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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나라밖에서 찾는 한국의 가능성/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나라밖에서 찾는 한국의 가능성/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필리핀 민다나오 섬 다바오시의 ‘한·필리핀 직업훈련학교’. 교정에 들어서니 한국 사람임을 알아채고 “안녕하셔요”, “한국, 사랑해요”라며 낙천적인 표정의 학생들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교정 중앙의 국기게양대엔 필리핀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이 학교의 후원자다. 다바오시 부근 ‘코리아-필리핀 미곡종합처리장’에서도 펄럭이는 태극기와 코이카의 지원을 알리는 표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아와 산모를 위해 특화된 ‘카비테 한·필리핀 친선병원’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다. 마닐라 근교에 있는 이 병원 관계자들의 친근감도 남달랐다. 한국 정부의 필리핀에 대한 2011~2012년 공적원조는 일본, 호주, 독일 등에 이어 6위였지만 한국에 대한 친근감과 기대는 그것을 훌쩍 넘었다. 자국보다 못살던, 최빈국이 몇 십년 만에 민주화와 경제번영을 이뤄낸 역동성과 성취. 식민지 경험을 거쳤다는 동병상련의 유대감. 식민지배를 하던 선진국들과는 뭔가 다를 것이란 기대감 등등. 그들 눈에 한국은 그렇게 비쳐지고, 기대되고 있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에서도 현지인들은 한국을 그렇게 여겼다. 우리에게서 자신들의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했고, 다른 선진국들과는 다른 유대감과 편안함을 확인했다. 그들은 우리와 더 많은 협력을 기대했다. 지원 규모의 확대를 넘어서 전쟁 잿더미 속의 최빈국에서 일어섰던 그 의지와 그 역사를 따라하고 배우고 싶어했다. 미얀마 중부 건조지대 바간에서 ‘산림관리사업’을 담당하는 코이카의 조성훈 대리는 “사막화를 막고, 농촌개발의 기초를 닦는 이 일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햇볕에 현지인처럼 그을린 30대 미혼의 이 코이카 직원은 미얀마 정부와 지역주민의 호응에 세월도 잊은 듯했다.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 안에 코이카가 세운 인적자원개발센터(HRD)는 한국어와 한류 확산의 거점이 됐다. 센터 안에선 젊은 캄보디아 수재들이 한국어와 정보기술(IT)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다. 원조해 준 뒤 최종 결과만 감독하는 다른 나라들의 방식과는 달리 프로젝트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인들이 참여해 관리하고, 자원봉사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인과 함께 호흡하며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식 방식은 이견 속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동남아 공적원조 현장은 우리가 그동안 유형의 수출을 통해 부를 이룩했다면 이제는 원조와 봉사, 협력을 통해서 국가적 매력과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쌓고, 국가 브랜드를 끌어올릴 때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굴뚝산업’으로는 성장 한계에 부닥친 한국이 지속적인 번영과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그러하고, 한국의 성공 역사를 배우려는 국가들의 필요와 요구에 화답하고 조응하며 공존하는 길이기도 하다. 개발 원조는 단순히 남에게 주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질적 성장의 계기이며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과정이고, 한국인의 삶과 생존의 공간을 넓혀나가는 작업이다. 공적원조의 과정이 나만 생각하고 내 살길만 찾도록 가르쳐 온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신선한 촉매제이자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jun88@seoul.co.kr
  • 잿더미서 화재 원인 규명… “시민 안전 최우선”

    잿더미서 화재 원인 규명… “시민 안전 최우선”

    “전문 분야를 찾고 싶었습니다. 힘든 일이라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절대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서울 서대문소방서 진승희(37) 소방장은 내근으로 돌아선 지 8년 만에 다시 화재 현장으로 복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03년 1월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그는 현장 출동요원으로 활동하다가 2008년부터 내근부서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일 ‘119의 꽃’으로 불리는 화재조사관 업무를 시작했다. 진 소방장은 21일 “화재로 생긴 잿더미 속에서 작은 단서를 찾아 화재 발생 순간을 거꾸로 추론하는 일이 화재조사관의 주된 업무”라고 말했다. 화재조사관은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화재 현장을 둘러보며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감식하는 활동을 한다. 진 소방장은 지난해 또 다른 여성소방관과 함께 서울지역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화재조사관 자격시험에서 최종 합격했다. 다른 합격자가 화재조사관 배치를 포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의 여성 1호 화재조사관이 됐다. 진 소방장은 화재조사관이 단순히 현장에 있는 증거만 찾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처럼 방화범의 심리라든가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심리를 분석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정부에서도 화재조사관의 업무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 화재 원인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는 조사관이 되면 화재 진압 대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씨줄날줄] 방화광(狂)과 분노사회/서동철 논설위원

    “불을 확 싸질러 버리고 싶다”는 표현에서는 극도의 복수심이 읽힌다.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상대가 가진 것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상대가 가진 것이 활활 타오르다 폭삭 주저앉는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더욱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병적 심리가 현대 사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만 펼쳐도 수많은 방화(放火)의 사례가 등장한다. 인명 피해가 수반된 방화는 참형이나 교형에 처해진 사례가 적지 않았고, 특히 궁궐의 화재는 실화라 하더라도 극형이 논의되곤 했다. 중국 명나라 기본 법전으로 조선왕조가 준용한 ‘대명률’(大明律)에 그렇게 명시돼 있는 까닭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방화를 저지른 모습이 보인다. 단종 2년(1452)에는 의금부 문서고에 불이 난 사건에 현상(懸賞)하여 범인을 수배했고, 광해군 9년(1617)에는 공조의 담장 3곳에 불을 지른 자에 치죄를 청하기도 했다. 인조 23년(1645)에는 순천부의 별시 무과 초시에 낙방한 사람들이 시험장에 난입해 불을 지르자 죄를 묻겠다며 보고서를 올린 기록도 남아 있다. 특정인에게 원한을 갖거나, 재물을 노린 방화로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례도 보인다. 그런데 누가 죽어도 좋다는 식의 ‘묻지마 방화’는 적어도 실록에서는 찾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른바 다중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방화의 이미지는 1930년 작가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부터 극도의 비정상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밝게 빛나는 불꽃이라는 광염(光焰)을 미쳐 날뛰는 불꽃이라는 광염(狂炎)으로 비틀었으니 작품의 분위기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병리 현상을 자극하는 원인 물질로 불의 존재를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직설적으로 소개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방화를 저지르는 행위를 충동조절장애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어느 사회에도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멀게는 대구지하철역과 숭례문 방화, 가까이는 도곡역 방화와 장성 노인요양병원의 방화 의심 사건에서 보듯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절차를 거쳐서는 풀 길이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진단이 그럴듯하다. 지금이 왕조 시대보다 더한 분노 사회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노 게이지’ 눈금이 치솟아 있는 것은 현실이다.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치유는 어려울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횡령액 최대 6조원 부패도 ‘대륙급’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횡령액 최대 6조원 부패도 ‘대륙급’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의 웨이펑위안(魏鵬遠) 전 국가에너지국 석탄사 부사장(부국장)의 집. 석탄 광산 개발과 기반시설 건설 등에 대한 인허가 업무를 담당한 웨이의 집안을 압수수색 중이던 검찰 수사관들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현장을 목도하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인민은행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빳빳한 현금 다발들이 곳곳에서 화수분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적발된 현금은 모두 1억 위안(약 163억 4500만원). 이 돈을 쌓아놓으면 높이 100m(33층 건물), 무게가 1.15t에 이른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서울~대전 거리인 150㎞, 펼쳐놓으면 국제표준 축구장 크기의 2개쯤 된다. 그가 부사장으로 재직한 기간이 70개월(2100일)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4만 7619위안(약 778만 3325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베이징 시민의 1인당 가처분소득(4만 321위안)보다 1.18배 많다. 압수수색에 참여한 검찰 수사관은 “현금이 너무 많아 인근 은행에서 지폐 계수기 16대를 빌려 와서 돈을 셌다”면서 “돈을 세는 과정에서 계수기가 너무 열을 받는 바람에 4대나 고장났다”고 전했다고 관영 통신사 중국신문사가 16일 보도했다. 중국의 반부패와의 전쟁이 확산되면서 관리들의 신묘(神妙)한 부정부패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금 다발이 쏟아지는 것은 예사고 황금조각상, 1000위안이 넘는 고급술 마오타이(茅台)주 등이 쏟아져 나오는 등 집안은 박물관 속에 미니 바를 꾸며 놓은 듯했다. 200억~389억 위안 (3조 2630억~6조 3465억원)을 횡령해 중국 군부 사상 최대의 비리 군인으로 꼽히는 구쥔산(谷俊山) 전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부장(중장)의 집을 공안당국이 압수수색한 결과 순금으로 만든 마오쩌둥(毛澤東) 조각상과 배, 세숫대야, 마오타이주 1만병 등 트럭 4대 분량의 압수품이 나왔다고 중국 경제전문지 재신(財新)이 전했다. 허난(河南)성 푸양(?陽)에 있는 그의 고향집은 6600㎡(약 2000평)가 넘는 대지에 옛 황궁의 건축 양식을 본떠 지은 까닭에 ‘장군부’, ‘고궁’으로 불린다. 구는 총후근부 부부장으로 승진하기 전 군의 부동산 관리와 인프라 건설을 맡았으며 특히 토지 관리 권한을 이용해 큰 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석탄사 부사장 집서 현금 163억원 발견 엄청난 규모의 뇌물을 받다 보니 중국 부패관리들은 수수한 뇌물을 숨기는 행태에도 묘안이 백출하고 있다고 신화통신 인터넷판 등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들이 많이 쓰는 방법은 베갯속을 고액권으로 채우거나 침대 밑에 현금을 깔아놓고 지내는 등 안방에 숨겨놓는다. 안방의 장롱이나 경대 뒤에 돈뭉치를 감추는 부패관리들이 있지만, 가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들킬 공산이 크다. 때문에 화단이나 화장실, 주방, 지붕 등 집안 전체를 검은돈 은닉처로 사용한다. 화장실에서는 보통 화장지 쓰레기 속에 비닐 등으로 잘 포장한 돈을 숨겨놓거나 환풍기에 숨기는 방법을 주로 쓴다. ●전 軍간부 고향에 ‘황궁’ 본뜬 집 지어 주방에 숨길 때는 생선 뱃속 등에 돈을 넣어 냉동실에 보관하거나 굴뚝 안이나 가스통, 천장 속에 비밀공간을 만들어 돈을 몰래 감춘다. 쌀통 속이나 잿더미 속에 숨기는 것은 전통적인 방법이다. 돈을 기름종이 등에 싸서 화단 속의 땅을 파 묻어두거나 화단의 나무 속을 파내 그 속에 돈을 숨기기도 한다. 정원의 작은 연못 속에 땅을 파고 묻는 방법도 동원된다. 일반인들이 더럽고 냄새 난다고 피하는 장소인 재래식 화장실 안이나 쓰레기 더미 밑에 감추는 방법도 애용된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아파트나 호화별장을 빌려 검은돈을 보관하는 등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집이 아니라서 가택수색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예 외국으로 빼돌리거나 외국은행에 입금해 놓은 관리도 적지 않고 여전히 차명계좌에 숨겨놓은 관리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폭력조직 비호 혐의로 낙마한 원창(文强) 전 충칭시 사법국장의 ‘양어장 금고’는 중국에서 널리 회자된다. 공안 당국이 양어장 바닥을 이틀간 파낸 끝에 1211만 위안의 현금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당시 돈은 기름종이와 비닐로 정교하게 포장돼 있어 물속에서도 전혀 젖지 않은 상태였다. 리궈웨이(李國蔚) 전 장시(江西)성 간저우시 도로국장은 특별히 제작한 가스통 안에 현금 100만 위안을 채워 보관하다 들통났다. 그는 별도로 280만 위안의 현금을 담은 여행용 가방을 쓰레기 더미 아래에 숨겨놓기도 했다. 쉬치야오(徐其耀) 전 장쑤(江蘇)성 건설청장은 시골 친척집에 현금을 비닐로 포장해 분뇨통과 고목 구멍, 기와지붕 속 등에 숨겨놨다가 적발됐다. 리유찬(李友燦) 허베이(河北)성 대외무역청 부청장은 휴양지 별장에 현금 다발 4744만 위안을 감췄다가 들켰다. ●양어장 바닥·지하 땅굴 등에 감춰 옌다빈(晏大彬) 전 충칭시 우산(巫山)현 교통국장은 939만 위안을 종이상자에 담아 화장실에 보관했으나 물이 스며드는 바람에 발각됐다. 리사오린(李小林) 전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시 석탄검사센터 주임은 인적이 드문 폐가를 빌려 지하 땅굴을 파 1500만 위안을 숨겼다가 적발됐다. 황이후이(黃亦輝) 전 광둥성 선전(深?)시 시민국장은 다용도실에 현금 1471만 위안과 5만 달러(약 5100만원), 1744만 홍콩달러(약 22억 9500만원)를 은닉했다가 발각됐다. 부패 관리들의 기발한 재물 숨기기 방법에 대해 “옛날에 ‘어복장검’(魚腹藏劍)이라는 고사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어복장금’(魚腹藏)이 있다”고 중국 네티즌들은 비꼰다. 중국 춘추시대 오(吳)나라 자객 전제(專諸)가 오왕 요(僚)를 죽이려고 생선 뱃속에 칼을 숨겼던 고사를 차용해 부패 관리들이 생선 뱃속에 고액권과 귀금속을 채워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khkim@seoul.co.kr
  • 北 “백령도 잿가루로…남조선 집권자 박근혜 사죄해야” 朴대통령 실명 거론 위협

    北 “백령도 잿가루로…남조선 집권자 박근혜 사죄해야” 朴대통령 실명 거론 위협

    北 “백령도 잿가루로…남조선 집권자 박근혜 사죄해야” 朴대통령 실명 거론 위협 북한이 31일 낮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에서 해상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특히 북한이 이날 발사한 수백발의 포탄 중 일부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NLL 이남 우리측 수역에 떨어진 포탄은 수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의 해상사격 훈련 중 NLL 이남 지역에 (북측 포탄) 일부가 낙탄했다”며 “우리 군도 NLL 인근 이북 해상으로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북한군 포탄 수만큼 NLL 북쪽 해상으로 대응사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현재 북한의 사격은 중지된 상태다”라면서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이며 서해 5도에서 조업 중인 어선 또한 항구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10년 8월9일에도 서해상으로 117발의 해안포를 사격했고 이 중 10여 발이 백령도 북쪽 NLL 이남 1∼2㎞ 해상으로 떨어졌지만, 당시 우리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NLL 해상사격훈련에 대비해 우리 군은 육·해·공군 합동지원세력을 비상대기 시켜 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과 해병대는 화력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고, 공군 전투기와 해군 함정도 초계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F-15K 전투기는 NLL 이남 해상에서 초계 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군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주민들은 긴급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이날 오전 8시께 서남전선사령부 명의로 우리 해군 2함대사령부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사격훈련을 한다고 통보했고 낮 12시15분 쯤 실제 사격훈련에 돌입했다. 북한이 우리 측에 통보한 해상사격구역은 백령도 NLL 북쪽에서 연평도 북쪽 대수압도 인근까지 7개 구역으로, NLL 기준으로 우리측 수역에 최대 0.5노티컬마일(0.9㎞)까지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북한이 통보한 사격지역이 비록 NLL 이북이지만 주민과 선박의 안전을 위해 사격훈련 구역으로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또 북측에는 NLL 이남으로 사격시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통보했다. 북한군은 이날 황해도 지역에 배치된 해안포와 방사포, 자주포 등을 이용해 사격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황해도 장산곶과 옹진반도, 강령반도의 해안가를 비롯한 서해 기린도, 월내도, 대수압도 등에 해안포 900여문을 배치해 놓고 있다. 해주 일원에 배치된 해안포만 100여문에 이른다. 해안포는 사거리 27km의 130mm, 사거리 12km의 76.2mm가 대표적이며 일부 지역에는 사거리 27km의 152mm 지상곡사포(평곡사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사거리 83∼95km에 이르는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NLL 북쪽 해안가에 다수 설치됐다. 백령도와 장산곶의 거리가 17km이고 76.2mm 해안포(사거리 12km)가 배치된 월내도까지는 12km에 불과하다. 연평도와 북한 강령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까지는 13km 거리이다. 한편 북한은 우리 해군이 최근 백령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한 일을 연일 거칠게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천인공노할 깡패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남측을 비난하는 각계각층의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한국 해군이 북한 측 수역을 불법 침입한 뒤 선원들을 강제로 납치해 폭행하고 귀순을 강요했다는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지난 28일 주장을 되풀이하며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매국역적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 등 적개심에 찬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수산성 양어관리국 처장이라는 인물은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남조선 집권자인 박근혜”라고 박 대통령의 실명을 부르며 “괴뢰군부 망종들의 범죄적 악행에 대해 책임지고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중앙방송도 이날 함경남도 재판소 판사를 내세워 이번 어선 나포가 “명백한 침략행위”이자 “반공화국(북한) 테러범죄”라며 해군은 “공화국 형법에 따라 무기 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해야 할 극악한 범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함경남도 변호사회 변호사 김영진은 “인권유린의 극치”라며 “남측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악선전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 공민들의 인권은 남조선 괴뢰군부 악당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라고 가세했다. 북한은 어선 나포 다음날인 이달 28일 군 총참모부가 “야수적인 만행에 대해 절대로 스쳐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것을 시작으로 29일 나포 선원 기자회견, 30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매일같이 거친 비난을 이어갔다.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해군은 지난 27일 오후 백령도 인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했다가 약 6시간 만에 송환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번 일을 대남 비난의 호재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아직 남측과의 대화 중단이나, 비방·중상 합의 무효화 선언을 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완전히 정신이 나갔네. 앞으로도 정면 대응해야 할 듯”,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다니 남북 평화는 결국 헛소리였구나”,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대응만이 살길이다”,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앞으로 남북관계 걱정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NLL 해안포 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충격

    북한, NLL 해안포 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충격

    북한, NLL 해안포 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충격 북한이 31일 낮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에서 해상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특히 북한이 이날 발사한 수백발의 포탄 중 일부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NLL 이남 우리측 수역에 떨어진 포탄은 수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의 해상사격 훈련 중 NLL 이남 지역에 (북측 포탄) 일부가 낙탄했다”며 “우리 군도 NLL 인근 이북 해상으로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북한군 포탄 수만큼 NLL 북쪽 해상으로 대응사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현재 북한의 사격은 중지된 상태다”라면서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이며 서해 5도에서 조업 중인 어선 또한 항구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10년 8월9일에도 서해상으로 117발의 해안포를 사격했고 이 중 10여 발이 백령도 북쪽 NLL 이남 1∼2㎞ 해상으로 떨어졌지만, 당시 우리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NLL 해상사격훈련에 대비해 우리 군은 육·해·공군 합동지원세력을 비상대기 시켜 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과 해병대는 화력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고, 공군 전투기와 해군 함정도 초계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F-15K 전투기는 NLL 이남 해상에서 초계 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군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주민들은 긴급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이날 오전 8시께 서남전선사령부 명의로 우리 해군 2함대사령부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사격훈련을 한다고 통보했고 낮 12시15분 쯤 실제 사격훈련에 돌입했다. 북한이 우리 측에 통보한 해상사격구역은 백령도 NLL 북쪽에서 연평도 북쪽 대수압도 인근까지 7개 구역으로, NLL 기준으로 우리측 수역에 최대 0.5노티컬마일(0.9㎞)까지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북한이 통보한 사격지역이 비록 NLL 이북이지만 주민과 선박의 안전을 위해 사격훈련 구역으로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또 북측에는 NLL 이남으로 사격시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통보했다. 북한군은 이날 황해도 지역에 배치된 해안포와 방사포, 자주포 등을 이용해 사격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황해도 장산곶과 옹진반도, 강령반도의 해안가를 비롯한 서해 기린도, 월내도, 대수압도 등에 해안포 900여문을 배치해 놓고 있다. 해주 일원에 배치된 해안포만 100여문에 이른다. 해안포는 사거리 27km의 130mm, 사거리 12km의 76.2mm가 대표적이며 일부 지역에는 사거리 27km의 152mm 지상곡사포(평곡사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사거리 83∼95km에 이르는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NLL 북쪽 해안가에 다수 설치됐다. 백령도와 장산곶의 거리가 17km이고 76.2mm 해안포(사거리 12km)가 배치된 월내도까지는 12km에 불과하다. 연평도와 북한 강령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까지는 13km 거리이다. 한편 북한은 우리 해군이 최근 백령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한 일을 연일 거칠게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천인공노할 깡패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남측을 비난하는 각계각층의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한국 해군이 북한 측 수역을 불법 침입한 뒤 선원들을 강제로 납치해 폭행하고 귀순을 강요했다는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지난 28일 주장을 되풀이하며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매국역적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 등 적개심에 찬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수산성 양어관리국 처장이라는 인물은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남조선 집권자인 박근혜”라고 박 대통령의 실명을 부르며 “괴뢰군부 망종들의 범죄적 악행에 대해 책임지고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중앙방송도 이날 함경남도 재판소 판사를 내세워 이번 어선 나포가 “명백한 침략행위”이자 “반공화국(북한) 테러범죄”라며 해군은 “공화국 형법에 따라 무기 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해야 할 극악한 범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함경남도 변호사회 변호사 김영진은 “인권유린의 극치”라며 “남측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악선전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 공민들의 인권은 남조선 괴뢰군부 악당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라고 가세했다. 북한은 어선 나포 다음날인 이달 28일 군 총참모부가 “야수적인 만행에 대해 절대로 스쳐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것을 시작으로 29일 나포 선원 기자회견, 30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매일같이 거친 비난을 이어갔다.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해군은 지난 27일 오후 백령도 인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했다가 약 6시간 만에 송환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번 일을 대남 비난의 호재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아직 남측과의 대화 중단이나, 비방·중상 합의 무효화 선언을 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NLL 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도발 이유는?

    북한, NLL 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도발 이유는?

    북한, NLL 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만들어야…” 도발 이유는? 북한이 31일 낮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에서 해상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특히 북한이 이날 발사한 수백발의 포탄 중 일부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NLL 이남 우리측 수역에 떨어진 포탄은 수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의 해상사격 훈련 중 NLL 이남 지역에 (북측 포탄) 일부가 낙탄했다”며 “우리 군도 NLL 인근 이북 해상으로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북한군 포탄 수만큼 NLL 북쪽 해상으로 대응사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현재 북한의 사격은 중지된 상태다”라면서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이며 서해 5도에서 조업 중인 어선 또한 항구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10년 8월9일에도 서해상으로 117발의 해안포를 사격했고 이 중 10여 발이 백령도 북쪽 NLL 이남 1∼2㎞ 해상으로 떨어졌지만, 당시 우리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NLL 해상사격훈련에 대비해 우리 군은 육·해·공군 합동지원세력을 비상대기 시켜 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과 해병대는 화력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고, 공군 전투기와 해군 함정도 초계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F-15K 전투기는 NLL 이남 해상에서 초계 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군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주민들은 긴급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이날 오전 8시께 서남전선사령부 명의로 우리 해군 2함대사령부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사격훈련을 한다고 통보했고 낮 12시15분 쯤 실제 사격훈련에 돌입했다. 북한이 우리 측에 통보한 해상사격구역은 백령도 NLL 북쪽에서 연평도 북쪽 대수압도 인근까지 7개 구역으로, NLL 기준으로 우리측 수역에 최대 0.5노티컬마일(0.9㎞)까지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북한이 통보한 사격지역이 비록 NLL 이북이지만 주민과 선박의 안전을 위해 사격훈련 구역으로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또 북측에는 NLL 이남으로 사격시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통보했다. 북한군은 이날 황해도 지역에 배치된 해안포와 방사포, 자주포 등을 이용해 사격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황해도 장산곶과 옹진반도, 강령반도의 해안가를 비롯한 서해 기린도, 월내도, 대수압도 등에 해안포 900여문을 배치해 놓고 있다. 해주 일원에 배치된 해안포만 100여문에 이른다. 해안포는 사거리 27km의 130mm, 사거리 12km의 76.2mm가 대표적이며 일부 지역에는 사거리 27km의 152mm 지상곡사포(평곡사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사거리 83∼95km에 이르는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NLL 북쪽 해안가에 다수 설치됐다. 백령도와 장산곶의 거리가 17km이고 76.2mm 해안포(사거리 12km)가 배치된 월내도까지는 12km에 불과하다. 연평도와 북한 강령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까지는 13km 거리이다. 한편 북한은 우리 해군이 최근 백령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한 일을 연일 거칠게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천인공노할 깡패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남측을 비난하는 각계각층의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한국 해군이 북한 측 수역을 불법 침입한 뒤 선원들을 강제로 납치해 폭행하고 귀순을 강요했다는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지난 28일 주장을 되풀이하며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매국역적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 등 적개심에 찬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수산성 양어관리국 처장이라는 인물은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남조선 집권자인 박근혜”라고 박 대통령의 실명을 부르며 “괴뢰군부 망종들의 범죄적 악행에 대해 책임지고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중앙방송도 이날 함경남도 재판소 판사를 내세워 이번 어선 나포가 “명백한 침략행위”이자 “반공화국(북한) 테러범죄”라며 해군은 “공화국 형법에 따라 무기 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해야 할 극악한 범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함경남도 변호사회 변호사 김영진은 “인권유린의 극치”라며 “남측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악선전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 공민들의 인권은 남조선 괴뢰군부 악당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라고 가세했다. 북한은 어선 나포 다음날인 이달 28일 군 총참모부가 “야수적인 만행에 대해 절대로 스쳐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것을 시작으로 29일 나포 선원 기자회견, 30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매일같이 거친 비난을 이어갔다.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해군은 지난 27일 오후 백령도 인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했다가 약 6시간 만에 송환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번 일을 대남 비난의 호재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아직 남측과의 대화 중단이나, 비방·중상 합의 무효화 선언을 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무섭네”,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매번 뭐하는 짓인 지”,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왜 이러는 걸까”,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강경 대응해야”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NLL 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朴대통령 실명 거론 위협

    북한, NLL 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朴대통령 실명 거론 위협

    북한, NLL 포격 전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더미로…” 朴대통령 실명 거론 위협 북한이 31일 낮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에서 해상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특히 북한이 이날 발사한 수백발의 포탄 중 일부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NLL 이남 우리측 수역에 떨어진 포탄은 수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의 해상사격 훈련 중 NLL 이남 지역에 (북측 포탄) 일부가 낙탄했다”며 “우리 군도 NLL 인근 이북 해상으로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진 북한군 포탄 수만큼 NLL 북쪽 해상으로 대응사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현재 북한의 사격은 중지된 상태다”라면서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이며 서해 5도에서 조업 중인 어선 또한 항구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10년 8월9일에도 서해상으로 117발의 해안포를 사격했고 이 중 10여 발이 백령도 북쪽 NLL 이남 1∼2㎞ 해상으로 떨어졌지만, 당시 우리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NLL 해상사격훈련에 대비해 우리 군은 육·해·공군 합동지원세력을 비상대기 시켜 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과 해병대는 화력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고, 공군 전투기와 해군 함정도 초계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F-15K 전투기는 NLL 이남 해상에서 초계 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군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주민들은 긴급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이날 오전 8시께 서남전선사령부 명의로 우리 해군 2함대사령부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사격훈련을 한다고 통보했고 낮 12시15분 쯤 실제 사격훈련에 돌입했다. 북한이 우리 측에 통보한 해상사격구역은 백령도 NLL 북쪽에서 연평도 북쪽 대수압도 인근까지 7개 구역으로, NLL 기준으로 우리측 수역에 최대 0.5노티컬마일(0.9㎞)까지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북한이 통보한 사격지역이 비록 NLL 이북이지만 주민과 선박의 안전을 위해 사격훈련 구역으로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또 북측에는 NLL 이남으로 사격시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통보했다. 북한군은 이날 황해도 지역에 배치된 해안포와 방사포, 자주포 등을 이용해 사격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황해도 장산곶과 옹진반도, 강령반도의 해안가를 비롯한 서해 기린도, 월내도, 대수압도 등에 해안포 900여문을 배치해 놓고 있다. 해주 일원에 배치된 해안포만 100여문에 이른다. 해안포는 사거리 27km의 130mm, 사거리 12km의 76.2mm가 대표적이며 일부 지역에는 사거리 27km의 152mm 지상곡사포(평곡사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사거리 83∼95km에 이르는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NLL 북쪽 해안가에 다수 설치됐다. 백령도와 장산곶의 거리가 17km이고 76.2mm 해안포(사거리 12km)가 배치된 월내도까지는 12km에 불과하다. 연평도와 북한 강령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까지는 13km 거리이다. 한편 북한은 우리 해군이 최근 백령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한 일을 연일 거칠게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천인공노할 깡패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남측을 비난하는 각계각층의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한국 해군이 북한 측 수역을 불법 침입한 뒤 선원들을 강제로 납치해 폭행하고 귀순을 강요했다는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지난 28일 주장을 되풀이하며 “해적소굴 백령도를 잿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매국역적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 등 적개심에 찬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수산성 양어관리국 처장이라는 인물은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남조선 집권자인 박근혜”라고 박 대통령의 실명을 부르며 “괴뢰군부 망종들의 범죄적 악행에 대해 책임지고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중앙방송도 이날 함경남도 재판소 판사를 내세워 이번 어선 나포가 “명백한 침략행위”이자 “반공화국(북한) 테러범죄”라며 해군은 “공화국 형법에 따라 무기 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해야 할 극악한 범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함경남도 변호사회 변호사 김영진은 “인권유린의 극치”라며 “남측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악선전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 공민들의 인권은 남조선 괴뢰군부 악당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라고 가세했다. 북한은 어선 나포 다음날인 이달 28일 군 총참모부가 “야수적인 만행에 대해 절대로 스쳐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것을 시작으로 29일 나포 선원 기자회견, 30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매일같이 거친 비난을 이어갔다.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해군은 지난 27일 오후 백령도 인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했다가 약 6시간 만에 송환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번 일을 대남 비난의 호재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아직 남측과의 대화 중단이나, 비방·중상 합의 무효화 선언을 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고 정신이 나간 듯”,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무슨 의도로 이번 사건을 벌인 걸까”,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앞으로 제대로 대응해야”, “북한 백령도 잿더미 위협, 무조건 정면 대응해야”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잿더미에 가려진 진실’ 재연 실험으로 밝혔다

    현직 경찰관이던 A씨는 평소 자녀 양육과 금전 문제 등으로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았다. 2011년 6월 A씨는 말다툼 중 아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격분해 아내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살해했다. 이후 A씨는 조사가 시작되자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진 것은 사실이지만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갑자기 불이 난 것”이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관인 A씨의 거짓말도 대검찰청 화재수사팀에는 통하지 않았다. 수사팀은 A씨의 주장대로 실물 재연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피해자와 같은 화상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휘발유를 피해자 몸에 직접 부어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A씨는 재판에 넘겨졌고 법원은 재연 실험을 주요 증거로 인정해 유죄를 확정 지었다. 2002년 1월 4세 남자 어린이가 숨진 화재 사고도 대검 화재수사팀이 조사에 착수하면서 9년 만에 단순 화재 사고가 아닌 ‘아버지에 의한 타살’로 밝혀졌다. 사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서 등의 합동감식 결과는 형광등 누전으로 인한 화재였다. 하지만 2011년, 숨진 아이의 아버지 B씨의 동거녀가 경찰에서 ‘사고가 아닌 B씨의 방화’였다고 진술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대검 화재수사팀은 숨진 어린이의 화상 부위 등에 대한 정밀 분석과 재연 실험 등을 통해 결국 아버지 B씨가 아들의 왼쪽 머리에 휘발유를 직접 뿌린 뒤 불을 붙인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이 사건은 B씨가 동거녀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나 살해한 사건으로 결론 났다.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화재수사팀은 최근 2년간 일선 청의 화재 수사를 지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화재 사건 수사 사례집(Ⅱ)을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눈 깜짝할 새… 침실만 22개 ‘50억 저택’이 잿더미로

    눈 깜짝할 새… 침실만 22개 ‘50억 저택’이 잿더미로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가 50억 원 가까이 나가는 고급 주택이 화재로 인해 잿더미만 남아 충격을 주고 있다고 미국 현지 언론들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오하이오주(州) 신시네티 교외에 있는 침실 22개로 이루어진 고급 개인 주택에 지난 10일 오후 3시 30분경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출동한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 도착해 불을 진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고급 주택은 거의 전소되고 말았다. 현지 소방 당국은 인근 주민이 화재 신고를 하면서 잘못 알려준 주소로 출동해 진압이 늦기도 했지만, 주택이 위치한 곳이 교외 지역이라 사설 소화전밖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화재 진압용 용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던 것도 초기 진화 실패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화재가 발생할 당시 집안에는 사람이 없어 대규모 화재에도 불구하고 다친 사람은 없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화재 직후 건물주의 아들로 알려진 체이스 데커는 페이스북에 “뉴스를 보아 아시겠지만, 우리 집은 화재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며 “모두가 무사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글을 남겼다. 이 고급 주택은 신시네티 교외 지역의 부자 동네로 알려진 ‘인디언 힐’ 지역에 지난 2006년 지어졌으며 2011년 당시에만 감정 가격이 45억 원에 달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 화재에 의해 전소되고 있는 고급 주택 모습 (현지 WLWT 캡처) 다니엘 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부인 방화 살해’ 경찰관 어떻게 잡았나

    현직 경찰관 A씨는 평소 자녀 양육과 금전 문제로 부인과 말다툼을 자주 했다. 2011년 6월 A씨는 자신의 말에 부인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격분,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여 살해했다. A씨는 그러나 피의자로 지목된 뒤에도 “화가 나 휘발유통을 바닥에 던진 것은 사실이다. 이후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갑자기 불이 났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A씨의 거짓말은 대검 화재수사팀에는 통하지 않았다. 실물 재연시험 결과 피해자가 입은 화상(전신 95%, 심재성 2∼3도 화상) 수준은 휘발유를 직접 몸에 부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재연시험 결과는 재판 과정에서 주요 증거로 채택됐고 결국 A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치과 의료기기인 임플란트 관련 회사에 다니던 B씨는 2011년 10월 회사로부터 퇴사 요청을 받았다. 앙심을 품은 B씨는 창고에 보관되고 있던 임플란트 기기들에 불을 붙였다. B씨는 범행을 인정했다. 문제는 피해 규모였다. B씨를 고소한 회사측은 피해물품 수량이 5만8천개로 시가 18억원 상당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B씨는 불량품 300여개와 플라스틱 케이스만을 태웠다고 반박했다. 피해수량이 쟁점이라고 본 검찰은 대검 화재수사팀에 피해물품 종류와 개수를 밝혀달라고 의뢰했다. 화재수사팀은 증거물에 대한 엑스레이(X-Ray) 비파괴검사, 녹는점 차이를 이용한 합성수지 용융물 제거 등 첨단 감정기법을 동원했다. 결국 불에 탄 임플란트 기기는 34종 4만2천여개, 시가 10억원어치로 밝혀졌다.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화재수사팀은 최근 2년 간 일선청의 화재수사를 지원한 경험을 토대로 수사지휘, 조사, 기소, 공판 등 각 수사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화재사건 수사사례집(II)을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화재수사팀은 그동안 발화지점 및 원인을 찾는 1차원적인 화재조사를 넘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물 재연실험, 화재역학에 따른 관계자 진술 분석 등을 통해 화재 원인은 물론 피의자의 고의·과실 여부를 입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대검 NDFC 관계자는 “화재수사팀은 잿더미에 가려진 진실을 규명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사건관계인의 억울함을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람보르기니 3대 도로서 충돌사고…12억 ‘火르르’

    람보르기니 3대 도로서 충돌사고…12억 ‘火르르’

    일반 도로를 달리던 슈퍼카 람보르기니 3대가 충돌사고를 일으켜 ‘잿더미’가 된 웃지못할 사고가 발생했다. 현지에서 가장 비싼 교통사고로 기록된 이 사고는 지난 5일(현지시간) 오전 10시경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발생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1대와 가야르도 2대로 총 가격이 우리 돈으로 무려 12억원에 육박한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 차량은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쿠알라룸푸르에 열리는 행사를 위해 이동 중이었으며 다행히 탑승객 모두 다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방서장은 “사고는 앞서가던 아벤타도르가 중심을 잃고 가드레일을 들이 받으면서 시작됐다” 면서 “조사결과 과속은 아니었으며 세 차량 모두 전소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슈퍼카 람보르기니 3대 충돌사고…피해 금액 얼마?

    슈퍼카 람보르기니 3대 충돌사고…피해 금액 얼마?

    일반 도로를 달리던 슈퍼카 람보르기니 3대가 충돌사고를 일으켜 ‘잿더미’가 된 웃지못할 사고가 발생했다. 현지에서 가장 비싼 교통사고로 기록된 이 사고는 지난 5일(현지시간) 오전 10시경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발생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1대와 가야르도 2대로 총 가격이 우리 돈으로 무려 12억원에 육박한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 차량은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쿠알라룸푸르에 열리는 행사를 위해 이동 중이었으며 다행히 탑승객 모두 다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방서장은 “사고는 앞서가던 아벤타도르가 중심을 잃고 가드레일을 들이 받으면서 시작됐다” 면서 “조사결과 과속은 아니었으며 세 차량 모두 전소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은행 주느니 차라리...압류건물 불태워버린 자영업자

    은행 주느니 차라리...압류건물 불태워버린 자영업자

    사업에 실패한 남자가 황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깨끗하게 처분(?)했다. 주인공은 그리스 나프팍토스에 살고 있는 50세 자영업자.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자는 최근 자신의 2층집에 불을 질렀다.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대가 출동했을 때 남자는 태연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불길에 휘말린 자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잿더미가 된 집은 남자에겐 보금자리이자 사업장이었다. 아담하게 나무로 지은 집 1층에서 남자는 상점을 운영했고 2층에선 살림을 했다. 사실상 전 재산인 집에 불을 지른 건 경제사정 때문이었다. 남자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택 1층에 사업장을 열었지만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적자가 쌓여가면서 은행에서 빌린 돈을 제대로 갚는 건 꿈도 꾸기 힘들었다. 상환이 밀리자 급기야 은행은 재산을 차압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발끈한 남자는 극단적인 결심을 했다. “재산을 은행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어!” 남자는 자동차와 집을 자기 방식(?)대로 처분하기로 했다. 집에 불을 지르기 전 자동차는 언덕길에서 아래로 굴려버렸다. 이웃들은 “남자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했다”며 “재산을 은행에 모두 빼앗기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나프카티아뉴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화마 소실 낙산사 3000일 만에 복원

    2005년 화재로 잿더미가 된 강원 양양군 낙산사(회주 정념 스님)가 3000일에 걸친 복원 불사를 모두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낙산사는 24일 오전 11시 경내 보타전 앞에서 ‘3000일 복원 불사 회향법회’를 봉행한다. 복원 공사의 공덕을 사부대중과 국민들에게 돌리는 행사다. 회향법회에서는 사적비 낙성을 비롯해 사리탑 준공, 건칠관세음보살님 및 보타전 1500관음 개금불사 등을 마무리지으며 3차에 걸쳐 3000일간 진행된 복원 불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지난 16일 보타전 앞에 조성한 탑에 봉안된 부처님 진신사리(2011년 보물 제1723호 지정)는 2006년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보수 과정에서 탑신석 상면 중앙 원형 사리공 내에 금·은·동 3중으로 조성된 사리기와 호박사리호, 백지주서문서 등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낙산사는 2005년 4월 5일 양양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이 옮겨 붙으면서 주요 건물이 전소됐다. 이후 2년여에 걸친 발굴조사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복원공사가 진행됐다. 2007년 끝난 1차 복원불사를 통해 원통보전을 비롯해 심검당, 선열당, 취숙헌 등 전각들이 다시 들어섰으며 2009년 마무리된 2차 복원불사에서는 빈일루, 정취전, 설선당 등 발굴조사 결과 드러났던 원통보전 주변의 전각들이 복원됐다. 이에 따라 낙산사는 조선시대 위용을 떨쳤던 해동제일의 관음기도 대가람의 면모를 회복하게 된 셈이다. 한편 낙산사 주지 부임 보름 만에 화마를 당해 복원에 앞장섰던 회주 정념 스님은 이날 회향법회를 끝으로 회주에서 물러난다. 낙산사 주지는 도후 스님(철원 심원사 회주)이 맡는다. 정념 스님은 낙산사 복원 불사의 전 과정을 기록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를 출간, 복원 불사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은행 못믿어 매트리스에 거액 숨겼는데 불이...

    은행 못믿어 매트리스에 거액 숨겼는데 불이...

    거액을 받은 남자가 고민하다 돈을 숨긴 곳은 침대에 놓여 있는 메트리스였다. 하지만 남자는 메트리스를 금고처럼 사용하기로 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됐다. 메트리스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베라라는 성을 가진 남자다. 아르헨티나 지방 라리오하에 살고 있는 이 남자는 최근 재판에서 승소했다. 일자리를 잃으면서 고용주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기면서 남자는 해고보상금 6만9000페소(약 1270만원)를 받았다. 은행에 대한 불신이 큰 그는 돈을 숨겨놓을 곳을 찾다가 침대에 깔려 있는 메트리스 안에 돈을 숨겼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사고가 나고 말았다. 촛불을 갖고 놀던 손자가 하필이면 ‘금고 메트리스’가 있는 방에서 불을 내고 만 것. |소방대가 출동해 불을 잡았지만 메트리스는 일부 불에 타고 말았다. 검게 그을린 방에 들어가 남자가 확인해 보니 현찰 6만9000페소의 60%가 이미 잿더미로 변한 뒤였다. 남자는 “며칠 전에 받은 보상금인데 써보지도 못하고 재가 되고 말았다”고 허탈해했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워커홀릭 반기문 총장님

    워커홀릭 반기문 총장님

    뉴욕타임스(NYT)가 31일(현지시간)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일상을 다뤘다. NYT는 메트로폴리탄 면의 ‘선데이 루틴’ 코너에 ‘일, 일, 가족 그리고 또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올해 69세인 반 총장이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산업강국으로 다시 태어난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2007년에 유엔의 수장이 된 반 총장이 일요일에도 직원이나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통화하는 등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부인 유순택(68) 여사와 함께 사는 사무총장 관저에는 장성한 3명의 자녀와 4명의 손자가 가끔 찾아와 반 총장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안겨주곤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반 총장이 NYT에 담담하게 털어놓은 자신의 일상이다. “주말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대부분은 다음 날의 업무와 관련된 자료를 읽는다. 각국 정상들과 통화를 하기도 한다. 평일에는 아무리 늦어도 오전 5시에 기상하고 일요일에도 6시엔 일어난다. 일이 밀렸을 때에는 새벽 4시 또는 3시 30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자정까지는 일한다. 운동량이 적기는 하지만 나와 아내 모두 건강한 편이다. 아마도 마인드 컨트롤과 극도로 절제된 생활 덕분인 것 같다. 아무리 피곤해도 너무 오래 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NYT “일·일·일 가족, 또 일”… 반기문 유엔총장 일상소개

    NYT “일·일·일 가족, 또 일”… 반기문 유엔총장 일상소개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31일(현지시간)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일상을 다뤘다.  NYT는 이날 메트로폴리탄 면의 ‘선데이 루틴’ 코너에 실은 ‘일, 일, 가족, 그리고 또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올해 69세인 반 총장이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산업강국으로 다시 태어난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또 2007년 유엔의 수장이 된 반 총장은 일요일에도 직원이나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통화하는 등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인 유순택(68) 여사와 함께 사는 사무총장 관저에는 장성한 3명의 자녀와 4명의 손자가 가끔 찾아와 지구촌의 분쟁 해결 방안으로 골머리를 앓는 반 총장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안겨주곤 한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반 총장이 NYT에 밝힌 자신의 일상이다.  ‘잔걱정이 많은 사람’=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런 방식은 처음인 것 같다. 약간 걱정이 있는데 가정생활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가끔 주말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대부분의 경우 다음날의 업무와 관련된 자료를 읽는다. 각국 정상들과 통화를 하기도 한다. 사무총장으로 일한 최근 6년 반 동안 이런 생활의 끊임없는 연속이었다. 가정생활, 사생활이 거의 없는 게 걱정이지만 그것 또한 사무총장을 그만둘 때까지의 내 운명이요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는 불만이 없지만 가족들 특히 아내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아내는 너무 잘 참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얼리 버드’= 평일에는 아무리 늦어도 아침 5시에 기상하고 일요일에도 6시엔 일어난다. 버릇이 됐다. 지구촌 곳곳에 시차가 있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수시로 통화를 해야 하니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침대에서 미적대지 않는다.  ‘아침식사’= 가끔 밥과 국, 김치 등의 한식을 먹는다. 김치를 아나? 물론 아침이다 보니 미국인들처럼 빵과 우유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한다. 한식과 양식을 번갈아 먹는다는 얘기다. 관저에 빼어난 솜씨를 가진 한국인 요리사가 있다.  ‘일을 운동처럼’= 자전거와 러닝머신 등의 운동기구가 있지만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운동량이 너무 적기는 하지만 나와 아내 모두 건강한 편이다. 아마도 마인드 컨트롤과 극도로 절제된 생활 덕분인 것 같다. 아무리 피곤해도 너무 오래 자는 것은 좋지 않다. 온종일 침대에서 뒹구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는 컨디션에 오히려 해롭다. 차라리 쉴 새 없이 일을 하는 게 좋다.  ‘때로는 골프장으로’= 가끔 시간이 나면 골프를 친다. 유엔 수장인 내게는 회원권이 없지만 지인들이 초대할 때가 있다. 유엔 주재 산마리노 대사와 뉴욕 롱아일랜드의 딥데일 골프장에서 어울리곤 한다. 아주 좋은 골프장이다. 뉴저지 맨해튼 우즈에 회원권을 가진 한국 대사와도 종종 운동을 한다.  ‘소일거리’= 관저에 조그만 마당이 있다. 사실 그리 작지는 않고 그저 평범한 정원이다. 아주 아름답다. 멋진 나무가 많아서 특히 5월이 좋다. 자식들이 오면 그곳에서 손자들과 뛰어놀곤 한다.  ‘가끔 영화관에’= 1년에 네댓번쯤 극장에 가는데 주로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본다. 왜 액션영화를 찾느냐고? 나는 머리가 아주 복잡한 사람이다. 잠시나마 그것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액션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가 너무나도 분명하지 않은가.  ‘일과는 자정쯤 마쳐’= 보통 자정까지는 일한다. 검토해야 할 서류가 항상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래서 가끔은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급적 자정을 넘기지 않고 대신 기상 시간을 앞당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이 밀렸을 때에는 새벽 4시 또는 3시30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앉은 사람처럼 내 업무를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온라인뉴스부@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정림사 복원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동철의 시시콜콜] 정림사 복원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목조 건축을 석조로 번안한 한국 특유의 붙탑 가운데서도 초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예술은 발생하여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는 것이 일반적 사이클이다. 그런데 백제 석탑이 놀라운 것은 발생한 순간 보완이 필요없는 완결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 석탑의 전통이 1500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백제 조형미와 비교할 수 있는 석탑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정도이다. 지금 남아 있는 백제 석탑은 정림사 것과 익산 미륵사 서탑, 최근에야 백제 것으로 공인받기 시작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전부이다. 특히 정림사탑의 균형 잡힌 아름다움은 뛰어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부여는 538년 성왕이 공주에서 도읍을 옮긴 이후 660년 왕조가 막을 내릴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부여는 오래전부터 중고생들의 중요한 수학여행지였고, 지금도 갈수록 중요한 역사탐방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부소산에 올라 낙화암을 돌아보고, 궁남지에도 가보지만 전설만 남았을 뿐 눈에 보이는 백제의 흔적은 찾기가 어렵다. 그 면모를 눈으로 확인하려면 20세기 건물인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부여시내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백제 유적이다. 정림사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주민들은 신라는 물론 고구려도 생각하지 못했던 석탑의 존재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오층석탑은 부여시내 한복판이라고는 해도,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정림사터에 쓸쓸한 모습으로 외롭게 서 있다. 절의 모습을 백제 당시로 되돌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외 답사객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관광산업적 기대도 높다. 불교계 역시 삼국시대 대표적 사찰이 복원된다면 단순한 순례지가 아니라 예불과 수도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나당연합군이 부여를 잿더미로 만든 상황에서 어떻게 정림사탑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정림사탑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낙서가 새겨졌다. “백제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라”는 내용이다. 주민들을 협박하는 정치적 선전판으로 쓰이지 않았다면 정림사탑도 파괴됐을 것이다. 정림사가 화려하고 웅장하기만 한 절집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백제 멸망 과정에서 정림사탑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발굴조사로 백제 당시 절의 구조는 확인됐다고 한다. 하지만 백제 건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복원한다고 해도 백제 사찰이 아니라 조선 후기 건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복원을 추진하는 분들에게 당부한다. 정림사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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