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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12) 駑馬(노마)

    儒林 (545)에는 ‘駑馬’(둔할 노/말 마)가 나온다.‘느리고 둔한 말’이라는 뜻인데, 자기를 비유적으로 낮추어 ‘둔하고 재능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謙讓(겸양)의 표현이기도 하다. 駑자는 빨리 달리지 못하는 ‘둔한 말’을 뜻하기 위한 것으로 반대의 뜻을 가진 漢字(한자)에는 騏(준마 기),驥(천리마 기) 등이 있다.用例(용례)로는 ‘駑怯(노겁:미련하고 겁이 많음),駑鈍(노둔:둔하고 어리석어 미련함),罷駑(파노:쓸모없는 둔재를 이름)’ 등이 있다. ‘馬’는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의 모습을 본뜬 象形字(상형자).‘犬馬之勞(견마지로: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힘이라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이르는 말),馬脚(마각:가식하여 숨긴 본성이나 진상),塞翁之馬(새옹지마: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등에 쓰인다. ‘戰國策(전국책)’에는 合縱策(합종책)을 주도하는 등의 話術(화술)로 戰國時代(전국시대)를 풍미한 遊說客(유세객) 소진(蘇秦)의 이야기가 전한다. 그가 齊(제)나라 민왕(閔王)을 설득한 말 가운데 ‘駑馬’라는 단어가 보인다.“천리마도 기력이 쇠하면 노둔한 말이 천리마를 앞서고, 맹분(孟賁:중국 제나라 때의 역사)이 피곤에 지치면 아녀자들도 그를 이길 것이다.(麒之衰也,駑馬先之.孟賁之倦也,女子勝之)”라고 하였다. 또 ‘荀子(순자)’ 勸學(권학)편에도 ‘駑馬’라는 단어가 보인다.荀子는 재주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에게 미칠 수 있음을 비유하여 이렇게 표현하였다.“반보 걸음이 쌓이지 않고서는 천리에 이를 수 없고, 작은 支流(지류)가 모이지 않는다면 강과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 천리마라도 한꺼번에 열 걸음을 뛸 수는 없고, 노둔한 말이라도 열흘 길을 가게 되는 것은 그치지 않고 계속하는 덕이다.” (不積 步 無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 같은 책 修身(수신)편에는 “무릇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노둔한 말도 열흘 동안 달린다면 또한 여기에 이를 것이다.(夫驥一日而千里,駑馬十駕則亦及之矣)”라는 말도 보인다. 조선 전기의 학자 姜希孟의 登山說(등산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魯(노)나라에 세 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는데, 첫째는 성품이 침착하였으나 발을 절었고, 둘째는 奇異(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몸이 온전하였으며, 막내는 행동이 輕薄(경박)스러웠으나 몸이 날래고 勇猛(용맹)하였다. 어느날 이들 삼형제는 泰山(태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둘째와 막내는 자신들의 재주만 믿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산 중턱에 겨우 當到(당도)했을 무렵 어둠이 내렸다. 그때 첫째는 쉬지 않고 걸어 頂上(정상)에 올랐고 다음날 새벽에는 일출 光景(광경)까지 目擊(목격)하였다. 이들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자식들로부터 自初至終(자초지종)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였다.“자로(子路)의 용맹과 염구(求)의 재주로도 끝내 孔子(공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노둔한 증자(曾子)는 마침내 이르렀으니, 너희들은 이 점을 記憶(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자연 ‘민화’ “어머니,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아들 율곡이 숨가쁘게 달려옵니다. 풀밭에서 산 채로 잡아온 방아깨비를 어머니에게 보여줍니다. 신사임당은 방아깨비의 뒷다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놓아줍니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는 소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맛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이 묻어나오기 때문이지요.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릴 대상을 꼼꼼이 관찰해야 한다.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그림이 나올 뿐이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를 보고 닭이 와서 쪼아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현대판 신사임당’들이 민화를 그리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지난 7일 강동구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2층의 ‘민화방(民房)’.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민화에 푹 빠진 20여명이 몰려든다. 민화방은 고덕2동 동사무소에서 운영하지만 절반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민화방을 이끄는 한국민화작가회 회장 안종혁씨의 개인전 등을 접하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취미로 시작… 국내외서 전시회 열어 이날은 민화 경력 19년차인 ‘왕 언니’ 이정순(60)씨가 분위기를 한껏 띄우면서 시작됐다. 전날 저녁 제사 상에 올렸던 인절미를 가져온 것. 대개 이른 시간 집을 나서며 아침을 먹고 오지 않은 터라 인절미에 손이 갔다. 커피를 곁들이면서 이씨는 민화의 매력에 대해 말했다. “민화는 서민들의 생활이 녹아든 과거의 민중 예술이었습니다. 궁중 화원이든, 떠돌이 작가든, 여인네든 민화를 그렸지요.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무명작가들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훼손당했지만 최근 회복되고 있지요.” 중학교 과학교사였던 이씨는 취미삼아 민화를 배웠다가 은퇴한 지금까지도 민화에 빠져 있다. 실력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십장생도’ 등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강원 영월의 ‘난고 김삿갓 축제’의 민화 공모전에도 입상하기도 했다. ●일산서 왕복 4시간 걸려 오가기도 민화방의 ‘최고참’ 민춘례(73) 할머니도 거든다. “노인들이 시간을 보낼 게 마땅치 않잖아요. 집에서 잠이 안 오면 민화를 그리면서 잡념을 떨치고 집중할 수 있지요. 수다만 떠는 것은 싫어요. 틈만 나면 이렇게 붙잡고 있답니다.” 이런 열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민 할머니는 민화방이 열리는 매주 화요일이면 꼬박 2시간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행진’을 한다. 집이 일산에 있는 탓이다.“민화방까지 오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민 할머니는 “예전에는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걷는 게 힘들 정도였지만 이렇게 움직이니까 힘이 난다.”라고 대답했다. 원래 서예와 사군자를 시작한 민 할머니는 서예전에 갔다가 우연히 안종혁 회장의 작품을 접하고 민화방에 오게 됐다. 회원들은 어느새 자리로 가서 제각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각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서 꽃들을 그린 화훼도(花卉圖), 풀과 곤충이 담긴 초충도(草蟲圖), 꽃과 새를 화조도(花鳥圖),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는 책걸이(冊架)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가운데 민화방의 ‘청일점’ 박민수(52·남)씨가 단연 눈에 띄었다. 평일 오전 민화방에 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현직 경찰인 박씨는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아닐 때 짬을 내서 참석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주 밑그림을 그린 산수화를 채색하다가 “근무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서야 한다.”면서 서둘러 민화를 그렸다. ●세월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색감 민화방의 신혜영(50)씨는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지 예술협회와 한국총영사관 등의 후원을 받아 오클랜드 대학 초청으로 신씨의 작품이 이역만리까지 가게 됐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신씨는 미술학도답게 민화의 성격을 분석했다. “민화는 실용예술로 분류되지요. 옛 조상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였지요. 방안의 족자, 소반, 병풍 등에 모두 민화가 담겨 있었고, 여인네들이 애장하던 물품이었지요. 민화를 두고 회화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화가 우리 삶을 다루는 친근한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우영숙(42)씨는 민화의 색감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한지에서 물감이 피어나듯 우러나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맛이 더해지지요. 민화는 돌가루·흙을 염색한 분말을 아교에 개어서 쓰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색감이 아름답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씨는 민화의 이런 매력에 빠져 올해 명지대 전통공예학과 대학원으로 입학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김숙(49)씨는 신사임당이 즐겨 그린 ‘초화도’만 고집한다. 강아지풀에 오이 줄기가 얽혀 오이가 열려 있는 모습, 달개비꽃과 양귀비꽃 앞에 여치가 뛰어노는 모습, 개구리와 무당벌레가 연못가에서 노는 모습 등 온통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10개월 된 늦둥이를 포대기에 업고 그림을 그린 ‘신입생’ 김정현(40)씨는 오늘 처음 왔다. 신씨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까치 호랑이’ 민화에 정성스레 붓질하면서 “다음 민화방 마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안종혁 회장이 말하는 민화 고덕2동 ‘민화방’을 이끌고 있는 안종혁 회장에게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치 대중가요처럼 남을 의식하면 망설여지지만 여흥을 내는 분위기에서는 저명 인사도 대중 가요 한두곡을 불러야 속이 풀리고 일체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지요. 민화야말로 제대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는 궁중민화와 민중민화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점에서는 민화의 본질은 민중민화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민화가 민중에 가까워서인지 때로는 민화의 격을 낮춰 보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이 넘치며 재주와 기교를 자랑하지 않았고, 그림의 구도·기법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상식과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적이고 해학적인 멋스러움이 배어나온다는 점은 민화만이 갖는 매력입니다.” 민화가 서민들의 소망이 녹아나는 매체라는 점도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민화에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감성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을 담아 장수, 부귀, 다남,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고, 이를 곁에 두고 신앙처럼 기원하면서 살았지요. 기복 신앙에서 출발했다고 해야겠지요.” 민화의 소재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동물, 인물, 책거리(冊架), 문자 등 다양한데, 각 소재마다 저마다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고기-다산(多産) ▲호랑이-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신 ▲모란꽃-부귀 ▲연꽃-군자(君子) ▲짝을 이룬 새·동물-부부간의 금실 등이다. 우리 조상들은 딸을 결혼시킬 때 물고기·새·동물 등이 들어간 민화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민화는 고구려 벽화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그려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춤하다 1970년대 전후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에 걸맞은 창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전승을 위한 재현 작업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대들이 자랑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재를 창출해 나가야 하지요. 세계로 펼쳐가는 한류 열풍에 민화가 단단히 한몫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덕2동의 민화방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고요.”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YTN스타 ‘스타투데이’진행 개그맨 박준형

    YTN스타 ‘스타투데이’진행 개그맨 박준형

    “생방송 MC 박준형입니다.” 개그계의 아이디어맨 박준형(33)이 MC로 변신,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케이블채널 YTN스타가 지난달 20일 신설한 생방송 연예정보 프로그램 ‘스타투데이’의 메인 MC를 꿰찼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생방송으로 1시간씩 연예뉴스를 전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베테랑 MC가 맡아도 쉽지않은 자리를 MC로는 첫 데뷔하는 박준형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개그맨은 어떤 프로그램이건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늘어요.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준비가 필요한 개그와 달리 MC는 순발력이 중요하죠. 성실함이 제 큰 무기인 만큼 주간 연예 프로그램보다 훨씬 빠르고 재미있고 자세히 소식을 전할게요.” 올해로 개그맨 활동 11년째이자 연예기획사 ㈜갈갈이패밀리 대표, 라디오 DJ, 대학 겸임교수에다가 결핵협회·세브란스병원 홍보이사 등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가 MC에 매력을 느낀 이유이다. 이로써 김용만, 신동엽, 유재석 등과 같이 진행자로서 인정받기 위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스스로 특별한 재주가 없다고 털어놓는 그가 KBS ‘개그콘서트’에서 무만 갈던 ‘갈갈이’에서 벗어나 간판 스타로 올라서기까지는 많은 경험이 바탕이 됐다. 대학로에서 수년간 개그공연과 리포터 활동을 하면서 갈고 닦은 경험이 십분 발휘된 것. 출연 중인 모든 개그의 대본을 짜고, 후배들과 함께 새로운 개그를 만드는 데 뛰어나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중견 개그맨으로서 오늘날 개그와 후배들에 대한 의견도 서슴지 않고 풀어놨다.“요즘 개그는 세대교체 이후 다시 재미가 생겨났지만 예전 같지는 않아요. 시청률이 35%까지 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개그 사이클이 너무 빨라져 코너당 1∼2년씩 했는데 지금은 6개월도 못 버텨요. 그래도 선배를 능가하는 후배들이 많아져 든든합니다.” 아이디어맨으로서 향후 개그의 흐름에 대해서도 진단을 내놨다.“지금은 템포가 빠른 공개코미디 위주이지만 비공개코미디나 오버분장 개그도 다시 주목을 받을 겁니다. 개그콘서트의 ‘사랑의 가족’은 오버분장 개그를 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죠.”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토크쇼나 연기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냐는 질문에 “저는 아직 멀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개그도 잘하고 MC도 잘해 끝까지 인정받는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단다.“지난 몇년간 개그로 평가받은 만큼 MC도 그정도만 잘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10년쯤 지나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또 ㈜갈갈이패밀리를 통해 새로운 어린이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2003년 영화 ‘갈갈이패밀리와 드라큘라’의 주연을 맡았던 그는 “여름방학을 겨냥, 고품격 어린이 코미디영화 ‘소림피구’(가제)의 크랭크인에 곧 들어간다.”며 의욕을 보였다. 온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우리만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최정상 개그맨이 됐지만 인기에는 ‘거품’이 많다고 했다. 한꺼번에 여러 코너에 나가서 반짝 인기를 얻는 것보다, 한 코너라도 제대로 하고 후속 개그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마라톤 정신’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한 코너만 하고 사라진 개그맨들이 많죠.1등을 하는 것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조계종 초대 종정 한암을 되새긴다

    일제강점기(1941∼1945)에 조선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1876∼1951) 스님.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일제강점기 불법수호의 정신적 기둥이 된 선지식이다. 당대의 사상적 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참수행의 정진으로 조계종의 종조를 확립했다. 특히 선종과 교학의 병행, 선과 염불의 조화 등 극단적 가치에 편중되지 않고 널리 원융무애한 선사상을 펼친 인물로 통한다. 스물두살때 금강산 유람도중 장안사에서 행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운수행각에 나섰으며 1905년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의 조실로 후학을 지도하다가 서른다섯에 대각, 이 때부터 인연 닿는 곳마다 선풍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1925년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던 중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면서 오대산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가 한암 스님의 열반ㆍ탄신일에 맞춰 13일부터 4월24일까지 여는 제2회 ‘한암대종사 수행학림’은 한암 스님의 이같은 선사상과 수행가풍을 재조명하기 위한 수행프로그램이다. 한국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산인 한암 스님의 불교사상과 수행관에 천착하면서 일상에서 흔들리기 쉬운 현대인들이 한국불교의 바람직한 수행자상을 정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행사는 선·염불·간경·의식·수호가람 등 다섯 가지를 일컫는 승가오칙(僧伽五則)의 실참으로 진행하는게 특징. 선착순 지원한 재가불자 53명이 6주간 매주 금∼일요일 사찰에 머물면서 수좌 스님들의 지도를 받아 정진하게 된다. 행사 마지막날인 4월24일에는 ‘한암대종사 수행일화집’ 출판기념회와 ‘한암대종사 선사상 국제학술세미나’도 개최한다. 지도자로는 정념, 법상, 나우, 지수, 인광 스님 등이 나선다.(033)332-6664∼5.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실전 논술] 옛 사람들보다 현대인들이 부족한 점

    ●다음은 러셀의 ‘인생론´의 일부이다. 다음을 읽고 예전 사람들과 비교하여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러셀의 주장과 연관시켜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백 년 전에는-아니 150년 전에는 더욱 그랬지만-유복한 사람들이 지금에 비해 그 수는 적었었지만 훨씬 훌륭한 교양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의 부자들은 라틴어의 시(詩)를 인용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회화를 볼 줄 알았으며, 또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귀도 가지고 있었다. 그밖에 그들은 대체로 자기 나라의 문학과 자신이 프랑스인이 아니더라도 프랑스 문학을 꽤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이러한 박학(博學)은 대학 교수 중에서도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서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어떤 교수는 라틴어를 알고 있고, 다른 교수는 화단의 거장들을 잘 알고 있고, 또 어떤 교수는 음악에 밝으며, 또 다른 교수는 현대 문학에 관한 한 보잘것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모르는 게 없다. 지금의 부자들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가지면 반대로 자신의 체면이 손상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지(無知)하다는 사실이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아마 이런 종류의 일은 특별히 집어 내어 심각해할 사실도 아닐 것이다. 나는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문예와 학술의 여신이름이나 십이궁(12宮:조디악)의 표지 따위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지만, 이러한 지식을 나의 할머니는 어린 시절에 배워 여든이 되어도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의 세상에는 시간의 여유가 거의 없다. 그 까닭은 옛날보다 사람들이 분주히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움을 갖는 일 자체가 일과 마찬가지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사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인간은 잔재주가 많아지긴 했지만, 지혜가 서서히 결정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사고 쪽으로 시간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석어졌다. 이를테면 전쟁 방지와 같은 문제는, 전쟁의 그림자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데도, 인간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아도 세상이 되어 가는 형편에 어떻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태평으로 지내고, 진지하게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되어 가는 형편에 맡기고 팔짱을 끼고 있어서는 사태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시간을 절약하는 발명이나 연구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교통 기관을 살펴보자. 보다 빠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될수록 인간은 그만큼 여분의 시간을 여행에 사용한다. 이제 인간은 기차를 이용하여 자택으로부터 회사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을 소비한다. 사람을 방문하는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자신이 탄 말이 그다지 피로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사람만을 방문했는데 지금은 100마일 이내면 어디든 사람을 방문하러 간다. 다음에는 전화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나는 이전에 장거리 전화를 걸어 온,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신사와 통화를 했다. 내가 수화기를 들고 ‘버트런드 러셀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뭐라고요?’라고 대답했으므로 나는 같은 말을 목청을 높여 되풀이했지만, 그는 여전히 ‘뭐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깨진 종소리 같은 소리를 내어 이름을 대었더니,‘원, 당신이 러셀씨라는 건 알고 있어요.’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통화 시간은 여기서 끝났다. 전화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이러한 쓸모없는 일들이 쌓여 나날의 생활이 분주해지며, 일한 것에 대한 가공적인 인상이 남는다. 퀘이커 교도가 현대인의 누구보다도 지혜를 갖고 있는 까닭은 그들의 심사숙고하는 수행(修行)에 연유하는 바가 크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매일 30분씩 조용히 명상에 잠긴다면 우리는 개인적, 국가적, 국제적인 모든 일들을 지금보다 더욱 정상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휴전 기념일에 해마다 2분 간의 묵도를 할 뿐이고,1년의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은 쓸모없는 헛소동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시간의 배분은 잘못되었다. 만일 심사숙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무익한 헛소동이 없어질 것이다. ●지문의 분석 예전 사람들은 지금에 비해 훨씬 훌륭한 교양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교양은 몇몇 사람에게만 있다. 심지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무지하다. 그렇게 된 여유는 시간적인 연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분주하기만 할 뿐 여유있게 사고하지 않는다. 자기 일에 바빠 세상일에 대해 방관자일 수밖에 없다.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비행기나 자동차도 사람들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매일 30분씩이라도 조용히 명상(冥想)을 한다면 모든 일들을 지금보다 더욱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사숙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무익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셀의 ‘인생론´은 수필집이다. 이 책에서 러셀은 현대 문제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주제는 자유와 평화, 사랑과 결혼, 자유, 개성, 진리, 윤리 등으로서 인류의 영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을 정도의 탁월한 지성과 남다른 식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글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정확한 진단과 설득력 있는 문체로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의 책은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비영어권의 독자들에게도 유명하다. 그의 글은 위트와 유머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상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60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현실감을 준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바쁘게 산다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유있는 사고를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주체성을 잃고 세상에 휩쓸려 갈 뿐이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유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러셀의 글을 통해 현대인에게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 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러셀의 주장과 연관시켜 쓰는 것이다. 이 논제에는 현대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고, 그 대안을 깊이 있게 사고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제시문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과 그 대안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한 평가 요소라고 하겠다. 러셀은 현대인들이 예전 사람들에 비해 교양이 없음을 탄식하고 있다. 러셀은 그 원인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서 찾고 있다. 논술문을 작성하려면 먼저 제시문에서 이 사실을 파악해 내야 한다. 제시문의 핵심이 논술 답안에 녹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후에 우리는 해결 방안이나 대안을 제시문과 관련지어 논술해야 한다. 문제는 대안이다. 그런데 대안은 제시문 속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시간의 여유’,‘여유 있는 사고’,‘명상’,‘심사숙고하는 수행(修行)’,‘시간의 배분(配分)’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현대인들에게는 부족하다. 또한 이와 관련된 사례는 흔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이 정도의 내용만으로도 좋은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반성적인 사고나 주체성 확보와 같은 내용과 관련지어 자기 주장을 논의할 수 있다면 더욱 훌륭한 논술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문일 경우 문맥 이해에 어려움이 있지만, 제시문의 주제만 명확하게 파악하면 된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제시문에서 러셀이 현대인들에게 부족하다고 한 ‘시간의 여유’,‘여유 있는 사고’,‘명상’,‘심사숙고하는 수행’,‘시간의 배분’ 등을 생각해 볼 때 주제는 ‘사색과 명상의 필요성’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여유를 갖고 사색과 명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문으로 하여 논지를 전개해 나가면 된다. 서론에서는 현대인의 문제점과 사색과 명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예전 사람들은 현대인들에 비해 교양을 중시했고 박학다식했으며, 삶에 여유가 있었는데 현대인들은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와 권력을 위한 바쁜 행동일 뿐 교양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삶에서 여유를 갖고 사색과 명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시작하면 좋다. 본론에서는 서론에서 주장한 내용의 구체적인 방안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본론의 첫 단락에서는 현대인의 바쁜 생활과 부의 관계를 언급해 주면 적절하다. 현대인들은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바쁘게 일해야 하고, 시간이 있다 해도 향락을 위한 생활, 나태한 생활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해 현대인들에게 부는 시간적인 여유가 아니라 바쁜 생활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본론의 두번째 단락에서는 현대인들이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명상과 사색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색과 명상이 모든 일을 더욱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고, 명상은 생각을 깊게 만들며, 관심 갖는 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관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명상과 사색의 장점을 강조하며, 바쁘게 산다고 해서 그 모든 일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어주면 된다. 본론의 세번째 단락에서는 적절한 시간 배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훗날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늙어서 지낼 10년을 위해 젊어서 30년을 고생하거나, 일년에 한 번 있는 며칠간의 휴가를 위해 1년을 고생하는 것은 잘못된 시간 배분이며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휴식은 정신적인 휴식이며 마음의 휴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본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미래의 목표가 현실을 채찍질한다면, 과거의 자신은 현재의 무분별한 행동을 제어할 수 있게 해 줌을 지적하며 명상의 시간과 함께 그 내용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마지막 결론은 본론의 내용을 요약 정리·강조하면서 욕심을 줄인 삶의 가치와 여유있는 삶을 강조하면서 마무리지으면 된다. 부와 권력을 위해서 사는 삶보다는 정신적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삶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강조하며 마치면 한편의 훌륭한 논술문이 될 수 있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여풍당당 국내 첫 플레이보이 모델

    여풍당당 국내 첫 플레이보이 모델

    “5㎏이나 뺐는데도 제가 가장 뚱뚱한 거 같아요.”“전문적으로 춤을 배워서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싶어요.”그들의 솔직한 말투는 여느 평범한 20대 여성들과 다를 바 없었다. 고민과 포부를 털어놓는데 거침 없고 당당했다. 그러나 상기된 얼굴에 눈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미국 플레이보이사의 한국 파트너인 스파이스TV가 최근 국내 최초로 개최한 ‘한국 플레이보이모델 선발대회’에서 1∼3위와 포토제닉상을 받은 이파니(20)양과 전지은(20), 문지혜(22), 박지은(24)양을 만나봤다. 한국 플레이보이모델은 이사비·이승희 등이 있지만 공식 대회를 통한 모델 선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 몰래 지원했는데…. 이제는 주변사람 모두 성원해줘요.” 누드모델의 꽃인 플레이보이모델에 과감히 도전한 그들. 지원과정이 궁금했다.1위를 차지한 이파니양은 “우연히 인터넷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면서 “합숙과정이 너무 힘들어 꼭 1등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지원한 케이스.“미용학원 선생님이 소개했지만 살이 너무 쪄서 엄두를 못냈죠. 슈퍼모델에 한번 떨어진 경험이 있을 만큼 모델에 관심이 많았어요. 합숙하면서 오기가 생겨 살을 5㎏쯤 빼니 자신감이 생겼죠(웃음).”(전지은) 상을 타기까지 어려움도 털어놨다. 가족들의 우려가 가장 부담됐다.“부모님이 처음에는 부정적이셨지만 이제는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주세요. 친구들은 많이 부러워하죠.”(이파니)“걱정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잘됐다며 최고모델이 돼라고 용기를 줘요.”(전지은)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출전한 문지혜양은 합숙때 찍힌 신문사진을 부모님이 발견하면서 들통났다고.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이다. #“합숙 경험 잊지 못해” 미스코리아나 다른 모델대회 출신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경력이 거의 없는 그들이 선발된 데는 그들만의 신선함과 끼가 많은 점수를 땄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생전 처음 하는 합숙훈련이 쉽지만은 않았다.“고된 안무·워킹연습에 밤이 되면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었어요. 치킨·피자·햄버거 등이 눈앞에 아른거렸죠.”(이파니) 전지은·문지혜양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것을 배워 너무 좋았다.”면서 “대회가 끝난 뒤 서로 보고싶어 울고불고 했다.”고 말했다. 추운 야외에서 수영복과 란제리만 입고 촬영한 경험도 잊을 수 없다고. 합숙 중 다리를 다쳐 걷기조차 힘들었던 박지은양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수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엔터테이너 되고 싶어…. 색안경은 사절” 1위로 뽑힌 이파니양은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플레이보이맨션에서 열리는 월드컵 화보촬영을 한다. 다른 수상자들도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다양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파니양은 “연기에 도전해 해외로 진출, 할리우드의 붉은 카펫을 밟는 것이 소원”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전지은양은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워 프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춤에 재주가 있는 문지혜양은 워킹과 포즈, 표정 등은 물론, 최고 스승으로부터 춤을 배워 인정받는 안무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지은양은 “연기·CF 등에 관심이 많지만 외적인 모습보다 내적으로 다듬기 위해 학업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상 이후 그들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플레이보이모델과 성의 상품화’이다. 굳이 누드모델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느냐는 눈총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신세대인 만큼 소신이 뚜렷했다.“제가 가장 자신있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이파니)“플레이보이모델 활동은 이제 시작입니다. 주변의 좋지 않은 시선, 편견 때문에 꿈을 접고 싶지 않아요. 완성된 모습을 보일 때까지 지켜봐주세요.”(전지은)“누드는 모델에서 빠져서는 안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아직 받아주지 않지만 외국 누드모델은 당당히 인정받고 있어요. 누드도 하나의 패션으로 봐줬으면 해요.”(문지혜). 박지은양은 “단순히 섹시한 누드모델보다, 성인문화가 고급스럽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진지해진 그들. 마지막 일성을 들어봤다.“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한국 플레이보이모델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자랑스럽고, 부담도 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가슴속 그림 한폭] 이당 김은호의 ‘춘향도’-유상옥 코리아나 회장

    [가슴속 그림 한폭] 이당 김은호의 ‘춘향도’-유상옥 코리아나 회장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 오너의 미인상(美人像)은 의외로 소박했다. 말단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전문경영인을 거쳐 창업, 오늘의 코리아나화장품을 일군 유상옥(73) 코리아나 회장. 늘 미적 감각의 첨단을 생각해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할 그는 뜻밖에도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의 ‘춘향도’에서 미인상을 찾았다. 고종과 순종 어진을 그리는 등 인물화에 남다른 재주를 가졌던 이당이 1939년 그린 작품이다. 일찍이 ‘미인도’ 수집에 나서 우리나라와 동·서양의 미인도 수십점을 모았지만, 그 중에서도 유 회장은 춘향도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갸름하면서도 동그란 윤곽의 얼굴. 순수하고도 자애로움이 느껴지는 눈매. 이당이 묘사한 ‘춘향’은 사실 한국 전통 미인의 모든 요소를 모아놓은 것 같기는 하다. 가만히 뜯어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 코리아나 전속 광고모델인 탤런트 모습이 거기 있었다. 유 회장의 미인상은 그렇게 과거에서 근대를 거쳐 현재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당 김은호는 사실적이며 부드러운 색채로 표현된 근대의 미인화를 정립한 작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김기창·장우성·장운상 등에 의해 전통적 미인화의 현대적인 해석이 이루어졌다. 유 회장은 얼마전 서울 신사동의 스페이스C에서 미인도 30여점을 선보이는 ‘자인(姿人)전’을 개최했다. 거기서 관람객들에게 각기 좋아하는 그림에 점수를 매기게 했는데,1등으로 뽑힌 것은 ‘춘향도’가 아니라 월전 장우성의 ‘여인’이었다. 이 그림속 여인도 분명 선한 눈매와 동그란 얼굴 등 ‘춘향도’속 춘향을 닮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신여성적 이미지가 물씬 느껴진다. 관람객들은 춘향이의 아름다움에 현대적 세련미가 가미된 듯한 이 그림을 더 좋아한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세련미는 언제든 변하게 마련이고,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는 춘향도가 유 회장의 미학적 기준에 부합했던 모양이다. 이같은 그림속 미적 이미지는, 채시라씨를 모델로 쓴 것처럼 제품 개발에도 이용된다. 작고한 한 유명 화가의 ‘여성은 엉덩이 부위가 가장 아름답다.’란 말에 착안해 만든 화장품 용기로 히트를 치고, 서양화에 자주 나오는 치마가 척 늘어진 야회복으로 무도회장에 나온 귀부인의 모습을 인용한 제품 ‘라미벨’로 회사를 크게 발전시켰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직장에서 숫자놀음만 하다 보면 인간미가 없어지니, 그림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해서 시작되었다는 유 회장의 미술품 수집 편력. 이젠 그동안 모은 귀중한 화장용기를 전시하는 화장박물관과 굵직한 기획전을 여는 갤러리까지 설립해 운영 중이다. 감성을 키우기 위해 발들인 미술은 그의 사업적 성공까지 가져다 주었다.‘문화경영 없이는 세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유 회장의 30년 경영철학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아이들 공부친구 해주다 박사됐네요”

    자녀들의 공부 친구를 해주다 대학에 들어가 박사 학위까지 따낸 주부가 화제를 낳고 있다. 주인공은 14일 인하대학교에서 ‘저고리 변천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태옥(55·여)씨. 이씨는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1981년 교사인 남편(62)과 당시 일곱살, 다섯살이던 두 아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개화동으로 이사하면서 이씨의 공부가 시작됐다. 주변에 변변한 학원조차 없는 시골에 가까운 교육환경 때문에 아이들의 학교 공부 보충을 위해서 가정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이 옆에서 가계부를 쓰는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게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재미도 있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직접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한번 마음먹자 숨어 있던 이씨의 향학열이 불타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졸업한 뒤엔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재능을 살려 대학원(건국대 의류학과)에 들어가 한국 전통 복식(服飾)을 공부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복집을 열었다. 침선(針線) 장인을 찾아 다니며 공부한 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13차례나 수상했고 한복침선 관련 특허도 6개나 냈다. 배움을 향한 이씨의 열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재주 못지않게 깊이 있는 지식에 목 말랐기 때문이다. 인하대 박사 과정에 들어간 지 4년만에 결국 ‘조선왕조 말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우리나라 저고리에 대한 실증적 변천’이란 논문으로 꿈에 그리던 박사학위를 받았다.연합뉴스
  • 중국전문가로 ‘제2인생’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중국전문가로 ‘제2인생’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한국기업들은 중국의 ‘제2 골드러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중국 은행시장에서는 서구 은행들에 선수를 놓쳤지만 개방이 본격화된 증권시장에서는 기회를 선점해야 합니다.” 중국 전문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홍인기(68)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대한 조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홍 전 이사장의 설명은 이러했다. 중국은 2006년 말 은행시장의 완전개방을 앞두고 2003년부터 은행개혁을 단행했다. 미국과 유럽의 유수 은행들에 중국 은행들의 지분 일부 인수를 허용했다. 규제는 심했지만 20개 은행이 200억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해당 은행의 주가가 50∼300%나 치솟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은행시장 개방이 제1 골드러시라면 올해부터 본격화될 증권시장 개혁이 제2의 골드러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앞으로 2∼3년안에 1370개 상장기업들의 비유통주식을 유통주로 전환할 예정”이며 “지난 2월1일부터 특정 자격을 갖춘 외국기업들에 이들 상장기업의 주식을 최대 10% 살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급변하는 중국 상황을 설명했다. 단 3년 이상 보유라는 단서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새로운 중·장기 투자전략을 세울 때는 지금이 최적기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기업의 지분을 인수,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은행처럼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소외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쓰기는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 홍 전 이사장은 2월 초 서울 동작구 상도동 중앙대 후문 근처 오피스텔에 마련한 사무실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한다. 출근하면 일단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신문들부터 읽기 시작한다. 국내 신문들은 물론,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 해럴드 트리뷴, 차이나데일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어지간한 영자신문과 일본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어나간다. 국내외 연구소들에서 내는 보고서도 챙긴다. 증권거래소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6년째 이같은 생활을 해 오고 있지만 힘들다거나 귀찮게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단다. 신문을 읽다 중국 관련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을 해두는 것도 새로 생긴 버릇이다. 홍 전 이사장은 요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통한다. 거래소 이사장(1993∼99년) 시절부터 중국 증권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중국 알기’에 뛰어든 것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부터다. “연구라기보다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수준”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중국 관련서를 매년 1권 꼴로 지금까지 4권이나 냈으니까 그의 말처럼 자료수집 수준은 분명 아니다. 지난 13일 네번째 중국 관련 책인 ‘중국의 금융시장론(박영사)’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앞서 지난 2000년과 2001년에는 일본 금융관련 책 2권도 펴냈다. 집필 활동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중국내 상황이 변하는 한) “책은 계속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도 아닌 분이 이렇게 왕성하게 전문서를 내면 주위에서 ‘눈총’을 주지 않느냐고 묻자 “글쎄”라며 웃음으로 대신했다.“글쓰기는 시간을 보내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란다.“이 나이에 중국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아 중국어로 된 자료는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며 아쉬워했다. 완벽함에 대한 욕심이 묻어났다. 홍 전 이사장은 이렇게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수하는데서 보람을 느낀다.6년째 서강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 경영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젊은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다.”며 파안대소했다. ●“책쓰기와 노래는 영원한 애인” 책을 쓰고 연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소일거리’는 없는지 궁금했다.“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홍 전 이사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6시까지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헬스클럽에서 아침 운동을 한 뒤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개인사무실로 출근한다. 워낙 일찍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자타가 인정하는 수준급의 노래 실력도 요즘은 별로 발휘할 기회가 없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CD 3장을 냈을 만큼 성악에 대한 홍 전 이사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저술 활동과 성악 사이엔 비슷한 점이 있단다.“둘 다 혼자하는 작업이고, 책임도 전적으로 혼자 진다는 점이 같다. 그러다보니 고독하고,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60대여, 세상을 밝게 보자” 홍 전 이사장은 고령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젊은 노인’들이 ‘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고민인 이들의 심정을 공감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흔히 우리를 ‘지공세대’라고 합디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만 65세가 넘은 사람들인데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는 것 이외에 달리 취미나 재주가 없는 세대”라면서 “나도 비슷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모든 걸 회색으로만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보상이 있든 없든 바쁘게 삽시다. 자기를 독려하면 뭔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못해봤던 일들을 해보고, 감정을 갖도록 합시다.”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에는 홍 전 이사장 특유의 낙관론이 배어있었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출범 1주년 행사에 갔다 옛 식구들과 함께 한 저녁자리에서 노래 ‘한자락’을 뽑았다.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었다며 웃는 홍 전 이사장의 얼굴에서 나이보다 젊게 사는 그만의 ‘비결’이 엿보였다. 글 김균미 사진 이호정기자 kmkim@seoul.co.kr ■ 홍인기 전 이사장은 ▲1938년 서울 출생 ▲1956년 서울고 졸업 ▲1960년 서울대 법대(행정학) 졸업 ▲1960∼1973년 재무부 이재2과장, 증권보험국장 ▲1977년 동양증권 사장 ▲1978년 대우조선 사장 ▲1988년 동서증권 사장 ▲1991년 한국산업증권 사장 ▲1993∼1999년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1999∼2005년 한국증권연구원 고문 ▲현재 서강대·중앙대 겸임교수, 전경련 차이나포럼 경제산업분과 위원장
  • [문화마당] 한류와 아류/이왕주 부산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지난 1,2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졌던 ‘비’의 공연을 두고 내외 언론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국내 언론들은 대체로 ‘한류가 드디어 아메라카에 상륙했다.’며 흥분했으나 미국 현지 언론들은 ‘아직 멀었다.’고 깔아뭉개는 분위기였다. 그쪽 분위기를 정리하자면 모방하는 재주는 있었으나 독창성이 없었고, 가능성은 있었으나 카리스마는 없었다는 것이다.2월4일자 뉴욕 타임스 음악 담당 존 파를리스의 칼럼은 첫문장부터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어휘들로 채워져 있다.‘23살의 아시아 슈퍼스타, 한국인 팝 가수 ‘비’가 미국을 정복하러 왔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쉽지 않은 이유가 어떤 새로운 것, 차별화된 것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흉내내기로 일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이클잭슨의 패션, 베이비페이스의 발라드, 팀버레이크의 가벼운 펑크 팝, 조지 마이클의 중얼거리는 창법 등을 모방하고 적당히 얼버무려서 장난치는 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것은 ‘장난친다’는 영어 표현 ‘dabble’이었는데, 이 단어가 행간에서 풍겨주는 뉘앙스는 못 먹는 감 찔러보는 식의 경박한 취미로 이것저것 장난삼아 해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단어 하나에 저 유서 깊은 저널,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비’에 대해 품은 모든 정서가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파를리스의 이 균형 잃은 비평은 한편으로는 아시아에 대한 그들의 우월감, 자부심 등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의 역겨운 냄새를 풍겨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대중문화의 심장부, 뉴욕 맨해튼이 이 키 작은 아시아 가수에 의해 당장 접수될 위기 상황에라도 내몰려있는 것 같은 그들의 히스테리컬한 불안감도 환기시켜준다. 그러나 그 뒤틀린 의도와 상관없이 거기에는 또한 우리가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할 난제도 정확히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세계 문화 시장에서 한류가 당당히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연결된다. 그것은 결국 ‘닮으면서 다르게 하기’,‘특수성 안의 보편성, 보편성 안의 특수성을 어떻게 하나의 문화 상품 안에 담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색다른 것이면서 감동을 주는 것을 보여달라. 미국 현지 언론이 ‘비’에게 요구했던 것이 정확히 이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시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도 또한 이땅을 기웃거리는 외국의 문화 상품에 대해 같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 시대의 문화, 예술의 화두는 차이이다. 독창성이란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이고, 다양성이란 이 차이가 서로를 인정하여 나란히 서는 것이다. 왜 우리가 차이에 집착하고 조금이라도 튀려고 안달하는가. 이제 늙어버린 후기 자본주의의 권태 때문일 것 같기도 하고, 독재 권력의 획일주의에 대한 저항 같기도 하고, 독창성이 고갈되어버린 시대에 대한 짜증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문화제국주의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제3세계의 대중 문화를 억압하거나 배척하는 이데올로기, 즉 너희는 그래봤자 원조인 우리의 서투르고 엉성한 아류 아니냐는 식의 비판 논리로 둔갑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류가 할리우드의 파고를 넘으려 한다면, 어쨌든 우리는 그런 요구 앞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지켜내는 데에도 뭔가 새로운 것, 다른 것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마침내 천만 관객 돌파에 성공한 이준익의 ‘왕의 남자’와 500만 관객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곽경택의 ‘태풍’이 다른 점은 무엇이었던가. 결국 차이에서의 차이가 아니었나. 할리우드와 닮게 하기에서는 ‘태풍’이 앞섰고, 기존 역사물 코드와 다르게 하기에서는 ‘왕의 남자’가 앞섰던 것 같다. 색다른 이야기, 차이나는 얼굴, 별난 관계, 곧 차이에 대한 끌림이 ‘태풍’에서 ‘왕의 남자’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놓았던 게 아닐까. 오만과 편견으로 얼룩진 저 칼럼니스트의 글을 ‘한류는 아류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충고로 받아들이면 이 상처 받은 자존심이 다른 방식으로 보상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왕주 부산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 [실전 논술] 性역할에 대한 편견 극복

    ●다음은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헬머:이봐, 이봐요. 노라,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요. 노라:하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친정 아버지 곁에 있을 적에는 아버지가 저한테 여러 가지 자기 의견을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저도 역시 같은 의견을 가졌습니다. 혹시 제가 다른 의견을 가진 경우에도 저는 그것을 몰래 감춰 두었지요. 제 자신만의 의견은 아버지 마음을 거스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답니다. 아버지는 저를 자기의 인형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제가 인형을 가지고 놀 듯이 저와 놀아 주셨어요. 그러다가 저는 당신 집에 오게 되었어요……. 헬머:이봐요, 우리의 결혼을 그렇게 묘하게 표현할 것은 없지 않소? 노라:(기세가 꺾이지 않고)아니에요, 전 아버지 손에서 당신의 손으로 넘겨졌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의 취미에 맞춰서 여기저기 방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당신하고 같은 취미를 지니게 되었답니다. 아니면 단지 그런 흉내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그 양쪽이 다 해당될는지도 모르구요. 때로는 그런 취미를 갖는가 하면, 때로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이 집에서 거지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냥 손에서 입으로 가져가는 생활을 해 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토르발트 씨, 저는 당신 앞에서 재주를 부리며 살아 온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즐기셨지요. 당신과 아버지는 두 분 다 저에 대해서 깊은 잘못을 저지르신 거예요. 당신네 덕택에 저는 이처럼 공허한 여자가 되어 버렸답니다! 헬머:말도 안 돼. 은혜를 모르는 소리야. 노라! 당신은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 오지 않았소! 노라:아녜요. 행복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 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헬머:그렇지 않았다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노라:그럼요. 단지……마음이 들떠 있었지요. 당신은 제 응석을 받아 주셨어요. 우리 가정은 놀이방 같은 거였답니다. 저는 친정에 있을 적엔 아버지의 아이 인형이었어요. 여기서는 당신의 여자 인형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저 아이들이 제 인형이 되었지요. 당신이 저를 가지고 놀아 주셨을 때에 저는 단지 즐거워했답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놀아 주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어요. 이게 우리의 결혼이었지요, 토르발트 씨. 헬머:그래, 당신의 말도 얼마쯤 맞는 것 같소. 물론 많이 과장이 되고, 상식에서 벗어난 점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앞으로는 한번 방법을 바꿔 보도록 해요. 놀이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부터는 교육을 하는 시기라고 말이오. 노라:누구를 교육시킨다는 건가요? …… 저를 교육시킨다는 거예요, 아니면 아이들 교육 말씀인가요? 헬머:그건, 당신의 교육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교육이기도 하지. 알겠소, 노라? 노라:어머, 여보. 당신은 저를 손색이 없는 자기의 아내로 교육시킬 수 있는 분은 못 돼요. 헬머:너무 심한 말을 하는구려. 노라:그리고 저도 그래요.…… 저 역시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는 중요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일까요? 헬머:무슨 말을 하는 거요, 노라! 노라:아까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런데도 그 일을 저한테 맡기셔도 될까요? 헬머:그건 흥분했을 적에 한 말이오! 그걸 그렇게 고깝게 여기지는 말고……. 노라:아니에요. 그 말씀이 맞아요. 저한테는 그 일을 해 낼 만한 힘이 없답니다. 그 이전에 제가 해야만 할 다른 일이 있지요. 저는 우선 자신을 교육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에는 당신도 도움을 줄 분이 아니십니다. 저는 제 힘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당신 곁을 떠나는 거예요. 헬머:(펄쩍 뛴다)뭐, 뭐라고? 노라:저는,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위를 잘 판단할 수 있도록 홀로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이상,…… 당신 곁에 있을 수가 없어요. 헬머:노라! 노라! 노라:지금 당장 이 집에서 나가겠어요. 오늘 밤엔 크리스티네가 있는 곳에서 묵기로 하겠습니다. 헬머:당신은 제정신이 아니오. 그런 일은 용서할 수 없어. 내가 못 하도록 하겠어! 노라:이제부터는 저한테 무슨 일을 못 하게 한들 소용없답니다. 제 물건은 가지고 가겠어요. 당신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겠습니다.……지금도 또 앞으로도요. 헬머:무슨 정신 나간 짓이오! 노라:내일 친정으로 가겠어요.…… 지난날 제가 태어난 고향이니까 무슨 일을 시작하든 쉽지 않을까 생각해요. 헬머:아무런 경험도 없는 당신이 그처럼 일시적으로 욱하는 마음에서 앞뒤 분별도 없이……! 노라:앞으로 경험을 얻도록 공부하겠어요. 헬머:당신의 가정, 당신의 남편,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을 버리고 나가다니! …… 생각 좀 해 봐요. 대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할 건지. 노라:그런 건 개의치 않아요. 저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밖에 길이 없답니다. 헬머:당치 않은 일, 참으로 당치 않은 일이야. 당신은 자기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겠단 말이오? 노라:저의 신성한 의무라니요? 헬머:내가 꼭 일러 줘야 비로소 알겠단 말이오? 남편에 대한 의무, 아이들에 대한 의무가 있지 않소. ●지문의 분석 입센이 1879년에 발표한 이 희곡은 노라라는 한 여성의 내면의 발견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근대 여성 해방 운동의 기폭제 구실을 하였으며, 주인공 노라는 근대적인 자아 의식을 가진 새로운 여성형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변호사 헬머의 아내 노라는 남편으로부터 작은 새처럼 귀여움을 받는다. 그런데 노라는 자신의 삶이 한낱 인형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하나의 인간으로 책임 있고 개성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집을 나서게 된다.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을 주체로 자각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가정에 안주하여 인형과 같이 살아가던 의식이 없는 인간에게 자각적(自覺的)인 인물로 탈바꿈하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당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무시되었던 보수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봉건 윤리와 사회적 인습에 순응하여 살아 온 인간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습에서 깨달음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노라가 문을 ‘꽝’ 닫는 소리에 전 유럽인들이 넋을 잃었다는 일화는 이것을 잘 시사해 준다. 결국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인형의 집’은 인간 자신의 주체적 의지가 제거되거나 망각된 수동적 공간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당대에도 큰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성을 사회가 요구하는 굴종적인 인물로서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식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무의식 중에 여성들은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 굳어지고, 그것이 여성들 스스로의 의식에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자녀 양육과 남편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는 것을 의무로 알고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요당하던 여성들에게 자각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서 오늘날 여성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세대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데 출제 의도가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노라의 행동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노라와 헬머의 갈등은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기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헬머는 노라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적 통념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직결되는 것으로, 이 작품에서 논의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 의식과 관련된다. 그리고 노라의 가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분명히 파악해야 하는데, 노라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한낱 인형과 같은 것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자신도 하나의 책임 있고 개성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집을 나가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여성을 노리개로 생각하는 당시 사회의 인습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행위라는 점을 중심으로 밝히면 된다. ●어떻게 쓸까 제시문 ‘인형의 집’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과 주어진 논제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논술문의 주제로는 ‘성 역할에 대한 편견 극복’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제시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남성 위주의 권위가 지배하는 서구 사회 속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자기 발견과 사회적인 해방, 여성과 사회적 인습 사이의 갈등 문제를 토대로 주제의 방향을 정리하면 된다. 그래서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진정한 인간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문으로 설정하고 글을 이어 나가면 자연스러운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논의를 전개하는 데 먼저 서론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닌 문제점, 즉 성 역할에 대한 편견에 대해 언급하면서 글을 시작하면 좋다. 이 부분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나 여성들이 받는 사회적 불이익 등과 연관지어 논의를 이끌면 그만큼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본론의 첫 단락에서는 제시문과 관련된 분석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에 드러난 헬머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분석하되, 그것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제시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단순히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기보다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하여 언급해야 한다. 당연히 남성 중심적인 편견 형성에 대한 논의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본론 둘째 부분에서는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 지닌 문제점을 분석하면 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왜 문제인지를 핵심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본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배제하고 여성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 즉 진정한 인간적 가치 회복의 필요성을 주장하면 된다. 결론 부분에서는 여성의 자기 정체성 회복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앞서 논의한 본론의 내용을 요약하고 강조하면 한편의 훌륭한 논술문이 될 수 있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왕의 남자’ 원작가 겸 연극연출가 김태웅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왕의 남자’ 원작가 겸 연극연출가 김태웅씨

    누가 왜 그를 ‘광대’라 했나. 광대론을 처음 정리한 신재효(1812∼1884)의 ‘광대가’(廣大歌)를 살짝 들여다보자.‘…금상첨화 칠보단장 미부인(美婦人)이 병풍에 내리는 듯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중략)도도와 울리는 목 만장봉이 솟구는 듯 장단고저 변화무궁 이리 농락 저리 농락’ 요즘 ‘광대’가 새삼 화두로 떠올랐다.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무려 1000만명 가까이 불러내 희희낙락 ‘농락판’을 질펀하게 벌이고 있는 것. 천당과 지옥이면 어떠랴. 시공을 사뿐사뿐 뛰어넘는 재주, 미부인 뺨치는 여장남자의 색기 또한 범상치 않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걸쭉하게 놀아본 적이 있을까. 아무도 예상 못한 것을 마치 조롱이나 하듯 첨단 디지털 시대에 홀연히 나타나 새해 벽두부터 돌풍놀이를 실컷 즐기고 있지 않은가. 왕과 ‘맞짱’ 뜨는 광대의 모습은 절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쨌거나 천의무봉의 이 광대는 마흔을 갓 넘긴 한 사나이에 의해 만들어졌다.‘왕의 남자’의 원작가 겸 연극 연출가 김태웅(41)씨.1999년 동아신춘문예 희곡 ‘달빛유희’로 당선, 연극계에 처음 명함을 내밀었다. 이듬해 희곡 ‘이(爾)’를 쓰고 극단 연우무대에서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이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극협회선정 베스트5 작품상과 희곡상, 평론가협회선정 베스트3 작품상, 서울공연예술제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이처럼 광대 ‘공길’은 ‘이’를 통해 처음부터 화려하게 등장한 셈이다. 그러던 차에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왕의 남자’가 지난해 말 개봉되자 ‘공길’은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얼씨구 절씨구 덩실덩실 춤을 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원작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영화-연극’의 동시 ‘대박’이라는 새로운 문화 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됐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에서 상연중이던 연극 ‘이’는 매일 800여석을 모두 유료관객으로 채우는 이변을 연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영화 못지않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두차례의 앙코르 공연을 거듭하면서 지난 2일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김해 대구 부산 등 전국 투어에 나설 예정이어서 ‘공길’의 희희낙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올 하반기 뮤지컬로 다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인데다 일본에서 판권계약 제의가 오는 등 즐거운 비명이다.‘극장용’에서 김씨를 만났다. 먼저 소감을 물었다.“연극을 공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관객들이 올 만하면 막을 내리곤 한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어 “영화 티켓을 가지고 오면 30% 할인혜택을 주었는데 영화와 연극을 비교하려는 관객들이 의외로 많아 놀라웠다.”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10회 이상 관람할 정도의 마니아들도 생겨났다고 귀띔했다. 수익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유료관객이 3만명정도 된다. 공연하느라 생긴 빚도 갚고 나머지는 배우들에게 개런티를 후하게 줄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원작의 배경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김씨는 평소 전통연희에 관심이 많았다. 서양은 드라마 중심이었지만 우리는 놀이문화였다는 점에 착안, 전통에 내장된 웃음을 집요하게 찾아들어갔다. 대학원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한국공연예술연구’ 시간에 사진실(41·중앙대 음악극과)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궁중 광대놀음인 ‘소학지희(笑謔之戱)’였다. 김씨는 이어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를 꼼꼼이 뒤져 흙속의 진주 ‘공길’을 찾아낸다. 공길이가 임금 앞에서 군군신신(君君臣臣), 즉 ‘왕이 왕다워야 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어디 밥맛이 나겠는가.’하는 대목에 큰 감동을 받는다. 왕의 권력과 광대의 권력이 어떻게 다른지, 웃음과 놀이가 어떤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아울러 공길과 장생이 당시 궁중 희락원에 소속된 광대임을 확인하는 등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이’를 쓰게 됐다. “영화가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다고 봐요. 다만 영화에서 공길과 장생이 궁궐에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이들을 통해 연산군이 피비린내를 불러들이는 장면을 새로 담은 것 같아요. 원작에는 연산이 일을 다 끝낸 후 밀려오는 허무를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어요. 놀아도 뒤끝이 늘 허해 공길과 장생을 불러들였지요.” 영화에서는 연극의 압축적 의미, 즉 연극무대에서 형상화하기 어려운 공간변화나 줄타기 등의 기교를 매우 흥미롭게 다뤘다고 설명했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과는 2001년 대학로에서 처음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영화감독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 단지 내키지 않아서였다. 얼마 후 이 감독이 다시 찾아와 ‘이’를 영화화하자고 했다. 이때 김씨는 추진력이 강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이 감독의 성품과 스타일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둘은 ‘300만 관객’을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어릴 적 김씨는 연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 장로여서 집안 분위기로 볼 때 장남인 그가 당연히 뒤를 잇는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목사가 돨 생각을 했지만 1년 재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학과에 진학했으나 한문을 잘 몰라 곧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치러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다. 이때 후배들의 권유로 연극반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느꼈지만 곧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회의에 빠져 연극반 출입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학교 도서관에 갔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는 모습에 ‘어, 한국 사람들 왜 이러지.’하는 반성과 감명을 동시에 받았던 것. 이후 며칠동안 술만 퍼마시며 방황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배우? 아니야…. 고민끝에 결국 극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전공인 철학공부는 뒷전이었다. 졸업논문 내용을 묻자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브레히트의 소외와 헤겔의 소외가 어떻게 다른가’였으니….”하며 피식 웃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한다는 김씨. 이번 ‘이’를 통해 느낀 바가 적지 않다. 글을 쓰는 것, 공연을 하는 것, 관객을 만나는 것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에 어떤 깨달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관객의 수치가 곧 작품성의 잣대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울러 이번 ‘대박’을 계기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접목해 상승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도 실감했다. “지금 이 순간 대학로 후진 곳일지라도, 불과 10명의 관객만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작품성 높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지요.”‘장생’과 ‘공길’이 연산군 권력에 항거한 것처럼 연극인의 역할도 이와 다름없지 않으냐는 의지가 엿보여진다. 어쩌면 ‘공길’은 자신의 분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벌써 신작을 준비 중이란다. 한국 근현대사의 과거청산 문제를 다룬 ‘반성’이란 작품을 하반기 무대에 올릴 예정. 비운의 일가족 5명을 통해 반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화해와 용서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다룬다. 또한 올 4월까지 지방공연을 하면서 틈틈이 뮤지컬 각색작업에도 몰두할 예정이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5년 남양주 출생 ▲84년 문일고 졸업 ▲85년 서울사대 역사교육과 입학 ▲87년 서울대 철학과 재입학 ▲94년 동대학 철학과 졸업 ▲97년 연우무대 20주년 신예작가발굴 시리즈 ‘파리들의 곡예’ 작·연출. ▲99년 ‘동아신춘문예’ 희곡 ‘달빛유희’ 당선 ▲2000년 ‘이’ 작·연출(연우무대).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극협회선정 베스트5 작품상과 희곡상, 평론가협회선정 베스트3 작품상, 서울공연예술제 희곡상 등 수상. ▲01년 ‘풍선교향곡’ 작·연출(악어컴퍼니),‘불티나’ 작·이성열 연출(극단 백수광부). ▲02년 ‘꽃을 든 남자’ 작·연출(극단 우인 창단공연). ▲04년 ‘즐거운 인생’ 작·연출(예술의 전당) 등.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강사, 극단 우인 대표.
  • [실전논술] 학교의 역할과 오늘날의 대학

    ●다음은 황종희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의 일부이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러한 역할이 오늘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학교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그러나 옛날 성왕들의 의도는 단지 거기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반드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 놓은 뒤에야 비로소 학교를 설립하는 의의가 갖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정에서 서열을 정하고 법령을 제정하는 정치 활동, 노인을 봉양하고 고아를 보살피는 후생 복지 사업, 신속한 법 절차, 전쟁 상황에서의 통신 체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장병의 징집, 커다란 소송 사건에 연루된 관리와 일반 백성들에 대한 소환 조사, 큰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조상에게 흠향하는 일 등이 모두 옛날 국립 대학인 벽옹이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비롯된 제도인데, 그렇다고 물론 이러한 일들만을 모든 구비 조건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조정에 있는 군주로부터 방방곡곡의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군주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니요, 군주가 그르다고 해서 반드시 다 그른 것만도 아니다. 군주라도 함부로 자신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반드시 옳고 그름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일부일 뿐, 학교는 오로지 인재만을 길러 내기 위하여 설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 삼대 이후로 천하의 옳고 그름은 한결같이 조정에서 결정하여 왔다. 그래서 천자가 칭찬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옳다고 말하였고, 천자가 욕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그르다고 하였다. 문서 정리, 회계, 조세, 군사, 소송 등의 실무적인 일들은 하급 관리들에게 위임시키고 다만 세속의 풍습이나 대중적 유행을 벗어난 몇몇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마땅히 세속적 거래나 술수가 없어야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학교란 과거 시험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부귀 영화의 꿈을 불태우는 곳이 되었고, 마침내 조정 내에서 일어나는 세력과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본령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선비들 가운데 재주와 덕있는 학자들은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덕을 닦고 학교와는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교는 그나마 인재를 길러내는 마지막 남겨진 기능마저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의 설립 취지는 서원 형태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조정의 생각과 노선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만약 서원에서 그르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서원에서 옳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그르다고 비난하였다. 서원에서 주장하는 일이라면 그 진실이 어찌되었든 무조건 거짓된 학문이라 하여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거나 서원을 철폐하거나 탄압하였고, 어떻게 해서라도 조정의 권력을 동원하여 이기려고 들었다. 그래서 벼슬하지 않은 자에게는 형벌을 가하면서,“이 자는 천하의 사대부들을 선동하여 조정을 배반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당초에 학교는 조정과 각별한 관계는 없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조정과 학교는 대립하면서 마침내 인재를 길러내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인재들을 해치며 탄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학교라는 이름만 남겨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동한(東漢) 시대 태학(太學)의 3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권력자들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없이 통렬하게 비판하자 공·경·대·부 등 고위 관리들은 그들의 비판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또한 송나라 시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대궐문 앞에 모여 북을 두드리면서 이강(李綱)의 복직을 강력히 청하기도 하였다. 하·은·주 삼대가 남긴 유풍 중에서 오직 이러한 사실만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조정 중신들에게 학생들의 옳고 그르다는 기준에 따라 그들의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게 하여 장차 도적의 무리들과 간신배들이 학생들의 올곧고 준엄한 기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군주도 편안하고 나라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그것을 보고 세상의 일이 쇠퇴하여 간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해가던 원인은 당인을 잡아들이고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澈)을 유배 보냈기 때문이며, 게다가 학교를 파괴함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학교의 사람들만 탓하고 있다. 아! 하늘이 이 백성을 낳아 군주에게 맡겨서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였으나 밭을 주던 법은 사라져 백성들은 밭을 사서 스스로 먹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금을 부과하여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학교를 폐지시켜 백성들은 바보처럼 교육받을 기회도 잃게 되었는데 오히려 권익과 이익만으로 그들을 유혹하니, 이는 매우 어질지 못한데도 공허한 이름으로 칭송해 높여 군부(君父)라 부르니, 누구를 속일 수 있겠는가? ●지문의 분석 교육의 역할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가 담겨 있는 이 책의 제목은 퇴조하는 명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정치 체계 내지는 원리를 세워 어진 군주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당시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맹자의 민본 사상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하·은·주 삼대의 정치를 이상으로 국가 체계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천하의 정치는 한 성(姓)의 흥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과 행복의 문제임을 밝히고, 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을 여러 사람이 큰 나무를 옮겨 가는 모양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제시문은 그 중 학교 역할의 변질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는 학교는 인재 양성 기관이라는 점을 전제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즉, 학교 설립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말하면서 학교는 단순히 인재만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목적이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가지도록 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비 판단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역사적으로 학교가 인재를 길러내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과, 대학을 파괴하면서부터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학교의 역할, 학생들의 직언, 대중 운동의 정당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이 문제는 제시된 글을 읽고 논점을 파악하여 분석한 후에 이를 다시 우리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시문에 나타난 학교 교육의 역할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의하면, 학교는 우선 천하를 다스리는 수단을 제공하고 성인의 감회를 가르쳐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관대한 기풍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시비를 판단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본래적인 역할이 변질됨으로써 과거 시험을 위한 경쟁, 세속적 욕망의 추구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재 양성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학교 교육은 통치 원리의 제공, 국민 인성의 함양, 시비의 판단, 인재 양성, 권력 비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용 분석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이러한 학교 교육의 역할을 오늘의 대학에서도 똑같이 담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수험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제시문에 나타난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의 역할을 전적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어느 관점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지만, 어떤 주장이든지 논거가 분명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제시문을 토대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것을 오늘날 대학과 연관지어 논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을 제시문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논술문의 주제로는 ‘전문적 능력을 지닌 인재의 양성’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오늘의 대학은 전문성을 지닌 인재 양성의 책무에 전념하고 인성 교육을 통해 전문적 능력을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문으로 글을 이어나가면 자연스러운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먼저 서론 부분에서는 사회 변화에 따른 역할 분담에 대하여 언급하고 학교의 역할 변화에 대한 구체적 내용으로 본론을 이어가면 자연스럽다. 물론 여기에서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도입하면 논의의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본론의 첫 단락에서는 주어진 논제대로 제시문을 분석하여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나타난 인재 양성과 권력 비판 등과 관련지어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면 된다. 이어서 사회와 학교의 관련성에 대하여 논지를 이어가면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 현안과 관련지어 언급을 하면 그만큼 논의가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 제시문의 내용 핵심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해 논점을 이끌어내고 있는지가 채점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언급한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오늘날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이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한계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대학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그에 따른 대학의 위상 변화와 그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 논의가 심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앞부분에서 논의한 학교의 역할과 그 역할이 대학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핵심적 주장을 요약해 강조하면서, 인성 교육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 고양과 교육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강조하며 마무리지으면 좋은 답안이 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남과여] ‘청순한’ 여자 ‘백마 탄 왕자’ 환상이 깨질때

    [남과여] ‘청순한’ 여자 ‘백마 탄 왕자’ 환상이 깨질때

    남자라면 한번쯤 청순하고 단아한 여인이 자기 곁에 있기를 꿈꿔본다. 약간의 가련미(可憐美)까지 갖추면 금상첨화겠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키 크고 잘 생기고 돈 많고 성격·매너 좋은 ‘백마 탄 왕자’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재주건 재수건 용케 그런 사람을 만났다 치자. 얼마나 오래 갈까. 내 남자, 내 여자에 대한 환상의 포말이 부서지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 “이 황당함을 어째?” 남자들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옷차림이나 외모에서 허점이 발견될 때 여성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고 말했다. #“앗, 겨드랑이 털이 보이는 민소매” 김성국(28·회사원)씨는 현재 외모가 예쁜 여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 김씨가 보기에 여자친구는 예쁘면서 착하기도 해 1년 넘게 사귀면서 단 한번도 황당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새로 산 치마를 입고 나타난 여자 친구의 스타킹 사이로 삐져나온 다리털을 보고 말았다.“얘기해 주기도 어렵고, 또 신경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와 비슷한 경험 때문에 청순한 여자 친구의 이미지가 깨진 20대 남자들이 많았다. 회사원 백민기(29·가명)씨도 겨드랑이 털이 듬성듬성 보이는 민소매 옷을 입은 여자친구를 본 순간 눈에 씌인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머리를 감지 않아 냄새가 날 때, 손톱이 지저분할 때 등도 ‘내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의 사례로 지목됐다. 결혼 상담업체 ㈜선우의 연애컨설턴트 정미지씨는 “외모를 단정히 하는 것은 남녀관계를 떠나서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면서 “기본을 지켜주지 못할 때 상대방에 대해 황당한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뉴스에도 관심 필요…전혀 모르면 황당해요.” 30∼40대 남성들은 사회·정치·경제 문제 등 기본적인 시사에 전혀 관심없는 애인이나 아내에 대해 ‘황당’하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회계사 황모(34)씨. 굳이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뉴스에 관심이 많다. 대학생 때부터 신문을 읽어오던 버릇이 몸에 배어 있기도 하거니와 각종 모임에서 시사상식이 없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황씨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시사문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내는 신문도 보지 않을 뿐더러 TV에서 뉴스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것이다. 박민수(41·회사원)씨도 TV 드라마에만 열광하는 아내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박씨의 아내는 드라마가 아니면 홈쇼핑만 시청한다. 박씨는 홈쇼핑을 보다가 갑자기 주문전화를 거는 아내를 보면 애정지수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극성맞고 호들갑 떠는 것도 싫어요.” 여자의 단아한 이미지에 환상을 가진 남성들은 극성맞고 호들갑스러운 자기 여자의 모습을 볼 때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웃거나 떠든다든지, 화장을 하는 행동을 보면 환상이 깨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기 모습을 시도 때도 없이 찍어대는 ‘셀카 공주’의 모습도 별로 맘에 안든다는 사람이 있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자기야, 새해에는 제발… “난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 올해에도 우리 예쁜 사랑 계속 잘 키워나가자∼”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야 이런 ‘닭살’ 돋는 말이 별로 어색하지 않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무리 잘나고 나에게 잘해준다 해도 어찌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없을까. 새해를 맞아 으레 스스로에게 하는 ‘작심삼일용’ 소원 못지않게 애인에게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마련. 여성포털사이트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가 최근 미혼 남성 198명, 미혼 여성 236명을 대상으로 ‘새해 내 애인에게 바라는 점’을 설문조사한 결과 남자는 여자친구의 외모를, 여자는 남자친구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길 가장 원했다. 남성 응답자의 70%인 138명은 여자친구에게 새해에는 여성스럽게 꾸미기를 바랐다. 반면 여성의 67%인 158명은 남자친구가 능력을 좀더 개발하길 원했다. 남자에게는 능력, 여자에게는 외모를 바라는 통속적인 잣대가 이미 사랑에 빠진 연인 사이에서도 유효한 셈이다. 두번째 바람으로 남자들은 애인의 금연(11%)을, 여자들은 남자친구의 금주(17%)를 꼽았다. 연애하기 전 혹은 초기에는 눈에 꽁깍지가 씌어 뭐든 예쁘게 보이고 참을 수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술, 담배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남성의 경우 외모에 이어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 금연을 꼽았다. 겉으로는 여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며 ‘쿨’한 남자친구 역할을 했지만 내심 애인이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3위는 남녀 똑같이 각각 10%가 ‘운동하기’를 꼽았다. 애인이 요즘 유행하는 몸짱이 되길 원해서인지 건강하게 생활하길 원해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밖에 남자들은 애인에게 술 끊기와 자신에게 더 관심 가져주길 원했으며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담배를 끊고 관심을 좀더 가져주기를 새해 애인에게 바라는 소원으로 택했다. 여자친구의 능력이 높아지길 바라는 남자는 6%, 남자친구 외모가 깔끔해지길 바라는 여자는 단 3%밖에 없어 일반적인 예상과 차이가 났다. 사랑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지만 연애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입맛에 맞도록 바꾸는 것은 이기적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습을 바꾸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2006년 새해에는 애인을 위해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일년’의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뻑이 가요 뻑이 가” 여성들은 남성들의 비상식적인 생리현상을 볼 때 ‘백마 탄 왕자’의 환상이 여지없이 산산조각난다고 말했다. #“우렁찬 트림은 화장실에서나 하시죠.” 20대 초반 회사원 박은영(여)씨는 직장의 남자 동료·선후배들이 식사만 하고 나면 왜 그렇게 트림을 우렁차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트림하는 얼굴과 소리만 듣게 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후덕함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그는 “어떤 남자 동료에 대해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트림 한 방에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렸던 적도 있다.”고 했다. 트림뿐 아니라 남자 친구나 남편의 방귀 또한 여성의 환상을 깨는 데 즉효다. 전업주부인 김모(43)씨는 남편이 방귀를 뀌고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자기 쪽으로 휘휘 날려보내는 행동을 할 때 겉으론 웃고 말지만 속으로는 ‘왜 저럴까.’ 싶다. 조금만 움직여 화장실이나 베란다로 나가면 될 것을 항상 이런 식이다. 김씨는 “여자 앞에서 트림을 크게 하는 것이나 소리가 큰 방귀를 뀌는 것이 혹시 자기의 우월함을 증명해 보이려는 유치한 태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김씨의 남편은 자기 아내의 짐작과 달리 단순히 재미삼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삐져나온 코털 어찌하오리까.” 여성들 역시 깔끔하고 청결하지 못한 남자의 모습에서 환상의 붕괴를 느낀다. 회사원 정모(27)씨는 올 10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보면서 가끔 ‘이걸 얘기해야 하나.’라며 망설인다. 깔끔한 성격이라 나름대로 청결을 유지하지만 가끔 염치없이 불쑥 나와있는 코털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떨 땐 애인이 보는 앞에서 코털을 잡아 뽑기도 한다. 정씨는 코털 깎는 가위는 여성 전유물이 아닌데도 잘 이용하지 않으려는 애인에 대해 황당했다고 한다. 주부 김모(32)씨는 결혼 후 남편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했다. 출장을 다녀온 뒤 가방을 정리하는데 넣어준 속옷이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그렇게 깔끔하던 남편이 알고 보니 씻기 귀찮아 하고 속옷도 잘 안 갈아 입는 스타일이었던 것. 두루마리 화장지를 쓰고 나서 휴지통에 버리는 대신 두루말이 안쪽 홈에 밀어 넣는 것을 보면 ‘정말 깬다.’는 생각이 든다. #“쪼잔한 모습, 충격 또 충격” 결혼 4년차 이모(여)씨는 과자봉지, 커피봉지에 붙어 있는 포인트적립 쿠폰을 너무 기뻐하면서 오리는 남편을 볼 때 환상이 깨졌다고 했다. 우리 남편이 이렇게 좀스럽다니. 어떨 땐 세살배기 아이 먹으라고 사둔 과자를 자기가 다 먹고 애한테 먹인 척 시치미 뗄 때도 있다. 시댁 가서는 있는 어리광 없는 어리광 다 피우고, 처가집 가서는 어른스러운 척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여자 연예인의 싸이월드나 홈페이지에 몰래 들어갔다 들켰을 때, 유치한 만화를 보며 낄낄거릴 때도 부인이나 애인을 실망시키는 경우로 꼽혔다. 김기용 나길회기자 kiyong@seoul.co.kr
  • [깔깔깔]

    ●거짓말 70살의 갑부가 20세 처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식장에 온 친구가 신랑에게 부러워하며 물었다. “자네, 재주도 좋군. 아무리 갑부라지만 스무살짜리 처녀하고 결혼하다니 말이야. 도대체 그 비결이 뭔가?” 그러자 신랑이 귓속말로 대답했다. “난 저 애에게 90살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네. 그랬더니 일이 수월하게 풀리더라고.”●불면증 의사가 고질적인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처방을 내렸다. “당신이 불면증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절대로 걱정거리를 침대까지 갖고 가서는 안됩니다.” 그러자 얼굴이 핼쑥한 환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선생님. 그 방법은 무리입니다. 아내는 절대로 혼자서 자려고 안하는 걸요.”
  • ‘왕의 남자’ 외줄타기 비밀은 부채

    처음에는 순전히 남자배우가 얼마나 예쁜지 보고 싶어 선택한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를 보는 동안 배우들의 명연기가 돋보였다. 특히 광대들이 보여주었던 그 많은 광대짓들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장터에서 기계체조 선수들도 놀랄 만한 재주를 넘는다든가, 탈을 쓰고 하는 극들도 훌륭하지만 외줄타기의 묘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줄타기 묘기를 했던 장생역의 감우성이나 공길역의 이준기는 줄을 매고 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우리는 맨몸으로 평균대 위를 걷는 것 만으로도 몸 전체가 긴장되는데 줄타기를 하는 광대들은 항상 손에 무언가를 들고 한다. 서양의 서커스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하다. 우리가 부채를 들고 두 손을 휘젓는 대신 그들은 너무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보이는 긴 장대를 들고 한다. 오히려 이런 ‘소품’들이 그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손에 든 부채나 장대 모두 안전하게 줄타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평균대를 걷게 되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팔을 최대한 벌리고 걷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 용어로 설명하면 긴 물체를 들고 있으면 회전관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줄 끝에 작은 물체 하나를 매달고 돌릴 때 줄이 짧으면 잘 돌아가지만 줄이 길어질수록 빨리 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빨리 돌려면 손을 모으고, 서고 싶을 때 손을 벌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관성은 외부에서 힘이 주어지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속도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속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성질을 말한다. 관성 때문에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 버스는 앞으로 나가지만, 정지해 있으려는 승객들은 뒤로 밀리는 것처럼 느낀다. 반대로 버스가 갑자기 정지하면 버스는 정지하지만 계속 움직이려는 승객들은 앞으로 밀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회전관성이라고 하면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하고 싶어하고, 정지한 물체는 회전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긴 물체의 끝이 움직이는 것은 짧은 물체가 회전하는 것보다 어렵다. 회전 속도도 느려진다. 때문에 긴 물체를 들고 있으면 중심이 덜 흐트러지고, 행여 중심이 흔들려도 쉽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가끔 줄타는 서커스 단원은 뭔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우리 몸이 평형을 느끼고 중심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평형을 느끼는 감각은 의외로 귓속에 있다. 눈으로 상황을 보고, 귀 안에 있는 평형기관(전정기관과 반고리관)으로 몸의 감각을 느낀다. 평형 감각을 담당하는 곳은 소뇌라는 부분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장생이 눈이 멀어 줄을 볼 수는 없지만, 발바닥의 감각만으로 위태위태하게 줄타는 장면이 나온다. 눈으로 보면서도 하기 어려운 줄타기를 발바닥 감각만으로 할 수 있는 장생의 광대로서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짧은설 ‘방콕’하면 뭐해…서울 시티투어

    짧은설 ‘방콕’하면 뭐해…서울 시티투어

    ■ 설 즐기기1 - 시티투어 “어른들은 밥상 물리자마자 고스톱판이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어렵게 한자리에 모여서 제각각 지내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경기도 일산에 사는 고은주(37·주부)씨가 푸념처럼 털어놓은 명절 집안풍경이다. 윷놀이를 해보기도 하지만 몇판 돌리고나면 시들해졌단다. 각지에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설연휴. 이번엔 시티투어버스를 ‘전세’내 가족들 모두 시내관광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시내 곳곳에 흩어진 관광명소를 저렴한 가격에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 가족들이 여러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이번 설 연휴땐 ‘따로따로’ 집안에서만 지내지 말고 가족소풍을 나가보자. 준비물은 과일 몇개에 조청묻힌 가래떡이면 충분하다.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지난 18일 서울시티투어버스(seoulcitytourbus.com)를 타고 서울시내를 한바퀴 돌아봤다. 광화문 4거리의 동화면세점 앞을 출발해 덕수궁과 남산의 N서울타워, 청와대 등 서울시내 주요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도심 순환코스. 보고 싶은 곳에서 내려 관광을 하고, 내린 곳에서 30분 간격으로 오는 다음 차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다. 마침 수문장 교대의식이 펼쳐진 덕수궁을 지나, 서울역에 도착하자 몇 가족이 올라탔다. 경기도 평택에서 왔다는 이경옥(37·주부)씨는 “아이들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려고 왔는데, 이참에 서울시내도 한번 둘러볼까 해요.”라며 기대감에 들뜬 표정이다. 이어 차가 멈춘 곳은 이태원. 경북 청송에서 온 한 가족이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나누는 대화에 승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여가 어딘교? 외국인이 억수 많네예.”“이태원이라카는데 아이가. 이 문디…” 간간이 섞여 있던 외국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웃었다. 전북 전주에서 온 구교범(11)군은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유명한 곳들을 직접 보니까 너무 좋아요.”라며 차창밖에 펼쳐진 서울시내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내구경, 시간안배가 중요하다 시티투어의 운행코스는 도심 순환코스와 고궁코스, 그리고 야경코스 등 세가지. 도심 순환코스의 경우, 시간을 잘 안배해야 서울시내 관광명소를 모두 볼 수 있다. 고궁이나 박물관 등은 오후 4시가 넘으면 관람객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한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 입장을 못할 수도 있다. 가이드가 알려주는 다음 차 도착시간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제시간에 정류장에 가 있는 요령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고궁코스는 관광코스가 짧아 비교적 시간여유가 있는 편. (1) 출발시간과 장소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매일 아침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야경코스는 저녁 7시50분과 8시, 두차례만 운행한다. 막차는 도심 순환코스가 저녁 7시, 고궁코스가 오후 4시. (2) 요금은? 1회탑승권과 야경탑승권은 성인 5000원, 고교생 이하 3000원을 받는다. 어디서나 타고 내릴 수 있는 1일권은 도심 순환코스와 고궁코스 모두 성인 1만원, 고교생이하 8000원. (3) 할인은 안되나? 지방에서 KTX를 타고 왔다면 승차권을 버리지 말도록 한다.1일권 15%의 할인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번달 말까지 5인이상 가족 탑승시 1일권이 10%할인된다. (4) 박물관 등 연계코스도 할인되나? 승차권을 제시하면 국립중앙박물관,N서울타워, 전쟁기념관, 한강유람선 등 시티투어와 연계된 관광명소 대부분에서 10∼30%까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의 (02)777-6090. (5) 지방에는 없나? 부산, 대구 등 자치단체들이 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번 설연휴때는 일부지역에서만 운행될 예정이다. *대구 시티투어(daegutour.or.kr)-하루에 1회 운행한다.4대의 버스를 승객수에 따라 탄력적으로 배차한다. 두류공원내 관광정보센터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해, 동화사 등을 거쳐 오후 5시쯤 돌아온다. 성인 5000원, 중·고생 4000원, 초등학생 3000원. 문의 (053)627-8900. *인천시티투어(cstr.co.kr)-공항노선만 30일 하루 운행한다. 아침 9시45분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30분간격으로 총 6회.1회권 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전일권은 성인 6000원, 청소년 3000원. 문의 청송관광 (032)469-6060. *대전시티투어(baekjetour.com)-하루 1회 운행. 동방마트앞에서 아침 10시에 출발해 청남대와 부여 등을 둘러보고 오후 5시 돌아온다. 성인 1만원, 학생 8000원. 문의 백제관광 (042)253-0005. *수원시티투어(suwoncitytour.com)-29일 설날만 쉰다. 하루 2회(오전 10시30분, 오후 2시)수원역앞에서 출발해 서장대, 화성행궁 등을 2시간30분정도 둘러본다. 성인 8000원, 학생 5000원, 유아 3000원. 문의 장수관광 (031)224-2000. ■ 설 즐기기2 - 놀이동산 설을 맞아 놀이동산에는 우리 전통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이벤트와 민속놀이 등이 다양하고 여러가지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번 연휴에 어디를 갈지 결정하지 못한 가족들에게 놀이동산을 추천한다. 아이들도, 어르신들도 즐거운 설 연휴가 될 것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흥겨운 한마당인 롯데월드 “삐리리∼, 덩덩덩, 째쟁 째쟁”하는 흥겨운 사물놀이와 오색 깃발, 한복을 입은 무희들의 몸놀림에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실내 테마파크라 겨울이면 더욱 좋은 롯데월드. 현대적이고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설을 맞아 시골 장터에 온 것 같은 분위기에 맘이 넉넉해진다. 이번 설을 맞아 롯데월드에서는 다채로운 민속 공연과 춤,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오후 1시 주라기 광장은 “아∼, 안돼.”하는 탄성과 가쁜 숨을 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로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해진 외줄타기 공연이 한창이다. 전통 줄타기의 명인 권원태씨가 아슬아슬한 외줄에서 재주를 넘고 떨어질 듯 다시 올라서는 묘기에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또 옆에서는 3m 높게 점프를 하며 펼치는 민속 널뛰기팀이 “와∼”하는 함성 속에 이어지고 “아이고 순이 아빠, 허리 다쳐유. 그만 휘둘러.”,“임자 내 이래봬도 아직 청춘이여.”하며 떡메를 휘두르는 아저씨. 아이들도 덩달아 떡메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떡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자 노란 고물을 묻혀 나누어준다. 만들기도 하고 먹는 즐거움까지 기쁨 2배. 오전 11시, 오후 3시30분 매직트리 앞에서 펼쳐지는 ‘민속놀이 한마당’도 흥겹다. 대형 윷 모양의 옷을 입고 스스로 윷이 되어 펼치는 인간 윷놀이, 방자와 향단이가 돌리는 줄 안으로 들어와 함께 뛰는 줄넘기와 제기차기, 엿치기, 널뛰기, 팽이치기 등 다양하고 재미난 민속놀이가 가득하다.15명의 우승자를 뽑아 선물도 나누어준다. 이밖에도 설날 당일 아빠 엄마와 함께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복조리를 선물로 나누어주며 가훈을 무료로 써주기도 한다.24명의 여성 농악대의 신명나는 한마당, 민속박물관 놀이마당에서 서도소리인 배뱅이굿 한마당 등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www.lotteworld.com,(02)411-2000. ●새해 소원 빌고 황금을 받으세요, 에버랜드 “올해는 꼭 여친 주세요.”라는 소원부터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마음을 소원지에 예쁘게 써 나무에 거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인 용인 에버랜드. 개장 30주년을 맞아 입장 고객 중 3만명을 추첨해 황금 30돈으로 만든 특별 펜던트 등 푸짐한 선물을 준비했다. 새해에 좋은 꿈을 꾼 사람들은 에버랜드로 달려가는 것도 좋을 듯. “엄마 저 아저씨가 왕이야. 너무 멋있다.”는 아이들의 함성이 가득한 곳이 유러피언 광장. 낮 12시부터 하루에 3번 펼쳐지는 ‘상감마마 행차’는 화려하고 근엄한 궁중 의상을 입은 왕과 왕비를 비롯한 문무 신하 20여명이 궁중 제례 음악에 맞추어 행진하며 관람객과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나눈다. 또 “너 이거 들 수 있겠어.”라며 던져 보는 점보 윷. 크기가 어른 키만 해 더욱 재미가 있다. 지름이 20㎝가 넘는 제기차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고 장고 북 등 타악 공연이 계속 이어져 하루 종일 흥겨움이 끊이지 않는다. 이밖에 4명의 중국 기예단이 펼치는 널뛰기는 그야말로 곡예의 극치. 300발이 넘는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등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기에 그만이다.www.everland.com,(031)320-5000. ●개띠해를 맞아 개판인 서울랜드 “어머 저 앙증맞은 한복을 입은 녀석 좀 봐. 너무 귀엽다.”,“아이고 저 녀석이 세배를 다 하네. 그래 너도 복 많이 받아라.” 개의 해를 맞아 ‘개판’으로 변한 서울랜드는 강아지를 기르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개와 함께하는 이벤트와 묘기 등 강아지의 재롱이 가득하다. 애견의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애견 특별 전시장’에서 설을 맞아 특별히 한복으로 곱게 단장한 강아지들이 너무 예쁘다. “으하하하∼. 저 놈 춤 잘추네.”,“아빠 저 개 좀 봐. 날아가는 원반을 물어오네. 너무 멋지다.”라는 감탄사가 이어지는 ‘애견 시범 공연’. 설연휴 기간 동안 오후 1시,3시에 펼쳐지며 애견 댄스, 아질리티(장애물 경기), 디스크 도그(원반 던지기) 등 다양하고 재미난 강아지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하는 강아지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강아지가 나누어주는 ‘복’을 받느라 아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이밖에도 전통 풍물패의 신명나는 길놀이, 풍차무대에서 열리는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은 현장에서 접수한 고객들이 서로 겨루는 대회로 우승자에게는 경품도 준다. 전통 생활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장작 패기 체험’도 아이들에게 색다른 즐길거리다. 또한 삼천리 동산 입구에 마련된 ‘사주공간’에서는 신년운세와 토정비결 등을 볼 수 있다.(02)504-0011,www.seoulland.co.kr ■ 설 즐기기3 - 찜질방 설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지난 한해 동안 서로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얼굴 붉힐 일도, 오해도 많았다. 하지만 집에서는 손님들과 아이들의 성화에 제대로 이야기도 한번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또한 설의 모습이다. 이번 설에는 특별히 갈 곳을 정해놓지 않았다면 가족끼리 ‘땀’을 빼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 우리 몸에 좋은 대마의 기운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찜질방, 원적외선이 가득한 숯가마 등 가족들과 함께 가볼만한 곳을 알아본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우린 기다렸다, 시설 좋은 숯가마를! 어두컴컴한 장막을 걷고 들어서면 ‘훅’하고 다가오는 열기.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옹기종기 앉아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여기가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많아 몸에 좋다는 숯가마. 경기도 여주에 근사하고 깨끗한 여주 참숯마을(www.yjcharmsoot.com, 031-886-1119)을 다녀왔다. 특히 설에 영동지방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고속도로에서 가까워 오고가는 길에 잠시 들러 피로를 풀어 봄직하다. ‘여주 참숯마을’이 좋은 것은 아이들이나 가족들과 쉴 수 있는 커다란 향토방이 있다는 점이다. 작은 방 3개와 큰방 1개로 누구나 방에 들어와 자거나 쉴 수 있어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은 너무 좋다. 숯을 막 뺀 ‘꽃탕’가마에서 원적외선으로 온 몸을 지지거나 고온, 중온 가마에서 충분히 땀을 흘린 후 신선한 황토방에 누우면 ‘설 피로증후군’이란 단어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또 식사도 하고 아이들이 오락이나 TV를 볼 수 있는 휴게실도 마련돼 있다. 이렇게 쉬다 보면 배가 출출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식사도 여기서 해결하면 된다. 여주 참숯가마의 별미는 백탄 삼겹살(8000원)과 고등어(5000원). 초벌구이를 한 삼겹살을 숯 중에 제일 좋다는 백탄에 구워먹는 맛은 색다름을 전해준다. 또 쫄깃쫄깃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파와 콩나물무침에 싸서 먹으면 더욱 좋다. 아아, 삼겹살을 안주 삼아 오랜만에 형님, 동생 하며 술 한잔씩 한다는 것도 집안의 화목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아이들을 위한 고등어 구이도 맛있다. 큼직한 고등어를 숯불에 구워 쫄깃하고 담백한 맛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울러 땀 빼며 건강도 지키고 그동안 못다한 가족 간의 대화도 나누고, 또 명절 음식장만으로 지친 아내를 위해 추천할 만한 곳이다. 어른 8000원, 아이 5000원. 이밖에도 경기 광주 나무골 참숯가마(031-766-5374), 용인 백암 다래참숯가마(031-339-1113), 파주 광탄 숯굽는 마을(031-941-2356)도 가볼 만하다. ●대마(大麻)의 기운을 느끼는 곳 경기도 현리에 사는 심우을(48·주부)씨. 최근 동네 구석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다름아닌 ‘대마·황토 햄프체험관’. 옆집에 사는 김순임(46·주부)씨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심씨는 “에이, 정말 작네. 다른 찜질방에 비해 시설도 떨어지고 집에 가자.”며 나선다. 그러자 김씨는 “아이 형님 성격도 급하지. 여긴 처음에 돈도 안 받으니 한번 해보고 결정하세요.”라고 만류했다.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는 심씨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옷이 다르다. 햄프체험관은 삼베로 만든 감촉 좋은 옷을 나누어준다. 보통 찜질방의 옷과 뭔가 차원이 다름이 느껴진다. 이윽고 찜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전혀 뜨겁지 않다.“이래서 땀이나 나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0여분이 지나자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20분쯤 지나자 아예 옷이 젖기 시작한다. 몸이 상쾌해지고 가뿐해짐이 느껴지는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렇게 45분정도 지나자 ‘대마·황토 햄프체험관’의 심우인(46)사장이 “이제 나오세요.”라며 문을 연다. 마루에 누워 쉬었다. 정말 신기하다. 그렇게 천근만근이던 몸이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지고 기분도 너무 상쾌해졌다. 이게 ‘대마 찜질방’의 맛이다. 예부터 대마는 ‘신이 준 마지막 선물’이라 불릴 만큼 항균력이 뛰어나고 자체에서 고순도의 원적외선이 방출되는 식물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옷감을 만들면 삼베가 된다. 대마 햄프체험관은 대마를 넣은 벽돌, 벽지, 장판 등을 사용해 전자파를 차단하고 100% 환경 친화적인 풀을 사용해 만든 공간. 그래서인지 실내 온도도 38∼40도밖에 되지 않지만 몸에 지니고 있는 나쁜 성분을 배출하기 충분하고 아이들도 쉽게 찜질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4평 남짓 좁은 공간에 하루에 수백명이 땀을 흘리고 가도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고 심 사장은 강조한다. 대마 햄프 체험관은 입장료가 1만원이다. 하지만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체험을 하라고 1만원짜리 티켓 5장을 그냥 나누어준다. 역시 자신감의 발로에서 그렇다. 공짜라는데 이번 연휴 한번 가서 느껴봄이 어떨지. 전국적으로 23개가 있다.www.hempkorea.com,(02)455-7171.
  • [나길회기자의 세상속으로] 안성남사당 외줄타기 체험 2박3일

    광대는 단 한순간도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다. 거방진 재담, 자지러지는 쇠가락과 감아도는 상모놀이, 그리고 하늘을 희롱하는 줄타기로 한판 제대로 놀면 그뿐이다. 이것이 광대가 세상을 보듬는 방식이다. 밟는 자에게 강하고 함께 즐기는 자에 약한 진정한 호인 또한 광대다. 몸은 땅에 속해 있되 영혼은 하늘에 맡긴 광대는 비단 줄꾼만은 아닐 것이다. 목숨은 아깝지 않되 사무치는 외로움은 화려한 흥으로 가리고 울음은 바람소리에 묻어 보낸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장생(감우성 분)의 카리스마도 공길(이준기 분)의 녹아나는 눈빛도 아니다. 양반은 물론 같은 천민에게도 무시당한, 밑바닥 삶을 산 남사당패가 보여준 질깃한 생존력이었다. ●신명을 위해 산다 남사당의 이런 매력을 오롯이 지닌 곳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남사당의 최초 발생지로 꼽히는 안성의 시립남사당을 찾아갔다.‘왕의 남자’의 숨은 주역이자 남사당의 정신과 전통을 잇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풍물을 위주로 공연하는 다른 곳과 달리 풍물, 버나(접시돌리기), 땅재주 놀이, 어름, 덧뵈기(탈놀이), 덜미(인형극) 등 여섯마당을 다 전수하고 있다. 억눌린 한을 분출하기 위해 사회 부조리를 꼬집었던 남사당패의 정신은 물려받되 내용과 형식을 현대판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전통을 변질시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영화가 흥행하니 남사당을 좀더 알릴 수 있어 좋죠. 그래도 변한 건 없습니다. 공연이 있는 곳에서 신명나게 놀기 위해 준비할 뿐입니다.”이들과 함께한 2박3일간 연습실에는 밤낮 없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죽을 판과 살 판 사이 쇠든 장구든 어느 한 가지에 몰입하는 이들은 그저 ‘아름다운 광대’다. 하지만 외줄의 아찔함을 흥으로 바꾸는 줄꾼의 유혹이 무엇보다 강렬했다. “정초부터 사고라도 나면 우리 남사당패는 어떡합니까.”낮은 연습용 줄에서 이틀을 연습했다. 발바닥의 가장 여린 부분으로 줄을 디뎌야 하기에 악소리 내며 고꾸라지길 수천번.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도 걸어갈 수 없었다. 그런 다음에 공연용 줄에 올라가겠다고 하자 ‘스승님’ 권원태(39)씨가 말렸다.30년 경력의 그도 낮은 줄을 1년 넘게 타고서야 높은 줄에 올랐다고 하니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슬아슬하지만 걸을 만하니 설사 떨어져도 다치는 것은 면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렇게 높이 3m의 줄에 올라섰다.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위험해 ‘어름’이라고 불리는 줄타기를 두고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죽을 판 살 판’. 대단한 어름사니(줄타는 사람)도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의미다. 죽음과 삶의 암수 한몸인 외줄 위에서 자유, 우월감 같은 거창한 느낌을 기대했던 오만함은 지웠다. 그저 겸손해졌다. ●걸립패에서 월급쟁이까지 남사당패는 무리를 지어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하고 돈과 곡식을 얻는 일종의 걸립패였다. 안성남사당의 꼭두쇠(놀이패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인 이원보(77)옹은 “안성맞춤이라는 말도 있듯이 예전에 이곳에는 없는 물건이 없을 만큼 큰 장이 열렸다.”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에서 가장 큰 놀이판이 열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안성이 남사당의 근거지가 됐다.”며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유랑예인 집단 중에서도 남자들로만 이뤄져 남사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만 1863년에는 바우덕이라는 인물이 여성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사당의 꼭두쇠가 됐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사당패는 경복궁 중건에 동원돼 사기가 떨어진 사람들에게 신명의 힘을 불어넣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대중 스타로 기록된 이들은 천민으로 벼슬까지 받았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며 그 맥이 끊길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지난 1982년 안성의 풍물인들이 남사당 보존회를 구성해 길을 모색하게 됐고 2002년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이 만들어졌다. 전통은 잇지만 사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엄격한 오디션을 거친 성인들인 단원들은 반공무원으로서 아침 10시에 출근하는 월급쟁이다. 물론 여자단원도 있다. 어깨너머로 배우던 방식도 체계적인 교육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떠돌이 광대’다. 상쇠 성광우(32)씨는 “우리끼리는 서로를 광대라고 부르지만 그래도 엄연한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과 줄타기의 교집합 줄 위에서는 발이 곧 눈이다. 시선은 줄 끝에 두고 발로 줄을 살펴야 한다. 바로 앞의 줄을 봤다가는 어김없이 떨어지고 만다.‘눈앞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인생의 평범한 진리가 몸으로 다가온다. 겁이 났다. 아니, 겁없이 올라간 줄 위에서 조선시대 뜨내기 광대의 삶에서 이 시대의 어린 전승자들의 얼굴까지 모두 떠올랐다.‘수제자로 삼아달라.’며 능청을 떨었던 모습은 간데 없고 시간은 전혀 줄에 오른 적이 없던 때로 뒷걸음질쳤다. 줄 끝에 겨우 서서 펼쳐 든 부채는 천근만근. 한발 내밀어 더듬어본 줄은 어느새 가는 실로 변해 있었다. 저 아래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해지고 시간의 속도가 달라졌다. 그렇게 줄 위는 딴세상이었다. 잡념도 독이다. 줄을 건너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면 단 한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떨어진다.7년째 줄을 타는 박지나(18)양이 의젓해 보였다. 줄 위에서 인생을 일찍 알았을까. 그도 더 어렸을 땐 마냥 재미있었던 줄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했다. 마침내…. 발바닥이 열갈래로 찢어질 듯한 고통은 긴장으로 덮고 줄 끝을 향해 걷기를 시도했다.“내가 줄 위에 섰다∼.”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런 외침도 잠시,5m쯤 되는 줄의 끝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한걸음, 두걸음…. 몇걸음을 줄 위에서 걸었다. 몇천번 떨어진 끝에 얻은 천금같은 성과다. 끝내 반대편에 닿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가닥 줄위에 선 것만 해도 스스로 대견했다. 줄 아래로 떨어지고서도 마음은 줄 위에 남아 걸쭉한 재담을 늘어놓았다.“어허, 한판 제대로 놀았네 그려.” kkirina@seoul.co.kr ■ ‘왕의 남자’ 줄타기 대역 권원태씨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장생의 줄타기 실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줄 위에서 왕을 조롱하며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장면은 눈을 의심케 한다. 그래픽 기술의 승리가 아니다. 이 명장면은 지난 2004년 세계줄타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권원태(39)씨의 대역으로 탄생했다. 아테네 올림픽 때 해변에 줄을 치고 전세계인을 놀라게 해 이미 유명세를 치른 그다. 대대로 예능에 종사해온 집안에서 태어나 10살에 줄에 처음 올랐다. 오랜 경력 덕분일까. 그의 줄타기에는 긴장감과 편안함이 공존한다. 이런 그도 처음 높은 줄에 섰을 때는 ‘겁난다.’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연하는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개 4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줄을 탄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어름사니이지만 20대 때에는 공연 도중 떨어져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다른 길을 찾을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지만 역시 줄타는 것이 천직이었다. “다시 태어나면 줄은 안 탈 겁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어떻게 다시 줄 위에 오르겠습니까.”하지만 이틀간 기진맥진해가면서 줄의 매력을 조금 맛보고 나니 달리 해석된다. 줄타기 배우는 과정만 잊을 수 있다면 그가 또다시 줄에 오를 것이라고 말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선과 악을 넘어서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선과 악을 넘어서

    선이 있는 곳에 필연적으로 악이 같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악은 선에 의하여 청소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내가 악을 미워하면서 완전히 뿌리뽑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에 나의 선행의 결심은 이미 악을 동반하게 된다. 악을 미워하면서 악과 대결하는 그 선행의 마음에 이미 독선의 악은 소리없이 스며들어 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이기주의와 도덕주의를 넘어가는 제3의 길이 무엇일 수 있는가를 모색하여 보았다. 흔히 상식적으로 이기주의는 나쁘고, 도덕주의는 좋다는 흑백논리에 사람들은 빠져 있다. 그런 흑백논리가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았고 그렇게 사람들은 믿어 왔다. 그러나 그 일도 그렇게 단순치 않음을 우리가 보았다. 세상일이 그렇게 단세포적으로 간단하게 판명나면, 왜 철학적인 사색이 필요하겠는가? 이번의 주제도 상식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충격을 던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선은 좋은 것이고 악은 나쁜 것인데, 악의 극복은 쉽게 이해되나 선의 극복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 선악에 관한 윤리학적 정의가 다양하지만, 선악은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스럽고, 싫어하는 사람은 밉다. 이것이 일반적 사람들의 심리상태다. 그래서 이런 심리적 호오(好惡)가 너무 주관적이어서 도덕적 선악과 같은 반열에 올려질 수 없다고 도덕주의자들은 말한다. 도덕적 선악은 개인의 주관적 심리에 좌우되어서는 안되고 공동체생활을 좋게 유지하기 위한 보편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옳은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지 않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서 성찰해보려는 것이다. 도덕적 선악이 아무리 공동체를 위한 가치론적 판단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의 심리적 호오판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동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도록 교육받아왔고, 또한 선을 위한 악의 박멸과 추방에 박수치도록 도덕교육의 이름으로 훈련 받아왔기 때문이다. 소박한 전래동화일수록 선악이 분명히 구분되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지 않다. 선과 악은 별개의 적대적인 것으로, 마음 바깥에서 서로 대립되어 있다고 사람들은 보통 생각한다. 선의 이면이 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선과 악은 서로 완전히 다른 종자인 것처럼 간주한다는 것이다. 연속극과 낭만적 소설들은 대개 사랑의 낭만적 아름다움만을 과대 포장하여 사랑의 달콤함을 노래하거나 기껏 사랑을 눈물의 씨앗 정도로 표상한다. 그러나 사랑의 이면에 늘 그 독기가 서려 있어서 사랑의 이름으로 질투와 증오가 화산처럼 폭발한다. 낭만주의적 소설은 다 거짓말이라고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말했다. 동양에서 도덕사상의 종가는 아무래도 공자의 유교다. 공자의 사상은 여러 다양한 측면을 함의하고 있어서 단순히 도덕주의적이라고 못박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인 공자는 좋은 공동체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선악의 도덕에 남달리 관심을 보였다.‘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 한 토막이다. 공자가 제자 자로에게 배우지 않으면 폐단이 되는 여섯가지를 말한다. 인(仁)을 좋아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愚)이고, 알기(知)를 좋아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잘난 척하기(蕩)고, 신(信)을 좋아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치게(賊) 되고, 곧음(直)을 좋아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숨막히게 함(絞)이고,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해짐(亂)이고, 굳세기(剛)를 좋아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이 광기(狂)다. 공자의 이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로 모든 도덕적 가치가 좋은 면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폐단을 필연적으로 함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폐단이 없는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런 폐단이 있으나 이성적 도덕공부에 의하여 폐단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우리의 이 글은 첫째 주장에 동의하나 둘째 주장에 대하여 동의하기를 유보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도덕교육이 그렇게 강조해왔던 의식 측면에서 당위적으로 배운 도덕가치가 자기의 무의식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측면에 도전을 받으면, 순식간 도덕적 가치는 흔적 없이 날아가고 오직 무의식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행동을 통상적으로 인간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이성적 가치가 무의식의 본능적 이해관계 앞에서 얼마나 허약하게 무너지는지 잘 보아왔다. 평소에 진선진미한 도덕가치를 설교하던 사람이 세속적 출세에 지장을 주는 사람에 대하여 본능적 악감을 심한 욕설로 표시하는 경우를 나는 몇 번 보았다. 공자가 말한 바와 같이 폐단으로서의 악은 선으로서의 가치 이면에 운명적으로 깃들어 있는 선의 배설물과 같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선이 있는 곳에 필연적으로 악이 같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악은 선에 의하여 청소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내가 악을 미워하면서 완전히 뿌리뽑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에 나의 선행의 결심은 이미 악을 동반하게 된다. 악을 미워하면서 악과 대결하는 그 선행의 마음에 이미 독선의 악은 소리없이 스며들어 있다. 선량한 지킬 박사가 밤이면 괴물인 하이드로 변하는 스티븐슨의 소설은 선악이 별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야누스의 얼굴처럼 이중적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선악이 동일하다고 궤변을 농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선악이 다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동거한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을 우리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선인(善人)은 불선인(不善人)의 스승(師)이고, 불선인은 선인의 자산(資)이다.” 선인이 불선인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말은 쉽게 납득이 되지만, 불선인이 선인의 자산이라는 말은 생경해서 소화가 잘 안된다. 거기에 두 가지의 뜻이 숨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선인은 불선인을 역설적인 반면교사로 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안 되겠다는 선인의 마음은 불선인이 선인을 더욱 선인으로 키우는 자산이 된다는 뜻이겠다. 둘째로 불선인은 선인의 이면이므로 불선인의 마음이 선인의 마음으로 방향전환을 하면, 그 불선인은 다시 선인으로 되돌아선다는 뜻으로 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선인도 순간적 마음의 착각으로 불선인으로 미끄러질 위험을 늘 지니고 있다는 것과 같다. 지난 주의 글에서 본능의 이기적(利己的) 성향은 본성의 자리적(自利的) 성향과 같은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고, 서로 다르나 유사한 면도 지니고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무의식의 성향이 이렇게 가기도 하고, 저렇게 가기도 한다는 것이겠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이익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이익은 선악의 구분 이전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바깥에 있는 이익을 남들과 싸워 내가 취득해서 소유하려는 본능은 불선인의 배타적인 방향으로 흐르지만, 내가 내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기호(嗜好)를 꽃피워 그 열매를 남들에게 나누어주려는 이타행은 선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자리이타의 선인과 이기배타의 불선인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동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기배타적 불선인이 자리이타적 선인으로 방향전환을 이룩할 수 있을까? 노자는 여기서 마음의 고요를 들고 있다. 마음의 고요는 무심한 마음이다. 노자는 이것을 허심이라고 말했다. 내가 하루종일 공부에 몰입하면, 나는 선악과 손익계산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공부가 좋아서 거기에 몰입할 뿐이다. 마음은 한없이 고요하고 어떤 성취감에 젖게 된다. 그 때에 나는 무선무악(無善無惡)의 심경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노래 부르기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 예술인, 어떤 손재주로 무엇을 공작하는 장인, 회사경영에 열중하면서 돈벌이에 몰입해 있는 기업인, 무엇을 열심히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선생님, 어떤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스포츠맨, 집안 살림을 잘 꾸려 나가는 일에 열중하는 가정주부들…. 호오의 갈등과 선악의 판단과 손익계산을 넘어선 허심의 상태에서 저런 본성의 자발적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때의 마음은 악과 대결하면서 악을 씻어내기 위하여 싸우는 도덕적 결의와 다르다. 그 마음은 선악을 넘어서 있다. 그런 허심한 마음은 선인과 불선인을 다 나누기 이전의 마음이다. 노자가 불선인을 악인이라 부르지 않는 까닭을 잘 음미해 봐야 하겠다. 악은 선과 대결적 양상을 짓고 있으나, 불선인은 선인의 그림자, 선인의 배설물로 본다. 배설물을 인간은 더러워하나, 그것도 다른 생물에게 음식물이 된다. 약과 독은 다르다고 사람들은 단순히 생각하나, 독은 약과 다른 데에 있지 않고 약의 이면일 뿐이다. 그러면 저 무심한 무선무악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선악 이전의 마음이다. 유교의 경전인 ‘대학’에서 저 경지를 지선(至善)이라 읊었다. 지선은 절대적 선이라는 뜻이겠다. 불선의 악을 스스로 분비하는 의지적 선이 아니라, 선악을 넘어서 무선무악의 무심에서 인간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깨어난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겠다. 이런 상태를 불교에서 불성(佛性)이라 하고, 그리스도교에서 신성(神性)이라 부른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불성으로서 또는 신성으로서 지선이 숨어 있다. 호오와 선악과 시비와 애증으로 마음이 흥분되어 꺼둘리지 않으면, 이 지선이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이 불안하고 사회생활이 괴로운 까닭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기고 승리하는 소유자의 자리에 앉기를 탐욕하기 때문이다. 선을 소유하려고 탐욕하면, 그것도 나와 남을 괴롭힌다. 우리의 모든 교육과 정신문화는 마음의 고요를 되찾아 지선이 하고싶은 것을 원대로 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겠다. 마음의 고요는 그냥 마음이 잠자듯이 멍청한 상태가 아니라, 어떤 일에 마음이 열심히 몰입했을 때에 생긴다. 그 때에 지선이 우리를 부처로, 하느님의 아이들로 만든다. 그 지선만이 우리를 복락케 하고 우리를 개벽시킬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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