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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요구 입 막으려 아내 협박 아들 살해

    【사천=강원식 기자】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부부가 함께 살해해 암매장한 사실이 범행 4년4개월만에 드러났다. 경남 사천경찰서는 22일 강금회(40·무직·사천시 벌리동 497의 3),김혜정씨(27·여)부부를 붙잡아 살인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88년 재혼한 김씨가 도박 등을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살인혐의를 씌워 가출을 못하게 하기 위해 지난 91년 10월17일 하오 5시30분쯤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당시 9세)을 고성군 하이면 군호리 부근 산속으로 데리고 가 김씨를 위협,목을 졸라 숨지게 한뒤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민속연구가 심우성(이세기의 인물탐구:91)

    ◎남사당패 쫓아 풍물 놀고 탈 만들고…/현장 찾아 자료 채집·기록… “발로공부” 평가 받아/1인극 「쌍두아」는 인형에 혼을 담은 산무대로/「꼭두각시 놀음」·「발탈」 무형문화재 지정에 큰몫 심우성(민속연구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삼단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다홍치마를 두루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은반지를 사주고 싶은/고운 처녀도 있었건만/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처녀야!/나는 집씨의 피였다./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시인 노천명은 옛유랑 예인집단의 기약없는 인생과 서글픈 족적을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몇년전 타계한 예용해씨는 「일수가 좋으면 공청에나 또는 주막집 기역자 판을 끼고 잘때도 있지만 인심이 사나운 마을에서는 처마끝에서 비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고 남사당패의 일상을 그의 저서에 쓰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에 걸식행각으로 밥을 빌어먹을 망정(걸양) 그들은 「꼭두각시놀음(우희)으로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에 겨워 살다가」 「어느 낯선 고장에서 길섶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판소리나 춤이나 연극을 하는 예인들의 대부분은 설날 명절 때 동네에 찾아든 유랑극단이나 광대패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그들의 연희에 반해 길을 따라나서거나 부모의 대를 이어받는 수가 흔하다.인형극연희자인 심우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그의 예능 기질은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은 것은 더욱 아니다.단지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고 있던 불가사의한 「끼」에 의해 뒤늦게 연희자로 돌아선 케이스다. ○머슴살던 노인에 영향 그는 언제부턴가 남사당패의 삶을 쫓아 풍물을 놀고 탈과 인형을 만들고 「취발이」나 「미얄할미」나 허세부리는 샌님,미소를 머금은 백정의 탈을 쓴 온갖 인형을 조종하면서 때론 분노로 때론 질타로 어느 때는 주책없고 어느 때는 넉넉하게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손끝에서 펼치더니 어느 날 스스로 연희자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민속연희중에서도 유독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대장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무대밖의 공간이 연결되는 극적 공간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의 무대는 혼자서 극중인물이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자에다 산받이까지 도맡아 양반들의 어처구니 없는 횡포나 위선위귀를 징치하기도 하고 재난을 물리치는 홍동지의 기개를 앞세우는 등 지배층에 대한 세찬 비판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광대」란 역사속에 놓여진 동시대인들의 희로애락을 세상으로 되돌리는 영혼의 울림대이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충남 공주의 만석지기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휘문중에 다니다가 6·25를 만나 고향인 공주군 의당면에 머물면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를 읽은 것과 집안의 나이든 머슴인 정광진노인으로부터 남사당패들의 내력을 들은 것이 연희자가된 동기다. 한때는 소설가 신문기자가 될뻔도 했고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걸핏하면지방 방송국에 출장간다는 핑계로 옛 남사당패를 찾아 나섰고 거의 전국을 떠도는 뜬 광대노릇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풍물놀이(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등 남사당놀이 여섯가지를 재현해 내는데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들여왔다.가족들에겐 의논도 없이 3년만에 방송국을 집어치우고 나서도 「어디어디 답사,무슨무슨 녹음 촬영」등으로 새벽부터 집을 뒤쳐나가는가 하면 여행과 술에 지쳐 며칠씩이나 대낮에도 이불을 펴고 눕는 것이 다반사였다.오죽하면 그의 부인(권숙현여사)이 「올해도 당신 작년처럼 그렇게 지낼거예요」했다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그는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서 부친이 마련한 집을 팔기도 하고 동해안 서해안으로 다니다가 간첩혐의를 받기도 하고 녹음기와 카메라와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5·16직후에는 종로 YMCA강당서 남사당창단 기념으로 남사당놀이중 「덧뵈기」를 공연하려 했을 때 「남사당」이 정당이름인줄 잘못알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빚기도 했다.59년 8월,전국에 흩어져있는 남사당패를 모아 지금의 남산도서관 자리인 빈터에서 요즘의 약장사처럼 「꼭두각시 놀음」을 공연한 것이 본격적인 해설가의 출발이 되었고 그후 전국각지 순회공연으로 「꼭두각시 놀음」과 「발탈」을 공연한 것이 후에 이 놀이들이 중요무형문화재(3호 7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책이 아닌 발로 공부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것은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현지에서 이를 확인보충하고 채집·기록한 공적과 실제로 수백여회에 이르는 연희를 주관하고 실연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우성.민속예술에서 괴팍한 개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틀이 번듯하고 아나운서 출신답게 우아한 말씨를 쓰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광대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틀림없다.이제 그 시절의 남사당패는 사라지고 없으나 유일하게 그 흔적과 체취를 물씬 풍기는 무대가 있다면 심우성의 1인무언극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나마 재혼하는 과부의 설렘으로 무대에 서렵니다』 비장한 인사말과 함께 그가 지난 80년 공간사랑 소극장무대에서 선보인 첫번째 1인극 「쌍두아」는 글자그대로 머리가 둘,손은 넷에다 발이 둘인 전남 구례지방 풍장굿의 비비새놀이에 나오는 접광대를 본뜬 것으로 음악과 인형과 자신의 몸짓만으로 두동강난 조국의 분단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던 그가 이렇게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속되고 다난한 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고 그리고 인형속에 혼을 불어넣는 산무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는 「연희자가 무대에 나와 인형과 함께 춤춘 최초의 시도」로서 평론가 양혜숙은 「가면극이 인형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예술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다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지난 88년 초연이래 최근까지 공연되고 있는 「남도 들노래」도 「민족적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을 담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희생된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속박물관 5월 개관 「민속이란 고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라」는 강한 비판도 있었으나 그는 「민중의 습속이 시대따라 변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속극도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옛 것을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을 한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해 고향인 공주에다 오랜 숙원이던 민속박물관 건립을 시작,각종 탈전시에서 모든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민속과 관련된 자료전시관및 야외공연장을 오는 5월쯤 개관할 예정이다.가족은 노부모와 부부와 아들 하용씨(27·미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가 그를 돕고 있다. 호라티우스는 일찍이 「인간은 타인의 끄나풀에 조종당하는 인형 같이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인형은 「하나의 굳어버린 표정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웃고 있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있는」 아이러니와 시니시즘의 묘미를 그 때마다 능란하게 연출해낸다.오늘 그의 소원은 「타고난 광대의 운명」속에서 「피가 흐르고 살아숨쉬는 진짜 인형」이 되어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으로 핍진하게 이룩하려는 것이다. □연보 ▲1934년 충남 공주출생 ▲53년 서울휘문고졸업 ▲53∼56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58년 홍익대 신문학과졸업 ▲59년 남사당놀이패공연(남산) ▲60년 남사당놀이중 「덧뵈기(탈놀음)」공연(종로 YMCA강당) ▲64년 민속극회 남사당결성 ▲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 창설 ▲79년부터 극단 서낭당창단,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창작인형극 「홍동지의 나들이」「신경림의 농무」「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우리산 우리강」외 김명수춤판,강만홍 인도무용,이동안 전통무용,이매방 민속무용,김숙자 무속무용,우옥주 만구대탁굿등 공연 ▲80년 1인극 「쌍두아」로 무대데뷔(공간사랑소극장) ▲83년 우리문화연구소장,인형극 「만석중놀이」(문예회관소극장) ▲85년 「문」(산울림소극장) ▲86년 서강대·한양대강사 ▲90년 인도 국제인형극제에서 1인극 「남도 들노래」 참가 ▲91년 프랑스·말레이시아·일본민속극제 참가 ▲93년 「판문점 별신굿」 공연 ▲94년 제주 4·3항쟁추념 「남도 들노래」및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 「새야새야」(문예회관대극장)등 3백여회 공연 현재=우리문화연구소장,민학회회장 「남사당패연구」(74년)이후 「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전통무용용어의 연구」「마당굿 연희본 1·2」,평론집 「민족문화와 민중의식」「꼭둑각시놀음」등 20여권 서울시문화상(인문사회과학부문·79년)
  • 6·25때 생이별 부부 45년만에 재결합(조약돌)

    ○…6·25 때 헤어져 따로따로 월남했던 부부가 서로 다른 가정을 꾸며 살아오다 45년만에 재결합했다. 지난 연말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청룡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김용건씨(67)와 오용녀씨(68)는 16세와 17세 때인 지난 45년 결혼했으나 6·25를 만나 서로 엇갈려 월남,각각 재혼해 살아왔다.그러다 5년 전 생사를 모르던 처남이 TV에 출연한 것을 김씨가 우연히 보고 수소문 끝에 오씨가 처남과 함께 서울에서 사는 것을 확인. 이미 김씨는 6형제를,오씨는 2남1녀를 두고 있어 만나지 않았으나 두 사람 다 재혼한 배우자와 3∼4년 전 각각 사별하자 양측 자녀들이 적극 권유해 45년만인 작년 8월 극적으로 재회한후 신혼살림(?)을 시작. 주위에서는 『두 사람의 인연은 하늘이 점지해 준 것 같다』고 축복.
  • 이데올로기의 희생양 기구한 삶 오학증씨(압록강 2천리:21)

    ◎북한으로 피신… 강제송환돼 감옥생활 11년/79년 출옥후 개가한 아내 수소문해 재결합/독립군 출신 부친도 반동으로 몰려 개죽음 요령성 단동시 조선족소학교 아파트에서 신경질환으로 만년을 보내고 있는 오학증(64)선생은 기구한 운명을 산 사람이다.그 격변의 대륙에서 조선족 누구인들 정치이데올로기에 휘말려 모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만,그의 인생역정은 남달리 불행했다.그의 일생은 대륙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극의 드라마 그것이었다. 『제 아내와는 두 번을 장가 든 셈이디요.그래서리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고….이자 나같이 사는 사람들이 다시 없도록 평안한 세상이 돼야 합네다.지난일들을 생각하면 다가 악몽이야요』 한 아내에게 두 번을 장가갔다는 말이 의아스러웠다.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는데,자신이 반우파로 몰려 감옥살이 하는 동안 아내가 살길이 없어서 한족 홀아비한테 개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그가 1979년 1월 감옥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이미 남이 되어 있었다.개가한 아내가 사는 곳을 수소문해서 한족영감에게 애걸복걸했다.그렇게 찾아온 아내다.그는 우파누명이 벗겨져 본래의 자리인 소학교로 돌아와 정년을 넘기고 지금은 학교가 내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다시 살고 있다. 그는 요령성 환인현 사전자 태생이다.부친은 평북 구성 사람인 오성오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1930년대 독립군 해산과 더불어 관전현 보달원에서 교편을 잡았다.해방이 되자 부친은 교장 자격으로 손수 학교를 꾸리면서 일본 메이지대 출신 전봉천을 초빙해와 같이 일했다.그무렵 팔로군이 보달원에 들이닥쳤다.그리고 나서 이내 미국식 현대무장을 갖춘 국민당 군대가 밀고 들어왔다.부친이 교사로 초빙한 전봉천은 국민당 편에 서서 한국교민회를 조직했다. 『제 부친께서는 장래의 시국을 예견하신 것 같았습네다.국민당에 붙어서 보달원에 출장온 전봉천선생에게 이런 말을 했디요.이 사람아 자중하게.국민당이 기세당당하게 왔디만 조만간 팔로군이 또 올 것이라고….아니나 다를까 1947년이 되면서 국민당이 꺾이고서리 농촌 전체가 공산당 일색이 되고 토지개혁을 착수했디요.나도 당시 아동단에 참가하지 않았겠습네까.팔에 빨간천을 두르고 목창 개지고 보초도 서고…』 ○통화사범학교 진학 오씨네 일가의 비극은 이 때에 닥쳐왔다.공산당은 국민당과 가까운 사이였던 부친의 독립군 경력과 반동 전봉천과의 관계를 문제삼았던 것이다.『아무개가 반동이다.죽이는 것을 동의하는?』라고 물으면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슬 시퍼런 시대였다.부친은 공산당에 체포되어 몽둥이를 맞고 세상을 떴다.마을사람 김희묵은 빈농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었다.옷을 깨끗이 차려입고 나온 통에 그를 부농으로 착각한 공산당이 조리질을 돌려 죽여버렸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니 오학증선생의 어린시절은 불우할 수밖에 없었다.중학교 입학자격마저 잃었다.철저하게 계급을 따진 공산주의사회는 가갸 뒷다리도 모르는 빈농의 자식들 위주로 신입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그러니 학교 꼴이 말이 아니었다.공산당도 할 수 없이 중학교 시험제를 채택하게 되어 어린 오학증에게도 중학입학의 길이 열렸다.밭에서 가을일을 하다 학교로 달려가 시험을 치러 홍광중학에 들어갔다.한국전쟁이 터져 거의가 지원군으로 나갔지만 나이가 어려 면제를 받고 통화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사범학교 졸업이후 첫 부임지는 지금의 단동인 안동시 북광소학교.학교 당조직에서 자신이 중점 육성대상자가 될만큼 열심히 일했다.그러다가 1957년 반우파투쟁이 일어났다.교육정책을 바꾸어 한족과 조선족의 연합교육을 실시하는 바람에 교육의 질이 형편없게 떨어졌다.곧은 성질을 가진 오학증선생은 이를 시정해야 된다고 건의했다.그 건의가 화근이 되어 우파로 낙인찍힌 것은 물론 부친의 청산을 암암리에 보복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는 모략까지 따라 붙었다. ○당국에서 이혼 강요 그에게 내려진 일종의 형벌은 혹사를 통해 정신을 바로잡게 하는 이른바 노동개조.월급은 취소되고 하루 1원57전을 받는 건축공사장에 끌려다녔다.1957년 1월에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린 지 다섯달이 안되어서 일이다.비단공장에 들어가기로 되어있던 아내의 일자리도 취소되고 말았다.죽지못해 살기를 4년여 성상,1961년 우파 너울이 벗겨져 교사로 다시 복직되었다.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고 1966년 문화혁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그해가 중반에 접어든 6월22일 출근길에 자신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보았다.그러지 않아도 신경쇠약에 걸려있던 터라 병원진단서를 붙이고 학교를 쉬었다.그런 어느날 학교에 들어온 군대표로부터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음날 학교에 꼭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아무래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날 관전현으로 올라가 압록강을 건넜다.북한으로 탈출한 것이다. 그가 북한으로 도망친 것을 눈치챈 학교는 이를 당국에 고발했다.곧 북한당국에 연락되어 1주일간 신의주에서 구류를 살았다.그리고나서 중국으로 강제송환된 그는 15년형을 받았다. 『아내가 감옥으로 면회를 왔습데다.아들 둘 하고 세 돌이 난 딸애를 업고 왔디요.철딱서니없는 어린 딸이 제가 먹던 싸구려 과자를 쥐고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는데 고만 눈물이 쏟아집데다.두번째 면회때는 아내가 혼자와서 이혼을 제기하길래 거절했더니 대성통곡을 하고 애들의 앞날을 봐서리 이혼해달라는 것이었디요.그후에 감옥소 소장이 저를 대신해서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 강제 이혼하고 말았수다』 아내 김성란(61)씨도 평북 벽동 사람이다.시집을 가면 죽어도 그 집에서 귀신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터라 도리를 모를 까닭이 없었다.아이가 학교에 가면 새끼반동이라고 따돌리고 당국에서도 이혼을 강요해 별 도리가 없었다.막상 이혼을 하고 났더니 문화혁명 이후의 관행대로 산골로 내몰았다. 열세살과 일곱살짜리 아들.세살짜리 딸과 함께 내팽개쳐진 곳은 한족들만이 우글거리는 봉성현 백기공사산하 지리대대.살길이 아득했다. 그의 아내는 고생으로 살아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늙었다.남편옆에 앉아 훌쩍훌쩍 울기를 여러차례하고 나서 겨우 말문을 열었다.그 표정은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신경질환으로 고생 『제가 못된 여편네디요.아이들 하고 죽지 못해 한 일이디만….기래도 두 해를 버티다 한족 홀애비 백국영을 만나 재혼했습네다.저녁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한참씩 울다가는 한족 영감옆에 누어잤디요.그런데 11년만에 무죄석방된 저 양반이 그 산골을 찾아왔디 뭡네까.저는 간염에 걸려 다 죽어가는 터디였디요.저 양반이 하루를 살더라도 복혼하자고 그럽데다.저도 한 마음이었수다.한족 영감도 인생들이 가여웠던지 저를 놔 주었디요』 그들이 재결합한 지도 어언 19년이 되었다.이산부부의 후유증은 아물지 않아 자신은 신경질환을 앓고 큰아들은 뇌종양으로 병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대륙의 몇차례 큰 바람은 이들 가족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 「예수 사랑」 실천… 참인술 한평생/성탄절에 타계한 장기려 박사

    ◎차남과 맨손 월남… 옷두벌만 생겨도 남에게/내집 한칸없이 가난한 환자 치료에 온종성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인술을 펴며 살아온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성탄절인 25일 새벽 「사랑과 희생」이라는 값진 가르침을 성탄선물로 남기고 눈을 감아 세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고인은 80세가 넘어서도 하루 40여명에게 무료진료를 베푸는 등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그에게 있어 「사랑」과 「봉사」는 이같은 삶을 걷게 한 밑거름이었다. 지난 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청년시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꿈꿨다. 장박사는 대학졸업후 평양 기독병원에서 일하다 51년 1.4후퇴 때 부인 김봉숙씨와 다섯남매를 고향에 둔 채 둘째 아들 가용씨와 단 둘이서 월남했다. 곧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경과 찬송가책만을 달랑 들고 부산까지 내려온 그는 그해 7월 맨손으로 영도구에 「복음의원」이라는 「천막병원」을 차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었다.후에 외국인 선교사 말스베리의 도움으로 부산복음병원으로 확장한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68년 이 지역의 교회집사들과 함께 한국 의료보험조합의 효시인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다. 장박사의 평양시절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내다 부산 피난때 재회했다는 방귀자씨는 『피난 때 옷이 두벌만 생겨도 한벌은 남에게 줄 정도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또 동료 의사들은 『부산대 의대 교수시절 학비를 마련 못한 가난한 제자들에게 학비로 쓰라고 월급을 선뜻 내놓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추모했다. 그토록 남의 불행에만 민감하다 보니 월남후 한번도 자기집을 가져본 적이없었다. 평생 병원측이 마련해 준 사택에서 묵었으며 작고하기 전에도 부산복음병원의 후신인 고신의료원 건물 꼭대기층에 마련된 10여평 남짓한 허름한 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76년 이 병원 원장직에서 정년퇴직 한 뒤에도 그는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거제도로 건너가 섬주민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기도했다. 장박사의 이같은 봉사정신은 해외에도 알려져 79년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했다. 외롭게 사는 자신에게 주위에서 재혼을 권유할 때면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잊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재혼했다』고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기다렸다. 아들 가용씨는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10월 「주님을 섬기다간 사람」이라고 비문을 새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하고 『아버님의 비범한 삶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찰스/이혼해도 왕위계승 가능/성공회 성직자단

    ◎“재혼 않는다면 문제없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세자비와 이혼하더라도 무난히 영국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영국의 헌법 전문가들과 성공회 관계자들이 찰스 왕세자가 이혼후 왕위를 잇도록 하자고 합의를 본데 따른 것이다.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잇는데 있어서의 마지막 장애 요소는 지난 21일 그가 재혼하지 않겠다고 언명함으로써 사라졌다. 영국 성공회 성직자단도 지금까지 찰스의 재혼은 그가 성공회의 장을 겸하는 왕위를 계승하는데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온 것으로 보아 재혼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면 왕위 계승에 이의를 달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번 이혼 권고 결정에 앞서 캔터베리 대주교 및 존 메이저 총리와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여왕은 성공회의 장으로서 이혼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국가의 우두머리로서는 찰스가 왕위를 잇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셈이다.
  • 납북 고상문 교사 현지서 재혼/유엔통해 가족에 알려

    ◎정부 “송환요구 계속” 지난 79년4월1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납북된 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48)는 북한에서 재혼,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북한이 유엔을 통해 서울에 있는 고씨의 가족에게 통보했다.또 이에 따라 고씨의 부인·딸·부모 등 가족은 유엔을 통한 송환요청을 철회했다고 외무부가 12일 밝혔다. 유엔 인권센터를 통해 지난6월 고씨 가족에게 전달된 북측의 회신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고씨가 북한여자와 결혼,아들과 딸을 낳아 살고 있다는 내용의 자필진술과 사진 등 관련자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의 회신에 대해 유엔에 신빙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나 고씨의 가족은 이를 포기하기로 결정,유엔 인권센터는 고씨의 건을 종결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고씨의 가족이 진정을 하지 않은 것은 가족적인 차원에 국한된 것이며,정부는 고씨가 강제납북됐고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됐던 것이 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에 송환요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정부는 특히 북한이 유엔을 통해 고씨가족에게 전달한 회신이 검증할 수 없는 일방적인 자료인만큼,조작의 가능성이 커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 리즈 또 파경… 미인박명은 아니고(박갑천 칼럼)

    엘리자베스 테일러.특히 50대 후반이후 남성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름이다.백치미쪽이었다 할까.검은색 머리칼하며 눈망울이 동양쪽 어정잡이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던터.한세상을 울린 미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도 이젠 환갑을 넘겼다.한데 여덟번째(사람으로는 일곱번째)결혼도 깨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아벨리부인의 16회에 못미친다 해서 적은 횟수라 할수는 없다.그에게 미인박명이란 말을 갖다댄다면 동양적 눈길일 뿐이라고 코웃음쳐 버릴까.남의 인생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뜻있고 즐거운 삶이겠지.하지만 그를 짝사랑했던 사람들 마음에 찌무룩한 구석이 남는다는건 사실이다. 세상에는 천차만별의 삶이 있다.영국시인 에드먼드 스펜서같이 평생을 혼자 사는 사람도 적지않다.누군가 그에게 독신을 후회하진 않는가고 물어본다.『후회라뇨? 나와 결혼할 뻔했던 여성이 나와 결혼 안함으로해서 이세상 어디선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할때 행복해집니다』가 그의 대답.또 결혼해서도 백제사람 도미의 아내같이 임금님의 치근댐에까지 냉갈령부리는 일부종사가 있는가하면 그와는 정반대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예컨대 제정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가 그의 할머니 에카테리나 여황을 일러 『제관을 쓴 창부』라 했던 사례같은것.후자의 경우 이른바 「끼」라는 것도 있다 하겠으나 숙명적 요소도 없다고 할수는 없겠다.그렇다 할때 리즈는 과연 어떻게 얘기되어야 할것인지. 시대가 흐를수록 일부일처의 백년해로는 빛바랜 미덕으로 돼갈듯하다.지구촌의 흐름이 그렇고 우리도 그 흐름을 타고있다는 느낌은 늘어나고만 있는 이혼이 뒷받쳐주는것 아닌가.사람의 마음이란 대체로 미자하를 보는 위나라 임금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미자하가 아름다운 소년이었을 때는 몰래 임금의 수레를 타고 병든 어머니 문병간일이 효도로 보인다.그러나 아름다움이 가면서 주니났을때 지난날의 바로 그일은 발뒤꿈치 깎이는 형의 죄로 된다.세월따라 그렇게 달라지게 마련인 가치기준인데 그때마다 사람마음이 번드친다 할때 이혼­재혼은 되풀이 될밖에 없다.더구나 참는 미덕까지도 잃어가는 시속이아닌가. 이혼­재혼이 일상화한다 할때의 사회문제는 「사생아」.시끄러워질게 한두가지가 아니다.그땐 또다른 모권사회로 되어야 할것인지.다시 리즈얘기로 돌아오면 글쎄,그는 새로운 남편을 또 찾을까.어느 점잖은 자리에서 내기를 걸던데.
  • 일본/근친난자 이용 출산 “물의”/딸·여동생서 제공받아 체외수정

    ◎“비윤리적” “출산권 인정” 논란일듯 자신의 딸등 근친의 난자를 제공받아 아이를 출산하려는 부부가 최근 일본에서 생기고 있다. 11일 아사히(조일)신문이 「일본 대리모 출산 정보센터」 집계를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친딸이나 여동생 등으로부터 난자를 받아 미국에서 체외수정의 방법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고 계획하고 있는 부부가 현재 상담중인 사람을 포함해 최소한 10쌍에 이르고 있다는 것. 이 사례 가운데 여동생의 난자를 받아 체외수정을 한 20대여성의 경우 조만간 출산할 예정이며 전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의 난자를 재혼한 남편 정자로 체외수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출산시도는 그러나 태어난 아이가 결과적으로 자식이 아니라 「손자」나 「조카」가 된다는 점에서 사회·윤리적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특히 이러한 근친출산을 둘러싸고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너무 지나치다』는 지적과 『여성의 출산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 논란이 예상되고 있는데 일본 산부인과학회는 현재 부부에 한해서만 체외수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서울시민 61% “서울이 싫다”/시,남녀 750명 대상 의식조사

    ◎“동네환경 살만하다” 35%뿐/여성·고학력자 일수록 “만족” 서울에 사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서울시민은 10명 중 4명 정도에 불과하다. 23일 서울시가 서울에 사는 남녀 7백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민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39.4%에 불과한 반면 60.6%가 불만을 갖고 있었다. 서울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남자보다 여자가,학력이 높고 연령이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높았다. 불만족스럽다면 서울을 떠나겠느냐는 질문에 39.5%가 떠날 의사를 밝혔으나 36.8%는 그래도 떠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현재 사는 동네 환경에 대해서는 34.6%가 만족스러워했을 뿐 41.9%가 그저그렇고,23.5%는 좋지않다고 응답했다. 또 서울시민의 46.9%가 지난 해와 비교할 때 올해 가정살림 꾸리기가 어렵다고 응답했다.어렵지 않다는 사람은 8.9%에 불과했다. 생활비 중에서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부분(중복응답)은 사교육비를 포함한 교육비가 58.5%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세금(38.8%),식비(23.3%),경조사비(19.5%),상환금·이자불입금(18.7%),병원진료비(12.4%),의복비(12.1%),오락·레저비(10.4%)순이었다. 한편 이혼한 사람들이 재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66.8%가 매우 찬성하거나 대체로 찬성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혼의 조건으로는 응답자의 67.8%가 사랑을 압도적으로 내세웠으며 성격(46.8%),건강(33%),능력(21.2%),장래성(16.2%) 등 순으로 꼽았다.
  • 귀신설화연구/안병국 지음(화제의 책)

    ◎한국인 정서속에 살아있는 귀신 본질 해석 귀신이 실제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지만 우리 정서 깊숙이 귀신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이 책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귀신설화를 비교,연구함으로써 한국인의 정서 속에 살아 있는 귀신의 본질을 해석한 연구서다. 지은이는 귀신중에서도 원한을 품은 귀신(원귀)을 기본으로 보고 이를 다섯가지로 나눈다.곧 누명쓴 귀신,정욕을 풀지 못한 귀신,그리움이 원망으로 남은 귀신,유골이 땅에 드러난 귀신,재혼한 배우자를 원망·질투하는 귀신이다. 이같은 귀신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까닭을 지은이는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행위」로 풀이한다.착한 사람에겐 복이 돌아오고,나쁜 사람은 벌받아야 제대로 된 사회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억울하게 죽는 사람(귀신)이 생겨난다.따라서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귀신을 빚게 되고,그 귀신 이야기를 통해 울분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귀신 이야기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쏟는 감정의 투시 또는 전이이거나,살아 있는 사람의 의식을 표현하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규장각 1만2천원.
  • “중년 미망인의 고독·사랑 표현”

    ◎원로배우 백성희씨,무대인생 50년 기념 「혼자사는 세 여자」 공연/김금지·윤소정·이호재씨 등 후배연기자 대거 출연 인생황혼이 결코 연기의 석양길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연기자,게걸스런 세월의 주름살을 무대위에서만큼은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는 연기자가 있다면…그 앞자리는 단연 원로 연극배우 백성희씨(본명 이어순이·70)의 몫이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제게 붙여진 「무대지기」란 표현은 더이상 쓰지 말아 주세요.왠지 고독하고 무기력한 느낌을 주거던요.지난 연기생활 반세기는 보다 나은 연기를 위한 기초다지기의 세월이었을뿐,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 연극계의 대모로 불리는 백성희씨의 연극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무대가 후배연극인들의 주선으로 8월 1∼21일(평일 하오7시30분,토요일 하오4시30분·7시30분,일요일 하오7시30분)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린다.지난 43년 데뷔한 그의 실제 「연극나이」는 52년이지만 2년이 지난 올해 비로소 후배들의 정성이 모아진 것이다. 기념공연 추진위원장인 최불암씨(현대예술극장대표)를 주축으로 한국연극협회,국립극단,한국배우협회등 범 연극계가 뜻을 모아 올리는 이번 무대의 공연작품은 「혼자 사는 세 여자」(원제 The Cemetery Club).러시아계 미국작가 이반 멘첼 원작을 정일성씨가 연출,국내 초연하는 이 작품은 남편을 잃은 세명의 중년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겪게되는 갈등을 통해 새로운 자아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성인연극」이다. 『요즘 대학로 연극들이 눈요기 위주의 감각지상주의에만 빠져있는 것같아 마음 아픕니다.문예회관 대극장 공연 정도를 빼면 모두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수준이 고작이에요.진정 어른스런 연극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번 공연이 번역극이어서 좀 아쉽다는 그는 다행히 이 작품이 동양적 정서를 바탕으로 중년여성의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만큼 차분히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백씨의 극중 역할은 맏언니와 같은 포용력과 인생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춘 아이다부인.그는 다소 허영기있고 남자에 적극적인 루실(김금지),재혼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도리스(윤소정)와 짝을 이뤄 중년 미망인의 숙명적인 고독과 사랑의 삼중주를 펼친다.중견배우 이호재는 우리 시대의 페미니스트인 샘으로,국립극단의 손봉숙은 자기중심적인 현실주의자 밀드레드로 각각 출연한다. 백씨는 지난 43년 극단 현대극장의 「봉선화」(함세덕 작·유치진 연출)로 데뷔한 이래 신협과 국립극단을 거치며 「뇌우」 「산불」 「파우스트」등 4백여편의 작품에 출연,해방후 한국 신극사의 기본줄기를 이어온 정통 연극인.국립극단의 단장을 두번씩이나 역임했지만 「행정」엔 까막눈이라는 그는 『무대배우의 자리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는 말로 순수예술인의 자세를 강조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낭랑하고 힘찬 철성 때문에 극중 역할에 따른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저의 연기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5시간 이상 피나는 연습에 지난주엔 졸도까지한 이 노배우는 연극이외의 생활이 없음을 자탄하지만 그것은 이내 자부심에 압도당한다.
  • 비정한 생모에 친권 박탈/서울가정법원 판결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이태운 부장판사)는 25일 『부모의 친권은 미성년자인 자녀들을 대신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자 자녀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도록 행사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도 지닌다』고 지적,『생모라 하더라도 자녀들의 행복을 해칠 때는 친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남편과 헤어져 자식들을 버리고 나돌다 남편이 숨진 뒤 자식들에게 돌아갈 재산을 탐내 친권을 행사하려던 생모는 친권을 잃고 남은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기르던 계모가 자식들을 계속 보살필 수 있게 됐다. 사건은 춤바람이 나 가정을 팽개친 전처 K씨(40)와 이혼한 뒤 숨진 Y씨 집 이야기.이혼후 Y씨는 사업에 쫓기고 자식들은 겨우 10살 안팎이어서 양육문제가 고민거리였다. 친구의 소개로 J씨(42)와 사귀기도 했지만 계모를 들이면 아이들을 박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고 이미 실패한 결혼생활의 기억도 자꾸 되살아나 재혼을 망설였다. Y씨는 그러나 2년뒤 J씨와 기꺼이 결혼했다.J씨가 초혼에다 자식도 없었지만 『아이들을 친자식으로 여기겠다』면서 불임수술까지 자청했기 때문이다. 자식들도 바깥으로만 나돌던 생모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한 모정을 듬뿍 받아 계모의 「따뜻한 품」을 좋아했다.「계모는 못되게 마련」이라는 통속적 우려는 말끔히 씻기고 사업도 날로 번창해 가정은 화목했다. 그러나 92년 Y씨가 고혈압으로 숨지면서 가정의 행복이 흔들렸다.소식을 끊고 있던 K씨가 갑자기 나타나 J씨를 상대로 『유산 가운데 자식들의 지분을 떼달라』면서 자식들 이름으로 법원에 소송을 냈기 때문. K씨는 자식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이혼을 했더라도 생모가 재산관리·양육 등에 대해 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자식들은 『생모보다 계모와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극구 반대했지만 소송을 막을 수 없었다. 법에 인척으로만 규정된 계모도 K씨의 친권행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꼼짝없이 아이들의 재산을 넘겨줘야 할 위기에 놓인 J씨는 궁리끝에 K씨의 친권을 박탈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비정한 생모보다는 다정다감한 계모를 따른 자식들도 기꺼이 동의했다. 결국 K씨의 「낳은 정」보다 J씨의 「기른 정」이 더 낫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가려졌다.
  • 노인의 사랑(외언내언)

    정년퇴직으로 일정한 연금을 타게 된 남자노인이 재혼신랑감으로는 인기가 아주 높다고 한다.다른 재산은 욕심내지 않을 터이니 연금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입적만 시켜준다면 결혼하겠다는 꽤 젊은 색시감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대개의 노인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말이 맞다고들 말한다.특히 노환으로 고생하는 노인에게는 간병을 하는 사람이 절실한데 그런 사람으로는 「아내」라는 이름의 동거자보다 더 나은 간병역이 없는 것이다. 젊은 간병인과 병상에서 사랑을 나눈 노인이 그와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가자 자손들이 그 혼인을 무효화하려다가 이기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비슷한 사건은 종종 있다.그렇게 지위를 얻은 부인이 연금을 신청하여 조사대상이 되었지만 결국 연금지급을 받게 된 경우도 있다. 혼인관계란 육신으로 맺어지는 어떤 일이 가능해야 하는데 노인의 생전 건강으로 보아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혼인은 무효라고 자손들은 생각한 모양이다.그러나 어떤 종교에서는 「동정혼」을 가장 숭고한 혼인의 상태로 삼기도 한다.본인들이 혼인했노라고 말하면 그것은 혼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경은 7순이 넘은 나이에 자기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비서를 동반하고 베이징에 갔을 때 보도진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너무 터뜨린다고 단장을 휘둘러 국제적인 화제를 부른 적이 있다.자식들은 부모의 재산은 당연히 자기 몫으로 생각하고,노인 아버지가 젊은 여인과 혼인관계를 맺으면 재산을 노린 젊은 여인의 둔갑술쯤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노인이 사랑에 대해 갖는 집착은 매우 집요하다는 것은 많이 입증되고 있다.하다못해 간병만이라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노인의 마지막 사랑으로 재산이 누수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자식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같다.
  • 주택은 중도금 대출/5백만원 상향조정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는 31일 주택부금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주택은행의 중도금 대출비율을 신청금액의 70%에서 90%로 올려 아파트 등 주택을 분양받을 때 자금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는 최고한도인 2천5백만원의 대출을 신청한 주택부금가입자는 지금까지의 1천7백50만원보다 5백만원이 더 많은 2천2백50만원을 중도금으로 융자받을 수 있게 된다. 행정쇄신위는 이와함께 의료보험제도도 개선, 직장인 또는 공무원및 사립학교 교직원과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자녀들도 새 아버지가 가입하고 있는 의료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 윤화로 홀아비된 재두루미/일단 자연농원 데려와 「야생훈련」

    ◎재혼시켜 재방사 계획/새짝은 전처와 성격 비슷한 「재숙」 결정 인공부화로 태어난 천연기념물 재두루미가 자연의 품에 안긴지 6일만에 짝을 잃고 사람 곁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20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비무장지대 안 샘통마을에 방사됐던 재두루미 수컷 「재철」과 암컷 「재상」부부.무척 금실이 좋았던 이 두루미 부부는 암컷 「재상」이 마을주민의 트럭에 치어 숨지는 바람에 방사된지 사흘만에 사별하는 불행을 당했다. 이 두루미 부부를 인공부화시켜 자연에 돌려보냈던 용인자연농원은 사고후 철원평야에 다른 암컷을 방사해 「재철」과 짝을 짓게하는 계획을 검토해왔다.그러나 재두루미의 습성상 야생에서는 다른 암컷과 짝을 지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한국조류보호협회의 의견에 따라 「재철」을 26일 하오 자연농원으로 다시 데려왔다. 「재철」은 이곳에서 「재상」과 나이·성격이 비슷한 3년생 재두루미 「재숙」을 새로운 짝으로 맞게 된다. 「재철」은 「재숙」과 함께 차가 달려와도 겁없이 버티다 치어죽는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야생적응훈련도 더욱 철저히 받을 계획이다.자연농원은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훈련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조류보호협회와 외국의 전문단체들로부터 자문도 구할 방침이다. 「재철」과 새짝 「재숙」의 적응훈련은 7∼8개월이 걸릴 예정이다.
  • 극장가/뉴요커 관심 고조… 입장권“불티”(브로드웨이“새바람”:6)

    ◎오페라 나비부인/뮤지컬 미스사이공/3월무대 대결/미스 사이공/무대장치 뛰어난 뮤지컬 4대작… 5년째 관객 밀물/나비부인/메트로폴리탄 단골 레퍼토리… 40년만에 재창작 올봄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한바탕 뮤지컬대 오페라의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91년 4월 공연을 시작,공전의 히트를 기록해오고 있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과 오는 3월말부터 링컨센터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새롭게 선보일 「나비부인」(MadamaButterfly)이 그것이다. 음악위주의 오페라와 이에 반기를 들고 음악과 연극이 혼연일체가 된 총체극을 표방하고 나선 뮤지컬은 원래 음악극에 뿌리를 같이 하고 있지만 브로드웨이에 공존하면서도 지리적으로 엄연히 구분돼 있는 만큼이나 서로 다른 영역으로 발전해왔다. ○“침체” 오페라 활력 기회 브로드웨이의 공연장은 주로 뮤지컬극장들이 몰려 있는 44∼53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오프브로드웨이 혹은 오프오프브로드웨이라고 불리는 연극 위주의 소극장들이 집중된 반면 그 북쪽으로는 카네기홀과 링컨센터등 주로오페라,발레등 소위 순수창작예술 공연장들로 크게 3분돼 있어 각기 독자적인 위치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뮤지컬의 흥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오페라의 자존심을 걸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MET)가 「나비부인」을 40년만에 재창작,새로운 작품으로 내놓을 계획이어서 미군병사와 동양여인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미스 사이공」과의 비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브로드웨이가 53스트리트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브로드웨이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미스 사이공」은 월남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 75년 4월 사이공을 무대로 시작된다.시골소녀 킴은 사이공 함락 3주전,사이공의 한 술집으로 팔려오게 되고 첫손님인 미대사관 경비해병인 크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며칠후 미군은 모두 철수하고 사이공시는 호치민시로 이름이 바뀌며 공산화가 시작된다.고향으로 돌아간 후 크리스의 사내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고 있던 킴에게 어느날 공산당 간부가 되어 돌아온 같은 마을의 청년이 구혼해온다.킴은 그의집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다 마침내는 그를 살해하고 방콕으로 도망친다. 미국으로 돌아온 크리스는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꾸려간다.3년후 그는 미국내 베트남의 미국인사생아돕기 단체로부터 킴이 도망쳐 나와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새부인과 함께 아들을 데리러 방콕으로 간다.킴은 꿈에도 그리던 크리스가 자신을 찾아 온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지만 막상 부인과 함께 나타난 그가 아들을 데리러 왔음을 알게 되자 실의에 빠진다.킴은 아들을 크리스에게 넘겨준 뒤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지난 87년 영국에서 감독 카메론 매킨토시가 작곡가 클라우드 미첼 쇤베르크와 함께 만들어 대히트를 기록한후 91년 브로드웨이에서 미국판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캐츠」,「레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등과 함께 브로드웨이를 장악하고 있는 뮤지컬 4대작으로 알려져 있다. ○극중무대 인상적 처리 이 작품의 내용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극중 여러대목에서의 인상적인 무대처리는 메시지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즉 베트남 공산화과정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대목에서는 무대뒤에 거대한 호지명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아래 깃발과 총을 든 인민과 군인들의 행렬등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사이공 최후의날 미대사관의 긴박함과 철조망을 사이에 둔 피란민들과 미군병사들의 운명의 갈림등이 잘 나타나 있다.특히 미군병사들을 수송하기 위해 무대에 내려앉아 굉음을 쏟아내며 비상하는 헬리콥터의 모습은 무대장치 변화의 극치를 이룬다. 일부종사의 동양여인들의 남성관과 자식의 인생을 위해 희생하는 동양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이 뮤지컬은 월남전으로 자존심과 목숨과 물질을 한꺼번에 잃어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는 미국인들에게 도덕적 상실감마저 인식시켜 주고 인간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영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훨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많은 진기록을 낳았다.미국에서의 공연을 위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배우모집에는 10여명 선발에 2천여명이 몰려들 정도였고 미국 초연 때 주인공인 킴역과엔지니어 역에 영국배우 리 살롱가와 조나단 프라이스가 캐스팅되자 미국배우협회가 보이콧하고 나서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또 초연을 앞두고 3천6백만달러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최고의 예매액수를 기록했으며 메저니석(2층 앞부분 가운데 몇줄) 입장권은 1백달러로 최초로 뮤지컬 입장료 1백달러 시대를 열기도 했다.현재 최고좌석이 2백달러인 오페라에 비하면 그래도 싸다. 한편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추앙받는 푸치니의 작품인 「나비부인」은 1907년 초연 이후 MET의 고정 레퍼토리가 돼왔다.존 루터 롱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19세기말 일본의 나가사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해군사관 핑커턴이 몰락가문 출신 15세 기생 초초상(나비아가씨)과 결혼하면서 시작된다.얼마후 핑커턴은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그가 꼭 돌아올 것을 믿는 나비부인은 그의 아들을 키우며 돈많은 야마도리 공작과의 재혼 권유도 뿌리친다.3년이 흐른 뒤 핑커턴이 부인을 데리고 나비부인 앞에 나타난다.나비부인은 아이를 부인에게 넘겨주고 전래의 보도로 자결한다. ○무려 770여회 공연 「나비부인」은 「미스 사이공」의 스토리 전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또 88년 브로드웨이 유진 오닐극장에서 7백70여회 공연돼 호평을 받은 연극 「마담 버터플라이」의 구성에도 힌트를 제공했다.데이빗 헨리 황의 작품인 이 연극은 60년대 중국주재 프랑스 외교관 갈리마르가 북경의 오페라가수인 송 릴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인데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여성에 대한 남성의 선입관 등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이 「나비부인」을 토대로한 뮤지컬과 연극등이 히트를 친데 힘입어 MET측도 지난해부터 오페라 「나비부인」의 전면적인 재창작을 시도해왔다.1907년 첫제작 이래 지난 22년과 58년에 대대적인 개작을 거친 뒤 최근 37년동안 그대로 공연돼 왔으며 이번이 네번째 창작이 된다. 지난 2년동안 이번 창작을 진두지휘해온 지안카를로 모나코 감독은 『이번 새창작의 모토는 오페라를 마음속의 필름으로 간주하고 영상화된 리얼리즘을 추구하자는 것』이라고설명하고 『출연진 교체는 물론 전체적인 무대배경부터 출연자들의 의상까지 새로 장만,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새로운 맛을 느낄수 있도록 제작될것』이라고 밝혔다.오는 3월28일부터 8회 공연.지휘는 33세의 젊은 지휘자 대니얼 가티,나비부인역은 소프라노 캐서린 말피타노,핑커턴역은 리처드 리치등이 맡는다. 한편 「미스 사이공」측도 올 공연진의 보강을 위해 지난해 주인공 킴역을 새로 선발하는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특히 이번 선발에서 3백대1의 관문을 뚫고 한국인 이소정양(22·하와이 브리감영대)이 뽑혀 뮤지컬과 오페라의 한판 대결이 벌어질 3월무대의 기대를 크게하고 있다.
  • 「말미잘」로 15년만에 연출 복귀 유현목감독(인터뷰)

    ◎“서정 넘치는 담백한 영화 추구”/한국적 리얼리즘으로 섬소년 성장과정 묘사 지난 80년「사람의 아들」을 끝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던 유현목(70)감독이 15년만에 새영화「말미잘」로 컴백,살아있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선보인다. 3월 초 개봉예정인 「말미잘」은 호기심많은 아홉살 섬소년이 엄마의 재혼을 통해 성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 『오랜 영화생활 탓인지 탄탄한 극적 구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는 「드라마주의」에 염증을 갖게 됐습니다.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사소한 인생삽화들을 스케치하듯 그려 전체적으로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마치 새로 데뷔하는 기분이라는 유감독은 영화의 주관객층이 신세대인만큼 될 수 있는대로 젊은 연출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리얼리즘과 전위미학을 실험하는가 하면 인간의 실존문제에 몰두하는 등 그동안 중후한 작품세계를 보여온 유감독에게 「가벼운 재미」를 겨냥한 이 영화는 대단한 「파격」인 셈이다.우리 영화계에서「유현목」하면 곧 「재미없는 영화」를 떠올릴만큼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전 어릴적부터 고독을 좋아했던 것같아요.도스토예프스키에 심취한 나머지 어둡고 스산한 「슬라브적 고독」에 빠져 젊은 나날을 보내곤 했으니까요.그래서인지 감각적인 멜로영화엔 그다지 재능이 없고 특히 여성취향의 묘사에 서툴러요.제 작품엔 사랑이야기가 별로 없잖습니까』 해방후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영화작가로 꼽히는 유감독은 지난 55년 감독에 입문한 이래 「오발탄」「잉여인간」「순교자」「장마」등 40여편의 화제작을 연출한 영화계의 원로.올해 안으로 영화인생 반세기를 정리하는 고희기념 논문집도 낼 예정이다.
  • 다이애나/“찰스재혼 못한다”/이혼한 카밀라와 결합설에 “발끈”

    ◎“두아들과 주말 보내지 말라” 엄포/찰스는 주위계승 위해 “생각 없다” 영국의 찰스 세자와 그의 연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결혼 가능성에 대해 다이애나 세자빈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찰스(46)와 그보다 한살 연상으로 최근 남편과의 이혼을 발표한 카밀라가 요즘 빈번하게 만나는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자 다이애나(33)는 카밀라가 절대로 자신의 두 아들의 계모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신문 투데이는 『다이애나는 이미 윌리엄(12)과 해리왕자(10)가 찰스,카밀라와 함께 주말을 보내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다이애나의 한 친구는 찰스와 카밀라가 왕자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 다이애나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찰스와 지난 25년동안 3번의 정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카밀라를 내내 미워해온 다이애나는 찰스와 카밀라의 우정이 지속되는 데는 참기로 했지만 카밀라가 왕실의 안방을 차지,두 아들의 어머니 노릇까지 한다는 데 대해서는 격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반응이라고 다이애나의 친구들은 전하고 있다. 일부 왕실전문가들은 찰스왕세자(46)가 카밀라와 재혼하려는 시도는 천년동안 지속돼온 왕조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만약 엘리자베드 여왕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면 영국은 찰스왕과 별거중인 다이애나왕후(33)를 갖게 되는 역사상 좀처럼 보기힘든 상황이 불가피해 질 것이다.왕궁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왕과 왕후가 애정문제로 불화를 빚을 것이라는 전망은 카밀라 왕후 또는 왕후라는 칭호가 없는 찰스의 아내 카밀라를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국민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쳐질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들은 영국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갈등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헌법은 관습이나 전통에 기초를 둔 불문법이지만 영국 국교회의 독립 이후 군주가 가톨릭 교도와 결혼하는 것만은 절대 금하고 있다.이것만 어기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여론의 강력한 반대가 없는 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일생동안 왕위계승자로서의 수업을 받았기에 문제의 핵심을 누구보다잘 알고 있는 찰스는 어떠한 것도 자신의 왕위계승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카밀라와 재혼할 계획이 없다』고 절친한 친구들에게 말한 것으로 신문 선이 보도했다.
  • 미 새 하원의장 깅그리치/52세 뉴트의 인생 이력서

    ◎고교때 꿈 이뤄냈다/의부밑에서 성장… 유아기 클린턴과 흡사/투병 아내와 이혼… 교수 출신 보수주의자 제1백4대 미의회가 개원한 4일(한국시간 5일)은 뉴트 깅그리치의 날이었다.40년만에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이 그를 하원의장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이날 낮 12시 기도로 시작된 개원식이전부터 미국의 모든 매체는 깅그리치의 인터뷰를 생중계했고 그의 취임사는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방불케할 정도로 국정의 대강을 제시했다. 올해 52세인 깅그리치는 미국동남부 조지아출신의 9선의원으로 어릴때부터 대통령보다 권력의 원천인 하원의장을 꿈꾸어왔다. 뉴트는 2차 대전때인 1943년 6월17일 펜실베이니아주의 해리스버그인근의 마을에서 아버지 뉴턴 맥퍼슨과 어머니 캐슬린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허쉬 초코릿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긴했지만 술고래에다 손찌검까지 잦아 뉴트가 3살 되던해 이혼을 했다.어머니 캐슬린은 해군중령인 로버트 깅그리치와 재혼했고 뉴트는 어머니를 따라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자신의 성도 생부의 성이아니라 양아버지아래 입적이 되어 깅그리치로 되었다. 뉴트의 이러한 유아기의 환경은 클린턴대통령과도 흡사하다.클린턴대통령은 생부가 결혼 3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숨져 유복자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의 성을 따라 클린턴이 된것이다. 뉴트가 컬럼버스의 베이커고교를 다닐때 그는 5년 연상의 여인인 기하선생님을 좋아했다.그가 조지아주의 에모리대학을 진학했을때인 19살 되던 해 이 여선생인 재키 배틀리와 결혼을 했다.뉴트의 어린 시절을 군인의 절도로 엄하게 키워온 양아버지는 그로부터 연상의 연인과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 결혼을 만류했으며 끝까지 결혼을 하겠다면 결혼식에 가족 어느누구도 참석하지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그러나 결혼은 이뤄졌고 뉴트부부는 4년사이에 두딸을 낳았다. 뉴트는 에모리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뒤 다시 툴레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0년에는 웨스트 조지아대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봉직했다.고교·대학시절부터 정치에로의 꿈을 키워오던 그는 두번에 걸쳐 근소한표차로 낙방의 고배를 마셔오다가 78년 조지아주 제6선거구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처음으로 워싱턴정가에 진출할 수 있었다. 첫 임기가 끝날 무렵이던 81년 당시 암에 걸려 투병중이던 재키와 이혼소송끝에 헤어졌다.5년이나 나이많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이혼을 하게되었지만 암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던 부인에게 이혼소송을 한것은 그의 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는 곧바로 지금의 마리아느 긴터여인과 재혼했다. 달변가이자 다혈질에다 논쟁을 불러일으킬수있는 독설과 주장을 서슴지않아 중후한 정치지도자로서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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