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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잭슨, 1차 부검결과 “타살·외상 흔적 없다”

    마이클잭슨, 1차 부검결과 “타살·외상 흔적 없다”

    26일(현지시간) 사망한 마이클 잭슨의 1차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7일(한국시간) LA 카운티 검시소는 대변인 크레이그 하비를 통해 1차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하비는 “마이클 잭슨 부검 결과 타살의 흔적이나 외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며 잭슨이 사망한 원인은 알려진 대로 심장마비일 가능성이 크다고 암시했다. 하지만 하비는 “잭슨이 처방전에 따라 약물을 복용한 흔적은 발견됐으나 처방약의 종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비에 따르면 잭슨의 정확한 부검 결과를 알기까지는 최대 8주의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잭슨이 ‘급성심박정지’(sudden cardiac arrest) 증세를 보인 뒤 숨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 원인에 대한 여러 추측이 돌고 있어 부검 결과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잭슨의 사망 소식을 특종으로 보도했던 미국의 연예뉴스전문지 티엠지닷컴(TMZ.COM)은 그의 측근의 말을 인용해 “잭슨이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30분 전 데메롤(Demerol)이라는 진통제를 주사로 맞았다.”고 전한 바 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이클 잭슨 전설속으로] 44년간 지구촌 우상으로…팝의 ‘History’ 되다

    [마이클 잭슨 전설속으로] 44년간 지구촌 우상으로…팝의 ‘History’ 되다

    영국 런던에서의 컴백 콘서트를 불과 2주일가량 앞두고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던 뮤지션이다. 13개의 넘버원 싱글, 7억 5000만장에 달하는 전체 앨범 판매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보유, 그래미상 13차례 수상 등 그를 따라다니는 기록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춤, 노래, 연주, 작사·작곡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면모를 과시했던 그는 세계 팝 음악의 흐름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혁신적이고 현란한 춤사위는 1980년대 MTV의 등장과 함께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그가 끼친 영향은 음악적인 테두리 안에만 머무른 게 아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백인이 지배하던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긍지와 자신감을 높여줬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중음악가를 뛰어넘어 사회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봐야 한다.”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1958년 8월 잭슨가(家)의 아홉 형제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스타였다. 6살 때인 1964년 형제들로 구성된 그룹 ‘잭슨 파이브’의 리드보컬이 됐으며, 5년 뒤 잭슨 파이브 소속으로 자신의 첫 번째이자 역사상 최연소 빌보드 1위 히트곡인 ‘아이 원트 유 백’을 발표하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1979년에는 전설적인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솔로 앨범 ‘오프 더 월’을 내며 독립했다. 이때부터 흑인 소울 음악에 백인 음악의 록적인 요소까지 크로스오버시키며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1000만장 이상 팔렸던 ‘오프 더 월’은 그러나, 황제 등극을 위한 서곡이었을 뿐이다. 1982년 발표한 앨범 ‘스릴러’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괴물로 변신하는 파격적인 영상을 보여줬던 ‘스릴러’를 비롯해 트레이드 마크가 된 안무 ‘문워크’를 선보인 ‘빌리 진’, 뮤직비디오 사상 처음으로 집단 군무를 등장시킨 ‘비트 잇’,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곡인 ‘걸 이즈 마인’ 등이 담긴 이 앨범은 현재까지 1억 400만장 이상 팔리며 그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마이클 잭슨식’ 투어를 시작한 3집 ‘배드’(1987)와 퀸시 존스와 결별한 뒤 자신의 작곡과 제작 능력을 뽐낸 4집 ‘데인저러스’(1991)에 이르기까지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잭슨은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음악 외적인 일로 구설수에 오르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그동안 쌓아올린 명예에 먹칠을 했다. 이 사건은 2330만달러의 합의금으로 무마됐지만, 그는 2003년 또다시 비슷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9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으나 2년도 안돼 파경을 맞았고, 이후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했으나, 역시 갈라섰다. 1995년 ‘히스토리’ 이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2001년에 마지막 정규앨범 ‘인빈서블’을 발표했으나 명성을 되찾는 데는 실패했다. 잦은 성형수술도 도마에 올랐다. 흑인의 우상이었음에도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 백인이 되려한다는 조롱이 끊이지 않았다.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인한 건강 이상설로도 이어졌다. 잇단 소송과 건강 문제로 돈을 잃었고, 빚도 불어나 자신의 저택을 파는 등 파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마이클잭슨 26일 부검…결과는 6~8주 후에

    마이클잭슨 26일 부검…결과는 6~8주 후에

    ‘팝의 황제’마이클 잭슨의 부검이 26일 실시됐다. 25일 오후 낮12시께(이하 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급성 심정지(caediac arrest)로 사망한 마이클 잭슨의 부검이 26일 실시됐다. 마이클 잭슨의 부검을 담당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검시소 에드윈터 부검시관은 26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부검 결과가 나오는데 6-8주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클 잭슨이 25일 자택에서 갑자기 숨졌지만 그 사망원인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부검 결과가 주목된다. 마이클 잭슨이 급성 심박정지로 인한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다고 알려졌지만 각종 건강악화설과 최근 복용 중이었던 약물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잭슨 가족의 전 변호사 브라이언 옥스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에게 그의 약물 복용 문제를 경고했다. 마이클은 약물을 너무 많이 복용하고 있다. 안나 니콜 스미스처럼 될지 모른다.”며 마이클 잭슨의 약물 사용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마이클 잭슨은 사망 당시 급성심정지로 인한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고, 이 때 심장과 맥박은 이미 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은 LA 소방국 구급대원들이 낮 12시 20분께 도착해 지속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했고 이후 UCLA 메디컬센터로 옮겨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끝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 = 소니뮤직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이클 잭슨 사망…“심장마비 원인 조사중”

    마이클 잭슨 사망…“심장마비 원인 조사중”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50)이 지난 25일 낮 12시 경(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미국언론이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잭슨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응급구조대가 출동했으며 도착했을 당시 호흡이 정지된 상태였다.”고 LA 소방구조대 스티브 루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구조대는 쓰러진 잭슨을 인근 UCLA대학병원으로 긴급 후송했으나 결국 깨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LA경찰국과 법률관계자들이 그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를 일으킨 원인을 조사 중인 가운데, 외부의 침입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잭슨의 친구와 담당의사 등 주변인물을 상대로 조사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형 후유증과 피부암 등 건강이상설에 시달렸던 그는 다음 달 영국 런던에서 여는 컴백 콘서트를 준비 중이었다. 한편 잭슨의 변호사 L. 론델 맥밀런은 그의 사망소식에 관해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며 공식 발표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단독]마이클 잭슨이 그린 자화상과 한국에 대한 연서(戀書), 국내에 있다

    [단독]마이클 잭슨이 그린 자화상과 한국에 대한 연서(戀書), 국내에 있다

    마이클 잭슨이 그린 자화상과 한국에 대한 연서(戀書), 국내에 있다 외환위기 당시 방한해 그림과 글 남겨/한국과 인연 많았던 마이클 잭슨 외환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1997년 11월18일. 마이클 잭슨은 전북 무주군의 무조리조트에 묵고 있었다. 리조트 관계자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측 관계자가 그를 초청한 데 응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 방한중이었다. 그 날 그가 묵은 곳은 무주리조트 내의 특급 티롤호텔 501호(사진). 침실과 거실, 별도의 욕실에, 수행원 방까지 딸린 방이었다. 1박에 3백60만원의 정가가 책정돼 있는 프레지덴셜 룸이었다. 당시 그를 뒷바라지 했던 호텔측 관계자들은 그 날 그가 유독 잠을 못 이뤘다고 전한다. 그 시간 그는 창문 건너로 한 눈에 들어오는 리조트의 설원을 오래도록 응시했을 것이다. 이 때 그는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자신의 침실에 그림과 글을 남겼다. 볼펜의 철심을 이용해 그가 침대 옆 나무 협탁에 어렵사리 아로새긴 것은 무엇일까? 그림은 다분히 만화 캐릭터를 닮아 있다. 그러나 긴 머리와 오똑한 코, 그리고 날렵한 턱선을 보면 자신이 꿈꾸던 자신이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꿈꾸던 자화상을 마치 서명처럼 남겨 놓았다. 반면 글은 자신이 처음 방문한 낯선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꾹꾹 눌러가며 쓴 그 글귀는 이렇게 돼 있다. “우리 아이들을 아끼고, 구해주십시오. 한국은 ‘신’(good의 오기(誤記)일 수도 있으나, 선명하게 god라고 쓰여 있다)이고, 무주는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담아( LOVE and SAVE OUR CHILDREN. KOREA IS GOD AND MUJU IS LOVE. LOVE always)”(아래 사진) 머나먼 이국 땅에서 낙서로 뒤척이던 그는 새벽녘 배가 고프다면서 룸서비스를 요청했다. 메뉴를 고심하던 호텔 관계자들은 고추장을 넣지 않은 비빔밥을 제공했다. 당시 비빔밥을 만들었던 구철호 현 총주방장(46, 아래 사진)은 “마이클 잭슨이 당시 처음 맛을 들인 비빔밥을 평생에 걸쳐 좋아했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방한 이틀째도 호텔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투자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전라북도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갈 때였다. 그 자리에 입고 갈 옷을 서울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그는 한사코 사전에 정해둔 그 옷만을 고집했다. 호텔 관계자들은 부랴부랴 헬기를 동원해 서울에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호텔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가 단순히 까다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어 했다. 한국에도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당초 그와 한국의 인연은 앨범 발표 후 잇단 세계 투어로 이어졌다. 그는 <BAD>(1987)나 <DANGEROUS>(1992) 등의 앨범을 발표한 후 세계 1백여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유독 한국과는 인연이 닿질 않았다. 1980년대 후반은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공연이 무산됐다. 90년대 초반에는 한국 정부의 반대로 무대에 설 수 없었다. 1993년 미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 당시 한인과 흑인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고조되자, 그는 재차 내한 공연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미 정부까지 거들고 나서 성사 직전 단계까지 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 당시 마이클 잭슨의 서울 공연을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공연을 허락한 시점은 이미 예정 일정을 한참 넘긴 후였다. 공연에서 비롯된 인연으로 그는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방한 이틀째인 19일에는 투자와 관련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틀 뒤에는 서울 동교동을 찾아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김대중 당선자의 취임 후 남북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한국이 최후의 분단 국가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은 이듬해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으나, 판문점 공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에 대한 우리 정부측의 우려 때문이었다. 1999년 TV로 생중계 되던 잠실주경기장 공연 당시 그는,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때 다시 한 번 기념 공연을 하기로 한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그는 영원히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 / 사진=이여영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이클잭슨, 25일 심장마비 사망… ‘충격’

    마이클잭슨, 25일 심장마비 사망… ‘충격’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50)이 25일(이하 현지 시간) 사망 소식했다고 해외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AFP,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은 25일 낮 12시께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급성심정지(caediac arrest)로 인한 심장마비 증세로 호흡 곤란을 일으켰으며 소방대원들이 인근 한 병원으로 긴급 후송했으나 숨을 거뒀다. 외신은 긴급 의료진이 마이클 잭슨을 후송하기 전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뒤 신속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차도가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마이클잭슨은 다음 달 13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될 컴백 콘서트 준비 중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변호사인 L. 론델 맥밀런은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직 그의 죽음에 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고 공식 발표를 미뤘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를 돌아보다

    故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를 돌아보다

    마이클 잭슨이 25일(미국 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향년 50세로 숨을 거둔 마이클 잭슨은 아동성추행 성형중독 등 여러 스캔들로 ‘문제의 황제’로 등극하기도 했지만 30년 넘게 ‘팝의 황제’로 군림했다. 마이클 잭슨은 5세부터 잭슨 형제들로 구성된 5인조 그룹 잭슨 파이브에서 리드싱어를 맡았으며 자신이 직접 안무한 인상적인 춤을 가미하여 그룹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후 잭슨스(the Jacksons)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에서 1984년까지 활동하였다. 마이클 잭슨은 13세 때 ‘갓 투 비 데어’(Got To Be There)라는 음반을 시작으로 홀로서기 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오프 더 월’(Off the Wall) 앨범은 전세계에 걸쳐 1780만 장이나 팔리는 인기를 누렸다. 이후는 마이클 잭슨의 전성시대였다. 1982년 발매한 ‘스릴러’(Thriller)는 전 세계적으로 약 6000만장이 팔렸고 앨범 수록곡 9곡 중 7곡이 빌보드 차트 톱 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와 같은 전 세계의 환호 속에 마이클 잭슨은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거대한 성공에 동반된 잦은 스캔들은 마이클 잭슨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치닫게 했다. 먼저 마이클 잭슨의 가정이 순탄치 못했다. 지난 19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던 마이클 잭슨은 불과 2년 만에 결별했다. 이후 자신의 백반증을 치료하던 간호사 데비 로와 두번째 결혼을 했지만 다시 3년 만에 이혼했다. 또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했다. 지난 2005년 법원으로부터 아동 성추행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한 번 실추된 명성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잦은 소송과 헤픈 소비벽으로 올 3월에는 마이클 잭슨의 상징이었던 네버랜드 저택을 압류당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희귀병과 잦은 성형 수술에 따른 부작용으로 외부 활동 또한 힘들었다. 백반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아 온 그는 햇빛에 피부를 노출할 수 없어 항상 우산과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긴팔 옷을 입어야 했다. 최근 마이클 잭슨은 오랜 공백을 깨고 영국 런던에서 50세 기념 컴백 콘서트를 계획했으나 병세 악화 등으로 미뤄오던 중 결국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뉴욕의 팬들 추모의 춤판

    슬픔이 넘치면 이렇게도 되는 걸까.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팬들이 25일(현지시간) 뉴욕 할렘가의 아폴로 극장 앞에서 모여 춤을 추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낮부터 시작된 춤판은 한밤까지 이어졌다.  영국 BBC 인터넷판에서 26일 전한 내용이다.   동영상 보러가기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NBA] LA 레이커스 왕좌 탈환

    LA 레이커스가 올랜도 매직의 돌풍을 잠재우고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다.레이커스는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암웨이 아레나에서 열린 올랜도 매직과의 미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5차전에서 99-86으로 승리했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30점을 넣었고 파우 가솔(14점 15리바운드), 라마 오돔(17점 10리바운드)이 나란히 더블더블로 뒤를 받쳤다. 레이커스는 파이널 전적 4승1패로 7년 만에 NBA 왕좌를 되찾았다. 지난 시즌 보스턴 셀틱스에 2승4패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던 레이커스는 팀 통산 15번째 우승을 차지, 보스턴(17차례)의 최다 우승기록에 한 발짝 다가섰다.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는 주포 코비 브라이언트가 선정됐다. 챔프전 5경기를 치르는 동안 평균 32.4점, 7.4어시스트, 5.6리바운드의 가공할 만한 화력을 과시한 브라이언트는 네번째 챔피언 반지를 끼는 동시에 생애 첫 챔프전 MVP의 영예를 안았다. 2000년대 초반 ‘공룡 센터’ 샤킬 오닐(피닉스 선스)과 3연패를 합작했지만 세 차례 모두 파이널 MVP 자리를 오닐에게 내준 브라이언트는 홀로 팀을 이끈 지 5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브라이언트는 “지난해 챔프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서로 희생하며 오랜 시간을 준비해 왔다.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필 잭슨 감독은 NBA 최초로 플레이오프 정상에 열 차례 올랐다.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은퇴)과 여섯번의 우승을 일궜던 잭슨 감독은 레이커스에서 네번의 우승을 더했다. 보스턴의 레드 아워바흐(9회 우승)을 제친 기록. 역대 포스트 시즌 최다승(209승), 최고승률(69.7%), 파이널 최다 진출(12회) 기록도 새로 썼다.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태양빛 안돼!”…희귀병 앓는 6세 소년

    “태양빛 안돼!”…희귀병 앓는 6세 소년

    햇빛을 쐬면 피부에서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희귀병을 가진 소년이 영국을 울렸다. 동커스터 주에 사는 잭슨 맥킨타이어(6)는 바깥에서 뛰어노는 게 좋을 나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잠깐이라도 외출을 하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크림을 발라야 하고 아무리 더워도 긴옷을 입어야만 한다. 또 모자와 장갑은 빼놓을 수 없는 외출 필수품이 됐다. 그 이유는 이 소년이 전 세계에서 30여 명만 앓는다는 희귀 유전질환(Erythropoietic Prototorphyria)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 잭슨은 유아기 때부터 몇 분이라도 바깥에 나가면 피부가 화상을 입거나 부풀어오르는 증상을 보여왔고, 지난해 희귀한 유전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 받았다. 사진작가인 아버지 앨런 맥킨타이어(41)는 “잭슨이 활동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자꾸 밖에 나가려 한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설명하는게 가장 어렵다.”고 고초를 털어놨다. 자유롭게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잭슨을 위해 소년의 부모는 아이스 하키를 생각해냈다. 실내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친구들과 평소 못다한 시간을 보내는 것. 전문가들은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이 평생 자외선과 가시광선을 차단하며 지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머니인 줄리아 맥킨타이어(34)는 “잭슨이 자라면서 자신의 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조금 불편한 이 생활에 익숙해지길 바란다.”며 안타까워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망가진 미키루크…‘아이언맨2’ 스틸 공개

    망가진 미키루크…‘아이언맨2’ 스틸 공개

    ‘아이언맨2’에서 악역을 맡은 미키 루크가 재기작 ‘레슬러’ 때보다 더 거친 모습으로 또 한번의 연기 변신을 예고했다. 아이언맨2의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키 루크가 연기한 악역 ‘휘플래시’의 스틸사진을 최초로 공개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와 싸우는 악당 휘플래시는 전기채찍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돌연변이 캐릭터다. 공개된 사진에서 미키루크는 양손에 채찍을 들고 상체에 채찍과 연결된 기구들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다. 찌푸린 인상과 거친 머릿결이 전작 ‘레슬러’ 때보다 더 원초적인 인상을 풍긴다. 가슴에 빛나는 원판은 무기인 채찍의 동력원이며 아이언맨의 원자로와 연관이 있다고 존 파블로 감독은 설명했다. 한편 지난 4월 크랭크인한 아이언맨2는 현재 내년 5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중이다. 전편의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아이언맨의 비서겸 참모 역할을 했던 기네스 펠트로가 그대로 출연하며 미키 루크와 스칼렛 요한슨과 새뮤얼 L. 잭슨 등이 합류했다. 사진=Paramount Pictures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이클 잭슨 변형된 귀…성형 후유증?

    마이클 잭슨 변형된 귀…성형 후유증?

    거듭 성형수술을 받아온 마이클 잭슨(50)이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잭슨이 10년 전부터 귀 연골을 절제해 코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성형수술 자주 받아왔고 이 때문에 귀의 모양이 변형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잭슨은 1998년 본격적인 코 성형수술을 시작했지만 머리를 길게 길러 연골을 절제한 귀를 가렸기 때문에 그동안 이 모습이 포착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비버리힐스에서 포착된 잭슨의 귀는 성형 수술을 하기 전인 10년 전과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귀의 크기가 2/3 정도로 줄었을 뿐 아니라 둥글던 귀가 귀 끝이 평평하게 변형된 것. 영국 성형외과 협회의 더글라스 맥조지는 “잭슨의 귀는 잦은 성형수술로 연골을 제거해 변형된 모습“이라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편 지난달 잭슨이 상반신에서 피부암 조직이 발견됐다고 언론에 보도됐지만 귀에는 전이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사진=더 선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얼짱이네”…마이클 잭슨 ‘친자녀’ 공개

    그동안 천이나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만이 공개됐던 마이클 잭슨의 아들과 딸의 얼굴사진이 보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12살이 된 마이클 잭슨의 첫아들 프린스 마이클 주니어와 11살이 된 딸 패리스는 어느새 훈남 훈녀로 자란 청소년의 모습이다. 이들 사진을 공개한 언론들에 의하면 프린스와 패리스는 아버지 마이클 잭슨과 함께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녹음 스튜디오에 도착하는 길이었다. 이 곳에서 마이클 잭슨은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스튜디오로 들어가던 이들은 처음 사진촬영이 되는지 모르다가 카메라맨을 본 후 카메라를 응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2시간 정도 후 스튜디오를 떠날 때 프린스와 패리스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났다. 이들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생모인 데비 로우(Debbie Rowe) 때문. 데비 로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의 유명세로 아이들이 혹시 유괴를 당할지 몰라 걱정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1980년대 중반 마이클 잭슨이 백반증으로 치료를 하던 당시 전용 간호사로 인연을 맺은 둘은 1996년 프린스를 임신하면서 결혼했고 그 다음해 패리스를 낳았으나 1999년 이혼했다. 마이클 잭슨은 알려지지 않은 대리모를 통한 인공수정으로 두번째 아들인 프린스 2세(7)를 더 두고있으나 프린스 2세의 모습은 아직까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백인인 데비 로우와의 결혼으로 출생한 프린스와 패리스지만 흑인인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닮지 않아 많은 소문과 억측이 돌았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명의 자녀 모두 자신이 생물학적으로도 아버지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hytekim@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비쩍 마른’ 마이클 잭슨 건강 적신호?

    ‘비쩍 마른’ 마이클 잭슨 건강 적신호?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50)이 너무 마르고 쇠약해져 내년 열리는 대형 콘서트 준비는 물론 당장 피부암 치료를 견디기 힘들 수 있다는 걱정섞인 관측이 나왔다. 영국 대중지 더 선 등 여러 해외 언론들은 “잭슨의 몸무게가 57kg가 되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졌다.”고 언급하면서 콘서트를 앞두고 그의 건강에 우려감을 드러냈다. 측근에 따르면 잭슨은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으며 그 이상 먹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잭슨이 톱스타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면서 체중이 불어나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 잭슨도 보도에 앞서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지만 밥을 잘 먹지 않아 살이 많이 빠졌으며 건강을 위해서 체중을 늘려야 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 신문은 “잭슨이 정상적인 피부암 치료를 받고 내년 컴백 콘서트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체중이 점점 더 줄어 팬들의 불안감을 사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잭슨이 피부암 판정을 받았다는 보도가 이어졌으나 그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올 여름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영국에서 열 예정이던 공연을 취소해 의구심을 자아낸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정준모의 시시콜콜 예술동네] 똑같은 그림 왜 그릴까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한국인들의 그림을 향한 대단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박수근의 ‘빨래터’의 또 다른 버전이 전시된다고 한다. 30여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 작품 때문에 드는 궁금증 하나. 왜 작가들은 특정한 주제나 소재를 반복해서 그렸을까?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예술가들이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마치 승부사처럼 한 가지 주제나 소재에 몰입해서 자신의 기량을 연마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대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흐의 30여점에 달하는 ‘자화상’과 7점에 이르는 ‘해바라기’가 그렇다. 렘브란트는 잘나가던 젊은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말년까지 여러 장의 자화상을 유화와 동판화로 남겨 놓았다.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도취해 가장 즐겨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기도 했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하기 위해 3000여장의 반복적인 스케치를 남겼다. 소재에 몰입해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그려진 작품들은 작가로서 자신의 여정을 기록한 지도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연작은 이 경우에 속하며 그런 이유로 그려진다. 다소 예외긴 하지만 두 번째는 소장가들의 주문 때문에 그리는 경우도 있다. 소정 변관식의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변의 지인이나 평소 자신을 지원해 준 이들이 원하는 소재를 그려준 경우다. 세 번째, 잘 팔리는 소재를 계속해서 그린 경우이다. 화가도 생활인인 이상 경제적인 고통을 예술적 의지만으로 감내하기란 버거운 일일 것이다. 그런 경우 작품을 구입하는 소장가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즐겨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 미국 문화전쟁의 병기였던 잭슨 폴록을 계기로 작품에 제목 대신 번호를 붙이면서 소재와 구도, 기법의 유사성은 구상화건 추상화건 문제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마르셀 뒤샹 이후 앤디 워홀에 이르면 미술품은 더 이상 고뇌하는 예술가의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이 되고 만다. 이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원로작가들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같은 소재와 기법은 수없이 반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들도 구분을 하지 못할 만큼 유사 또는 흡사한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다. 미술품의 유일성에 목을 매는 것은 우리의 미술에 대한 시각이 여전히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미술품의 재화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유일성이다. 그리고 ‘유일하다’는 사실은 미술품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가치보다 세속적 가치 즉 ‘그림 값’에 관심을 가질 경우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같은 도상이나 소재의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작품을 가지고 있거나 그 작품과 이해관계가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비슷한 구도와 제목의 작품이 여러 점일 경우 그중 하나만 원작이고 나머지는 모두 위작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뇌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평론가>
  • 마이클 잭슨 측 “피부암 보도, 사실무근”

    마이클 잭슨 측 “피부암 보도, 사실무근”

    마이클 잭슨 측이 최근 피부암 진단을 받았다는 일부 언론의 기사를 “허위 보도”라고 일축했다. 지난 16일, ‘더 선’, ‘텔레그래프’ 등 일부 영국 언론들은 마이클 잭슨의 목과 상반신에서 피부암 조직이 발견됐다고 보도하면서 “치료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는 회복 전망까지 전했다. 이에 마이클 잭슨의 대변인 닥터 토메(Dr. Tohme Tohme)는 ‘뉴욕 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마이클 잭슨의 상태는 매우 좋다.”고 반박했다. 그는 “보도된 피부암 진단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잭슨의 건강은 아무 이상이 없다. 어떤 질병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이클 잭슨 측이 피부암 보도를 부인하면서 올 여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되는 잭슨의 컴백 콘서트와 관련된 공연업계도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총 50회로 진행될 이번 콘서트는 제작비가 1억 5000만 파운드(약 28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으로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 할 경우 상당한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마이클 잭슨의 피부암 진단을 보도한 ‘더 선’은 당시 담당의사의 말을 인용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피부암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진=뉴욕데일리메일 인터넷판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이클 잭슨 피부암 판정…“콘서트 강행”

    마이클 잭슨 피부암 판정…“콘서트 강행”

    올 여름 컴백 콘서트를 앞둔 마이클 잭슨이 피부암 투병중인 것으로 알려져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더 선 등은 16일 “지난 달 잭슨의 상반신에서 피부암 조직이 발견돼 치료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 잭슨의 피부암 조직은 목까지 전이된 상태며 얼굴에도 피부암으로 발달될 수 있는 조직들이 발견됐다. 그러나 초기단계에 발견한 덕분에 완치 가능성이 높아 컴백 콘서트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더 선은 “잭슨의 피부암은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며, 환자 본인도 완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담당의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어 “처음에는 발병사실을 알고 매우 걱정했지만 의료진은 그에게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후 그도 극복의 의지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피부암 선고에도 불구하고 1억 5000만 파운드(약 2885억 원)컴백콘서트를 강행할 것으로 알려진 잭슨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의 한 피부암 전문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한편 그의 피부암 발병 원인이 잦은 성형으로 인한 성형부작용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사진=The Sun(피부과를 방문한 마이클잭슨의 최근 모습)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미국 현대 미술계 비하인드 스토리

    미국 현대 미술계 비하인드 스토리

    1900년대 중반 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현대미술 컬렉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5년 시카고에 최초의 모던아트 갤러리를 열었던 캐서린 쿠(1904~1994)가 1943년 큐레이터로 영입돼 현대회화와 조각품을 담당하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몸통 전체에 석고 깁스를 하고 수십년을 살았던 쿠는 현대미술에 대해 좋은 선구안을 가진 사려 깊은 큐레이터로 신체적인 열세를 인내하고 극복할 만큼 놀라운 열정을 가진 여자였다. ‘예술가를 말하다’(캐서린 쿠 지음, 에이비스 버먼 편집·완성, 김영준 옮김, 아트북스 펴냄)는 20세기 중반 미국 현대 미술의 태동기에 활동한 전설적인 큐레이터의 전기이면서도 그 시대의 예술가들과의 만남, 컬렉터들의 작품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 큐레이터와 이사진의 갈등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미술 전문서적이다. 쿠는 시카고미술관을 20세기 중반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시카고의 보수적인 성향이 반영된 미술관 이사진은 이런 노력을 방해했다. 미술관 이사진은 윌렘 데 쿠닝의 초기 걸작 ‘발굴’이 선물로 들어오자 ‘10년 동안 전시를 하지 않겠다.’는 계약조건을 달으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작품을 놓치기도 했다. 1955년에 쿠가 잭슨 폴락의 대작 ‘회색빛 무지개’를 사들이자 ‘시카고 트리뷴’에서는 ‘쿠쿠(쿠를 빗대)는 떠나야 한다’는 헤드라인 아래 작품 매입이 시카고를 덮친 재앙이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마크 토비의 1953년 작 ‘8월의 가장자리’는 이사진이 작품구입을 미적거리는 통에 결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팔려가기도 했다. 쿠는 미술기사로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1972년 보스턴 미술관의 중국미술 컬렉션 재설치 기념전시를 ‘새터데이 리뷰’에 실었다. 그 전시에는 닉슨 대통령 부부가 중국을 방문해 구입한 중국 물병 2점이 나왔다. 문제는 이 물병이 관광상품이었다는 것이다. 쿠는 지체없이 “대통령을 수행했던 그 많은 사람들 중 예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측근이 없었던 것이냐. 정치적 위상이 높은 소유자가 내놓았다고 명망 있는 미술관마저 그렇게 평범한 물건들을 두고 비굴한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고 일갈했다. 그 기사는 통신사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쿠는 그 뒤로 수년 동안 알 카포네의 회계장부 압수수색 수준의 혹독한 회계감사를 받아야 했다. 러시아 작가인 칸딘스키의 작품을 몰라본 경매사의 무지로 거저 줍다시피 한 적도 있다. 1937년 1월 소리 소문 없이 열린 경매는 선구적인 아트 컬렉터 제롬 에디의 컬렉션. 경매사는 ‘틴판스키 작품’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독일 무르나우에 있는 교회를 담은 1909년 표현주의 작품을 쿠는 각각 20달러와 5달러에 살 수 있었다. 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좋은 컬렉터의 작품을 기증받기 위한 노력은 처절했다. 가장 뼈아픈 경험은 아렌스버그의 컬렉션. 아렌스버그는 현대미술가인 마르셀 뒤샹의 조언을 받아 엄청난 현대회화, 조각 컬렉션을 가졌다.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쿠는 아렌스버그로부터 시카고 미술관에서의 전시회 허락을 받았다. 쿠는 기증이 눈앞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렌스버그가 전시에 동의한 것은 단 한 푼의 비용도 부담하지 않은 채 전문적으로 펴낸 도록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도록이 기증의 교섭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도록이 손에 떨어지자 아렌스버그는 더이상 쿠를 만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워싱턴 DC의 내셔널갤러리에 작품을 기증한 체스터 데일의 경우는 시카고 미술관에 10년간 컬렉션을 무상 임대해 줬다. 컬렉션의 가치는 높아졌다. 내셔널갤러리가 생존 작가의 작품은 전시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바꾸자 데일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회수했다. 쿠는 또 헛물을 켠 셈이다. 쿠는 전 세계 순회전시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해외전시도 대단히 싫어했다. 작품에 씻을 수 없는 훼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가 화랑에서 그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일화, 토마스 만이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끌끌 차던 일화 등도 생생하고 재밌다. 시카고미술관이 소장한 최고의 걸작, 신인상파 화가인 조르주 쇠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표면을 세척한 뒤 오른쪽 위 구석에서 쇠라와 그의 정부로 추정되는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당시 큐레이터였던 쿠로서는 평생 못 잊을 감동과 경이로움이었다고 술회한다. 이 과정에서 쿠는 쇠라가 형식주의적 화가가 아닌 피 끓는 젊은 사내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캐서린 쿠가 사망한 지 10년이 더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쿠가 원고를 4분의3 정도 썼을 무렵 사망했기 때문에 쿠가 생전에 뒷일을 부탁한 미술사학자 에이비스 버먼이 쿠의 초고를 바탕으로 사망하기 전인 1982년의 인터뷰와 그녀가 남긴 편지, 메모와 기록들을 뒤져가며 나머지를 채웠다. 1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마이클 잭슨 ‘문워크’ 잇는 안무 공개

    마이클 잭슨 ‘문워크’ 잇는 안무 공개

    12년 만에 부활하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52)이 오는 7월 열리는 영국 콘서트에서 ‘문워크’(Moonwalk)를 잇는 획기적인 안무를 선보일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잭슨 측이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문워크의 명성을 잇는 새로운 안무를 구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최고의 댄스팀을 꾸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 언론에 따르면 잭슨 측은 영화 ‘더티 댄싱’ 등의 영화 안무를 짰던 세계 최고 안무가 케니 오르테가(Kenny Ortega)를 영입했으며 지난 주 오디션을 통해 총 10명의 남녀로 이뤄진 최고의 안무 팀과 댄스 팀을 꾸렸다. 오르테가는 더 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잭슨이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던 문워크를 잇는 쉽지만 매력적인 안무를 구상 중”이라면서 “콘서트에 온 관객들이 모두 따라하고 싶어하는 춤을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댄저러스’와 월드투어 ‘히스토리’에서 협력했던 잭슨과 다시 일하게 돼 꿈만 같다.”면서 “잭슨은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하는 이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추켜세웠다. 잭슨의 영국 콘서트 홍보사 대표인 랜디 필립스는 “이번 콘서트는 최고의 음향, 안무, 의상, 조명, 무대 효과가 투입되는 유례없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공연에 투입된 비용만 230억 원에 이른다.”며 성공적인 공연을 자신했다. 잭슨이 12년만에 개최하는 이 콘서트는 오는 7월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며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비밀리에 공연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승의 최적기 맞은 NBA 휴스턴 로키츠

    우승의 최적기 맞은 NBA 휴스턴 로키츠

    한국시간으로 어린이 날이었던 지난 5일 NBA(미국프로농구) 플레이오프에서 실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서부 컨퍼런스 5위였던 휴스턴 로키츠가 1위 LA 레이커스에 1차전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그것도 원정경기에서 거의 시종일관 리드를 지키면서 얻어낸 승리이기에 휴스턴의 이번 승리는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휴스턴이 1차전을 이겼다 해서 시리즈 승리까지 이어지리라 장담을 주지는 못하지만 역대 플레이오프와 올 정규시즌에서 자신들에게 각각 4번의 패배를 안겼던 레이커스의 우승전선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팀의 주축인 야오 밍을 중심으로 공수에서 선수 상호간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플레이를 펼칠줄 아는 휴스턴은 강력한 팀디펜스와 더불어 공격에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올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백조로 점점 거듭나고 있는 론 아테스트라든지 연봉에 비해 알짜배기 활약을 펼치는 애론 브룩스, 루이스 스콜라 등도 휴스턴에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인물들이다. 휴스턴은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당 87.9실점과 44.7%의 필드골 허용률로 특유의 짠물수비를 자랑하고 있고, 팀플레이를 우선시하는 선수들의 협력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수비귀신으로 불리우는 섀인 배티에는 2라운드 1차전에서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를 경기내내 힘들게 만들었으며, 고비 때마다 터져준 3점포나 대담하게 골밑을 넘나드는 휴스턴 가드진들의 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팀내 슈퍼스타였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불구 휴스턴이 이토록 선전을 해준다는 것은 명장 릭 아델만 감독의 용병술도 빼놓을 순 없다. 아델만 감독은 단조로운 전술을 펼친다는 휴스턴의 공격에 혼을 불어넣은 인물인데 18시즌동안 단 1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평범한 팀을 강 팀으로 끌어올리는 대단한 리더쉽을 휴스턴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레이커스와 휴스턴의 2라운드는 6, 7차전까지 갈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많았고, 창과 방패의 대결로 불리우는 두팀간의 특성상 7차전까지도 갈 확률이 농후하다. 1차전 패배로 얼마없는 머리숱을 매만졌던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경기후 인터뷰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레이커스 측에서도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94-95시즌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의 단꿈을 꾸고 있는 휴스턴은 ‘기적’으로 평가받았던 그당시의 상황을 올시즌에서도 차근차근 재현해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미주 스포츠 통신원 이동희@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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