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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집안의 자녀 ‘악연’ 끊을까

    SBS TV는 22일부터 ‘며느리와 며느님’ 후속으로 새 아침 연속극 ‘순결한 당신’(극본 김지은·연출 주동민)을 방송한다.이 작품은 한때 부부 사이였던 윤순희(이휘향)와 서유일(독고영재)이 남편의 외도로 헤어진 뒤 각자 자식들의 결혼 때문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된다는 스토리. 불륜과 배신을 기본 구조로,잊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악연이 자식 대에서 되살아난다는 내용이 뻔한 통속극을 예상케 하는 것도 사실.그러나 제작진은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는 두 원수 집안 자식들의 위태위태한 사랑 이야기로서 주인공들이 악연의 덫에서 빠져나와 순결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겠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는 강정용(강남길)과 재혼한 윤순희가 아들 강지환(안재모)의 결혼 상견례장에서 전 남편 서유일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김희숙(송옥숙)과 새살림을 차렸던 서유일은 서단비(임예원)의 아빠로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것. 이야기의 출발점에 서 있는 독고영재와 이휘향은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과 달라 느낌이 새롭다.”고 입을 모았다.독고영재가 맡은 서유일은 부잣집 딸과 외도를 해 새 살림을 차리지만 회사가 부도나면서 경비로 전락한 인물. 독고영재는 “지금껏 늘 대기업 회장이나 대통령 등 높은 사람들만 맡아왔는데,서민적인 역할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이휘향 역시 “아직도 촬영장에 가면 스태프들이 어색하다고 이야기한다.늘 가진 자의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는 상처도 많고 아픈 과거가 있어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작인 SBS TV ‘왕과 나’에서 악역을 맡았던 안재모는 “극중 지환은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집안 반대에도 끝까지 사랑을 지키려는 해바라기 같은 인물이다.오랜만에 다정한 역을 하려니 많이 어색하다.”고 말했다.중견 배우 임동진의 딸인 임예원은 “서단비는 누가 해도 예쁜 역이다.어떤 여배우라도 하고 싶어했을 만큼 사랑스러운 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세계 최고의 부자 워런 버핏의 손녀가 살아가는 방법

    세계 최고의 부자 워런 버핏의 손녀가 살아가는 방법

     그 흔한 케이블TV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이 연 4만달러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나가는 32세 노처녀 화가.물론 미국에서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입이면 적지도 많지도 않지만 할아버지 이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할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주식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미국의 패션잡지 마리 클레르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허름한 주택에서 히피처럼 살아가는 니콜 버핏의 삶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니콜은 “사람들이 제 성을 듣고는 맨먼저 떠올리는 것이 돈”이라며 웃었다.  ●한때는 버핏 부부의 사랑 받던 양손녀  사실 니콜은 버핏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양손녀.네 살 때 싱어송라이터였던 엄마가 버핏의 막내아들로 광고음악 제작자였던 피터와 결혼하는 바람에 일란성 쌍둥이 동생과 함께 버핏 가문에 들어갔다.버핏의 첫 아내로 2004년 작고한 수전이 특히 니콜을 예뻐했다.수전은 니콜의 초기 작품을 구입해준 것은 물론,유언장에 니콜에 대해 “사랑스러운 내 손녀”라고 썼다.수전 역시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카바레 연출자였다.니콜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이 예술가들로 가득한 것을 잘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니콜은 어렸을 때 버핏이 1958년 3만 1500달러에 구입해 지금도 살고 있는 오마하의 검소한 자택에 정기적으로 들렀다.다섯 살 크리스마스때 버핏은 지갑에서 빳빳한 100달러 지폐를 집어 니콜에게 주기도 했다.버핏이 소유한 과자공장을 귀빈 자격으로 찾기도 했고 아빠 피터는 1년에 두 차례 라구나 해변에 있는 버핏의 별장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 지냈다.  니콜이 어느날 서재에 살금살금 들어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 할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다 넘어지자 버핏이 침을 꿀꺽 삼키고 “니콜,할머니와 내가 네 예술적 성취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해.”라고 말했던 것을 니콜은 또렷이 기억했다.니콜은 “할아버지와 그런 식으로 정감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진짜 큰 맘 먹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이 됐을 때 할아버지 기사가 언론에 큼지막하게 나오기 시작했다.급우들은 할아버지가 대문짝만 하게 나온 신문 지면을 니콜에게 들이밀었다.니콜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그래,할아버지는 점점 더 언론에 자주 나올거야.우린 익숙해져야 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 것이고 늘 해온 대로 살거야.”라고 말했다고 돌아봤다.  버핏은 손자 손녀들에게 대학 교육 비용은 지불했다.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하루는 니콜이 할아버지 사무실에 캠퍼스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할 비용을 대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돌아온 비서의 답은 “규칙이 뭔지 잘 알지 않느냐.학교에 내는 돈까지만이다.”는 것이었다.  4년 전 수전이 작고한 뒤 버핏은 해마다 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갑자기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선물한 산타 모자를 쓴 채였다.모두들 엉뚱한 버핏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니콜은 연휴가 끝난 뒤 할아버지 품에 뛰어들었다.그는 “우린 그렇게 정겹게 어울리는 가족이 아니다.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하자 가족들은 모두 조금 놀란 듯했다.”고 말한 뒤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꼭 껴안아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가족 얘기 털어놨다가 할아버지와 의절  포옹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2년 전 미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제이미 존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1 퍼센트’에 니콜이 등장하면서 할아버지와 의절하고 말았다.존슨 감독은 유명한 존슨&존슨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다큐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생활상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2006년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 1위를 차지했다.  그 전까지 버핏 가문에서 니콜만큼 공개적으로 할아버지와 가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이는 없었다. 니콜은 당시 “할아버지는 매우 내밀한 사람이다.난 그의 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로 결심했지만 그건 결국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과 의절할 정도로 큰 불화를 불러왔다”고 말했었다.  니콜은 왜 의절했는지 묻는 편지를 버핏에게 보낸 결과 “(양손녀들을) 한번도 진짜 가족 구성원으로 여긴 적이 없으며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입양한 바 없다.”는 내용이 담긴 답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1년 전만 해도 편지 끄트머리에 ‘할아버지가’라고 썼던 버핏은 이때는 ‘워런이’라고 썼다.  사실 니콜이나 여동생은 피터가 1993년 이혼했고 엄마는 3년 뒤 다른 남자와 재혼했기 때문에 버핏의 재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현재 니콜은 작품당 8000달러 정도 팔리는 작업으로만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티크에서 부업을 하고 있다.그의 작품은 유명한 영화배우 셜리 템플의 딸인 로리 블랙과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거장 스코트 로스가 주로 구입해주고 있다.할아버지의 명성과 이미지가 자신의 예술가 입지를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그는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햇볕에 내놓아 물감이 변해 작품도 변하게 하는 독특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난 늘 그랬듯이 자주적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니콜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그게 할아버지가 내게 가르친 것이고 이제 내 인생의 기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깔깔깔]

    ●아내가 죽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당하게 된 어떤 남자가 묘석에 이같은 비문을 새겼다. ‘내 인생의 등불은 꺼졌도다.’ 몇년이 지난 뒤 재혼할 여자가 생긴 그 남자는 장로에게 물었다. “죽은 아내의 묘비에서 그 말을 지워 없애는 게 좋겠지요?” 그러자 장로가 대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다만 다음 구문을 덧붙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그러나, 또 새로운 등불이 켜졌도다’라고.” ●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형벌 송년회로 술자리가 많은 연말에 음주운전은 금물.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형벌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시길…. ▲엘살바도르:총살형 ▲불가리아:초범은 훈방,재범은 교수형 ▲터키:30㎞ 떨어진 곳에 버린 뒤 집까지 걸어 오게 한 후 집에서 구속 ▲핀란드:한달 월급 모두 몰수
  • ‘최고 부자’ 워런 버핏 손녀가 살아가는 방법

    그 흔한 케이블TV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이 연 4만달러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나가는 32세 노처녀 화가. 물론 미국에서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입이면 적지도 많지도 않지만 할아버지 이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할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주식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미국의 패션잡지 마리 클레르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허름한 주택에서 히피처럼 살아가는 니콜 버핏의 삶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니콜은 “사람들이 제 성을 듣고는 맨먼저 떠올리는 것이 돈”이라며 웃었다.  ●한때는 버핏 부부의 사랑 받던 양손녀  사실 니콜은 버핏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양손녀.네 살 때 싱어송라이터였던 엄마가 버핏의 막내아들로 광고음악 제작자였던 피터와 결혼하는 바람에 일란성 쌍둥이 동생과 함께 버핏 가문에 들어갔다. 버핏의 첫 아내로 2004년 작고한 수전이 특히 니콜을 예뻐했다.수전은 니콜의 초기 작품을 구입해준 것은 물론,유언장에 니콜에 대해 “사랑스러운 내 손녀”라고 썼다.수전 역시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카바레 연출자였다.니콜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이 예술가들로 가득한 것을 잘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니콜은 어렸을 때 버핏이 1958년 3만 1500달러에 구입해 지금도 살고 있는 오마하의 검소한 자택에 정기적으로 들렀다. 다섯 살 크리스마스때 버핏은 지갑에서 빳빳한 100달러 지폐를 집어 니콜에게 주기도 했다. 버핏이 소유한 과자공장을 귀빈 자격으로 찾기도 했고 아빠 피터는 1년에 두 차례 라구나 해변에 있는 버핏의 별장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 지냈다.  니콜이 어느날 서재에 살금살금 들어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 할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다 넘어지자 버핏이 침을 꿀꺽 삼키고 “니콜,할머니와 내가 네 예술적 성취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해.”라고 말했던 것을 니콜은 또렷이 기억했다. 니콜은 “할아버지와 그런 식으로 정감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진짜 큰 맘 먹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이 됐을 때 할아버지 기사가 언론에 큼지막하게 나오기 시작했다.급우들은 할아버지가 대문짝만 하게 나온 신문 지면을 니콜에게 들이밀었다.니콜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그래,할아버지는 점점 더 언론에 자주 나올거야.우린 익숙해져야 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 것이고 늘 해온 대로 살거야.”라고 말했다고 돌아봤다.  버핏은 손자 손녀들에게 대학 교육 비용은 지불했다.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하루는 니콜이 할아버지 사무실에 캠퍼스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할 비용을 대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돌아온 비서의 답은 “규칙이 뭔지 잘 알지 않느냐.학교에 내는 돈까지만이다.”는 것이었다.  4년 전 수전이 작고한 뒤 버핏은 해마다 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갑자기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선물한 산타 모자를 쓴 채였다.모두들 엉뚱한 버핏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 니콜은 연휴가 끝난 뒤 할아버지 품에 뛰어들었다.그는 “우린 그렇게 정겹게 어울리는 가족이 아니다.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하자 가족들은 모두 조금 놀란 듯했다.”고 말한 뒤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꼭 껴안아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가족 얘기 털어놨다가 할아버지와 의절  포옹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2년 전 미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제이미 존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1 퍼센트’에 니콜이 등장하면서 할아버지와 의절하고 말았다.존슨 감독은 유명한 존슨&존슨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다큐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생활상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2006년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 1위를 차지했다.  그 전까지 버핏 가문에서 니콜만큼 공개적으로 할아버지와 가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이는 없었다. 니콜은 당시 “할아버지는 매우 내밀한 사람이다.난 그의 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로 결심했지만 그건 결국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과 의절할 정도로 큰 불화를 불러왔다”고 말했었다.  니콜은 왜 의절했는지 묻는 편지를 버핏에게 보낸 결과 “(양손녀들을) 한번도 진짜 가족 구성원으로 여긴 적이 없으며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입양한 바 없다.”는 내용이 담긴 답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1년 전만 해도 편지 끄트머리에 ‘할아버지가’라고 썼던 버핏은 이때는 ‘워런이’라고 썼다.  사실 니콜이나 여동생은 피터가 1993년 이혼했고 엄마는 3년 뒤 다른 남자와 재혼했기 때문에 버핏의 재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현재 니콜은 작품당 8000달러 정도 팔리는 작업으로만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티크에서 부업을 하고 있다.그의 작품은 유명한 영화배우 셜리 템플의 딸인 로리 블랙과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거장 스코트 로스가 주로 구입해주고 있다. 할아버지의 명성과 이미지가 자신의 예술가 입지를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그는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햇볕에 내놓아 물감이 변해 작품도 변하게 하는 독특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난 늘 그랬듯이 자주적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니콜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그게 할아버지가 내게 가르친 것이고 이제 내 인생의 기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새달 명일동에 노노상담센터 개관

     강동구는 다음달부터 명일동 315-2 노인회관 안에서 ‘노노() 상담센터’를 운영한다고 27일 밝혔다.  법률(천우현 변호사)과 가족 문제(성낙수 전 서기관),심리 상담(김행자 사랑의 전화 상담원),건강(이형 한의사),자산 관리(김용찬 공인중개사) 등 전문 분야 상담원들이 나선다.평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다.하루 평균 50여명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법률 문제 ▲재산관리 및 재테크 ▲노인성 질환 등 건강 문제 ▲성과 이혼·재혼 등 심리 문제 등을 다룬다. 전문 상담원은 공개 모집으로 뽑았다.50여명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응모해 3차에 걸친 심사를 통과한 5명이 최종 선발됐다.이들은 실비의 교통비만을 제공받고 봉사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미혼여성 47% “결혼 안 해도 그만”

    미혼여성 47% “결혼 안 해도 그만”

    ■ 통계청 2008 사회조사   미혼 여성의 절반 정도가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또한 가족 구성원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구주가 16.5%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통계청은 26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08년 사회조사(가족부문) 결과를 발표했다.  15세 이상 전체 인구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는 답변은 68.0%로,다수가 혼인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미혼 남자의 64.8%가 결혼에 찬성한 반면 여자는 46.5%에 그쳤다.미혼 여성의 경우 오히려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입장이 46.8%로 더 많았다.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났지만 여성의 가사·육아 부담은 크게 줄지 않으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늘고,이는 결과적으로 저출산 확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혼에 대해서는 58.6%가 반대했지만 이유가 있으면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더 높아졌다.재혼에 대한 찬성률은 22.8%로 반대율(15.3%)보다 높았다.찬성률은 남자(26.8%)가 여자(18.9%)에 비해,나이가 많을수록 각각 높았다.  결혼하지 않아도 동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반대(57.7%)가 더 많았지만 찬성(42.3%)도 꽤 많았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6) 그네 뛰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6) 그네 뛰는 여인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조선의 문화에 끼친 공헌이라면, 여성의 일상을 화폭에 구체적으로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남성의 언어가 은폐하고 있는 여성의 삶이 풍속화를 통해서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가부장제는 남성이 훨씬 중요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남성의 주장일 뿐이고,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또 모든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나온 존재가 아닌가. 물론 풍속화가 애당초 여성만을 겨냥한 것이라거나, 여성을 해방시키려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풍속화는 인간의 일상적 생활을 재현하는 것이기에 여성이 빠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풍속화가 우리에게 전해준 여성의 모습을 감상해 보자. ●젊은 남녀 로맨스 만드는 계기 그림(1)은 신윤복의 ‘그네’다. 젊은 여성 셋이 등장하는데, 오른쪽의 여성은 시방 그네에 막 올라탄 장면이다. 저 길고 풍성한 가체(加 )를 보라. 아마도 한껏 사는 집안의 젊은 아가씨일 터이다. 그네를 묶은 나무는 늙은 배롱나무인가? 가지 하나가 길게 뻗어 능청거린다. 왼쪽 나무 아래 담뱃대를 물고 있는 여성은 아마도 결혼을 한 같은 집안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여성의 오른쪽에 서 있는 분홍색 저고리의 여자는 아직 어린 티가 역력하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의하면, 단옷날 그네를 탈 때 어린 소녀들이 붉고 푸른색의 새 옷을 갖추어 입고, 창포탕으로 얼굴을 씻는다 하였으니, 아마도 그 풍습을 따른 어린 소녀일 터이다. 물론 그림이 전하는 정보량이 적어서 어떻다고 단정하지 못하겠다. 그림(2)는 김준근의 ‘그네뛰기’다. 그림(1)이 이제 막 그네에 올라탄 장면을 그린 것이라면, 김준근의 그림은 발을 굴러 한참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그림 수준이야 신윤복만 못하지만, 그네 뛰는 모습을 훨씬 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장점은 있다. 그네야 언제 타도 그만이지만, 여성의 외출을 억제했던 조선후기 사회라면, 역시 그네를 타는 날은 단옷날이다.‘경도잡지’를 보면, 단오면 시정의 여성들이 그네를 많이 뛴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네뛰기는 약간 성적인 뉘앙스가 있다. 곧 단옷날 그네뛰기는 젊은 남성과 여성의 로맨스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저 유명한 춘향전의 한 구절을 보자. “수화유문(水禾有紋) 초문(草紋) 장옷, 남방사 홑단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지(紫芝) 영초(英) 수당혜(繡唐鞋)를 썩썩 벗어 던져두고, 백방사(白紡絲) 진솔 속곳 턱 밑에 훨씬 추고, 연숙마(軟熟麻) 추천(韆) 줄을 섬섬옥수 넌짓 들어 양수에 갈라 잡고, 백릉(白綾) 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구를 제, 세류(細柳) 같은 고은 몸을 단정히 느니는데, 뒷 단장 옥비녀, 은죽절(銀竹節)과 앞치레 볼작시면, 밀화장도(蜜花粧刀), 옥장도며 광원사(廣元紗) 겹저고리 제 색 고름에 태가 난다.”(열녀춘향수절가) 보다시피 모르는 한자말이 많지만, 그저 비단옷 입고 비단신 신고, 옥비녀 하고, 옥장도 차고 그네에 올랐다고 알아들으면 그만이다. 한 마디 곁들여 보태자면,‘춘향전’이 민족의 고전이네 뭐네 하면서 잔뜩 떠받들지만, 한자 모르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대주의니 뭐니 하지 말고 짬나면 한자, 한문 좀 배우면 해로울 것은 없을 듯하다. 각설하고, 이제 춘향이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도록 하자.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 뒤 점점 멀러 가니 위에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흐늘흐늘 고고 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에 홍상(紅裳) 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九萬長天) 백운간에 번갯불이 쐬이는 듯, 첨지재전홀언후(瞻之在前忽焉後)라, 앞에 어른하는 양은 가벼운 저 제비가 도화(桃花) 일점(一點) 떨어질 제 차려 하고 쫓는 듯, 뒤로 번듯하는 양은 광풍에 놀란 호접(胡蝶) 짝을 잃고 가다가 돌치는 듯, 무산선녀(巫山仙女) 구름 타고 양대상(陽臺上)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 보고, 꽃도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이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다. 그넷줄 붙들어라.” 조선시대의 그네를 타는 장면에 관한 묘사로 이보다 더 자세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을 터이다. 그네뛰기를 제재로 삼은 한시가 꽤나 있지만 ‘열녀춘향수절가’를 따라갈 것은 없다. 곱게 단장한 미인이 훨훨 하늘로 날아올라갔으니, 이것을 본 이도령 넋이 나갈 수밖에 없다. 넋이 나간 젊은 사내는, 서시(西施), 우미인(虞美人), 왕소군(王昭君), 반첩여(班 ), 조비연(趙飛燕) 등의 역사 속 미인의 이름을 주워섬기면서, 그런 미인이 나타날 수 없으니, 이 미인은 도대체 어떤 미인이냐고 반문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불문가지다. 사소한 실랑이 끝에 두 청춘남녀는 결혼식 생략하고 그날 밤 한 몸을 이룬다. 그네가 맺어준 사랑이었던 것이다. ●어우동 그네뛰기에 반한 守山守 이기 ‘춘향전’의 그네뛰기로 맺어진 사랑은 소설 속의 허구일 뿐인가. 성종 때 최대의 성적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어우동을 보자. 어우동의 파트너 중 한 사람인 수산수(守山守) 이기(李驥)가 어우동을 만났던 장소 역시 남대문 밖 그네 뛰는 곳이었다. 수산수는 이도령처럼 어우동이 남대문 밖에서 그네뛰기를 하는 것을 보고 홀딱 반했던 것이다(‘성종실록’ 13년 8월 8일조). 그네뛰기가 남녀가 만나는 장소를 제공했던 것은 남성도 그네뛰기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단오에는 젊은 남자 여자가 그네뛰기를 하는데, 서울이나 지방이나 다 그렇고 관서 지방이 특히 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네가 반드시 사랑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전에 엿장수 그림에서 소개했던 ‘덴동어미 화전가’의 주인공 덴동어미의 인생 파란 역시 그네뛰기와 관련이 있다. 덴동어미는 원래 순흥 읍내 임이방의 딸이었다. 곧 아전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열 여섯에 예천 읍내 장이방의 아들과 결혼을 한다. 그 이듬해 덴동어미는 남편과 함께 친정에 온다. 때마침 단오였다. 덴동어미와 신랑은 그네를 뛰러나간다. 그런데 이것이 덴동어미의 비극의 시초였다. 신랑은 삼백 장 높이의 그네를 뛰다가 그넷줄이 끊어지면서 추락하여 절명하고 만다. 아직 ‘신정(新情)이 미흡한데’ 덴동어미는 나이 열 일곱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덴동어미는 뒤에 4번이나 재혼하지만, 역시 남편이 차례차례 죽고 결국 홀로 되고 말았으니, 그 비극의 씨앗은 바로 그네에 있었던 것이다. 그네는 사랑을 만드는가 하면, 사랑을 끊어버리기도 했으니, 정말 이상한 물건이다. ●담장 넘어 세상 만날 자유의 기회 한시에는 그네뛰기를 제재로 한 수많은 작품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서정주의 ‘추천사’ 한 편을 권하고 싶다.“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머언 바다로/배를 내어밀듯이/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베갯모에 놓이듯 풀꽃더미로부터/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나를 밀어 올려 다오/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향단아.” 춘향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저 달처럼 산호도 없는 섬도 없는 저 하늘로, 곧 푸르디푸른 바다와 같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저 하늘로 아주 떠나 그곳에 빠져버리고 싶다고 한다. 그래, 단오의 그네는 여성이 담장을 넘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자유의 기회가 아닌가. 풍속화를 보고 원고를 쓰다가 문득 유리창 너머 푸르른 가을 하늘을 보니, 홀연 나 역시 춘향의 생각에 동조해 저 바다 같은 하늘로 빨려 들어가고 싶다. 우리는 너무 갑갑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법원 ‘재산 노린 친권’ 잇단 쐐기

    자녀의 재산을 노리고 친권을 주장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자녀의 재산관리를 맡기지 않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판결이 탤런트 고 최진실씨의 자녀를 둘러싸고 유가족과 전 남편 조성민씨가 벌이고 있는 친권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친권이란 ‘부모가 미성년인 자녀를 보호·감독할 신분상·재산상의 권리와 의무’이다. 우리 민법은 친권자가 권한을 남용하거나 뚜렷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이를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조씨처럼 이혼할 때 친권을 잃었더라도 전 배우자가 사망하면 자동으로 친권이 살아난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자녀의 행복과 이익을 해할 가능성이 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친권 상실이나 재산관리권 정지를 선고하고 있다. A(사망)씨와 B(41)씨는 1991년 결혼해 아들(17)과 딸(13)을 낳았지만 2002년에 이혼했다.A씨는 이듬해 C씨와 재혼해 자녀를 키우다 2005년 11월 교통사고로 숨졌다. 전 부인 B씨는 A씨가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을 알고 자녀 모르게 보험금 1300만원을 신청해 받았다.B씨는 A씨가 사망하고 나서 아들을 잠시 맡아 키우기도 했지만 제대로 양육하지 못해 결국 계모 C씨에게 보냈다. 유가족들은 법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법원은 지난달 25일 “자녀의 재산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며 B씨에 대해 법률 대리권 및 재산 관리권 정지를 선고했다. 86년 결혼한 D(48)씨와 E(45)씨는 아들 두 명(21세, 19세)을 두고 2004년 협의 이혼했다. 친권은 남편 D씨가, 양육권은 부인 E씨가 가졌다. 남편은 상속받은 재산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약속했던 양육비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녀들에게 상속된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담보로 돈을 빌려 쓰겠다고 나섰고 E씨는 친권상실을 청구했다. 법원은 “친권자를 어머니로 변경하는 것이 자녀의 원만한 성장과 복지를 위해 유리하다.”고 지난해 12월 판결했다. 이혼소송 전문인 김삼화 변호사는 “이혼 뒤 홀로 자녀를 키우던 어머니나 아버지가 사망하고 자녀에게 재산이 남아 있는 경우 유가족과 남은 부모가 친권이나 재산관리권을 두고 법정 다툼을 많이 벌인다.”면서 “법원이 친권이나 재산관리권 제한 요건을 완화해 자녀의 행복과 이익이 보호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친권 상실이나 친권 회복을 청구하는 소송은 2004년 33건에서 지난해 192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10월까지 188건이 들어와 사상 최대치가 될 전망이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길섶에서] 아야진에서/함혜리 논설위원

    속초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간성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아야진이라는 작은 포구가 나온다. 지난 주말 동해 쪽에 갔다가 점심식사 때에 맞춰 아야진에 들렀다. 포구에서 만난 경찰아저씨가 추천한 ‘해돋이횟집’으로 갔다. 웬걸? 아무도 없었다. 주인도, 손님도. 동네 아저씨가 전화를 걸자, 이내 주인이 나타났다. 바닷가에 톳을 따러 갔었다는 주인 아주머니는 검게 그은 얼굴에, 파마 머리를 한 영락없는 촌부였다. 아주머니의 솜씨는 깔끔했고, 회가 맛있었다. 미역을 넣은 매운탕 맛도 기가 막혔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화장을 곱게 하고 멋들어진 모자도 쓰고 있었다. 동서가 오기로 했단다.2년 전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혼자서 초라하게 산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 치장을 했다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한창 나이신데 재혼하셔야죠.”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대답했다.“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그리고,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은 못 만날 것 같아요.”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케냐 국가공휴일 지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아버지가 태어난 케냐와 오바마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인도네시아에서는 마치 자국 사람이 당선된 것인 양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케냐의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은 오바마의 당선을 축하해 이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케냐 친인척들 서로 부등켜 안고 자축의 밤 오바마 친인척들은 5일(현지시간) 새벽 빅토리아호수가 가까운 케냐 서부 코겔로 마을에 모여 TV로 밤새 투·개표 과정을 지켜봤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친인척들은 “우리는 백악관으로 간다.”고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바마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지만 주민들은 오바마를 ‘케냐의 아들’로 여기며 자랑스러워했다. 오바마의 친할머니 사라 후세인 오바마(86)의 집 마당에서는 친척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자축하느라 떠들썩한 장면이 연출됐다. 오바마의 사촌이라는 50대 남자는 “사라 할머니는 밤새 TV를 지켜보며 손자를 응원했다. 지금 흥분된 상태여서 가족들이 안정을 시키고 있으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코겔로 마을 진료소 앞 대형 스크린 앞에는 800여명이 모였고, 진료소에서 1㎞가량 떨어진 오바마의 이복동생 말리크 오바마의 집 앞마당에도 30여명의 주민이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 TV를 지켜봤다. 한편 현지 경찰은 오바마 당선으로 취재진을 비롯한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안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 학교 대선배가 이겼다” 오바마가 다녔던 인도네시아 멘텡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대선배’의 당선을 축하하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오바마는 6세 때 어머니와 인도네시아인 새아버지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로 이주,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수도 자카르타 근교의 부촌에 위치한 멘텡 초등학교 학생 250여명은 TV로 대선배의 미국 대통령 당선 장면을 지켜보며 “오바마가 이겼다!”고 외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카흐마드 솔리킨 교감은 “이 학교 출신자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된 것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6학년인 파르한 아샤르디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1960년대 오바마와 함께 공부한 동창생들은 ‘배리(Barry)’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작은 소년이 미국의 지도자가 된 것에 놀라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키수무(케냐) ·자카르타(인도네시아) AFP 연합뉴스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숯처럼 까만 아버지에 우유처럼 하얀 어머니…” 소년 오바마는 혼란스러웠다. 미국 절반이 흑백결혼을 금지하던 시절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흑백결혼’이란 단어가 괴기스럽고 추하게 느껴졌다. 혼란은 오래 갔다. 상처는 덧났다. 백인 가정에서 자란 흑인. 미국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정체성. 모든 게 모호했다. 위안이 필요했다. 당연한 듯 술과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술에 취하면 내가 누군가 하는 의문을 잠시 지울 수 있었다.”고 했다.“매일 아침 눈 뜨면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고도 했다. 방 안엔 안주 담은 그릇이 뒹굴고 재떨이엔 꽁초가 넘쳤다. 모든 게 황량했던 시절이었다. 흔한 마약쟁이로 일생을 보낼 뻔했던 이 흑인은 5일(현지시간)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세계 언론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 속에서 오바마의 검은 얼굴엔 흰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5일(현지시간) “혼란스럽고 고단했던 날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케냐 출신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대학에 갓 입학한 18세 소녀였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단 한 사람의 축하객도 없었다. 하와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혈과 외지인이 많았던 하와이는 본토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1세는 케냐 루오족 출신이었다. 서부 빅토리아 호숫가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오바마의 할아버지는 영국인 지주 집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오바마 1세는 염소를 몰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들을 식민지의 영국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시켰다. 그런 오바마 1세에게 일생일대 기회가 찾아왔다. 케냐가 독립하기 전날, 미국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오바마 1세는 하와이 대학에 입학했다. 거기서 어눌하고 수줍음 많던 스탠리 앤 던엄을 만났다. 금세 사랑에 빠졌고 곧 아기를 가졌다. 어머니 던햄은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은 빨리 다가왔다. 새로운 장학금을 받아 아버지가 하버드로 떠났다. 어린 엄마와 흑인 아들은 하와이에 남겨졌다. 오바마가 두살 때였다. 어머니는 새삶을 살았다. 학교에 복학하고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 수토르와 재혼했다. 여섯살 오바마는 새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나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오바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네 친구 에디 뿌르완또로는 오바마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사룽(인도네시아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천)을 뒤집어 쓰고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닌자놀이를 했다.”고 했다.“서로 다른 신을 믿지만 그래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를 줄곧 기도했다.”고도 했다. 열 살 되던 해, 오바마는 호놀룰루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미국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호놀룰루에선 오바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바마를 진정한 미국인으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이다. 오바마는 외할머니를 ‘투트(Toot)’라 부르며 따랐다. 하와이 원주민 말로 할머니를 뜻하는 ‘투투(tutu)’를 변형한 애칭이다. 숨가쁜 대선 레이스가 계속되던 지난달 23~24일, 오바마는 외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하와이로 급히 날아갔다. 캠프 안팎에서는 이런 행보가 선거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었지만, 오바마에게는 그저 ‘투트’가 소중했다. 오바마는 지난 3일 조용히 숨을 거둔 외할머니를 “미국의 수많은 ‘조용한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기렸다. 선거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외가쪽 이력이 백인 보수층의 거부감을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실제 대선전에서도 외할머니는 오바마의 큰 우군이 됐던 셈이다. 1979년, 고등학교를 마친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털칼리지에 입학했다.2년 뒤엔 컬럼비아대로 편입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수도승처럼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동체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한다.“흑인을 조직해 풀뿌리부터 변화시키리라.”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시카고에서 운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더 많은 지식, 한 단계 높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1988년, 오바마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판례와 법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90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선출된다. 학술지 역사 104년 만에 첫 흑인 편집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일찌감치 흑인사회의 리더로 각인됐다. 당시 오바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미국이 진보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6년 오바마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일리노이주 주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1998년에 재선,2002년에는 3선에 성공했다. 그 사이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도 겪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그해에는 일리노이주 민주당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4년 뒤 2004년 대선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존 케리 당시 민주당 후보가 보스턴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요청했다. 케리는 “우연히 선거 행사장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오바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무명에 가깝던 이 흑인 정치가는 이날 연설 이후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그리고 흑인으로는 다섯번째로 연방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2008년 이 ‘검은 케네디’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금융위기로 흔들리는 ‘미국호’의 새로운 조타수가 됐다. 그는 “아직 미국에는 꿈꾸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있으면 희망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 몽상가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美대선 D-1] “누가 되든 亞 중시정책 펼것”

    막바지에 이른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정치와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아시아 중시 정책이 기대된다고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어린시절 4년을, 매케인은 베트남에서 포로로 5년 반을 지냈다. 이 시절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어도 아시아의 문화를 직접 접했다. 이런 가운데 마이클 매코넬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달 30일 테네시주 내슈빌에 모인 정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해 2025년쯤 다극화 정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하면서 “지구촌의 부와 경제권력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움직이는 것은 근대 이후 최초”라고 말했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아시아 경험은 외교정책이 기존의 편협한 미국 정치인과는 다르게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기대로 발전하고 있다. 두 사람의 외교노선은 대서양과 유럽 지향적인 미국 주류사회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와 태평양에 가장 근접했던 이들은 1960년 미 대선에서 맞붙어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으로 1년 남짓 태평양 등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과는 접촉이 거의 없어 아시아와의 문화 교류는 사실상 전무했다. 오바마는 어머니 앤 던햄(24)이 인도네시아 대학생 롤로 수토르와 재혼하면서 6세 때인 1967년 그를 인도네시아로 데려갔고, 수도 자카르타 외곽에서 살았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 생활 이후 미국의 주(州)라고 하지만 태평양의 섬인 하와이에서 10대를 보냈다. 오바마는 아시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참모 수잔 라이스는 “오바마는 21세기 미국의 안전이 아시아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부시 행정부의 단편적 중동정책의 부작용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무슬림 국가에서 살았던 경험을 들며 “무슬림과 화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전세계 무슬림 지도자들과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매케인은 오바마가 인도네시아로 이사갈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포로로 붙잡혔다. 미 해군 조종사였던 그는 1967년 10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폭격하러 가다가 격추당했다. 소위 ‘하노이 힐튼호텔’로 불리는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매케인은 “중국과 인도를 세계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면서 그의 포로 경험에 비춰 북한과 미얀마의 수감자들의 인권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산모 63.7%가 30대… 초혼비율 74%로↓

    30대 산모가 64%로 20대 산모를 넘어섰고, 출산율은 20년 전보다 4분의1 이상 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어났지만 남성과의 사회적 격차는 여전히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여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3일 여는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여성정책연구원의 ‘지표를 통해 본 한국 여성 삶의 변화’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2일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전인 1987년 초혼 연령은 여성이 24.5세, 남성이 27.3세였으나 2007년에는 여성 28.1세, 남성 31.1세로 높아졌다. 혼인 형태도 1970년대에는 전체 혼인의 91.5%가 남녀 모두 초혼이었지만,2005년에는 초혼 비율이 73.9%로 떨어졌다. 한쪽 이상이 재혼인 경우가 4분의1 이상 증가한 셈. 평균 재혼 연령은 1987년 여성 34.4세, 남성 39.3세에서 2005년에는 39.6세,44.1세로 각각 높아졌다. 저출산 경향도 뚜렷하다.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조출생률은 1970년 31.2명에서 2007년 10.1명, 출산율은 1970년 4.53명에서 2005년 1.08명으로 큰 폭으로 줄었다. 가장 많은 출산 연령대도 20대에서 30대로 역전됐다.1970~80년대 중반까지는 20대 산모가 최대 85.5%로 압도적으로 많았지만,2005년에는 20대 산모가 47.6%,30대 산모가 63.7%로 역전됐다. 여성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20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1970년 38.2%에서 2007년 48.9%로 늘었지만 1989년 프랑스의 여성 고용률인 56%에도 훨씬 못 미쳤다. 개인소득 수준을 비교해 보면 남성은 2004년 평균 연봉 2600만원에서 2007년 4100만원으로 증가한 데 반해 여성은 1200만원에서 2100만원으로 남성의 절반에 그쳤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멋만 내는 사르코지” 네티즌 동영상 화제

    프랑스 네티즌들이 제작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지나치게’ 화려한 패션을 비꼬는 동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슈퍼모델 출신 가수인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한 뒤 부쩍 패션에 욕심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눈에 띄게 큰 로렉스 금시계와 레이밴(Ray-Ban)명품 선글라스를 자주 착용하고 공식석상에 등장해 눈초리를 받고 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사르코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직접 제작해 그를 비꼬고 있다. 5 분 분량의 이 동영상에는 짧은 옷을 입은 여성들 틈에 끼어 “I’m the King of Bling-Bling”(나는 보석의 왕이다)이라는 가사의 랩을 선보이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여러 개의 금 액세서리 등 ‘반짝반짝 빛나는’(Bling)것들로 한껏 멋을 내고 여성 댄서들과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삽입돼 있다. 특히 영상 도중 영부인인 브루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접한 엘리제궁(Elysee Palace·프랑스 대통령실) 대변인은 “우리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그 어떤 영상도 두렵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동영상이 유투브 커뮤니티 및 네티즌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에는 그의 이미지를 본 딴 주술 인형(Voodoo doll)이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1일 TV 하이라이트]

    ●있다! 없다?(SBS 오후 8시50분) ‘굽기만 하면 유재석 얼굴이 나타나는 신비한 빵이 있다! 없다?’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유재석을 직접 내세워 일명 ‘유재석 빵’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밝혀본다. 포클레인으로 하는 뜨개질, 당나귀 마을버스, 큰대 자로 누워서 자는 캥거루 등 기상천외한 사진들에 대한 진실도 공개된다. ●명의(EBS 오후 9시50분) 남성 암 발생률의 5위를 차지하는 두경부암의 가장 큰 발병인자는 흡연이다. 하루에 담배 2갑 이상을 피우는 흡연자의 경우 비흡연자에 비해 구강암은 12배, 후두암은 32배 정도로 암 발생 위험이 높다. 두경부암이 악화되면 목숨은 건진다 해도 숨 쉬고, 먹고, 말하는 기능을 잃을 수 있다. ●흔들리지마(MBC 오전 7시50분) 수현은 강필의 금고에서 주식양도증서를 찾는다. 때마침 들어온 소희정 때문에 당황스러워지자 수현은 집에서 만든 쿠키를 금고에 넣어 강필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 했다며 어물쩍 둘러댄다. 영미는 수현을 찾아와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하겠다며 도울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한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두 번의 이혼으로 자책감에 빠져 있던 철수는 무능력한 남편과의 이혼으로 비슷한 상처를 가진 영희를 만나 재혼을 한다. 결혼식 이후의 집들이에 남편 회사 사람들을 초대한 날, 영희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만다. 같은 직장 동료인 유진이 다름 아닌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KBS1 오후 10시) 지난 1월25일 ‘모텔 시트, 제대로 갈까’편에서 국내 모텔의 위생 상태를 집중 점검했었다. 당시 손님이 한번 사용한 침대 시트를 갈지 않고 그대로 다음 손님에게 쓰게 하는 모텔 관리의 실상에 많은 소비자들이 분노했다. 방송 9개월이 지난 지금, 모텔들의 위생상태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프런티어 특집 9부 ‘프로테오믹스’(YTN 오전 10시25분) 단백질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인 프로테오믹스는 암, 당뇨병, 치매 등을 일으키는 질환 단백질을 발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술로 통한다. 의약계에서 주목받는 신기술이자 난치병 치료의 열쇠로 불리는 프로테오믹스 개발의 현실에 대해 알아본다.
  • [정종욱 월드포커스] 오바마의 아버지가 남긴 꿈들

    [정종욱 월드포커스] 오바마의 아버지가 남긴 꿈들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꼭 일주일 남았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민주당 후보 바락 오바마의 당선이 거의 확정적이다. 공화당 텃밭이었던 지역들에서 오바마가 우세한 상황이고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처럼 공화당 원로이면서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인사도 늘어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유력 일간지들은 이미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그래서 존 매케인 후보가 열세를 극복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만약 오바마가 당선되면 이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의 당선은 미국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의 탄생을 뜻한다.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바마는 유색인 치고도 특이한 편에 속한다. 올해 만 47세인 그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버락은 케냐 말로 축복을 뜻한다.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그의 어린 시절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태어난 지 2년 만에 부모가 헤어졌고 여섯 살 때에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자카르타로 갔다가 열 살 되던 해에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그때부터 외할머니와 살았다. 백인 외할머니는 혼혈아인 손자가 길거리에서 흑인들에게 얻어맞지나 않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의 어린 시절은 케냐와 하와이와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흉물스럽게 망가졌고 이를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 또한 그것이 성공적이었던 것만큼이나 눈물겨운 것이었다. 오바마는 정치적 신인이다. 동부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최고 엘리트이지만 정치 경력은 4년 전에 시카고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된 게 전부다. 경쟁자인 매케인은 상원에서 24년 동안 군림한 왕고참이고 자신의 부통령 후보인 바이든의 상원 경력은 36년이나 된다. 그런 정치 초년병인 오바마가 혼혈 가정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드디어 대통령 꿈을 이룩하게 된다는 사실은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밖에 없다. 정치신인 오바마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4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가 행한 연설이었다. ‘희망에의 도전’(the audacity of hope)이란 제목이 붙여진 이 연설은 대회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들을 열광하게 했고 무명에 가까웠던 오바마를 일약 정치적 스타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이 연설에서 자신의 첫 저서인 “아버지가 남긴 꿈들”(The dreams from my father)을 말한다. 그의 아버지가 남긴 꿈은 한마디로 통합의 꿈이었다. 사람들이 제 각기 다른 꿈들을 꾸지만 결국은 하나의 꿈으로 합쳐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이것을 에 플러리버스 우넘(E pluribus unum)이라 표현했다. 다수에서 하나로(out of many, one)라는 뜻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미국이 그 다양성을 하나로 결집시킬 때 비로소 미국적 가치가 구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었다. 오바마의 눈에는 그런 미국의 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변화를 표방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나선 것이다. 차기 미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한 많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금융위기가 아니라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시대는 사라졌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미국의 꿈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누가 되든 미국의 새 대통령은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는 다원적 질서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일주일 후에 있을 미국 대선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오마바가 이런 역사적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인지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길섶에서] 만혼(晩婚)의 행복/김인철 논설위원

    우편물을 받았다. 안 열어봐도 청첩장인 줄 알겠다. 누굴까. 일찍 결혼한 여자 동창생이 아이들 혼사 치른다는 소식이겠지 지레짐작했다. 한데 보낸 이가 남자다.“아하,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그랬다. 말이 별로 없는 친구, 무슨 연유에선지 결혼을 안 해 친구들로부터 툭하면 “아직 상투도 못 튼 어린애가…”하며 놀림을 받던 그 친구가 드디어 장가를 간단다. 동창생들이 하나둘 자식 혼사를 치를 즈음에 본인 결혼이라니…. 만사 제쳐놓고 혼례식장에 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50대 초반 친구의 모습이 환하다. 저렇게 밝은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역시 40대 후반 신부의 표정도 눈부시다. 신랑은 초혼이고, 신부는 재혼으로 이런저런 사연이 구구하다지만 여느 신랑, 신부와 다름없이 다정해 보인다. “아들 딸 낳고 잘살아라.” 친구들의 짓궂은 덕담에 대답이 걸작이다.“너희는 평생 자식들 키울 걱정에, 과외비에 학원비 때문에 고생했지만, 우린 우리 살 일만 걱정하며 행복하게 살련다.”만혼(晩婚)의 신랑, 신부가 더없이 행복한 이유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혼인건수 30년만에 3분의2로 급감

    혼인건수 30년만에 3분의2로 급감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가 30년 만에 3분의2 수준으로 급감했다.‘연상녀-연하남’과 ‘재혼녀-총각’ 커플도 부쩍 늘었다. 초혼 연령이 크게 높아져 ‘골드 미스’ 전성시대가 됐다. 지난 60년간 우리나라 시내버스 요금은 20만배 뛰었다.46년전 아시아 선진국이던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엇갈린 행보를 걷고 있다. 한국통계진흥원은 19일 정부수립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한민국을 즐겨라’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시내버스 요금 60년간 20만배 이 책에 따르면 결혼한 커플의 수는 70년 29만 5137쌍에서 80년 40만 3031쌍으로 36.6% 급증했으나 지난해에는 34만 5592쌍으로 14.3% 줄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80년에 10.6건에서 지난해 7건으로 크게 줄었다. 여성의 초혼 연령은 90년 24.8세였으나 지난해에는 28.1세로 올라갔다. 초혼 부부 중 여성이 나이 많은 경우는 13%로 90년 8.8%에 견줘 크게 높아졌다. 초혼 부부의 경우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90년 8.8%에서 지난해 13%로, 동갑인 경우도 9.1%에서 15.6%로 늘었다. 특히 과거에는 꺼려했던 ‘재혼 여성-초혼 남성’간 결혼은 1만 9645건으로 ‘재혼 남성-초혼 여성’간 결혼 1만 4982건을 훌쩍 넘었다. ●소비자 물가지수는 1만 710배 1948년에 시내버스 요금은 4원 50전에 불과했다. 당시 달걀 5개와 쇠고기 200g가격이 같았고, 달걀 1개로 전차 5번을 타고도 남았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20만배나 가격이 오른 셈이다.48년 이후 올해까지 소비자물가지수는 1만 710배가 뛰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근령씨 ‘눈물의 결혼식’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 근령(54)씨가 13일 14세 연하의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에 반대 의사를 밝혀 왔던 박 전 대표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이날 결혼식에는 동생인 지만씨 내외도 불참했다.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을 제외하고는 정치인의 발걸음도 없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참석하지 않았다.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난을 보낸 것을 비롯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박태준 전 총리,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김형오 국회의장, 안경률 사무총장, 김성조·원희룡·김소남 의원 등 정치인들의 화환만 가득했다.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와 지난 총선 박씨가 유세를 도왔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장관이 각각 화환을 보냈다. 박씨 부부가 불우이웃 돕기를 위해 화환 대신 보내 달라고 부탁했던 쌀부대 선물도 20여개 정도 됐다.박씨는 결혼식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보이며 “여러 가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나부터도 내 동생이 그렇게 결혼한다고 하면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결혼식에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검소함을 기리는 취지에서 식사 대신 다과가 대접됐다. 각각 재혼인 두 사람은 별도의 신혼여행은 가지 않고 박씨의 서울 성북동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꾸릴 계획이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여성&남성] 노처녀·노총각은 왜 결혼을 못할까

    [여성&남성] 노처녀·노총각은 왜 결혼을 못할까

    명문대 출신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업과 억대연봉, 훤칠한 키와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따지다 결혼적령기를 놓쳐 노총각·노처녀로 살아가는 그들. 결혼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너무 까다롭다 못해 독특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조건만 따지다 세월가는 줄 모르고 있는 노총각·노처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커플매니저들에게 들어봤다. ■ 男 ●“노처녀·노총각임을 인정 안 하는 게 문제죠”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커플매니저 오지윤(46)씨는 “노총각·노처녀들은 자신들이 노총각·노처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제일 큰 문제예요.”라며 말을 꺼냈다. 결혼적령기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그게 심할 정도로 관대한 사람은 문제라는 것이다. 오 매니저가 실례로 소개한 변호사 고모(38)씨는 명문대 졸업에 미국유학까지 다녀왔고 유명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A클래스 회원´이다. 하지만 고씨는 나이 마흔에 가깝도록 여전히 느긋한 태도를 취하며 자신이 세워놓은 까다로운 조건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씨는 집안, 직업, 외모 외에도 ‘천주교도, 수도권 출신´ 등 요구하는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해외에서의 방탕한 경험을 우려해 ‘해외 유학 경험이 없을 것´ 같은 특수한 조항도 요구하고 있어 중매 성사가 더욱 어렵다. “이런 분들은 스스로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결혼이 조금 늦어진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위기감이 없다보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느긋한 게 문제죠.”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이라는 노총각들은 무조건 퇴짜 명문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정부부처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모(39)씨. 완벽한 조건을 갖춘 강씨지만 아직까지 짝을 만나지 못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커플매니저 고재수(46·여)씨는 강씨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정의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여동생 세 명이 늘 떠받들어주는 것에 익숙해진 게 강씨의 문제였다. 신경이 예민한 강씨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은 항상 조용했고, 강씨가 먹고 싶다고 말한 반찬은 반드시 그날 저녁상에 올라왔다. 강씨는 고 매니저에게 “여성들로부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5년전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한 강씨는 고 매니저에게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을 당당히 요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살림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을 잘 내조할 수 있는 팔방미인을 원했다. 지금까지 50명이 넘는 여성을 만났지만, 어떤 여성도 강씨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나는 집안의 기둥이다. 결혼 후에도 아내가 기둥을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남성에게 끌릴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가지 조건만 고집하다보면 좋은 사람도 놓칠 수밖에 결혼정보업체 웨디안의 커플매니저 부유경(33·여)씨는 이름난 ‘커플 제조기´다. 내세우는 조건이 까다롭던 고객들도 부씨의 코칭을 받고 난 뒤에는 결혼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씨에게도 좀처럼 조언이 통하지 않던 회원이 회사원 최모(41)씨였다. 유명제약회사에 다니는 최씨는 수십억원대의 자산가이자 177㎝의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까지 갖춘 ‘훈남´이다.“마음만 통하면 어떤 여성이라도 좋다.”던 최씨였지만, 유독 ‘170㎝´가 넘는 키를 고집했다. 부 매니저는 우여곡절 끝에 프로필에 키가 172㎝라고 밝힌 이모(32·여)씨를 찾아 만남을 주선했다. 그런데 최씨는 첫 만남에서 이씨가 자신의 키를 “168㎝”라고 했다며 거절했다. 알고보니 큰 키가 콤플렉스였던 이씨가 키를 4㎝ 낮춰 말했던 것. 부 매니저는 최씨의 고집을 꺾어보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키가 170㎝가 넘어야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낀다는데 어쩌겠어요. 알고 보니 다른 업체 커플매니저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조건을 내세우기로 유명한 분이시더라고요.” ■ 女 ●성공한 여성의 고정관념과 결벽증이 장애물 결혼정보업체 비애나래의 커플매니저 이경(44·여)씨는 가끔 답답한 고객들 때문에 한숨 지을 때가 많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수많은 엘리트 여성들의 결혼을 성사시켰으나 가끔 난감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씨의 고객 중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김모(39·여)씨는 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뛰어난 영어실력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외국계 회사에서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김씨는 남자를 경쟁대상으로 보는 고정관념과 결벽증을 갖고 있었다. 직장에서 수많은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만큼 결혼할 남성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 직장에서 ‘남자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성공하리라.´는 목표에만 매달렸던 김씨는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자 초초해졌다. 그러나 김씨는 40∼44세의 남성에 소득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조건만은 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불혹이 넘도록 여자 경험이 없는 ‘숫총각´만 소개해달라며, 결혼정보회사가 이를 검증해서 엄선해 달라고 ‘특별주문´까지 하는 등 난감한 요구사항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른 조건은 그렇다쳐도 ‘숫총각´ 부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 여자가 35세 이상 나이를 먹으면 결혼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 경우 가장 적합한 상대는 나이든 재혼 남성인데 현실적으로 혼기를 놓친 많은 성공한 직장여성이나 전문직 여성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느낌·조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 결혼정보업체 큐피앙의 커플매니저 이연정(40·여)씨는 노처녀가 결혼 못하는 이유는 느낌과 조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씨의 고객 중 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다니는 유모(30·여)씨는 인형같이 생긴 얼굴과 168㎝의 늘씬한 키로 주변에 항상 남자가 많았다. 같은 직장 연하의 미국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로 국제결혼에 실패했다. 유씨는 변호사, 의사, 검사등 ‘사´자 라인은 일단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결혼시기를 놓친 유씨는 “상대가 감성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니 마음이 닫혀 결혼생각까지는 안 든다.”며 상대 남성과의 지속적인 만남에 모두 실패했다. 조건은 조건대로, 느낌은 느낌대로 따지는 유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성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자들은 조건에 굉장히 민감하죠. 그렇다고 느낌을 배제하지도 않아요. 연애할 땐 나쁜 남자를 선호해도 결혼할 땐 자상한 남자를 원하거든요. 특히나 ‘골드 미스´들은 명예와 부를 갖추고 있으니 더 그렇죠.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다가 결혼 시기가 점점 늦어지면 그냥 혼자 살고 만다는 경우가 적지 않죠.” ●“옛사랑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 여성분들은 정말 안타까워요”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커플매니저 전선애(37·여)씨는 옛사랑의 상처가 때로는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며 한모(34·여)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한씨는 대학교에 입학해 처음 만난 남자친구와 7년 동안 연애를 해왔지만 결국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말았다. 그녀가 차인 이유는 단지 남자친구에게 너무 잘해줬다는 것 때문이었다. 또 차일까 두려워 남자를 쉽게 못 만나는 우유부단한 여성이 되고 만 한씨는 어쩌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남성이 있으면 “이 남자 플레이보이 아닐까요? 나를 쉽게 버릴 것 같아서 불안해요.”라고 호소하면서도 하루라도 전화가 안 오면 “벌써 사랑이 식은 것 아닐까요?”라면서 상담을 요청한다.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기분, 상대의 감정에 너무 좌지우지되다 보니 짝을 여태 못 만난 거죠. 안 됐지만 한씨는 앞으로도 결혼하기는 힘들어보여요.” 김정은 장형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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