴로피드백 시스템(Neurofeedback system)’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신경계 질환 정복에 나선 경희대의대 내분비내과 김영설(55) 박사의 시도는 의학계 안팎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서구 대체의학 ‘바이오피드백’의 신버전 뉴로피드백 시스템은 한마디로 뇌파를 활용한 신경치료법.이전에 서구에서는 뇌파와 심전도,근전도 등을 이용한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이라는 대체의학이 한 흐름을 형성했었다.뉴로피드백 시스템은 이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의 새로운 버전으로,뇌파를 통해 인체의 문제를 파악,조절해 질병의 단계에서 정상의 범주로 유도하는 치료법이다.“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이런 특성이 바로 내분비계의 핵심인 피드백 기능입니다.뉴로피드백은 이런 기능을 임상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보면 됩니다.” 이 뉴로피드백 시스템이 국내 대학병원에 첫 도입된 것이 지난달로,아직은 충분한 임상 결과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이 시스템을 처음 접하고는 저도 놀랐어요.미국이나 일본의 텍스트를 통해 접했을 뿐인데,제가 직접 임상에 적용해 보니 당장 드러난 성과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성과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지난 5년 간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던 환자가 단 한번의 치료로 숙면을 취했는가 하면,뇌졸중으로 언어중추가 마비돼 말을 못하던 사람이 한번 치료받은 뒤 다섯 개의 단어를 말하기도 했다.이는 중요한 변화라고 봐야 한다. 다른 사례는 없나. -당뇨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절단한 환자가 심한 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다.일종의 감각과잉 증상인데,이 증상이 오면 이미 제거한 발가락이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인체의 기억중추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건데,이 환자도 뉴로피드백 치료후 안정을 되찾았다. ●반복된 훈련 통해 뇌기능 정상화 뉴로피드백은 치료법이지만 한편으로는 뇌 훈련법이기도 하다.“인간의 뇌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뇌파를 조절할 수 있고,이는 곧 뇌 기능의 자기조절능력이 향상됨을 의미합니다.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른 훈련을 반복해 뇌기능이 정상화되고,질환이 치료되면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뇌가 이 상태를 기억해 스스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겁니다.” 구체적인 치료원리를 설명해 달라. -병증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 일률적인 설명은 곤란하다.예컨대,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불균형 상태에 빠지면 불면증이 나타나는데,이런 환자의 뇌파를 측정해 인위적으로 불균형을 해소하면 숙면이 가능하게 된다.또 당뇨합병증 가운데 당뇨신경증이 나타나면 특정 부위가 아파 견디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다.이때는 통상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데,이런 환자에게 뉴로피드백 시스템을 적용,뇌의 통증중추인 시상 부위가 안정되도록 치료하면 통증을 느끼는 강도가 현저히 달라진다.다시 말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신경상을 만들고 이런 상태를 뇌가 기억하도록 하는 원리다. ●불면증·학습장애·만성피로에 효과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는 기자의 푸념에 김 박사는 뇌파를 들어 설명했다.“뇌파에는 다양한 주파수 대역이 존재하는데,이 주파수를 읽으면 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델타파가 활성화 돼 있으면 숙면상태이고,하이베타파가 활성화하면 긴장,불안상태를 뜻합니다.이걸 모니터로 보면서 환자를 가장 적합한 상태로 유도해 들어가는 훈련입니다.즉,약물이나 물리적 힘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장 안정된 뇌파를 찾아 그걸 기억시키는 치료법이지요.이해가 되나요?” 그러면서 김 박사는 치료 장면을 공개했다.간단한 뇌파 측정기구를 머리 부위에 연결한 고령의 환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팩맨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고,옆 모니터에는 환자의 뇌파가 지진계처럼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약물·물리적 힘없이 게임하듯 치료 담당 의사는뇌파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안정하라거나 숨을 크게 들이쉬라는 등의 주문을 하고 있었다. 치료효과에 대한 검증은 있었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적용중이고,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집중력,기억력,어린이나 성인의 충동장애,각종 중독증,자폐증,불면증이나 간질에 대한 치료효과가 이미 검증됐다. 우리나라의 임상 결과는 언제쯤 제시되는가. -기본적으로 6개월간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 뒤 결과를 제시할 것이다.상당히 전향적이고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적응증이 많은데…. -뇌의 기능에 영향을 받는 질환이 많기 때문이다.아직 국내에서는 적용한 병증이 많지 않지만,의료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린이나 어른의 정서·충동장애(ADHD),학습장애,불면증,두통 등 만성 통증이나 만성피로증후군,틱장애,뇌졸중 후유증,고혈압,폭식증,당뇨병은 물론 간질이나 약물중독에 대해서도 주목되는 임상시험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내 경험으로는 불면증의 경우 3회,뇌졸중장애나 폭식증은 20회 정도의 치료로 뚜렷한 개선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스스로 놀랐다고 평하는 뉴로피드백 시스템은 한의학과 함께 현대의학이 드러낸 역량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보였다.치료 과정도 까다롭지 않다.전문의 상담을 거쳐 치료방법과 목표가 결정되면 환자는 컴퓨터게임을 하듯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면 된다.김 박사는 “이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료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한 뒤 각 전문과가 공조하는 센터 설립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질병을 이겨내려는 모든 시도는 의미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김영설 박사는 ▲경희대의대 및 대학원(의학박사) ▲일본 동경여자의대 연구원 ▲경희대 부속병원 내분비분과장,경희의료원 의학정보센터 소장 등 역임 ▲대한내과학회 학술상,대한당뇨병학회 학술상 등 수상 ▲현,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장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Seoulite]민화 모임 ‘도린회’

    “민화를 그리다보면 한지와 먹의 은은한 향에 취해 마치 저도 화선(畵仙)이 되는 것 같아요.” 매주 수요일 도봉구 문화교양강좌가 열리는 날이면 창6동 도봉구민회관에는 ‘주부 장승업’이 출현한다.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단체 등장이다. 지난 1995년부터 지금까지 9년간 진행된 이 수업은 이미 미술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서울시 25개 구청 가운데 최초로 민화반을 개설했을 뿐만 아니라 수강생의 실력이 일취월장했기 때문.특히 민화반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도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미술계의 중심 인사동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민화를 사랑하는 도봉구 이웃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지난 96년 결성된 도린회는 처음에는 오로지 회원들의 친목과 회원전을 위해 결성됐다.하지만 회원들의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면서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신미술대전,영월 김삿갓문화제 등 굵직굵직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휩쓰는가 하면 인사동으로 진출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지난 2000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가 주최한 “한민족초청전”에 초대되기도 했고,이달 초에는 몽골 울란바토르 자나바자르 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불화 및 민화전’에 출품,우리 문화의 진수를 선보였다.지난 99년에는 새서울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도봉로에 민화를 병풍식으로 그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도봉구에서 살다 인근 강북구 수유5동으로 이사한 전 회장 최남경(54·여)씨는 “회원 20여명이 함께 민화를 그려나가며 정을 쌓고 있다.”며 “가입은 자유지만 탈퇴는 불가능”이라며 결속력을 자랑했다.신미술대전 등에서 5회 수상경력이 있는 최씨는 “은은한 한지와 묵의 향기를 맡으며 민화를 그리다보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 민족의 정서를 뿌리부터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창동에 사는 주부 이정순(49)씨는 “무용을 전공해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계속 빠지게 된다.”며 “내가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강좌 개설 당시부터 민화반을 지도하고 있는 이영숙(58) 옹기민속박물관장은 “회원들이 처음에는 유명작품을 베껴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창작을 해낼 정도”라고 자랑했다.이 관장은 또 “처음에는 연꽃 등을 그리다 1년 정도만 꾸준히 노력하면 동물이나 인물을 그리는 수준까지 이른다.”며 “누구나 전문화가 뺨치는 프로급 실력을 가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우리 결혼해요] 하지성(30·현대백화점)·김정현(26)

    지난 2002년 8월6일 오후 1시42분.‘첫눈에 반했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살면서 입밖으로 내뱉은 적 없었던 그 말이 스스로 터져나왔던 순간,베이글빵을 입에 물고 눈앞을 지나쳐 가는 그녀에게 꺼낸 말은 “모델 한번 해주시겠어요?” 홍보팀 업무상 디지털 카메라를 휴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가을 신상품을 입은 여자친구의 사진이 일간지 쇼핑기사의 백화점 제공 사진으로 나오면서 제가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던 여자친구의 의심이 풀렸고 몇번의 이메일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식으로 데이트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데이트날 여자친구는 ‘애인과 헤어진 상태’임을 밝혔고 전 편안한 오빠로 대해 주리라 마음먹고 지우개 선물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지우개로 안 좋은 기억을 지우고 깨끗한 백지가 되면 그때 나를 불러 달라.” 참 어색하고 낯 뜨겁기 그지없는 말이지만 그 말에 그녀는 감동했고 그렇게 우린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28살 회사원이 24살의 여대생을 만나면서 ‘도둑놈’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국경도 없는 사랑에 그런 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전 여자친구의 리포트를 대신 써주고  여자친구는 백화점 사진 전속 모델이 되어주는 시스템으로 말이죠 . 여자친구가 사진 모델을 하면서 ‘시집 못갈 뻔?’한 사건들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옵니다.여자친구와 제가 모델이 되어 혼수용품을 고르는 사진이 모 일간지 혼수 관련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면서 주변의 확인전화들로 한바탕 소동을 치렀던 적이 있기 때문이죠.누가 봐도 ‘우리 결혼합니다’ 광고하는 듯한 사진이었거든요.(사진 참조) 현재는 저도,여자친구도 홍보팀 사진업무에서 손을 뗀 상황입니다.2월에 졸업하는 여자친구는 회사생활을 시작해야 하고,또 낯선 여성에게 사진모델을 부탁할 일이 많은 ‘사진업무’에 대해 여자친구가 허락을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어쨌든 회사일을 하면서 여자친구를 만났고 또 여자친구와 함께 제 업무를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앞으로도 서로를 사랑하며 진짜 혼수용품 고르는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 [시론] 재보선 이후의 과제/박병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

    열린우리당의 참패,한나라당의 압승,그리고 민주당의 실지 회복.지난 5일 재·보선의 결과다.한나라당은 부산·경남·제주의 광역단체장을 포함,기초자치단체장 선거지역 19곳 중 13곳과 광역의원 38명 중 28명을 석권했다.민주당 또한 전남지역에서 치러진 5곳의 선거지역 중 4곳에서 승리해 재기를 위한 지역 기반을 마련했다.반면 열린우리당은 기초단체장 3곳과 광역의원 6명만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50여일 전 열린우리당의 과반 압승,한나라당의 선전 그리고 민주당의 몰락이었던 총선 결과와 정반대 모습이다. 한마디로 이번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국정운영에 관한 인식과 자세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다.“공천에 의견도 말하지 못했는데 심판은 내가 받으니 억울하다.”는 노 대통령의 반응은 바람직하지 않다.여당과 정부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사실 열린우리당의 재·보선 참패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그동안 여권과 열린우리당은 개각을 대권주자 관리용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이마저도 편법으로 처리하려 했다.총선 승리와 탄핵 기각에 따른 오만과 자만에 다름아니었다.여기에 아파트 분양가 공개 문제에서 보듯 당의 개혁론과 정부의 현실론이 충돌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고 정책적 일관성을 지키지도 못했다. 이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재·보선 결과를 곱씹으며 새 출발해야 한다.당장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개편론과 당 쇄신론이 힘을 얻고 있다.과도기적 체제는 개편되어야 한다.재·보선용이라는 의혹을 받던 김혁규 총리 지명계획을 철회해 야당과의 불필요한 마찰요소를 제거한 것도 바람직하다. 노대통령은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자신은 앞으로 민생경제 회복과 부패청산 그리고 정부 혁신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그렇다면 내각 개편에 있어 정치적 임명과 고려는 가능한 한 삼가야 할 것이다.일할 수 있는 사람 위주로 내각을 짜야 한다.또한 노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대결적 자세를 탈피,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도 나름의 과제를 안게 됐다.무엇보다도 선거 승리가 유권자의 여당 견제심리와 여권의 자책골에 따른 반사이익이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이 잘 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더욱이 28.5%라는 낮은 투표율은 선거 결과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배적 위치를 점했던 것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지난 총선에서는 탄핵이라는 단기적이고 돌발적이며 전국적인 쟁점이 결과를 좌우했었다.하지만 이러한 쟁점이 없는 상황에서 지방선거는 총선이나 대선과 다른 것이 당연하다. 이러다 보니 한나라당은 작은 선거에서 항상 승리하지만 큰 선거에서 언제나 패배하는 현상이 재·보선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런 측면에서 한나라당의 영남권 수성과 이에 따른 보수성 강화 가능성은 한나라당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한마디로 조직과 지역에 의존하지 않고 여권의 실수에 기대지 않으며 전국적 쟁점의 부각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재·보선 결과가 정치권에 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그것은 국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폐기 처분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번 재보선은 2000년 이후 치러진 재·보선 사상 두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토요일 선거를 했음에도 별무효과였다.또 지자체에서 부담하는 선거비용이 700억원에 이르렀다.참여도 높이고 효율성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뒤따라야 하겠다. 박병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
  • [분단 현실의 ‘이방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재판 앞둔 ‘전쟁없는 세상’ 모임 유호근씨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의 소신을 지키겠다.”며 지난 2002년 7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유호근(29)씨는 고통속에서 살아온 지난 2년간의 생활을 힘겹게 회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www.withoutwar.org)에서 활동하는 유씨는 “내 소신과 양심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부모님께 가장 죄송하다.”면서 “하루빨리 대체복무제가 도입돼 긴 고통속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밝혔다. 유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은 유씨보다 7개월 앞서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29)씨의 영향이 컸다.대학시절 민간차원의 ‘평양숭실 방문단’을 결성하는 등 지속적인 평화·통일운동을 벌여온 유씨에게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 입대는 도저히 양심에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결국 유씨는 입대일인 2002년 7월 9일 군 부대로 가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열었다.같은 해 10월 병역기피죄로 구속 수감됐으나 한달 뒤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유씨는 그동안 병역기피자라는 낙인 때문에 취업도 못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대체 입법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수형생활이 불가피해지는 등 장래도 무척 불안한 상태다. 유씨는 “그동안 ‘왜 국민의 의무를 회피하려느냐.’는 비난 전화를 받을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구하는 게 익숙해졌다.”면서 “최근들어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격려 전화도 많이 걸려온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유호근 지지모임’이 결성돼 대체복무제 촉구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유씨는 한때 방위산업체 산업기능요원을 지원해 현역복무을 대신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포기했다. 유씨는 “내 소신과 양심에 반하지 않는다면 더 긴 복무기간과 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면서 “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낼 것이 아니라 119구급대라든지 재난 복구인력,장애인 자원봉사자 등 사회에 필요한 곳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유씨의 꿈은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사회에서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유씨는 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현재 저소득층 지원단체인 ‘희망나눔 동작네트워크’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온라인 무궁화심기 앞장선 ‘디자인 윌’ 김영만 대표

    ‘국화와 칼’은 2차대전 이후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분석한 명저로 꼽힌다.일본인이 국화(國花)인 국화(菊花) 재배술을 육성하는 등 예술을 중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칼’을 숭상하는 모순되는 문화적 특징을 두 상징물에 담았다. 그러나 베네딕트가 한국을 연구했다면 ‘무궁화와 무엇’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선뜻 “예”라고 답하기엔 망설여진다.우리 일상은 그만큼 나라꽃인 무궁화와 멀리 떨어져 있다. ●화공과 학생이 ‘무궁화전도사’ 된 까닭은? 이런 척박한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덤벼든 이가 ‘디자인 윌’의 김영만(42)대표다.그가 ‘무궁화 전도’에 나선 이유는 무얼까? 화학공학과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다 디자인 현상 공모에 두 차례 당선된 뒤 디자이너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김씨의 무궁화 사랑의 이면에는 별난 사연이 들어있다. “늦깎이로 대학원에 다니던 96년 꽃자료를 찾으러 교보서점에 들렀다가 무궁화에 관한 자료는 5∼6개에 불과한데 비해 벚꽃과 국화에 관한 책은 수백개나 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누군가 ‘무궁화 알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죠.하지만 정부에 기댈 수는 없고 돈이 안되는 일이라 기업에 기대하기란 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혼자서 틈틈이 무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시간을 쪼개서 사진 2000여컷을 찍었고 관련 자료를 뒤졌다.그리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부드러운 이미지의 무궁화 캐릭터를 그려가기 시작했다.부드럽고 예쁘게 그려야만 ‘진딧물이 많아 눈병이나 부스럼을 옮긴다.’는 등의 잘못된 선입관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묵묵히 ‘무궁화 사랑’ 작업을 계속해나가자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99년에는 70여명이 동참하면서 캐릭터 제작이 프로젝트라고 부를만큼 커졌다.그 중 고른 2002점으로 대한민국 인터넷 디자인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김씨의 열정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온 라인으로 뻗어 2000년 8월15일 웹 사이트 ‘무궁나라(www.mugungnara.com)’를 오픈했다. ●캐릭터·게임개발… ‘무궁나라’ 오픈 “어른들의 선입관을 바꾸기에는 힘에 부치더라고요.그래서 아직 생각의 틀이 잡히지 않아 편견이 없는 아이들의 감성에 호소하기로 한 거죠.온 라인에서 캐릭터나 게임을 통해 무궁화와 친해진 아이들이 자랐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웹 사이트 ‘무궁나라’는 다양한 캐릭터로 동심을 사로잡았다.특히 매일 물도 주면서 진짜 무궁화를 기르는 것처럼 꾸민 게임은 아이들에게 ‘교훈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주려는 학부모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회원이 한때 10만명을 넘었다. 2001년 10월에는 만해기념관에서 사이버상에서 예비심사를 거친 100여명의 어린이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궁화 사랑 백일장’을 열었다.2002년 3월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전시회를 열어 중견미술작가 33인이 그린 다양한 무궁화 50여점을 선보였다.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그의 ‘무궁화 사랑 전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가장 큰 이유는 재정 문제.사이트를 운영하는데만 연 1억5000여만원이 들었고 게임을 업그레이드하고 전시회 등의 이벤트를 병행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 감당할 수가 없었다.‘무궁 나라’라는 깨진 독에 물을 붓듯 돈을 쓰게 만들어 ‘디자인 윌’의 경영마저 위태롭게 했다.김씨는 눈물을 머금고 지난해 6월 사이트를 폐쇄했다. “준공익 성격의 무료사이트라 개인이나 기업이 운영하기엔 한계가 많았습니다.회사 수입의 상당 부분을 ‘무궁 나라’에 투입하다 보니 나중엔 중견 디자인회사 축에 들던 ‘윌’마저도 휘청거렸습니다.자기 일처럼 해준 직원들 앞에서 저는 부끄러운 CEO가 됐지요.그러나 무궁화로 나아가는 길에서 회의를 품은 적은 없습니다.” 문화관광부 행정자치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처에 지원요청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무궁화 사랑으로 숱한 포상을 받고 포털 사이트를 포함한 50개 대형 사이트가 ‘무궁 나라’를 추천사이트로 선정하는 등 ‘명예’는 줄지어 따라왔지만 정작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부처나 단체는 전무했다. 그러나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처럼 최근 김씨에게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호스팅 사용료를 낮춰 주겠다는 등 주위 사람들의 지원 제의가 들어와 이달 중순 분신같은 ‘무궁 나라’를 다시 연다.무궁화를 사랑하다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본 김씨지만 ‘무궁화 짝사랑’은 한결같다. ●나리꽃 천대하는 것은 ‘철학 부재’ 탓 “땅이라는 땅은 모두 산업화에 이용하다보니 무궁화 심을 공간이 줄어들었으니 일반인들에게 낯설게 보이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그러나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방관은 ‘철학의 부재’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50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화(國花)가 그저 애국가와 더불어 TV 종영을 연상시키는 꽃 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을 왜 방치하는지….국가 브랜드 시대 운운하면서 정작 나라의 상징인 무궁화는 찬밥 신세로 계속 내버려두고 있는 형국이죠.” 김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 ‘엄숙주의의 유령’이 남아 있다.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들이 태극기를 응원의 ‘소도구’로 사용하자 불경스럽다는 지적이 적지 않아 이슈가 될 정도였다.그러나 김씨는 이제 무궁화를 ‘민중 속으로’ 내려오게 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그는 자신이 홀로 꾸려온 ‘온 라인 무궁화 심기’가 부활하고 오프 라인으로 가지를 뻗어나가야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제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자신이 한 일을 낮춰 말한다.“제게 ‘무궁화 전도사’라는 호칭은 과분합니다.사재를 털어 품종개량에 힘쓴 유달영 박사님이나,무궁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송원섭 임목육종연구소 실장 같은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부끄럽죠.” 300여종의 품종에다 약재와 차로도 쓰이고 품종 개량으로 벚꽃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다는 등 김씨의 무궁화 예찬은 끝없이 이어진다.그러면서 나라꽃을 천대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날선 소리를 던졌다.“흔하디 흔한게 ‘무슨 무슨 날’인데 왜 나라꽃인 ‘무궁화의 날’은 없는 거죠? 숱한 축제 가운데 ‘무궁화 축제’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요즘에는 무궁화를 TV 종영 시간에 화면으로 밖에 볼 수 없어요.정말 안타깝습니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천방지축 명랑소녀 똑순이 됐어요”

    ‘천방지축 명랑걸’ 장나라(23)가 야무진 ‘또순이’로 변신,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MBC 드라마 ‘내사랑 팥쥐’ 이후 2년만이다. ‘장미의 전쟁’ 후속으로 12일 첫 전파를 타는 26부작 MBC 새 주말드라마 ‘사랑을 할 거야’(극본 박지현·연출 이주환)에서 외모와 공부,싸움 등 모든 면에서 똑부러지는 여고 3년생 ‘짱녀’ 진보라 역.역시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한 동갑내기 연하늘(연정훈)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이혼한 어머니(김미숙)와 이혼남인 연하늘의 아버지(강석우)가 재혼하기로 결심하면서 세대간의 애정 갈등을 빚는다.지난 2일 드라마 촬영이 한창인 강원도 고성 화진포의 한 콘도에서 그녀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이미지 변신 설레요.” 그동안 TV화면에 비쳐왔던 장나라의 이미지는 상큼한 웃음과 톡톡 튀는 성격의 ‘명랑소녀’일 뿐,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특징이 없었던 것이 사실.지난 2001년 가수로 데뷔한 뒤 순식간에 스타반열에 오르게 한 드라마 SBS ‘명랑소녀 성공기’와 MBC ‘내사랑 팥쥐’ 등을 통해 발랄한 이미지만 부각시켰기 때문.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이 꽤 부담이 될 듯도 하다.“그동안 ‘어리버리’하고 ‘오버’하는 역할만 맡아서 성격조차 그렇게 변해가는 느낌이에요.실제 성격은 극중 보라처럼 현실적이고 야무진 면이 많거든요.첫 이미지 변신에 긴장은 되지만 제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여서 기대가 커요.” 기존의 이미지를 일부러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연기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신중하게 출연을 결정했단다. 그녀는 제 나이보다 5살이나 어린 여고생을 연기한다.꼬리표처럼 붙은 ‘소녀’이미지를 이제 벗어버리고 싶을 것도 같은데….“나이는 느는데 배역은 점점 어려지네요.(웃음)시간이 지나면 원치 않아도 성숙한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생각해 조급해하지 않아요.” ●‘악녀’가 되고픈 ‘양순이’ 그녀는 자신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겉모습 때문인지 ‘명랑소녀 성공기’의 양순이 같은 역할로만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죠.하지만 기회가 되면 영화 ‘미저리’와 사극 ‘장희빈’ 속 주인공처럼 ‘악녀’역할을 해보고 싶어요.실은 저도 독한 면이 있거든요.비련의 여인도 좋아요.” 드라마 속에서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냉철하고 조숙하다.어머니의 철없는(?) 행동을 콕콕 짚어내며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현실에서도 그럴까.“실제 저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위해 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아요.중년세대의 ‘마지막 사랑’도 중요하지만,어린 세대의 ‘첫사랑’도 가치가 있지 않나요?” ●“올해는 나의 해!” 올해는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 재도약의 시기가 될 것 같다.가수로서,영화배우로서,특히 ‘한류 스타’로서 또 다른 입지를 마련하겠단다.“그동안 쉬면서 음악공부는 물론,약점인 ‘새는’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소리내어 책도 많이 읽었어요.노래와 연기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거든요.”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올 9월쯤 중국으로 건너가 한·중 합작 드라마 촬영과 함께 콘서트도 가질 계획이다.귀국 후엔 4집음반을 내고 스크린에서도 활동할 계획이다.“내년쯤엔 아빠(주호성)와 함께 꼭 연극무대에 오르고 싶어요.아빠의 ‘회갑잔치’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빨리 평소의 꿈을 이뤄보려고요.(웃음)” 결혼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일까.“불과 1∼2년 전만 해도 지금 나이쯤엔 결혼해 있을 거라 생각했죠.지금은 26살이나 29살 정도?아뇨.그냥 아빠랑 같이 오순도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화진포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자연체험터 운영하는 교육실천가 조영순씨

    작가 이윤기는 ‘하늘 아래,누구의 고향 아닌 마을이 없다.’고 했다.흙냄새 나는 시골만 고향이 아니라 태어나 자란 곳은 어디든 마음의 안식처라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훗날 품게 될 고향의 모습은 삭막한 아파트촌,풀 한 포기 없는 도로다.마음 속에 담아뒀다 꺼내보기엔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과감하게 자연을 선물하자니 교육이 아쉽다.마냥 순진하게 흙에서 뒹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탓이다. 쉽지 않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누군가는 아니 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은 책임지고 아이들에게 자연과 배움 모두 쥐어줘야 한다.하지만 자신의 아이교육도 힘든데 마을 아이들,세상의 아이들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경기 양주시 봉암리에는 스스로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온 사람이 있다.마을의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려는 사람,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는 고루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해온 사람,유명한 교육 이론가보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교육실천가’ 조영순(75)씨다. ●2000여평 포도농장 갈아엎고 자연체험터 마련 “누구든 환영합니다.아이들 손잡고 봄에는 앵두 따러 오시고 가을엔 고구마 캐러 오십시오.” 경기 동두천 시내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는 조영순씨 소유의 2000여평 땅이 있다.그만한 땅이라면 사람들은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기 마련이다.하지만 그는 84년 포도농장을 갈아엎고 마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직접 톱질과 칠을 해서 그네,평균대,정글짐 등 놀이터를 꾸몄고 절반의 땅에는 각종 나무와 농작물을 심어 체험 농장도 만들었다. 포도농사꾼이 이렇게 생각을 바꾼 것은 ‘아이는 이렇게 키워라’라는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서양에는 ‘모험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된 곳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면서 자연을 알게 하고 자립심을 키운다고 합니다.저도 걱정 많이 했습니다.그러다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나부터라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생각은 좋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지금은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도 처음에는 불만을 털어놓았다.생업인 포도농장을 엎었으니.게다가 아이들이 다칠까봐 하루가 멀다하고 농장의 풀베는 일을 혼자 하다 보니 기계소음으로 어느새 자신의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 ●환자복 입고 교통안전 교육 ‘신호등 아저씨’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곳에서 놀던 아이들이 찾아와 ‘와!내 앵두나무가 아직도 있네.’라고 얘기할 때는 아이들에게 근사한 고향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그저 흐뭇합니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을 실시한다.서울의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후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켜왔다.신호등과 횡단보도 등은 그가 손수 만든다. 이날 그의 이름은 ‘신호등’이다.아이들에게 다양한 안전교육을 시켜야 하지만 신호등 지키기를 무엇보다 강조하기 위해서다.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신호등 할아버지’로 불린다.또 그는 환자복을 입고 목발을 짚은 채 아이들을 만난다.사고의 위험성을 보다 생생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함경도에서 1953년 1·4후퇴 때 가족들을 두고 홀로 월남했다.대구에서 군생활을 시작했고 동두천에서 오랜 군생활을 마쳤다.퇴직금으로 받은 30만원으로 인근 봉암리에 자리를 잡았다. ●안방문고·장난감도서관… 아이들 위한 30년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고 있었던 그가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74년이었다.평소 책읽는 것을 좋아하던 셋째딸이 제법 큰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것이다.“딸아이를 보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게 하면 문화적인 혜택을 덜 받는 곳에 살아도 도시 아이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그래서 안방문고를 시작했죠.” 안방문고라는 말 그대로 자신의 집에 책과 책읽는 공간을 마련해 마을 아이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했다.3년 6개월 동안 지속됐던 안방문고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마을도서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책을 접하니 아이들의 말씨부터 달라졌습니다.그걸 보고 마을 사람들이 독서의 교육 효과를 인정했죠.” 그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도서실에 형이나 언니를 따라온 아이들이 놀 만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부산에 장난감 도서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을에도 비슷한 공간을 만들었다.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시골아이들에게 놀이기구가 드물던 시절이라 아이들이 하나 둘 장난감을 집으로 가져간 것이었다. “문을 닫았지만 아이들이 계속 찾아와 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게 아닙니까.아,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그는 면마다 하나씩 할당되던 새마을유아원을 봉암리에 유치하는 데 갖은 노력을 했다.84년 마침내 공립 어린이집이 이 마을에 문을 열었다.그는 초대원장을 맡았고 이후 13년 동안 그 일을 계속했다.그는 자신을 ‘머슴’이라고 생각하고 어린이집을 꾸려나갔다.아동교육에 대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읽은 책으로 인해 그는 20년간 생업이었던 포도농장을 교육 공간으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그가 만든 놀이기구 중에는 유독 평균대가 많다. “자연을 체험하게 하는 것,책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모두 중요합니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자립심’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놀이 기구가 평균대라고 생각한다.아슬아슬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힘으로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아이는 혼자 서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칠까봐 평균대에서 놀지 못하게 하죠.유아원이나 유치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어른들이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듯 아이들은 자립심을 위해 평균대 건너기를 놀이로 삼아야 합니다.” ●마을서 자란 아이가 보낸 감사카드에 눈물 쏟아 그는 되도록이면 평균대 운동에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아이들이 혼자 걸으면서 자립심을 기르고 동시에 부모님의 격려와 박수를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해온 일을 담담하게 말하던 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가 보낸 생일카드였다.그 안에는 어린 시절 ‘뻔한 조기교육’ 대신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준 할아버지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걸 받고서 ‘아,내가 그동안 헛수고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단 한명의 아이일지라도 제 노력으로 회상하고픈 어린 시절을 갖게 된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이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봉암리의 교육실천가 조영순씨.그는 아이들을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내쫓는 이 시대 부모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교육’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정책부작용 사례들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좀 더 정교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정부가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서도 ‘타이밍’과 ‘정교함’이 떨어져 애꿎은 서민 피해사례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 대책이다.정부는 집을 여러채 갖고 있어도 세금부담이 별로 없어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린다고 보고,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 현실화 등을 통해 부동산 보유세(재산세+토지세)를 올리기로 했다.과표가 현실화하면 취득·등록세도 덩달아 오르지만 이는 세율을 낮춰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그런데 정작 드러난 결과는 달랐다.보유세는 당장 올해부터 오르는데 취득·등록세 인하는 ‘세수(稅收) 급감’을 이유로 2∼3년 뒤로 늦춰진 것이다.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 1가구 1주택자라 하더라도 아파트를 새로 사면 취득세와 등록세는 내야 하는 만큼,‘투기’와 거리가 먼 중산·서민층과 1주택자도 덩달아 ‘유탄’을 맞게 된 셈이다.취득·등록세율을 절반 수준으로 조기 인하(5%→2.5%)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주택거래 신고제도 ‘실가(實價) 과세 기반 확보’라는 큰 틀보다 ‘투기 억제수단’ 차원으로 접근되다 보니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주택거래 신고지역인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등은 물론 신고지역이 아닌 서초구 등 인접지역마저도 주택거래가 거의 끊겼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아파트를 갖고있는 C씨는 “해외근무에 따라 집을 팔든,전세를 놓든 해야 하는데 한 달간 단 한 사람만 집을 보러 왔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하면 직장 때문에 서울 강남구로 집을 옮긴 1주택자 P씨는 같은 이유로 서초동에 집을 산 직장동료 S씨보다 취득·등록세를 5배 가까이 더 내야 해 분통을 터뜨렸다.똑같은 강남권이어도 강남구는 실거래가가 적용되는 주택거래 신고지역인 반면 서초구는 그렇지 않은 데서 빚어진 결과다.P씨는 “투기를 잡기 위해서라면 두부 자르듯 행정구역 단위별로 신고지역을 지정할 게 아니라 가격이 급등한 아파트나 동네 단위로 촘촘하게 정하든지,최소한 1주택자는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돈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반감과 자금추적 등이 이뤄지다보니 ‘토종 부자’는 움츠러들고 ‘외국인 부자’가 활개를 치는 것도 부작용의 소지를 안고 있다.한 증권사 사장은 “서울 시내 주요 대형 건물들이 속속 외국인 손에 넘어가면서 월세를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전세’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외국인 전주(錢主)들이 국내 부동산시장 지형을 완전히 ‘월세’로 바꿔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로 돌아온다는 우려다. 접대비 실명제도 좋은 정책 취지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을 잘못 잡아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 사례로 꼽힌다.이용섭 국세청장은 “호화유흥업소에 대한 지출이 크게 감소하는 등 접대행태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물론 호화 유흥업소 소비가 줄어드는 게 바람직한 면도 있지만,그런 쪽의 경기에 의존하는 서민층에게는 부담이다. 인테리어업을 하는 한 중소기업인은 “술집에 손님이 있어야 택시운전사도 돈을 벌고,술집 종업원에게 밥을 파는 곳도 살아가지 않겠느냐.”면서 “아무리 좋은 정책도 때를 잘 골라야 하는데 가뜩이나 경기가 안좋을 때 접대비 실명제를 실시해 서민들의 피해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곽태헌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떴다 독자기자-복합몰 100배 즐기기

    어디로 갈까,어디가 좋을까.데이트,모임을 앞두고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죠.그래서 “재미있게 노는 데 자신있다.”는 독자기자 최진용(24·취업준비 중)·양소연(24·존슨컨트롤스)씨와 대학동창 이수연(28·KPR)·신윤경(28·르노삼성)씨를 따라가 봤습니다.복합몰로 유명한 경기도 일산 ‘라 페스타’와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5만원으로 ‘100% 즐기기’ 비법을 공개합니다. 진행 최여경 나길회기자 kid@seoul.co.kr ■ 강남 코엑스몰 코엑스몰 다들 한번쯤은 가보셨죠?그런데 대부분 영화 한편 때리고 밥먹고 차마시고…그저 그렇게 놀다 오셨다면 여길 주목해 주세요.저희가 코엑스몰에서 신나게 노는 법을 전수해 드릴게요.앗,친구 윤경이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군요. 친구가 절 먼저 데려간 곳은 계곡길에 있는 패션 멀티숍 ‘엔터6’.여름 휴가 때 입을 옷이며 신발을 미리 찜해 놓아야 한다나요.아이쇼핑은 질색이라 옆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겠다고 했더니 새침한 표정을 짓습니다. 각종 스포츠룩에서 예쁜 운동화까지…멀티숍답게 여러 브랜드가 한눈에 들어오는군요.결국 제가 더 열심히 옷을 이리저리 대어 봅니다.--;다이어트 중인데 2㎏쯤 더 빼고 와서 제대로 쇼핑 한번 해야겠네요. 계곡길이 어디냐고요?코엑스몰이 워낙 넓어 방향치가 아니지만 저도 헤맬 때가 있습니다.부끄러워말고 곳곳에 있는 안내데스크에 문의하세요. 배에 힘주고 이것저것 입다 보니 꼬르륵∼.햄버거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그래서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정통 햄버거 전문점 ‘크라제 버거’로 발걸음을 옮겼지요.기다리는 줄이 장난이 아니군요.날도 좋은데 잘됐다 싶어 테이크 아웃을 결심!음식 나오는 시간이 지루해 근처 화장품 가게로 고(go)∼ 말로만 듣던 초저가 화장품 매장.신기한 게 참 많습니다.“요구르트팩?이거 먹어도 돼요?”“네?안됩니다.”직원이 어이없이 바라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구경합니다.앗,건조한 피부에 좋은 팩?천원밖에 안하네.이거 사야지.친구야 너도 하나 사줄게.* * 뿌듯한 마음을 안고 햄버거 매장으로 돌아오니 금방 음식이 나옵니다.지상으로 나와 햇빛 따뜻하게 받으면서 냠냠.소화도 시킬 겸 친구와 기념사진 찍기에 돌입합니다.애인 없는 외로움을 친구와 ‘나 잡아보라’를 연출하며 달래봅니다.하다 보니 더워서 안으로 컴백했습니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친구 윤경이가 1층 전시장에 있는 차에 눈길을 떼지 못하는군요.내친김에 올라타서 폼 한번 잡아봅니다. 밥도 먹고 좀 돌아다녔더니 앉을 곳이 간절해 폭포길에 있는 네일숍으로 향했습니다.저녁에 소개팅에 앞서 손도 다듬고 공짜 커피까지 마실 수 있어 뿌듯뿌듯.손은 맡겨둔 채 윤경이와 이런저런 수다를 떱니다.남자얘기는 빠지지 않겠죠?^.^매니큐어 말리면서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다음 코스를 구상합니다.“게임 한판 어때?” 가다 보니 보드 게임방이 있어 멈칫했지만 세중게임월드로 향합니다.거긴 공짜거든요.윤경이와 자동차 게임을 신나게 즐기다 보니 목도 마르고 낮시간에 맥주를 대폭 할인해 주는 곳에서 벌컥벌컥. 코엑스에 왔는데 전시장에 안 가볼 수 없겠죠?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재미있어 할 만한 게 없네요.이때 윤경이가 아이디어를 냅니다.아쿠아리움에서 화장품 찾기 행사를 한다는군요.이런∼.행사가 며칠 전에 끝났다고 하네요.아쉬운 마음에 괜히 상어 모형에 시비를 걸어 봅니다.퉁퉁거리는 절 윤경이가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소개팅할 시간이 다가왔군요.저희 노는 모습 재미있으셨나요?여기에 살을 붙여 좀더 업그레이드된 방법으로 더욱 즐겁게 코엑스몰에서의 시간을 즐겨보세요. ■ 강추!!! ●패션 멀티숍 엔터6 코엑스몰에는 여러 패션 매장이 많이 있다.그 중에서도 에고이스트,스위퍼,카파,켈빈클라인 등 감각 돋보이는 브랜드들이 한곳에 자리잡고 있다.또 입구에는 행사 판매대가 있어 알뜰 쇼핑은 덤. ●크라제버거 똑같은 맛의 햄버거에 질렸다면 이곳을 찾아보자.흔히 햄버거 하면 웰빙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되지만 크라제버거는 다르다.가격은 일반 햄버거보다 다소 비싸지만 그만큼 맛이 좋다.비결은 역시 재료.냉동고기 대신 생고기를 갈아 패티(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를 만들고 토마토,양상추 등 채소는 유기농 제품만을 쓴다.베이직버거 5500원,더블버거 8500원. ●세중게임월드 이곳에서는 X-BOX 등의 게임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게임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각종 게임 채널의 녹화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홈페이지 www.sjgameworld.co.kr에 들어가면 방송 일정을 미리 알 수 있다. ■ 일산 라페스타 우리 만난 지 한달 된 초봄 어느날.좀 특별한 데이트장소 없을까 찾던 중 일산 ‘라 페스타(La Festa)’가 딱 걸렸어요.생긴 지 얼마 안된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기에 한번 가봤는데,우와∼ 별천지더라고요. 건물 6개(A∼F동)가 모두 4층까지,어마어마하게 넓어요.살거리,놀거리,먹거리,볼거리 다 갖춰 하루종일 다녀도 구석구석 제대로 보기 힘들죠.야외라서 날씨 좋을 때만 가야겠다고요? 건물마다 구름다리로 연결돼 비가 와도 걱정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드라이브도 할 겸 이곳을 찾습니다.집(경기도 안양)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면 50분에 OK.운전을 하는 남자친구에게 살짝 미안하지만. 롯데시네마에서 영화표를 끊었죠.SK텔레콤 할인카드로 2000원씩 할인받았어요.뿌듯뿌듯∼.영화표를 제일 먼저 끊지만 영화는 마지막 코스예요.많이 돌아다니고 영화보면서 쉬려고요. 좀 출출하고,얼큰한 뭔가가 먹고 싶은데….얼큰한 거 하면 역시 라면!일본식 라면을 하는 ‘도쿄라멘’이 있네요.처음 먹는 거라 종업원한테 물어봤죠.매운 걸 잘 먹으면 고기,야채를 얼큰하게 볶은 네츠라멘이나 매운 라면으로 잘 알려진 오로라멘을 먹으라네요. 처음부터 너무 강한 걸 먹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그래서 기본적인 야채볶음면 철판야키소바와 고소한 미소라멘을 주문했어요.오∼ 매콤하면서 시원하네.처음 고른 것치고는 성공적이네요.역시 주변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니까. 실컷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이곳저곳 돌아다녀야지.A동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귀여운 인형을 파는 곳이 많죠.2층에 특히 많이 모여 있는데 바비인형을 모은 ‘링어딩딩’이나 캔디숍 ‘위니비니’에 시선을 빼앗겼지 뭐예요.넋놓고 보고 있다가 결국은 남자친구한테 끌려 나갔어요.휴우∼ 아쉽다. 패션 브랜드는 대부분 1층에 있어요.150개 정도 있다는데 어떤 매장에선 최고 40%까지 할인하고,어떤 곳은 개장 이벤트를 열어 조금만 돌아다녀도 사은품이 한가득.오늘은 1달러랑 핸드폰줄,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받았어요.신난다,돈 벌었다. 휴일에는 야외공연이 많아요.전위예술가도 있고,거리 연주도 열리고.평일에는 케이블TV 녹화도 해서 연예인도 많이 볼 수 있다나요. 다리 아파,좀 쉬어야지.E동에는 생과일 전문점 ‘베티 데이비스’가 있어요.키위 오렌지 딸기 복숭아 등 9가지 과일 중에서 7조각을 고르고,연유 우유 토닉워터 코코넛크림 등 원하는 첨가물을 넣어 나만의 주스를 만들어 먹죠.그야말로 만들어 먹는 재미! 맛좋은 주스를 만들면 종업원들이 평가해서 주스에 내 이름을 달아준다는데,전 아직….언젠가는 반드시 저 메뉴판에 ‘이름 석자’를 넣으리! 영화까지 2시간 정도 남았네요.이럴 때는 보드게임이 최고예요.시간당 1500∼2000원이라 별로 비싸지도 않고,한번 시작하면 2시간은 그냥 가거든요.C동 ‘할리갈리’에서 ‘카탄의 개척자’를 했는데 제가 이겼죠.제가 보드게임을 좀 잘해요.아싸∼. 앗,벌써 영화 시작할 시간이네요.푹신한 의자에 앉아 팝콘과 콜라 세트를 먹으면서 편안하게 영화를 보죠.다음에 또 찾아와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곳을 찾아봐야지. ■ 강추!!! ●베티 데이비스(E동 3층)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9종류 과일,6종류 첨가물 중 원하는 것을 섞어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놀라운 맛의 주스가 탄생했다면 종업원에게 레서피를 주자.자신의 이름을 딴 주스가 어느날 메뉴판에 올라가 있을지도.주스 4000원,과일빙수 4000원,빙산(4∼5인분) 8500원. ●작은 밀라노(F동 1층) 유행하는 비즈공예 액세서리를 만들어 준다.원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가거나 즉석에서 구슬을 골라 주문하면 1주일 안에 하나뿐인 나만의 액세서리를 가질 수 있다.AS도 확실하다.귀고리 8000원부터,목걸이 1만 5000원부터,반지 1만 5000원선.귀고리·목걸이 세트는 3만 5000원선. ●도쿄라멘(A동 1층) 간장을 많이 사용하는 도쿄식 라면을 즐길 수 있는 곳.전반적으로 매운 맛을 낸다.국물 있는 라면뿐만 아니라 볶음면,규동(쇠고기덮밥),돈가스카레 등 다양한 일본요리를 즐길 수 있다.라멘 4500∼7500원,규동 6500원,교자 4000원.˝
  • [공사중단 원주 ‘원일프라자’ 주변 상인들] 오광선 주민비상대책회의 부대표

    원일프라자 주민비상대책회의 오광선(60) 부대표는 “공사현장과 주변 건물들의 안전성 확보가 시급하다.”면서 “원일프라자 자리를 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상권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은. -공사로 건물 벽에 금이 가고 지하는 침수가 되는 등 위험하고 불안해 살 수가 없다.현장에 구정물이 가득 차 여름이면 악취가 심하고 모기 등 해충이 들끓어 주민들은 피부병을 달고 산다.곧 장마철인데 물이 넘치거나 자칫 현장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닌가. 시 당국과 가장 큰 이견은. -원주시는 처음부터 주민의사와 무관하게 일을 추진했고 시의회의 승인 절차도 무시했다.이 때문에 혈세를 버리게 됐는데 시는 아무 대책 없이 소송이 완전히 끝나야 한다는 둥 대우가 현장을 인도하지 않아 손쓸 방법이 없다는 둥 핑계만 대고 있다.우리가 가장 서운한 것은 ‘밑빠진 독상’으로 공론화가 되기 전에는 시에서 주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주민을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에 돌려줘야 하는 돈은 예산낭비로 볼 수 없다는데. -시는 44억원을 들인 터파기는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7년 동안 공사현장에 물이 차 있었는데 철근이며 자재가 녹슬지 않았겠나.그걸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원주시의 억지다. 원주시에 바라는 것은. -원일프라자 자리는 원주의 중심부다.이곳을 주차장을 갖춘 시민회관이나 극장 등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달라.그러면 자연스럽게 상권도 되살아나지 않겠는가.시는 우리가 피해보상으로 한몫 잡으려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생업을 유지하는 것이다.이마저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거리로 나서는 한이 있어도 더 이상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 원주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량진 학원가 7·9급 준비생들로 ‘북적’

    김상현(31·가명)씨.지방 명문 B대 출신이다.애초 가정형편 때문에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뿐 어릴 적부터 머리가 명석하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던 김씨다.대학 4학년 되던 해 큰 결심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처음에는 신림동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했다.몇번의 불합격과 함께 생활비도 떨어져갔고 아르바이트로 버티던 생활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그래서 찾은 곳이 노량진 학원가다.7·9급 공무원시험의 메카로 불리는 노량진 학원가.그러나 김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자신은 눈높이를 한단계 낮추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노량진 생활 6개월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신림동은 ‘큰 꿈’이라도 있었지만 노량진에서는 ‘삶의 고단함’ 뿐이었다. ●비명문대라는 원죄 수험생 증가세는 뚜렷하다.상대적으로 시험이 어려운 7급은 덜하지만 9급 시험 응시생 증가추이는 뚜렷하다.2002년 출원자 수 1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치러진 1차 시험 출원자 수는 15만명,응시자 수는 10만명을 넘어섰다.지난해와 비교하자면 올해 출원자 수는 5만여명,응시자 수는 3만여명이 늘었다. ‘이상과열’로까지 비칠 수 있지만 학원 관계자들은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취업문이 아주 좁은 상황에서 ‘비명문대’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학생들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강사들은 최근 강의실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한교고시학원 관계자는 “특히 지방대생들이 상경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지난해부터 학원가 부근에 고시원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지방대생들은 대개 공무원시험을 4∼5차례 정도 응시한다.국가직 한번,지역제한이 없는 서울시에 상반기·후반기 한번씩 모두 두번,본인 주민등록상 주소지에서 또 한번 치르는 식이다.서울지역 학생들도 마찬가지다.응시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잡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경기도나,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지는 강원도로 옮기기도 한다.그러다보니 신림동과 달리 수험생들은 1년 내내 긴장감에 시달린다. ●대학 신입생도,명문대생도 기웃기웃 대학 신입생들의 문의전화도 크게 늘었다.학원마다 하루에 최소한 1∼2통씩 지방대 1∼2학년생들의 상담전화를 받는다.다른 직장을 생각하기보다 처음부터 공무원으로 정해놓고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휴학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다. 남부행정고시학원 박옥수 부장은 “대학 저학년생들의 상담내용은 주로 6개월이나 1년 정도 휴학을 하면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심지어는 고등학생들이 언제부터 공부해야 좋을지를 묻는 경우도 있다. 명문대생 일부도 노량진 학원가를 기웃거린다.한교고시학원 관계자는 “수강신청 때 신원확인 과정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지만 수험생들 가운데 명문대생들이 상당수 된다고 들었다.”면서 “이들 대부분은 최근 고시제도의 변화 때문에 고시공부를 접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이들은 7급시험에 주로 몰려 있다.그래서 7급시험도 요즘은 ‘고시’로 통한다. ●경기침체에 상인도 수험생도 울상 노량진 학원가 일대 식당은 전형적인 ‘박리다매’ 형식을 취하고 있다.‘음료수 하나에 샌드위치 하나’ 하는 식으로 메뉴를 구성해 1000원에 판다.이런 메뉴는 가게마다 5∼6가지씩 있다.또 한달 단위로 식권을 끊을 경우 15만∼20만원이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시내 식당 가격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경기불황은 이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P식당을 운영하는 박순례(58·여)씨는 지난해 식당을 넓히고 메뉴를 고급화하면서 가격을 올렸지만 결국 원위치로 되돌아갔다.박씨는 “공무원시험 열풍이 불면서 학원수강생이 늘었다는 말을 듣고 애써 돈을 들여 투자했는데 오히려 손해만 봤다.”고 말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고시원의 경우 안전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신림동의 경우 그래도 고급 원룸 위주의 고시원이 많이 들어서고 있지만 노량진은 고작 2∼3평짜리 고시원이 즐비하다.심지어는 이 공간마저도 칸막이를 해서 두 사람이 같이 쓰기도 한다. 서울고시학원 박춘택 실장은 “고시원들이 합판 등으로 날림공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수험생들의 불편함도 문제지만 불이라도 나면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림동과 달리 노량진은 인근지역으로 뻗어나갈 곳이 마땅찮은 데다 수험생들 주머니가 가볍다 보니 수험생들은 이런 고시원마저 못 들어가서 안달이다. 조태성 강혜승기자 cho1904@seoul.co.kr˝
  • [환경엄마 김수영의 건강한 밥상] 아이들 생일상 패스트푸드는 이제 그만

    자녀들이 같은 반 아이들과 제법 친해진 요즘,주말이면 아이들 생일잔치가 이어진다.앙증맞게 만든 초대 카드를 돌리고,초대받은 아이들은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서 생일을 맞은 아이집을 찾는다.학원 때문에 반 친구들과 같이 모여 노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많은 아이들이 친구들의 생일날 놀러 가는 것을 반기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이다.차리는 음식들이 거의 비슷하다.김밥,닭튀김,피자,콜라,탕수육,군만두,초콜릿,과자,그리고 생일케이크….대부분이 패스트푸드이고 인스턴트식품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10여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혼자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또 피자나 닭튀김을 내놓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생일상을 잘못차렸다는 얘기를 듣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생일잔치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자리이다.그런데 그런 날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음식으로 상을 채운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또 부모의 역할이 음식 주문을 위해서 전화 몇 통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 역시 문제다. 조금만 신경 쓴다면 아이에게는 특별하고,친구들에게는 색다른 생일상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가장 먼저,생일상의 꽃인 생일케이크만 해도 ‘산뜻한 변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케이크 대신 떡으로 차리는 것이다.물론 떡집에 하루 전쯤에 주문을 해야 한다.호두가 들어 있는 수수찹쌀떡,호박찰편 등 종류가 케이크 이상으로 다양하며,모양도 예쁘다.산뜻한 생일떡 위에 촛불을 밝히면 특색 있고,우리의 전통도 살아날 것이다. 또 다르게는 생활협동조합(생협) 케이크를 올려놓는 방법도 있다.이 역시 2∼3일 전에는 주문을 해야 한다.그러면 생크림 범벅도 아닐 뿐더러 수입 밀가루가 아닌 국산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케이크를 아이 생일상 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역시 생일잔치에서 소외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아이 친구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알려주는 방법으로 요리 한 두 가지 정도는 직접 해서 내놓는 것이 좋다.찹쌀만 미리 불려놓으면 약식 만드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아 김밥 대용으로 손색이 없다.밖에서 떡볶이를 주문하여 내놓기도 하는데,이 대신 떡볶이떡을 넣어 만든 떡잡채나 조랭이떡으로 맵지 않게 만드는 궁중식 떡볶이를 내놓아 보자.훨씬 풍성한 느낌을 주고 아이들 입맛을 돋울 것이다. 음료수 역시 마찬가지다.콜라,사이다를 내놓기보다 집에서 만든 현미식혜나 생협에서 나오는 야채효소로 만든 차를 내놓아 보자.특색 있을 뿐더러 맛도 신선하여 콜라 찾는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음식을 한꺼번에 잔뜩 내놓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과식을 하거나 편식을 하기에 알맞을 수 있다.또 정작 아이들 몸에 좋은 과일을 내놓았을 때 배가 불러 먹지 못할 수도 있다.음식을 내놓기 전에 샐러드만을 먼저 내놓아 아이들이 채소를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생일을 만들어준다고 차리는 피자나 닭튀김이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이 생일상을 점령하면서 건강과 함께 독특함마저도 희석되어 버린 것이다.특별한 아이에게 특별한 생일을 만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특별한 음식인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것이다. 친구 생일에 초대받았던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내 생일에도 생일떡 해줘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아이 생일상으로 인해 올바른 먹거리가 널리널리 퍼져나가게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김순영씨는 YMCA와 경실련 등에서 일한 시민운동가이며,지금은 환경정의 이사로, 특히 우리의 전통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 뉴보이 이완의 완벽한 매력

    요즘 새내기 탤런트 이완(20)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우후죽순(雨後竹筍)이 따로 없다.이제 막 싹이 돋았나 싶더니 어느새 쑥쑥 뻗어올라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지난해 10월 SBS 수목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신현준의 아역으로 첫 얼굴을 내민 그는 데뷔 5개월만인 지난 3월 KBS 2TV 월화드라마 ‘백설공주’에서 턱하니 주연 자리를 꿰찼다.그러고는 숨돌릴 틈도 없이 지난 24일 첫 전파를 탄 SBS 주말극 ‘작은아씨들’에 곧바로 픽업됐다.인기의 척도인 CF와 뮤직비디오 출연도 따르고 있다.본인조차 어리둥절할 정도의 초고속 성장이다. ●눈동자의 힘 도대체 그의 어떤 매력이 이같은 벼락인기를 가능케 했을까.‘얼짱’에다 ‘몸짱’인 빼어난 외모도 한몫하지만,그의 가장 큰 무기는 프로듀서들조차 앞다퉈 눈독을 들일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눈빛’이다.그는 고작 2회 출연한 ‘천국의 계단’에서 우수에 찬 눈빛 하나만으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그 ‘눈동자의 힘’이 ‘백설공주’에서 한층 탄력을 받았고,‘작은아씨들’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태세다. 그러나 마주앉자마자 들려오는 그의 나긋나긋한 말투.의외였다.‘천국의 계단’에서 보여준 ‘태화’의 고독하고 반항적인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본래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에요.사람들 앞에서 낯도 많이 가리죠.”머쓱해 하더니 이내 얼굴을 붉힌다.순수함이 묻어나오는 눈빛도 TV화면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그러나 정작 본인은 “편안한 연기보다는 시청자들을 긴장시키는 지금의 이미지가 더 맘에 든다.”며 미소 짓는다.연기의 폭이 아직 작은 게 아니냐고 은근히 꼬집었다.“설경구,최민식 선배처럼 눈빛 하나에 ‘희로애락’을 모두 담을 줄 아는 연기자가 되는게 내 꿈이고,이제 그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라며 좀더 지켜봐 달란다. ●대학생 김형수와 연기자 이완 올해로 성인이 됐다.아직 때가 묻지 않아서일까.솔직하고 꾸밈도 없는 대답에 연예인 냄새가 도통 나지 않는다.“본래 연기자는 꿈에도 없었어요.그렇다고 지금 전공(국민대 체육학부 2년 휴학)쪽으로도 관심은 없었죠.공부하기 싫고 대학은 가야겠고…”알려졌다시피 그는 탤런트 김태희(24)의 친 동생.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순전히 누나 때문이란다.“‘천국의 계단’ 이장수 감독님이 누나 수첩속에 있는 제 사진을 보고 캐스팅하셨죠.이전까지 한번도 오디션 같은 것을 본적이 없어요.운이 좋았죠.” 그는 그길로 본명인 ‘김형수’를 예명인 ‘이완’으로 바꿨다.그는 틈날 때마다 볼펜을 물고 거울을 본다.“말투에 고향인 울산 사투리 억양이 곳곳에 묻어있어 발음이 약간 새요.연기할때 아직도 카메라가 의식돼 부자연스러운 느낌도 많고요.”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황태자’가 되고픈 ‘삐딱이’ 화제를 여자친구 쪽으로 돌려봤다.“여자친구는 많은데 정작 ‘애인’은 없어요.이상형요? 글쎄,‘얼굴 예쁘고 피부가 하얗고 이해심 많은 여자’쯤 될까요?”누나 얘기 하느냐고 물으니,“정말 그렇네요.우리 누나네요.”(웃음) 그는 어머니와 누나처럼 청순한 스타일의 여성을 만나고 싶단다.그는 ‘작은아씨들’에서 고아출신으로 폭력조직에 몸담았다가 사랑하는 여인(박은혜)을 위해 개과천선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천국의 계단’‘백설공주’에 이어 또다시 여성 시청자들의 연민을 자극하는 캐릭터.“당분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연기 공부에 몰두할 겁니다.하지만 기회가 되면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역할보다는 좀더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보여드리고 싶어요.‘천국의 계단’의 권상우처럼 황태자 같은 역할도 좋지요.”(웃음) 이영표기자 tomcat@ 사진 강성남기자 snk@ ■태희 누나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남매 연예인은 둘 다 뜨기 힘들다’는 연예가 징크스를 보란 듯 깨버린 탤런트 김태희(24)·이완(20) 남매.특히 과거 ‘김태희의 남동생’으로 불리던 이완은 현재 김태희가 ‘이완의 누나’로 비쳐질 정도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완 본인은 아직도 누나 김태희에 대한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깨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다.“어릴적부터 모든 면에서 누나가 한수 위였어요.얼굴도 예쁘고,공부도 잘하고,성격도 털털하고…암튼 동네에서는 누나 모르면 간첩이었지요.” 그러면서 그는 어릴적 누나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저도 ‘한’운동 한다고 자부하지만,누나는 운동신경이 제 서너배는 됐어요.달리기는 또래들 사이에서 최고였죠.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태권도로 무장한 누나의 ‘주먹’을 매일 맞고 살다시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지금은 서로의 바쁜 스케줄 탓에 누나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만나면 자신의 연기 모니터를 해주며 여전히 ‘사랑의 주먹’을 날린단다.하지만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누나이기 때문에 그런 주먹은 맞을수록 행복하다고. “제가 연기자가 아닐 때는 누나의 연기를 보고 ‘별것 아니겠구나’ 생각했어요.그런데 막상 연기를 해보니 누나가 더욱더 존경스러워 지는 거 있죠.특히 ‘우는 연기’와 표독한 ‘눈빛 연기’는 압권이지요.” 열심히 해 누나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는 동생이 되겠단다. 이영표기자˝
  • 취직은 왜 해? 이태백의 대박찾기

    넌 이태백? 난 이대박! 도서관에서 씨름하는 20대가 있다면,내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20대도 있다. 때밀이,포장마차업,베이비시터,간병인…겉보기엔 3D이지만,알고보면 쏠쏠한 직업들. 젊은이들이 ‘때밀이’학원과 ‘포장마차요리’를 배우고 베이비시터·간병인 소개업소를 찾는다. 처음 잡아 본 부엌칼에 손을 베고,요령없는 초보는 때밀이 실습에 벌써 어깨 통증을 호소한다. 그래도 이들의 웃음은 싱그럽다.내일이 있으니까,‘대박’이 있으니까. (1) 빡빡 밀어 대박… 목욕관리사 “‘때’밀어 ‘떼’돈을 번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잘 나가는 때밀이는 한달에 400만∼500만 원은 쉽게 번다.여느 직장인들처럼 정신적 스트레스도 없다. 그래서일까.최근 이력서 쓰다쓰다 지친 20대 후반 남성이나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때밀이’학원에 몰리고 있다.대졸 학력에 놀라는 사람도 없다.대졸이 결코 드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소위 일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많다.전직 증권맨·공무원·은행원 등. 3D업종이란 사회적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자신이 땀 흘린 만큼 보수받고 안정적인 직장,이 매력적인 직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물론 이들이 우선 넘어야 할 벽은 타인의 시선이다. 서울 사당동에 있는 한국 목욕관리사 협회의 실습장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여기 누우세요.” 강병덕 목욕관리사 회장은 고객을 처음 맞는 마음과 인사부터 가르친다.수업을 듣고있는 학생들은 팬티만 걸친 채 손에는 노란 때수건을 끼고 있었다.“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무한 경쟁시대에 도태됩니다.” “자 리듬을 주면서 팔을 밀어보겠습니다.하나 둘 셋… 팔을 아래로 밀 때는 40% 힘을,위로 밀때는 60%의 힘을 주며 밀어야 합니다.”그의 강의는 이어진다.“몸을 이용해서 때를 미는 것이 포인트입니다.보통 팔의 힘으로만 밀게 되면 근육통에 시달리게 됩니다.김만구씨 그게 아니라니까. 힘만으로 하지 말고 리듬을 타세요.리듬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심각한 표정이다. 2주째 강의를 듣고있는 막내 김만구(27)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한다.정수기 회사를 다니면서,비전도 없고 보수도 적다는 생각에 새롭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단다.“땀 흘린 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매력적이지 않습니까.몸만 건강하면 잘릴 염려도 없고요.”라는 김 씨의 웃음에 스트레스가 없다. 2개월차 박진한(31)씨는 ‘때밀이’란 말대신 ‘목욕관리사’라고 자신의 새 직업을 소개했다.“이제 때밀이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우리는 전문적인 기술과 새로운 서비스로 무장한 ‘목욕관리사’입니다.저는 이 직업을 고소득 전문직이라고 생각합니다.”그는 여자친구를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린 게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하지만 요즘은 ‘부부 목욕관리사가 되어 볼까’. 하고 농담도 합니다.” 동네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가 1만원짜리 가득한 돈통을 쏟아 부으며 돈을 세는 것을 보고는 학원을 찾았다는 민상희(28)씨는 “아줌마와 며칠을 이야기를 해 본 끝에 결정을 내렸어요.여자들 직업으로는 그만이에요.”라며 “물론 육체적으로 힘은 들지만 제가 ‘오너’잖아요.저를 위해 일하는데 남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또 그녀는 “동네 목욕탕에서 일하는 아줌마와는 다르게 아로마 오일 마사지,얼굴 팩 등 을 배워 경쟁력을 갖췄습니다.성공할 자신있어요.”라며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어려움은 있다.곱지 않은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간혹 실습을 나가면 ‘어이 나라시(때밀이의 일본속어),때 좀 밀어도’,하며 아주 기분 나쁘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마치 자신의 하인을 부르듯이 말입니다.”라며 이성철(36)씨가 흥분하며 말한다.부산에서 증권회사를 다니던 이 씨는 ‘매일 조그마한 단말기로 장난치며 돈을 벌다가’ 사고를 쳐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이제는 자신의 몸을 써서 일을 하려고 학원을 찾았다.“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요.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아들이 때밀이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아직도 화를 내고 계세요.”라며 사회적인 편견과 부모님을 가슴아프게 한 것이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옆에서 경락 마사지를 배우던 김진한(30)씨가 “형은 프로근성이 아직 부족해요.프로는 자신에게 충실하지 주위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요.”라며 일침을 놓는다.“진정한 목욕관리사는 손님의 모든 것을 웃으며 받아 줄 수 있어야 해요.” 전문대를 나온 김씨는 26살에 학원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열심히 때를 밀어 1억원 가량을 모았다.“하루에 최고 41명까지 때를 밀었고 한달 평균 50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어요.”그는 곧 마사지 숍을 오픈할 예정이고,7월에는 결혼도 한다. 김씨도 초보 시절에는 ‘편견’때문에 힘들었단다.“장애인 목욕봉사를 나갔을 때나 연로하신 분들을 깨끗하게 닦아 드렸을 때,그분들의 만족한 눈빛을 느껴본 이후로는 정말 자랑스럽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그는 정말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그들은 할 일이 없어서,못 배워서 때밀이를 하는 것이 아니다.더러운 때를 제거해주며,마사지로 지친 현대인을 편안하게 해주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그들을 구태여 전문가라고 하지 않아도 좋다.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마음의 때를 날려버린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 요리 조리 대박… 포장마차 “돈가스 소스에 들어가는 케첩은 신맛이 나면 안 되겠죠? 프라이팬에 넣고 은근한 불에 볶아주면 신맛이 날아갑니다.” “떡볶이 양념을 꼭 이대로 만들어야 되는 건 아니에요.취향에 따라 양념을 더 넣고 덜 넣어서 자기만의 양념을 만들어 보세요.” 강의를 하는 사람부터 배우는 사람까지 그럴듯한 요리사복장을 갖추고 있다.귀를 기울여 보니 흔한 요리학원의 강의가 아니다.뭔가 다르다.폼나는 칼질이 돋보이는 일식 요리반도, 정통의 한식 요리반도 아니다.바로 불황을 타고 생겨난 포장마차 창업반이다. “왜 포장마차냐고요? 볼펜 쥐고 책만 들여다 본다고 뾰족한 수가 나나요. 젊었을 때 뭐든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솔요리학원의 포장마차 창업과정에서 만난 양현진(25)씨.포장마차 요리를 배우기 위해 요리학원을 찾은 사람들마다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그 중에서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다는 앳된 얼굴의 그가 유난히 눈에 띈다.어설픈 칼질을 보아하 니 요리라곤 라면 끓이는 정도가 전부일 듯 하다. 하지만 그는 약혼녀와 함께 지난 3월에 천호동에 실내형 포장마차를 개업한 어엿한 사장님이다.요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지만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 싶어 학원을 찾았다고 한다. “저도 졸업을 앞두고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이 걱정됐죠.건축학을 전공했는데 요즘 워낙 불황이잖아요.한창 짓던 건물이 부도나는 게 흔한 요즘 있는 사람도 내보내는 판에 사람을 새로 뽑을 리가 있겠어요?” 그래서 전공과 다른 길을 찾던 중 우연히 천호동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됐다.제법 사람이 많은 번화가였지만 그럴 듯한 술집은 많아도 그 흔한 실내형 포장마차 하나 없었던 게 그의 눈에 띄었다. “경기가 어려울 때 많이 찾는 포장마차,내가 해봐도 되겠다 싶더라고요.일종의 틈새를 노렸다고나 할까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날마다 장보고 저녁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사람들 상대하는 게 결코 녹록지 않다.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걸 평생직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아직 젊으니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까 시작한 일이에요.무엇이든 부딪쳐 보는 것,그게 젊음이잖아요.” 지난 4월 산본역 근처에 ‘유정이네 포장마차’를 개업한 장유남(28)씨.그도 현진씨와 같은 생각으로 포장마차를 열었다.하루 하루 매상이 들쭉날쭉하지만 곧 자리를 잡을 것 같아 큰 걱정은 없다. “처음에 포장마차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죠.역시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더라고요.이것도 일종의 사업이니까요.하지만 젊은 나이니까 도전해볼 만 한 일입니다.” 행정학을 전공한 안덕진(27)씨는 친구들처럼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매일 이곳저곳의 포장마차를 찾는다.요리학원에서 포장마차 요리의 기본을 배운 그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들기 위해 여러 포장마차를 다녀보고,비교하며 창업을 준비 중이다. “젊잖아요.체력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실패할 수도 있겠죠.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언젠가 성공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3) 반짝반짝 대박… 가사도우미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전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라는 직업과 자신감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올해 29세의 남자 베이비시터인 백성연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그래서 저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준 아기들 부모님한테 고마웠고 덕분에 뭐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2002년 사업을 시작했다 실패한 그는 지난해 봄부터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처음엔 일자리 얻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용돈이나 벌자는 마음이었다.인상이 좋은 그는 일단 면접에서 후한 점수를 얻었고 초등학교 1학년,5학년 두 남자아이를 돌보면서 약간의 가사일을 맡게 됐다. 사실 남자 베이비시터는 낯설다.이에 그는 “활동적인 남자아이들을 둔 부모님들은 함께 놀아줄 남자 베이비시터를 선호한다.”고 귀띔한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던 아이 돌보기와 집안일.막상 시작하니 책임감이 커졌다고 성연씨는 말한다.언제부터인가 아이들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사비를 털어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사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베이비시터를 평생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저도 좀더 성공하고 싶은 꿈이 있죠.하지만 포부만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공부에도 때가 있듯이 일하는 데에도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20대에 일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최아름(21)씨는 얼마전부터 베이비시터나 가사도우미 일을 하려고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고 있다.“그럴 듯한 회사에만 원서를 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봐요.일단 무엇이든 해서 경험을 쌓다 보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7개월차 간병인 조민수(29)씨 역시 처음엔 쉽게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중소기업에 다니다 그만둔 후 누나가 간병인을 권유했을 땐 그저 불편한 분들 부축하고 잔 심부름 정도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소변 받아내는 것은 기본이고 식사에서 사소한 거동까지 다 돌봐줘야 하는 간병일은 결코 쉽지 않다.처음 한달 동안은 그만둘까 고민도 많았다.젊은 사람이 간병일을 하니 ‘돈 때문에 한다.’라는 시선도 싫었다.환자가족들이 ‘간병인 주제에 뭘 아느냐.”고 할 때는 정말 참기 어려웠다.어렵고 마음 고생 심한 직업.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꺼리는 이 직업을 민수씨는 왜 고집하는 것일까.그는 ‘젊음’과 ‘사랑’을 그 답으로 내놓는다. “젊은 데 쉬운 일만 할 수 있나요.돈은 부차적인 것입니다.내 힘으로 힘든 상황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면 보람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현실은 말처럼 편치만은 않다.홈케어 서비스업체인 ‘효 플러스(www.koreanursing.co.kr)’의 전수길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과 인격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가사도우미,간병인 등 전문적인 분야에 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는다.”고 지적한다. “몸으로 하는 일이면 어떻습니까.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그만큼 대우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저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한준규 나길회기자 hihi@ ■ 하자! 하자! ●포장마차 CEO되기 ‘알탕,오돌뼈,곰장어,닭발‘ 포장마차 요리들이 전문요리학원 속으로 들어왔다.계속되는 불황에 창업비용이 저렴한 실내형 포장마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늘자 이에 발맞춰 요리학원이 전문강습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국내 손꼽히는 전문요리학원 중 하나인 한솔요리학원 신촌점은 지난 2월 포장마차 창업과정 전문반을 개설했다.10명 소수 정원으로 4주 과정에 20여가지 포장마차요리와 창업이론을 강의한다.요리는 부원장인 김문정 조리장이 직접 가르친다.지금까지 대학을 갓 졸업한 취업 준비생부터 은퇴 후를 대비하는 직장인,업종을 변경하려는 사람 등 5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다.현재 10% 정도가 창업했다.한솔요리학원 기획실의 송문희씨는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오전반,저녁반 등을 개설해 달라는 직장인들의 요청이 많다.”며 “조만간 수업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문의 (02)3141-1919. ●목욕관리사 되기 서울에 오픈 예정인 세계적인 호텔 ‘W’에서 때밀이를 특채하기로 했다.또한 일본 의 한 온천기업은 때밀이 전문학교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때밀이 기술을 수입하려 하고 있다.이렇게 ‘목욕관리사’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서비스인이란 인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목욕관리사 학원은 95년 처음 생기기 시작해 서울에서만 20여곳이 성업중이다. 이와함께 목욕관리사 관련 구인구직 사이트도 속속 오픈되고 있다. 특히 목욕관리사 협회는 새로운 서비스와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때밀이’를 교육하기 위해 2000년 설립됐다. ‘철저한 서비스 정신과 때밀이 기술은 기본이고 태국 전통 왓포 마사지,스포츠마사지,경락마사지,카이로프락틱,키네시오 테이핑 연수를 가르쳐 업 그레이드된 목욕관리사를 관리하고 있다.(02)525-8259. ●가사도우미·베이비시터·간병인 되기 베이비시터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먼저 베이비시터 업체에 신청서를 내고 업체에서 실시하는 간단한 교육(색종이 접기,구연동화,기저귀 가는 법,젖병 관리)을 받으면 된다.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수요도 늘고 있다.관련 전공자의 경우 유리하지만 책임감만 있다면 경험이 없어도 OK. 가사도우미도의 경우도 소개 업체에 원서를 내고 기본적인 서비스 교육을 받으면 된다.요즘은 입주식보다는 파트타임 형태가 많기 때문에 시간 조절을 잘 하면 여러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 간병인의 경우 보다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침상정리법,욕창예방법,환자옮기기 등을 배워야 한다.교육은 대한적십자사(www.redcross.or.kr)나 사설 간병인 소개업체에서 받을 수 있다. ˝
  • [조정래의 세상보기]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이 문제를 놓고 새삼스럽게 마음 무거워진 당신의 우울을 이해합니다.저도 그 새삼스러움에 맞닥뜨려 우울하기 때문입니다. 저 수천년 전부터 인간은 인간을 알고자 했습니다.그러나 그 일은 지난하기 그지없어 결국은 철학이라는 학문체계까지 이루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무수한 철학자들이 그 답을 찾아내려고 골몰해 왔습니다.그러나 그 성과는 아주 보잘것없이 미미했습니다.왜냐하면 인간이란 그만큼 복잡미묘하고 애매모호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를 보고 마음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인간 존재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회의하지 않은 사람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그러나 인간이란 그렇게 잔인하고 야비한 존재라는 것을 불현듯 확인해야 하고,그럴 때마다 우리는 슬픈 우울에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지금이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약했던 중세도 아니고 인권 존중을 인류의 최상의 가치로 공동인식하고 있는 ‘문화의 세기’에 그런 일이 저질러져 우리의 슬픔은 더 깊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세계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평화의 세기’라고 합창을 했습니다.당신은 그 아름다운 말을 믿었다고 했습니다.저도 믿었습니다.아니,믿고 싶었습니다.그런데 21세기는 첫발부터 전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지옥에 다녀온 기분이다.그 지옥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게 문제다” 이라크의 포로 학대 장면을 담은 비공개 사진과 비디오를 본 미국 상·하의원들 중 한 사람이 한 말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인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 그 부당성을 처음부터 냉정하게 비판해 왔습니다.그 부당함에 더하여 미국은 급기야 포로 학대의 지옥까지 만들었습니다.지금 미국을 향해 쏠리고 있는 세계인들의 우울한 눈초리를 세계의 최강국이라는 미국은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이고 평화의 세기라고 했던 것은 몽상적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당신이 회의하고 있는 인간의 속성상 그 희망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0세기를 돌이켜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세기를 보내면서 세계의 지식인들은 20세기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전쟁과 학살의 세기.전지구적 공해 유발의 세기.과학 발달의 세기.두 가지는 부정적이고,한 가지는 긍정적인 평가였습니다. 첫번째로 전쟁과 학살을 꼽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20세기 100년 동안에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것은 겨우 13일 정도이고,그 줄기찬 전쟁 속에서 인간은 인간을 1억명이나 죽였던 것입니다.돈 1억이 아니라 사람이 1억입니다.그것이 인간입니다.서로서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탐욕을 위하여 인간은 거침없고,서슴없고,가차없이 상대방을 죽이는 존재입니다. 20세기와 함께 사회주의권이 몰락해 자본주의는 아무런 견제세력 없이 21세기를 독주하게 되었으니 그 탐욕은 얼마나 커졌겠습니까.그래서 그 시작이 이라크 침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인간을 긍정할 수 없는 것을 괴로워했습니다.그건 당신만의 괴로움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갖는 괴로움이고 외로움일 것입니다.이 세상에 생명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지만,인간처럼 동류끼리 동류를 그렇게 줄기차게 죽여온 일이 없고,더구나 효과적으로 많이 죽이기 위해 머리 싸매고 연구해가며 수많은 무기를 만들어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긍정하지 않고서야 무슨 의미로 살 수 있겠습니까.또한,인류의 역사 속에는 받들고 우러를 수 있는 참되고 인간다운 인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그런 사람들이 가르치고 실천한 것을 본받아 세상이 바르게 되어 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당신의 우울 앞에서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저의 우울이 됩니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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