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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이너의 후예’ 美 단거리 자존심 살린다

    미국은 원래 육상 단거리 왕국이었다. 1912년 남자 100m 첫 세계신기록이 나왔을 때부터 최근까지 대부분 기록을 독식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아사파 파월, 우사인 볼트(이상 자메이카) 등이 등장하면서 단거리에서 미국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게다가 자메이카에 도전할 남자 단거리 1인자 타이슨 게이마저도 부상으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불참을 선언하면서 왕좌를 완전히 넘겨주는 형국이다. 이런 미국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바로 여자 단거리다. 현재는 고인이 된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의 100m(10초 49)와 200m(21초 34) 세계기록은 23년째 성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현재 이 ‘불멸의 기록’에 가장 근접한 선수들도 미국 선수들이다. 주인공은 100m의 카멜리타 지터(32)와 200m의 앨리슨 펠릭스(26). 지터는 2009년 상하이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초속 1.2m의 뒤 바람을 타고 100m를 10초 64에 끊으며 세계기록에 가장 근접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프로농구(NBA) 가드인 오빠 유진 지터를 따라 농구를 먼저 배웠던 지터는 뒤늦게 고등학교 때 육상에 입문했다. 그런데 첫 100m 기록이 11초 70.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당시 지터는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11초 02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도 동메달에 머물렀지만, 같은 해 가을 연달아 10초 67과 10초 64로 기록을 끌어올려 자존심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해 출전한 7번의 대회에서 6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구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펠릭스는 세계선수권대회의 강자다. 2005년 헬싱키, 2007년 오사카, 2009년 베를린 대회 200m를 3연패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다른 단거리 종목이 모두 자메이카에 넘어갈 때 홀로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연달아 자메이카의 캠벨 브라운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개인 최고기록도 21초 81로 21초 74를 찍은 브라운에 이어 현역 선수 가운데 2위다. 하지만 펠릭스가 전성기를 맞은 반면, 브라운은 내리막을 타고 있어 대구에서의 맞대결에서는 4연패와 동시에 올림픽 설욕이 성공할지 관심이 모인다. 두 여전사가 대구에서 미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씨줄날줄] 나홀로 가구/임태순 논설위원

    미국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인간이 지금처럼 남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무능했던 시대는 아마 인류 역사상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선진국 도시인구의 절반이 혼자 살고 있고 치솟은 이혼율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을 그 예로 든다. 실제 2009년 기준 세계 각국 도시의 1인 가구 비율은 뉴욕 48%, 도쿄 42.5%, 유럽이 40%대에 이른다. 미국의 이혼율은 51%, 스웨덴은 48.1%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순 없다. 서울시가 엊그제 발표한 ‘2010 서울가구구조 변화보고서’에 따르면 1인가구는 85만 4606가구로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4.4%로 가장 높았다. 그동안 선두를 독주해 오던 4인 가구는 80만 7836가구(23.1%)로 2위로 물러앉았다. 2인 가구와 3인 가구의 비율이 각각 22.3%, 22.5%로 턱밑까지 치고왔으니 2위자리마저도 위태위태해졌다. 서울도 세계적 도시의 ‘1인가구 추세’에 동참하게 된 셈이다. 핵가족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1인가구시대라니, 가족제도의 빠른 진화에 새삼 놀라게 된다. 1인가구는 미혼, 배우자의 사별, 이혼, 기러기아빠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 기피 풍조가 가장 클 것이다. 서울의 1인가구를 혼인형태별로 보면 역시 미혼이 60.1%로 가장 많았고, 사별 17.4%, 이혼 12.6%였다. 1인가구가 도시의 대표적 가구로 자리잡음에 따라 독신족을 위한 ‘싱글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1~2인용 전기밥솥에 미니세탁기, 미니생수기가 나오는가 하면 1인용 햇반에 1인용 반찬까지 나와 탄탄한 매출고를 자랑하고 있다. 식당에서는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1인용 좌석을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젊은 층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할 것이다. 남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니 이보다 좋은 일도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 들을 일도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에 봉착하게 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면 외롭고 자신의 고민이나 고충을 털어놓을 기회도 적어져 사회와 고립되게 된다. 기러기아빠들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가족과의 유대감이 끊어진 데 따른 무력감 때문이다. 개, 고양이 등 애완산업이 번창하는 것도 1인가구의 고독과 무관치 않다. 인간은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바보, 천치를 뜻하는 영어 ‘이디엇’(idiot)은 혼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보, 천치가 아니라면 1인가구보다는 최소한 동반자가 있는 2인가구를 권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사일사] “이제 조폭 꼬리표 떼고 싶어요” 파이터 이한근

    [사일사] “이제 조폭 꼬리표 떼고 싶어요” 파이터 이한근

     “‘조폭 파이터’란 별명은 창피하니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생계형 파이터’란 얘기도 듣는데 이제는 많은 나이를 열정으로 뛰어넘은 ‘투혼의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외모부터 남다르다. 짧게 자른 꽁지 머리, 1㎝ 정도 흉터가 15㎝ 길이로 가로 새겨진 이마, 높은 톤의 전라도 사투리 등이 영락 없는 ‘형님’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국내에 하나 뿐인 프로 종합격투기(MMA) 대회인 ‘로드FC 003 익스플로전’에서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불려온 김종대(30·팀포스)를 크로스 카운터로 링에 벌렁 드러누이면서 프로 파이터의 가능성을 과시한 이한근(42·영등포 정심관)은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과거를 지녔다. “먹고 살려고” 조직에 몸 담았다가 4년반 전쯤부터 파이터로 변신하며 허물을 벗고 있는 것.  이한근은 19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김종대와의 경기에서 이긴 것을 운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며 “다음 대회에선 한 체급 올려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는 만큼 빈틈없이 준비해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기획사 사무실과 13일 경기 고양시 화정의 ‘익스트림 피트니스’에서 각각 진행된 일문일답.    ▶ 성공적인 프로 데뷔 이후 얼굴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을텐데.  -교회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요. 그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어릴 적부터의 꿈인 체육관을 함께 운영해보자는 사람도 생겼는데 1년은 (선수로) 뛴 뒤 체육관 차릴 계획이니 당장 응하진 않을 겁니다. 파이트 머니가 적어 실망하긴 했지만 내가 대회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습니다.    ▶ 김종대를 꺾은 것은 운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던데.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지요. 이긴 비결은 그 뭐, (경기 사나흘 전부터 복싱) 세계챔피언(조인주 관장)에게 물어봤어요. (김종대가) 훅은 치면은 뭘 쳐야 하느냐 물어봤더니 어퍼컷 말고 같이 훅을 걸으라고 해서, 그게 맞아떨어져서 운좋게 나온 것 같아요. 그림(?)이 좋게 나와 다행입니다.  한참 전에는 ‘타격은 강한데 그라운드 싸움에 약하다.’는 지적을 의식, 스피릿MC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이광희에게 기본적인 수비 동작 등 레슬링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 그래도 김종대의 펀치를 맞고 한 번 휘청했지 않았나.  -경기 뒤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 보며 꼼꼼이 분석했는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더라. 맷집만 믿고 가드를 내리는 내 약점도 여전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대와는 가끔 만나 통닭을 먹습니다. 지난 경기를 앞두고도 이틀 전인가 함께 밥을 먹었는데요. 종대가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 링사이드 사회자가 미들급으로 올려 데니스 강과 토너먼트를 해보면 어떠냐고 했는데 좋다고 했다.  -약간 얼떨결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왕 얘기했으니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뭐, 시합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다음 대회, 이 앞전 시합 때 토너먼트, 한 체급 위이고 하니까, 저번 시합 때 제가 운 좋게 이겼잖아요. 대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요.  시합 끝나고 일주일 쉬었다가요, 옛날은 운동을 많이 못했는데 지금은 운동을, 나름대로 몸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서 쬐끔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중학교 이래 늘 하던 것이고 조직에 있을 때도 꾸준히 했지요. 지금도 새벽에 배드민턴하고 오후에 아는 관장들 운영하는 체육관 여러 곳을 돌면서 2~3시간씩 운동합니다. 배드민턴은 몸의 민첩성을 키우는, 나만의 훈련 비결이기도 하지라.    ▶ 데니스 강. 엄청 센 상대 아닌가.  -링에 올라가면 별로 겁을 내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어차피 대결은 한 방에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약점을 보완하고 내 장점을 가다듬으면 한 번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 그래도 파이터로서의 자격을 거론하는 누리꾼들이 있는데.  -격투기 좋아하는 분들 모두 소중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운동해보지 않고 글로만 아는 척하는 분들 적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노는 거고….  이번 경기 뒤 인터넷 댓글들 보면서 많이 웃기도 안 했습니까. 등업(글쓰는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할줄 몰라 글은 남기지 않았지만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 살아온 얘기가 궁금하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 근처 섬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 중에 제가 고졸로 학력이 가장 높아요. 세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두 형님이 학업을 포기하고 집안을 돌봤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두 형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십니다. 큰 형은 관광버스 운전을, 둘째 형은 간판 일을 하면서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막내도 고교를 중퇴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면 ‘두뇌는 명석하나 노력을 안함’이라 써 있곤 했습니다. 고흥 도화면에서 중고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태권도를 한다며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 고흥은 원래 장사가 많은 곳 아닌가.  -그라지라. 보통 고흥 남자들은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체구가 왜소하셨고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쪽이 그런 편이셨어요. 전남체전 같은 데서 우승한 경력도 있으니 꽤 잘했지요.    ▶ 조직에 몸 담게 된 것은.  -군대 다녀온 뒤 뭘해 먹고 사나 싶었어요. 고교 시절 태권도를 가르친 분이 서울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몇 개를 적어주었어요. ‘서울 가 도장이라도 차려야겠다.’고 생각해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거예요. 사나흘 정도 노숙하다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아는 건 운동뿐인데 어쩌다 잘못 풀린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의 이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먹을 썼지, 선량한 시민들 괴롭히고 그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언제 조직을 떠날 생각을 했나.  -스물셋에 조직에 들어갔는데 나이 마흔이 가까워오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결심을 전한 뒤 7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정화’ 받으러 ‘학교’ 갔다 나와서 보니까 제가 조금 늦게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4년에서 4년반 정도. 솔직히 어렸을 때 하다보니까 (조직 활동)하게 된 것인데 보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쪽에서,  제가 하다 보니까 변화가 필요했는데 전 마침 운동이라도 쪼끔씩 해오고 있었고, 변화하려고 하는, 변화되는….  안 그랬으믄 전 지금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냥 발만 담그고 있었을 겁니다.    ▶ 조직 떠나는데 교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둘째 형이 발에 난 동티를 기도로 치유하겠다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함께 했습니다. 기도가 정말 통하는 걸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어느날 기도를 하다 방언을 하면서 눈물 범벅으로 살아온 인생을 고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하느님 말씀에 따르게 됐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편이에요. 중고교 시절부터 폭행죄로 입건된 건만 17번이었습니다. 조직 문제로 ‘학교’에 갔을 때 자꾸 쓸데없이 건드리는 잡범들이 있어서 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징벌방을 7~8번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1년반 형기를 살면서 성경을 7번 통독했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대보라.  -편치 드렁크, 오랜 동안 주먹으로 뇌에 충격이 전해지면 깜빡깜빡 잊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저도 있는지 얘기한 뒤 5분만 지나면 까먹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로드 FC 대회에서 승리한 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아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편하고 좋은 면도 있습디다.    ▶ 체육관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꿈은.  -기술도, 배운 것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으니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1년쯤 프로 생활 더 하다 은퇴한 뒤 체육관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 생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집 근처 아는 형의 카센터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니다. 격투기하는 친구들은 오랜 시간 직장에 붙들어 매어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보통 하루 두 번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주위에서도 쪼끔씩 도와주시지요.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때문에 새벽 기도 가고 새벽 배드민턴 운동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공개구혼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핫!  내게 격투기는 마지막 불꽃같은 열정이고요. 솔직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까 그래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고.    ▶ ‘조폭 파이터’란 별칭에 불편해 하던데.  -처음에 전직 조폭, 그래서 제가 뜬 건 사실이니까 불편할 일이 아닙니다. 근데 딴 사람들 댓글 보면 전직 조폭 자랑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신 분들이 있더라. 지금 교회에서도 집사도 하고 있고 장가도 가야 하고 그런데 그걸 좋아서 내세운 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폭 파이터는 창피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투혼의 파이터로 불러주셨으면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족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나이 마흔에 여러 모로 힘들지 않나.  -젊은 친구들 힘을 못 따라갑니다. 맷집도 약해지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턱이 약해진다고 하더라. 동영상 등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데도 취약할 수밖에요. 먹고 사는 걱정까지,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용기를 얻은 40대가 체육관에 나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끔 보면 ‘여유 있을 때 하지 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이나 여건 때문에 못 하시는 분들을 대신해 뛰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서 그분들 스트레스 날려드리고 격투기 중흥하게 하고 발전에 도움 됐으면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영상·설치·조각 버무려진 난민 같은 인생

    영상·설치·조각 버무려진 난민 같은 인생

    “사회가, 국가가 개인을 위해 해주는 것이 뭐가 있죠? 개인들은 별 도리 없잖아요. 유랑하는 수밖에. 어쩌면 우리가 등산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요. 우리의 삶이 난민 같아서는 아닌지. 그걸 한번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말주변이 없어 글보다 미술 쪽을 택했다는 김상돈(38) 작가는 단문형 문장으로 말을 이었다. 그가 내놓은 작품은 ‘솔베이지의 노래’.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연극 ‘페르 귄트’에다 에드바르드 그리그가 곡을 붙인 노래 가운데 한 곡이다. 온 세상을 모험한 페르 귄트가 마침내 늙어 고향으로 되돌아와 자신을 묵묵히 기다렸던 연인 솔베이지의 무릎에서 숨을 거둔다는 얘기다. 영화 ‘반지의 제왕’ 주인공이었던 호빗족을 떠올려도 되고, 소설 ‘연금술사’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를 기억해내도 좋다. 그의 작품은 영상, 설치, 사진, 조각 등이 하나의 세트다. 제일 와닿는 것은 영상이다. 보는 내내 웃음이 난다. 영상 작품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있다. 하나는 어느 동네에든 집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하나쯤 있을 것만 같은 허름하고 좁은 철물점. 주인 할아버지는 단정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기도 하고 혹여 누가 올지 내다보기도 하면서 뭔가를 꺼내든다. 그것은 톱. 톱 연주로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연주한다. 처연하게 낮은 음악을, 톱 연주 특유의 다리 떨림으로 조절하는 모양새가 특이하다. “부산 철물점 아저씨인데요, 재밌는 건 부산에서는 철물점 연합 소속 아저씨들은 누구나 톱 연주를 배운다고 해요. 그 가운데 한 분에게 연주를 부탁드렸지요.” 이야기의 한 축이 연출이라면, 다른 한 축은 북한산을 다니는 사람들을 찍은 다큐다. 집이 서울 은평구 불광동이어서 비교적 운 좋게, 쉽게 작업할 수 있었단다. 이 영상에는 오른쪽? 왼쪽? 끊임없이 방향을 확인해 가며 걷는 사람들, 돗자리 펴 놓고 막걸리 마시며 수다 떠는 사람들처럼 흔한 등산로 풍경이 담겨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그 와중에 길다란 막대기 하나 짚고 유유히 돌아다니는 웬 괴총각. 영상만 보고서는 작가 본인인 줄 알았다. “전혀 아니에요. 우연히 찍힌 사람인데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썼습니다.” 말 그대로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딱 맞아떨어지는 행동을 한다. “저도 저 분이 제 작품을 도와주기 위해 나타난 요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낡고 오래된 것을 보듬을 줄 모른 채, 그저 새롭고 좋은 것만 찾아 떠돌아다니는 난민. 부산의 한 철물점에서 울려 퍼지는 솔베이지의 노래는, 그래서 이제 정착할 곳을 찾으라, 마음 둘 곳을 찾으라는 작가의 노래로 새롭게 태어난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2011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후보작으로 출품된 작품이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메종에르메스 3층 아틀리에에르메스에서 열린다. 미술상 최종 수상자는 9월 22일 결정된다. (02)544-772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 살인자를 가리키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 살인자를 가리키다

    2006년 10월 11일 오후 3시 인천 강화도의 한 선착장. 주변을 거닐던 관광객이 바다 쪽 석축에 걸린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일반적인 바다 쓰레기 같지는 않은데….”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잘린 사람 손이었다. 바다를 떠돌다 뭍을 만나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이었을까, 조류에 떠밀려 온 가련한 시신 조각은 축대에 기대어 제발 자기를 봐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40대 중반 여성… 남편 그리고 내연남 상식적인 얘기지만 바다나 강에서 발견된 시신은 육지에서 나온 것보다 신원을 파악하기가 훨씬 어렵다. 가장 보편적 방법인 지문감식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물속에서 붇거나 부패하는 과정에서 형체가 훼손되기 때문이다.경찰은 망자의 손을 수습해 아이스박스에 넣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우선 규명해야 할 것은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부. 손목 절단이 흉기 등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토막 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시신이 온전한 상태로 떠돌다 선박 스크루 등에 의해 절단된 것이라면 타살 외에 자살이나 사고사일 수 있다. 부검 결과, 타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국과수는 “손목 절단면의 전반적인 모양새가 칼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한 일로 보이며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망자는 누구인가. 물속에서 부패한 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익사체나 부패가 진행 중인 시신은 주사기로 시신의 손에 실리콘을 주입해 지문을 떠 내지만 이 시신은 훼손 정도가 심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조사반은 고온처리법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물로 피부를 팽창시켜 숨어 있던 지문을 도드라지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이 기술은 한국의 지문감식 수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실제로 이 방법은 2004년 동남아 지진해일 참사 때 큰 위력을 발휘했다. 9일 만에 경찰은 지문 채취에 성공했다. 중지에서는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이, 약지에서는 말굽모양의 제상문(蹄狀紋)이 확인됐다. 피해자는 당시 44세의 여성 A씨였다. 약 1개월 전 남편 K(당시 47세)씨에 의해 가출 신고가 돼 있었다. 인테리어업을 하는 K씨는 “아내가 9월 15일 직장에 출근한 후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내연남과 살기 위해 집을 나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A씨의 통화 기록을 조회하자 실제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A씨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미 이혼해 있는 상태였다. 남편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가 더해졌다. 경찰은 내연남에 대한 집중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는 분명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었다. 의심할 만한 대목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수사의 초점은 다시 남편을 향했다. ●아내와의 엽기적인 마지막 눈인사 “그놈과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죠. 걱정도 안 돼요.” 남편 K씨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는 부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경찰은 우선 K씨의 아파트 폐쇄회로(CC)TV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출 이후 거의 500시간에 육박하는 녹화분을 샅샅이 뒤졌다. 지루한 녹화 화면과의 전쟁. 전체 분량을 절반쯤 확인했을 때 화면에 남편 K씨와 아내 A씨의 모습이 등장했다. 10월 2일 오전 10시 10분. 그들이 살던 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남편 K씨 진술대로라면 가출 신고 후 부인과 만나는 일은 없었어야 하는 거 아냐? 아무래도 K씨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경찰들은 이쯤에서 용의자가 누구인지 80% 정도 확신하게 됐다. 다시 몇 시간 정도 녹화분을 더 돌리자 등에 뭔가를 짊어지고 혼자 내려오는 남편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큰 이불 보따리였다. 남편은 그걸 자기 승합차에 실었다. 얼마 후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아내의 핸드백을 갖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포착됐다. 나머지 녹화분에서는 어디에도 부인 A씨가 집을 나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남편의 통화 내역을 확인한 결과 범행 이틀 뒤인 4일 남편은 경기 김포 등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김포는 시신의 손목이 발견된 강화도와 가까운 곳이다. 경찰은 그가 아내를 살해하고 이틀 뒤 시신을 버린 것으로 판단하고 남편을 체포했다. 처음에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던 K씨는 계속된 추궁과 증거 제시에 결국 모든 것을 실토했다. 바람난 아내와 이혼을 협의하다 홧김에 목 졸라 살해했고 인테리어 가게에서 쓰는 톱과 칼로 집 화장실에서 시신을 토막 낸 뒤 강화대교 밑 바다와 김포대교 밑 강물에 버렸다고 했다. 그는 가출해 내연남과 보름 이상 여행을 떠난 뒤 스스럼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경찰은 나머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K씨가 죽은 아내의 머리를 자기 인테리어 가게 지하 보일러실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발견했을 때 A씨의 눈은 청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아내가 눈을 뜨고 죽었는데 그 눈과 마주치는 것이 너무 무섭더군요.” 불행한 부부의 마지막 눈 맞춤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손,살인자를 가리키다

    2006년 10월 11일 오후 3시 인천 강화도의 한 선착장. 주변을 거닐던 관광객이 바다쪽 석축에 걸린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일반적인 바다 쓰레기 같지는 않은데?.”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잘려진 사람의 손이었다. 바다를 떠돌다 뭍을 만나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이었을까, 조류에 떠밀려온 가련한 조각 시신은 축대에 기대어 제발 자기를 보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 40대 중반 여성?남편 그리고 내연남 상식적인 얘기지만 바다나 강에서 발견된 시신은 신원을 파악하기가 육지에서 나온 시신보다 훨씬 어렵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지문감식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물 속에서 불거나 부패하는 과정에서 형체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경찰은 망자의 손을 수습해 아이스박스에 넣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우선 규명해야 할 것은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부. 손목 절단이 흉기 등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토막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시신이 온전한 상태로 떠돌다 선박 스크루 등에 의한 절단된 것이라면 타살 외에 자살이나 사고사일 수 있다. 부검 결과, 타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국과원은 “손목 절단면의 전반적인 모양새가 칼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능숙하게 한 일로 보이며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망자는 누구인가. 물 속에서 부패된 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익사체나 부패가 진행 중인 사체는 주사기로 시신의 손에 실리콘을 주입해 지문을 떠내지만 이 경우는 훼손 정도가 심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조사반은 고온처리법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물을 통해 피부를 팽창시켜 숨어 있던 지문을 도드라지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이 기술은 한국의 지문감식 수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실제로 이 방법은 2004년 동남아 지진해일 참사 때 큰 위력을 발휘했다. 9일 만에 경찰은 지문 채취에 성공했다. 중지에서는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이, 약지에서는 말굽모양의 제상문(蹄狀紋)이 확인됐다. 피해자는 당시 44세의 여성 A씨였다. 약 1개월 전 남편 K(당시 47세)씨에 의해 가출 신고가 돼 있었다. 인테리어업을 하는 K씨는 “아내가 9월 15일 직장에 출근한 후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내연남과 살기 위해 집을 나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A씨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자 실제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A씨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미 이혼해 있는 상태였다. 남편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가 더해졌다. 경찰은 내연남에 대한 집중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는 분명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었다. 의심할만한 대목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수사의 초점은 다시 남편을 향했다.   ■ 아내와의 엽기적인 마지막 눈인사 “그놈과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죠. 걱정도 안 돼요.” 남편 K씨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는 부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경찰은 우선 K씨의 아파트 CCTV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가출 이후 거의 500시간에 육박하는 녹화분을 샅샅이 뒤졌다. 지루한 녹화화면과의 전쟁. 전체 분량을 절반쯤 확인했을 때 화면에 남편 K씨와 아내 A씨의 모습이 등장했다. 10월 2일 오전 10시 10분. 그들이 살던 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남편 K씨 진술대로라면 가출신고 후 부인과는 만나는 난 일은 없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아무래도 K씨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경찰들은 이쯤에서 용의자가 누구인지 80%쯤 확신하게 됐다. 다시 몇시간 정도 녹화분을 더 돌리자 등에 뭔가를 짊어지고 혼자서 내려오는 남편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큰 이불보따리였다. 남편은 그걸 자기 승합차에 실었다. 얼마 후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아내의 핸드백을 갖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포착됐다. 나머지 녹화분에서는 어디에도 부인 A씨가 집을 나오는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남편의 통화내역을 확인한 결과 범행 이틀 뒤인 4일 남편은 경기도 김포 등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김포는 시신의 손목이 발견된 강화도와 가까운 곳이었다. 경찰은 그가 아내를 살해하고 이틀 뒤 시신을 버린 것으로 판단한고 남편을 체포했다. 처음에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던 K씨는 계속된 추궁과 증거 제시에 결국 모든 것을 실토했다. 바람 난 아내와 이혼을 협의하다 홧김에 목졸라 살해했고 인테리어 가게에서 쓰는 톱과 칼로 집 화장실에서 시신을 토막 낸 뒤 강화대교 밑 바다와 김포대교 밑 강물에 버렸다고 했다. 그는 가출해 내연남과 보름 이상 여행을 떠난 뒤 스스럼 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가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경찰은 나머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K씨가 죽은 아내의 머리를 자기 인테리어점 지하 보일러실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발견했을 때 A씨의 눈은 청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아내가 눈을 뜨고 죽었는데 그 눈과 마주치는 것이 너무 무섭더군요.” 불행한 부부의 마지막 눈맞춤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 “아버지처럼 고국에 공헌하는 한국인 되고 싶어”

    “아버지처럼 고국에 공헌하는 한국인 되고 싶어”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아버지의 유언은 어머니와 형을 통해 선우광협(45)씨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중국에서 태어나 두살이 되기 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중국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도 마음 속에는 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누리는 안정적인 삶과 한국에서 새로 꾸려가야 할 삶을 두고 끝없는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선우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진짜 한국인이 되기로 하고 이를 실행했다. ●두살이 되기전에 부친 돌아가셔 11일 국적 증서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선우씨는 들떠 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해 충칭(重慶) 남안구 구당부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던 독립유공자 선우완(1924~68) 선생의 막내 아들이다. 선우완 선생은 한국 광복군 제1지구대에서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지난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날 법무부에서 국적 증서를 받은 독립유공자 후손 13명 중 직계 아들은 선우씨가 유일하다. 선우씨의 딸 민(6)양과 함께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선우씨는 중국 선양에서 제법 잘나가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에서 근무하다 2004년 화장품 회사 ‘F2F’를 차렸고, 현재는 직원 120명을 거느린 견실한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 화장품 원자재를 수입, 중국에서 재가공해 출시하고 있다. 형과 누나도 중국 고위직 공무원과 교사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뒤 가족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 국적 취득 문제였다.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삶의 기반이 없는 현실이 문제였다. 게다가 선우씨의 아들(16)과 딸은 한국말을 못한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도 한국인으로 살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가족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아내의 걱정이 컸지만 결국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제 마음을 받아줬죠.” 중국에서 어렵게 일궈 놓은 안락한 삶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뭘까. 선우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잖아요. 아버지의 뿌리인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 한시도 제 머리를 떠난 적이 없어요. 저도 아버지처럼 한국에 공헌하는 한국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형과 누나, 아내와 아들도 조만간 귀화를 신청할 계획이다. 해방 후 고향인 평북 태천군으로 돌아갔던 선우완 선생은 좌우 대립에 실망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뒤 문화대혁명 와중에 옥고를 치르다 병을 얻어 1968년 작고했다. 일곱 식구는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렸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렸다. 4남매가 장성해 자리를 잡았지만 항상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참담한 가난을 이겨냈지만 고국에 대한 미련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독립유공자 후손 13명 특별귀화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선우씨는 요즘 귀국 준비에 바쁘다. 딸이 다닐 학교도 알아봤고, 다음주에는 아들과 고국 곳곳을 여행할 계획이다. “화장품 브랜드를 한국에서도 론칭할 계획입니다. 중국과 한국을 잇는 무역 외교사절이 되고 싶습니다.” 한편 법무부는 이날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대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 선우씨 등 13명에게 특별귀화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국적증서 수여식은 2006년 이후 6번째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희망의 원두’ 향기 솔솔… 사람에 대한 두려움 훌훌

    ‘희망의 원두’ 향기 솔솔… 사람에 대한 두려움 훌훌

    지난 6월 경기 수원시 장안구보건소의 1층 로비에 요즘 유행하는 커피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두 명이 들어서면 딱 맞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것만 제외하면 다른 커피전문점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점포 안에 가격표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맛있게 드시고 기부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수원 장안구보건소 ‘기부하는 커피전문점’ 이곳은 장안구보건소가 정신장애인들을 고용하기 위해 기부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커피전문점이다. 공익사업인 데다 아직 시범사업 성격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서 일하는 정광영(42)씨는 정신장애인이다. 지적장애인이 선천적인 장애인이라면,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해력이나 순발력이 비장애인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데 제한이 있다. 커피전문점의 종업원 역시 이들에게는 생소한 직업이었고,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였다. 정씨는 그동안 취업이 되더라도 단순노무직이나 전단지 배포 등 제한된 일을 했었다. 그마저도 사회적인 편견에 막혀 오래 할 수 없었다. ●단순노무직·전단지 배포 등 일자리 제한 그런 정씨가 바리스타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부터다.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커피전문점이 생긴다고 해서 2주간의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처음에는 비장애인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정씨였다. 하지만 1주일 정도 지나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 시민들과 어울리면서 정씨는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웠고, 이로 인해 사회진출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자연스레 병세도 좋아졌다. 이제 정씨는 “커피 만드는 기술을 빨리 배워서 작은 가게라도 내는 게 삶의 희망이자 소원”이라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정씨와 함께 일하는 김정호(33)씨 역시 정신장애인이다. 김씨는 “손님 3명 이상이 몰려들 때가 가장 힘들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사회적응을 할 수 있어 좋다.”며 새로운 직업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여간 기쁜 일이 아니란다. 이들은 하루 4~5시간 정도 일한다. 비장애인에 비해 쉽게 피로를 느끼고, 집중력이 떨어져 오래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정씨와 김씨가 벌어들이는 월수입은 각 50만원,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커피전문점 주인을 꿈꿀 수 있다는데 보람과 희망을 느끼고 있다. 정씨와 김씨는 “무엇보다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앞치마를 둘렀다. ●집중력 쉽게 떨어져 하루 4~5시간 일해 손님들이 커피값 대신 낸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이곳의 지난달 매출은 703만원, 한달 동안 4411명이 다녀갔다. 남희숙 보건소 팀장은 “시민들은 싼값에 커피를 마시면서 기부를 할 수 있어 좋고, 정신장애인들은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가 늘어나서 좋다.”며 “장애인고용 카페는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장애인의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CEO 칼럼] 기본이 충실한 사회에 희망 있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

    [CEO 칼럼] 기본이 충실한 사회에 희망 있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

    대한지적공사가 지적 측량과 컨설팅을 하고 있는 자메이카에 다녀왔다. 인구 300만명이 채 안 되는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가 자랑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우사인 볼트, 블루 마운틴 커피, 레게음악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총알 탄 사나이’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우사인 볼트가 이 셋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그의 유명세는 그 나라 국가지도자를 능가한다.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자 꽃이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로 꼽힌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역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206개국 총 3850명이 예비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모름지기 이런 스포츠 행사가 성공하려면 개최국 시민들의 관심과 열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회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좀처럼 ‘흥행’이 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절반가량은 개최 사실조차 모르고, 경기장 입장권 예매율이 80%를 넘어섰다지만 예매가 실제 관람으로 이어질지 걱정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와 비교되고, 경기장마다 구름 관중이 몰리는 프로야구경기와도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수해라든가 미국의 ‘더블딥’(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 우려 등 악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무관심의 근본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기본종목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단 스포츠 분야뿐만이 아니다. 대학에서도 기본종목이라 할 수 있는 기초학문은 홀대를 받고 있다. 법대·의대 편중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고, 전공에 관계없이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열중한다. 직장에서도 착실한 기본기보다는 화려한 개인기(다양한 스펙)를 선호한다.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덕목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다. 약자와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인간의 나약함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따뜻함이 있어 팍팍한 세상을 살맛 나게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할 일은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을 하는 용기가 모이면 공동체와 구성원 각자의 품격이 된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경제적인 성취에 비해 우리 사회의 삶의 질, 행복에 관한 성적표는 참으로 초라하다. 기본이 되는 질서와 덕목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모두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다. 대중식당이나 지하철에서 아이들이 소리치고 뛰어다녀도 부모가 말리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로 목청껏 떠들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심 상가 도로는 주차장인지 도로인지 모를 정도로 2중, 3중 주차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다. 복잡한 도시는 물론이고 한적한 시골마저도 내가 가장 편한 곳에 주차하면 그만이다. 작은 접촉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서로 ‘네 탓’이라고 목소리부터 높인다. 웃기는 것은, 나는 마음대로 하면서 남이 하면 엄청 욕한다. 즉,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다. 기본을 튼튼히 해야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기본을 소홀히 하는 사회는 응집력도 떨어진다.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지위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없다. 기본이 살아 있어야 희망과 미래가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기본이 바로 경쟁력이 되고 지속가능한 성공·발전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위치에 올라선 것도 기본을 쌓아 노력한 덕분이라고 본다.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제조업을 육성하며, 정보기술(IT)을 발전시켜 경제강국이 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 모두, 멀리하고 있던 기본종목들을 다시 한 번 챙겨볼 시간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을 기원한다.
  • [고시 Q&A] 신용불량자 공무원 응시 가능

    Q:신용불량자인데요. 저도 공무원이 될 수 있나요? 될 수 있다면 면접시험에서 불이익이 있는 건 아닌가요?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A:공무원 임용의 결격사유는 국가공무원법 제33조에서 정한 경우로 한정돼 있습니다.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자,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하고 5년이 지나지 않은 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벌금형을 받은 자, 구류, 기소유예, 군복무 중 영창 등도 임용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공무원 응시결격사유 판단은 최종합격자 발표 이후 실제 임용부처에서 확인합니다. 따라서 면접시험 전에 수험생 개개인의 과거사실을 조사하는 일은 없습니다. 또 그 사실을 면접위원에게 제공하는 일 또한 없으므로 면접시험에서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공무원 임용 시험이나 국가기관이 시행하는 각종 자격 시험에 대해 궁금한 내용을 이메일(ky0295@seoul.co.kr)로 보내 주시면 매주 목요일 자 ‘고시&취업’ 면에 답변을 게재하겠습니다.
  • [문화마당] 19금(禁) 대중가요 심의/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19금(禁) 대중가요 심의/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며칠 전, 인기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노래 ‘비가 오는 날엔’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았다. 지난 5월 초순 비스트 1집 음반에 수록된 노래였다. 발표된 지 두달여나 지나서 이같은 판정을 받았다. 판정 이유가 재밌다. 노랫말 중 ‘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라는 부분이 음주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노래는 청소년 유해물인데도 불구하고 두달여 동안 단속하지 않고 방치된 셈이다. 판정 결과도 짚어 볼 문제지만 유해물 단속의 명분도 없어 보인다. 인디그룹 십센치(10cm)의 곡 ‘그게 아니고’도 마찬가지 사례다. 노래 가사에 ‘감기약’이 나왔다는 이유로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다. 한 영화감독은 “한국에선 한복을 입으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고, 감기약을 먹으면 약물중독자로 의심을 받는다.”며 판정 결과를 납득하지 못했다. 또 한 여배우는 트위터를 통해 “청소년들, 약국 가서 감기약 사먹는 건 괜찮고 ‘감기약’이 들어간 노래는 들으면 안 되는 건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됐건 이 노래를 포함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된 다수의 곡들은 오후 10시 이전 보도용 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해당 표현을 삭제한 상태에서만 전파를 탈 수 있게 됐다. 음반 및 음원에도 청소년 구입 금지 스티커를 부착해야만 판매가 가능해졌다. 이를 어겼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이른바 ‘19세 이하 금지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가 된 가사를 바꿔 다시 녹음해야 한다. 물론 콘서트에서도 가사를 바꿔 불러야 법적인 제재를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제재를 피하겠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바꾼 억지 가사는 전후 내용이 맞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바뀐 부분이 지나치게 도드라지게 된다. 당연히 곡을 만든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앞에 허탈감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판정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까닭은 그 기준에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랫말에 술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유해매체 판정을 내리는 것은 노래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단어에만 얽매여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가요의 홍보 주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기도 하다. 발표와 동시에 히트 여부가 판가름나는 가요계의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심의가 방송사 심의보다 두달여나 늦게 발표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불신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 이미 방송을 통해 히트곡이 된 노래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판정하는 촌극이 실소를 머금게 하고 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면, 과연 가요 심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일선 매체에 있는 음악프로듀서들의 음악 선곡 역량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곡들을 필터링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들의 눈높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술이나 담배 같은 위해 단어가 노래에 들어가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창작자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듣고 청소년들이 담배를 사서 피우고,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듣고 술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기우는 코미디 같은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간 우리 사회는 대중문화를 대하는 여유를 가르치지 않았다. 노래를 노래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 어떤 형태로든 재단하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의 사전검열 아래서도 우리 가요는 풀처럼 일어서서 대중의 가슴으로 전해져 왔고 또 오늘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세월을 견디는 노래는 검열과 심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창작의 자유와 고통 속에서 태어나 대중이 키워나가는 것이다. 밟아도 밟아도 일어서는 풀처럼.
  • 고철로 팔아먹은 150억 하수처리시설

    150억원을 들여 14년 전 건립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하수처리장 시설이 한 차례도 사용되지 못한 채 고철로 남아 논란이 일고 있다. 성남시는 3일 구미동 하수처리장의 기계 및 전기 설비를 지난해 9월 1억 3220만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최초 설치 비용만 44억원이었지만 고철값만 받게 된 것이다. 구미동 하수처리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997년 2월 150억원을 들여 건설했으나 인근 주민들이 이를 혐오 시설로 인식해 반발하면서 운영이 중지됐다. 당초 구미동 하수처리장은 LH가 인근 용인시 수지지구를 개발하면서 수지지구에서 발생하는 하수를 처리할 목적으로 건립했으나 시험가동에 들어가자 인근 구미동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성남시는 구미동 하수처리장을 가동하지 않는 대신 용인시 수지·구성지구 하수를 성남 하수처리장을 증설해 처리하고 부지와 시설을 성남시에 넘기기로 했다. 소유권과 인수 가격을 두고 용인시와 성남시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성남시가 하수처리장 토지감정가의 50%인 96억원를 용인시에 지급하는 것으로 인수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하수처리장 운영과 처리 방안 등에 20억원의 유지 관리비가 추가로 투입돼 전체적으로 용인시와 LH, 성남시 등이 모두 17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셈이다. 현재 성남시는 하수처리장 구조물을 모두 철거하고, 부지 2만 9041㎡에 학교와 공원, 도로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그러나 학교 설립에 참여하는 학교법인이 없는 등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성남시는 학교 유치나 설립이 어려울 경우 2013년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해 다른 용도로 매각하거나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주민 반대로 준공 후 철거되는 첫 환경기반시설이라는 나쁜 사례를 남기게 됐다.”며 “앞으로 환경기반시설을 조성할 때는 사전에 주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주택 분양 때 이를 공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정주영·이어령 세례… 정용진·봉중근 주례

    고(故)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는 유명인사들과의 ‘인연’이 많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숨을 거두기 직전 세례를 해준 이가 고인이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외치며 돌연 신자가 돼 나타났을 때도 2007년 7월 하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뒤였다. 이 전 장관은 2일 빈소를 찾아 “목사님은 돌아가셨지만 한 알의 밀알처럼 많은 생명을 살리셨다.”면서 “저도 그중 하나”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슬럼프에 빠진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에게 힘을 준 일화도 유명하다. 훗날 박 선수는 “인생 마무리를 잘해야 하듯 야구인생도 끝마무리를 잘한다는 심정으로 공을 던지라.”는 하 목사의 조언을 듣고 다시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 고인의 주례사를 들으며 결혼한 인사들도 많다. 지난 5월 재혼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봉중근 프로야구 선수가 그 예다. 결혼식 주례는 서지 않았지만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와도 절친했다. 고인과 각별했던 연예인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조의를 표시했다. 배우 한혜진씨는 “그 사랑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썼고, 작곡가 주영훈씨는 “마지막까지 설교하다가 떠나시고 싶다더니 주일 설교를 마치고 가셨네요. 벌써부터 그립습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보민 “저 몸무게 44.5kg인데” 악플 대처 글 (전문)

    김보민 “저 몸무게 44.5kg인데” 악플 대처 글 (전문)

    김보민 아나운서의 몸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비난 악플에 김 아나운서의 대처 방법이 칭찬을 받았다. 3일 김보민 KBS 아나운서 트위터에 오른 악플은 ‘동네아줌마, 상체비만 하체비만, 방송이 장난인가’ 등을 운운하는 인신공격성 악플이다. 그러나 김보민 아나운서는 악플에 대해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김보민 비난 악플과 대처 글 전문. <김보민 악플 글> 무슨 동네아줌마가 마실나온 것도 아니고.살도 좀 빼세요. 요즘 방송보면 상체비만 하체비만 장난 아니던데 방송이 장난인가요? 가뜩이나 이미지도 안좋으신데 나아지긴커녕 갈수록 비디오적으로도 오디오적으로도 모두 엉망이 돼가면 어쩌자는건지.. <김보민 악플 의연대처 글> 저 44.5킬로그램입니다. 아나운서 공채 29기에 올해로 9년차구요, 결혼 5년차에 4살 아들 하나 있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못 생기고 살쪄서 전 어쩌죠? 더 노력하겠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제 노력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어서요. 이런 절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관심에 미소로 지나치면 되는데 오늘 아침에 이 멘션을 보며~ 예쁘고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저랍니다. 마음으로 예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전혀 성형하지 않아도~눈이 동양적이라도~완벽하지않아 빈틈이 보여 마음에 들 지 않으셔도~~계속보다보면 정 드실 거예요. 자꾸보면 정드는 얼굴이랍니다~하루 잘 보내세요^^ 트위터보니~ 제게 글만 쓰셨더라구요.혹시 제가 드린 답변에 맘 상하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저도 아나운서지만 한 사람의 아내이기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보니~ 맘이~ 좀~ 스포츠 타임 사랑하시는 애청자 분이셔서 전 고맙습니다.응원 많이 해주세요. 사진 = 김보민 트위터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한류 확산 못 따라가는 외국의 한국학 실태

    [이제는 공공외교다] 한류 확산 못 따라가는 외국의 한국학 실태

    세계 무대에서 한류가 확산되고 한국 기업이 약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학문적 뒷받침이 없으면 한순간의 유행에 그치기 쉽다. 중국과 일본은 유럽에서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에서만 중국어와 일본어 과정 지원자가 해마다 200명이 넘는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은 정규 관리 인력을 50명이나 고용해 동아시아학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외교가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직접 얻는 외교라고 한다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학술 교류, 특히 해외에서의 한국학 발전은 공공외교의 밑돌 다지기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1994년 개설한 ‘한국학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도 늘 ‘퇴출 대상 1순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가교 역할을 한 덕에 이 대학의 중국학 및 일본학 전공자들은 “한국사는 동북아 역사에서 마지막 퍼즐 조각 같아서 한반도 역사를 배워야 이 지역 역사 학습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대학은 2000년대 중반 재정난을 겪자 2007년부터 과정을 폐지하기로 했다. 한국학 과정은 1875년 설립된 중국학 과정이나 1960년 문을 연 일본학 과정에 비해 역사가 턱없이 짧은 데다 담당 교수도 2명뿐이어서 대학 운영자들은 문을 닫아도 큰 혼란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한국 기관 등이 급히 지원금을 보내와 가까스로 문 닫을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영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폐쇄 위기를 겪는 한국학 과정이 많다.”고 전했다. 셰필드대 역시 2009년 한국학 전공자인 제임스 그레이슨 교수가 퇴임하면서 한국학 과정이 덩달아 없어질 뻔했다. 우리 정부에 따르면 해외의 한국학 과정은 가파른 확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현장 상황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개국 69개 대학에 한국학 관련 교수 100명이 재직 중이고 한국학 강좌 수강생은 연간 90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의 위상은 불안하다. 왜일까. 현장에서는 “한국학 프로그램 운영과 학술 연구 등에 쓸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탓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 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 소장은 “예컨대 중국은 세계적 중요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내 투자자나 기관으로부터 손쉽게 연구 자금을 모을 수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지원금을 모으기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전문가 육성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지원자가 부족해 한국학 과정이 폐지되고, 이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마땅찮은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는 2000년 한국어 학사과정을 개설했지만 그해 지원자가 2명에 그쳤다. 2002년 다시 학생을 선발했지만 역시 지원자는 2명뿐이었다. 2004년에 10명이 지원했지만 결국 이들이 한국어 과정을 수료한 2006년 이후로는 새로운 학생을 뽑지 않고 한국어과정 자체를 없애버렸다. 반면 중국어와 일본어 과정 지원자는 한 해에 2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대학 박노자 동방언어·문화연구과 교수는 “한국어를 신청하는 학생이 있으면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보내지만 그마저도 연간 한두 명에 그친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육 기관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해외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그 대상에 따라 외국인은 세종학당(16개국 28곳), 재외동포는 한국학교(30곳)·한글학교(1885곳)·한국교육원(39곳)이 맡는다. 하지만 소관 부서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외동포재단으로 이원화돼 있다 보니 일관성 있는 사업이 이뤄지기 힘들다.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재외동포도 많아 재외동포와 외국인으로 대상을 나눈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최근 국제교류재단 주최로 서울에서 간담회를 가진 해외 한국학자들은 한국학 발전을 위한 예산 지원 강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예산 집행이나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학 사업의 속사정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국내 기관들이 성과 위주로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도 제대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려면 ‘묻지 마 지원’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하이델베르크·워싱턴 강국진 유대근기자 betulo@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일본 원자력 산업의 복합구조/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일본 원자력 산업의 복합구조/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가 탈(脫) 원자력 발전을 표명했다. 일본 유명 배우 스가와라 분타는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이 원전반대 동맹을 결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나는 찬성한다. 그러나 일본의 대부분 연예인은 원자력 발전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 연예계, 특히 TV 방송계는 전력회사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연예인은 연예계에서 곤경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TV에 출연하는 유명인의 발언은 영향력이 커서 연예인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가 정치가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연예계의 불문율을 지키지 않고 “원전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해서 소속사에서 퇴출당하면서까지 원전 반대 데모에 참가하는 연예인이 있다. 야마모토 다로라고 하는 배우인데, 이처럼 정의감이 강한 연예인은 드물다. 그는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일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을 못하면 부디 한국 연예계에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정치계에서도 “원전 반대”를 주장하면 곤경에 처해지는 것 같다. 일본 정치계의 정점에 있는 간 나오토 총리는 시즈오카현 하마오카 원자력 발전의 정지를 요청해서 게이단렌(한국의 전경련에 해당)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에서 퇴진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이 사후약방문 격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하마오카 원전을 정지한 것이나 후쿠시마현 초등·중학교에서 방사선량의 연간 허용 한도를 변경한 점 등을 헤아려 보면, 현재 일본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총리는 최근에 향후 일본의 에너지 정책으로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라는 방침을 밝혔다. 언론 각사의 앙케트 결과를 보면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탈원전을 기대하고 있다. 총리는 대다수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그러한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매스컴, 특히 TV는 총리의 이러한 노선을 평가하는 목소리보다 총리 퇴진을 재촉하는 쪽으로 의견으로 몰아가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이나 공명당뿐만 아니라, 총리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총리의 퇴진을 겨냥해서 그의 서툰 언행을 일일이 들먹여 비판하고 있다. 한편, 최근 전력회사의 소위 ‘야라세’(사전공모) 실태가 폭로되고 있는데, 매스컴에서도 ‘야라세’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거리 인터뷰는 총리의 조기퇴진을 바라는 시민의 모습을 방영한다. 총리 퇴진으로 몰아가려는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상당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인터뷰 모습은 TV에 그다지 노출되지 않고 있다. 특히 TV에서 ‘야라세’가 일상적으로 행해져 국민들을 세뇌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위성방송으로 해외에서도 시청가능한 NHK의 9시뉴스를 들어 보아도 이러한 ‘야라세 현상’이 엿보인다. 이번 휴가 때 일본에 다녀왔다. 그곳 일본인에게서 “최근 총리의 원전 반대 발언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텐데, 매스컴에서는 왜 그러한 의견을 별로 취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정치계에서 고립당하면서까지 국민여론에 귀기울여 국민을 대변하는 총리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다. 총리의 행동은 일본에서는 지극히 드문 일이지만, 한국으로 말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대정치가다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총리는 암살조차도 각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정치계와 경제계의 보수파와 그들의 광고탑인 대기업 매스컴 각사와 대립하면서까지 일본국민 편에 서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살’ 같은 극단적인 단어는 시대착오적인 표현이지만, 원자력 산업의 암흑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본 원자력 산업의 중추에는 여전히 일제(日帝)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지금 현재 일본에서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간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은 손정의씨뿐일까?
  •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역경을 극복한 이미지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능력 있으니까’ 이렇게 합당한 평가가 내려졌으면 해요. 저도 그걸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현관에 들어서니 키 182㎝의 훤칠한 청년이 수줍은 듯 손을 내밀었다. 기자가 다가서던 각도와 약간 틀어진 채였는데 기자 목소리를 듣고 이내 바로 잡았다. 짙은 속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라틴계 호남을 연상시키는 이창훈(26)씨는 지상파 방송 사상 처음으로 KBS에 프리랜서 앵커로 기용돼 1년간 활약하게 된다. <서울신문 7월 26일 자 29면> 지난 29일과 30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 스튜디오에 나온 이씨는 지금까지의 삶과 앵커로서의 각오 등을 특유의 중저음과 빛나는 재치로 풀어냈다. 오는 8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집에서 방송국 근처의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지하철과 도보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씨는 “어머니와 몇 번 왕복해 봤는데 평소에도 지하철 등을 이용해 왔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자택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진행된 이씨와의 일문일답. →시력을 잃은 뒤 많이 힘들었을 텐데. -태어난 지 7개월 됐을 때 시력을 부분 상실했는데 어둠과 밝음 정도만 분간할 수 있었어요.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건 없었고 무섭고 아팠을 뿐이지요.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깰 때마다 어머니를 때리고 깨물곤 했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뒷바라지해온 어머니 이상여(57)씨는 “창훈이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어 구석에 숨어 잠을 청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용케도 아이가 냄새를 맡고 찾아내 정말 힘들었다. 온 몸이 꼬집힌 자국투성이였다.”고 말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여덟살 때 시각장애인 학교가 진주에 없어 서울로 왔어요. 한빛맹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뇌수막염이 재발,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사지도 마비돼 의사들은 다시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는데 용케 이겨냈습니다. 나 혼자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티 안 내려고 애써야 했지요. 다른 아이들이 집에 가는 주말에 혼자서 기숙사 생활을 하려니 외롭고 힘들었죠. 3~4학년 때 브라스 앙상블에서 트럼펫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재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얘기해 줘 성격도 밝아졌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흥얼거리길래) 성격 참 좋은 것 같다. -늘 살아 오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느낌을 가졌어요. 그런 안정감이 제 장점입니다. 그런 분야의 책도 많이 보고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지요. →인터넷 방송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 텐데. -한국시각장애인방송(KBIC)에서 매일 밤 9~11시 방송 중 제가 한 시간을 맡고 있습니다. 노래 두 곡 들려주고 다른 동료가 장애인계 뉴스를 전하는데 전 전체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방송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함께 도전한 분들뿐만 아니라 KBIC에도 재주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좋은데 뉴스에 어울리는 목소리도 있고 예능 끼를 갖고 있는 분도 있어요. 함께하면 능력이나 기회를 공유하고 교류하며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개월 연수를 빼면 실제 활동할 시간이 짧은 것 같은데. -KBS에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공고한 뒤 절 뽑기까지 한 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거든요. 어떤 대우를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계약도 맺지 않았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대했으면 하나. -모르면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영화 ‘말아톤’ 포스터에 ‘5세 아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청년’ 이런 식이에요. 정신지체 3급이라고 정확한 정보를 주면 되는데 ‘아, 다섯 살짜리 아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유도하는 거예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열려면. -마음을 열 수는 없고 삶을 보여 줘야죠. 대학 다니면서도 ‘시각장애인이니까 이런 건 이렇게 해줘.’, ‘이런 부분은 강하고 이런 건 약하다.’ 분명히 얘기했어요.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은 절 장애인으로 의식하지도 않아요. →‘장애 극복’ 이런 식의 표현을 싫어한다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상황을 겪으면서 견뎌내는 것이죠.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 거잖아요. 벽에 들이받을 수 있는 거지요. ‘벽이 있었네.’ 하고 웃는 거지요. 시각장애인 앵커나 스포츠 캐스터, 작가, 배우가 되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안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좌우명이 있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야구판 명언이 있어요. KBS 장애인 라디오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중계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시각장애인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1년에 5~10회는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경기를 응원하러 갑니다. 응원 소리와 그라운드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도 충분히 야구를 즐길 수 있어요. 2009년 장애인의 날 전날에 KIA-LG 경기 때 시각장애인 장남석(당시 26)씨가 시구한 적이 있는데 저도 꼭 해 보고 싶습니다. →배우자 이상형은. -신앙이 있어야 하고 가치관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잘 웃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팔로어가 50명쯤 된다는 그의 트위터 계정은 @lch85 글 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박근혜 수해현장 ‘조용한 방문’

    박근혜 수해현장 ‘조용한 방문’

    “집도 절도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는데 비 피해까지 입게 되니 살아갈 일이 막막하네요.” “오갈 데가 없어 아이들을 일단 교회에 맡겼는데, 일요일이라 예배를 본다고 해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복구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딱히 맡길 곳이 없습니다.” 31일 오후 1시 30분 적잖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서울 방배동의 남태령 전원마을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조용히’ 나타났다. 우의를 입고 장화 차림에 비닐 모자를 눌러쓴 모습. 수행 인사라고는 비서실장 격인 이학재 의원과 수행 비서 1명이 전부였다.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뒤늦게 박 전 대표를 알아본 수해 주민들은 하나둘 저마다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 전 대표는 수해 복구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취재진은 물론이고 가까운 의원들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정현 의원조차 뒤늦게 현장 방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가 박 전 대표를 수행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장에 도착해서도 관계기관의 브리핑마저 고사하고, 현장에 나와 있던 공무원들에게도 자신을 수행하지 못하게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두 시간 가까이 산사태에 쓸려간 비닐하우스와 서민들이 많이 생활하는 반지하방에 들어가 피해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주민들의 고충을 들었다. 몇몇 주민들은 급작스레 닥친 불행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기도 했다는 게 수행한 이학재 의원의 전언이다. 그는 이재민들에게 “무얼 좀 드셨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며 물어본 뒤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시겠느냐.”, “빨리 복구되도록 저도 노력하겠다.”며 관심을 표했다. 이에 이재민들은 박 전 대표의 손을 잡고 “군인들이 너무 많이 도움이 된다. 일찍 철수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아이들 맡길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박 전 대표는 이어 복구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과 군 장병들에게 “피해가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격려했다. 앞서 박 전 대표는 지난 30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을 통해 “기후변화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롭게 강화된 기준으로 선제적 예방을 하지 않으면 각종 위기와 재난, 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며 “국가 재난 시스템의 기본 방향과 틀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일본통신] 이승엽과 김태균의 차이는?

    [일본통신] 이승엽과 김태균의 차이는?

    흔히 이승엽(35. 오릭스)을 가리켜 ‘국민타자’라고 부른다. 이 수식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저 ‘국민배우’, ‘국민가수’ 처럼 언론이 만들어낸 신조어의 하나 쯤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국민타자(國民打者)는 엄연히 국어사전에 등록돼 있고 사전적 의미는 ‘야구에서,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는 타자’로 명시되어 있다. 국민타자라는 별칭이 붙었던 시절 이승엽은 삼성 소속이었다. 선호 하는 팀이 제각각인 야구판에서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는 타자일리가 없었던 이승엽은 그러나 이젠 이러한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논외로 치더라도 인품 자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야구는 구기종목의 팀 스포츠지만, 결과(기록)를 남겨야 하는 관점에서 보면 개인 스포츠다. 오릭스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올리더라도 이승엽의 성적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필요가 없다. 이승엽을 응원하는 한국팬들은 오릭스 성적보다는 이승엽 개인 성적이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난 8년간 일본에서 보여준 이승엽의 발자취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특히 최근 3년동안 이승엽은 완연한 하락세 기미를 보이며 1군보다는 2군에 머문 시간이 길었던 선수다. 이승엽의 실망스런 성적에 대다수의 팬들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올때가 됐다’며 더 이상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지속하는게 의미가 없다라고까지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오릭스 팀의 주전선수로 뛰고 있으며 시즌 초반의 빈타를 뒤로 하고 최근 연일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이승엽의 인품은 야구인들이라면 최고로 손꼽는다. 겸손한 모습도 그렇지만 특히 그는 자신이 부진했을 때도 어떠한 변명을 늘어놓은 적이 거의 없었던 선수였다. 엄밀히 따져보면 요미우리 시절 부진했을때의 이승엽은 그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부풀려진 말들때문에 늘 비판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라 타츠노리 감독에 대한 기용불만은 이승엽 자신의 입으로 한말도 아니었고 그가 2군으로 추락했을 때 나왔던 온갖 추측성 기사 역시 이승엽이 내뱉은 불만도 아니었다. 언론의 관심은 인기와 정비례 한다. 이승엽에 대한 기대치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승엽은 잘못 알려진 언론기사마저도 자신이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대인배 다운 성품을 지닌 선수다. 최근 몇년간 이승엽은 시즌이 끝나면 타격폼 수정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일부에서는 이것 역시 비판의 중심이 돼 그를 폄하했지만 타격폼을 수정하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것은 명예와 절박함이 낳은 이승엽의 자존심으로 귀결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라는 명예와 이대로 끝낼 순 없다는 절박함이 곧 자신의 자존심과 같기 때문이다. 지난해 요미우리와의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만 해도 이승엽의 국내유턴을 예상했던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쉬운 길을 놔두고 더욱 어려운 길을 택하며 다시 일본야구에 뛰어들었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성공보다는 ‘실패’ 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이건 자신이 한국야구를 대표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이라 해도 무방하다. 얼마전 김태균(전 지바 롯데)은 1년반 동안의 짧은 일본생활을 정리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배우고자 하는 어떠한 귀감에 있어 김태균이 남긴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힘들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덧붙여 앞으로 일본야구 진출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후배선수들에게도 도움이 아닌 손해만 입혔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한참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이승엽의 좌우명이다. 한국나이로 이제 30살인 김태균은 지금이 전성기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만큼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일본야구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갔음에도 왜 그렇게 쉽게 포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비교하긴 싫지만 8년동안 일본에서 뛴 이승엽의 험난했던 여정이 지금에서 와서 더욱 크게 와닿고 그의 몸부림이 위대하기까지 하다.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결과론이 아닌 그 과정에서 얼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이승엽과 김태균의 차이는 딱 이것 뿐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오늘의 눈] 도움받기 힘든 외국인도움센터/백민경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도움받기 힘든 외국인도움센터/백민경 사회부 기자

    정부 청사는 불탔고, 청소년 캠프는 피바다가 됐다. ‘평화의 땅’ 노르웨이에서 최근 일어난 끔찍한 연쇄테러로 한국도 들끓었다. 외국인 근로자 100만명을 넘어선 우리나라 역시 다문화에 따른 충돌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 범죄 피해를 입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기자로서 궁금했다. 교수 한 분이 ‘외국인인권보호센터’가 있다고 귀띔했다. 2009년 경찰이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맞아 문을 연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센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경찰청에 연락했더니 ‘외국인도움센터’로 이름을 바꿔 확대 운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외국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문화지원센터나 종교단체 등에 담당자를 두고 범죄신고 및 민원접수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센터의 연락처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을 바꾼 것은 고사하고 센터에 대해 아는 외국인조차 없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니 달랑 인터넷 카페 한 곳이 나왔다. 이마저도 회원 등급 승인절차를 거쳐야만 연락처와 위치, 담당자 이메일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외국인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곳인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은 홍보가 잘 안 됐다.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프라인도 마찬가지였다. 민원종합안내센터인 서울시다산콜센터로 문의하니 되레 “그런 곳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114에 물으니 외국인종합지원센터인 서울글로벌센터로 연결해 줬다. 의아했다. 원래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범죄 상담시 경찰이 나가 직접 신고도 받는다.”는 경찰청 설명도 실상과 달랐다. 서울지역 센터에 확인한 결과, 경찰서 인력 지원이나 파견 등 경찰의 역할은 전무했다. 센터 내 가정폭력 등 민원상담 실적이 수천 건이나 된다고 자랑한 것도 외국인 지원단체 실적에 숟가락만 얹은 것이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인권’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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