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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기자가 간다] 꽃들을 시들게 하던 마이너스의 손… ‘3평의 행복’에 빠지다

    [명예기자가 간다] 꽃들을 시들게 하던 마이너스의 손… ‘3평의 행복’에 빠지다

    농림축산식품부 직원이라고 해서 농사일에 능숙한 것은 아니다. 손수 기른 싱싱한 배추며 고구마를 수확하는 달콤한 기쁨은 거저 오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꾸다 보면 ‘농사나 지어야지’, ‘귀농이나 해야겠다’는 따위의 말은 쏙 들어간다.# 수확하는 달콤한 기쁨은 거저 오지 않는다 정은주(42) 농식품부 대변인실 온라인팀장의 생생한 텃밭 실패담을 들어 보자. 정 팀장은 지난해 4월 정부세종청사 근처 도시농장에서 9.9㎡ 크기의 텃밭을 분양받았다. 작은 화분도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인 정 팀장은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2m 가까이 자라는 옥수수를 심기엔 땅이 너무 좁다는 전문가의 충고는 가볍게 흘려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알을 심었다. 한 달이 지나도 새싹이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밭은 잡초로 뒤덮였다. 밭갈이도, 거름 주기도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정 팀장은 새벽마다 텃밭에 커피 거름을 뿌리고 흙을 뒤섞어 줬다. 그해 8월 한여름이 되자 굵직한 옥수수가 대롱대롱 달렸다. 그는 “2포대를 가득 채울 만큼 옥수수를 받아든 만족감을 잊을 수 없다”면서 “도심에서 흙을 만지며 무당벌레, 땅강아지와 노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 큰 배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호균(34) 창조농식품정책과 사무관은 2년차 ‘도시 농부’다. 마트에서 무심코 사 먹던 상추와 쑥갓, 토마토를 제법 능숙하게 길러 낸다. 그는 “주말마다 아들과 함께 밭에서 땀을 흘리면 유대감도 깊어지고 대화도 많이 한다”면서 “서로 다른 작물을 키우는 옆 텃밭 이웃과 수확한 농산물을 나눠 먹으며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사람 사이의 정을 쌓게 된다”고 말했다.‘도시 농업’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한동안 ‘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자극적이고 속도감이 빠른 일반 예능과 달리 농촌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고 텃밭을 이용해 아침, 점심, 저녁상을 차려 먹는 정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쳐 있었다는 의미였으리라. 최근 몇 년 사이 귀농·귀촌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리고 직장과 가족 때문에 귀농·귀촌을 택할 수 없는 이들 사이에서는 잠시나마 도시를 떠나 농사를 체험하는 도시 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도시 농업에 매료된 텃밭 농사꾼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0년 15만 3000명이었던 도시농업 참여자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159만 9000명으로 6년 새 10.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도시 텃밭의 면적도 104㏊에서 1001㏊로 9.6배 늘었다. 농식품부는 내년까지 도시농업 참여자가 200만명, 텃밭 면적은 1500㏊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 텃밭은 소통의 장소이자 힐링의 명소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농작물 경작과 재배로 한정된 도시 농업을 양봉, 곤충 사육, 수목 재배 등으로 다양화할 계획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도시 농업 전문자격제도를 도입한다. 오는 10월 공무원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도시 농업 활성화 과정과 도시 농업 전문가인 ‘마스터 가드너’ 양성 과정이 개설된다. 안전한 먹거리와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도시농업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4월 11일을 ‘도시 농업의 날’로 지정하고 오는 6월 경기 시흥 배곧공원에서 도시농업박람회를 개최한다. 도시농업은 단순한 먹거리 생산 수단을 넘어섰다. 현대인에게 텃밭은 소통의 장소이자 힐링의 명소다. 이번 봄에는 가족과 함께 텃밭으로 나가 보자. 김현우 명예기자(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실 사무관)
  • [데스크 시각] 최순실의 침대와 합리성/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최순실의 침대와 합리성/이지운 정치부 차장

    최순실은 “언니가 맨날 찾아. 아, 구찮아” 하고 다녔다. “들어가서 놀아 주고 그래야 해”라며 청와대서 잠을 자고 온다는 얘기도 했다. 이를 최씨로부터 직접 들은 사람, 그의 측근 고영태나 차은택 등으로부터 건너 들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최씨의 청와대 숙박설은 1차적으로는 여기서 비롯된 것 같다. 청와대의 침대 구입 등이 알려지면서 상당히 유력한 설로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필자는 최씨가 청와대에서 잤는지 여전히 회의적이다. 최씨가 매주 일요일 저녁 정기적으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것은 서울신문 보도로 공개됐다. 이 보도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서도 최씨와 저녁상을 함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씨는 딸 정유라를 위해 추가 주문해 음식들을 싸 가곤 했지만 밥은 따로, 혼자 먹었다. ‘밥을 따로 먹는데, 잠을 함께 잤을까?’ 하는 대목에는 대부분 수긍했다. 사적 공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성향’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그랬다. 밥을 따로 먹었다는 ‘사실’이 ‘논리적·합리적 추론’과 결합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최순실 사태 이후 야권 인사들을 만나 보고 놀란 게 있다면 전반적 상황을 상당히 ‘합리적 추론’으로 정리하고 있더라는 점이었다. 따로 먹는 밥상은 명백한 ‘상하관계’로 받아들였다. ‘무녀에게 장악된 대통령’이란 인식이 지배적인 시점에서다. ‘세월호 7시간’도 인터넷을 떠도는 여러 설과는 상당히 다른 각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프로포폴, 비아그라, 태반주사 등 구입과 투약설, 길라임 위장 진료설 등이 터져 나왔어도 7시간에 대한 문제 의식은 ‘의외로’ 크지 않았다. 청와대가 7시간 일지를 공개하자 초기에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관저라면 집에 있었다는 얘기 아니냐”고 반응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즈음 여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은 정상적인 사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냐’며 박 대통령의 지적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했다. 비아그라 구입에 대해서도 크게 괴로워하며 야당보다 10배는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쯤 되니 여야 간 반응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여당은 워낙 놀라운 일들에 갑작스럽게 노출되다 보니 충격이 훨씬 심했던 듯 보인다. 황당한 일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자 모든 개연성을 열어 두어야 했다. 합리적 추론을 보류하거나 애써 외면한 듯하다. 반면 야당은 진작 사건을 추적해 왔고 확보했던 팩트로 조금씩 퍼즐을 맞춰 나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했을 것이다. ‘합리’라는 게 현실에서는 무기력하거나 무의미해질 때가 많다. ‘지난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건 페이스북 등을 통해 허위 정보가 대량으로 양산됐기 때문’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반트럼프 시위는 돈 받고 하는 일’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었더니 마구 퍼 나르더라”라는 얘기였다. 실로 엽기적인 시대다. 이런 상황을 조성한 게 청와대이므로 엽기적 사고의 피해를 청와대가 입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다루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잘 반응하고 움직일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멋있는 말을 했다. “우리가 진지한 주장과 유언비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누구를 보호해야 할지,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르게 될 것”이란다. 그리고 가끔은 ‘합리’도 현실로 돌아온다. jj@seoul.co.kr
  • 삼시세끼 에릭, 김치+카레+파스타까지 뚝딱..이서진 “살다보니 이런날도”

    삼시세끼 에릭, 김치+카레+파스타까지 뚝딱..이서진 “살다보니 이런날도”

    “삼시세끼 하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 득량도 3형제의 활약에 ‘삼시세끼’ 아이콘 이서진이 이유 있는 극찬을 전했다. 지난 28일 금요일 밤 9시 15분에 방송한 tvN ‘삼시세끼-어촌편3’에서 김장김치, 봉골레파스타, 카레, 잡채밥까지 세끼밥상이 풍성하게 차려지며 캡틴 이서진의 보조개가 만발했다. 이날 방송은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 평균 시청률이 11.5%, 순간 최고 시청률이 14%를 기록하며 지난주보다 상승했다. ‘삼시세끼-어촌편3’는 첫 방송을 시작으로 3주 연속 지상파를 포함한 전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에 오르며 콘텐츠의 저력을 과시했다. 남녀 1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연령층에서도 동시간대 1위에 올랐고, tvN 채널의 타깃 시청층인 20~40대 남녀 시청층에서도 평균 7%, 순간 최고 8.3%의 시청률로 지상파 포함 전채널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 유료플랫폼 / 전국 기준) 이날 방송에서도 요리천재 에셰프 에릭의 마법 같은 활약이 이어졌다. 에릭은 어머니에게 직접 전수받은 비법으로 배추김치, 무김치 등 김장김치를 완성해 또 한 번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점심에는 전날 이서진과 윤균상이 캐온 바지락을 이용해 봉골레파스타를 만들었다. 수준급 요리 솜씨를 뽐내며 에릭은 “TV에서 백선생님께 배웠다”며 재치 있는 멘트로 안방극장에 유쾌한 웃음도 함께 전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못지 않은 화려한 플레이팅으로 차려진 세끼밥상에 이서진은 “삼시세끼 하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며 감탄했고, 냄비째로 파스타를 먹으며 “잘한다. 얘”, “너 나랑 식당할래?”라고 특급칭찬을 연발했다. 일상에서 주로 먹는 한식 뿐 아니라 파스타까지 선보이며 ‘삼시세끼’ 속 요리 스펙트럼을 넓힌 에릭의 활약에 시청자들도 아낌 없는 호평을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 순간 최고 시청률 14%를 기록한 장면은 득량도 3형제가 저녁으로 준비한 잡채밥과 꽁치 고추장찌개를 폭풍 흡입하는 장면. 윤기가 흐르는 에릭표 잡채밥, 고생한 두 동생을 위해 맏형 이서진이 직접 요리한 꽁치 고추장찌개 그리고 어촌 식탁의 풍미를 더해주는 키조개 구이까지 한 상 가득 차려진 저녁상에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낸 것. 방송을 지켜 본 시청자에게도 정성을 다해 직접 차린 밥상이 주는 따뜻한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금요일 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삼시세끼-어촌편3’의 인턴 윤균상은 파워풀한 모습으로 막내다운 매력을 뽐냈다. 가불을 청산하기 위해 배추 모종 심기에 나선 윤균상은 캡틴 이서진의 친절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아래 맡은 일을 듬직하게 해냈다. 불 피우기에는 이제 전문가가 됐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제일 먼저 아궁이를 걱정하고, 거침 없이 장작을 패며 힘을 과시해 이서진을 놀라게 했다. 또 고양이 집사 균상의 냥이들인 쿵이와 몽이에게 이서진과 에릭이 푹 빠질 정도로 동물가족들의 귀여운 재롱이 안방극장에 힐링타임을 선사했다. 자급자족 어부라이프 tvN ‘삼시세끼-어촌편3’는 매주 금요일 밤 9시 15분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모기장/박홍기 논설위원

    한여름밤 마당에다 모깃불을 피우곤 했다. 건초를 모아 불을 지핀 뒤 갓 베어 온 풀을 올리면 매캐한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달려들던 모기들이 얼씬 못 했다. 그럴 때쯤 마당에 깐 멍석으로 저녁상을 내오셨다. 기둥에 매단 전깃불엔 나방이며, 풍뎅이가 찾아들었다. 가끔 말매미가 날아들 땐 조카들이 바빠졌다. 숟가락을 잡았던 손엔 어느새 매미채가 들려 있었다. 시골의 한여름밤은 누군가에겐 목가적이다. 넓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별을 보며, 바람을 느끼는…. 다른 누군가에겐 모기와의 전쟁이다. 모기장을 치지 않고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가끔 모기장 안으로 침입한 놈들 탓에 자다 일어나 한판 벌이기도 했다. 손바닥으로 쳐서 잡으면 선홍색 피가 묻어날 때도 있었다. “애고! 아까운 피.” 도회지라고 모기가 없을까마는, 방충망이 잘 설치됐다 싶은 아파트인데 때때로 모기들의 공격을 받았다. 지금껏 모기약을 뿌리고, 전자 모기향을 써 왔는데 유해하니, 무해하니 말들이 많아 아예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 모기장을 샀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내미의 한마디. “오늘부턴 모기장 덕에 편하게 잘 수 있겠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해외여행 | 핀란드-명백히 아름다운 북위 67.8 레비Levi

    해외여행 | 핀란드-명백히 아름다운 북위 67.8 레비Levi

    명백히 아름다운 북위 67.8레비Levi 북부 핀란드, 이 혹한의 땅에 발을 디딘 가장 큰 목적은 오로라를 보는 것이었다. 핀란드 레비에서 보낸 나흘의 이야기는 밤과 낮으로 나뉜다. 겨울의 북극에서는 어둠의 기세가 등등하다. 낮은 맥을 못 춘다. 정오가 돼서야 동이 트고, 점심 식사 후 두 시간 가량 소요되는 일정 하나를 마치면 다시 어둠의 세계다. 밤은 온전히 오로라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점철됐다. 지루하지 않았냐고? 전혀! 이곳에서 겪은 모든 일들에는 ‘난생처음’이라는 수식이 붙었기에 하나같이 소중했다. ●조용하고 아담한 스키 마을 레비Levi “어서 와, 이런 추위는 처음이지?” 감각을 자극하는 주변의 모든 환경이 말을 거는 것 같다. 도착한 날의 기온은 영하 31도. 예보에 따르면 기온은 점점 더 내려갈 예정이다. 상상 이상의 추위, 경험한 적 없는 냉기다. 이 정도의 날씨라면 추위, 냉기보다 더 가혹하고 거친 단어가 필요하다. 들숨에 들어오는 공기는 뾰족하게 날을 세워 폐부를 찔렀고 내뱉은 날숨은 공중으로 흩어지기 전 해마의 형태로 잠시 얼어붙는 듯했다. 내복, 바지, 스웨터, 양말 등 모두 두 겹씩 입었다. 몸 구석구석에 핫팩을 붙이고 옷 입는 시간만 대략 20분이 걸렸다. 장갑, 목도리, 모자까지 쓰고 나면 북극의 패션 테러리스트가 됐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감각은 둔해졌지만 그만큼 마음은 든든했다. 문제는 이렇게 대비해도 춥다는 것. 입김은 콧수염이나 눈썹에 붙어 고드름이 됐고, 안경도 얼어붙어 앞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발에 붙여둔 핫팩은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이기지 못했고 외부 공기와 접촉한 핫팩은 얼고 부풀어 올라 아이스팩과 형태와 기능이 동일해졌다. 맨손으로 차 트렁크, 문고리 혹은 삼각대의 다리 부분을 잡으면 순간접착제를 바른 듯 살이 달라붙었다. 접촉한 것들과 분리되기 위해서는 살점이 뜯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카메라도 걱정거리. 혹한에 배터리 방전 속도가 LTE급으로 빨라졌고, 입김이 닿은 카메라 뒤판은 얼음 알갱이로 뒤덮였다. 셔터가 올라갔다 얼어붙어 내려가지 않는 횟수도 빈번해졌다. 일행 중 한 사람의 셔터 릴리스 선은 꽁꽁 언 채로 두 동강이 났다. 전선이 냉각된 후 끊어지는 추위, 곁에서 직접 보지 않았다면 과장된 엄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꼭 다시 가고 싶다.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진짜다. 헬싱키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두 시간을 날아 레비 인근의 키틸래 공항Kittila Airport에 도착했다. 키틸래 공항에서 북쪽으로 23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발로 공항Ivalo Airport을 경유했으니, 헬싱키에서 직항으로 왔다면 약 한 시간 거리다. 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레비는 핀란드 최고의 스키리조트 마을로 명성이 자자하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노인만 100명 남짓 남았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1964년 첫 번째 스키 슬로프를 개장한 이후 조용했던 마을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후 면세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관광산업이 활성화됐고 현재, 전체 인구 약 5,000명 중 2,500여 명이 관광업에 종사하며 한 해 40만명의 여행자들을 맞는 관광지로 성장했다. 겨울에는 스키를 비롯해 허스키 썰매, 순록 썰매, 스노모빌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여름에는 트레킹, 하이킹, 백야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다. 핀란드 최대의 스키리조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총 43개의 슬로프를 운영하고 있다. 리조트 전체 규모에 비해 레비 시내는 소박한 편이다. 레스토랑, 기념품 숍 등 필요한 것들이 적재적소에 정량으로 있어 과잉과 소모가 없는 편안한 느낌이다.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20도지만 우리가 머문 기간은 이상 기후로 훨씬 더 추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차갑고 고요한 밤의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 오로라Aurora 태양이 발산하는 플라스마 중 극소량이 지구의 보호막을 뚫는다. 그리고는 지구 자기장의 영향으로 극지방으로 끌려들어와 대기권의 가장 바깥쪽 열권에서 방전되며 빛을 발하는 현상, 오로라다. 북극에서 발생한 오로라의 이름은 오로라 보리앨리스Aurora borealis 혹은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 우리말로는 북극광, 그리고 이곳 핀란드에서는 여우불이라는 뜻의 레번툴레Revontulet다. 나에게 오로라는 평생을 꿈꿔 온 소망의 이름이다. 여기까지 왔지만 본다는 확신은 없었고 기대만 가득했다. 운이 따라야 볼 수 있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오로라를 예보하고 시간대별로 지수를 표기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이드는 날씨가 너무 추우면 오히려 보기 어렵다고 말했고, 오로라 지수를 너무 믿지 말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별이 수천개는 보이는 밤하늘이라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행운을 빌어 주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명제를 마음에 품었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도착 이틀째부터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서너 시간씩 사흘을 버텼다. 일명 ‘뻗치기’를 감행했다. #first night 첫날밤, 가이드가 알려준 숲으로 향했다. 숙소인 레비 툰투리 호텔Spa Hotel Levi Tunturi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작은 호수를 둘러싼 겨울 숲, 그 건너편에는 아담한 평원도 있었다. 가이드는 이곳이 인공광이 거의 없어 인근에서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출발 전부터 꼼꼼하게 장비를 챙겼고, 어둠 속에서 촬영 방법을 연습했다. 준비한 것을 차근차근 재현할 차례였으나 혹한에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장갑 속에 감춰둔 둔한 손의 감각으로는 어둠 속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부터 노출을 조절하는 일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허둥거리며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한 시간쯤 지나자 하늘빛이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셔터를 눌렀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사진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명민한 카메라는 하늘에서 색색의 빛줄기 수십 개가 쏟아져 내리는 순간을 잡아냈다. 오로라처럼 움직이진 않았지만 빛줄기는 계속 색을 바꾸고 있었다. 오로라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오로라를 본 경험이 있는 동행인은 명백한 오로라라고 했다. 촬영은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것이 오로라만큼 드문, 상층의 구름에서 떨어진 공기 중의 얼음 알갱이들이 달빛 혹은 주변의 인공광을 반사하며 일어나는 빛기둥light pole 현상이라는 사실은 서울에 와서야 알게 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econd night 전날 촬영한 빛기둥을 오로라라고 믿었기에 둘째 날엔 더 대담해질 수 있었다.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인다는 숲을 버리고 조금 더 드라마틱한 장소를 찾아 도착한 곳은 레비 툰투리Levi Tunturi다. 산이라고 하기엔 낮고 동산이라 부르기엔 높은 해발 531m, 우리말로 ‘재’라고 표현하면 알맞은 이곳을 레비 사람들은 ‘레비 펠Levi Fell’이라고 부른다. 해질녘의 레비 펠은 겨울 왕국의 모습 그대로다. 핀란드 최고의 캐릭터인 무민을 쏙 빼닮은 스노 몬스터Snow Monster 수천 개가 핑크빛으로 물든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무민 마을에 잔치라도 벌어진 듯한 동화 같은 풍경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엄숙하고 장엄한 정취를 덧입었다. 우주 깊은 곳에 떠다니는 외계행성에 발을 디딘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곳에 오로라가 나타난다면 지상 최고의 오로라 사진을 얻을 수 있겠다며 기대했지만 하늘이 흐렸고, 날이 습했고, 재 마루에 멈춰 선 구름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철수했다. #third night 마지막 밤까지 오로라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조바심이 요동쳤다. 마음을 가다듬고 저녁 식사 자리로 향했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일을 맞은 저녁상에는 초를 밝힌 작은 컵케이크와 서울에서 준비한 3분 미역국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생일상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오로라를 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며 초를 불었다. 십분쯤 지났을까. 이미 퇴근한 가이드가 되돌아와 말했다. “지금 밖에 오로라가 있어.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볼 수 있을 거야.” 이런 걸 ‘기적’이라고 말하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늘을 보며 달려가다 뒷걸음치기를 반복했다. 오로라를 보는 순간, 인생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았다는 감동에 가슴이 벅찼다. 수직으로 서서히 솟구쳐 창공으로 올라간 초록빛은 일렁이고 움직이고 너울너울 넘실대며 제 길을 갔다. 빛기둥을 보았던 숲으로 향했다. 멀리서 시작된 올챙이 형상의 초록빛은 별이 총총히 빛나는 검은 하늘을 가르고 번져 나가며 춤을 췄다. 설산을 넘는 북극의 요술 여우의 꼬리가 산꼭대기를 스칠 때 일어나는 스파크라는 핀란드 신화도, 어린 영가들이 춤을 출 때 일어나는 불빛이라는 그린란드의 신화도, 죽은 영혼들이 해골로 축구시합을 벌이는 광경이라는 이누이트족의 신화도, 모두 오롯이 믿어질 만큼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영하 40도의 혹한에도 춥지 않았다. 오로라는 땅 위의 사람들을 제대로 홀렸다. 확신했다. 언젠가 인생이 끝날 때 스쳐갈 나의 주마등에, 이 순간 눈앞에 펼쳐진 오로라의 춤이 선명히 새겨질 게다. ●청명하고 귀한 낮의 이야기 진짜 행운이함께 했나 봐! 네 시간, 하루 중 푸른 하늘과 흰 설원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짧은 만큼 값지고 소중하니, 가능한 짜릿하게 즐겨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first day 첫날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레비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40km 떨어진 헤타Hetta로 향했다. 아침이지만 어두운 사위를 가르기 위해 상향등을 켜고 달려야 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상향등이 눈을 비추면 별처럼 빛났다. 풍경은 화면 가득 노이즈가 반짝이는 오래된 필름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다행히 길이 미끄럽진 않았다. 녹아서 질퍽이는 습설이 아닌 건설인 까닭이다. 운전자와 겨울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축복의 눈이다. 일명 파우더 스노, 넘어져도 아프지 않고 포근하게 느껴질 질감이다. 가이드는 이동하는 동안 헤타에 대해 설명했다. 스칸디나비아 북쪽, 핀란드 북쪽, 러시아 콜라반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민족인 사미족의 사미랜드, 헤타는 그곳으로 가는 관문이라 했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의 20퍼센트는 사미인, 그중 8퍼센트가 사라져 가는 사미어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헤타 펠 라플란드 방문자 센터Hetta Fell Lapland Visitor Center에서 사미 문화와 전통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헤타에 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순록 농장 방문. 우리에게 루돌프로 더 잘 알려진, 아름다운 뿔을 가진 순록을 만난다는 기대로 마음이 들떴다. 농장을 방문하는 것이니 무리 지어 움직이는 순록들을 만날 거라 기대했지만, 추운 겨울 동안은 대부분 주인이 만들어 둔 우리 안에서 지낸다고 한다. 아쉬움은 순록 썰매를 타는 것으로 달랬다. 운동장 한 바퀴 거리를 돌아보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하얀 설원 위를 네 마리의 순록이 끄는 네 개의 썰매가 천천히 움직이는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고개를 돌려 돌아보면, 뒤 썰매를 끄는 순록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힘이 넘치게 좋은데다 마음도 급해 앞 썰매를 제치고 싶다는 듯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맑은 눈망울, 둔탁한 턱의 모양새는 소를 닮았다. 사미족에게 순록은 우리네 옛 시절의 소와 같은 의미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다가 그 끝엔 고기, 가죽, 뿔까지 모든 것을 내주는 존재. 반려이자 삶의 밑천이다. #second day 노래가 절로 나왔다. 흰 눈 사이로 스노모빌을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일정 중 가장 신나는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 스노모빌 타고 달린 순간이라 답하겠다. 눈 덮인 구릉을 오르락내리락, 아름다운 숲길 사이를 쌩쌩, 드넓은 설원을 최고 시속 90km로 시원하게 달리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있을까. 삼십분을 줄기차게 달리다가 코스 중간에 있는 150년 된 전통 가옥에서 몸을 녹이고 되돌아오는 여정이다. 준비할 것은 운전면허증과 방한대책. 한국 운전면허증, 국제운전면허증 모두 제출 가능하다. 면허증을 제출하고 사인을 하고 나면 우주복 스타일의 두꺼운 방한복을 나눠준다. 거기에 투박한 방한 부츠를 신고, 복면과 헬멧을 차례로 쓰고 스노모빌 작동법을 간단히 익히면 준비완료. 가이드가 선두에 서고 차례로 질주를 시작한다. 추위는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의 양에 정확히 비례했다. 바로 앞 스노모빌이 날려 보내는 눈가루는 헬멧에 붙은 바람막이 아크릴에 켜켜이 쌓여 시야를 가렸고, 얼굴을 싸맨 검은 복면은 본래의 색을 감추고 흰빛으로 반짝였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 나오던 중 작은 전복사고가 있었다. 유턴하다 스노모빌과 함께 넘어졌는데, 다행히 폭신한 눈밭 위여서 다치진 않았다. 추위와 작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즐겁게만 기억되는 이유는 설원에서 마주한 일출 때문이다. 지평선에 걸린 동그란 해가 오메가를 만들었고, 하늘과 눈밭은 파스텔톤의 붉은빛으로 곱게 물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핑크빛이 모여 스스로를 뽐내는 듯한 풍경은 더없이 우아했다. 더불어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선명한 일출을 만났으니 정말 운이 좋다는 가이드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 진짜 행운이 함께했는지도 모르겠다. #third day 3일 내내 허스키 썰매 타기 체험을 무척 기대했었다. 허스키는 달리기를 사랑하는 견종이다. 허스키 썰매에 올라 만끽하는 속도감, 스릴보다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허스키들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가 더 궁금했다. 설원을 누비는 허스키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집 전기장판 위에서 본능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나의 허스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쉽게도 허스키를 타고 달리는 2km의 여정은 취소됐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다. 허스키 사파리는 11월부터 4월까지 운영하지만, 영하 35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운영하지 않는단다. 사람도 허스키도 빠른 속도로 달리기에 부담스러운 온도다. 농장 인근의 핀란드 말들과 허스키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대신했다. 탈것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설원을 누빌 차례다. 스노슈잉은 넓은 타원형에 그물을 덧댄 스노슈(설피)를 신고 눈밭을 걷는 트레킹 프로그램이다. 넓은 면적으로 체중이 분산돼 눈 속으로 빠지지 않기 때문에 20cm 깊이의 설원도 걸을 만하다. 추운 날씨였지만, 그간 움츠러든 몸을 움직여 피를 돌게 한다는 차원에서 해봄직하다. 걷다 보면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 언뜻언뜻 생각나는 사소한 풍경들이 있다. 순록의 착한 눈매, 추위를 피해 들어선 핀란드 전통 가옥에서 마신 커피의 온기, 장작 타는 냄새.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도 있다. 허스키 농장에서 노견 클로디를 바라보던 주인의 애정과 감사가 가득한 눈빛, 일부러 찾아와 오로라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한 가이드의 잔잔한 목소리와 차분한 말투. 모두, 불현듯 떠오르는 조각난 추억이지만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같은 지점으로 향한다. 그 끝엔 평온이 있다. 혹한의 공기를 더없이 따뜻하게 데우는 평온을 찾아 꼭 다시 가리라. 그땐, 너와 함께.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el info Finland Levi AIRLINE핀에어는 인천-헬싱키 구간을 주 7회(매일) 운항한다. 헬싱키까지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레비로 가려면 헬싱키-키틸래 구간을 이용해야 한다. 핀에어를 이용할 때 기대되는 것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헬싱키 반타 공항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선과 국제선 터미널이 같은 층에 있어 동선이 짧고 환승 절차가 효율적인 데다, 공항 곳곳에 탐나는 핀란드 디자인 제품과 캐릭터를 판매하는 숍, 아늑한 분위기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자리한 것도 큰 장점이다. 지루할 틈이 없는 공항이다. 2014년 새롭게 문을 연 핀에어 프리미엄 라운지는 6개의 독립된 샤워실, 핀란드식 사우나까지 갖추고 있어 장시간 비행에 지친 승객에게 온전한 휴식을 제공한다. 프리미엄 라운지는 핀에어 플러스 플래티넘Finair Plus Platinum, 골드 회원 및 원월드Oneworld 에메랄드, 사파이어 카드 소시자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다. www.finnair.com Hotel 스파 호텔 레비 툰투리Spa Hotel Levi Tunturi레비 지역에 최초로 생긴 호텔이다. 1981년, 마당이 있는 11개의 라플란드 스타일의 통나무집으로 영업을 시작한 호텔은 5년 전 3층 규모의 건물을 증축해 성업 중이다. 패밀리, 스탠더드 트윈, 슈퍼리어 트윈, 주니어 스위트, 스위트 총 다섯 개의 룸 타입이 있으며 주니어 스위트, 스위트룸을 예약할 경우 방 안에서 핀란드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스파는 핀란드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7개의 실내 및 실외 풀이 있고, 9개의 사우나 시설을 완비했다. www.hotellilevitunturi.fi activity스노슈잉 en.lapinluontoelamys.kotisivukone.com허스키사파리 www.polarlightstours.fi스노모빌을 비롯해 레비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은 www.levi.fi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staurant 아틱 레스토랑 스노 돔Arctic Restaurant Snow Dome특이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호기심 많은 여행자라면, 호텔 레비 파노라마에서 운영하는 아틱 레스토랑 스노 돔으로 가볼 것을 권한다. 식기와 음식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올겨울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아티초크 수프와 순록 찜 요리가 맛있다. 애피타이저와 메인 요리는 스노돔 안에서, 아이스크림이 곁들여진 디저트는 따뜻한 호텔 내 식당으로 이동해 먹는다. www.golevi.fi/en/snowdome Tip오로라 촬영 팁 어두운 곳에서 초점을 맞출 땐 랜턴이 있으면 유용하다. 오로라만 촬영할 경우 초점거리를 무한대로 두면 되지만, 앞부분에 나무나 집이 있는 경우는 초점을 앞에 맞춰야 한다. 암흑 속에서 초점 맞추는 일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랜턴을 챙겨 가자. 발밑에 폭신한 눈밭이 있다면 트라이포드는 최대한 땅에 닿도록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촬영하는 동안 서서히 눈을 파고 들어가 완전히 흔들린 사진을 찍게 된다. 셔터 릴리스보다는 무선 동조기를 챙겨가는 게 편하다. 앞서 언급했듯, 전선이 끊어질 정도의 혹한을 견뎌야 한다. 오로라는 한번 생겨나면 두 시간 가량 지속된다. 적정 노출에 한해 다양한 셔터스피드로 촬영해 볼 것. 다른 느낌의 오로라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취재협조 핀에어 www.finn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모던 보이 백석과 가키사키 바다

    [최동호 새벽을 열며] 모던 보이 백석과 가키사키 바다

    시집 ‘사슴’이 1936년 1월 출간됐을 때 김기림은 “백석 시집 ‘사슴’을 가슴에 안고”라는 서평에서 ‘한대(寒帶)의 바다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검은 머리의 웨이브를 휘날리면서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의 풍채는 나로 하여금 때때로 그 주위를 몽파르나스로 환각시킨다. … 백석의 시집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다’고 했다. 백석은 1930년대 중반 이처럼 모더니즘적 풍모를 띠고 문단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그러나 서울 문단에 정착하지 못한 그는 1940년 이후 만주 등지를 방랑하며 살았고 광복 이후에는 북의 고향에 남았다. 그로 인해 백석의 시는 지난 40여년 가까이 문학사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의 문학적 복권은 2012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그는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하나로 높이 평가돼 남의 서정주, 북의 백석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북한에서 백석의 문단적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북한 아동문학의 고루한 교조주의를 비판한 글로 인해 1959년 평양 문단에서 산간 오지로 추방당한 그는 작품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머지 반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인생의 전반에 천재 시인으로 각광받던 그가 인생의 후반을 산간 오지의 양치기로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집 ‘사슴’의 출간 80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백석 시의 출발점인 이즈반도를 찾았다. 백석은 이즈반도와 관련된 시 두 편과 산문 한 편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 시 ‘가키사키 바다’는 시집 ‘사슴’에도 수록돼 있다. 백석이 1933년 겨울 이즈반도를 찾은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나는 당시 일본의 대표적 문인들, 예를 들면 나쓰메 소세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이 자주 찾던 문학의 고향이 이즈반도이며, 다른 하나는 1926년 발표된 가와바타의 단편소설 ‘이즈의 무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33년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던 장소가 이즈였다는 점이다. 백석의 영화 관람 여부는 불명이지만 문학 지망생이자 독서가였던 그는 분명히 가와바타의 소설을 읽었을 것이다. 도쿄에서 온 고등학생과 유랑하는 무희 가오루의 짧은 첫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호소력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다. 백석은 ‘가키사키의 바다’에서 ‘아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 아 아즈내인데 병인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고 썼다. 여기서 처녀와 병인은 동일한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병인을 화자 자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백석 자신일 수도 있다. 바로 앞 행에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고 서술했으므로 가슴 앓는 사람과 병인은 동일 인물일 것이다. ‘해쓱한 처녀’를 유랑하는 무희와 겹쳐 본다면 여기서 백석이 자기도 모르게 직감한 것은 운명의 문제다. 산문 ‘해빈수첩’에서 생각하고 그는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라는 문장을 반복하면서 ‘바다에 놀래지 않는 그들’이 결국 ‘지렁이같이 밭 가는 역사’를 살 것이라 말하고 있다. 가키사키 바닷가의 아이들은 바다와 사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1940년 백석은 토머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를 번역 출간했다. 테스 또한 가혹한 운명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여주인공이다. 운명에 대한 백석의 자의식은 병처럼 깊어져 만주를 방랑하다가 귀국한 다음 마침내 평양 문단에서도 추방돼 유배지와 같은 삼수갑산 관평리 오지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1954년 미국의 강압에 의해 일본이 최초로 개항한 시모다항이 있는 가키사키 바다에서 우리는 어디에서도 청년 백석의 발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혹한의 겨울바람이 몰아쳐 일행의 발걸음을 동동거리게 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조동식이 열연한 연극 ‘백석 우화’와 더불어 절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우울하고 침중한 목소리가 칼바람을 타고 날아와 한 천재 시인의 비극적 운명에 새삼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 [단체장 발언대] 노량진 복합리조트, 서울 관광 바꾼다

    [단체장 발언대] 노량진 복합리조트, 서울 관광 바꾼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노량진역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비릿한 바다냄새다. 우리나라 최대 수산물 도매시장인 노량진 수산시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엔 ‘시장’ 이상의 가치가 녹아 있다. 지난 40여년간 서울의 새벽을 깨운 곳이자, 1000만 서울시민의 저녁상을 책임진 곳.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고 있는 ‘서울의 바다’다. 도심 바다인 노량진이 최근 변화의 중심에 섰다. 인근 여의도와 용산에는 대형 면세점이 들어설 예정이며 수산시장은 올 10월이면 현대화사업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한다. 그리고 더 큰 변화는 ‘복합리조트’ 건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만간 입지를 선정할 복합리조트는 숙박시설과 국제회의시설, 쇼핑시설, 카지노, 기타 시설 등을 포함하고 있는 종합 리조트다.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수협중앙회가 나섰다. 현 노량진 수산시장 부지에 연면적 40만여㎡ 규모의 지상 52층, 지하 6층 리조트 건물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서울은 복합리조트의 최적지다. 외국인 관광객의 80.9%가 서울을 찾고 있고, 기본 인프라도 구축돼 있다. 하지만 서울이 과연 매력적인 관광지인가 묻는다면 망설여진다. 실제로 서울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쇼핑 이외의 즐길 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관광가치를 이대로 두어선 안 된다. ‘관광 없는 서울’을 ‘관광 있는 서울’로 바꿀 유일한 대안이 바로 복합리조트다. 복합리조트의 성공 관건 중 하나는 접근성이다. 노량진은 공항과 직통으로 연결되고, 서울 중심지에서도 10분 내 도달할 수 있다. 경부선, 호남선 등을 통해 지방과도 빠르게 연결된다.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간 서울은 강남과 강북 간 격차해소에 치우친 나머지 동서 간 균형을 등한시했다. 그 결과, 변화에서 소외된 서남권은 ‘서울의 섬’으로 전락하고 있다. 복합리조트는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한 교두보다. 복합리조트 성공을 위한 최고의 입지는 노량진이다. 노량진이 서울을 넘어, 세계의 관광지도를 바꿀 것으로 확신한다.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
  • [글로벌 시대] 정에 푹 빠져 버린 터키 하숙생활/김창후 LG전자 고문·전 터키법인장

    [글로벌 시대] 정에 푹 빠져 버린 터키 하숙생활/김창후 LG전자 고문·전 터키법인장

    터키 하숙 생활은 날이 갈수록 점점 나를 새로운 정(情)에 푹 빠져들게만 했다. 일류 호텔을 뛰쳐나와 불편한 중산층의 작은 가정집에 기거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은 잘 이해가 안 가는 기행(奇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글로벌 한국기업의 터키 대표로서 일한다는 나의 신상이 점점 알려지고 나서는 달라졌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이 알려져서인지 마주칠 때 동네 사람들이 보여주는 친밀감은 피부에 닿았고, 2002년 월드컵에서 패한 한국 팬들이 터키 대표팀에 보여준 진한 감동의 응원 기억이 살아나서인지 대부분 축구를 화제로 말을 건네며 흥미를 갖고 가까이 대해 주었다. 이후 나는 ‘코레리 암자’(터키말로 한국서 온 아저씨)로 통하기 시작했다. 3개월 내 판매법인 설립을 완료하라는 본사의 지시로 늘 새벽에 일어나 주인아주머니 펠다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저녁 늦게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힘든 일과를 보냈다. 집에 오면 저녁상을 잔뜩 차려 놓고 숟가락 하나 안 대고 전 식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님이 자식을 위해 산해진미 차려 놓고 기다리며 안겨 주는 풍경처럼 찡하는 정을 느끼곤 하였다.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펠다의 식단은 내 입에 맞았다. 특히 반찬 중에서 우리나라의 김치에 해당하는 투르슈 (소금에 절인 오이지 같음)는 내가 좋아함을 알고는 식탁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가족 중심적인 터키 가정문화는 친척 간의 강한 의리가 부럽다. 주말이면 가끔 특별 메뉴를 위해 주인아주머니가 친정엄마와 식구들을 부르곤 한다. 온 식구 모두 정성 들여 만든 요리로 큰 식탁을 가득 채우고 식사를 할 때면 유교 문화처럼 연장자를 존경하는 경로사상이 행동에 배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웃 간의 정 또한 우리나라의 시골 마을의 전통과 흡사하다. 주말에 저녁상을 받을 때쯤 누군가가 자주 집 대문을 두드리곤 한다. 영락없이 이웃집에서 찾아온 것이다. 한번은 옆집 아주머니가 먼 “흑해에서 잡아온 신선한 고기로 만든 요리”라면서 킴베이(터키 말로 ‘김씨’ 즉 나를 지칭)에게 주라고 접시에 담아 들고 온 것이었다. 아주 맛있어 게 눈 감추듯 접시를 비워버리니 주인아저씨가 큰 미소를 보이며 흡족해했다. 우리의 이웃 사촌 같은 분위기였다. 축구는 터키인의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전통 가훈처럼 지지해온 프로 축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동네 공터가 있는 곳이라면 옹기종기 모여 공을 찬다. 프로 축구 팀의 순위야 변하지만 역대 가장 강하고 앙숙관계인 페네르바체와 갈라타사라이의 경기를 관전하러 주인아저씨를 따라가곤 했다. 스탠드를 빈틈없이 꽉 채운 양팀의 팬들은 전후반 한숨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카드 섹션을 보여 준다. 그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에 놀랐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사무실의 한 여직원과 점심을 먹으면서 터키의 결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인 여직원이다. 궁금하여 결혼계획에 대해 물어 보았다. 사실 몇 년간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어 집안 어른께 선을 보였다고 실토하면서 남자 친구네 가족이 원수지간인 축구팀을 지지하기 때문에 여자네 집안 어르신들이 뜨악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의 결혼에 이런 이슈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처럼 축구가 국기이지만 지지 팀에 대한 광적인 응원과 배타적인 믿음은 거의 종교적 신념처럼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 토마토소스에 절인 사람 손가락? 충격

    토마토소스에 절인 사람 손가락? 충격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식품사건이 발생해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아르헨티나 지방 산타로사 지역에 사는 여교사 수사나(54)는 최근 동네 마트에서 토마토소스를 구입했다. 수사나는 그날 저녁으로 토마토소스를 얹은 파스타를 만들어 저녁상에 올렸다. 절반 정도 남은 토마토소스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파스타 맛은 일품이었지만 저녁은 엉망이 됐다. 맛있게 파스타를 먹은 두 딸이 구토와 복통을 일으켜 밤새 고생을 한 때문이다. 수사나는 나흘 뒤 냉장고에 보관한 토마토소스를 다시 꺼냈다. 두 딸이 파스타를 먹고 난리를 겪었지만 소스를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소스엔 치가 떨리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수사나는 나머지 소스를 그릇에 덜다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소스로 범벅이 되어 그릇에 떨어진 물체는 사람의 손가락 같았다. 포크로 이리저리 돌려보니 손톱 같은 부분도 보이는 듯했다. 기절할 정도로 깜짝 놀란 수사나는 당장 평소 친분이 있는 변호사를 불렀다. "식품에서 사람의 손가락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변호사는 공증인을 불러 사진을 찍고 현장증거를 남겼다. 사진을 보면 소스에서 나온 물체는 손가락이 분명해 보인다. 구부러져 있는 물체엔 손톱처럼 하얀 부위가 보인다. 증거를 남긴 수사나는 사건을 식약처에 고발하고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식약처는 아직 물체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수사나는 "손가락이든 아니든 소스에 들어가 있지 않아야 할 물체가 들어가 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판매하는 식품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토마토소스에서 손가락이 발견되는 엽기적인 사건은 처음"이라면서 "지역 일대가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고 보도했다. 사진=수사나나심베라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독박(讀博) 육아일기] (11)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은 이유는

    [독박(讀博) 육아일기] (11)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은 이유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면 앞치마를 두른 예쁜 아내가 상냥하게 맞아준다. “잘 다녀왔어요?” 집 안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긴다. 피로가 싹 녹는 듯 하다. 귀여운 아기를 번쩍 들어올린다. ‘꺄르르’ 행복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마도 많은 아빠들의 머릿 속에는 이런 로망이 있지 않을까. 깨끗한 집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 단란한 가정. 가장의 책임이란 게 거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현실은 거의 이랬다. -현관문을 열고 퇴근했는데 아내의 눈은 ‘백안시’가 되어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쏘아붙이는 아내 뒤로 보이는 집안 꼴이 가관이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온갖 잡동사니가 거실에 늘어놓여 있고 설거지 거리는 쌓여 있다. 아내의 우울한 얼굴은 또 어떻고. 연애할 때 수줍고 예쁘던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아기가 보챈다. 순간 짜증이 몰려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 누구나 갖고 있다고 알려진, 이 로망이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물론 남편이 내게 이런 꿈 같은 상황을 요구하진 않았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타박을 하거나 발 디딜 틈이 없는 거실을 보며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짜증을 낸 적도 없다. 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눈치가 보였다. “과연 나를 다 이해했을까?” 늘 의문이 들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접점을 찾아서 아빠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남편이 무척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기가 태어난 뒤부터 나에게 1순위는 무조건 아이다. 남편은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나를 도와주는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엄마들은 남편을 ‘큰 아들’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분명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하는 짓은 꼭 아이 같다. 눈이 한참 나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내 안경 어딨지?”하고 왜 나한테 묻는 걸까. 만날 신는 양말, 짝도 다 맞춰 놨는데 왜 못 찾고, 용케 구멍난 걸 찾아 신고 가는 건지. 정말 아직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아이 같기만 하다. 아무튼 이런 남편이 아이에게 완전히 밀렸다. 내 손길이 남편에게까지 뻗칠 겨를은 없었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제대로 된 저녁상을 차려준 것도 일주일에 사나흘 뿐이었다. 뭔가를 차릴 여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김치 한 종지만 내놓을 수는 없으니 그냥 시켜먹자고 하면서 연신 미안했다. ‘도대체 하루종일 집에서 뭘 하길래 밥도 안 해놓았을까’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반면 아기에게는 1++등급 한우만 먹였다. 어느 날 이유식 육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퇴근한 남편이 자기를 위해 사골이라도 끓이는 줄 알고 들뜬 마음으로 냄비를 열었다. “그거 OO이 먹일 육수야”라고 했을 때 실망스런 표정이 지금도 미안하긴 하다. 겨우 저녁을 먹고 나서도 남편이 쉴 시간은 별로 없다.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청소 등 몇 가지 집안일을 도와준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 집에서 약 3시간 동안 쇼파에 제대로 앉아 보지도 못하고 바쁘다. 오랜 취미생활도 딱 끊었다. 결혼 전에는 매주 일요일 오전 사회인 야구 경기를 하러 나갔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로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는 게 취미가 된 것 같다. 언제부턴가 유독 화장실에 들어가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혹시나 집에서 유일한 도피처로 화장실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주말이라고 늦잠 한 번 제대로 자기 어렵다. 평일 내내 아기와 씨름했던 나는 남편에게 외출하자고 조른다. 맛있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라도 한 주의 피로를 풀고 싶다. 바깥 공기도 쏘이고 사람 구경도 좀 해야겠다. 남편의 피로는 더 쌓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아빠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의 영향으로 아빠들이 주말에 낮잠을 자거나 쇼파에 누워 TV를 보는 것은 ‘간 큰’ 행동이 됐다. 발 뻗고 쉬지도 못하고 바쁜데 마음도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을 거다. 가끔은 내가 남편이라면 집에 들어오기가 참 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종일 남편이 오는 시간만 기다리다가도 막상 얼굴을 보게 되면 이상하게 짜증이 밀려왔다. 씻지도 못하고 있다가 남편이 온다고 겨우 세수를 하며 기다리는데도 문을 여는 순간, 하루의 설움이 복받쳤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데가 남편이 유일했고, 내가 이렇게 힘든 게 모두 남편 탓이라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냥 미웠다. 냉랭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남편은 말 없이 집안일에 더 열중했다. ●”고된 퇴근길, 웃어주지도 않는 아내” vs “입꼬리 올릴 힘도 없어”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쌍둥이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에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웃으며 반겨줄 수는 없냐”고 따졌다가 크게 다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정말 뜨끔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남편은 육아의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마주치기 싫은 상사들과 하루종일 시달리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사회생활을 한다, 너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웃어주지도 않느냐”는 식으로 아내에게 따졌다고 해 수많은 엄마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비판하는 댓글이 순식간에 1000여개가 넘었다. 남편이 나의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듯이 나 역시 남편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지만, 아마 남편이 체감하는 정도가 더 무거울 수도 있다. 똑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남편 통장에 들어가는 돈이 더 빠듯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유독 육아만 힘든 것처럼,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처럼” 이야기하냐고 묻는 남편들의 질문에 단호하게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매일 도저히 몇 시에 잤는지, 몇 시에 일어난 건지도 모르도록 밤새 잠을 설치며 모유 수유를 하고, 날이 밝으면 또 이유식을 만들어 세 끼를 챙겨 먹여야 했다. 밥 한 끼 먹이는 것도 전쟁. 요즘도 입에 밥 한 숟가락 넣으려고 온갖 애교와 굽신거림으로 “제발 한 입만 먹자”를 연발해야 하고, 마치내 입을 “아~”하고 벌려주면 황송하기 그지 없다. 17개월이 된 지금도 안아서 재워야 할 만큼 잠에 대해서는 예민한 아기다. 겨우 다 재워놓고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면 어느새 침대 위에 벌떡 앉아 있는 아기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분명히 5분도 안 잤는데, 그럼 다시 잠 들어야 하는데, 언제 졸렸냐는 듯 다시 놀기 시작한다. 아이는 ‘급속 충전’이 가능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급속 방전’이 돼버렸다. 기본적으로 피곤함을 달고 외로움과 우울함과도 싸우며, ‘나’라는 존재는 철저히 감추고 아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남편을 봐도 도저히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마주친 내 모습이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몇 번이나 남편에게 세뇌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심지어 한 번은 “나를 그냥 정신병에 걸린 환자로 생각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아직도 남편에게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그런 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 심정은 참담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이해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밤마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집 앞에서 손을 꼭 붙잡고 놓지 못하던 연인에게 불과 3년 만에 닥친 현실은 이랬다. 물론 여전히 사랑하고, 오히려 아기가 생긴 뒤부터는 연애할 때와는 또 다른 깊은 사랑이 생겼고 둘의 관계도 더 돈독해졌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쉽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는 여정은 어렵기만 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도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빠들은 온종일 집에서 아이와 ‘노는’ 엄마들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빠들도 눈치 보며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잔소리 뿐이다. ’아빠 육아’의 필요성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빠 육아’ 콘셉트가 넘쳐난다. 물론 ‘아빠 육아’의 필요성이 널리 알려지고 아빠들에게 육아에 대한 일정 부분의 의무나 책임감을 안겨준 것은 매우 반길 일이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올해 1분기 남성 육아휴직자가 879명으로 지난해(564명)에 비해 55.9%나 증가했다고 한다.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게 된 이유 육아휴직을 하고 제대로 된 육아를 해본다면 분명 다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남편들에게는 ‘아빠 육아’라는 것이 TV에서 하듯이 아이와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체험, 이벤트를 하는 것, 또는 몸으로 격하게 놀아주는 수준으로 좁혀지는 게 아닌가 우려도 된다. 어쩌다 한 번 아이를 ‘봐주는 것’, 엄마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빠 육아인 것처럼 되는 게 오히려 아쉽다. 어찌보면 출산하고 딱 사흘만 같이 있어주는 아빠에게 육아에 대한 공감을 해달라는 게 더 말이 안 되기도 하다. 하루에 3~4시간 겨우 집에 있는 아빠에게 나와 아이가 갖고 있는 만큼의 친밀감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즐겨 보던 아빠 육아 예능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된 것은 이런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다. 엄마들이 매일 겪는 일상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걸 아빠도 경험하고 느끼는 게 진짜 아빠 육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주말 하루, 몇 시간 함께 해서는 알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한 두시간 뛰어 놀아준 것으로는 부족하다. 연예인 아빠들은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내 남편도 일을 잠깐 쉬고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나도 육아휴직할까?”라고 농담이라도 하면 곧바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나무라게 된다. 일단 생활을 이어가려면 지금 수준의 월급을 꾸준히 벌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을 아무도 쓰지 않는 회사에서 남편이 굳이 눈초리를 받아가며 총대를 메게 하고 싶지도 않다. 꼭 ‘휴직’이라거나 ‘아빠의 달’이라는 등의 특별한 제도, 있어도 쓸 수 없는 제도가 아니더라도 아빠들이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엄마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TV 속 연예인들처럼 ‘슈퍼맨’인 아빠가 아니다. 연애할 때 내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고 내 편만 들어주었듯이, 육아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가고 기억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밖에서 공 한 번 차고 놀아주는 것보다 힘이 된다. 돈도 잘 벌고 집안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완벽한 아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혼자가 아님을,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 [독박(讀博) 육아일기](9)잘 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독박(讀博) 육아일기](9)잘 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초보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회사의 많은 워킹맘 선배들은 도대체 어떻게 10년, 20년 일을 해내고 있는 걸까. 무한한 존경심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워킹맘을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애초에 슈퍼맘이 되겠다는 욕심은 부리지도 않았지만, 요즘 나는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남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회사로 돌아온 지 70여일. 매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싶을 만큼 여유가 없다. 오전 8시 집에서 나와 9시부터 오후 7시 넘어까지 회사에서 일을 한다. 일찍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 반. 아기를 봐 주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에게 아이에게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옷을 갈아입고 9시부터 저녁 준비에 들어간다. 남편이 보통 집에 9시 반쯤 오기 때문에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밤 10시를 넘긴다. 워낙 늦게 자는 아기였지만 복직 이후로 시간이 더 늦어졌다. 씻기고 같이 책 좀 읽다가 재우면 12시가 넘는다. 아기를 눕히고 거실에 나오며 바라보는 집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제 겨우 70여 일…바닥이 드러났다 약 11주 동안 열여덟 번의 야근을 했다. 현재 있는 부서에서는 야근을 재택근무로 하게 돼 있어 복직을 하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날은 집에 6시에 와서 자정까지 일해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 야근을 하는 시간이 제일 고달프다. ‘나만 회사에 남아 야근을 한다고 할까’ 욱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 엄마가 못마땅한 아이는 심하게 보채고 안아 달라고 졸랐고, 기분이 좋아지면 식탁 위로 올라와 컴퓨터를 깔고 앉으며 마우스를 만지는 놀이에 빠지기도 했다.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가 울리기도 했다가 점점 ‘뽀로로’의 힘을 빌리는 시간이 늘어간다. 요즘에는 아기띠에 안고 억지로 잠을 재우고 안은 채로 일을 한다.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여섯 번 갔다. 세 번은 토요일 아침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서였고 나머지 세 번은 평일 퇴근 직후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감기 증상을 빨리 낫게 하기 위해서였다. 1년 동안 휴가일수는 정해져 있고, 앞으로 어린이집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리고 아이가 심하게 아플 경우 등 휴가를 써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이 기다리고 있다. 가능하면 아껴둬야 한다. 툭하면 아이 핑계를 대고 휴가를 쓴다는 뒷말을 최대한 적게 듣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맞벌이 아이라 콧물이 줄줄 흐르는 데에도 어린이집에 보냈다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식의 눈초리도 피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하루종일 남의 손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기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한밤 중에 병원에 데려갔다. 동네에 자정까지 문을 여는 병원과 약국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다음 날 아침 어린이집 가방에 약을 챙겨서 보내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하다. 다섯 번의 일요일 근무를 했다. 격주로 주말 근무를 해야 해서 출근하는 일요일은 남편이 오롯이 육아를 전담한다. 2주의 하루꼴인데 그 때마다 1시간 안팎의 ‘시댁 찬스’를 쓰는 남편이 무척 부럽다. 남편 역시 주말에 근무를 해야 한다.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서 남편은 토요일에 회사를 나간다. 세 가족이 오롯이 주말 이틀을 보낸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온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지만 사실 주말이 더 바쁘다. 주말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는 아이와 아침부터 놀아주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오후 한 시간 동안 놀이수업에 참여했다가 끝나면 나들이를 간다. 봄 햇볕을 쪼이며 꽃구경을 하고 뛰어놀 수 있도록 매주 새로운 공원을 찾아 다니고 있다. 저녁이 되면 외식을 하고 일주일치 장을 봐 들어간다. 그 때부터 남은 집안일이 또 있고, 아이가 며칠 동안 먹을 반찬과 국을 만들어야 한다. 항상 비슷한 메뉴만 만들어 먹이는 부족한 엄마라는 자책이 짓누른다. 일요 근무가 있는 한 주는 토요일에 웬만한 걸 다 해결해 놔야 하니 시간이 더 짧다. 두 달 남짓의 워킹맘 생활을 겪으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볼 때, 아이와 함께 놀아줄 때다. 그나마 좀 쉬운 것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고 가장 힘들고 하기 싫은 것은 바로 집안일이다. 원래도 꼼꼼한 성격도 아니고 집안일에 소질이 있지도 않긴 했다. 잘하려는 욕심은 아예 없다. 기본만 하려고 하는데도 왜 이렇게 버거운지 모르겠다.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청소기를 돌릴 수도 세탁기를 쓸 수도 없다. 그러나 민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아기의 발바닥이 시커멓게 변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밤 11시에 청소기를 돌렸다. 다음 날 입을 속옷까지 똑 떨어졌을 때 밤 10시에 세탁기를 돌리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아끼던 아기 옷 하나를 버렸다. 해외에 사는 친정엄마가 사서 보내준 것이다. 젖은 수건들 속에 잘못 겹쳐져 있다가 그만 옷에 곰팡이가 피었다. 난생 처음 보는 옷에 핀 곰팡이가 나의 살림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한심했다. 신혼 때에는 요리도 곧잘 했지만 아기가 생긴 뒤부터 매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다. 그나마 복직한 뒤로 점심식사는 회사에서 해결을 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복직한 날에는 기념으로 근사하게 저녁상을 차렸다. 그러나 하루 만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체력이 바닥났다. 이모님과 교대하기 위해 서둘러 퇴근을 하다 보니 장을 볼 시간은 아예 없다. 이모님이 빨리 오라고 닦달을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늦어도 흔쾌히 양해를 해주시는 좋은 분인데도 이상하게 집 근처 슈퍼마켓에 들어갈 여유조차 없다. 회사에서 지하철역까지 종종 걸음으로 가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퇴근길이 아침보다 더 조급하다. ●가장 쉬운 것은 회사 일, 가장 힘든 것은 집안일 복직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짜장면, 피자, 치킨, 찜닭에 떡볶이까지. 온갖 종류로 시켜먹다 보니 배는 채웠는데 몸이 퉁퉁 붓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반찬을 배달시키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진 반찬을 보며 든든함을 느꼈지만, 그걸 꺼낼 때마다 남편에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게 된다. 괜한 부담감 때문에 저녁 9시 반, 10시에 밥도 못 먹고 퇴근하는 남편에게 저녁 좀 먹고 오라고 바가지를 긁기도 했다. 혼자서는 김치 한 접시로도 밥을 뚝딱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남편의 저녁식사는 아무리 불량주부라 해도 신경이 쓰인다. 친정엄마 옆에 살면서 반찬을 얻어다 먹는 친구가 제일 부럽다. 내 입맛에 딱 맞는 엄마가 해주는 밥, 그걸 먹으면 나도 더 힘내서 버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남편이 가부장적이어서 집안일을 아예 안 한다거나 반찬 투정을 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자상한 성격에 육아와 집안일을 성심성의껏, 최대한 나눠서 하려고 한다. 문제는 아침 6시에 집에서 나간 뒤 칼퇴근을 해야 겨우 저녁 9시에 집에 돌아온다는 것. 자는 시간 빼고 집에 있는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하다. 가끔 ‘하숙생’이라 불러준다. 우리집 ‘하숙생’은 청소기 돌리기와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를 전담해서 하고 나머지 집안일을 돕는다. 꼼꼼해서 나보다 더 집안일을 잘 하지만 나는 항상 부탁을 하는 입장이 된다. “다른 것 다 안 해도 되니 청소만 제때 해 달라”고 수없이 당부했지만, 주말마다 “미안한데 청소기 좀 돌려줄래요?”라고 말해야 움직인다. 남편이 알아서 집안 정리를 싹 해줘도 내 입에서는 꼭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통계청의 사회조사 가운데 맞벌이 여성의 가사분담 실태 조사 결과, 부부가 공평하게 가사 분담을 한다는 응답은 19.3%에 그쳤다. 절반 이상(52.9%)이 부인이 주로 하고 남편이 도와주고 있다고 답했다. 맞벌이이면서 가사까지 부인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경우도 25.7%나 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서는 영아기(0~2세) 자녀를 둔 취업여성의 평일 평균 육아시간이 4.2시간으로 조사됐다. 남편은 1.8시간이었다. 나도 하루를 ‘풀타임’으로 일하고 돌아오지만 가사노동·육아 시간의 양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아예 집에 머무는 시간부터 다르다. 남편의 왕복 4시간 되는 출퇴근 시간은 나에게도 고역이다. 다음에는 회사에서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집값, 생활비를 생각하면 일을 그만둘 엄두는 감히 낼 수가 없다. 누구는 일하면서 대학원도 다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운동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등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하고,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며 산다. 그런데 나는 어느 하나 똑부러지게 잘하는 것이 없이, 아둥바둥 사는데도 늘 시간이 빠듯하다. 나의 문화생활이라고는 밤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보는 게 전부다. 영화관에 간 것은 지난 2013년 6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2주 전 주말 남편과 TV로 ‘국제시장’을 본 것이 올해 첫 영화였다. 지난해 초 ‘겨울왕국’을 집에서 본 뒤로 1년 만의 영화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앉아서 일을 하고 운동할 시간은 아예 없으니 몸무게가 5kg이 늘었다. 임신 중에 쪘던 20kg이 휴직 기간 1년 동안 다 빠졌는데, 한 달 만에 5kg이 불다니. 그만큼 육아가 힘들었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매일 출퇴근길에 사람이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 서서 외국어 학습지를 푼다. 하루 중 내 머리에 뭔가를 채워넣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게 문제이지만. 기저귀나 유아용품을 급히 사야할 때는 스마트폰으로 장을 봐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오롯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사실 얼마 안 된다. 당장은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아이가 아프지 않고 좋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밝게 자라주고 있는 것에만 감사하려고는 한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이 나중에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는 것이 유일한 희망사항이다. 그래도 자꾸 위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몸은 너무 고되고 기껏 번 돈은 절반 가량을 이모님에게 보내야 한다. 회사에서도 지금은 ‘애 키우는 여사원’으로밖에는 딱히 존재감이 없다. 동기나 후배들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집은 늘 엉망이고,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지만 제대로 티가 나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잘 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무엇보다도 지난 1년 동안 내가 아이의 모든 ‘처음’을 함께 했는데, 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가장 아쉽다. 지난달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아이가 이모님과 처음 놀이터에 가서 놀았다. 이모님이 시소에 탄 아이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울컥했다. 그날 밤 깜깜하고 텅 빈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 같이 그네를 탔다. 요즘 들어 말문이 트이려고 온갖 예쁜 짓을 하는 아이다. 과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아이 얼굴이 끊임없이 고민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유리천장 지수’가 OECD 국가들 가운데 무려 꼴찌라고 한다. ‘대다수의 워킹맘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겠지.’ 육아카페에 올라오는 직장맘들의 애환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갖고 공감을 하며 지낸다. ‘그래,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겨 매일 시댁에 가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것보단 낫지. 집안일에는 손도 안 대고 매일 늦게까지 회식을 하는 남편들보단 낫지.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이모님께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아기가 아직 어린 지금이 그나마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유치원, 초등학교, 그리고 이후까지. 고비마다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기를. 오늘도 문 앞에서 따라가겠다고 신발을 신으려는 아이를 뒤로하며 의지를 다졌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 [길섶에서] 전주 콩나물 국밥/문소영 논설위원

    술을 푼 다음날 해장에 좋은 콩나물 국밥은 ‘전국구’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주비빔밥과 함께 전주의 명물 음식이다. 며칠 전 서울 마포에서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달걀을 퐁당 넣은 펄펄 끓는 ‘전주 끓이는 식 콩나물 국밥’에 익숙했지만, 호기심 천국답게 ‘전주 남부시장식~’을 주문했다. 달걀 반숙이 따로 제공되는 따뜻한 온도의 국밥은 급하게 먹느라 입천장을 데지 않아서 좋았다. 송송 썰어 넣은 청양고추 덕에 매콤했다. 전주서 유명한 ‘현대옥’의 콩나물 국밥이었다. 모주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 국밥은 6·25전쟁 전부터 있었단다. 막 시집온 새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저녁상을 물리면서 밥 한 그릇을 부뚜막에 놓아 두라고 일렀다. 새벽에 시아버지는 그 밥을 들고 전주 남부시장으로 가 대형 가마솥에서 막 퍼올린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먹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밥이 귀한 시절이라서 각자 챙겨 온다. 마른 붉은 고추는 가마솥 뚜껑 위에서 더욱 바짝 말라 가는데, 즉석에서 부순 이 고춧가루를 넣어 먹으면 맛과 향이 더 좋았다고 한다. 어느 날 새벽 전주 남부시장에서 이 콩나물 국밥을 먹고 싶다. 이젠 현대옥인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新 국토기행] 맛:안성맞춤 향토음식

    [新 국토기행] 맛:안성맞춤 향토음식

    ‘안동국시, 안동헛제삿밥, 안동찜닭, 안동식혜, 안동간고등어, 안동문어, 안동소주 ….’ 안동에는 이름만으로도 전국적 인기를 끄는 토속음식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안동찜닭과 안동헛제삿밥이 특히 인기다. 안동찜닭은 매콤한 맛이 특징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국민 음식’이 됐다. 1970년대 후반 안동 구시장 골목 5곳의 식당에서 출발한 안동찜닭은 명성을 타고 지금은 전국에 전문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안동찜닭은 조각을 낸 닭에다 당면과 양배추, 파, 시금치, 당근, 감자 등 신선한 각종 채소를 듬뿍 넣어 간장소스에 졸여 낸다. 담백하면서 매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어른 3~4명이라도 찜닭 한 마리를 먹은 뒤 밥을 볶아 먹으면 든든하다. 이름은 찜닭이지만 사실상 닭을 찌는 게 아니라 300도가 넘는 고열에 채소와 함께 조리는 방식이다. 원조격인 안동 구 시장 찜닭골목에는 현재 ‘구시장 찜닭협회’ 소속 24곳의 식당들이 찜닭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이다. 식당들은 공존을 위해 모든 가게의 메뉴부터 가격, 음식 재료에 접시 크기까지 통일하는 공정한 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제각기 차별화한 생존전략이 있다. 이색 공간을 활용해 손님의 발길을 잡는가 하면 기동력을 앞세운 배달 서비스, 남다른 맛을 내는 양념의 비결 등이 숨겨져 있기 때문. 유진찜닭과 현대찜닭, 중앙찜닭, 위생찜닭, 김대감찜닭 등이 유명하다. 갖가지 제철 나물을 하얀 쌀밥 위에 놓고 비벼 먹는 헛제삿밥도 안동의 또 다른 대표 음식이다. 이 음식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양반들이 제사가 없는 날에도 하인들에게 ‘오늘 밤에 제사가 있으니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라’고 일러두고는 맛난 제삿밥만 즐겼다. 이를 본 하인들이 ‘제사는 지내지 않고 제삿밥만 먹는다’고 해서 이름 붙였다는 것. 또 다른 유래는 예부터 서원이 많아 크고 작은 회합이 끊이지 않았던 안동 지역에서 유림과 유생들을 대접하기 위해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려낸 게 바로 제사음식을 그대로 본뜬 헛제삿밥이었다고. 헛제삿밥은 실제 제사에 쓰이는 제수음식과 똑같이 각종 나물과 미역 부각, 상어고기, 가오리, 문어 등의 산적에다 육탕, 어탕, 채탕의 삼탕을 고루 섞은 막탕이 함께 나온다. 간장, 깨소금, 참기름 외에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무나물, 콩나물, 토란 등이 친환경 나물 재료인 관계로 건강과 다이어트에도 좋다. 후식으로 제공되는 떡과 과일, 식혜도 일미다. 안동댐 옆 ‘까치구멍집’과 ‘맛50년 헛제사밥’ 식당이 헛제삿밥 음식의 원조격이다. 31년 경력의 까치구멍집 주인 서정애(62)씨는 “제사 음식답게 재료를 고급으로 쓰고 제사를 지내는 정성으로 만드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며 “외국인 손님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노동시간 연장 유감/문소영 논설위원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 전 의원이 18대 대선 야당 경선에서 제시한 정치철학이었다. 2012년 7월에 동명의 책도 냈는데 출판사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단순히 노동 단축이 아니라”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내가 잘살기 위해서 누군가는 못살아야 한다는, 내가 옳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는 이분법을 반대하는 가치”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아버지 세대가 고단한 야근에 치어 가족과 제대로 된 저녁상을 받아보지 못한 탓에, 은퇴하고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외면받는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자주 봤던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저녁이 있는 삶’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까지! 과연 한국서 가능할까. 너무 빠른 거 아니냐? 하고 회의했다. 초여름 해거름에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에 된장국의 구수한 냄새와 갓 지은 밥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지만 “야근할 사람들, 저녁 먹으러 갑시다”라는 부장의 재촉에 현실로 돌아오곤 했으니 말이다.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지난해 1인당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34개 국가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원래 1위의 자리는 1980~2007년까지 27년간 한국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다가, 2008년에서 간신히 멕시코에 넘겨준 것이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이다. 독일은 최저 1388시간을 일하고, 노르웨이는 1408시간, 러시아도 1980시간 일할 뿐이다. 미국은 1788시간, 일본도 1735시간이다. 또 OECD 평균 노동시간은 2012년보다 2013년에 3시간이 줄었다. 한 국가의 높은 생산성이 노동시간에 달려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시간 감소가 세계적 추세라는 의미다. 담뱃값 인상만 선진국형이 아니라 노동시간 축소도 선진국형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추세에 역행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 ‘노동시간은 더 길게, 야근 수당은 더 적게’에 초점을 맞춰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단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개정안은 현행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무 한도가 주당 20시간이 돼 법정 근로시간이 현행 주 52시간에서 주 60시간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근로시간은 늘지만, 휴일근로수당은 현행 통상임금의 200%에서 150%로 줄인단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노동 착취냐’는 비난도 쏟아진다. 노동력을 쏟아붓는다고 생산력이 향상하지 않는 시대라 창조경제가 필요한 것 아니었나. 21세기의 가장도 ‘저녁이 없는 삶’을 산 탓에 미래에 가족에게 외면받는 불우한 삶을 살아야 하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정진곤의 살며 생각하며] 아제 아제 바라아제

    [정진곤의 살며 생각하며] 아제 아제 바라아제

    오늘 대학교 은사님이신 김종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전날이 91세 생신이셔서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함께 하시고, 평소처럼 약주를 하신 후 사모님과 함께 잠자리에 드셨다. 매일 아침 5시 30분에 항상 동작동의 국립묘지 주위를 산책하셨기 때문에, 그 날도 사모님께서 산책을 나가자고 깨웠지만 기척이 없으셨다.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살아계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복을 많이 받으셔서 부러움의 대상이셨는데 세상을 떠나실 때도 어찌 그리 잘 가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대학을 다닌 60년대말과 70년대초만 해도 교수님들 댁에 세배를 다녔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집에서 사셨기 때문에 서울시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교수님들댁을 찾아 다녔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이어서 돈을 모아 사과 한 박스들고 가서 인사드리고 덕담을 나눴다. 대부분 교수님댁에서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술이나 한 잔 얻어먹고 바로 나왔다. 우리도 갈 길이 바빴지만, 반갑게 맞이해주는 교수님들과 사모님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찾아갔지만, 사모님을 한번도 뵙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교수가 되어 제자들이 연초에 집에 찾아오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당시의 교수님들과 사모님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새해 첫날부터 제자들을 집에서 맞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소홀히 대할 수도 없고 새해에는 시댁식구들 맞이할 준비에 여유가 없는 마누라에게 내 손님상까지 차려달라고 부탁을 해야만 하고, 제자들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이었다. 이 때문인지 80년대 부터는 음식점에서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신년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집에서 손님을 맞이할 번거로움을 피하게 된 스승님들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세배를 다녀야만 하는 수고를 덜게 된 스승과 제자들이 묘안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신년 때는 교수님들께 새해인사를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갔다. 세배꾼들이 저녁때 모이는 곳은 어김없이 김 종서 선생님댁이었다. 항상 선생님과 사모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주셨기 때문이다. 방마다 그리고 거실까지 손님들로 가득해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미안한 생각도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저녁늦게까지 놀았다. 선생님은 방마다 찾아다니시면서 제자들에게 술을 따라 주시고, 제자들이 주는 잔도 사양하지 않고 받으셔서 해마다 새해만 되면 술이 취하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사모님은 신정연휴 3일 동안 그 많은 세배꾼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대접하고 나면 며칠동안 몸살이 나서 앓아 누우셨다고 한다. 선생님도 새해에는 주독 때문에 며칠간 고생하셨다고 한다. 교수님과 사모님은 금슬이 매우 좋으셨다. 사모님은 언제나 밝게 웃으시고 말씀도 잘하셨지만, 선생님을 쳐다 보는 사모님의 눈에는 항상 존경과 사랑이 넘쳐났다. 사모님은 항상 선생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셨고, 선생님은 사모님을 아끼고 사랑하셨다. 언젠가 약간 취기가 오르신 선생님은 약주를 좋아하셔서 술집도 많이 다니셨지만, 적어도 결혼을 하신 연후에는 단 한번도 다른 여자와 함께 자본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사모님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3남 2녀의 자식들도 한결같이 부모님을 존경하고, 서로 우애가 깊었다. 사회적으로도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존경을 받고 살고 있다. 복을 많이 받으신 분이셨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시는 선생님께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였으나, 한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으셨다. 평생동안 156쌍의 결혼식 주례를 하셨다. 선생님은 주례를 승낙하시면서 항상 아무것도 가져올 것이 없고, 나중에 결혼식 사진만 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들마다 너무도 반갑게 승낙을 하셔서 선생님은 주례를 즐겨하시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제자들 주례를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결혼식은 대부분 주말에 하기 때문에 주례가 있는 주말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며칠전부터 주례사를 준비해야 하고, 최소한 옷도 미리 세탁을 해야만 했다.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30분전에는 예식장에 도착해야 했다. 주례를 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내가 주례를 해보니 그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누구든 주말에는 자기시간을 가지고 싶어한다. 이 점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에서 쉬거나 좋아하시는 등산을 하거나 금슬좋은 사모님과 함께 주말을 보내고 싶어하셨을 것이다. 제자들이나 아는 사람이 주례를 부탁했을 때마다 기꺼이 즐겁게 승낙하신 것은 선생님이 어렵고 힘드시더라도 다른 사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만약 선생님께서 불편해 하시면 부탁한 사람이 죄송하고 매우 당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항상 호탕하시고 모든 일에 감사하셨다. 누구를 만나든 항상 즐겁고 기쁘게 맞이해주시고, 격려 해주셨다. 잘 되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함께 즐거워하시고 좋아하셨다. 어려운 일을 당한 제자들에게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안타까워 하셨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를 할 때는 아무 말없이 듣고만 계시다가 “그 사람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 우리가 잘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선생님은 ‘不朽不淨’이니 더럽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깨끗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니 우리들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말고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말씀하시고 싶어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졸업하신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신후에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수십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교사론’을 가르치실 때 오랫동안 교사를 하시면서 단 한번도 학생들에게 “조용히 해. 떠들지마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때 수업시간에 떠들었다고 벌을 서거나 매를 맞은 기억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은 선생님이 수업을 흥미없게 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학생들이 떠들면 학생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수업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살펴봐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귀감이 되는 삶을 사실 수 있었던 것은 본래부터 훌륭한 성품을 타고나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선생님은 날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셨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시면서 항상 ‘반야심경’을 외우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절에 가셔서 오전 내내 참선을 하시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공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떠나시던 날도 여느 날처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비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암송하시면서 극락으로 가셨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의 어질고 자상하신 모습을 뵙고,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 주부 포스 효리, 저녁상 차리다 “엄마 생각나”…울컥

    주부 포스 효리, 저녁상 차리다 “엄마 생각나”…울컥

    제주도 소길댁 이효리가 11일 블로그에 저녁상을 차리며 엄마를 그리워했다. 이효리는 블로그를 통해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밥 차리는 소길댁.. 매 끼니마다 뭘 먹어야하나.. 이거 되게 어려움.. 엄마 생각남.. 오늘의 메뉴는 텃밭에서 딴 채소들과.. 고사리와 지난 오일장에서 산 옥돔~~그리고 된장찌게.. 다시마랑 뒤포리로 국물을 내고 보글보글...”라는 글과 함께 자신이 요리하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현재 이효리는 이상순과 결혼해 제주도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이효리 블로그 /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은정 “남편 윤기원, 연애 때부터 나를 무시해” 폭탄 발언

    황은정 “남편 윤기원, 연애 때부터 나를 무시해” 폭탄 발언

    배우 황은정이 “9살 연상인 남편 윤기원이 연애 때부터 무시했다”는 폭탄 고백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황은정은 지난 19일 방송된 MBN 예능 프로그램 ‘신세계’에서 8살 연상인 남편에게 30년 동안 무시 당하며 살아온 아내의 사연을 접한 후, “나도 남편 윤기원과 아홉 살 차이가 난다. 또 남편과 연기자 선후배 사이다 보니, 연애시절부터 엄청난 무시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황은정은 “하루는 남편이 ‘너 방송인이야, 연기자야? 도대체 정체가 뭐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방송과 연기 모두 다 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래서 네 연기에 깊이가 없는 거다. 네 위치는 지금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더니, ‘네가 뭔데 연예인인 척하냐’며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 당시엔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독기를 품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말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황은정은 또 “얼마 전 남편에게 아는 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자신의 섭외 전화라 생각해 반갑게 통화를 하더라. 그런데 알고 보니 준비 중인 감독님이 옴니버스 드라마에 나를 섭외하려던 것이었다. 남편 윤기원의 무시 덕분에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드라마 캐스팅 전에는 찌개를 맛있게 끓여 저녁상을 차리고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요즘은 촬영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고, 남편의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 남편이 내 소중함을 조금씩 느껴가는 것 같더라. 가끔은 남편들에게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MBN ‘신세계’는 이날 시청률 3.175%(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입가구 기준)를 기록, 종편과 케이블 모든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시청률 3%를 넘으며 동시간대 전체 1위 및 케이블 일일 순위 1위 자리를 지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소영 시시콜콜] 페미니즘 살짝 내비친 손명순 여사 전기

    [문소영 시시콜콜] 페미니즘 살짝 내비친 손명순 여사 전기

    “니, 이리 온나!” 동갑내기이지만 늘 존댓말로 공손한 부인이 저녁상을 물린 직후 이렇게 반말로 내지르면 꼼짝할 수가 없었단다. 거산(巨山)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그림자 내조의 달인’ 손명순(85) 여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부생활 이야기다. 손 여사는 YS의 고집을 반드시 꺾어야 할 때나, 중요한 약속을 받아낼 때 이렇게 반말로 담판을 지었다. 철없는 야당 정치인 시절, 확인 안 된 여성 추문들이 들려올 때도 ‘젊은’ 손 여사는 저녁상을 치운 뒤 ‘반말 담판’을 지었단다. “니, 그리해도 좋은데, 밖에서 애만 만들어 오지 마라. 니, 꿈이 대통령 아이가.” 손 여사가 보기에 ‘경상도 섬 사나이 고집쟁이’의 기질을 지닌 YS였지만, 작심한 ‘반말 담판’에는 귀를 기울였단다. ‘상도동 멸치 시래깃국’으로 정치부 기자들에게 사랑받았던 손명순 여사가 이런 일화들이 담긴 YS와 함께한 60년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아 6월 말 내놓는다. 영부인의 전기는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이어 세번째다. 구술·녹취해 작성했다. ‘여성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이화여대 약학대를 나왔지만, 현모양처의 전형이었던 손 여사의 전기에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하지만, 27살에 여당인 자유당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출발해 이승만의 3선 개헌을 반대하며 야당 의원으로 선회한 YS,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과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YS의 삶을 돌보는 아내의 삶도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다. 김정남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YS의 민주화 투쟁에서 손 여사의 내조가 필수적”이었다고 했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으로 상도동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나눔·배려의 따뜻한 마음들이 오갔다는 것이다. 김 전 수석은 “YS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허술하고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의미다. ‘멸치잡이 선장’ 댁 도련님인 YS의 돈 관념은 희박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굶는다는 것. 결국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2남3녀의 생활을 책임지고, 상도동 시래깃국과 쌀을 장만한 사람은 손 여사였다. 손 여사가 그림자 내조를 벗어던질 때는 지원유세로 바쁜 YS를 대신해 지역구(부산 서구)에서 선거운동할 때였다. 유권자들이 “영샘이는 코빼기도 안보이고~”하는 불만을 터뜨리기 전에, 불문곡직하고, 먼저 90도로 공손한 인사를 했다. YS를 둘러싼 스캔들, 아들과 가족이야기, 청와대 생활과 1997년 환란 등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작가의 설명이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이름 모를 食口에게… 매일 밥상 차려주는 시인

    이름 모를 食口에게… 매일 밥상 차려주는 시인

    둥글넓적한 소반에 문어를 넣고 반달로 썬 애호박이 수제비와 어우러져 한 그릇, 뒤에 찐 채소에 싼 주먹밥과 쌈장, 갓김치 한 보시기가 놓여 있다. 찐 채소로 싼 주먹밥의 형태와 놓여 있는 모양새가 정갈하고 여간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밥상의 색깔은 하얗고 푸르고, 붉다. 어느 날은 조개 애호박국, 강낭콩밥에 구운 생선 두 마리, 갑오징어 숙회 그리고 진도홍주가 밥상에서 석류알처럼 붉게 빛난다.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수저는 한 벌, 다시 말해 독상을 받았다. 경상남도 남해 미조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시인 오인태(51)의 저녁 밥상이다. 사택에 혼자 사는 그는 자신을 위해 정성껏 상을 차린다.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자신이 직접 차린 정갈한 저녁 밥상을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올려 낯선 친구들과 그림 속의 밥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밭일에 바쁜 어머니가 얼른 솜씨를 부려 순식간에 차려낸 것 같은 소박한 이 밥상에 사람들은 ‘좋아요’를 800~1000개씩 눌러댄다. 함께 올리는 그의 시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에게는 참 할 말이 없다.// 위로 누나 넷으로 늦본 맏이 그늘에 묻혀/ 입는 것 하나 제대로 네 몫으로 산 것 없고/ 먹는 것 하나 따뜻하게 네 것으로/ 챙겨진 일 없던/ 아우야// 형이 네가 못 나온 고등학교를 나오고/ 값싼 교육대학이나마 졸업한 것은/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리밥으로 덮은 형의 쌀밥 도시락과/ 쌀밥으로 덮은 네 보리밥 도시락의 차이를/ 묵묵히 눈물로 삼켰을 아픈 인내와/ 희생의 대가임을 이 형인들 모를까// 네가 책가방보다 또래들의/ 주먹다짐에나 어울리고/ 어렵게 입학한 공고를 몇 달 만에/ 네 말대로 때려치우고 나온 것도/ 아우야// 이 형은 네 속 깊은 마음을/ 두려움으로 간직하고 있다.” 밥상과 함께 소개한 오인태의 첫 시집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1992년)에 수록된 ‘아우에게’ 중의 일부로, 고단한 1960~70년대를 보낸 중년 아저씨 아줌마의 눈물을 찔끔거리게 했다. 오인태는 지난 29일 전화통화에서 “‘아우에게’는 우리집 가족사죠. 제게는 ‘고흐의 테오’ 같은 아우가 있습니다. 1980~90년대는 리얼리즘의 시대였고, 나의 가족사에 문학성을 덧입혀서 쓴 시들이 나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밥상에 대해서는 “혼자 있을 때, 혼자서 쓰는 물건,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소홀하기 십상인데 ‘내 스스로 존중하기 위해’ 격식 있는 밥상을 차리는 것이죠. 또 실제로 혼자 먹지만 친구들과 밥상을 나누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담론 생산에 열을 올렸던 시인 오인태가 ‘밥상의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였다. 정치이야기에 관심이 떨어졌다. 두 번째 시집이 ‘혼자 먹는 밥’(1998년)이고, 블로그 이름도 ‘시야, 밥먹고 놀자’로 지었던 그는 이제 사람들에게 밥을 챙겨 주고 싶었단다. 그는 1년에 봄·가을로 1박2일 동안 사람들을 불러모아 밥을 지어주고, 밥을 사주곤 하는 행사를 10년째 하고 있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 ‘식구’(食口)이다. 어떤 공동체에 자신이 성원임을 확인하는 것이 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밥 먹는 행위는 삶을 같이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요즘은 다들 바빠서 식구들끼리도 같이 밥을 먹지 않잖아요. 공동체가 깨진 것이죠. 밥을 같이 안 먹고 뿔뿔이 흩어져 혼자 밥을 먹으니까, 젊은이들이 밥 먹는 행위를 ‘흡입한다’라고 하지 않겠어요. 자동차에 휘발유를 집어넣듯이 그저 밥을 에너지원으로만 생각하는 것이죠.”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상호부조’라고 했다. 댓글도 달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밥상’이지만 그가 차려내는 밥상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리 땅에서 난 재료인지 원산지를 확인하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 시집 ‘별을 의심하다’(2011년)을 내고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2012년)을 펴낸 오인태는 “올해 어린이 문학에 집중하고 싶고 동화도 쓰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저녁 밥상을 ‘밥상의 인문학’ 수준으로 더 격상시키겠다니 기대가 크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홍승 스님이 말하는 봄나물 요리법

    홍승 스님이 말하는 봄나물 요리법

    사찰음식은 ‘어머니 밥상’이다. 멀리 가지 않고 뒤란이나 뒷산에서 푸성귀 뜯어 내놓던,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할 때’ 음식이 그대로 올라온다. 봄은 어느 집이든 어머니 밥상을 가능하게 한다. 가까운 시장에 나가면 싱싱한 나물이 지천이다. 서너 가지 사다가 조물조물 무쳐 산채 저녁상을 마련해 보자. 나른한 춘곤증이 확 달아난다. 홍승 스님으로부터 봄나물 맛있게 무치는 몇 가지 지혜를 들어보았다. 사찰음식은 생 겉절이 등 날로 먹는 것이 기본이며 말려서 볶거나 데쳐서 무친다. 된장과 참기름만 있어도 되는 간단 요리법이다. 서양 샐러드가 설렁설렁 양념을 ‘묻히는’ 것이라면 우리 겉절이는 손으로 ‘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손끝에서 음식 맛이 나온다고 여겼다. 절 음식은 오신채(부추, 마늘, 파, 달래, 흥거)를 안 쓴다. 직접 담가 맛이 잘 든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기본이다. 여기에 참기름, 통깨, 소금만 있으면 모든 요리가 가능하다. 나물을 무칠 때는 재료의 특징을 알면 좋다. 기본적으로 향이 강한 재료는 양념을 강하게 쓴다. 취나물은 데친 두부를 섞어 같이 무치면 좋고, 냉이는 된장, 어수리는 초고추장, 부지갱이는 된장과 고추장, 씀바귀는 초고추장에 무친다. 참나물은 간장 간으로 충분하다. 이 봄나물들을 오래 보관하려면 간장과 식초, 설탕, 다시마물을 이용하여 장아찌를 담근다. ‘땅두릅 강정’ 이렇게 만들어보세요 -재료: 땅두릅 300g, 다진 청홍피망 2큰술, 잣 1큰술, 밀가루 2분의1컵, 녹말가루 2큰술 -양념소스: 고추장 1큰술, 물엿 3큰술, 진간장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시마물 2분의1컵 -만들기 1. 땅두릅을 깨끗이 손질하여 밑동만 3㎝ 길이로 자른 다음 녹말가루를 골고루 묻혀 놓는다. 2. 밀가루와 전분가루로 튀김옷을 만들어 땅두릅에 묻혀 끓는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다. 3. 두툼한 냄비에 고추장, 물엿, 다시마물을 넣고 윤기 나게 조린다. 4. 조림장에 튀겨낸 땅두릅을 넣어 피망과 잣을 넣고 버무려 참기름을 넣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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