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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6)알려지지 않은 바다 지킴이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6)알려지지 않은 바다 지킴이들

    우리 바다를 지킨 사람들을 꼽아보라면 대충 장보고와 이순신이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위인전 반열에 있는 그 분들보다 ‘서열’은 낮을지 몰라도 또 다른 인물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다. 그 중 세인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인물 3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규원과 김려, 박제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사실 독도를 확실하게 우리의 영토로 만든 이는 이규원이다. 김려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한국 최초의 본격 어보를 펴냈다. 박제가는 무역입국 시대에 외롭게 해외 통상론을 주창한 드문 인물. 그런데 전문가들 말고는 이들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영웅사관 탓이다. 이규원은 누구일까. 우선 ‘울릉도 검찰사’란 경력이 눈에 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 지킴이로 안용복은 기억해도 이규원은 잘 모른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재주와 지혜가 있으며, 청렴 결백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당하관으로 일곱 고을의 부사를 지냈지만 관직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쌀을 꾸어 먹었다.”고 적었으며, 덧붙여 “성품이 무인답게 담솔하여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전후 수십 곳의 목민관으로서 가는 곳마다 휼륭한 치적을 남겼다.”고 이규원을 평했다. 그가 벼슬 산 곳을 살펴보면 울릉도 제주도 함흥 단천 풍천 진도 통진 등 바닷가 고을이 유난히 많다. 바다 사정을 잘 알았음이 분명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의 울릉도 침탈이 극성을 부리자 통리기무아문에서는 즉각 울릉도를 더 이상 빈 땅으로 버려두지 말고 개척해야 한다며, 이규원을 검찰사로 현지에 파견해 상세히 조사부터 시키자는 결정을 내린다. 그는 이 때 국왕으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받는다. 드러난 지시 사항은 울릉도에 잠입한 일본인의 동태를 파악하고 울릉도 개척을 위한 현지 조사였지만 그 외에도 중요한 사항이 있었다. 고종은 울릉도에 인접한 섬, 즉 독도에 대한 소상한 조사와 정보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이규원 검찰사의 검찰 목적은 단순히 일본인의 월경과 을릉도 개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도의 소재 및 개척 가능성에도 초점이 맞취져 있었다. 검찰사 일행이 울릉도에 도착한 것은 1882년 4월 30일이었고, 도착 지점은 소황토구미였다. 실제로 소황토구미, 현재의 울릉군 이곡면 학포에 가면 ‘울릉도’라 쓴 암각문이 남아있으니 이 때 검찰사 일행이 남긴 직명이 선명하다. 이 각석문은 근세 울릉도 개척사를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다. 이규원 일행은 이튿날부터 탐사에 들어가 5월 8일까지 육로로 섬의 구석구석을 답사했으며,9일과 10일은 선편으로 섬을 일주하면서 조사작업을 했다. 그는 국왕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성인봉 정상까지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방문했을 때는 독도를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려워 결국 독도 탐사는 실패하고 만다. 이규원의 감찰 결과, 울릉도는 사람이 살기 적합하며,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가 직접 확인한 사람들은 크게 조선인과 왜인으로 나뉘는데, 이 중 전라도인 103명, 경상도인 26명, 경기도인 1명, 거주지 미상 40∼50여명 등 총 172∼182명의 조선인을 현지에서 직접 만나거나 구두로 확인했다. 울릉도 장기 거주자는 대구 출신의 박기수와 함양 출신의 김석유였으며, 나머지는 대개 단기간 거주하면서 미역이나 연죽을 채취하거나 선박 건조 등에 종사했다. 특이한 것은 전라도 흥양의 섬에서 미역 채취와 배 건조를 위해 울릉도 출입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인은 78명이 들어와 마치 자신들의 영토나 되는 양 활개를 치고 다녔다. 조선 정부는 이듬해인 1883년 4월부터 백성들을 이주시켜 이곳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해금정책으로 주민의 거주를 불허한지 무려 450여년 만의 일이다. 개척은 급속하게 진전된다. 드디어 광무 4년(1990)10월 27일 관보에 실린 칙령 제41호 제2조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석도가 바로 독도이다. 석도, 즉 독도가 울릉군의 부속 도서로 편입된 배경에는 울릉도 시찰위원 우용정의 건의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보고가 결정적이었다. 이규원은 명을 받은 공인으로서 공무에 충실했다. 그가 공무를 게을리하지 않아 조선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만약 얼렁뚱땅 조사하고 보고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다. 잘라 말하자면, 국록을 받는 공무원들이 일을 적당히 할 경우 민족의 화근을 키우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독도 영유권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규원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은 오늘날 점차 심각해 가는 독도 문제에서 우리 국가 공무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깨닫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담정 김려는 누구인가? 그는 뛰어난 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잘 못 만난 탓인지, 아니면 너무 일찍 태어난 탓인지 일생을 귀양살이로 불우하게 지냈다. 그럼에도 그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과 담려한 필치는 후대 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순조 3년(1803년)에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라는 어류 관찰지를 펴낸다.1801년 천주교 박해로 2년 반 동안 진해에 유배되었을 당시, 어부인 동자를 데리고 매일 근해에 나가 각종 어류의 형태와 습성, 번신, 효용 등 생태를 세밀히 조사, 관찰하여 이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집필 경위를 이렇게 적고 있다. “진해에 귀양간 지 만 2년 동안 어개류(魚介類)를 벗삼아 지냈다. 주인집 어정(漁艇)을 얻어 타고 12세 가량 되는 동자 어부와 더불어 가까이는 5∼7리에서 멀리는 수십, 수백리까지 바다로 나가 어느 때는 돌아오지 못하고 배 안에서 잠을 자기까지 했다. 이렇게 매년 사시사철 바다로 나간 것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도 듣도 못한 물고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것을 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며, 그 중에는 고약하게 생긴 것도 있고 신기하게 생긴 것, 신령스럽게 생긴 것도 있고 놀랄 만한 것도 있어 한가한 날에 이를 묘사하고 그 형색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류의 이름들을 알지 못하여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뿐더러 그 지방의 방언조차 이해할 수 없어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를 다시 정리해 우해이어보로 이름 붙이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저술한 것은 박식함을 자랑코자 함이 아니라 은혜를 입어 다시 고향에 갈 수 있다면 농부, 나무꾼과 더불어 경험한 옛 풍물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는 책에서 어류 52종, 갑각류 7종, 조개류 4종, 소라류 6종을 다루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흑산도에서 주로 전라도를 중심으로 관찰했다면, 그는 경상도 남해안을 주로 서술하였다. 따라서 자산어보의 뛰어남은 충분히 인정하고도 남지만, 자산어보만 가지고 당시의 물고기 시정을 평하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어업의 강도가 높고 인구가 많았던 곳은 오히려 경상도였으니 그의 책을 유심히 읽을 일이다. 책에는 거제도에서 항아리에 담근 자리젓을 팔러 오는 어민, 부산의 왜관으로 상어 껍질을 팔아넘기는 어민, 이른바 죽방렴이라는 것의 원조로 불릴 만한 ‘항’이란 어법이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던 실태 등이 세세히 서술돼 있다. 하나의 물고기를 다루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우산잡곡이라 하여 시를 붙여 당대의 풍물을 노래하였다. 그가 주목한 고기들은 주로 이어(異魚), 즉 별난 물고기들이었다. 같은 조개라도 이종을 모두 찾아내 일일이 수록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종다원성’의 원칙을 확실하게 지킨 책인 셈이다. 자산어보와 우해이어보는 한국어보의 쌍벽을 이루는 책으로,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를 대표하여 양 지방을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공히 귀양을 간 인물들이다. 간난의 세월을 이기기 위해 어민과 벗하면서 어보를 썼다. 고산 윤선도가 고급 취향의 문화 속에서 어부사시사를 썼다면 이들은 민중 속에서, 민중의 문화를 기록한 것이다. 초정 박제가는 실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의 무역입국론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해금정책의 시대에 지극히 드물게 해외 통상을 주창한 인물이다. 그의 주장대로 바다를 통한 대외 개방의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더라면, 열강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아시아의 모든 국제정보가 모여들던 중국 연경을 네 번이나 다녀온 철저한 북학론자 박제가는 토정 이지함과 반계 유형원의 영향을 받아 해외통상론을 전개하였다.‘쌀이 창자라면 수레와 배는 혈맥’이라고 강조하면서 통역관을 양성하고 사족들의 무역 참여를 주장했다. 불행하게도 초정의 통상개국론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개국론의 횃불’이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상의 ‘기적’인 것이다.200여년 전에 이미 무역입국론을 주장한 초정 같은 인물이 있었고, 이를 열렬히 지지한 반계 유형원 같은 인물들이 있었건만 이러한 정책이 실제로 받아들여져 괴물처럼 다가오는 해외 열강의 압력에 서서히 대응하는 준비 자세는 ‘기적’처럼 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우리 바다를 지키려 한 인물들이 왜 더 없을까. 무엇보다 바다를 지켜온 무지랭이 어민들이 가장 소중하다 할 것이다. 이순신의 가장 든든한 원군도 지역 어민들이지 않았는가. 지역의 지리환경을 잘 알고 있어서 능히 이기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으며, 어선 짓던 갯가의 목수들을 즉각 함선 제조에 투입할 수 있었으니 무지랭이 민초야말로 이순신 승전의 숨은 주역인 셈이다. 근래 장보고를 비롯한 영웅사관의 도래를 우려스러운 눈길로 지켜본다. 넓은 바다는 외롭게 영웅 혼자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규원이나 박제가, 김려, 정약용과 정약전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 바로 우리가 기려야 할 바다지킴이들이 아니겠는가.
  • [프로야구2005] 박명환 7이닝 퍼펙트

    ‘불패의 투수’ 박명환(28·두산)이 시즌 9승째를 챙겨 다승 단독2위로 올라섰다. 두산은 1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선발 박명환의 7이닝 무실점 ‘퍼펙트 피칭’에 힘입어 한화를 4-2로 제치고, 선두 삼성을 0.5게임차로 바짝 추격했다. 박명환은 7회까지 90개를 던져 스트라이크존에 60개를 꽂아넣는 등 흠잡을데 없는 ‘명품 피칭’의 진수를 뽐냈다. 최고구속 150㎞의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한편,131∼138㎞의 슬라이더를 절묘하게 섞어 7이닝동안 단 3안타,1볼넷을 내주고 삼진을 9개나 솎아냈다. 특히 5∼7회는 삼자범퇴로 완벽하게 틀어막아 한화가 반격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8일 현대전 이후 10연승의 ‘불패행진’을 이어간 박명환은 올시즌 승률 1위(1.000)를 유지했고, 지난해 타이틀을 거머쥔 탈삼진 부문에서 2위(80개), 다승(9승) 및 방어율 2위(2.26) 등 선발투수 전부문에서 2위 내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박명환은 지난 91년 선동열(당시 해태)을 마지막으로 끊긴 다승-탈삼진-방어율 ‘투수 3관왕’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는 9회 마지막 공격에서 이범호가 ‘철벽마무리’ 정재훈에게 투런홈런을 빼앗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너무 늦었다. SK는 대구에서 ‘삼성킬러’ 고효준의 호투와 함께 홈런 3방으로 삼성마운드를 융단폭격,10-3으로 대승을 거뒀다.SK는 주말3연전을 2승1무로 마감해 4위 현대에 1경기차로 다가선 반면, 삼성은 1승1무3패로 최악의 한 주를 보내면서 1위 수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시즌 삼성과 2경기에서 12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친 고효준은 이날도 6회 1사까지 2실점으로 틀어막아 올시즌 자신의 2승을 모두 삼성을 상대로 챙기는 천적의 면모를 과시했다. 사직에선 LG가 연장11회 박용택의 결승홈런에 힘입어 7-6,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박용택은 5-6으로 뒤진 8회 동점홈런에 이어,11회에는 ‘롯데 수호신’ 노장진에게 결승 솔로아치를 뿜어내는 원맨쇼를 펼쳤다. 기아는 군산에서 4-4로 팽팽하던 8회 대타 이재주의 천금같은 2루타가 터져 현대를 5-4로 따돌렸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녹색공간] 바다가 육지라면/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포말이 부서지는 파도와 하얀 백사장이 그리워지는 계절, 문득 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가 떠오른다.“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에 가로막혀 뭍으로 가지 못하는 신세를 애달파한 노래다. 바다는 고립된 섬과 그리운 사람이 숨쉬고 있는 머나먼 땅 사이에 가로놓인 장애물로 묘사된다.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의 ‘바다의 향수’에서 바다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열악한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시인은 “날마다 푸른 바다 대신에 / 꾸겨진 구름을 바라보러 / 엘리베이터로 / 5층 꼭대기를 올라간다.” 대표작 ‘바다와 나비’에서도 바다는 “나비를 받아들이지도, 삼월에 꽃이 피지도 않는 무생명의 불모지”일 뿐이다. 바다는 현실과 피안의 세계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뜻하는 유력한 수단인 것이다.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라게 하는 비와 눈의 근원도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다. 하지만 바다는 원초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질서와 혼돈의 세계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에 얽힌 신화나 전설이 많은 것은 그 한없는 넓이와 깊이 때문이다. 사나운 폭풍우, 짙은 안개, 배를 삼키는 괴수… 역사 속에서 깊은 바다는 언제나 ‘악마의 도메인’이었다. 불과 300년 전만 해도 바다에서 수영하는 일은 서양에서조차 금기였다고 한다. 바다는 신비한 베일에 싸인 지하세계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해일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을 때면 고양이와 개, 때로는 집시의 자식들이 산 채로 제물로 바쳐졌다. 해난(海難)에 따른 희생을 막기 위해 바다에 미리 제물을 바치는 역설은 바다를 ‘위해의 근원’으로 보는 관념을 빼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정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바다를 지배하려는 욕망은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문화사의 관점에서 ‘바다가 육지라면’과 다르지 않다. 바다는 때로 ‘꽃피지 않는 무생명의 불모지’가 아니라,‘육상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탈출구’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다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계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천대받는 예는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는 행위다. 바다를 폐기물 투기장소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초기로 추정된다. 그 배경에는 바다가 인간의 생활 근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폐기물을 무한대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넓고 깊은 심연의 바다라지만 증가하는 폐기물 양과 독성을 버텨낼 재주는 없었다. 핵폐기물까지 내다버리게 되면서 물고기와 물개들이 떼죽음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 것이다. 결국 폐기물의 투기로부터 바다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런던협약이 1972년 제정되었고,1996년에는 의정서를 채택하여 투기허용물질의 종류를 대폭 줄였다. 이 의정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발효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동해안과 서해안에 버리는 폐기물의 종류는 양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분뇨, 축산폐수는 물론 하수처리찌꺼기와 폐수처리찌꺼기까지 내다버리고 있다. 처리시설에서 기껏 많은 돈을 들여 걸러낸 오염물질이 대부분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런던협약의 홈페이지에는 “당사국 가운데 오직 한국, 일본, 필리핀만이 하수처리오니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바다에 내다버리는 폐기물 양의 증가 속도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작년 말 약 975만t을 내다버려 1990년에 비해 10배 가량 증가했다. 특히 하수처리찌꺼기와 축산폐수는 같은 기간 45배에서 154배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육상에서의 직매립을 금지해 해양투기 증가에 한 몫을 담당한 환경부의 반발 때문이다. 폐기물을 바다에 내다버리는 것은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열망의 비틀린 단면에 불과하다. 바다가 육지라면 거대한 온풍기와 에어컨이 사라져 지구의 기후조절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투기장으로 변한 바다에서 휴식과 낭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위를 식히러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 [儒林 속 한자이야기] (76)英才(영재)

    儒林(유림) (362)에는 ‘英才’(빼어날 영/재주 재)가 나오는데, 이 말은 ‘뛰어난 재주’, 혹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英’자는 意符(의부)인 ‘艸’(풀 초)와 音符(음부)에 해당하는 ‘央’(가운데 앙)이 합쳐진 形聲字(형성자)이다.用例(용례)에는 ‘英明(영명:영민하고 총명함),英雄(영웅:재능과 담력이 탁월한 인물),育英(육영:영재를 가르쳐 기름. 교육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才’자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새싹이 땅 위로 돋아나는 모양’의 象形(상형)으로 ‘돋아나는 모양’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才’가 ‘在’(있을 재)의 본디 글자라는 점에 착안하여 ‘어떤 지점이나 범위를 나타내기 위한 標識(표지)’라는 설 등의 의견이 紛紛(분분)하다.‘多才多能(다재다능:재주와 능력이 여러 가지로 많음),才幹(재간:솜씨),才談(재담:재치있게 하는 재미있는 말),才勝德薄(재승덕박:재주가 있으나 덕이 적음)’ 등에 쓰인다. 흔히 知能(지능)이 優秀(우수)한 아이들을 英才(영재)라고 생각하지만 知能은 問題解決(문제해결) 및 認知的(인지적) 反應(반응) 정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지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에디슨은 일생 6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으며, 노벨상 授賞式(수상식)에도 시간이 없다고 參席(참석)하지 않았고,‘천재는 99%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였을 만큼 徹頭徹尾(철두철미)한 노력파였다.英才, 혹은 天才는 타고난 才能(재능), 적절한 環境(환경), 그리고 努力(노력)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다.孟子(맹자)는 人材育成(인재육성)을 위한 文化(문화) 傳授(전수) 사업에 종사하는 일을 일러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라고 일러 천하를 號令(호령)하는 왕노릇도 이에 미칠 수 없는 큰 즐거움이라고 하였다. 전통적 입장에서 본다면 학생이 스승을 찾아가서 배우는 것이지 선생님이 가르칠 학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문화를 전도(傳道)하고, 학생의 適性(적성)과 素質(소질)에 맞는 課業(과업)을 찾아주고(授業, 수업),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는(解惑, 해혹)사람이다. 배우기 위해 누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은 이미 나의 존재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世間(세간)에 ‘실패한 기업인’이라는 말이 나돈다. 불우한 幼年(유년) 時節(시절)을 克服(극복)하고 구멍가게 水準(수준)의 작은 店鋪(점포)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多國籍(다국적) 企業(기업)을 일구고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을 設立(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일평생 모은 財産(재산)을 모두 사회에 還元(환원)한 故(고) 柳一韓(유일한) 博士(박사)의 삶과 대비를 이룬다. 유 박사는 1895년 平壤(평양)에서 태어나 9살의 어린 몸으로 美國(미국)에 건너가 苦學(고학)으로 大學(대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기업을 일으켜 成功(성공)한다.“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主權(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信念(신념)을 갖고 있었던 그다. 그가 경영하던 기업은 政經(정경)癒着(유착)의 誘惑(유혹)을 거부한 대가로 稅務調査(세무조사)를 받았으나 오히려 모범적인 납세 사실이 밝혀져 産業勳章(산업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탈출소동 코끼리 속죄의 ‘재롱’

    탈출소동 코끼리 속죄의 ‘재롱’

    11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월드’ 사육장. 지난 4월20일 집단탈출 소동을 빚었던 미증유의 사건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까맣게 잊혀진 모습이었다. ●테마쇼 관람객 장사진 정문쪽 환경연못 옆 공연장 입구에서는 “코끼리와 함께 멋진 추억을 남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루 4∼5차례 펼쳐지는 테마쇼의 3회 공연이 다가오자 매표소엔 입장권을 사려는 손님들로 길게 장사진을 쳤다. 코끼리 등에 올라 100여m 길이의 공연장 바깥을 한바퀴씩 도는 트래킹 코스에는 아이들이 ‘V’자를 그리며 찰칵찰칵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빴다. 라오스에서 온 조련사들은 코끼리 목에 타고 발을 구르는 등의 신호로 속도를 조절하며 ‘안전운행’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트래킹을 마친 이들은 높이가 2m 넘는 하차장에서 아쉬운 듯 한번 더 소중한 추억을 앵글에 담기도 했다. 축구 경기장처럼 관중석(902석)을 갖춘 4각형 공연장에는 유모차 행렬이 길어지나 했더니 5시10분 코끼리 쇼가 막을 올렸다. 공연장 한쪽에 쳐진 빨간색 커튼을 헤집고 주인공인 코끼리 9마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코를 도넛 모양으로 말아올리는 인사로 상견례를 가진 뒤 무대 뒤로 사라졌다. ●물구나무 서기에 박수갈채 관객들이 관중석 앞을 지나는 코끼리에 당근을 먹이로 건네는가 하면 더러는 지폐를 팁으로 주자, 코끼리들은 코를 뻗어 낚아올린 돈을 등 뒤로 넘겨 주인인 조련사에게 바쳤다. 일곱살 먹은 막내 ‘탬’이 첫번째 무대를 장식했다. 국기 게양대에서 코를 빙빙 돌려 태극기를 게양하자 260여명의 관객들이 갈채를 보냈다. 아기 코끼리들이 물감을 묻힌 붓으로 꽃을 그리는 재주를 선보인 데 이어 훌라후프 돌리기와 물구나무 서기 등의 묘기를 부리는 모습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자 코끼리들은 앞발을 들어올리며 ‘만세’를 불러 화답했다. 풍선 터뜨리기, 코끼리 피라미드에 이어 지난번 탈출소동의 주범인 ‘뻥’이 출연하는 ‘누워 있는 사람 타넘기’ 순서에서는 관중석이 숨을 죽였다. 앞발과 코로 관중석에서 뽑힌 3명의 출연자를 톡톡 쳐가며 탐지한 끝에 무사히 인간장벽을 뛰어넘자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코끼리와 축구하기,‘코끼리와 빨리 달리기’ 등 관객이 함께하는 순서에서는 상품도 주어졌다.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깜짝 쇼’도 마련됐다. 농구 골 묘기에 가서는 갑자기 맏이 ‘탐’이 절뚝거리며 쓰러졌다. 쇼 진행자 이홍규(27)씨가 식은땀을 흘리며 왔가갔다 하더니 ‘뻥’이 나와 주사를 놓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쇼의 한 장면임을 관객들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쇼는 6시쯤 거북이의 인기곡 ‘빙고’에 맞춰 거구를 흔들어대는 댄스파티로 끝났다. ●난입 식당엔 오히려 손님 부쩍 늘어 공연장은 코끼리떼 대탈출 뒤 지난달 10일 재개장한 지 30여일을 맞았다. 그러나 사건 당시 코끼리들이 난입해 집기를 부쉈던 인근의 한 삼겹살 식당은 리모델링을 해 ‘코끼리가 들어온 집’이라는 간판을 달아 인기를 끄는 바람에 손님이 북적대는 등 때아닌 대박으로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몸무게 800㎏∼1.5t인 코끼리들은 주식인 옥수수 건초와 영양식인 ‘알팔파’ 등 한 마리가 하루 40∼50㎏씩 먹어치우며 건강하게 지낸다.‘코끼리 월드’ 문병진 실장은 “코끼리 때문에 갈비뼈를 다쳤던 시민은 완쾌됐지만 정밀검사를 한번 더 해줄 계획”이라면서 “그러나 코끼리는 코를 이용해 1t 이상의 물건을 들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코를 휘둘렀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등 뒤에 코끼리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피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02)3437-5959.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5)다네가시마에서 임진왜란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5)다네가시마에서 임진왜란까지

    1534년 8월25일,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괴선박이 바람에 떠밀리듯 일본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에서도 한참 떨어진 다네가시마(種字島)의 가도쿠라곶(門倉串)으로 다가왔다. 다네가시마는 일본 규슈의 최남단에 딸린 작은 섬. 난파선이 분명했다. 이 배는 중국인 오봉(五峯)의 배였다. 오봉은 왜구 왕직(王直)을 말한다. 이 ‘중국 왜구’의 배에서 남만인(南蠻人)이 무려 110여명이나 내렸다. 이들은 인근의 유서깊은 시온지(慈遠寺)로 안내받아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시온지는 예부터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나 학승, 상인들이 머무는 숙방(宿房)이 있던 절. 배를 수리하고 다시 출항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파선 주인 오봉은 중국인 왜구 왕직 섬의 도주가 긴 쇠막대기를 보고서 “무슨 물건이냐.”고 묻자 남만국 사내는 그 물건을 곧추세웠다. 남만인은 막대기에 검은 가루와 둥근 구슬을 넣어 방아쇠를 당겼다. 조준한 조개가 단박에 산산조각이 났다.‘꽝’소리가 나면서 도주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 놀라 자빠졌다. 직감적으로 무기임을 간파한 도주는 직접 실험을 하고 싶어 했다. 도주 자신이 막대기에 검은 화약가루와 쇠구슬을 넣고는 방아쇠를 당겨 보았다. 총이었다. 위력이 대단했다. 이런 무기는 듣기도 처음이요, 보기도 처음이었다. 도주에게는 그들이 남만인인지, 중국인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드디어 총이란 물건이 일본에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비싼 값을 치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억엔(10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2정을 사들였다. 도주는 즉시 명을 내린다.“즉각,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와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 내라.”고. 이 이야기는 총이 일본에 전래된 순간을 자료에 근거해 재구성한 것이다. 일본의 총이 포르투갈에서 모두 수입된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앞의 2정을 모델로 똑같은 복제품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낸다. 총을 만들라는 도주의 명령을 무모하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다네가시마 모래에서는 사철이 생산되고 있었고, 덩달아 대장간 수공업이 대단히 발달해 있었다. 지금도 이 섬의 대장간에서 만드는 가위는 일본 최고의 명품으로 친다. ●조총 기술 배우려 대장장이 딸 국제결혼시켜 도키타카의 명을 받은 철장(鐵匠) 야이타 긴베이(八板金兵衛)는 밤잠도 못 자고 움직였다. 형태는 대충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는 어떤 물건이라도 한번 보면 그대로 만들어내는 감탄할 만한 재주를 지닌 유능한 대장장이였지만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총열 안쪽의 복잡한 나사홈을 깎는 일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절에 머물고 있는 남만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대가를 요구했다. 기술을 넘겨주는 대신 대장장이의 딸 와카사를 부인으로 넘겨달라고 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나 딸이 이 소식을 듣고는 망설이던 끝에 스스로 결단했다.16세의 딸이 아버지를 위하여 이 낯선 이국인과의 혼인을 자청한 것이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총이 완성된다. 이로써 일본의 ‘국제결혼 제1호’와 ‘총 제1호’가 동시에 탄생했다. 바야흐로 일본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한다. 총을 들고 나타난 남만인들은 아시아에 진출해 있던 포르투갈인과 에스파냐인이었으며, 이후에 들어온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은 ‘고모(洪毛)’라고 불렸다. 남만인들이 가도쿠라곶에 당도한 1534년보다 24년이나 앞선 1510년, 포르투갈 함대가 인도의 고아를 점령해 동방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한다.1511년에는 말레이시아반도 남단의 요충지 말라카해협, 그리고 1517년에는 중국 남부의 마카오까지 진출한다. 고아와 말라카해협을 점령함으로써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무역권을 장악한 포르투칼은 이내 중국 남부를 오가면서 아시아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수집해 들였다. 이들이 규슈 남단에 출현하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16세기 초, 명나라는 해금정책을 쓰긴 했지만 남부 광저우(廣州)는 이미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30여개 국과 무역을 할 정도로 해상교역이 번성했다. 물론 이러한 교역은 명나라로부터 통제받는 국가주도형 무역이었다. 해금책은 서구로부터 들어오는 해양 침략자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개인들이 비밀리에 행하는 사상(私商) 무역까지 금단하기란 쉽지 않았다. 해금이 강한 만큼 장사 이윤도 보장된다는 논리인 바, 돈벌이 욕구를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명나라 정부가 왕직 회유 뒤 처형 그런데 정작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만인과 같이 타고 온 중국인들의 정체다. 왜 남만인들은 중국인 오봉의 배를 타고 왔을까. 오봉은 당시 고토(五島) 열도에 근거지를 둔 왜구의 대두목 왕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도대체 왕직은 누구일까.2005년 2월5일 아사히신문은 재미있는 기사를 실었다.16세기 명나라 정부에 의해 처형된 중국인 출신 왜구 두목 왕직의 묘에 세워진 기념비를 훼손한 사건이 그것이다. 안후이(安徵)성 황산(黃山)시에 소재한 왕직의 묘비 가운데 인명 등 일부 내용이 2005년 1월31일 밤 난징(南京)의 한 대학 교수와 그의 친구에 의해 지워진다. 그는 “민족 배신자의 묘를 일본인이 정비하고 비석을 세운 것은 중국인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는 훼손 동기를 언론에 밝혔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논쟁이 불붙었다.‘후련하다.’는 찬성론부터,‘왕직의 해상 무역이 명나라 자본주의의 싹을 틔운 측면을 무시한 편협한 민족주의’라는 반대론이 치열하게 맞섰다. 왕직은 일본 나가사키현 후쿠에(福江)항을 근거로 생사, 유황 등을 밀무역하면서 왜구를 이끌고 포르투갈과도 결탁하여 약탈도 하고 무역에 종사하기도 했다. 명나라 정부는 “투항하면 공식 무역 허가를 내주겠다.”고 회유하여 그를 귀국시킨 뒤에 끝내 약속을 어기고 그를 처형한다. 말하자면 그는 ‘중국인 왜구’였던 셈이다. 그동안 왜구는 일본인들만의 조직이란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사실이다. ●다네가시마 사람들 총을 종교처럼 신성시 철포 전래의 흔적은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총의 위력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다네가시마에서는 ‘철포 마쯔리’를 열어 매년 6월말에 포르투갈 배의 도착을 기린다. 지구상에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무래도 이 ‘철포 마쯔리’는 계속될 것 같다. 다네가시마 사람들에게 총은 무기 이전에 일종의 ‘종교’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총을 ‘종교’로 믿는 사람들, 그렇게 불러도 그들은 허락할 것 같다. 한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이 머나먼 다네가시마의 총 이야기를 왜 하고 있을까. 이 총이 한반도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처음 시작된 서양 총이 일본에 퍼지면서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힘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불나방 행위를 일컫는 ‘무데뽀’란 일본말이 한국인에게까지 전달되어 있다. 그 뜻인 즉 무철포(無鐵砲)인 바,‘총도 없이 덤비는 놈’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어느 결에 전쟁은 칼·활·창으로만 하던 시절에서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리는 조총(鳥銃)’이 없이는 그야말로 ‘무데뽀’가 될 수밖에 없는 전쟁으로 바뀌고 있었다. ●철포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침략 철포는 즉각 실전에 활용된다. 전국의 봉건 제후들은 경쟁적으로 철포를 입수하기에 혈안이 된다. 철포 전래 10년도 채 안되어 일본 열도에 확산된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천하통일의 판세를 가르는 전투에서 철포대를 들이밀어 승리를 거둔다. 철포는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에까지 이어진다. 생고쿠(戰國)시절, 피비린내 나는 전투경험을 쌓은 일본군은 조총부대를 앞장세워 파죽지세로 조선을 치고 올라갔다. 당시 왜군은 조총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유럽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던 창과 활을 병용한 적절한 전술을 구사하였다. 실제로 임란 초기에 이러한 화기 전술에 연패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왜군 전원이 조총을 소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총은 대단히 비싼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총이라는 신무기를 통하여 기대 이상의 월등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평양까지 짓쳐 올라가 선조는 의주까지 피란을 가야 했다. 조총의 위력은 대단하여 한마디로 조선군은 ‘총에 녹았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으로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왜병의 보급로를 차단, 끝내는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 내내 조총은 조선군을 고통스럽게 했다. 총을 들고 한반도를 침략한 왜병의 침략성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의 평화를 깨는 중대한 ‘전쟁범죄’였다. 그러나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단 두정의 총을 받아들여 이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최선을 다하여 복제하고 대량 생산에 돌입하는 집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바다를 통한 문물교류를 십분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생활에 응용함으로써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다. 수십명이 표류한 하멜의 경우에서 보여지듯, 그들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않고, 얻어내려고도 하지 않았던 우리의 태도와는 극명하게 비교되지 않는가. 바다를 통한 문명교류의 파장을 체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의 페이지를 새롭게 써나간 해양 부국의 사례에서 우리는 감고계훈의 역사를 다시 배운다.
  • 신명난 우리가락에 빠~져봅시다

    신명난 우리가락에 빠~져봅시다

    “얼∼쑤,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한 판 걸쭈욱하게 놀아보세.” ●청소년들 인사동서 ‘잡색굿’ 축제 이끌어 지난 4일 오후 서울 도심의 빌딩숲 사이로 농악과 함께 구성진 입담이 울려퍼졌다. 장소는 인사동 입구의 남인사마당. 어느새 1000여명의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청소년들. 각설이와 광대, 엿장수 등 다양한 복장을 한 이들은 서울시 청소년 우리소리 축제인 ‘청소년 잡색굿 2005’를 이끌었다. ‘어릿광대’들이 좌중과 웃고 떠드는 사이에 4시간의 공연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이번 행사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하기 위한 ‘작은 학교’인 작은소리학교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우리 소리 축제다. 소멸되거나 소외되고 있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직접 계승·복원하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쟁쟁한 국악인들 출연 솜씨 뽐내 한성디지털대학교 연극영화과 이태훈 교수, 서해안풍어제 이수자 이해경씨, 영광굿 이수자 민주옥씨 등 쟁쟁한 기성 국악인들이 자라나는 새싹들과 함께했다. 잡색은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농악을 치는 이는 앞치배, 잡색들은 뒷치배라 부른다. 잡색에는 무등을 타고 나와 춤을 추는 무동과 할미, 양반, 조리중, 대포수 등이 중심이 된다. 탈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잡색은 구경꾼들에게 장난을 걸거나 농담을 하면서 논다. 이날 참가한 팀은 10개. 비경쟁으로 이뤄진 이날 행사에는 ▲각설이타령, 엿장수, 약장수, 뱀장수 등 재담류 ▲비나리, 무속굿소리, 염불소리, 상여소리 등 통과의례 소리류 ▲병신춤, 문둥춤, 살판, 버나, 줄타기 등 개인기 재주류 ▲잡색이 풍부한 풍물굿패 ▲풍물굿에서의 잡색놀이 등이 펼쳐졌다. ●약장수·각설이·엿장수 차림 4시간 공연 이번 행사의 ‘주연’은 재담꾼. 약장수, 뱀장수, 엿장수, 각설이 등 다양한 배역을 맡은 청소년들은 한 달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시민들 앞에서 맘껏 뽐냈다. 남사당놀이 중 접시 돌리기인 버나, 땅재주인 살판 등 다양한 묘기도 선보였다. 작은소리학교 왕서리 사무국장은 “재담을 배우는 청소년들이 드물어 전통문화를 공부하면서 끼 있는 아이들을 추천받아 이번 행사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남영광굿 서울전수단 학생들이 탈을 쓴 채 재현한 ‘도둑제비굿’, 한성디지털대학 학생들이 뺑덕어멈이 나오는 마당극을 현대적으로 각색된 ‘퓨전뺑파극’, 무당이 하는 굿인 ‘무굿소리’ 등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작은소리학교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작은소리학교는 은평구 진관외동 사무실에서 매달 풍물 등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부터는 ‘청소년 광대학교 2005’도 열고 있다.60여명의 청소년들은 8월 말까지 10회에 걸쳐 국악 명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기량을 전수받게 된다. ●9월엔 서울광장서 ‘마을굿’ 펼쳐 오는 9월에는 이들의 우리 가락이 서울광장에도 울려퍼진다. 제7회 서울시 청소년 전통예술한마당인 ‘청소년 마을굿 2005’가 서울시 주최로 열린다. 왕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이 입시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만 잡색 등 우리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풀어냄으로써 현대사회를 기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자전거 도둑

    학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 나오는 학교들을 보면 동아리실에 편안한 등받이 소파까지 갖추고 있다. 저런 학교가 어디 있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의심은 잠시뿐이고 금방 드라마에 빠져든다. 만약 이 드라마를 외국인이 본다면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이 꽤 좋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는 드라마가 현실을 배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못생긴 배우도 있겠지만 배우들은 대체로 보통 이상의 미모를 지녔다. 영화나 드라마뿐이 아니다. 고전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 흉한 몰골의 인물이 등장하는 고전소설 ‘박씨전’이 예외이긴 하지만 박씨 역시 흉한 얼굴을 벗고 뛰어난 미모로 탈바꿈하면서 청나라 군사들을 물리치는 괴력을 발휘한다. 고전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재주 있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재자가인(才子佳人)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주위를 둘러보면 평범한 사람들 일색이다. 이럴 때도 예술은 현실을 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타잔은 폭포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고, 람보는 절벽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존재는 중력의 법칙에 순종한다. 주인공만이 현실을 배반한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일찍이 예술은 사기라고 말한 바 있다. 현실을 배반하는 예술, 마치 예술 속의 현실이 실제의 현실인 양 착각하게 하는 예술 또한 사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리얼리즘은 예술에서의 이런 사기를 걷어치울 것을 요구한다. 예술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주의의 예술관이다. 재자가인의 멋진 주인공보다는 누추하더라도 현실 속의 인물이 등장할 것을 사실주의 예술은 요구한다. 바로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소설이 멀리는 염상섭의 ‘삼대’이고, 가깝게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신사실주의)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어느날 실업자 안토니오 리치는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게 된다. 일을 위해 돈을 빌려 자전거를 구하고, 아들 브루노는 이런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이내 자전거를 잃어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도둑으로 보이는 젊은이의 집을 찾아내지만 절망한다. 그 젊은이는 자기만큼 가난한 데다 간질 환자이기 때문이다. 또 그 자전거가 자신의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자전거가 생계 수단인 안토니오 리치는 결국 자전거를 훔치게 된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자신의 예술에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 예술적인 과장이나 꾸밈이 없는 당대의 현실, 바로 이러한 사실성이었다. 팬터지 영화도 좋고, 어드벤처, 로맨스 영화도 좋지만 가끔은 영화가 현실을 정직하게 담아냈으면 한다. 부정적 현실을 뛰어넘는 힘은 부정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 람베르토 마조라니·엔초 스타졸라 주연,1948년작.
  • [프로야구 2005] 기아 꼴찌탈출 역전쇼

    김경언(기아)이 기적 같은 연장 끝내기 2점포를 뿜어냈고,LG는 또다시 역전패의 악몽에 울었다. 삼성은 5월 한달간 월간 최다승 타이를 이뤘다. 기아는 31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에서 연장 11회말 김경언의 끝내기 2점포로 LG에 11-9의 극적인 역전승을 연출했다. 기아는 SK를 끌어내리고 단독 7위에 올랐다. 지난 26일 잠실 롯데전에서 8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뼈아프게 역전패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LG는 이날 연장 3점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역전패, 눈물을 흘렸다. 기아는 3-6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8회 이재주의 2점포와 김종국의 희생플라이로 6-6 동점을 이뤄 연장으로 끌고 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아의 기쁨도 잠시뿐. 연장 10회 무사 1·2루에서 루 클리어에게 통한의 3점포를 얻어맞아 패색이 역력했다.‘혹시나’ 하던 광주 팬들도 하나 둘씩 구장을 떠났다. 그러나 공수가 교대된 10회말 2사 1·2루에서 대졸 루키 송산이 그림 같은 동점 3점포를 쏘아올려 LG를 아연실색케 했다.9-9이던 연장 11회 기아는 홍세완의 안타로 1사1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타석에 김경언이 들어섰다. 상대는 지난 26일 롯데전에서 최준석에게 역전포를 얻어맞았던 마무리 신윤호. 풀카운트의 실랑이를 벌이던 김경언은 7구째 공을 힘껏 받아쳤고 공은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 4시간26분간의 혈전을 기적의 역전극으로 끝냈다. 삼성은 대구에서 병살타 3개를 기록하고도 롯데를 5-2로 꺾고 3연승을 달렸다. 롯데는 대구구장 8연패. 선두 삼성은 5월 한달간 19승6패를 기록, 통산 6번째 월간 최다승 타이를 일궈냈다. 삼성 선발 전병호는 5이닝을 3안타 2실점(1자책)으로 막아 1996년 9월3일 대구경기부터 롯데전 11연승을 이어갔다. 권오준은 14세이브째로 구원 선두 노장진(롯데)에 1포인트차. 현대는 잠실에서 두산을 7-4로 누르고 3위 롯데에 3게임차로 다가섰고, 한화는 문학에서 김해님의 역투와 이도형의 3점포로 SK를 4-3으로 따돌렸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국내생산품과 같은 품질 유지가 ‘관건’

    국내생산품과 같은 품질 유지가 ‘관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최근 성공적으로 가동시킨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은 “더이상 부르몽 악몽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여러 조건이 15년 전 ‘부르몽’ 때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경계를 늦추기에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대차는 1988년 캐나다 퀘벡주 부르몽에 연산 10만대 규모의 현지 생산공장을 지었다가 5년 만에 철수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바이 아메리카 vs 품질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오시카 다카시 도쿄대 교수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의 성패는 5년안에 판가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성공 가능성이 반반이라고도 했다. 최대 관건은 품질이다. 자동차 전문 조사기관인 J.D 파워의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선전을 거듭하자 경쟁업체들은 “다른 메이커와 달리 (미국 현지생산이 없는)현대는 본국에서 만든 차로 품질평가를 받았다.”면서 “미국에서 만든 차로도 이만큼의 성적을 거둘지는 의문”이라고 했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손놀림 차이는 현대차도 고민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앨라배마 공장은 핵심인력을 제외하고는 100% 현지 주민을 채용하다 보니 숙련도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현지에서 만난 근로자들의 상당수는 ‘섬유’ ‘무역’ 등 자동차와 무관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품질이 받쳐주지 않으면 미국산 쏘나타의 최대 강점인 ‘바이 아메리카’(미국에서 미국인의 손으로 만든 제품을 사자는 정서) 공략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앨라배마 공장의 생산기술 담당 윤호원 이사대우는 “일단 입사가 확정되면 8∼10주간의 집중훈련을 거치는 데다 지금 있는 직원들은 공장 문을 열기 2년 전부터 훈련받은 기술자들이기 때문에 미국산 쏘나타의 품질이 한국산에 못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다이 정신’을 심어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게 ‘현다이 정신’이다. 이같은 기업문화를 앨라배마 공장에 얼마나 빨리 깊게 전파시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미국 켄터키공장 사장을 지냈던 도요타의 조 후지오 사장이 훗날 “문화와 가치관, 손재주가 다른 미국인 근로자에게 ‘도요타 웨이’(도요타의 기업문화)를 심기는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을 만큼 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UAW 입김을 차단하라 앨라배마 공장은 노조가 없다. 앨라배마주가 무노조 공장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고, 현지 근로자들도 “노조를 원치 않는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당분간은 이 기류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성으로 유명한 미국자동차노조(UAW)의 입김을 차단하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 GM(제너럴 모터스)의 위기 뒤에는 UAW를 의식한 과다한 비용구조가 자리한다. 현대차도 무노조 유지를 위해 임금과 복지비 등을 비교적 후하게 책정하는 등 상대적으로 고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현대차측은 “높은 자동화율로 비용의 상당부분을 상쇄시켰다.”면서 “UAW도 전통적으로 북부에서 강해 남부권인 앨라배마주는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고 반박했다. 앨라배마 공장 인근의 벤츠나 혼다차 공장에도 노조가 없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생산성과 범용성 끌어올려야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밥 코스마이 사장은 일본 업체가 라이벌이라고 공언했지만, 현지 생산에서부터 혼다(82년) 닛산(83년) 도요타(86년) 미쓰비시(88년) 등에 비해 평균 20년 뒤졌다. 현대차측은 앨라배마 공장의 높은 생산성을 들어 추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앨라배마 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UPH)는 73대.1개 라인으로 따지면 혼다(35대)보다 높다. 그러나 아직은 동작이 재지 못해 실제 UPH는 30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범용성 보완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맨해튼 대리점에서 만난 미국인 고객 베네트 셰이퍼(44·퀸즈 거주)는 “현대차는 다 좋은데 원하는 색상의 차를 받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면서 “범용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흠”이라고 아쉬워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애널리스트는 “차값 인상으로 혼다 어코드·도요타 캠리 등 경쟁차종과의 가격차가 10% 안팎으로 좁혀져 공장 가동률만 90%를 유지한다면 높은 영업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안경현 만루포 100홈런 자축

    안경현(두산)이 자신의 100호 홈런을 통렬한 만루포로 장식했다. 안경현은 25일 광주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기아와의 경기에서 4-4로 팽팽히 맞선 7회 2사 만루에서 상대 3번째 투수 윤석민의 초구 슬라이더를 통타, 왼쪽 담장을 넘는 짜릿한 만루포를 쏘아올렸다. 이로써 안경현은 시즌 3호 홈런을 화려한 만루포로 그려내며 통산 100호 홈런(역대 41번째)을 작성했다. 특히 안경현은 올 자신의 홈런 3개 가운데 2개를 만루포로 뿜어내는 등 통산 8개의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만루포는 심정수가 11개로 가장 많고, 다음이 김기태(9개)이며 안경현 이승엽(일본 롯데) 신동주(삼성)는 공동 3위. 두산은 안경현의 만루포 등 홈런 3방을 앞세워 기아를 8-6으로 따돌리고 전날 패배를 설욕했다.6회말 만루 찬스를 아쉽게 놓친 기아는 7회초 5점을 내주고,7회말 이재주의 2점포로 곧바로 추격했으나 역전에는 힘이 모자랐다. LG는 잠실에서 최원호의 역투와 장단 16안타를 폭죽처럼 터뜨려 롯데를 9-3으로 물리치고 단독 4위로 올라섰다. 최원호는 6이닝 동안 삼진 3개를 낚으며 4안타 3볼넷 3실점(2자책)으로 버텨 5승 고지에 올라섰다.LG 박용택은 4타수 2안타로 18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롯데는 선발 박지철의 초반 난조로 일찌감치 승기를 내줬다. 삼성은 문학에서 무서운 뒷심으로 SK를 3-0으로 꺾고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삼성은 0-0의 균형이 좀처럼 깨지지 않던 9회초 1사 만루에서 박종호의 천금같은 밀어내기 볼넷으로 선취점을 올린 뒤 강동우의 중전 안타와 조동찬의 내야 안타로 2점을 보태 승부를 갈랐다.SK는 고비마다 적시타 불발의 집중력 부재로 3연패에 빠졌다. 한화는 대전에서 김해님의 역투(6이닝 무실점)와 신경현의 2점포 등으로 현대에 6-0으로 낙승,5위로 도약했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프로야구 2005] 김명제, 3만 부산갈매기 잠재우다

    올시즌 프로야구 흥행의 키를 쥐고 있는 ‘돌풍의 팀’ 두산-롯데의 격돌에서 ‘슈퍼루키’ 김명제가 최고의 피칭을 뽐낸 두산이 웃었다. 삼성은 시즌 첫 선발타자 전원타점·득점(통산 4번째)의 대기록을 작성하며 현대를 제치고 선두를 고수했다. 두산은 15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2005프로야구 원정경기에서 고졸신인 김명제의 혼신의 역투에 힘입어 롯데를 8-2로 꺾었다. 이로써 두산은 초반 최대 난관으로 여겨졌던 삼성과의 주중 3연전에 이은 ‘경부선 원정시리즈’를 3승3패로 선방, 선두권 돌풍이 일회성이 아님을 입증했다. 선발 김명제는 148㎞의 묵직한 직구와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 7이닝 동안 5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며 3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시즌 3승째를 거뒀다. 특히 볼넷을 단 1개도 내주지 않을 만큼 완벽한 제구력을 뽐내 올들어 4번째로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부산갈매기’들의 함성을 잠재워 버렸다. 두산 타선이 먼저 폭발했다.2회초 안경현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간 뒤 2루를 훔쳐 최근 제구력 난조를 겪고 있는 롯데 염종석을 흔들었다. 홍성흔이 내야땅볼로 아웃되면서 그대로 끝나는 듯했지만, 김창희가 몸에 맞는 볼로 불씨를 살린 뒤 연속3안타로 4점을 뽑아내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기아는 잠실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스리런홈런 두 방을 포함,7타점을 몰아친 손지환과 리오스의 호투로 6연승을 달리던 LG를 9-2로 눌렀다. 기아는 3회 1,3루에서 장성호의 타구를 현대 수비진이 더듬는 사이 ‘어부지리’ 선취점을 올렸다. 계속되는 2사 1,2루에서 ‘히어로’ 손지환이 진필중의 3구를 끌어당겨 스리런 홈런을 뿜어냈다. 절정의 타격감을 뽐내던 손지환에게 또 한번 찬스가 왔다.7회 마해영과 이재주의 안타로 만든 1사 2,3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손지환은 바뀐 투수 류택현의 2구째를 놓치지 않았고, 공은 좌측펜스를 훌쩍 넘어가는 120m짜리 쐐기 3점포가 됐다. 삼성은 수원구장에서 현대 투수 5명을 상대로 장단 15안타와 6개의 사사구를 숨쉴틈 없이 몰아쳐 13-5로 대승을 거뒀다. 삼성 선발 바르가스(6승2패)는 5이닝 5실점을 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손민한과 함께 다승 공동1위에 올라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천재화가 김홍도의 그림일생 한눈에

    “김홍도는 얼굴을 그려도 우리의 얼굴을, 산수(山水)를 그려도 우리의 산수를 그렸다. 심지어는 노자, 장자도 우리 얼굴로 재탄생됐고, 관세음보살도 우리 어머니가 승화된 모습이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최완수 연구실장이 바라본 김홍도의 예술 세계다. 그는 단원 김홍도의 서거 200주기를 맞아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단원대전’의 기획자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중국 문화권에 속해 있던 조선시대 단원의 그림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작품으로 봤다. 그렇게 그는 우리의 ‘자존심’을 그림으로 살려낸 인물이다. 단원은 우리 고유 화풍을 그리기 시작한 겸재 정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화원에서 활동한 궁중화가였던 그는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행운아다. 어린 나이에 궁중에 들어간 단원은 그의 나이 11세때 영조 세손이던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인연 덕분인지 정조에게 일본의 지도를 그려 바치기도 했고, 정조의 명으로 수원 용주사 ‘삼세여래불탱화’를 그렸다.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용주사에서 펴낸 ‘부모은중경’의 삽화를 그린 이도 바로 단원이다. 학예에 뛰어났던 정조 자신이 그림을 직접 그릴 정도로 그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재주 많은 단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단원은 다른 이들과 달리 산수, 인물, 사군자, 화조 등 모든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 하지만 그는 ‘제도권’ 화가로서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임금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자연 절제된 선과 구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평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은 당대 비슷한 나이의 신윤복의 화풍과 곧잘 비교된다. 권력과 멀리 있던 신윤복은 단원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그림을 그렸다. 한량과 기생의 애정 등을 묘사한 풍속도에서는 ‘모범생’ 단원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아 냈다.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단원대전’에서는 이같은 단원의 일생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작품 120여점이 망라돼 있다. 특히 정조로부터 특별 대접을 받은 탓에 자신의 신분을 사대부로 착각한 단원의 정신 세계가 드러난 ‘소림야수’‘한산설정’등은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스산한 산옆 눈 덮인 정자를 그린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양반과 중인사이를 오간 단원 자신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02)762-0442.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최대사거리 4㎞… 사람잡는 사제총

    최대 사거리 4㎞, 유효 사거리 860m,100m 앞이라면 사람의 눈, 코, 입까지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저격용 총기를 만든 금형업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진품과 흡사할 만큼 성능이 정밀하고, 국내 기술로는 엄두를 못낼 첨단장비마저 장착돼 있어 경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불법 총포·도검·화약류 단속을 벌여 붙잡아들인 24명 중 구속된 조모(55)씨. 조씨가 모델로 삼은 총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는 오스트리아 ‘스테이어 맨리처’사의 7.62㎜구경이다. 한국에서는 경찰특공대와 군에서만 대 테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씨는 발사음을 없애주는 소음기, 물체를 1000m까지 포착할 수 있는 조준경과 지지대까지 정교하게 제작했다. 정품은 5㎏이지만 실제 총을 사용할 때 반동을 줄이기 위해 3㎏ 더 무겁게 제작했다. 경찰은 이날 태릉국제사격장에서 실탄 발사를 한 결과, 진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성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조씨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손재주가 있었고 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198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세계경호장비 전시회’가 열리자 밀라노를 방문했고 ‘스테이어 맨리처’사의 제품 본 뒤 빠졌다고 했다. 조씨가 본격적으로 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96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세계 각국의 유명 총기 설계도면을 쉽게 입수한 그는 금천구 독산동에 금형공장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총을 만들어 왔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새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주인공 목소리 맡은 벤 스틸러

    새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주인공 목소리 맡은 벤 스틸러

    |로스앤젤레스 이영표특파원|일순간 관객의 배꼽을 잡아빼는 코믹 연기는 물론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도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할리우드 최고의 재간둥이 벤 스틸러(40). 그가 장편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무한 재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벤 스틸러는 오는 7월14일 국내 개봉(미국 5월27일)하는 드림웍스의 새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Madagascar)’에서 주인공 사자 알렉스 역을 맡아 목소리를 연기했다.‘마다가스카’는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 기린 멜먼(데이비드 시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스미스)가 우연한 운송 사고로 아프리카 야생섬 ‘마다가스카’에 정박한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그린 작품. 지난 5일부터 이틀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프레스 정킷에서 그를 만났다. 할리우드 스타답지 않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코믹 연기의 달인답게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완전히 다른 과정이더라고요. 상대 배우 없이 혼자 녹음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처음엔 생소했죠. 나중에 목소리를 입힌 캐릭터의 실제 비주얼을 보게 되면서 내 연기와 캐릭터가 함께 융화돼 가는 것을 알게 됐어요.”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가 실제 연기에 견줘 그리 녹록지 않았다며 미소짓는다. ‘마다가스카’는 ‘샤크’ 등 드림웍스의 기존 애니메이션과 달리 영화 캐릭터 자체를 살리기 위해 배우 고유의 이미지를 조금은 억누른 느낌을 준다.‘벤 스틸러표 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톡한 이미지로 승부해 온 그로서 불만은 없었을까.“별다른 불만은 없었어요.3년여의 긴 과정이었고, 처음엔 이 작업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연기하려 노력했죠.” 그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소 관심이 작품의 출연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고픈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지난 2001년쯤 드림웍스의 수장 카젠버그가 출연 섭외차 ‘슈렉’이 제작되던 스튜디오에 초대를 하면서 자연스레 응하게 됐다는 것. 특히 그는 “작품속 캐릭터들이 토박이 뉴요커인데, 내가 바로 토박이 뉴요커”라면서 “그 부분이 나를 캐스팅한 주요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트 페어런츠’ 등에서 보듯 영화 속에서 항상 벤 스틸러는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그 재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라고 묻자 쑥스러운 웃음을 내보인다.“그런 칭찬해 줘서 고맙지만, 한번도 내 자신을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지금 모습처럼 난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이죠.‘Funny’한 부분은 내가 가진 성격의 여러 측면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사실 그는 본능적으로 코믹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피구의 제왕’과 같은 작품 속에서 보듯 굉장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연기자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평가에 손사래부터 쳤다.“영화속 맥락 안에서 캐릭터의 어떤 점이 웃기는지 발견하려고 애쓰면서 그냥 연기를 즐기죠. 그 에너지가 연기에 반영돼 표출된다고 생각해요.” 할리우드에서 그와 비슷한 이미지로 어필하는 배우 애덤 샌들러의 경우는 최근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그에게 “이미지 변신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고 보는가.”라고 묻자 여지껏 조근조근하던 그의 목소리가 올라간다.“다른 역할을 할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적합한 역할과 감독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죠. 예전에도 약간 다른 이미지의 역할을 한 적이 있고, 최근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인종 차별을 다룬 연극에도 출연했어요.” 배우, 감독, 작가 가운데 하나를 꼽는다면 어렸을 때부터 꿈으로 간직해 온 감독이란 직업이 가장 애착이 간다는 그는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저로서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이번이 처음이에요. 딸아이를 가진 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가족 특히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했다는 것이 만족스러워요.” 인터뷰를 마치며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하자 어깨를 들썩이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학교에서 배우거나 뉴스에서 본 것이 전부란다. “영화 홍보차 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꼭 한번 한국을 방문해 한국 문화도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해요. 한국 관객들이 이 작품을 재미있게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tomcat@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삼성 ‘선두 탈환’

    삼성이 안방에서 두산을 무너뜨리고 하루 만에 반 게임차 단독선두에 복귀했다. 돌풍의 롯데는 SK를 잡고 선두권의 꿈을 부풀렸고,LG도 시즌 첫 4연승으로 단독 4위에 올라섰다. 두산과 하루 사이 1,2위를 맞바꾸는 혈전을 벌이고 있는 삼성은 12일 대구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박한이의 결승 투런홈런과 배영수의 호투를 앞세워 두산을 7-2로 격파하고 또 선두를 탈환했다. 삼성의 에이스 배영수는 7회까지 두산을 상대로 7안타 2실점으로 묶어 시즌 5승째를 거뒀다. 탈삼진도 8개(시즌 51개)를 보태 부문 1위에 올라섰다. 지난 시즌 MVP 배영수 대 ‘고졸루키’ 금민철. 선발의 무게만 놓고 일방적일 것처럼 보였지만 삼성은 시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두산의 ‘깜짝 선발’ 금민철에게 눌려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두산에 1,2회 각 1점씩을 내준 뒤 2회 무사 만루의 황금 같은 찬스에서도 김종훈의 병살타로 단 1점에 그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2로 뒤진 4회말 2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6번 박한이가 ‘빅뱅’의 물꼬를 텄다. 볼카운트 1-3에서 금민철의 공을 결대로 밀어쳐 좌측 펜스를 훌쩍 넘긴 것. 시즌 4호이자 110m짜리 투런 아치. 5회에 잠시 숨을 고른 삼성 타선은 6회 들어 또 폭발했다. 삼성은 1사 이후 심정수가 볼넷으로 걸어나간 뒤 진갑용과 박한이의 안타를 묶어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두산은 불을 끄기 위해 금민철을 내리고 김성배를 마운드에 올렸지만, 김종훈과 김대익의 연속 적시타와 박종호의 희생플라이로 대거 4득점,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롯데는 문학구장에서 SK를 8-1로 물리치고 인천 원정을 기분 좋게 2승1패로 마감했다. 손민한은 7이닝을 3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고 5연승을 달리며 6승(1패)으로 다승 부문 단독 1위에 올라섰다. 롯데는 3회 초 정수근과 라이온의 볼넷과 이대호의 사사구를 엮어 만든 1사 만루에서 손인호와 최준석의 연속안타로 4득점을 쓸어담아 일찌감치 승부의 추를 돌렸다. LG는 잠실에서 한화에 짜릿한 7-4 역전승을 연출했다.1-1로 팽팽한 투수전을 이어가던 8회 초 한화에 먼저 3점을 내주면서 패색이 짙었지만,8회말 대타 이성열의 생애 첫 3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든 뒤 마테오의 2점포로 승부를 뒤집었다. 기아는 광주구장에서 대타 이재주의 ‘3점포 재주’를 앞세워 ‘형제구단’ 현대에 6-5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제1회 청소년 서울 음악 콩쿠르] 이재하(국악) 배지혜(서양음악) 대상 ‘영예’

    [제1회 청소년 서울 음악 콩쿠르] 이재하(국악) 배지혜(서양음악) 대상 ‘영예’

    서울신문과 SBS,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한 ‘제1회 청소년 서울음악콩쿠르’에서 국악부문에서는 국립국악고등학교 이재하(18)군이, 서양음악 부문에선 서울예술고등학교 배지혜(17)양이 최고상인 대상 수상자로 9일 결정됐다. 기존의 다른 콩쿠르와는 달리 고교 재학생만을 참가 대상으로 한 이번 서울콩쿠르에는 모두 311명이 참가,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열띤 경연을 펼쳤다. 기량이 뛰어난 고교생들의 참여로 명실공히 최고의 청소년 음악콩쿠르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이번 콩쿠르는 국악부문(관악, 타악, 성악, 현악)과 서양부문(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성악)으로 나눠 예선과 본선을 거쳐 결선을 실시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대학등록금으로 1년에 700만원씩 4년간 2800만원이 지급되고, 서울시 국악관현악단과 서울시향이나 서울청소년관현악단과의 협연 기회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13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국악 ▲대상 이재하 ▲관악 최우수 조한결 우수 유정우 장려 박솔지·방초롱 ▲타악 최우수 정다정 우수 장수미 장려 김동국·김지혜 ▲성악 최우수 백현호 우수 유지수 장려 박희원·이나라 ▲현악 최우수 김수진 우수 한송이 장려 양수연·문주원 ●서양음악 ▲대상 배지혜 ▲피아노 최우수 최자현 우수 선우예권 장려 조영훈·정현지 ▲바이올린 최우수 이마리솔 우수 김신해 장려 정현지·박동석 ▲첼로 우수 장하얀 장려 최주연·이현지 ▲성악 최우수 이명현 우수 백소민 장려 김재준·정현덕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국악부문 대상 이재하군 “워낙 경쟁률이 높고 다른 친구들도 잘해 대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국악 부문에서 ‘신쾌동유 거문고 산조’로 대상을 받은 국립국악고등학교 3학년 이재하(18·거문고)군은 대상 수상 소식에 “너무 기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군은 “결선에서 악기가 바닥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거문고 밑에 붙여 놓은 고무판이 하나 떨어져 나가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털어 놓기도 했다. 또 “상을 받겠다는 생각보다 심사위원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 주겠다는 마음으로 연주하다 보니 여유로워진 것 같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거문고에 대해 “무겁고 진중한 소리가 매력적”이라며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본 것들을 음악에 담아 내는 것이 즐겁다.”고 소개했다. 5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이군은 경기도 수원 소화초등학교 3학년때 교내 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너무 소리가 좋아 엄마를 졸라 거문고에 입문했다. 그는 “집에 거문고 3대를 제 방과 연습실, 거실에 놓아두고 TV를 보면서도 연주를 하는 등 악기를 가지고 놀았다.”며 “앞으로 국악 지휘를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국악부문 심사평 고교생 수준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참가해 대회의 수준을 높였다. 국악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예선 심사시에는 애로가 많았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면 심사를 하기가 수월할 텐데 기량이 엇비슷하다 보니 우월을 가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상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로 모두들 잘해 파트별로 한 명씩 뽑고 싶을 정도여서 심사위원들 간에 다소 갈등이 생길 정도 였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이 실력있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용탁 국립관현악단 지휘자 ■ 서양음악 대상 배지혜양 “연주의 첫 부분은 누구나 비슷하게 연주하지만 끝까지 곡을 관리하면서 완성감 있게 끌고 가는 것은 어렵거든요. 제가 그런 부분에서 나름대로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서울예술고등학교 2학년 배지혜(17·첼로)양은 ‘드보르자크 콘체르토 1악장’을 연주해 양악 부문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미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경력이 있는 재주꾼인 배 양은 “다들 너무 잘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서 “대상 수상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6살때부터 피아노를 치다가 서울 잠실 아주초등학교 3학년때 첼로로 바꿨다는 배 양은 이번 연주회를 위해 몸 관리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손이 약해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하루 서너시간은 꼭 연습한다.”는 그는 테크닉 부분보다는 곡 해석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평소에 곡과 연결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책도 보고 영화를 보는 것이 연주에 도움이 되거든요. 연주를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첼로는 저음이 풍부하게 울리지만 고음에서도 다양한 음색을 낼 수 있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주활동을 하고 싶어요.”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서양음악 심사평 전반적으로 경연에 참여한 학생들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하지만 내가 심사한 현악파트에서는 본선 과정에서 실력 차이가 두드러지게 났다. 그 결과 첼로부문의 배지혜양의 경우 18명의 심사위원들 가운데 11표를 받아 압도적으로 대상에 결정됐다. 덕분에 심사위원들간에 이견 없이 선정됐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첫 해이다 보니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어 현악 파트의 경우 심사를 바이올린, 첼로 파트를 묶어서 하다 보니 다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김봉 경원대학교 음악대학장
  • X게임 최강 가리자

    X게임 최강 가리자

    중력을 무시한 듯 하늘로 솟구쳐 올라 몸을 비트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터들과 스케이트 보더들, 행여 고꾸라지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면서도 묘기에 숨 죽이는 관중들…. 액션스포츠 마니아들에게 꿈의 무대로 자리잡은 X게임(익스트림 스포츠)대회가 국내에서도 열린다.‘아시안 X게임2005’(총상금 14만달러)가 국내 최초로 오는 26일부터 나흘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일대에서 치러지는 것. 한국과 미국·일본 등 14개국에서 예선을 통과한 300여명의 선수들이 5개종목 11개 부문에서 경쟁을 펼칠 X게임의 세계로 빠져보자.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트 90년대 중반부터 보급돼 현재 450만여명이 즐길 정도로 전국민의 스포츠로 자리잡은 인라인스케이트의 일종. 평지에 장애물과 기물을 설치한 뒤 자유로운 연기를 펼치는 ‘파크’(경기시간 60초)와 파이프를 자른 U자형 원통 모양의 거대한 기물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재주를 겨루는 ‘버트’(50초) 두 부문으로 나뉜다. 고난이도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킬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스케이트보딩 X게임 종목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1959∼)와 두터운 마니아층을 자랑한다. 이번 대회에선 파크(60초)와 버트(45초)부문이 나뉘어 치러진다. 기술의 난이도와 독창성은 물론 경기장을 넓고 높게 사용할수록 후한 평가를 받는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현란한 묘기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포인트. ●BMX 프리스타일 80년대 초 BMX(Bicycle Motorcross) 레이싱에서 시작됐고, 버려진 스케이트파크를 발견한 일부 선수들이 공중묘기를 비롯한 스턴트를 선보이면서 ‘프리스타일’ 쪽으로 급속히 퍼졌다. 전용 자전거로 묘기를 펼치며 파크(75초)와 버트(60초) 및 플랫랜드(90초) 부문이 별도로 있다. ●웨이크보딩 1985년 탄생한 뒤 20년도 안돼 전세계 레포츠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신종 수상 레저스포츠로 국내 동호인만 5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확장일로에 있다. 서핑과 스케이트보드에 수상스키가 접목된 것으로 모터보트에 보드를 연결한 뒤, 보트가 만들어낸 인위적 파도를 점프대 삼아 360도 회전과 점프 등 묘기를 뽐내 우열을 가린다. ●스포츠 클라이밍 국내 인공암벽 200여개, 동호인구만 5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폭넓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은 남녀 볼더링 부문으로 나뉘어 열린다.‘물에 쓸려 둥글게 닳은 바위’를 의미하는 볼더가 곳곳에 박혀 있는 5m 이내의 인공 암벽을 오르는 것으로 암벽내에 홀드(볼더링 사이에 이동 숫자)를 많이 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고, 동일 점수 때에는 빠른 시간안에 이동한 선수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 아시아 최정상급 클라이머인 손상원(23)과 김자인(17·여)이 우승을 노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중국을 겨냥하여 ‘서해안 시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천은 서해안의 대중국 창구이자 교두보였다. 강화 고인돌과 단군의 유향(遺香)이 전해지고,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미추홀과 비류백제로 상징되는 해양세력의 거점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인천시의 남동갯벌, 도장리에서 승학천을 따라 이어지는 저지대는 바닷물이 들어오거나 습지였기에 문학산과 승학산이야말로 지리·환경적으로 초기국가 단계의 도읍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백제시대에는 대외 창구로 기능하여 오늘날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의 능허대를 거점으로 해 중국과 넘나들었다. 한강 하류인 인천을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산둥반도 등주에 이르는 등주항로야말로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칠때 이용한 바로 그 항로이다. 오늘날 능허대는 아파트촌에 뒤덮이고 말았으나 조선 후기 읍지에 ‘백제조천시발선처(百濟朝天時發船處)라 하였듯 역사의 현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인천이 한반도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뜬’ 것은 역시나 조선시대가 아닐까. 수도 한양에 이르는 입구, 이른바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온갖 역사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서해 뱃사람들에게 ‘행주참을 댄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수, 즉 밀물이 몰려들면 바닷물은 강물 위로 뜨고 바다로 내려가는 강물은 밑으로 깔리는 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인천쪽에서 한강을 거슬러 행주나루를 거쳐 마포까지 직행하는 뱃길 노정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그 뱃길을 따라서 열강들이 빈번하게 침범을 강행했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포대가 이를 웅변해준다. 대개의 개항장이 시련을 겪으며 탄생했지만 인천만큼 열강들의 침략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 뻗친 곳이 또 있으랴.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는 바로 이런 개항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에 진출하려는 열강들은 인천 해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그것으로, 선조들은 이들의 도래를 온몸으로 싸워 막았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조선 진출의 기선을 제압하고자 운요호(雲揚號)사건(1875)을 감행했고, 끝내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1876)으로 문을 열게 되었음은 교과서적 상식이다. 구미 열강과도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니 은둔국 조선은 갑자기 봇물 터진 외압을 직접 받게 된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제물포는 하룻밤 새 개항장으로 둔갑하여 1883년에 인천해관과 감리서가 설치되고, 각국 영사관과 외국인 조계들이 설치되기에 이른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일본의 전쟁을 위하여 조선땅을 내준 꼴이 됐으니, 이후 일본군의 군화발이 인천항을 자기 땅처럼 짓밟았다. 1892년,‘일본 밖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완벽한 일본책’으로 자평하는 ‘인천사정’이란 책자는 당시 ‘일본 영사관이 일장기를 아주 높게 휘날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서 장엄하고 수려하게 인천항을 삼킬 듯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정말 그들은 인천항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삼켜버렸다. 그 후 우체국, 경찰서, 일본거류지의회, 인천상법회의소, 무역상조합, 잡화상조합, 영어소학교, 공립소학교, 교토의 본원사(本願寺), 공립병원와 강제병원, 정미소, 제물구락부, 조선신보, 활자소, 그리고 제일국립은행, 제18국립은행, 제58국립은행, 일한무역상사, 우선주식회사의 일본지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대불호텔과 이태호텔, 수월루 등의 여관도 들어섰다.‘근래 불경기라는 소리가 인천항의 온 시가를 뒤덮는 데도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花紅柳綠) 흥청대기 이를 데 없으니 술집에는 어린 소녀들도 많았다.’고 한 기록도 있다. 이로써 유곽이 번창하여 도심까지 집창촌이 뻗어 나가 항구를 드나드는 뭇사내들을 유혹하였다. 교회도 빠질 수 없었으니 영국 성공회를 필두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등이 속속 들어섰다. 수출입세를 관장한 해관(海關)만큼은 조선정부 관할이었다. 물론 해관 운영에 ‘왕초보’였기에 대대로 영국, 독일, 일본인 등이 도맡아 했고 그들은 그야말로 ‘엿장사 마음대로’ 개항장을 농락하였다. 일본인들이 잘못된 협약서를 근거로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축적했던 수탈 과정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당시 수입된 면직물은 대부분 영국제로 일본인이 수출을 독점했는데 영국도 저렴한 세금을 관철시켰다. 제국주의 경제침탈의 전형적인 모습이 인천항에서 관철되었다. 개항 당시 서울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천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적었고, 총인구 2649명 중 쓰시마, 나가사키 사람들, 그리고 시모노세키가 위치한 야마구치(山口), 규슈의 오이타(大分)사람들이 주류였다. 일제침략기를 통해 대개 한반도에서 가까운 규슈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건너왔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쪽 방언들이 즐겨 쓰였으며, 도쿄, 오사카, 쓰시마 등 여러 곳의 언어가 섞인 것을 ‘인천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는 관리 세관원 은행원 회사원 무역상 중개인 운수업 하역업 여관 요리점 목욕탕 음식점 양주집 일본주점 약국 의사 사진사 이발업 재봉업 활판인쇄업 세탁소 양조장 대장간 오락실 과자점 창고업 고용직과 잡상 목수 석공 농업 등 온갖 직종 종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장차 식민지가 될 조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러일전쟁·청일전쟁 등이 터졌을때는 자발적으로 전선구호와 간호 등에 힘을 보탰으며 스스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즉, 개항장에 나와 있던 일본거류민들을 순수한 의미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일본의 관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식민지 개척의 첨병으로 움직였다.‘생돈’이 생기는 만큼 화려한 의복과 음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웅장한 반양반일(半洋半日) 가옥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개항장은 일본거류지, 각국거류지, 중국거류지로 삼분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확연하다. 은행건물 등이 남아있는 일본인 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중국인 거리가 그것이다. 각국 거류지라고는 해도 19세기말에는 영국인 7명, 독일인 13명, 미국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인 1명 등이 거주했을 뿐이고 대개 일본·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각국거류지 회의는 인구비례가 아니라 국적별로 참여하도록 했으며, 서양인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게다가 회의조차 영어로 진행하니 일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간척을 통해 땅을 확보, 도심을 불려나갔다. 오늘날 인천항 주변이 대부분 간척지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의 대응은 전무하였던가. 인천 출신의 역사학자 임학성(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인천객주협회를 모체로 1897년에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는 민족 상인의 상권을 옹호·신장하였다.”고 지적한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에서 역주한 ‘인천개항25년사’(1907)를 보면, 조선인들은 오늘로 치면 송월·전·복성·인현·경·신포·답·신생·사·유·신흥·선화·도원동 등에 몰려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항 초기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상권 경쟁이 치열했다. 중국인들은 특유의 근면과 상업적 재기를 토대로 일본에 맞섰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결국 중국 상권도 몰락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중국인들은 다시금 성실하게 상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천시가 중국인거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집이나 운영하고 살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들은 옥양목 같은 옷감장사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상권을 장악해 ‘비단장사 왕서방’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조선의 쌀을 싸게 사들여 일본에 되팔아 엄청난 돈을 거머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경인철도가 부설되자 서울을 오가는 보따리장사는 물론이고 석유장사 등으로 일본인들 역시 큰 돈을 벌어들였다. 군인들이 자주 부르는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도 당시 이후 첨단 공장인 성냥공장이 인천에 많았음을 방증하며, 그만큼 선진적 공장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의 하나였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인천은 일본인 대신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이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거니와 산둥반도 등지를 오가는 페리에서 사람과 짐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인 거리에 가면 대하소설 삼국지를 연작 벽화로 그려놓아 길거리를 걸으면서 책읽기를 끝낼 수 있게 해놨다. 게다가 원조자장면집을 아예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박물관만큼은 ‘대박’이 예감된다. 하고많은 박물관 중에 자장면 박물관은 특이성도 돋보이지만 인천에 딱 어울리는 까닭이다. 김춘선 인천해양수산청장은 “거대한 대중국 서해시대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대북 통일시대의 거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포, 해주 등지를 오가는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북핵문제 등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있지만 바닷길만큼은 항상 열려 있어 민족화합에도 이바지하는 셈이다. 인천항의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파나마식운하의 물을 가두었다 풀어 놓는 갑문이 낙후해 머잖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 형편이다. 갑문으로 가보니 5만t,10만t급의 거대한 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인천항도 이제는 외항시대로 접어들었다.“인천항도 북항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의 인천은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 고베와 나가사키 쓰시마 부산 원산 톈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잇는 정기연락선이 오고갔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바다를 통한 국제간 교역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가 근자에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바다를 통한 교류는 무려 반세기나 묶여 있다가 재개된 셈이다. 당시 인천은 ‘완연한 한국의 요코하마’로 불렸다. 국제 첨단 신도시로 개발되는 송도신도시가 완공되면 인근 인천공항과 더불어 인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니 돌고 도는 역사의 변화가 다시 온 몸으로 느껴진다.
  • 김기덕의 도전 관객에 통할까

    김기덕의 도전 관객에 통할까

    김기덕 감독이 10억원의 저예산으로 찍은 새 영화 ‘활’(제작 김기덕프로덕션)은 가까운 극장에서 쉽사리 만날 수가 없다. 서울 관객이라면 강남역에 자리한 씨너스G 극장(12일 개봉)으로 작정하고 다리품을 팔아야만 한다. 게다가 영화의 ‘정보’도 노출된 게 거의 없다. 홍보를 위해 개봉 3,4주전쯤 갖는 기자 및 일반시사회를 이례적으로 생략했기 때문이다. ‘국제영화제 스타’ 김기덕 감독이 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국내 영화시장의 배급질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른바 1개 극장에서만 영화를 개봉하는 ‘단관 개봉’을 선언한 것이다. 힘들게 극장을 잡아도 사전 예매율이나 개봉 첫주말 성적이 신통찮으면 여지없이 간판이 내려지고 마는 게 요즘 영화판의 현실. 어차피 저예산 예술영화가 멀티플렉스 시스템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아예 1개 혹은 극히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단관개봉으로 ‘안정적’인 상영일수를 보장받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계산인 셈이다. 그의 시도는 극장가 안팎에서 일단 참신한 쪽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것이 국산 예술영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이들도 적지 않다.“국제영화제에서 ‘거장’ 대접을 받는 사람의 형편이 그렇고 보면 다른 소규모 독립·예술영화들의 현실이야 뻔한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다. 전방위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대형영화의 틈바구니에서 명함도 못 내밀고 스러지는 작은 영화들의 고충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지난달 15일 개봉한 전수일 감독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년 제작된 이후 2년의 우여곡절을 거쳐 간신히 전국 20개 스크린에 내걸렸다. 하지만 부진한 흥행성적으로 개봉 일주일 만에 간판이 내려졌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으나 지난 3월에야 늑장개봉한 민병국 감독의 저예산 영화 ‘가능한 변화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전국 6개 스크린에서 겨우 개봉했지만 일주일만에 접었다. 홍보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제작비의 절반을 쏟아부어 마케팅에 주력한 뒤 200여개 스크린에서 ‘와이드 릴리즈’되는 주류영화들과는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처지”라면서 “무슨 재주로 개봉 첫주 성적을 극장주 마음에 흡족하도록 끌어올리겠느냐.”고 말했다. 영화의 종(種)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영화계 내부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CJ CGV가 연간 10억원의 손실을 각오하고 강변, 상암, 부산 서면 등 3개관에 문을 연 CGV 인디영화관이 대표적인 최근 사례. 국제영화제 수상이력이 화려한 황철민 감독의 저예산 독립영화 ‘프락치’가 20일 어렵사리 개봉하는 곳도 CGV강변과 상암 인디영화관이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없었더라면 이 작품 또한 극장 밖에서 얼마나 오래 ‘방황’할지 모를 일이다. 김기덕 감독의 파격실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해외시장을 집중 겨냥하고, 국내 관객은 들러리 취급하는 오만한 태도”라고 꼬집는 삐딱한 시선도 꽤 많다. 실제로 그의 ‘브랜드’ 덕분에 ‘활’은 이미 해외시장에서 70만달러를 벌어놓았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도 초청됐으니 현지마켓에서 추가계약할 판매고는 그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럼에도 ‘활’의 이후 행보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결과가 어떻든, 한 작품이 200∼300개 스크린을 잠식해 선택의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기존 배급관행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영화계는 입을 모은다. ‘활’은 12일 서울 씨너스G와 부산극장,19일 씨너스 대전,26일 대구 한일극장,6월2일 광주 무등극장에서 개봉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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