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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權禧老씨 애끊는 사모곡

    “어머니,당신이 태어나신 고향에 희로가 왔습니다.이제 제곁에서 편안히쉬세요” 7일 오후 2시25분 부산시 연제구 거제1동 자비사 법당.칠순을 넘긴 권희로(權禧老)씨는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박득숙(朴得淑)씨의 유해와 영정 앞에 무릎꿇고 앉아 눈을 감은 채 파란많은 지난 세월을 용서받으려는 듯 두손을 모아 합장했다.일본땅에서 천대와 울분속에 살아온 한맺힌 70평생과 어머니에대한 아스라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그가 “한국인 인종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야쿠자 두목 2명을 살해하고인질극을 벌였던 68년 그에게 흰색 한복을 건네며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느니 차라리 깨끗이 자결하라”고 권할만큼 강직한 어머니였다.종신형수감생활이 시작되자 족발장사를 해가며 82년 중풍으로 쓰러질 때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형무소로 아들을 찾아 옥바라지를 했던 사랑의 어머니.“아들이 석방되면 함께 깡통을 차고 빌어먹더라도 부산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조국의 품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되뇌다 끝내 아들의 석방을 보지 못한 채 지난해 11월 일본의 한 시립양로원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기구한 운명의 어머니.“나와 희로만 국적이 한국이며 따라서 내 자식은 희로밖에 없다”고말한 한국의 어머니.부산에서 태어나 소학교도 못다닌 채 7살때부터,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결혼할 때까지 10년간 일본인 지주집에서하녀노릇을 했던 한많은 어머니.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희로씨는 정의감이강하다.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여린 마음의 효자이기도 하다. 희로씨의 비극은 그가 세살때인 지난 31년 부두노동자이던 아버지 권명술씨가 작업도중 사고로 숨지면서 시작됐다.그후로 그는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2년후 어머니의 재혼과 함께 그는 의붓아버지의 구박과 폭행에 시달리며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조선인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조롱과 함께 죽도록 얻어맞기도 했다.결국 13살때 집밖으로 뛰쳐나와 연탄회사와 항만 인부 등을 전전했다.배고픔을 참다못해 먹을 것을 훔치다 소년원에 들어갔다. 그후 야쿠자 살해 전까지도 강도 공갈 횡령 등으로 수차례에 걸쳐도합 20년간 감옥에서 청춘을 보내야 했다.31살때 일본인 처와 결혼했으나 8년만에 결국 실패했다. 권씨는 이제 고국에서 ‘일본사람처럼’이 아니라 한국사람으로서,소외계층을 위해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다짐하며 법당을 떠났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김희로씨 ‘특급경호령’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31년 만에 풀려나 국내에 정착하게 된 재일교포 김희로(金嬉老·71)씨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부산지방경찰청과 국가정보원,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등 국내 관련기관들이 고심하고 있다. 김씨에 의해 두목이 살해됐던 일본 야쿠자 조직이 교도소에 엽서를 보내 보복살해하겠다고 위협한데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까지 테러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27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직접 경호를 맡아야 할 경찰은 법무부와 일본 경찰당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 야쿠자들의 움직임과 국내 입국자 명단을 파악,요주의 인물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 밀착감시하고 김씨의 국내 도착 순간부터경호인력을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와 법무부 출입국사무소도 야쿠자 조직의 동향과 입국여부를 면밀히 챙기고 있다. 한편 부산 영도구청이 보관중인 김씨의 호적에는 본적이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5가 66번지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성은 김씨가 아닌 권씨였고 이름 가운데 희자도 지금까지 알려졌던 ‘嬉’가 아니라 ‘禧’였다.성이 달라진 것은 생부인 권명술(權命述)씨가 사고로 일찍 작고하면서 어머니 박득숙(朴得淑)씨가 김종석(金鍾錫)씨와 재혼해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김희로씨 31년 옥살이 마감…새달 조국서 새 인생

    지난 68년 조센징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야쿠자 2명을 살해한뒤 장기복역중인 김희로(金嬉老·71)씨가 수감 31년만에 고국에서 새 인생을 살게 됐다. 김씨의 이번 석방은 외형적으로는 박삼중 스님 등이 펼친 석방운동에 힘입은 것이지만 일본의 재일교포 문제 접근법이 달라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 재일교포의 일본내 처우 등 한일관계가 종전과 달리 전개될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자신의 석방이 가시화되자 석방을 위해 힘써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삼중스님에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부산 출신인 어머니 박득숙씨와 목재하역부였던 아버지 권명술씨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그는 어릴적부터 유난히 험한 개인사를 갖고 있다. 아버지 권씨가 사망한 3년뒤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성이 바뀌었다.김씨는 소학교에 진학한 이후 조센징이라는 ‘죄’로 멸시와 천대를 줄곧 받았다.결국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이름을 여덟차례나 바꾸었지만 번번이 들통나 직장에서 쫓겨났다.일본여성과 결혼했다가 실패하고 항만노무자로 전전하다가 걸핏하면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는 마침내 68년 2월20일 ‘사건’을 저질렀다.당시 마흔살이던 그는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클럽 밍크스에서 “더러운 조센징 돼지새끼”라고 욕하며 빚독촉을 하던 야쿠자 2명을 엽총으로 쏘아 죽인뒤 차량으로 도주,혼카와네의 온천여관에서 투숙객 13명을 붙잡고 88시간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체포된것.72년 1심,74년 2심을 거쳐 75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인질극을 벌이면서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경찰관의 차별을 성토하고경찰의 사과와 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일본언론은 김씨를 흉악범으로 몰았으나 여관주인은 당시 김씨가 준 시계를 아직도 보관하면서 그의 인간미를 얘기한다. 김씨는 수감후 어머니에 의지해 살아왔으나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출소를보지 못한채 지난해 11월 유명을 달리했다. 김씨의 비극적인 인생은 비단 김씨 자신 뿐만 아니라 재일교포의 삶을 단면으로 보여준다.이 탓에 90년대 들어 한일 양국에서 김씨의 스토리가 영화와TV 등으로 자주 다루어졌다. 김성호기자 kimus@
  • 통계로 본 98년 인구동태

    통계청이 발표한 ‘98년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남녀 모두 결혼 시기가늦어졌고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들의 이혼비중이 13.2%로 10년 전에비해 2.8배나 높아졌다. ■출생아 수는 줄고 성비는 확대 98년 연간 출생아 수는 64만6,000명으로 97년의 68만명보다 3만4,000명이 줄었다.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13.8명. 출산 연령의 여성인구가 줄고 범띠해에 여자아이의 출산을 기피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여아 100명당 남아 수인 출생성비도 110.2로 다소 높아졌고 대구가 116.5로 가장 높았다. 학업·직장생활 등으로 혼인연령이 높아지며 30대 산모의 출산율이 10년전보다 거의 배 가까이 높아졌다.30∼34세는 89년에 1,000명당 44명이 출산했으나 98년에는 72.9명으로 늘었다.반면 20∼24세는 89년 88.9명에서 98년 48명으로,25∼29세는 89년 163.8명에서 98년 153.9명으로 줄었다.여성의 평균출산나이도 89년 26.8세에서 98년 28.5세로 높아졌다. ■40대 후반 남자사망률 여자의 3배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 5.3명으로 3년째 같은 수준.98년에 사망한 사람은 25만명으로 97년보다 1만4,000명이 늘었다.연령별 사망률 성비는 10대 후반부터 남자 사망률이 여자의 2배를 넘기 시작해 40∼50대는 약 3배에 이른다. ■동갑내기 결혼이 늘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는 7.8건으로 97년보다 0.2건 줄었고 89년의 9.3건보다는 1.5건이나 줄었다.평균 초혼나이는 남자 29.0세,여자 26.2세로 89년에 비해 남자 1.2세,여자는 1.4세 많아졌다.평균 재혼나이는 남자 42.2세,여자 37.4세였다.93년 이후 증가세에 있던 남자 초혼,여자 재혼은 약간 줄었다. 남자가 외국 여자와 결혼한 비중은 2.1%이며 이중 중국 여자와 결혼한 비중이 1.4%로 가장 많았다.조선족 여자와 결혼한 농촌총각이 많기 때문이다. ■40대 이후 이혼 급증 인구 1,000명당 혼인·이혼건수인 조혼인율과 조이혼율 대비 결과,89년에는 9.3쌍이 결혼할 때 1쌍이 이혼했지만 98년에는 3쌍이결혼할 때 1쌍이 이혼, 이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이혼율은 남자는 40대전반·30대 후반, 여자는 30대 후반과 전반이 가장 높았다.평균 이혼연령은남자 40.1세,여자는 36.5세.남녀 모두 50세 이후 이혼율이 크게 늘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경북도·시군 性차별 법규 개선

    경북도와 일선 시군의 자치법규와 행정규칙중 성차별을 초래하는 내용이 모두 정비된다. 10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는 현행 법령을 비롯,자치법규와 행정규칙 가운데 남녀 불평등 또는 여성차별을 조장하는 법규와 규칙 26건을 개선하기로 했다. 내용별로는 기혼여성에 국한되는 의미가 있는데다 여성을 비하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부녀’라는 단어를 ‘여성’으로 바꾸는 등 용어 변경이 8건,민법과 호적법의 재혼 금지기간 등 가족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6건,공무원시험·인사 관련 사항 12건 등이다. 법규별로는 민법을 비롯한 법령이 12건,도 의용소방대 설치 조례 등 도 자치법규 7건,기타 중앙 및 도의 행정규칙 7건 등이다. 도는 이중 조례,규칙 등 자체 처리가 가능한 10건은 가까운 시일내에 바로잡고 법령 등 자체 처리가 불가능한 16건은 중앙부처에 건의하거나 유관기관·단체간 협의를 통해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대한매일 95년] 대한매일신보와 배설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준 몇명의 외국인 중에는 본보 대한매일신보(대한매일)를 창간하여 항일구국 언론의 선봉이 된 영국인 배설(裵說·영국명 베델)과 일제 침략기에 언론인으로 한국에 특파되어 ‘대한제국의 비극’을 쓴 캐나다 출신의 매켄지(Mckenzie)그리고 고종황제의 밀령을 갖고 헤이그를 찾는 등 국권수호에 큰 역할을 하고 ‘대한제국멸망사’를 쓴 미국인 헐버트(Hulbert)를 빼놓을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외국 벗들“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남기면서 ‘대한매일’을 키우다가 이 땅에 묻힌 배설에 대해 매켄지는 이렇게 썼다. “일본인들은 갖은 수단을 다 부려 그의 생활을 위협했으며, 그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렸다. 그의 우편물은 하나도 거르지 않고 검열을 받았으며, 그가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은 여러가지 구실로 위협을 받거나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 주위에는 첩자들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놀라운 끈기를 보여주었으며 세월이 흘러도 굴복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비극’·신복룡 역주)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사’의 헌사에서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精氣)가 어둠에서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란 애정과 국권회복의 희망을 기대하였다.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이 이토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대한매일)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는 개탄을 남겼다. 외국인 중에서 우리를 돕거나 해치는 입장이 이토록 달랐다.‘잊고 있는’잊어서는 안될 인물’배설이 우리 애국지사들과 손을 잡고 본보를 창간한 지 18일로 95주년이 된다. 20세기 마지막 생일을 맞아 배설의 일화와 유족 관계를 추적해본다. 배설생일과 한일 기념일 배설은 친한배일(親韓排日)을 ‘운명적’으로 하여 태어난 듯하다. 그의 생일 11월3일은 그가 그토록 증오한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같은 날이고 후일 한국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던 날과 더불어 같은 날이다. 배설의 한국 사랑은 남달랐다. 일제의 농간으로 상해에서 3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후일 그의 비문을 쓴 장지연과 통음을 한 다음날 서둘러 한국으로돌아와서 다시 항일의 붓을 들었다. 그리고 심장병을 얻어 한살 아래인 부인 모드게일(Maude Gale)과 와아들 허버트 오웬을 남긴 채 37세의 짧은 생애를 접었다. 모드 게일은 남편이 죽은 뒤에도 “나는 결코 망부(亡夫)의 사업을 계속 하겠다”면서 사재를 털어 ‘대한매일’의 경영에 바쳤으며, 어린 아들에게 부친의 뜻을 잇도록 하겠다면서 한복을 입히고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매일’을 탈취하고 강제합병에 이르자 오웬을 데리고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영국에서 90세까지 살다가 1965년 7월2일에 사망하고, 아들은 어머니가 죽기 전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한국정부는 1968년 3월1일 배설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오웬은 첫 부인과 사별하고 도로시 여사와 재혼하여 딸 수잔과 아들 토미를낳고 1965년 사망하였다. 1968년 7월 주영 한국대사관이 배설 유족찾기에 나서 런던타임스의 도움으로 도로시 여사를 만났을 때 그녀는 시아버지가 ‘대한매일’사옥에 걸었던 낡은 태극기 등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녀는 1995년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당대 최고의 논객 참여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에‘대한매일’에는 외국인 배설과 함께 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등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항일 우국지사들이 모여 피끓는 항일논조를 펼쳤다.한국병탄 과정에서 ‘눈엣가시’와 같은 ‘대한매일’에 일제는 배설과 양기탁을 재판에 회부하는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지만, 열혈지사들은 이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기우는 국운을 지사 몇 사람이 버티기에는 힘이 겨웠다. 배설의 죽음에 양기탁의 조시는 지금도 후학들의 심금을 울린다. 대영(大英)남자가 대한에 와서 한 신문으로 깜깜한 밤중을 밝게 비추었네 온 것도 우연이 아니건만 어찌도 급히 빼앗아갔나 하늘에 이 뜻을 묻고자 하노라. 정명(正名)을 회복한 대한매일신보사는 금세기마지막 창간일을 맞아 삼가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선생 등 선각들의 애국혼을 기리며거듭 바른 글 정신을 다진다. 김삼웅 주필kimsu @
  • 인터뷰-SBS ‘해피 투 게더’ 검사역 송승헌

    한여름 못지않은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8일 오후 서울 사직동의 한 골목. SBS가 ‘토마토’후속으로 오는 16일부터 방송하는 ‘해피투게더’(극본 배유미,연출 오정록)의 7회분 촬영이 한창이었다.‘해피투게더’는 재혼가정의 이복 남매 5명이 13년만에 만나 형제애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가족드라마.이날 촬영분은 극중 검사인 셋째 지석(송승헌)이 연인 수하(김하늘)의 집앞에서 화가 난 그녀를 달래는 장면이다.김하늘의 대사가 길어 발음이 엉키는바람에 대여섯차례 NG가 났다. “주로 문제아나 대학생 역할을 하다 나이도 서너살많고 카리스마까지 갖춘 전문직을 연기하려니 쉽지 않네요” 반팔 차림조차 거추장스런 날씨에 검은 양복에다 넥타이까지 단정히 매고 촬영을 마친 탤런트 송승헌(22)이 짐짓엄살을 부린다. 지석은 부모가 없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해 검사가된 인물.올곧은 성품이지만 의부가 데려온 동갑내기 형 태풍(이병헌)에게만은 쌀쌀하다.수하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에 놓인다. 처음 배역을 제안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는 것.그때 매니저가 던진 말이 그를 자극했다.“연기로이병헌을 이길 수 있다면 해라” 실제 이병헌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드라마 ‘아름다운 그녀’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먼저 “형이라고 불러도 되느냐”며 친한 척(?)해 인연을 맺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는 걸 느껴요” 지금까지는연기를 직업으로 여기지 않았다.그러나 이제는 나이들어서도 오래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때문에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인기란있다가도 없고,없다가도 다시 생기지만 연기력이 한계에 부딪히면 철저하게외면받는 걸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청춘 스타’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자진반납하고 ‘진짜 연기자’로 탈바꿈하려는 그가 ‘해피 투게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역경을 딛고…] 고대에 10억 기중한 최병순할머니 육필수기(7)

    나는 곧 그 집의 자랑거리가 됐다.일에는 빈틈이 없었다.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다.못쓰는 이부자리를 빨고 다려 꾸미고,풀로 다듬고 물들여 새것으로 만들고,밤을 새가며 저고리도 만들어 주니 ‘복덩어리’를 얻었다며좋아했다.주인이 인정을 해주니 나도 힘드는 줄 몰랐다. 하지만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주인집이 이듬해 부도가 났다.온갖 패물에 전화까지 내다 팔아야 할 정도였다.주인은 아이들 차비는 못줘도 내 월급 1만원은 거르지 않았다.그런 주인이 고마워 월급 일부를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었다.내가 뭘 도와야 할까.생각 끝에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주인집가족들은 “한 식구인데 왜 나가느냐”고 말렸다.나도 떠나기 싫었다.정말가족처럼 정든 사람들이었다.하지만 떠나는 것이 돕는 길이었다.7개월 만이었다. 몇개월 뒤 5·16이 일어났다.사회가 어수선한 탓인지 마땅한 일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암표 장사를 시작했다.명동극장 주변에서 보름쯤 했는데 단속때문에 그만두고 하숙집으로 들어갔다.열일곱 식구의 수발을 해야 했다.고된 일이었다.하루에 2시간도 못잤다.손가락 마디가 갈라지고 발에는 얼음이 박였다.그때 발톱 10개가 모두 없어졌는데 지금도 그대로다.10개월쯤 하다 일을 그만두었다.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주인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집을 드나들 때마다 연탄의 개수를 셌다.언젠가 “연탄 한 장이 없어졌다”며의심을 하길래 싸움을 하고 나와버렸다.그 어려움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아온 나인데,억울하고 분했다.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목이 메고 말문이 막힌다. 그 뒤 보모 자리를 얻었다.박정희대통령 영부인인 육영수여사의 친척 뻘 되는 사람의 집이었다.아이가 조금 자라자 육여사의 이모라는 분이 함께 살자고 했다.이른바 침모 생활이었다. 여간 까다로운 분이 아니었지만 지극 정성으로 돌보니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그 분은 청와대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친척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재혼을 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소개받은 사람은 용산에 사는 한 노인이었다.조그마한 가게 하나를 갖고 있었을 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었다.4남매가 있었지만 모실 만한 형편도 안됐고 돈도 없었다.육여사의 이모도 내키지 않아 하다가 “사주팔자를 봤더니 궁합이 좋더라”며 적극 권했다. 재혼을 했다.내가 48세였고 노인은 60세였다.다른 큰 이유는 없었다.다만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출옥 후 3년간 옷 하나 해 입지 못하고 번 돈 35만원으로 장사 밑천을 댔다. 문방구,벽지,철물 등을 파는 잡화점을 내고 전차를 타고 다니며 배달도 직접 나갔다.당시 용산에 있던 사창가에서 홑이불을 걷어다 한장에 20∼30원씩받고 빨아 가게 밑천을 댔다.열심히 했더니 가게가 커지기 시작했다. 10여년을 고생했다.집을 사고 시골에 땅도 살 만큼 돈을 모았다.남편의 자식들도 돌보았다.공장을 짓도록 돈도 대고 혼인에다 시동생들 장례까지 집안 대소사를 다 치렀다.작은 아버지의 사업 자금도 댔다.그사이 남편은 중풍을 맞았다.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장사를 계속했지만 남편이 치매 증세까지 보여 병간호를 위해 가게를 그만두었다.
  • ‘98 사회통계로 본 생활상 어떻게 달라졌나-달라진 결혼관

    통계청 조사결과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결혼에 대해서는 긍정적,이혼에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미혼여성을 중심으로 결혼을 ‘선택 사양’으로 여기는 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3.5%가 “반드시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반대하는 사람은 1.3%에 불과했다.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응답은 23.8%였다. 찬성의 경우 도시(71.3%)보다는 농촌(83.2%)이,여자(67.9%)보다는 남자(79. 5%)의 비율이 높았다.배우자와 사별한 사람(86.7%)이 특히 긍정적이었으며이혼한 사람도 55.7%가 찬성,눈길을 끌었다. 여자의 경우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응답이 28.9%로 남자(18.4%)보다 훨씬 높아 경제적 능력 향상으로 달라진 여성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미혼여성은 절반 가까운 43.3%가 이같은 반응을 보였다.미혼남성(23.0%)의 2배 가까운 수치다. 이혼에 대해서는 10명중 6명(60.3%)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반대했다.찬성은 8.6%에 불과했다.사별한사람(77.8%)의 반대가 가장 컸다.이혼한 사람도3명중 1명(34.3%)이 반대,적지않은 수가 이혼을 후회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단 남녀간에 차이는 있었다.이혼한 여자는 반대(28.3%)와 찬성(24.7%)이 비슷한 반면,남자는 반대(41.4%)가 찬성(18.6%)보다 훨씬 많았다. 재혼에 대해서는 찬성(19.9%)과 반대(19.2%)가 비슷하게 나타났다.남자(23. 1%)가 여자(16.8%)보다 많이 찬성했다.이혼한 남자(30.3%)의 찬성이 이혼녀(10.4%)보다 훨씬 많은 것도 특징이다.특히 사별한 사람들(30.3%)이 재혼을많이 반대했는데,남자(17.7%)보다 여자(31.8%)가 더 ‘지조’를 보였다. 김상연기자
  • [화제의 책]『두 아내』전2권 /정소성 지음

    조국의 분단문제에 주목해온 중진 소설가 정소성씨(단국대 교수)가 ‘두 아내’(전2권·도서출판 찬섬)란 장편소설을 냈다.개인사를 통해 전쟁의 아픔을 그리되 체제가 아니라 삶의 기본단위인 가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주인공 철우는 아내를 북에 둔채 남에 정착한 지식인 출신의 사내.한국전쟁전 상머슴의 딸 가영과 결혼한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 불가항력으로 남쪽에남게 되고,희애란 여자를 만나 재혼한다.희애는 옛날의 곁머슴이었던 떡쇠의 딸.철우는 떡쇠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자리를 잡으나 갈수록 북의 아내를 잊지 못한다.두 아내를 지켜야 하는 철우는 결국 두만강을 통해 남과북을 오가게 된다.일종의 상황비극인 셈이다. 작가는 전쟁의 처참함과 개인의 의지로 살 수 없는 사회의 혼란상을 특유의 탄탄한 문체로 속속들이 그려낸다.작가는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 억수같은 빗줄기를 맞으며 피난대열에 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쟁 당시를회고한다. [정소성 지음 도서출판 찬섬 각권 7,500원]김종면 기자
  • 北 처자식 호적없으면 양녀 상속

    실향민이 북에 있는 가족에게 재산을 상속하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호적(戶籍)이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禹義亨부장판사)는 11일 96년 숨진 실향민 金모씨(당시 85세)의 유산관리인 李모씨가 상속권을 주장하는 양녀 유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등기 청구소송에서 “金씨가 ‘북한에 있는 처자식에게 재산을 양도할 때까지 李씨를 유산관리인으로 정한다’고 작성한 유서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金씨가 남긴 유서에는 작성 연월일과 주소가 없어법적효력이 없는 데다 金씨가 월남한 뒤 자신만 호적에 올렸기 때문에 북한에 처자식을 남겨뒀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따라서 월남 후양녀로 입적된 유씨를 유일한 상속인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金씨가 법적 효력이 있는 유서를 남겼거나 월남 이후 북한에 남겨둔 가족이 등재된 호적 또는 월남 전 호적을 갖고 있다면 상속이 가능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6·25 때 부인과 다섯 딸을 북에 두고 월남한 金씨는 64년 白모씨와 재혼한 뒤 白씨가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두 딸 중 큰딸 유씨만 82년 양녀로 입양했다.4년 뒤 부인 白씨가 사망하자 金씨는 병원 간호보조사 출신인 李씨의 간병을 받아왔다.
  • 아버지 재혼은 찬성,어머니는 왠지…설문조사 결과

    결혼한 자녀들은 아버지의 재혼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반면 어머니의 재혼에 대해서는 아직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양대 생활과학연구소 서병숙교수(61·가정관리학과)가 최근 전국에거주하는 기혼남녀 277명(남자 153명,여자 124명)을 대상으로 ‘노인 재혼에 관한 기혼자녀의 지각’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어머니 재혼에 대해서는 277명중 14.8%인 41명만이 찬성을,35%인 97명은 본인의 생각에 맡기겠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냈다.반면 아버지의 재혼에 대해서는 35%인 97명이 찬성을,35.7%인 99명은 본인의 의사에 맡기겠다는 유보적인 답변을 했다. 이처럼 어머니 재혼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에 대해 서교수는 자녀들 입장에서는 의붓아버지와의 관계의 어색함,할아버지 봉양으로 재혼후 더 번거러워질 것라는 예상과 주변의 시선과 이목 등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재혼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면으로는 노부모의 삶에 활기와 의욕을 주며 서로 의지할수 있어 자녀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를 꼽았다. 남녀 재혼시 고려해야할 항목으로 건강·경제력·성격이 우선 순위를 차지했다.이에 대해 서교수는 남성보다 여성 특히 맏며느리들이 재혼시 여러가지 항목에 대해 신중하고 자세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는 여성들이 노인부양의 주체가 됨으로써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교수는 “조사결과 아직도 재혼하면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며 “재혼을 고려하는 노인과 자녀들에게 재혼으로 인한 긍정적부정적 요인들에 대한 실제적인 자료를 제공,만족스런 재혼설계를 돕고 싶어조사를 하게됐다”고 밝혔다.姜宣任
  • 李文烈씨 北아버지 편지 받아

    소설가 李文烈씨(51)가 북한에 살고 있는 아버지 李元喆씨(84)로부터 생이별 후 두번째 편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李씨는 13일 “지난해 12월초 중국 옌지(延吉)시에 사는 한 교포로부터 아버지의 친필 편지를 전해 받았다”면서 “아버지는 재혼해 5남매와 함께 함경북도 어랑군의 한 마을에서 살고 계신다”고 말했다. 李씨의 소설 ‘영웅시대’의 주인공이기도 한 李元喆씨는 수원농대 학장을역임했으며 9·28 서울수복 때 월북했다.李씨는 87년 친필편지를 처음 받아아버지의 생존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 쿡 英외무 성추문 파문

    │런던 AFP 연합│지난해 조강지처를 버리고 여비서와 재혼해 화제를 뿌렸던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의 무질서한 사생활이 9일 도마 위에 올랐다. 쿡 장관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전부인 마거릿 쿡 여사. 쿡 여사는 선데이 타임스 연재물을 통해 전 남편인 쿡 장관이 간통을 일삼고 폭음을 하는데다 정치적 지조도 잃어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쿡장관이 재혼한 여비서 게이너 리건을 만나기 전까지 무려 5명의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게다가 쿡 장관은 정치적 입신을 위해 좌파노선과 반핵주의 원칙을 버렸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으며 토니 블레어 총리 때문에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쿡장관은 이에 대해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다고 외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 TV드라마 단골메뉴는‘부도덕’/방송사 제작‘가이드라인’있으나마나

    ◎현실과 거리먼 일그러진 소재/상식 벗어난 지나친 상황 설정/시청자 판단조차 흐리게 할 위험 한 유부남은 자신의 아기를 키우는 옛 연인 근처를 배회하고 그의 부인은 첫사랑 남자의 아이를 가진 채 결혼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남자는 친구와 살던 여인과 동거하고 배다른 자매는 한 남자를 놓고 사랑다툼을 벌인다. 요즘 방송사 드라마의 풍속도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소재들이 판친다. 선이 굵은 서사물보다는 일상 생활을 다룬 아기자기한 소품이 잘 먹힌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재가 너무 일그러진 관계에 몰려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SBS­TV의 아침드라마 ‘포옹’은 너무 얽히고설켜 있다. 인철(이영하)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 옛 연인인 소원(김미숙)을 우연히 만나 갈등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이혜숙)는 옛 남자(송영창)의 애를 임신한 채 시집왔다는 고민을 안고 산다. 이쯤되면 부도덕의 백과전서라 할 만하다. 이런 구도로 2달을 끌고 있다. 아침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주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보듯 뻔하다. 그리고 모처럼 아침드라마에 불기 시작한 건전한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 파급효과마저 우려된다. 한 시청자의 비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눈길을 끌려고 상황을 너무 과장해서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이런 드라마를 보다보면 극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한듯 착각하고 판단기준이 흐려져 ‘부도덕의 덫’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 드라마 왕국 MBC­TV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19일 끝난 ‘수줍은 연인’도 타락의 유혹과 멀지 않다. ‘홀로된 아버지의 재혼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기획의도는 어느 정도 살린 것 같다. 하지만 명일(감우성)이 친구 주환(장호일)과 동거하던 영선(심혜진)과 함께 사는,보통의 도덕적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여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창 뜨고 있는 주말극 ‘사랑과 성공’은 어떤가. 콩쥐팥쥐 아류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벗어날까 하는 궁금증과 맞물려 출발부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변호사 태우(박상원)를 둘러싼 이복자매 간의 갈등에 무게가 실리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에 관해 여성민우회 박봉정숙 TV모니터팀 간사는 “물론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시각 자체가 너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밀실에 갇혀 있는 것은 문제”라면서 “말초적 소재는 예전부터 입이 닳도록 제기한 문제이기에 이제는 방송사 자체에서 정화할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9월 KBS의 발표에 이어 SBS도 최근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취재·제작의 기본자세 항목에 이런 게 있다.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미칠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제1장 방송제작의 일반지침 중 취재 제작의 기본자세). 방송사들은 이런 제작지침을 외부 의식용이 아니라 제작과정에 실제로 녹아들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양육비 받지 못하자 6세 조카딸 생매장/30대 고모부 영장

    전남 담양경찰서는 2일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섯살배기 조카딸을 때린 뒤 생매장한 김성일씨(32·무직·담양군 담양읍 백동리)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출산을 앞둔 김씨의 아내 남현숙씨(36)를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부부는 사별후 재혼한 처남댁에게서 양육비로 선금 200만원을 받고 지난달초부터 남양을 키워왔으나 약속날짜인 지난달 30일 나머지 100만원을 받지 못하자 자신의 집 안방에서 남양을 마구 때려 실신케 했다. 김씨 부부는 남양을 동광주병원으로 옮겼으나 뇌사판정을 받자 곧 퇴원시켜 담양군 금성면 봉황리 뒷산에 생매장했다.
  • 야쿠자 살해 30년째 복역/金嬉老씨 새달 석방될듯

    ◎‘金의 전쟁’ 30년만에 마감/김 대통령 방문계기 일 성의 지난 68년 한국인 차별에 격분,일본인 야쿠자 2명을 살해한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0년째 복역중인 金嬉老씨(70)가 다음달초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계기로 가석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29일 “한·일 관계를 고려,金대통령의 방일 기간중 일본 법무성이 이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일본 법무성은 지난 8월 朴三中 스님(55·부산 자비사 주지)이 金씨의 가석방에 필요한 신원 인수보증서를 제출하자 현재 이를 심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일교포 金嬉老 석방 후원회’의 李在鉉 대표(52·서울 관악구 봉천 3동)는 지난 5월 金대통령 앞으로 金씨 석방 탄원서를 보낸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나카무라 쇼지부로(中村正三郞) 법무성 장관에게도 탄원서를 송부했다.金씨가 석방되면 한국에서 살수 있도록 그의 일본의 친지와 부인 頓卿淑씨(51) 등이 인천 부평에 자그마한 아파트를 마련해 놓았다. 金씨는 39세이던 지난 68년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돼지 같은 조센진”이라고 자신을 모욕하던 이나카와 폭력단 소속 야쿠자 2명을 엽총으로 사살했다.이어 45㎞ 떨어진 후지미 여관으로 달아난 그는 20여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고 ‘재일한국인 차별대우 시정’을 요구하다 5일만에 기자로 변장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金씨는 75년 11월 무기징역이 확정된 뒤 구마모토(熊本)형무소에서 30년째 복역중이다.일본 최장기수인 金씨는 아직도 법정대리인과 가족 이외에는 면회가 금지된 채 지내고 있다. 金씨는 지난 80년 3월 頓씨와 옥중재혼했다. 사건 당시 金씨에게 “일본인에게 잡히느니 자결하라”고 권유했던 어머니 朴득순씨는 지금 95세의 고령으로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 부모 모시는 자녀 상속 더 받는다/법무부 민법 개정안

    ◎지분 50% 가산… 부양비 부담때도 혜택 앞으로 부모를 직접 모시거나 부모와 함께 살지는 않더라도 부양비의 50% 이상을 부담하는 자녀는 다른 형제들보다 많은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또 동성동본 금혼제도와 일정 기간동안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폐지되는 대신 근친혼 금지제도가 신설된다. 법무부는 27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민법(친족·상속편)개정안’을 확정했다.이 법안은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상속인(부모)과 함께 살면서 부양했거나 부양비의 50% 이상을 부담해온 상속인(자녀)은 그렇지 않은 상속인보다 50%의 유산을 더 받는다.이에 따라 유산배분과 관련한 유언이 없을 경우 부양 자녀와 비부양자녀는 각각 1.5:1의 비율로 유산을 차등 상속받게 된다. 현행 민법은 유언이 없을 경우 2명 이상의 상속인에 대해 부양 및 장·차남,출가한 딸 등에 관계없이 유산을 똑같이 분할토록 하고 피상속인의 배우자에 대해서만 50%를 더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사문화된 동성동본 금혼제를 폐지하는 대신 △8촌 이내의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6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와 배우자의 6촌 이내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 △6촌 이내 양부모계의 혈족과 4촌이내 양부모계의 인척 간에는 혼인을 금지하는 근친혼 금지제도를 신설했다. 이혼한 뒤 6개월동안 여성의 재혼을 금지했던 규정이 폐지되고 남편에게만 인정했던 친생자 부인(否認)소송 제기권을 아내에게도 부여했다. 6세 미만의 아이를 입양할 경우 친부모 및 혈족과의 친족관계를 청산하고 양친과의 친족관계만을 맺도록 하는 친양자제도를 신설,양자(養子)의 신분을 노출시키는 현행 입양제도의 단점을 보완했다. 이밖에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보다 많을 때 상속을 거부할 수 있는 기간도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서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로 조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노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풍조를 다소나마 개선하고 개인의 존엄성과 남녀평등 원칙을 실현하는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 재혼녀­총각 짝짓기 급증/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사회적 편견 줄어 총 재혼건수의 26%/평균 교육년수 9.4… 자녀수는 1.6명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한 여성이 총각과 다시 백년가약을 맺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아들 골라낳기는 경상남도가 가장 심하고 전라북도는 거의 차별하지 않는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96년 기준)’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남아선호 경향,아직도 뿌리깊다=전국의 평균 출생성비는 111.7이다. 여아(女兒)가 100명 당남아는 111.7명이 태어난 것이다. 8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자연적인 평균 출생성비(105∼106)와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지역별 차이도 두드러진다.경남이 117.4로 가장 높고 경북(116.2) 대구(116.1) 부산(115.5)이 뒤를 이었다. 전북은 106.4로 자연적인 출생성비에 가장 근접했다. ■총각 고르는 재혼녀 늘어났다=재혼의 형태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혼녀나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총각과 재혼하는 비율이 총 재혼 건수의 26.0%를 차지했다. 반대의 경우(26.9%)와 엇비슷하다. 70년에는 재혼남성­초혼여성 비율이 48.2%,재혼여성­초혼남성이 10.6%였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재혼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크게 준 덕분이다. ■검은 머리,파뿌리되기 힘들다=전체 이혼건수 중 10년 이상 동거한 부부의 이혼율이 44.2%를 기록했다. 85년 27.8%,90년 33.0%,95년 43.4% 등 점차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평균 이혼연령도 90년 33세에서 96년 35.2세로 덩달아 높아졌다. 30∼40대 주부들은 가사일에만 매달리기보다는 경제적 자립 기반을 닦는 편이 좋을 듯하다. ■기타=여성의 평균 교육년수는 9.4년으로 남자보다 1년10개월 짧지만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여성 1명이 일생동안 낳는 평균 자녀수는 1.6명이며,여성 30명 중 1명이 대학생이다. 10만명의 아이가 태어날 때 20.3명의 산모가 사망한다. 일본 독일과 비슷하지만 중국(95명) 필리핀(280명) 이라크(310명) 등 개도국보다는 훨씬 적다. 피임(97년 기준)방법은 난관수술(29.9%) 자궁내장치(16.4%) 콘돔 착용(18.8%) 정관수술(15.8%) 먹는 피임약(2.2%)순이었다.
  • 申采浩 선생 며느리,양손자 고소/“친손 아니면서 장손 노릇”

    ◎5,400만원 손해배상 요구 독립운동가 丹齋 申采浩 선생의 며느리로 단재의 전기를 펴내기도 한 李모씨(54)는 1일 선생의 양손자 申모씨(51)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李씨는 소장에서 “申씨가 선생의 친손자가 아니면서 마치 장손인 것처럼 행세해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5,4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단재 후손들 사이의 적자논쟁은 지난 91년 단재의 외아들 수범씨가 사망하면서 불거졌다. 수범씨는 한국전쟁 때 부인과 1남3녀를 북에 남겨두고 월남한 뒤 조모씨와 결혼하면서 당시 14세였던 申씨(당시 성은 黃)를 자신의 가호적에 올렸다. 69년 말 조씨와 헤어진 수범씨는 세번째 부인 李씨와 재혼,1남1녀를 두었으며 75년 원호적에 혼인신고를 했다. 수범씨가 세상을 떠나자 申씨는 가호적을 근거로 자신이 단재의 장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李씨의 아들이 법원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96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申씨는 수범씨의 친생자는 아니지만 양친자관계는 성립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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