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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기의 연인”… 미 전역이 애도

    ◎53년 12살 연상 케네디와 결혼… 68년 재혼/4개월째 암투병에 3번째 연인도 임종지텨 고 존 F케네디 전 미대통령의 미망인으로 19일 하오64세를 일기로 숨진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여사는 숱한 화제속에서도 미국인들이 사랑을 받던 「세기의 연인」이었다. 지난 1월 임파선 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해오던 그녀는 지난 16일 병세가 돌이킬 수 없게 되자 자택으로 퇴원,딸 케롤라인과 아들 존F케네디 2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오랜 친구이며 세번째 결혼설이 돌았던 보석상 모리스 템펠스먼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그녀의 대변인 낸시 터커먼이 밝혔다. 「재키」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보스턴의 케네디도서관에 즉각 조기가 게양되는 등 미전역이 애도에 들어갔다.클린턴대통령은 『그녀는 전세계와 모든 미국인에게 용기와 위엄의 모범』이었으며 『그 시대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지성과 우아함,세련미로 미국인을 사로잡았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뉴 프런티어정책의 기수 케네디 전 미대통령의 미망인으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재혼등 숱한 화제를 뿌렸던 재클린여사는 말년에는 뉴욕에서 출판사 편집일을 하며 철저한 은둔생활을 해왔다. 1929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조지워싱턴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지의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녀는 53년 당시 메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던 케네디와 결혼,세계의 주목을 받았다.63년11월22일 댈라스에서 케네디가 암살당할때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비극의 순간을 함께 했다. 대통령미망인으로 미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던 그녀는 68년 그리스의 거부 오나시스와 갑작스레 재혼,미국의 한 신문이 헤드라인에서 「재키,당신이 어떻게?」라고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등 비난을 받기도 했다. 75년 오나시스와 사별한뒤 2천만달러(약1백80억원)의 유산을 상속한 그녀는 최근에는 자신의 재정고문으로 재산관리를 맡았던 뉴욕의 보석상 모리스 템플스먼과 가까이 지내왔다. 타고난 미모에 밝은 성격으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였지만 『의사로부터 암선고를 받은 날은 댈라스에서 남편이 암살된 이후 최악의 날이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박 목사가 탁씨 살해 사주”/검찰 추정

    ◎2중결혼 등 사생활폭로 겁내/“사탄 그냥 두다니…” 임홍천 부추겨/미 체류 박씨 조속송환 추진 검찰은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살해사건과 관련,대성교회 설립자 박윤식목사(66·미국 체류중)가 구속된 임홍천씨(26)에게 범행을 사주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검 형사3부 김규헌검사는 18일 『박목사가 30여년간 본명과 가명으로 이중호적을 유지,전처 소생의 딸도 감추어두고 있었으며 경력도 대부분 허위임이 드러났다』면서 『지난 1월 숨진 탁씨가 이같은 사실을 알고 폭로하려하자 자신의 입지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박목사가 임씨를 사주,탁씨를 제거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목사의 전처인 김모씨(64)의 딸 박모씨(46)가 지난해 5월 호적조작및 이중결혼등 박목사의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박목사를 상대로 친생자관계 확인소송을 내고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50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2월22일 딸 박씨가 박목사의 측근인 신귀환장로에게 박목사의 살해교사 여부를 추궁하자 박목사가 신장로를 통해 딸 박씨의 입막음 용도로 3천만원을 건네준 사실도 밝혀졌다. 박목사는 북한에서 월남한뒤 김씨와 결혼,딸을 낳자 54년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호적을 만들어 입적시켰다. 그뒤 기독교에 입신,목회자로 나선 박목사는 이들 모녀를 버리고 다른 여성과 재혼하면서 기왕의 호적은 그대로 두고 「박윤식」이라는 본명으로 60년 새호적을 만들어 30여년동안 이중호적자로 생활해왔다. 박목사의 딸 박씨는 당초 1백억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앞서 박목사는 2월5일 대성교회 목사·장로등 1백여명을 모아놓고 자신의 사생활을 고백한 뒤 다음날 임씨에게 『눈에 보이는 사탄을 두고도 가만히 있느냐』는 등의 말로 범행을 간접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임씨가 아직 진술을 번복하고 있지는 않으나 지금까지 드러난 보강증거만으로도 박목사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보고 주미 한국대사관및 주한 미대사관과 협조,조속한 시일안에 박목사를 송환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92년 5만7천쌍 이혼… 20년전의 4.7배

    ◎세계가정의 날 맞아 알아본 국내현황/15% 1년만에 헤어져… 재혼율 8.9%/평균가족수 3.7명… 34%가 아파트 희망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전통적인 결혼관과 가족형태가 해체되면서 우리나라 부부들의 이혼율도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이혼하기까지의 평균 동거기간도 다른 나라들보다 짧다.빨리 끓고,빨리 식는 「냄비 현상」이 결혼생활에서도 나타나는 셈이다. 15일은 유엔(국제연합)이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세계 가정의 날」.통계청이 이날에 맞춰 발표한 「우리나라의 가정 현황」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이혼하는 부부는 72년 1만2천쌍에서 92년에는 5만7천쌍으로 4.7배가 됐다.평균 21쌍의 부부가 탄생할 때 다른 쪽에서 1쌍의 파경부부가 생겼으나,요즘은 7쌍 대 1쌍으로 좁혀졌다. 1천명을 기준으로 한 이혼율도 0.37에서 1.31%로 높아졌다.아직은 미국 4.73%,영국 2.28%,프랑스 1.67% 일본 1.37%보다 낮다.그러나 전통적 윤리관의 쇠퇴와 핵가족화의 가속화 등으로 조만간 선진국 수준에 접근할 전망이다. 이혼부부의 평균 동거기간은 91년 8.4년으로 미국 9.1년(88년),일본 10.8년(91년),영국 11.6년(90년),프랑스 13.4년(88년),네덜란드 11.1년(90년)보다 훨씬 짧다.「냄비 사랑」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이혼까지의 동거기간(91년)을 보면 결혼 4년까지가 36.4%로 가장 많고 5∼9년 27.7%,10∼14년,20.2%,15년 이상 15.7%의 순이다.1년만에 갈라선 부부도 15%였고 20년을 넘게 살다 이혼한 부부도 6.3%나 된다.특히 10년이 넘은 부부의 이혼이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혼이 늘어나자 재혼 비율도 72년 5.9%에서 91년에는 8.9%로 높아졌다.이 중 양쪽 모두 재혼도 2.4%에서 3.7%로 늘었다.서구의 결혼 풍속을 닮아가는 것이다.72년에 남 26.7세,여 22.6세이던 초혼 연령도 91년에는 28.1세와 24.9세로 높아졌다. 가임 연령층(15∼49세)인 기혼 부인의 평균 출생아 수는 70년 3.7명에서 90년 2.1명으로,가구당 평균 가족수도 75년 5명에서 90년 3.7명으로 각각 줄었다.가족 형태가 전통적인 대가족제가 무너지고 소가족,핵가족화한 것이다. 20년 동안의 가구 증가율(98.9%)이 인구증가율(38%)을 훨씬 웃도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혼자 사는 가구도 85년 66만1천에서 90년 1백2만2천으로 55%가 늘어,개인주의화 추세를 반영했다.그만큼 주택난도 가중됐다. 가족관의 변모와 사회의 개인주의화 경향은 선호하는 주택유형의 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79년 6.5%에 불과하던 아파트는 92년 34.2%로 거의 6배가 된 반면,단독주택은 92.5%에서 63.3%로 줄었다. 자녀수가 줄었음에도 가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년 7%에서 92년 9.7%로 오히려 증가했다.
  • 이산가족 신분법/올해안 재정추진

    법무부는 8일 남북교류 및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안에 이산가족들의 신분확인·증명·상속 등과 관련된 제도적 장치를 마련키로 하고 가칭「이산가족 신분법」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혼인의 경우 이산부부 양쪽 또는 한쪽이 재혼했을 때는 처음 혼인의 효력을 인정치 않고 나중에 한 혼인만을 인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산부부 모두 재혼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원래 혼인의 효력이 인정된다.
  • 한용운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3·1운동 주도한 저항시인/불교대표로 참여… 선언문 배포 지휘/출옥후 신간회·비밀결사 만당 결성/「님의 침묵」등 시 3백편·소설 「죽음」「흑풍」 남겨 만해 한용운선생(1879∼1944)은 토지·조세·신분문제등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에서 민란의 불길이 일던 봉건왕조말기에 태어났다.선생은 청년시절 날로 기울어가는 국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동학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24세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출가했다. ○동학혁명에 가담 입산한 지 10년만인 1913년 선생은 자유·평등사상에 기초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부패가 만연한 당시의 불교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선생은 이 유신론에서 번잡한 각종 의식을 없애고 직접 생산에 종사하자는 혁신적 주장을 펼쳤다. 선생은 같은해 10월 친일승들이 모여 한국의 원종과 일본의 조동종을 통합하자 이를 친일매불행위로 규정한 뒤 승광사에서 전국승려궐기대회를 열고 임제종을 창립,큰 호응을 얻어냈다. 선생은 이후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방대한 고려대장경을 현대적으로 정리,불교대전을 펴냈으며 처음으로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계몽활동에 뛰어들었다.당시 지식인으로 명망이 높던 최린·최남선·현상윤등도 이 잡지발간에 적극참여,암울한 식민무단통치시대에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횃불역할을 했다.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추진하면서부터다. 3·1운동에 초기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생은 당시 유림과 불교계의 포섭을 맡았다.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뒤 독립선언 하루전인 2월28일에는 독립선언문 3천장을 인쇄소인 보성사사장 이종일로부터 넘겨받아 중앙학림 학생들에게 전달,다음날인 3월1일 시내에 배포하도록 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에 대해서는 선생이 지은 독립선언서를 수정해 삽입했다는 설과 최남선이 작성했다는 설이 나누어 있다. ○옥중에서도 태연 1919년 3월1일 하오2시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돌려보는 것으로 낭독을 대신해 독립운동의 서막을 열었다.선생은 이 자리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게 돼 책임이 막중하다』며 일제에 체포되더라도 변호사를 대지 말고 사식과 보석을 요구하지 않는등 당당한 대응을 하자고 행동강령을 제시했다.민족대표들은 모임이 끝나자마자 일경에 모두 체포됐으며 선생은 옥중에서도 수도승답게 태연한 모습을 지켰다. 선생은 옥중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라는 논설을 통해 『자유·평등·평화는 민족의 자존과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대강령이며 이번의 조선독립선언은 국가를 창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때 치욕을 겪고 있는 고유의 독립국이 다시 복구되는 것임』을 설명했다. 3년여 옥고를 마치고 가출옥한 선생은 청년교육과 훈련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1924년 불교청년회회장으로 취임,대중불교건설에 앞장섰으며 「유심」등 신문잡지를 통해 『청년들에게 역경은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이 땅의 젊은이들은 나라가 없다고 좌절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선생은 1927년 좌우합작 민족유일당운동인 신간회결성에 참가했으나 2년 뒤 이 단체가 광주학생의거 진상보고민중대회를 가지려다강제해산됨에 따라 1930년 청년불교도들이 결성한 비밀항일독립운동단체인 만당의 당수로 취임,와해되기 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대학설립 수포로 이와 함께 1926년 이상재·이승훈·조만식선생등 30여명과 조선민립대학설립 기성회를 구성,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일제가 이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경성제대를 설립하는 바람에 대학설립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문학사에서 3·1운동세대가 낳은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꼽히는 선생은 1926년 발간한 「님의 침묵」에 모두 3백여편의 시를 실었다.또 소설로는 「죽음」「흑풍」「철혈미인」「박명」등을 남겼다. 선생이 시와 소설에서 쓴 「님」은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갈구하는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5세인 1933년 재혼한 선생은 방응모등의 후원으로 성북동에 심오장이란 택호의 집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집을 지을 때 사람들이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권했으나 마주보이는 총독부건물이 보기 싫다고 끝내 북향으로 집을 틀어버리고 말았다. ○변절자 면담거부 선생은 뜻을 끝까지 같이 한 동지에 대해서는 깊은 의리를 간직했으나 변절자에게는 단호히 단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만주에서 대한통의부총장을 역임한 김동삼선생이 일경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유해를 심우장에 모시고 5일장을 치르며 눈물을 아끼지 않았으나 3·1운동당시 동지이던 최린이 변절,창씨개명을 하고 믿아오자 끝내 만나지 않았다. 일제치하에서 조선 전국이 감옥이라고 여긴 선생은 추운 겨울에도 심우장 냉방에서 꼿꼿이 앉아 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족이 배출한 위대한 시인이자 독립투사이며 여성해방론자이기도 한 선생은 44년6월 입적,망우리묘지에 안장됐다. 근대사의 여명기에 태어나 선각자적 삶을 통해 민족정신의 새벽을 연 선생에게 정부는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이 여인을 보라/쇼지로 엮음·조형균 옮김(화제의 책)

    ◎「통나무인간」 일 하사코 일대기 어려서 팔다리를 모두 잃어「통나무 인간」으로 평생을 지내면서도 정상인이상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일본인 나카무라 히사코(1897∼1968년)의 일대기이다. 히사코는 2살때 왼발에 동상이 걸렸으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돌발성 탈저병으로 진행한다.결국 3살 때 양팔은 팔꿈치에서,두다리는 무릎에서 절단한다. 이후 아버지의 급사,어머니의 재혼등 시련이 계속되지만 히사코는 14살에 입으로 바느질해 옷 한벌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돈벌이에 나선다.71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외부의 도움을 단한푼 받는 일 없이 스스로 벌어 남못지 않게 자식도 키운다. 「인간승리」드라마 가운데서도 유별난 감동을 안겨주는 내용이다. 조형균 옮김 백재문화사 5천원.
  • 5공때 「사채시장 대모」 부상/장영자는 누구

    ◎이혼위자료 5억원 굴려 거액 치부/이철희씨 만나 정계고위층과 교분 지난 82년 5월 최대의 어음사기사건으로 구속될 당시 「사채시장의 대모」 「큰손」으로 불렸던 장영자씨(49)는 전남 강진에서 사업가이자 문필가인 장모(작고)씨의 2남3녀중 차녀로 태어났다.할아버지는 고향에서 대지주로 소문이 났었으며 가족들은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카톨릭계통인 목포의 J여중과 서울의 K여고를 거쳐 서울S여대를 졸업한 장씨는 대학시절에는 메이퀸에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고교시절에는 다소 도의성과 준법성이 결여됐으나 대인관계는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69년 K대 학생회장출신인 김모씨와 결혼,77년 이혼한 뒤 곧바로 사업가인 홍모씨와 재혼했다가 1년뒤 다시 헤어지고 20년 연상의 현 남편 이철희씨(71)와 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클럽에서 3번째 결혼식을 초호화판으로 올렸다. 남편 이씨는 육사2기생으로 일제때 정보학교를 나와 첩보 및 방첩부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까지지내다 79년 10월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장씨는 남편 이씨와 전두환전대통령의 처숙이며 친언니의 남편인 이규광씨등의 후광을 업고 금융계·정계의 고위층들과 친분을 쌓으며 활동영역을 넓혔다. 두번째 남편 홍씨와 살며 「돈 굴리는 법」을 터득한 장씨는 홍씨로부터 받은 위자료 5억원을 사채놀이와 증권에 투자,거금을 벌고 일약 「사채시장의 대모」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씨는 72년 꿈에서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불교로 개종한 뒤 장보각행이라는 법명으로 81년에는 전남 백양사 범종을 복원,기증하는등 불교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장씨부부의 사랑은 너무도 각별해 어음사기사건으로 함께 구속됐다가 91년 6월 먼저 가석방된 이씨는 거의 매일 장씨를 면회하면서 옥바라지를 했을 정도였다.
  • 군·관·정계서 출세가도 달린 「풍운아」/타계한 정일권 전총리

    ◎서른셋에 3군총사령관·최장수 총리 신화/「박정권 얼굴마담」평… 정인숙사건에 곤욕 18일 타계한 청사 정일권전국무총리는 군·관·정계에서 정상의 출세가도를 달린 「풍운아」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서른셋의 나이에 참모총장격인 육·해·공군총사령관을 맡아 6·25를 치렀다.6년7개월동안의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국회의장직도 6년이나 재임했다. 해방이후 「6공」에 이르기까지 화려했던 경력으로 「처신의 신화」를 남기기도 했고 「박정희정권의 얼굴마담」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정씨는 1917년 11월 21일 함북 경원에서 태어났다.찢어지게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37년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해 수석졸업한 뒤 만주군 소위로 근무했다.40년에는 일본육사 55기로 편입해 41년 본과정을 마치고 해방되던 45년까지 만주군 총사령부 헌병대에 근무했다.해방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창군에 참여,46년 군번 5번의 대위로 임관해 4년만에 3군총사령관에 이르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최근 회고록에서 6·25때 38선 돌파문제를 놓고 이승만대통령및 맥아더유엔군사령관과 며칠밤을 새우며 북진을 결정해 전세를 역전시킨 감격을 회상하기도 했다. 57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 주프랑스대사와 주미대사를 거쳐 63년 외무부장관,64년에는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그는 박정희전대통령과 뗄래야 뗄수없는 인연을 갖고 살았다. 만주군 중위로 근무할 때 신경군관학교 1학년에 다니던 박전대통령을 만났다.이때 두사람은 독립이 되면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고 다짐했고 이 다짐은 20년후 박정권의 출범으로 구체화된다. 그는 박정권 초기에는 6년7개월의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냈고 8·9·10대의 3선의원으로 79년까지 6년동안 국회의장을 지내는등 「3공」말기까지 늘 권력의 양지에 서있었다. 5공화국 이후 권력의 핵심에 다시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85년 국정자문위원,88년 자유수호구국총연합회장,89년 자유총연맹총재,93년 민자당고문등 여권의 원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사를 화려하게 풍미했던 그도 말년에는 「3공」 최대의 정치스캔들인 정인숙씨피살사건으로 곤욕을 치렀으며 정씨의 아들인정성일씨가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해 괴로움도 겪었다. 91년에는 지병인 임파선 암이 악화돼 도미,타계할 때까지 워싱턴과 하와이에서 치료를 받았다. 77년 재혼,현직 국회의장과 29살 아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로맨스로 화제를 모았던 부인 박혜수씨(48)와 1남1녀를 두었으며 사별한 전부인과의 사이에도 출가한 두딸이 있다.
  • 재혼 남편 만난다/의붓딸 살해기도

    【화천=조한종기자】 강원도 화천경찰서는 21일 의붓딸을 살해하려던 박두조씨(34·여·의류중간상·서울 도봉구 수유동 279의158)에 대해 살인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씨는 지난 7월 자신과 재혼한 이모씨(37·개인택시 운전사)가 외할아버지(70·화천군 간동면)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딸(10·화천 유촌국교 3년)을 자주 만나자 가정이 깨질 것을 두려워해 지난 19일 하오 3시40분쯤 하교하던 이양을 학교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양말을 벗겨 목을 조르고 구타하는 등 살해하려 한 혐의다.
  • 환과 노부모 재혼주선은 효라지만(박갑천 칼럼)

    『어렴풋한 고운얼굴 홀연히 간데없고/깨어보니 등잔불만 가물가물 외롭구나/가을비 잎치는 소리 꿈깰줄을 알았더면/창가에 벽오동을 아예 심지 않았을 것을』(한문원문 생략).시문에 뛰어났던 송곡 이서우의 「도망」전문이다.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심경이 절절히 드러난다.백낙천도 당현종이 죽은 양귀비못잊는 때를 이르면서 『가을비에 오동잎 질때』라고 노래한바 있다. 남녀가 부부로서 만나 검은머리 파뿌리되도록 함께 살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누구나 다 그럴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지 못하고 한쪽이 일찍 세상을 뜰때 남은 한쪽은 재혼을 한다.이젠 뜻이 안맞는다면서 여자쪽에서 생이별에 앞장서고 재혼하는 경우도 많아져가는 세상이다.그러나 남존여비의 전통사회에서는 남자는 재혼을 하면서도 여자의 재혼은 「실절」로 치면서 곱잖은 눈길을 보냈다. 재가의 금지는 고려 공양왕때 나타난다.다만 해당자는 명부와 벼슬한 사람의 아내로서 과부가 된 경우였다.조선조로 내려와 태종6년 대사헌 허응등이 시무육조를 올린 가운데 첫째항목으로서 이문제를 거론하면서 개가한 자의 자손에게는 현직을 내리지 않도록 규정했다.그것이 성종때 이르러 개가한 사람의 자손에 대해서는 「세세로」입사를 금지하는 것으로 강화되어 버린다.숱한 인재를 잃는 악법이었던 셈이다. 그렇대서 개가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더러는 아름다운 개가도 보인다.이육의 「청파극담」에 실려있는 얘기도 그중의 하나이다.­세종임금때 영남의 어떤 만호가 군법을 어겨 참수형을 당한다.부인 홍씨는 남편의 시신을 안고 사흘동안이나 통곡하다가 동강난 몸을 이어 장사지낸 다음 3년동안 시묘를 했다.감사로 부임해온 창산부원군이 임금에게 아뢰어 포상하려 했으나 홍씨가 개가한 뒤라서 그만두었다.이사실을 적은 이청파는 홍씨를 이렇게 평가한다.『개가는 했어도 훌륭한 사람 아닌가.장부에 비기자면 예양과 같다』.예양은 진나라의 의인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평균수명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자식들이 환과의 노부모 재혼주선에 나서는 일은 효로 비쳐지고 있다.하지만 그런 노년층의 재혼과 어린 자녀를 둔채 손쉽게 택하는 이혼­재혼을 같은 시각에서 말할 수는 없겠다.얼마전 자식들의 반대에 부딪친 40대 재혼부부가 함께 자살한 사건은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제기해준다.
  • 2차례 부검끝 “타살” 결론/이진분교수 수사 일단락 안팎

    ◎경찰,시신상태·현장 정황근거 내세워/물증확보 어려움… 검찰솜씨에 기대 상명여대 이진분교수의 변사사건은 수사팀이 장고끝에 살인사건으로 결론짓고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경찰수사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피의자 방영부씨(48)는 계속 살인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검찰의 보강 수사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거나 아니면 방씨가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죽었느냐」「죽였느냐」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동안의 수사에서 방씨의 살인행위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당사자인 방씨는 입을 다물고 있다.이같은 민감한 사안임에도 경찰이 장고끝에 살인혐의를 추가한 까닭은 「사체는 말한다」는 부검결과 이교수 주변과 사건현장의 정황에 근거하고 있다. 경찰은 이교수가 방씨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해 가사상태에 이르렀고 방씨가 당황했거나 완전범죄로 가장하기 위해 이교수를 추락시켜 숨지게 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우선 두차례에 걸친 숨진 이교수에 대한 부검결과 왼쪽머리·이마·팔등 왼쪽뿐만아니라 갈비뼈 5곳이 골절되는등 오른쪽도 크게 다쳐있다는 점이다.오른쪽 상처는 법의학적으로 볼때 투신이전에 다친 것이며 투신했을 경우 양쪽이 모두 손상되는 사례는 그 유례가 전혀 없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건당일 낙산비치호텔에서 이교수등의 옆방에 투숙했던 윤모씨등의 심하게 다퉜다는 증언과 오른쪽 상처로 볼때 그 정도 폭력이면 이교수가 능히 가사상태에 이를만 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1차부검에서 타살증거가 확인되지 않자 사건송치를 앞두고 지난 13일 법의학 전문가인 서울대 이정빈교수에게 숨진 이교수에 대해 재부검을 의뢰,이같은 확신을 얻어냈다. 경찰등 수사당국이 방씨에게 살인혐의를 추가한 또 하나의 심증은 호텔방의 베란다는 1.2m 높이였음에도 술까지 마신 40대후반의 여자가 단숨에 뛰어 넘었다는게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베란다를 뛰어 넘으면서 옷이 베란다에 씻긴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밖에 이교수가 방씨와의 불륜관계를 청산하고 재혼을 약속한 Q씨와의 혼인절차를 밟고 있었던 점등도 자살이아니라는 심증을 더해주고 있다. 반면 사건의 당사자인 방씨는 지난 달 29일 이교수 1차 납치때 동행했다는 제3의 40대남자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이교수의 투신자살주장 이외에는 묵비권을 내세우며 굳게 입을 다물어 의구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은 엄격한 물증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보면 기소를 앞두고 검찰의 짐도 결코 가볍지 않다.이교수에 대한 재부검결과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숨진 이교수의 분비물 검사 결과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여기서마저 물증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결국 심증으로 방씨의 묵비권과 싸워야 하는 형편이다. 검찰의 수사솜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이 교수와 결혼 약속” 새인물 나타나

    ◎추락사 사고/40대 사업가, “곧 경찰출두” 밝혀/“방씨와 불륜청산 노력… 자살 아니다” 【속초=조성호기자】 상명여대 이진분교수 변사사건 수사당국에 9일 이교수와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라는 사람이 이사건과 관련,「참고인 증언」을 자청하고 나서 수사에 새전기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교수사건의 수사당국에 따르면 방영부씨와 불륜관계 청산을 전제로 이교수와 재혼절차를 구체적으로 추진했던 Q씨(48·개인사업)가 빠른 시일내에 이교수와 자신및 방씨와의 관계를 모두 밝히겠다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수사당국은 이에따라 이교수를 단순히 폭행했을 뿐 지난달 29일 동해안 1차 동행과정에 40대 남자와 같이 갔던 사실등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방씨의 또다른 행적을 밝혀내는데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Q씨는 이날 참고인 진술을 자청하면서 『자신은 이교수와 함께 이교수가 남편과 이혼하는 법적절차를 밟고 있었다』며 이교수가 방씨에 의해 동해안으로 강제동행된 지난달 29일과 지난 2일 방씨는 불륜관계청산을 통고받고 굉장히 흥분된 상태였던 증거들이 있다면서 이교수의 자살은 있을 수없는 일이라고 말한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방씨의 상해치사혐의에 대한 방증수사에 수사력을 모아온 속초경찰서는 이사건을 처음부터 정밀 재수사키로 했다.
  • “제4인물 등장” 이 교수사건 새국면

    ◎「애증의 3각관계」가 화 부른듯/방씨,라이벌 출연하자 결혼 강요/절교선언에 흥분,이씨 납치 추정 동해안 낙산비치호텔에서 추락변사체로 발견된 상명여대 이진분교수 변사사건과 관련,9일 수사당국에 「참고인 진술」을 자청하고 나선 Q씨(48·개인사업)의 출현은 이사건의 전말을 밝히는데 크게 도움을 줄것으로 기대된다. 경찰은 그동안의 수사에서 방씨가 이교수를 살해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폭행으로 죽음에 이르게(상해치사)했다는데 심증을 굳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심리상태에서 무슨 이유로 갈비뼈가 5개씩이나 부러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정도로 이교수에게 심한 매질을 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는 때문이다.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대를 다른 이유없이 그저 『술을 그만 마시라』고 티격태격하다 가한 상처로는 수사경험상 도저히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수사 전문가들의 얘기이다.적어도 방씨가 살의를 품거나 아니면 이성을 잃을 정도의 흥분상태에 이르게한어떤 결정적인 원인이 따로 있을 것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나타난 Q씨의 증언은 이러한 의문점을 풀어줄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Q씨는 이교수의 또다른 연인.Q씨는 이교수와 방씨가 사귀어온 「2년」보다도 훨씬 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고 그녀가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고 말하고 있다.이교수 주변의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두사람의 관계가 익히 알려져 있었으며 결혼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이같은 사실은 Q씨와 이교수가 각자의 주변정리를 위해 함께 만났던 L변호사를 통해 간접 확인할 수 있었다. Q씨와 방씨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애정의 라이벌임을 잘 알고 있었다.이교수는 방씨가 입시부정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생활을 하고나온 뒤에는 성격이 더욱 거칠어졌고 Q씨와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을 알고난 다음부터는 더욱 집요하게 결혼을 요구했었다고 주변에 얘기하곤 했었다는 것이다. Q씨는 이번 사건이 자신을 포함한 애정의 삼각관계 때문에 일어났다고 독백처럼 말하고 있다. Q씨와 이교수가 재혼을 위한 법적인 주변정리를 위해 변호사를 만났던 것은 지난달 중순.그 이후 두사람은 결혼절차를 서둘렀으며 특히 이교수는 늦어도 10월9일 까지는 방씨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굳게 약속했었다. 이교수를 처음 납치했던 지난달 29일 방씨는 이교수의 절교선언에 심하게 흥분,주먹을 휘두르다 마음을 가라앉혀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비치기도 했으며 다시 Q씨를 만나 설득해 양보를 받아내겠다는등 마음의 갈피를 잡지못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여기서 해결을 보지못한 방씨는 지난 2일 다시 이교수를 납치했고 『결혼을 요구』(방씨 경찰진술)했으며 끝내 거절당해 극도로 흥분된 심리상태에서 주먹을 휘두르는등의 과정에서 이교수의 변사사건이 발생했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게 Q씨의 주장이다.Q씨는 특히 방씨가 투신자살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재혼해 새출발하겠다는 꿈에 부풀어있던 그녀가 자살했다는 얘기는 범죄를 감추기 위한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흔 일곱살의 혁명,재혼」­이진분교수가 안식년휴가를 받아 집필하려던 책의 제목이다.그녀는 이 책의 부제를 「결혼 별거 이혼 그리고 재혼」으로 잡아 두었었다. 결혼했었고 별거중이며 이혼을 위한 법적수속을 진행중이던,미모와 지성을 함께 갖춘 대학교수.두 자녀를 둔 마흔일곱살의 그녀는 사건현장에 있었던 그 남자 말고 또다른 남자와 재혼을 약속,스스로 인생의 「혁명」을 기도했으나 결국은 그것이 빌미가 된 삼각·사각의 치정관계에 발목을 잡혀 미완의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 영주귀국 맹점(사할린 한인 망향의 한 50년:2)

    ◎또다른 이산 부르는 「독신자 제한」/80%가 가족 버리고 신분속여 입국/사할린 처자 그리워 재출국 사례도 지난해 9월29일 사할린한인사회는 엄청난 감격에 휩싸였다.강제징용으로 끌려온 1세 한인 77명이 영주귀국이란 이름으로 고향땅으로 돌아간 것이다.한인단체들이 합동으로 환송회를 열었고 러시아주정부 지도자들까지도 떠나는 노인들을 축하하며 환송했다.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소위 무의탁 독신노인을 선발해 모 교회가 운영하는 강원도 춘성군 소재 양로원 「사랑의 집」에 거처가 마련된 것이다.금년 3월20일 역시 1세 독신노인 42명이 2차로 이 「사랑의 집」에 합류했다. 주노인회에 따르면 이밖에 지난 89년부터 국내에 있는 친척들이 직접 초청해 들어간 영주귀국자수도 1백여명에 이른다.그리고 경북 고령에 있는 모 양로원으로 영주귀국해 들어가기 위해 80명이 현재 수속중에 있다. 영주귀국자들은 한동안 사할린에 남은 1세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서윤준 이산가족회장의 말을 빌리면 『영주귀국 신청자들로 붐벼 사할린 이산가족회와 노인회 사무실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대한적십자사가 영주귀국 대상자를 선발하는 기준은 「65세 이상,무의탁 독신노인」이다.그런데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에 처자식이 엄연히 있는 노인들이 무의탁 독신자라고 서류를 꾸며 영주귀국자로 신청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십년을 함께 산 부인들과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고 나선 노인들이 속출하고 자식들이 엄연히 있는 노인들이 무의탁자라고 신청서를 냈다.특히 부인이 러시아여자거나 재혼한 사람,혼인신고 없이 동거하던 노인들은 하나같이 「독신」서류를 만들어 영주귀국 대열에 선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처자식들이 노인회·이산가족회 사무실에 몰려와 『제발 못가게 말려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례가 빈발했다.서회장은 『처자식들이 보내지 말라고 하도 애원을 해 몇사람을 대상에서 제외시켰더니 그 노인들이 사무실로 몰려와 「이놈아,네가 나한테 무슨 원수가 졌길래 내 고향길을 막느냐」며죽인다고 해 혼이 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서회장은 『지금까지 영주귀국한 1백19명중 실제 무의탁노인은 20%가 채 안된다』고 실토했다.이같은 사실은 주노인회 박해동회장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이산가족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사업으로 인해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주귀국자중에서 적응을 못해 다시 사할린으로 되돌아 오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지난 7월28일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사할린을 다시 찾은 영주귀국자 15명중 1명이 자살하고 나머지 4명은 지금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중의 1명인 한상국(81)옹은 『고향땅에 묻히겠다는 일념에 영주귀국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사할린에 두고온 가족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사할린에 42년을 함께 산 러시아부인과 자녀 4명이 있다.한옹은 또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집」에서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하고 새벽기도를 올리게 한다고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게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노인회 박회장은 영주귀국자들의 처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는 50년간 이역에서 고향을 그리며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그리고 70세 넘은 노인들을 새벽 3시 반에 깨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이곳의 많은 인사들은 『영주귀국을 결정하기 전에 대상자들에게 모국방문의 기회를 여러번 주는 것도 이런 부작용들을 막는 한가지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 두번 고향땅을 보고 오면 망향의 사무침도 분명 조금씩 풀어질 것이고 무리한 영주귀국도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다.지금 한적이 추진하는 모국방문은 1인1회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예산부족 때문인지,인식부족 탓인지 아직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사할린한인문제를 일선에서 다루는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의 T모 영사는 『영주귀국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 일도 바쁜데 그런 사소한 일에 일일이 신경쓸 수 없다』고 말했다.
  • 영 왕실 혼인 문제많다

    ◎찰스·앤드루 잇따라 별거/앤공주 전시종관과 재혼 말많은 영국왕실에 탈이 겹치고 있다. 엘리자베스여왕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왕자(33)와 4개월 연상의 사라 퍼거슨 왕자비가 법률적 협의를 모두 끝내고 이달부터 공식 별거에 들어갔다.찰스황태자(45)와 다이애너 황태자비(32)가 지난해 12월 공식별거에 들어간지 6개월만의 일이다. 셋째 아들 에드워드왕자(29)가 연극배우와 동성연애를 즐긴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고 앤공주(43)는 지난해 4월 마크 필립스(45)와의 15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86년 왕실 시종무관 재직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던 5년 연하의 티모시 로렌스 해군중령과 7개월만에 재혼했다.3남1녀 모두가 왕족다운 품위와는 거리가 있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총각시절 포르노 여배우 출신의 쿠 스타크양을 비롯한 미녀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며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앤드루왕자가 결혼생활 만7년만에 파경을 맞게된 것은 그동안 줄기차게 보도됐던 사라비의 애정행각으로 인한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찰스황태자와 다이애너비의 결혼11년반만의 파경도 수차례 보도된 각각의 염문과 무관치 않다. 이같은 왕족의 파경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올해 67세인 엘리자베스여왕의 후계자 자격논쟁과 군주 무용론까지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 권정달·도영심 전 의원 곧 결혼(조약돌)

    ○…5공이후 여러차례 염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권정달 구민정당사무총장(57)와 도영심 전의원(47)이 곧 결혼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 도 전의원의 한 주변인사는 『권·도전의원이 아직 공식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으나 곧 결혼식을 가질 것』이라고 소개. 5공 핵심인사였던 권전의원은 도전의원과의 잦은 염문으로 가정불화를 빚은 끝에 부인과 이혼했고 도전의원도 마찬가지여서 두사람이 결혼하면 모두 재혼이 되는 셈.
  • LA호화주택 “여동생이 사줬다” 오리발/정덕진씨 수사 이모저모

    ◎“라스베이가스에 가선 수십만불 잃었다”/“어렵게 살다보니 탈세”… 엉뚱한 변명 「빠찡꼬계의 대부」 정덕진씨에 대한 검찰수사는 연행 하루만에 정씨의 탈세사실은 물론 그동안 항간의 소문으로만 나돌던 서방파두목 김태촌에게 거액의 활동자금을 대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정씨 수사를 「범죄와의 전쟁」제2탄의 서막으로 선포하고 정씨를 비호해온 「검은 실력자」들과의 비타협적 수사를 다짐. 수사를 맡고있는 서울지검 유창종강력부장은 『90년 우리강력부의 탄생이유는 김태촌이라는 폭력대부와 함께 돈과 권력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정씨집단의 일소에 있었다』며 『진급비리와 관련된 별들과 비리에 얽힌 금배지가 날아가는 지금이야말로 범죄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 ○…검찰수사과정에서 횡설수설해온 빠찡꼬 대부 정씨는 이날 밤 구속수감되기위해 서울지검 청사를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비교적 또박또박 대꾸하면서도 세간의 의혹은 하나같이 부인. 정씨는 『바찡꼬계의 대부인것은 사실이나 깡패는 아니고 조직폭력배를 거느릴 위치는 더더욱 아니다』며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10여년전부터 수시로 사람을 보내,돈을 요구해와 1억5천만원을 꾸어주는등 평소 돈을 뜯기는 입장이었다』고 강변. 정계·검찰등 관계요로의 비호세력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맹세코 정치인과 골프한번 친 일 없고 이번 수사를 맡은 담당검사이외에 아는 검사 한 사람없다』고 단언. 『너무 어렵게 살다보니 탈세등을 저질렀으나 90년 세무사찰을 받고나선 13개의 빠찡꼬장 가운데 4개밖에 남지 않은 신세』라고 자신을 초라하게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 ○…빠찡꼬사업 확장을 둘러싼 각종 폭력사건의 배후로 일찌감치 지목돼온 정씨는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권총까지 소지하고 다닌 사실이 드러났다. 정씨는 88년 실탄 6백발과 함께 리벌버권총을 김포공항을 통해 밀반입한 사실이 검찰수사결과 드러나자 『스펀지에 싸서 공항검색기를 통과한 권총을 한때 갖고 다녔다』며 『그러나 막상 별로 쓸 필요가 없어 불법무기자진신고기간에 당국에반납했다』고 발뺌. ○…정씨는 비교적 꼿꼿한 자세로 조사에 응하면서도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는 물증을 들이댈 때까지는 딴전을 피우는등 부인으로 일관했다고. 정씨는 특히 미국 LA의 초호화주택을 산 자금에 대해 『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빠찡꼬를 해서 딴 50만달러와 집판돈 30만달러 등을 보태 만들어 준 1백60만달러와 현지은행융자 1백만달러를 합해 구입한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여동생이 아주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변명. 정씨는 그러나 여동생의 주소등에 대해서는 『미국인과 결혼해 이민갔다가 첫 남편과 이혼한뒤 재혼해 지금의 성과 주소는 잘 모른다』고 횡설수설. ○…정씨는 빠찡꼬로 벌어들인 거액으로 미국에서 호화저택을 구입한 외에도 라스베이가스의 도박장에서 수십만달러를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씨의 거액밀반출 혐의를 밝히기 위해 미연망수사국(FBI)에 자금추적 협조를 의뢰했음을 정씨에게 상기시키면서 정씨를 추궁한 결과 『시저스 팔레스 카지노에서 수천만달러를 잃는등 재미를 못봤다』고 실토했다는것.
  • 전직기관원부부 피살/40대 여조카도/집안서 손발묶인채 목졸려

    16일 하오1시30분쯤 서울 성북구 석관2동 261의343 지양렬씨(60·전개인택시 운전사)집에서 지씨와 부인 우정분씨(46),조카 김남순씨(43·여·도봉구 수유5동 410)등 3명이 목졸려 숨진채 발견됐다. 숨진 김씨의 남편 송모씨(45·보석상)는 전날 하오1시쯤 아내가 전화를 받고 「외삼촌을 뵈러 간다」고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아 이날 상오2시30분쯤 지씨 집을 찾아갔으나 안방이 비어있고 건넌방에 지씨의 딸(27)만이 자고있어 되돌아 왔다가 낮12시30분쯤 다시 담을 넘어 가보니 지씨가 다락방에서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지씨는 발견당시 선풍기덥개끈으로 목이 졸리고 전깃줄과 넥타이로 손발이 뒤로 묶여 입에 양말 등으로 재갈이 물린 채 숨져 있었다. 송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세들어 사는 박기태씨(28)방 장롱속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온 몸을 각목으로 맞아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숨져 있는 우씨와 김씨를 발견했다. 숨진 지씨는 안전기획부 전신인 중앙정보부에서 운전사로 일하다 지난 80년 1월 퇴직한 뒤 최근까지 개인택시를 몰았으며 전부인과 사별하고 지난80년 우씨와 재혼했다. 경찰은 송씨가 이날 새벽에 찾아갔을 당시 박씨가 문을 열어 주었고 박씨 방에서 범행에 사용된 테이프가 발견된 점등으로 미루어 사건 발생이후 행방을 감춘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찾고있다. 또 우씨와 전부인사이에 난 자식들간에 사이가 좋지않아 자주 다투었다는 주위사람들에 말에 따라 이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 김희로씨는…(외언내언)

    「광복후의 항일투사」라는 별명이 붙는 재일동포 무기수 김희로씨.살인죄로 25년 동안 복역해 온다.그가 오는 6월 일본 왕세자 결혼식에 맞춰 단행될 대사면에 포함되어 석방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지난 68년,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모멸감과 차별대우에 울분을 못참고 일본인 폭력배 2명을 죽인 다음 인질극을 벌인 사건은 온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었다.그로부터 일본 최고재판소가 무기징역을 확정하기까지는 7년이 걸린다.하지만,그에 관계없이 재판중이나 형 확정후나 그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높았다.석방운동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다.범행동기가 극심한 민족차별 내지는 모멸에 있었기 때문이다.그가 인질극을 벌였던 시즈오카켄(정강현)의 스마타쿄(촌우협)가 그후 관광지로 된 것도 거기 연유한다.후지미야(부사견옥)여관에는 『죄없는 이 집에 누를 끼쳐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쓴 그의 낙서가 있다. 『목숨도 일없다고 큰소리쳤던 그격정/민족의 긍지를 지키자던 그 외침/조선인의 그 이름 위해/싸웠다는 네가/목숨 하나 살려고 마음 흔들려/타협을 하자는 거냐/너는 네 동포가 참고 견뎌온/기나긴 굴욕의 역사를/네 목숨 하나 살기 위해 짓밟자는 거냐!…』.붙잡힌지 한달 후의 어느 날 「길잃은 양」이란 제하의 옥중시를 쓰고도 있다(고금소운역).스스로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다. 화제의 인물이 되다 보니 옥중결혼이라는 것도 두번 치렀다.첫번째 김문자씨와는 71년 맺어졌으나 74년 헤어졌다.그 다음 일본인의 현지처로서 일본인 본처를 죽이고 무기수로 복역중이던 돈경숙씨와 「재혼」한다.김씨는 그 동안 한국말 공부도 해왔다.그의 일대기는 「김의 전쟁」이란 제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바도 있다. 석방이 되면 90노모 및 옥중결혼한 부인과 함께 귀국하리라고 한다.전전의 망령을 보는듯한 「전후 한일사」의 귀국이 될듯하다.
  • “손지갑 훔쳤다” 의붓딸 폭행치사/30대 계모 영장

    【인천=김학준기자】 인천동부경찰서는 2일 도벽이 심하다고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이숙자씨(32·여·인천시 남구 주안2동 태창빌라 A동 102호)에 대해 상해치사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해 운모씨(37)와 재혼한 이씨는 2일 하오3시쯤 안방에서 운씨의 딸 지희양(11·국교생)이 자신의 손지갑을 훔쳤다는 이유로 보일러 고무호스로 운양의 온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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