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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남미] 소방관 옷입고 직접 산불끄는 볼리비아 대통령 논란

    [여기는 남미] 소방관 옷입고 직접 산불끄는 볼리비아 대통령 논란

    소방대 옷을 입고 산불을 끈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논란에 휘말렸다. 아마존 산불이 이슈가 되면서 자연 재난까지 정치에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27일(이하 현지시간) 헬기를 타고 대규모 산불이 난 볼리비아 동부 산타로사로 이동했다. 국방장관 등 국무위원도 다수 모랄레스 대통령을 수행했다. 볼리비아 대통령궁을 출입하는 기자단도 함께 이동하며 모랄레스 대통령을 밀착 취재했다. 이튿날인 28일 모랄레스 대통령은 소방대 옷을 입고 산불 현장을 찾았다. 연기는 자욱하지만 안전한 곳을 방문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물을 뿌리며 산불을 진화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4군데 불길을 직접 잡았다"면서 현장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했다. 불길이 일어난 곳에 물을 뿌리는 모습, 초췌한(?) 얼굴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은 모두 대통령궁 기자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동영상과 사진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랐다. 볼리비아 대통령궁은 동영상에 "국무위원, 기자들과 함께 산타로사 재앙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대통령이 산불을 잡는 동영상과 사진은 즉각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직접 진화작업을 벌였다"면서 박수를 보냈지만 야권과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네티즌들은 '보여주기 정치'의 끝판이라고 질타했다.야당의 대통령후보 카를로스 메사는 "모랄레스의 정치 쇼가 최악의 산불재난이 발생한 산타로사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야당 상원의원 제아네 아녜스는 "모랄레스 대통령이 마치 파워레인저처럼 행동하고 있다"면서 "큰 재난이 발생한 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자들까지 데리고 다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난을 정치에 이용해선 안 된다"면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소방대 옷을 입고 불을 끄는 시늉을 한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마존과 인접한 볼리비아 산타로사에선 대규모 산불이 발생, 최소한 산림 70만 헥타르가 잿더미가 됐다. 현지 관계자는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 규모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산불로 인한 피해 면적이 이미 100만 헥타르를 넘어섰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모랄레스 대통령은 오는 10월 실시되는 대통령선거에서 4선에 도전한다. 선거에서 이긴다면 모랄레스 대통령은 2025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사진=볼리비아 대통령궁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해마다 소리없이 불타는 페루의 아마존, 이유는?

    해마다 소리없이 불타는 페루의 아마존, 이유는?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아마존 영토를 가진 국가 페루에서 해마다 아마존 밀림의 면적이 줄고 있다고 에페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금까지 페루 아마존 면적은 최소한 210만 헥타르 줄었다. 이웃국가 엘살바도르의 국토보다 큰 면적이 증발했다는 것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밀림훼손이 원인으로 꼽힌다. 페루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공식 통계를 보면 페루 아마존은 해마다 평균 12만3500헥타르씩 줄고 있다. 2017년의 경우 페루 아마존의 면적은 15만6000헥타르 줄었다. 하지만 초대형 밀림 훼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한 번에 50헥타르 이상 밀림이 훼손된 경우는 전체의 3%에 불과했다. 반면 훼손 면적이 5헥타르 미만인 '초미니 사건'은 전체의 78%였다. 범인은 농민들이다. 페루에선 해마다 수천 명 농민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놓는 식으로 아마존 농지를 개간한다. 농사를 지은 뒤엔 땅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들게 개간한 농지를 버리는 건 토질이 훼손되기 때문. 당국자는 "불을 놓으면 토질이 훼손돼 농사를 지어도 큰 수확은 어렵다"면서 "농민들은 아마존의 다른 곳을 찾아 떠나기 일쑤"라고 말했다. 아마존을 훼손하고 농사를 짓는 건 페루 현지법이 금하고 있는 불법행위다. 그러나 워낙 작은 규모로 개간이 진행되다 보니 당국이 이를 일일이 단속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당국자는 "영세 농민들이 소규모로 밀림을 훼손하고 있지만 아마존 면적이 워낙 커 100% 단속은 어렵다"고 말했다. 페루 아마존의 면적은 6850만 헥타르, 전체 국토의 54%가 아마존 밀림이다. 농민들이 농지 개간을 위해 놓은 불이 초대형 화재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페루 아마존에선 농민이 놓은 불이 번지면서 아마존 3600헥타르가 잿더미가 됐다. 페루 밀림-자연보호서비스 국장 루이스 알베르토 곤살레스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지구촌이 아마존 보호에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책꽂이]

    [책꽂이]

    처칠, 끝없는 투쟁(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돌베개 펴냄) 독일인으로 태어나 영국으로 망명, 언론인으로 일했던 저자가 독일을 잿더미 속으로 밀어넣은 전쟁 영웅 처칠의 일대기를 그렸다. 1940~1941년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거대 게르만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상찬하는 한편, 처칠이 기실 파시스트에 가깝고 정치인으로서는 네빌 체임벌린보다 하수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한다. 336쪽. 1만 6000원.첨성대의 건축학적 수수께끼(김장훈 지음, 동아시아 펴냄) 첨성대는 천문관측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과연 그곳에서 어떻게 하늘을 관측했을지 의문이 무수히 제기돼 왔다. 김장훈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옛 문헌 기록과 실측도·복원도를 실어 얼개와 기울기 등 첨성태의 건축 양식을 탐구했다. 240쪽. 1만 6000원.작가라서(파리 리뷰 엮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 1953년 창간한 미국의 문학 잡지 ‘파리 리뷰’가 작가 303명을 인터뷰해 얻은 919개의 생각을 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귄터 그라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대문호들이 어디에서 제목을 떠올리는지, 어떻게 원고를 퇴고하고 슬럼프를 극복하는지 그들의 작업 방식과 감성,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616쪽. 2만 6500원.불평등의 세대(이철승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계급 대신 세대라는 틀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한 저작.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386세대가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독점해 온 과정과 그로 인해 어떻게 세대 간 불평등을 야기해 왔는지를 다양한 데이터 분석으로써 드러냈다. 361쪽. 1만 7000원.두 얼굴의 법원(권석천 지음, 창비 펴냄)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사법농단 심층 기록.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베일을 벗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탄희 전 판사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법조기자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취재원의 증언, 재판 취재 등을 통해 사법농단은 몇몇 인물들의 일탈 때문이 아니라 대법원장 중심의 법원 시스템에서 파생된 것임을 역설한다. 420쪽. 1만 8000원.1945(배삼식 지음, 민음사 펴냄) 식민지 시대의 절망과 혼란을 담은 희곡 2편을 담은 희곡집. 해방 후,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머물렀던 전재민 구제소를 배경으로 민족과 국가 바깥으로 밀려났던 이들의 귀환 스토리를 곡진하게 담아냈다. 232쪽. 1만 3000원.
  • 비잔티움 꽃피운 문명의 용광로… 500년간 멈추지 않는 오스만의 심장

    비잔티움 꽃피운 문명의 용광로… 500년간 멈추지 않는 오스만의 심장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자신의 책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에서 이스탄불을 이렇게 말했다. 파무크는 ‘내 이름은 빨강’, ‘순수박물관’, ‘새로운 인생’ 등을 쓴 터키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지목하며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파무크는 터키 작가라기보다 이스탄불 작가라는 게 맞다. 스스로도 “나는 이스탄불 소설가”라고 말한다.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는 현재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장편소설 중 ‘눈’(雪)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썼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스탄불을 이렇게 말한다.“내 어린 시절의 이스탄불이 내게 불러일으킨 강렬한 비애의 감정의 원천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역사나 오스만제국의 몰락이 가져온 결과뿐만 아니라 이 역사가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그의 말대로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그 영향력을 뻗었던 나라 오스만튀르크. 지금 그 땅에는 그 문명과 기독교, 이슬람교가 오랜 시간 뒤엉킨 흔적이 남아 있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도시였던 이스탄불은 동서양 문물 교류의 중심점이었다. 고대 히타이트부터 시작해 프리지아, 우라티아, 리디아와 로마문명,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녹아든 곳이 바로 터키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터키를 두고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박물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이스탄불의 시작은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통치자 비자스는 오랜 기도 끝에 ‘눈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는다. 이 의미를 깨닫기 위해 고심하던 비자스는 보스포루스 해안 맞은편의 언덕과 마주친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보스포루스해협과 마르마라해, 에게해, 이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에 세상의 절경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미처 보지 못했던 언덕 위에 비자스의 도시 비잔티움이 태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이스탄불의 시작이다. 하지만 도시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서기 330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200년에는 십자군의 침략을 받고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초토화된다. 그러다가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이 무너진 후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스탄불은 6세기에 이미 인구가 50만명, 9세기에는 100만명이 넘었던 거대도시였다. 지금의 인구도 120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해마다 평균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든다. 이런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바로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세계 4대 교회 건축물 중 하나다. 이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4세기인데,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으로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인부 1만명을 동원해 5년에 걸쳐 지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함락되기 전까지 약 900년 동안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이었으며, 1593년 성베드로 대성당이 들어서기 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성당이 건립되었을 당시 이름은 하기아소피아인데, 터키 사람들은 아야소피아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은 532년 반란으로 파괴된 것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지은 것이다.아야소피아 성당은 고난이 많은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십자군 전쟁 때는 십자군들의 약탈 대상이 됐고,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 성당에서 밀려오는 튀르크 군을 바라보며 화염 속에 몸을 던져 자결하기도 했다. 메흐메트 2세는 이스탄불을 점령하고도 성당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다만 1453년부터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종, 제단 등은 제거됐고 기독교 풍의 모자이크는 회반죽으로 덮었다. 이후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아타튀르크)가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이곳을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아야소피아는 고난의 시대를 마감했다. 성당 내부에는 코란의 경전을 새긴 금문자와 최근에 복원한 성화가 있는데, 그것들이 파란만장했던 이스탄불의 역사를 웅변할 뿐이다. 까다로운 보안검색을 거쳐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장엄한 분위기와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드높은 천장의 화려한 모자이크는 보는 이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중앙 돔의 높이가 자그마치 55m에 지름이 31m다. 돔에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성화가 그려져 있고 양옆에는 커다란 원반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금색 문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혼재하는 것이다. 2층 회랑에서는 곳곳에 자리한 모자이크 성화를 눈여겨보자. 비록 많이 훼손됐지만 정교함과 화려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개장식 때 황제가 내부의 화려함을 보고는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소리쳤을 정도였다.아야소피아와 마주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7세기에 세운 이슬람 사원이다. 직경 27.5m의 커다란 중앙 돔과 이 돔을 받치고 있는 작은 돔으로 지붕이 이뤄져 있다. 웅장한 외관에 걸맞게 첨탑 미너렛이 여섯 개 서 있다. 당시 술탄이 모스크의 미너렛을 황금으로 짓도록 했는데 자금이 부족하자 건축가가 황금(알튼·altin)과 숫자 6(알트·alti)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해 황금 대신 미너렛을 여섯 개 세웠다고 한다. 내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2만 개 이상의 파란색 타일과 260개 파란 유리창이 푸른 빛을 띠어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로 인해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그랜드 바자르다. 바자르는 중앙아시아의 도시마다 있는 시장을 뜻하는데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자르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역사는 무려 500년에 달한다. 현재 무려 5000개의 상점들이 몰려 있는데 보석과 장신구에서 화려한 터키의 그릇, 조명, 가죽류, 입맛을 유혹하는 터키식 젤리, 향신료, 액세서리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그랜드 바자르의 모든 입구에는 번호가 쓰여 있는데 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꼭 이 번호를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워낙 큰 시장이다 보니 어느 입구로 나오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번호를 모르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지중해기행’을 쓴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은 “콘스탄티노플에 가면 꼭 그랜드 바자르를 보고 와야 한다. 이 도시의 심장부가 거기 있다”고까지 했다. 파무크의 이스탄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은 ‘순수박물관’이다. 2008년작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소설이다. 한 남자가 단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을 모으고, 결국 그 물건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내용이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내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아주아주 사랑하면, 그를 위해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것을 내주어도 그로부터 해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 희생은 바로 이런 거야.”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파무크가 진짜로 이 순수박물관을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파무크는 작품을 쓰기 전에 이미 ‘순수박물관’의 배경이 될 공간을 구입했으며, 자신이 직접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다. 박물관에는 소설의 각 장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하나의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작가에게 이스탄불은 애증이 교차하는 도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스탄불을 이렇게 한탄하곤 했다. “몰락하여 붕괴된 제국의 잔재, 잿더미 아래서 무기력, 빈곤 그리고 우울과 함께 퇴색되며 낡아가는 이스탄불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스탄불을 사랑하는가 보다.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하니까. “삶이 그렇게 최악일 수는 없어. 여전히 보스포루스로 산책 나갈 수 있으니까.” [여행수첩]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을 주 11회 왕복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 30분.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통화는 리라(YTL)를 사용한다. 1리라에 약 240원이다. 물가는 저렴한 편이다. 터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빵 시미트가 1.5리라(약 400원) 정도다. 터키 음식은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불린다. ‘케밥’은 ‘구이’라는 뜻으로 물이 풍부하지 않은 유목생활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케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긴 쇠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구워 먹는 요리를 떠올리는데, 사실 육류를 불에 구워내는 것은 모두 케밥이다. 케밥은 지역, 굽는 방식, 그리고 육류에 따라 수없이 분화돼 오늘날 터키 케밥의 종류는 200~30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란은 터키의 국민 음료다. 요구르트에 물을 섞어 희석한, 묽은 요구르트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흔히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부르는 로쿰은,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그 달콤함으로 여행의 모든 피로와 근심을 잊게 해 준다. 이스탄불 히포드롬 광장 북쪽에 자리한 ‘요리사 셀림의 쾨프테집’은 터키식 떡갈비 ‘쾨프테’로 유명하다. 터키항공은 환승객을 위해 ‘투어 이스탄불’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환승을 위해 6~24시간 머무르는 레이오버 승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 관광프로그램이다. 현지 가이드와 버스가 제공되고 아침·점심 식사가 포함돼 있다.
  • 참전용사 한명씩 호명한 문 대통령 “나라 정체성 지켰다”

    참전용사 한명씩 호명한 문 대통령 “나라 정체성 지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6·25 전쟁 참전유공자와 가족 182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게 참전용사의 희생·헌신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6·25 전쟁 참전유공자들이 현역 장병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된 적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참전유공자들만 따로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연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사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박한기 합참의장 등 한미 양국의 정부·군 고위관계자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6·25는 비통한 역사이지만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켰다”며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려는 노력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전쟁의 잿더미에서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 불을 넘는 경제 강국으로 발전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전쟁과 질병, 저개발과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원조공여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여러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애국의 참된 가치를 일깨운 모든 참전용사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며 “참전용사들이야말로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늘 건강하게 평화의 길을 응원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참전용사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며 헌신에 보답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이자 후손의 의무”라며 “선양과 보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부는 참전명예수당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존경받도록 대통령 근조기와 영구용 태극기를 정중히 전해 드리고 있다”며 “재가복지서비스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에 대해서도 “4월 1일부터 지금까지 유해 72구, 유품 3만 3000여 점을 발굴했다”며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최고의 예우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화살머리고지 전투 참여 유공자 박동하(94) 선생이 ‘전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하자 “화살머리고지에는 수많은 용사가 잠들어 계신다. 감동적 편지를 낭독해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소중한 아들딸, 자랑스러운 부모였던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전선으로 향했다”며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한명씩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고등학생 유병추 님은 학도병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공헌했고, 박운욱 님을 비롯해 일본에서 살던 642명의 청년은 참전 의무가 없는데도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을 재일학도의용군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이어 “고(故) 김영옥 대령님은 미국 최고의 전쟁영웅 16인 중 한 분으로, 전역 후임에도 다시 입대해 조국으로 달려왔다”며 “휴전선 중·동부를 60㎞나 북상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경찰도 전쟁의 참화에 맞섰다. 고 임진화 경사는 경찰 화랑부대 소속으로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며 “수류탄 파편 7개가 몸에 박히는 중상에도 전장으로 복귀해 조국을 지켰다”고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외국 참전용사도 언급하며 “6·25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이 함께 전쟁의 폭력에 맞선 정의로운 인류의 역사”라며 “22개국 195만명의 젊은이가 대한민국으로 달려왔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 중심에 미국이 있었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전해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다. 정부는 그 숭고한 희생을 기려 워싱턴에 ‘추모의 벽’을 건립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은 동맹의 위대함을 기억하며 누구도 가보지 못한 항구적 평화의 길을 함께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참전유공자들에게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시계와 건강식품을 선물했다. 또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뤄 참전용사의 용기와 애국에 보답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참전용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새겨 전했다. 다만 지난 4일 국가유공자·보훈가족 초청 오찬 당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채 배포돼 천안함 희생자 유족 등 참석자들의 반발을 불렀던 소책자는 제공하지 않았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출렁다리·묵호등대 새단장… 동해, 산불 딛고 감성관광 1번지로”

    “출렁다리·묵호등대 새단장… 동해, 산불 딛고 감성관광 1번지로”

    해안~논골담길~도째비골 관광벨트화 한반도 최대 해안석림 능파대 길 정비 묵호 옛 정취 살린 ‘전시·체험관’ 눈길 협곡 횡단 하늘자전거·미끄럼틀도 추진 오감만족… 힐링·전지훈련 최적지 우뚝강원 동해시가 산불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강소형 관광도시로 재도약하고 있다. 지난 4월 대형 산불로 국내 최대 망상해변의 오토캠핑장이 잿더미로 변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층 업그레이된 관광자원을 개발, 접목하며 면모를 새롭게 하고 나섰다. 감성관광지인 묵호등대 논골담길에는 최근 마을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체험관 ‘묵호 시간여행호’가 문을 열었다. 애국가 영상에 등장하는 추암 촛대바위 주변에는 바다 출렁다리가 곧 선보이고, 묵호등대 인근에는 대규모 체험시설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추진된다.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도심의 황금박쥐천곡동굴은 시설을 재정비하고 오는 14일 재개장한다. 지난해 개장한 뒤 어려움을 겪던 촛대바위 주변 동해러시아대게마을도 새롭게 정비돼 전국에서 가장 싸게 대게와 회를 맛볼 수 있는 인기 먹거리 장소로 자리잡고 있다. 신선한 해산물, 야시장, 이색 체험장 등 관광 인프라가 풍부한 복합관광지 동해가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하고 있다. 10일 심규언 동해시장과 실무자들을 만나 작지만 탄탄한 관광도시 동해의 청사진을 들었다.●바다 배경 출렁다리서 촛대바위 조망 가능 청정바다의 고장 동해시에 또 하나의 명소가 문을 연다. 동해 일출과 애국가 첫 소절 영상으로 유명해진 추암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출렁다리가 놓여 관광객을 맞는다. 바다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마치 촛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듯한 촛대바위와 이를 배경으로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에 출렁다리를 만들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국내 첫 출렁다리다. 촛대바위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석림에서 해암정까지 바다 위를 가로질러 만들어졌다. 인접 군부대 해안경계로를 겸하기 때문에 야간에는 운영하지 않을 방침이다. 길이 72m, 폭 2.5m 규모의 아담한 출렁다리지만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명소가 될 전망이다. 출렁다리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됐다. 현수교 등 대규모 교량 주탑에 주로 쓰는 고강도 철선 케이블을 사용해 25t 덤프트럭 22대가 매달려도 버틸 수 있도록 했다. 지지대도 1440t을 견디며 성인 672명이 동시에 지나가도 문제가 없도록 했다. 해안의 특성을 감안해 초속 45m의 태풍과 규모 6.0~6.3(내진 1등급)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었다. 출렁다리는 동해시 숙원인 추암관광지 명소화사업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동안 상가와 캠핑장, 야외공연장 등을 정비하고 한반도 최대 해안 석림인 능파대 일대 산책로를 새롭게 단장했다. 여기에 출렁다리까지 생기면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은이 공보팀장은 “해안 절경과 쪽빛 해변, 능파대를 품은 강점을 살려 2020년 추암 근린공원까지 조성되면 전국 최고의 종합휴양타운으로 자리잡게 된다”며 “동해 추암~삼척 증산을 잇는 해안도로가 개설된 데 이어 올해 추암철도 가도교 확장사업까지 완공되면 추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묵호등대 논골담길 인근도 업그레이드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공모사업에서 어촌지역 얘기를 표현한 벽화·전시공간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있는 논골담길을 선정하며 탄력을 받고 있다. 당장 묵호등대에서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바다와 어촌마을의 아기자기한 스토리를 살려 조성된 도째비골에 새로운 체험 관광지가 접목된다. 스쳐가는 관광지가 아닌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묵호등대~월소택지의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로 내년 중반기 완공을 목표로 한다. 80억원을 들여 하늘산책로, 하늘광장, 아트하우스, 체험시설, 도째비숲, 편의시설 등이 조성된다. 지난해 하반기 공사에 들어가 교량공사를 하고 있다. 체류형 관광지로 정착시키기 위해 국내 처음 이색 체험시설을 도입한다. 협곡의 아찔한 스릴을 느끼며 하늘에서 자전거로 건너는 하늘자전거와 원통형 수직 나선 미끄럼틀인 자이언트 슬라이드 체험장을 만든다. 또 도깨비불 포인트 조명과 밤바다의 정취가 어우러진 경관 조명을 설치해 빛의 명소로 조성할 계획이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완공되면 해양관광 거점항인 묵호항과 묵호전통시장, 야시장, 논골담길·묵호등대, 어달·대진해변 일대의 어촌뉴딜 300사업과 연계해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모두 갖춘 묵호권역 관광벨트화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지난 4월에는 묵호등대 논골담길 일대가 감성관광지에 걸맞게 묵호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단장됐다. 논골2길 빈집을 이용해 묵호지역 주민들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전시·체험관 ‘묵호, 시간여행호’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묵호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록물, 옛 어민들이 사용했던 어구들을 전시했다. 집 외부에는 논골담골 벽화를 직접 그려 볼 수 있는 체험공간과 바다의 느낌을 옮겨 놓은 묵호의 정원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 체험거리를 주고 있다.●망상오토캠핑장 숙박시설 새달 초 재개장 등대 오름길에는 빛을 비춰 이미지를 연출하는 로고젝터를 4곳에 설치했다. 1960~80년대 묵호지역의 사진과 이동순 시인의 ‘묵호’ 시집 문구를 이미지화해 주변 지형물과 어우러지는 야간 볼거리를 제공한다. 권순찬 관광과장은 “논골1길에는 해변을 연출한 바닥벽화와 감성벤치를 설치해 포토존도 새로 만들었다”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색 볼거리를 계속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망상오토캠핑장도 빠르게 복원되고 있다. 2001년 국내 처음 만들어져 18년 동안 캠핑 캐러바닝의 메카로 명성을 얻어 온 망상오토캠핑리조트가 산불로 잿더미가 된 뒤 불타지 않은 인근의 제2캠핑장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복구에 나섰다. 당시 산불로 건축물 46개 동이 불타고, 클럽하우스가 사라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2캠핑장을 중심으로 곧바로 운영에 들어갔다. 지난 5일부터는 캐러밴 41대까지 새로 운영을 시작했다. 리조트 내 해변한옥촌 등 숙박시설은 다음달 초 재개장할 예정이다. 아름드리 소나무 등이 불탄 지역은 엄선된 최고의 소나무를 옮겨 심는 등 종전보다 업그레이드된다. 강성국 소통담당관은 “캠핑장에는 청소년, 가족 등 단체예약이 잇따라 지난달 말 대안학교 가족 100여명이 다녀갔고 이달 말에는 한국학생여행 주관으로 ‘2019 KSPO 레저 스포츠 가족캠핑’까지 열려 150여명의 학생 가족들이 2박 3일간 체류하며 천곡동굴, 논골담길, 묵호등대 등의 주요 관광지를 탐방하는 시간도 갖는 등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세먼지가 적고 여름에 상대적으로 시원한 기후로 체육 종목 전지훈련팀들에도 인기를 끄는 점을 살려 힐링여행 관광지로의 변신도 꾀하고 있다. 특히 동해무릉건강숲에서는 친환경 숙박시설과 화이트견운모 찜질방, 산소힐링방 등 체험시설을 즐길 수 있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찾는 힐링여행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심 시장은 “산불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이야기가 있는 작지만 강한 관광지로 동해시가 다시 태어나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임부택 소장부터 딘 헤스 대령까지나라를 지킨 위대한 6·25 전쟁 영웅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3년간 이어지며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9일 국방부와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민간인 24만 4663명이 사망하고 학살당한 사람도 12만 8936명에 이르렀습니다. 부상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모두 포함하면 99만명이 희생됐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전쟁 기간 한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3만 7902명이 전사·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잊지 않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습니다. 보통 ‘영웅’이라고 하면 영화 속 전쟁 영웅, 스포츠 영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6월을 맞아 여러분이 잘 모르는 전쟁 영웅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월이 지나 잊혀졌지만,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그들의 영웅담을 전합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매달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이달의 6·25 전쟁 영웅’을 참고했습니다. ●6·25 전쟁 첫 승리 주역 ‘임부택 육군 소장’6·25 전쟁 영웅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이가 바로 임부택(1919.9.24~2001.11.13) 육군 소장입니다. 그는 국군경비대 창설 멤버로, 중사 계급으로 교관을 맡아 사병(병사와 부사관) 군번 ‘1번’(110001)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기로 소위 임관을 했습니다. 임 소장은 1950년 1월 6사단 7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북한군의 남침 징후를 포착하고 강원 춘천 소양강변 인근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준비태세를 갖췄습니다. 6월 25일 개전 당일, 그의 예측이 적중해 열세의 화력으로도 춘천으로 향하는 북한군을 3일간 막아냈습니다. 이는 개전 초기 큰 혼란에 빠졌던 국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한강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개전 당일 춘천을 점령하고 곧바로 수원으로 진격해 국군 증원부대와 한강 이북의 국군을 포위·섬멸할 계획이었지만, 임 소장을 포함한 장병들의 악착같은 방어로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는 다음달인 7월 충북 음성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공격으로 섬멸해 6·25 전쟁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공로로 7연대 부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6사단 부사단장으로 있던 시기에는 경기 양평 용문산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도 반격해 2만명을 사살하고 3500명을 포로로 잡아 전쟁 최대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53년 7월 11사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휴전전투’로 불리는 ‘삼현지구 반격 작전’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해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팽덕회)가 임 소장을 제거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생전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2차례 받는 등 모두 17개 훈장을 받았습니다.1961년 5·16 쿠데타 당시 1군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내전에 대한 우려와 ‘국군끼리 충돌하지 말라’는 윤보선 대통령 공문이 상부에 전달되면서 나서지 못했고 얼마 뒤 군복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월 11사단에는 그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임부택 장군실’이 마련됐습니다. ●공군 역사를 새로 쓴 ‘김신 공군 중장’김신(1922.9.21~2016.5.19) 공군 중장은 우리 공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분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다음날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 등 10명의 공군 장교와 함께 미군으로부터 ‘F-51 머스탱’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미국은 F-51 전투기 인수 조건으로 ‘훈련 없이도 전투기를 탈 수 있는 조종사’를 원했습니다. 당시 중령이었던 김 중장은 10명 중 유일하게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어 ‘국군 첫 전투기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일행과 쉬지 않고 훈련해 7월 2일 전투기를 이끌고 귀국했고, 휴식도 없이 바로 다음날인 3일부터 출격해 강원 묵호·삼척지구, 서울 영등포·노량진지구 전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맹렬히 공습했습니다. 1951년 10월에는 한국 공군 단독출격 작전도 주도했습니다. 특히 대령으로 제10전투비행 전대장을 맡은 뒤에는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 10㎞ 지점,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철교로 군수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는 “적의 극심한 대공포화 위협을 감수하고라도 고도를 낮춰 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며 목숨을 건 공격전술을 도입했고, 1952년 1월 15일 3번째 출격에서 승호리 철교 폭파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새 역사를 쓴 김 중장은 1962년 공군참모총장을 마친 뒤 제9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고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나라를 지킨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김영옥(1919.1.29~2005.12.29)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제대 후 자영업을 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자원입대해 대위로 군에 복귀했습니다. 김 대령은 주로 정보 수집 업무를 맡으며 한국인 유격대를 조직하다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 때 직접 부대를 지휘해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특히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공세 때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서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른 진격으로 ‘캔자스선’(1951년 서울 탈환 뒤 38도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마련한 전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6월 ‘철의 삼각지대 전투’를 수행하다 중상을 입고 일본 오사카로 후송됐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전선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52년 9월 미국으로 복귀할 때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우리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서울 수복 후 태극기 휘날린 ‘박정모 해병대 대령’‘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박정모(1927.3.20~2010.5.6) 해병대 대령은 1950년 9월 27일 서울탈환 작전 당시 해병대 2대대 6중대 1소대장으로 최전선에 섰습니다. 그는 소대원들과 새벽에 공격을 감행해 치열한 교전 끝에 서울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으로 들어가 옥상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이후 1951년 전쟁 최대 격적지였던 ‘가리산지구 전투’에서 최종 목표인 957고지를 야간 기습공격으로 탈취했고, 연합군 총반격 작전인 ‘리퍼 작전’에도 기여했다고 합니다. ‘도솔산지구 전투’에서는 24개 목표 중 적의 최후 방어선인 제9목표를 일주일 만에 탈환하는 공로도 세웠습니다. 정부는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아버지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딘 헤스(1917.12.6~2015.3.3) 미국 공군 대령은 6·25 전쟁 당시 우리 공군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제6146군사고문단’ 책임자로, 한국인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진두지휘한 인물입니다. 한국 공군이 최단 기간에 ‘싸울 수 있는 군대’로 거듭나게 된 것은 헤스 대령의 공로가 매우 컸습니다. 그는 F-51 전투기로 1951년 6월까지 1년간 무려 250회를 출격하는 초인적인 활동으로, 개전 초기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1·4 후퇴’ 직전 중공군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됐을 당시 적이 눈앞까지 닥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태워 950명의 전쟁 고아와 성인 80명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대피시키기도 했습니다. 전후에도 그는 제주도를 찾아 전쟁고아들을 돌봤고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2017년 3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됐습니다. 우리 공군은 그를 ‘6·25 전쟁 중 한국 공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공로로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들불 속 둥지 지킨 어미 황새의 놀라운 모성애

    들불 속 둥지 지킨 어미 황새의 놀라운 모성애

    둥지 아래로 들불이 번져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고 알을 지킨 어미 황새의 모습이 화제다. 14일 모스크바 타임스는 지난달 28일 러시아 극동지역인 하바 롭스크에서 촬영된 영상을 소개했다. 영상에는 멸종 위기 종인 황새가 철탑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영상은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된 황새 가족을 지켜보기 위해 러시아 세계야생동물기금이 설치한 CCTV에 포착된 것이다. 철탑 아래에 펼쳐진 평야지대는 불길에 휩싸인 상태다. 불길은 계속해서 번지며 둥지 쪽으로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황새는 묵묵히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는다. 화염에도 꿋꿋하게 알을 지킨 어미 황새. 불길이 지나간 후 어미가 지켜낸 알에는 새끼 황새 4마리가 태어났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잿더미에서 탄생한 새로운 생명”, “어미새의 사랑이 대단하다”, “둥지를 한번도 안 떠나다니 신기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불길 속에서도 알을 지킨 황새의 모정에 놀라워했다. 사진·영상=ViRAL USA/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산불 한 달, 희망이 움트다

    산불 한 달, 희망이 움트다

    강원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된 2일 이재민들의 불편한 생활은 이어지고 복구는 지지부진하지만 고성군 성천리 산불피해 현장에서는 새싹이 돋아나며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달 4일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약 3000㏊의 산림이 잿더미로 바뀌고 1000명을 웃도는 주민이 터전을 잃었다. 고성 뉴스1
  •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 도시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 도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여행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여행지가 미얀마다. 하지만 미얀마는 우리에게 다소 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옛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육로를 통해서는 입국이 힘들었고 오직 항공만 이용해야 했다. 미얀마 여행에 대해서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사용하는 돈이 고스란히 미얀마 군부정권의 독재 자금줄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불편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미얀마로 기꺼이 떠났다. 아마도 마음 깊이 부처님을 믿는 순박한 사람들, 곳곳에 자리한 불탑과 사원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여행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매혹을 불러일으켰으리라. “밍글라바.” 미얀마 양곤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 틴윈투(31)가 처음 한 말이었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아마도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음식을 먹다가도 미얀마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밍글라바’ 하고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물론 새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얀마를 여행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나라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설 수 있지? 어떻게 로힝야족 사태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양곤에서 곧장 바간으로 향했다. 미얀마의 가장 일반적인 여행 루트는 양곤~바간~만달레이~인레로 이어지는 코스다. 양곤은 가장 최근까지 미얀마의 수도였고 바간은 우리의 경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인레는 거대한 호수인 인레 호수가 있고 수상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각각 다른 특색과 매력을 가진 이 네 도시를 돌아보면 미얀마 기본 코스를 섭렵했다고 보면 된다. ●11~13세기 수도 ‘바간’… 세계 3대 유적지 양곤에서 바간의 냥우 국제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1시간 20분이 걸렸다. 기내식으로 나온 사과파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도착. 거리로 나오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자리한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 바간의 수많은 불교 사원들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르드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옛날 바간에는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많은 탑과 사원이 있었습니다.” 틴윈투가 서툰 한국말로 띄엄띠엄 말했다. “안타깝게도 2011년과 2016년에 큰 지진이 나면서 많은 불탑이 무너졌습니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메뚜기처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씌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2만 5000원 정도 하는 프리패스를 산다. 이것만 있으면 5일 동안 바간의 사원을 돌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슈웨지곤 파고다. ‘성지에 세운 불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이 서 있는데 이 탑은 바간 불탑의 어머니로 불린다. 바간 왕조 초기 아나우라타가 옆 나라 타톤을 정벌하고 불사를 시작해 그의 아들 치얀지타가 완성했다. 1105년에 지어진 아난다 사원은 건축미가 가장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수도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갔다. 냥우 국제공항에서 오전 8시 30분 날아오른 야다나폰 항공 7y131 편은 이륙 후 16분 만에 착륙 안내방송을 했다. 스튜어디스가 나눠 준 사탕 하나를 다 먹기도 전이었다. 비행시간은 24분. 하지만 차로 가면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니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는 삼륜오토바이와 자동차, 마차로 북적였다. 미얀마 정중앙에 자리한 만달레이는 약 200만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에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들이 건설했다. 만달레이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푸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1942년 일본군이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1.2㎞의 다리다. 185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 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 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수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운이 좋지 않아 비가 왔다. 이 다리는 낮에는 별로 볼품이 없지만 일몰 때면 그 풍경이 180도 변한다. 다리 주차장은 대형관광버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르르 다리로 몰려갔다. 다리 위에는 ‘유명해서 와봤는데, 별로 볼 게 없군’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앞사람의 등을 보고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걷다가 중간에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다음에는 꼭 날씨 좋을 때 저물 무렵에 와 봐야지.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돼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이다. 봉우리 거느린 호수… 그 안에 자리잡은 삶●호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다음날 다시 인레 호수로 향했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리조트에 체크 인을 하고 다시 배를 30분이나 타고 나가 점심을 먹었다. 샨족 전통 요리라고 했는데 중국 광둥요리와 비슷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호수 주변에는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116㎢)쯤 된다. 길이는 22㎞, 폭 11㎞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 호수에는 샨족과 인타족, 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고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 발은 배 위에 딛고 노는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옷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 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 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수상 상점 둘러보면 마을이 큰 테마파크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고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쿤야를 씹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돈 없어도 그냥 가져가요… 햇빛 따가우니까” 인레 여행을 끝내고 다시 양곤으로 가는 공항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항 대합실에서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머니에는 바간 냥우 시장에서 어느 소녀가 쥐어준 타나카(천연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 있다. 시장에서 만난 소녀는 타나카를 사라고 계속 졸라댔지만 지갑을 차에 두고 내려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이 없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선물이라며 바지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건 그냥 선물이에요. 햇빛이 따가운 미얀마에서는 필요할 거예요.” 나는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를 떠올랐다. 후지와라 신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나는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여행수첩 인천국제공항에서 미얀마 양곤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미얀마의 정식 명칭은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우기가 끝나는 5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시차는 2시간 30분. 통화는 차트로 1000차트(MMK)는 약 800원이다. 1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맞아 떨어진다. 사원이나 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맨발이어야 한다. 양말과 덧신도 허용되지 않는다. 신고 벗기 편한 샌들이 좋다. 올해 9월 30일까지 관광객에 한해 30일 무비자를 허용한다. 연장은 불가. 비용이 넉넉하다면 항공 이동을 추천한다. 버스 이동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바간~만달레이는 6시간, 인레~양곤은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모힝가는 생선 국물을 우려내 만든 미얀마식 쌀국수다. 양파, 레몬그라스, 생강, 파, 마늘, 바나나, 무 줄기 등을 함께 넣어 먹는데, 베트남·태국·라오스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처음 맛보는 이들은 약간 비린 육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2∼3일 미얀마에 머무르다 보면 아침부터 모힝가를 찾게 된다.
  • SNS의 마법…노트르담 성당 대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찾았다

    SNS의 마법…노트르담 성당 대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찾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상처를 입기 직전 촬영된 행복한 부녀의 사진이 결국 주인을 찾았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등 해외언론은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두손을 맞잡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트위터 사용자들의 도움으로 주인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이 사진은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이기 1시간 전에 촬영된 것이다. 사진 촬영자는 미국 미시간 주 출신의 브룩 윈저로 당시 그녀는 유명 관광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부녀를 발견해 촬영했다. 성당 앞에서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빙글 돌리는 아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것. 이렇게 추억 속의 한장으로 끝날 사진이었지만 1시간 후 상황은 급변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쳐 지붕 구조물과 성당 내부 목재 장식으로까지 번져나간 것이다. 파리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사투 끝에 잿더미가 될 위기는 면했지만 이 사진 속의 배경은 부녀의 미소처럼 빛날 수 없게됐다. 이후 윈저는 "트위터가 마법을 부려 사진 속 남자를 찾기를 바란다"면서 사진 속 남자를 찾는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에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곧 20만 번 넘게 리트윗되면서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관심을 모은 것. 그리고 지난 18일 윈저는 "(사진 속 부녀) 찾기가 끝났다"며 후일담을 알렸다. 윈저는 "이 사진이 그 가족에게 전달됐다. 다만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가족은 익명으로 남길 원했다"면서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한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날 화재로 18세기에 세운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성당 재건공사를 5년 이내 마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피해가 커서 완전한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노트르담 성당 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사진…SNS 덕 주인 찾았다

    노트르담 성당 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사진…SNS 덕 주인 찾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상처를 입기 직전 촬영된 행복한 부녀의 사진이 결국 주인을 찾았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등 해외언론은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두손을 맞잡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트위터 사용자들의 도움으로 주인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이 사진은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이기 1시간 전에 촬영된 것이다. 사진 촬영자는 미국 미시간 주 출신의 브룩 윈저로 당시 그녀는 유명 관광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부녀를 발견해 촬영했다. 성당 앞에서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빙글 돌리는 아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것. 이렇게 추억 속의 한장으로 끝날 사진이었지만 1시간 후 상황은 급변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쳐 지붕 구조물과 성당 내부 목재 장식으로까지 번져나간 것이다. 파리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사투 끝에 잿더미가 될 위기는 면했지만 이 사진 속의 배경은 부녀의 미소처럼 빛날 수 없게됐다. 이후 윈저는 "트위터가 마법을 부려 사진 속 남자를 찾기를 바란다"면서 사진 속 남자를 찾는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에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곧 20만 번 넘게 리트윗되면서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관심을 모은 것. 그리고 지난 18일 윈저는 "(사진 속 부녀) 찾기가 끝났다"며 후일담을 알렸다. 윈저는 "이 사진이 그 가족에게 전달됐다. 다만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가족은 익명으로 남길 원했다"면서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한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날 화재로 18세기에 세운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성당 재건공사를 5년 이내 마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피해가 커서 완전한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화에 ‘소방로봇 콜로수스’ 역할 톡톡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화에 ‘소방로봇 콜로수스’ 역할 톡톡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자 역사적 장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진화에 소방대원 외에도 '로봇'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언론은 프랑스 소방당국의 비밀병기인 로봇 콜로수스(Colossus)의 활약을 조명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삼킨 화마는 지난 15일 오후 6시 50분쯤 시작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쳤으며 이후 불길은 지붕 구조물과 성당 내부 목재 장식으로까지 번져나갔다. 이처럼 856년동안 파리를 지킨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 잿더미가 될 위기에 빠진 순간 500여 명의 소방대원들은 사투를 벌이며 결국 불길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로봇 콜로수스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자욱한 연기와 유해가스가 가득찬 성당 내부의 불길 진화를 위해 콜로수스가 투입된 것이다. 콜로수스는 이날 소방관들이 위험해 들어갈 수 없었던 성당 내부로 초기 진입해 호스로 물을 뿌려 불을 진화하고 카메라로 내부도 촬영해 소방당국에 정보를 제공했다.보도에 따르면 콜로수스는 프랑스 회사인 샤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것으로 2년 전 파리 소방당국에 처음 배치됐다. HD카메라가 장착된 작은 탱크 모양으로 내화성을 갖췄으며 약 300m 안에서 원격조정된다. 무게는 약 500㎏으로 시속 3.5㎞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며 544㎏의 화물도 실을 수 있는 것이 특징. 이번처럼 소방 호스를 달면 소방용으로 가능하지만 화물 수송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가능하다는 것이 제작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땅에 콜로수스가 있었다면 하늘의 드론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화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파리 소방당국은 정부로부터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된 드론을 빌려 대성당의 불길이 어떻게 번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첨탑 ‘수탉 청동’ 잿더미서 극적 발견… ‘16개 조각상’도 구사일생

    첨탑 ‘수탉 청동’ 잿더미서 극적 발견… ‘16개 조각상’도 구사일생

    90m 높이 첨탑 붕괴 때 사라진 청동상 佛 건축연맹회장이 폐허 뒤지다 찾아내 가시면류관·장미 창 3개·오르간도 무사 첨탑 16개 조각상 나흘 전 옮겨 살아남아 드니 유물 등 예술품 5~10% 훼손 추정 일부 성물은 곧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송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대성당의 첨탑 끝을 장식했던 수탉 청동조상이 화재 폐기물 더미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첨탑과 목조 지붕이 화마에 무너지면서 첨탑 안에 보관돼 온 주느비에브 성녀와 드니 성인의 유골 등 유물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수탉 청동조상을 포함해 파이프 8000개로 만든 15세기 파이프 오르간, 가시면류관·성 십자가 등 가톨릭 성물,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3개,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착용한 튜닉(상의) 등 대부분의 역사적 명물이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노트르담대성당이 소장한 역사적 명물 가운데 수탉 청동조상이 잿더미 속에서 극적으로 회수됐다. 이 청동조상은 성당 지붕 위 첨탑 상단에 설치돼 90m 높이에서 파리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첨탑이 붕괴되면서 청동조상도 함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었지만 프랑스 건축연맹 자크 샤뉘 회장이 화재 현장 폐허 더미를 뒤지던 중 극적으로 발견했다. 수탉은 프랑스의 국가적 상징이다. 샤뉘 회장은 대체로 온전한 모습의 조각상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믿을 수 없다”고 감격했다. 수탉 청동조상은 프랑스 혁명 이후 노트르담대성당 첨탑을 복원한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의 작품으로 1935년 10월 당시 파리교구 대주교이던 베르디에 추기경에 의해 ‘영적 피뢰침’으로 첨탑 끝에 설치됐다.예수의 12사도와 4명의 신약성서 복음서 저자를 상징하는 16개 조각상은 160년간 성당 첨탑을 장식해 왔으나 화재 발생 불과 나흘 전 복원작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진 덕분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화재 초기 소방관들이 옮겨 놓은 가시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가 썼던 것으로 알려져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를 원형의 다발에 엮은 것으로 원래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6세기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1238년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구입해 파리로 가져왔다. 노트르담대성당의 기념비적 유물인 대형 파이프 오르간도 다행히 심한 손상 없이 회수됐다. 다만, 프랑스 당국은 이번 화재로 무너진 첨탑 안에 1935년부터 보관돼 온 드니 성인과 주느비에브 성녀의 유골·머리카락·치아 등이 포함된 유물은 여전히 수색 중이다. 1630년부터 1707년까지 매해 5월 초 봉헌된 50개 그림(더 메이스) 가운데 화재 당시 성당에 전시돼 있던 13개 그림은 화재 진압을 위해 뿌려진 물에 의해 일부 손상돼 복구가 필요하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막심 큐뮤넬 종교유산관측소 사무총장은 “이번 화재로 대성당 예술품의 5~10%는 훼손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 속을 헤치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 가시면류관 등을 구해낸 영웅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파리소방서 사제로 복무 중인 장마크 푸르니에 신부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유물을 꺼내기 위해 소방대원과 시민이 힘을 합쳐 만든 ‘인간 사슬’ 선봉에 섰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화염을 피한 성물과 유물 일부는 파리시청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으며, 곧 루브르박물관으로 이송될 계획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유럽의 정체성이 불탔다” 세계 곳곳서 탄식과 애도

    “유럽의 정체성이 불탔다” 세계 곳곳서 탄식과 애도

    “안 돼. 오, 신이시여…”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인류의 유산,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이 끝내 화염에 무너졌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성당을 바라보던 파리시민과 관광객들의 가슴은 큰 구멍이 났다. 대성당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안타까움의 눈물이 흘렀다. 외신들은 16일 일제히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자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하며 프랑스 현지 상황을 상세히 전달했다.미국 보도채널 CNN은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마크롱(프랑스 대통령), 우리는 재건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을 걸어놓았다. 실시간 속보에는 ‘연간 1300만명 방문하는 파리의 850년 된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그을렸다’란 제목의 글이 내걸렸다. CNN은 “노트르담의 첨탑이 불타는 지붕 위로 무너지자 파리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면서 “그들이 사랑하는 성당을 황폐화시킨 불길은 도시의 가슴에 단검을 꽂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CNN은 또 노트르담 화재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노트르담은 안 된다, 노트르담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던 현지 분위기도 전달했다. CNN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전 세계 천주교 신자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등을 관련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UCLA의 도미니크 토마스 프랑스 담당자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갈등과 혁명의 역사를 담고 있고 프랑스의 정체성일뿐 아니라 유럽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며 조속한 재건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성당은 재건될 것”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자사 홈페이지에 노트르담을 주요 뉴스로 대서특필했다. 또 “파리의 영속적인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가 어디서부터 시작돼 번져 나갔는지 등을 그래픽으로 제시하는 한편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파리시민과 관광객들의 모습을 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파리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이 섬세한 첨탑을 무너지게 하는 광범위한 화재로 인해 흉터가 났고 연기로 파리 하늘을 멍들게 했다”며 “센강을 따라 성당 근처 광장으로 몰려든 수천명의 사람들은 공포로 숨을 허덕이며 입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장 클로드 갈렛 프랑스 소방장의 말을 인용해 2개의 웅장한 탑은 화를 면했지만 지붕의 3분의 2가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화재 원인이 즉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성당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해 성당 목조 보의 내부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12~13세기에 걸쳐 지어진 중세 고딕건축의 보석”이라면서 “중심이 확고하면서 우아하며 파리뿐 아닌 전 세계의 랜드마크”라고 보도했다. 이어 하루에 약 3만명, 일년에 1300만명이 방문하는 노트르담 성당은 수세기 동안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결혼한 뒤 묻혔고 나폴레옹이 1804년 황제로 즉위했던 곳이라고 전했다.영국의 BBC 방송도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BBC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랜드마크가 일부 파괴된 이후 중세 성당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화재가 9시간 만에 진압됐으며 화재 원인으로 대규모 보수 공사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15일(이하 현지시간) 화마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파리지앵과 관광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물과 탄식을 쏟아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성당 주변의 다리에 진을 친 인파는 이날 오후 7시 50분쯤 대성당의 첨탑의 끝부분이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오, 신이시여’라는 비명을 터뜨렸다. 곧이어 첨탑의 나머지 부분이 붕괴하자 현장은 한숨 속에 절망에 휩싸였다.파리에 거주하는 티보 비네트뤼는 CNN에 “첨탑이 무너진 순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면서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냥 너무 놀라 말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아주 오랫동안 거기 있었는데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다”면서 “노트르담 없는 파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충격을 표시했다. 시민 피에르 기욤 보네트(45)는 뉴욕타임스에 “가족 중 누군가를 잃은 것과 같다”면서 “내겐 노트르담 대성당에 너무 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며 비통해했다. 프랑스 경찰은 불길이 크게 번지자 시테 섬을 비롯한 센강의 섬 2곳에서 보행자들을 대피시키려 하고 있으나, 비극적인 현장을 지켜보려는 인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며 주변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번 비극이 가톨릭 성주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침통함을 더했다. 성주간은 부활절 직전 일주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는 기간이다.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며 대성당의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원하는 한 트위터 영상은 700만 회 이상 조회되며 보는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어떤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어떤 이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위해 기도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게탄 슐랭제(18)는 AP통신에 “매주 노트르담 대성당에 왔다. 대성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졌다”면서 “대성당은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이라고 슬퍼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삶의 터전 잃은 이재민들 “몸과 영혼이 불타고 없어진 것 같아요”

    삶의 터전 잃은 이재민들 “몸과 영혼이 불타고 없어진 것 같아요”

    “자려고 누우면 집 타는 모습 계속 떠올라” 두통·불면증·무기력 등 육체적 고통까지 심리상담가 65명 투입… 매일 6~7명 상주 “감정 표현하고 정리하면 불안 극복 도움”“불은 꺼졌지만 제 영혼은 아직 불타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4일 고성·강릉·속초 등 강원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정부의 총력 대응 속에 진화됐지만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된 이재민들은 심각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9일 산불 피해 현장의 이재민 대피소에서 심리 회복을 돕고 있는 상담가들에 따르면 많은 이재민들이 “평생 공들여 일궈놨는데 집이 전소됐다. 마치 내가 타는 듯한 아픔”이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호소하고 있다. 노인 중에는 집과 본인을 동일화해 “내 몸과 영혼이 불타 없어진 것 같다”며 극단적 상실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피해를 본 집터 등을 복원하려면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도 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다. 두통 불면증을 호소하거나 팔다리 떨림, 무기력 등 육체적 고통까지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강릉 옥계면 주민 김모(71)씨는 “자려고 누우면 집이 타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 잘 수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는 재난 심리상담가 65명을 투입해 주민들의 ‘산불 트라우마’를 지워내려 애쓰고 있다. 고성의 천진초교 대피소에는 6~7명의 활동가가 상주해 한 사람당 10명씩 고성·속초 일대 이재민의 심리 회복을 돕고 있다. 9일까지 모두 208명을 대상으로 심리 지원이 진행됐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도 대피소에 인력을 파견해 다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박부녀 심리상담가는 “큰 힘은 없지만 아픔을 나누려 끌어안고 같이 울거나 토닥여 드린다”면서 “분노나 황망함은 드러내고 나눌수록 줄어들고 안정된다”고 말했다. 한면화 상담가도 “2001년 강릉에서 산불을 직접 경험했다”면서 “어떤 마음일지 잘 알기 때문에 감정 이입해서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재난피해자의 재난 이후 삶의 변화 추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난 피해자 중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군으로 분류된 피해자는 전체 조사 대상자 2300명 중 35%나 됐다. 이 가운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피해자는 각각 28%와 8% 정도다. 포항지진 등 2012~2017년 발생한 자연재난과 화재 피해자를 대상으로 3년간 조사한 결과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재민 스스로 불안·분노·우울 증상을 느끼는 게 정상적인 반응임을 이해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며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지… 우리집 옷 드릴게, 우선 그거 입어요”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지… 우리집 옷 드릴게, 우선 그거 입어요”

    잿더미 된 집 앞서 망연자실한 이웃 위로 타지서 급히 온 가족·자원봉사자들 수고“퇴직금 털어 짓는 농사 다 타버려” 눈물 통신사 직원들 전봇대 통신망 밤샘 복구 전국서 성금 100억 등 구호품 온정 밀물“우리 집에서 옷을 좀 가져다 드릴게요. 우선 그거라도 입어요.” 지난 4일부터 강원 인제·고성·속초·강릉·동해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릉 옥계면에 사는 허금석(64)·정계월(59)씨 부부의 터전을 훑고 지나갔다. 부부는 잿더미가 된 집을 망연자실 바라만 봤다. 경운기, 용접기, 이앙기, 볍씨발아기가 까맣게 그을린 채 엎어져 있었다. 피해가 그나마 적은 옆 동네 주민 윤상기(64)씨가 부부를 위로하러 왔다. 윤씨는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지. 무슨 수가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화마가 삼켜버린 동네에 잿더미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강원 지역 일대에는 7일 하루종일 외부 차량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과 자원봉사자, 공무원들은 불안에 떠는 이재민을 끌어안았다. 장천마을 주민 박춘랑(85)씨의 큰아들도 차를 몰고 달려와 불안에 떠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박씨는 “겁이 나 집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다가 아들과 함께 불에 탄 집을 둘러봤다”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친 불길은 풀 한 포기조차 남기지 않았다. 장천마을은 이번 화재로 건물 50여채가 전소됐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주민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 마을 주민 엄기찬(64)씨는 “퇴직하고 40년 만에 고향에 와서 살려고 퇴직금을 전부 털어 고사리 농사(450평)를 짓고 있었는데, 다 타버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마을에서 40년 넘게 거주한 엄기만(80)씨의 집 앞마당에 있는 쌀 저장고에는 새까맣게 탄 나락만 남아있었다.생계가 막막해진 이재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이웃의 격려와 지원 때문이다. 메케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현장에는 소방대원들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이젠 ‘복구’를 목표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육군 23사단 조성민(21) 일병은 “제가 낯선 강원도에서 주민을 돕듯 제 고향에서 만일 화재가 났다면 그쪽의 군인과 주민들이 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가야지 어쩌겠느냐”는 한 이재민의 말처럼 마비된 공동체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했다. 택배회사 직원들은 불에 타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택배터미널 옆 공터에서 배송품을 펼쳐놓고 열심히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진 이후에도 자동차 불빛과 휴대용 손전등에 의지해 통신선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복구업체 직원 류모(39)씨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려면 밤샘 작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빠르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재민을 위한 구호품과 성금도 전국에서 모이고 있다. 법정 재난·재해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73억 6500만원)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25억 6300만원)에서만 100억원에 육박하는 기부금이 모였다. 강원도가 이미 지급한 구호 세트·구호 키트·생필품 등은 12만개에 달한다. 고성 천진초등학교에서 피해 주민들의 ‘산불 트라우마’를 어루만져 주는 박부녀 활동가는 “같이 끌어안고 울고 토닥이며 악몽을 치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성·속초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강릉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출동 15시간 만에 평지 밟아… 밤샘사투에 3일째 속옷도 그대로”

    “출동 15시간 만에 평지 밟아… 밤샘사투에 3일째 속옷도 그대로”

    20년 베테랑도 6개월 신입도 “전쟁터” 산불은 일반 화재와 달리 예측 불가능 4일 밤 초속 20m 돌풍 탓 진화 어려워 호흡기·호스까지 갖추면 무게만 30㎏ 장비 메고 밤새 산에 올라가 체력 고갈 잿더미 된 수많은 민가 보면 안타까워“딱 두 가지만 생각났습니다. 죽음, 그리고 가족.” 사상 최악의 산불에서 최소 희생자 발생이라는 ‘기적’이 가능했던 건 소방관들의 빠른 판단과 목숨을 건 진화 작업 덕분이었다. 지난 4일 밤 화재 발생 초기 주불 진화 작업에 나섰던 강릉소방서 옥계 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은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며 “전쟁 같았다”고 말했다. 소방관 생활 23년차인 조병삼(47) 센터장은 강릉 옥계면에서 산불이 시작되자 9분 만에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중 한 명이다. 원래 산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날 밤에는 초속 20m가 넘는 돌풍이 불었다고 한다. 조 센터장은 “눈앞의 불을 끄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불길이 휘몰아쳤다”고 돌이켰다. 산속 진화 작업은 장비 활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지상에서는 소방차를 몰아 화재 지점에 가까이 갈 수 있지만, 가파른 산길은 불가능하다”면서 “대원들이 직접 수백m에 이르는 펌프 호스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산불이 발생하면 기도 화상을 막기 위해 공기호흡기까지 착용하는데 호흡기와 방화복, 호스 등 장비 전체를 다 갖추면 30㎏이 넘는다”면서 “장비를 메고 밤새 산에 올라 체력이 고갈됐다”고 덧붙였다. 젊은 피로 이뤄진 팀원들 다수는 대형 산불은 처음이었다. 강릉소방서에서 근무한 지 6개월째인 최종윤(28) 소방사는 “영상으로만 보던 거대한 산불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졌다”며 “‘저걸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뒤에는 ‘무조건 빨리 꺼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4일 밤 산 정상에 오른 뒤 능선을 따라 내려오며 밤새 진화 작업을 이어갔다. 불길을 잡고 다시 평지를 밟은 건 출동 15시간 뒤인 5일 오후다. 주불 진화 이후에는 잔불과 싸우느라 또 잠을 자지 못했다. 조 센터장은 “3일째 속옷도 못 갈아입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11년차인 김남현(36) 소방위는 “피해가 적었지만,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잿더미가 된 집을 보고 대성통곡하는 주민이 많았다”면서 “국민들은 우리 소방관들이 잘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불에 타버린 수많은 민가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조 센터장은 “우리를 부르는 이들은 모두가 절박한 분들”이라면서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니 비록 새벽이슬을 맞고 돌아왔지만,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검게 그을린 소방관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평화로운 미소가 보였다. 글 사진 강릉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포토] 강원도 산불피해 ‘참혹한 현장’

    [포토] 강원도 산불피해 ‘참혹한 현장’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지역이 폐허로 남아 당시의 참혹함을 전해주고 있다. 7일 인제군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2시 45분 남면 남전리 약수터 인근에서 시작된 불은 지난 6일 정오를 기해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 이번 불로 30㏊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2019.04.07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빨리 꺼야한다”는 생각뿐…60시간 화마와 싸운 소방관들

    “빨리 꺼야한다”는 생각뿐…60시간 화마와 싸운 소방관들

    강원 옥계면 화재 초기 진압작업 나선 소방관들전쟁 같았던 현장에서 ‘빨리 끄자’라는 생각 뿐“칭찬 감사하지만, 타버린 집들 보면 아쉬움만”“화재 현장에서는 딱 두 개만 생각납니다. 죽음, 그리고 가족이죠.” 지난 4일 발생한 강원 산불이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건 소방관의 발 빠른 초기대응과 몸을 사리지 않는 진압작업의 역할이 컸다. 화재 초기 주불 진화 작업에 나섰던 강릉소방서 옥계 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은 “전쟁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릉·동해 지역에서는 이번 화재로 250㏊ 산림이 훼손되고 주택 100여 채가 파손됐다. 조병삼(47) 옥계 119안전센터장은 “산불은 일반 화재와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소방관이 된 지 23년 째인 그는 강릉 옥계면에서 산불이 시작되자 9분 만에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중 하나다. 조 센터장은 “원래 산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 데다 4일 밤에는 초속 20m가 넘는 돌풍이 불어 진화가 특히 어려웠다”면서 “앞을 보고 있는데 불이 뒤에서 휘몰아치고, 현장 영상 촬영 때 카메라를 쥔 손까지 흔들렸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산 위에서는 지상과 달리 진화 장비를 제대로 갖출 수 없다는 것도 한계다. 지상에서는 소방차를 몰아 화재 장소 가까이 갈 수 있지만, 가파른 산길에서는 불가능하다. 대원들이 직접 수백 미터에 이르는 펌프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야 한다. 조 센터장은 “산불이 너무 크면 기도 화상을 막기 위해 공기 호흡기까지 착용하는데, 호흡기와 방화복, 호스 등 장비 전체를 다 갖추면 30㎏이 넘는다”면서 “장비를 메고 밤새 산을 오르내리면서 진화 작업을 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고 전했다. 젊은 피로 이뤄진 팀원들 다수는 이런 대형 산불 진화 작업이 처음이었다. 수습을 갓 떼고 강릉소방서에 발령받아 근무한 지 6개월째인 최종윤(28) 소방사는 “불을 보면서 ‘저걸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뒤에는 ‘빨리 끄자’는 생각만 했다”고 전했다. 대원들은 4일 밤 산에 올라간 뒤 산능성이를 따라 내려오며 밤새 진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고 다시 땅을 밟은 건 출동 14~15시간 뒤인 5일 오후다. 이들은 주불 진화 작업 이후에도 잔불을 잡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조 센터장은 “쉴 틈이 없어 3일째 속옷도 못 갈아입었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지상에서 화상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소방관들의 몫이다. 허형규(30) 소방사는 화재 진압 때 현장에 갔다가 산 인근 민가에서 화상 환자가 생기자 내려와 치료에 앞장섰다. 허 소방사는 “화상 환자는 피부가 벗겨지기 때문에 외부 세균이 감염되기 쉽다”면서 “넓은 거즈로 상처 부위를 감싸고, 열을 몸에서 빼내는 ‘아이싱’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근무 11년차인 김남현(36) 소방위는 “화재 피해가 적었다고 하지만 재난 현장이다 보니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김 소방위는 “불이 잦아든 뒤 살던 집을 확인하러 와서 잿더미가 된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하는 주민이 있었다”면서 “국민들은 소방관이 일을 잘했다고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불에 타버린 민가 수십 채를 보면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되는 2000년 강원 동해안 산불 당시에는 열흘 동안 집에 못 가고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돌아보며 이번 화재에서는 초기부터 비교적 빨리 대응했다”면서 “불이 고성에서 강릉으로 넘어오기 전에 미리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불이 덮친 이후에도 대원들이 민가를 일일이 두드리며 위험을 알렸기에 피해가 적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방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은 전부 절박하고 도움이 긴급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면, 새벽이슬을 맞고 돌아와도 힘들지 않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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