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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만원 범칙금’ 20개월 법정투쟁 박중광씨

    법률지식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 1년 8개월간의 외로운 법정싸움 끝에 대법원의 새로운 판례를 이끌어냈다. 박중광(58·가내공업)씨의 법정투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 97년 8월1일.택시운전사와 말다툼을 하다 차량통행을 막았다는 이유로 3만원짜리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은 것.박씨는 억울한 마음에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다가 즉심에서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이후 정식 재판을 청구했지만 법률지식이 없던 박씨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했다.더구나 IMF로 공장형편이 어려운 데다 단돈 몇만원 때문에 변호사를 고용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할 수 없이 귀동냥으로 법률지식을 얻어 나갔고,다른 법정에 들어가 변호사들의 변론을 지켜보며 법률지식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즉심형의 2배인 ‘벌금 10만원’을 선고받은 것.박씨는 1심에 불복,항소를 해봤지만 지난해 7월 서울지법 본원 항소심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받고 말았다.희망을 버리지 않은 박씨는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호소했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鄭貴鎬대법관)는 지난 1월상고심에서 “피고인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는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 즉심에도 적용된다”고 판결했다.정식재판이나약식명령에만 적용되던 원칙이 즉심에도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지법 형사항소4부(재판장 金敬鍾부장판사)는 17일 박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원심을 깨고 벌금 3만원을 선고했다. 박씨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은 판사들보다는 사건기록을 제때 복사해준법원직원이 훨씬 고맙다”면서 “무죄를 받아내지 못해 안타깝지만 잘못된것을 바로잡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학습지 채택료 챙긴 교사 해임처분은 징계권 남용

    15만원짜리 중학교 학습교재 한질을 학생들에게 권유하면 교사들은 5만원의 채택료를 받는다.그렇더라도 이를 이유로 교사를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孫智烈 부장판사)는 16일 학생들에게 학습교재를권유하고 H학습지로부터 105만∼155만원의 채택료를 챙긴 金모씨 등 광주 M중의 전 담임교사 3명이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교육자로서의 비위 정도는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해임처분은 징계권 남용”이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김씨 등은 96년 한질당 15만원인 H학습지를 채택하면 5만원씩을 사례비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받고 가정통신문까지 발송,학생들의 구독을 권유했다. 이에따라 김씨 등 교사들은 1인당 105만∼155만원의 사례비를 챙겼다.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 등 교사 10명은 97년 징계위에 회부됐다.징계위는 잘못을 시인한 7명은 정직이나 감봉에 처했지만 시인하지 않은 3명에게는해임처분을 내렸고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서울고법 ‘카지노 소득 관련 세금청구 부당’

    서울고법 특별4부(재판장 金明吉판사)는 9일 마카오 카지노에서 딴 12억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金모씨(37)가 안양세무서를 상대로 낸 4억7,700여만원의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金씨는 카지노 수입에 대한 과세 근거가 세법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金씨가 딴 돈은 소득세법의 기타 소득 가운데 하나인 사행행위에 의한 재산상 이익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세금부과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金씨는 지난 97년 6월 여행사 가이드로 마카오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 호텔 카지노에 들렀다.단돈 20홍콩달러(한화 3,200여원)를 슬롯머신용 동전으로바꾼 金씨는 첫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당긴 순간 1,100여만 홍콩달러(한화 12억2,000여만원)를 따게 됐다.
  • 한총련 활동만으론 보안법 처벌못해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위반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다.검찰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는데다 한총련 미탈퇴자에 대한 사법처리를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대전지법 형사합의4부(재판장 한상곤부장판사)는 6일 국가보안법위반 등의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충남대 총동아리연합회장 金모 피고인(26)과 전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趙모 피고인(26) 등 6기 한총련 대의원 2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위반죄 부분은 무죄”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들이 지난해 4월 총장실을 점거,8일동안 농성을 벌이며 학사업무를 방해한 혐의는 인정된다”며 이 부분에 대해 징역 1년6월에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현대증권 李益治회장, “李會晟씨 요청으로 10억 줬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 국세청을 동원,한나라당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의 동생 李會晟피고인에 대한 세풍사건 5차 공판이 3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8부(재판장 邊鎭長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현대증권 李益治회장은 증인신문에서 “97년 11월 말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의 소개로 李피고인을 처음 만났을 때 李피고인이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해 李차장을 통해 10억원을 제공했다”면서 “12월 초 두번째 만났을 때도 ‘YS가 도와주지 않아 힘드니 선배님이 도와달라’고 말해 한나라당 후원회에 20억원을 납부했다”고 진술했다. 李회장은 이어 “李피고인은 당시 직접적으로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면서 “도와달라는 말을 관행적인 대선자금 요청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李회장은 “97년 11월 말부터 12월3일까지 李피고인을 만난 것은 두차례가 아니라 네차례였다”면서 검찰신문 때의 진술을 번복했다. 李피고인은 97년 9월 초∼12월 초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한나라당 徐相穆의원 등과 공모,현대 대우 동부 진로 등 25개 기업으로부터 167억7,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됐다.
  • ‘총풍’ 공판 연기-재판부, 기피신청 수용

    총풍사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宋昇燦부장판사)는 29일 張錫重·吳靜恩피고인의 변호인단이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한 고문 여부가 결론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의 증거조사를 먼저 하려 하는 등 공판이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함에 따라 공판 절차를중단했다. 기피신청은 법관의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될 때 검찰과 피고인측이 내는 것으로 인용 여부가 결정 때까지 공판 절차가 중단되며 기각되면 기존 재판부가 계속 재판을 맡게 된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만큼 공판 절차를 정지하고신청에 대한 인용 여부가 결정날 때까지 공판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예정됐던 총풍사건 10차 공판은 기피신청에 대한 서울지법형사수석부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연기됐다.
  • SK건설등 국가상대 승소

    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孫容根부장판사)는 28일 한국건설중기직업훈련원을 감독해야 할 노동부가 이를 게을리해 이사장이 훈련비를 착복했는데도 훈련비를 다시 징수한 것은 부당하다며 SK건설 등 7개 업체가 국가를 상대로 낸 17억여원의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업들이 직업훈련에 써달라고 맡긴 돈을 훈련원 이사장이 착복한 것은 노동부 공무원들이 훈련원 지도·감독을 게을리한 데 원인이 있는 만큼 이사장이 착복한 돈과 뇌물 등으로 사용된 돈을 훈련비로 징수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SK건설 등은 지난 93∼94년 한국건설중기직업훈련원(현 성일건설교육훈련원)에 훈련비를 내고 직원 위탁교육을 시켰으나 훈련원 이사장이 7억여원을 착복하고 노동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줬는데도 노동부가 “훈련비로 사용해야 할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서 17억여원을 징수하자 소송을 냈다.
  • 밀입북 대학생 잠입·탈출 혐의 법원, 공소장 보완 요구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金大彙부장판사)는 28일 국가보안법의 잠입·탈출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5년을 구형받은 黃羨피고인(25·여)에대한 선거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장이 특정되지 않았다”면서 공소장 보완을 요구하고 다음달 6일 재판을 속개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해 잠입했다고 기소했지만 지령을 받은 경위나 지령 내용 등이 특정되지 않아 유·무죄를 판단하기어렵다”면서 “특히 피고인이 밀입북한 뒤 북한 학생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해 ‘연방제 통일’ 등을 결의했다는 것만으로 지령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관련,“밀입북해 비슷한 이적활동을 한 대학생들에게 잠입·탈출죄를 적용한 판례가 많다”고 반박했다.덕성여대에 다니다 제적된 黃피고인은 지난해 8월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한 뒤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됐다.
  • 연합철강 증자 또 무산될듯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朴在允부장판사)는 25일 연합철강공업과 이회사 소액주주 7명 등 회사 경영진이 증자과정에서 반대가 예상된다며 전 사주 權철현씨 부부를 상대로 낸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에서 “權씨의 증자반대 의결권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기각결정을내렸다. 이에 따라 연합철강의 15년 숙원사업인 증자가 또다시 무산될 처지에 놓였으며 연합철강이 올해도 증자를 못하면 증권거래법의 주식분산 요건을 맞추지 못해 상장폐지될 가능성도 있다.재판부는 결정문에서 “權씨가 과점주주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증자에 반대하는 것은 주주로서의 적법한 의결권 행사인 만큼 증자반대를 권리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대선전 徐相穆의원에 9억 전달” 李前차장 비서 세풍 진술

    이른바 ‘세풍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의 동생 會晟씨에 대한 4차 공판이 20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8부(재판장 邊鎭長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증인으로 나온 97년 당시 李碩熙 국세청 차장의 비서였던 徐모씨는 검찰신문에서 “李총재가 대선후보가 된 직후인 97년 8월부터 11월까지 평소 드물었던 會晟씨의 전화가 잦았다”면서 “통화내용은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된얘기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徐씨는 또 “97년 12월초 李차장의 지시로 모은행 출장소장 가족 명의 차명계좌 3개에 여러차례에 걸쳐 수억원을 입금시켜 통장과 도장을 李차장에게건넸고 100만원권 자기앞수표로 발행받은 9억원을 徐相穆의원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 裵在昱 前청와대비서관 집유 3년·추징금1억 선고

    서울지법 형사항소7부(재판장 郭賢秀부장판사)는 19일 진로그룹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된 전 청와대사정비서관 裵在昱피고인에 대해 알선수재죄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죄 등을적용,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裵피고인은 지난 97년 10월 진로 張震浩회장으로부터 진로 계열사의 화의성사 청탁과 함께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 韓成基씨 ‘총풍 고백서’제출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韓成基피고인이 자신에 대한 공소사실을 시인하는 내용의 ‘고백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韓피고인은 지난 16일 서울구치소 교도관을 통해 ‘총풍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宋昇燦부장판사)에 ‘재판장에 드리는 고백서’를 제출했다. 편지지로 50여쪽인 고백서에는 韓피고인이 지난 97년 대선 직전 吳靜恩·張錫重피고인과 공모,베이징 캠핀스키호텔에서 북한측 아태평화위원회 참사 朴충을 만나 ‘북풍’을 일으켜줄 것을 요청했다고 공소사실을 시인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韓피고인은 잘못을 뉘우치며 선처를 바란다고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고백서를 열람한 한나라당 변호인단측은 “고백서에는 판문점 부근에 민간인 2∼3명을 왔다갔다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총격이나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은 없다고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 대전법조비리 이종기변호사 첫 공판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주역인 李宗基(47)변호사와 金賢(41) 전 사무장 등에 대한 첫 공판이 15일 대전지법 형사합의3부(재판장 高毅永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검찰은 직접신문을 통해 검찰 및 경찰,법원직원 등으로부터 사건을 소개받은 대가로 거액의 알선료와 일부 직무관련 뇌물을 건넨 사실을 집중 추궁했으나 李변호사는 “金 전사무장에게 수임료 중 일정액을 활동비로 인정해준적은 있지만 이들 직원에게 직접 돈을 건넨 사실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대전l崔容圭 ykchoi@
  • 판문전 총격요청사건…검찰, 비공개 재판 요청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으로 기소된 韓成基·張錫重·吳靜恩피고인 등 ‘총풍 3인방’과 전 안기부장 權寧海피고인에 대한 9차 공판이 15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宋昇燦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검찰은 이날 증인으로 신청된 국가정보원 직원 2명에 대한 증인신문에 앞서 “韓피고인 등의 총격요청 사실을 증명할 증거는 국가안보에 위험을 줄 수있는 군사2급 비밀”이라고 전제한 뒤 “변호인 등 소송관계자에 대한 보안조치는 물론 대북 사업가로 비밀을 누설할 우려가 큰 張피고인을 퇴정시키고 변호인도 대표 변호인만 출석시킨 채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면서 재판부에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인들이 형사소송법상 공무상 비밀을 증언할 때는 국정원장 등 소속기관장의 승낙서를 지참하지 않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오는 29일로 예정된 다음 공판에서 증거제출과 함께 국정원장의 승낙서를 받아 국정원 직원 2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키로 했다. 姜忠植 chungsik@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7) 崔麟

    1949년 3월 20일 서울지방법원(구 대법원 건물)대법정.법정안은 발디딜 틈도 없이 초만원이었다.오후 1시 정각 검찰관과 재판관이 입장하자 재판이 시작되었다.재판관의 뒤로 법정 정면에는 중앙에 태극기를 두고 한 쪽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휘호가 걸려 있고 다른 한 쪽에는 ‘3·1독립선언서’가 걸려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백발에 수척한 모습의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그의 나이 71세,이름은 최린(崔麟)이었다.‘3·1의거’ 당시 오세창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했던 바로 그 최린이었다.그는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한지 5일만인 49년 1월 13일 명륜동 자택에서 체포돼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인중의 한 사람으로,청장년 시절 항일운동에 몸바쳤던 그가 해방된 조국의 법정에서 민족반역자로 지목돼 심판을 받는 것은 민족의비극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성달(徐成達) 검찰관이 그의 죄상을 읽어내려갔다.‘▒죄명:반민법 제4조 2항(중추원 참의),3항(칙임관이상의 고관),10항(친일단체의 수뇌간부)위반.▒범죄사실:피고인 최린은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여 보성중학교장 및 보성전문 강사를 역임하고,기미독립운동시 33인의 1인으로서 천도교회의 대표로 기독교,기타 종교단체와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였음으로 인하여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고,그 후 천도교 중앙종리원 등 장로로 있었던 자인 바, 1)1934년 이른 봄부터 1937년까지의 약 2년여,193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시까지의 약 5년여에 도합 7년여간 조선총독부의 유일한 자문기관인 중추원 칙임 참의로서 조선총독의 자문에 의하여 총독정치에 기여하고, 2)…’.이어서 검찰관이 기소장 낭독을 마치자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서순영(徐淳永) 재판장이 경력을 물은 뒤에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한 피고가 왜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그는 “기미년 당시 일제에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뿐이다”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최린(1878∼?,창씨명 佳山麟)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다.그의 집안은 중인출신으로 상당한 재산이 있었다고 한다.후에 그가 출세와 신분 상승을 위해권력에 집착한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같은중인 출신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변절에 대해서도 이같은 논리를 펴는 견해도 있다. 청년시절 그가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자임은 사실이나 그 무렵그의 민족의식에 대해서는 회의론을 펴는 견해도 만만찮다.1909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천도교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던 그는 1차대전 종결후 ‘민족자결주의’ 물결과 1919년 2월 도쿄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선포하자 이에 고무돼 ‘3·1독립선언’에 가담하였다. ‘3·1의거’ 당시 그의 민족의식이 투철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가 이 일로 체포돼 재판정에서 행한 발언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그는 “조선이 병합된 것은 러일전쟁의 당연한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또 당시 조선의 정치는 지독한 악정이어서도저히 조선의 안녕·행복을 유지·증진하기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병합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피치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1919.7.17 예심조서)고 진술하였다. 또 독립선언서 선포와 관련,“…본래의 의사는 극히 온건한 수단에 의하여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민을 선동하는 것 같은 문귀 등은피한 것이므로 우리들의 선언서를 본 사람은 그러한 폭동에 가담할 리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일자 미상)고 진술하였다. 첫번째 진술은 일제의 ‘한일합병’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두번째 진술내용은 자신들이 주도한 ‘3·1의거’를 ‘폭동’ 운운하고 있는 그가 과연 ‘민족대표’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또 재판장이 ‘현재의 조선인의 지모와 실력으로 독립국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일본정부의 도움을 얻으면 독립국으로 설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결국 그가 말한 ‘독립국’은 일제의 통치를 사실상 인정한 범위 내에서의 ‘자치국’ 정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그가 나중에‘자치운동’에 나서는 것과 무관치 않다. ‘3·1의거’로 의거 당일 일경에 체포된 그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12월 22일 일제당국의 ‘배려’로 가출옥하였다.‘3·1의거’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齋藤實)총독은 그가 표방한 ‘문화정치’의 전위대로 최린을 이용할 작정이었다.그의 가출옥 배경에는 사이토의 정치참모인 아베(阿部充家,‘京城日報’사장 역임)의 공작이 있었다. 그가 가출옥한 직후 아베가 사이토에게 보낸 편지에 ‘…오늘날의 형세로보아 민원식·선우순 따위의 운동으로는 도저히 일대 세력을 이룩하기는 어렵고,간접사격으로…일을 꾸미자면…여기에는 이번에 가출옥한 위인들 중 최린이 안성맞춤의 친구입니다…’(1921년 12월 29일자)라는 귀절이 보인다.‘기미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최린보다 앞서 가출옥(1921.10.19)한 육당 최남선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이번에 최린군을비롯하여 제군의 출감을 보면서 백열(柏悅)의 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특히 당사자들도 선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있습니다… ’(1921년 12월 25일자,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서 입수) 1926년 9월 그는 일제의 경비지원으로 구미 각처로 여행을 떠났다.당시 파리에 체류중이던 여류화가 나혜석(羅蕙錫)과의 염문이 떠돌던 시기가 바로이 무렵이었다.그 해 10월말 일본에 도착한 그는 다시 아베를 만나 “오늘날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데 확신을 하고 있으며 조선의회 설치가 조선민심의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긴요하고,나도 민중의 신임만 얻으면 조선의회의 한 사람이 되기를 사양치 않겠다”며 ‘조선자치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처음으로 ‘친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1933년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걸고 일선융합(日鮮融合)을 외치면서 부터다.이듬해 4월 그는 중추원 칙임참의가 되더니 8월에는 ‘시중회(時中會)’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동아(東亞) 제(諸)민족은 일본을 맹주로 하여 매진할 것,특히 조선은 일선융합(日鮮融合)·공존공영이 민족갱생의 길’이라고 외쳤다. 37년 다시 그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 해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보도를 적극 독려하였다.이 무렵 그는 총독부의 전시 최고심의기구인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후방지원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에 참여하면서 전쟁지원에 협조하기도 했다. 또 1941년 8월에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을 거쳐 10월 이 단체가 윤치호(尹致昊)계열의 흥아보국단과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탄생하자 단장에 취임하였다.징병제 선전과 학병권유에 앞선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일제 패망직전인 45년 6월에는 조선언론보국회라는 친일언론단체를 조직,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짧은 ‘항일’에 비하면 그의 ‘친일’은 길고 열렬했다.해방후 천도교측은 그의 죄를 물어 은퇴를 권고하였으나 그는 거부하다가 결국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였다.반민특위에 구속돼 민족반역자로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 49년4월 20일 3회 공판 끝에 병보석으로 석방됐다.재판과정에서 그는 다른 피고인에 비해 비교적 솔직한 참회로 재판부와 방청객들로부터 동정을 샀다.심지어 그는 “민족앞에 죄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고 사죄해 법정안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이후 그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반민특위 재판과정에서 그는 친일한 동기를 ‘늙은 노모에게 불효를 할 수 없어 망명도,자살도 하지 못하고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했다’고 털어놓았다.결국 그는 부모에 대한 효(孝) 위에 나라에 대한 효,즉 충(忠)이 있음을 몰랐던 셈이다. 정운현
  • 北 처자식 호적없으면 양녀 상속

    실향민이 북에 있는 가족에게 재산을 상속하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호적(戶籍)이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禹義亨부장판사)는 11일 96년 숨진 실향민 金모씨(당시 85세)의 유산관리인 李모씨가 상속권을 주장하는 양녀 유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등기 청구소송에서 “金씨가 ‘북한에 있는 처자식에게 재산을 양도할 때까지 李씨를 유산관리인으로 정한다’고 작성한 유서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金씨가 남긴 유서에는 작성 연월일과 주소가 없어법적효력이 없는 데다 金씨가 월남한 뒤 자신만 호적에 올렸기 때문에 북한에 처자식을 남겨뒀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따라서 월남 후양녀로 입적된 유씨를 유일한 상속인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金씨가 법적 효력이 있는 유서를 남겼거나 월남 이후 북한에 남겨둔 가족이 등재된 호적 또는 월남 전 호적을 갖고 있다면 상속이 가능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6·25 때 부인과 다섯 딸을 북에 두고 월남한 金씨는 64년 白모씨와 재혼한 뒤 白씨가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두 딸 중 큰딸 유씨만 82년 양녀로 입양했다.4년 뒤 부인 白씨가 사망하자 金씨는 병원 간호보조사 출신인 李씨의 간병을 받아왔다.
  • 여대생납치 강도 살해범고법서 원심깨고 무기선고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蔡永洙부장판사)는 7일 여대생을 납치,3만여원을빼앗고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태경피고인(29)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강도살인죄를 적용,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임피고인이 전과가 없는데다 범행 직후 자수했고,항소심에서는 1심 형량을 감해주는 것이 관례인 점을 감안할 때 극히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빼앗기 위해 여대생을 납치한뒤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는 등 피고인의 죄질이 너무 나쁘다”면서 “인명경시 풍조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임피고인은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국대 앞에서 술에 취한 여대생 李모씨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속여 렌터카에 태운 뒤 인적이 드문곳으로 끌고가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해 11월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姜忠植 chungsik@
  • 서울高法 ‘속리산공원내 용화온천허가 취소’ 확정

    서울고법 특별6부(재판장 朴在允부장판사)는 4일 속리산국립공원 용화온천집단시설지구 지주조합이 “온천개발 사업허가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환경부장관을 상대로 낸 공원사업시행 허가처분 취소재결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환경영향평가 등을 종합해 볼 때 온천지구 개발허가로 원고가 갖는 영업상 이익보다는 오·폐수 방류에 따른 하류지역의 직접적인 식수 및 농업용수 피해가 훨씬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하류주민들이 질좋은 물을 마실 권리를 보호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남한강 최상류인 신월천의 300m 위쪽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홍리와 중벌리 일대의 용화온천 개발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용화온천집단시설 지주조합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지난 95년 12월 당시 자연공원법 업무를 맡고 있던 내무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방류수질을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 1ppm 이하로 관리하는 조건으로 공원사업 시행허가를 받았다.하지만 온천개발로 인한 수질오염을 우려한 충북 괴산군 청천면등 하류지역 주민 1,825명이 행정심판을 제기,97년 3월 허가가 취소되자 소송을 냈다.주민들은 방류수질을 1ppm 이하로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없다고 주장했다.18만5,000평에 102동의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던 개발사업은현재 중단 상태이다.
  • 서울 남부지원…“의원들 국회공전 위법 아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합의1부(재판장 金大彙부장판사)는 25일 경실련이국회 공전의 책임을 물어 국회의원 28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측이 어떤 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개인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보았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으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이뤄지려면 원고의 피해가 피고들의 불법·위법행동 때문이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공전시킨 것은 현행법상 위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정치적 선입견으로 이루어진 재판”이라고 비난했다. 李志運 jj@
  • 李信行 前의원 6년 선고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孫智烈부장판사)는 23일 ㈜기산 사장 재직때 회사자금 183억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이 가운데 99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한나라당 의원 李信行피고인(56)에 대해 횡령죄 등을 적용,징역 6년에 추징금 2억5,300만원을 선고했다. 姜忠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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