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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값비싼 ‘불꽃놀이’였던 시리아 공습작전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값비싼 ‘불꽃놀이’였던 시리아 공습작전

    지난 13일(현지시간) 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와 군사시설 인근에서 연이은 폭음이 청취됐다. 곳곳에 배치된 시리아군 진지에서는 대공포탄과 지대공 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쳤고, 지상은 물론 공중에서도 폭음과 화염이 관측됐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으로 미·영·불 연합군이 공습에 나선 것이었다. 현지 시각으로 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일제히 실시된 공습에는 미·영·불 3개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의 최첨단 장비들이 대거 동원됐다. 가장 먼저 불을 뿜은 것은 홍해와 페르시아만에서 대기 중이던 미 해군 이지스함들이었다. 홍해에서 작전 중이던 이지스 순양함 몬터레이(USS Monterey), 이지스 구축함 라분(USS Laboon), 페르시아만에 있던 이지스 구축함 히긴스(USS Higgins) 등 4척의 함정에서 66발의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이 연달아 발사됐다. 지중해에서는 미 해군 최신예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존 워너(USS John Warner)와 프랑스 해군 스텔스 구축함 아키텐(FS Aquitaine)이 토마호크와 스칼프(SCALP) 순항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키프로스섬에서는 영국공군 토네이도 GR.4(Tornado GR.4) 전투기 4대가 최신형 공대지 미사일 스톰 섀도우(Storm Shadow)를 장착하고 이륙했고, 요르단에서도 프랑스 공군 라팔(Rafale)과 미라지 2000(Mirage 2000) 전투기가 공대지·공대공 무장을 장착하고 출격했다. 카타르의 우데이드(Udeid) 공군기지에서도 미 공군 B-1B 초음속 폭격기가 스텔스 순항 미사일인 JASSM을 가득 탑재하고 이륙했고, 시리아 국경 인근 상공에는 러시아·시리아군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연합군 전투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EA-6B 전자전기가 대기했다. 구축함과 잠수함, 전투기와 폭격기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발사된 105발의 미사일은 타이밍을 맞춰 동시다발적으로 시리아 내 미리 설정된 표적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대량으로 동시 발사된 이들 미사일이 향한 곳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제조시설과 지휘통제시설이었다. 동구타 화학무기 공격에 사용된 신경가스를 생산한 것으로 의심되어온 바르자(Barzah) 과학연구센터에는 무려 76발의 미사일이 쇄도했고, 힘 신사르(Him Shinsar) 지휘통제소에는 22발의 미사일이 집중됐다. 공습 이후 케네스 메켄지(Kenneth McKenzie) 미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바르자에는 3개의 건물과 격납시설이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표적이 초토화되었다고 평가했다. 공습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임무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며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이러한 평가와 달리 공습 직후 시리아는 너무도 멀쩡했다. 공습 다음날 시리아 정부군은 동구타 지역을 비롯한 주요 전선에서 대규모 공습을 동반한 총공세를 펼쳤다. 그 결과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도시 몇 개가 순식간에 정부군의 손에 떨어졌다.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시리아 대통령 역시 언제 공습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공개석상에 나타나 러시아 의회 대표단을 접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1970년대 개발된 러시아제 방공무기로 대부분의 미사일을 요격했다”며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휴일 새벽 연합군이 시리아를 향해 날린 약 2000억 원 어치의 미사일이 아사드 정권과 시리아 정부군에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시리아는 공습 직후 연합군이 발사한 105발의 미사일 가운데 무려 67%인 71발의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부정했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시리아 정부군은 토마호크나 드론과 같은 소형 표적 요격에 특화된 최신형 방공체계인 SA-22, 일명 ‘판치르-S1E‘ 시스템은 물론 저고도-중고도-고고도에 걸친 중첩 방공망을 다수 운용 중이며, 여기에 최신형 방공무기로 무장한 러시아도 이번 방공작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공습에 나서기 전 전자전기 등을 동원해 적 방공망을 마비시킨 뒤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전술을 구사해 왔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이러한 선제적 방공망 제압 작전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2000억 원어치의 미사일을 쏟아 부었음에도 절반 이상의 미사일이 격추되고 고작 3개소의 표적 건물 몇 동만 파괴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이런 황당한 결과의 배경에는 ‘명분’은 필요했지만 ‘확전’이 두려웠던 트럼프와 푸틴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했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으로 여러 복잡한 사건에 얽혀있고 11월 선거 이전에 대외적으로 뭔가 확실한 ‘한방’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푸틴 역시 최근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집권 초기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 뭔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트럼프와 푸틴의 이해관계 접점은 시리아였다. 트럼프는 대대적인 시리아 공습을 통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전쟁범죄자를 응징했다는 명분을 챙겼다. 최근 무역 분쟁으로 관계가 소원해진 영국·프랑스와 공동작전을 통해 돈독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명분은 덤이다. 푸틴은 이번 공습의 최대 수혜자다. 핵심 동맹국인 시리아를 서방세계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냈다는 명분도 챙겼고, 서방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우방국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던 러시아 초음속 폭격기의 이란 공군기지 배치 협의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는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사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러시아제 무기의 우수성을 홍보해주는 홍보 효과는 덤이다. 이러한 전략적 이익을 위해 트럼프와 푸틴은 계획된 각본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시리아가 공습 예정일을 예측하고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전투기와 군함을 눈에 띄게 이동시켰다. 표적 선정 과정에서도 러시아 관련 시설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쇼맨십을 위해 대량의 미사일이 동원되었지만 대부분의 미사일은 동일 표적에 중복 사용되었다. 가장 많은 미사일을 얻어맞은 바르자 과학연구센터는 축구장 2개 정도 되는 면적 위에 고작 3개 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여기에 무려 76발의 미사일이 날아갔다. 상당수는 요격되었지만, 집중 공격을 받은 바르자 연구센터는 잔해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토화됐다. 연합군의 2순위 공습 표적이었던 힘 신사르 지휘소 역시 단 2개뿐인 강화 콘크리트 출입구에 무려 22발의 미사일이 집중되어 문자 그대로 잿더미만 남았다. 미군이 적의 지휘소를 공격할 때 통상적으로 퍼붓는 수준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의 미사일이 불과 2개의 출입구에 집중된 것이다. 미·영·불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시리아군은 핵심자산을 타르투스와 흐메이님 등 러시아군 주둔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한편, 야전군 부대들을 주둔지 밖으로 이동시켜 공습에 대비했다. 미군은 시리아군의 대피 상황을 위성과 정찰기를 통해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덕분에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시리아 정부군은 공습 직후 반군을 향해 대공세를 펼 수 있었다. 이후 정부군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반군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다. 막대한 예산을 쓰며 시리아를 공습했지만 서방세계가 당초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의 지적대로 이번 공습은 값비싼 불꽃놀이(Expensive firework display)에 불과했다. 그 불꽃놀이의 수혜자는 푸틴과 아사드였고, 트럼프는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권을 제한하는 전쟁권법 개정과 미국 안팎의 비판이라는 값비싼 청구서 앞에 내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자연이 할퀴고 인간이 파괴했던 신라의 사찰… 파편으로 남은 역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자연이 할퀴고 인간이 파괴했던 신라의 사찰… 파편으로 남은 역사

    강원도 양양 미천골을 과거에는 흔히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곤 했다. 그만큼 백두대간 동쪽 골짜기 첩첩산중에 깊이 자리잡은 동네다. 미천(米川)이란 쌀뜨물이 흘러내려 가는 시내라는 뜻이다. 대개 공양 시간이 다가오면 시냇물이 온통 허예질 만큼 많은 쌀을 씻어야 하는 큰 절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미천골이라는 이름을 낳은 절이 선림원(禪林院)이다. 절터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에서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1㎞ 남짓 올라가면 나타난다. 이렇듯 깊은 산골짜기에 통일신라 시대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사찰이, 그것도 바로 옆을 흐르는 시내에 미천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규모로 세워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제 선림원 터를 찾기가 매우 편해졌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지난해 완전 개통됐기 때문이다. 서양양 나들목에서 선림원 터는 자동차로 10분 남짓 거리다. 미천골이 오지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육로(陸路) 중심의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한계령을 거쳐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와 구룡령을 넘어 홍천으로 가는 56번 국도다. 한계령은 익숙해도 구룡령은 낯선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해발 1058m의 구룡령은 1004m의 한계령보다 높다. 그럼에도 수운(水運)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절에는 구룡령이 큰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구룡령은 한계령보다 넘어가는 길이 조금 평탄했다는 것이다. 구룡령 너머의 홍천강은 북한강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도 양양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홍천에서 배를 타는 것이었다. 구룡령 산길에서 멀지 않은 선림원은 과거 중요한 교통로 주변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선림원은 좁은 계곡에 축대를 쌓아 넓은 터를 확보하려 했던 모습이다. 1985년과 1986년 동국대 조사단의 발굴과 2015년 양양군이 한빛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한 발굴 조사 결과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최근의 정비 사업으로 쌓은 돌계단을 오르면 균형 잡힌 모습의 삼층 석탑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기단에 팔부중상을 네 면에 돋을새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석탑은 발견 당시 무너져 있었다고 한다. 그 뒤편은 큰 법당 터다.삼층 석탑에서 절터 반대편을 보면 규모 있는 비석이 하나 보인다. 홍각선사비다. 홍각선사가 입적한 직후인 886년(신라 정강왕 원년) 세워진 것이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과 용틀임하는 모습의 지붕돌만 제 것이다. 몸돌은 2008년 복원했다. 그 앞에는 높이 2.92m의 석등이 보인다. 지붕돌의 귀꽃 조각이 몇 개 떨어져 나갔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이다. 동국대 조사단의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선림원은 국립춘천박물관이 일부 잔해를 소장하고 있는 이 절 동종의 주조 연대인 804년(신라 애장왕 5년) 창건 이후 홍각선사 시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후 10세기 전반 대홍수에 따른 산사태로 매몰됐고, 사찰의 기능도 정지됐다는 것이다.작고한 미술사학자 정영호 선생은 1966년 ‘지난해 처음으로 답사했을 때 석등의 각 부재가 원위치에서 흩어져서 반쯤 흙에 묻혀 있는가 하면 화사석은 축대 밑으로 굴러떨어져 있었지만 점검해 보니 복원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고 ‘양양 선림원에 대하여’라는 글에 적었다. 이렇게 삼층 석탑과 석등은 지금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산비탈 초입에는 기단부만 남은 부도가 있다. 역시 팔각형의 전형적인 신라 부도다. 홍각선사탑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삼층 석탑과 석등은 물론 홍각선사탑과 탑비 모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다.선림원이라면 아무래도 비운의 신라 범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선림원 터는 1948년 목기(木器)를 만드는 사람들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다. 범종은 명문(銘文)이 있어 일찍부터 주목 받았다. 2011년 세상을 떠난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은 ‘해방 이후 최초로 접한 중요문화재의 출토’라는 글에서 선림원 터와 범종의 발견 당시를 회상했다. 이야기는 그가 1948년 국립박물관에 취직이 되어 고향 개성에서 짧은 교직을 중단한 뒤 상경했고, 그 직후 출장 명령을 받고 양양 현지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황 선생을 비롯한 조사단은 이해 6월 교통 사정으로 현장 직행이 불가능하자 평창 월정사로 가서 산행으로 선림원 터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월정사에 이르러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선림원 터는 당시 분단의 경계였던 38도선에서 10리(4㎞)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 남쪽 오대산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서울로 돌아와 ‘이 새로운 종을 군 장비를 이용해 보다 안전한 월정사로 후퇴시키는 좋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다. 황 선생이 당시 문교부로부터 ‘선림원 종을 군부대가 신설된 산중직로(山中直路)로 월정사에 옮겨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50년 1월 4일이었다고 한다. 황 선생이 월정사 칠불보전에서 범종을 마주한 것은 1월 6일이다. 그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신라종으로서의 전형을 완비한 참으로 아담한 자태에 먼저 환희하였고, 또 안도하였다’고 적었다. 이어 ‘나는 즐거움이 솟아올라옴을 느꼈다. 성냥을 켜서 세부의 문양을 보았고 쌍비천 주악상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세 번 조심스럽게 종을 울려 보았다. 맑고 깨끗한 신라의 종소리가 적막을 뚫고 산곡(山谷)에 반향되었다’고 회상했다. 선림원 종을 ‘아담한 자태’라 한 것은 용뉴를 포함한 높이가 122㎝, 용뉴를 제외한 몸체 높이가 96㎝, 구경이 68㎝로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황 선생은 ‘명문을 땅에 누워서 들여다 보고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는데, 이 종은 특이하게도 14행 143자에 이르는 명문이 몸체 내부에 양각되어 있다. 선림원 범종은 6·25 전쟁의 와중에 우리 스스로 파괴하고 말았다. 1951년 1·4 후퇴 당시 사찰 소각령에 따라 월정사의 모든 전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칠불보전의 범종도 녹아버린 것이다. 황 선생은 ‘후퇴에 앞서 그 넓은 마당에 굴리기만 하였어도 남았을 것 아닌가’하며 안타까워했다. 절반 이상 녹아버린 범종의 잔해는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 국립춘천박물관에서는 범종 파편을 포함해 다양한 선림원 출토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홍각선사비의 비신 파편과 삼층 석탑의 기단 아래서 나온 소탑(小塔)들,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용면와 두 점과 화려한 연꽃무늬 수막새 두 점도 전시하고 있다. 그러니 선림원의 역사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춘천박물관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선림원 터에서 춘천박물관까지 이제 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남짓 만에 도착한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양양과 춘천을 묶는 하루 여행 코스로도 무리가 없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고성 산불…축구장 면적 56배 잿더미

    고성 산불…축구장 면적 56배 잿더미

    28일 오전 6시 19분쯤 강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막대한 피해를 내고 오후 5시 30분쯤 진화됐다. 북서풍이 초속 10m 이상 불면서 불길이 가진리·공현진리 등으로 확산돼 화선이 5㎞에 달했다. 축구장 면적의 56배에 달하는 산림 40㏊가 잿더미가 됐고, 주택 5채 등 건물 17채가 소실됐다. 주민들은 고성종합체육관 등으로 대피했고, 7개 학교는 휴업하거나 단축 수업을 했다. 산림청 등은 산불 진화에 산림청 소속 23대를 포함해 헬기 40대와 인력 2446명, 진화차와 소방차 등 장비 99대를 투입했다. 강원도와 고성군은 잔불 진화와 뒷불 감시 체계로 전환했다. 서울신문 독자 김현기씨 제공
  • 서울신문과 함께 하는 ICRC 사진전 ‘TORN APART’ 개최

    서울신문과 함께 하는 ICRC 사진전 ‘TORN APART’ 개최

    서울신문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이하 ICRC)가 공동 주최하는 ICRC 온·오프라인 사진전이 19일부터 열린다. 최전선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는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무력분쟁의 파급력과 피해자들의 고난을 널리 알리고자 직원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며 찍은 사진들로 전시회를 마련했다. 이번 사진전의 주제는 ‘TORN APART’(산산조각난 세상)로 오는 19일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다. ‘TORN APART’는 인트로를 비롯 전쟁의 발발, 사라진 도시, 영구적 상흔, 가족과의 이별, 실종자, 니아닌의 이야기, 다시 일어서기로 구성돼 있다. 제1막 ‘전쟁의 발발’에서는 국제법에 의해 전쟁 중 민간인과 민간시설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함에도 법이 지켜지지 않아 민간인이 희생자의 90%에 달하고 있는 무력 분쟁지역의 현실을 다뤘다. 제2막 ‘사라진 도시’는 폭격으로 인해 집이 허물어져 바깥으로 내몰린 가족들, 식수·식량·전기와 같은 생존의 필수품 조차 사치가 된 궁핍한 생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병원 침대 삼아 지내는 도시의 참상을 소개한다. 특히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이라크 ‘라마디’의 모습을 드론으로 항공 촬영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제3막 ‘영구적 상흔’에서는 무력 분쟁에 따른 평생의 상흔에 대해 말한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육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함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들을 진짜 힘들게 하는 건 ‘이별’이다. 제4막 ‘가족과의 이별’에서는 분쟁의 혼란이나 국가의 분단, 혹은 분쟁 중 구금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이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제5막 ‘실종자’. 어떠한 고통보다도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없을 때의 고통은 배가 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악몽처럼 일상이 된다. 가족의 유품만 돌아오거나 심지어 유골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엔 오히려 나은 편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가족의 생사도 듣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 제6막 ‘니아닌의 이야기’에서는 남수단 마이웃의 5개월 된 아기 ‘니아닌’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다뤘다. 폐렴으로 병원에 실려온 니아닌. 갓 태어난 신생아라고 해도 믿을 만큼 왜소한 몸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니아닌이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정전으로 산소마스크 기계가 꺼졌다. 전기가 나간 9분 동안, 의료진들은 공기백으로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니아닌은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이 힘겨운 세상을 그렇게 떠난 것이다. 마지막 제7막 ‘다시 일어서기’에서는 우리와는 같은 시간 속,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힘찬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분쟁의 폭력과 파멸 속에서 모든 걸 순식간에 잃고 가족과 헤어져 삶이 산산조각 난 이들의 삶에도 희망의 나비가 날아오른다.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 곳이 나의 세상이라면?”. 바쁜 일상 속 잠시나마 분쟁 피해자들의 세상으로 들어가 이들의 고통과 다시 평범한 삶을 되찾아가는 힘겨운 발걸음에 관심과 공감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 한편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오프라인 사진전 ‘TORN APART’(산산조각난 세상)는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한국프레스센터 로비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씨줄날줄] 또 하나의 외규장각 약탈품/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또 하나의 외규장각 약탈품/서동철 논설위원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의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 가면 최근 프랑스에서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冊封竹冊)을 만날 수 있다. 조선은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새겨 보관했는데, 주인공이 왕이나 왕비이라면 옥책(玉冊), 세자나 세자빈이라면 대나무를 엮은 죽책(竹冊)을 만들었다.효명세자는 순조의 맏아들로 2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효명세자빈 풍양 조씨는 헌종의 어머니로 효명세자가 익종에 추존되면서 신정왕후가 됐다. 그는 82세까지 살면서 흥선군의 둘째 아들 고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넘겨받게 하고,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불탄 것으로 알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 해군이 외규장각 수장품 가운데 의궤 등을 약탈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행궁과 강화유수부는 물론 외규장각에도 불을 질렀으니 약탈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잿더미가 됐다. 당시 외규장각 수장품은 강화부 외규장각 봉안 형지안(形止案)의 존재로 알 수 있다. 형지안이란 ‘현재의 상황을 적어 놓은 문서’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침략이 있기 9년 전인 1857년의 마지막 봉안 상황을 정리한 이 형지안은 옥책·죽책 같은 왕실 귀중품 99점과 도서류 1007종, 5067책을 보관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군이 정리한 ‘전리품 목록’을 보면 ‘887㎏ 남짓의 은괴 19상자와 외규장각 비치품 359점’이 전부다. 구체적으로는 ‘가철된 큰 책 300권, 가철된 작은 책 9권, 흰색 나무상자에 든 작은 책 13권, 또 다른 작은 책 10권과 8권, 지도 1부, 평면천체도 1부, 족자 7개, 대리석판 3개, 백색의 대리석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 3개, 3개의 갑옷과 투구, 가면 1개’다. ‘가철된 큰 책’은 의궤를 지칭할 것이다. ‘효명세자빈 죽책’은 ‘백색의 대리석판’, 곧 옥책을 넣은 작은 상자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프랑스군이 의궤 같은 서적은 국립도서관에 넘긴 반면 옥책이나 죽책같은 왕실 귀중품은 내용을 알아보는 노력도 없이 자국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뿌렸다는 것이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프랑스 경매에 나온 것을 사들였다고 한다. 의궤도 297점을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았지만, 1점은 영국에 있고 2점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또 무엇이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외규장각 약탈의 역사가 수습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 빨갱이 가족 색출 이유… 좌도 우도 아닌 민간인… 300명 무차별 대학살

    빨갱이 가족 색출 이유… 좌도 우도 아닌 민간인… 300명 무차별 대학살

    1949년 1월 17일 제주 조천 북촌마을.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1948년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후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 충돌이 한창이었다. 이날 아침 세화리에 주둔하던 2연대 3대대의 중대 일대 병력이 대대본부가 있는 함덕으로 가다가 북촌마을 너븐숭이에서 무장대 기습 공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무장대ㆍ토벌대 간 무력 충돌이 낳은 참극 마을 보초를 서던 원로들은 군인 시신을 군부대로 운구해 가라는 명령을 받고 들것에 실어 함덕리 주둔 부대에 찾아갔다. 흥분한 군인들은 주민 9명 가운데 경찰 가족 한 명을 빼고 모두 사살했다. 오전 11시 전후 장교의 인솔 아래 2개 소대 병력이 북촌마을을 덮쳤다. 무장 군인들은 1000여명의 주민들을 모두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다. 마을에 불을 질러 400여채 가옥이 잿더미로 변했다.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제주 출신 현기영 ‘순이삼촌 ’서 진상 드러나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는 게 여의치 않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십명씩 끌고 나가 인근 당팟과 너븐숭이, 탯질 밭에서 300여명을 집단 학살했다. 오후 4시쯤 대대장은 남은 주민들에게 다음날 함덕으로 소개 명령을 내리고 학살을 중단했다. 주민 일부는 산으로 피신했고 함덕으로 간 사람 중 100여명이 추가로 희생됐다. ●작년 너븐숭이 등 유적 순례 4ㆍ3길 개통 북촌마을은 4·3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서슬 퍼런 권력에 아무도 말 못 하는 시절 이 비극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1978년 발표되면서 세상 밖으로 다시 떠올랐다. 제주도는 2007년 너븐숭이에 희생자 위령비와 기념관을 건립하고 ‘순이삼촌’ 문학기념비를 설치해 유적지로 조성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북촌마을 4·3길’이 개통됐다. 지난 7일 열린 위령제에서 이승찬 4·3희생자 북촌리 유족회장은 “4·3의 현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가가 달리 되고, 일부 극우 세력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4·3을 바라봐 유족들의 마음이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며 “70주년을 계기로 화해와 상생이 충만한 평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어느 ‘58년 개띠’의 60년사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어느 ‘58년 개띠’의 60년사

    1958년생인 나는 올해로 환갑이 된다. 1960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53세였으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오래 산 셈이다. 70년대의 환갑잔치는 자손들과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장수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100세 인생’ 시대를 예고하는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이 됐다.해인사가 있는 경상남도 합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동네 뒷산에서 나무를 잘라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방을 데웠다. 겨울에는 얼음판에서 썰매를 지치고 팽이를 쳤다. 초등학교 교실은 부족하고 열악했다.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한 반에 60여명이 조그만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6·25 전쟁 이후 시작된 본격적인 베이비붐 세대인 개띠들의 숙명이었다. 점심은 학교에서 나줘주는 급식으로 때웠다. 미국 원조 식품인 옥수숫가루로 만든 죽이나 빵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전기가 들어왔다. 아버지 권유로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고전 읽기를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공부를 잘한 형님은 마산중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우수한 한두 명 정도만이 도시 중학교로 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결정한 ‘장남’에 대한 특혜였다. 누나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도록 했기 때문이다. 형님 덕에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마산이라는 도시로 여행을 했다. 합천읍에서 마산까지는 비포장 산길을 버스로 4시간이나 달려야 했다. 텔레비전과 기차와 바다를 그때 처음 봤다. 서울 첫 나들이는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코끼리와 호랑이를 처음 본 것도 이때였다. 교사인 아버지의 전보 발령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진주로 전학을 했다. 도시 생활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경남교육청으로 전근을 가셨다. 나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 부산대로 진학해야 했다. 교사 박봉으로 4남매 학비 마련이 어려워 서울로 갈 형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대학 정문 앞에서 아버지와 작은 방에서 함께 하숙을 했다. 아버지는 시내버스로 1시간 걸리는 대신동까지 출퇴근을 하셨다. 대학가의 하숙비가 저렴한 이유도 있었지만 대학 생활을 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즐거움도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교수가 되기를 바라셨다. 나와 같은 58년 개띠들은 1977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과 부산 지역 동기들은 무시험으로 고교에 진학한 소위 ‘뺑뺑이 1세대’였다. 당시 유신정권 말기의 대학에서는 학생 데모가 끊이지 않았다. 개띠의 일부는 민주투사가, 다른 일부는 군 진압군이 돼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많은 친구들이 다치고 죽었다. 고통스러운 암흑의 시대였다. 교수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을 마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영국이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머니께서 어렵게 장만해 주셨던 일제 소니 워크맨을 들고 다니면서 모질게 영어 문장을 외었다. 부산대 교수로 임용되던 날 아버지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이란 붓글씨 액자를 내 연구실에 걸어 주셨다. 가르침으로 후세를 길러 나라를 세우라는 의미셨다. 그렇다. 6·25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불과 6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은 물론 자유민주 국가로 일어선 힘은 바로 교육이었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희망 사다리였다. 58년 개띠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사로서 각자 걸어온 길은 달라도 모두가 열심히 살았다.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때도 허리띠를 졸라 맸다. 그런 이들이 올해 60세를 맞아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들은 이제 또 다른 교육과 배움을 통해 ‘인생 제2막’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바로 ‘세상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희망은 다름 아닌 아버지께서 새겨 주셨던 ‘교육입국’이다. 교육의 향기는 백년을 간다고 했다.
  • [그 시절 공직 한 컷] 국제시장 덮친 화마…그때나 지금이나 일상을 잿더미로

    [그 시절 공직 한 컷] 국제시장 덮친 화마…그때나 지금이나 일상을 잿더미로

    1950년대엔 크고 작은 화재가 많이 발생했다. 특히 1953년 1월 30일 밤 임시수도 부산의 경제중심지였던 국제시장에 큰불이 났다. 이 불은 1월 31일 새벽에 진화됐으나, 3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4000여채의 가게가 전소하는 등 큰 피해를 냈다. 사진은 당시 화재 직후 이재민들이 화재 현장을 복구하는 모습이다. 국제시장에서는 1995년 2월에도 큰불이 발생해 70개 점포가 불에 타고 약 4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지금도 화재는 일상의 삶을 파괴한다.국제시장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각종 물자가 경매에 부쳐지면서 시장이 형성된 곳이다. 또 동포들이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각종 물품을 팔아 고향으로 가는 돈을 마련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국제시장이 활기를 띤 것은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에 의해서다. 각종 군용물자와 원조물자, 미군 부대에서 나온 통조림과 의류 등이 시장에 흘러나왔다. 국가기록원 제공
  • ‘홧김 방화’ 또 일어날 수 있다

    강력범죄 절반 음주 상태 발생 경찰, 주취자 귀가 조치 급급 휘발유 소량 구매 규제 없어 지난 20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여관에서 일어난 방화로 무고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은 22일 잿더미로 변한 여관 앞에 국화꽃을 놓으며 세상을 떠난 사망자들을 애도했다. 이 사건으로 허술한 경찰의 음주 행인 관리와 주유소의 인화물 관리, 취약한 노후 건물 방화 시설 등 각종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사회적 시스템이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작동했더라면 이런 참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때늦은 후회가 잇따르는 가운데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화 참극이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방화범 유모(53)씨에게 있다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특히 음주 상태에서 성적 욕구를 해소하려던 것이 제지당한 데서 비롯된 앙심이 화를 부른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방화·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 2건 중 1건이 음주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음주범죄’에 대한 처벌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 당시 유씨에 대한 경찰의 섣부른 ‘귀가 조치’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여관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유씨에게 “성매매 및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유씨를 설득한 뒤 귀가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여관 골목길에서 큰길 방향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관 주인 김모(71)씨의 남편 등에 따르면 유씨는 경찰 앞에서도 욕설을 하고 출입문을 걷어차며 행패를 부리는 등 분노를 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4조에 따르면 경찰은 정신착란자, 주취자,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자에 대해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찰이 유씨에게 이런 조치를 내렸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이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음주 행인을 재빨리 귀가시키는 데에만 주력하다보니 귀가 조치됐던 음주자가 다시 사건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적지 않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난동을 부리는 음주 행인을 술이 깰 때까지 특정 시설에 두거나 바로 입건하는 등 경찰의 대응이 보다 강화돼야 하는데 그랬다간 공권력 남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씨에게 인화 물질인 휘발유 10ℓ를 2만원에 판 주유소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택시를 타고 혜화로타리 인근 주유소로 간 유씨는 “친구 차에 기름이 떨어졌다”며 휘발유 10ℓ를 샀다. 현재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별도의 용기에 담아 소량으로 판매하는 것을 제한할 규정은 없는 상태다. 해당 주유소 관계자도 “유씨의 휘발유 구매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휘발유를 위험 인화물질로 규정하고 소량 판매를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함께 50년도 더 된 노후 여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방화 관리가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진다. 이 여관은 연면적이 좁아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이 아예 갖춰져 있지 않았으며 비상구도 아예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불쏘시개 나라 대한민국

    [최만진의 도시탐구] 불쏘시개 나라 대한민국

    서기 64년에 발생한 로마의 화재는 역사의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소문이기는 하나 폭군 네로 황제가 방화를 하고 리라를 켜면서 화염과 불꽃을 노래했다고 한다. 당시 화재로 200만명이 집을 잃었고 로마시의 3분의2가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네로는 그 원인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했고 사자에게 던지는 등의 처참한 박해를 가했다. 이처럼 화재는 큰 시련과 도전을 던져 주는 재해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최근의 제천 화재는 우리에게 또 한번의 좌절을 안겨 주었다. 이는 그 무엇보다도 화재나 건축물의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이비트 건축물의 위험성이 누누이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의한 대형 화재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을 단열하고 마감하는 가장 흔한 건축 자재다. 구조는 단열 스티로폼, 충격 보강 및 균열 방지를 위한 유리섬유, 마감재로 이루어진다. 이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서 빠른 도시 재건을 위해 개발된 시공 시스템이다. 단열성이 뛰어나면서도 저렴하고 손쉽게 시공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공법은 전 유럽으로 전파됐고, 1970년대에는 미국으로도 수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좋은 점 많은 드라이비트의 취약점은 바로 화재에 있다. 특히 단열 스티로폼이 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2010년 해운대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를 실감하게 한다. 당시 4층에서 번진 불길이 스티로폼을 타고 38층 높이의 꼭대기까지 번지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에도 동일 공법을 사용한 의정부의 한 10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전소돼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를 계기로 현재는 6층 이상의 건축물에서는 난연 및 불연성 외장재를 사용하는 것을 건축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제천 화재 건물은 이 법이 시행되기 바로 직전에 지어져 이를 피해 나갔다. 스티로폼의 또 하나 문제는 화학재료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다. 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수분 안에 사람을 질식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실제로 이번 제천 화재의 여성 목욕탕의 많은 희생자들은 이와 같은 건축자재가 내뿜는 유독가스에 중독돼 사망했다. 외장재와 내장재에 난연 혹은 불연 처리가 돼 있었다면 대부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드라이비트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 옷과 장식 그리고 자동차를 사는 데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열을 올리면서도 집을 짓는 데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특히 상가 등의 분양 목적을 위한 건축물을 짓는 데는 최소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고 저렴한 시공 방법만을 찾는 데 혈안이 되기가 일수다. 필자에게 집을 짓기 위해 자문하러 온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땅도 건물 지을 돈도 없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둔 우리는 이제 건축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건물이 수익과 소득 창출 그리고 재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건축물은 우리 모두가 일하고 자고 쉬고 살아가는 기본적인 정주 공간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난 집들을 TV에서 보면서 네로처럼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내 집 내 건물부터 안전하게 지어야 한다. 이를 간과할 때 우리는 로마의 화재와 같은 큰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김상선의 함께하는 세상] 있을 때 잘해

    [김상선의 함께하는 세상] 있을 때 잘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경제성장률도 3%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지난해 무역 규모 1조 달러 재달성과 함께 반가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녹록지 않은 국내외 여건으로 인한 걱정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북핵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정세 불안, 반도체를 비롯한 특정 분야 중심의 편중 성장, 날로 심화되고 있는 갈등과 분열, 저출산 고령화, 기후변화와 재난재해, 일자리, 미래 먹을거리….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아니다. 쓰나미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슬기로운 대응도 문제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신산업은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실용화로 연결하기 위해 넘어야 할 규제의 벽은 높기만 하다.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원천 기술력은 태부족이다. 미래의 주역이 돼야 할 우리 청소년의 50% 이상은 수학과 과학을 포기한 소위 수(과)포자라고 한다. 혹자는 우리의 현실을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면서 경고의 목소리를 보내기도 한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줄 모르다가 끓는 물에 죽는 개구리처럼 우리 경제가 서서히 진행되지만 곧 닥쳐올 엄청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큰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나라,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불과 50여년 만에 ‘한국의 기적’을 만들어 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세계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경험을 배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자족할 수는 없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세계 강국이었던 나라가 국가 부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어떤 나라든 아차 하는 순간에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득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생각난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가 좋아서 종종 건배사로 애용되는 말이다. 연초부터 연세대 김형석(99) 명예교수의 건강 비법이 화제다. 지금의 건강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10~20년 전 건강할 때 얼마나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디 건강뿐이겠는가. 명예, 권력, 돈, 자녀, 효도, 부부관계 등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아니다. 나중에 후회하면 늦는다. 개인은 물론 한 가정, 한 국가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나마 여력이 남아 있을 때 미래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눈길을 끄는 뉴스가 하나 더 있다. “외국의 인재들 중국으로 오라”, “10년짜리 비자 하루 만에 발급”. 이웃 나라 중국의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인재 유치를 위해 백인(百人)·천인(千人)·만인(萬人) 계획을 확대 추진해 오고 있다. 13억명의 인구 대국인 중국이 외국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재 확보가 과학기술과 경제산업 발전에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우리를 앞서거나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걱정이 앞선다. 혹시 우수한 인재들을 빠져나가지 않을까. 좋은 일자리와 돈이 있으면 어디든 이동하는 인재들에게 우리나라는 과연 얼마나 매력이 있는 나라일까 자문해 본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사람’과 ‘과학기술’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듯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 국가 경쟁력 제고, 삶의 질 향상, 각종 사회문제 해결은 물론 국가 안보, 외교, 문화, 예술, 체육 등 어떤 분야도 과학기술 없이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과학기술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후회하면 늦는다. 더 늦기 전에 과학기술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청소년들이 과학기술인을 꿈꾸고, 과학자들이 안정적인 여건 속에서 신명나게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국민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미래를 향한 씨앗인 과학기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엎친 데 덮친 캘리포니아… 산불 났던 곳 산사태로 최소 13명 숨져

    엎친 데 덮친 캘리포니아… 산불 났던 곳 산사태로 최소 13명 숨져

    9일(현지시간) 산불피해 지역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몬테시토에서 이틀 연속 몰아친 폭풍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자 주민들이 애완견과 함께 진흙탕을 헤치며 대피하고 있다. 흙과 잿더미, 나뭇가지 등을 몰고 온 이번 산사태로 최소 13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이 일대 주민 3만여명에게는 대피령이 내려졌다. 몬테시토 AFP 연합뉴스
  • 부산 기장군 삼각산에 산불 15시간 만에 소강…“임야 100만㎡ 잿더미”

    부산 기장군 삼각산에 산불 15시간 만에 소강…“임야 100만㎡ 잿더미”

    새해 첫날인 1일 부산 기장군 삼각산에 난 산불이 15시간여 만에 임야 100만㎡(약 30만평)를 잿더미로 만들고나서야 불길이 잡혔다. 화재는 한밤 산 정상에서 불이 난데다 바람이 불면서 피해가 커졌다.부산소방안전본부는 2일 오후 1시 20분 기준 삼각산의 큰 불길을 잡고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불 신고가 들어온 지 15시간 30여분 만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지난 1일 오후 9시 46분 삼각산(해발 469m) 정상 부근에서 불이 났다는 119 신고가 들어왔다. 곧바로 소방관들이 출동했지만, 날이 어두운 데다 산 정상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려 당일 오후 11시 10분에야 화재 진압을 위한 진입로를 확보했다. 불은 건조한 날씨 속에 바람을 타고 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아래쪽으로 빠르게 번졌다. 소방인력들이 주변 산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작업을 밤새 벌였지만 진화작업은 헬기가 동원된 2일 아침까지 9시간 넘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해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소방대원과 기장군청 공무원 등 인력 800여 명과 소방차를 비롯한 장비 53대가 출동해 불을 껐지만 역부족이었다.1일 밤 진화작업은 큰 진전이 없었다. 한밤에 난 화재라 헬기를 띄울 수 없었고 산 정상까지 거리가 먼데다 지형도 험해 소방호스를 펼쳐 불을 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일이 물을 등에 지고 산에 올라가서 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밤새 진행된 진화작업은 불이 다른 곳으로 크게 번지는 것을 막는 정도였다. 화재 당시 건조한 데다 바람이 강하게 분 것도 불길을 키웠다. 산불은 헬기가 대거 동원되면서 활력이 붙었다. 2일 오전 7시쯤 소방헬기 5대를 필두로 산림청 헬기 6대, 민간 위탁 헬기 2대 등 모두 13대가 차례로 화재현장에 투입되면서 큰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다. 오전 10시쯤 80% 정도 화재를 진화한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1시 20분 잔불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경찰은 소방과 함께 화재원인을 밝히기 위해 최초 발화지점을 조사하고 화재 신고자 등을 조사할 예정이지만 화재현장 주변에 폐쇄회로(CC) TV가 없어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산불로 잿더미 된 집에서 결혼반지 찾아 청혼한 남편

    美산불로 잿더미 된 집에서 결혼반지 찾아 청혼한 남편

    미국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대부분의 재산이 소실됐지만 ‘사랑’만은 잃지않은 부부가 있다.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ABC뉴스는 화재로 집을 잃은 부부 던 마이어스와 줄리가 잔해 속에서 결혼 반지를 찾아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난 6일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한 부부는 까맣게 타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집터로 돌아왔다. 처참한 광경에 두 사람은 말을 잇지 못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잿더미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다 남편 던이 아내 줄리의 결혼반지를 발견했고, 즉시 한 쪽 무릎을 꿇어 28년 만에 다시 프러포즈를 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은 반지를 받아들이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줄리는 “4일 저녁 집에 혼자 있을때 인근에서 큰 산불이 발생했다. 불길은 빠르게 번져왔고 대피해야했기에 가족들의 귀중한 물건들을 모을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살아남아 다시 돌아왔을 땐, 내부에 있던 물건들이 잡석더미가 되어버려서 반지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결혼 반지를 찾았다”며 “한발짝 멀리서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갑자기 프러포즈를 했다”고 웃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美 캘리포니아 초대형 산불 3일째…여의도 면적 110배 불에 타

    美 캘리포니아 초대형 산불 3일째…여의도 면적 110배 불에 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어난 초대형 산불이 발화 사흘째인 6일(현지시간)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로스앤젤레스(LA) 북서쪽 벤추라에서 발화한 ‘토마스 파이어’가 가장 큰 규모로 번진 상태에서 건조한 강풍 탓에 소규모 산불도 여러 곳에서 발화했다. 이날 오전까지 불에 탄 면적은 8만3000 에이커(약 335㎢)로 여의도 면적의 110배가 넘는다. 미 일간 USA투데이는 벤추라에서 대피한 3만8000여 명과 실마 카운티에서 대피령이 내려진 11만 명을 포함해 이번 산불로 영향을 받는 주민이 무려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연예인들 거주 LA 서부 부촌에서도 산불 발화 미국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하나인 LA 서부 벨에어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캠퍼스 근처에도 새로운 산불이 일어나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CNN 등 미 방송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해안을 따라 LA를 관통하는 405번 주간(州間) 고속도로 주변에서 ‘스커볼 파이어’로 명명된 산불이 발생해 50에이커(6만 평) 정도를 태웠다. 이 산불은 벨에어, UCLA 캠퍼스와 예술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게티센터 박물관 컴플렉스에 가까운 지역을 위협하고 있어 소방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벨어어 지역도 가옥 여러 채가 불에 탔다. 미 서부에서 가장 혼잡한 고속도로 중 하나인 405번 프리웨이에는 산불로 날아든 잿더미가 흩날리고 있다. 이 고속도로 북쪽 방향 일부 구간이 폐쇄됐다. 벨에어는 1961년에도 대형 화재로 가옥 500여 채가 전소한 적이 있는 곳이라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전했다. 호화저택이 많아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부촌이다. LA 북서부 발렌시아의 대형 놀이공원인 식스플래그 매직마운틴 인근에서도 ‘라이 파이어’로 명명된 산불이 발화했으며, 진화율은 5%에 불과하다. LA 북쪽 샌버너디노 카운티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작은 산불 2개가 발생했다. 현재 LA 주변 지역에는 5만 에이커(약 200㎢)를 태운 벤추라 산불을 비롯해 LA 북부 실마 카운티 지역의 ‘크릭 파이어’ 등 대형 산불 2개와 그 밖의 지역에서 발생한 소규모 산불 4개가 동시다발로 발화한 상태다. 벤추라 지역은 인구 10만여 명 중 거의 40%에 가까운 3만8000여 명이 대피했다. 60가구로 구성된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으며, 가옥 1000여 채가 소실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벤추라에는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화재 지역에서 약탈 등 범죄를 막기 위한 조치다. 벤추라와 인근 샌타바버라 카운티에는 20만 가구 이상이 정전됐다. 한인들 많이 사는 라크레센타·발렌시아도 간접 영향권 크릭 파이어로 위협을 받고 있는 실마 카운티와 샌퍼디낸드 지역에서 대피령이 내려진 주민 수는 11만 명에 달한다. 실마 카운티에는 4만3000가구가 정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마 카운티 인근 210번 고속도로로 불길이 번져 도로가 폐쇄됐고 인근 주택 수십 채가 전소했다.관내 학교 수십 곳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리틀 투정가 캐년로드 목장에서 말 30마리가 불에 탄 사체로 발견됐다. 이번 산불로 인한 정확한 인명피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산불 때문에 LA 북서부 지역이 시커먼 연기에 뒤덮인 상태로, 당국은 주민들에게 실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LA 북부 라크레센타와 발렌시아 지역도 산불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 주민들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기상당국은 극도로 건조한 강풍인 ‘샌타애나’로 인한 산불 경보가 8일까지 내려진 상태라고 전했다. 샌타애나는 미 서부 내륙 대분지에서 고기압이 산맥을 넘어오면서 해안 쪽으로 건조한 강풍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미 삼림국(USFS) 관계자는 “강풍은 매년 이맘때면 이 정도로 부는 경우가 많았다.문제는 바짝 마른 상태로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는 건조한 식생”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강풍이 시속 70㎞ 넘는 세기로 불 때는 소방헬기를 동원한 진화 작업이 무력화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상당국은 6일 오전부터 바람이 약간 잦아들었으나 이날 저녁과 7일 새벽 사이에 시속 100㎞의 강풍이 다시 불 것으로 예상돼 이번 화재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北 핵보유국 인정, 美 전쟁 압박, 우리의 無대책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시험발사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 공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화성15형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북한과의 전쟁도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밝혔고 미국 공화당 내 대북 강경파인 그레이엄 의원은 주한 미군 가족들의 철수 필요성을 제기하며 “의회에서 대북 선제공격을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제 한·미 양국이 미국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6대를 포함한 230여대의 항공기가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 공중훈련(비질런트 에이스)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북한이다. 핵무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최근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협상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방중 러시아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대화 테이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핵보유국 인정 자체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국제사회에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화전양면 전략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영국 보수 일간 더타임스 일요판 더선데이타임스는 최근 중국 지도부가 핵보유국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해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 역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난하며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주변 강대국들의 기 싸움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혼돈 상황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한반도는 지금 1993년과 2002년에 이어 3차 핵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과거 두 차례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이번 안보 위기가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북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엄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가 가진 외교안보 역량을 모두 가동해 지혜롭게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북·미 간 격돌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전선과 미·일 군사동맹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이중고까지 겹쳤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 해상봉쇄 추진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송영무 국방장관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국민 불안을 덜어주기는커녕 더욱 증폭시키고 있으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무엇보다 명확하고 확실한 목표를 제시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강대국들의 충돌을 막아 우리의 외교 공간을 넓히는 정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피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전쟁의 잿더미가 되는 참사를 막는 것이 절체절명의 목표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 [데스크 시각] “바흐 위원장, 귀하 차례요”/송한수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바흐 위원장, 귀하 차례요”/송한수 체육부장

    ‘우리들은 대한 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기른 힘과 닦은 기술 최후까지 떨쳐 보세/ 조국의 영광 안고 온 세계에 내닫는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자 빛을 내자 배달의 영예를/ 맘과 맘을 한데 뭉쳐 정정당당 싸워 보세/ 돌진하는 우리 용사 당할 자가 그 누구냐/ 개선의 태극기가 하늘 높이 휘날린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자 빛을 내자 배달의 영예를’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즈음해 새삼 되새기게 된다. 24일로 큰잔치 개막을 77일 앞뒀다. 1970~1980년대 국제 스포츠 이벤트 때마다 불린 노래 ‘이기자 대한 건아’를 곱씹는다. 시대를 비추는 듯 군가 냄새를 짙게 풍긴다. 되레 그래서 한껏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보급 또한 참 쉬웠다. 온통 “체력은 국력”이라고 외치던 시절이니 말이다. 국가에서 정책을 내리기만 하면 거칠 게 없었다. 국민을 하나로 묶긴 한 듯하다. 그땐 그랬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 환영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서 풀려 태극기를 들고 마중했다. 선수들은 서슬 퍼렇던 청와대까지 초대됐다. 물론 나라를 대표해 싸워 이긴 게 나쁘진 않다. 그 누구도 손사래를 치지 못할 행사였다. 으레 자랑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곡절을 거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정권은 늘어난 참가국을 들먹이며 뻐겼다. 개최국 자부심에 얼큰하게 취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회는 ‘반쪽 아닌 반쪽’이었다. 한 핏줄인 북한이 빠졌다. 참가하려 해도 군사정부엔 달갑지 않았을 터다. 당연히 “오라”는 손짓도 없었다. 분단국이란 사실이 대회 유치를 거들었다. 비무장지대(DMZ)를 둔 점으로 봐도 그렇다. 올림픽 정신에 걸맞은 ‘평화’를 일깨울 수 있다는 뜻에서다. 실제 대회 앞뒤로 국제사회에서 걱정한 ‘사고’는 없었다. 세계 최고의 행사를 치를 힘을 뽐낸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불안감을 싹 씻었다. 군사정부는 기회를 놓칠세라 또 우쭐댔다. 어쨌든 성공적인 개최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리고 30년 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치른다. 적어도 외관상 모든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근심도 적잖다. 참가국 역대 최다를 뽐낼 게 아니다. 북한 동참이 걸린 문제다. 지구촌 ‘화합’을 내세운 올림픽 슬로건 앞에 예외는 없다. 지금도 똑같다. 30년 전 슬픔을 되풀이할 까닭도 없다. 당시 정부, 아니 정권엔 의지가 없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세울’이라며 개최국 결정을 발표한 장면을 두고두고 우려먹었을 뿐이다. 따라서 IOC가 나설 수도, 나설 뜻도 없었다. 그렇다. 제1 적국으로 다룬 소련도 서울 땅을 밟았는데 북한을 꺼릴 것까진 없었다. 하지만 2018년은 다르다. 문재인 정부에 북한을 불러야 한다는 뜻은 굳다. 거듭 말하지만 IOC와 궤를 같이한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 북한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를 평창에 모을 수 있도록 IOC도 마지막까지 애써야 한다. 30년을 건너 이제 바통은 토마스 바흐 위원장에게 넘겨졌다. 잿더미 속에서도 꽃을 활짝 피워야 한다. 하물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경제 대국이다. 확실한 근거를 대기 힘든 안보 불안감만으로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히로시마 효과’를 조용히 떠올린다. 핵폭탄에 맞아 폭삭 주저앉았다가 ‘평화 광장’으로 세계적 교훈을 심고 있어서다. onekor@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깨달음도 덧없어라… 죽은 영혼 달래 주던 야외 법당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깨달음도 덧없어라… 죽은 영혼 달래 주던 야외 법당

    충남 서산 개심사(開心寺)는 아름다운 것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절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절집이 일으키는 상승작용이 이런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심사는 이른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型) 사찰이다. 산 중턱 경사지에 큰법당을 비롯한 4개의 절집이 정사각형 마당을 감싸고 있다. 조선 후기를 특징짓는 가람 배치라 할 수 있다.개심사 사적기(事蹟記)에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창건하고 개원사(開元寺)라 했다’고 적혀 있다. 진덕여왕 5년은 651년이고, 의자왕 14년은 654년이다. 게다가 불교사에 이름을 남긴 혜감국사(1249~1319)는 고려시대 고승(高僧)이다. 사적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창건 시기는 미궁에 빠져든다. 사적기는 양면 괘지에 만년필로 썼으니 근년에 옮겨 적고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고려 국가기관이 보수할 만큼 가치 있던 사찰 그런데 2004년 개심사 대웅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腹藏)에서 ‘1280년(고려 충렬왕 6년) 승재색(僧齋色)이 보수했다’는 내용의 기록이 발견됐다. 승재색은 불경 간행과 같은 불사(佛事)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국가기관이었다. 복장이란 불상의 내부에 모신 불경 같은 상징물을 이른다. 보수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면 불상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국가기관이 보수에 나섰다는 것은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개심사지만 그저 한적한 시골 사찰이 아니었음을 알려 준다.사적기는 이어 1350년(충정왕 2년) 처능대사가 대웅전과 기타 전당(殿堂) 그리고 요사(寮舍) 일체를 중건하고 개심사로 개칭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 내용은 그런대로 믿을 만하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큰법당인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오층짜리 석탑은 백제시대 석탑의 전형이지만, 개심사 것에서 백제 특유의 미감(美感)은 느껴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처능대사가 이 석탑도 세운 것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처능대사의 중창이란 몽골의 침입이나 왜구의 발호로 훼손되거나 폐허화했던 절의 면모를 일신한 불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1231년(고종 18년)부터 1259년(고종 46년)에 걸친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몽골 침입기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타는 등 많은 사찰이 피해를 입었다.●고려 처능대사 개원사→개심사 개칭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세력을 키운 왜구가 한반도 전체를 위협했는데, 충청도 서해안 지역은 그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같은 서산의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역시 이 시기 왜구가 약탈해 일본에 가져간 것으로 부석사 측은 보고 있다. 일본 쓰시마의 한 절에서 도둑이 훔쳐 다시 들여온 부석사 관세음좌상은 지금 그 소유권을 놓고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개심사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잿더미가 되기도 했다. 1475년(조선 성종 6년) 충청도 병마절도사 김서형이 훈련을 한다며 군졸을 징발해 사냥을 하다 산불을 내는 바람에 금산(禁山)의 소나무는 물론 개심사까지 태운 것이다. 지금의 대웅전과 심검당은 이 때문에 다시 지은 것이다. 요사채인 심검당은 1962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1477년 세 번째로 중창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구부러진 나무를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기둥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 심검당의 부엌은 후대에 이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스님의 생활공간에 이어 예배공간인 대웅전은 1484년 지었다. 지금 개심사는 중생의 극락왕생 소원을 들어주는 정토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각이 안양루(安養樓)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것도 그렇다. 안양이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절의 큰법당은 보통 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이라고 이름 짓는다. 그런데 개심사 큰법당은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곡절이 있을 듯싶다. 개심사 들머리의 돌계단을 기분 좋게 오르다 조금 숨이 찰 때쯤 오른쪽으로 안양루가 나타난다. 그 바깥에는 큰 글씨의 전서체로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라고 쓴 현판이 보인다. 해강 김규진(1868~1933)의 글씨라고 한다. 큼직큼직하면서 모나지 않은 해강의 글씨는 개심사의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충청남도 서쪽에 남북으로 자리잡은 산줄기가 가야산이다. 이 산 서쪽에는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불과 보원사 터, 산 동쪽에는 가야사 터가 있다. 둘 다 역사가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큰 절이었다. 개심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해당한다. 개심사가 이고 있는 산봉우리는 별도로 상왕산이라고도 한다. 코끼리는 부처를 상징한다. 부처는 깨달음을 이룬 보드가야에서 멀지 않은 시사가야에서 1000명의 비구에게 설법을 했다. 시사가야가 가야산이다. 가야산은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부른다. 상두산은 상왕산과 같은 뜻이다. 그러니 가야산이 곧 상왕산이다. 이런 상징성을 부여한 산에 지은 절이니 초창 시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양란 거치면서 정토사찰로 성격 변화한 듯 그런데 서산 지역에 외적의 침입이 이어지면서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 중생의 신앙 형태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는 깨달음보다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극락왕생과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는 기능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이것이 개심사가 정토사찰로 성격을 바꾼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큰법당의 이름은 대웅전을 유지해 상왕산의 상징성도 이어 갈 수 있었다. 개심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정토사찰의 성격을 더욱 강화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사적기에는 1613년(광해군 5년) 대웅전 이후 각 전각과 요사를 중수하고 시왕전(十王殿)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왕전은 명부전의 다른 이름이다. 1941년 대웅전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명에는 1644년(인조 22년) 중창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889년 작성된 개심사 중창 수리기에는 명부전을 1646년(인조 24년) 신축했다고 적혀 있다. 연도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양란(兩亂)이 중수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안양루와 무량수각을 새로 지어 중정형 구조를 완성한 것도 이때일 것이다. 중정형 사찰에서 마당이 갖는 의미는 크다. 많은 신도가 참여한 가운데 법회를 열 수 있는 야외 법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야외 법회에 내걸 대형 불화(佛畵)도 필요해졌다. 괘불(掛佛)이다. 괘불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학계는 이 걸개그림의 발생을 임진왜란·병자호란과 직접 연결 짓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어 좁은 법당에서는 고혼(孤魂)을 위로하는 법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넓은 마당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걸맞은 크기의 탱화도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개심사에 있는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은 1772년(영조 48년)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산회괘불탱 이전에도 이 절에는 당연히 다른 괘불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대웅보전 앞에는 깨져서 쓰지 못하는 옛 괘불대가 남아 있다. 동남쪽에 외따로 지어진 명부전 역시 양난의 비극이 낳은 법당일 것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의 권능을 빌어 죽은 이의 넋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가진 전각이다. 개심사가 가진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이런 사연도 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역대 최악 산불 속 36시간 버티며 가족 기다린 반려견

    역대 최악 산불 속 36시간 버티며 가족 기다린 반려견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로 최소 40명이 사망한 가운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반려견이 화재 속에서 살아남아 가족과 다시 만나는 기적적인 장면이 공개됐다. 잭 위버(37)는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대피했다. 당시 집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버니즈 마운틴 도그 종의 반려견 ‘이찌’가 함께 있었지만, 대피 당시 반려견이 화재에 놀라 집 밖 울타리를 넘어 뛰어나가는 바람에 함께 대피하지 못했다. 위버의 가족들은 모두 반려견이 화마를 피하지 못해 죽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슬픔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특히 이찌를 각별하게 아끼던 위버의 부모는 그 누구보다 상심을 감추지 못했다. 대피한 지 36시간이 지난 후, 위버는 화재 피해를 입은 집을 살피기 위해 동네로 다시 향했다. 이들의 집은 새까만 잿더미로 변해 있었고, 곳곳은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돌무더기로 가득했지만 반려견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위버가 길 끝에 있는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잿더미와 돌 뿐인 집터에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뛰어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무려 36시간 동안 화재에 휩싸인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고 가족을 기다린 반려견이었다. 위버의 반려견은 털이 불에 약간 그슬리긴 했지만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위버의 여동생은 “우리 가족은 반려견이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기적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다 타버린 집으로 돌아갔다”면서 “반려견은 내내 폐허 속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결국 꼬리를 흔들며 가족에게 돌아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화재 속에서도 살아남아 가족을 기다린 반려견과 가족의 재회 장면은 SNS를 통해 퍼지면서 감동을 선사했다. 한편 6일 동안 이어진 산불이 이어졌을 당시 일부 주민들은 미쳐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하지 못했고, 현지 소방당국과 수의사들은 화재 현장에서 개 44마리와 고양이 64마리를 구조해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일부는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당국은 홈페이지를 개설해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가족에게 보호 중인 동물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와인 메카’ 나퍼밸리 잿더미로… 한인 거주지까지 덮쳐

    ‘와인 메카’ 나퍼밸리 잿더미로… 한인 거주지까지 덮쳐

    강풍 타고 17갈래 삽시간 확산 ‘신흥거주지’ 커피파크 전역 피해 한인주택 3채 등 1500여채 전소세계적 와인 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 나퍼밸리와 서노마 카운티 인근에서 동시 다발로 대형 산불이 일어나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주민 2만명이 대피했다고 AP통신 등이 9일(현지시간) 전했다. 산불은 전날 밤 10시쯤 나퍼밸리 인근 칼리스토가에서 시작됐다. 이 산불은 강풍을 타고 30m가 넘는 화마로 돌변해 들판과 고속도로를 뛰어넘어 삽시간에 북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퍼졌다. 캘리포니아 삼림·산불 보호국 캔 피믈롯 국장은 “산불이 17개로 갈라지면서 서노마 카운티에서 7명, 나퍼 카운티에서 2명, 멘도시노 카운티에서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또 주민 100여명이 다쳤고 2만여명이 대피했으며 건물 1500여채가 전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불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에 지난 3월 이후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한 상태여서 자연 발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피해를 당한 곳은 인구 17만여명이 거주하는 샌타로자시다. 특히 북부 커피파크 지역은 1980년부터 개발된 신흥 주거지로 산불이 시내로 번지면서 K마트, 맥도날드, 애플비 등 식당들과 주택들이 대부분 전소했다. 이 지역 거주 한인 주택 3채도 소실됐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관계자는 “인명 피해 여부를 계속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즉각 서노마, 나퍼, 유바 카운티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는 “산불이 매우 빠르게 번지고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는 어떤 수단으로도 통제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나퍼 지역 유명 와이너리인 시그노렐로 에스테이트도 불에 탔다. 인근 스태그스 리프 와이너리 건물도 화염에 휩싸였으며 소다 캐니언 로드의 와이너리 건물들도 전소했다. 나퍼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리조트인 실버라도 리조트 앤드 스파 투숙객들도 화염이 다가오면서 새벽에 급히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 리조트는 지난 8일 끝난 미프로골프(PGA) 투어 ‘세이프웨이 오픈’이 개최된 곳이다. 수백명의 소방관이 4000~5000에이커(약 1620만~2020만㎡)에 달하는 산불에 맞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불길은 시속 50마일(80㎞)의 강풍을 타고 계속 번지고 있어 피해는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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