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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속속 드러나는 애타는 사연들

    남북 이산가족들의 서울 상봉 이틀째를 맞은 16일 남과 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숨겨졌던 사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鄭昶謨·68)씨의 남과 북 가족에는 화가가 둘이나 더 있었다. 이날 정씨를 처음 만난 조카 진규(鎭圭·32·전북 전주시 효자동)씨는 전라북도 미술전에서 입선하는 등 현재 전주에서 활발히 작품활동을 펴고 있다.진규씨는 50년만에 만난 삼촌으로부터 북에 있는 삼촌의 큰아들 성혁씨(34) 역시 화가라는 소식을 들었다.정창모씨는 전통산수화를 주로 그리며 진규씨 역시 현대 수묵화를 그려 화풍도 비슷한 편이다. 또 외증조할아버지인 고(故) 이광렬 화백이 고암 이응로 선생을 가르쳤다는 것도 북에서 온 삼촌으로부터 처음 듣는 집안 내력이었다. ■아직도 까만 머리에 비녀로 쪽을 진 고승남씨(78·강원도 강릉시)는 50년만에 내려온 조카 민병승씨(69)로부터 북에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50년을 수절하고 살아온 고씨는 “남편이 재혼했다는 소식에 앞서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면서 “영감이 북에서 재혼해 아들 3형제를 둬 며느리도 둘을 보았다는 말에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의학박사가 돼 돌아온 형 신승선씨(69)를 만난 창선씨(62)는 형의막내아들 귀남씨(24)가 평양교예단원으로 두 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던사실을 처음 들었다. 형으로부터 널뛰기 묘기를 보인 사람중 하나가 바로 귀남씨였다는사실을 전해들은 창선씨는 “미리 알았으면 조카가 서울에 왔을 때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면서도 “형이 평양의 대형병원외과팀 총책임과장이고 조카는 교예단원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뒤늦게 상봉장을 찾은 황모씨(75)는 북에서 온 동생(68)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지난 50년 동안 자식들에게조차 존재를 알리지 않던 동생이었다.황씨는 6·25 당시 북으로 간 동생 때문에 자식들이 냉전시대의 산물인연좌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동생과의 만남을 포기했었다. 3년 전부터 북에 있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매에 걸렸지만 정작동생을 만날 자신은 없었다. 수없이 망설이던 황씨는 결국 뒤늦게 상봉장을 찾았다. 이창구 김재천기자 window2@
  • 한민족 하나로 남북이산상봉/ 남측 부인 찾은 북녘 남편

    “여보…,당신 맞나…,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15일 남북 상봉이 이뤄진 서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는 분단 반세기를 뛰어 넘는 ‘망부가’(望婦歌)가 가슴을 울렸다. 고희(古稀)를 넘어 황혼길에 남녘 아내를 찾아온 3명의 북녘 남편들.리복연씨(73·본명 이승철)와 김희영씨(72)는 반세기 동안 가슴 한쪽에 묻어두었던 남녘의 아내를 만나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흘렸다.처음 만남은 다소 어색했지만 혈육보다 가까운 ‘부부의 연’을 갈라 놓지는 못했다. 아내 이춘자씨(71·경북 안동시 동부동)를 만난 리복연씨는 “그동안 혼자 고생이 많았지”라며 아내의 두 손을 부여잡았다.홀로 두 아들을 키워 온 이춘자씨도 손수건으로 눈물만 훔치다 “건강은 어떠하냐”며 말문을 열었다. 경북 안동군 풍산면이 고향인 리씨 부부가 헤어진 것은 지난 50년여름.남편의 징용을 막기 위해 지난 43년 17·18세의 꽃다운 나이로결혼한 이들은 서울 명동에서 신문지국을 운영하며 이지걸(53)·호걸씨(50) 등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전쟁 중 신문배달용 자전거를 사오겠다며 집을 나간 남편은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인민 의용군에 끌려간 것이다.결국 부인 이씨는 홀로 시장에서 좌판을 하는 등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며 두 아들을 키워냈다. 정춘자씨(73·경기도 이천시 율면)와 북의 남편 김희영씨(72)는 처음엔 제대로 포옹조차 나누지 못했다. 한때 혈육보다 가까운 아내였지만 서로에겐 남과 북에 또다른 남편과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 김씨는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죽은 줄만 알았다”며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 김씨의 등을 두르리며 다른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정씨는 6 ·25전쟁때 남편과 헤어진 후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아들과 함께 8년을 살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재혼했다. 한편 하경씨(74)는 남쪽의 아내 김옥진씨(78)가 상봉장에 나오지 않아 만남이 좌절됐다.하씨는 상봉장에 나온 남쪽의 아들 하정기·문기씨에게 아내의 안부를 물으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특별취재반
  • 남북이산상봉/ 김일성대학 교수 조주경씨

    “어머니,건강이 어떠세요” “너도 나이먹고 이렇게 늙었구나.아이고 불쌍해라…” 김일성대학 조주경 교수(68·경북 영양군 영양면 출생)와 어머니 신재순씨(88·부산시 서구 서대신동)는 주름살 가득한 서로의 얼굴을비비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신씨는 “죽은 줄 알고 가슴에 묻었던 네가 훌륭히 자라준 것이 너무나 고맙구나”라면서 아들의 품에 안겼고,조씨는 “어머니는 젊어서 아버지를 여읜 뒤 재혼도 않고 오직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혼자사셨는데…,제가 잘못했습니다.죄인이에요”라며 노모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신씨는 “20여년 전부터 부산의 내원정사에서 예불을 빠뜨리지 않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더니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 모양”이라며 아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았다.조씨는 지난 50년 서울대 재학 당시 인민군에 끌려갔다 북한에서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별취재단
  • 남북離散 상봉/ 방북단 이색인물 이색사연

    50년만에 북에 있는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할 남측 방북단 중에는 눈에 띄는 이색인물들이 많다.고령자들은 ‘죽기 전에 가족을만나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바쁜 일정을 묵묵히 소화했다. ◆최종 방북자 명단에 100번째로 턱걸이해 고향인 평양에서 동생 김창협씨(62)와 여동생 경숙씨(55)를 만날 행운을 안은 준섭(俊燮·67)씨는 “꿈에 그리던 동생들을 만나게 되다니 새가 돼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면서 “설레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어제 밤새 뒤척이다가 1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지난 50년 평양제2중 졸업식장에서 징집돼 가족과 헤어진 김씨는 “400명에서 200명,다시 100명으로 명단이 줄 때마다 천길 벼랑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월남한 뒤 재혼해 부부가 함께 방북길에 올라 각각 전 부인과 그자녀들,전 남편의 자녀들을 만날 이선행(李善行·80),이송자(李松子·82)씨 부부는 “둘 다 어제 밤새 잠을 자지 못해 대통령께서 주최한 오찬에서 졸뻔했다”면서 “부부가 각각 북에 있을 때의 가족을만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기구한 운명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 이씨 부부는 “이번에 못가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대통령께서 ‘앞으로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으니 곧 많은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방북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평양 출신 김정호(金貞鎬·91)씨는 “너무 좋아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환갑을 맞은 아들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할지 뭐라 몰라 손목시계와 금반지를 준비했는데 아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 먼저말을 걸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아들이 먼저 ‘아버지’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51년 1·4후퇴 때 피난길에서 지친 부인과 아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가족과 헤어지게 된 평북 영변 출신 강기주(姜基周·91)씨는 방북의 감격을 가누지 못한듯 “그저 기쁠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귀가 어두운데다 걸음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강씨는 “50년만에 만났는데 귀가 어두워 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함남 함흥 출신 장정희(張貞姬·71·여)씨는 “남편(金學九·82·평양 출신)과 함께 방북 신청을 했으나 나만 가게 돼 미안할 뿐”이라면서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는 남편이 아침에 심란한 표정으로 배웅해 마음이 더욱 아팠다”고 털어놨다.장씨는 “북에 있는 여동생에게 결핵약을 선물하려 했는데 의약분업으로 구하기가 힘들었다”면서 “동생이 오랫동안 사탕맛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단음식을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전영우기자 ywchun@
  • 집중취재/ 남북교류 특별법 제정 시급

    *상속-경협등 법적분쟁땐 속수무책.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교류 확대에 따라 가족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보완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8·15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달구고 남북 교류의 활성화를 가져와 이산가족간의 중혼(重婚)과 상속문제,북한의부동산 문제와 남북 문화·경제교류 확대에 따른 이중계약·지적재산권 등 법적 분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법률 적용이나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가능성도 예상돼 법적 문제해결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족법과 관련해서는 ▲고령 이산가족의 중혼인정 여부와 효력 범위 ▲북한주민의 호적취득 여부와 절차 ▲북한 상속인의 상속권 인정여부와 상속대상과 범위 등이 주요 대상이다. 남북교류 증가에 따른 경협이나 관광 등을 통해 남북이 법률상의 갈등을 빚을 개연성도 있다.남쪽의 개인이나 회사가 북한 법정에서 재판받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북한법 전문가들은▲투자보장협정 ▲2중과세 방지제도 ▲결제제도 ▲지적재산권제도 ▲상사 등 민사분쟁 해결제도 ▲기업가들의 안전보장 제도 등에 대한법적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지난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통일정국에 대비,대통령령으로 ‘특수법령과’를 신설했다.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법률문제 등 외국사례연구와 남북한 법령을 비교하며‘통일법’을 준비해 오고 있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도 지난 94년부터 통일에 대비한 사법정책을 마련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따라 예상되는 법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북한법과 사법정책에 대한 연구작업을 계속해왔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무부와 대법원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가족법과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연구를 이제는 공론화해 공감대를 모아 나가야할 때”라면서 “남북 이산가족과 경협과 관련해 예상치 못했던 법적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므로 ‘이산가족특별법’ 등 특별법 제정이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종락기자 jrlee@. *외국의 사례. 중국과 대만은 이미 70년대부터 통일에 대비,법적인 문제를 정비해왔다. 이들 국가는 우선 중혼문제에 대해 87년 ‘중혼에 있어서는 후혼(後婚)이 유효하고 부부가 각기 재혼한 경우에도 중혼한 날로부터 옛 혼인관계가 소멸한다’고 규정했다. 대만은 이 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87년 11월1일 이전에 중혼 또는 사실혼 관계가 있어도 간통죄 처벌을 면해주고 있다. 또 상속문제에 관해서도 대만과 중국은 ‘대륙지구와 대만지구 인민 관계법’에 따라 양국민이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했다. 중국은 상속재산이 중국에 있는 경우 대만거주 상속인은 본인과 대리인을 통해 상속에 참여할 수 있으며 분쟁이 발생하면 중국 인민법원에 제소할 수 있게 했다. 대만은 ‘대만지구와 대륙지구 주민관계 조례’를 통해 훨씬 상세하게 상속문제를 규정하고 있다.중국 주민의 상속권을 인정하되 상속개시 2년이내에 서면으로 상속의사를 표시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상속권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중국인이 대만내 재산을 상속할 경우에도 총액은 200만 대만달러를 초과할 수 없으며 부동산 상속은 불가능하다. 역시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재산권에 대해 ‘동독지역의 토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주에게 반환하고 예외적으로 금전보상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막대한 보상비용으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종락기자. *남북 가족법 어떻게 다르나. 남북한 가족법은 남녀평등과 일부일처제,중혼(重婚) 금지 등 기본원칙에 큰 차이는 없다.그러나 남한은 개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반면,북한은 집단주의 원칙과 혁명적 이념에 기초하고있어 상속·이혼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혼과 이혼=남한은 금치산자(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어 법원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은 자)도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어 결혼할수 있지만 북한은 정신장애자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북한은 또 법적으로 만혼(晩婚)을 장려하고 있다.중혼의 경우 남한은 전혼(前婚)이 해소되면 후혼(後婚)을 인정하지만 북한은 극단적 일부일처제를강조,전혼이 해소되더라도 후혼은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남한은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을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경솔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있다. ◆부모자녀 관계=결혼외 자녀에 대해 남한은 부모의 인지(認知)절차를 거쳐야 결혼중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반면 북한은 결혼외 자녀도 결혼중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계부·계모나 양부·양모와 법적 관계를 맺더라도 친부모와의 관계가 소멸되지 않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새 부모와 관계가 성립되면 친부모와의 관계가 소멸된다. ◆가족과 상속=북한은 지난 55년 호주·호적제도를 폐지하고 남한과다른 신분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남한은 피상속인의 재산 일체를 상속대상으로,채무도 포괄승계(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 승계)가원칙이다.반면 북한은 사실상 소비재에 한정된 개별재산만이 상속대상에 포함되며 채무의 한정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 *사법정책담당관 韓勝판사. “세밀한 부분까지 말할 수 없지만 남북관계의 진척 여부에 따라 호적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법부 차원에서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남북한 사법체계의 통합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한승(韓勝·사시 27회) 판사는 “이산가족의재결합이 현실화하면 복잡한 가족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미 형성된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이산가족 본인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 판사는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라 야기될 가족법적 문제는 크게호적상의 문제,중혼(重婚)관계,상속관계,부모자녀관계가 있다”면서“이 가운데 특히 중혼관계와 상속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어지기 전 맺었던 전혼(前婚)의 인정 여부,전혼에서 태어난 2세들의 입적문제,북한 또는 남한 가족들에 대한 상속 가능 여부 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케이스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이들이 재결합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차분히 준비하면서 법적 문제를 대비해야겠지요” 그러면서도 한판사는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른 가족법적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전망했다. 대법원은 지난 90년대초부터 관련 학계,검찰 등과 함께 ‘특수제도연구위원회’를 구성,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사법통합 방안 등을 연구해왔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소송사례와 예상 쟁점.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산가족의 거리는 한층 가까와졌지만 중혼(重婚)이나 상속,부동산 등 법적 문제들이 현실화돼 이들의 ‘완전한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이로 인한 소송도 잇따라 관련 법규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다. ◆북의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북에 아내와 두 자녀를 남겨둔 채 6·25때 월남,자수성가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S씨(지난달 사망·당시 86세)는 지난 5월 “북에 남은 가족에게 물려줄 재산30억원을 남에서 재혼한 뒤 얻은 자식들이 가로챘다”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했다. 실향민 2세인 Y씨도 지난 2일 “어머니가 북에 있는 큰 형 몫으로 남겨둔 재산을 막내 동생이 가로챘다”며 막내 동생을 상대로 상속등기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살아있는 내 가족,호적에 올려달라=8·15 이산가족 북측 상봉자 명단을 통해 북에 있는 동생의 생존을 확인한 김재환씨(70)는 지난달 27일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했던 동생의 호적을 되살려 달라”며 서울가정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냈다. 호적상에 사망이나 실종선고된 월북 가족의 생존이 확인된 경우,각각 ‘호적정정 신청’과 ‘실종선고 취소신청’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관련 법 정비 시급=남에서 재혼한 사람이 북에 두고 온 아내의 호적을 되살리려면 현행 민법이 금지하고 있는 중혼에 해당된다.남북가족간 재산 상속이나 증여의 경우 남북을 넘나드는 재산반출·반입을 해야하지만 이에 대한 관련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북한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법조계 관계자들은“이산가족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행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록기자
  • 일가족 4명 집안서 피살

    재혼한지 20일만에 어머니와 3자매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10일 오후 5시50분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50 김지흥씨(43·무직) 집에서 김씨의 아내 김은자씨(41)와 자녀 황은정(8),은서(4),선영(2)양 등 일가족 4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모씨(50)는 “남편 김씨가 찾아와 물을 달라고 하면서‘사람이 죽게 생겼다’며 119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해 그 집에 가봤더니 일가족 4명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경찰은 최근 김씨 부부가가정불화로 자주 다퉜다는 주민들의 말에 따라 김씨가 말다툼 끝에 아내 김씨와 3자매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사건 직후 달아난 김씨를 검거해 사건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현장] 만삭 10代농락 ‘인면수심’ 어른들

    7일 낮 서울 서초경찰서 소년계.김모씨(29·미술학원 강사)가 임신 9개월의 조모양(15)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조양은 한눈에도 임산부인 것을 알수 있을 정도로 만삭의 몸이었다. 지난달 26일 인천의 한 여관에서 조양에게 10만원을 주고 조양과 성관계를맺은 김씨는 처음에는 “어떻게 만삭의 소녀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경찰이 조양과 대질 신문을 하자 “잘못했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임신 9개월의 조양은 다음달 20일이 출산 예정일이지만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인천 남동구 동암역 여관촌에서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조양은 “김씨 외에도 한모씨(28·회사원)와 다른김모씨(26·회사원) 등 4명과 5번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다”고 털어놨다. 조양은 지난해 말 남자 친구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가 아이를 뱄으나 지난 4월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에야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서 임신 6개월임을알게 됐다.조양은 “어머니는 4살 때 가출했고 아버지는 6살 때 재혼한 뒤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아버지를 대신해 공공근로를 하며 3살 위 언니와 나를 키워준 할머니를 볼 낯이 없어 아이를 뗄 생각으로 집을 나왔다”고원조교제 이유를 밝혔다. 조양은 인천시 남동구 동암역 여관촌을 전전하며 밤에는 PC방에서 인터넷화상채팅 사이트에서 ‘나 돈 줄 사람만 와요’라는 제목으로 채팅방을 열어 남자들을 찾았다.그러나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는커녕 여관비를 대기도 쉽지가 않았다. 조양은 “배가 불룩하게 나온 것을 보고 아저씨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 ‘산후 조리를 잘 못해서 배가 나왔다’고 대답했다.더러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4명의 남자는 거짓말에 속는 척 하며 성관계를 가졌다.조양은 조사가 끝나자 “제발 할머니에게는 이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뒤 친구의 손을 잡고 불편한 몸을 이끌며 경찰서를 나섰다. 낙태비용을 벌기 위해 나선 임신 9개월의 철부지 소녀까지 성의 노리개로 삼은 어른들을 조사하는 경찰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영우 사회팀기자 ywchun@
  • 월남후 재혼 李善行·李松子부부 방북길에

    “여보,나는 괜찮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북에 두고온 부인과 자식들을 만나요” “고맙구려,당신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의식이를 만날 수 있다니 잘됐구먼” 북한에 가족들을 남겨놓고 각각 월남한 이선행(李善行·80·서울 중랑구 망우2동),이송자(李松子·81)씨 부부가 이산가족 방문단에 모두 포함돼 오는 15일 나란히 방북길에 길에 오르게 됐다. 4일 대한적십자사가 확정한 방북 이산가족 인선 최우선 기준인 ‘부모,배우자,자녀가 생존해 있는 사람’에 이씨 부부가 모두 해당되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이선행씨는 지난달 27일 북에서 보내온 가족 생사확인 명단에서 아내 홍경옥씨(78)와 아들 진일(58),진걸씨(55)가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함경남도 문천이 고향인 이송자씨는 아들 박의식씨(60)의 생존을확인하고 방북단에 포함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왔다. 이선행씨는 “전쟁 당시 청천강 이북에서 중공군이 밀려온다는 소문에 모든 가족이 피란길에 나섰다가 대동강 철교가 끊기면서 생이별을 하게 됐다”면서 “당시 처는 임신중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인 이씨는 1947년 아들 형제를 북에 두고 서울에 있던 남편을 찾아 내려왔다가 38선이 막히면서 자녀들을 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남편의 아내를만나면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이송자씨는 “이번 방문에서 두 가족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 이씨는 “아내를 두고 옛 아내를 만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아내가 이해해주니 고마울 뿐”이라면서 “명절과 어버이날이 찾아오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 만큼 외롭던 우리 부부에게 갑자기 너무 많은 자식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손자,손녀는 몇이나 될까,혹시 증손자가 있을지도 몰라…아들에게는 돋보기,손자에게는 양복,증손자에게는 장남감이 어울릴까” 이선행씨는 벌써 후손들의 선물 챙기기에 바빴다. 이송자씨도 “우리 아들들도 백발이 성성하겠구려,손주들에게는 탐스럽게익은 앞 마당의 복숭아를 따다 주는게 어때요”라며 화답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외언내언]‘이산가족 특별법’

    6·25전쟁때 월남해 자수성가한 8순 노인이 북에 남긴 처자식 몫으로 떼어놓은 부동산을 남에서 얻은 아들이 가로챘다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북에는 노인의 부인과 자식이 모두 생존해 있는것으로 확인됐다.노인은 지난달 사망했지만 그전에 친동생을 특별대리인으로지정,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노인측 변호사는 “북에서 이미 결혼을 했으므로 남한에서의 재혼은 민법상 금지된 중혼(重婚)이다.혼인무효 소송도 내겠다”고 밝혔다. 사회가 이 송사에 주목하는 까닭은 수십억원에 이르는 재산 규모 때문이 아니라 ‘북에 두고온 가족’을 우리 법 체계 안에서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화두를 처음 던졌기 때문이다.현재 남은 이산 1세대가 123만명이니 이곳에서새 가정을 꾸민 이들이 수십만명에 달할 것이다.그 중에는 남한에서 재혼한부부가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한 이들도 상당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가족을 형성했고 그것은 또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북에 두고온 가족’은 개인에게만 가슴앓이로 남았을뿐 사회문제로 떠오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앞의 송사 건에서 드러났듯이 이문제는 더 이상 ‘강건너 불 보듯’할 사안이 아니게 되었다.소유권을 어느쪽에 인정해주느냐는 둘째 치고 노인측 변호사가 중혼문제를 본격 제기하면법원은 당장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혼인관계를 다루려면먼저 북한 당국의 혼인확인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쪽에서 이를 발부해 줄지도 관심거리다.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송사를 제기한 노인쪽을 탓할 일은 아니다.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의 일부를 피붙이,그것도 사정이 상당히 어려우리라고 짐작되는 자식에게 나눠주겠다는 생각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이산가족이 만나거나 소식을 접할 기회가 더욱 늘어날 터이고 남북 양쪽 가족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된다.어차피 지금의 법 체계로는 남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가족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법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분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일인 만큼 어느쪽에도 일방적인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주류라고 한다.그렇다면 ‘이산가족특별법’이라도 마련해 남북에서의 두차례 결혼,그 결과로 생겨난 가족관계와 재산문제 등을해결하는 길을 터주어야 하지 않을까.성급한 제안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분단 극복을 위한 법 제도 정비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때인 듯싶다.
  • 포커스 투데이/베네수엘라 대통령 재선 우고 차베스

    30일(현지시간)실시된 베네수엘라대선에서 집권연정의 우고 차베스(46) 현대통령이 야당연합의 프란시스코 아리아스(49) 후보에 압승을 거두고 재선에성공했다. 차베스대통령은 80% 가량의 개표작업이 진행된 이날 밤 11시 현재 총 유효득표수의 59%(289만 6,948표)를 얻어 37%(182만 8,583표)에 그친 아리아스후보를 제치고 임기 6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1992년 2월1만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자 대중민주주의에 뿌리를 둔 정치인.1954년 베네수엘라 서쪽 농촌마을인 사바네타에서 태어났으며,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975년 소위로 임관했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1992년 쿠테타를감행했다 실패,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돼 2년을 보냈다.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을주창하고 있다. 출옥한 직후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언론인 출신인 마리사벨과 재혼,4명의 자녀를 두었다.사회민주주의자인 부친 우고데 로스 레예스 차베스는 현재 바리나스 주지사이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역시 재선에 도전했다. 멕시코시티 연합
  • 실향민 ‘상속 소송’

    북한에 부인과 아들을 남겨둔 채 월남해 재혼한 뒤 자수성가한 실향민이 “남한의 아들이 가로챈 재산을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게 주겠다”며 소송을 내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에서 결혼해 3남2녀를 둔 S씨는 6·25 전쟁 중 장남과 차남을 데리고월남해 다시 결혼한 뒤 장남과 차남을 호적에 올렸고,새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두아들을 얻었다. S씨는 자수성가해 4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지만 남한에서 새 부인과 가정불화로 이혼소송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5월 노인성 치매에 걸렸다.이 과정에서 후처 소생의 아들(41)은 지난 9월 S씨의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S씨는 지난 5월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반혼수 상태에서 “재산의 반은 북한에서 어렵게 살고 있을 처자식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반은 장학사업 등에 쓰려고 했는데 새 부인과 그 자식들이 몽땅 가로챘다”며 월남한 동생을 특별대리인으로 지명해 서울지법에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을 냈다.하지만 S씨는 이달 초 86세의 나이로 숨졌다. S씨측소송대리인인 배금자(裵今子) 변호사는 “치매 상태에서 이뤄진 소유권 이전등기는 원천무효”라면서 “S씨의 재혼은 현행법상 금지된 중혼(重婚)이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 혼인무효소송을 내면 남쪽 아들이 가로챈 재산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측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이산가족 관련 가족법 문답풀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 교환이후 중혼(重婚) 등 헝클어진 가족관계가현실화되고 있다. 이산가족 재결합시 야기되는 중혼,상속,호적정리 등 법적인 문제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이 지난 98년에 펴낸 ‘북한의 가족법’을 참고해 문답으로 알아본다. ■남편의 생존소식을 들은 이모씨는 남편이 북한에서 재혼했을 것으로 믿고있다.이 경우 남편의 북한 처 보다 먼저 결혼한 자신이 법적으로 부인의 지위를 얻을 수 있나 = 두번의 결혼을 인정하는 중혼문제는 전혼(前婚)의 부활을 인정하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가족법 학자들은 중혼상태를 유지하되 전혼과의 관계에서는상속이나 부양청구를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혼인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씨의 경우 상속이나 부양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지만정식 부인으로 등재될 수 있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유모씨는 최근 아버지의 생존 소식을 적십자사로부터 통보받았다.북한에서태어난 동생들과의 상속문제는 어떻게 되나 = 북한은 법정상속인으로 제1순위 배우자와 자녀 및부모,제2순위 손자녀와조부모 및 형제자매,제3순위 가까운 친척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유씨도 북한의 형제들과 함께 상속권을 누릴 수 있다.다만 북한의 상속재산은 개인소유재산 중 개별재산에 국한되므로 사실상 소비품에 한정된다. ■장모씨는 북에 두고온 어머니가 사망한 것으로 여기고 30년전부터 제사까지 지내왔지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어떤 절차를 거쳐 사망신고를 변경할 수 있는가 = 가정법원에 호적정정신청을 통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사망의 호적기재를 정정할 수 있다.반대의 경우는 북측에서 보내온 사망통보서를 행정기관에 제출하면 법 절차를 마칠 수 있다. ■염모씨는 최근 부인과 큰 아들이 ‘8·15 이산가족상봉 희망대상자명단’에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염씨는 앞으로 호적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 북한에는 현재 호적법이 없기 때문에 우선 우리 가정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낸뒤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락기자 jrlee@
  • [사설] “오마니! 살아계셨군요”

    고희를 넘긴 할아버지(張二允옹·71)가 북녘에 109세 ‘오마니’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흐느끼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면서 온 국민이 함께 눈물지었다.27일 8·15 방북 이산가족 후보자의 북쪽 가족 생사확인 결과가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남북 분단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낀다.각기 월남해서 재혼한 후따로따로 가족을 찾은 부부, 북쪽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을 찾은 남편의 남쪽 아내 등 어느 것 하나 가슴 찡하지 않은 사연이 없다.더욱이 피붙이 모두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통곡하는 사람들의 애절함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지난 반세기 동안 쌓인 이 한(恨)을 남북 당국은 옷깃을 여미고 엄숙히 풀어 주어야 할 공동책무를 지고 있다.이 과정에서 양쪽 당국은 이산가족 문제를 어떠한 이념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순수하게 인도적 입장에서 접근해야한다.이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대원칙이다.이번에 가족의 생존을 확인하고도 만나지 못할 비운을 겪게 될 이산가족들에게도 이 원칙은 적용되어야 할것이다.즉 남북이 100명씩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방문대상에서 탈락할 남쪽 26명과 북쪽 96명의 이산가족들도 방문단에 포함되도록 양측이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29일부터 남북 장관급회담이 예정돼 있기에하는 제언이다. 그러나 정부나 대한적십자사 등 우리측 관계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이산가족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협상 상대인 북한과 조용한 물밑 대화로 상봉단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타진하되 앞서가는 언행을 삼가야한다는 뜻이다.나아가 상봉단 선정과정에서 투명한 기준을 미리 세워 행여불필요한 잡음으로 이산가족의 가슴에 이중으로 못을 박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야말로 남북관계 현안 중에서 최우선과제임이 분명해졌다. 특히 고령 이산가족들의 상봉은 더없이 절박한 과제임이 재확인됐다고 본다.이들은 자연적 연령으로 보아 조만간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이번에 60대가 주류인 북쪽 후보 가운데 21명이 남쪽의 생존 부모를 찾은 반면 70대 이상이 대다수인 남쪽 후보 중 장이윤 옹만이 북쪽 노모를 찾은 데서도 알 수 있다.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협상을 서둘러야 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오는 8·15에 서울과 평양에서 각기 100쌍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 한반도는 또 한차례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다.남북 당국은 그러한 일회성 이벤트가 최소한 면회소 설치나 정기적 방문 등으로 제도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이산가족의 한을 풀기 위해 남북 당국이 호양의 자세로 협상을 서두르기를간곡히 당부한다.
  • 韓赤 이산가족 창구 이모저모

    북한이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보낸지 3일째인 18일에도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들른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이산가족들은 벌써 상봉이라도 한 듯 울음을 터뜨렸고,일부는 “상봉단 1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며 적십자사 직원들에게 매달렸다. ■변호사 박찬운(朴燦運·37·사시26회)씨는 국민학교 교사로서 월북했던 외삼촌 리길영씨(71)를 만나기 위해 상봉신청서를 작성한 뒤 “우리 집안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가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외가는 좌익,본가는 우익,처가는 월남자 가족”이라며 “집안의복잡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시에 합격하고도 검사 진출은 엄두도 못내고 변호사를 선택했으며,외삼촌이 오시면 자세한 사연을 물어 가족사를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국군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외삼촌은 월북했고충남 인민위원장이던 외할아버지는 국군에게 처형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춘자씨(72·여·경기도 이천군 율면)는 “이미 재혼해 남편을 볼 면목은 없지만 50년전헤어졌던 남편을 꼭한번 만나고 싶다”며 전 남편인 김희영씨(72)의 망부가(望婦歌)에 조심스럽게 화답했다. ■12남매중 셋째 오빠 림순응씨(65)의 생사를 확인한 영숙씨(5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오빠가 살아있기만 빌던 어머니는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오빠를 찾았다”며 “이제서야 오빠의 생사를 확인했는데 100명의 상봉단에 들지 못하면 어쩌냐”며 상봉이 이루어지길 간절히소망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무작정 적십자사를 찾거나 북측에서 보낸 200명의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이유를 따지기 위해 온 사람도 제법 많았다.이영준씨(78·서울 서대문구 천연동)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고향에보내 준다더니 왜 나를 명단에서 제외시켰느냐”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통계로 본 ‘여성의 삶’

    하루 평균 1,005쌍이 결혼하고 339쌍이 이혼을 하고 있다.재혼 여성과 초혼 남성의 결혼은 갈수록 늘어 전체 재혼인구의 25%에 이른다. 셋째 아이를 아들로 골라 낳는 경향이 늘어 남아가 여아보다 10%가 더 많다. 통계청은 제5회 여성주간(1∼7일)을 맞아 여성의 생활여건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여성관련 통계를 정리해 4일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발표했다. 여성의 교육 및 취업기회는 확대되고 있지만 사회적 지위 향상은 뒤따르지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생활=이혼이 급증하고 매년 2만쌍이 재혼을 하고 있다.특히 재혼 여성과 첫 결혼을 하는 남성이 맺어지는 사례가 재혼 남성-초혼 여성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재혼 여성과 초혼 남성이 맺어지는 비율은 전체 재혼의 25.8%를 차지했으며 10년전인 88년의 20.8%에 비해 5%포인트가 늘어났다. 하지만 초혼여성과 재혼남성의 재혼은 88년 35.6%에서 98년 21.7%로 크게낮아졌고 재혼 여성과 재혼남성이 맺어지는 비율은 43.5%에서 52.5%로 늘어났다.관계자는 “초혼남성과 재혼여성의 결혼이 초혼여성 재혼남성의 결혼건수를 95년 앞지르기 시작한 이후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혼은 98년 12만3,731건으로 97년(9만3,333건)에 비해 무려 32.6%가 증가했다. 여성의 평균 초혼나이는 88년 24.7세에서 98년 26.2세로 늦어지고 있다.75년에는 25세 여성 5명 가운데 1명이 미혼이었으나 95년에는 2명중 1명꼴로미혼율이 크게 높아졌다. ◇출산=여자아이에 비해 남자아이 출생비율(여아=100)이 96년 111.6,97년 108.3으로 줄어들다가 98년 110.2로 다시 늘었다.셋째아이를 낳을때 아들을 골라낳는 현상 때문이다.여성의 사회활동과 늦게 결혼하는 탓에 35세 이상의산모가 초산으로 낳는 출생아 수는 89년 3,796명에서 98년 9,308명으로 2.5배 늘었다. ◇교육·취업=95년 여성의 평균 교육연수는 9.4년으로 남성의 11.2년보다 1. 8년 적다.남녀 교육연수 격차는 80년 2.1년,90년 2.0년보다 줄었다.98년 여자의 대학진학률은 63.9%로 80년 21.6%보다 약 3배 늘었다. ◇사회적 지위=여성공무원은 98년 26만3,853명으로 전체공무원의 29.7%를 차지했다.전체 여성공무원중 55.0%는 교육공무원,17.9%는 기능직에 있으며 정무직(0.8%),외무직(3.3%),법관·검사직(4.7%)의 비중은 매우 낮았다. 박정현기자 jhpark@
  • 英 찰스 왕세자 스코틀랜드교회서 재혼 검토

    [런던 연합] 찰스 영국 왕세자는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카밀라파커 볼스와의 관계를 인정받음에 따라 이혼자들의 교회 결혼을 허용하는 스코틀랜드교회에서 결혼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선데이 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스코틀랜드의 왕실목사중 한 사람의 측근이 “왕세자는 이곳에서결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와 파커 볼스 부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혼자들의 교회내 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성공회(잉글랜드교회)와는 달리스코틀랜드교회는 이를 허용하고 있으며 찰스 왕세자의 동생인 앤 공주도 92년 발모랄의 크래티교구 교회에서 팀 로런스 대위와 결혼식을 올렸다. “세인트 제임스궁(왕세자궁)은 스코틀랜드 교회에서의 결혼의 타당성을 검토중이다”고 스코틀랜드교회 대회의장 앤드루 맥레란의 측근들은 말했다. 찰스 왕세자는 재혼 가능성을 부인해 왔으나 버킹엄궁의 한 고위관리는 지난주 “찰스 왕세자의 장기적인 의도는 카밀라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찰스 왕세자와 스코틀랜드교회와의 접촉은 성공회의 조지 카레이 캔터베리대주교가 지난 수개월간 찰스 왕세자 및 파커 볼스 부인과의 면담을 통해 재혼을 허용하도록 교회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왕실의 결혼에는 장애물이 있다고 말한데 따른 것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은 최근 찰스 왕세자가 망명중인 그리스의 콘스탄틴왕을 위해 베푼 생일파티에 카밀라의 참석 사실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자리를함께 해 카밀라를 만남으로써 이들의 관계를 인정한다는 뜻을 비쳤다.
  • 가족법 개정안 의미와 파장

    개정 민법안은 남녀 평등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친양자제도,동성동본 금혼폐지 등은 기존의 호주제 및 혼인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어서 여론수렴과정에서 찬반양론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경과/ 개정안은 법무부가 지난 93년부터 준비해오다 98년 11월 제15대 국회에 제출했던 것을 재상정한 것이지만 지난 90년 이후 단 한차례도 개정되지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민법을 대폭 손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법 개정안은 지난 15대 국회 법사위에서 의결까지 마쳤지만 유림단체의반대로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채 지난 5월 국회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그러나 민법 중에 동성동본 금혼,친생부인,상속 한정승인제도 등은 지난97년과 98년에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법무부는 16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민법 개정부터 추진하게 된 것이다. ■주요내용/ ▲친양자제도 7세 미만의 아동을 양자로 입양하면 친부모나 그혈족과의 친족관계를 소멸시키고 양부모와의 친족관계가 가능하도록 했다.법무부는 당초 여성단체의요구로 개정안에 친양자의 연령규정을 없애려 했지만 외국에서도 나이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7세로 제한했다.법무부는친양자의 나이제한을 두지 않으면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을 바꿀수 있는 등 폐단을 고려해 차선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상속회복청구권의 제소기간 제소기간을 ‘청구권이 침해된 것을 안 날로부터 3년,상속개시일로부터 10년 경과시 소멸’에서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침해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경과시 소멸’로 연장했다.또 상속권 침해 회복기간을 조정,‘진짜 상속인이 상속권을 침해당했음을 안 날’부터 3년,‘상속권 침해가 발생한 날’부터 10년까지 회복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종전에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나면 상속권 침해를 회복할 수 없었다.▲상속한정승인제도 부모가 남긴 빚이 재산보다 많을 경우 채무자에게 재산만큼만 빚을 상속한다는 의사표시가 가능한 기간을 ‘상속개시 후 3개월 이내’에서 ‘빚이 더 많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로 연장했다.지금까지는 상속 개시후 3개월 안에 이를 표시하지 않으면 얼마를 물려받든 부모의 빚 전체를 떠안도록 돼 있었다. ■전망 및 반응/ 친양자제도가 도입되면 재혼한 부부들의 자녀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며 입양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여성계에서는친양자제도가 도입되면 혈연중심의 가족관계에 ‘균열’이 생겨 궁극적으로호주제 폐지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친양자법 제정을 주장해온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이혼의 증가와 함께 재혼가정도 급증하면서 현행입양법의 문제로 인한 상담전화가 하루에도 수십건씩 들어온다”며 “아이에게 안정된 가정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친양자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림 등 보수층에서는 결사반대하고 있다.이완희(李完熙·73) 성균관 부관장 겸 가족법대책위원장은 “친족의 증언만으로도 동성동본 금혼 범위를 벗어난 위법사례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규정을 완화하는 법률개정에 극력 반대한다”며 “의약분업과 같이 이해를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혈통을 지켜내야만 하기 때문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전국의 유림이 총궐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종락 송한수 허윤주기자 jrlee@. * 민법개정안 문답. 개정 민법 중 새로 도입되는 친양자제도를 문답풀이로 알아 본다◆현재의 일반양자와 친양자의 차이는=일반양자는 친부와의 관계가 그대로유지돼 유산 상속 등이 가능하다.반면 친양자는 친부와의 관계가 종결돼 법적으로 완전 남남이다. ◆친양자는 어떤 경우에 가능한가=5년 이상 혼인중인 부부가 7세 미만의 아이를 대상으로 할 수 있다.친생부모의 동의를 얻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간단히 말해 7살 미만 아이는 우리나라에서 금기시하는 성(姓)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딸린 부모가 재혼할 경우에도 5년 이상 혼인해야 되나=아니다.재혼 가정은 곧바로 친양자 입양이 가능하다.물론 7살 미만,친생부모 동의라는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친양자는 양부모 중 어머니의 성도 가질 수 있나=친양자는 양친의 성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성을 가질 수 있다.법적으로 양친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한다.그러나 우리나라 가족법에는 자녀의 성은 아버지를 따르도록 돼 있다.결국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없는 셈이다. ◆독신 여성이 양자에게 자신의 성을 따르도록 할 수 있나=현행 일반양자제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친양자제도에서는 자신의 성으로 바꿀 수 있다. 이종락기자
  • 7세미만 양자 양부姓 따른다

    이르면 내년부터 7세 미만의 양자를 들일 때 양부모의 성(姓)과 본(本)을따르도록 하는 ‘친양자 제도’가 도입된다.이에 따라 해당 연령의 재혼가정 자녀들은 새아버지의 성을 따를수 있게 된다. 또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폐지돼 근친혼 금지제도로 전환되고 부모를 모시는 자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원래 상속분의 50%를 더 상속받게 된다. 법무부는 9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법(가족·친족·상속편)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민법 개정은 지난 90년 이후 처음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한집에 사는 양부와 양자의 성이 다른데서 오는 혼란 등을 해소하기 위해 종전의 친족관계를 종료하고 양친의 성과 본을 따르는 친양자제도를 신설한다.친양자는 5년이상 혼인중인 부부가 7살미만의 아이에 대해 친생부모의 동의를 얻어 공동으로 가정법원에 청구하면 된다. 개정안은 또 8촌 이내의 부계 및 모계 혈족을 제외한 친족이라면 6촌이 넘으면 결혼할수 있도록 혼인 제한 범위를 완화했다.또 여성 차별규정으로 지적돼온 여성 재혼 금지기간(6개월)을 폐지하고,현재 남편에게만 인정하는 친생자 부인(否認)소송제기권을 아내에게도 부여했다. 개정안은 부양상속분제(효도상속제)를 신설해 부모를 모신 자식에게는 원래 상속분의 50%를 가산해줄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상속채무가 상속재산보다 많을 경우 상속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한 ‘한정승인제’를 개선,‘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상속거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의 특징은 남녀평등의 원칙을 강화한 것”이라면서 “내년부터 시행이 가능하도록 늦어도 8월말까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황석영의맛따라추억따라](2)노티맛으로 이산가족의 연줄이어

    어머니는 목사이며 교육자였던 집안의 둘째 딸이었다. 큰오빠가 있었고 위로 맏딸인 언니가 있었으니 형제들 순으로 따지자면 셋째인 셈이다.어머니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고 남동생이 하나 있었단다.그러니까 딸 넷에 아들 둘,모두 육남매였다는데 내가 어릴적에 부모님이 월남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본적이 없다. 그들 중에서 우리 식구처럼 월남했던 어머니의 바로 아래인 셋째 이모와 오라비인 큰아버지(이북에서는 외삼촌의 경우에도 큰아버지라고 부른다)만을알고있을 뿐이다. 셋째 이모는 딸 하나를 낳았는데 네 살 때인가 죽었다.이름이 인옥이었다.셋째 이모네는 우리 보다 좀 뒤늦게 월남해서 어떻게 수소문을 해가지고 우리동네에서 가까운 이웃 동네로 이사를 왔다.이모부는 몸집이 마르고 얼굴도창백한 병약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옥이도 보채기를 잘하고 병치레를 많이 했다.내가 여섯 살 때였으니까 나하고는 아마 두 살 차이가 날 것이다. 인옥이는 오빠 오빠,하면서 나를 따라다녔고 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 로타리를 한바퀴 돌아오려고 출발하면 징징 울면서 쫓아왔다.이모부는 그래서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그 애가 죽었을 때 이모네 집에 가보았는데 비좁은 마당이 있는 방 세 칸짜리 한옥이었다.맞은편 담 가에 우리 집 뒷마당처럼 일년초가 피었는데 분꽃이 빨갛게 피어 있던 게 기억난다.이모부는 마루에 앉아서 술에 취한 채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고 이모는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그들이 살던 마루의 건넌방 미닫이가 열려 있었는데 멜방처럼 광목끈을 매어 놓은 작은 널판자의 상자가 보였다.나는 그것이 뭔지 대번 알아보았다.어릴적에 인옥이 생각만 하면 후회했다.자전거를 좀 많이 태워줄걸. 어머니의 오라비인 큰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의사였다.내가 오래 전에 그분을 빌어서 ‘한씨년대기’라는 중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전쟁이 터지고나서 1.4후퇴 때에 우리 식구는 대구로 피난을 갔다.대구 역에서 중앙통은 그때에도 제법 대도시처럼 붐볐는데 아버지와 내가 둘이서 길을가다가 큰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큰아버지는 멋쟁이었다.그이는 어머니처럼 키가 크고 굽실굽실한 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는데 깃이 넓은 헐렁한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안에는 당시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목 앞에 단추가 달린 국방색 털쉐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앞에서 우리를 지나쳐 가려던 키 큰 남자가 우뚝 섰다.두 사람은 잠시 그대로 서서 외마디 고함을 지르더니 서로 부둥켜 안았다.그래서 어머니는 오라비와 바로 손아래 여동생을 가까이 두고살수가 있었다. 셋째 이모는 교사가 되었는데 중년에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았다.이모부가 다른 데서 아들을 낳고 살림을 따로 냈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소설에 썼던 대로 오십년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허무러졌다. 그를 고용했던 무면허 의사의 모함으로 동창생들과 술자리에서 말 몇마디 한 것으로 반공법에 걸려서 호된 고문을 당했다.그리고는 다른 죄목으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뒤로 세상살이에 뜻을 잃어버린 듯했다.그이도 두 번인가재혼을 하더니 말년에 딸 하나 보고 외롭게 살았다.그들은 요즈음 말로 이산가족 일 세대인 셈인데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러한 쓸쓸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노티’ 때문이다.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먹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했다는 그것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잊고 있었다.어머니쪽 외가 식구들이 영등포에 모여 살 적에는 추석이나 설이 되면 꼭 이틀 밤낮을 모여서 명절을 같이 쇠고는 했다.좁아 터진 집에 세 집이 모이면 불편할 것 같지만 이모는 독신이고 큰아버지도 그때는 아직 혼자여서 다른 집처럼 아이들로 붐빌 것도 없었다.큰아버지는 노상술만 마셨는데 그의 주정을 아버지 혼자 다 감당하곤 했다.그는 언제나 술이취하면 어머니에게 성화였다. 야야 노티 좀 해먹자꾸나. 오라반두 참…여게 어디 고향 같은 기장쌀이 있습네까. 어쨌든 어머니가 그 무렵에 구정 설이 되면 찹쌀을 빻아서 노티를 했다.그렇지만 나는 그 맛을 잊고 지냈다.아마도 약과 비슷한 것도 같고 모양은 지짐이(녹두 빈대떡) 비슷했을 것이다.얼마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나는 장성해서 떠돌다가 뒤늦게 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는 그동안한번도 노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재봉틀을 돌리거나 뜨개질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워낙에 말 재간과 기억력이 대단한 분이라 도깨비 이야기며 소설책 이야기며 고향 이야기들이 재미 있어서 나는 졸린 눈을 부비며 자꾸 되묻고는 하였다. 당신이 어릴 적에 형제들과 방에서 하던 놀이도 많이 배웠다.팥을 쪼개어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그 안에 집어 던지는 벼룩이 윷이며,남포불이 비춘 벽위에다 그림자 놀이를 하는 법이며,서로 다리를 포개고 헤아리면서 ‘한알대 두알대 삼새’하다가 끝나는 다리의 임자가 술래가 되는 놀이며,손을 서로잡고 엄지 손가락을 세워서 상대방의 엄지를 찍어 누르는 엄지 씨름,뭐 끝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남 것은 과일도 밭 작물도 별로 맛이 없다고,이를테면 내가 참외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도 그런 식으로 입맛을 버려 놓고는 했다.나중에 커서야 그게 일리가 있음을 알았다.어머니의 입맛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였던 셈이기도 하고,또한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위도나 기후 상으로도 그렇고 논 보다는 밭이 많던 북선 지방의 작물이 맛이 월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그 맛도 잃었던 나는 팔십 구년에 방북했을 적에 기적처럼 노티와 만나게 된다. 누나와 내가 어렴풋이 기억한 외가 식구들과 사촌들의 이름을 적어 갔는데정확하게는 큰외삼촌네 아들 형제들,그러니까 내 사촌 형제들과 어머니의 여동생인 막내 이모를 찾았다.막내 이모네도 아들이 셋에 딸 하나가 있었다. 고려 호텔의 지정된 방에 갔더니 낡은 한복 차림의 할머니가 낯선 형제들과앉아 있었는데 나는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이었다.어쩌면…돌아가신 어머니가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닌가.어머니의 말년 모습과 똑같았다.울고 불고,서로소식 묻고,형제들 소개하고,그런 법석을 하다가 차츰 침착해졌다.나는 특별히 시내에 있는 사촌 맏형의 집에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서 밤늦게까지 이모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물론 어머니의 임종 얘기와 노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떠나오던 날 이모는 사촌들과 순안 비행장에 배웅을 나왔다.헤어지기전에 휴게실에서 이모가 푸른색 보퉁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개져다 먹어보라. 그게 노티였다.나는 비행기 안에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두 개나 먹었고 북경에서 나머지를 다 먹어 치웠다.이모가 일러준 대로 한번 만들어 먹어 볼작정이지만 내 기억이 맞는지는 잘모르겠다. 요즈음은 구수한 기장쌀을 구하기 힘들테니 찹쌀을 빻아다 시루에 찐다.엿기름가루에 물을 내려 우려낸다.익은 찹쌀가루와 엿기름가루를 섞어,우려낸 엿기름 물을 붓고,소금 간을 하고 참기름 넣어서 반죽을 한다.반죽을 아랫목에 한 두 시간 덮어 두어 삭힌 다음에 손바닥만한 크기로 약한 불로 지져낸다. 이것을 식혀서 꿀에 재어 항아리에 채곡채곡 넣어서 장독대에 내다 놓고 먹는다고 한다. 순안 비행장에서 막내 이모와 그렇게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그로부터 석 달 뒤에 이모는 이산가족 일세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세상을 떠났다.나의 어거지 방북으로 겨우 혈육의 연줄을 이은 셈이다. 어머니의 언니인 큰이모와 남동생은 진작에 전쟁 때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어머니가 갖고 있던사진은 본 적이 있었다.큰이모는 여학생 때부터 광주학생사건 등이 전국으로 번졌을 때 주동자 노릇을 하더니 일찍이 만주로 달아나서 독립군에 들었고 해방이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언니가 어찌나 노티를 좋아했던지,겨울 밤에 몰래 장독대에 나가 동생들 몫까지 먹어치우는 바람에 둘째 딸인 어머니와 다투곤 했다고 하는데. 황석영
  • 방송작가 방귀희 ‘버리면 자유로워진다’

    휠체어 생활을 하는 여성 방송작가 방귀희씨가 펴낸 ‘버리면 자유로워진다’(아세아미디어)는 21세기를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77가지 편견을 담고 있다.절대적 고통을 공유한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상대적 고통이어서 강도가더욱 높아질지 모른다며 21세기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세계적인 물리학자 호킹 박사의 예를 들며 ‘재혼은 능력있는 남자만 한다’는 편견에도 도전한다.우리가 평소잊고 살아가는 평범한 진리와 잘못된 인식을 일깨워준다.값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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