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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최고 미술가 잭슨 폴록 그림 속 숨겨진 비밀 알고보니…

    미국 최고 미술가 잭슨 폴록 그림 속 숨겨진 비밀 알고보니…

    추상표현주의 대표 화가이자 미국을 서양 미술의 중심지로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잭슨 폴록(1912~1956). 44세라는 짧은 삶을 살았던 폴록은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그림 속에 들어가 물감을 붓거나 떨어뜨리는 등의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액션페인팅’ 기법을 만들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물리학자들이 폴록의 액션페인팅 기법이 어떻게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한 유체역학적 분석을 내놔 주목받고 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재료분석연구소, 미학연구소,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UC리버사이드) 기계공학과, 브라운대 공대 공동연구팀은 폴록이 붓을 사용하지 않고 캔버스에 페인트를 부어 그림을 만들어 낸 것은 유체역학의 고전적인 현상을 응용한 것이라고 1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10월 31일자에 실렸다.폴록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모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응용해 한 손에 물감 통을 들고 한 손에는 막대기나 팔레트나이프를 이용해 재빨리 물감을 튀기며 캔버스를 오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저 혼돈스러운 장난으로 취급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1956년 타임지에서는 19세기 말 영국을 충격에 빠뜨린 연쇄살인범 ‘살인마 잭’(Jack the Ripper)을 흉내내 ‘추락자 잭’(Jack the Dripper)이라고 부르며 현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폴록의 작업 과정을 녹화한 비디오를 이용해 폴록이 얼마나 빨리 움직였으며 캔버스와 물감통의 거리, 팔레트나이프를 움직이는 속도 등을 정밀분석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높이에 물감 낙하 장치를 설치한 다음 캔버스가 움직이는 속도도 다르게 하면서 폴록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그 결과 폴록의 작업 과정은 유체역학에서 코일링 불안전성(coiling instability)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피하려는 동작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코일링 불안정성은 물감이나 벌꿀처럼 점성이 있는 유체가 표면에 부어졌을 때 동그랗게 말리는 컬(curl)이나 돼지꼬리처럼 고리형태(coil)를 형성하는 현상이다. 꿀을 숟가락으로 뜬 뒤 접시에 떨어뜨려보면 길게 늘어나면서 돌돌 말려 쌓이는 것이 코일링 불안정성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유체역학 관점에서 유체가 낙하할 때는 물방울이 만들어지면서 표면에 떨어지는데 폴락은 캔버스에 물방울 형태가 형성되거나 물감이 뭉치는 것을 막고 물감이 길게 늘어나도록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폴록은 물감을 캔버스에 부을 때 코일링 불안정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당한 높이와 충분히 빠른 속도로 캔버스를 이동하면서 캔버스나이프를 움직였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로베르토 제닛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교수(유체역학)는 “폴록은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과 창작기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실험 과정을 거쳤다고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제닛 교수는 “이번 분석을 통해 폴록이 물리학을 알고 있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오랜 실험 끝에 얻어낸 그림 그릴 때 움직임과 페인트를 붓는 과정은 유체역학에서 알려진 고전적 현상을 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작업실의 호크니… 휴가지의 앤디 워홀

    [그 책속 이미지] 작업실의 호크니… 휴가지의 앤디 워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막 뽑아내 손에 들고 말리는 이 남자. 소파에 앉아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무심한 듯 딴 곳을 보는 그는 누굴까. 그림을 좋아하는 이라면, 눈썰미가 조금 있는 이라면 맞출 수도 있겠다. 정답은 데이비드 호크니다. 지난해 11월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9030만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돼 ‘가장 비싼 그림´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예술가의 초상(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의 작가 호크니의 45세 때(1982) 사진이다. 신간 ´언프레임드 아티스트´는 20세기 전설적인 예술가 69명의 미공개 사진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파블로 피카소, 프리다 칼로, 마르셀 뒤샹, 잭슨 폴록, 르코르뷔지에, 앤디 워홀, 오노 요코, 앤설 애덤스 등 화가, 조각가, 건축가,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보관 중인 수십만장의 사진 가운데 120장을 골랐다. 명랑하게 작업하는 사진, 가족과 함께한 기념사진, 여가를 즐기는 사진들은 비범한 예술가의 평범한 면모를 보여 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포토] ‘치명적’ 태희, 너무 예쁜 AFC 엔젤걸

    [포토] ‘치명적’ 태희, 너무 예쁜 AFC 엔젤걸

    “터프한 스타일을 보여준 이도겸 선수를 보고 팬이 됐어요” 너무 예뻐 ‘꽃태희’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모델 태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28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테크노마트에서 ‘AFC(엔젤스파이팅)10’이 열렸다. 엔젤걸로 활동하고 있는 태희는 이날 벌어진 8경기를 가까이서 봤다. 그중 코메인이벤트로 벌어진 페더급 일본의 후미야 사사키와 한국의 이도겸의 경기에서 화끈한 경기운영을 보인 이도겸에게 매료됐다. 태희는 “케이지에서 남자다움이 보였다. 신중하면서 정확한 타격 솜씨에 놀랐다. 전광석화 같은 펀치로 KO시키는 것을 보고 팬이 됐다. 얼굴도 잘 생겨서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태희는 지난해부터 엔젤걸로 활동하고 있다. 원챔피언십에서는 객원 링걸로 활동해 케이지가 낯설지 않다. 태희는 “AFC의 취지가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우를 돕는 것이다. 취지가 좋아 엔젤걸로 활동하게 됐다. 좋은 뜻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태희의 애칭이 ‘꽃태희’가 된 것은 배우 김태희처럼 예뻐서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이날도 많은 팬들이 태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재원인 태희는 “케이지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격투기는 굉장히 다이나믹하다. 격투기를 그림으로 비교하면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 같다. 거침없고 화려하다”며 전문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스포츠서울
  • [애니멀 픽!] 화폭에 추상화 그리는 판다…1점 당 60만원 판다

    [애니멀 픽!] 화폭에 추상화 그리는 판다…1점 당 60만원 판다

    화폭에 그림을 그려 이를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판다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지난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오스트리아 빈의 쉔부른 동물원에 사는 자이언트 판다 양양의 사연을 보도했다. 올해 18살로 총 5마리의 새끼를 출산한 양양은 몇년 전 부터 놀랍게도 화폭에 추상화같은 그림을 그린다. 동물원 측이 제작한 대나무 붓을 양양이 들고 백지에 끄적거리는 수준이지만 판다계의 잭슨 폴록이라는 주위의 평가. 폴록은 세계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특히 캔버스 위로 물감을 흘리고, 끼얹는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하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완성된 그림이 한 점당 490유로(약 64만원)로 평가돼 그 수익금으로 조만간 화보집까지 출간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동물원 측은 "100여 점에 이르는 양양의 그림이 온라인 경매를 통해 고가에 판매될 예정"이라면서 "양양이 붓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가락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고 밝혔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2억원짜리 셔츠 역사를 팝니다

    [그 책속 이미지] 2억원짜리 셔츠 역사를 팝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크리스티 편집/이호숙 옮김/마로니에북스/496쪽/3만원등번호 10번의 노란색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 셔츠는 축구 셔츠들 가운데 가장 비싸다. 200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 돈 2억 5400만원(약 15만 7750파운드)에 팔렸다. 그저 노란색 셔츠일 뿐인데 이렇게 비싼 가격이 매겨진 이유는 옷에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축구 황제 펠레가 1970년 월드컵 결승전 때 입었던 이 셔츠에는 1970년 경기에서 우승한 브라질의 땀과 환희가 배어 있다. 나아가 축구의 재미와 축구의 위대함마저 압축한다. 물건을 역사·문화적으로 의미 있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경매’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은 1766년 런던에서 설립돼 250년을 맞은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거래된 가장 흥미로운 250점의 예술품을 다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라파엘로, 파블로 피카소 같은 거장들을 비롯해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등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망라했다. 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조지 워싱턴, 메릴린 먼로, 이브 생로랑, 다이애나비 같은 유명인사들의 개인 소장품도 수록했다. 수많은 예술품의 감식안, 욕망, 유행, 가치의 지표 역할을 해 온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거래된 물건의 역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코카콜라 걸’ ‘CK’… 예술로 승화된 찰나의 초상들

    ‘코카콜라 걸’ ‘CK’… 예술로 승화된 찰나의 초상들

    단순함에서 본질을 길어올린다. 찰나의 움직임. 그 순간 포착한 얼굴의 표정과 몸의 선, 이를 감싸는 빛의 인상까지 캔버스에 심는다. 단색의 배경에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를 잘라낸 듯 캔버스에 옮기고 클로즈업하는 대담한 구도로 그림을 영화나 광고의 한 장면처럼 각인시킨다.현대 초상 회화의 거장 알렉스 카츠(91)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았다. 그가 빚은 액자 속 인물들은 관람객을 한껏 끌어당기는 듯하다가도 기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해 동시대성과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오는 7월 23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롯데월드몰 7층)에서 열리는 ‘알렉스 카츠, 모델&댄서: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그 무대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츠의 트레이드 마크인 초상화뿐 아니라 풍경화, 드로잉, 판화, 컷아웃(평면의 금속판에 그림을 그린 뒤 윤곽을 따라 잘라낸 조각) 등 70여점의 작품과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카츠의 작품만으로 이뤄지는 대규모 전시는 아시아에서 처음이다.카츠가 예술가로 발돋움하던 1960년대 뉴욕은 텔레비전, 영화, 광고 등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더불어 잭슨 폴록의 올오버페인팅(전체를 균질하게 표현하는 회화), 앤디 워홀의 팝아트 등 독창적 시각 예술로 흥성거리던 시기였다. 이때 카츠는 특정한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색면과 인물을 과감한 구도로 배치하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빚어내며 이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뉴욕 예술가, 지성인들의 모습과 일상을 가장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로 남긴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삶의 보편성이 깃들어 있다.예술과 패션, 광고, 대중문화를 조합해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그의 예술세계를 압축한 ‘코카콜라 걸’, ‘CK’(캘빈클라인) 시리즈는 미국 메인주와 뉴욕 소호의 작가 스튜디오에 있다가 처음 전시장에 나온 최신작들이다. ‘코카콜라 걸’은 붉은색과 흰색, ‘CK’는 검은색과 흰색의 간결하고 강렬한 대비로 먼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구순을 넘긴 고령에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작업에 열중하는 그가 지난해와 올해 집중적으로 그린 그림들은 현대적 감각과 세련미, 브랜드 이미지가 주는 환상까지 품고 있다. 카츠의 예술을 꿰뚫는 또 하나의 오랜 주제는 그의 아내 아다(90)이다. 1957년 결혼한 그는 60년 넘게 아내를 뮤즈로 삼아 250여점의 초상화를 그리며 아내를 하나의 도상으로 자리하게 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20세기에 가장 많이 그려진 여인”인 셈이다. 말간 아름다움으로 빛나던 젊은 시절부터 조화로운 인간미가 주름에 자리한 노년의 모습까지 아다의 초상화는 보는 이들의 시선까지 평온하게 한다. 관람료 1만 3000원(청소년 1만원, 어린이 7000원). 1544-7744.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위대한 컬렉터를 만든 나눔과 베풀기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위대한 컬렉터를 만든 나눔과 베풀기

    요즘 부의 집중과 계층 간의 소득격차에 대한 염려가 가득하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부가 편중되면서 부의 재분배를 위한 많은 장치가 고안되고 담론들이 등장하지만, 문제 해결에 그리 유용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배에 대해 말은 무성하지만 실제로 작동되는 대책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페기 구겐하임-예술중독자’는 미술품 수집을 통해 당대의 문화와 예술을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부를 재분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례를 잘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는 미술관과 컬렉션에 관한,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생생한 그의 인터뷰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 담겼다. 또한 20세기 미술사를 장식하는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엮였다.페기 구겐하임(1898~1979)을 수식하는 말은 너무나 많다. ‘미술중독자’를 비롯해서 ‘모더니즘의 여왕’, ‘현대미술시장을 만든 사람’, ‘화가가 아님에도 미술사에 이름이 오른 사람’, ‘미술의 수도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온 사람’ 등등. 미국의 유대인 출신 광산 부호인 구겐하임가의 아버지와 금융 부호인 셀리그먼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기는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운 솔로몬의 조카딸이기도 하다. 그녀는 성인이 되던 1919년에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억 4500만 달러(약 3900억원)에 달하는 큰돈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음에도 페기는 전위적인 예술서점인 선와이즈 턴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흡수했다. 1920년 당시 미국인들의 로망이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많은 예술가와 친교를 쌓았다. 특히 그녀를 촬영한 사진가 만 레이, 콘스탄틴 브란쿠시, 마르셀 뒤샹 등과 가까이 지내면서 다다이즘과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에 경도됐다.24세가 되던 1922년 조각가인 로렌스 바일과 결혼해 아들 마이클과 딸 페긴을 두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폭력적이고 타고난 술꾼인 바일이 바람이 나면서 결국 6년 만에 이혼하고 만다. 그 후 페기는 작가이자 평론가인 존 홈스와 동거하며 그에게서 예술에 대한 통찰력을 배운다. 1938년 런던으로 건너가 구겐하임 죈이라는 상업화랑을 열고 본격적인 작품 컬렉션에 나선 페기는 당시 유럽 현대미술가들의 중요한 후원자이자 친구이며 동시에 연인으로 뜨겁게 살았다.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와 가까웠던 사뮈엘 베케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브란쿠시의 작품이 탐나 그와 결혼을 생각할 정도였다. 엄청난 적자에 1년 만에 화랑을 접고 파리로 간 그녀는 미술관을 열 계획을 하고, 아무도 그림에 관심 없던 전쟁통에 ‘1일 1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술관은 무산되고, 독일이 파리를 침공하자 유대인인 그녀는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애인이었던 막스 에른스트와 1940년 12월 돈을 써서 가까스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미술 평론가이기도 했던 앙드레 브르통은 물론 많은 유럽 아티스트들의 미국 망명을 돕는다. 이들 망명 예술가들에 의해 뉴욕은 현대미술의 황금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뉴욕에 다시 자리잡은 페기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42년 금세기미술 화랑(Art of This Century Gallery)의 문을 열고 유럽에서 수집해 온 현대미술품들을 선보였다. 이곳은 뒤샹, 에른스트, 만 레이, 달리, 레제, 로베르토 마타, 자코메티, 이브 탕기 등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온 예술가들의 집합소였다. 동시에 미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독자적인 미국 미술의 모더니즘을 태동시킨 장소이기도 하다. 로버트 마더웰, 한스 호프만, 윌렘 데 쿠닝, 마크 로스코, 클리퍼드 스틸, 알렉산더 칼더 등 소위 ‘뉴욕화파’라고 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들이 개인전을 연 곳도 여기였다. 또 당시 무명작가였던 잭슨 폴록을 발굴, 지원해 ‘액션 페인팅’이 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미술을 찾는 컬렉터는 페기 외에는 없던 시절이라 화랑을 운영할수록 적자만 늘어났다. 1947년 페기는 화랑을 접고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한다. 그리고 18세기 중반의 건축가 로렌초 보스체티가 설계한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를 매입해 1979년 사망할 때까지 30여년간을 이곳에서 살았다.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그녀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뉴욕의 구겐하임 그리고 2차대전 당시 페기컬렉션의 보관을 거절했던 프랑스 루브르에서까지 전시를 열어 유명세를 떨쳤다. 페기의 죽음과 함께 컬렉션이 누구 손에 들어갈 것인가는 세계적인 관심거리였다. 테이트와 베니스시가 피 말리는 유치전을 벌였으나 결국 ‘페기컬렉션’은 1976년 자손들이 아닌 뉴욕의 솔로몬구겐하임 재단에 귀속됐다. ‘컬렉션은 바로 컬렉터 자신’임을 잘 알았던 페기가 컬렉션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저택은 페기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녀는 부유했지만, 행복한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온 부성 결핍으로 아버지 같은 남자를 찾았지만, 그들은 모두 아버지가 아닌 아들 같은 남자뿐이었다. 다행이라면 그들이 모두 지적이었다는 것. 페기가 뛰어난 컬렉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안목과 감각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또한 유대인 태생으로 푼돈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기부와 후원에는 누구보다 통이 컸다. 베니스 여행객들에게 필수 코스인 페기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 부자의 나눔과 베풀기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랑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부자들 탓도 있지만, 외국에 비하면 턱없이 미미한 세제 혜택이나 기부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문득 나오시마의 기적을 이룬 후쿠다케의 경영 이념이자 행동철학인 ‘공익적 자본주의’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만 잘살면 뭐하는 겨?”
  • 다락방서 잠자던 그림…알고보니 1000만 달러

    오랜 시간 다락방에 처박혀있던 그림이 알고보니 무려 1000만 달러(약 112억원) 가치의 작품으로 알려져 화제에 올랐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USA투데이 등 현지언론은 애리조나 주 선시티에 위치한 한 저택 다락방에서 유명 화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무려 10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매겨진 이 작품의 화가는 미국의 대표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록(1912~1956)이다. 그는 캔버스 위로 물감을 끼얹고 튀기는 방식의 액션 페인팅의 대가로 20세기 현대미술의 큰 족적을 남겼다. 다락방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그림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지난해 1월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저택 주인은 애리조나 경매회사인 J.래빈 옥션에 집에 보관된 NBA 농구팀 LA레이커스 기념품의 감정을 요청했다. 이 기념품 중에는 스타 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인도 있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 계약에 따라 경매회사는 그의 집에 방문해 조사를 벌이던 중 다락방에서 심상치 않은 작품들을 발견했다. 이중에 포함돼 있던 것이 바로 폴록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 이에 경매회사는 미술 전문가와 과학자들을 동원해 1년 여에 걸친 조사에 들어갔고 최근에서야 이 작품을 폴록의 진품으로 결론지었다. 경매회사 대표인 조쉬 래빈은 "현 주인은 폴록이라는 이름을 나를 통해 처음 들었다"면서 "진품임을 확인하는데만 무려 5만 달러(약 5600만원)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인도 모르는 폴록의 작품이 어떻게 다락방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일까? 사연은 이렇다. 현재 노인요양시설에 사는 주인은 이 저택을 사망한 이복 누이인 제니퍼 고든에게 물려받았다. 고든은 뉴욕의 저명한 예술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1909~1994)의 절친이자 같은 모임 멤버. 특히 고든이 그린버그와 잘 아는 사이라는 점은 폴록과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된다. 당대의 탁월한 비평가였던 그린버그는 말주변이 없던 폴록을 대신해 설명하기 힘들었던 그의 작품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줬다. 곧 폴록을 세계적인 화가의 반열에 올린 인물이 바로 그린버그였던 셈이다. 래빈은 "작품 자체의 감정과 취득 경로까지 완벽하게 폴록의 진품이 확실하다"면서 "오는 20일 경매에 부칠 예정으로 최소 1000만 달러에 낙찰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착한 삭발 도미노’…왕따 삭발 소년 위해 삭발한 교장

    ‘착한 삭발 도미노’…왕따 삭발 소년 위해 삭발한 교장

    미국 아이오와주(州) 피킨중학교에 다니는 11세 소년 잭슨 존스턴. 얼마 전 잭슨의 할아버지 릭은 임파선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가 빠지고 말았다. 그런 할아버지를 응원하기 위해 잭슨은 스스로 머리를 밀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그런 그를 흉보고 놀리며 따돌리기까지 했다. “이봐, 너 암 걸렸냐?” 그리고 얼마 뒤, 이 소식을 알게 된 한 남성이 특단의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어느 날 학교 복도에 학생들이 모였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이는 바로 피킨중의 팀 해들리 교장. 해들리 교장이 “잭슨의 행동은 용기 있는 멋진 행동입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교장은 “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주위에는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투병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마음 씀씀이를 가진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도 그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고 힘차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해들리 교장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목에 천을 감기 시작했다. 이어 잭슨이 나와 교장의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교장의 응원은 바로 잭슨처럼 자신의 머리를 미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 스스로 머리를 민 잭슨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한 일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어 교장은 학생들을 향해 웃는 얼굴로 “우리도 서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킨 가족’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날 일은 피킨중의 교사 폴라 폴록이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면서 알려졌다. 폴록 교사는 “우리 학교 교장은 최고다!”는 멘트도 남겼다. 그러자 해당 게시글에는 “최고의 교장 선생님이다. 학생들을 위한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듣고 마음이 떨렸다”, “잭슨과 해들리 교장의 친절함이 전해졌다”와 같이 교장과 소년의 행동을 칭찬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한편 피킨중의 웹사이트에는 “인종과, 성별, 피부색, 국적, 신체 장애, 종교, 성 등 모든 면에서 차발하지 말라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 방침이다”는 소개 글이 나와 있다. 이는 학생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를 갖길 바라는 이 학교 교육자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중요한 윤리 의식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해들리 교장. 그의 교육자로서의 행동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진=폴라 폴록 / 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한 장의 그림… 법이거나 맛이거나

    한 장의 그림… 법이거나 맛이거나

    그림 읽는 변호사/양지열 지음/현암사/368쪽/1만 6800원 그림의 맛/최지영 지음/홍시/336쪽/1만 5000원 그림과 법, 그리고 그림과 음식. 서로 관련 없을 것 같은 동떨어진 영역들이다. ‘그림 읽는 변호사’와 ‘그림의 맛’은 그 분리의 영역을 이어 색다른 재미를 던져 눈길을 끈다. ‘그림 읽는 변호사’가 일간지 기자 출신의 변호사가 그림과 법을 연결했다면, ‘그림의 맛’은 요리전문학교를 졸업한 셰프가 현대미술에 음식을 맛깔나게 버무려 냈다. 명화에는 인류 역사의 생생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림 읽는 변호사’는 명화 속 시대상에서 법 운용과 가치를 건져 내는 흐름이 독특하다. 법도 그림처럼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림에 담긴 법적 이야기가 신기할 만큼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나 가치관들과 겹친다”고 말한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 죄형법정주의, 정당방위, 폭력과 살인, 선물과 뇌물, 헌법의 의미…. 법 영역에서 이뤄지는 실제 상황과 모순, 법을 둘러싼 인식의 괴리 같은 문제들을 명화로 풀어내는 글쓰기가 녹록지 않다. 그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보자. 많은 사람은 이 작품에서 ‘악법도 법’이라 했다는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정작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남긴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재판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하면 벌금형 정도로 끝내 주겠다’는 타협 제의를 받았지만 그런 불의를 행하는 것은 법과 제도일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라며 따른 게 아니라 악법을 따르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한 것이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1797~1800·스페인 프라도미술관)는 이 땅에서도 논란을 불렀던 그림이다. 침대에 드러누워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는 여성의 누드화로 유명한 이 그림은 종교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당시 스페인에 큰 충격을 줬다. 고야는 이단 죄로 종교재판에 넘겨졌다. 1970년대 한국에선 법원이 이 그림이 인쇄된 성냥갑을 음란물로 규정, 모두 몰수했다. 예술이 아니라 영리 목적의 사용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런가 하면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1818·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세월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 1816년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떠난 프랑스 해군 군함 메두사호의 난파 사건. 선장과 상급 선원, 일부 승객은 구명보트를 타고 대피했지만 나머지 149명의 선원과 승객은 뗏목을 만들어 타야만 했다. 이 뗏목을 구명보트에 매달아 끌고 가기로 했던 선장은 이를 잘라 내고 도망갔다. 프랑스 정부는 이 비극의 전모를 은폐로 일관했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렇게 비판한다. “사고가 난 이후에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국가의 잘못이다. 국가는 사고 전부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비해 ‘그림의 맛’은 현대미술에서 건져 낸 음식과 맛의 향연으로 읽힌다. 셰프가 현장에서 부딪치며 쌓아 온 음식 이야기와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현대미술을 엮었다. 다니엘 스포에리, 잭슨 폴록, 프랜시스 베이컨, 수보드 굽타, 뱅크시, 뒤샹, 장 뒤뷔페, 페란 아드리아, 르네 마그리트…. 거론된 아티스트 말고도 소상히 풀어내는 음식들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다니엘 스포에리는 식탁을 아예 캔버스 위로 옮긴 아티스트로 꼽힌다. 한 끼의 식사에 수반되는 일련의 행동들을 그대로 예술로 만든 ‘잇 아트’의 면모가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설치미술가 수보드 굽타는 관람객들에게 인도 가정식을 손수 만들어 주는 실연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 작품들을 통해 식문화의 일상성과 그 이면의 잔혹한 진실까지 추적하는 구성이 독특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리는 기술을 요할지언정, 먹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입에 맞는 것을 먹으면 즐겁다. 현대미술도 그럴 수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적절한 일탈 행위는 삶의 활력소”

    “적절한 일탈 행위는 삶의 활력소”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리처드 스티븐스 지음/김정혜 옮김/한빛비즈/344쪽/1만 6000원 요즘 다방면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들은 대체로 위험, 즉 리스크를 줄여 최대의 이익을 거두기 위한 것으로 압축된다. 그렇다면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점프처럼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극한 스포츠에 돈을 써가며 빠져드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식적인 궤도를 비켜난 일탈의 행위에서도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는 ‘일탈행위의 숨은 이점’을 역설한 책이다. 2010년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받은 영국 정신생물학회 의장이 그간의 연구와 실험결과를 토대로 욕, 음주, 섹스, 과속운전, 사랑, 극한 스포츠, 게으름 피우기, 껌 씹기 같은 행위가 가져다주는 ‘작은 유익함’을 들춰내 흥미롭다.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욕이다. 욕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불쾌하며 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아픔을 다스리는 도구, 치매 확인방법 등 육두문자의 이로움은 숱하게 입증됐다. 책에 소개된 실험도 비슷하다. 얼음물에 손을 담근 채 참을 수 있는 만큼 견디라고 요청한 뒤 평범한 단어와 욕설을 내뱉게 해 어느 쪽이 더 오래 견디는지를 측정한 결과 욕을 반복적으로 했을 때 피실험자가 견디는 시간이 길었고 덜 고통스러웠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산모가 극심한 진통을 겪을 때 욕을 퍼붓는 것과 비슷하다. 음주의 경우도 흥미롭다. ‘건전한 술’의 장점은 사회성 고양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영감 차원에서 입증된 사례가 흔하다. 베토벤이나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록은 창작과정에서 알코올의 힘을 빌린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태양의 제국’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지 물었을 때 영국 작가 J G 발라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비결 같은 것은 없다. 위스키 병마개를 따고 3분쯤 기다리면 2000년이 넘는 스코틀랜드의 장인정신이 다 알아서 해준다.” 미국 정신의학회(APA)가 ‘알코올 중독’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최근 공식적인 의학진단명에선 ‘알코올 중독’이 사라졌다. 섹스를 보자. 성서시대 이래로 섹스는 공개 장소에서 입에 올리길 꺼리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최근 섹스에 대한 연구는 공공연한 실험의 대상이다. 책에서 소개한 ‘건전한 섹스’의 혜택도 그런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 실험을 통해 ‘동작이 있는 감정’인 섹스가 통증과 불안의 해독제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성관계 장면을 직접 관찰하면서 표정을 연구한 실험에선 활발한 성관계가 안면근육을 운동시켜 젊고 건강한 외모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이것 말고도 잘 정돈된 방보다 어지러운 방에서 창의성이 더 높아지고 낙서가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역전의 결과’들이 줄을 잇는다. 집중하기보다 공상에 빠졌을 때 직관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껌 씹기가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는 실험결과들도 눈길을 끈다. 책은 공동선에 반하며 해선 안 될 ‘나쁜 짓’으로 금기시돼온 일탈에 대한 역발상이란 점에서 신선하다. 물론 모든 실험을 통해 일탈의 유익함을 강조하면서도 ‘적당함’의 균형성을 빼놓지 않고 있다. 적절한 일탈은 삶을 더 즐겁게 만든다는 ‘떳떳한 삐딱이’의 역설인 셈이다. “사람들은 죽고 싶어서 위험한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되레 두려움을 극복하는 도전과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도전이라는 순수한 즐거움이 판에 박힌 듯 따분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일탈을 즐길 것인지’의 판단은 독자들의 몫일 것 같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미술을 철학 관점서 보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간 캔버스를 둘러싼 쟁탈전”

    “미술을 철학 관점서 보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간 캔버스를 둘러싼 쟁탈전”

    “미술을 철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간 캔버스를 둘러싼 쟁탈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초상화 얼굴들이 달라지고 그 얼굴만으로도 미술사를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장 10년에 걸친 집념의 산물이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의 방대한 미술사를 미셸 푸코적 욕망의 관점에서 집대성하기까지 이광래(70) 강원대 철학과 교수가 보낸 시간이 꼬박 10년이다. 이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2월 집필을 시작해 원고지 8400여장에 이르는 ‘미술 철학사’(미메시스) 전 3권을 쓰기까지 8년, 430여장의 도판 저작권 해결 등 책 편집에만 2년여가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이 낯설다 보니 부디 그 낯설음에 독자들이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라는 점에서 좀 미안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430여장 도판 저작권 해결 등 2년여 걸려 철학자인 이 교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이트, 라캉,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 철학자의 눈을 통해 미술사를 가로지르는 융합을 시도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정의 내린 미술 철학사를 ‘고고학적’ 철학사와 ‘계보학적’ 철학사로 구분한다. 사회적 구조와 질서가 미술가들의 욕망을 억압해 미술가의 표현이 기계적이었던 고대부터 중세를 바로 고고학적 시기로 명명하고, 철학의 부활이 이뤄진 르네상스 시기 이후를 계보학적 시기로 분류해 분석하고 있다. ‘미술 철학사’가 선사 시대나 고대가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셸 푸코적 욕망의 관점에서 집대성 이 교수는 “중세에는 미술가들이 교회 권력이 요구하는 성화를 지시한 대로 그려 내는 게 밥 먹고 하는 유일한 작품 활동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에는 미술가들의 자율성이 생기면서 초상화도 중세 성화에서 왕이나 귀족으로 바뀌고, 근대적 권력이 부상한 이후에는 부르주아의 얼굴과 서민들의 얼굴로 대체되기 시작한다”면서 “미술사를 권력 의지와 욕망이 어떻게 투영되는지로 선명하게 구분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푸코적 관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 철학사는 국내선 처음 시도 낯설어 이 같은 미술 철학사는 국내에서는 사실상 첫 시도다. 미술사는 수없이 많지만 철학자와 미술사를 씨줄과 날줄로 꿰어 엮은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시도였다. 그러다 보니 관련 미술 작품들을 책에 싣는 도록 작업도 눈물이 날 정도로 어려웠다. 출판사는 도록 저작권료로만 3000만원의 거금을 투입했다. 이 교수는 “거액을 들인 투자금이 회수될 수 있는 책도 아닌데 출판사가 손해를 무릅쓰고 책을 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게 많았다. 미술 철학사라는 주제 자체가 낯설다 보니 생존 화가들의 경우 이 교수의 책 내용을 영문으로 먼저 보고 결정하기를 원했다.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부터 프랜시스 베이컨, 안젤름 키퍼 등 20여명의 화가가 이 교수의 책 내용을 영문으로 받아 보는 사전 검토 작업 후 도록 수록을 허락했다. 그렇게 책 3권에 수록된 그림만 859개이고, 조명된 미술 작가는 200여명, 각주는 1400여개가 실렸다. 이 교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는지, 마크 로스코의 회화는 왜 명상이 되는지, 바스키아의 낙서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등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며 “‘나는 분명히 미술의 역사가 철학적 문제로 점철돼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미학자 아서 단토의 말을 미술 철학사로 실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 여자가 야하다고? 규범에 갇혀 있군요!

    이 여자가 야하다고? 규범에 갇혀 있군요!

    모더니즘/피터 게이 지음/정주연 옮김/민음사/816쪽/3만 5000원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막상 정의를 내리려면 막막해지는 것들이 있다. ‘모더니즘’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유럽 근대사상을 연구한 저명한 문화사학자 피터 게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집한 증거들을 통해 다양성 속의 통일성, 단일한 심미적 사고 방식, 눈에 띄는 양식, 즉 모더니즘 양식을 발견하는 데 주력했다. 새 책 ‘모더니즘’은 지난 5월 뉴욕에서 눈을 감은 그가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집필한 마지막 저작이다. ●性의 해방·개성 표현·솔직함 중시 모더니즘은 대략 184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초까지, 보들레르와 플로베르에서 베케트와 그 이후 잭슨 폴록, 앤디 워홀의 팝아트까지를 아우른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견디었고, 전체주의의 혹독한 적개심을 이겼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인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시작은 프랑스 파리였지만 서서히 거점을 미국 뉴욕으로 옮겼다. 물질주의에 대한 반항, 부르주아들의 가식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은 성의 해방, 솔직함, 자신만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과 연결된다. ●보들레르·모네 등 당대 미학 비판 저자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이단의 유혹, 즉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과 ‘철저한 자기 탐구에서 비롯된 개성적 표현력’이라고 정리한다. 모던 발레의 거목 세르게이 댜길레프는 안무가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를 놀라게 하라!”, 에즈라 파운드가 제시한 “새롭게 하라”는 슬로건은 많은 모더니스트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저자는 시인 보들레르를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가장 자격이 있다고 지목한다. 독창적이고 자극적인 미술비평, 스스로에 대한 공정한 평가, 내밀한 시적 언어로 문학적 한계에 반항한 점, 탁월한 시적인 재능 등으로 보들레르는 모더니즘의 근본 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보들레르와 같은 시대에 진보적 아웃사이더로 꼽혔던 또 다른 인물은 화가 마네다. 역사가들은 당대의 미학과 도덕적 규범을 가장 심하게 비웃은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1863)를 최초의 모더니즘 작품으로 평가한다. 이어 클로드 모네와 뜻을 같이하는 반아카데미 화가 스물아홉 명이 1874년 4월 파리에서 공동 전시회를 열었다. 이때 전시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유래해 훗날 인상파라고 이름 지어지는 이들을 어떤 비평가들은 ‘비타협주의자’라고 불렀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라며 ‘예술을 위한 예술’을 옹호했던 테오필 고티에의 신조는 예술가를 숭배하는 미학운동의 선구자 휘슬러를 거쳐 19세기 후반 유미주의자들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인물은 오스카 와일드. 인생의 목표가 세상이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공언했던 그는 결국 그 신념 때문에 파멸했다. ●그림·건축 등으로 자유 열정 증명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험난한 여정이었다.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살아남은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은 전체주의의 박해와 전쟁의 시련 속에서 살아남았음을 소설과 그림, 건축으로 증명해 보였다. 모든 노력은 결국 예술적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귀결된다. 책은 모더니즘의 발생부터 발전, 쇠퇴에 이르기까지를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례들을 통해 소개한다. 산문과 시, 음악과 무용, 건축과 디자인, 연극과 영화, 아방가르드까지 각 장르의 모더니스트들과 예술가들의 상호교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도판을 곁들이고 있지만 자칫하면 모더니즘의 광대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리기 쉽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문화재 복원-伊에서 길을 찾다] (상)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

    [문화재 복원-伊에서 길을 찾다] (상)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

    로마제국이 자리했던 이탈리아는 역사와 예술, 건축의 나라다. 엄청난 문화유산을 지닌 문화재 보존·복원의 강국이기도 하다. 전 국토가 거대한 문화재나 다름없는 이곳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은 기술 못잖게 건강한 보존 철학에 있다. 2000년 넘은 폐허에까지 넉넉히 품을 내주는 이탈리아를 찾아 그 의식과 실천 과정을 엿봤다. 우리에게 ‘문화재’란 개념이 등장한 건 불과 반세기 안팎. ‘숭례문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고민해 본다. “돌과 나무, 쇠를 다듬는 진일보한 기술이 있는데 굳이 수백년 전 전통 기술에 집착한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전통 기법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이탈리아에서도 그토록 전통 안료나 기법에 매달리진 않죠. 보여주기식 ‘쇼’에 그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장인이라면 단지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에 견디는 강건한 복원 철학과 윤리부터 갖춰야 합니다.” 지난 7일 이탈리아 피렌체 포르테자 다 바소의 국립복원연구소(OPD). 30년 가까운 목재 복원 경력을 지닌 페테르 스티베르크(60) 교수는 한국의 ‘숭례문 사태’에 날 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숭례문 사태는 근현대 이탈리아에서 흔히 접했던 정치적 복원의 전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스티베르크 교수는 “문화재 복원에도 늘 실험가 정신과 혁신이 강조된다. 상황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숭례문 복원만큼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년이란 턱없이 짧은 준비 기간과 3년간의 복원도 마찬가지다. 단 한 점의 옛 미술품이라도 통상 수십년 걸려 복원하는 이곳 관례상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란 것이다. 이어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을 비롯해 피렌체, 베네치아 등 도시국가의 색채가 여전히 강한 지역의 시장들이 정권을 잡자마자 벌였던 업적 홍보용 문화재 복원 사업들을 예로 들었다. “국가가 경직될수록 이런 성향이 강해지는데, 나름의 장인 정신과 복원 원칙이 없다면 쉽게 휘둘리고 만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다양한 목조 문화재를 손질해 온 그의 옆에는 조각가 도나텔로의 유작인 ‘막달라 마리아’가 자리하고 있었 다. 야윈 얼굴, 깡마른 팔과 다리로 말라 비틀어진 이 나무껍질 같은 목조각은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에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과 함께 나란히 전시됐던 작품이다. 최근 복원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목조 건물의 단청이 떨어지듯 표면이 벗겨져 나간 이 목조각을 두고 그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창의적으로 복원한다”고 말했다. 스티베르크가 몸담은 OPD는 1588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설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 복원기관이다. 이탈리아 통일 이전부터 회화류와 목조각 복원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다.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큰 복원 연구소 중 하나다. 이곳에선 회화·석재·청동·유리·귀금속 등 11개 분야로 나뉘어 60여명의 인력이 전문성을 뽐낸다. 피렌체 아카데미아미술관에 전시된 다비드상의 복원도 OPD가 담당했다. 지금도 연구실 곳곳에선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미완성작인 유화 ‘동방 박사의 경배’, 현대미술의 아이콘인 잭슨 폴록의 100억원대 회화, 조르조 바사리의 회화 작품들이 현대기술과 전문가들의 손끝을 타고 새 생명을 얻고 있다. 크리스티나 임프로타 석재 부문 교수는 “1966년 11월 아르노강 대홍수는 OPD가 세계적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됐다”면서 “당시 피렌체를 덮친 기름과 진흙, 오물 등이 역사적 미술품 대다수를 오염시켰으나 세계 곳곳에서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되돌려 놨다”고 증언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산산조각 났던 산 조반니 디 우베라 성당의 미켈란젤로 조각상도 다른 기관들이 복원을 포기했지만, 이곳에선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이 조각상은 내년 초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곳의 강점은 끊임없는 교육과 혁신이다. 매년 5명가량의 학부생을 선발해 5년 과정으로 가르친다. 지금도 학생들은 볼로냐 페트로냐성당 복원 현장에 상주하며 실습을 이어가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화학, 물리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 항생제를 활용한 벽화의 곰팡이 제거 등 창의적 복원 방식을 쏟아낸다”며 “이렇게 한 건의 작업을 마칠 때마다 책으로 펴내 모든 이들과 공유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피렌체(이탈리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끼리끼리’문화는 싫어 수많은 시도 좋아 백발 작가는 작업중

    ‘끼리끼리’문화는 싫어 수많은 시도 좋아 백발 작가는 작업중

    “2010년 다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이렇게까지 홀대받으며 꼭 한국에서 활동해야 하느냐’는 (재미교포인) 아내의 성화 탓이었죠. ‘끼리끼리’ 학연이 지배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고졸 출신인 제가 버티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입니다. 미국에서 살 집과 잡일을 구하다 닷새 만에 돌아왔어요. 이런 식으로 도망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외선 모셔가는 작가인데 국내선 홀대 이렇게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린 작가가 또 있을까. 시대정신과 감수성으로 무장한 작가에게는 지금도 ‘천재’ 혹은 ‘정신 나간 사람’이란 엇갈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수억원의 그림값을 쳐주며 모셔갔지만,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은 500만원 그림값도 비싸다며 40%나 깎으려 들더라”고 고백한 김구림(78) 화백이다.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어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전은 꺼져가던 김 화백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관심을 되살렸다. 데이비드 호크니, 구사마 야요이, 신디 셔먼, 잭슨 폴록 등 내로라하는 20세기 현대미술사의 거장들과 함께 ‘김구림’이란 이름 석 자가 올랐다. 작가는 1969년 여성의 몸에 붓으로 그림을 그렸던 ‘보디 페인팅’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들을 내놓았고 호평받았다. 이후 개인화랑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15년간 미국서 활동하다 2000년 귀국전 애초부터 그는 국내와 인연이 적은 ‘해외파’였다. 대구 ‘촌놈’이 무작정 상경해 1960~1970년대 한국 전위예술의 획을 그은 ‘제4집단’을 결성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뿐이었다.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대지미술 등을 넘나들 때 주간지마다 제 전담기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에선 종종 작품 전시조차 거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꽃무늬 탁자보와 사람들이 앉았던 방석을 늘어놓은 독특한 판화작품이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판화전이 계기가 됐다. “이대로 안주하지 않겠다”며 1985년 도미한 작가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15년간 거주하며 예술세계를 펼쳤다. 백남준과 2인전을 연 것도 이즈음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국내에선 완전히 잊혔다. 향수병이 도질 무렵, 옛 문예진흥원(아르코)이 대규모 개인전을 제안했다. 2000년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옛 문예진흥원 미술관에서 열린 귀국전에는 ‘김구림이 대체 누구냐’며 사람들이 몰렸고, 전시공간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김 화백은 말했다. ●“반짝 관심에 매년 전시 열어도 몰라” 그러나 그때뿐. 김 화백에 대한 국내 화단의 관심은 반짝이다 금세 사라졌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도 고독하다. “매년 전시를 열었지만 사람들이 몰랐을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플레이스막에서 열린 설치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진 작가나 기웃거릴 대안공간에서 대표작인 ‘음양시리즈’를 선보였다. 작은 배를 전시공간에 갖다놓고 물을 채운 뒤 마네킹의 머리와 팔, 모형 뱀과 사과를 함께 놨다. 관람객들이 “동명이인인 20대 작가 김구림의 작품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작가는 지금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지하에서 2000년대 이후 회화와 콜라주를 아우르는 160점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음달 2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성형천국을 꼬집는 도발적 풍자물로 가득하다. 작가는 “서울 강남역에서 마주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 여성 누드와 얼굴로 채워진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모형 손가락 뼈가 붙은 작품은 아직 사인조차 하지 않은 최신작이다. 젊은 시절 읽었던 논어 등 동양사상서들은 속이 파인 채 거친 욕망을 표현한 ‘진한 장미’시리즈로 탈바꿈했다. ●구상했던 수많은 설치 작품 시도해 보고파 머리와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노 작가는 몇 가지 고백을 덧붙였다. “본명은 ‘김종배’예요. 미술계 선배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개명했죠. 20대 때는 대구에서 바이크 선수로 이름을 날렸어요. 사고로 지금도 오른쪽 갈비뼈 한 대가 없죠. 재미교포인 (두 번째) 아내와는 미국에 살던 시절, LA 폭동을 피해 잠시 거처를 빌렸을 때 16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인연을 맺었어요. 아들부터 낳고 합쳤는데, 여태껏 결혼식을 못 올렸죠. 1남 1녀 중 딸은 영국 골드스미스미대에서 제 뒤를 이어 미술 공부를 하고 있죠.” 그는 “지금도 예전에 구상했던 수많은 설치 작품들을 시도해 보고 싶지만 돈이 발목을 잡는다. 어떤 미술관이든 도와만 준다면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라고 되뇌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피카소·샤갈 등 근·현대 미술 컬렉션 5만 3000여점 소장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피카소·샤갈 등 근·현대 미술 컬렉션 5만 3000여점 소장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MNAM)은 당초 회화 작품을 전시하던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출발해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지어진 팔레 드 도쿄에 있다가 1977년 퐁피두센터가 개관하면서 옮겨와 둥지를 틀었다. 미술관 작품 구성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결정에 따라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관 컬렉션 중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신인상파, 나비파의 작품들은 개관을 준비 중이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고, 그 이후의 작품들은 모두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뤽상부르 미술관과 팔레 드 도쿄를 거쳐 이관된 작품과 새롭게 구성한 피카소, 샤갈, 마티스, 브라크, 브랑쿠시, 클레, 보나르 등 근·현대 미술 컬렉션 5만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회화에서부터 사진, 뉴미디어, 조각, 디자인, 건축에 이르는 거의 모든 종류의 현대미술 장르를 다룬다. 피카소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들이 20세기 초반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덕분에 20세기와 21세기 현대미술작품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4층과 5층의 상설전시실, 2층과 6층의 기획전시실 등 총 전시면적은 1만 7000㎡. 5층에는 1905년부터 1960년 사이에 완성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입체파(큐비즘) 작가들의 작품은 특히 풍부하다. 피카소의 ‘기타리스트’, 조르주 브라크의 ‘과일 접시와 카드들’과 같이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작품부터 라울 뒤피의 ‘수잔나와 노인들’, 페르낭 레제의 ‘결혼식’ 등 후기 입체파까지의 작품들이 미술관 벽에 빼곡하다. 마티스의 ‘왕의 비탄’, ‘붉은 실내’, ‘루마니아풍 블라우스’, 1차 대전 이후 파리에서 활약한 파리파의 대표적 화가인 모딜리아니의 ‘마담 헤이든의 초상’,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신부’도 빼놓을 수 없다.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의 ‘보이지 않는 잠자는 여인, 말, 사자’,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칸딘스키의 ‘노랑빨강파랑’과 ‘파란하늘’ 등 추상 작품,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심연’, 몬드리안의 ‘뉴욕’ 등 걸작들을 관람할 수 있다. 4층은 196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실험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쉬포르쉬르파스, 플럭스, 미니멀아트, 개념미술의 대표 예술가들인 리히터, 폴케, 백남준, 보이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이탈리아 작가 페노네, 설치미술가 볼탄스키 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상설전시 외에 6층에서 열리는 퐁피두의 특별기획 전시는 언제나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은다. 예술가, 예술가의 가족 및 후원단체 등의 기부를 통해 다양해진 컬렉션으로 특별한 주제 혹은 예술가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퐁피두센터 개관 특별전을 장식한 마르셀 뒤샹을 비롯해 달리, 보나르, 마티스, 베이컨, 피카소, 뒤뷔페 등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했으며, 올해에는 가장 프랑스적인 사진을 남긴 앙리 카르티에 브르송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별 전시는 ‘파리-뉴욕’, ‘파리-파리’, ‘팝아트의 시간들’, ‘히치콕과 미술’ 등이 있었다. lotus@seoul.co.kr
  • 둘이서 꽉 채운 무대, 인간사·희로애락 多있네

    둘이서 꽉 채운 무대, 인간사·희로애락 多있네

    배우 단둘이서 이끌어 가는 2인극은 여러 배우가 등장하는 연극과는 다른 차원의 복잡성과 밀도를 요구한다. 두 인물 간 주고받는 대화는 긴장감을 잃지 않아야 하고 둘의 관계 속에 사랑과 우정, 갈등과 화해 등 모든 인간관계를 녹여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개막한 연극 ‘레드’와 ‘스테디 레인’에서는 이 같은 2인극의 매력을 십분 경험할 수 있다. 두 작품 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탄탄한 대본 위에 연기파 배우들의 실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연극 ‘레드’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일화에 기반한 ‘팩션’이다. 극작가 존 로건은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에 백만장자들만을 겨냥해 문을 연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은 로스코가 40여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했던 일화에 주목했다. 상업적 예술과는 거리가 먼 그가 지극히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수락한 일, 또 막대한 금전적 대가를 돌려주면서까지 수락을 번복한 일의 이면에는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로건은 로스코의 일상에 가상의 조수인 켄을 불쑥 밀어 넣었다. 켄은 젊음의 혈기와 예술에 대한 나름의 진지함으로 끊임없이 로스코에게 도전한다. ‘레드’의 무대를 채우는 건 로스코와 켄의 대화다. 그 대화는 가르침과 깨달음으로 시작해 긴장감이 팽팽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잭슨 폴록과 앙리 마티스 등 화가들의 이름과 현란한 미학적 수사, 어려운 미술 사조들이 쏟아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충돌이라는 인간사의 보편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로스코는 젊은 시절 입체파를 밀어내고 추상주의의 세상을 열었다. 그러나 중년의 그는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막아 놓은 작업실에 자신을 가둬 놓은 채 변화를 거부하는 기성세대가 됐다. 그에게 물감을 짜 주는 잡일만 하던 켄은 그런 로스코에게 자기 자신과 세상을 직시하고 변화할 것을 주문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도, 한 시대도 저물어 간다. 배움과 성장, 나이 듦과 변화라는 인간사의 원리를 둘의 논쟁 속에 응축했다. 내년 1월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 5000원~5만원. (02)577-1987. ‘레드’가 예술적 감각을 자극하는 지적인 연극이라면 ‘스테디 레인’은 한 편의 진한 누아르다. 사회 정의에는 관심이 없는 시카고의 경찰 대니와 조이는 예상치 못한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대니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성매매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가 포주에게 위협을 당한다. 어느 날 창문으로 날아온 총알에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대니는 법의 경계를 무시한 채 보복에 나선다. 조이는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무너져 가는 대니의 가족을 지킨다. 2006년 뉴욕에서 초연된 작품은 2009년 휴 잭맨과 대니얼 크레이그가 출연해 화제가 됐고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2009년 연극 톱 2에 올랐다. 허름한 테이블과 의자 두개가 전부인 무대 위에서 두 배우는 모노드라마와 2인극의 경계를 오간다. 가족과 시카고의 뒷골목, 어둠 속에 마주한 범죄자들 등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때로는 혼자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때로는 둘이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배우는 단 두명이지만 이들이 그려내는 것은 오만 가지 인간 군상이다. 대니는 성매매 여성을 탐하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조이는 그런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지만 그를 벼랑으로 몰아넣는다. 파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가는 이들의 몸부림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이 들여다보인다. 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전석 4만원. (02)744-4334.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미술로 배우는 미국 300년史

    미술로 배우는 미국 300년史

    미국 300년사를 그림으로 감상해 볼 수 있는 ‘아트 어크로스 아메리카’(Art Across America)전이 5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 등에서 작품을 대여해 온 대형 전시로 정통 초상화를 보여주는 찰스 윌슨 필의 1772년작 ‘캐드왈라더 가족’에서부터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잭슨 폴록의 1950년작 ‘넘버 22’까지 모두 168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들이 내년 이들 미술관에서 ‘조선미술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순회전시할 예정이다. 한·미 간 교환전시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4일 언론에 공개된 전시는 ‘아메리카의 사람들’, ‘동부에서 서부로’, ‘삶과 일상의 이미지’, ‘세계로 향한 미국’, ‘ 미국의 근대’, ‘1945년 이후 미국 미술’ 등 모두 6부로 이뤄졌다. 전시장을 걸어나가면서 미국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한 구성이다. 처음에 맞닥뜨리는 것은 인물 초상화들이다. 식민지 지배층의 부유한 느낌을 담은 ‘캐드왈라더 가족’을 비롯,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등을 볼 수 있다. 19세기 들어 서부로 팽창함에 따라 광활한 자연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토머스 콜을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이 이 시기를 잘 드러내 준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보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윈슬로 호머가 그린 ‘건전한 만남’은 눈만 마주치면 풀밭에 뒹굴 것만 같은 피 끓는 젊은 남녀가 경건하게 우유만 나누어 마시는 모습을 담았다. 전반적인 그림의 톤까지 따사로워 지금으로 봐서는 건전가요 듣는 느낌이다. 이후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선보인 뒤 1945년 이후로 가면서 마침내 세계 패권국으로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올라선 미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잭슨 폴록을 비롯,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존 싱어 사전트, 조지아 오키프 등 귀에 익숙한 작가의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19일까지. 1만 2000원. 1661-244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色…너, 정체가 뭐냐?

    色…너, 정체가 뭐냐?

    “전혀 안 그렇게 보일 줄 알았어요.” 시침 뚝이다. 척 봐도 한국적인, 민화적인 요소들이 잔뜩 모여 있는데 작가는 아니라고 한다. “아마 한국 사람에게 익숙해 보인다면 그건 아이콘 때문이 아니라 색감 때문일 거라고 봐요.” 작품에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니 복잡해진다. “저게 한국에서 따온 거 같죠? ‘펜실베이니아 더치’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거예요. 그 사람들이 쓰는 민속적 도안에서 따온 거죠.” 독일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모여 사는, 아직도 마차를 타고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기계문명을 배척하고 농업에 파묻혀 사는 그곳이다. 부채모양을 가리키자 “미국에서도 장례식에 저런 모양의 부채를 쓴다.”고 답한다. 전통방식으로 물들인 나염방식의 천을 집어들자 “그건 타이다이라고, 미국에서 반전운동의 상징물과도 같은 천”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온전히 한국적이고, 온전히 미국적인 게 대체 뭐냐는 얘기다. 오는 3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여는 문지하(39) 작가다. 문 작가는 대학, 대학원 졸업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 정체성 문제 때문이다. 13년간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어 발음도 슬쩍 굴러가려고 한다. 허나 그곳 사람들은 작가를 아시아계로 규정한다. 무얼 해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여전하다. “너는 어디서 왔니(Where are you from?).” 작가의 작품은 이에 대한 응답이다. 그런데 약간 삐딱하다. 작가의 대답은 질문과 동일한 “Where are you from?”이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너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반문이다. 정체성에 대한 강한 부정, 그리고 혼종성에 대한 강한 기대가 담겨 있다. 모든 선택은 이에 따른다. 매체는 종이다. 번지고 스며들고 섞이는 매체다. 아예 천이나 다른 소재들을 찢어다 붙이기도 한다. 다만 연결부분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무척 신경 쓴다. 섞되 섞인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다. 작품에는 수많은 다양한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한국 것 같기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풍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양적이기도 하다. 기법도 마찬가지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흥겹게 작업한다.”는 작가의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팝아트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처럼 작업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 구도는 동양 산수화다. 그런데 색은 거침없다. 작가는 “아마 저처럼 무식하고 용감하게 다양한 색을 다 쓰는 작가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색깔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도 한번 뒤섞어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검은색은 절대 안 쓴단다. “동양인이라 수묵을 썼다.”란 기계적 도식을 던져버리고 싶어서다. 이렇게 한데 뒤죽박죽 다 섞어둔 세상에다 작가는 스프링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프링필드는 미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동네 이름. 봄날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다. 차이와 분별의 경계를 지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든 그곳이 도화세계이자 유토피아가 아닐까. 출신을 질문받은 작가가 출신을 되묻는 이유다. (02)723-619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 yBa 스타’ 개빈 터크 첫 한국 나들이

    ‘ yBa 스타’ 개빈 터크 첫 한국 나들이

    은색 가발을 쓴 앤디 워홀, 곱슬머리의 엘비스 프레슬리, 베레모를 쓴 혁명전사 체 게베라…. 전시장 한쪽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유명 인사들의 대형 실크스크린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감쪽같이 변장했지만 작품 속 인물은 모두 같은 사람. 바로 이 전시의 주인공인 작가 개빈 터크(43)다. 1990년대 영국 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일원인 터크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설치, 평면, 조각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다. 실크스크린 초상화는 앤디 워홀의 기법을 차용한 것이고, 물감을 흩뿌려 완성한 추상화는 잭슨 폴록 스타일이다. 씹다 만 껌, 두루마리 종이심, 먹다 버린 사과 등을 실물처럼 재현한 조각도 낯익다. 유명 작가의 특징을 패러디하고, 스스로 유명인으로 변장하는 작업을 통해 그가 탐구하는 주제는 정체성과 가치, 독창성에 관한 것들이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졸업전 때 ‘개빈 터크/조각가/여기서 작업하다 1989-1991’이라고 쓴 기념패만을 설치할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몰두했던 그는 신화가 돼버린 유명 작가의 작품을 반복함으로써 무엇이 예술 작품에 가치와 독창성을 부여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12월 12일까지.(02)549-757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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